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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7

Gwang-hong Park 오마이뉴스 호사카 유지를 초빙해 일본인의 신체적 열등함까지 논했던 230914

(4) Facebook

Gwang-ho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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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상근기자가 쓴 메인기사. 홍범도 격하를 비판하는 것과 증오선동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텐데.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 사회에는 '창코로'라는 혐중 멸칭이 만연했다. 이 멸칭은, 한국전쟁기 중국군의 개입과 더불어 그대로 한국 사회에 정착했으니 그것이 그 유명한 'ㅉ꼴라'이다. 오마이뉴스의 논리대로라면, 'ㅉ꼴라' 또한 역사적 맥락이 있는 근본있는 단어이므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데스크에 앉아계신 높으신 양반들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오마이뉴스가 모두에게 투고의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은 늘 고평가해온 바이지만, 사측이 지향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절필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성소수자 혐오, 여성혐오 등에 대해 날을 세우며 '혐오는 근절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언론사에서 
정작 혐일을 조장하는 현실(호사카 유지를 초빙해 일본인의 신체적/문화적 열등함까지 논했던 '일본저격'이 대표적인 예)이 이 기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혐오, 돈이 되는 혐오는 좋은 혐오인가. 혐오를 혐오가 아니라고 우기는 모습은 흡사 오마이 반대 진영의 누군가를 연상시킨다.

김익균

일본이 지금도 지배자라고 생각하면
남성혐오처럼 일본혐오도 없다는 논리가 일관성 있을 듯하네요
힘들더라도 대등한 대화상대로 놓으려고 인식전환을 해야 하는 게 아닐지......


Gwang-hong Park

김익균 공감합니다. 스스로를 구한말 의병이라 여기는 시대착오적 인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Park Yuha

어느 ’법학자‘가 이런 얘길 했나요?

호사카교수가 신체를 논했다는 영상?글? 도 좀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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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놈'이 혐오발언? 페이스북, '홍범도 장군의 절규' 삭제 논란

페이스북측 "혐오발언 포함돼 삭제한 것"... 법학자 "혐오 아닌 저항표현, 역사적 맥락 간과"
23.09.12 11:23l최종 업데이트 23.09.13 09:04l
김시연(sta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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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시인은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시 '홍범도 장군의 절규'가 '혐오발언'으로 삭제 조치됐다고 밝혔다.
ⓒ 이동순 시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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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13일 오전 9시 3분]

페이스북이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풍자한 시가 '혐오 발언'이란 이유로 삭제해 논란이다.

<민족의 장군 홍범도> 저자인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작시 '홍범도 장군의 절규'를 올렸다. 일제강점기 당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었던 홍범도 장군 시점에서 최근 흉상 이전 시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시 전문이 널리 알려졌다.

이동순 교수 "시 삭제한 페이스북, 뭐가 문제인지도 안 알려줘"



하지만 페이스북은 지난 2일 이 시가 포함된 게시물이 '혐오발언'에 해당한다며 삭제하고 이 시인 계정에 '경고' 조치했다. 페이스북은 "정체성을 바탕으로 개인 또는 집단을 열등한 대상으로 묘사하면서 공격하는 콘텐츠를 공유하신 것 같다"면서 "회원님의 콘텐츠가 혐오발언에 관한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한다"고 게시물 삭제 이유를 안내했다.

페이스북은 문제가 된 혐오발언이 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시구 가운데 '왜놈'이란 표현을 문제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에도 페이스북은 '쪽바리', '왜놈'과 같이 특정 국적을 비하하는 표현을 삭제한 사례가 있다.

이동순 교수는 지난 11일 오후 <오마이뉴스> 통화에서 "페이스북에서 어떤 부분이 혐오 발언이라는 건지 알려주지 않아 '왜놈' 표현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면서 "페이스북에 이의제기를 하고 싶지만 절차를 잘 몰라 아직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시에는 "그토록 그리던 내 조국강토가/ 언제부터 이토록 왜놈의 땅이 되었나// 해방조국은 허울 뿐/ 어딜 가나 왜놈들로 넘쳐나네/ 언제나 일본의 비위를 맞추는 나라/ 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네"라는 대목에 '왜놈'이란 표현이 두 차례 들어갈 뿐, 달리 혐오 발언으로 볼 만한 표현은 없다(관련기사 : "홍범도 장군 흉상 창고에 처박으면 나라도 가만 안 있을 것" https://omn.kr/25h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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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도 장군의 평전을 펴낸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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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일부 누리꾼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이동순 시인 시 퍼나르기' 페이스북 캠페인을 펼쳤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도 동참했지만, 시 전문이 담긴 일부 게시글이 삭제되기도 했다.

김동규 동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도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삭제 조치의 이유로 판단되는) 시구 속의 '왜놈'이란 단어는 결코 비속어가 될 수 없다. 격정과 절규로 형상화된 '문학적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박경신 교수 "홍범도 시 '왜놈'은 강자를 향한 저항 표현"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오마이뉴스>에 "홍범도 시에 '왜놈'이란 표현은 나라를 빼앗긴 약자가 강자에게 저항하는 일종의 '저항표현'이어서 '혐오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혐오표현은 특정 국적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 등 외부적 피해를 유발할 위험이 있느냐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페이스북에서 게시물을 관리할 때 지역적 특성과 역사적 맥락을 고려했다면 '저항 표현'임을 알아낼 수 있는 게시물인데, 글로벌 차원에서 일반적인 원칙을 적용하다 보니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기업의 게시물 관리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맡겨지는 것이어서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무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면서 "나라를 뺏긴 그 당시 언어로 쓴 저항표현까지 혐오표현으로 쉽게 삭제하면, 일제강점기 수탈이나 피해를 당한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경시받고 비하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측 "해당 게시물에 혐오발언 포함, 삭제 조치"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는 12일 <오마이뉴스> 질의에 "해당 게시물은 혐오발언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어, 관련 정책에 따라 삭제 조치됐다"면서 "혐오발언은 위협적이거나 배타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때로는 오프라인상 폭력도 유발할 수 있기에 페이스북에서 허용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다만 '왜놈'이란 시구 때문인지, 역사적 관점에서 '저항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에 대해선 명시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메타는 "저희 정책에서 혐오발언이란 인종, 민족, 국적, 종교, 성별, 장애 등 보호받아야할 사람의 특성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공격이란 폭력적이거나 비인격적 발언, 해로운 고정관념, 열등한 대상으로 묘사, 배제나 분리 주장 등을 말한다"면서 "페이스북은 이러한 정책을 철저히 준수하며 해당 정책을 위반하는 게시물은 발견 즉시 삭제한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혐오 발언 삭제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지난 2019년 '한남충'은 혐오 발언으로 삭제하면서 '김치녀'는 그대로 둔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페이스북코리아는 '쪽바리'처럼 특정 국적을 비난하는 표현을 예로 들어, '한남충'도 한국 국적 남성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어서 삭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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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m




2023-07-06

박광홍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 - 제국 시대 일본군을 인터뷰하다 2022

알라딘: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 - 제국 시대 일본군을 인터뷰하다 
박광홍 (지은이)오월의봄2022-08-05


























Sales Point : 838

10.0 100자평(3)리뷰(1)
이 책 어때요?
전자책  11,550원 

256쪽

책소개

제주도 토박이이자 해병대 장교 출신의 저자는 한국군에 스며 있는 일본군의 정신주의를 파헤치고자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제국 시대 일본군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석사논문을 완성했다. 그 석사논문을 뼈대로 해서 재구성한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옛 피식민지인이었던 한국인이 지배국 일본의 군 관계자들을 직접 인터뷰 조사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실제 전쟁 체험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를 식민 지배했던 사람들의 의식과 심리, 사상통제를 통한 전체주의 국가의 사회통치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독창적인 저작이다.


전쟁 수행에 ‘알맞게’ 폭력적인 개조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주입된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인간 존재가 전쟁의 부속으로 가공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뒤틀림에 대해 들여다보며 전쟁의 본질과 인권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제국 시대 전쟁 체험자들을 통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한 번 더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박광홍: 저는 제국시대 일본 군인들을 만났습니다 - 오마이뉴스

저는 제국시대 일본 군인들을 만났습니다 - 오마이뉴스
책동네
책이 나왔습니다 | 166화

저는 제국시대 일본 군인들을 만났습니다[책이 나왔습니다]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 전쟁 아래 놓인 개인을 마주하다
22.08.02 
박광홍(marine7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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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송악산 해안의 해안특공진지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군은 자폭보트 신요를 제주도 해안에 배치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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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토박이인 나의 삶에서 바다는 떼려야 뗼 수 없는 존재다. 용암의 뒤틀림과 억겁의 파도가 빚어낸 현무암 바위 위에서 푸르게 빛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미래를 그리기도 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제주도 바다는 꿈 많은 소년의 희망과 고뇌를 묵묵히 품어줬다.

그 바닷가의 해안 절벽에 나 있는 이상한 구멍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학교에서 다같이 바다로 소풍을 나갔던 어느 날,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는 그 구멍들이 '일본군의 인공동굴'이라고 알려주셨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말기, 제주도 바다에 미국 함대가 나타나면 자폭공격을 벌이기 위해서 파 놓은 구멍이 저 동굴들이라는 설명이었다(관련 기사: '소년 자폭공격' 추진한 일본 군인의 기막힌 결말).

스스로의 생명마저 포기하고 적을 향해 돌진해 자폭한다니, 어린 나는 그저 아연실색했다. 피와 살로 뭉쳐진 육신을 무쇠와 화염 속에 내던지는 그 끔찍한 행위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들이 같은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들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일본군의 자살특공대는, 나의 세계로부터 아득하게 괴리된 비현실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관련 기사: 충성 빛나리"... 자국민 죽음 내몬 일본의 끔찍 '신화').

일본의 전쟁체험 세대, 고통을 껴안고 살다


그리고, 차차 성장하면서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특공이, 그들의 전쟁이 지금 내가 딛고 살아가는 사회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직접 군 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정신론은 여전히 이 세계의 이면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류탄을 들고서 '공산군'의 전차나 토치카에 돌격한 육탄용사들의 사례를 예찬하며 필승의 신념을 논하는 정신전력 교육을 접할 때면, 나는 어린시절 보았던 제주도 해안의 구멍들을 떠올리게 됐다.

정신주의로 점철된 정신전력 교육의 뼈대에 위화감을 느끼며, 무엇이 어떻게 얽히고 섥힌 것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 다소 늦은 나이에, 그것도 군 생활 중 짬을 내서 일어 공부를 시작하려니 이래저래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어렵사리 일본행을 추진했지만, 직접 일본에 건너와보니 상황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암울했다.

전쟁체험 세대가 이미 초고령에 접어든 시점에서 살아 계신 분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에 나는 신원을 선뜻 믿을 수 없는 외국인 유학생, 그것도 일본과 외교적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유학생이었다. 인터뷰 기회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부고 소식이나 거절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면서 인터뷰 진행은 더욱 곤란하게 됐다.

그 난관 속에서, 나는 간신히 3명의 인터뷰 대상자 분들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교과서의 메마른 활자 그리고 감정적인 반일이나 혐일이 판을 치는 현실을 넘어서, 그때의 역사를 살아냈던 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니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인터뷰이 중 한분인 히로토 아키라 씨와 함께 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동원되었던 히로토 씨는 올해 6월 1일에 101번째 생일을 맞았다.
ⓒ 박광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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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어린이가 천황숭배를 근간으로 하는 '황도주의 국체론' 교육 아래서 황국신민으로 자라난 과정, 천황과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칠 것을 강요하는 군대교육 아래서 군인으로 빚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전쟁에 나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동요하고 방황하던 이야기를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다. 각 개인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절망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들을 옥죄던 '국민'의 올가미를 끝내 벗어던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전쟁 당시 이뤄진 사상 통제의 그림자가 패전 후의 삶에서도 여전히 걷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끔찍한 전쟁에 동원된 그들에게, 국가는 그 어떤 책임있는 설명이나 사죄를 남기지 않았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아래서, 개인은 전쟁체험의 고통을 홀로 외롭게 껴안아야 했다.

폭력·부조리 속에서도 말살되지 않은 '인간'

이 인터뷰 조사를 통해, 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폭력적인 집합의식의 존재에 대해서 보다 더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폭력과 부조리 속에서도 끝내 말살되지 않은 인간의 감정선을 인터뷰 곳곳에서 확인하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다.

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나는 지난해 <총력전 체제하 내셔널아이덴티티의 형성과 동요 -전 일본군인·군속의 구술사를 중심으로>(総力戦体制下のナショナル・アイデンティティの形成と動揺 -元日本軍人・軍属のオーラル・ヒストリーを中心に)라는 제목의 석사논문을 제출하고 학위를 받았다.


▲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 표지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군인과 군속으로 동원된 일본인 전쟁체험자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책으로 내게 되었다.
ⓒ 도서출판 오월의봄

논문을 쓰고 보니, 그 내용을 한국의 가족과 지인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마이뉴스에 관련 내용들을 [일본史람]이라는 시리즈로 조금씩 연재하며 일본어 논문을 한국어로 재구성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출판의 기회가 찾아왔다. 참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책은 <오마이뉴스>가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며, 원고를 다듬고 또 다듬으며 숨가쁘게 달려온 끝에 드디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책의 출간 소식을 마주하고서 지난 일본 유학 생활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부디 많은 분들과 이 깨달음을 나눠보고 싶다.

[관련 인터뷰 기사]

박광홍: 일본군은 전쟁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 교수신문

일본군은 전쟁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 교수신문

일본군은 전쟁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박광홍
승인 2022.10.05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박광홍 오사카공립대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학부를 졸업할 때만 해도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선택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전공이었던 사회학은 그 학풍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학군사관후보생이었기에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게 되었으므로, 대학원은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 내가 군을 전역하고 일본에 있는 대학원에 들어오게 된 것은, 꽤나 충동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싸워서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는 가사의 군가를 부르고, 총알이 소진되어도 적과 마지막까지 싸우기 위한 총검술을 익히던 나는 문득, 한국군과 옛 일본군의 정신주의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일본군과 관련된 번역서에 재미를 붙이다가, 일본에서 직접 공부를 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잘 다니던 군대를 전역하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었고, 늦은 나이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기록해보리라는 일념으로 일본에 왔고,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고백하자면, 나는 학술적인 연구보다는 내가 원하는 취재를 위해 대학원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교육사를 탐독하고, 총력전 이론에 대해 검토해보며 아시아 태평양 전쟁기의 일본군인들에 대한 이해를 다질 수 있었지만, 정작 내가 그토록 바라던 당사자들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내가 석사과정에 들어간 2020년 기준으로 생존해있는 일본군 출신자의 수는 극히 적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고령자를 면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여러 번 고배를 마시며 방황하기를 거듭, 최초의 인터뷰 대상자를 구하는 데만 1년이 꼬박 걸렸다.

SNS, 언론사, 지자체, 지인 등 여러 방면으로부터 협조를 구한 끝에 총 세 분과의 인터뷰를 실시할 수 있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 군인·군속으로 근무했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청취한다는 것. 나를 일본으로 이끌었던 목표가 실현되는 순간이었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아온 타자를 만나고, 그 타자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그분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제국 체제가 나의 출신국인 한국을 식민지로 두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부담감을 가중시켰다. 그분들에게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나는 그분들의 구술을 편견없이 고찰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고령으로 발음이 부정확한 분, 방언이 심하신 분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혹은 나 자신의 일본어 능력 부족으로 대화가 종종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편견과 경계에 소통이 가로막히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타자이기에 이야기가 풍성해진 측면도 있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서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며 마주 앉은 상대를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공부였다.]




사진=박광홍

교과서의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 감정적인 반일이나 혐일 정서를 너머 현실에서 만난 옛 일본군 출신자들은, 나와 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는 똑같은 인간들이었다. 그분들이 살아냈던 시대와 체제는 개인의식의 영역을 지워내고 복종하는 신민을 빚어내고자 했지만, 그럼에도 각 사람들의 고뇌와 동요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제 몸을 생각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쟁의 참상과 죽음의 운명 앞에 눈물을 흘렸다는 그분들의 이야기로부터, 나는 시대를 초월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근대국가와 국민, 총력전 체제의 정신동원, 집합의식과 개인의식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총력전 체제하 내셔널아이덴티티의 형성과 동요」라는 제목으로 석사논문을 썼다. 그리고 이 논문을 한국어로 재구성하고 살을 붙여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라는 책을 냈다. 이 연구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부디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역사의 저편으로 완전히 저물려고 하는 지금, 그분들의 전쟁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화두를 건져올리는 작업으로부터 나는 사명감을 느꼈다. 전쟁체험 세대의 구술사 기록이 앞으로 얼마나 가능할지, 이를 바탕으로 박사과정을 잘 끝낼 수 있을지는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그저, 군을 전역하고 처음 일본에 발을 딛었던 그때처럼, 열정을 갖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해나간다는 것 그 자체에 의의를 두고 나아가고 싶다.



박광홍 오사카공립대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해병대 중위로 전역한 후 일본에서 일본인들의 전쟁 체험에 대해 천착하여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도서출판 오월의봄)가 있다.

2022-10-16

한미일연합훈련이 '극단적 친일'? 이젠 질문을 바꿔야 - 오마이뉴스

한미일연합훈련이 '극단적 친일'? 이젠 질문을 바꿔야 - 오마이뉴스


민족·국제
일본史람 | 44화

한미일연합훈련이 '극단적 친일'? 이젠 질문을 바꿔야[일본史람] 자위대의 창설과 현재, 그 배후에는 언제나 미국이 있었다
22.10.16 
박광홍(marine7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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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한미일연합훈련을 가리켜 '극단적 친일국방'이라고 주장한 이래 정치권에서는 해당 현안을 두고 연일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는 '친일'이나 '종북' 같은 단어를 뿌리로 하는 원색적인 공격만이 읽힐 뿐, 정작 문제의 핵심인 '자위대'의 존재에 관한 진지한 고찰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자위대는 도대체 어떤 조직이고, 또 한국에 있어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근본적인 문제를 곱씹어보지 않는 한, 한미일 연합훈련을 문제삼는 담론은 공허할 뿐이다

(관련 기사: [주장] 한미일연합훈련이 친일의 문제? 번지수가 틀렸다).

자위대가 어떤 존재인지 검토해보기 위해서는 역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제국 일본이 무모하게 도발했던 아시아 태평양 전쟁은 처절한 패전으로 귀결되었고, 전쟁의 몸통이었던 일본 육해군은 1945년 11월 30일을 기해 해산되었다.

일본을 접수하고 반미적인 전쟁지도자들을 제거한 미국의 뜻에 따라, 기존의 '대일본제국 헌법'이 폐기되고 이른바 '평화헌법'이 제정되었다. 일본은 신헌법을 통해 비무장을 선언하고 분쟁해결의 수단으로 무력행사를 포기할 것을 못박았다.

일본 재무장론의 부상


▲ 항복조인식에서 스스로의 무장을 해제하는 아다치 하타조 중장 1945년 9월 이후 순차적으로 일본군의 무장해제가 이루어졌다. 11월 30일을 기해 일본 육해군은 완전히 해산되었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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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천황의 통수권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내각의 문민통제를 거부하고 침략전쟁을 도발하던 주체였으므로, 일본 육해군을 해산시키는 것은 극동 안보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다. 특히 미국에게 일본은 전쟁 이전부터 부담스러운 가상적국이었으므로, 일본의 무장해제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일본의 비무장화는 미국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지만, 정작 일본의 비무장화를 이뤄낸 미국의 의지에는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전후의 질서 위에서, 한때 추축국 타도를 기치로 의기투합했던 소련의 존재는 미국에 대한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했다.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비무장 상태의 일본이 손쉽게 '적화'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미 육군과 국무부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일본 육해군의 해산으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1946년의 시점에서 일본 재군비에 대한 검토 논의가 미국 내에서 등장한 것은 얄궂은 일이었다.

전후 병력부족에 시달리던 미군의 입장에서, 일본의 재무장은 분명 극동 방어에 큰 보탬이 되는 일이었다. 일본을 방어하느라 전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을 극동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일본 재무장안은 미국에 분명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의 재무장이 역으로 소련을 자극하여 일본 침공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 군비지출이 일본의 전후 경제부흥에 부담이 되어 오히려 공산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 일본이 재무장 후 다시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부상할 가능성, 중국, 호주, 필리핀 등 주변 우방들의 불만을 살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 맥아더 사령관과 쇼와 천황 미국은 연합군최고사령부를 통해 사실상 일본을 통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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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연합군최고사령부를 통해 사실상 일본의 통치자로 군림했던 맥아더 사령관은 본국에서 높아지는 일본 재무장론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 뜻을 밝혔다. 현지 사령관의 판단을 중시한다는 관습이 있었기에, 맥아더 사령관의 반대론은 일본 재무장론에 찬물을 끼얹기 충분했다. 다만, 맥아더 사령관은 '전쟁 등 유사 시에 일본의 인적자원을 활용해야 할 계획의 필요성'에는 찬성하며 여지를 남겨두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1949년 3월,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현 시점에서 (일본의) 재군비 실시는 바람직하지 않으나, 유사시 일본방위를 위해 그 군사적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게 선행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吉田真吾, 「日本再軍備の起源: 米国政府内における検討の開始と頓挫, 1946年~1949年」『近畿大学法学 第66巻第3・4号』2019, 268p)

여기서 요구된 선행조치란, 장래에 한정적인 일본군을 창설할 계획 입안하는 것, 경찰과 해상보안청을 강화하고 무장화시켜 '한정적 일본군'의 핵으로 삼는 것, 한정적 일본군을 동원할 시 병기, 장비, 탄약 등의 공급에 관한 병참계획 입안하는 것 등이었다.

미국 트루먼 행정부는 비군사화를 핵심으로 하는 점령 정책과 모순되는 점, 여기서 비롯되는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력 등을 이유로 일본 재무장안 추진을 주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0년 6월 25일 벌어진 조선인민군의 대대적인 남침은, 일본 재무장을 가로막던 최후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 육상자위대의 전신이 된 "경찰예비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정부에 경찰예비대 창설을 "지령"했다. 경찰예비대는 훗날 자위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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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8일,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 정부에 '경찰예비대 창설'과 '해상보안청 확충' 지령을 내렸다. 이것으로 일본의 재군비는 사실상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미군을 보조하는 전력으로서 한국전쟁 내내 '활용'되었다. 일본의 무장, 일본 병력의 한반도 개입 등은 전적으로 한국이나 일본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실제로 재무장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1954년, 미국의 승인 아래 경찰예비대와 해상보안청 전력을 기반으로 자위대가 정식 창설되었지만, 사회당을 비롯한 이른바 '혁진진영'에서는 자위대의 존재가 평화헌법을 거스르는 위헌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자위대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비단 정치권이나 운동권 일각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일본 사회는 지난날 나라 위에 군림하며 전횡을 일삼았던 옛 일본군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었다(관련 기사: [주장] 대선토론에 등장한 '일본군', 진실로 안보에 도움되나).

'자위대는 세금낭비', '방위대생과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시위구호가 등장하는 등 자위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특히, 1960년 발효된 일미 신안보조약은 일본 민중의 분노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310만의 국민이 희생된 전쟁이 끝난 지 15년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추진된 '군사동맹'은 일본 민중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회를 집어삼킬 듯한 대규모 시위는, 결국 일미 신안보조약을 추진한 기시 노부스케 내각의 총사퇴로 이어졌다(관련 기사: '평화 헌법'의 일본은 어떻게 군사대국이 되었나).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이른바 '방위문제'는 일본 사회에서 터부시될 수밖에 없었다. 기시 노부스케 내각의 붕괴가 재현될 것을 우려한 이후의 정권들은 자위대나 안보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특히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뒤를 이은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총리는 일상생활과 거리가 먼 군사가 아닌 경제와 민생에 집중하겠다고 천명하며 방위문제가 화두에 오르는 것을 극력 회피했다.

'자위대'라는 그림자 같은 존재


▲ 제1차 이케다 내각 일미 군사동맹을 반대하는 안보투쟁으로 전임 기시 내각이 붕괴하자, 그 뒤를 이은 이케다 하야토 총리는 방위문제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민생과 경제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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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문제가 언급되지 않는 가운데 고도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일미군사동맹을 계기로 끓어올랐던 대중의 분노 어린 관심도 식어갔다. 자위대는 실존하면서도 의식되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었다.

자위대가 다시 세상 밖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이후 각종 자연재해 상황에 자위대가 투입되고 이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들과 자위대 지원 운동이 이루어진 결과였다. 즉, 사회가 마비되고 시민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때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위대라는 긍정적 인식이 대중들 사이에서 확산된 것이다.

분노에 이은 무관심을 넘어 비로소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위대의 정체성과 법적 지위는 여전히 모호하다. 그 모호성을 지워내겠다는 취지로 아베 신조 전 총리 등이 개헌을 추진해왔지만, 자위대의 개편이 일본군의 부활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망하기 어렵다.

가령 2015년 9월, 민주당 대표이던 시절의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지방 유세에서 '유사시 병력이 부족하게 될 경우'를 상정하며 '긴급사태 법제 안에서 징병제를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헌법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거센 역풍을 맞았다. 징병제 사회인 러시아마저 유사시 병력동원에서 커다란 잡음을 내고 있음을 상기해본다면, 오랜 세월 평화헌법 체제에서 살아왔던 일본 시민 사회가 일본군의 부활이나 동원 체제를 쉬이 납득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 미군과 자위대의 연합훈련 본육군 항공대 장교 출신의 역사학자 오에 시노부(大江志乃夫) 교수는 저서인 <천황의 군대>에서 자위대가 미군에게 종속돼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일본 정부/국회로부터의 통수권"보다 미군이 요구하는 "작전준비"가 더 우선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 육상자위대 제13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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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기억해야할 점은, 일본의 방위문제를 논할 때 미국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위대의 창설과 운용, 일미군사동맹 모두가 연합군최고사령부의 지령 내지 미국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방위문제는 일본사회가 자주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 내 정국을 뒤집을 수도 있는 까다로운 뇌관인 셈이다. 이 상황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없이, 일본에 대한 편견을 기반으로 한미일 연합훈련을 극단적 친일로 비난하는 것은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전시작전권을 갖지 못하고 미군의 지원이나 연합 없이는 독자적인 작전을 꾸릴 수도 없는 한국은, 일본을 정치군사적으로 예속 상태에 놓고 있는 미국의 의지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中原雅人「三八豪雪と自衛隊――一九六〇年代の自衛隊の印象に関する一考察」『戦争社会学研究6 ミリタリー・カルチャー研究の可能性』2022

吉田真吾 「日本再軍備の起源: 米国政府内における検討の開始と頓挫, 1946年~1949年」『近畿大学法学 第66巻第3・4号』2019

吉田真吾「日本再軍備の停滞: 米国政府による不決断の過程と要因, 1949年9月~1950年8月」『近畿大学法学 第67巻第3・4号』2020

2021-12-23

Park Yuha 잘못된 일본인식 전파 케이스로 호사카 교수의 경우를 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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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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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일본인식 전파 케이스로 호사카 교수의 경우를 들어둔다.
사진은 최근 시작한 듯한 오마이 뉴스의 유튜브 내용.
일본 자위대를 비웃는 내용인데 문제점을 적어둔다.

1)자위대원 모집에 팬티가 보이는 옷을 입은 소녀들 그림을 사용했다고 비판.
2)하지만 이 그림은 자위대가 지방과의 협력체계 구축 속에서 그 지방 출신의 애니메이션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포스터다.
3)일본에서도 그걸 모르는 사람들의 비판이 있었지만 호사카교수는 그걸 전하지 않는다. 결과, 자위대 조롱에 동참하게 만들고 일본은 이런 걸 문제삼지 않는 국가로 인식시켰다.
 
4)이 포스터가 만화를 차용한 거라는 사실, 그 만화에선 착용한 게 치마아닌 바지—제복이라는 사실, 또 그렇다는 걸 주인공들이 인식하고 당당하게 입는다는 게 만화가의 의도라는 사실을 호사카 교수가 알았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5)하지만 굳이 이런 사실, 심지어 3년 전 일을 전하려면 원래 의도와 논란사실까지 전해야 맞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조롱과 함께 전한다는 건 정보전달자의 시각과 정보처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말한다.
6)심지어 이 소녀들은 호사카교수가 이해한 것처럼 자위대가 지켜 주는 소녀들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지키는 여성들로 그려져 있다. 맥락을 완전히 오해한 것.

7)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자위대를 비난하면서 슬쩍 강조하는 건 “일본군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이라는 무시무시한 얘기다.
헌법개정 움직임은 나 역시 우려하지만 그렇다고 그 움직임을 곧바로 대륙침략으로 가져가는 이런 인식은 과장된 인식이다. 불필요한 경계심을 조장해 불신을 심으려는 것.
포스터에도 나오지만,(모순을 지적가능은 하겠지만) 자위대는 “평화”를 오히려 모토로 내걸고 있다.

8)추가한 포스터들은 같은 맥락에서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자위대 모집 포스터들.
“누군가를 지키는 내가 되자!”
“하고 싶은 일을 찾았어!” 하는 등의 내용.
여성이 더 이상 ‘지켜주기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을 보여 준다.
 
9)제목도 “일본저격”이라는 방송을 통해 맥락을 완전히 잘못 짚은 정보를 확산중인 호사카교수를 대한민국은 과다사용중이다. 결과, 점점 더 왜곡정보에 따른 인식편향이 강화 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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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저격] 군인 모집 광고에 속옷 보이는 여학생들이... 일 자위대의 찌질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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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저격] 군인 모집 광고에 속옷 보이는 여학생들이... 일 자위대의 찌질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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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 m
  • 宋性
    외람되지만, 왜 저런 스탠스로 얘기하시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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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7 m
    • Park Yuha
      송성현외람될 거 없습니다.^^
      물론 일본 비판이라는 목적이 앞섰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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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 m
  • Park Yuha
    아래 모집 포스터엔 아래쪽에 작게 각 “지방협력본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바라기현, 도쿠시마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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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 m
  • Yong Park
    제가 감히 교수의 본분을 논한다면 교수의 말과 글은 우선 편향되거나 어떤 방향을 호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져서도 안되고 설혹 어떤 방향성을 갖기위해 쓴 글이라면 이러한 주장을 입증할 수있는 객관적 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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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 m
    • Park Yuha
      Yong Park 맞습니다. 사실 누구나 주관과 편향을 피할 수 없긴 하지만(논문도 자기 주장일 뿐이죠) 끊임없이 객관적이려고 노력해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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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9 m
  • Gwang-hong Park
    저 사람, 하다하다 일본인은 단 음식을 즐겨먹기에 매운 음식을 즐겨먹는 한국인보다 체격이 왜소하다고 주장하더군요. 저런 혐오 장사꾼이 교수 직함 달고 학자 노릇을 할 수 있는 현실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귀순자 데려다놓고 선전방송에 써먹는 2차대전 냉전시대 사고방식이 지금도 유효한건가 싶어 서글픕니다.
    [일본저격] 일본인들 체격이 한국인보다 훨씬 작은 이유, 이 '습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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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 m
    • Park Yuha
      박광홍호사카 교수에게 차단을 당해 페북은 못 보는데 최근에 방송이 눈에 띄길래 써 봤네요. 하지만 도저히 더 볼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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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 m
  • Park Yuha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일본은 자위대가 징병제가 아닌 직업이다. 그러니 모집을 해야 하는 것.
    응모자가 적으니 어떻게든 눈에 띄게 하기 위해 젊은이들에게 친숙한 만화를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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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m
  • Kibum Sung
    교수님 설명만으로도 보고 싶지도 않은 영상입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은 분이었는데 희화화하기도 아깝게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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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 m
  • 김준영
    징병제 국가에서는 저런 주장이 먹힌다는 걸 호사카씨는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너무 확증편향적인 소견이지만..역시 토다이 출신다운 영민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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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m
    • Park Yuha
      김준영 영민함은 있죠. 한국 병원을 상대로 싸워서 이긴 적도 있어요. 그 이유가 타당해서 이해됐고 대단하다 싶었던 적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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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m
  • Jaetae Lee
    한심한 사람이네요. 방송타기 시작하면 물이 드나봅니다. 사실 최근에 물만난 고기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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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m
  • Dong Hyun Kim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비판이나 비방을 저런식으로 한다는게 저급하군요. 생존방식이 세렝게티적이라고
    밖엔 해석이 안되는..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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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