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살아온 사람들 - 이주와 정착, 배제와 생존의 한반도화교사회 140년
이정희 (지은이)따비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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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40년 넘게 한반도에서 살아온 화교는 차별과 배제, 전쟁과 분단, 국적과 재산권의 문제,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은 화교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 어떻게 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했는지 살펴보며 조선과 한국, 북한이라는 공간에 생활의 뿌리를 내린 한반도화교사회의 이주와 정착, 배제와 생존의 역사를 기록한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화교사회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인천대 이정희 교수는 여러 나라에 흩어진 자료와 화교들의 이야기, 오래된 사진과 잡지를 바탕으로 교육과 언론, 종교, 사회조직과 거주국과의 관계 등을 총체적으로 복원한다. 대구중화상회 관련 자료, 화교 잡지 『한화춘추』, 오무장공사 소장유물, 양춘상 장로의 소장자료 등 다양한 사료를 발굴하고 해석해 화교사회 내부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서장과 종장, 본론 17개 장으로 구성했으며, 본론은 그동안 발표한 18편의 논문을 수정·보완하고 전체적인 흐름에 맞게 다시 구성했다. 동남아시아 화교화인사회 및 일본화교사회와 비교해 한반도화교사회의 특징을 살피고, 한반도화교의 역사를 세계 화교화인의 역사 속에서 조망한다. 오랜 기간 축적된 연구성과를 통해 한반도화교사회 140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목차
서장
I. 화교의 사회관계 방식과 화교사회의 작동 원리
II. 한반도화교사회의 기본 구조
III. 전체 구성
제I부 한반도화교사회의 형성과정
제1장 조선화교사회의 형성과 오무장공사 -오무장공사 소장유물 분석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오무장공사 소장유물 전수조사
III. 조선정부 관리 시기의 유물(1885~1908년)
IV. 경성총영사관 관리 시기의 유물(1909~1945년)
V. 맺음말
제2장 인천 청국조계의 설정과정 -인천구화상지계장정 체결과정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덕흥호사건과 인천 청국조계 설정의 배경
III. 인천구화상지계장정 체결 교섭과정과 장정의 내용
IV. 맺음말
제3장 청일전쟁 직후 인천 영국부영사관의 화교 보호 활동 -졸리 부영사의 활동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영국영사관의 화교 보호의 정치 · 경제적 배경
III. 인천 영국부영사관의 설치와 졸리 부영사의 착임
VI. 졸리 부영사의 인천화교 보호활동
V. 맺음말
제II부 한반도화교사회단체의 역할
제4장 근대 조선화교의 중화상회 설립과 역할 -대구중화상회를 중심으로
I. 머리말
II. 조선 각 지역 중화상회의 설립 현황
III. 대구화상공회의 설립과정
IV. 대구화상공회에서 대구중화상회로의 개조 경위
V. 중일전쟁 시기 대구중화상회의 활동
VI. 맺음말
제5장 한국화교사회와 '7. 19 사건' -잡지 『한화춘추』 분석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한화춘추』의 창간과 7. 19 사건 보도
III. 한국화교사회 내부의 사후대응
IV. 맺음말
제6장 한국-중화민국(타이완) 단교 전후 시기의 '관산 館産' 문제와 한국화교사회의 대응
I. 머리말
II. 한국-중화민국(타이완) 단교 시기의 관산 매각 시도와 화교사회의 대응
III. 리자이팡 주한타이베이대표 재임 시기의 관산 문제와 화교사회의 대응
IV. 맺음말
제7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기 북한화교사회의 실태 조선화교연합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북한화교의 인구 추이와 법적 지위
III. 중국정부의 북한화교 보호 및 화교사회단체의 활동
IV. 맺음말
제III부 한반도화교학교의 설립과 운영
제8장 조선화교의 화교소학 설립과 운영실태 -조선총독부의 '배일' 교과서 단속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인천화교소학과 한성화교소학의 설립과 초기 운영실태
III. 조선총독부의 화교소학 탄압
V. 맺음말
제9장 중일전쟁 시기와 해방 직후 화교소학의 운영실태 -대구화교소학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중일전쟁 시기 화교소학의 운영실태와 관리
III. 대구화교소학의 설립과 운영
IV. 해방 직후 대구화교소학의 교육실태
V. 맺음말
제IV부 한반도화교사회의 종교와 민간신앙
제10장 한반도화교의 민간신앙과 비밀결사 -거선당과 의선당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의선당과 거선당 사원의 창건 시기
III. 배신선당拜神善堂의 거선당과 의선당
IV. 거선당, 의선당과 화교사회의 관계
V. 의선당, 거선당과 비밀결사의 동거
VI. 맺음말
제11장 대구중화기독교회의 설립과 화교사회 -'양춘상장로소장자료'를 근거로
I. 머리말
II. '양춘상장로소장자료' 소개
III. 대구중화기독교회의 설립과 교회당 건축시공
IV. 대구중화기독교회의 운영실태
V. 맺음말
제V부 조선화교사회의 친일과 항일활동
제12장 판한성 경성총영사의 '관지' 매각 시도와 화교사회의 대응
I. 머리말
II. 판한성 총영사의 1935년 관지 매각 시도
III. 경성화교사회의 관지 매각 반대운동
IV. 판한성 총영사의 경성중화상회 회관 부지의 환지
V. 맺음말
제13장 중일전쟁 시기 판한성 경성총영사의 친일활동과 조선화교사회의 변동
I. 머리말
II. 노구교사건 직후 판한성 총영사의 동태
III. 판한성 총영사의 각 영사관과 화교사회단체 재편
IV. 맺음말
제14장 중일전쟁 시기 조선화교의 항일활동
I. 머리말
II. 중일전쟁 전반기(1937~1941년) 조선화교의 항일활동
III. 중일전쟁 후반기(1942~1945년) 조선화교의 항일활동
IV. 맺음말
제VI부 한반도화교와 거주국 사회의 갈등과 충돌
제15장 1927년 조선화교배척사건의 경위와 실태 -인천화교배척사건을 중심으로
I. 머리말
II. 1927년 조선화교배척사건의 발생경위와 피해상황
III. 인천화교배척사건의 피해상황과 원인
IV. 맺음말
제16장 1931년 조선화교배척사건의 근인近因과 원인遠因
I. 머리말
II. 조선총독부의 1931년 조선화교배척사건에 대한 공식 견해
III. 조선총독부 초기 대응의 문제점
IV. 평양화교배척사건의 근인近因
V. 일본정부 및 조선총독부의 사건 처리
VI. 1931년 조선화교배척사건의 원인遠因
VII. 맺음말
제17장 한국정부의 화교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화교사회의 인식 및 대응
I. 머리말
II. 단기 거류 및 출입국 제한에 대한 인식과 대응
III. 부동산과 농지 취득 및 소유 제한
IV. 맺음말
종장
I. 한반도화교사회의 5연 단체
II. 한반도화교사회의 형성과 전개의 주요한 요인
III. 조선화교배척사건의 원인과 양 민족의 상호인식
IV. 한반도화교사회의 전망
책을 마무리하며
참고문헌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P. 23 나아가 화교사회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거주국과 본국 간 관계, 그리고 양국의 화교정책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 화교사회가 이러한 정책에 어떻게 대응하며 공동체를 유지․재생산해왔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아울러 논의를 전개하면서는 동남아시아의 화교화인사회, 일본의 화교사회와의 비교를 염두에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P. 28 중국 문화와의 친화성이 높은 지역, 예컨대 한반도, 일본, 베트남 등에서는 화교의 정착과 활동이 비교적 용이한 경향을 보이는 반면, 이슬람 문화 전통이 강한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이나 서구 기독교 문화의 영향이 강한 필리핀, 유럽, 미주 지역 등에서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화교사회가 보다 복합적인 적응과정을 겪게 된다.
P. 45 1992년 한중 수교와 한국-중화민국(타이완) 단교는 한국화교사회에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이후 중국으로부터의 신이민, 즉 신화교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기존 화교사회 구조가 급격히 변화했으며, 사회단체의 재편과 내부 분열이 나타나는 등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됐다.
P. 56 근대 시기 한반도화교사회의 형성은 조선정부의 요청으로 임오군란 진압을 위한 청국 군대의 파병, ‘중국조선상민수륙무역장정’(국내 학계에서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라고 함)의 체결, 개항장인 인천, 부산, 원산에 설치된 청국조계의 설정, 그리고 청일전쟁 같은 조선과 청국의 정치적 관계, 나아가 조선․청국․일본 간의 정치적 관계와 긴밀히 연동되면서 전개됐다. 접기
P. 164 이주지에서 소수집단인 화교는 혈연, 지연, 업연, 신연, 학연을 매개로 다양한 사회단체를 조직해 내부적으로는 상호 친목 도모와 질서유지, 중국 전통문화 계승의 활동을 전개하고, 대외적으로는 조국 정부의 이주지 외교기관 및 이주지 정부의 행정기관과 교섭해 화교사회를 보호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P. 314 교사삼보僑社三寶, 즉 화교사회를 지탱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인 화교사회단체, 화교언론인 교보僑報, 화교학교, 이 세 요소 가운데 화교학교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차세대 화교사회와 화교경제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기능이며, 둘째, 중국어 및 중국 전통문화 교육을 통해 ‘화인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재... 더보기
P. 396 화교사회는 이주지에 중국 유래의 사원과 묘廟를 건축해 고향의 종교적 환경을 재현한다. 이는 중국 전통의 유교, 불교, 도교와 깊은 관련이 있고, 사묘寺廟에는 복수의 종교 및 민간신앙과 연관된 신들이 모셔져 있다. 한편, 이주지 사회의 종교적 영향을 받아 기독교나 이슬람교에 귀의해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화교도 적지 않다.
P. 476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패배한 이후 조선은 점차 일본의 반식민지화의 길로 나아갔으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상실하고,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주권을 완전히 상실해 식민지로 전락했다.이후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과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조선은 해방을 맞이하게 됐다. 이와 같은 역사적 전개 속에... 더보기
P. 582 아시아 화교사회는 서양 및 일본의 식민통치하에서 현지 민족의 박해와 배척을 경험했으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인적 손실을 입었다. 화교사회는 이주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적 비중을 차지하며 상업과 노동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러한 경제적 지위는 현지 정부 및 민족과의 갈등과 마찰, 나아가 충돌과 배척사건으로 이어지기도 ... 더보기
P. 766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참전,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강화된 민족주의 교육, 동남아시아 화인들이 거주국 경제를 장악한 사례가 한국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한국정부와 사회의 우려, 한국화교의 경제력에 대한 과장된 인식, 그리고 중화민국(타이완)정부의 소극적인 한국화교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정부와 한국사회는 화교에 ... 더보기
P. 314 교사삼보僑社三寶, 즉 화교사회를 지탱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인 화교사회단체, 화교언론인 교보僑報, 화교학교, 이 세 요소 가운데 화교학교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차세대 화교사회와 화교경제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기능이며, 둘째, 중국어 및 중국 전통문화 교육을 통해 ‘화인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재... 더보기
P. 396 화교사회는 이주지에 중국 유래의 사원과 묘廟를 건축해 고향의 종교적 환경을 재현한다. 이는 중국 전통의 유교, 불교, 도교와 깊은 관련이 있고, 사묘寺廟에는 복수의 종교 및 민간신앙과 연관된 신들이 모셔져 있다. 한편, 이주지 사회의 종교적 영향을 받아 기독교나 이슬람교에 귀의해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화교도 적지 않다.
P. 476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패배한 이후 조선은 점차 일본의 반식민지화의 길로 나아갔으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상실하고,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주권을 완전히 상실해 식민지로 전락했다.이후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과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조선은 해방을 맞이하게 됐다. 이와 같은 역사적 전개 속에... 더보기
P. 582 아시아 화교사회는 서양 및 일본의 식민통치하에서 현지 민족의 박해와 배척을 경험했으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인적 손실을 입었다. 화교사회는 이주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적 비중을 차지하며 상업과 노동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러한 경제적 지위는 현지 정부 및 민족과의 갈등과 마찰, 나아가 충돌과 배척사건으로 이어지기도 ... 더보기
P. 766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참전,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강화된 민족주의 교육, 동남아시아 화인들이 거주국 경제를 장악한 사례가 한국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한국정부와 사회의 우려, 한국화교의 경제력에 대한 과장된 인식, 그리고 중화민국(타이완)정부의 소극적인 한국화교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정부와 한국사회는 화교에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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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정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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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에서 한반도화교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한반도와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화교화인의 역사와 사회를 연구해왔다. 일본의 대학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한 뒤, 2014년부터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朝鮮華僑と近代東アジア』(조선화교와 근대 동아시아, 2012), 『한반도화교사』(2018), 『화교가 없는 나라』(2018)가 있으며, 『베트남화인의 역사와 베트남화 과정』(2026), 『베트남화교와 한반도화교 마주보기』(2022), 『한반도화교사전』(2019) 등 20여 권의 저서 및 공저서를 출간했다. 화교화인 문제를 주제로 해서 한국어·중국어·일본어·영어로 발표한 논문은 60여 편에 이른다. 『朝鮮華僑と近代東アジア』로 2013년 일본화교화인학회 연구장려상을, 『한반도화교사』로 2019년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 27년간 축적해온 화교화인 연구의 성과를 집대성해 이 책 『경계를 살아온 사람들: 이주와 정착, 배제와 생존의 한반도화교사회 140년』을 펴낸다. 앞으로는 연구의 지평을 세계 각지의 차이나타운과 화교화인의 경제·사회로 넓혀, 이들의 역사적 경험과 오늘날의 삶을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사적 시야에서 탐구하고자 한다. 접기
최근작 : <경계를 살아온 사람들>,<중국적 표준과 현대화>,<베트남 화인의 역사와 베트남화 과정> … 총 17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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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화과자 먹으며 교토 산책>,<경계를 살아온 사람들>,<동남아의 길거리를 맛보다>등 총 140종
대표분야 : 음식 이야기 1위 (브랜드 지수 57,981점), 교육학 16위 (브랜드 지수 49,53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1927년, 1931년 일제강점기 화교를 향한 조선인의 폭력 사태. 지금 대한민국의 화교와 한국인은 100년 전과 다른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가?
한반도화교의 진짜 모습을 좇아온 27년 연구성과의 집대성에서 그 답을 찾아가 본다.
"한 세대 두 세대를 거치면서 조선과 한국, 그리고 북한이라는 공간에 생활의 뿌리를 내렸다.
그 과정에 정착과 번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차별과 배제, 전쟁과 분단, 국적과 재산권의 문제, 정치적 격변이 끊임없이 이들의 삶을 뒤흔들었다. 그럼에도 한반도화교사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다시 만들어왔다."(776쪽)
* 이 화교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떠한 사람들이었으며, 어떻게 공동체를 만들고 운영하였는가.
* 각종 경제적 통계와 수치의 이면에는 어떠한 인간관계와 사회조직이 존재했는가.
* 화교사회는 자신들이 정착한 조선사회, 한국사회, 북한사회와 어떠한 관계를 맺었는가.
* 문화적 · 정치적으로 긴장과 갈등이 발생한 지점은 어디였으며, 어떻게 해결하려 하였는가.
한반도 안의 중국인, 여전히 이방인인가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슈 가운데 하나는 외국인 유권자였다. 그 수는 이전 선거보다 18.7% 증가한 총 15만 1,532명으로, 전체 선거인 대비 비율은 0.34%였다. 외국인 주민이 많다 해도 해당 지역 유권자의 2%를 밑도는 수준이었지만, 특정 기초단체·선거구 단위에서 외국인 유권자 비중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중대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한, 외국인의 국적 국가(중국 등)에 거주하는 재외국민(한국인)에게는 투표권이 부여되지 않아 불공정성 시비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 국적(조선족 포함) 비중이 상당히 높아, 이들을 향해 ‘공산당은 한국에서 떠나라’거나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세금을 도둑질하고 기술을 훔쳐간다’는 등 검증되지 않은 거친 발언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외국인, 특히 중국 화교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방증인 동시에, 관련 공직선거법이 적용된 2006년 이전에는 화교에게는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관련한 선거권이 없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대통령선거·국회의원선거에는 투표권이 없고,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 선거에만 참여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외국인 장기 거주자, 단기 노동자, 유학생 등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중이 높고 가장 오래전부터 거주해온 외국인은 단연 중국인이다. 흔히 ‘화교’라 부르는 이주자들로, 인천과 부산의 전통적인 차이나타운이 그들의 대표적인 중심지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의 중국인 하면 조선족과 대림동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이른바 ‘신이민’ 인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2025년 기준으로 한족 신화교 약 30만 명, 조선족 약 60만 명 등 총 90만 명 규모에 이르렀으며, 이는 한국 내 전체 외국인 인구의 40~5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140년 넘게 한반도에서 살아온 이들을 향한 한국인의 시선, 그들과의 관계는 그다지 곱지 않고, 원만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기피되는 힘든 일자리를 도맡아 하는 한국 거주 중국인들, 즉 화교들을 과연 우리의 곁에 있는 이웃이라 부를 수 있을까? 140년을 경계에서 지내온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경계를 살아온 사람들: 이주와 정착, 배제와 생존의 한반도화교사회 140년》은 전망한다. “신화교는 한국 내 외국인 사회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이해 부족은 향후 한국사회의 안정적 발전과 사회통합에 적지 않은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화교사회 140년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준다”라고.
화교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배제와 반목의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화교사회는 한국사회의 일부분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고 함께 발전하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초기 이주자 가운데 상당수는 타향에서 돈을 벌고 성공한 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이른바 낙엽귀근落葉歸根의 마음을 품고 살았다. 잎이 떨어지면 결국 뿌리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타향에서의 생활을 잠정적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은 달라졌다.…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는 낙지생근落地生根의 길을 걸었다.…오늘날 우리가 보는 한반도화교사회는 바로 그러한 오랜 낙지생근의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연구자가 그려낸 입체적인 화교사회사
이 책의 저자 이정희 교수(인천대)는 한반도 및 동아시아 화교사회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최고의 권위자다. 그는 한반도화교의 경제사를 연구(『한반도화교사』)하면서 각종 통계와 수치 이면의 화교들, 즉 ‘화교경제를 떠받치고 있던 화교사회 내부는 과연 어떻게 작동하였는가’ ‘그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떠한 사람들이었는가’ ‘각종 통계와 수치의 이면에는 어떠한 인간관계와 사회조직이 존재했는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투박하지만 오래된 질문들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 책이 태어났다.
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첫째, 화교사회가 만들어온 교육과 언론, 종교, 그리고 거주국과의 관계 등 여러 방면에서 한반도 안 화교사회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복원했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하나씩 찾고, 화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오래된 사진과 잡지를 살펴보면서 조금씩 화교사회의 모습에 다가간” 결과, 입체적으로 화교사회의 모습을 복원해내고, 그들이 140년 동안 겪어온 이주와 정착, 배제와 생존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는 화교사회를 이해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둘째, 꼼꼼한 사료 발굴과 해석을 통해 그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냈다. 대구중화상회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조선 내 중화상회의 설립 과정과 역할을 고찰했으며, 화교 잡지 『한화춘추』의 기사를 통해 한성화교협회를 비롯한 한국화교사회단체가 주한중화민국(타이완)대사관 부지 매각 과정에서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찬반 운동을 전개했는지 살펴보는 등 다양한 사료로써 화교사회의 모습을 읽어내는 일은 또 다른 매력을 안겨줄 것이다.
또한, 오무장공사 소장유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화교사회의 형성 과정의 또 다른 사실들을 밝혀내고, 새로이 발굴한 양춘상장로의 소장자료를 통해 중화기독교회의 운영실태를 꼼꼼하게 복원한 성과 등은 이 책만이 가진 학술적 가치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한반도 화교사회를 연구하되, 가능하면 한반도만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일본과 동남아시아, 유럽과 미국의 화교화인사회가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염두에 두면서 한반도화교사회의 특징을 비교하고자 했다. 실제로 마지막 ‘종장’에서는 동남아시아 화교화인사회 및 일본화교사회와의 비교라는 관점에서 한반도화교사회를 정리함으로써 이에 화답한다. 이를 통해 한반도화교의 역사를 세계 화교화인의 역사 속에서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현상들이 한반도화교사회만의 독특한 특징인지, 아니면 세계 화교사회가 공유했던 보편적인 경험인지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서장과 종장 그리고 본론 17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서장과 종장은 기존에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은 내용을 새롭게 집필했으며, 본론 17개 장은 그동안 발표한 18편의 논문을 수정, 보완하고 전체적인 흐름에 맞게 다시 구성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연구성과를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과정은 저자에게는 지난한 것이었지만, 한반도화교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는 최고의 나침반이자 지도를 선사했다. 또한, 앞으로 “연구의 지평을 세계 각지의 차이나타운과 화교화인의 경제·사회로 넓혀,이들의 역사적 경험과 오늘날의 삶을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사적 시야에서 탐구하고자” 하는 저자의 이후 연구를 기대하게 만든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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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이주와 정착, 배제와 생존의 한반도화교사회 140년 | 따비, 2026 | 848쪽
약 1,000단어 요약·평론 — 공개된 목차, 저자 발췌문, 출판사 소개와 서평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분석이다. 책 전체를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은 아니다.
1. 문제의식: 140년을 살아도 이방인인가
이정희의 은 한반도 화교의 역사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연구서다. 화교의 역사는 단순한 중국인 이민사가 아니다. 조선 말기의 개항, 청일전쟁, 일본의 식민지배, 한국전쟁, 남북분단, 냉전, 경제발전, 한중 수교를 모두 관통하는 동아시아의 사회사다.
저자는 화교가 140년 넘게 한반도에 거주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역사적 모순에 주목한다.
이 책의 중심 질문은 명확하다. 오랜 세월 한 사회에서 생활하고 경제활동을 하며 자녀를 교육한 사람들이 어째서 여전히 외국인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저자는 화교사회의 형성과 유지, 내부 조직, 경제활동, 교육, 종교, 정치적 갈등을 분석하면서 이 질문에 역사적으로 접근한다. 특히 화교를 수동적인 차별의 피해자가 아니라 역경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한 역사적 행위자로 다룬다는 점이 중요하다.
2. 조선 말기: 청의 세력 확대와 화교사회의 탄생
근대 한반도 화교사회의 출발점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의 조청관계다.
청나라 군대의 조선 진출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은 중국 상인들의 조선 내 활동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천, 부산, 원산에 청국조계가 설치되면서 중국 상인들은 조직적인 경제활동의 기반을 확보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인의 이주가 단순한 개인적 경제적 선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청나라의 대조선 정책, 조선의 개항, 일본의 세력 확대가 이주 조건을 결정했다. 중국 상인들은 때로는 청나라의 외교적 보호를 받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청일전쟁 이후에는 그 지위가 불안정해졌다.
저자는 오무장공사의 소장유물, 인천 청국조계의 설치 과정, 청일전쟁 이후 영국영사관의 화교 보호활동을 통해 이러한 초기 역사를 복원한다.
이러한 접근은 제국주의를 일본과 조선의 양자관계만으로 파악하는 역사인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19세기 말 조선은 이미 중국인, 일본인, 서양인이 서로 다른 법적 지위와 경제적 특권을 지닌 채 경쟁하던 복합사회였다.
3. 화교사회를 유지한 다섯 가지 연결망
저자가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은 혈연, 지연, 업연, 신연, 학연이라는 다섯 가지 사회관계다.
화교들은 가족과 친척의 연결, 같은 출신 지역의 연대, 상업활동을 통한 협력, 종교공동체, 학교 동문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사회를 유지했다.
중화상회는 단순한 상인단체가 아니었다. 경제적 이해관계의 조정, 분쟁 해결, 외교기관과의 교섭, 공동체의 권익 보호라는 기능을 수행했다.
화교학교와 화교언론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저자는 화교사회단체, 화교언론, 화교학교를 공동체를 지탱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설명한다.
화교학교는 중국어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공간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함으로써 조상들의 세계와 연결되는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화교사회는 국가의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스스로 복지, 교육, 상호부조의 제도를 형성한 공동체였다.
그러나 내부 조직이 강할수록 외부사회와의 경계가 유지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공동체적 연대의 양면성은 비판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
4. 종교: 국경을 넘어 지속된 문화
이 책의 흥미로운 특징은 화교의 종교생활을 상당한 비중으로 분석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거선당과 의선당을 중심으로 중국의 민간신앙이 한반도에서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를 연구한다. 사원은 종교적 기능만 담당하지 않았다. 이주민들이 고향의 문화를 재현하고 공동체적 유대를 형성하는 장소였다.
대구중화기독교회에 관한 연구도 중요하다. 저자는 새롭게 발굴한 양춘상 장로의 자료를 활용하여 교회의 설립과 운영을 복원한다.
이 사례는 화교의 종교적 정체성이 중국 전통문화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기독교를 수용한 화교들은 새로운 종교적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자신들의 언어와 공동체를 유지했다.
종교는 이주민에게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문화적 생존과 사회적 연대의 수단이기도 했던 것이다.
5. 식민지 조선: 화교의 항일과 친일
이 책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식민지시대 화교사회의 정치적 선택을 다룬 제5부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은 심각한 정치적 모순에 직면했다.
중국과 일본이 전쟁 중이었지만 화교들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조선에서 생활해야 했다.
일부 지도층은 일본 당국과 협력했고, 다른 화교들은 항일활동에 참여했다. 저자는 판한셩 경성총영사의 친일활동과 화교사회의 변동, 중일전쟁 시기 조선화교의 항일활동을 구분하여 연구한다.
이러한 분석의 의미는 화교사회를 하나의 정치적 집단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같은 중국인이라도 계급, 직업, 정치적 입장,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이는 식민지 조선인의 협력과 저항을 연구할 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시각이다. 민족이라는 범주만으로 개인과 집단의 행동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6. 1927년과 1931년: 조선인의 화교배척
이 책에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중요한 주제는 조선인의 중국인 배척이다.
1927년과 1931년 조선에서는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집단적 폭력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1931년 사건은 만주에서 발생한 조선인과 중국인 사이의 충돌을 둘러싼 보도와 민족주의적 분노가 폭력으로 확대된 사례다.
저자는 이러한 사건을 일시적인 민족감정의 폭발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식민지 조선의 경제적 불안, 중국인 상인 및 노동자와의 경쟁, 만주 거주 조선인의 문제, 일본 식민당국의 대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차별과 지배를 경험하던 조선인들이 자신들보다 취약한 소수집단을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설명하는 것과 폭력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경제적 경쟁은 배척사건의 배경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이 민간인에 대한 집단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 책은 식민지 피해자의 역사와 소수민족 가해의 역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7. 대한민국: 민족국가의 제도적 배제
1945년 해방 이후에도 한국화교의 처지가 근본적으로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화교들의 경제활동과 정착을 여러 방식으로 제한했다. 거류기간과 출입국에 대한 규제, 토지와 부동산 취득 및 소유에 대한 제한이 대표적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차별정책의 배경으로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참전, 반공주의, 경제민족주의, 화교의 경제력에 대한 과장된 인식 등을 지적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혈통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국민관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사회의 일상에 참여하는 사람도 중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공동체의 주변부에 머물렀다.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면서 경제발전을 추진한 한국사회는 소수민족의 경제적 경쟁을 경계했다.
그 결과 화교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사회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하고 해외로 재이주하거나 제한된 직업 영역에 머무르는 경우가 생겼다.
이러한 역사는 한국의 경제발전이 모든 주민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8. 북한화교와 1992년 한중 수교
이정희는 대한민국의 화교만이 아니라 북한화교도 연구한다.
북한화교는 중국과 북한의 특수한 정치적 관계 속에서 독특한 법적 지위와 생활조건을 경험했다. 책은 김정은 시대 북한화교의 인구 추이, 법적 지위, 중국정부의 보호활동, 조선화교연합회의 역할을 살펴본다.
한편 1992년 한중 수교와 한국·대만 단교는 남한 화교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기존 한국화교의 상당수는 중화민국 국적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외교관계는 기존 화교조직과 중국계 이주민 사회 내부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동시에 중국 대륙으로부터 새로운 이주민들이 들어왔다.
전통적인 한국화교사회와 새롭게 형성된 중국계 이주민 사회는 역사적 경험, 언어, 정치적 정체성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의 중국계 주민을 하나의 화교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출판사 자료에 따르면 저자는 2025년 한국 거주 한족 신이민 약 30만 명과 조선족 약 60만 명을 언급한다. 다만 이러한 넓은 의미의 중국계 이주민을 역사적인 중화민국계 화교와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9. 평론: 이 책의 학문적 성취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사를 국민국가의 경계 밖에서 다시 읽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한국 근현대사 서술에서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중심적인 행위자로 등장한다. 중국인은 청나라의 간섭이나 만주문제와 관련하여 등장할 뿐, 한반도에서 생활한 주민으로서는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정희는 이러한 역사적 공백을 메운다.
특히 여러 나라에 흩어진 자료, 화교단체의 기록, 학교와 교회의 문서, 잡지, 소장유물 등을 활용하여 공동체의 내부를 복원한 점이 돋보인다.
이 연구는 정치외교사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경제사, 종교사, 교육사, 이주사까지 연결한다.
또 하나의 장점은 화교를 단순한 희생자로만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교사회 내부의 친일과 항일, 지도층과 일반 주민의 이해관계, 단체 간 갈등을 분석함으로써 소수집단의 역사적 복잡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방법은 역사적 소수자를 연구할 때 필요한 균형감각을 제공한다.
10. 비판적 검토: 더욱 발전시켜야 할 문제들
이 책의 공개된 구성과 논지를 토대로 볼 때, 세 가지 비판적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화교사회의 강한 내부 결속은 생존을 가능하게 했지만 한국사회와의 통합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차별 때문에 내부 결속이 강화되었을 수도 있고, 내부 결속이 민족적 경계를 장기간 유지하는 데 작용했을 수도 있다. 두 방향의 인과관계를 구분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민족주의와 경제적 이해관계는 어떤 관계였는가.
한국인들의 화교 배척을 민족주의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경제적 경쟁, 계급적 갈등, 국가정책, 국제정치적 긴장이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특히 1927년과 1931년의 사건에서는 식민당국의 통치책임과 실제 폭력에 가담한 조선인의 책임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셋째, 화교사회의 역사에서 여성과 일반 노동자들의 경험은 얼마나 충분히 드러나는가.
상회, 영사관, 학교, 종교기관을 중심으로 남겨진 문서들은 주로 조직 지도자들의 활동을 기록한다. 이주민 여성, 가사노동자, 영세상인, 혼인으로 연결된 가족들의 경험은 공식 기록에서 상대적으로 드러나기 어렵다.
이는 이 책의 서술에서 실제로 부족한 부분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앞으로의 화교사회 연구에서 반드시 살펴볼 과제다.
11. 종합평가: 한국사회는 누구를 자신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가
이정희의 은 한국사회의 민족적 경계를 성찰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역사연구다.
이 책에서 화교는 외부에서 한국을 찾아온 일시적인 손님이 아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한반도의 경제와 문화, 교육과 종교생활에 참여해온 주민이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그들의 존재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
저자는 초기 이주민들이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생각을 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는 낙지생근(落地生根)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변화는 모든 이주민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과정이다.
이 책을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와 연결하여 읽으면 더욱 의미가 깊어진다. 식민지 조선인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 민족적 자존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민족적 자의식이 다른 소수집단의 권리를 존중하는 보편적 시민의식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에도 민족국가의 형성은 화교들에게 완전한 사회적 소속을 보장하지 않았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재일조선인, 동남아시아의 화교, 유럽의 이민자 사회에서도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유사한 문제가 나타난다.
따라서 이 책의 학문적 의미는 한국화교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적, 혈통, 문화, 거주, 시민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이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한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이 되는 근거는 조상의 혈통인가, 국가가 부여한 국적인가, 아니면 여러 세대에 걸쳐 형성한 실제 생활관계인가.
이정희의 연구는 세 번째 요소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역사적 근거를 제공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민족국가의 형성과 발전만으로 설명해온 관점을 넘어, 서로 다른 집단들이 충돌하고 협력하면서 만들어온 복합사회의 역사로 재구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크다.
자료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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