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잡기 - 일본인의 조선정탐록
혼마 규스케 (지은이),최혜주 (옮긴이)김영사200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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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혼마 규스케가 조선을 견문하고 정탐한 것을 기록한 글을 엮었다. 그는 대륙경영에 뜻을 품고 조선의 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내한해 부산에 머물면서 경성, 중부지방에 이어 황해도와 경기도 충청도 지방을 정탐했다. 1894년 간행 이래, 1930년대까지 읽히며, 일본인의 대조선관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1부에는 언어와 역사, 그리고 조선인의 기질, 2부에는 궁궐, 정치와 관료들의 사정, 3부에는 풍속과 생활상, 그리고 기이한 습속, 4부에는 문화와 예술, 5부에는 경제와 사회상, 6부에는 외국인과 국제관계, 7부에는 조선 여행의 고락과 일담, 8부에는 기타 정탐내용으로서 조선의 사정과 일본이다. 아울러, 역주자의 연구해제 및 참고문헌, 당시 조선의 사정을 보여주는 사진을 부록으로 실어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목차
『조선잡기』 서문 : 한산의 풍운이 정말로 급박하다!
글머리에 : 『조선잡기』는 어떤 책인가?
1부, 지금은 기백이 완전히 죽었다(언어와 역사, 그리고 조선인의 기질)
언어와 문장 / 언문과 이두 / 가야駕洛라는 국호/ 가라시駕洛食 / 먹는다고 하는 말 / 대ㆍ중ㆍ소화小華 / 독립한 적이 드물다 / 한인은 단순하다 / 지금은 기백이 완전히 죽었다 / 어른에 대한 예식 / 싸움 / 무사태평 / 야비野鄙 / 풀草本 / 기후 / 호랑이와 산고양이
2부, 동학당의 괴수와 만나다(궁궐, 정치와 관료들의 사정)
국왕전하 / 왕거 / 혼돈을 구별하지 못하다 / 상소 / 과거급제 / 법정 / 형벌 / 무관 / 병정 / / 지방관 / 안성 군수 / 관인은 모두 도적 / 향응 / 나라를 근심하는 사람 / 동학당의 괴수와 만나다
3부, 의식주와 기이한 풍속(풍속과 생활상, 그리고 습속)
묘지 / 상인喪人 / 혼인 / 조혼 / 조선의 부녀 / 창기 / 창기집 / 처를 손님에게 내놓다 / 남색 / 가마 / 만국의 첫째 / 관의 종류와 모자를 써야 하는 법 / 평상복 / 두루주머니 / 엿장수와 신발수선 / 부인의 기호 / 우산 / 뜨개질 / 세탁과 다듬이질 / 어린아이의 장난감 / 서방과 어린아이 / 지게꾼 / 남자무당 / 질병자 / 방房이라는 글자 / 남은 음식을 탐하는 것 / 상어고기 / 조선의 소금 / 정월놀이 / 풍년춤 / 잉어깃발 / 작은 백지 깃발 / 귀신을 쫓는 부적 / 개 / 고양이와 소 / 교외의 사냥 / 산목 / 하마비 / 하늘의 재앙 / 변소
4부, 시장과 거리, 양반과 평민(경제와 사회상)
지폐에 대한 평 / 통화 / 통화의 운반 / 객주 / 경성의 금리 / 경성의 큰 통로 / 도로 / 인삼 / 경성의 책방 / 경성의 종루와 지방의 고루 / 시장 / 남대문의 아침시장 / 한인의 물건 파는 광경 / 복권(만인설) / 가뭄 / 농기구 /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 / 제방 / 공동정신 / 목축업 / 토지소유대장 / 절영도 / 친척의 변상 / 양반과 상한 / 양반족 / 상한족 / 기생 / 노예제도 / 장례 / 여의사 / 정려문 / 일거양득 / 복통약 / 에다穢多_백정 / 유일한 이로움 / 우두의사 / 인천 / 송도 / 조령 / 사원 / 통도사
5부, 무예는 궁술만 남았다(문화와 예술)
무예 / 종교 / 석무정石無情 / 좋은 시화 / 속된 노래 / 기둥에 쓰는 글 / 시를 짓다 / 고 기와와 토우 / 골동품
6부, 청국의 야심과 일본의 열세(외국인과 국제관계)
방척주의 / 일본인과 청국인의 세력비교 / 청국의 야심, 한정의 유약, 일본의 무위 / 경성에 있는 일본인 관리 / 싼 물건 판매 / 중국인 / 신문지 / 교육의 일반 / 일본어 학교 / 자본이 필요하지 않다 / 부정한 과세 / 부산에 있는 한국 부인 / 어민보호 / 조선에 있는 일본인 승려 / 우물안의 개구리
7부, 목욕탕인가 초열지옥인가(조선정탐의 고락과 일담)
십리표 / 여름 여행 / 해주의 목욕탕 / 주인이 잡혀가다 / 조선의 옛 기물 / 선착장 / 약행상 / 여행자의 휴대품 / 요리점과 여관 / 촌락 / 시가의 불결 / 시가의 불결 / 길옆의 부뚜막 / 나쁜 새 퇴치 / 도적 / 새옹지마 / 나쁜 새 퇴치
8부, 잡조雜俎 : 기타 자잘한 정탐 내용들
해제 : 일본은 19세기 조선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부록 : 사진으로 보는 19세기 말 조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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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풍속들
조선에서 가장 심한 기이한 풍속은 조혼이라고 할 수 있다. 12, 3세의 나이로 벌써 장가를 간 자도 있다. 처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고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12, 3세짜리가 20세 전후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조선에서는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이한 풍속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어린 남녀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 조선의 인구가 매해 감소하는 것은 여기에 원인이 있다.(조선답기 본문 ‘조혼’에서) 접기
* 시장과 거리, 양반과 평민 등 조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공방전孔方錢 외에는 통화가 없는 나라 사람의 사상은 생각할 때마다 우스꽝스럽다. 어느 지방에서 내가 품에 넣었던 지폐를 보여주었을 때 일이다. 여러 한인들이 모여서 각자가 평하는 것을 들어보니, 한 사람은 이것은 금건金巾(면직물)에 부친 인쇄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통화라고 하다니 일본인이 우리를 속이는 것이냐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만일 이런 것을 통화라고 한다면 도적을 만났을 때 많이 빼앗길 것이다(한전은 매우 무거워서 상당히 많은 도적들이라도 15관문 즉 우리 20엔 이상은 지고 갈 수가 없다)”라고 한다. 또 한 사람은 “이것을 한전으로 바꾸어 모아두면 안에 넣어두고 밖으로 빈 것처럼 하여 관인이 빼앗아 갈 걱정이 없을 것이다(관인이 재물을 빼앗아가는 것이 그 나라의 통폐이다)”라고 한다. 열 사람이 열 가지의 논평을 하여 그릇이 끓는 것 같으나 귀착하는 바가 없다. 마치 맹인이 코끼리를 평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중에 처음부터 가만히 생각하는 얼굴을 하고 있던 한 사람이 나에게 조용히 말하기를, “지폐는 매우 편리한 것이다. 모름지기 이 지폐를 사용할 권리를 얻는 자는, 정부에 얼마의 세금을 내야 하느냐”고 물어본다. 아아, 이 문제가 더 기묘하다.(조선잡기 본문 ‘지폐에 대한 평’에서) 접기
* 조선의 무예는 궁술만 남았다
조선의 무예 중에 현재 존재하는 것은 다만 궁술뿐이다. 칼과 창이 없지는 않지만, 평일 그것을 연습하는 자는 없다. 활은 반궁으로서 화살의 길이는 우리나라의 것과 다르지 않고 표적은 한 칸 사방 정도의 판자에 ‘혼돈미판’의 표식(<혼돈을 구분하지 못하다> 참조)을 그려서, 백보의 거리를 재고 그것을 쏜다. 매년 시험이 있어서 잘 명중시키는 자는 선달의 칭호를 얻게 된다. 또 철포의 표적도 있지만 활과 같이 유행하지는 않는다. 활의 유행은 대개 패배와 승리를 결정하는 하나의 도박이기 때문에 조선 사람의 기호에 맞는 것이다.(조선잡기 본문 ‘궁술’에서) 접기
P. 23 조선의 선비는 지나를 불러 항상 중화라고 말하고, 스스로 소화라고 부른다. 조선 사람이 나에게 고국을 물으면 나는 항상 대화의 사람이라고 답한다. 그들은 나를 꾸짖어 오만함을 말한다. 그렇지만 오만하여 잘아하는 것과 비루하여 주눈 든 것 중에 어느 것이 나은가? p 023 - 피로
P. 34 정치적인 눈으로 시찰하면, 조선 사람은 어둡고 낮잠 속에 있다. 참으로 걱정할 만하다. 그러나 세속을 떠난 은자의 눈으로 시찰하면 한가하고 유유하며 진정 별천지의 사람이다. p 034 - 피로
P. 48 무관들은 단지 그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손자와 오자의 병법서를 음독도 할 수 없다. 무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양반이 정부에 돈을 내고 임용을 받는 것이다. p 048 - 피로
P. 54 어느 외국인이 한인에게 귀국의 관리가 마음대로 인민의 재화를 뺴앗는 것을 보면, 관리는 오히려 공도라고 칭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관리가 인민을 괴롭히는 것이 사도보다 심하다. 무엇 때문에 이들 관리를 죽이고 국가의 해를 제거할 것을 도모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관리는 도적이 아닌 자가 없고, 가령 한 몸을 희생하여 관리 한 명을 죽여도 그 뒤를 계승하는 관리 역시 도적이 되는 것이다. p 054 접기
P. 65 애석하다. 그들은 문자가 있는데 비해서 시세에 통하지 않고, 사정에 어두운 것을 p 065 - 피로
P. 87 그러나 물건을 사는 것은 일체 남자에게 맡기니 조선의 부녀는 남자의 생각안에서 그 기호를 만족시킬 수 밖에 없다. 습속이라고는 하나 부자유 천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p 087 - 피로
P. 127 나는 조선의 도로가 형편없는 것에 몹시 놀랐다. p 127 -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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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08년 6월 21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혼마 규스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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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기 조선전문가로 알려져 있으며, 「이륙신보二六新報」특파원, 천우협(天佑俠), 흑룡회(黑龍會) 회원으로 활동하고 통감부와 총독부가 설치된 뒤에는 관리가 된 인물이다. 『조선잡기』는 혼마 규스케 조선을 견문하고 정탐한 것을 기록한 글이다. 혼마 규스케는 대륙경영에 뜻을 품고 우선 조선의 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1893년에 처음으로 내한했다. 부산에 머물면서 경성, 중부지방을 정탐하고 행상을 하며 황해도와 경기도 충청도 지방을 여행했다. 그 후 도쿄에 돌아가 1894년 4월 17일부터 6월 16일자까지『이륙신보』에 조선 여행담을 연재하고, 154편의 글을 한권으로 묶어 7월 1일 간행했는데, 그 책이 바로『조선잡기』이다.『조선잡기』는 일본인이 1890년대 전후에 걸쳐 간행한 견문기나 서양인의 여행기 등에 비해 조선의 풍습과 일상생활을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밀하게 다루었다. 또 일본의 조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청일전쟁 발발과 함께 간행되어, 일본인의 조선 이미지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접기
최근작 : <조선잡기> … 총 2종 (모두보기)
최혜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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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
일본 도쿄대학대학원 인문과학대학 연구생 ㆍ 석사 ㆍ 박사
일본 도쿄대학 문학부 외국인연구원(2003)
숙명여자대학교 학술연구교수(2002-2005)
한양대학교 학술연구교수 ㆍ 연구교수 ㆍ HK교수(2006-2021)
독립유공자 공적검증위원(2022-2024)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연구이사(2013- )
상명대 ㆍ 한양대 연구원(2022- )
저서 『滄江 金澤榮의 한국사론』(1996), 『근대 재조선 일본인의 한국사 왜곡과 식민통치론』(2010,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저작상), 『정탐-제국일본, 조선을 엿보다』(2019, 한양대 학술총서 공모작), 『아오야기 쓰나타로의 조선정탐과 출판활동』(2020, 한양대 학술총서 공모작)
공저 『근현대 한일관계와 국제사회』(2001 ㆍ 2007), 『한국근대사와 고구려 발해인식』(2005), 『일본의 한국침략과 주권침탈』(2005), 『최남선 다시 읽기』(2009, 문체부 우수학술도서), 『여행의 발견 타자의 표상』(2010,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2010)
편저 『문교의 조선 총목차 ㆍ 인명색인』(2011), 『일제의 식민지배와 재조일본인 엘리트』(2018)
번역서 『일본 망언의 계보』(1996), 『일본의 근대사상』(2003), 『일본의 군대』(2005), 『朝鮮雜記-일본인의 조선 정탐록』(2008), 『일본인의 조선관』(2008), 『조선인의 일본관』(2008),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2009), 『인구로 읽는 일본사』(2009, 공역), 『일본 망언의 계보 개정판』(2010), 『일본의 식민지 조선통치 해부』(2011), 『아시아 ㆍ 태평양전쟁』(2012), 『한국통사 천줄읽기』(2014), 『식민지 조선과 일본』(2015), 『조선 시베리아 기행』(2016), 『원서발췌 한국독립운동지혈사』(2019), 『군산개항 前史』(2019), 『호남의 보고 김제발전사』(2025), 『언론 ㆍ 출판 관련 번역 자료집(1)(2)』(일제침탈사자료총서 66, 2025, 편역) 접기
최근작 : <시찰·여행·침탈>,<언론·출판 관련 번역 자료집 2>,<언론·출판 관련 번역 자료집 1> … 총 37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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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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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사라지는 일, 살아남는 사람>,<자각하는 우주>,<슬로 브랜딩>등 총 1,909종
대표분야 : 요리만화 1위 (브랜드 지수 382,317점), 사회/역사/철학 1위 (브랜드 지수 794,214점), 과학 2위 (브랜드 지수 939,31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본의 조선침략의 첨병역할을 한 정보원들은 누구인가!
‘지사’를 자처하며 대륙경영에 나선 일본 낭인 정보원의 정탐기록!
『조선잡기』최초 완역!
조선의 풍운이 정말로 급박하다!”
메이지 시기 대륙경영을 꿈꾸던 일본의 조선전문가 혼마 규스케, 청?일?러의 각축과 동학농민전쟁의 풍운이 몰아치던 19세기 말 1893년의 조선을 정탐하다!
일본은 이들의 정탐기록을 바탕으로 조선 침략의 시나리오를 짰다!
『조선잡기』는 혼마 규스케(本間久介, 1869~1919, 필명 如囚居士)가 조선을 견문하고 정탐한 것을 기록한 글이다. 혼마 규스케는『이륙신보二六新報』특파원, 천우협天佑俠, 흑룡회黑龍會 회원으로 활동하고 통감부와 총독부가 설치된 뒤에는 관리가 된 인물이다. 그는 대륙경영에 뜻을 품고 우선 조선의 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1893년에 처음으로 내한했다. 부산에 머물면서 경성, 중부지방에 이어 황해도와 경기도 충청도 지방을 정탐했다. 그 후 도쿄에 돌아가 조선의 여행담을 1894년 4월 17일부터 6월 16일자까지『이륙신보』에 연재하고, 154편의 글을 한권으로 묶어 7월 1일 간행했다.
『조선잡기』에는 근대 일본인의 시각으로 조선의 문화와 문물 풍속을 접하면서 느꼈던 여러 풍경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조선잡기』속에 드러나는 조선, 조선인의 주된 이미지는 순진함, 무사태평과 함께 불결, 나태, 부패 등이다. ‘문명국’ 일본에서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이 책이 갖고 있는 사료적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인이 1890년대 전후에 걸쳐 간행한 견문기나 서양인의 여행기 등에 비해 조선의 풍습과 일상생활을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밀하게 다루었다는 데 있다. 둘째, 일본의 조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청일전쟁 발발과 함께 간행되어, 일본인의 조선 이미지 형성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엮어 내면서 책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154편의 글을 8개의 항목으로 나누었다. 1부에는 언어와 역사, 그리고 조선인의 기질, 2부에는 궁궐, 정치와 관료들의 사정, 3부에는 풍속과 생활상, 그리고 기이한 습속, 4부에는 문화와 예술, 5부에는 경제와 사회상, 6부에는 외국인과 국제관계, 7부에는 조선 여행의 고락과 일담, 8부에는 기타 정탐내용으로서 조선의 사정과 일본이다. 아울러, 역주자의 연구해제 및 참고문헌, 당시 조선의 사정을 보여주는 사진을 부록으로 실어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개항 이후 공사관과 영사관이 설치되고, 일본인들이 내한하기 시작하면서 임오군란과 갑신 정변 이후에는 일본의 지사들이 대륙경영에 뜻을 품고 조선에 건너왔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는 일본인 고문들이 들어와서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하고 나서는 많은 일본인들이 이주해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군인들과 상인, 일확천금을 노리는 무뢰배, 대아시아주의 실현을 위해 낭인浪人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은 통감부나 총독부, 식민지 수탈기구의 관리가 되거나, 경제, 종교, 교육방면에서 활동하고 신문, 잡지를 경영하거나 통신원이 되어 정보원 역할을 했다. 이들 가운데 조선통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조선 침략의 첨병역할을 했다. 그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나아가 대륙침략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탐활동을 벌였다. 혼마 규스케도 그렇게 활동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잡기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다. 전후로 일본인에 의한 수많은 견문록, 혹은 여행기, 정탐기록 등이 나왔지만, 조선잡기는 조선의 사정과 민중들의 삶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달리 1894년 간행 이래, 1930년대까지 꾸준하게 읽히며, 일본인의 대조선관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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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청년 남녀들께 강권하여 읽게 하箏? 선물 가능하다면 본 문고에 비치하겠다.
웨슬리 2008-09-05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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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한국의 모습을 알수있는 좋은 자료로 판단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번역에 문제가 큰것 같습니다 원자료를 지나치게 직역한것 같기도 하고 또는 AI로 번역 되었는지 어색한 부분도 많고 내용 피악이 어려운 곳도 많습니다 이런 수준에서 출판했다는것이 몹시 불쾌합니다
sks2000 2025-06-0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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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조선의 사정 엿보기에 자료가 하나 더해졌다. 문제는 누가 어떤 시섬으로 보느냐. ˝혼마 규카이˝로 아는데 ˝혼마 규스케˝로도 부르나 보다.
우주굴리는지구인 2016-09-2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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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 마다 하나씩 나오는 오역. 옮긴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옮긴.
뉴요커타임즈 2019-12-24 공감 (0) 댓글 (0)
조선잡기
조선잡기. 일본인이 바라보던 그 시대의 조선사회를 명확히 파악할수 있는 좋은 교양서
샤랄라라라 2008-10-2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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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조선잡기
분명 이 책에는 일본인 특유의 자국 우월함이 담긴 시각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하지만 그 부분을 배제한채 읽는다면 반성할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모든 백성들이 글을 읽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뼛속 깊이까지 사대주의에 빠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농공상에 빠져 상업을 천시하고 과학을 천시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은 알았을 것이다. 남녀차별이라는게 얼마나 위험한 제도인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본 우월주의 시각을 배제한 채, 저자가 누구인지 배제한 채 읽어본다면, 조선말,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 그리고.. 정말 아프고 또 아픈 이야기지만, 어째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일본 군화에 짓밟힐 수 밖에 없었는지, 이 책 한권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조선의 선비는 지나를 불러 항상 중화라고 말하고, 스스로 소화라고 부른다. 조선 사람이 나에게 고국을 물으면 나는 항상 대화의 사람이라고 답한다. 그들은 나를 꾸짖어 오만함을 말한다. 그렇지만 오만하여 잘아하는 것과 비루하여 주눈 든 것 중에 어느 것이 나은가? p 023 - P23
정치적인 눈으로 시찰하면, 조선 사람은 어둡고 낮잠 속에 있다. 참으로 걱정할 만하다. 그러나 세속을 떠난 은자의 눈으로 시찰하면 한가하고 유유하며 진정 별천지의 사람이다. p 034 - P34
무관들은 단지 그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손자와 오자의 병법서를 음독도 할 수 없다. 무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양반이 정부에 돈을 내고 임용을 받는 것이다. p 048 - P48
어느 외국인이 한인에게 귀국의 관리가 마음대로 인민의 재화를 뺴앗는 것을 보면, 관리는 오히려 공도라고 칭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관리가 인민을 괴롭히는 것이 사도보다 심하다. 무엇 때문에 이들 관리를 죽이고 국가의 해를 제거할 것을 도모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관리는 도적이 아닌 자가 없고, 가령 한 몸을 희생하여 관리 한 명을 죽여도 그 뒤를 계승하는 관리 역시 도적이 되는 것이다. p 054 - P54
애석하다. 그들은 문자가 있는데 비해서 시세에 통하지 않고, 사정에 어두운 것을 p 065 - P65
그러나 물건을 사는 것은 일체 남자에게 맡기니 조선의 부녀는 남자의 생각안에서 그 기호를 만족시킬 수 밖에 없다. 습속이라고는 하나 부자유 천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p 087 - P87
나는 조선의 도로가 형편없는 것에 몹시 놀랐다. p 127 - P127
그리고 매매는 반드시 돈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물건을 교환할 뿐인데, 그 모양이 마치 신농씨의 시대를 상기시켰다. p 132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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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2020-10-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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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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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왜 구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용은 구한말 일본인 기자(또는 그렇게 위장한)인 저자가 조선의 각 지역을 둘러보고 기록한 글이다. 그다지 좋은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외국인의 시점으로 그 당시의 조선인의 생활을 볼 수 있는 드문 책이다.
별로 좋은 이야기는 없다. 다만 오늘날의 한국의 문제점이라고 나오는 것들의 꽤 많은 부분이 이 일본인의 글에서도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당시 통화인 엽전의 무게 때문에 여행시 충분히 여비를 가지고 다닐수 없어 불편하지만 그 대신 산적이나 도적을 만나도 크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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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29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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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마 규스케의 <조선잡기> 요약 및 평론입니다.
<조선잡기> 내용 요약
<조선잡기(朝鮮雜記)>는 일본의 대륙 낭인이자 정탐원이었던 혼마 규스케(本間久介)가 1893년 조선 각지를 행상 차림으로 편력하며 수집한 관찰과 정탐 기록을 정리해 1894년 <이륙신보(二六新報)>에 연재하고 간행한 책이다. 청일전쟁 발발 직전이자 동학농민혁명의 전운이 감돌던 격변기, 저자는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기초 정보 수집이라는 명확한 정치적 목적을 품고 압록강 국경에서 충청, 전라, 경상, 황해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경로를 직접 걸어서 답사했다.
책은 정치 체제, 관료 사회, 풍속과 일상, 경제 구조, 국제 정세 등 8개 부문으로 나뉘어 당시 조선의 현주소를 기록한다.
첫째, 정치와 관료 사회에 관한 묘사다.
둘째, 민중의 일상과 풍속이다.
셋째, 국제 질서와 조선의 무기력함이다. 청나라의 노골적인 내정 간섭과 오만한 태도, 그에 굴종하는 유약한 조선 조정의 실태, 그리고 이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던 당시 일본의 위상을 비교했다. 저자는 조선이 스스로 개혁할 기백과 역량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진단하며, 일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지도해야 한다는 대륙경영론의 논리를 밑바탕에 깔아두었다.
비평 및 역사적 의의
<조선잡기>는 관찰자의 명확한 이데올로기적 한계와 사료로서의 현장성이 극명하게 충돌하는 복합적인 텍스트다.
이 책은 순수한 인류학적 보고서나 여행 문학이 아니다. 19세기 말 일본 군국주의와 팽창주의의 첨병이었던 대륙 낭인의 <정탐록>이라는 태생적 성격을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이 지닌 사료적 가치는 결코 낮지 않다. 개항기 조선을 기록한 많은 서양인 견문록이 대도시 중심이거나 고위 관료들과의 피상적 접촉, 혹은 이국적 호기심에 치우친 것과 달리, 혼마 규스케는 한문 필담이라는 강력한 소통 도구를 갖춘 채 조선의 장터, 주막, 지방 관아를 직접 누볐다. 일반 서민의 언어 습관, 장시의 거래 관행, 의복의 착용 방식, 동학 교도들의 실제 풍모에 이르기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 관찬 사서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1890년대 초 조선 사회의 밑바닥 풍경이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포착되어 있다.
결국 <조선잡기>는 침략자의 편견 어린 왜곡의 시선과, 붕괴해 가던 19세기 말 조선의 날것 그대로의 실상을 동시에 증언하는 이중의 거울이다. 독자는 제국주의적 시각의 왜곡을 비판적으로 걸러내는 동시에, 봉건 체제의 모순 속에서 위기를 맞이했던 구한말 민중 사회의 생생한 단면을 입체적으로 복원해내는 자료로 이 책을 읽어내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룬 1890년대 초 조선의 특정 풍속이나 동학 접촉 대목 중 더 깊이 살펴보고 싶은 부분이 있으십니까?
===혼마 규스케 — 요약과 평론
혼마 규스케(本間九介, 1869–1919) | 1894년 초판 | 한국어판 2008년, 최혜주 역주, 김영사
원문 전체가 아닌 한국어판의 구성·서평과 관련 학술연구를 바탕으로 한 약 1,000단어 분량의 주제별 요약·평론이다.
1. 저자와 시대적 배경
는 청일전쟁 직전인 1893년 조선을 방문한 일본인 혼마 규스케의 견문과 정탐 활동을 기록한 책이다. 혼마는 일본의 국가주의적 대외 팽창운동과 관련된 천우협(天佑俠), 흑룡회(黑龍會)에 참여했던 인물로,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조선의 정치·사회·경제적 사정을 조사하는 활동가였다.
그는 부산과 경성을 거점으로 약장수로 가장하여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일대를 여행했다. 귀국 후 1894년 4월부터 6월까지 일본 신문 에 견문을 연재했고, 이를 154편으로 정리하여 같은 해 7월 1일 출판했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적인 여행기보다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에 대한 군사적·외교적 개입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했고, 혼마의 기록은 그러한 논쟁에 경험적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2008년 한국어판은 이라는 부제로 번역되었다.
2. 조선의 일상생활에 대한 관찰
이 책의 가장 큰 사료적 가치는 정치사보다 사회생활에 있다.
혼마는 조선의 음식, 숙박시설, 도로, 시장, 의복, 위생, 남녀관계, 종교, 상거래 등을 관찰한다. 그의 관심은 국가제도 자체보다 일반인이 어떻게 생활하고 행동하는가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도시의 불결한 환경, 열악한 도로, 비위생적인 생활습관, 불편한 여관과 교통수단을 반복해서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조선인들이 음식을 다양하게 조리하고, 손님을 접대하며, 시문을 즐기고, 검약하는 생활태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2025년 조상우의 연구에 따르면, 혼마가 긍정적으로 인식한 대상에는 조선의 문자생활, 음식문화, 산수, 과거제도, 접객 관습 등이 포함된다. 다만 이러한 긍정적 평가가 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3. 관리들의 부패와 민중의 빈곤
혼마가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대상 가운데 하나는 조선의 관료제도다.
그는 관리들이 민중에게 세금을 거두고 각종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며, 공권력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고 묘사한다.
이러한 관찰은 조선 후기 지방행정의 부패와 삼정문란을 연구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특히 동학농민운동의 배경이었던 지방관의 수탈과 민중의 불만을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혼마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남긴다.
그는 관리들의 부패를 조선의 정치제도뿐 아니라 조선인들의 기질과 도덕성 문제로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민족적 성격으로 환원하는 해석이다.
관리의 수탈은 조선인이라는 민족적 속성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집중, 행정적 책임성의 부족, 경제적 불평등 등 제도적 조건과 관련된다.
혼마의 관찰은 유용하지만 그의 원인 분석은 충분하지 않다.
4. 조선의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
혼마의 역사인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과 중국의 관계다.
그는 조선이 중국을 중화로 존중하고, 중국에 사대하며, 독자적인 정치적 자립심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태극기의 상징체계까지 중국의 음양사상에서 유래했다는 이유로 비판한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보여주었던 저항정신이 약화했다고 평가한다.
여기에는 일본 근대 국가주의의 특징이 나타난다. 혼마는 국가의 독립성을 군사력과 대외적 자율성이라는 기준에서 판단하고, 중국 중심의 전통적 외교질서를 열등한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조선의 사대관계는 근대적 식민지 지배와 동일하지 않았다. 조선은 중국과의 위계적 관계 속에서도 상당한 내정 자율성과 독자적인 제도·문화를 유지했다.
혼마는 이러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일본의 근대적 주권국가 모델을 보편적 기준으로 적용한다.
5. 조선인의 국민성에 대한 판단
혼마는 조선인의 행동을 일반화하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경험한 불친절, 불결함, 게으름, 기회주의 등을 조선 사회 전체의 특성처럼 서술한다.
문제는 몇몇 사례를 민족 전체의 본질로 확대하는 논리다.
예컨대 위생시설이 부족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생활습관은 경제적 조건과 도시 기반시설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혼마는 그것을 민족의 문화적 후진성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판단에는 메이지 일본의 문명관이 작용한다.
일본은 서구의 위생, 군사, 행정, 산업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아시아에서 자신을 문명국으로 위치시키기 시작했다.
혼마는 이 기준을 조선에 적용하여 일본의 우월성과 조선의 열등성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한 사회현상에 대한 실제 관찰과 제국주의적 편견이 뒤섞인다.
6. 일본의 조선 진출에 대한 시각
혼마의 기록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중국인의 세력관계다.
그는 경성에서 중국인의 경제적 활동이 일본인보다 강하다고 보고, 일본이 조선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관찰이 아니라 전략적 관심이다.
조선의 교통과 도로, 상업과 유통, 행정의 약점은 일본의 조선 진출 가능성을 평가하는 정보가 된다.
따라서 는 일본이 조선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조선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를 알려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청일전쟁 직전 일본의 대외 팽창운동이 민간의 조사활동, 언론, 정치단체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7. 일본 근대화와 조선 정체론
혼마의 조선관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반면 조선은 정체했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에는 일정한 역사적 근거가 있다.
1890년대 일본은 근대적인 군대, 산업, 학교, 통신과 교통시설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재정적 취약성, 정치적 갈등, 외세의 간섭 등으로 국가개혁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다고 해서 양국의 차이를 민족적 능력이나 문명의 우열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 정부의 개혁뿐 아니라 국제정세, 자본축적, 국가동원, 전쟁과 대외 팽창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다.
반면 조선의 개혁은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 등 외부 세력의 경쟁으로 제약받았다.
혼마는 양국의 발전 수준을 비교하지만, 이러한 국제정치적 불균형이 조선에 끼친 영향은 충분히 분석하지 않는다.
8. 과의 관계
는 오늘날의 논쟁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다.
혼마의 기록을 읽으면 조선 말기의 행정적 무능, 경제적 빈곤, 사회적 불평등 등이 상당히 심각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두 가지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
첫째, 조선 말기 국가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판단이다.
둘째, 그러한 문제 때문에 조선의 멸망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불가피했다는 판단이다.
첫 번째는 역사적 증거를 통해 검토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별개의 정치적·역사적 주장이다.
조선 내부에 구조적 위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또한 조선의 국가체제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조선 사회 전체의 개혁능력이 부재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독립협회 등의 활동은 조선 내부에서도 다양한 정치적 변화를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혼마의 글은 조선의 약점을 기록했지만, 조선인들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개한 노력까지 충분히 설명한 것은 아니다.
9. 이사벨라 버드와 야즈 쇼에이의 기록과 비교
혼마의 는 같은 시대의 외국인 견문기와 비교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은 조선 사회의 빈곤과 위생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지역과 환경에 따라 나타나는 차이를 관찰했다.
버드는 조선인의 생활태도가 반드시 고정된 민족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러시아령 지역에서 생활하는 한인들의 모습을 조선 국내의 상황과 비교했다.
한편 야즈 쇼에이(矢津昌永)의 은 지리학적·전략적 관심을 바탕으로 조선과 주변 지역을 관찰한 기록이다. 혼마와 야즈의 저작은 모두 1894년에 출판되었으며 일본인의 조선 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세 저자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저자 | 주요 관심 | 기록의 특징 |
|---|---|---|
혼마 규스케 | 사회풍속·국민성·정치적 약점 | 정탐과 국가주의적 판단 |
이사벨라 버드 | 생활환경·여행·사회제도 | 지역 간 비교와 경험적 관찰 |
야즈 쇼에이 | 지리·교통·국제정세 | 지리학적·전략적 조사 |
이들의 기록을 비교하면 19세기 말 조선의 모습뿐 아니라 관찰자들의 국적, 정치적 입장, 여행 목적이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10. 종합 평가: 는 무엇을 증언하는가
의 가치는 조선에 관한 객관적인 진실을 완전하게 전달한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가치는 두 가지 측면에 있다.
첫째, 1890년대 조선인의 일상생활에 관한 풍부한 단편적 기록이다.
당시의 음식, 도로, 상업, 여관, 위생, 행정 관행 등은 정치사 중심의 역사서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는 주제다. 혼마의 기록은 이러한 사회사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둘째, 일본의 제국주의적 조선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다.
혼마는 실제로 조선 사회의 여러 문제를 관찰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문제들을 일본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점에서 그의 기록은 사실과 편견이 결합된 사례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조선에 대한 부정적 기록을 모두 허위라고 부정하는 태도와, 그 기록을 모두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태도다. 양쪽 모두 역사적 분석을 방해한다.
2025년 조상우의 연구 역시 혼마의 조선 인식이 일방적으로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그의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구체적인 항목별로 분석했다.
이러한 접근이 중요하다. 실제 관찰, 전해 들은 이야기, 저자의 해석, 정치적 선입견을 분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 ] 를 읽으면서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 ]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 ]이다.
그의 기록은 조선 말기의 위기를 이해하는 자료인 동시에, 일본이 조선을 지배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해 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자료다.
바로 이 이중적 성격 때문에 는 조선의 사회사와 일본 제국주의의 지성사를 함께 연구할 때 의미 있는 역사적 문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 연구: 조상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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