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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잉여인간의 작가 손창섭씨 살아 있었다

의 작가 손창섭씨 살아 있었다

<잉여인간>의 작가 손창섭씨 살아 있었다
fabiano 0 1631 주소복사 2009.02.18 21:12





[쿠키 문화] 한국현대문학의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있던 도일(渡日) 은둔 작가 손창섭(87)씨의 행적이 30여년만에 베일을 벗었다.

1950∼60년대에 걸쳐 ‘잉여인간’ ‘신의 희작’ 등 주옥같은 단편소설로 한국 문단에 충격을 던지며 당시 사상계 주관의 동인문학상(1959)을 수상했던 손창섭은 ‘가장 뛰어난 전후 세대 작가’로 평가받던 73년 12월말 돌연 일본으로 건너간 이래 지금까지 생사마저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손 작가가 도쿄 근교 한 노인 전문병원 6인실 병실에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본보가 지난 15일 첫 확인했다.

도쿄 근교 히라시쿠루메시의 한 서민 아파트에서 부인 우에노 지즈코 여사(84)와 함께 살아온 손창섭은 지난해 9월 급성 폐기종 증세로 입원, 혼수 상태를 오가며 병마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손창섭은 지난 15일 혼미한 상태에서도 ‘선생님’이라고 호칭하자 “난 선생이 아닙니다. 선생이라고 불릴만한 인간이 아닙니다”라고 짧게 일어(日語)로 답한 후 눈물을 비치며 한동안 회한에 잠겼다.

우에노 여사가 바짝 붙어서서 귀에 대고 “30여년만에 서울에서 처음 찾아온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놀란 눈을 떠 쳐다보았고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에 옮겨탄 후 다소 의식을 회복한 듯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소설이 수록된 작품집을 보여주며 제목을 언급하자 “전혀 기억 나지 않는다”면서 초연한 미소를 보였다.

그는 지난해 8월 호흡 곤란으로 구급차에 실려 열흘 쯤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이후 온몸이 부어오르는 신부전 증세를 보여 다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나 노인성 치매까지 겹쳐 정상적인 두뇌활동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우에노 여사는 “자신이 쓴 글도 읽지 못한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백지 상태가 안타깝다”면서 순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손창섭은 73년 도일 이래 97년까지 귀화하지 않고 한국인으로 살아왔으나 일본의 외국인 등록법에 따라 매년 등록을 갱신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지난 98년 아내의 성을 따라 귀화,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涉)’로 개명했다.

우에노 여사는 “남편의 도일을 둘러싸고 한국 생활에 대한 환멸 때문이라는 등 세간에 떠도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으나 그건 전혀 사실과 다르다”면서 “일본에 나가 살겠다며 2년 먼저 떠나온 나를 따라 홀연히 현해탄을 건너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손창섭은 70세까지 일본의 주간지 '신조(新潮)'등의 청탁을 받아 글을 쓰기도 했으나 전성기 당시 인간의 심층을 파고 드는 촌철살인의 글이 아니라 주로 신변 잡기류의 에세이였을 것이라는 게 우에노 여사의 증언이고 보면 그는 일본에서 작가가 아니라 자유인 손창섭으로 살았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절대 집에 보관하지 않는 특이한 성격 때문에 어떤 작품을 발표했는지 현재로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도쿄= 국민일보 쿠키뉴스 글·사진 정철훈 기자

손창섭은?

1922년 평양의 가난한 집안에서 2대 독자로 태어났다. 14세 때 집을 떠나 만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쿄토와 도쿄에서 고학으로 중학교를 마친 뒤 니혼대학을 중퇴한다. 단편 '공휴일'(1952)로 문단에 나온 이후 전쟁이 만들어낸 기이한 공간인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 내팽개쳐진 인간의 모멸감과 허무를 압축해 보여주며 50년대를 자신의 연대로 평정해버린다. 60년대 들어 '신의 희작' '잉여인간'을 잇따라 발표하며 휴전 직후에서 4·19 사이에 물질적 결핍과 물리적 황량을 문학적으로 대응한 전후 세대 최고의 문제작가다.

[전후 최고 문제작가 ‘손창섭 살아있다’] (中) 마침내 밝혀진 은둔 30년 - 국민일보

[전후 최고 문제작가 ‘손창섭 살아있다’] (中) 마침내 밝혀진 은둔 30년 - 국민일보



[전후 최고 문제작가 ‘손창섭 살아있다’] (中) 마침내 밝혀진 은둔 30년
입력 2009-02-19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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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작가티 안내고 궁핍에도 꼿꼿… 奇人의 삶”

지난 14일 오후 2시쯤, 일본 도쿄 인근 히가시구루메시의 한 서민 아파트. 문패는 '손창섭'이 아니라 '上野'(우에노)로 붙어 있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연 순간 낯선 방문객과 맞닥뜨린 손창섭의 부인 우에노 지즈코(84) 여사는 "한국에서 찾아왔다"는 말에 헝클어진 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창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한국 사람이 집을 찾아온 건 거주한 지 33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라면서도 "옆집 사람이 들을지 모르니 한국말을 쓰지마라"고 당부했다.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과 결혼해 산다는 게 간단치 않은 일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자칫하면 이웃주민들로부터 이지매(따돌림)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 선생님은 어디 계시냐"는 질문에 그는 "폐에 물이 고여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비는 넘긴 것 같은데 의식이 왔다갔다 해요. 입원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는데 어떤 때는 문병 간 나도 못 알아봐요. 아무래도 회복될 기미는 없는 것 같아요."

집이래 봤자 좁디좁은 두 칸짜리 방이 전부였다. 거실 겸 안방인 6조 다다미방엔 밥상이 있었다. 그는 밥상에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다다미방의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손 선생은 이곳에 웅크리고 앉아 온종일 글을 쓰곤 했지요. 밥도 이 자리에서 먹고, 책도 이 자리에서 읽었지요."

겨우 궁둥이를 붙일까 말까 한 다다미 한 장에서 30년 세월이었다. 처절한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흔히 무슨 무슨 문학상을 받으려고 구걸에 가까운 작태를 보이는 게 작금의 한국 문단의 현실이라 할 때 손창섭의 은둔은 이 시대에 문학인의 옷고름을 다시 한 번 여미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일 이후 한국일보에 원고지를 우편 송고해 연재하던 장편 '유맹'(1976년 1∼10월)과 '봉술랑'(1977년 6월∼1978년 10월)도 이 자리에서 쓰여진 것이었다. '유맹'은 재일 한국인 문제를 주제화한 것이고, '봉술랑'은 원나라 지배 하의 고려시대를 다룬 것이다. 이는 손창섭이 도일 이후 민족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보여주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연재 소설을 끝으로 한국과 소식을 끊었으니 그의 단절은 31년에 이른다.

"참으로 별난 사람이지요. 평생 작가티를 내지 않았어요. 내가 한국에서 올 때 왜 그 많은 책을 버리고 왔냐고 속상해 했지만 별난 사람이려거니 하고 이해할 수밖에요. 참으로 기인다운 삶을 살았지요."


욕망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통제한 작가가 손창섭이었다. "궁핍한 생활에도 선생은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어요. 이주 초기엔 내가 한국에서 오는 약간의 인세와 서울 흑석동 집을 판 돈을 은행에 맡겨 그 이자로 꾸려나갔지요. 그나마 10여년 전에 인세마저 끊겼는데 선생은 일본에서 활동하지 않은 까닭에 연금이 나오지 않아 병원에 입원시킬 때도 애를 먹었지요."

우에노 여사는 "허리가 아파 일주일에 두어 번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면서 "아직 눈도 밝고 귀도 밝은 게 손 선생을 앞세워 묻고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허망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 끝에 천장이 내려앉아 장롱 위에 군데군데 받침대를 세워둘 만큼 궁핍한 생활의 배반 같은 게 묻어 나왔다. 그나마 손창섭이 기거하는 옆방은 붙박이장을 빼면 다다미가 겨우 4장이었다. 가난이 찍찍 흐르는 공간. 인생이 참으로 공허할 만한데도 웅크리고 앉아 원고지를 메웠으니 손창섭의 천직은 작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돈도 명예도 심지어 글에서마저도 초연한 채 인간 존재 하나만을 껴안고 살아왔던 것이다. 과연 그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지식인도 문화인도 지워버렸던 것일까. 가족 관계에 대해 묻자 우에노 여사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6·25전쟁 때 부산에서 고아 아이를 수양딸로 들였지요. 그때는 고아가 차고 넘쳐서 선생하고 나하고 의견일치를 본 것인데 이름은 영자(가명)라고 서울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녔지요. 일본에 건너와 일어 때문에 다시 1학년을 다녔는지, 지금은 결혼해 살고 있지요. 영자도 환갑 가까운 나이예요."

우에노 여사는 딸과 오가며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제가 일본 닝하다에 사둔 땅이 있는데 그곳에 집을 지으려고 하자 선생이 닝하다는 너무 추워 가기 싫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지요. 사위가 닝하다 사람인데, 선생은 닝하다에 가기 싫어하고…."

우에노 여사는 이 대목에서 "영자 아버지가∼"라고 한국어로 말하는 등 옛 시절이 주마등같이 스쳐가는 듯 가끔 울컥거렸다. "지금 소원은 내가 건강할 때 선생을 먼저 묻고 가는 것인데 그렇게만 된다면 선생의 복이지요. 내가 살아있을 때 죽었으면 좋겠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난 혼자 눈물을 흘리지요. 그런데 선생은 슬픔을 몰라요. 눈물도 없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난 다시 눈물을 흘리고…. 고베 대지진 때 오빠가 죽고 내 친정은 엉망이 되어 연락까지 두절되었으니 선생과 나는 고아처럼 서로를 의지하고 살았어요."

손창섭 옆에 우에노 여사가 있었던 게 아니라 우에노 안에 손창섭이 있었다. 도일의 이유는 문학보다 인생을 택한 순애보적 부부애에 있었다.

도쿄=글·사진 정철훈 기자 chjung@kmib.co.kr

교보문고 | 손창섭, 잊혀진 문제작가를 찾아서 - 교보문고

교보문고 | 손창섭, 잊혀진 문제작가를 찾아서 - 교보문고


지식 콘텐츠

손창섭, 잊혀진 문제작가를 찾아서
2010.09.03 . 4500






얼마 전 바다 건너 일본에서 뒤늦게 한 소설가의 죽음이 전해졌다. 『잉여인간』『비 오는 날』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전후(前後) 한국문단이 낳은 최고의 문제작가 손창섭이 지난 6월23일 일본 도쿄 근교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두 달이 지난 8월 말에야 모국에 알려졌다. 향년 88세. 지병이었던 폐질환의 악화가 원인이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이름, 하지만 오랫동안 기억해야만 할 이름, 잊혀진 문제작가 손창섭을 다시 조명해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민의 삶




손창섭은 192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얼마 후 어머니마저 재혼을 하면서 그는 할머니의 손에서 어렵게 자라야 했다. 열 네 살이 되던 1935년 만주로 떠나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그는,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찬가지로 신문 배달, 잡역부 등으로 일하며 고학으로 중학교를 마치고 한 때 니혼대학을 다니기도 했다. (대학은 마치지 못하고 중퇴하였다) 그러다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10년 간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평양으로 귀국한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와는 사상적으로 맞지 않았다. 손창섭은 1948년 월남하여 피난민의 삶을 경험하며 그의 문학적 배경으로 삼게 된다. 어찌 보면 그는 끝없이 전쟁을 피해 쫓겨 다니는 피난민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도 있다. 식민지 현실에서 태어나 10대 때는 중일 전쟁(1937년)을 겪고, 20대 때는 태평양전쟁(1941년)을, 그리고 30대 때는 한국전쟁(1950년)을 경험했다. 이 전쟁의 기억들은 그의 작품들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비정상의 시대를 살아가는 불구의 인간들 – 단편 소설




손창섭은 1949년 1949년 연합신문에 「얄궃은 비」를 연재하면서 집필생활을 시작하여 1952~1953년에 문예지 《문예》에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의 단편소설이 추천됨으로써 정식으로 등단하게 된다. 1955년에는 「혈서」로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1959년 「잉여인간」으로 제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주로 가난하고, 비뚤어지고, 아프고, 정신적 신체적 결함을 겪는다. 그가 묘사하는 공간들 또한 마찬가지다. 피난민들이 머물던 좁고 지저분한 판자촌, 어둡고 낡은 집, 음습한 골목 등이 그가 주로 그려낸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대개 비가 오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은 피난지 부산을 배경으로, 어둡고 비정상적인 동욱과 동옥 남매를 통해 전후의 암울함과 무기력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그의 대표작인 「잉여인간」은 비교적 정상적인 인물인 치과의사 서만기의 시선을 통해서 선량하지만 경제적 능력은 없고, 또 현실과 타협하여 적응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하여 외면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요즘 시각으로는 참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다 싶겠지만, 그것이 전쟁 직후의 현실이었다. 그 현실에는 어디에도 희망이 없었다. 손창섭은 그런 희망 없는 시대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냉소로 그려냈다.



동물과 괴물 < 1950년대 전후(戰後)문학의 대표작가 손창섭의 행방

동물과 괴물 < 사내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동물과 괴물
기자명김병길 주필
입력 2015.07






1950년대 전후(戰後)문학의 대표작가 손창섭의 행방이 묘연했다. 최근 그가 일본에서 쓸쓸히 작고 한 것으로 밝혀져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1955년 감옥의 풍경을 통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며 전후의 암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 ‘인간동물원초( 人間動物園抄)’를 발표했다. 소설에서 감옥의 죄수들은 동물원에서 처럼 동물적인 본능으로 위계질서를 형성하면서 생존을 이어간다.

죄수들은 때론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발광하기도 한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자행하는 폭력, 옛 권력과 새 권력의 신경전, 더 큰 권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광경이 날것 그대로 최근 연극(김수정 각색·연출) 무대에서도 펼쳐졌다. 무대에서 죄수 통역관은 “약자끼리의 싸움이란 언제나 강자를 위한 자멸”이라며 원작 소설의 대사를 통해 틀에 갇혀 사는 인간들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퇴하기전 ‘배신의 정치’를 꾸짖자 ‘동물의 왕국’이 회자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한 인터뷰에서 TV 프로그램 중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이유를 “동물은 배신을 안하니까요”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동물의 왕국’에서는 백수의 제왕인 사자도 거구의 물소와 일대일로 붙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물소처럼 덩치가 큰 사냥감은 사자도 떼를 지어 공격한다. 그리고 물소에게 당한 수사자도 늙고 쇠약해지면 젊은 수사자에게 뒤통수를 맞고 무리에서 쫓겨난다. 북극곰은 굶주리거나 번식기가 되면 새끼곰을 먹어치운다. 굶주린 배를 채우는 동시에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한다는 것이 동물학자들의 얘기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하자 ‘배신의 정치’라는 말 한마디를 놓고 떼를 지어 사냥감을 물어뜯듯 달려든 야당의원들을 보니 ‘동물의 왕국’을 보는 듯 했다. 말을 할 줄 모르는 동물들과 야수들끼리도 공포와 고통, 희열이 그들을 동요시키면 잡다하고 상이한 음성을 들려준다.
하지만 동물은 인간보다 더 나을때도 있다. 그들은 질문도 하지 않거니와 비판도 하지 않는다. 손창섭의 소설에서 처럼 동물원의 짐승들이나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있는 인간이나 그들의 운명(運命)은 다르지 않다.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괴물의 왕국'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정치판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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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 (지은이),손창섭민음사201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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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사회에서 뿌리뽑힌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상처를 그려내고 있는 손창섭의 작품집. 제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잉여인간', '비 오는 날'을 비롯하여 총 12편의 소설을 수록했다.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하는 '오늘의 작가 총서'. 1999년부터 2004년에 걸쳐 22권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2005년 새로운 디자인과 판형으로 다시 펴냈다. 2005년 판은 총 28권으로 구성되며, 작가 연보와 작품 이해를 돕는 해설(일부 작품)이 실려 있다.


목차


비 오는 날
공휴일
생활적
미해결의 장
인간동물원초
혈서
가부녀
사선기
신의 희작
포말의 의지
잉여인간
설중행
유실몽

- 작품 해설 : 전쟁 직후의 네거티브 필름 / 송하춘
- 작가 연보


책속에서


문 선생네 집을 찾아가는 길에 나는 오늘도 콘크리트 담장의 구멍에 눈을 대고 국민학교 운동장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수업 시간인 모양이다. 넓은 운동장에는 불과 육칠 명의 아동들이 선생의 호령에 따라서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완전히 발육하지 못한 인간의 세균은 앞으로 지구덩이의 피부를 파먹어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단련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공상할 수가 있는 것이다. 피부가 썩어서 는질는질 무너지고 구정물이 질질 흐르는 지구덩이를 상상하며 나는 구멍에서 눈을 떼고 침을 뱉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피부까지 근질거리는 것같이 느끼며 문 선생네 집을 향해 나는 넓은 공터를 가로질러 건너갔다.

-- 본문 95쪽, '미해결의 장'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손창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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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 1935년 만주를 거쳐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니혼대학에 들어갔으나 중퇴 후 초등학교 교원, 잡지 편집원 등을 전전했다. 1946년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1948년 월남했으며, 1949년 연합신문에 「얄궂은 비」를 연재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52~1953년에 『문예』지에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의 단편소설이 추천되어 활발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상을 받고, 1959년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지다가 1973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1976~1977년 한국일보를 통해 장편소설 『유맹』과 『봉술랑』을 연재하였으나, 이후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후 아내와 함게 도쿄에서 거주해 오다가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소설 「사연기(死緣記)」「치몽(稚夢)」「신의 희작(戱作)」 「육체추(肉體醜)」 「흑야(黑夜)」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낙서족(落書族)』 『부부』 『인간교실』 『길』 『삼부녀』 『유맹(流氓)』 등이 있다. 접기

수상 : 1959년 동인문학상, 1956년 현대문학상
최근작 : <초등 학년별 기관선정 필독서 세트 : 5학년 - 전5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D 세트 - 전12권>,<잉여인간> … 총 38종 (모두보기)

손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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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 1935년 만주를 거쳐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니혼대학에 들어갔으나 중퇴 후 초등학교 교원, 잡지 편집원 등을 전전했다. 1946년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1948년 월남했으며, 1949년 연합신문에 「얄궂은 비」를 연재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52~1953년에 『문예』지에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의 단편소설이 추천되어 활발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상을 받고, 1959년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부터 작... 더보기

최근작 : <초등 학년별 기관선정 필독서 세트 : 5학년 - 전5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D 세트 - 전12권>,<잉여인간> … 총 3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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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의 소설 속에는 살아 있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던 전후의 암울한 인간군상이 핍진하게 스며 있다. 그들은 전쟁의 상흔이 체 아물지도 않은 불구의 모습을 하고서 무의미라는 또 다른 적군과 대치한다.
5DOKU 2016-03-24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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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생각나게 하는 격정적인 내면의 짤막한 이야기. 고뇌와 천재성이 엿보입니다. 시대를 앞선 작가였던 것도 같고.
hsislee 2013-01-3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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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시대 허무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세계관.
미로 2016-03-2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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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고 가난하고 허무하다…그 속에 인간미가 흐르고 어쩔수없는 삶의 연속이 보인다. 해방과 전쟁을 겪은 후 피폐한 마음과 생활고와 현실의 막막함 속에서 면면히 이어가며 끌려가듯 인생은 계속되고 잃어가기도 하고 채워가기도 한다. 암울한 분위기에 모든 이야기가 실화인듯 생생히다가온다.
K mom 2020-11-0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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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치노 2015-04-1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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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 - 손창섭



한국소설문학대계 30 손창섭 | 동아출판사 | 초판발행 1995.5.20 中 [잉여인간] p.329-p.372
자본의 영역에서 길러진 나는 자본을 창출하지 못하는 내가 잉여인간은 아닌가 자괴감에 빠지다.
그러나 극비는 비자본의 영역에서 내가 필요인간이라 들려주다.
그래도 자본의 영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내게 극비는 "계약서 쓸까?" 농반진반 던지다.
그 파장으로 일렁이는 생각의 물결을 달래듯 [잉여인간]의 한 부분

"「장 크리스토프」라는 롤랑의 소설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우. '사람이란 행복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정해진 길을 가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여보, 나를 위해서 진심으로 울어 줄 아내가 있는 이상 나는 결코 꺾이지 않을 테요. 그러니까 날 위해 과히 걱정 말구 어서 울음을 그쳐요. 자 어서, 이게 뭐야 언내처럼." (p.358)

[잉여인간]을 읽으며 오히려 세상에 '잉여인간'은 없음을 이해하게 되다.
부인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는 비분강개파 채익준이나 하릴없이 만기치과의원에 앉아 졸기나 하는 실의의 인간 천봉우나... 사회에게는 '잉여인간'으로 던져졌을지라도 삶에게는 모두가 '필요인간'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풀지못한 숙제 하나 '여성의 경제적 독립'
나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다.

극비가 말하길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사고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다."
틀 안에 갇혀 허우적대는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보아온 이의 한마디,
내 틀에 작은 구멍이라도 내어 가느다란 빛이나마 들어오기를...


내가 본 이 책에 오타 하나

p.372 잉여인간이 끝난 자리에

(『낙서족』, 일신사, 1959)

당혹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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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비 2006-09-07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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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



엊그제 신문인가 기내지에서인가 후천성 기억력 결핍증(AMDS: Acquired Memory Deficiency Symtom)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무릎을 쳤다.

이런 거다 말하자면.

잉여인간, 이라는 책을 무척 읽고 싶어하다가 결국 지인에게서 빌려 읽었는데,

그장소가 하필이면 먼 나라로 떠나는 , 긴장되고 피곤한 비행기 안이었고,

그래서인지 아니면 저 AMDS 때문인지

내용이 도무지 가물한 것이다.

필체와 문장력에 대해 으음 하고 감탄한 것은 기억이 나지만,

어떤 어떤 내용의 단편들이 소소하게 책을 구성하고 있었는지는...기억이 안난다!

약간은 애매한 심정으로 별 네개를 누르고,

언젠가 누렇게 바래버린 손창섭씨의 기억을 되살릴지 울적한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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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11-26 공감(3)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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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 서평



잉여인간에 나오는 주인공 이만기는 가장 완벽한 인물이다. 그의 인격이나 성격 외모 면에서도 모두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상한 모습을 가진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봉우 처의 유혹과 수많은 젊은 여성들의 유혹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으며 그 아내만을 사랑한다. 서만기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욕망을 윤리적인 이상을 통해 수렴한다. 천봉우의 허락받지 못하는 욕망은 이 욕망의 금지를 통해 형식적으로 해소가 된다. 이것이 형식적인 것은 서만기에 의해 의미화 되는 이 윤리적 태도가 사적 공간 내에 유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기가 하는 치과의원의 폐업 위기는 치과의원 건물과 설비의 실소유주인 봉우의 처가 시설을 매각했기 때문이다. 봉우의처가 시설을 매각한 이유는 만기가 봉우처의 성적 유혹을 거절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가 된다. 만기는 처제인 은주가 처가집 식구들을 데리고 분가하기 이전에는 열네 명, 현재는 열 명을 부양하고 있는 처지로, 그들의 학비와 열 네 식구의 생활비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했다. 만기는 이러한 곤경 속에서도 가족들 앞에서 결코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말하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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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seo0713 2024-05-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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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잉여인간 - 오늘의 작가 총서 3

가질 수도 없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무엇 하나 바뀌는 것도 없으며 걸어가지만 주변을 맴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네요. 기름과 물처럼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가요.사람들은 섞인듯 섞이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제 모습으로 돌아가 살아가곤 합니다.너무나 사실적으로 말해주어 작품들을 보는 내내 상실감을 안고 보았습니다.
hyun 2014-12-1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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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의 문화 생활

접힌 부분 펼치기 ▼ 85.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버틀러에 관심이 갔던 것은 흑집사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심으로 택한 영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감동일 거라고 예상했고,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꽤 좋았다. 특히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의 몇 십년에 걸친 연기가 압권이었다. 한쪽 눈이 더 크고 한쪽 눈은 약간 일그러졌는데, 이렇게 비대칭 눈이 더 다양한 표정을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얼마 전 변호인의 송강호 보면서도 생각했다. 반듯한 대칭이 아니어서 오히려 풍부한 표정을 낼 수 있다면 그것도 ... + 더보기
마노아 2013-12-31 공감 (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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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서평단 리아트리스입니다.

• 나는 이런 사람이예요! - 책처럼 유통기한이 없는, 끝없이 읽히는 책과 같은 인생을 살고픈, 책 매니아. • 내 인생 최고의 책 이방인/알베르 카뮈 - 내 인생에서 단 하나의 책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늘 주저없이 이방인을 꼽는다. 이유는 소설적 재미와 문학적 감동이 가장 이상적으로 배합된 ... + 더보기
리아트리스 2008-12-06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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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

060713 ( 일*), 후덥지근한 날씨, 아예 푸욱 찌는 날에 술한잔 한다는 것은 곤욕이다. 이렇게 곤욕을 치루다. 출장가는 친구들에게 몸 간수 잘하라는 소리밖에 할 수 없다. 060714 (간*모임), 시간만큼이나 변하였을 터, 우려반 기대반, 위축될 수밖에 없던 이유와 건강성을 본다. 현실에 부대끼고 여물어진 모습과 무엇인지 모르는 관계의 석연함. 이어내야 할 것들.-생각을 갖고 낀 자리이다. 새벽이다. 060716 (월*모), 비가 몹시 내린다. 맘도 뭍어 내린다. 저녁 지인의 ... + 더보기
여울 2006-07-1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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