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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7

阿Q의 시 읽기 〈49〉 이바라기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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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49〉 이바라기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월간조선

阿Q의 시 읽기 〈49〉 이바라기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다 /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하면 오래 살기로

⊙ 노리코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많은 작가에게 상상력 선물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별자리 이름의 바나나파이를 먹었다’(유형진)

일본의 대표적인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와르르 무너져 내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난 멋 부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건네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모르고
해맑은 눈길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굳어 있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 패했다
그런 어이없는 일이 있단 말인가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활보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 재즈가 넘쳐흘렀다
금연을 깨뜨렸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난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하였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난 몹시도 불행했고
난 몹시도 엉뚱했고
난 무척이나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하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무척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영감님*처럼
말이지

(*프랑스 화가 겸 판화가 조르주 루오, G. Rouault 1871~1958)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茨木のり子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街々はがらがらと崩れていって
とんでもないところから
靑空なんかが見えたりし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まわりの人達が沢山死んだ
工場で 海で 名もない島で
わたしはおしゃれのきっかけを落としてしま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誰もやさしい贈り物を捧げてはくれなかった
男たちは挙手の礼しか知らなくて
きれいな眼差だけを残し皆(みな)発ってい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頭はからっぽで
わたしの心はかたくなで
手足ばかりが栗色に光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国は戰爭で負けた
そんな馬鹿なことってあるものか
ブラウスの腕をまくり卑屈な町をのし步い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ラジオからはジャズが溢れた
禁煙を破ったときのようにくらくらしながら
わたしは異国の甘い音楽をむさぼ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はとてもふしあわせ
わたしはとてもとんちんかん
わたしはめっぽうさびしかった

だから決めた できれば長生きすることに
年とってから凄く美しい絵を描いた
フランスのルオ-爺さんのように ね




MBC 드라마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포스터. 16부작으로 최근 종영됐다.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시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인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며 모순, 충돌하는 두 개의 시어를 한 문맥 속에 엮어내는 수사법이다. 반어(反語)라고도 한다. 전쟁으로 무수한 젊은이가 죽어갔을 때,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죽어가는 사람들로 인해 ‘멋 부릴 기회를 잃고’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모르며’ ‘해맑은 눈길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고 말았다. 불행했고 엉뚱했으며 무척이나 쓸쓸했던 시절을 보낸 뒤 화자(話者)는 결심한다. ‘가능하면 오래 살겠다’고. 끝까지 살아남아 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증명하리라 다짐한다.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1926~2006)는 오사카 출신 의사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유년 시절, 교토와 아이치(愛知)현 등지에서 성장했다. 1945년 일본 패전 당시 19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과 전쟁의 비극을 응시한 글을 주로 썼다.

그는 식민지 청년 윤동주(尹東柱·1917~1945)의 청아하고 맑은 모습에 반했다고 전한다. 그 후 일본어로 번역된 윤동주의 시를 찾아 읽었다. 훗날 노리코는 저서 《하나의 줄기 위에》에서 윤동주를 이렇게 기억했다.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옥사(獄死)한 사람. 옥사의 진상도 의문이 많다. 일본의 젊은 간수는 윤동주가 사망 당시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순수했던 노리코의 슬픈 비망록이라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순수 그 자체의 시다. 난해함이 없는 산문체의 아름다운 동경(憧憬)을 담고 있다. ‘별’이야말로 윤동주가 즐겨 사용하던 이상적 이미지가 아닐까. 윤동주는 이상과 순수, 구원의 상징인 별을 헤면서 여러 상념에 젖는다.
===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중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을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하략)

-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일부


유형진과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유형진 시인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먹었다’는 2001년 《현대문학》 등단작이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에서 착안해 새롭게 변형했다.

화자에게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누가코팅 속 하얀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한 느낌의 공간(추억)이다. 그 공간을 따라가 보면 유년에서 사춘기로 이어지는 시인의 성장통이 느껴진다. ‘달콤한 바나나 향이 혀에 자꾸 들러붙듯이’ 말이다.


‘짝짝이 단화’를 신고, ‘우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꿈을 날마다 꾸던 시절에 길가 망초꽃은 모가지가 부러져 있고, 문득 해소천식을 앓던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사막 바람처럼 4월 하늘에 뿌연 바람이 불면, 모래 구덩이의 낙타처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새 리코더를 불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덧 훌쩍 자란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고 나선 ‘이제 노을색 눈을 가진 토끼는 키우지도 않고 혼자 오는 저녁 길은 아직도 쓸쓸하다’고 되뇐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먹었다’는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2005)에 실렸다.



유형진 시인의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먹었다
겨울이면 나타나는 별자리 이름의 제과회사에서 만든 것이었다 질 나쁜 노란색의 누가코팅 속에는 비누 거품같이 하얀 마시멜로가 들어 있었다 그 말랑하고 따뜻한 느낌, 달콤하고 옅은 바나나 향이 혀에 자꾸 들러붙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짝짝이 단화를 신고 다녔다
연탄불에 말려 신던 단화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색이 달랐다 아이보리와 흰색의, 저만치 앞에서 보면 짝짝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단화. 아이보리색의 오른쪽 신발은 유한락스에 며칠이고 담가놓아도 여전히 그런 색이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우물이 제일 무서웠다
우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꿈을 날마다 꾸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 없는 아이였고 아이를 낳은 엄마는 절에 들어가 공양보살이 되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우물엔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가 가득 찼고 눈동자가 망가진 인형의 손이 우물에서 비어져 나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길가의 망초꽃은 늘 모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나는 하얀 버짐 핀 얼굴을 하고서 계란 프라이 같은 꽃봉오리를 따다가 토끼에게 간식으로 주었다 토끼의 집 위로는 먼 산이 흐릿했고 토끼 눈 같은 해가 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봄은 할아버지 같았다
해소천식을 몇십 년 앓고 있는 할아버지의 방에 창호지는 봄만 되면 노랗게 노랗게…… 개나리나 산수유꽃도 그렇게만 보였다 할아버지는 봄만 되면 더욱 노란 가래를 뱉어내었고 할아버지의 타구(唾具)를 비울 때는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사월 하늘의 뿌연 바람은 아라비아의 왕이 보내는 줄로만 알았다
모든 사막은 아라비아에서 시작해 내가 사는 마을로 왔다 언젠간 나도 모래구덩이의 낙타처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새도록 리코더를 불고 싶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어두운 방의 하얀 테두리를 좋아하였다
문을 닫으면 깜깜한 방의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의 테두리. 창이 없는 그 방은 구판장집을 지나 마즘재 너머 큰집의 건넌방이었는데 늘 비어 있었다 할머니의 오래된 옷장과 검은 바탕에 야자수가 수놓아진 액자와 인켈 오디오가 있는 방이었다 그 방에서 나는 라일락이 피던 중간고사 때 양희은의 ‘작은 연못’과 들국화의 ‘행진’을 처음으로 들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안개꽃은 너무나 슬퍼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서늘한 피부의 여인이 그 꽃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무덤가의 이슬 같고 청상과부의 한숨 같아서 보기만 해도 가슴에 안개가 피어났다 그즈음 주말의 명화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황야의 무법자’를 했고 늦게 일어난 일요일 아침, 하얀 요에 묻은 초경의 피를 보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별자리 이름의 바나나파이를 먹었는데
이제 바나나파이 같은 건 어디서도 팔지 않고 검게 변한 바나나는 할인매장에 쌓여만 간다
나는 이제 노을색 눈을 가진 토끼는 키우지도 않고 혼자 오는 저녁 길은 아직도 쓸쓸하다
여전히 사월엔 노란 바람이 불어오지만 아라비아 왕 같은 건 시뮬레이션 게임에나 나오는 캐릭터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이제 죽음 같은 건 리코더 연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유형진의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바나나파이를 먹었다’ 전문


공선옥의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도 노리코의 시를 모티브로 창작했다. 성장기 소설답게 씁쓸달콤한 추억이 담겨 있다. 소설 속 화자인 ‘해금’은 이제 스무 살. 열아홉과 스무 살의 생기발랄함 사이 광주 5·18의 비극이 찾아온다. 희극과 비극의 극적인 아이러니다.

아래에 인용한 글은 해금이 유년을 떠올리는 대목이다. 자매들의 이름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정겹다. 귓불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처럼 뜨겁게 느껴진다. ‘그리움의 더께 같은 채석강의 퇴적층’(유형진)을 보는 것 같다.

소설가 공선옥은 1991년 《창작과 비평》에 중편소설 〈씨앗불〉로 등단했다. 여성의 운명적인 삶과 모성애를 뛰어난 구성력으로 생생히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설집으로 《나는 죽지 않겠다》 《피어라 수선화》 등이 있다.



공선옥의 장편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초등학교 오학년 때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막내 영미 혼자 마루에 있아 그때 한창 유행하던 김추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애는 김추자처럼 코맹맹이 소리를 내려고 그랬는지 한 손으로는 코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입술을 두드려가며 노래를 부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가 저를 불러도 대답할 짬이 없는 것 같았다.

“나를나코도라가신나으어먼니 그래도오막싸리당감방에서 행보커게지내쪼오 내가여스쌀되든해부터어거리에서노래불렀쪼오 노래드꼬내게던져주는동전으로아부지와사라쪼오…….”

“야이 가시내야, 노래를 부를라면 얌전히 좀 불러라. 그게 뭐냐. 염생이같이.”

나는 왠지 모르게 영미가 미웠다. 순금이, 정금이, 영금이, 해금이, 하고 금자 돌림으로 쭉 나가다가 갑자기 막내만 영미가 된 것도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할아버지는 첫 손녀의 이름을 순할 순(順)에 비단 금(錦)을 붙여 순금이라 해놓고 그 다음부터는 아예 비난 금자는 고정시켜놓은 채, 둘째 곧을 정(正), 셋째 꽃부리 영(英)까지는 옥편 찾는 성의 정도는 보이시더니 내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또 딸입니다.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요.

하자 대뜸 그러셨다는 것이다.

“니무랄 것, 암꺼나 허라고 혀.”

세상에 ‘암꺼나 해’ 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아버지는 내 이름을 ‘암꺼나 해’자에 비단 금, 해서 해금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고모한테 들었다. 고모가 친정인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나보고 ‘어이 혀금씨’ 해대서 내가 나는 혀금이가 아니고 해금이라고 강력 항의하자 고모가 나를 앉혀놓고 내 이름의 내력을 말해줬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동회에 신고할 때 남의 이목도 있고 하니, 할 수 없이 즉석에서 떠오른 ‘바다 해(海)’를 붙여 비로소 내 공식 이름이 정해졌지만, 집안에서의 나는 여전히 혀금이 내지는 ‘암꺼나 해’자의 해금이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몇 년 있다가 또 딸을 나았을 때 아버지는 차마 할아버지한테 이름을 어찌할 것인지는 더 여쭐 수가 없어서 아버지 나름대로 아름다운 미(美)에 기존의 비단 금을 붙여 미금으로 정했는데, 이름 정한 사람이 할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라 만만했던지 엄마가 일언지하에 반대를 하더라는 것이다.

“안 돼야.”

“뒷이 안 돼야.”

“금자는 안 된다고.”

“좋네, 그럼 아름다올 미자에 큰놈 거 순자 좀 빌려와서 미순이는 어쩐가? 야한테서 금자를 빼불면, 즈그 언니들허고 아조 다른 종자 같응게 이오아이면 큰놈 이름자 중 하나인 순자를 붙여 주자고. 어쩐가?”

아버지는 원래 우격다짐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좋아하는 천상 민주주의자였다. 자신은 민주주의자가 확실한데 너희 엄마는 고집 센 것으로는 공산주의자, 맘대로 하는 것으로는 자유주의자라고 아버지가 우리 앞에서 엄마 흉을 본 적이 있다. 공산당과 자유당을 번갈아 오가신 엄마인지라 이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꼭 큰애 거를 붙일 필요는 없제. 기중 이쁜 꽃부리 영자, 미영으로 합시다.”

-공선옥의 장편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 p.19~21


성미정과 이원하의 ‘착한 구두’와 ‘제주에 부는 바람’

어쩌면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을 때가 아닐까.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만나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사랑하는 이의 구두를 좋아하게 그 안에 숨겨진 발을 사랑한다. 연인의 머리가 사랑스럽고,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곱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시선이 먼저 반응한다. 성미정의 시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는 연인이 가장 예뻤을 때를 떠올리는 시다.



성미정 시인의 시집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아직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언젠가 저의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성미정의 시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전문


자신이 가장 예뻤을 때는 ‘내’가 ‘나에게’ 바짝 다가설 때가 아닐까. 자기 내면과 대화하며 그 대화 속에서 자신이 훌쩍 자랐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나’의 존재방식을 그제야 인정하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원하의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는 혼자 제주에 살면서 자신을 발견한 이야기다. 화자는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라고 고백한다. 그러곤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다’며 텅 빈 자신과 마주한 고통스러운 일도 떠올린다. 세월에 홀라당 벗겨진 빈털터리 인생이지만,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라고 다짐한다.



이원하 시인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쏟아져요
이게 다 등껍질이 얇고 연약해서 그래요
그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사랑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나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이원하의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전문


주하림의 ‘작별’과 윤의섭의 ‘당신이 잠들었을 때’

사람이 가장 예뻤을 때는 혹시나 이별할 때가 아닐까. 이별의 고통 때문에 화들짝 놀라며 자기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된다. 주하림의 시 ‘작별’은 고통의 가장 정점에서 쓴 시 같다. 고통은 시를 가장 아름답게 빚는, 고통스럽지만 가장 만족할 만한(?) 재료다.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그때는 애인조차 떠날 때였다. 화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라고.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를 모두 지났다고 느꼈을 때 시인은 그제야 깨닫는다.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 바로 ‘너’였음을.



주하림 시인의 시집 《비벌리힐스의 포르노 배우와 유령들》
혐오라는 말을 붙여줄까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머리를 감겨주고 등 때도 밀어주며
장화를 신고 함께 걷던 애인조차 떠났을 때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발 아픈 나의 애견이 피 묻은 붕대를 물어뜯으며 운다
그리고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
간신히 쓰러지고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할 것만 같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는 닮지 못할 것이다’

네가 너는 아직도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난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주하림의 ‘작별’ 전문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장 예뻤을 때를 누구나 꿈꾼다. 마치 덮여 있는 책이 자기 몸을 읽듯, 서랍 속 오래 묵은 만년필이 스스로를 쓰고 있듯 말이다. 추억이 그렇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아 너무 아프다.

단기기억은 쉽게 사라지나 장기기억은 무섭게 살아 있다. 죽을 때까지. 윤의섭의 시 ‘당신이 잠들었을 때’는 무척 아름다운 시다. 시집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2019)에 실렸다.



윤의섭 시인의 시집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
덮여 있는 책은 자기 몸을 읽는 중이다
먼지 같은 묵독이었다
서랍 속에서 오래 묵은 만년필은 스스로를 쓰고 있다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데 너무 아프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걸으며 길은 자꾸만 눕고 싶고
죽다가 동사인 건 계속 죽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밤 유성을 보았고 장례식장에서 유년에 대한 잡담을 나눴다
언젠가는 아프지 않을 것이고
신의 길을 따라간 순례자가 도착한 곳이 이 별이라고 적혀 있는 경전대로
지구를 찾아 나설 것이고
누군가에게 잊히고 나면 끝없이 살 수 있다는 용서
당신이 잠들었을 때 잠은 잠을 자야 했고
깨어날 때까지 몇 번이고 천문을 정독했고
생존이라는 말 쓸쓸하다
가로등이 꺼지는 시간
당신은 아직 지구에 도착하지 못해서
경전 어느 페이지쯤에선가 헤매는 꿈에 젖어 들고
나는 빨래 건조대를 비워 놓는다

-윤의섭의 ‘당신이 잠들었을 때’ 전문⊙

2020-01-25

이바라기 노리코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街々はがらがらと崩れていって
   とんでもないところから
   青空なんかが見えたりし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まわりの人達が沢山死んだ
   工場で 海で 名もない島で
   わたしはおしゃれのきっかけを落としてしま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だれもやさしい贈物を捧げてはくれなかった
   男たちは挙手の礼しか知らなくて
   きれいな眼差だけを残して皆去ってい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頭はからっぽで
   わたしの心はかたくなで
   手足ばかりが栗色に光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の国は戦争で負けた
   そんな馬鹿なことってあるものか
   ブラウスの腕をまくり卑屈な町をのし歩い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ラジオからはジャズが溢れた
   禁煙を破ったときのようにくらくらしながら
   わたしは異国の甘い音楽をむさぼった

   わたしが一番きれいだったとき
   わたしはとてもふしあわせ
   わたしはとてもとんちんかん
   わたしはめっぽうさびしかった

   だから決めた できれば長生きすることに
   年とってから凄く美しい絵を描いた
   フランスのルオー爺さんのように

2020-01-21

알라딘: 시의 마음을 읽다 이바라기 노리코 (지은이)



알라딘: 시의 마음을 읽다

시의 마음을 읽다 - 시인이 읽어주는 40여 편의 시 
이바라기 노리코 (지은이),조영렬 (옮긴이)에쎄2019-10-25

한글과 한국의 시, 그리고 시인 윤동주를 누구보다 사랑한 일본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일본에 윤동주의 시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일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윤동주의 시가 실릴 수 있도록 힘쓴 인물이다. 또한 한국어를 배워 직접 한국시를 번역한 훌륭한 한국어 번역자다.

이 책은 <詩のこころを讀む>(1979)를 번역한 것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40여 편의 시로 채워져 있다. 시인은 시를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시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써내려간다.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으로 시를 읽고, 조곤조곤 말을 덧붙인다. 그 시선은 그의 시의 특징과도 닮아 있다. 밝고 발랄하게 노래하는 가운데 생활에 뿌리를 내린 현재적 주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적인 비평성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한국어판에는 원서에는 없는 일러스트를 본문 곳곳에 실었다. 그녀의 글들은 일러스트와 함께 어우러져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마음을 도닥여주고 따뜻하게 덮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목차


들어가며

1장 태어나서
슬픔 …다니카와 슌타로
잔디 …다니카와 슌타로
I was born …요시노 히로시
축제 …자크 프레베르
전설 …아이다 쓰나오
봄의 문제 …쓰지 유키오

2장 사랑 노래
길에서 우연히 …오카 마사후미
11월 …안자이 히토시
그것은 …구로다 사부로
너는 귀엽다고 …야스미즈 도시카즈
비둘기 …다카하시 무쓰오
음력 8월 …사카타 히로오
연습문제 …사카타 히로오
얼굴 …마쓰시타 이쿠오
해명海鳴 …고라 루미코
나무 …고라 루미코
남자에 대하여 …다키구치 마사코
가을의 입맞춤 …다키구치 마사코
겨울 벚꽃 …신카와 가즈에
조언 …랭스턴 휴스

3장 사느라 아등바등
오는 아침마다 …기시다 에리코
보이지 않는 계절 …무레 게이코
해질녘 30분 …구로다 사부로
심히 …가와사키 히로시
말 …가와사키 히로시
바다에서 …가와사키 히로시
지명론 …오오카 마코토
꼬마뱀 …구도 나오코
철학하는 사자 …구도 나오코
변소 청소 …하마구치 구니오
주소와 만두 …이와타 히로시
바람 …이시카와 이쓰코
쓸쓸함의 노래 …가네코 미쓰하루
사랑 …다니카와 슌타로

4장 고개
소학교 의자 …기시다 에리코
평생 같은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는 것은 …기시다 에리코
새 날刃 …안자이 히토시
생명은 …요시노 히로시
그날 밤 …이시가키 린
산다는 것 …이시가키 린
제국의 천녀 …나가세 기요코
옛 친구가 새로 대신이 되었다는 소식을 읽으면서 …가와카미 하지메
노후무사老後無事 …가와카미 하지메
된장 …가와카미 하지메

5장 이별
환상의 꽃 …이시가키 린
슬퍼하는 벗이여 …나가세 기요코
양의 노래 …나카하라 주야
알람브라 궁전 벽의 …기시다 에리코

옮긴이의 말 | 주
접기


책속에서



P. 112 ‘청춘은 아름답다’는 말은 그 시기를 통과해서 되돌아보았을 때 할 수 있는 말이고, 한창 청춘을 지날 때는 매우 괴롭고 어두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가능성이 어수선하게 들끓어 어느 것이 진짜 자기인지 알지 못하고, 바다에서 난 것인지 산에서 난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몸은 맹목적으로 발달하고 마음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해 제가 보기에도 유치한 거 같고. 흘러넘치는 활력과 의기소침이 갈마드는, 생애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계절입니다. 접기
P. 209 인생의 짓궂음, 누군가의 심술 같은 어긋남. 옛것과 새것의 교체는 이렇게 아무 일 없는 듯이 이루어져가는 것이겠지요. 어디가 이음매인지 알 수 없는 날실처럼.
P. 225 인생 체험이라 부를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은 젊은이라도, 조금 민감한 사람이라면 제 기쁨이 종종 타인의 슬픔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합격의 기쁨이 불합격자의 슬픔 위에, 연애의 기쁨이 누군가의 실연의 아픔 위에 서 있거나 한다는 사실을.
P. 264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발랄하고 충분하게 이 세계를 맛보기 위함이 아닐까요. 천국과 지옥이 함께 있고, 괴기와 환상으로 가득한 이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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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바라기 노리코 (茨木 のり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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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46년 도호대학 약학부를 졸업했다. 1950년 무렵부터 시작詩作을 시작하여, 잡지 『시학詩學』 독자투고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해 같은 잡지 신인특집호에 게재되었다. 1953년 가와사키 히로시와 둘이서 동인시지同人詩誌 『노櫂』를 발간했다. 전후戰後,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던 시기에 청춘을 보낸 시인은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으로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격렬함과 반골 기질이 내포된 날카로운 시풍을 견지했다. 1976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한국 현대시를 일본에 소개했고, 1991년 『한국현대시선韓國現代詩選』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연구·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올랐고, 에세이집 『한글로의 여행』, 시집 『대화』 『보이지 않는 배달부』 『진혼가』 『제 감수성 정도는』 『기대지 않고』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시의 마음을 읽다>,<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여자의 말> … 총 30종 (모두보기)

조영렬 (옮긴이)

1969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림대 부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를 수료했으며, 고려대학교대학원 중일어문학과 일본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9년 현재 선문대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시를 쓴다는 것』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독서의 학』 『장자, 닭이 되어 때를 알려라』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요시카와 고지로의 두보 강의』 등이 있다.


최근작 : <약을 끊어야 병이 낫는다 (보급판 문고본)> … 총 3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글과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의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그가 좋아한 40여 편의 시와 시에 덧붙인 그의 언어들

“시를 읽는다는 것,
사람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힘을 갖는다는 것”

* * * * * *

한글과 한국의 시, 그리고 시인 윤동주를 누구보다 사랑한 일본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일본에 윤동주의 시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일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윤동주의 시가 실릴 수 있도록 힘쓴 인물이다. 또한 한국어를 배워 직접 한국시를 번역한 훌륭한 한국어 번역자다. 이 책은 『詩のこころを讀む』(1979)를 번역한 것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40여 편의 시로 채워져 있다. 시인은 시를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시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써내려간다.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으로 시를 읽고, 조곤조곤 말을 덧붙인다. 그 시선은 그의 시의 특징과도 닮아 있다. 밝고 발랄하게 노래하는 가운데 생활에 뿌리를 내린 현재적 주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적인 비평성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한국어판에는 원서에는 없는 일러스트를 본문 곳곳에 실었다. 그녀의 글들은 일러스트와 함께 어우러져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마음을 도닥여주고 따뜻하게 덮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의 시인,
나를 풍요롭게 해준 시들

1926년생인 이바라기 노리코는 전후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던 시기에 청춘을 보냈다. 1976년이던 쉰 살 무렵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한국 현대시를 일본에 소개했으며, 1991년 『한국현대시선』으로 연구·번역 부문에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는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처음 가는 마을』 『여자의 말』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 등 그의 시집과 시선집이 여럿 번역돼 있다. 2006년 뇌동맥류파열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시인으로 살았고 다른 이의 시도 수없이 읽어왔을 이바라기 노리코가 이 책에 꼽은 시들은 “나를 몇 겹이나 풍요롭게 해준 시들이여 나와라!” 하고 주문을 외자 나온 것들이다. 이 시들을 이모저모 뜯어보고 왜 좋은가를 검증하고, 소중한 것들이 왜 소중한지 정열을 담아 말해보고, 그것이 젊은이들에게 시의 매력을 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대체로 전후戰後의 시로 한정했고, 전쟁 전 시 3편, 외국 시도 2편 실려 있다. 어쩌다보니 시의 나열이 ‘탄생에서 죽음까지’가 되었다. 태어나서(1장), 사랑하고(2장), 사느라 아등바등하다 보니(3장) 고개를 넘어(4장) 이별(5장)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이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책에 언급한 시 가운데 당시 함께 활동한 다니카와 슌타로, 요시노 히로시 등의 시를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열두 살에 자살해버린 오카 마사후미의 시도 싣는 등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장르의 시들을 선별해 넣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이입하고, 자신이 마치 그 상황에 처해 있는 듯이 한 구절씩 읽어내려간다. 그녀가 꼽은 이 시들은 모두 그녀에게 있어 ‘각각의 방식으로 정화장치를 숨기고 있으면서, 슬퍼질 만큼 쾌감을 주는’ 작품들이다.

“어떤 연애시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의 시”

다소 재미있는 시가 보인다. 어린 딸과 아버지의 대화다.

(……)
조그마한 유리는 한꺼번에 이런저런 말을 한다
“책 읽어 아빠”
“이 끈 풀어 아빠”
“여기 가위로 잘라 아빠”
계란부침을 뒤집으려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참에
허둥대며 유리가 달려온다
“쉬 나와 아빠”
점점 나는 기분이 나빠진다
화학조미료 한 스푼
프라이팬 한 번 흔들고
위스키 한 모금 꿀꺽
점점 조그마한 유리도 기분이 나빠진다
“빨리 여기 자르라고 아빠”
“빨리”
다혈질 아버지가 소리를 지른다
“너가 해 너가”
다혈질 딸이 받아친다
“주정뱅이 느림보 할배”
아버지가 화나 딸의 엉덩이를 때린다
조그마한 유리가 운다
큰 큰 소리로 운다

핵심은 그 뒤 이야기다. 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후 ‘해질녘 30분’이다.

그러고 나서
이윽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찾아온다
아버지는 순하고 상냥해진다
조그마한 유리도 순하고 상냥해진다
둘이서 식탁에 마주앉는다 (구로다 사부로, 「해질녘 30분」)

압권은 “주정뱅이 느림보 할배”라는 발랄한 딸의 험담이다. 주정뱅이, 할배 정도는 그렇다 쳐도 부모에게 ‘느림보’라니. 아빠와 딸 사이에 심한 말이 오가고, 서로 기분이 상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분위기는 험악한 것이 아니다. 이바라기 노리코 역시 이후에 찾아오는 시간에 대해 “담백하고 고요하고 후련한 시간”이라 보고, “하고 싶은 말을 서로 한껏 해대고, 아무런 응어리도 남기지 않는 것은 육친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이 따뜻한 시를 평가한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러한 ‘저물녘 30분’이 있을 거라고.

사느라 아등바등,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일본인의 부끄러움

언덕 아래에서 비스듬히
이군이 올라왔다
(……)
나는 이군이 좋았다
이군 내가 좋았을까
(……)
냄새 나 냄새 나 조선 냄새 나
나 금방 이군에게서 떨어져서
입 빠끔빠끔거리며 소리치는 척했다
냄새 나 냄새 나 조선 냄새 나
지금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한 접시 500원짜리
한밤중의 만두가게에 달려가서
되도록 꽉꽉 마늘을 채워달라 부탁하여
먹어버리는 것이다
두 접시고 세 접시고
두 접시고 세 접시고! (이와타 히로시, 「주소와 만두」)

이바라기 노리코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 일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야기한다.
‘나’는 사실 이군을 좋아했지만 ‘조선 냄새가 난다’고 놀리는 아이들 무리에 섞여 입을 빠끔거리며 소리치는 척을 한다. 이러한 기억은 어른이 되고 나서까지 부끄러움으로 남아 만두가게에 달려가 만두를 먹어버리는 행위를 통해 표출된다. 우리나라와 한글에 관심이 있었던 만큼, 이바라기는 당시 일본의 만행을 기록하며, 일본의 만행에 대한 일본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다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예전에 저지른 비인도적인 일에 대한 수많은 자료·통계·논문을 읽는 것보다 이 한 편의 시가 훨씬 마음을 쿡 찌르고, 일본과 한국의 과거에 있었던 불행을 비추어준다고 느낍니다. 아마도 그것은 시인이 제 부끄러움에 대한 통렬한 감각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겠습니다.

이별, 그리고 죽음에 대한 유쾌한 시선

이별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나카하라 주야의 「양의 노래」를 통해 드러난다. 그의 글 곳곳에서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만날 수 있다. ‘그래, 나는 내가 느낄 수 없었던 까닭에, 벌을 받고, 죽음이 왔다고 생각한다’는 시 구절을 언급하며 “제 사인死因을 미리 이러한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두려움마저 느낍니다. 그 날카로운 직관의 힘에”라고 이야기하며 더불어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도 남겼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발랄하고 충분하게 이 세계를 맛보기 위함이 아닐까요. 천국과 지옥이 함께 있고, 괴기와 환상으로 가득한 이 땅에서.”
사인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던 그였지만, 역시 이바라기답게 미리 유서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바라기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던 듯싶다.

장례식이나 고별식은 일체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 뜻입니다. 이 집도 당분간 사람이 없을 터이니, 조위품은 꽃을 포함하여 일체 보내지 말아주시기를. 반송의 무례를 거듭할 뿐이라 생각하므로. “그 사람도 갔구나” 하고 잠깐, 그저 잠깐 생각해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향년 80세.

또한 「알람브라 궁전 벽의」라는 기시다 에리코의 짧은 시(알람브라 궁전 벽의/ 엉킨 덩굴풀처럼/ 나는 헤매는 것을 좋아한다/ 출구에서 들어가 입구를 찾는 일도)에서는 죽음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발상이 돋보인다.

또한 ‘입구를 탄생, 출구를 죽음’이라 생각한다면, 시인은 죽음으로부터 거꾸로 삶 쪽으로 나아가는?그러한 제 ‘심술꾸러기’ 짓을 재미있어하는 듯한 구석도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출구라고만 생각하지만 어쩌면 분명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접기


알라딘: [전자책]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알라딘: [전자책]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지은이),윤수현 (옮긴이)
스타북스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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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136쪽


책소개
100만 독자가 추천한 일본의 멋쟁이 시인, 한국인과 교류하고, 한국과 한글과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이바라기 노리코가 발표한 많은 시는 역사적인 어둠과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고 분명하게 담고 있다. 시집에는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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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바라기노리코의 시의 마음을 읽다 - 이보나



저자 및 역자소개
이바라기 노리코 (茨木 のり子) (지은이)

192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46년 도호대학 약학부를 졸업했다. 1950년 무렵부터 시작詩作을 시작하여, 잡지 『시학詩學』 독자투고란에 시를 투고하기 시작해 같은 잡지 신인특집호에 게재되었다. 1953년 가와사키 히로시와 둘이서 동인시지同人詩誌 『노櫂』를 발간했다. 전후戰後,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던 시기에 청춘을 보낸 시인은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으로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격렬함과 반골 기질이 내포된 날카로운 시풍을 견지했다. 1976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여 한국 현대시를 일본에 소개했... 더보기


최근작 : <시의 마음을 읽다>,<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여자의 말> … 총 30종 (모두보기)

윤수현 (옮긴이)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하여 통번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업에서 다년간의 실무 경험을 거쳐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한일통번역과를 졸업했다. 윤동주100년포럼에 참여하여 『장 콕토 시집』『폴 발레리 시집』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전문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최근작 :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글의 매력에 빠져, 죽을 때까지
윤동주와 한국을 사랑한 이바라기 노리코
그리고 서정시의 대표작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

죽는 날 공개하라면서 미리 감사와 함께 이별의 인사말을 남긴 시인
‘“그 사람이 떠났구나” 하고 한순간, 단지 한순간 생각해 주셨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랫동안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따뜻한 교제는, 보이지 않는 보석처럼, 나의 가슴속을 채워서, 광망을 발하고, 나의 인생을 얼마만큼 풍부하게 해 주신 건가?". 깊은 감사를 바치면서, 이별의 인사말을 드립니다. 고마웠습니다.
2006년 3월 길일‘

이바라기 노리코는 2006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일본 시는 희로애락 가운데 노가 없다. 그러나 한국시에는 그 노가 있다.” 나는 이바라키 노리코의 이런 코멘트에 동감한다. “일본에는 서정시인만 있다. 시인의 사회적 영향력도 한국에 비해 미약하다.” 이 코멘트에도 동감한다. 일본 시인들을 향해 이렇게 거침없는 비판을 할 수 있는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한 편부터 소개한다.

(전반주 생략)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이런 엉터리 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다
나는 무척 덤벙거렸고
나는 너무도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내가 가장 예뻤을 때」

1945년 일본이 패전했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다. 그 이듬해 그녀는 지금의 토호대학인 제국여자약전 약학부를 졸업한다. 말이 대학이지, 여학생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해군 약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이른바 ‘군국주의 정신대 소녀’나 다름없었다.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동인지 ‘카이’를 창간하고, 1955년에 출간한 첫 시집『대화』에 수록한 시에서부터 넘치는 상상력을 보여 주었다.

이바라키 노리코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그녀가 32살 때에 20대 초기를 회상하며 쓴 시로서 일본의 국정교과서에도 실렸다. 온 거리가 대공습으로 와르르 무너진 건물 안에서 천정을 보았을 때 “파란 하늘같은 것”이 보였다는 증언으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죽어가는 사람들, 전쟁에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이 전쟁을 그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단정짓는다. 남자도 흉내 내기 힘든 대담한 표현이다. “비굴한 도시를 으스대며 쏘다녔다”는 표현처럼 그녀는 자유롭게 활보한다. 마지막 연에 나오는 루오 역시 뒤늦게 명성을 얻은 할아버지 화가이다. 루오처럼 뒤늦게라도 청춘을 즐기고 싶다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인은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노래로 이 시를 승화시키고 있다.

이 시 뿐만 아니라 이바라기 노리코가 발표한 많은 시는 역사적인 어둠과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고 분명하게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지진의 도쿄에서/ 왜 죄 없이 살해되었는가”(「쟝 폴 사르트르에게」)라며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증언한 시도 발표한다. 이 시는 “잘 안 되는 것은 모두 저놈들 탓이다”라며 일제 강점기 시절 유대인 못지않은 박해를 받다 온 한국인이 당한 아픔을 어느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인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표현 속에도 패배주의적인 비장감은 없다. 오히려 낙관적이다. 밝다. 바로 이런 점 덕분에 전쟁의 풍경을 숨 막히는 비극적 어둠으로 표현하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한 편의 시만으로도 전후시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열었다는 평을 얻었다.

…전반부 생략…
-잘 안되는 것은 모두 저놈 탓이다

조선 사람들이 대지진이 난 동경에서
왜 죄 없이 살해당했는지
흑인 여학생은 왜 칼리지에서 배우면 안 되는지
우리들조차 누군가가 잡은 총에
겨누어지고 있지 않은지
나에게는 한꺼번에 알 수 있는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참혹한 사건의 가지가지가

사르트르씨
나는 당신을 깊이 알고 있지 않다
유대인의 생태生態도 표정도 친숙하지는 않다
인간에 대한 전율이 또 하나 늘어났지만
여하튼 지금 있는 것은 순수한 하나의 기쁨!
…후반부 생략…
-이바라기 노리코「장 폴 사르트르에게」

일본의 한국 식민지 통치의 상흔을 묘사한 또 다른 시도 있다.

한국의 노인은
지금도 변소에 갈 때
조용히 허리를 일으키며
“총독부에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조선총독부에서 호출장이 오면
가지 않고는 못 배겼던 시대
어쩔 수 없는 사정
-이바라기 노리코「총독부에 다녀오다」전문

얼마나 한국인이 겪은 역사의 상흔과 아픔을 잘 만져 주는 시인가. 목소리가 높지도 않으면서, 조근조근 풍경 속의 작은 에피소드를 등장시키면서 실감나게 조선총독부 치하의 한국인들이 겪었을 치욕을 그리고 있다.

또한 ‘기대지 말고’라는 자의식에 관한 유명한 시도 있다.

더 이상 야합하는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이바라기 노리코「기대지 말고」전문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해야 살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리고 친구나 연인 같은 동조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바라기 노리코 시 속의 기댐은 비굴한 야합 수준의 기댐을 말한다. 시인은 사상이나 종교나 학문, 그리고 권위에 기대는 것은 야합이라고 한다. 결국 이 시는 기대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떳떳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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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ella1133 2019-10-08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상쾌한
일요일 아침
식탁에 커피 향 흐르고.....
라고 중얼거리고 싶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점점 늘어난다

<식탁에 커피향 흐리고> 중에서

이바라기 노리코. 공선옥 작가의 소설 표제시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잘 알려진 일본시인으로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작가의 시를 한 편 한 편 접할수록 윤동주를 혹은 한국을 사랑한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더는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패전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 그야말로 가장 예뻤을 그 나이에 그녀는 참혹한 세상을 마주했고, '아무도 그녀에게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던'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도 그녀는 시를 썼고 희망을 보았다. 자신과 조국의 희망만 본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피폐한 삶과 억울함도 그녀의 시선안에 들어왔다. 왜 불쌍한 저들(조선인들)탓이 되고 그로인해 희생되어야 하고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녀는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녀는 삶 그자체에 대한 깊은 관심이 느껴졌다. 글 서두에 발췌한 <식탁에 커피향 흐르고>중 일부는 저자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평일 오후, 주말 아침이란 키워드를 넣고 SNS를 검색하면 그 안에는 늘 한 잔의 커피가 흐르고 그것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경제적 여유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인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간단하고 그리 어렵지도 수고롭지도 않은 그 장면하나가 그토록 여유의 대명사처럼 느껴지는 것은 패전이후나 지금이나 사람이 온전하게 평화롭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었다.



살아있는 나라 죽어있는 나라
그것을 어떻게 간파할까
쏙 빼닮은 학살의 오늘에서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
둘은 다가서서 나란히 선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모습을 감추고

모습을 감추고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 중에서

이바라기 노리코를 떠올렸을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나란 사람은 과연 그녀의 작품 중 어떤 시를 먼저 떠올리게 될까 생각해보았다. 앞서 언급한 시도, 미처 언급하지 못하고 리뷰안에 스며들었던 <장 폴 사르트르에게>에게일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단 한 편의 시를 꼽으라면 위의 시,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의 저 부분이 떠오를 것이다. 살아있는 사과인지, 죽어있는 요리인지, 혹은 마음이 죽고살았는지를 나는 잘 알고 있는가. 내 나라가 그러한지 이웃나라가 그러한지는 판단할 수 있을만큼 이성적이고 현명한지가 궁금해졌다. 물론 시인은 내게 그런 현명함이 있는지를 묻고 있는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이 불문명하니 잘 보라고, 혹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도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하는 듯 싶었다. 마치 윤동주시인의 <아우의 인상화> 속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를 두고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동생을 걱정하여 썼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말이다. 윤동주시인이 동생을 걱정하듯 그녀도 자국민을 포함한 누구라도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걱정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시인의 사랑]속 시인이 말하길 누군가를 대신해서 울어주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했다. 그런 맥락으로 보자면 분명 이바라기 노리코는 '시인'으로서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시인'으로 함께할 것이다.


리제 2019-07-11 공감(5) 댓글(0)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네 김수성 정도는

파삭파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 탓하지 마라
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해놓고

서먹해진 사이를
친구탓하지 마라
유연한 마음을 잃은 것은 누구인가

짜증 나는 것을
가족 탓하지 마라
모두 내 잘못

초심을 잃어가는 것을
세월 탓하지 마라.
애초부터 미약한 뜻에 지나지 않았다.

안 좋은 것 전부를
시대 탓하지 마라
희미하게 빛나는 존엄의 포기.(-19-)


질문

인류는
이제 손쓸 수 없이 늙었나요
아니면
아직 매우 젊은가요
누구도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
모든 것에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우리는
지금 대체 어디쯤?

삽삽한
초여름의 바람이여 (-49-)


되새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닳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녀시절
아름다운 태도
정확한 발음의
멋진 여성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애쓰는 걸 간파한 듯
무심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풋풋함이 중요해요.
사람에 대해서든 세상에 대해서든
사람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게 되었을 때
타락하기 시작하죠 떨어지는 걸
감추려 해도 감추지 못한 사람을 여러 명 보았어요.

나는 뜨끔했습니다
그리고 깊이 깨달았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갈팡질팡해도 되는구나
어색한 인사 추하게 빨개진다
실어증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
아이의 나쁜 행동에도 상처를 받는다.
믿음이 안 가는 생굴과 같은 감수성
그것을 단련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던 거구나
나이 들어도 갓 핀 장미 연약하고
밖을 향해 피는 것이야말로 어렵다.
모든 일
모든 좋은 일의 핵심에는
떨리는 약한 안테나가 감춰져 있다 분명
나도 예전 그 사람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며
지금도 가끔 그 의미를
조용히 되새길 때가 있습니다.(-91-)


회상이라는 것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그르다는 걸 인식하게 되는 그 순간,나 스스로 부끄러움과 마주하게 된다. 이제 고인이 되어버린 시인 윤동주의 삶의 파라미터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또다른 부끄러운 자화상과 마주하게 된다. 시는 우리의 마음 언저리의 본질적인 요소들에 개입하게 되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것들, 내 앞에 놓여진 것들에 대해서 조금씩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여쁘게 바라보게 되며, 그것을 또다른 시들을 통해서 내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 윤동주를 사랑했던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씨는 윤동주의 시에서 자신의 시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고, 그 동시대에 살아왔다는 걸 잊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것이리라, 윤동주의 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들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시들은 스스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어릴 때의 나의 모습과 성장하면서 자신의 모습들을 겹쳐 놓으면서, 내가 남겨놓을 씨앗에 대해서 스스로 발아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자신의 풋풋한 어린 시절을 잊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암울했던 시기에도 그 안에는 아름다움이 공존하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함이 숨쉬고 있었다.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 추하지 않도록 살아가며, 그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시들이 한 권의 책속에 있다.
- 접기
깐도리 2019-07-1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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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을 읽고

학창시절 배운 시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시라고 하면, 단연코 윤동주 시인의 서시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윤동주 시인을 사랑한 일본의 시인이 있었고, 그렇게 윤동주 시인의 시가 일본 교과서에 실릴 수 있었다는 것을 한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윤동주를 사랑했던 여류 시인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들을 지금 이렇게 만날 수 있음에 약간 떨림이 생긴다.

시라는 글은 그렇다. 내가 삶에서 흔들릴 때, 외로울 때, 힘들 때, 살며시 다가와서 쓰다듬어 주고 가는 그런 면이 있다. 아마도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들도 그러했을 것 같다.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 할 때, 이 시인의 시가 일본을 위로했다고 하니 정말 어떤 시들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자연이 우리들에게 가져다 주는 계절의 특색을 저자는 ‘보이지 않는 배달부’라는 시에서 시인 특유의 감성으로 전해준다. 정말 다음의 구절을 읽으며 시인의 상상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3월 복숭아꽃이 피고

5월 등나무 꽃잎들이 일제히 흐드러지고 … <중략>

땅 밑에는 조금 게으른 배달부가 있어

모자를 거꾸로 쓰고 페달을 밟고 있는 것이겠지

그들은 전한다 뿌리에서 뿌리고

가기 쉬운 계절의 마음을

우와, 정말 땅 밑에 배달부가 있는 것만 같다. 무언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야 할 것만 같은 동화와도 같은 시다. 이렇게 이 책에 실린 그녀의 시들은 무언가 부드럽다. 하지만, 꼭 그런 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대표작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또 다른 느낌의 시다.

이 시집은 후반부는 그녀가 쓴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 윤동주 시인이 옥사하셨는지를 일본인 스스로 그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감동적이다. 무언가 정의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문학인의 의연함과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가 어떻게 해서 한글을 매료되었는지, 왜 한글을 공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한글의 정서를 생각나게 한다.

시인의 삶과 함께 읽은 그녀의 시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단지 시 만을 읽었다면 왜 이런 시들이 그녀의 삶의 뿌리에서 나왔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읽고 그녀의 대표작인 두 시를 다시 읽으니 정말 그녀의 가슴이 어떠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시의 여백 속에서 뛰어 놀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인을 통해 우리 역사 속의 위대한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윤동주의 삶도 다시 한 번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무척이나 의미 있는 시집이었다.


freemangun 2019-07-11 공감(0) 댓글(0)




윤동주 시인을 사랑한 일본 시인 노리코

[서평]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식탁에 커피향 흐르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이바라기 노리코 저, 윤수현 저, 윤수현 역, 스타북스, 2019. 06.10.)

사람들에게 ‘그래도 사세요.’라는 말을 전하는 시인이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가 그렇다.

시의 첫 부분은 다음과 같다. 「네 감수성 정도는」 파삭파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 탓하지 마라/ 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해놓고// 서먹해진 사이를/ 친구 탓하지 마라/ 유연한 마음을 잃은 것은 누구인가// 짜증 나는 것을/ 가족 탓하지 마라/ 모두 내 잘못// 초심을 잃어가는 것을/ 세월 탓하지 마라/ 애초부터 미약한 뜻에 지나지 않았다// 안 좋은 것 전부를/ 시대 탓하지 마라/ 희미하게 빛나는 존엄의 포기.

저자는 말했다. 좋은 시에는 사람의 마음을 해방시켜주는 힘이 있다고. 또 좋은 시에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람의 감정을 부드럽게 이끌어내 주기도 한다고. 타인의 마음을 해방시켜 준다는 것은 사람에게는 원래 부드러운 마음이 있다는 것이며, 연민의 감정을 이끌어내 준다는 것은 사실은 누구에게나 풍부한 감수성이 있다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와 그의 시를 사랑했던 노리코

책을 읽던 중 맘에 드는 시 구절이 또 있었다. 「벚꽃」 …….//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를 한적히 걸으면/ 한순간/ 명승처럼 깨닫게 됩니다/ 죽음이야말로 정상 상태/ 생은 사랑스러운 신기루라고.

시집의 작품들 가운데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그녀가 32살 때에 20대 포기를 회상하며 쓴 시로서 일본의 국정교과서에도 실렸다. 시는 다음과 같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못한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다/ 나는 무척 덤벙거렸고/ 나는 너무도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저자는 일본에 의한 한국의 식민통치를 풍경 속의 작은 에피소드로 등장시키며 조근조근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총독부 치하의 한국인들이 겪었을 치욕을 실감나게 그렸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2006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일본 시는 희로애락 가운데 ‘노’가 없다. 그러나 한국시에는 그 ‘노’가 있다.”

1956년에 남편과 사별한 후 이바라기 노리코는 자기 치유의 한 방법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녀의 한국어 공부를 도운 분은 홍윤숙 시인이었다. 1990년에 마침내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은 12명의 한국 현대시인들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한국현대시선』을 출간했다. 그 주아 가장 좋아하던 시인은 윤동주였다. 그런데 같은 일본인들은 윤동주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했다.

노리코가 보기에 윤동주는 젊은 나이에 죽은 시인이기에 앞서, 젊음이나 순결을 그대로 간직한 맑고 깨끗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노리코는 윤동주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지적인 분위기, 티끌 한 점 없을 것 같은 밝고 순수한 모습에서 내가 어릴 적 무척이나 우러러봤던 대학생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는 어떤 그리운 감정이 겹치면서 윤동주의 인상은 너무나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언제나 수선화와 같은 상큼한 향기를 풍겨 후대의 모든 독자들까지 매료시키는 힘이 있었다. 실제로 윤동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고 말았다.

「혼자서는 생기발랄」 ……. // 혼자 있을 때 외로운 사람은/ 둘이 모이면 더욱 외롭다// 여럿이 모이면/ 타 타 타 타 타 타락이로군// 사랑하는 사람이여/ 아직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그대/ 혼자 있을 때 생기발랄한 사람으로/ 있어 주세요.


노리코는 2006년 2월 17일 지주막하출혈로 별세했다. 향년 80세였다.
- 접기
kimyital 2019-07-1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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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이바라기 노키로 시집

저자 이바라기 노리코는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대한민국에 관심을 갖고
우리네의 비극을 시로 표현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저자 윤동주를 일본에 알린 시인이다.
같은 시대 다른 상황에서 살아온 그녀지만 역사적인 어둠을 인지하고 그로 인한 비극적인 현장을 시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국적이 다름에도 시에서 느껴지는 정취는 낯설지 않다.



한 권의 시집을 읽다 보면 글을 쓴 저자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가장 중심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의문점을 도서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에 대입하여 본다면

그녀를 이루고 있는 중심축은 크게 여성으로서의 삶과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삶임을 관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그때그때 달라지는 상황에 나라는 존재를 지켜가는 것이 아닐까?

시를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삶을 통하여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 같은 느낌이 든다.

별개의 삶이지만 한 편 한 편을 읽을수록 연결되는 듯한 느낌,



이러한 감정을 저자 이바라기 노리코는 윤동주의 시에서 읽어 낸 것이 아닐까?



좋은 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공감의 울림을 주는 시야 말로 좋은 시이고

그러한 시들이 묶여 있는 책이 바로 이바라기 노키로 시집이라고

시를 추천해 달라는 누군가에게 선뜻 권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