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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3

転向と親日派 : 金 石範: Japanese Books

転向と親日派 : 金 石範: Japanese Books




転向と親日派
by 金 石範 (Author) Format: Hardcover

日本植民地下の朝鮮で,日本に積極的に協力した「親日派」が解放後も勢力を振るい続けた.このような非理がなぜ許されていいのか.在日半世紀の作家が,自らにかけられた転向強要をも振り返りつつ描く,魂の叫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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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 (from MARC Database)
朝鮮、中国における「親日」の言葉は、親善の言葉ではなく植民地時代の対日協力者のことを言う。戦後の韓国において粛清、追放がなされなかった現実と日本での転向の問題をとりあげ、現在の問題としての「親日派」の軌跡を辿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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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의 <전향과 친일파> 요약 및 평론

1. 개요와 핵심 문제의식

재일조선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김석범은 대하소설 <화산도>를 통해 제주 4·3 사건과 해방 전후사의 비극을 치열하게 응시해 왔다. 평론집이자 사상적 기록인 <전향과 친일파>는 그가 평생 천착해 온 역사적 트라우마와 식민지 지배의 잔재가 어떻게 현대 한국과 일본 사회의 구조적 왜곡을 낳았는지를 정면으로 파헤친 저작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단순한 도덕적 단죄를 넘어, '친일파'라는 존재가 식민지 지기(時期)에 어떻게 형성되고 해방 후 어떻게 국가 권력의 중심에 복귀했는지를 추적한다. 나아가 일제 말기 사상 통제 속에서 벌어진 '전향'(사상적 굴복과 변절)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남한 현대사의 반공주의와 결합하여 비판적 지성을 마비시켰는지를 냉철하게 해부한다.

2. 저서 요약: 왜곡된 역사의 연속선

친일파의 재생산과 지배 권력화

해방 직후 한반도에서는 민족 정기와 식민지 잔재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가 가동되었다. 그러나 미군정의 정책적 편의주의와 이승만 정권의 권력욕이 결합하면서 친일 관료, 경찰, 군인들은 단죄받지 않았다. 이들은 '반공'이라는 새로운 외피를 입고 국가 통치 기구의 핵심으로 흡수되었다. 김석범은 이 지점을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본다. 민족을 배반했던 자들이 국가의 지배층으로 탈바꿈하면서, 민족주의적 정당성과 국가 권력 간의 치명적인 괴리가 발생했다.

'전향'의 본질과 사상적 변질

일제 강점기 치안유지법 체제하에서 강요된 '전향'은 단순한 저항의 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천황제 이데올로기로의 적극적 동화이자 일체화를 요구하는 영혼의 파괴였다. 저자는 일제 말기 전향 지식인들이 보여준 궤적을 짚으며, 해방 후에도 이 전향의 메커니즘이 소멸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남한 체제에서 전향은 '반공으로의 전향'으로 모습을 바꾸어 사상 검증과 학살, 탄압의 정당화 수단으로 작동했다. 친일의 전력을 지우기 위해 누구보다 극단적인 반공 투사가 되어야 했던 자들의 자기방어가 사회 전체를 광기 어린 적대감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재일의 시선과 경계인의 통찰

일본 사회 내부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 작가로서, 김석범은 일본의 전후 책임 방기와 한국의 역사 왜곡을 동시에 비판한다. 일본은 패전 후 천황제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냉전 체제에 편승했고, 한국은 독재와 분단 속에서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기형적인 근대화를 추진했다. 저자는 경계인의 위치에서 양국의 위선을 날카롭게 짚어내며, 지배 권력이 강요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허구성을 고발한다.

3. 비평: 비극의 메커니즘에 대한 문학적·사상적 해체

도덕적 비판을 넘어선 구조적 분석

김석범의 논의가 지닌 가장 큰 힘은 친일과 전향을 개별 인물의 도덕적 타락으로만 환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그것을 근대 동아시아의 폭력적 국가 장치와 식민 권력이 개인을 파괴하고 길들이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파악한다. 친일파들이 살아남기 위해 취한 생존 전략이 어떻게 국가 폭력의 도구로 진화했는지를 드러냄으로써, 현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극우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의 기원을 명쾌하게 밝혀낸다.

국가와 충성을 횡단하는 보편적 자유의 추구

작가는 맹목적인 민족주의에 기대어 친일파를 비판하지 않는다. 만약 단순한 혈통주의적 민족주의에 기댔다면 재일조선인이라는 그의 실존적 위치 자체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가 진정으로 문제 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적인 국가 권력> 그 자체다. 국가 권력이 개인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그 충성의 잣대로 인간을 범주화하여 배제하는 전체주의적 폭력성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과거사 청산의 현재성

<전향과 친일파>는 닫힌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질문이다. 식민 지배의 청산 부재, 왜곡된 권력 구조, 타자를 낙인찍고 배제하는 정치적 담론은 오늘날에도 국경을 넘어 반복되고 있다. 김석범의 글은 국가나 체제라는 거대한 허상에 휘둘리지 않고, 역사의 진실과 개인의 사상적 독립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면서도 필수적인 일인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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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金石範) <転向と親日派>(전향과 친일파, 1993) — 요약·평론

김석범의 <전향과 친일파>는 1993년 이와나미서점에서 출간된 289쪽의 평론·에세이집이다. 책에는 「‘친일’에 대하여」, 「시인이 고통받는 사회」, 「권력은 스스로 정체를 폭로한다」, 「재방문을 거부당하고」, 「재일을 산다는 것」, 「‘조선’과 교과서 검정의 관점」, 「침략의 전후처리도 하지 않은 채」, 「예술과 정치」 등의 글이 실려 있다. 출판사의 소개가 요약하듯, 중심 문제는 식민지시대의 대일 협력자, 즉 ‘친일파’가 해방 뒤에도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에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그것을 ‘전향’이라는 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하는 데 있다. CiNii Research

이 책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제목의 두 단어 <전향(転向)>과 <친일파(親日派)>를 별개의 주제로 보지 않는 것이다. 김석범에게 두 현상은 모두 권력이 인간에게 자신의 과거와 신념을 부정하도록 강제하는 과정이라는 공통 구조를 가진다.

1. ‘친일’이라는 말의 역설

김석범은 먼저 ‘친일’이라는 단어 자체의 이상함을 지적한다. 문자 그대로라면 ‘일본과 친하게 지낸다’는 뜻이어야 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친일파’는 단순한 일본 우호론자가 아니다. 식민지 지배에 협력하고 일본 제국의 통치를 뒷받침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역사적·정치적 용어다.

문제는 1945년 해방으로 친일파의 역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김석범이 더욱 문제 삼는 것은 식민지 협력자들이 해방 후 충분히 청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상당수가 새로운 국가의 관료·경찰·군·문화계 엘리트로 재편입되었다는 점이다. 책의 소개문도 바로 이 문제를 “친일파가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정치권력을 장악했다”는 문제의식으로 제시한다. CiNii Research

따라서 김석범에게 친일 문제는 과거의 도덕적 심판 문제가 아니다.

<식민지 권력이 해방 후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았는가>라는 국가 형성의 문제다.

이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2. 전향은 단순한 ‘생각의 변화’가 아니다

일본 근현대사에서 ‘전향’은 특히 1930년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국가의 탄압 속에서 사상을 포기하거나 천황제 국가질서에 순응하게 된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김석범은 이를 단순한 일본사의 개념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그에게 전향이란

<권력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와 신념을 부정하고 지배질서의 언어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과정>

이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 일본 제국에 협력하는 과정도 넓은 의미에서 전향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민족주의자·사회주의자·독립운동가였던 사람이 탄압과 회유 속에서 일본 제국을 찬양하게 되고, 해방 뒤에는 다시 반공주의자가 되어 대한민국 국가체제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다.

여기에는 일종의 연쇄적인 정치적 변신이 존재한다.

민족주의·사회주의
→ 일본 제국에 대한 협력
→ 해방
→ 반공주의
→ 새로운 국가의 엘리트

김석범이 <전향>과 <친일파>를 연결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해방은 왜 단절이 되지 못했는가

김석범의 역사 인식에는 <해방의 불완전성>이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다.

1945년 일본 제국은 패망했지만 식민지시대에 만들어진 권력관계와 인적 네트워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남한에서는 냉전과 분단이 시작되면서 ‘친일 청산’보다 ‘반공’이 더 중요한 국가적 기준이 되었다.

그 결과 과거 일본 제국에 협력했던 사람이라도 강력한 반공주의자가 되면 새로운 국가체제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김석범에게 이것은 하나의 역사적 아이러니다.

식민지시대에는

<천황제 국가에 대한 충성>

이 요구되었는데,

해방 후에는

<반공국가에 대한 충성>

이 요구되었다.

체제는 달라졌지만 국가가 개인에게 사상적 충성을 요구하는 구조에는 연속성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4. 제주 4·3은 이 책의 보이지 않는 중심이다

<전향과 친일파>를 김석범의 다른 저작과 분리해서 읽으면 책의 깊이가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김석범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제주 4·3이다. 그는 <까마귀의 죽음(鴉の死)>에서 대작 <화산도(火山島)>에 이르기까지 평생 제주 4·3을 문학적으로 다루었다. 연구에서도 김석범 문학의 핵심을 제주 4·3, 재일조선인이라는 위치, 정치와 문학의 관계로 보고 있다. Korea Journal Central

그에게 4·3은 단순한 제주도의 지역적 비극이 아니다.

그 사건은 해방된 조선에서

  • 식민지 경찰의 잔존,
  • 우익 세력,
  • 냉전,
  • 반공주의,
  • 국가폭력,
  • 분단국가 형성

이 결합하는 지점이었다.

그러므로 친일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제주 4·3에서 국가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김석범에게 서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역사적 조건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향과 친일파>는 사실상 <화산도>의 역사철학을 산문으로 설명하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5. ‘전향하지 않는 것’이라는 김석범의 자기 문제

이 책에는 김석범 자신의 삶도 깊이 들어가 있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그는 일본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 ‘어느 조직에 속하는가’, ‘어떤 정치적 입장인가’를 선택하도록 요구받았다.

그에게 전향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현실적인 압력으로 존재했다.

그래서 김석범의 문학을 연구한 논자들은 그가 직접적인 정치운동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도 글쓰기를 통해 정치적 문제를 계속 추구했다고 본다. 한 연구는 이를 역설적으로 ‘실천적 정치활동에서 문학적 정치활동으로의 전향’이라고 표현한다. Korea Journal Central

그러나 김석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다른 의미의 ‘비전향’이었다.

<권력이 요구하는 기억의 삭제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제주 4·3을 계속 쓰는 것, 친일 문제를 계속 말하는 것,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을 계속 묻는 것이 그의 비전향이었다.


6. 이 책의 강점 — ‘친일’을 개인의 도덕성에서 구조의 문제로 바꾼다

이 책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부분은 친일파를 단순히

<나라를 팔아먹은 나쁜 사람들>

이라는 도덕적 범주에 넣지 않는 데 있다.

김석범의 질문은 더 복잡하다.

<왜 어떤 지식인은 전향했는가?>
<왜 전향자가 다시 새로운 권력의 엘리트가 되었는가?>
<왜 해방된 사회는 그들을 필요로 했는가?>

이렇게 묻게 되면 친일 문제는 개인의 배신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국가와 해방 후 국가 사이의 구조적 연속성>

이라는 문제로 이동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1990년대 초에 나온 책임에도 상당히 선구적이다.

이후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중요해진 ‘식민지 유산’, ‘인적 연속성’, ‘국가폭력’, ‘냉전국가 형성’이라는 주제가 이미 김석범의 문제의식 속에 강하게 들어 있다.


7. 그러나 한계도 있다

다만 김석범의 논리는 때때로 지나치게 도덕적 이분법으로 기울 위험이 있다.

친일파와 저항자, 전향자와 비전향자 사이에는 실제 역사에서 매우 넓은 회색지대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식민지 말기 조선인 지식인이 일본어로 글을 썼다는 사실, 일본 기관에서 일했다는 사실, 전쟁협력 문장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하나의 ‘친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생존의 압력, 가족 문제, 강제성, 직업적 제약, 사상의 변화가 사람마다 달랐다.

따라서 오늘의 역사학이라면 김석범의 강한 윤리적 비판을 유지하면서도

<협력의 정도와 형태>

를 더 세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 해방 후 한국 국가의 형성을 친일 세력의 연속성만으로 설명해서도 충분하지 않다. 미군정, 냉전, 남북한의 충돌, 국내 계급구조, 우익 정치세력의 성장 등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다.


8. 가장 중요한 의미 — 친일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기억의 전향’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을 굳이 하나 뽑는다면 ‘친일파’보다 <전향>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김석범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사람이 한번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권력이 요구하는 대로 자신의 과거를 다시 써버리는 것>

이기 때문이다.

친일파가 해방 후 갑자기 열렬한 민족주의자나 반공주의자가 되고, 식민지 협력의 과거가 삭제된다. 국가 역시 자신의 폭력적 과거를 삭제한다.

개인이 전향하고 국가도 전향한다.

그러면 사회 전체의 기억도 전향하게 된다.

김석범이 평생 제주 4·3을 되풀이해서 쓴 이유도 이와 연결된다. <기억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 그의 문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종합평가

<전향과 친일파>는 친일파를 누가 친일파였는가를 판정하는 명단식 연구가 아니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는데도 왜 식민지 권력의 일부가 계속 살아남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

<권력은 인간의 기억과 사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를 묻는다.

그 점에서 제목의 두 단어는 매우 정확하다.

<친일파>가 역사적 현상이라면
<전향>은 그 현상을 가능하게 한 정신적·정치적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김석범 자신에게 문학은 그 전향에 맞서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친일파 연구서이면서 동시에 <해방되지 못한 기억에 관한 책>이라고 읽는 편이 더 적절하다. 1993년에 쓰인 글이지만, 친일 청산 여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넘어 식민지 지배와 해방, 냉전, 국가폭력의 연속성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읽을 의미가 크다. 2023년 간행된 <김석범 평론집Ⅱ 사상·역사론>에서도 <전향과 친일파>가 대표적 역사·사상 평론으로 다시 수록된 것은 이 글이 그의 사상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잘 보여준다. 楽天ブックス

특히 이 책은 세진님이 최근 읽으신 임지현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와 함께 읽으면 흥미롭습니다. 김석범이 <청산되지 않은 가해·협력의 기억>을 문제 삼는다면, 임지현은 그 후대에 형성된 <집단적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를 비판합니다. 두 사람을 나란히 놓으면 <친일파 청산–민족의 피해자성–기억 정치>가 서로 어떻게 긴장하는지 상당히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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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전향한 친일파 몇명을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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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이나 민족주의, 사회주의 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 말기 침략 전쟁과 황민화 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전향 친일파'로 돌아선 대표적인 인물들에 대한 분석입니다.

대표적인 전향 친일 인물들의 궤적

일제 말기 치안유지법과 사상 전향 제도는 식민지 지식인들을 체제 내부로 포섭하는 강력한 폭력 장치로 작동했다. 저항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들이 체제에 굴복하고 나아가 침략 전쟁의 나팔수로 변신한 과정은 식민 권력의 잔혹성과 지식인의 파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 최남선 (崔南善, 1890–1948)

  • <활동 배경과 위상>: 3·1 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 지도자이자 근대 신문화 운동을 주도한 학자였다. 옥고를 치르며 민족적 지조를 지키는 상징적 인물로 여겨졌다.

  • <전향과 친일 행적>: 192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산하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위촉되며 타협의 길로 들어섰다. 1930년대 후반에는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식민 통치와 만주 침략을 정당화하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대동아공영권' 논리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했다. 학도병 참전을 독려하는 시국 강연에 앞장서며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2. 이광수 (李光洙, 1892–1950)

  • <활동 배경과 위상>: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서를 기초했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 사장을 역임한 민족주의 문학의 거두였다.

  • <전향과 친일 행적>: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된 뒤 1939년 공식적으로 전향을 선언했다.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한 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며 징병제 찬양, 학도지원병 권유, 내선일체 선전 등 가장 노골적인 황민화 문학을 양산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 재판정에서도 "민족의 보존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강변했다.

3. 박흥식 (朴興植, 1903–1994)

  • <활동 배경과 위상>: 화신백화점을 세워 조선인 상권을 지키는 '민족 자본가'로 대중적 명성을 얻었던 식민지 조선의 대표적 실업가였다.

  • <전향과 친일 행적>: 중일전쟁 발발 이후 자신의 자본과 기업을 일제의 군수 물자 생산 기지로 전환했다. 조선비행기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군용 비행기 제작을 시도했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간부로서 군자금 헌납과 전쟁 지원 선전에 앞장섰다. 1949년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파 제1호'로 체포되었으나 특위가 와해되면서 무죄로 풀려났다.

4. 인정식 (印貞植, 1907–?)

  • <활동 배경과 위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농업경제학자로서 식민지 반봉건 논쟁을 주도하며 조선 농촌의 모순과 일제의 수탈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던 대표적 좌익 지식인이었다.

  • <전향과 친일 행적>: 1938년 투옥 중 전향서를 제출한 뒤 극우적 국가사회주의로 표변했다. 일제의 전시 통제 경제와 식량 공출을 '고도국방국가 건설'을 위한 필연적 조치로 찬양하는 논설을 쏟아냈다. 사회주의적 분석틀을 거꾸로 전시 동원 체제의 합리화 도구로 활용한 기괴한 전향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5. 노천명 (盧天命, 1911–1957)

  • <활동 배경과 위상>: <사슴>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근대 서정시의 대표적 여성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다.

  • <전향과 친일 행적>: 1940년대 들어 조선문인보국회에 참여하여 침략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하고 청년들에게 군 입대를 종용하는 시를 다수 발표했다. <싱가포르 함락>, <출정하는 동생에게> 등의 작품을 통해 식민지 청년들의 희생을 군국주의적 영웅주의로 포장하는 데 문학적 재능을 바쳤다.

이들의 변절은 일제의 사상 통제 기구(보호관찰소, 전향 공작)가 빚어낸 제도적 폭력의 결과물이자, 전시 총동원 체제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파멸을 피하려 했던 지식인들의 뼈아픈 윤리적 파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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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의 <전향과 친일파>에서 말하는 ‘전향한 친일파’를 이해하려면, 원래부터 친일적이었던 사람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유형은 처음에는 독립운동·민족운동·사회주의운동 등에 참여했다가 일제의 탄압과 회유 속에서 입장을 바꾸어 적극적 협력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광수(1892–1950): 가장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2·8독립선언 작성에 관여하고 민족주의·계몽주의의 대표적 지식인이었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된 뒤 전향하면서 친일 협력을 본격화했습니다. 이후 조선문인협회·조선문인보국회 등에 참여하고 지원병·학병 지원을 선전했습니다. 따라서 ‘민족주의자 → 전향 → 황민화 협력자’라는 경로가 매우 분명합니다. 

최남선(1890–1957): 3·1독립선언서의 핵심 작성자였고 초기 민족문화운동의 대표자였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식민지 통치 체제와 타협하기 시작했고, 중추원 참의가 되었으며 만주국과 일본의 전쟁정책을 옹호했습니다. 특히 전쟁 말기에는 학병 지원까지 선전했습니다. 이광수와 함께 ‘민족주의 지식인의 전향’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주 거론됩니다. 

박영희(1901–?): 조금 다른 종류의 전향입니다. 박영희는 1920년대 카프(KAPF)를 이끈 대표적인 사회주의 문학가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사회주의 탄압이 강해진 뒤 1930년대 중반 사상전향을 선언하고 친일 문학과 전쟁협력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즉 ‘사회주의 혁명문학 → 전향 → 제국주의 전쟁 협력’이라는 점에서 전향의 개념에 가장 정확히 들어맞는 사례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최남선·이광수와 함께 박영희를 대표적인 친일 전향 문인으로 다룹니다. 

박희도(1889–1951):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고 기독교계 민족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점차 일제에 협력했고, 전시체제 아래에서는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도 그를 ‘신간회에서 활동하였으나 전향하여 일제 정책에 협력한’ 인물이라고 명시합니다. 독립운동가 출신 친일 전향자라는 점에서 매우 선명한 사례입니다. 

최린(1878–1958): 천도교 지도자이자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1930년대에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며 협력했습니다. 최남선·박희도와 마찬가지로 3·1운동의 지도자가 식민지 말기에 친일 협력자로 변해 간 사례입니다. 

여기에 사회주의자들의 집단적 전향도 중요합니다. 1936년 결성된 <대동민우회>는 1920년대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다가 전향한 안준·주련·차재정 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일본 국가주의를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받아들였고, 중일전쟁 뒤에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를 ‘식민지 조선에서 결성된 최초의 전향자 친일 단체’라고 규정합니다. 

이들을 비교하면 세 유형이 보입니다.

전향 이전 대표 인물 전향 이후
민족주의·독립운동 이광수, 최남선 황민화·학병·전쟁협력
3·1운동·종교계 민족운동 박희도, 최린 내선일체·식민통치 협력
사회주의·좌익운동 박영희, 대동민우회 인사들 사상전향·일본 국가주의·전쟁협력
여기서 김석범의 문제의식에 가장 잘 맞는 인물은 저는 이광수·최남선·박영희 세 사람이라고 봅니다. 세 사람은 각각 민족주의, 문화민족주의, 사회주의라는 식민지 조선의 중요한 저항적 지적 흐름을 대표했다가 결국 일본 제국의 체제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광수는 가장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압력에 굴복하여 침묵한 정도가 아니라, 전향 이후 오히려 다른 조선인들에게도 일본인이 될 것과 전쟁에 참가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전향’은 개인의 신념 포기를 넘어 <전향한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의 전향을 요구하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이 문제를 너무 단순화해서도 안 됩니다. 전향의 동기는 체포와 고문, 장기 투옥에 대한 공포, 생계와 가족 문제, 정치적 환멸, 실제 사상 변화, 출세와 기회주의 등이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따라서 ‘왜 전향했는가’와 ‘전향 이후 어느 정도까지 적극적으로 협력했는가’를 구분해야 합니다.

김석범의 문제를 더 깊이 보려면 다음 단계로 <이광수·최남선·박영희 세 사람은 왜 전향했는가 — 강제·사상변화·기회주의의 비중>을 비교해 보는 것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이 세 사람은 전향의 원인이 서로 상당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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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 지식인과 일제의 사상 통제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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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가 1948년에 발표한 자전적 변명록 <나의 고백>에서 펼친 친일 논리와 이에 대한 비판적 분석입니다.

이광수의 <나의 고백>에 나타난 친일 변명 논리와 비판적 검토

춘원 이광수는 1948년 12월, 반민족행위처벌법 제정과 반민특위 출범을 앞둔 시점에 <나의 고백>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일제 말기 자신이 자행한 극단적인 친일 부역 행위를 해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집필한 텍스트로, 식민지 지식인의 굴절된 자기합리화가 집약되어 있다.

1. <나의 고백>에 드러난 핵심 변명 논리

'민족 보존론'과 희생양 자처

이광수는 자신의 친일 행위를 민족의 절멸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강변했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전시 총동원 체제하에서 정면 충돌은 곧 민족의 파멸을 의미했으므로, 자신이 오욕을 뒤집어쓰고 일제에 협력함으로써 민족의 씨앗과 생존을 지켜냈다는 논리다. 그는 자신을 기꺼이 진흙탕에 몸을 던진 '비극적 희생양'으로 윤색했다.

계몽주의의 연장선으로서의 '황민화 수용'

그는 1920년대 주창했던 <민족개조론>의 실력양성론을 친일 행적의 논리적 기초로 끌어들였다. 조선 민족이 무지하고 나약하여 식민지로 전락했으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동아전쟁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일본의 제도와 문명을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창씨개명과 학도지원병 권유 역시 조선 청년들이 피를 흘림으로써 제국 내에서 일본인과 동등한 권리와 참정권을 획득하는 통로라는 궤변을 펼쳤다.

일본의 영구 지배라는 정세 오판의 합리화

이광수는 당시 영미 세력의 패배와 일본 제국의 영구적 존속을 확신했다고 서술했다. 해방이 올 줄 몰랐기에, 만약 수백 년간 식민 지배가 이어진다면 하루빨리 내선일체에 순응하여 민족의 실리를 챙기는 것만이 현실적인 생존책이었다는 변명이다.

2. 변명 논리에 대한 비판적 검토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선적 희생'

이광수가 주장한 '민족 보존' 논리의 치명적인 모순은, 그가 지키고자 했다는 민족의 청년들을 바로 일제의 총알받이로 내몰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학도병 지원과 징병을 앞장서 독려하며 수많은 식민지 젊은이들을 침략 전쟁의 참호로 밀어 넣었다. 자신이 겪은 고초는 문필가로서의 평판 훼손에 불과했던 반면, 그가 부역 대가로 치르게 한 대가는 동시대 청년들의 실재하는 목숨이었다. 타인의 삶을 희생시켜 이룬 '민족 보존'이란 언어적 기만에 불과하다.

사회진화론적 맹신과 제국주의 내면화

그의 논리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조잡한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에 갇혀 있었다. 침략 전쟁을 '아시아의 해방'으로 미화하는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담론을 그대로 수용했으며, 식민 권력의 폭력성을 구조적으로 통찰하지 못했다. 이는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반제국주의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무지했던 지식인의 한계를 방증한다.

사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한 정략적 서사

<나의 고백>이 출간된 시점은 반민특위의 체포망이 좁혀오던 1948년 말이었다. 따라서 이 글은 순수한 내면적 성찰이나 참회의 기록이 아니라, 사법적 단죄를 면하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법정 변론서의 성격을 띤다. 실제로 그는 반민특위 재판정에서도 동일한 논리로 일관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잘못에 대한 반성은 부재했고, 자기변호와 과대망상적 영웅주의만 남았다.

이광수의 <나의 고백>은 국가주의적 거대 담론과 왜곡된 지적 우월감이 어떻게 한 지식인을 비참한 부역자로 전락시키고, 사후의 반성마저 가로막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사상적 파탄의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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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민족개조론>(1922)과 친일 부역으로의 사상적 귀결

이광수의 친일 행적은 단순한 일제 말기의 갑작스러운 변절이나 개인적 공포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1922년 발표한 <민족개조론>에서 싹텄던 왜곡된 현실 인식과 사상적 전제가 파시즘 및 전시 총동원 체제와 결합하면서 도출된 논리적 귀결이었다.

1. <민족개조론>의 핵심 내용

1919년 3·1 운동이 좌절된 후, 조선총독부가 이른바 '문화통치'를 표방하던 시기에 쓰인 이 논설은 민족의 위기 원인을 외부(일제의 식민 지배)가 아닌 내부(조선 민족의 결함)에서 찾았다.

민족성 타락론과 피해자 책임 전가

이광수는 조선이 국권을 상실하고 비참한 처지에 놓인 근본 원인을 '조선 민족의 도덕적·정신적 타락'으로 규정했다. 거짓말, 나태, 파쟁, 의뢰심(남에게 의지함), 공공정신의 결여 등을 '조선인의 고질적 악덕'으로 열거하며 민족 전체를 병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식민지 지배라는 외적 억압과 침탈의 구조적 모순은 은폐하고, 피지배자 스스로의 인격적 결함 때문에 지배를 받는다는 식민사관적 논리를 그대로 내면화했다.

정치적 독립 투쟁에 대한 무용론

그는 즉각적인 정치적 독립이나 무장 투쟁을 '망상'이자 '무모한 파괴'로 격하했다. 민족의 도덕과 실력이 개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독립은 불가능하며, 설령 독립한다 해도 다시 망할 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정치 투쟁을 일절 배격하고 오직 '도덕적 혁신'과 '실력 양성'이라는 문화·사회 운동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엘리트주의와 상명하복식 개조관

민족을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없는 우매한 대중으로 보았기에, 소수의 자각한 엘리트(지도층)가 대중을 훈육하고 훈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을 주체가 아닌 개조의 '대상'이자 '객체'로 바라보는 철저한 온정주의적·엘리트주의적 시각이었다.

2. <민족개조론>이 친일 부역 행적으로 연결된 내적 구조

<민족개조론>의 사상적 뼈대는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일제의 '황민화(皇民化)' 및 '내선일체(內鮮一體)' 논리와 손쉽게 결합했다.

외적 모순의 불감증과 식민 권력의 추종

민족 내부의 '개조'만을 절대시하고 일제의 침략성을 비판할 시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는 근대화의 동력을 식민 당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을 개조해 줄 수 있는 현실적인 강력한 문명국은 곧 '대일본제국'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일제의 식민 통치는 조선인을 문명인으로 단련시키는 일종의 '훈육소'로 정당화되었다.

'민족개조'에서 '황민화'로의 자연스러운 전이

1920년대에는 '도덕적 조선인'으로 개조하려 했다면, 일제 말기에는 그 개조의 궁극적 도달점을 '완전한 일본 제국의 신민(황민)'으로 치환했을 뿐이다. 일제가 제시한 황민화 정책(창씨개명, 일본어 상용, 신사참배)은 이광수에게 있어 조선인의 열등한 옛 껍질을 벗고 일류 제국 신민으로 다시 태어나는 가장 확실한 '개조의 완성'으로 인식되었다.

피를 통한 참정권 획득론 (학도병 권유의 논리)

이광수는 조선인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민 권력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했다. 조선 청년들이 제국의 침략 전쟁에 피를 흘려 참전해야 비로소 2등 신민의 굴레를 벗고 일본인과 동등한 권리와 참정권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의 학도지원병 종용과 징병 찬양은 단순한 굴복이 아니라, 피로써 제국민의 자격을 매수하겠다는 기괴한 '실력양성론'의 최종 변종이었다.

3. 총평: 조잡한 사회진화론의 파탄

이광수의 사상적 비극은 19세기 말 서구에서 유입된 조잡한 사회진화론(우승열패, 적자생존)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데서 출발했다. 강자(제국)의 폭력을 당연한 섭리로 여기고 약자(식민지 민중)의 고통을 '열등함에 대한 대가'로 치부했던 그의 지성은, 보편적 인권이나 반제국주의라는 거시적 세계사 흐름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1922년의 <민족개조론>은 일제 식민 지배를 자발적으로 정당화하는 '사상적 자궁'이었으며, 1940년대의 노골적인 군국주의 부역 행위는 그 왜곡된 씨앗이 파시즘의 토양에서 맺은 필연적인 파멸의 열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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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3

金石範 - Wikipedia

김석범 (소설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석범
작가 정보
본명신양근(愼陽根)
출생1925년 10월 2일(100세)
일본 오사카시
국적조선[1]
학력간사이 대학
수상제주4·3평화상

김석범(金石範, 1925년 10월 2일~)은 재일 한국인 소설가이다.

개요

오사카시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제주도 출신이다.[2] 2차대전 중에 제주도에 살면서 독립운동가들과 교류를 했다. 45년 오사카에서 종전을 맞았고 직후에 서울로 갔다가 46년에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에서 계속 지냈다. 간사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교토 대학 문학부 미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에 돌아온 48년, 제주 4·3 사건이 발생해 제주인들이 억압, 학살당했다. 이후 김석범은 4.3 사건을 지속적인 작품의 소재로 삼았으며 2015년 4.3 평화상 1회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3][4].

57년 잡지 문예수도(文藝首都)에 간수 박서방(看守朴書房), 까마귀의 죽음(鴉の死)을 발표했으나 별 반응은 없었다. 당시 김석범은 조선신보에서 기자를 하는 등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과 관계를 맺고있었지만 67년 까마귀의 죽음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이후 조직과 멀어졌다.

단행본 출간 이후 일본어로 창작하게 되었다. 70년의 만덕유령기담(万徳幽霊奇譚)으로 널리 인정받은 작가가 되었다. 제주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토속적인 느낌도 있지만 정치의 폭력에 대한 문학의 답변이라 할 수 있다. 76년부터 장기 연재된 화산도(火山島)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잡지 문학계(文學界)에 연재될 당시에는 해소(海嘯)라는 이름이었으나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제목을 바꾸었다. 84년 오사라기 지로상(大佛次郎賞) 98년 마이니치 예술상(毎日芸術賞)을 받았다.

그는 문학과 정치는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김달수 (소설가) 등과 창간한 계간 삼천리(季刊三千里)도 김달수 등이 독재정권 시대에 한국에 방문하자 편집위원을 사임한 것도 그의 입장과 관련이 있다. 또 조선적을 북쪽도 남쪽도 아닌 준 통일국적이라고 생각하며 유지한 사람 중 한명이다. 이회성 (소설가)의 한국 국적 취득을 비판했고 이것이 논쟁으로 발전한 적도 있다. 한국정부의 수차례에 걸친 초청을 거절한 것도 한국 국적 취득이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88년에는 민간단체의 초청으로 조선적을 유지한 채 서울특별시와 제주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2015년 제1회 제주 4.3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시상식에서 이승만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보수 진영 국회의원 등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같은 해인 2015년 10월, <화산도> 한국어판이 국내에서 출간됐지만[5]입국을 거부당해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지 못했다.[6][7][8].

저서 목록

각주

  1.  이혜진 (2021년 10월 29일). “윤동주, 김학철, 김석범의 국적은 어디인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  『読売年鑑 2016年版』(読売新聞東京本社、2016年)p.448
  3.  “済州4・3平和賞受賞の在日小説家・金石範氏「歴史伝えていく」”. 《聯合ニュース》. 2015년 4월 1일. 2015년 4월 13일에 확인함.
  4.  “【社説】大韓民国を侮辱した在日小説家・金石範]”. 《朝鮮日報日本語版》. 朝鮮日報. 2015년 4월 13일. 2015년 4월 13일에 확인함.
  5.  “연합뉴스 2015년 10월 16일.자”.
  6.  “在日小説家・金石範氏の訪韓申請を却下=韓国政府”. Wow! Korea. 2015년 10월 13일. 2015년 12월 26일에 확인함.
  7.  箱田哲也 (2015년 10월 16일). “韓国が在日小説家の入国拒否 過去の政権批判が影響か”. 《朝日新聞》. 2015년 12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12월 26일에 확인함.
  8.  “『火山島』著者の金石範氏「辺野古は4・3抗争を連想させる」”. 《ハンギョレ》 (韓国ハンギョレ新聞社). 2015년 11월 9일. 2015년 12월 26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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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Sok-pom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Kim Sok-pom
Hangul
김석범
Hanja
金石範
RRGim Seokbeom
MRKim Sŏkpŏm
Also referred to in Japanese as:
きん せきはん (Kin Sekihan)
キム ソクポム (Kimu Sokupomu)

Kim Sok-pom, also spelled Kim Suok-puom (born October 2, 1925) is a Zainichi Korean novelist who writes in Japanese.[1]

Biography

Born in Osaka to parents of Jeju origin,[1] Kim accompanied his family to Jeju, a Korean island, where he became acquainted with supporters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citation needed] In 1945, when he had returned to Osaka, the war ended. Directly after that, he went to Seoul, but came back to Japan again after that, where he would stay.[citation needed] He attended Kansai University, and graduated from the Department of Literature at Kyoto University, having specialized in literature.[1] Soon after his graduation, the April 3 massacre broke out in his ancestral hometown of Jeju, an incident which became a motif of his later work.[1]

In 1957, Karasu no shi and Kanshu Baku Shobō appeared in Bungei Shuto magazine. Around this time, Kim was involved in organising Chongryon, the pro-North Korean ethnic association in Japan, but after Karasu no shi was published as a stand-alone book with three other short stories of his, he left the organisation. With the change to be published further, Kim focused on writing in Japanese, in 1970 writing Mandoku yūrei kitan, which confirmed his position as a novelist. The same work would be published in serial form between 1976 and 1981 in Bungakukai literary magazine under the title Tsunami; afterwards, the name was changed to Kazantō.

Kim has not obtained South Korean citizenship following the division of Korea after the Korean War.[2] In 1988, at the invitation of a civic group, Kim travelled to Seoul and Jeju Island, despite having no citizenship.[citation needed] When fellow Zainichi Korean novelist Lee Hoesung took South Korean citizenship in 1998, Kim criticised him, and a debate between the two developed in the media.[citation needed] Kazantō, his book about the 1945 Jeju Massacre has been controversial in South Korea, and he was denied entry to South Korea twice: in 1980 and in 2015.[2]

Themes

Major themes in Kim's works include imperialism, notions of home, survival and popular nationalism; he touches upon controversial topics such as identity politics and state genocide.[3] His work are seen as an allegory on what it means to be a Zainichi Korean in postwar Japan.[1]

Major works

(English titles not official)

YearTitleNotes
1957Kanshu Baku Shobō
看守朴書房
Pak Seo-bong the Gaoler
1957Karasu no Shi
鴉の死
The Death of the Crow
1970Mandoku yūrei kitan
万徳幽霊奇譚
Translated into English as The Curious Tale of Mandogi's Ghost,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0, 9780231153119[4]
1971Kotoba no jubaku - Zainichi Chōsenjin Bungakuto Nihongo
ことばの呪縛―「在日朝鮮人文学」と日本語
The Curse of Words - Zainichi Korean Literature and the Japanese Language
1973Yoru
夜
Night
1967-1997Kazantō
火山島
Volcano Island
2001Naze kakitsuzukete kitanoka, naze chinmoku shite kitanoka - Chejutō 4-3 jikenno kiokuto bungaku
なぜ書きつづけてきたか・なぜ沈黙してきたか―済州島四・三事件の記憶と文学
Why did we keep writing, why did we stay silent? Memories and literature of the Jeju massacre; co-authored with Gim Shi-jong (金時鐘)
2001Suni Obasan
順伊(スニ)おばさん
Aunt Suni; co-authored with Geon Gi-yeong (玄基榮)
2004Kokkyūwo koerumono Zainichino bungakuto seiji
国境を越えるもの「在日」の文学と政治
Crossing Borders: The Literature and Politics of Zainichi Koreans

References

  1.  Foxworth, Elise Edwards (October 2001). "The Cultural Politics of Identity Strategies in the Japanese Literature of Resident Koreans in Japan" (PDF). The Japan Foundation Newsletter. Vol. 29, no. 1. Archived from the original (PDF) on September 29, 2007. Retrieved 2006-11-30. Preferred name in English provided.
  2.  "Seoul bans entry to ethnic Korean writer on 1948 massacre - AJW by The Asahi Shimbun". AJW by The Asahi Shimbu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5-10-20. Retrieved 2015-10-23.
  3.  Foxworth, Elise Edwards (December 2006). "A Tribute to the Japanese Literature of Korean Writers in Japan" (PDF). New Voices. Vol. 1. ISSN 1833-5233. Archived from the original (PDF) on 2016-03-04. Retrieved 2015-10-21.
  4.  Neff, Robert (16 January 2011). "'The Curious Tale of Mandogi's Ghost': Fiction that shines a light from Jeju's troubled past". Jeju Weekly. Retrieved 22 Dec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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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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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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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킨세키반, 김석범, 김석범, 1925년 10월 2일 -)은 재일조선인 의 작가 . 「신양근」을 본명으로 하고 있으며, 본관 은 거창신씨 [ 1 ] . 조선어로는 '김석범'과 같이 '김석범'이라고 읽는 '김석범'이라는 이름도 사용하고 있다 [ 2 ] . 아내는 구리 정자(구익 정자 모두 [ 1 ] ).

약력
제주도 출신의 부모님의 근원으로 오사카시 이노키 리노 에서 태어났다 [ 3 ] . 전시 중에 제주도에서 살고 조선독립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과 알게 된다. 1945년 오사카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직후 서울에 건너도 1946년 에 일본으로 돌아와 그 후 일본에서 살게 된다. 간사이 대학 전문부 경제학과, 교토대학 문학부 미학과 졸업 .

일본으로 돌아온 직후인 1948년 4월 3일 고향 제주도에서 남측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좌파도민의 무장봉기가 일어난다. 같은 해부터 1954년에 걸쳐 이승만 지지파에 의해 다수의 섬민이 학살되었다(' 제주도 4·3사건 '). 이것은, 후의 작품의 모티프가 되어 간다. 2015년 4월 1일에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으로 한국의 제1회 ‘제주 4·3평화상’을 수상하고 있다 [ 4 ] [ 5 ] . 이 수상에 관해서는, 민단 으로부터는 비판되고 있다 [ 6 ] .

1957년 ' 문예수도 '에 '간수 박서방' '고래의 죽음'을 발표했지만 이때는 화제가 되지 않았다. 이 무렵은 조선신보 로 기자를 맡는 등 조선총련 의 조직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1967년 , 「코우의 죽음」의 단행본 출판을 계기로 조직으로부터 떠나, 이후는 일본어 창작을 축으로 하게 되어, 1970년 에 쓴 「만덕 유령 기담」으로 작가로서의 지위.

제주도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군은 풍토성과도 관련해 정치의 본연의 문학 입장에서 의견이 되었다. 1976년 부터 1997년까지 장기에 걸쳐 발표된 ' 화산도 '는 그러한 작품으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초는 「해조」의 제목으로 「문학계」에 6년간 연재(단행본의 제3권째까지)하고, 단행본 「화산도」로 개제해 간행. 1984년 에 제11회 대불지로상 을, 전 7권 간행에 의해 1998년 에 제39회 매일 예술상 을 수상하고 있다.

1974년 4월 박정희 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일으킨 대학생들 중 180명이 구속되는 ' 민청학연사건 '이 발생 [ 7 ] [ 8 ] . 7월 16일까지 김시바하 등 14명에게 사형, 15명에게 무기징역 , 일본인 태도가와 마사키와 하야카와 가춘 을 포함한 26명에게 징역 15년부터 20년의 형이 부과되었다 [ 9 ] [ 10 ] . 같은 달 16일 저녁부터 19일에 걸쳐 김석범, 이수성 , 김시종 , 진계 신히코 , 난보 요시 미치 등은 스기야바시 공원에서 행거 파업 을 실시했다 [ 9 ] [ 11 ] [ 12 ] . 같은 달 21일에 김시하의 형은 무기징역 으로 감형되었다 [ 13 ] .

1975년 2월 김석범은 김달수 , 이진희 , 강재 히코 등과 함께 잡지 ' 계간 삼천리 '를 창간했다. 1981년 김달수들이 전두환 독재 정권시대 한국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편집위원을 사임했다. 조선적 을 ‘북도 남도 아닌 준통일국적’으로 생각해 편의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한 사람이다. 이수성 의 한국 국적 취득을 비판하고 논쟁으로 발전한 적도 있었다. 이에 대한 추측과 아의심에 의한 격렬한 개인공격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몇 번에 걸쳐 한국 정부로부터의 초청을 거부하고 있지만, 이것도 한국적 취득이 입국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1988년 에는 민간단체 초청으로 조선적 그대로 서울 과 제주도를 방문했다.

앞서 언급한 ‘제주 4·3평화상’ 수상을 받아 김은 2015년 봄 제주도 시상식에 참석했으며, 그 자리에서 4·3사건이 있던 시기 이승만 정권 정책 등을 비판했다. 그의 발언은 국회의원의 일부 등 한국의 보수적인 입장 사람들로부터 강하게 비난됐다. 같은 해 10월에 김이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재일한국대사관에 신청했는데 수속을 거부당했지만, 대사관 관계자로부터의 사정 설명에 의하면, 앞의 시상식에서의 금의 발언이 문제시된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 14 ] [ 15 ] . 이 방한의 이유는 한국어 번역 '화산도'의 출판을 기념한 서울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 15 ] . 한국 에서는 같은 해 10월에 김환기(김환기)와 김학동(김학동)에 의한 한글역으로 전권 간행 되고 있다 .

주요 저작
단독
「오리의 죽음」신흥 서방 1967년
신판 코단샤, 1971년, 코단샤 문고 1985년, 쇼가쿠칸 문고 1999년
『신편 오리의 죽음』쿠온 2022년
『만덕 유령기담』 치쿠마 서방 1970년, 신편・고단샤 문예 문고 1991년
『말의 주박 - “재일조선인문학”과 일본어” 쓰쿠마서방 1971년
『밤』 문예춘추 1973년
『사기사』 코단샤 1974년
『1945년 여름』 쓰쿠마 서방 1974년
『입 있는 것은 말해라』 쓰쿠마 서방 1975년
「민족・말・문학」창수사 1976년
『유적된 기억』 가와데 서방 신사 1977년
『만도기 이야기』 치쿠마 서방〈치쿠마 소년 문학관〉 1978년
「왕생 이문」슈에이샤 1979년
『제사지없는 축제』슈에이샤 1981년
『「재일」의 사상』 쓰쿠마 서방 1981년
「신편 「재일」의 사상」 코단샤 문예 문고 2001년 5월. ISBN 978-4-06-198256-7
『유명의 초상화』 치쿠마 서방 1982년
「화산도」 전 7권, 문예춘추 1983년 1월 - 1997년 9월. ISBN  978-4-16-363170-7 - 978-4-16-363620-7
온 디맨드 출판에서 신장 복간 [ 17 ] . 「화산도」전 7권, 이와나미 서점 2015년 10월. ISBN 978-4-00-730285-5 - 978-4-00-730291-6 
「금박의 세월」슈에이샤 1986년
『고국행』 이와나미 서점 1990년
『전향과 친일파』 이와나미 서점 1993년
「꿈, 풀 깊이」 코단샤 1995년
「오리의 죽음, 꿈, 풀 깊이」 쇼가쿠칸 문고 1999년
『땅의 그림자』슈에이샤 1996년
“바다의 바닥으로부터, 땅의 바닥으로부터” 코단샤 2000년
「만월」 코단샤 2001년
『허일』 코단샤 2002년
「국경을 넘는 것 「재일」의 문학과 정치」문예춘추 2004년
「가네이시범 작품집」전 2권, 平凡社 2005년
『〈재일〉문학 전집 김석범』공부 출판 2006년
「지저의 태양」슈에이샤 2006년
『死者は地上に』岩波書店 2010年
『過去からの行進』上・下、岩波書店 2012年
『海の底から』岩波書店 2020年
『満月の下の赤い海』クオン 2022年
『金石範評論集』全2巻 明石書店 2023年。姜信子編
共著
『なぜ書きつづけてきたか なぜ沈黙してきたか - 済州島四・三事件の記憶と文学』(金時鐘と共著)、文京洙編、平凡社、2001年11月。ISBN 978-4582454260
増補版『なぜ書きつづけてきたか なぜ沈黙してきたか - 済州島四・三事件の記憶と文学』(金時鐘と共著)、文京洙編、平凡社ライブラリー、2015年4月。ISBN 978-4582768282
『異郷の日本語』(崔真碩・佐藤泉・片山宏行・李静和と共著)、青山学院大学文学部日本文学科編、社会評論社 2009年。ISBN 978-4-7845-0951-5
『金石範《火山島》小説世界を語る! 済州島四・三事件/在日と日本人/政治と文学をめぐる物語』安達史人・児玉幹夫:インタヴュー、内田亜里 写真、右文書院 2010年4月。ISBN 978-4-8421-0737-0
翻訳
金寿福『ある女教師の手記』朝鮮青年社〈朝鮮青年新書〉1963年
玄基榮『順伊(スニ)おばさん』新幹社 2001年、新版2012年
脚注
^ a b “叅判公 第二子 叅議公 諱 後甲(十五世)學生公 居詳派”. 居昌慎氏大同譜 2권. p. 1117
^ Kim, Sok-pom、金石範.『金石範評論集Ⅰ 文学・言語論』Yonsuku I, Nobuko Kyō, 李妍淑., 姜信子.、Akashishoten、Tōkyō、2019年、398-399頁。ISBN 978-4-7503-4836-0。OCLC 1106459406。
^ 『読売年鑑 2016年版』(読売新聞東京本社、2016年)p.448
^ “済州4・3平和賞受賞の在日小説家・金石範氏「歴史伝えていく」”. 聯合ニュース. (2015年4月1日) 2015年4月13日閲覧。
^ “【社説】大韓民国を侮辱した在日小説家・金石範]”. 朝鮮日報日本語版. 朝鮮日報 (2015年4月13日). 2015年4月13日時点のオリジナルよりアーカイブ。2015年4月13日閲覧。
^ [1]葛藤ぶり返す「4・3事件」…金石範氏の受賞で汚された「済州平和賞」
^ 恩地洋介 (2022年7月29日). “故・金芝河さん(韓国の詩人) 独裁と闘った「抵抗詩人」”. 日本経済新聞. 2024年12月24日閲覧。
^ キム・ミヒャン (2018年12月10日). “白基玩・張俊河…民青学連裁判記録、45年ぶり公開”. ハンギョレ新聞. 2024年12月29日閲覧。
^ a b 『朝日新聞』1974年7月17日付朝刊、19面、「韓国軍法会議の判決に 抗議行動広がる 東京ではハンスト 国際連帯も」。
^ 金芝河 著、金芝河刊行委員会 訳『苦行 獄中におけるわが闘い』中央公論社、1978年9月30日、660-670頁。
^ 村松武司「1974年7月―金芝河たちの処刑」 『朝鮮研究』1974年6・7月合併号、日本朝鮮研究所、57-62頁。
^ 太田修「金大中拉致事件から始まった日韓連帯運動」。同志社大学、2021年3月。
^ 『コリア評論』1974年10月号、コリア評論社、57-60頁、「韓国日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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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b 箱田哲也 (2015年10月16日). “韓国が在日小説家の入国拒否 過去の政権批判が影響か”. 朝日新聞 2015年12月26日閲覧。 (要無料登録要登録)
^ “『火山島』著者の金石範氏「辺野古は4・3抗争を連想させる」”. ハンギョレ (韓国ハンギョレ新聞社). (2015年11月9日) 2015年12月26日閲覧。
^ “『火山島』復刊記念シンポジウム 金石範文学、魅力に迫る”. 毎日新聞 東京夕刊. (2015年12月2日) 2015年12月26日閲覧。
参考文献
아시아인물사 11 슈에이 샤 , 2023년
외부 링크
'김석범 ' - 코트뱅크
인터뷰 김석범 「『화산도』에서 통일을 바라봐」 - 원코리아 페스티벌 14th 1998년
히라츠카 毅 “ 김석범 보고·발언록에 대한 보충설명(<심포지엄> 문화는 어떻게 국경을 넘는가 : 인종·민족·국적을 둘러싸고 ) ( PDF ) NAID 110009487150 
김석범이 한국어의 '화산도'를 재일조선문학예술가동맹의 기관지 '문학예술'(격월간)의 제13-20호(1965-1967년)에 연재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해당 자료의 작품 수록 상황 및 자료의 국내 소장 상황을 알고 싶다 - 레퍼런스 협동 데이터베이스(국립 국회 도서관, 2006년 1월 21일)
표이야기편역사
매일 예술상 수상자
전거 관리 데이터베이스 ウィキデータを編集
카테고리 :일본 소설가조선총련의 인물간사이 대학 출신 인물교토 대학 출신 인물재일한국·조선인이창창씨오사카시 출신의 인물1925년생일본의 센테나리안생명 인물

金石範 - Wikipedia


金石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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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石範
 
各種表記
ハングル:김석범
漢字:金石範
発音:キム・ソクポ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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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石範(きん せきはん、キム・ソクポム、김 석범、1925年10月2日 - )は、在日朝鮮人の作家。「慎洋根」を本名としており、本貫は居昌慎氏[1]。朝鮮語では「金石範」と同じく「キム・ソクポム」と読む「金錫範」という名前も使っている[2]。妻は久利定子(久益定子とも[1])。

略歴

済州島出身の両親の元で大阪市猪飼野で生まれた[3]。戦時中に済州島で暮らし、朝鮮独立を目指す人々と知り合う。1945年、大阪で終戦を迎えた。直後にソウルに渡るも、1946年に日本に戻り、その後日本で暮らすようになる。関西大学専門部経済学科、京都大学文学部美学科卒業。

日本に戻った直後の1948年4月3日、故郷の済州島で、南側単独選挙に反対する左派島民の武装蜂起が起こる。同年から1954年にかけて李承晩支持派によって多数の島民が虐殺された(「済州島四・三事件」)。これは、後の作品のモチーフとなっていく。2015年4月1日には、この事件を題材にした一連の作品により韓国の第1回「済州4・3平和賞」を受賞している[4][5]。この受賞に関しては、民団からは批判されている[6]。

1957年、『文藝首都』に「看守朴書房」「鴉の死」を発表するが、このときは話題にならなかった。このころは朝鮮新報で記者を務めるなど朝鮮総連の組織と関係を保っていたが、1967年、『鴉の死』の単行本出版を機に組織から離れ、以後は日本語創作を軸にするようになり、1970年に書いた「万徳幽霊奇譚」で作家としての地位を確立する。

済州島の事件をモチーフにした作品群は、風土性とも関連して、政治のあり方への文学の立場からの意見となった。1976年から1997年まで長期にわたり発表された『火山島』は、そうした作品として大きな位置を占めている。当初は「海嘯」の題名で『文學界』に6年間連載(単行本の第3巻目まで)し、単行本「火山島」に改題し刊行。1984年に第11回大佛次郎賞を、全7巻刊行により1998年に第39回毎日芸術賞を受賞している。

1974年4月、朴正熙の独裁政権に反対するデモを起こした大学生らのうち180人が拘束される「民青学連事件」が発生[7][8]。7月16日までに、金芝河ら14人に死刑、15人に無期懲役、日本人の太刀川正樹と早川嘉春を含む26人に懲役15年から20年の刑が科せられた[9][10]。同月16日夕方から19日にかけて金石範、李恢成、金時鐘、真継伸彦、南坊義道らは数寄屋橋公園でハンガー・ストライキを行った[9][11][12]。同月21日に金芝河の刑は無期懲役に減刑された[13]。

1975年2月、金石範は、金達寿、李進熙、姜在彦らとともに雑誌『季刊三千里』を創刊した。1981年に金達寿らが全斗煥独裁政権時代の韓国へ訪問したことを機に編集委員を辞任した。朝鮮籍を「北でも南でもない準統一国籍」と考えて便宜的に維持し続けている一人である。李恢成の韓国国籍取得を批判し、論争に発展したこともあった。李に対する憶測と猜疑心による激しい個人攻撃は、終わりが見えていない。数度に渡って韓国政府からの招請を拒んでいるが、これも韓国籍の取得が入国条件だったためである。1988年には民間団体の招待で朝鮮籍のままソウルと済州島を訪れた。

前述の「済州4・3平和賞」の受賞を受けて、金は2015年春に済州島での授賞式に出席しており、その席上で、四・三事件のあった時期の李承晩政権の政策などを批判した。彼の発言は国会議員の一部など韓国の保守的な立場の人々から強く非難された。同年10月に金が韓国を訪問すべく在日韓国大使館に申請したところ手続きを拒否されたが、大使館関係者からの事情説明によれば、先の授賞式での金の発言が問題視されたことも影響しているという[14][15]。この訪韓の理由は、韓国語訳『火山島』の出版を記念したソウルでの行事に参加するためであった[15]。韓国では同年10月に、金煥基(キム・ファンギ)と金鶴童(キム・ハクトン)によるハングル訳で全巻刊行されている[16]。

主な著作

単著

  • 『鴉の死』新興書房 1967年
    • 新版 講談社、1971年、講談社文庫 1985年、小学館文庫 1999年
    • 『新編 鴉の死』クオン 2022年
  • 『万徳幽霊奇譚』筑摩書房 1970年、新編・講談社文芸文庫 1991年
  • 『ことばの呪縛 -「在日朝鮮人文学」と日本語』筑摩書房 1971年
  • 『夜』文藝春秋 1973年
  • 『詐欺師』講談社 1974年
  • 『1945年夏』筑摩書房 1974年
  • 『口あるものは語れ』筑摩書房 1975年
  • 『民族・ことば・文学』創樹社 1976年
  • 『遺された記憶』河出書房新社 1977年
  • 『マンドギ物語』筑摩書房〈ちくま少年文学館〉1978年
  • 『往生異聞』集英社 1979年
  • 『祭司なき祭り』集英社 1981年
  • 『「在日」の思想』筑摩書房 1981年
  • 『幽冥の肖像』筑摩書房 1982年
  • 『火山島』全7巻、文藝春秋 1983年1月 - 1997年9月。ISBN 978-4-16-363170-7 - 978-4-16-363620-7
  • 『金縛りの歳月』集英社 1986年
  • 『故国行』岩波書店 1990年
  • 『転向と親日派』岩波書店 1993年
  • 『夢、草深し』講談社 1995年
    • 『鴉の死、夢、草深し』小学館文庫 1999年
  • 『地の影』集英社 1996年
  • 『海の底から、地の底から』講談社 2000年
  • 『満月』講談社 2001年
  • 『虚日』講談社 2002年
  • 『国境を越えるもの「在日」の文学と政治』文藝春秋 2004年
  • 『金石範作品集』全2巻、平凡社 2005年
  • 『〈在日〉文学全集 金石範』勉誠出版 2006年
  • 『地底の太陽』集英社 2006年
  • 『死者は地上に』岩波書店 2010年
  • 『過去からの行進』上・下、岩波書店 2012年
  • 『海の底から』岩波書店 2020年
  • 『満月の下の赤い海』クオン 2022年
  • 『金石範評論集』全2巻 明石書店 2023年。姜信子編

共著

  • 『なぜ書きつづけてきたか なぜ沈黙してきたか - 済州島四・三事件の記憶と文学』(金時鐘と共著)、文京洙編、平凡社、2001年11月。ISBN 978-4582454260
  • 『異郷の日本語』(崔真碩・佐藤泉・片山宏行・李静和と共著)、青山学院大学文学部日本文学科編、社会評論社 2009年。ISBN 978-4-7845-0951-5
  • 『金石範《火山島》小説世界を語る! 済州島四・三事件/在日と日本人/政治と文学をめぐる物語』安達史人・児玉幹夫:インタヴュー、内田亜里 写真、右文書院 2010年4月。ISBN 978-4-8421-0737-0

翻訳

  • 金寿福『ある女教師の手記』朝鮮青年社〈朝鮮青年新書〉1963年
  • 玄基榮『順伊(スニ)おばさん』新幹社 2001年、新版2012年

脚注

  1. ^ a b “叅判公 第二子 叅議公 諱 後甲(十五世)學生公 居詳派”. 居昌慎氏大同譜 2권. p. 1117
  2. ^ Kim, Sok-pom、金石範.『金石範評論集Ⅰ 文学・言語論』Yonsuku I, Nobuko Kyō, 李妍淑., 姜信子.、Akashishoten、Tōkyō、2019年、398-399頁。ISBN 978-4-7503-4836-0。OCLC 1106459406。
  3. ^ 『読売年鑑 2016年版』(読売新聞東京本社、2016年)p.448
  4. ^ “済州4・3平和賞受賞の在日小説家・金石範氏「歴史伝えていく」”. 聯合ニュース. (2015年4月1日) 2015年4月13日閲覧。
  5. ^ “【社説】大韓民国を侮辱した在日小説家・金石範]”. 朝鮮日報日本語版. 朝鮮日報 (2015年4月13日). 2015年4月13日時点のオリジナルよりアーカイブ。2015年4月13日閲覧。
  6. ^ [1]葛藤ぶり返す「4・3事件」…金石範氏の受賞で汚された「済州平和賞」
  7. ^ 恩地洋介 (2022年7月29日). “故・金芝河さん(韓国の詩人) 独裁と闘った「抵抗詩人」”. 日本経済新聞. 2024年12月24日閲覧。
  8. ^ キム・ミヒャン (2018年12月10日). “白基玩・張俊河…民青学連裁判記録、45年ぶり公開”. ハンギョレ新聞. 2024年12月29日閲覧。
  9. ^ a b 『朝日新聞』1974年7月17日付朝刊、19面、「韓国軍法会議の判決に 抗議行動広がる 東京ではハンスト 国際連帯も」。
  10. ^ 金芝河 著、金芝河刊行委員会 訳『苦行 獄中におけるわが闘い』中央公論社、1978年9月30日、660-670頁。
  11. ^ 村松武司「1974年7月―金芝河たちの処刑」 『朝鮮研究』1974年6・7月合併号、日本朝鮮研究所、57-62頁。
  12. ^ 太田修「金大中拉致事件から始まった日韓連帯運動」。同志社大学、2021年3月。
  13. ^ 『コリア評論』1974年10月号、コリア評論社、57-60頁、「韓国日誌」。
  14. ^ “在日小説家・金石範氏の訪韓申請を却下=韓国政府”. Wow! Korea. (2015年10月13日) 2015年12月26日閲覧。
  15. ^ a b 箱田哲也 (2015年10月16日). “韓国が在日小説家の入国拒否 過去の政権批判が影響か”. 朝日新聞 2015年12月26日閲覧。 (要無料登録要登録)
  16. ^ “『火山島』著者の金石範氏「辺野古は4・3抗争を連想させる」”. ハンギョレ (韓国ハンギョレ新聞社). (2015年11月9日) 2015年12月26日閲覧。
  17. ^ “『火山島』復刊記念シンポジウム 金石範文学、魅力に迫る”. 毎日新聞 東京夕刊. (2015年12月2日) 2015年12月26日閲覧。

参考文献

  • 「アジア人物史 11」集英社、2023年

外部リン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