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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4

웹진 인-무브 - 레닌과 간디: 이뤄지지 못한 마주침?

웹진 인-무브 - 레닌과 간디: 이뤄지지 못한 마주침?


레닌과 간디: 이뤄지지 못한 마주침?
2017. 11. 29. 12:08


레닌과 간디: 이뤄지지 못한 마주침?


에티엔 발리바르

번역 : 진태원 | 철학자


이 강연은 2004년 10월 2일 파리 10대학(낭테르)에서 열린 제4차 국제 마르크스주의 대회(Congrès Marx International IV)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폭력과 시민다움: 웰렉도서관 기념 강의』(Violence et civilité)에 재수록되었다. 이 책은 2018년에 그린비 출판사에서 완역본이 출간될 예정이다.

제가 오늘 다뤄보겠다고 제안한 주제(이 주제를 받아준 데 대해 콜로키엄 조직자 분들게 감사드립니다)는 아카데믹한 탐구의 외양을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긴 해도 이 주제가 어떻게 오늘 우리의 토론 대상인 몇 가지 주요한 역사적ㆍ인식론적ㆍ정치적 문제들과 교차하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토론을 위한 기초로, 레닌과 간디는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위대한 두 명의 혁명적 실천가-이론가였다는 점을 제기해보려 합니다. 이 두 사람의 유사점과 대조점은 지난 20세기에 ‘혁명적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또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면, 사회를 변혁한다는 것, 역사적 ‘세계’를 변혁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하는 데서 특권적인 접근 경로를 제시해줍니다. 따라서 이러한 평행성은 또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상속하고 있는 정치의 개념을 특징짓기 위한 특권적인 접근 경로인데,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정치의 개념이 이미 전화되었고 어느 정도까지 여전히 전화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시초의 정식(이러한 공리(axiome)라는 뜻입니다)은 자명하지 않은 온갖 종류의 전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중 몇몇은 논의 도중에 다시 제기되어 토론의 대상이 될 것이며, 다른 것들은 여전히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상태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 중 몇 가지만 간략하게 제시해보겠습니다.

1

제가 사용하는 단어들 각각은 레닌과 간디 모두에게 적용되겠지만, 곧바로 양분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련의 대당들이 정확하게 상응 관계를 이루는 일종의 이원분할표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일 것입니다. 가령 폭력혁명 대 비폭력혁명, 사회주의 혁명 대 국민적 또는 국민주의적 혁명, 과학적 이데올로기 및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론에 기초를 둔 혁명 대 종교적 이데올로기 내지 종교적 바탕의 윤리에 기초를 둔 혁명 등이 그런 예가 되겠죠. 이러한 대당들이 서로 일관되게 연역되지 않으며, 이것들은 오히려 근대 혁명들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유형론을 드러낸다는 점을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 대당들은 두 명의 인물로 집중되어 있는데, 이들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지속되는 한 가지 논쟁을 형성할 만큼 거대한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이 개인들 또는 그들이 주역이었던 역사적 과정들, 월러스틴 식으로 말하면 다름 아니라 20세기의 두 거대한 “반체계” 운동의 작용이 남긴 막대한 결과 때문인데, 이 두 운동 사이의 간극, 교차, 다소간 완결된 융합 내지 반대로 분기는,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 세기의 거대한 쟁점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이 운동들이 산출한 효과의 양가성 및 이 운동들을 객관적으로 괴롭힌 수많은 역설들 때문인데, 우리는 그 이유를 이해하는 일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국제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영감을 받았고, 자본주의가 범세계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어서 시초의 변혁 양상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의 변혁은 사회구성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신념에 기초를 둔 볼셰비키 혁명은 ‘일국 사회주의’로 귀결되었습니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처음에는 일국 단위에서, 그 뒤에는 국가들의 블록 단위에서 생산을 조직하고 사회를 정상화하는(normalisation) 모델을 구성하려는 시도로 귀결되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스탈린이 근본적인 의미에서 레닌의 진실이라는 점인데, 비록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만) 레닌에서 스탈린으로 가면서 혁명적 실천이 그 대립물로 전도되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역사는 “나쁜 방향에 의해” 전진한 셈입니다. ... 하지만 이 모델이 그 현실 및 전 세계의 대중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그려낸 그것에 관한 이상화된 표상에서 세력 관계 및 정치적 행위의 공간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 또한 사실입니다(적어도 그렇게 주장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논리는 전적으로 이 세상을 좌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그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목격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모델은 [그 잠재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과 그 변혁 사이의 긴장을 유지해왔으며, 마르크스주의 전통 내부에서 레닌주의의 반혁명적인 퇴락으로 간주된 것을 정정하고 전도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레닌주의를 변형하거나 아니면 대안을 추구하도록 해준 셈입니다.

간디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어느 정도까지는 간디 자신이 지도했던 국민적 혁명의 경우는 분명 역사상 위대한 탈식민화(décolonisation)의 현상들 중 하나, 아마도 가장 위대한 현상으로 귀결되었으며, 이는 동시에 탈식민화의 모델들 중 하나를 구성했습니다(물론 유일한 모델은 아닙니다만). 하지만 알다시피 이 혁명 역시 그 창시자가 그렸던 전망과 본질적인 측면들에서 모순을 빚은 결과를 산출했습니다1. 모셰 루베네의 유명한 정식에 따르면, 소비에트 혁명의 국가주의적이고 치안주의적인 표류에 맞선 ‘레닌의 마지막 투쟁’2이 존재했던 것처럼, 민족적-종교적 토대에 입각한 인도의 분할과 독립의 확립에 맞선 ‘간디의 마지막 투쟁’도 존재했으며, 이 투쟁에서 그는 사망했습니다. 독립의 조건을 창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혁명의 ‘방법’, 서양에서는 ‘비폭력’ 내지 ‘비폭력 저항’으로 알려진 이 방법은 『힌두 스와라지』가 기약했던 내용을 유지하지 못했으며, 국민주의 정치는 그 대립물, 곧 공동체주의적 폭력으로 진동하여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아(亞)대륙 인도의 국가들 및 사회들을 뒤엎으려는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3 하지만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매우 다른 양상을 띠고 있지만) 간디의 정치 모델―이것 역시 장소, 조건, 목표 및 담론에서 수많은 변형들을 지니고 있습니다―도, 기본권의 복원이나 획득을 목표로 삼는, 그리고 피지배자들과 지배자들의 권력 사이의 대결을 추구하는 대중운동의 조직 형태로서 보편적 효력을 얻어왔다는 점 역시 사실입니다. 이는 단지 국민의 독립투쟁이나 소수 민족의 자치 투쟁에 대해서만 타당한 것이 아니라, 알다시피 또한 무엇보다도 시민권 운동 및 인종 평등 운동에 대해서도 타당합니다. 평화주의는 상이한 원천을 지니고 있고 그 자체로 비폭력의 본질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명백히 이러한 유산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레닌과 간디라는 두 인물을 대질시켜 보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이러한 대질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정치와 현대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시금석으로서 끊임없이 제기되어왔으며, 명백히 독립 투쟁 기간 및 그 이후 인도에서 특히 결정적인 문제였고 아주 상세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온갖 종류의 대질 가운데 간디의 전략을 ‘진지전’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관심을 끄는데, 이는 더욱이 그람시 자신의 놀라운 언급에 기초를 둔 것이었습니다. 그람시는 레닌의 궁극적인 직관이 혁명 투쟁의 무게 중심을 국가권력 장악에서 시민사회 내에서 헤게모니의 구축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고 믿었으며, 이를 간디주의와 위대한 종교개혁 운동 사이의 (시대적 간격을 초월하는) 공통적인 요소와 연결시켰습니다. 클로드 마르코비치가 뛰어난 저작에서 정당하게 환기시켰던 것처럼,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대질이 단지 톨스토이와 로맹 롤랑의 제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쟁 이후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 같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도 소묘되었는데, 그는 반제국주의 투쟁에 결집했던 모든 세력을 조사해보려고 했습니다.4

오늘날 이러한 대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세계화의 맥락에서 증대한 사회적ㆍ문화적 운동이 지닌 이론적이고 전략적인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것이며, 또한 20세기의 조건과 비교해볼 때 21세기의 정치―일정한 전략들이나 조직 형식들에 특별히 얽매이지 않은 가운데 혁명의 이념이 ‘유령적인’ 방식으로 떠돌고 있는―는 정치적 공간을 구조화했던 ‘경계들’이 말소되거나 아니면 완전히 재분배되었다는 특징을 띠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경계들’은, ‘서양’과 ‘동양’ 사이의 문화적-정치적 경계이고, 지배적인 ‘중심부’ 세계와 피지배적인 ‘주변부’ 세계 사이의 경제적이고 지정학적인 경계이기도 하며, 또한 권력들의 위치 설정 및 집단 의식의 구체적 규정과 관련된 국가의 공적 영역과 사적인 사회적 영역 사이의 제도적 경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질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규정하는 것 또는 어쨌든 그것을 시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반화된 폭력 및 구조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폭력 형태들 사이의 순환의 환경 내지 경제 속에 정치가 불가역적인 방식은 아닐지 몰라도 분명히 지속적인 방식으로 잠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폭력은 명백히 ‘예방적 반혁명’이라는 또는 사회운동들을 무력화하고 억압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타락시키는 객관적 특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중 정치 및 간단히 말하면 민주주의 정치의 이념 자체에 대해 특히 힘겨운 문제들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감안하면, 혁명적인 정치에 관한 퇴색한 이미지를 ‘감안하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대면해야 할 대안적인 전략들의 준거 내지 징표로서 레닌과 간디의 이름이 거론되는 토론들이 이곳저곳에서 재등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5

또한 이러한 토론들이 때로는 비교의 항들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내가 보기에 더 분석적인 작업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것이 이점입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행동의 모델을 ‘폭력’과 ‘비폭력’ 같은 추상적인, 거의 형이상학적인 실재들로 귀착시키는 것이 그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정세에서 최근의 전개과정이 산출한 충격적인 효과로 인해) 점점 더 환원과 단순화의 이중적인 계열에 따라 나아간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비록 서로 과잉결정하고 서로 배가시키는 경향을 지니고 있기는 해도 극히 이질적인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폭력들을 전쟁이라는 유일한 모습으로 환원하고, 전쟁 그 자체마저도 사회의 생산력들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자기파괴적이게 되거나 파국을 맞게 되는 “최종 단계”, 곧 마침내 자본의 지배가 전도되고 (다시 한 번 더 ...) 자본의 역사적 궤적의 임박한 완수가 표시될 “최종 단계”로 환원하는 것입니다.6 제가 보기에 이 질문을 제기하고 토론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오히려 더 세부적인 검토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2




회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의 두 모델 사이의 대질에서 관건이 되는 쟁점을 다루기 전에, 우선 ‘혁명 운동’이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 두 모델을 결합하는 것을 형식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상기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는 두 가지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이 두 가지 특징이 19세기의 유산, 특히 서양 사회에서 국민 독립 및 사회 변혁 같은 ‘혁명들’의 유산이라는 점을 사후에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20세기의 극적인 역사를 통해 다듬어져서, 정치 이론이 양쪽 모두에서 정치 개념과 그 국가적 형식화(특히 법적이고 헌정적인 정의(définition)에 입각한) 사이에 존재하는 메울 수 없는 간극으로 지각해온 것으로 결정(結晶)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대중운동의 자리가 구성하는 것인데, 대중운동은 ‘능동적’ 국면에서 ‘수동적’ 국면으로 또는 그 역으로 이동하게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을 유지하면서 공적인 무대에 ‘다수자’로서 자율적인 방식으로 개입하며, 따라서 제도적인 통제 및 규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특징은 레닌주의(이는 이점에서 노동자운동 및 사회적 민주주의의 계승된 전통을 극단까지 밀고 나갔습니다)와 간디주의(이는 이점에서 인도 및 다른 지역에서 전개된 반식민주의 투쟁의 역사를 혁신했습니다)에 공통적입니다.7 이 특징은 자생성과 조직의 결합에 관한 매우 다양한 정식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문제가 되는 사회의 문화적 전통과 대중의 존재조건, 대중동원의 이데올로기적 자원 및 대중운동과 맞서는 기성권력의 성격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중운동은 결코 ‘대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정 반대로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대표를 가능하게 하거나 기존 정치 체제가 대표에 관해 제한적이거나 허구적인 정의를 부여하는 곳에서 대표를 개조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경우에도 대중운동은 대표로 환원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며,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본질은 대표가 아니라는 것, 또는 대표는 그것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는 우리를 곧바로 레닌주의와 간디주의에 공통적인 두 번째 특징, 곧 반(反)법률주의(antinomisme)로 이끌어 가는데, 저는 이 용어를 전통적인 어원적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곧 합법성에 대한, 따라서 합법성의 원천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개인들 및 사회 집단들에 대한 통제 도구를 구성하는 법 규범을 지니고 있는 국가권력에 대한 [대중운동의] 갈등적 관계, 근본적으로 모순적인 관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부르주아 독재’의 전도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것일 수 있는데, 레닌은 주권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정의들을 재활용하여 이러한 독재의 본질은 어떤 사회 계급이 사회 변혁에 관한 자신의 요구를 ‘법을 넘어서’ 설정하는 것이라고 쓴 바 있습니다. 이는 또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에게서, 더 멀리는 ‘저항권’ 개념에서 유래한 ‘시민불복종’ 개념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는데, 간디는 국가로 하여금 자신의 헌정 원리와 명백히 모순을 빚는 지점에 도달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이러한 원리를 개혁하도록 강제하는 모든 단계의 전술적 투쟁 일체를 포괄할 수 있을 만큼 이 개념을 체계화했습니다. 따라서 두 경우에서 모두 합법성은 위반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합법성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합법성은 자신이 초월한다고 주장하던 세력 관계의 장 내부로 끌려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네그리가 프랑스혁명 및 미국혁명에서 유래한 헌정이론 전통에서 차용한 이론적 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곧 구성된 헌정권력은 구성하는 제헌권력, 다시 말해 민주주의 봉기적 요소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8 분명 두 개의 혁명은 서로 상반된 것으로 나타날 만큼 심오하게 상이한 차원에서, 그리고 상이한 양상 및 목표에 따라 전개됩니다. 사회운동 및 그것이 지닌 시민사회의 전복 능력에 관한 현재의 토론 중 상당 부분은 정확히 이러한 차이점으로 귀착되지만, 이로 인해 우리가 원칙의 유사성(analogie de principe)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 차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유사성이야말로 국가적인 것을 넘어서는, 또는 갈등적인 방식으로 국가와 혁명(심지어, 국가, 혁명 그리고 반혁명까지)을 동시에 포함하는 모종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Begriff des politischen)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유사성은 우리를 곧바로 역사적 조건들에 관한 질문으로 이끌어 갑니다. 사실 합법성을 초과하는 이러한 봉기적인 또는 반법률적인 정치 개념 자체가 국가 제도의 일정한 역사적 형식들에 긴밀하게 의존해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심지어 개연성이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국가 제도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조건 및 사회적 관계에 의존하지만 그럼에도 정치 관계들이 집중된 것으로서 또는 권력관계들이 구체화되고 통합되는 지점으로서 나타났던 시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역사들은 정당하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레닌주의적 관점이 극히 개략적인 마르크스의 언급들을 체계화하면서 노동자 운동 및 민주주의 운동 전체와, 권위주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억압적인 국가 유형 사이의 대결에 긴밀하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 갈등을 표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배제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해왔습니다.9 그리고 다른 역사가들은 ‘비폭력 시민불복종’ 전략은 대중운동이 법치국가(rule of law), 곧 단순히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특히 영미 헌정의 전통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그래온 것처럼―개인적 자유를 확고하게 보장하는 전통을 지닌 국가와 대면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가능했다고 지적해왔습니다(간디 자신이 이러한 전략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이를 인지하고 있었습니다)10.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끌었던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효과에 대해서도 같은 관찰이 제시되어 왔지만, 이것이 몇몇 지방의 권력에 맞선 미국연방정부의 단순한 조작이라는 생각만은 적어도 거부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법성에 대한 근본적으로 상이한 위반 양상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공산주의 선언󰡕의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정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인지 선험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이 양상들은 각각의 경우마다 그것들이 힘을 겨루는 국가의 역사적 형태에 또는 ‘지배’ 권력의 형식화에 긴밀하게 의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지배’라는 막스 베버의 개념을 사용했는데, 왜냐하면 저는 또한 (여기에서 제 생각을 길게 개진하지는 않지만) 막스 베버가 ‘복종을 얻을 수 있는 개연성’이라는, 따라서 또한 ‘복종 생산의 양상들’이라는 견지에서 정식화한 것과 같은 지배 형식에 대한 관점이 우리의 토론을 좀 더 진전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1




3




제가 환기하고 싶은 두 가지 마지막 논점에 대해서는 더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가설적으로 두 가지 혁명적 모델 각자의 ‘중심 문제’ 또는 관건이 되는 문제(오늘날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 언급해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혁명에 관한 레닌주의적 이론화(이것 자체가 시간에 따라 진화했습니다)와 그의 지도 아래(집단적인 지도이기는 했지만, 레닌이 거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 방향을 규정했습니다) 볼셰비키 당이 실행했던 정치 전략, 마지막으로 역사적 상황(이는 진정한 시대의 전환을 낳게 됩니다) 간의 관계를 ‘판단’하려고 시도해본다면, 우리는 아주 고전적으로, 점점 더 서로 다른 것들을 포함하게 되었던 세 가지 계기로 난점들이 집중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기는, 사회에 대하여 ‘자율적인’ 계급독재로서의 국가권력(국가장치를 변혁하기 전에 우선 국가 권력을 획득해야 합니다)이라는 관점과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혁명의 ‘탁월한’ 주체로서의 또는 사회 투쟁에서 정치 투쟁으로 이행하기 위한 특권적인 도구로서 계급 정당이라는 관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계기는 레닌이 절망적인 상황을 지배 체계와 단절하기 위한 기회로 역전시킴으로써 역사 속에 빌을 디디게 된 정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1914년 전쟁의 계기로, 그는 이때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하라”는 구호를 정식화했는데, 반역한 병사평의회의 봉기와 이것의 노동자ㆍ농민의 사회운동과의 융합으로 인해 약화된 러시아의 군사적 패배가 레닌으로 하여금 이러한 구호를 실행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계기는 [러시아혁명 이후 벌어진] 내전과 외국의 개입, 그리고 ‘신경제정책’에 입각한 소비에트 체계 개혁 실패에 이르는 조건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부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계기들 각각은 조직된 혁명적 폭력이라는 문제,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게발트(Gewalt)라는 독일어 한 단어에 내포된 두 측면, 우리가 ‘권력’과 ‘폭력’으로 분할하는 폭력의 제도적 측면과 반제도적 측면의 변증법에 대해 중심적인 위상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조건 속에서 볼 때 두 번째 계기(권력/혁명 관계)야말로 우선적으로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쟁점인 것 같습니다. 이 두 번째 계기에서 레닌과, 또한 동시에 사회주의 운동 전체가 직면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파괴적인 지배의 행사, 또는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다면, 국가의 극단적 폭력 형식들이었습니다(많은 역사서들이 과소평가하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불가능한 것에서 가능한 것을 다시 만들어내야 했던 것입니다 ...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하라”는 구호가 전체주의 비판가들이 특히 겨냥하는 대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이 구호를 러시아 혁명에 특유한 ‘테러리즘’의 모체로, 따라서 적어도 혁명과 반혁명(곧 유럽의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정치적 반대파들의 대량 학살과 이에 따른 민주주의의 파괴가 순환하게 된 가능성의 모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12 하지만 한 단어(“내전”)가 지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힘에 근거한 이러한 독해는, 레닌주의 안에 함축되어 있는 가장 거대한 해방의 힘, 가장 거대한 역량과 가장 거대한 퇴락의 위험, 심지어 가장 거대한 착각이 서로 겹쳐지는 급소 지점을 제대로 식별해내지 못합니다. 레닌의 구호의 뒷부분만이 아니라 앞부분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실로 레닌이야말로 극단적 폭력이 전개되고 시민사회 민주주의 형식들이 파괴되는 상황을 조직된 대중의 집단적 행동과 창의를 수단으로 하여 내적으로 전화하는 문제를 제안한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그리고 이점과 관련하여 레닌과는 반대로 간디의 혁명 전략은 간디 스스로 고백하듯이 근본적으로 효과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둡시다). 달리 말하면 레닌은 폭력을 숙명의 영역에 기입하지 않고 경험 그 자체에 입각하여 극단적 폭력에 대한 결정의 원인들 및 중심들에 작용을 미칠 수 있는 길을 탐색한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민주주의 혁명에 관한 어떠한 이념도 이 문제를 생략할 수 없으며, 레닌의 경우처럼 이 문제를 가장 불리한 상황 속에서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레닌은 권력 관계의 전화에 관한 가망 없는 관점에 갇혀 있었으며, 그것도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다른 교전국들에서의 혁명 운동의 실패로 말미암아 ‘내전’의 국제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레닌은 포위된 요새인 국민적 공간 내에 갇혀 있었습니다. 둘째, 레닌은 또한 어떤 마르크스주의,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공간 내에 갇혀 있었는데, 이는 ‘국가 아닌 국가’의 역설을 무한히 변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곧 국가를 강화하는 형식을 통해 국가를 소멸시키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13

이제 간디의 경우로 돌아가, [레닌의 경우와] 대칭적인 모순 내지 이중구속의 대강을 살펴보겠습니다. 알다시피 서양어로 ‘비폭력’이라고 번역되는 것은 사실 서로 구별되는 두 개의 통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간디가 고안해낸 사티아그라하이며, 두 번째는 힌두교 금욕주의 전통(‘자이나교’)에서 취하여 각색한 아힘사(ahimsa)입니다. 간디 사상에서 윤리적 또는 윤리ㆍ종교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많은 논의에서 인도 내부의 해석자들을 포함한 상이한 해석자들은 양자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곧 종교적 의식으로 ‘치장한’ 정치적인 것의 우위로 해석하거나 정치적인 것의 정상적인 진행방식을 뒤흔들고 그것을 근대의 제도적 형태 이전으로 이끌어가는 영성 운동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토론은 두 용어의 의미를 둘러싸고 전개되며, 심지어 한 문화적 맥락에서 다른 맥락으로,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동하기 위해 두 용어를 분리시키고 다르게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둘러싸고 전개됩니다.14 그렇지만 이 용어들이 준거하는 문제들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서, 또한 그것들을 결합하는 일의 난점을 지적하지 않고서는 간디 정치관의 중심을 이루는 [두 용어 사이의] ‘변증법’에 대한 완전한 표상을 만들 수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변증법이 ‘도덕적’ 요소(양심에 속하지만 그 틀을 훨씬 넘어서는)를 간디의 정치관 속에 도입하게 되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15

다소간 문자 그대로 ‘진실의 힘’으로 번역되는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라는 용어는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도인들의 시민권 투쟁을 조직한 최초의 경험에 입각하여 ‘수동적 저항’이라는 통념을 대신하여 제시한 것입니다. 이후 간디는 이 용어를 각각의 시민불복종 캠페인의 명칭으로 만들었으며 또한 동시에 폭동이나 테러 활동을 식민 지배에 맞선 인민대중의 지속적인 동원으로 대체하기 위한 합법적ㆍ비합법적 장기 투쟁 형식의 일반 개념으로 만들었습니다.

금욕을 뜻하는 전통적인 용어로서 간디가 개인의 영역에서 상호개인적인 영역으로 확장한 아힘사(ahimsa)는 비록 간디 자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친화성이 있다고 믿긴 했지만, 서양의 영성적인 어휘로는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용어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적에 대한 증오를 극복하거나 대항폭력을 억제하게 해주는 에너지의 집중을 가리킵니다. 만약 이러한 ‘종교적’ 요소를 정치적인 것의 중심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변증법’을 형성하는 상반된 운동들을 그것의 아주 구체적으로 규정된 사회ㆍ정치적 측면들과 진정으로 결부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특히 비합법적인 실천을 통해 대중운동이 지배와 정면으로 대립했던 “공격적인 비폭력” 국면들과, 본질적으로 운동의 내적인 민주화 국면이라고 할 수 있는 “건설적 비폭력” 국면들이 번갈아 전개된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후자의 국면에서 간디는 특히 자크 랑시에르가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고 부른 것, 곧 불가촉 천민들, 소수 민족들, 여성들의 원칙적인 평등(여기에는 미묘한 차이들이 존재하지만, 이점은 넘어가겠습니다)이 인정되게 만들려고 애썼습니다.16 하지만 우리는 또한 간디 자신이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관념이 형성하는 ‘혁명 속의 혁명’도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이는 헤게모니, 민주적 동맹, ‘인민 내부의 모순’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따라서 레닌주의 전통에게는 심원하게 낯선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사회세력들 간의 대결에서 사용된 수단들의 본성은 이 세력들의 정체성 자체에 반작용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운동의 목적 또는 그 의도 내지 이데올로기적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실제로 산출되는 결과에 반작용을 미치게 됩니다.17 이는 직접적으로는 간디의 유명한 ‘대화주의’18(모든 정치 투쟁은 적수에 대한 개방의 계기를 포함해야 하며, 이것이 그의 관점의 전화를 조건 짓습니다) 및 대중 행동에서 자기 한정의 실천(이는 알다시피 실행하기 매우 어려운 것인데, 왜냐하면 ‘최종 투쟁’의 시기가 도래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이는 이해 불가능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로 귀착되며, 이 후자의 경우는 특히, 사티아그라하가 갑자기 비폭력에서 공동체적이거나 테러리즘적인 폭력으로 전도될 때 사티아그라하가 중단되는 것을 통해 예시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감히 간디 모델에 내적인 아포리아에 관해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해볼까 합니다(아포리아가 부조리함이나 효력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레닌주의의 아포리아와 대칭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조직과 관련된 것이며, 더 심층적으로 본다면 정치적 주체, 특히 무엇보다 혁명적 주체의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관개체적인 집합적 유대의 본성 및 구성 양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유대라고 불리는 이러한 유대는 더 정확히 말하면 ‘카리스마적인’ 유대로서, 이는 공동의 사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투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따라서 투쟁이 함축하는 희생을 견뎌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마치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지닌 것으로 가정되는 주체로서의 지도자의 인격에 의존합니다. 이는 대략 성자 같음 또는 선지자 같음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 차이가 벌어져서 적대로 전환되는(암베드카드와의 관계에서 불가촉 천민들에 대한 정치적 대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경우처럼) 결정적인 계기들, 가령 국가가 양보를 거부하거나 공동체들 간의 갈등이 학살로 번져가는 경우에 간디는 자신의 소멸의 위협(심원하게 양가적인 영성적 힘의 궁극적 표현으로서 목숨을 건 단식)을 통해서만 겨우 폭력의 자기 한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19 이는 이러한 수단이 실패로 돌아간 또는 일종의 수동적 폭력에 의한 정치적 살해를 역으로 촉발한 ‘마지막 투쟁’에 이르기까지 그랬습니다. 대중의 힘과 그 저항력을 이루었던 도덕적, 주체적 유대는 ‘또 다른 무대’, 곧 지배 및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대하여 전화의 방식으로, 곧 역사적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들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더욱이 모든 조건이 동등할 경우―규정하는 투쟁에서는 심원하게 양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러한 유대가 사랑과 죽음이 서로에게 몰입하는 강렬하게 성적인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적어도 20세기의 위대한 혁명운동이 그 모순적인 결과와 더불어 동원하고 무대화했던 의미에서 대중 및 대중운동의 시대에 존재하는 것입니까? 저는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단지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그런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저는 소망이나 기획 또는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정치적 행위라는 관념은 여전히, 비록 명백히 계급적 조건 및 문화적 모델에 의해 심층적으로 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연역이나 기획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집합적 행위자의 구성이라는 관념과 긴밀하게 연결된 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어떤 정세, 특히 사회 전체의 차원에 걸쳐, 심지어 세계 전체의 차원에 걸쳐 참을 수 없는 것을 불러일으키고 혁명적 변혁에 대한 요구를 다시 제기하는 극단적 정세의 긴급함과 결부된다고 해도 그것은 겨우 한 가지 가능성만을 제시해줄 뿐입니다. 철학에서 행위 개념이 지닌 전통적 의미, 곧 단지 어떤 대상(matiére)만 전화시킬 뿐 아니라 행위자 자신들까지 ‘형성하는’ 행위라는 의미에서의 행위하는 집합체 또는 집합적 실천은 조직 내지 제도 형태를 요구하며, 정서적 투여 또는 주체적인 동일시 과정을 요구합니다. 외관상으로는 아주 단순한 이 두 항[조직과 동일시 과정] 각자가 포함하고 있는 깊은 모순을 드러내줌으로써(하지만 사후에야), 레닌과 간디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역사들은 우리가 정치적인 것의 이러한 복잡성, 역사가 우리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우리를 그 속으로 투사하는 그 복잡성을 간과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몇몇 논평자들은 종종 상반되는 전제들에 입각해 있기는 하지
  1. 만 이런 관점을 옹호한 바 있다. 다음 저작들을 참조. Partha Chatterjee, Nationalist Thought and the Colonial World: A Derivative Discours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Minneapolis, 1986, ch. 4, ‘The Moment of Manoeuvre: Gandhi and the Critique of Civil Society’; 빠르타 짯떼르지, 『민족주의 사상과 식민지 세계』, 이광수 옮김, 그린비, 2013 중 4장 「기동 국면: 간디와 시민사회 비판」; David Hardiman, Gandhi in His Time and Ours: The Global Legacy of History Ideas, Columbia University Press, New York, 2003. 또한 로버트 영,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김택현 옮김, 박종철 출판사, 2005 중 22장 「인도 2: 간디의 대항근대성」 참조. 아시스 난디(Ashis Nandy)가 관용에 대한 간디의 강조는 그의 사상 및 행동의 종교적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적인 논평을 제기한 이후 오늘날 논쟁은 간디의 유산과 그의 계승자들(네루)의 ‘세계시민적 세속주의’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로 초점이 바뀌었다. 다음 저작을 참조. Nicholas Dirks, Castes of Mind: Colonialism and the Making of Modern India,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J, 2001, pp. 298–301. [본문으로]
  2. Moshe Lewin, Le Dernier Combat de Lénine, Paris: Les Editions de Minuit, 1967. [본문으로]
  3. 1908/9년에 영어와 구자라트어로 처음 출판된『힌두 스와라지』는 ‘인도의 자치’라는 뜻을 담고 있는 간디의 독립선언문으로, 여러 가지 이본(異本)으로 그의 동지들의 서문과 함께 출간된 바 있다. 마하트마 K. 간디,『힌두 스와라지』, 김선근 옮김, 지만지, 2011. 이 저작에 담겨 있는 여러 주제(사티아그라하(satyagraha)를 ‘시민불복종’ 및 ‘수동적 저항’으로 정의하는 것을 포함하여)는 다른 논문들 및 그의 자서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라가반 이예르 엮음,『비폭력저항과 사회변혁: 마하뜨마 간디의 도덕ㆍ정치사상』 상-하, 허우성 옮김, 소명출판사, 2004; 『간디 자서전: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 함석헌 옮김, 한길사 2002. [본문으로]
  4. Claude Markovits, Gandhi, Presses de Sciences Po, Paris, 2000, p. 42. [본문으로]
  5.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다음 인터뷰 모음집에서 이점에 관한 성찰을 읽을 수 있다. Moustapha Barghouti, Rester sur la montagne, Éditions la Fabrique, Paris, 2005. 전혀 다른 맥락에서 보면 이에 관한 토론은 사파티스타 운동이 치아파스에서 창안한 전략과 관련해서도 적실성을 지니고 있다. Yvon Le Bot, Le Rêve Zapatiste, Éditions du Seuil, Paris, 1997 참조. [본문으로]
  6. 나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제국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서창현 외 옮김, 세종서적, 2008)의 주장을 (아마도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있다. [본문으로]
  7. Eric Hobsbawm, The Age of Extremes: A History of the Word, 1914–1991, Vintage, New York, 1996, pp. 199–222. [본문으로]
  8. 네그리는 󰡔구성 권력󰡕(Le potere constuente)에서 레닌에 관해 길게 논의하지만, 간디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9. 동구와 서구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발전 정도의 반비례 관계에 입각하여 두 지역에서 공산주의 혁명의 상이한 조건을 대립시키는 그람시의 테제도 레닌의 관점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 테제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관점을 헤겔-마르크스주의적 언어로 재정식화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Quaderni del carcere, op. cit., vol. II, p. 865 sq 참조. [본문으로]
  10. 조지 오웰은 적절한 뉘앙스와 더불어 이 테제를 옹호한 바 있다.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권리가 없다면, 외부의 견해에 호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운동을 자극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의사를 적에게 알리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 러시아에는 간디 같은 인물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가 지금 이루어내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러시아의 인민대중은 같은 생각이 모두에게 동시에 떠오를 경우에만 시민불복종을 실행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더라도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라는 역사적 사실로 판단하건대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Reflections on Gandhi" [1949], in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 vol. 4, Hammondsworth, Penguin Books, 1945~50; 「간디에 관한 소견」, 󰡔나는 왜 쓰는가󰡕,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 458쪽. 하지만 데이비드 하디먼은 해방운동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은 ‘폭력적인’(또는 무장한) 운동만이 아니라 ‘비폭력적인’ 운동에 대해서도, 곧 1960년대~1980년대에 제3세계에서 직면했던 딜레마와 연결시킨다면, ‘게바라’의 모델만이 아니라 ‘마르틴 루터 킹’의 모델에 대해서도 문제를 낳는다는 사실에 대해 올바르게 지적한 바 있다. David Hardiman, Gandhi in His Times and Ours, op. cit., p. 255 sq. 파르타 차테르지 역시 실질적으로는 같은 입장이다. Partha Chatterjee, The Politics of the Governed: Reflections on Popular Politics in Most of the World,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6. [본문으로]
  11. 󰡔경제와 사회󰡕 1부 1장 「사회학의 기본 개념들」의 5절~7절에서 베버는 ‘사회 질서’의 ‘정당성’(Geltung)을 이 질서의 구성적인 성향을 사람들이 따르게 될 (특히 법이나 규칙에 복종하게 될) 개연성(probabilité, chance)으로 정의한다. 완전히 실용적인 이러한 정의(이것은 규범적인 법이론이 아니라 사회학적 행위이론에 속한다)는 갈등 양상 및 그 조절에 대한 연구로 귀결된다. 이는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한편에서는 스피노자를, 다른 한편에서는 푸코를 생각하게 만든다. [옮긴이] 발리바르가 준거하는 막스 베버의 유고작 󰡔경제와 사회󰡕(Gesellschaft und Wirtschaft)는 마리아네 베버와 요하네스 빙켈만 등이 편집해서 출판된 저작이며(1922년 초판이 나왔고 1976년 6판이 출판), 이 편집본(및 다른 막스 베버 저술 편집본)이 지닌 숱한 문제점들이 제기됨에 따라 1984년부터 새로운 막스 베버 전집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경제와 사회󰡕도 1999년 이후 새로운 편집본이 출간되었다. 새로운 󰡔경제와 사회󰡕 판본의 우리말 (부분)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막스 베버, 󰡔경제와 사회: 공동체들󰡕, 박성환 옮김, 나남, 2009. [본문으로]
  12. 이것이 독일 역사가 논쟁의 당사자들, 특히 에른스트 놀테(Ernst Nolte)의 기본 테제였으며, 프랑스에서는 몇 가지 세부적인 차이점이 있지만 프랑수아 퓌레가 받아들인 테제다(에른스트 놀테, 󰡔유럽의 시민전쟁, 1917~1945󰡕, 유은상 옮김, 대학촌, 1996; François Furet, Le Passé d’une illusion. Essai sur l’idée communiste au xxe siècle, Paris: Robert Laffont/Calmann-Lévy, 1995). 이 테제에 대해 클로드 르포르가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Claude Lefort, La Complication, Paris: Fayard, 1999. [본문으로]
  13. 이 정식은 알다시피 레닌이 두 차례의 러시아혁명(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 사이에 집필했고 나중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지침이 되는 저작의 중심에 존재한다. L'État et la Révolution, in OEuvres complètes, Paris and Moscow, 1962, Vol. 25, pp. 429ff, 453ff. [본문으로]
  14. 로버트 영, 󰡔트리컨티넨탈리즘󰡕, 「인도 II : 간디의 대항근대성」 참조. [본문으로]
  15. 두 용어에 대한 간디 당대의, 그리고 원천에 근접한 정의를 보려면, Krishnala Shridharani, War without Violence: A Study of Gandhi’'s Method and its Accomplishments (1939), Garland Publishing, London, 1972((Gene Sharp의 새로운 「서문」과 Charles Walker의 「후기」 포함)을 보라. 이 책은 고통을 감당하는 능력 및 이러한 능력이 고통의 원인에 맞서도록 촉발하는 힘의 동원을 강조한다(p. 283). 또한 Suzanne Lassier, Gandhi et la non-violence, Éditions du Seuil, Paris, 1970; Bhiku Parekh, Gandhi: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7 참조. [본문으로]
  16. 클로드 마르코비츠는 ‘불가촉 천민’(dalits) 운동의 지도자인 암베드카르와의 갈등의 첨예함을 서술하면서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대의를 인정받지 못하고 달리트들 자신에게는 그의 전략을 인정받지 못한 간디의 실패를 강조하고 있다. Claude Markovits, Gandhi, op. cit., p. 199 이하. [본문으로]
  17. 간디에 대한 해석에서 한나 아렌트의 영향을 받은 조앤 본두런트는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그가 “갈등 해결의 변증법”으로 제시하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Joan V. Bondurant, Conquests of Violence. The Gandhian Philosophy of Conflic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1971. [본문으로]
  18. 이는 본질적으로 하디먼의 생각이다. David Hardiman, Gandhi in His Times and Ours, op. cit. [본문으로]
  19. 이는 (힌두교에서는 전통적인) “출가자”(renonçant)의 모습에서 파생된 동일시 메커니즘의 문제다. Markovits, Gandhi, pp. 54-5 참조. 하지만 파르타 차테르지의 해석은 더 정치적이다. Partha Chatterjee, The Politics of the Governed, op. cit., pp. 11-12. 그는 주어진 정세에서 서로 구별되는 대중운동들 사이에 등가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간디의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매개자’의 모습을 더 부각시킨다. 이는 라클라우가 ‘포퓰리즘’이라고 부른 것과 결국 아주 가까운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다. Ernesto Laclau, On Populist Reason, Verso, London, 2005 참조. [본문으로]

2021-09-07

Opinion | We're the Afghan Peace Volunteers in Kabul, And We Have Three Dreams | Dr. Hakim

Opinion | We're the Afghan Peace Volunteers in Kabul, And We Have Three Dreams | Dr. Hakim




The Afghan Peace Volunteer published a video-letter on YouTube. (Photo: screengrab)

We're the Afghan Peace Volunteers in Kabul, And We Have Three Dreams
Our three dreams are about reuniting with nature and 7.7 billion other human beings



DR. HAKIMJuly 6, 2019


Dear fellow human beings,

Some of us have wondered, "Are people today too disconnected and frantic to calm down, in order to solve global challenges together? Are we so polarized and self-absorbed that we cannot stop judging one another or insisting on our partisan ways?"

In Kabul, our thoughts and feelings are diverse, complicated and flawed, so we center our three dreams on relationships.

We have felt much joy in creating this video-letter. We dedicate it to planet Earth and to everyone in the human family.

We hope that each of us can take tiny actions to free ourselves from the ravages of money and power.

With love from Afghanistan,

Dr. Hakim Young and the Afghan Peace Volunteers


We're the Afghan Peace Volunteers in Kabul, and we have three dreams.

Our three dreams are about reuniting with nature and 7.7 billion other human beings!

Our dreams aren't prescriptions. They're music and movements, distilled from today's nightmares.

What we hope to gain is love, not money or political power, because love will be good for all of us!

We will re-boot the operating systems that have programmed us to chase after fake money and power.

After years of rote exams, we have hardly learned anything about becoming finer human beings. So, we have resolved to educate ourselves to question everything, and to love everyone!

We're like children whose instinct is to become friends. More than being dreamers, we're do-ers. So, we're building three Earth GENeration dreams, GEN for Green, Equal, and Nonviolent.

We dream of green Earth relationships!

We practice permaculture and use solar energy.

Why? We're part of nature and can't survive without her. Our Mother Earth isn't a "thing" for us to utilize or set on fire, but a "being" for us to embrace.

We dream of equal Earth relationships!

We have started worker cooperatives because the world economy isn't fair for the planet or for 99 percetn of humanity.

Our community is self-governing. We don't need a director. All of us are leaders, but we're not like today's cash-elected leaders who're some of the least desirable humans in the world.

We're growing our web of Borderfree friends, because we're from the same human family, the same tree of life. We want to be friends with all Afghans, U.S. citizens, Russians, the British, Chinese, Koreans, Pakistanis, Indians, Iranians, Sudanese, Venezuelans, and every human being!

Our human genome is 99.9 percent similar, so we reject racism, exceptionalism, male superiority, moralism, and others, because all of these are neither scientific nor kind.

We dream of nonviolent Earth relationships!

We all want peace, but so far, we've wanted peace only for our own countries, tribes, political, and religious groups. So war has continued, and as a result, I've lost my uncle Sakhi, and my close friend Tariq.

We've more space in our hearts for love and peace than for war, so we're training ourselves to be nonviolent mediators. We'll reason and empathize with our leaders and extremists, and we will reach an agreement without using any physical force!

War starts in our militarized minds, so picture the global war on terror as a smart phone. We think it's necessary and that it works well. But really?

Some people think that, like a phone, war is necessary. But though war may work, it only works physically for a short while, and only works for a few individuals.

For the rest of us, war costs us everything! It's time to throw it away!

Killing one another unsettles our human psyche. So, to those who have divided us with trauma, distrust, sorrow, and revenge, we say, "We're breaking free!"

Well, these three dreams are really one dream, because we can't fix the climate without fixing inequality or war.

Everyone and everything is related! We just can't separate ourselves from each other, from the earth, or from you!

Okay, thanks for listening to our dreams. We've taken up enough of your screen time. So let's get off screen, terminate our business as-as-usual, and pursue the authentic relationships all of us long for.

Remember, we make up 64 percent of the Afghan population below 25. We're the new Earth GENeration. We're the music and the movements within you, so we hope to meet you someday!

"Friends... they cherish one another's hopes. They are kind to one another's dreams." —Henry David Thoreau




DR. HAKIM


Dr. Hakim, (Dr. Teck Young, Wee) is a medical doctor from Singapore who has done humanitarian and social enterprise work in Afghanistan for the past 9 years, including being a friend and mentor to the Afghan Peace Volunteers, an inter-ethnic group of young Afghans dedicated to building non-violent alternatives to war. He is the 2012 recipient of the International Pfeffer Peace Prize.

2021-05-17

이재봉의 평화세상 - 종교와 평화: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하여

이재봉의 평화세상
종교와 평화: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하여 | 평화 세상
이재봉 2021. 4. 28. 10:41http://blog.daum.net/pbpm21/553
종교와 평화: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하여 (초고)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1. 종교의 평화성
 
2018년 11월 1일부터 7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 (2018 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에 참가했다. 회의 주제가 통합 (inclusion), 사랑 (love), 이해 (understanding), 화해 (reconciliation), 변화 (change) 등이었다.
 
수천 명의 종교인과 종교학자들이 모인 토론토 컨벤션센터 복도에 대형 게시판들이 걸려 있었다. 각 종교의 가장 큰 특징을 홍보했다. 그 가운데 ‘평화’와 ‘비폭력’을 강조하지 않는 종교는 없었다. 종교 전체를 홍보하는 첫 번째 게시판엔 폭력은 남들과의 차이를 조정하거나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살생하지 말고 생명을 존중하라는 문구도 있었다.
 
유대교 게시판엔 살생 금지를 포함한 모세의 ‘십계명 (The Ten Commandments)’,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레위기> 제19장 제18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추구하고 따르라는 <시편> 제34장 제14절 등이 담겼다.
 
기독교 게시판은 예수의 ‘산상설교’ 가운데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축복 받을 것이라는 <마태복음> 제5장 제9절, 오른 뺨을 치면 왼 뺨도 치게 하고 저고리를 원하면 외투도 주라는 <마태복음> 제5장 제40절,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마태복음> 제5장 제44절 등을 담고 있었다.
 
이슬람 게시판은 신의 이름으로 자비와 동정을 강조하는 경전 󰡔코란󰡕 및 ‘회교도 의무사항 (The Muslim Code of Duties)’을 내세웠다.
 
불교 게시판은 남을 해치지 않으려는 등 바른 의지를 갖고, 거친 말을 삼가는 등 바른 말을 하며, 생물을 살생하지 않는 등 바른 행동을 하라는 지침을 포함한 ‘8정도 (八正道, The Eightfold Path)>’를 앞세웠다. 맨 앞에 생물의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5계 (五戒, The Five Precepts of Buddhism)’도 내세웠다.
 
힌두교 게시판은 ‘요가의 길 (The Yoga Way)’ 첫 번째 덕목으로 비폭력 (a-himsa)을 강조했다.
 
이렇듯 이 세상 모든 종교는 평화와 비폭력을 지향하고 추구한다. 경전에서 폭력과 전쟁을 부추기는 종교는 없다.
 
 
2. 종교 간 폭력: ‘거룩한 전쟁 (holy war)’ 또는 종교 전쟁 (religious war)
 
인류 역사상 전쟁의 가장 큰 원인은 민족과 종교에 있다. 핏줄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끔찍한 살상을 저질러온 것이다.
 
세계엔 대략 2,000종의 민족이 있다고 한다. 국가는 200개가 좀 넘는다. 이 가운데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는 20개 정도. 평균 10종의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모든 민족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지려면 국가의 수가 민족의 수만큼 2,000개 정도로 늘어나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는 1991년부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등으로 분리 독립했다. 50종 이상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에서는 티베트나 신장위구르가 분리 독립을 추구해오고 있다. 그런데 독립하는 과정에서 대개 전쟁이 일어났다. 세계 모든 민족이 저마다 국가를 세우려면 적어도 1,800번 정도의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민족주의의 가장 부정적 측면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두 가지 핵심 요인 가운데 민족보다 심각한 게 종교다. 전쟁의 70-80%가 종교 때문에 일어나고, 주로 종교 간의 불화가 전쟁을 불러왔다. 지난날 ‘성전 (聖戰: holy war)’이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전쟁이 얼마나 숱하게 저질러졌는가. 종교분쟁은 다른 분쟁보다 더 격렬한 충돌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종교가 목표로서의 평화는 중시하면서도 과정으로서의 평화는 소홀히 해왔다는 뜻이다.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성취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용인하거나 선호해온 것이다.
 
세계 5대종교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을 차지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는 서양에서 일어나 200여개 국가에 퍼져있고, 힌두교와 불교는 동양에서 일어나 120개 안팎의 국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특히 호전적이다. 역사적으로 큰 전쟁은 대부분 이들 유일신 종교에서 시작되었다. 예수와 무하마드 둘 다 사랑과 평화를 앞세우고 촉구했지만, 이슬람이 일어난 7세기부터 21세기 ‘문명의 충돌’까지 두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은 그치지 않고 있다. 특히 11-14세기 공격적 십자군전쟁이든 14-16세기 수세적 십자군전쟁이든 얼마나 참혹했는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는 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서로 싸운다. 기독교 안에서는 천주교도와 개신교도가 같은 예수를 따르며 서로 다툰다. 개신교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마저 둘로 나누어, 한쪽은 개인 구원을 중시하는 예수복음으로 예수교 장로회를 만들고 다른 쪽은 사회 구원을 중시하는 그리스도복음으로 기독교 장로회를 세워 갈등을 빚는다. 이슬람교 안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같은 알라를 섬기면서 원수처럼 서로 죽이기도 한다. 이들은 다른 종교나 교파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과 편협성을 보이며 다른 교도들을 개종시키려고 하거나 죽여 없애려고까지 한다. 모든 종교와 교파가 사랑과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증오와 살육을 저지르고 있으니 지독하게 역설적이요 모순이다.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3. 종교 내 폭력 사례: 여성에 대한 차별
 
여성은 인구의 절반이다. 절반의 인구가 상습적으로 폭력을 당하고 있다.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에 관계없이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은 동서고금을 통해 나타난 현상이다. 절반의 인구가 차별을 당하는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는 사회의 발전과 평화를 불러오기 어렵다.
 
종교는 대체로 인간 평등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오래 전부터 남녀 불평등의 교리와 성차별주의적 제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도들에게 직접 ‘말씀’을 전달하며 인도하는 교역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기독교에서는 성서의 하나님을 남성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은 남편 아담에게 아내 하와가 복종해야한다고 말한다. 고대 유대사회에서 여성은 제사장이 될 수 없었고, 성전 활동에 제한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족보 계승은 남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지금까지도 여성에게는 성직을 제한하며 보조적 또는 이차적 역할만 맡게 하는 등 교회를 가부장적 체제와 질서로 운영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경전 꾸란 (Quran/Koran)은 3장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고 했지만, 4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려 줄 것이라.”
 
불교에서는 여성이 부처가 될 수 없다거나 성불하더라도 남성의 몸으로 변해 부처가 된다는 사상을 전파시킨다. 나이가 적은 비구 (남자) 에게도 비구니 (여자)가 먼저 예를 올려야 한다든지 무슨 이유로든 비구를 비판하지 말라는 등의 출가 여성에 대한 계율을 일컫는 팔경법 (八敬法) 또는 팔불가월법 (八不可越法)으로 여성을 차별해 왔다.
 
한국 4대종교에 속하는 원불교는 남녀평등 문제와 관련해 매우 주목할 만하다. 교리에서 평등과 화합을 중시하며, 삼종지도 (三從之道)에 따른 남녀차별을 불합리하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 정전 (正典) 교의편 (敎義編) 사요 (四要)에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녀에게 의지하였으며, 또는 권리가 동일하지 못하여 남자와 같이 교육도 받지 못하였으며, 또는 사교의 권리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재산에 대한 상속권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자기의 심신이지마는 일동일정에 구속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니라”고 지적하고, “과거 불합리한 차별제도의 조목” 가운데 “남녀의 차별”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교무들과는 달리 여자교무들은 제복 또는 ‘검정치마 흰 저고리’로 상징되는 정복 (貞服)을 입게 하는 한편, 실질적으로는 결혼을 못하게 함으로써 여성을 억압하는 모순을 드러냈는데, 2020년부터야 여자교무의 ‘정녀서약’ 관행을 폐지했다.
 
 
4. 종교와 비폭력저항: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평화는 평화적으로 추구하고 성취해야 한다. 평화라는 목표를 이루는 수단과 방법도 평화적이어야 한다. 내가 인터넷에서 즐겨 쓰는 아이디 ‘pbpm’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peace by peaceful means)’를 뜻한다. 지금까지 비폭력운동은 주로 종교경전을 바탕으로 종교인들이 주도해왔다.
 
1) 퀘이커교도들의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
 
한국에서 ‘종교 친우회’로 불리는 퀘이커교도들 (Quakers)은 18세기부터 미국 원주민 (아메리칸 인디언)과 우호적 관계, 노예제도 반대, 전쟁 반대 등을 주장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폭력과 칼이라는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악에 대한 무저항, 온유, 온건, 평화 애호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오로지 평화와 조화와 사랑의 모범을 보여 세상에 전파될 수 있다”고 했다.
 
2) 톨스토이의 ‘악에 대한 무저항’
 
톨스토이는 1884년 발표한 My Religion (나의 종교) 및 1905년 출판된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등의 저서를 통해 그가 믿는 종교의 본질을 설명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기독교를 내세우며 악에 대한 무저항을 주장했다. 산상설교라 일컬어지는 마태복음 5장 39절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는 모든 형태의 폭력과 전쟁을 불법적인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이와 아울러 기독교인을 “이웃과 다투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거나 공격하지 않으며, 그와 반대로 저항하지 않고 스스로 고난을 당하며..... 세계를 자유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을 교회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흔히 기독교라 불리는 교회의 신앙을 가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무저항의 선구자들인 퀘이커 (Quaker) 교도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인용하며 무저항의 당위성과 도덕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무저항’이란 말은 사전에서 정의하듯 ‘저항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악에 대해 무조건 저항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악에 대해 악으로 저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구약성경 (Hebrew Bible)과 하무라비 법전 (Code of Hammurabi)에 기록되어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처럼 해를 당한 만큼 앙갚음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오히려 선으로 물리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무저항주의는 침략적이든 방어적이든 모든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을 위한 준비도 반대하는 것이다. 자신을 방어한다는 이유로 무기를 들어서도 안 되고 정당방위도 인정되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악을 행하는 사람의 생명을 해치거나 빼앗을 수 없다고 했다. 평화에 대한 사랑과 인류에 대한 선을 가르치는 종교와 전쟁이 병행하거나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가 군복무를 강요할지라도 단호하게 그러나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군복무를 거절하는 게 기독교인의 명예롭고 엄숙한 임무라고 여겼다.
 
3) 간디의 ‘적극적 비폭력저항’
 
간디는 힌두교도로서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비폭력저항 이론을 다듬고 실천에 옮겼다. 톨스토이가 교회에 다니지 않았지만 기독교 경전을 공부하며 가르침을 받은 기독교인이라면, 간디는 힌두사원에 다니지 않으면서 힌두교 경전을 즐겨 읽은 힌두교도였다. 간디가 영국에서 법을 공부할 때, 스무 살이 되도록 읽지 못해 부끄러웠다고 고백하며 읽었던 힌두교 경전이 『바가바드 기타』다. ‘신의 노래 (the song of God)’ 또는 ‘하느님의 노래 (the song of Heaven)’라는 뜻을 지닌 이 경전은 간디의 ‘정신적 참고서 (spiritual reference book)’ 또는 ‘일상 지침 (daily guide)’이었다. 그가 1,000번 이상 읽었으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간디의 사상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저작일 뿐만 아니라 톨스토이, 간디, 킹 (Martin Luther King)에게 영향을 준 쏘로우 (Henry David Thoreau)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저작이며, ‘한국의 간디’로 불린 기독교인 함석헌도 번역했던 『바가바드 기타』의 가장 큰 가르침이 바로 비폭력이다.
 
간디는 자서전에서 톨스토이가 1905년 발표한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읽고 감동에 휩싸이며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톨스토이의 무저항주의에 평생 잊지 못할 깊은 감명을 받고 이를 비폭력주의로 발전시켰다. 특히 마태복음 5장 39-40절을 “아주 특별하게” 받아들이고 “한없이 기뻐하며” 이 산상설교를 『바가바드 기타』와 비교해보았다. 나아가 양쪽의 가르침을 하나로 엮어보려 시도하며, “주요한 종교에는 모두 통달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간디는 인도 독립운동 초기에 무저항을 ‘소극적 저항’이라고 불렀지만, 이 말은 약자의 무기인 것처럼 오해될 염려가 있어 ‘진리파악 (satyagraha)’ 또는 ‘비폭력 (ahimsa)’이라고 고쳐 불렀다. 무저항이란 말은 저항하지 않는 것으로 그리고 소극적 저항이란 말은 수동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되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비폭력저항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간디에 따르면, 무저항이나 수동적 저항은 약자의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이나 비겁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이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을 해치려는 노력이며, 어떤 경우엔 남몰래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직접적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비폭력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차라리 복수와 죽음을 무릅쓴 폭력적 저항이 차선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톨스토이의 무저항주의와 간디의 비폭력주의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악에는 악으로 대적하지 말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들어서도 안 되며 정당방위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는데, 간디는 불의에 대항할 줄 알아야 하고 비폭력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을 때는 폭력적 수단을 사용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비겁할 뿐만 아니라 무능하고 약한 자의 ‘엉터리 비폭력’은 세상에서 가장 비도덕적이라며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폭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 폭력은 필요하고 고상하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4) 킹의 ‘투쟁적 비폭력 저항’
 
킹은 1950년대 초 신학대학에 다니면서 간디의 비폭력 철학을 접하게 되었다. 앨라배마에서 목사직을 맡은 지 1년 남짓 후 다음과 같은 몽고메리 버스보이콧 사건을 맞았다. 1955년 12월 앨라배마 몽고메리 (Montgomery)에서 로자 파크스 (Rosa Parks)라는 흑인 여성재봉사가 퇴근 후 버스에 올라 백인 지정석 뒤 첫줄에 앉았다. 좌석이 찬 뒤 백인들이 오르자 버스기사가 그녀에게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거부했고 체포됐다. 이 소식에 흑인들은 버스를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모임이 만들어졌고 킹이 대표로 뽑혔다. 그는 첫 대중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종차별 폭력조직 (KKK)을 비롯한 백인들은 불의를 영속화하려고 시위하지만, 우리는 정의의 탄생을 위해 시위한다..... 우리의 시위엔 백인 폭력조직처럼 십자가를 불태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백인도 두건을 쓴 흑인폭도들에 의해 집밖으로 끌려 나와 야만적으로 살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위협과 협박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강요가 아니라 설득의 방법을 택할 것이다..... 우리는 ‘너의 원수들을 사랑하라. 너를 저주하는 그들을 축복하라. 너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외쳤던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어지는 집회들에서는 간디의 철학을 소개하며 얘기했다. 사회에서의 갈등과 긴장은 백인과 흑인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정의와 불의 사이에 있는 것이라며, 정의롭지 못한 백인들을 물리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의를 물리치기위해 나아가자고 했다. 이렇게 비폭력저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킹은 체포되기도 하고, 전화나 편지와 엽서를 통해 협박도 받았으며, 집이 폭파당하기도 했다. 이에 일부 흑인들이 킹을 지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들었지만 킹은 무기를 버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폭력에도 비폭력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백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더라도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렇게 1년 동안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비폭력적으로 이끌며 마침내 1956년 12월 백인-흑인 격리법 철폐의 승리를 거두었다.
 
1963년 8월 그는 워싱턴 디시에서 대규모 평화행진을 이끌었다. 수십만의 인파가 모인 가운데 킹은 ‘미국 민권운동의 가장 유명한 연설’을 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1년 후 1964년 7월 미국의회는 결국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Civil Rights Act)을 통과시켰다. 이와 아울러 킹은 비폭력저항을 이끈 공로로 196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86년 미국의회는 킹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과 가까운 1월 셋째 월요일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다. 미국에서 개인의 생일을 연방 공휴일로 정한 것은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대통령과 비폭력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써 킹뿐이다.
 
5) 함석헌의 ‘비폭력 혁명’
 
함석헌의 비폭력 사상은 톨스토이의 무저항주의와 간디의 비폭력 저항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톨스토이의 종교관과 무저항 정신은 간디와 류영모에게 영향을 미치고 간디와 류영모는 함석헌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스승 류영모를 만남으로써 ‘정신적으로 단층을 이루며 비약’했다고 했는데, 스승이 기본을 세우고 자신이 발전시킨 씨알사상은 백성 (民)이 역사와 사회의 바탕이며 주체라는 사고와 인식으로, 여기엔 생명, 사랑, 민주, 평등, 비폭력, 평화 등의 정신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1919년 3.1운동 무렵 간디의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뒤, 1924-25년 무렵엔 간디에 관한 책을 읽고 간디를 흠모하며 그의 사상과 투쟁방법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함석헌이 “이제 우리의 나갈 길은 간디를 배우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밝힌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다.
 
간디는 정치와 종교를 하나로 잘 조화시켜 정치문제를 종교적으로 잘 해결했다. 어느 시대에든 역사는 결국 정치와 종교의 싸움인데, 오늘날 인류가 당하는 고민은 종교를 무시하고 사회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해결하려 하는 데서 온다. 종교가 국가의 공인을 얻은 대신 모든 문제를 정치에 넘겨주고 현실을 피하며 순전히 저 세상만을 위하는 종교로 바뀌어, 인생관이 천박해지고 마침내 대규모의 전쟁이나 학살까지 마음대로 저지르는 세상이 돼버렸다. 이런 터에 간디는 몇 백 년 동안 식민통치를 통해 산송장이 되어버린 2억의 인도인들을 단순한 종교심으로 불러일으켜 대영제국의 억압을 물리치고 자유로운 나라의 기초를 닦았으니 인류역사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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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3

Jane Bennett (political theorist)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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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Bennett (political theo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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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Bennett
Born31 July 1957 (age 63)
NationalityAmerican
Alma materUniversity of Massachusetts
EraContemporary philosophy
RegionWestern philosophy
SchoolContinental philosophy
Speculative realism[1]
New materialism
InstitutionsJohns Hopkins University School of Arts and Sciences
Main interests
Political philosophy
Notable ideas
Vibrant matter, new materialism
Influences

Jane Bennett (born July 31, 1957)[3] is an American political theorist and philosopher. She is the Andrew W. Mellon Professor of the Humanities at the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Johns Hopkins University School of Arts and Sciences.[4] She was also the editor of the academic journal Political Theory between 2012-2017.[5][6]

Education[edit]

Jane Bennett originally trained in environmental studies and political science. She then went on to Cornell University to study environmental science. After Cornell she studied political theory and gained her degree (magna cum laude) in 1979 from Siena College, Loudonville, New York. Whilst at Siena College Bennett met Kathy Ferguson. Bennett then went on to the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nd qualified as a doctor of political science in 1986.[7][8]

Philosophical work[edit]

Bennett's work considers ontological idea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s and 'things', what she calls "vital materialism",

"What counts as the material of vital materialism? Is it only human labour and the socio-economic entities made by men using raw materials? Or is materiality more potent than that? How can political theory do a better job of recognizing the active participation of nonhuman forces in every event and every stabilization? Is there a form of theory that can acknowledge a certain ‘thing-power’, that is, the irreducibility of objects to the human meanings or agendas they also embody?"[9]

In her book, 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s,[10] Bennett's argument is that, "Edibles, commodities, storms, and metals act as quasi agents, with their own trajectories, potentialities and tendencies."[7]

Public lectures she has given include "Impersonal Sympathy", a talk theorizing 'sympathy' in which she considered the alchemist-physician Paracelsus (1493-1541) and Walt Whitman's collection of poetry, Leaves of Grass.[11] In 2015 Bennett delivered the annual Neal A. Maxwell Lecture in Political Theory and Contemporary Politics at the University of Utah entitled “Walt Whitman and the Soft Voice of Sympathy.”

Fellowships[edit]

  • 1997 - Visiting Fellow, Department of Politics, Goucher Colleg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12]
  • 2007 - Visiting Fellow, Department of Politics, University of Nottingham[13]
  • 2010 - Fellow, Birkbeck Institute for the Humanities, University of London[14]
  • 2011 - Fellow, Oxford University, Keble College[8]
  • 2017 - Fellow, Bauhaus University, Internationales Kolleg fur Kulturtechnikforschung und Medienphilosophie[4]

Bibliography[edit]

Books[edit]

  • Bennett, Jane (1987). Unthinking Faith and Enlightenment: Nature and the State in a Post-Hegelian Era.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ISBN 9780814710951.
  • Bennett, Jane (2001). The Enchantment of Modern Life: Attachments, Crossings, and Ethics.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 9780691088136.
  • Bennett, Jane (2002). Thoreau's Nature: Ethics, Politics, and the Wild (2nd ed.). Lanham, Maryland: Rowman & Littlefield. ISBN 9780742521414.
  • Bennett, Jane (2010). 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s. Durham, North Carolina: Duke University Press. ISBN 9780822346197.
Book review: Princen, Thomas (March 2011). "Critical Dialogue - "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s." By Jane Bennett.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10. 176p. $74.95 cloth, $21.95 paper". Perspectives on Politics. 9 (1): 118–120. doi:10.1017/S1537592710003464.
Bennett's response to five book reviews of 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s: Bennett, Jane (November 2011). "Author response". Dialogues in Human Geography. 1 (3): 404–406. doi:10.1177/204382061100100310. S2CID 220591219.

Edited books[edit]

Book chapters[edit]

  • Bennett, Jane; Shapiro, Michael J. (2002), "Introduction", in Bennett, Jane; Shapiro, Michael J. (eds.), The politics of moralizing, New York: Routledge, pp. 1–10, ISBN 9780415934787
  • Bennett, Jane (2002), "The Moraline Drift", in Bennett, Jane; Shapiro, Michael J. (eds.), The Politics of Moralizing, New York: Routledge, pp. 11–26, ISBN 9780415934787
  • Bennett, Jane; Connolly, William E. (2002), "Mouths, bodies and the state", in Honig, Bonnie; Mapel, David R. (eds.), Skepticism, Individuality, and Freedom: The Reluctant Liberalism of Richard Flathman,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pp. 244–265, ISBN 9780816639700
  • Bennett, Jane (2004), "Approaches to Contemporary Political Theory", in Kukathas, Chandran; Gaus, Gerald F. (eds.), Handbook of Political Theory, London Thousand Oaks, California: SAGE, pp. 46–56, ISBN 9780761967873
  • Bennett, Jane (2005), "In parliament with things", in Tønder, Lars; Thomassen, Lasse (eds.), Radical Democracy: Politics between Abundance and Lack, Manchester New York: Manchester University Press, ISBN 9780719070440
  • Bennett, Jane (2006), "The Agency of Assemblages and the North American Blackout", in de Vries, Hent; Sullivan, Lawrence E. (eds.), Political Theologies: Public Religions in a Post-Secular World,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pp. 602–616, ISBN 9780823226450
  • Bennett, Jane (2008), "Modernity and its Critics", in Phillips, Anne; Bonnie, Honig; Dryzek, John S. (eds.), The Oxford Handbook of Political Theor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0199548439
  • Bennett, Jane (2009), "Thoreau's Techniques of Self", in Turner, Jack (ed.), A Political Companion to Henry David Thoreau, Lexington, Kentucky: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pp. 294–325, ISBN 9780813124780
  • Bennett, Jane (2009), "Thing-Power and an Ecological Sublime", in White, Luke; Pajaczkowska, Claire (eds.), The Sublime Now, Newcastle upon Tyne: Cambridge Scholars, pp. 24–35, ISBN 9781443813020
  • Bennett, Jane (2010), "A vitalist stopover on the way to a new materialism", in Coole, Diana; Frost, Samantha (eds.), New Materialisms: Ontology, Agency, and Politics, Durham North Carolina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pp. 47–69, ISBN 9780822347729
  • Bennett, Jane (2010), "Thing-Power", in Whatmore, Sarah; Braun, Bruce (eds.), Political Matter: Technoscience, Semocracy, and Public Life, Minneapolis, Minnesota: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ISBN 9780816670895
  • Bennett, Jane (2011), "Thing-Power", in Seery, John (ed.), A Political Companion to Walt Whitman, Lexington, Kentucky: University Press of Kentucky, pp. 131–148, ISBN 9780813126548
  • Bennett, Jane (2012), "Thing-Power", in Elkins, Jeremy; Norris, Andrew (eds.), Truth and Democracy,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pp. 154–158, ISBN 9780812243796
  • Bennett, Jane (2012), "Powers of the Hoard: Further Notes on Material Agency", in Cohen, Jeffrey (ed.), Animal, Vegetable, Mineral: Ethics and Objects, Washington, DC: Oliphaunt Books an imprint of Punctum Books, pp. 237–269, ISBN 9780615625355
Abridged version printed (along with an 'assignment') as: Bennett, Jane (2013), "Powers of the hoard: further notes on material agency", in Sutela, Jenna (ed.), Add metaphysics: essays and assignments, Aalto, Finland: Aalto University Digital Design Laboratory, pp. 52–67, ISBN 9789526049540 Open access link.
  • Bennett, Jane; Connolly, William (2012), "The Crumpled Handkerchief", in Herzogenrath, Bernd (ed.), Time and History in Deleuze and Serres, New York: Continuum, pp. 153–172, ISBN 9781441163868
  • Bennett, Jane (2012), "Stones", in Sæbjörnsson, Egill; Herzogenrath, Bernd (eds.), Stones According to Egill Sæbjörnsson, New York: Revolver Publishing / Continuum, pp. 27–36, ISBN 9781441163868
  • Bennett, Jane; Connolly, William (2013), "Earthling: Now and Forever?", in Ellsworth, Elizabeth; Kruse, Jaime (eds.), Making the Geologic Now: Responses to Material Conditions of Contemporary Life, Brooklyn, New York: Punctum Books, pp. 244–246, ISBN 9780615766362
  • Bennett, Jane (2013), "From Nature to Matter", in Archer, Crina; Ephraim, Laura; Maxwell, Lida (eds.), Second Nature: Rethinking the Natural Through Politics,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pp. 149–160, ISBN 9780823251421
  • Bennett, Jane (2014), "Of Material Sympathies, Paracelsus, and Whitman", in Iovino, Serenella; Oppermann, Serpil (eds.), Material Ecocriticis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pp. 149–160, ISBN 9780253013958
Revised and reprinted as Bennett, Jane (2015), "Of sympathies alchemical and poetic", Rare Earth, Vienna: Tyssen-Bornemisza Art Contemporary, pp. 112–118
  • Bennett, Jane (2014), "The shapes of Odradek and the edges of perception", in Klingan, Katrin; Sepahvand, Ashkan; Rosol, Christoph; Scherer, Bernd M. (eds.), Grain/Vapor/Ray: Textures of the Anthropocene, Berlin: Haus der Kulturen der Welt
  • Bennett, Jane (2014), "Systems and Things: A Reply to Graham Harman and Timothy Morton", in Grusin, Richard (ed.), The Nonhuman Turn, Minnesota: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 forthcoming.
  • Bennett, Jane (2014), "Green Materialism", in Kennedy, T. Frank; Keenan, James (eds.), Nature as a Force: Scientists, Social Scientists, and Ethicists in a Dialogue of Hope, Toronto,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 forthcoming.
  • Bennett, Jane (2017), "Vegetal Life and OntoSympathy", in Keller, Catherine; Rubenstein, Mary-Jane (eds.), Entangled Worlds: Religion, Science, and New Materialisms, Fordham University Press, pp. 89–110
  • Bennett, Jane (2017), "Vibrant matter", in Braidotti, Rosi; Hlavajova, M. (eds.), Posthuman Glossary, Bloomsbury Publishers

Journal articles[edit]

Also occasionally referred to with the alternate title "The order of nature in Lucretius", this article discusses De rerum natura (On the Nature of Things) by Lucretius.
This article was a response to: White, Stephen K. (Spring 2000). "Affirmation and weak ontology in political theory: some rules and doubts". Theory & Event. 4 (2).
This article was in response to: Harman, Graham (Spring 2012). "The well-wrought broken hammer: object-oriented literary criticism". New Literary History. 43 (2): 183–203. doi:10.1353/nlh.2012.0016. S2CID 145048580.
and: Morton, Timothy (Spring 2012). "An object-oriented defense of poetry". New Literary History. 43 (2): 205–224. doi:10.1353/nlh.2012.0018. S2CID 170397563.

Blog posts[edit]

Published interviews[edit]

Revised and reprinted as Khan, Gulshan (2012), "Vital materiality and non-human agency: an interview with Jane Bennett", in Prokhovnik, Raia; Browning, Gary; Dimova-Cookson, Maria (eds.), Dialogues with contemporary political theorists, Houndsmill, Basingstoke, Hampshire New York: Palgrave Macmillan, pp. 42–58, ISBN 9780230303058
  • Bennett, Jane; Loenhart, Klaus K. (2011), "Vibrant matter - zero landscape: interview with Jane Bennett", in Bélanger, Pierre (ed.), GAM 07: Zero landscape: unfolding active agencies of landscape (Graz Architektur Magazin Graz Architecture Magazine) (German and English Edition), Wein New York: Fakultät für Architektur Technische Universität Graz, ISBN 9783709105368 Also printed as: Bennett, Jane; Loenhart, Klaus K. (19 October 2011). "Vibrant matter - zero landscape: interview with Jane Bennett". Eurozine.
  • Watson, Janell (October 2013). "Eco-sensibilities: interview with Jane Bennett". Minnesota Review. 81 (1): 147–158. doi:10.1215/00265667-2332147. S2CID 145051920.
  • (Forthcoming) "Interview with Jane Bennett". LA+: Interdisciplinary Journal of Landscape Architecture (11 (Vitality)). Spring 2020.


References[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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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Bennett, Jane (2010). 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s. pp. viii. ISBN 978-0-8223-4633-3.
  3. ^ "Bennett, Jane, 1957-". Library of Congress. Retrieved 25 July 2014. Her Unthinking faith and enlightenment, c1987: CIP t.p. (Jane Bennett) data sheet (b. 7/31/57)
  4. ^ Jump up to:a b Bennett, Jane (2018). "Curriculum Vitae". Johns Hopkins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Archived from the originalon 18 April 2019. Retrieved 18 April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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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Khan, Gulshan (February 2009). "Agency, nature and emergent properties: an interview with Jane Bennett". Contemporary Political Theory. 8 (1): 90–105. doi:10.1057/cpt.2008.43. S2CID 144483000.
  10. ^ " Strawberries on Life Support by Antónia Szabari & Natania Meeker". Los Angeles Review of Books]
  11. ^ "CISSC Lecture Series: Jane Bennett, Johns Hopkins University: Impersonal Sympathy". Center for Interdisciplinary Studies in Society and Culture,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22 March 2013.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8 July 2014. Retrieved 25 July 2014.
  12. ^ Visiting Fellows and Other Visitors, 1991–2004. Humanities Research Centr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1 May 2004. ISBN 9780975122983. Retrieved 25 July 2014.
  13. ^ "Visiting research fellows: previous visiting research fellows - Professor Bennett". Centre for the Study of Social and Global Justice (CSSGJ), The University of Nottingham. Retrieved 25 July 2014.
  14. ^ "Past visiting research fellows: Professor Jane Bennett (2010)". Birbeck Institute for the Humanities, University of London. Retrieved 25 July 2014.

External links[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