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는 여행자 - 지명관 자서전
지명관 (지은이)다섯수레2006

책소개
일제 치하의 한반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과 독재정권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거쳐오며 민주화 운동에 공헌한 지식인 지명관의 자서전이다. 그는 <사상계> 주간으로 활동하며 박정희 군사정권에 저항했고, 이후 일본에서는 잡지 <세카이>에 15년 넘게 '한국으로의 통신' 칼럼을 연재하면서 한국의 실상을 전세계에 알리며 민주화운동의 한 구심점의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사상계>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장준하와 맺은 인연, 김대중 납치사건 등을 거치면서 '통신' 칼럼으로 국내 민주화운동을 격려하고 고무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또한 해방 전후로 남과 북을 넘나들며 두 체제에서 느낀 한계, 공산주의를 놓고 정인품과 벌였던 치열한 논쟁, 그리고 5년간 군인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느낀 바를 고백한다. 이를 통해 과거의 험난한 현대사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목차
제1부 어린 시절
1. 은사 이야기
2. 잊을 수 없는 고향
제2부 전쟁과 혁명
3.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서
4.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5. 일본과 미국에 다녀와서
제3부 민주화 투쟁, 그리고 새로운 희망
6.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쓰다
7. 민주화 투쟁 속에서
8. 군사정권의 종언을 향하여
9. 귀국하고 나서
10. 화해와 협력의 공동체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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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처음에는 중요한 뉴스와 긴급한 연락이 있을 때만 '통신'을 쓰기로 했었다. 제1신은 1973년 <세카이> 5월호에 개제되었다. '비판과 거절'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미국인 선교사가 본국에 보낸 편지에서 인용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난 10월 17일 저녁부터 시작된 계엄령하의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로 시작된다.
(...) 통신은 부정기적으로 게재되었지만 드디어 1973년 10월호부터 매월 거르지 않고 쓰게 됐다. 8월 8일에 김대중이 대낮에 도쿄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납치되는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당시에 일본에서 그다지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김대중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정확히 알린 것은 그가 납치된 8일에 발매된 <세카이>(9월호)에 게재된 김대중과 야스에의 대담 '한국 민주화에의 길'이라고 하겠다.
김대중은 8월 13일 밤, 서울 동교동의 자택 대문에 눈을 가리운 채 상처투성이 얼굴로 나타났다. 그리하여 양국 정부 간에 허다한 이야기가 오가게 되지만 나는 통신에 이렇게 썼다. '다만 여기에서 박 정권 반대의 모든 언론과 행동에 대한 대책은 청와대 직할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다. 그리고 가장 강경한 자세를 내놓는 사람이 바로 그분이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1973년 10월호). 그분이란 물론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정희를 가리킨다. - 본문 174~175쪽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지명관 (池明觀)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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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46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제1회 입학생으로 입학하였으나 1947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중퇴하고, 월남했다. 1950년 한국전쟁에 통역장교로 참전했다. 1954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1958년 동 대학원 종교학과 석사 이후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60년 덕성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월간 『사상계』 주간으로 근무했다. 1967년에서 1968년까지 뉴욕 유니언신학교에서 유학했으며 1972년 일본으로 망명해 1972년부터 1993년 일본 도쿄여자대학 교수직을 역임했다. 1993년에서 2003년까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소장으로 있었으며 1998년에서 2003년까지 한·일문화교류정책 자문위원회 위원장직을, 2000년부터 2005년까지 KBS 이사장직을 역임했다. 2012년 제7회 일송상과 2020년 5·18언론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접기
최근작 : <지명관일기 1>,<김철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한국의 현대사란 무엇인가> … 총 2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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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관 교수의 회고록 <경계를 넘는 여행자>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지명관의 자전적 회고록 <경계를 넘는 여행자>(2006)는 식민지배, 분단, 독재, 그리고 망명이라는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단면을 온몸으로 관통한 한 지식인의 지적·정치적 궤적을 담은 기록이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의 저자는 분단 체제와 유신 독재의 폭력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한 뒤, 월간 <세계(世界)>에 'TK생'이라는 필명으로 한국 민주화 투쟁의 실상을 전 세계에 폭로한 장본인이다. 책은 단순히 개인의 삶을 회고하는 데 머물지 않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완고한 경계를 넘어선 보편적 인간주의자의 시선을 제시한다.
<핵심 내용 요약>
책의 서사는 크게 해방 전후의 혼란기, 분단과 4·19 및 군사정권의 태동, 1972년부터 시작된 일본 망명 생활,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주도하며 귀환하기까지의 여정으로 나뉜다.
저자는 평북 정주에서 기독교적 분위기와 민족주의적 열망 속에서 성장했다. 해방 후 북한 체제의 억압을 목도하고 월남했으며,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참극을 직접 겪었다. 이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거쳐 덕성여대 교수로 재직하며 계간 <사상계>의 주간을 맡아 당대 지성계를 이끌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10월 유신은 비판적 지식인이 국내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철저히 박탈했다.
1972년 일본 도쿄여자대학 연구원으로 도일한 그는 귀국을 포기하고 망명객의 길을 택한다. 이 시기 가장 중대한 역사적 실천이 바로 'TK생(도쿄 거주 한국인)'이라는 필명으로 연재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다. 1973년부터 1988년까지 15년간 이어진 이 기고문은 군사독재의 잔혹한 인권 탄압, 김대중 납치 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생생히 전달하며 국제사회의 연대를 이끌어냈다. 철저한 비밀 유지를 위해 가족에게조차 함구했던 이 기록은 해외 망명 지식인이 조국의 독재 체제에 가한 가장 날카로운 비수였다.
1990년대 이후 냉전의 해체와 한국의 민주화는 그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귀국 후 그는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발맞추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이자 망명자였던 그가 배타적 민족주의를 거두고 문화적 개방과 화해를 주장한 것은, 국가라는 테두리에 갇히지 않은 열린 지성인의 태도를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비평과 성찰>
<경계를 넘는 여행자>가 지닌 가장 중요한 미덕은 탈국가적·탈민족적 시각의 획득이다. 근대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식민주의와 분단이라는 상흔 탓에 쉬이 폐쇄적인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 매몰되곤 했다. 그러나 저자는 고향인 북한에서 밀려나 남한에서 망명객이 되었고, 일본에서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머무는 삼중의 디아스포라를 경험했다. 이러한 '경계인의 위치성'은 그에게 조국을 맹목적으로 찬양하거나 특정한 체제에 맹종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했다.
그가 바라본 민주주의는 한 국가의 권력 교체나 정권 획득을 넘어, 모든 억압적 경계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회복하는 보편적 기획이었다. 일본 사회의 한계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곳의 양심적 지식인 및 시민사회와 깊이 연대하여 조국의 해방을 도모한 점은 국경을 초월한 코스모폴리탄적 연대의 전형을 보여준다. 조국을 사랑하되 국가권력과 민족주의라는 허상과 끊임없이 불화했던 그의 삶은, 맹목적 애국심이 횡행하는 현대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경종을 울린다.
다만 이 텍스트는 지식인 개인의 고뇌와 결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당시 현장에서 피 흘리며 직접 투쟁했던 민중들의 다층적인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사상사적 흐름 뒤로 물러나 있다는 한계를 보인다. 또한 전후 일본 지식인 사회의 평화주의가 지닌 구조적 한계와 자기모순을 파헤치기보다는, 연대의 대상으로서 긍정적으로 조명한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 개인이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폭력에 짓눌리지 않고, 스스로 경계를 허물며 보편적 자유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강력한 지적 자서전이다. 지명관이 걸어간 길은 정착과 동화가 아니라 끊임없는 '이동과 횡단'이었으며, 그가 남긴 궤적은 우리에게 국가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를 성찰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지명관 『경계를 넘는 여행자』 — 1,000단어 요약·평론
1. ‘경계를 넘는다’는 말의 의미
『경계를 넘는 여행자』라는 제목에서 ‘여행자’는 단순히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지명관이 일생 동안 넘으려 했던 것은 공간의 경계보다 <정치적·사상적 경계>였다.
그의 생애에는 수많은 경계가 겹쳐 있다. 식민지와 해방, 북한과 남한, 기독교와 세속 정치, 학문과 행동, 한국과 일본,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보수와 진보, 독재와 민주주의의 경계다. 그는 어느 한쪽에 완전히 정착하기보다는 그 사이를 이동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따라서 이 책의 핵심은 ‘나는 옳았고 시대가 틀렸다’는 민주화운동가의 영웅담이라기보다 <자기가 서 있던 위치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이동해 온 지식인의 자기형성사>에 있다.
2. 식민지와 해방, 그리고 ‘북에서 남으로’
지명관은 192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청소년기는 일본 식민지배 아래 있었다. 따라서 그에게 식민지는 책에서 배운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자신을 형성한 일상세계였다.
1945년 해방은 당연히 환희였지만, 곧 좌우 이념대립과 분단의 현실이 뒤따랐다. 그는 김일성대학의 첫 입학생이 되었지만 북한 체제에 머무르지 않고 1947년 월남했다. 이후 한국전쟁에서는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이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지명관에게 공산주의나 반공주의는 추상적인 사상이 아니었다. 북한에서 새로운 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고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다시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한국군과 미군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특히 군 생활은 훗날 그가 5·16 군사쿠데타를 강하게 거부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그는 군대 안에서 권위주의와 부정, 인간성의 훼손을 경험했다고 회고한다. 따라서 ‘군인이 나라를 구한다’는 5·16의 자기정당화는 처음부터 그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이 점에서 지명관은 전후 한국의 전형적인 반공 지식인과 조금 다르다. 그는 북한 체제를 거부하여 남하했지만, 그렇다고 남한 국가를 절대화하지도 않았다. 훗날 그의 중요한 정치윤리인 <국가보다 인간, 이념보다 인간성>이라는 생각은 이미 이 경험 속에서 싹튼다.
3. 문학청년과 기독교인에서 참여적 지식인으로
청년 지명관에게 처음부터 정치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문학과 철학, 종교에 몰두했다.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으며 절망과 실존의 문제에 빠져들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한다. 그의 기독교 신앙 역시 단순한 교회생활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실존적 신앙이었다.
이 때문에 지명관의 민주주의 이해에는 종교적 흔적이 강하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선거제도가 아니다. 인간 한 사람의 존엄을 권력이나 국가보다 우선시키는 가치체계다.
그가 평생 고민했다는 질문도 인상적이다.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학문의 세계로 물러날 것인가?>
지명관은 이 양자택일에서 결국 현실 참여를 선택했다. 그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4·19와 5·16이었다.
4·19를 거치면서 정치적 현실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5·16은 지식인이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그에게 결정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사람이 장준하다.
4. 장준하와 『사상계』 — 지식인의 책임
지명관은 1964년 대학 강단을 떠나 장준하가 이끌던 『사상계』의 주간을 맡았다. 당시 『사상계』는 한국의 자유주의적·민족주의적 지식인들이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던 가장 중요한 공론장 가운데 하나였으며, 특히 1965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지명관이 배운 것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였다.
그에게 지식인의 정체성은 보수냐 진보냐, 좌파냐 우파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인간을 무엇으로부터 해방시키며 무엇에 항거하는가>이다. 그는 1966년 『사상계』에서 지식인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휴머니티를 위한 자세’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경계를 넘는 여행자』 전체를 관통하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장준하와의 관계 또한 흥미롭다. 지명관은 장준하를 영웅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사상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현실적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자신과, 정권 비판을 약화시킬 생각이 없었던 장준하 사이에는 긴장도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장준하로부터 지식인이 자신의 생존보다 원칙을 우선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5. 일본이라는 첫 번째 큰 경계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적 변화 가운데 하나는 일본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식민지 경험을 가진 한국인 지식인에게 일본은 당연히 가해국이었다. 그러나 장준하의 권유로 일본을 방문하고 일본 사회 내부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명관은 자신의 ‘일본’이라는 범주가 지나치게 단순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본 국가와 일본 국민, 과거 일본 제국주의와 전후 일본 민주주의 세력, 우익과 양심적 지식인을 구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여행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정도의 경험이었다.
이 변화는 ‘친일’로 이동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을 정확하게 비판하기 위해 일본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발견이다.
이것이 지명관의 한일관계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식민지배의 책임을 분명하게 묻는 것과 일본인 전체를 본질적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계를 넘는다’는 말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나타난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자기 민족의 역사적 고통을 잊는 것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시각만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6. 미국도 ‘특별한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 방문도 비슷한 효과를 가져왔다.
전쟁을 경험한 남한 사람에게 미국은 공산주의로부터 한국을 구한 특별한 우방처럼 인식되기 쉬웠다. 그러나 지명관은 미국 사회를 직접 경험하면서 한미관계 역시 국가와 국가 사이의 하나의 외교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한국인에게 미국이 특별할 수 있지만 미국인의 세계에서 한국이 반드시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 인식은 이후 지명관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는 일본에 대한 적대적 민족주의에서도 거리를 두고, 미국에 대한 의존적 친미주의에서도 거리를 둔다. 그리고 북한 체제에 대한 거부가 남한 국가의 무조건적 정당화로 이어지는 것도 거부한다.
말 그대로 계속 경계를 건넌다.
7. 일본 망명과 ‘TK생’
1972년 유신체제가 시작된 뒤 지명관은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후 약 20년간 일본에서 사실상의 망명생활을 하면서 도쿄여자대학교 교수로 활동한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역사적인 활동은 일본의 진보적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쓰는 일이었다.
1973년 『세카이』 편집장 야스에 료스케의 권유를 받아 ‘TK生’이라는 익명의 필자로 쓰기 시작했으며, 이 연재는 1988년까지 약 15년간 이어졌다. 한국의 독재와 민주화운동, 김대중 납치사건, 광주항쟁 등의 상황을 일본과 세계에 알리는 통로가 되었다. 기독교와 일본 시민사회의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3년까지 TK생의 실제 정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활동을 단순히 ‘해외에서 한국 독재를 비판한 글쓰기’로만 평가하면 부족하다.
여기에는 지명관의 중요한 역사적 발견이 있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민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한국인만 싸운 것이 아니다. 일본인 편집자와 지식인, 기독교인, 유럽과 미국의 시민사회가 연결될 수 있었다. 과거 식민지배의 가해국이었던 일본에서 오히려 한국 민주화를 돕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지명관의 ‘경계를 넘는 여행’은 바로 이러한 경험 속에서 완성된다.
8. 민주화 이후 — ‘우리 편과 적’의 정치를 넘어서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지명관이 독재와 싸운 자신의 경험을 민주화운동의 승리담으로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오히려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권위주의 정권 대 저항세력이라는 구도 자체를 넘어설 수 있는가?
지명관은 해나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과 혁명론에 관심을 보이며, 한국 정치에서 반복되는 ‘혁명적 쇄신’의 언어를 경계한다. 권력을 잡은 세력이 자신을 새로운 시대를 창조할 혁명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자신이 내세운 구호의 포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자기반성이다.
독재시대에는 선악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분명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의 투쟁방식대로 세상을 ‘우리 편과 적’으로 나누면 민주주의 자체가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지명관에게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는 <상대를 제거하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와 함께 살아가는 정치>다.
여기서 그의 자서전은 민주화운동 회고록에서 평화와 화해의 정치철학으로 넘어간다.
9.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경계를 넘는 여행자』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사건들을 한 개인의 <인식 변화>를 통해 보여준다는 데 있다.
식민지를 경험했다고 해서 평생 반일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북한을 경험하고 월남했다고 해서 남한 국가를 절대화할 필요도 없다.
전쟁에서 미군과 함께 싸웠다고 해서 미국을 영원한 특별우방으로 신성화할 필요도 없다.
독재에 저항했다고 해서 민주화운동 세력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바로 이 끊임없는 자기수정 능력이 지명관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이다.
그에게 지식인이란 정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집단의 정답까지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다.
10. 그러나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점
그럼에도 이 책에는 한계가 있다.
첫째, 자서전은 어디까지나 노년의 지명관이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한 기록이다. 현재의 성숙한 ‘경계인’ 지명관이 젊은 시절의 선택들을 하나의 일관된 과정으로 정리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그의 현대사는 상당 부분 지식인들의 역사다. 장준하, 선우휘,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기독교 지도자, 교수, 언론인 등이 중심에 있다. 노동자·농민·여성·도시 빈민이 민주화를 만들어간 역사는 상대적으로 뒤에 놓인다. 그런 의미에서 『경계를 넘는 여행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사’라기보다는 <한국 자유주의적 지식인의 자기형성사>에 가깝다.
셋째, ‘적과 아군을 나누지 말자’는 그의 민주화 이후의 메시지도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화해는 중요하지만 권력관계의 비대칭까지 지워서는 안 된다. 독재자와 피해자, 식민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대칭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명관의 ‘경계 넘기’가 가장 설득력을 갖는 것은 역사적 책임을 희석할 때가 아니라 <책임을 인정한 다음에도 인간을 집단적 적으로 영구 고정하지 않을 때>이다.
11. 지명관이 도달한 동아시아
1990년대 귀국 이후 지명관은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과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등을 맡으며 한일관계와 동아시아 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군사적·경제적 대국이 되기보다 동아시아의 지적·문화적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인터뷰에서도 그는 한·중·일 양심적 지식인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한국이 동아시아의 공통가치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지적 허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핵심 가치는 평화, 민주주의, 공존, 그리고 ‘품위 있는 사회’였다.
이 주장은 그의 생애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론이다.
북한과 남한을 경험하고,
한국과 일본을 살았으며,
한국 민족주의와 일본 시민사회를 동시에 경험하고,
기독교라는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통해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에게 국가는 반드시 필요한 공동체이지만 인간의 양심보다 높은 최종심급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종합평론
『경계를 넘는 여행자』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20세기 한국의 폭력적인 역사 속에서 한 지식인이 국가와 이념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않는 법을 배워간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의미는 오늘날 더욱 크다.
한국 근현대사를 읽다 보면 사람들을 너무 쉽게 ‘친일/항일’, ‘좌/우’, ‘친미/반미’, ‘보수/진보’, ‘민족주의/친일파’와 같은 범주에 배치하게 된다. 그러나 지명관의 생애는 한 사람이 그런 선을 여러 번 넘을 수 있으며, 바로 그 이동을 통해 사상이 성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경계를 넘었고, 남한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다. 일본에 가서는 ‘일본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를 해체했다. 미국을 경험하면서 ‘미국=특별한 우방’이라는 관념에서도 벗어났다. 군사독재와 싸웠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화 세력 자신의 권력의지도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지명관에게 <경계를 넘는 것>은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라는 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침해하는 자기편도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단순한 ‘중도주의자’가 아니라 <비판적 보편주의자>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경계를 넘는 여행자』는 지명관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연결된다. 진정한 화해란 과거를 잊거나 양쪽에 똑같은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폭력과 책임을 정확하게 기억하면서도, 오늘의 일본인을 어제의 일본제국과 동일시하지 않고, 오늘의 한국인 역시 과거 피해자의 위치만으로 자신의 현재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명관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한일 우호’ 자체보다 더 깊은 데 있다.
<역사의 피해자가 되었던 공동체도 자기 자신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국가의 경계를 넘어 양심적인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경계를 넘는 여행자』는 바로 그 믿음이 한 사람의 80년에 가까운 삶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자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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