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30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2005

일본산고 | 박경리 산문선 | 박경리 | 알라딘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유고 산문 | 박경리 산문선
박경리 (지은이)다산책방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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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격변하는 시대 속 한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대하소설 『토지』. 한국 문학사에 다시없을 걸작을 남긴 작가 박경리의 유고 산문 『일본산고』가 다산책방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일본산고』는 박경리가 『토지』를 완간한 이후 본격적인 일본론의 기획 아래 쓴 미발표 육필원고와 생전에 발표한 일본 관련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1926년생으로 식민지 체험 세대였던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세대가 사라지면 이러한 글을 쓸 사람이 없으리라며 일본이 두 번 다시 입 못 떼도록 다음 세대를 위한 일본론을 남기겠다는 사명감을 드러낸 바 있다.

2008년 그가 타계하면서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한 이 책은 고인의 유족이 유품 정리 중 원고를 발견, 이후 문화평론가 이승윤 교수 등과 함께 갈무리해 출간될 수 있었다. 이승윤 교수는 『토지』가 소설로 쓴 일본론이라면 『일본산고』는 실제적인 현재진행형의 일본론이라고 소개한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지식인 박경리가 일본의 반성 없는 태도, 줏대 없는 식자들이 일본의 시각에 동조하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뚜렷한 역사인식을 토대로 철저한 조사를 거쳐 쓴 『일본산고』는 우리 공동체가 비극적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가 남겨준 일종의 ‘일본 사용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일본산고』 출간에 부쳐 | “일본인에겐 예(禮)를 차리지 말라”

제1부 일본산고
1. 증오의 근원
2. 신국의 허상 I
3. 신국의 허상 II
4. 동경까마귀
5. 출구가 없는 것
6. 일본인들의 오해, 우리의 착각

제2부 “나는 반일 작가입니다”
1. 진실의 상자 못 여는 일본
2. 신들이 사는 나라
3. 미(美)의 관점
4. Q씨에게―신기루 같은 것일까
5. 다시 Q씨에게―망상의 끝

제3부 일본 역사학자와의 지상 논쟁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
―8·15에 일본 지식인이 쓰는 편지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
―한국통속민족주의론에 대한 반론

부록 생명력 없는 일본 문화
접기


책속에서


P. 16 요즘 젊은 세대는 일제와 우리의 내력을 관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험자로부터 전달되는 간접경험은 그런 만큼 관념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우리가 당해왔다는 것, 따라서 우리의 원한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고 의식 깊은 곳에 물려 있는 증오의 가시는 여간하여 뽑아내기 어렵다는, 이것이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들 공통된 감정이며 인식이다. 한데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접기
P. 26~27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 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 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 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 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고 분명한 것을 아니라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그 무서운 것이 차츰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인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접기
P. 58 나는 내 자신을 소개하기를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 두 사람은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왜 충격을 받을까? 전에도 그런 얘기는 했었고 일본인들은 가만히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깨달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반일을 당연하다고 본 그들은 이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과 나는 꽤 오랜 시간 얘기를 했다. 남경(南京, 난징)학살 사건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 그들의 안색은 변했고 실은 겁이 많은 것이 일본 사람 아니냐 했을 때는 당혹하는 것 같았다. 접기
P. 69 일본 전설에 우라시마라는 어부 얘기가 있다. 용궁에서 옥함 하나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고향에는 모두 낯선 사람뿐이요, 외로워진 그는 열지 말라는 당부를 어기고 바닷가에서 옥함을 여는 순간 백발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백발은 정확한 시간의 표상이다. 그러나 일본은 옥함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열어야 한다. 백발이 되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질서이며 진실이기 때문이다. 접기
P. 95 후일 일본론을 쓸 생각입니다마는 너무나 학생들은 일본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고 사회 자체도 일본의 정체에 무관심하며 또는 일본을 모범으로 생각하는 부류의 확대되는 양상을 보며 걱정을 한 나머지 나로서는 이나마도 성급하게 엉성하나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일본을 모른다는 것이 학생들의 잘못은 아닙니다마는 마지막 꼭 해두고 싶은 말은 결코 일본을 모델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접기
P. 157 그는 말했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 시절의 민족정신은 고귀하고 긴장되고 아름다웠다고. 한데 지금은 뭐냐, 그렇게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그 시절의 비극을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것으로 회상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것은 “천만의 말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재 반일(反日)하는 것이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반일하는 것이며, 다나카 씨 같은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반일하는 것이다. 접기
P. 189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 그린**
P. 192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없게 된다.˝ - 그린**
P. 193 끝으로 ˝나앉은 거지가 도신세 걱정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이 얘기는 일본의 경우일 수도, 우리의 경우일 수도 있다. - 그린**
P. 17 전국을 뒤흔들었던 성고문사건을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당시 투쟁했던 사람,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시민들, 그분들은 또 어떤 가슴으로 바라보았을까? 펜을 들고 사는 소위 작가라는 내 자신은? 한일합방을 늑대이빨에 찢기는 양의 비극으로 비유한다면 수많은 이 강산의 딸들이 일본 병사의 화장실 역할을 했던 일은 무엇으로 비유해야 하는지,
침묵하는 이 땅 남성들에게 묻고 싶고 만일 저 아우슈비츠(Auschwitz)의 참혹함보다는 낫다고 자위하는 리얼리스트가 있다면 우리는 인간임을 사양할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접기 -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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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경리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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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으로 등단, 이후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 『시장과 전장』(1964), 『파시』(1964~1965) 등 사회와 현실을 꿰뚫어보는 비판적 시각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을 시작했으며 26년 만인 1994년 8월 15일에 완성했다. 『토지』는 한말로부터 식민지 시대를 꿰뚫으며 민족사의 변전을 그리는 한국문학의 걸작으로, 이 소설을 통해 한국 문학사에 뚜... 더보기

수상 : 1958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박경리 문학수업 에디션)>,<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박경리 문학수업 에디션)>,<Q씨에게 (박경리 문학수업 에디션)> … 총 255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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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웨일폴>,<컬러의 감각>,<세이브하시겠습니까>등 총 524종
대표분야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12위 (브랜드 지수 398,502점), 과학소설(SF) 14위 (브랜드 지수 47,237점), 에세이 32위 (브랜드 지수 188,99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입니다”
『토지』 이후 작가 박경리가 일본의 민낯을
뼛속까지 파헤친 또 하나의 일본론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격변하는 시대 속 한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대하소설 『토지』. 한국 문학사에 다시없을 걸작을 남긴 작가 박경리의 유고 산문 『일본산고』가 다산책방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일본산고』는 박경리가 『토지』를 완간한 이후 본격적인 일본론의 기획 아래 쓴 미발표 육필원고와 생전에 발표한 일본 관련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1926년생으로 식민지 체험 세대였던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세대가 사라지면 이러한 글을 쓸 사람이 없으리라며 일본이 두 번 다시 입 못 떼도록 다음 세대를 위한 일본론을 남기겠다는 사명감을 드러낸 바 있다.
2008년 그가 타계하면서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한 이 책은 고인의 유족이 유품 정리 중 원고를 발견, 이후 문화평론가 이승윤 교수 등과 함께 갈무리해 출간될 수 있었다. 이승윤 교수는 『토지』가 소설로 쓴 일본론이라면 『일본산고』는 실제적인 현재진행형의 일본론이라고 소개한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지식인 박경리가 일본의 반성 없는 태도, 줏대 없는 식자들이 일본의 시각에 동조하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뚜렷한 역사인식을 토대로 철저한 조사를 거쳐 쓴 『일본산고』는 우리 공동체가 비극적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그가 남겨준 일종의 ‘일본 사용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파괴적인 문화를 낳은 일본 체제와
과거를 망각하는 세태에 대한 통찰이 담긴 필독서

박경리에게 일본은 아픈 기억이자 굴레였으며, 한편으로 분석과 극복의 대상이기도 했다. 『토지』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의 부침과 민족 담론의 양상, 일본의 식민 지배 전략과 한일 문화 비교론, 지식인들의 숱한 논쟁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2013년 『일본산고』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다”라는 자기소개와 함께 일본과 일본인, 일본 문화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들이 담긴 내용에 한국 사회에는 뜨거운 반향이 일어났다. 일각에서는 해방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 작가의 반일 주장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의 매서운 경고처럼 일본의 역사 왜곡과 몰지각한 국내 인사들이 이에 동조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작가의 발언은 오늘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일본 역사서 『고사기』와 『일본서기』 등을 분석적으로 비판하고 해체해 신국(神國)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본과 틀이 없어진 일본의 실체를 파헤치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허구성과 논리적 비약, 왜곡에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가 일본을 향해 남기는 발언은 날카롭지만, 그 핵심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일본 비판과 한일 두 나라의 이해와 갈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에 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경리 15주기 추모 기획
#다산책방의 <박경리 컬렉션> 세 번째 권 출간
다산책방에서는 박경리의 타계 15주기를 맞은 올해에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그의 방대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새롭게 출간한다. 소설, 산문, 시집들을 아우르는 이번 기획에는 오랫동안 유실되었던 미발표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지난 4월 창작동화 『돌아온 고양이』를 17년 만에 복간한 것을 시작으로, 작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출간했으며, 다가오는 6월에는 기념비적 대표작 『토지』(전 20권)를 새 시대의 감각에 맞춰 선보일 예정이다.
박경리 컬렉션의 세 번째 출간작이자 10년 만에 개정된 『일본산고』는 작가의 육필원고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이전 판본의 오류들을 바로잡았고, 세월이 흐르며 낯설어진 표현들에는 보충 설명을 달았다. 현대의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다듬으면서도 작가의 고유한 표현과 방언, 시대를 드러내는 단어들은 그대로 두어 작가의 목소리를 오롯이 전하고자 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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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 일본 산고 ]]] 손에 쥐는 순간, 끝장을 보게되는 책들이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특히 무협지가 그랬다. 대입을 나름 잘 끝내고, 지금처럼 추운 겨울 날, 방안에 틀어박혀서는 그동안 읽고 싶었던 무협지를 빌려와 쌓아 놓고 읽었다. 밥때도 잊었고, 잠도 잊었다. 그러기를 한 달, 드디어 코피를... 더보기
차*랑 2026-01-27 공감 (16) 댓글 (4)



나는 한일 병탄에 이르는 조선의 역사,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 일제 부역에 나섰던 족속들의 매국의 행보를 다시금 열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숨어있던 그것들의 종자들이 마치 제 세상을 만난 양 기어 나와 대가리를 빳빳이 쳐들고 국민과 국기(國基)를 모욕, 부정하는 사태에 직면하리라고는 결코 예기치 못했다. 故 박경리선생의 『日本散考』를 다시금 읽으며, 주... 더보기
비*식 2024-08-22 공감 (13) 댓글 (0)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박경리 선생이 문득 그리워진다. 어영부영 자신의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가는 무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한숨마저 아까워진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사이지만 이렇게 세월이 거꾸로 흐르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는데... 단호한 반일의 목소리를 이제는 누가 이어 받을까...암울하다. ... 더보기
na** 2023-09-30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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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가 읽어봐야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ha***0 2023-05-17 공감 (5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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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8.7인가 했더니 별하나가 평균을 깍아 먹었군요.
* 2023-05-19 공감 (49)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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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되었었는데 다시 나왔네요. 소장 추천합니다.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mo***a 2023-05-15 공감 (4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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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국인이라면 누구나 필독해야 하는 책 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유려한 문체가 놀랍습니다.
ju*** 2023-05-15 공감 (3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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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시의적절한 복간
di*********d 2023-05-17 공감 (3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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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일 뿐 현재와 무관하다는 인식에 대한 철저한 경계. 삶은 고뇌이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하는 자세. 문명을 우상화하고 자각 없는 개발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 토지를 읽은 후 이 책을 읽는다면 더 도움이 될 듯.
거리*** 2023-08-15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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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다.>
보* 2023-06-01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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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뛰어난 통찰에 경의를 표헙니다
pi***3 2023-05-23 공감 (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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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같은 때 박경리 작가같은 분들의 말씀이 정말 절실했습니다 초판이 절판되어 아쉬웠는데 개정판이 새로 나와 정말 반가웠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지식* ** 2023-06-01 공감 (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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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로서 냉정한 시각을 보여주는 책.
Ha*****1 2023-05-21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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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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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입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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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c 2023-08-15 공감(2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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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일본산고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 글의 일부는 이미 어디선가 본 듯도 싶고 해서 굳이 읽어야 하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평점이 이상해서 보니 읽은 것 같지도 않은 별점 일점 테러를 보게되었다.

여성주의 책들이나 사회문제에 관련한 책들에서 워낙 딴지같은 별점 테러를 이미 여러번 봐왔지만, 이 책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 걸 보니, 이래서 아는 이야기라도 굳이 사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너절한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글에 대해 귀중한 시간을 쪼개가며 반박따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독자 중 하나라도 그런 글에 경도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박경리 작가의 글들이다.

그리고 아직도 끝내지 못한 토지 완독을 하긴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도.

- 한 사람 책임지는 자 없고 벌받은 자 없는 그들에게 푼돈 얻어낸, 청풍당상의 그야말로 더렵혀지지 않았던 양반들, 차라리 그것은 희극이다. 혹자는 말하리라. 그 푼돈도 우리 발전의 밑천이 되었노라고. 그러나 자로는 잴 수 없고 저울로도 달 수 없는 가치도 있다. 그 가치로 인하여 우리는 인간인 것이다. 아무리 즉물적 세태라 해도 우리는 그 이상의 가치를 꿈꾸며 산다. 물질도 있어야 하고 계산도 해야 하지만 삶의 존귀함도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 문화의 본질, 인간다운 연유도 거기 있으니 말이다. - 17

- 식민지 시대 11년간을 서울에서 살았고 진짜 콜론(신민자)의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다나카 씨는 그 시절에 대한 짙은 향수를 토로하고 있는데, 특히 독립운동가, 그 시대의 독립정신에 대해서는 감탄과 외경의 염까지 느꼈다고 했는데, 일본 특유의 그런 감상은 상당히 메스껍다.
그는 말했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 시절의 민족정신은 고귀하고 긴장되고 아름다웠다고. 한데 지금은 뭐냐, 그렇게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그 시절의 비극을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것으로 회상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것은 “천만의 말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재 반일 하는 것이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반일 하는 것이며, 다나카 씨 같은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반일하는 것이다. - 157

2023. may.

#일본산고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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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 2023-05-25 공감(2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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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짓는 것은 매국행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박경리 선생이 문득 그리워진다. 어영부영 자신의 생각이 있는지조차 의심가는 무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한숨마저 아까워진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사이지만 이렇게 세월이 거꾸로 흐르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는데... 단호한 반일의 목소리를 이제는 누가 이어 받을까...암울하다.




이 책의 본류는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말씀 두 가지.




" 강원도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가장 혜택받은 곳이 바로 강원도입니다.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해지는 이때에 강원도의 재산은 바로 자연입니다. 무엇이든 멀리 내다봐야 합니다. 나만 사는 게 아닙니다. 자손, 후손들도 생각해야 되지요. 그러나 다들 너무 당장의 눈앞만 내다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강원도에 올 때는 강원도가 한국의 마지막 보루라 생각했습니다. 자연을 지키는 게 곧 강원도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지키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골프장을 보세요. 저는 골프장 짓는 것이 매국행위라고 말합니다. 생명보존 위해 골프를 안 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이 좁은 땅에서 굳이 골프를 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특히 강원도에 골프장 짓는 거 절대 반대합니다. 기골이 좋은 도지사가 와서 꽉 막았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은 나중에 반드시 이름이 남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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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2023-09-30 공감(1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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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선생의 일본론, 일본산고




[[[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 일본 산고 ]]]




손에 쥐는 순간, 끝장을 보게되는 책들이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특히 무협지가 그랬다. 대입을 나름 잘 끝내고, 지금처럼 추운 겨울 날, 방안에 틀어박혀서는 그동안 읽고 싶었던 무협지를 빌려와 쌓아 놓고 읽었다. 밥때도 잊었고, 잠도 잊었다. 그러기를 한 달, 드디어 코피를 쏟으며 앓아 누웠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께서 정비석 삼국지를 읽으시며 코피를 쏟으실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나에게는 무협지못지 않게 끝장을 보게되는 책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일본산고'이다 (이렇게 쎄게 나갈 수 있는 것은 사실 이 책이 두껍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ㅠ). '일본 산고'가 무협지와 다른 하나가 있다면 하염없이 나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한다는 것이다. 무협지는 내게 카타르시스를 주며 나를 위로하고는 끝을 맺는다.
'일본산고'는 피를 거꾸로 솟게하지만 탈출구를 제공하지 않는다. 마치 박경리선생이 제시하는 탈출구 없는 일본인의 의식구조처럼 말이다. 성질대로 읽다가는 병이 날것만 같다. 탈출구가 없는 문화의식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후에 괴기함으로 변태할 수 있다는 것을 일본산고를 통해 알게되었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사랑이든 극단으로 치밀고 간 끝에서 살인 혹은 죽음이나 할복으로 끝을 맺으려는 일본인들의 의식구조에는 탈출구가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문화 의식의 탈출구는 매우 중요한 비가시성 사회 문화적 장치인 것인데 말이다.




널리 알려진 중국 고사, 천만매린(千萬買隣)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남북조시대의 송계아라는 사람이 여승진이라는 인물의 백만금(百萬金)짜리 옆 집을 천백만금(千百만金)을 주고 사들였다. 이에 깜짝놀란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물었다. 송계아는, "백만금은 집 값이고, 천만금은 당신을 이웃으로 두는 값입니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여 백금매택 천만매린(百金買宅 千萬買隣)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논어 이인(里仁)에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다.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라는 뜻이다. (요즘 일본이 외로운듯 보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모두 이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겠다. 그리하여 거필택린(居必擇隣)이라는 말이 있게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지정학은 택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불가항력인 것인데, 재수 없게도 대한민국은 하필 일본과도 같은 고약한 나라를 이웃으로 두게 되었다. 박경리선생의 한탄에 너무나도 동감하면서 일본산고를 손에 들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보다 강자였던 일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약한 자를 짖밟지, 강한 자를 짖밟냐? 약한 자한테서 빼앗지, 강한자한테서 빼앗냐고? 세상이 생긴 이래 약자는 강자한테 짖밟히는거야! 천년 전에도! 천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한테 빼앗기는거라고!!!" 이 말은 사실 드라마에서 극중 길태미가 죽기 직전에 큰 소리로 외친 말이다.
길태미의 이 대사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그만 나의 귀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당시 나는 생각했다, '길태미, 그건 인간이 아닌, 다시말해 문화, 사상, 철학, 보편적 가치등이 존재하지 않는 짐승들의 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박경리 선생은 이런 경우를 두고, "자(尺)로는 잴수 없고 저울로도 달 수 없는 가치도 있다. 그 가치로 인하여 우리는 인간인 것이다 (p.17)" 라고 너무나도 우아하고 명철하게 표현 했다. 이는 나의 감탄을 자아냈고, 나는 '와~~ 다른데가서 써먹어야지' 생각했다. 극중의 길태미는 인간만이 가지는 그 가치, 인간만이 가지는 삶의 존귀함을 모르고 있는 미개인, 즉 야만인이었다. 마치 일본이 그러했고 지금도 그런 것 처럼 말이다.




길태미가 극중에서 했던 이 말은 일본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 서로 잘 부합함을 알 수 있다. 존왕양이를 주장했던 요시다 쇼인은 "강대국(미국)이 약소국(일본)을 정복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양의 기술과 문물을 배워 서양과 대등해지고, 그들에게 빼앗긴 것은 조선이나 만주에서 되찾아오면 된다" 라고 주장했다. (조선과 만주에 돈 맡겨놨냐고?)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은 바로 몇년 전 피습으로 사망한 아베의 고조 할아버지, 이토 히로부미, 만주 전범 기시 노부스케, 강점기 일제 총독들 대부분이다. 물론 아베는 그들의 후계였고, 현재의 일본 총리 다카이치도 그 맥을 잇고 있는 극우이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늘 일제 탐욕의 대상이었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일제 강점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계보가 현재도 일본 내각을 지배하고 있고 더욱더 극우화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1926년생인 박경리선생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스무살이 될때까지 일제강점기를 고스란히 체험했다. 하여 어쩌면 박선생의 이 글은 어떤이들에게 가해자 피해자의 논리 구도로 몰아갈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또 이 땅에는 박경리선생의 생각을 그런구도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친일하는 냥반들)이 다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박경리 선생이 객관성을 가진 제 3자의 입장은 결코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박경리 선생이 행여 '나는 객관적으로 말하고 있는거에요!' 라고 이 책에 썼다 한들, 나는 그 말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것 같지도 않다. 내가 박경리 선생이었다 해도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으니 말이다.




도올 김용옥선생이 박경리선생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김선생은 박경리선생의 일본에 대한 돌직구에 일제를 격은 울분과 회한 때문에 일본 문명을 제대로 파악하려하지 않는 감정적 반일주의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화를 마치고난 도올은 박경리선생을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대문호의 분노' 라고 평가했다. 도쿄 대학에서 철학 석사를 마친 도올선생은 누구 못지 않은 일본 체험 및 학문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일본을 잘 알고있는 도올이 볼때, 박경리선생의 논리는 일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일본 문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으로 충만해있었다. 그 결과 도올은 박경리 선생의 일본에 대한 견해는 박경리 선생의 깊은 학문과 일본 문화에 대한 해박한 근거들의 조합에서 오는 통찰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짐승이 아닌 다음에야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보편적인 가치는 언제나 어디서나 시공을 넘어 존재한다. 박경리선생이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작가로서의 자세는 나보다 백배 천배는 더 객관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여 나는 이 글이 일제 강점기의 일본을 통해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가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하는 바이다. 반일 작가로서 박경리 선생의 이성과 감성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일본에 대해서 늘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어려서부터 그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런 일본인들은 타국에는 그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폐를, 아니 죄를 지어왔다. 그리고 반성과 사과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정합(不整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일본인들의 모순은 늘 나의 의문일 수 밖에 없었다. 박경리 선생은 나의 의문을 이 책에서 정리해주었다. 박경리 선생에 따르면 일본은 사상, 철학, 도덕이 부재한 나라라는 것이다. 일 예로서 전쟁 당시 일본은 거점이 무너질 경우 비전투요원까지 자살을 요구했는데, 자살하지 못하는 모친을 아들이 목졸라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과연 사상, 철학, 도덕이 존재하고 있는 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던가? 제 아무리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한들 자식이 자신의 손으로 부모를 목졸라 죽음에 이르도록 한단 말인가!
일본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열한 문화를 가진 나라인 것이다. 그들에게 부정합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들의 이율 배반을 철학으로 해석할 수있는 방법이 있겠는가?




일본은 조선을 통해 불교와 유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의 문화의식 구조 속에서는 불교의 자비와 유학의 사단(四端)중 어느 하라라도 찾아볼 길이 없다. 평소의 궁금증이었던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산고는 그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상과 철학이 부재한 일본인들의 문학과 미학(美學)을 통해 드러내는 일본인들의 의식구조를 파헤쳐 그 이유를 알수 있게한다. 박경리 선생의 통찰은 단순한 반일 작가로서의 그것이 아닌 이유이다. 지성이 있고 가치를 판단할 지식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파시스트나 극우가 아닌 이상 박경리 선생의 견해에 공감하는 독자는 대한민국 국민만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따라다니는 한 가지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과연 일본의 특수성은 계속될 수 있을까?
일본인들이 가진 정치, 사회, 문화에 걸친 의식구조의 괴기스런 특수성이 집단으로 표출될 때, 인류가 지니는 보편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철저히 훼손시켜 왔다. 과연 일본의 의식 구조가 가지는 이러한 특수성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유지될 수 없다면 끝내는 소멸하고 말것이다.
어쩌면 이는 의문이라기보다는 일본인들에게 보내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일본은 스스로 빠진 함정에서 벗어나 인류 보편성으로의 회귀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인류가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으로의 회귀만이 인류의 공감을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일 것이니 말이다.




모든 문장 하나 하나들이 귀중하고 가슴에 사무치지만 그중 몇 문장을 따로이 소개해본다. 다음은, 이 책이 단순한 반일이 아니라 통찰에 의한 '일.본.론.'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문장들이다.




[[[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 p.76
(혐일해도 시원찮은 판에 혐한은 이렇게 성장해가는 것이다. 이는 극우들의 양식이 되고 있다)




[[[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실험과 규명을 철저히 거쳤으며 이미 신라 시대에 천문학을 시도했던 만큼 사상 면에서는 이미 열려져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일본으로 건너간 불교ㆍ유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체제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간단하게 말을 하자면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 기독교의 사랑이 칼의 체제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나요? ]]] p.87


(일본의 정신이 왜 인간의 보편성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지적한 글일 것이다)




[[[ 피와 칼의 역사, 폐쇄되고 고립된 공간에서 간신히 수혈된 해외 문화는 그나마 만세일계라는 체제에 맞게 변조되어 종교든 철학이든 또 사상이 진실의 추구라는 방향을 잡지 못했고 황당한 신국사상을 만들어냈는데, ]]] p.111
(인간 생명의 본질적인 탐구가 결여된 일본의 야만성을 보여준 글이지 싶다)




이 책의 좋은 점 :::: 종이장의 두께가 있어 뒷쪽의 잉크를 투영시키지 않아 좋다. 내가 읽는 명리고전들은 대부분 뒷 쪽의 글씨들이 비추어보여 별로였다.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쪽을 넘길 때, 마치 두 쪽을 넘어가는 속도감은 덤이다. 출판 관계자의 탁월한 선택이다.




출판 관계자분께 당부의 말씀 :::: 하드 커버의 이 책은 크기도 약간 작아 아주 아담하고 깜찍하며 정말 이쁜 책이다. 책의 커버 색깔과 디자인도 아주 마음에 든다. 흠잡을데 하나 없는 고퀄이다. 그런데 하드 커버의 작은 책이 가진 사소한 단점을 하나 가진 책이기도 하다. 차 한잔 마시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읽던 쪽을 되찾기가 아주 어렵다. 다시 돌아가 또 읽고 싶은 부분도 있다. 그리고 읽던 부분을 찾으려면 한참을 또 찾아야 한다. 물론 독자들이 책갈피를 쓰면 된다. 나아가 출판관계자들께서도 이 점을 고려해주셔도 좋다는 말씀 드린다. 책의 특성상 여행을 갈때도 꽤나 좋은 책이다. 깡뚱한 책이니 말이다.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금새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이점 출판 관계자분들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오니, 다음 판본 때는 갈피끈 부탁드립니다 출판 관계자님,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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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랑 2026-01-27 공감(16)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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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嫌韓), 종일(從日)부역종자들의 망상의 근원



나는 한일 병탄에 이르는 조선의 역사,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 일제 부역에 나섰던 족속들의 매국의 행보를 다시금 열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숨어있던 그것들의 종자들이 마치 제 세상을 만난 양 기어 나와 대가리를 빳빳이 쳐들고 국민과 국기(國基)를 모욕, 부정하는 사태에 직면하리라고는 결코 예기치 못했다. 故 박경리선생의 『日本散考』를 다시금 읽으며, 주구가 되어 일제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는 종자들에 뿌리내린 그 저열성의 근본을 확인한다. 혹여 나와 우리들이 잊고 있는 역사 인식과 저것들에 도사린 역사 지우기의 반민족적 행태의 근인을 보다 명료하게 정리코자 읽는 것이다.



이 책의 주요 산문원고들은 일제강점기를 겪은 저자가 일본의 반성 없는 태도에 편승하여 마치 자신들만은 메타적이고 세계시민의 시선을 가진 듯 가식과 위선들을 떨어대며 일본의 시각에 동조하는 종자들의 양태를 목도하면서, 뚜렷한 역사인식을 토대로 철저한 조사를 거쳐 쓴 글들이다. 아마 선생이 생존해 오늘의 이 꼴을 보신다면 우리 공동체가 비극적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국민대중에 경계의 목적으로 남겨준 일종의 ‘일본 사용 설명서’이자, ‘종일(從日) 부역 족속들에 대한 엄중한 자성의 요구서’이기도 한 이 통분의 기록 앞에서 우매한 동족들에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셨을 것만 같다.



종일부역 종자들은 “그 시절(식민지배기간)이 좋았다고,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먹고사는 걱정이 없어졌으며, 일본인이 되어 자랑스러웠다고, 그렇게 종일 종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다고? “‘천만의 말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재 반일(反日)하는 것이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반일하는 것이며, 오늘과 같은 종일부역자 종자들과 반성없는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반일하는 것이다.”




일제를 위해 부역하고 푼돈을 얻어 쓰며, 그야말로 청풍당상(淸風堂上)에 앉아 나라 팔아먹고 호가호식(豪家好食)하던 양반 족속들, 그리고 그 종자들에게는 일제의 압제가 오히려 그리움이고 아름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말한다. 그 푼돈도 이 나라 발전의 밑천이 되었노라고. 일제에 항거하는 민중들을 빨갱이라고 낙인찍어 지배권력이 알아서 처리해주니 동족을 노예처럼 굴리며 주머니를 채우는데 더없이 우아한 환경이었음을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이것들이 오늘 광복절을 부정하고, 민족의 고유 영토를 분쟁화하며, 독립 투쟁에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빨갱이라 왜곡하여 테러리스트라 부르기에 이르렀다. 민족의 정신을 깡그리 뒤엎어 한 줌도 되지 않는 더러운 종자무리들이 역사와 국가 정체성을 전복하려 하고 있다. 가히 반역의 무리들이며, 반민족 행위자들이다. 급기야 일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며 국민을 향해 존재하지도 않는 열등감, 패배의식이라는 단어를 내밀며 국민의 역사정신에 훈계까지 해대기에 이르렀다. 수치심도, 역사 인식도, 민족 정체성도, 그 어느 하나 갖추지 못한 가장 저열한 것들이 뚫린 주둥아리라고 똥 내지르듯 배설하고 있다. 그 악취가 온 나라의 대기를 더럽히고 있다. 감정적으로 들리는가? 그래 감정의 문제를 어찌 배제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감정에는 논리적이고 역사적 사실이라는 근거가 있다.



박경리 선생의 이 모음 글들은 종일 부역배들이 숭배하는 일본인, 일본의 정신이라는 그 텅 비고 공허한 망상과 이 빈 정신에 들어 찬 잔인성과 왜곡된 죽음의 미화, 역사적 무의식에 켜켜이 쌓인 반도와 대륙에 대한 열등감과 침탈, 섬을 탈출하려는 확장에 대한 야욕의 역사를 관류하며, 한국의 지식인이라 자처하며 종일하는 밀정들에 대한 경고와 민중적 경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 책은 일본과 일본인의 실체에 대한 철저한 통찰을 주요 논제로 하고 있다. 이 통찰을 통해 이들의 밀정 노릇을 하는 이 땅의 종일부역 종자들의 허상과 역사 왜곡, 부정의 망상을 꾸짖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일본의 반성 없음을 비난하는 한국인의 반복되는 요구가 일본인을 피로하게 하고, 그렇게 강제된 반성의 언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일본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괴이한 말아닌 오물을 쏟아내는 종자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국인의 의식 깊은 곳의 원한은 열등감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웃기는 개수작이다. 일제에 강점된 식민 36년은 일본에게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해왔다는 사실이며, 때문에 그 원한이 일방적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 뿐 아니라, 이 증오의 가시는 자연스레 뽑아지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다.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현상은 외려 일본인과 이들 종일 부역자들이 이러한 한국인의 원한과 증오보다 더 극악한 원한을 한국인에게 품고 있는 현상이다.



나는 40년 전에 일본의 도쿄에 첫 걸음을 했으며, 그 때 도쿄역 건너편 야에수(八重洲)지구에 있는 마루젠(丸善)서점에 가게 되었었다. 이러한 행태는 업무 차 방문 때마다 하는 나의 루틴이었으며 이는 40여년간 계속되었다. 들어서자 제일 먼저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대규모로 진열된 혐한(嫌韓)서적들이다. 한국과 한국인을 조롱하고 폄훼하며 비난하기 위해 그 많은 종류의 책들이 써지고 있으며,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것은 가히 아연실색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오늘까지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튀르키예에 한국 건설업체가 건설한 해양 현수교가 완공되자 일본 공영방송에서는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는 조롱과 함께 저주를 퍼부었다. 일본인들의 신체에 켜켜이 쌓여온 질투의 심술궂은 사촌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타인의 고통에서 기쁨을 느끼는 던적스럽기 그지없는 저열함 그것일 것이다. 그리곤 최근 튀르키예 정부가 해당 교량의 수려함과 안전성에 감사의 말을 표시했음이 해외 매스컴을 장식하자 근거 없는 원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집요한 한국에 대한 원한의 근본은 무엇일까? 이는 역사적 열등감과 정복자로서의 오만함의 발로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저자는 일본 사회 전반에 걸쳐 오랜 세월 선험적인 것, 즉 무의식 속에 깊이 박힌 한국이 자신들의 원류임을 부정하는 광적 부인의식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역사의 원류는 어떻게 해석되든 좋다. 이미 터럭만큼도 동질성이 없는 마당에 이것이 무엇이 문제가 될까. 이보다 근저를 차지하고 있는 오늘날 신도(神道)라는 그들의 정신이라는 것의 생명없이 텅 빈 도구화적 속성과 아무런 본질도 없이 기만과 닫힌 정신세계이다. 이들의 건국신화라는 『고사기』에 기록된 구전의 이야기는 전체가 날조와 삭제, 표절로 미화된 짜깁기임을 입증하고, 후일 한일합방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방법으로 무수한 땜질로 역사를 수정, 왜곡하였음은 이의가 없는 정설이다.




이들의 창조신화에는 현실의 권력 상속에 관한 실질 문제이외에는 그 어떠한 약속이나 계율, 정신적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만세일계의 위력만이 넘실대며 그것을 신국(神國)이라 포장한다.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단지 기만성만이 가득한 텅 빈 상자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 신국이라는 상자에는 어떤 본질 없이 그때그때 써 먹을 수 있는 도구만이 담기고, 사상적 내용이 없어 실체와 본질에 대해 무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일본인들이 미화하고 자랑하는 자기네 정신의 표본이라 하는 ‘하라키리(切腹)’는 생선 배 갈라 내장 꺼내듯, 복부이기에 절명까지 시간이 걸리고 배 가른 사람의 목을 쳐주는 가이쿠샤라는 존재에 의해 두 번의 죽음을 맞는다.(여기에만 두 개의 피 묻은 칼이 필수가 된다) 이 추악하고 야만적인 자살방법에 일본인들은 비단을 휘감아 치장하고 미화한다. “자기 고통의 하수인이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게 하는 잔인무도한 의식일 뿐,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복합된” 광적 잔혹함이다. 이것을 대단한 죽음의 철학인양 미화된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체념의 타의성만이 넘실댈 뿐이다. 일본인의 의식 속에는 오직 도구성이라는 기회주의적 수단과 민족정신이란 것 없이 공허한 빈 상자만이 있다.



그 상자는 항시 남의 것을 베껴 만든 조악함, 그것을 경제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 자본주의에 영합하는 데는 긴요할 것이지만 의식은 야만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장 귀중한 것인 생명의 지엄함과 창조의 정신이 없다. 텅빈 공허한 정신과 잔인하고 어두운 죽음의 세계, 그 수동성과 무감증만이 있는 일본의 망상을 숭배하며 종일 부역배들의 종자들은 말한다. 삶의 터전을 잃고 국토가 유린당하며 민족이 살육당하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던 식민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이 마땅한 권리 쟁취를 하기 위해 민족주의와 반일사상을 간직하는 것이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떨치지 못한 저열성이라고. 이런 무식한 개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들의 민족주의와 반일 사상은 몇 푼의 물질 피해가 아니라 환산이 불가능한 민족적 정기와 민중의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상처이다. 마치 평등의 세계주의자인 양 한국인의 민족주의와 반일을 조롱 비난하며 이상주의자처럼 지적 허영을 떨어댄다. 강자 편에서, 가해자 편에 서서 양심을 비판하는 것은 피해자의 불이익을 바라보지 않는 외눈박이의 사시(斜視)이며, 허구이자 망상일 뿐이다. 일본인, 일본은 단 한 차례도 진실어린 반성도 사죄를 한 적이 없다, 고작 통분에 공감한다느니, 과거사의 불편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느니 하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뻔뻔스레 빠져나갈 뿐 아니라 여전히 한국인과 한국의 민족주의와 반일정신을 조롱, 폄훼하며 나아가 한국의 자랑을 자신들의 피해로 간주하며 못 견뎌한다.



일본의 극우를 대표하는 독재 정당인 자민당은 “도대체 마음의 문제를 외교 레벨에서 사죄로 풀 수 있는 것인가”라고 사죄의 무의미성을, 불필요성을 주장한다. 지금 이 땅의 종일 부역배 종자들이 따라 하는 말이 바로 이 터무니없는 말이다. 일본인과 일본은 사죄할 용기조차 없는 족속들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 또한 그까짓 사죄를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누가 모르겠는가! 방자하고 양심없는 시정잡배나 하는 소리를 일본을 대변해 지껄이는 종일 종자들의 이치에 닿지도 않고 천박하기 그지없는 언어 오용에 이처럼 시시콜콜 따지고 입증해야 하는 오늘의 상황이 서글픈 생각조차 든다.



지금 반일의 대중화와 대중의 민족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외세와 불의한 매국노들이 판칠 때면 항상 부녀자들과 승려들, 힘없는 백성이 일어나 항쟁했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는 선생의 통찰에 공감한다. 일본이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는 때 우리는 비로소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식민사관에 물들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전복하려는 종일 부역 종자들이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횡행한 적이 없을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일본인에게 예(禮)를 차리지 말라!”고 했으나, 이를 수정해서 ‘종일 부역배 종자들인 일본의 밀정들과 일본인에게는 예를 차리지 말라’ 고 해야 할 것 같다. 한 가지 지적하고 맺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글을 선별 편집한 문학평론가 이승윤은 이 문장을 “도발적 발언”이라 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심히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를 도발한다는 것인가? 일본을 도발한다고? 종일 부역배들에게 도발적이란 말일 텐데, 그것들에게 도발할 것이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선생이 한국의 동족들인 민중에게 경계삼아 하는 말인데 어떻게 도발이란 말이 가능한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 책은 작금 한국 사회의 어지럽혀진 역사의 부정과 전복 사태를 냉철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줄 터이다. 나도 민족주의와 반일을 내던지고 싶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지 않으니 너무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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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식 2024-08-22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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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故 박경리 선생의 일본론

소설가의 산문을 읽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해 일독했습니다.

생전 박경리 선생께서 쓰셨던 글을 모은 산문집인데 출처와 시간대를 보면 대체로 1990년대초중반에 쓰인 글들입니다.

작가의 의견이 들어간 편집이 아니고 잡지에 쓴글을 모은 책이기 때문에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이꽤 많습니다.

이 대작가는 대표작 ‘토지’를 쓰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많은 산문은 남기지 않은 걸로 추정합니다.

책에서 작가 자신이 밝혔듯이 일제강점기 20여년을 직접 살아오신 분이라 작가 자신이 증언하는 일제강점기에 관한 글을 더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가의 대작 ‘토지’는 작가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1945년까지를 시대배경으로 하고 있고, 땅이 아닌 토지를 중심으로 일제시대 조선의 사회경제사를 소설로서 제시하고 있다고 작가가 직접 소개했습니다.

따라서 작가가 일제시대 사회경제에 대해 많은 책을 읽으신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를 온전히 일제에서 보낸분이라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일본은 변화하는 세계에서 변하지 않는 세계로 보고 있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일본황실의 만세일계( 万世一系) 주장이고 천황을 현신인( 現人神)으로 여기는 신도(神道)때문이라고 봤습니다 (p69).

변화하는 세상을 어떻게 힌 혈통이 계속 이어올 수 있으며 태어나서 죽는 사람이 어떻게 신이 될수 있은가? 저자는 일본이 신도에 기초에 이렇듯 만사를 거짓으로 꾸미기 때문엡 일본에 철학과 예술 그리고 지식인이 생길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런 허무함때문에 탐미주의나 그로테스크한 괴기소설 등이 발전했다고 보고, 수많은 소설가들이 자살한 경우도 오직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으로 봤습니다.

작가는 일본에 불교가 들어가든 유교가 들어가든 모두 신도의 보충역할밖에 못하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고 했습니다.

현재도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수많은 교회양식의 건물에서 서양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지만 신랑도 신부도 기독교 신자가 아니며 심지어 일본에 사는 서양인들이 서양신부를 ‘연기’한가고 합니다.

실체를 배우지 않고 단지 겉모습만 모방하는 일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되고 위에서 작가가 일본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는 또 다른 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은 아직도 메이지 유신의 주축인 조슈번(
長州藩) 의 주역 후예들이 나라를 통치는 겉모습만 민주주의인 나라로 봅니다.

천황과 일본국회의 관계는 영국의 입헌군주제와 같지 않습니다. 그냥 흉내만 낸거죠. 제가 아는 한 국회의원직을 3대씩 대를 이어가며 하는 나라도 일본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일본은 총리도 대를 이어서 하지 않나요?

겉모습만 모방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그들의 정치체제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대로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한 정당이 50년씩 장기집권하지는 않습니다.


170여쪽밖에 안되는 작은 책이니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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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m 2024-11-16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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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작가의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2005)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일본산고 요약 및 평론

1. 작품 개요 및 저술 배경

<일본산고>는 소설가 박경리가 생전에 일본을 관찰하고 비판한 시각을 집대성한 산문집이다. 작가는 1990년 일본 유수의 월간지 <문예춘추>에 게재된 초대장을 계기로 일본 문화의 기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2005년 단행본 출간 당시에는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일본의 우경화 행보가 극에 달해 있었다. 박경리는 민족주의적 적개심을 표출하는 데 머물지 않고, 문학적 통찰과 역사철학적 안목으로 일본 문화의 심연과 집단 심리를 해부했다.

2. 핵심 내용 요약

사면이 바다로 막힌 고립과 불안의 심리

박경리는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규정하는 첫 번째 조건으로 지리적 환경을 지목한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도(孤島)에서 빈번한 지진과 화산 폭발을 겪어온 민족적 경험은 만성적인 불안과 폐쇄성을 낳았다. 이러한 환경적 공포는 현실 극복을 위한 내면적 성찰 대신, 힘에 대한 맹종과 침략적 대외 팽창주의로 변질되었다. 외부 세계와의 진정한 소통을 거부하고 타자를 정복 대상으로만 파악하는 태도는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이 낳은 비극적 산물이다.

칼의 문화와 미의식의 왜곡

작가는 일본 문화의 본질을 '칼(刀)'로 규정한다. 무사도와 칼이 지배해 온 역사 속에서 일본 사회는 강자에게 굴종하고 약자를 짓밟는 생존 논리를 내면화했다. 칼로 상징되는 무력과 폭력은 미적 감수성과 기형적으로 결합했다. 벚꽃의 낙화나 할복자살을 미화하는 태도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보다 폭력적 소멸을 숭상하는 도착적 탐미주의를 드러낸다. 생명 사상이 결여된 탐미주의는 결국 타민족의 고통에 무감각한 잔혹성으로 연결되었다.

왜곡된 역사관과 보편적 양심의 결여

박경리는 일본이 역사를 부정하고 망언을 일삼는 근본 원인을 '보편적 윤리의 부재'에서 찾는다. 일본의 도덕률은 인류 보편의 인(仁)이나 정의가 아니라, 오직 자집단의 이익과 위계질서에 국한된다. 국가나 상급자의 명령이라면 침략과 학살조차 미덕으로 둔갑한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독일과 달리 참된 반성을 하지 못한 까닭은 죄의식의 결여 때문이다. 침략의 책임을 회피하고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만 부각하는 태도는 가해의 역사를 지우려는 기만이다.

이웃과의 상생과 미래의 조건

박경리는 일본이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기 위한 유일한 길로 '철저한 역사적 반성과 생명 존중 사상으로의 회귀'를 제시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는 민족에게는 도덕적 진보와 문명사적 미래가 존재할 수 없다. 작가는 한국 역시 감정적 반일(反日)에 갇히지 말고, 일본의 실체를 냉철하게 꿰뚫어 보는 지일(知日)과 극일(克日)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3. 평론: 비판적 성찰과 현대적 의의

생명사상에 기반한 문명비판론

<일본산고>는 단순한 반일 저술이 아니라 박경리 문학의 근간인 '생명사상'에 입각한 문명비판서다. 작가는 국가 간 정치적 갈등의 표피를 걷어내고, 인간성 회복과 생명 존중이라는 보편 가치의 관점에서 일본을 심문한다. 칼로 흥한 사회가 지닌 생명 경시 풍조를 고발하며, 침략과 폭력의 근저에 도사린 도덕적 미성숙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통찰의 힘과 본질주의적 시각의 한계

이 책의 최대 미덕은 일본 사회의 이면을 꿰뚫는 직관과 문학적 통찰력에 있다. 역사 왜곡 문제의 심층에 자리한 집단주의와 죄의식 결여의 메커니즘을 명쾌하게 해부했다.

다만 지리적 환경과 무사 문화를 통해 일본인 전체의 기질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문화 본질주의적 일반화라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 내부에도 평화헌법을 수호하고 과거사를 반성하려는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저술의 초점이 우익 지배층의 담론에 집중되어 복합적인 내부 균열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측면이 있다.

현재적 울림: 미래를 위한 냉철한 경고

그럼에도 <일본산고>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한 까닭은 역사 수정주의와 군비 증강으로 치닫는 일본의 우경화 흐름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역사를 부정하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는 박경리의 일갈은 일본뿐 아니라, 과거의 교훈을 망각하고 패권적 충동에 휩싸이기 쉬운 모든 현대 국가를 향한 준엄한 경고다. 감정적 분노를 넘어 진정한 평화와 공존을 위해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역작이다.

에서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더 살펴볼까요?" query="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서 드러난 생명사상과 인간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줘." />

과의 시각 비교 분석" query="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분석한 일본 문화와 박경리의 일본산고를 비교 평론해 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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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일본산고(日本散考)』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약 1,000단어 요약·평론 | 역사인식, 민족주의, 일본문화 비판

서지 정정: 요청하신 2005년이 아니라, 박경리(1926~2008)의 유고를 정리하여 2013년 처음 출판했고 2023년 개정판이 나왔다. 아래 글은 공개된 목차와 본문 발췌, 출판 자료를 토대로 한 비평적 재구성이다.

연합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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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일본산고』는 단순한 반일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일본 사회의 정신구조를 비판하려는 문명론적 에세이다.

대하소설 『토지』가 식민지 지배를 경험하는 한국인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재현했다면, 『일본산고』는 그 지배를 가능하게 했던 일본의 역사관과 문화적 의식을 직접 분석한다.

박경리는 1926년에 태어나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했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는 그에게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가 아니라 직접 경험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문제의식은 개인적인 피해 경험을 넘어선다. 그는 일본이 패전 이후에도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가 특히 우려한 것은 일본의 경제적 성공과 문화적 세련됨에 매료된 한국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적 성격을 망각하는 현상이었다.

이 책의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본의 진정한 문제는 과거에 침략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과거를 정직하게 성찰하지 못하는 정신적 구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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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증오의 근원: 일본에 대한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

박경리는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반감이 단순한 민족적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을 거부한다.

그것은 식민지 지배와 강제적 동화, 인간적 존엄성의 훼손에서 비롯된 역사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침략의 기억 자체보다 가해자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에 있다.

피해자에게 과거를 잊고 화해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가해자는 그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화해는 성립할 수 없다.

이러한 논리는 오늘날 역사적 정의와 집단기억에 관한 연구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박경리에게 역사적 기억은 증오를 영속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동일한 폭력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도덕적 의무다.

② 신국의 허상: 일본의 신화와 천황제

책의 중심적인 비판 대상은 일본이 스스로를 특별한 신성성을 가진 국가로 이해해 온 전통이다.

박경리는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검토하면서 일본의 건국신화와 천황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그의 관점에서 신국사상은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 정당성을 혼동하게 만들었으며, 근대에 들어와 제국주의적 국가주의를 뒷받침하는 이념으로 기능했다.

특히 천황의 신성성을 강조하는 관념은 국가권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본다.

이 부분은 종교사회학적으로 흥미롭다.

신화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지만, 특정 신화가 국가권력과 결합하여 정치적 복종을 요구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박경리가 비판한 것은 신화 자체라기보다 신화를 역사적 진실과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③ 일본인의 오해, 우리의 착각

박경리는 일본인의 한국 인식뿐 아니라 한국인의 일본 인식도 비판한다.

일본인은 한국을 후진적이고 감정적인 사회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며, 일부 한국인은 일본을 근대화와 발전의 모범으로 이상화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두 태도는 모두 역사적 현실을 왜곡한다.

특히 일본의 경제적 발전을 문화적·도덕적 우월성의 증거처럼 받아들이는 태도를 경계한다.

경제적 성공과 역사적 책임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은 식민주의 이후에도 피지배 사회 내부에 남는 문화적 열등감과 연결된다.

다만 일본을 배우는 것과 일본을 무비판적으로 숭배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일본의 민주주의, 기술, 사회정책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일까지 거부할 이유는 없다.

④ 일본문화와 미의식에 대한 비판

박경리의 일본론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일본문화의 미학적 성격에 대한 평가다.

그는 일본의 탐미주의, 형식주의, 죽음의 미학 등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가 보기에 일본문화에서는 아름다움이 생명과 인간에 대한 윤리적 책임으로부터 분리되는 위험이 나타난다.

특히 예술적 아름다움과 잔혹성이 공존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박경리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은 삶을 파괴하는 힘이 아니라 생명을 긍정하는 힘이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탐미주의 전체를 비윤리적이라고 일반화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일본문학에는 인간의 고통, 전쟁의 비극,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성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⑤ 일본 역사학자와의 논쟁

제3부에서는 일본 지식인의 한국 민족주의 비판에 대한 박경리의 반론을 다룬다.

특히 일본 역사학자 다나카 아키라의 한국 민족주의 비판에 맞서,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사회의 민족주의를 가해국 지식인의 입장에서 쉽게 재단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박경리의 핵심 문제제기는 역사적 책임의 비대칭성이다.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채 피식민 사회의 민족주의를 비난하는 것은 도덕적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경리가 일본의 모든 지식인을 동일하게 평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일본 내부에서 전쟁책임을 제기하고 역사왜곡에 저항하는 양심적인 인물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대를 표명한다.

마로니에북스 - 예스24

이 대목은 그의 반일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일본 국가의 역사적 책임에 대한 비판과 개별 일본인의 양심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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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역사적 책임에 대한 강력한 도덕적 문제제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사적 사실과 윤리적 책임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경리에게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발생한 사건들의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를 묻는 윤리적 영역이다.

이러한 관점은 과거사 청산과 역사적 화해의 핵심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진정한 화해는 피해자의 망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해자의 책임 인정과 상호 존엄성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

② 일본을 하나의 문화적 본질로 설명하는 위험

반면 이 책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

박경리는 일본의 신화, 종교, 미학, 국가주의, 제국주의를 하나의 지속적인 정신구조로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설명은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일본 사회의 다양성과 내부 갈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전후 민주주의, 국가주의자와 평화주의자, 역사수정주의자와 비판적 역사학자는 구분되어야 한다.

일본 제국주의를 일본인의 고유한 문화적 본성에서 비롯된 결과로 설명한다면, 제국주의를 형성한 구체적인 정치·경제·제도적 조건이 가려질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는 불변의 민족성보다는 근대 국가건설, 군사조직, 식민지 경쟁, 자본주의적 팽창, 권위주의 정치의 역사적 결합 속에서 설명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③ 일본문화의 윤리적 평가와 일반화

박경리의 생명사상은 그의 문화비판에 강력한 도덕적 기준을 제공한다.

그러나 특정 문화의 미학적 특징을 그 사회의 정치적 폭력성과 직접 연결하는 논리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가령 일본문학의 죽음에 대한 미학적 관심이 반드시 군국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국가폭력을 비판한 오에 겐자부로, 반전사상가 쓰루미 슌스케,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 등의 존재만 보아도 일본의 지적 전통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따라서 일본문화 내부의 다양한 전통을 구분하는 일이 필요하다.

④ 민족주의의 양면성

박경리는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민족의 저항과 가해국의 국가주의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제기에는 상당한 역사적 타당성이 있다.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와 다른 민족을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목적과 권력관계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민족주의라고 해서 언제나 민주적이거나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가 내부의 소수자를 배제하거나 비판적 지식인을 억압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식민지 저항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민족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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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님이 최근 읽으신 강인철의 『경합하는 시민종교들』과 연결하면 『일본산고』의 문제의식이 더욱 선명해진다.

일본의 국가신도와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종교적 상징이 정치적 권력의 정당화에 동원된 역사적 사례다.

국가를 신성한 존재로 만들면 그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도 신성한 의무로 정당화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일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기독교 민족주의, 한국의 반공주의적 개신교 국가관, 이스라엘의 종교적 시온주의 일부에서도 종교적 정당성과 국가권력이 결합하는 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동일한 역사현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공통적인 것은 종교와 국가의 결합 방식이지, 구체적인 역사적 책임이나 정치체제가 아니다.

퀘이커 평화주의의 입장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국가의 명령보다 인간의 양심을 우선하는 태도다.

국가가 자기 역사를 신성화할 때, 평화주의는 그 국가의 행위를 비판할 윤리적 기준을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경리의 일본 비판은 단순한 민족적 대립을 넘어 국가권력의 도덕적 한계를 묻는 문제로 확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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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고』는 엄밀한 의미의 일본사 연구서라기보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지식인이 남긴 역사적 증언이자 문명비판이다.

이 책의 가치는 일본문화와 일본인의 성격에 대한 모든 판단이 정확하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국가가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하고 피해자의 기억을 무시할 때 발생하는 도덕적 위험을 날카롭게 지적한다는 데 있다.

박경리의 일본론은 세 가지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다.

  • 역사적 차원: 일본 제국주의의 책임과 역사적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윤리적 차원: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국가주의보다 우선한다.

  • 비판적 차원: 일본사회의 내부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문화적 일반화라는 한계를 가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박경리의 역사적 경고를 받아들이면서도 그의 문화적 본질주의까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일이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일본인 전체를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또한 역사적 책임의 원칙은 일본에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가 자신의 가해 역사와 내부의 폭력을 성찰할 때 비로소 보편적인 윤리 원칙이 된다.

결국 『일본산고』가 오늘날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일본을 좋아해야 하는가, 싫어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이 역사적 진실과 인간의 양심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나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박경리의 『일본산고』는 일본사회를 객관적이고 균형 있게 설명하는 완결된 학술서로 읽을 때보다, 식민주의의 상처와 역사부정의 위험을 경고하는 윤리적 증언으로 읽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그의 주장을 계승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본에 대한 분노를 영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모든 사회에서 국가주의와 역사적 망각에 맞서는 비판적 양심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박경리의 생명사상을 민족적 경계를 넘어 보편적 평화사상으로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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