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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7

북향 여성의 시대를 기대한다 - 통일신문

북향 여성의 시대를 기대한다 - 통일신문

북향 여성의 시대를 기대한다

전수미 변호사 | 기사입력 2023/05/10 [10:20]

5월 4일, 더불어민주당 북향여성인권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지금까지 민주당은 남북관계를 중시한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온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 충분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비난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이탈주민특별위원회, 대선 캠프에서 한반도 4.0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남한에 거주하는 북한사람들의 상생에 대해 일하고 고민했던 점들은 이념적 비판에 갇혀져 부각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탈북민이라는 당사자들 상당수

그 명칭을 불편해 하고 있어



그렇다면 왜 이름이 ‘북향’여성인권위원회일까. 필자가 윗동네, 즉 고향에서 온 분들을 지원한지 20여년이 되었지만 북한이탈주민, 탈북자라는 이름의 당사자들 상당수는 그 이름을 불편해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이탈’은 어떠한 무리에서 벗어난 상태를 뜻하고,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을 이탈한 상태에만 집중하고 있어 온전히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남한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붙여준 이 이름으로 인해 북한에서 온 분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인식하에 실향민과 나 그리고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같이 만든 이름이 바로 ‘북향민’ 이다. 우리 중 서울이나 제주도에 고향이 있는 사람이 있듯이 이들은 북한에 고향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뜻이다.





위원회 이름 중 ‘북향’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왜 여성위원회인 것일까. 2022년 12월 기준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한 북향민은 총 33,882명인데, 그 중 남자는 9,510명, 여자는 24,372명으로 여성이 전체 북향민의 70퍼센트를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들의 목소리는 약 3만 4천여명 중 소수 남성들의 목소리가 전부의 입장인 것처럼 한국 사회에 비춰졌던 아쉬움이 있었다. 그에 따른 불이익은 고스란히 대다수의 북향 여성들에게 돌아갔다. 그러한 이유로 이제 ‘성평등’ 시대에서 북향 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이 목소리를 정책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위원회가 만들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적 대결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한국의 지배체제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이 대결구도가 다시 소환되어 공고해지는 악순환을 겪었다. 이 냉전체제의 잔영은 ‘국가안보’라는 명분 아래 ‘국가폭력’의 모습으로 북향민들에게 투영되고 그들을 옭아매고 있다.


여성의 시선에서 법규범과 체계를

재검토...대책마련과 지원에 주력



전 세계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북향여성인권위원회는 남한 중심이 아닌 북향 여성의 시각에서 남한 중심의 형식적인 지원이 아닌 여성의 시선에서 관련 법규범과 체계를 재검토를 통해 구체적인 대책마련과 지원에 주력하려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2016년 여야의 합의로 제정된 ‘북한인권법’의 전면 개정이다. 현재 ‘북한 인권법’에서 지원하고 적용되는 ‘북한 주민’의 범위에 제3국이나 남한 거주 북향민이 제외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또한 북향민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되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실향민과 북향민은 똑같이 북한이 고향인데도 한국전쟁 시 남한에 내려온 실향민은 이산가족 상봉의 대상자가 되어 가족을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북향민은 한국전쟁 이후에 북한에서 왔다는 시간적 이유로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조용히 살아야 하는 현실은 철저히 차별적이다.



앞으로 북향여성인권위원회에서 북향 여성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남한 관련자들의 교육, 북향 여성의 역량 강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 기본 생활 지원, 사회참여기회 확대 등 북향 여성이 겪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한 법과 정책을 재정비하여 일관성 있게 추진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북향 여성 스스로가 자강, 자립할 수 있게 지원하여 언젠가 동독의 ‘메르켈’같은 훌륭한 북한 출신 여성 지도자가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그 날을 꿈꾼다. 북향 여성이 만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참으로 설레지 아니한가. 이제, 북향 여성의 시대가 온다.


한일관계의 출구를 모색한다 - 통일신문

한일관계의 출구를 모색한다 - 통일신문

한일관계의 출구를 모색한다
전수미 변호사 | 기사입력 2023/

[포커스] 최근 대한민국 외교부가 바쁘다. 지난 12월 한일 국장급 회의가 도쿄에서 열렸고 이번에는 일본 외무성 후나코시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서울에 올 차례였지만, 올해 1월에도 우리 외교부 담당자가 직접 도쿄에 방문했다. 지난 1월 12일 국회 공개토론회에서 외교부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조속한 해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속도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해법 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개토론회 자리를 준비했다고 발언하였다. 그리고 1월 15일 외교부가 발걸음을 재촉한 곳은 다름 아닌 도쿄 외무성이었다. 일본 후나코시 국장과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긴밀한 협의를 하기 위해 다시 도쿄로 날아간 것이다.




이러한 외교부의 태도는 여러 가지 의문을 야기하고 있다. 강제징용문제는 한국이 피해자, 일본이 가해자로 알려진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문제이다. 피해자인 대한민국 외교부가 무엇이 그렇게 급하고 아쉬워서 도쿄로 수차례 날아간 것일까? 지난 12월 외교부에서 제시했다는 안을 바라보면 첫 번째로 한국 기업만의 출자로 강제징용문제 해결을 위한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 두 번째로 기존 일본 총리의 총체적인 사과를 계승한다는 태도이면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본 측에게는 새로운 사과나 배상과 같은 그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아도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피해 국가의 태도인지는 의심스럽다. 올해 1월 국회 토론회에서 확인했듯 국내에서 많은 반발이 있음에도 강제징용 문제를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이라는 이름 아래 조급하게 협상을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죽하면 상대 파트너인 후나코시 국장의 임기가 곧 끝나기에, 임기 안에 협상을 조속히 끝내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이다.

한일관계에 있어 한국은 일본과 독일의 태도를 늘 비교하곤 한다. 우리가 독일과 일본의 태도에 대해 비교하면, 일본은 독일처럼 우리가 수용소 가스실 학살을 자행했냐며 독일과 같지 않음을 항의한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인들이 생명처럼 생각하는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매일 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에 절을 하도록 강요했다. 우리말과 역사를 공부하지 못하게 하였고 조선 왕이 살았던 궁에 동물원을 만들었다.

또한 독일은 과거에 대해 철저히 사죄하고 어린 아이부터 철저하게 과거 역사에 대해 교육시키는 반면, 일본은 총리 사죄 후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를 하여 진정한 사죄가 아니었다는 분노를 일으킨다. 또한 독일은 전쟁에 진 것을 ‘패전’이라고 하는데 일본은 ‘종전’이라고 한다. 독일은 당시 연합군을 ‘점령군’이라고 했는데 일본은 ‘진주군’이라고 표현하는 등 누가 전쟁에 승리했고 졌는지를 알 수 없게 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일본이 역사에 대한 반성이 없다고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은 오늘날까지 한일 갈등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1910년 한일합병을 불법적 합병이라 규정하지만, 일본은 당시 국제법 상 합법적인 합병이었다고 주장한다. 식민지 지배의 성격에 대해 양 당사국의 해석이 다르기에 거기에 수반되는 강제징용, 위안부 등 수많은 역사적 문제 또한 수많은 논쟁만 지속할 뿐이다. 여기에 양국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과 및 반성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일본은 현재 한국이 강제징용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1965년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양국의 차이를 바탕으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미래지향적인 신시대의 한일협력을 추구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대내적으로 현 정부에서 강제징용문제 해결을 위해 객관적이고 냉정한 관점에 기초하여 한국과 일본의 견해 및 인식차를 재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종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선제적으로 대한민국 내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담론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나갈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로 여야 한일의원연명 대표 원로 의원들의 합의안을 도출한 다음, 관련 피해자, 시민단체. 학계 관계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여야합의안에 대한 끝장토론을 한 후 결론을 내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방법에 따르면 소모적인 쟁론 소지를 줄이고 국민적 여론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범사회적 담론과 한일 간의 견해 차이 등을 설명하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일본 기업 재산의 현금화를 통한 배상을 원하는지, 아니면 일본 측의 ‘진정한 사죄’를 원하는지 피해자 한명 한명을 직접 만나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으므로 각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피해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류하여 각 영역별로 지원을 달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한일관계의 모델로 삼아 열린 마음으로 일본 지도자들과 만나 협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 내 일본기업 재산의 현금화 방지를 최우선 목표로 한다. 이에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이 일본 측의 '진정한 사죄’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요청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진정한 사죄’에 대한 구체적 정의가 없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있겠지만 여기에서 ‘진정한 사죄’란 사과를 표현하는 말과 사과 후 행동이 일치하는 사과를 의미한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과거 일본 총리의 피해자에 대한 편지나 사과는 현직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언행불일치가 되어 ‘진정성’이 결여되었기에 책임 추궁이 반복되어 왔음을 일본 측에 강조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일본 현직 총리의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 사과 및 사과 후 ‘일관성 있는 모습'이 보장될 때, 한국 측의 사죄 재요구에 대한 논의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후 일본이 '진정한 사죄'를 하고, 한국과 일본 기업이 화해와 상생이라는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자발적으로 강제징용피해자지원재단에 돈을 기부하는 행태를 보일 때, 한일관계가 각 나라 국내 정치의 종속변수로 활용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과 일본 서로가 아태 지역의 세력변화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여건을 만든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나아가 국제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여 우리의 역량과 위상, 그리고 국민합의에 바탕을 두고 국익을 도모하는 외교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생산적 외교라 할 것이다.

사단법인 화해평화연대 이사장


한반도 인권에 기반 한 ‘북한인권재단’을 촉구한다 - 통일신문

한반도 인권에 기반 한 ‘북한인권재단’을 촉구한다 - 통일신문

한반도 인권에 기반 한 ‘북한인권재단’을 촉구한다

전수미 변호사 | 기사입력 2022/12/09 [16:49]

현 정부가 집권하자 북한인권재단에 대한 논의가 재 점화 되고 있다. 북한인권법안은 2005년부터 11년간 발의와 폐지를 반복하다가 결국 2016년에 제19대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가까스로 제정되었다. 당사자국인 한국은 2004년 미국의 북한인권법, 2006년 일본의 북한인권법보다도 제정이 상대적으로 늦었다.








그 배경에는 북한인권이라는 이슈에 좌·우 진영논리가 반영되면서 민주당이 북한과의 관계 - 대화와 소통을 이유로 북한 인권을 거론하는 것을 꺼린 반면, 새누리당은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으므로 주적국가의 만행을 적극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는 진영은 인권・노동・복지를 중점으로,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진영은 경제・안보에 중점을 둔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하는 진영 중 일부는 북한을 화해・협력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보다 나은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교류 추진을 위해 탈민들의 목소리를 상대적으로 불편해하기도 했다. 이러한 불편함은 반체제 목소리가 북한이 남북 협력과 교류를 꺼리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진영은 북한 인권과 탈북민 인권에 대해 진심인가. 북향 여성들이 동향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하거나 피해사실을 이야기할 때 그들은 같은 북한 사람끼리의 일이고, 정치적으로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기에 북향 여성들의 인권유린에 침묵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북한체제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일부 북향남성들만 조명함으로써 북한 인권을 정치적 도구화하였다. 결국 남한 사회 내에서 목소리가 거의 없는 북향 여성은 탈북민 사회에서도 격리된 계층이자 새로운 하위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반도는 70년의 분단 동안 한국전쟁을 거친 화약고 상태로 서로 분노하고 원망하며 서로의 체제를 부정하고, 상대 체제에서 온 사람들은 각 진영 논리에 맞춰 이용당해왔다. 탈북민들은 그 진영논리에 따라 철저히 이용당하는 존재였고, 우리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북향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살아왔다. 남한의 안보관을 기초로 구성된 국정원 조사, 하나원에서의 강제 교육, 신변보호담당관 배정 과정은 국가가 탈북민을 ‘이중간첩’으로 간주하고 감시・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기존의 냉전 체제와 군사주의적 논리를 극복하고 걷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가 북한인권재단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북한인권’ 개념이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념화, 정치화 되어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북한 인권’ 에 대한 정치적 담론에서 벗어나,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코리아 인권’ 의 논의가 필요하다. 북한인권법의 북한인권의 범위를 북한영토안의 북한사람들의 인권뿐만 아니라 남한에 거주하는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북한 인권’을 ‘코리아 인권’으로 확장할 때 북한에 제기하는 인권 문제의 진정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남한 내 거주하는 탈북민들의 인권까지 함께 논의할 수 있다.



지금까지 탈북민 지원법은 있었지만 탈북민 인권법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북한 인권 논의가 공허한 정치적 담론에 그쳐왔다. 북한 인권을 ‘한반도에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인권’으로 확장할 때, 북한인권재단은 유의미하다. 또한 북한 인권의 범위 확장은 기존에 정치적으로만 논의되던 북한 인권이 ‘인류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재구성된다는 점에서 한반도 인권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전수미 변호사

 

“나는 보수·진보 모두에 이방인…‘북한 사람’만 본다” - 시사저널

“나는 보수·진보 모두에 이방인…‘북한 사람’만 본다” - 시사저널

“나는 보수·진보 모두에

이방인…‘북한 사람’만 본다”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승인 2022.01.02


[랭면과 철조망 ⑯] 北 인권 지킴이 활동하다 ‘민주당의 입’으로 변신한 전수미 변호사


“더불어민주당에서 그 사람을 영입했다고?”

전수미 변호사가 최근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으로 임명되자 주변에서 보인 반응이다. 15년 넘게 북한 인권 문제 대응에 앞장서온 전 변호사다. 2005년부터 비정부기구(NGO)에 몸담았다가 2014년 법조인이 된 이유도 더 체계적으로 탈북민과 북한 주민들을 돕고 싶어서였다. 그가 그저 순수하고 치열하게 활동하는 동안 ‘북한 인권’이란 키워드는 보수 정치권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진보 정치권은 북한 인권 문제에 아예 손을 놓았다’는 인식까지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전 변호사가 민주당에 둥지를 튼 것은 의외였다.
ⓒ시사저널 박은숙

15년 넘게 북한 인권 문제에 매진

요즘 전 변호사는 여당 부대변인으로서 다양한 사안에 관해 논평하는 동시에 이재명 대선후보의 대북 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 논의를 위한 플랫폼인 화해평화연대 운영, 탈북민 법률 지원 등 기존 업무도 병행한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강행군이다. 2021년 12월29일 서울 영등포의 화해평화연대 사무실에서 전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손에 짐을 잔뜩 들고 나타났다. 막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통령표창을 받고 오는 길이었다. 표창장에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의 인권을 개선하고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는 수여 이유가 적혀 있었다.

현 정부·여당이 북한 인권과 탈북민 문제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상근부대변인직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북한 인권 관련 단체나 활동가들은 아무래도 국민의힘 등 야당 쪽과 많이 협업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인권 이슈에 대한 관심도와 자본력 면에서 보수 정치권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은 보수 정치권이든 진보 정치권이든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보수 정치권은 북한 인권을 정치적 도구로 삼으려는 성향이 강했다. 내가 가장 문제시해온 부분이다. 적어도 민주당은, 노력하면 탈북민과 북한 주민들을 어떤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한 명 한 명을 귀한 사람으로 대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고민하다가 제의를 수락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이번에 민주당 당직을 맡기 전부터 NGO에서 일하는 지인들은 ‘정당 활동의 기회가 오면 일단 들어가고 봐라’라고 강하게 조언했다. 원래 정치 입문에 뜻이 없었고 스스로 여러 기회를 차단하기도 했다. 정당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뛰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이 모습을 본 한 여성단체 관계자가 화를 낸 적이 있다. ‘필드에 오래 있는 동안 바꾼 게 뭐가 있느냐’는 거다. 남한 사회에서 피해를 본 탈북민들을 도우며 승소하고 가해자들을 법정 구속되도록 하는 등 성과가 없진 않았다. 그런데 정말 근본적으로 바뀐 건 없었다. 당장 민주당으로부터 제안을 받기 전날에도 내가 지원하던 여성 탈북민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남한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그 여성은 내게 전화해서 ‘이런 문제에 아무도 관심 없고 경찰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여성 탈북민들을 다 버린 것 같다’며 절규했다. 법·제도 개선으로 피해를 유발하는 구조를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북한 인권의 정치적 도구화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상사 1명과 중령 1명이 여성 탈북민을 성폭행한 혐의와 관련해 2019년 고소 대리를 맡았다. 군 1차 수사팀에서 ‘이길 확률이 없으니 포기하라’는 식으로 전화를 하는 등 사건을 덮으려는 움직임이 있어 기자회견을 하려 했으나, 어느 당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더구나 북한 인권을 중시한다는 보수 정치권의 냉담한 모습을 보고 ‘탈북민에 대한 존중 없이 어떻게 북한 인권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생겼다. 다른 한편에선 국내외 보수 정치권과 결탁한 일부 탈북민이 북한 인권을 도구로 삼아 돈과 명성을 얻고 있다. 그것이 탈북민 커뮤니티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해 여성 탈북민 성 착취 등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앞서 전 변호사는 2020년 8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북한 인권단체에 들어가는 후원금의 전용 실태를 폭로한 바 있다. 그는 해당 단체들을 안팎에서 면밀히 지켜본 결과 대북 전단 살포는 돈벌이(후원금 모금)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후원금 일부가 유흥비로 쓰이는 등 회계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 변호사는 북한 인권 NGO 활동 당시 룸살롱 회식 도중 남성 탈북민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개인사를 털어놨다. 그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 탈북민들과 마주하면서 마치 아무 일도 당하지 않은 것처럼 태연히 그들을 위로하는 내 모습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며 “공감이 최고의 위로라는 생각에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풍선에 담겨 날아가는 대북 전단(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연합뉴스

대북 전단 무용론 주장하는 이유도 ‘사람’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전 변호사의 진술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탈북민은 그에게 전화로 협박하거나 사무실과 집까지 찾아와 위협을 가했다. 성폭력 피해 고백으로 남편 등 가족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도 컸다. 전 변호사는 “‘그런 일’을 당한 여자를 아내로, 며느리로 둔 걸 안쓰럽게 보는 시선들에 온 가족이 충격을 받았다”면서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지 절절히 느꼈다”고 회상했다.

전 변호사는 두려움과 우울감 등으로 정상 생활이 힘든 중에도 사명을 놓지 않았다. 2021년 4월에는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개최한 한국의 대북 전단 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화상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법 시행을 비판하는 시각이 지배적인 청문회에서 전 변호사는 화상을 통해 대북 전단을 들어 보이며 “이것 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고 울부짖는 탈북민들을 종종 본다.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보다 그들의 고통만 가중시킨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논의에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인이 다양한 탈북민, 북한의 탈북민 가족과의 소통에 열려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수미 변호사(왼쪽)가 2019년 12월30일 국회에서 현 역 군 간부들의 여성 탈북민 성 착취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대북 전단에 관해 표현의 자유나 남북 관계 등 일반적인 논의 틀을 벗어나 북한 주민을 거론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국방부 소관이었던 대북 전단 살포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민간에 넘어왔다. 오래된 일인데, 유독 최근 들어 북한 당국이 전단에 반발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탈북민을 대대적으로 색출하는 등 과격하게 반응하는 게 이상했다. 알아보니 몇몇 북한 인권단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사용한 마스크, 수건, 휴지 등을 모아 대북 전단과 함께 북한으로 보내자. 그래서 북한을 궤멸하자’고 계획한 정황이 확인됐다. 북한 당국도 이를 파악해 그렇게 노발대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정권이 아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재 북한 주민 대부분은 취약한 면역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대북 전단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가면, 대북 전단이 생화학무기나 다름없게 돼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북한 주민들이 대북 전단을 주워서 볼 리도 만무하다.”



모든 대북 전단을 ‘생화학무기’로 치부해선 안 되지 않나. 법으로 무조건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게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물론 (후원금 모금이 아닌)선교 등 순수한 목적으로 조용히 대북 전단을 보내는 단체들이 있다. 북한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급박한 상황이 지나가면 논의를 거쳐 재허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풀어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

‘남한 내 북한 인권 관련 정보가 1990년대 기준에 머물러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의 인권 의식이 다소 개선됐다’고 지적해 왔다. 북한 정권을 인권 문제로 비판하지 말자는 건가.

“전혀 아니다. 북한 인권 문제에 투 트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유엔 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에 참여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당국의 인권침해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 국가 지도자로 인정받기 원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미국, 일본 등처럼 북한을 공격하는 형태로 인권 문제에 대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 논의는 탈북민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결국 선결과제는 탈북민 인권 개선이란 말로 들린다.

“탈북민들에게 대뜸 ‘통일의 주역’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하면 정말 싫어한다. 남한에 정착해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쁘고 종종 멸시와 차별까지 당하는데,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겠나. 탈북민들에 대해 무지하고, 그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통일도 멀어질 뿐이다. 탈북민들은 자신의 가족 등 북한 주민들과 수시로 통화한다. 북한 주민들이 탈북민들로부터 ‘남한에 오니 괴롭다’는 말을 계속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화해평화연대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

“한반도 문제는 남북(南北) 갈등, 남남(南南) 갈등, 남한 내 탈북민 간 갈등 등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로 터져나오고 있다.
화해평화연대는 탈북민과 비탈북민 모두가 화해를 통해 진정한 평화에 이를 수 있도록 담론의 장을 제공하고자 2021년 8월 설립됐다.”

‘화해’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렇다. 우리 사회가 탈북민들을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슈화·도구화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이 아닌 다른 지역, 성별 등을 놓고도 비슷한 일이 펼쳐진다. 나 역시 서울에 와서 지방 출신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이 있다. 탈북민, 특히 여성 탈북민들은 오죽할까. 화해평화연대의 시작은 ‘나 같은 사람을 더는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차별을 넘어 전쟁의 상흔까지 보듬는 화해가 선행돼야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도모할 수 있다.”

앞으로의 비전은.

“양 진영으로 나뉜 대한민국에서 나는 항상 이방인이었다. 소신대로 북한 인권운동을 하며 보수에서도 진보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아울러 두려움과 불안함 때문에 선인장,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는 탈북민들을 보듬느라 피를 뚝뚝 흘려 왔다. 그래도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가 서로 차별하지 않고 환대하며, 얽히고설킨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볼 것이다. 지금은 정당에 들어왔으니 평소 정치권에 아쉬웠던 부분들을 해소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얼마 전 민주당 대선 선거대책위원회에 북한 인권을 도구로 삼지 않고 신실하게 활동해온 탈북민들을 적극 소개했다.”
#전수미#변호사#민주당#탈북민#북한인권#이재명#북한#김정은#대북전단#윤석열#국민의힘#더불

2023-05-16

[차세대리더-법조] 전수미 변호사 - 시사저널

[차세대리더-법조] 전수미 변호사 - 시사저널



차세대리더-법조] 전수미 변호사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승인 2020.10.21 
변함없는 북한 인권 지킴이



전수미 변호사는 '북한 인권 지킴이'로 통한다. 전 변호사는 "어릴 때 친구를 잃은 슬픔으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한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사람들은 왜 가까이에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니?'라는 말을 듣고 머리에 망치를 맞은거 같았다"면서 "그 직후부터는 북한인권 NGO에서 일하며 외부와 북한이탈주민들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고, UN에 북한인권 실태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전 변호사는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2014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법조인이 된 것도 북한이탈주민을 돕기 위해서다. 전 변호사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민원 전화가 오면 그냥 넘기거나 단체의 다른 변호사님들을 소개 해 드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북한이탈주민들이 법정 구속당하고 변호인 조력이 필요한데도 변호사님들은 다들 바빠시더라"면서 "'그럼 내가 법공부해서 도와드려야 겠다”'라고 마음 먹게 됐다. 그 뒤로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 3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고, 이렇게 변호사가 됐다"고 밝혔다.

전 변호사는 지난 8월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해 북한 인권단체의 방만한 운영 실태를 고발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 변호사는 “북한 인권단체에 지급된 후원금 일부가 유흥비 등으로 쓰이며, 영수증도 제출하지 않는다”면서 “후원금을 빼돌리기 위해 대북 전단에 쓰이는 풍선 등의 장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 변호사는 탈북민 신변 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 간부가 탈북민 여성을 장기간 성폭행한 사건의 피해자 법률대리를 맡고 있다. 전 변호사는 지난 7월28일 해당 경찰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는 "북한에서 온 여성들의 지원에 마음을 다하는 건, 제가 NGO에서 일하면서 겪은 지역차별, 여자라는 멸시, 성폭행 때문이다. 북한에서 온 여성들은 남한에 오기까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멸시와 성적인 고통을 받는다"면서 "(그래서) 저같은 피해자를 한명이라도 더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내가 겪은 일들을 다른 북한여성들이 겪지 않았으면 해서, 단 한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어서 이렇게 북향민(북한이탈주민) 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여성들이 자꾸 자기 탓을 하면서 자살기도를 하시더라. 아무리 빌어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당신이 당한 피해는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 스스로 탓하지 말고, 죽지 말고 우리 함께 하자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제가 과거에 경험했던 일을 미투했다"면서 "그 다음날부터 저에게 쏟아지는 연락은 다 괜찮은데, 문제는 저희 가족-제 남편에게 지인들이 연락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 상태를 걱정하기 보다는 ‘네 부인이 과거에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도 결혼했냐’ 며 마치 그런 여자와 결혼한 남편을 불쌍하다는 식으로 위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순간 한숨이 나오더라. '아. 이게 현실이구나. 아직 대한민국은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이렇게 앞과 뒤가 다른 남한땅에서 살아야 하는 북한여성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 없다. 이들을 위해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전 변호사는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자문위원,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지원특별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법무부 통일법무지원단 자문위원, 화해평화연구소 소장 등을 맡고 있다.

그는 "진정으로 헌법에 기초해 북향민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각한다면, 목숨걸고 이곳에 오자마자 시설(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가두고 본인(정부)들이 원하는 ‘정보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면서 "국가정보원의 ‘북한이탈주민 관리지침’, 경찰청의 ‘북한이탈주민 관리지침’ 등은 법적인 근거도 없는 내부 지침이고, 그들이 행하는 북향민에 대한 인권유린은 상상을 초월한다. 북향민들을 ‘북한 정보획득’의 수단,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감시하는 이 모든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없애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어 "2019년 북향민 변호사 1호가 탄생했다. 북향민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북향민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투자를 하려고 한다. 또한 북향민들과 남한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도록 제가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함께 봉사하며 기도하길 < 인人터뷰 < 인터뷰 < 기사본문 - 주간기독교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함께 봉사하며 기도하길 < 인人터뷰 < 인터뷰 < 기사본문 - 주간기독교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함께 봉사하며 기도하길
기자명 김태훈 기자
승인 2022.12.29 

전수미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 대표 변호사






최근 들어 방송에서 전수미 변호사를 자주 볼 수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국가배상 청구 공익제보센터를 만드는 등 전수미 변호사의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을 돕는 NGO 활동가 출신인 전 변호사는 약 20년간 북한인권 활동가이자 북한이탈주민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오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 하원 산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개최한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참여해 대북전단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화해평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법제개선과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연세대 통일연구원, 법무부 통일법무과 사무관, 대한변협 북한인권특별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수미 변호사를 만났다.



시민단체 활동 중에 밤새워가며 변호사 공부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명으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게 되셨나요?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탈북 여성들의 도움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정작 관련 단체에서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일하는 여성인 저 또한 단체에서 인권 유린을 당하면서 소외되는 여성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게 되었고요. 단체 관련 변호사님들도 본인 생계로 바쁘셔서 실시간 지원이 힘들어지자 단지 활동가 중 한명이었던 저는 ‘아 그냥 내가 법을 공부해서 이 분들을 도와드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법 공부를 했고, 무리해서 응급실도 여러 번 실려가면서 어렵게 변호사가 되었죠.




북한이탈주민 지원 공로로 작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하셨고, 변호사님께서 제안한 “북향민”이라는 용어도 인상 깊습니다. 북향민 지원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 인권활동가로 시작할 때 저는 북한에 대해 관심이 없었어요. 제 친구가 성범죄 피해로 세상을 떠나고,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인권활동가로 일하면서 사창가로 팔려 온 북한 소녀들을 만났죠. 외국인 친구가 왜 가까운 북한 사람에게는 관심 없냐는 이야기를 들으며 남한 사람인 내가 그들을 도와야 겠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작년에 창립하신 화해평화연대(화해평화연구소)는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오랫동안 북한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고 섬기면서 북한 이슈만으로 남남갈등, 남북갈등, 다른 국제 관계가 모두 연계된다고 느꼈어요. 이 이슈를 좀 더 평범한 일상으로 가져와서 나누는 장을 만들고 싶었고요. 정치적 맥락을 배제하고 북한 청년들과 남한 청년들이 교류하는 공간과 기회를 만드는 시도였죠. 그래서 북향민들과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단법인으로 만들었답니다. 남북한 출신의 청년들이 주기적으로 만나서 교류하기도 합니다. 남한 청년들이 북향민 청년들에게 컴퓨터로 파워포인트를 만들거나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 북향민 청년들은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숭실대학교 평화통일연구원 교류협력센터장으로 활동하시는데, 주로 어떤 연구와 사업을 담당하고 계시는지요?

저는 국제인권법과 남북관계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어요. 특히 남북한의 정치와 외교 안보에 대해 연구하고 관련 논문과 책을 써왔지요. 연구 분야는 북한이탈주민이나 통일연구에서 시작하여 북향여성, 평화연구로 나아가고 있어요. 근래 저작으로 『린치핀 코리아』(공저), 『통일로 가는 보훈』(공저), “북향여성이 겪는 국가폭력에 대한 고찰”, “북향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법적 고찰”, “북한 인권법에 대한 소고” 등이 있습니다. 연구원 교류협력센터의장으로서 영국 대사, 통일부장관, 우크라이나 대사, 전 러시아 대사 등 한반도 문제 관련 전문가들을 모시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숭실평화통일포럼과 국제학술대회를 기획, 개최 중이예요.




10·29 참사 유가족분들을 위한 지원 활동도 하시는데요, 굿로이어스(Good Lawyers) 공익제보센터 활동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제가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인권단체 내에서 자행되는 또 다른 인권 유린의 행태를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하고 외부에 알려서 재발을 방지하고자 굿로이어스 공익제보센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공익제보란, 한 조직의 구성원이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부정과 비리를 외부에 알림으로써,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지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동안 주로 인권단체에서 근무하면서 임금 착취, 성범죄 피해, 폭행, 횡령 등 사건에 대해 공익제보센터에서 제보를 받고 대리인으로서 단체의 감사를 요청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주로 조직 내에서의 피해는 조직에서 입막음을 하기에 인권유린 실태가 상당한데요. 그럼에도 용기를 낸 피해 당사자를 적극 보호하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단체의 부당한 지점을 개선하도록 감사 요청이나 소송을 진행하여 사회 정의 실현과 피해자 권리를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강의를 들었던 제자의 요청으로 이번 이태원 참사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어요. 북향민 가족과 외국인 친구들까지 제 주위에 피해자가 많아서 너무나도 가슴 아팠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활동을 할 때 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계시는지요?

처음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요청으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애도의 기간과 방법, 강도를 정해버리고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국가에 대한 비판을 ‘죽음의 정치화’, ‘재난의 정치화’라는 이름으로 침묵을 강요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국민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선제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막상 소송을 시작하자 응원의 메시지와 연락과 함께 욕설과 비난의 연락도 같이 받고 있는데요. 같이 함께 지원하시는 변호사님들에게 폐가 될까 죄송하고 걱정이 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제가 해야 되는 일을 하려 합니다.



변호사님께서 하시는 여러 활동 가운데,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관심 갖고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먼저 한국 교회에서 북향민 사역에 대한 시각을 유연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북향민들을 위에서 아래로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존재, 시혜받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동등한 인간, 한민족 당사자로서 그들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또한 10월 29일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시고, 그날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야 했던 꽃다운 청년들을 안타깝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유가족의 눈물을 함께 닦아 주고 온 마음을 담아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 활동하시면서 느끼시는 점이 궁금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인의 위상이나 기대하는 점 또는 기독교인이 더 잘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사회에서 기독교는 순수한 종교로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기 보다는, 정치와 이념으로 기독교 내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여러 개로 쪼개어져 화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하나님이 바라보신다면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인의 전도는 기독교인 스스로가 일반 사람들에게 ‘아 정말 기독교인이란 멋지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감화 속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모범을 보이고, 가장 낮은 곳에서 온 마음과 진심을 다해 한국 사회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한다면, 어느 순간 우리 주위 분들이 우리와 함께 봉사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와 자매로서 함께 웃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또한 제가 북한 인권 활동과 사역을 20년간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신앙 덕분이예요. 신앙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런 활동들을 한다고 제게 어떤 보상이 있지 않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동안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활동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특정 영역의 이익이 아닌 한반도, 북한, 탈북민의 보편적인 인권을 지키는 일에 힘쓰려고 합니다. 적어도 저에게 신앙과 기도는 앞으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아요.



김태훈 기자 cnews1970@naver.com

전수미 변호사 프로필, 전수미 나이 학력 고향, 전수미 민주당 대변인

전수미 변호사 프로필, 전수미 나이 학력 고향, 전수미 민주당 대변인
전수미 변호사 프로필, 전수미 나이 학력 고향, 전수미 민주당 대변인
카테고리 없음
2023. 1. 10. 16:36
전수미 프로필

5/16/23, 11:49 PM 전수미 변호사 프로필, 전수미 나이 학력 고향, 전수미 민주당 대변인
https://cwwc.tistory.com/entry/전수미-변호사-프로필-전수미-나이-학력-고향-전수미-민주당-대변인 2/6
  • 변호사
  • 더불어민주당 정책위부의장
  • 전수미 나이
  • 1982년생
  • 전수미 고향
  • 전라북도 군산
  • 전수미 학력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 전수미 경력
  •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 법무부 통일법무지원단 자문위원
  • 통일부 북한인권조사자문단 자문위원
  • 성범죄 피해자 지원 TF위원장
  • 사단법인 화해형화연대 이사장
  • 숭실대학교 숭실평화통일연구원 교수
  •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
  •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 1982년생, 전북 군산 출신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 2014년 제3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됐다.
  • 출처- 전수미 변호사 페이스북

변호사가 되기전부터 탈북민을 돕는 NGO에서 활동했고, 현재도 탈북민 인권변호사로 활동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2022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
의장을 맡게 되었다.
탈북민 지원단체 '화해평화연대'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대
북전단을 살포하는 것이 북한 인권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가족을 위협
하게 된다'며 대북전단 살포 반대입장을 보였다.
티비조선 등 종편 채널의 진보좌파 측 패널로 종종 출연하고 있다.
저서로는 '통일로 가는 보훈', '보훈의 여러가지 얼굴' 등이 있다

전수미 변호사 나이 프로필 고향 학력 결혼 남편

전수미 변호사 나이 프로필 고향 학력 결혼 남편



전수미 변호사 나이 프로필 고향 학력 결혼 남편
78734 2020. 8. 4. 12:27


2020년 3월 21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는 근래 최귀일(나이는 45세, 로스쿨 변호사시험 1회쪽) 법무법인 강호 변호사와 아울러서 전수미(나이는 38세, 변시 3회·) 굿로이어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법률상담·자문 위원으로 위촉했답니다.





- 전수미 얼굴 사진

하나원이 변호사를 탈북민의 정착 지원을 위한 자문위원에 위촉한 것은 처음이랍니다. 이 두 변호사는 하나원에 법률자문을 하는 한편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법률상담 및 법률교육을 담당하게 된답니다.





이들은 지난 2년 동안 매주 무료 법률상담 및 법률강의를 진행하다 지난 18일 정식 자문위원에 위촉됐답니다. 임기는 1년이며 연임할 수 있답니다.



탈북민을 돕는 NGO 활동가 출신인 전수미 변호사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는 것과 아울러서, 자신이 설립한 화해평화연구소에서 법제개선 및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연세대 통일연구원과 더불어서, 법무부 통일법무과 사무관, 대한변협 북한인권특별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답니다(전수미 프로필 경력이력 누구)





한편 전수미 변호사는 "북향민(北鄕民)과 함께 한 지 정말로 15년이다. 북향민들이 새로운 보금자리인 한국에서 보다 나은 정착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다"며 "첫 발로 내디딘 하나원에서부터 충분한 법적구제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한편 전수미 고향 출생지, 결혼 남편, 학력 학교 대학교 등은 미공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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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성폭행 피해 증언 전수미 변호사 주장 검증해보니… : 월간조선

[추적] 성폭행 피해 증언 전수미 변호사 주장 검증해보니… : 월간조선



성폭행 피해 증언 전수미 변호사 주장 검증해보니…
북한인권단체 회식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데… “전수미 증언 대부분 거짓”(당시 함께 일한 동료)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 민주당, 전수미 변호사 내세워 탈북단체 이미지 훼손
⊙ 전 변호사 대학 시절 북한민주화운동본부서 인턴으로 일해
⊙ 전 변호사 외통위서 “북한인권단체 룸살롱 회식서 성폭행당해” 증언
⊙ 당시 함께 일한 캐나다인 산드라 “룸살롱 간 적이 없다”
⊙ 전 변호사 “후원금 받아 유흥비로 썼다”
⊙ 당시 담당자 “NED 후원금 영수증까지 모두 제출”

법무법인 굿로이어스 소속 전수미 변호사가 지난 8월 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文在寅) 정부 들어 북한인권 관련 활동들이 위축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 6월 대북(對北)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어 박 대표와 관련 단체 관계자를 소환 조사했다. 통일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에 대한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가세해 좌파 성향의 여러 북한인권 활동가들을 불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증인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하나같이 박 대표의 전단 살포에 대해 비판하고 북한인권단체들의 후원금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들 중엔 일부 사실이 아닌 내용을 진술한 참고인도 있었다.

법무법인 굿로이어스 소속 전수미 변호사의 경우가 그 한 예다. 전 변호사는 지난 8월 3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2005~2006년 북한인권단체에서 활동할 때 탈북민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인권단체들이 후원금을 받아 룸살롱, 찜질방 등 유흥비에 사용한다고 증언했다.

당시 국회 외통위에 참고인으로 나와 전 변호사가 한 말이다.


“2005년부터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북한민주화위원회 등 북한인권단체에서 활동해오다가 탈북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현재) 탈북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다. 과거 인권단체에서 일하면서 북한민주화운동본부가 후원금을 유흥비로 지출한다고 미국 후원단체로부터 항의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함께 일한 동료들의 증언은 조금 다르다.

전 변호사와 함께 일했던 A씨는 “(전 변호사가 말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때 그 사람은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직원이나 회원이 아니었다”며 “그 사건은 성폭행이 아니라 한 탈북민 남성이 술에 취해 신체 일부를 만지려고 했던 성추행 사건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에서 받은 후원금으로 룸살롱에 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미국이 어떤 나라인데 당시 그런 사건이 있었다면 당장 후원을 중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미국 단체는 지금도 북한인권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전 변호사는 당시 北 인권단체 대외협력실장 아닌 인턴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이 지난 7월 27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탈북민단체 설립허가 취소에 대한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전 변호사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은 부분을 여러 곳 발견했다.

먼저 전 변호사가 당시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맡았다는 직책부터 사실과 다르다. 전수미 변호사는 8월 3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 참고인 자격으로 증언한 다음 날인 8월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해 자신이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국제팀장과 대외협력실장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 변호사는 당시 인턴이었다. 그때 해당 단체에서 일했던 정광일 노체인 대표는 “전 변호사는 대학생이었다. 아무리 영어가 뛰어나고 일을 잘한다고 해도 어느 단체가 대학 저학년 학생을 국제팀장이나 대외협력실장으로 임명하겠느냐”며 “당시 운동본부에는 전 변호사 말고도 한국어를 구사하는 캐나다 국적의 직원이 있었기 때문에 만약 국제팀장을 하면 그 직원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사무국장이었던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당시 전 변호사는 말도 많이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일만 하다가 퇴근하곤 했다”며 “특히 전 변호사는 매일 출근한 것도 아니다. 한 주에 한두 번 정도 출근을 했다. 그는 다른 업무는 거의 하지 않고 단체에서 발행하는 《정의》라는 잡지를 만드는 일과 영어를 번역하는 일에 도움을 줬다”고 했다.

또 전 변호사는 해당 단체에서 6~7년 정도 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턴으로 일하던 전 변호사는 당시 채 1년도 일하지 않았다고 당시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근무한 직원들이 증언했다.

전 변호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현정 앵커의 ‘얼마 동안 일했느냐’는 질문에 “거의 6~7년 동안 해왔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 앵커가 재차 “6~7년 동안 그 단체 안에서 그런 일들을 하셨던 변호사세요?”라고 말하자 전 변호사는 “네”라고 답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당시 임원으로 일한 A씨는 “전 변호사는 우리 단체에서 1년도 일을 하지 않았다”며 “제 기억이 잘못된 줄 알고 당시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로 확인했고, 그들 모두 전 변호사가 1년도 되기 전에 그만뒀다고 입을 모았다”고 말했다.

특히 전수미 변호사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뿐만 아니라 황장엽 선생이 창립한 북한민주화위원회에서도 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부위원장이었던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전 변호사를 기억하지 못했다.

김 대표는 “당시에는 북한인권과 관련해서 일하는 남한 출신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지금도 다 기억한다. 하지만 전 변호사는 위원회에서 우리와 함께 일했던 바가 없다”고 했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도 전 변호사가 위원회에서 일한 바 없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가 우리 단체에서 일했다고 해서 과거 황장엽 선생의 비서를 하던 박춘하씨에게 물어봤다”며 “그런데 당시 전 변호사는 위원회에서 일한 적이 없으며 그런 제도도 없었다. 당시 직원은 사무국장과 비서인 본인뿐이었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인권 관련 단체 후원금 받아 유흥비로 사용?

전 변호사는 또한 국회와 언론매체 인터뷰에서 미국 NED(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에서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왜 자신들이 지원하는 자금을 용도에 맞지 않게 유흥비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고 말했다.

통상 시민단체에서 미국이나 정부의 후원을 받게 되면 해당 단체 직원이 담당자로 선정되어 해당 후원금을 관리하게 된다. 하지만 전 변호사는 당시 인턴이었고, NED 후원금 관리자는 따로 있었다. 또한 NED는 한국에 직원을 상주시켜 북한인권단체나 일반 단체를 지원하기 때문에 미국 본사에서 직접 전화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변호사가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일하던 때 NED 담당자로 일한 박광일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 대표는 “제가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일하면서 NED 후원금을 처음 받았지만,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모두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NED 후원금이 잘못 사용되어 수정하는 일이 있긴 했다. 하지만 유흥비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탈북민들에게 강의료가 잘못 지급된 것이 문제가 되어 수정 작업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NED가 북한인권단체들을 지원하면서 처음 얼마간은 영수증이나 증빙서류 없이 지원한 바도 있긴 하지만,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영수증과 증빙서류를 제출했다고 한다.

김성민 대표는 “NED가 북한인권단체들을 지원하면서 얼마간은 영수증이나 증빙서류를 받지 않고 지원해줬다”며 “당시 여러 곳이 NED 후원금을 받아 단체를 운영하고 해당 사업들을 했다. 나중에 NED가 영수증과 증빙서류들을 요구했지만 그 이전엔 아무 조건 없이 후원을 해줬다”고 말했다.

당시 NED 후원금을 받아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북한인권단체 B 대표는 “우리도 NED 후원 사업에 공모해서 돈을 받은 적이 있다”며 “그런데 그때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미국에서 후원금 사용처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전 변호사와 함께 일했던 캐나다 국적의 산드라 파이(Sandra Fahy) 일본 소피아대학(Sophia University) 인류학 부교수는 “나와 전수미씨는 이곳(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여러 문서를 번역하는 일을 함께 했다”며 “나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일하면서 북한민주화운동본부가 후원금을 횡령이나 유흥비로 사용하는 것을 목격한 바가 없다. 전수미씨가 얘기하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그날도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다.


전 변호사 “나는 탈북 남성에게 성폭행당했다”

전수미 변호사는 국회 증언과 언론 인터뷰에서 “2005년 당시 탈북민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북한인권단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사건은 이렇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식을 했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 2차로 직원들과 유흥주점에 갔다. 당시 다들 어느 정도 술에 취해 있었다. 이들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고, 그러던 중 전 변호사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나가자 술에 취한 탈북민 남성이 뒤를 따라 화장실로 왔다. 이 남성은 여자 화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전 변호사에게 강제로 키스하고 옷을 벗기며 부적절한 행동을 하려 했다.〉

산드라 부교수는 현재까지 해당 사건이 벌어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자는 지인을 통해 현재 미국 하버드 로스쿨에서 인권 프로그램 방문 연구원으로 있는 산드라 부교수에게 그날의 일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산드라 부교수는 “그날 우리는 많은 사람과 저녁을 먹고 유흥주점이 아니라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름까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50대 탈북 남성이 전 변호사를 만지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산드라 부교수의 말이다.

“나는 당당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만약 잘못된 행동이 있다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말합니다. 그날 전수미씨가 화장실에 다녀와서 그 남성이 자신을 만지려고 했다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불쾌한 생각이 들었지만 남성이 취해 벌인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전 변호사는 저에게 성폭행(Sexual assault)을 당했다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당시 우리는 영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만약 전수미씨가 나에게 말을 했더라면 똑똑히 기억하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 우리는 노래방을 떠났고, 전씨와 저는 함께 택시를 탔는데 그 남성도 우리와 함께 탔습니다. 당시 그 남성은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택시에서 내리자 그 남성은 함께 내렸고, 우리가 사는 집으로 들어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손하지 않은 한국어 투로 돌아가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성은 곧바로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는 그냥 그것을 술에 취한 나이 많은 남자의 무례한 행동 정도로 생각하고, 더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취했을 때 이상해지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단 한 번도 그가 무서웠거나, 우리의 안전에 대해 걱정이 되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수미씨가 말하는 그가 화장실에서 수미씨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려 했던 그때, 저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을 드릴 수 없지만, 저는 그녀가 그 일이 일어난 지 몇 년이 지나서 그 일에 대한 불쾌함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놀랐습니다. 우리는 그 후 계속 같이 NGO에서 일했고, 그녀는 그 일을 두번 다시 제게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A씨는 “해당 남성은 50대 이모씨다. 이 남성은 과거 북한 정찰총국에서 일하다 넘어왔고,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소속도 회원도 아니다. 이 남성이 저지른 성폭행이든 성추행이든 이에 대해 옹호할 생각은 없다. 이는 모두 범죄이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전 변호사의 북한인권단체 문제에 대한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고 거짓인 것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전 변호사는 해당 사건이 발생하고 난 다음 이를 당시 대표에게 문제 제기를 했지만, 이 사건으로 단체가 없어지고 후원도 끊긴다는 이유로 묵살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로 있었던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이를 공론화하려고 했다. 왜냐면 그 사람은 우리 단체 직원도 아니고 회원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 단체가 문을 닫거나 그럴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우리 직원이 그런 일을 당했기 때문에 더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당시 그냥 술에 취한 남성의 잘못된 행동으로 보고 잘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해당 사건이 정말 전 변호사가 말하는 성폭행이었다면 당시 함께 일했던 산드라 씨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은 불합리한 일에 대해 확실한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며 “그때 감추려고 했으면 산드라 씨가 이를 공론화했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그때 문을 닫았을 것”이라고 했다.




“전수미 변호사는 북한인권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전수미 변호사는 지난 8월 3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북한인권단체들의 부조리에 대해 진술하면서 북한인권단체들을 속속들이 아는 듯한 발언들을 했다. 하지만 전 변호사의 지인 등 그를 아는 사람들 증언에 따르면, 전 변호사는 2006년 이후 북한인권단체에서 일한 바가 별로 없다고 한다.

평소 전 변호사와 친분이 두터운 C씨는 “전 변호사는 북한인권단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 과거에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일하고 나서 다른 데서 별로 일한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국회에서 얘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북한인권단체 K 대표는 “얼마 전까지 연락했었다. 그런데 국회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저분이 저렇게 북한인권단체를 잘 알고 있나 싶더라”며 “그래서 이후에 물어보고 싶어서 다시 전화를 했었는데 연락이 안 되더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북한인권단체 이미지 훼손시켜 후원금 막으려”



지난 6월 박상학(오른쪽)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다. 사진=뉴시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북한인권단체 대표들과 단체 관련자들은 모두 “문재인 정부가 북한인권단체들의 후원을 끊으려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전수미 변호사도 국회에 출석해 “북한인권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와 횡령을 막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모두 끊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광일 대표는 “후원금을 받아 유흥주점에 드나들고 횡령해 개인이 착복하는 행위를 하는 단체들은 당연히 지원금을 끊어 이를 막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북한인권단체들이 더 많다”며 “전 변호사는 마치 모든 북한인권단체들이 후원금으로 유흥업소에 다니고 돈을 횡령하는 듯한 발언으로 북한인권단체들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고 말했다.

박상학 대표는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는 아마 북한인권단체들이 눈엣가시일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정부와 정당, 공권력까지 동원해 북한인권단체들을 탄압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성민 대표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북한인권단체 탄압은 미국에서도 굉장히 우려하는 일”이라며 “이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면 좋아할 것은 북한 김정은 정권이다”고 강조했다.

위 관련 내용에 대해 전수미 변호사에게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전수미 변호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 변호사는 자신의 동료인 양태정 변호사를 통해 만날 의사가 없음을 전달해왔다. 기자는 양 변호사를 통해 서면 인터뷰라도 진행하기 위해 관련 질문지를 보냈지만 이에 대해서도 ‘응답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전 변호사에게 보낸 질문 중 몇 가지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하셨습니까?

-변호사님이 일하던 당시 동료들은 변호사님이 인턴이었고 1년도 일을 하지 않은 거로 말씀하시던데 맞습니까?

-당시 성폭행을 당하셨다는 곳이 유흥주점이 맞습니까?

-NED 어떤 분이 변호사님께 전화를 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름 정확히 기억하십니까?〉

양 변호사는 “전 변호사가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라고 했다.⊙

“룸살롱 화장실 부수고 날 성폭행했다” 전수미 변호사 폭로 일파만파 | 위키트리

“룸살롱 화장실 부수고 날 성폭행했다” 전수미 변호사 폭로 일파만파 | 위키트리



“룸살롱 화장실 부수고 날 성폭행했다” 전수미 변호사 폭로 일파만파


2020-08-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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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단체? 후원금 받으려고 대북 전단 살포”
“북한 성인식 비뚫어져… 화장실서 성폭행당했다”


전수미 변호사 / 뉴스1대북단체들이 미국 비영리단체로부터 후원금을 받기 위해 전단(삐라)을 북한에 날려보낸다고 주장한 전수미 변호사가 대북단체 회원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전수미 변호사는 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진술인 자격으로 출석해 “탈북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탈북 여성들을 지원해왔다. 룸살롱에서 회식을 하다 한 남성이 내가 들어간 여자화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날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처럼 성폭행 피해 사실까지 폭로한 이유는 탈북 단체들이 벌이는 전단 살포 운동이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다.

전 변호사는 “대북단체가 미국이나 단체로부터 받은 돈의 일부는 룸살롱 등에서 유흥비용으로 쓰인다”고 했다. 대북 전단이 탈북민 단체 돈벌이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외교통일위원회는 남북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 발송을 금지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자리였는데, 전 변호사로선 대북 전단 발송 금지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제가 활동했던 단체의 회원들은 처음부터 돈을 받기 위해 대북 전단을 날렸다”면서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NED(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가 영수증 처리를 요구하지 않아 미국이나 단체로부터 받은 비용을 유흥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북단체들은 지난 4년간 NED로부터 1100만달러(131억 3400만원)를 지원받았다.

전 변호사는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도 같은 주장을 내놨다.

그는 북한인권운동에 나선 계기에 대해선 “내 친구가 집안의 성폭력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친구를 돕지 못한 죄책감에 동남아 지역에서 여성들, 12세, 13세 아이들을 구출하는 일을 했다. 거기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가 ‘아니, 왜 남한 사람들은 멋있어 보이는 국제기구나 국제 NGO 활동만 하느냐. 왜 가까운 북한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느냐. 우리 같이 가서 도와주지 않을래’라고 말해 그 친구랑 같이 남한에 돌아와 북한인권단체의 국제팀장, 대외협력실장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그가 북한인권단체에서 일한 기간은 6, 7년. 그런데 어느 날 끔찍한 일을 당했다. 북한인권단체 회원들과 룸살롱에서 회식을 가졌는데 술에 취한 탈북 남성 분이 여자 화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전 변호사를 강간한 것.

전 변호사는 당시 북한인권단체 단체장한테 성폭행을 당했다고 알렸지만 ‘후원이 끊기고 단체 사람이 다 실직한다’고 답해 참았다면서 북한엔 특유의 보수적인 성문화, 여자가 당해도 말 못하는 문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 친구 잃은 마음에서 시작했고 좋은 마음으로 북한 인권 활동을 했는데 북한에서 온 분에게 성폭행을 당하다 보니까 정말 너무나 충격이 컸다”면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기도했다고 밝혔다.

전 변호사는 북한인권단체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자신이 당한 범죄를 숨겼다면서 “이게 진짜 인권단체인가라는 회의감이 들어서 그만두고 법 공부를 시작해 변호사가 됐다”고 했다.

전 변호사는 북한인권단체들이 북한 인권을 테마로 돈을 받는 등 다른 목소리로 북한 인권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대북단체들을 안과 밖에서 지켜보고 내린 결론은 대북 전단 살포는 대북 사업 아이템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날아라 청변] ‘탈북민 지원’ 전수미 변호사

[날아라 청변] ‘탈북민 지원’ 전수미 변호사


날아라 청변] ‘탈북민 지원’ 전수미 변호사
"북한인권 전문 법조인으로… 평화통일에 기여가 꿈"
강한 기자2018-02-08 오후 2:43:14







"탈북민 인권보장과 법률지원이 통일의 초석(礎石)입니다."



시민단체에서 6년간 탈북민 구출사업을 하며 쌓은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5년째 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전수미(36·변호사시험 3회)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북한인권 전문 법조인으로 성장해 인권신장과 평화통일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위원장을 맡았던 북한민주화위원회에서 대외협력실장으로 일했습니다. 중국에서 탈북민을 구출하다 공안경찰에 쫓기고 손목이 일부 절단되는 부상으로 장애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UN과 BBC에 접촉해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 실상과 탈북민의 절박한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전했습니다. 미국 부시 정부의 인권특사 임명 등 인권을 중심에 둔 일부 대북정책 변화도 끌어냈습니다."




중국서 탈북민 돕는

활동하다 쫓겨 부상도



호프집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던 그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변호사 사무실을 여는 대신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과 집단거주지 등에서 무료 법률상담과 소송지원에 전념해왔다. 그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념을 떠나 보편적 권리인 인권보장과 법률복지에 힘써야 한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법률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탈출과정에서 상상도 못할 고초를 겪은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도 편견과 냉대에 직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탈북민들은 각종 민·형사 법률문제와도 맞닥뜨리지만 무지와 두려움에 숨죽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개명처럼 간단한 절차도 큰 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탈북민의 실질적 고충을 반영한 법률상담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지원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법률가로서 북한 관련 제도 개선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연세대 통일연구원과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특별위원회, 북한법연구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10월에는 대한변협에서 우수변호사 표창을 받았다.




UN·BBC에 접촉 탈북민의

절박한 목소리도 전해



그는 최근 중국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국제질서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어를 공부하고 한중법학회 이사를 맡았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으로 연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전 변호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는 상황에 반색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 하나에 목숨을 거는 어려운 선택을 한 탈북민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지원을 강조했다.


"남북 단일팀도 좋습니다. 하지만 신뢰구축이 최우선입니다. 통일에 대해 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먼저 남한에 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장 유심히 살피지 않을까요."

[공변이 사는 法] 북한 인권 활동가에서 변호사로..."편견 없는 세상 꿈꿉니다" - 더나은미래

[공변이 사는 法] 북한 인권 활동가에서 변호사로..."편견 없는 세상 꿈꿉니다" - 더나은미래




[공변이 사는 法] 북한 인권 활동가에서 변호사로…”편견 없는 세상 꿈꿉니다”
문일요 기자
입력 2019.05.14.


[공변이 사는 法] 전수미 변호사

“자유를 찾아온 북한 이탈 주민들은 남한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에 무너집니다. 외국에 여행 갔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 나라의 문화나 법률을 잘 알지 못해서 이런저런 사고가 나기도 하잖아요? 탈북민은 언어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전수미(37) 변호사는 북한 인권활동가 출신이다. 북한 인권활동에 뛰어든지 햇수로 17년째. 이 가운데 7년은 변호사로 활동했다. 과거에는 직접 탈북민 구출사업을 진행했고, 지금은 북한 이탈주민 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이나 통일부·법무부·외교부에 접수된 탈북민 사건을 공익소송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화해평화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평범한 탈북민들이 편견과 냉대 속에 범죄로 빠지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화해평화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전수미 변호사. 화해평화연구소는 한반도 평화와 갈등 문제, 특히 한반도 내 남남갈등과 남북갈등 등을 치유하기 위해 전 변호사가 설립한 단체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북한 주민을 돕는 건 결국 ‘사람’을 돕는 일”

탈북민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분쟁에 휘말린다. 대표적인 게 층간소음 분쟁이다.

“북한 출신의 사람들은 목소리가 큰 편이에요. 마치 성난 사람처럼 이야기해요. 아주 평온한 상태인데도 말이죠. 특히 북한에는 층간소음이라는 개념이 없어서인지 법적 분쟁까지 이어져요. 어떻게 보면 간단한 문제인데 법적인 도움을 구할 데가 없어 곤란해 하는 분들이 많죠.”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다. 문제는 폭행 같은 형사사건이다. 그는 “탈북민에게 ‘김정은 XXX’라고 말해보라며 자극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면서 “명백한 인권침해 사건인데 주먹이 오가면서 결국 형사사건으로 처리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전 변호사는 소송뿐 아니라 법제도 개선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남북 교류 확대되고 실질적인 통일 절차가 진행됐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최근 집중하는 문제는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다.

“핵실험장이 있는 길주군 출신의 탈북민 한 분에게 방사능 피폭 증상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났어요. 그때부터 문헌 정보와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핵실험장 작업자의 경우 피폭 증상으로 사망했다는 증언도 있어요. 북한에서는 우라늄을 직접 채굴하는데 여기에 동원된 사람들의 안전도 문제죠. 특히 길주군에 흐르는 물이 이미 오염됐을 경우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2차 피폭의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북한이 지난해 핵실험장 폭파 현장을 국제사회에 보여준 만큼 국내에서는 ‘비핵화 후속조치를 위한 특별법’ 등 관련 법제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전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는 “북한 주민들을 돕는 건 결국 ‘사람’을 돕는 일”이라며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전수미 변호사는 북한 인권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변호사의 꿈을 키웠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프집, 부대찌개 식당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며 웃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중국서 탈북민 구출하다 죽을 고비 넘기기도

학부 시절 그는 외교관을 꿈꿨다. 정치외교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꿈을 키워가던 스무살,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은 그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친구는 가정 성폭력으로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장 친한 친구였다. 전 변호사는 “당시 친구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다”며 “무작정 인도로 떠나 1년 넘게 지냈는데 그곳에서 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열두살, 열세살 하는 어린 남자 아이들이 광산으로 팔려나가고, 여자 아이들은 성노예로 넘겨지는 인도의 실상을 목격하게 됐어요. 문득 친구 일이 떠오르면서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지에서 만난 아일랜드 친구는 그를 북한 인권활동가로 이끌었다. “옥스퍼드대에서 북한 인권을 주제로 석사 과정하던 친구였는데 ‘북한 사람들도 심각한 상황인데 어떻게 한국인들은 북미나 유럽 사람들보다 관심이 없냐’고 말하더군요. 그 길로 짐 싸서 귀국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전 변호사는 북한민주화위원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북한민주화위원회는 북한 민주화와 북한주민의 인권해방을 위해 황장엽(1923~2010) 전 노동당 비서가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이곳에서 대외협력팀장을 맡아 UN과 외신에 북한 인권 침해 실태와 탈북민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때론 중국 현지에서 탈북민 구출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공안에 쫓기다가 오른손을 다쳐 장애 판정을 받았어요. 시골 같은데 가보면 담장 끝에 유리조각 같은 걸 박아놨잖아요. 도둑 들지 말라고요. 당시 공안을 피해 담을 넘다가 유리에 손목이 찢겨버린거죠. 의식을 잃을 정도로 피를 많이 흘렸어요.”

쫓기는 몸으로 수술할 수는 없었다. 급히 귀국길에 올라 병원에 도착했지만, 끊어진 신경과 근육을 복원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당시 의료진이 오른손을 평생 못 쓸 수 있다고 했는데, 재활을 하면서 지금은 엄지와 검지를 움직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면 작업을 할 때면 일명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한다. 전 변호사는 “어쨌든 함께 움직였던 5명 전원이 무사히 빠져나와 다행”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제는 현장에서 탈북민을 직접 구출하진 않지만, 마음은 늘 함께하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와 인권을 위해 목숨 걸고 움직이는 활동가와 탈북민들을 도울 방법을 연구하고 있거든요. 앞으로는 탈북민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와 법률복지제도 마련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