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5

조선의 무격 | 한국근대 민속ㆍ인류학 번역총서 1 | 무라야마 지쥰 | 알라딘

조선의 무격 | 한국근대 민속ㆍ인류학 번역총서 1 | 무라야마 지쥰 | 알라딘

조선의 무격 |무라야마 지쥰 (지은이),최길성,박호원 (옮긴이)민속원2014-08-30





































책소개
일제 식민지 당국의 조사 자료로서, 자료 수집을 위한 일련의‘ 풍속’ 조사와 관련한 정책적인 방향에서 수립되고 추진된 것이다. 비록 조선총독부의 참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경찰을 동원한 조사라는 배경과 방법에서 태생적인 한계와 문제를 갖고 있는 조사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에 담겨 있는 조선 전역의 무속에 대한 현황 자료는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발간에 즈음하여


해제 / 범례 / 서 / 서언


1. 무격의 분포
1. 무격의 수
2. 신분, 성, 연령
3. 분포상황

2. 무격의 호칭
1. 무칭巫稱의 종류
2. 무칭의 분포
3. 기록상의 무칭
4. 무칭(무당)에 대하여

3. 성무成巫 동기와 과정
1. 성무 동기
2. 영감무의 성무 과정
3. 세습무의 성무 과정
4. 생업무의 성무 과정
5. 기타의 성무 과정
6. 성무 기관

4. 무행신사巫行神事
1. 신사의 종류
2. 옛날의 신사
3. 현행의 신사

5. 제사의례巫禱儀禮
1. 무의巫儀의 관념
2. 무의의 절차
3. 각지 현행의 무의

6. 무격의 수요
1. 무격의 수요와 신뢰
2. 현재의 신무信巫 상황
3. 단골제

7. 무격의 영향
1. 무격의 공과功過
2. 무격의 폐해
3. 조선 전역의 무폐巫弊

8. 무구와 무경
1. 무구巫具
2. 무경巫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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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조선의 무격 사진(2)
무격이 사용하는 기도 경문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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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무라야마 지쥰 (村山 智順)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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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카타新瀉현 카리와刈羽군에서 태어나, 일찍이 日蓮宗의 妙光寺에 들어가, 이곳의 주지 무라야마 지젠村山智全 밑에서 성장하였다. 1916년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여 사회학을 전공하고, 1919년 7월 졸업하였는데 졸업 논문은 「일본 국민성의 발달」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8세 되던 해에 한국으로 건너와 1941년 3월까지 조선총독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조선에서 활동하였다.『조선의 무격』 외 10여 권의 조사보고서가 있다.

최근작 : <조선의 귀신>,<부락제>,<조선의 무격> … 총 15종 (모두보기)

최길성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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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1938년) 경기 양주 출생
1963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졸업
1966~69년 육군사관학교 교관. 육군 대위
1969~72년 문화공보부 문화재전문위원
1972년 일본 유학
1985년 츠쿠바대학 문학박사
경남대학교 계명대학교에서 일본학 교수
1991년부터 일본 중부대학 교수
1995년부터 히로시마 대학 교수. 현재 명예교수
2005년부터 일본 동아대학교 교수 겸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

주요 저서
『恨の人類學』, 『韓國民俗への招待』, 『帝國日本の植民地を步く』, 『米軍慰安婦の眞實』, 『これでは困まる韓國』, 『哭きの文化人類學』, 『일제시대 한 어촌의 문화 변용』, 『한국 무속의 연구』, 『한국의 무당』 등 다수. 『米軍慰安婦の眞實』(2017)은 일본 국가기본연구소에서 주는 ‘일본연구특별상’ 수상.

주요 역서
『일본의 사회구조』, 『일본의 사회와 종교』, 『일본의 종교』, 『한국의 유사종교』, 『조선의 풍수』, 『시베리아의 샤머니즘』 등 다수. 접기

최근작 : <무속에서 기독교로>,<미군과 매춘부>,<친일과 반일의 문화인류학> … 총 33종 (모두보기)

박호원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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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솟대신앙의 연구」(1987)로 석사를, 『한국 공동체신앙의 역사적 연구(1997)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한국 장승 · 솟대신앙의 현지조사, 전국 어촌생활사 조사 및 근대 이후 생활사 관련 자료의 수집 및 조사에 종사하였다.
주요 논저로는 「고려 무속신앙의 전개와 그 내용」, 「장승의 기원과 신앙 형성」, 『서낭당』, 『한국 마을 신앙의 탄생』 등이 있고 번역서로 『제국일본과 인류학자』 등이 있다.

최근작 : <만주사변 직후 간도 항일유격대에 대한 일본군의 토벌>,<재만조선총독부시설기념첩>,<간도사진첩> … 총 21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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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무라야마 지쥰의 『조선의 무격』은 일제 식민지 당국의 조사 자료로서, 자료 수집을 위한 일련의‘ 풍속’ 조사와 관련한 정책적인 방향에서 수립되고 추진된 것이다.

이를 통해 무라야마는 조선의 무속신앙이 오래전부터 조선 문화의 근간을 형성해 왔으며 지금도 조선인의 정신생활을 지배하고 있다고 하여, 조선 문화와 조선인의 정신문화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조사 대상인 것으로 인식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조선의 무격에 대해 조선의 고유한 문화와 예능을 유지해온 자로 높이 평가하는 반면, 한편으로 위생·경제·사상에서의 부정적인 영향을 민중에 부각한 자로 혹평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선총독부의 참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경찰을 동원한 조사라는 배경과 방법에서 태생적인 한계와 문제를 갖고 있는 조사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에 담겨 있는 조선 전역의 무속에 대한 현황 자료는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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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격> 요약 및 평론

1. 서론: 식민지 통치 이데올로기와 무속 조사

<조선의 무격>(원제: 朝鮮の巫覡, 1932)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촉탁이었던 무라야마 지준이 조선의 무속 신앙과 무당(무격)에 대해 조사하여 발간한 방대한 연구 보고서이다. 앞서 발간된 <조선의 귀신>(1929)이 조선인들이 신앙했던 영적 존재들의 체계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그러한 귀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종교 전문가인 '무격(무당과 박수)'의 실태와 의례를 집중적으로 해부한다. 일제는 조선인의 민간신앙을 철저히 파악하여 식민지 통치의 효율성을 높이고, 내선일체와 황민화 정책의 장애물을 제거하고자 이 조사를 기획했다. 따라서 이 책은 제국주의 학자가 지닌 권력의 시선이라는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당대 조선 무속의 지리적·형태적 다양성을 기록한 가장 방대한 민속학적 보고서라는 이중적 지위를 지닌다.

2. 내용 요약: 무격의 생태와 굿의 의례 체계

무라야마 지준은 조선 전역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현지 조사와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 무속을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분류하고 정리했다. 책의 핵심 내용은 무격의 개념과 종류, 무격이 되는 과정, 그리고 그들이 행하는 의례인 '굿'의 구조로 나뉜다.

첫째, 무격의 정의와 계급적 분류이다. 저자는 남무(男巫)를 '박수', 여무(女巫)를 '무당'으로 칭하며, 이들이 조선 사회에서 지닌 천민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기술한다. 특히 신의 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강신무(降신巫)'와 부모로부터 무업을 대대로 물려받는 '세습무(世襲巫)'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했다. 이를 통해 한강을 기준으로 북부 지역에는 주로 강신무가, 남부 지역에는 주로 세습무가 분포한다는 지리적·문화적 특징을 체계적으로 도식화했다.

둘째, 무격이 되는 과정(성무 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강신무들이 겪는 정신적·육체적 위기인 '신병(神病)'의 증상과 이를 치유하기 위해 행하는 '내림굿(성무 의례)'의 과정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무당이 신을 모시는 방인 '신당(神堂)'의 내부 구조와 그곳에 모셔진 다양한 신령(장군, 대신, 조상 등)의 도상을 기록했다.

셋째, 무속 의례인 '굿'의 대규모 채록이다. 저자는 개별 가정의 우환을 없애는 굿부터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비는 부락제(당산제, 별신굿 등)에 이르기까지, 굿의 목적과 규모에 따라 의례를 분류했다. 굿의 진행 순서(거리)별로 무당이 부르는 무가(巫歌), 무수(巫 dance), 사용하는 무구(부채, 방울, 삼지창 등)와 악기(장구, 징, 피리) 등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조선 무속의 연희적·예술적 측면까지 본의 아니게 풍부하게 담아냈다.

3. 평론: 식민지적 왜곡의 안경과 역설적 아카이빙

<조선의 무격>을 관통하는 비판적 쟁점은 식민주의 학자가 견지한 <타자화의 시선>이다. 무라야마 지준은 무속을 합리적 이성이 결여된 '전근대적 미신'이자 '조선인 유치성의 증거'로 바라본다. 그는 무당을 민중의 무지를 착취하여 사익을 취하는 주술업자로 묘사하거나, 무속 신앙을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다. 이러한 서사는 조선인의 종교적 에너지를 통제하고, 일제의 신도(神道) 신앙이나 근대적 규율을 이식하기 위한 식민지 권력의 정치적 정당화 작업이었다. 즉, 주체인 조선인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종교를 철저히 박물관의 표본처럼 박제하고 해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한국 민속학사에 남긴 역설적 기여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급격한 근대화와 기독교의 확산, 그리고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등으로 인해 전통 무속을 '미신 타파'의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구전 무가와 지역별 세습무의 맥이 끊어졌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라는 특정 시점에 조선 전역의 무속 실태를 행정력을 동원해 전수 조사한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무속의 원형을 보여주는 유일무이한 <종합 아카이브>가 되었다. 특히 지역별 무가의 채록과 당대 굿판의 실제 사진들은 오늘날 사라진 전통 의례를 고증하고 복원하는 데 대체 불가능한 학술적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4. 결론: 지배의 도구에서 문화적 자산으로의 전환

결론적으로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무격>은 식민지 통치라는 불순한 목적에서 출발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한국 민속학의 가장 거대한 기초 자료가 된 모순적 기념비이다. 현대의 독자는 저자의 텍스트 이면에 깔린 제국주의적 편견과 왜곡을 날카롭게 해체하며 읽어야 한다. 동시에 그가 남긴 방대한 기록 속에서 근대화의 폭력 속에 사라져 간 조선 민중의 내면세계와 예술적 상상력을 길어 올려야 한다. 이 책은 식민지 지배 학문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비판적 성찰과, 그 안의 데이터를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창조적 해석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발할 수 있는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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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지준, <조선의 무격(朝鮮の巫覡)> 요약·평론

1. 책의 성격과 조사 배경

<조선의 무격>은 일본인 조사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조선의 무당과 굿, 점복, 치병, 축귀 행위를 조사하여 1932년에 발간한 책이다. 무라야마의 ‘민간신앙’ 조사 가운데 <조선의 귀신>, <조선의 풍수>에 이은 세 번째 보고서에 해당한다. 2014년에 최길성과 박호원이 번역한 한국어판은 588쪽에 이른다.

‘무격(巫覡)’은 여성 무당인 무(巫)와 남성 무당인 격(覡)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 조선 사회에서는 무당, 만신, 박수, 판수, 법사, 심방 등 지역과 기능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이 책은 이들을 하나의 종교체계 안에 놓고 분류하려 한다.

조사는 주로 지방 행정기관과 경찰서를 통해 이루어졌다. 1930년 8월 총독부가 각 경찰서에 무업 종사자의 수와 활동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였고, 무라야마는 이를 토대로 전국에 약 1만 2,380명의 무격이 있다고 집계했다. 그러나 미보고 경찰서가 있었고, 경찰의 단속을 피하여 숨어 활동한 사람도 많았으므로 실제 숫자는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무격에게 중립적인 조사자가 아니라 단속과 처벌의 주체였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얻어진 통계와 증언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2. 무당은 어떤 사람인가

무라야마는 무당이 되는 경로를 여러 유형으로 나눈다. 가장 중요한 구별은 강신무와 세습무이다.

강신무는 신병을 앓고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 사람이다. 원인 모를 질병, 정신적 혼란, 반복되는 꿈과 환영, 극심한 신체 고통을 겪다가 내림굿을 통해 특정 신을 받아들인다. 당사자는 처음에는 무당이 되는 것을 거부하지만, 거부할수록 병과 불행이 심해진다고 여긴다. 결국 신을 받아들인 뒤에야 몸과 정신이 안정되고 무업을 시작한다.

세습무는 집안의 무업을 물려받은 사람이다. 부모나 친족에게 굿의 절차, 무가, 춤, 악기, 제물 차리는 법을 배우고 일정 지역의 의례를 담당한다. 강신무가 신령의 직접적인 말을 전하는 능력을 강조한다면, 세습무는 숙련된 의례와 예술적 기량을 중시한다.

그 밖에도 가난 때문에 무업에 들어온 사람, 질병을 치료받은 뒤 무당을 따른 사람, 맹인으로서 독경과 점복을 배운 판수, 불교와 도교 계통의 경문을 외우며 축귀와 치병을 행한 법사 등이 소개된다. 무라야마의 조사에서는 생계를 위해 무업에 들어온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맹인은 농업과 일반 노동에 참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독경·점복을 전문 직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은 무당을 단순히 ‘신비한 종교인’으로만 볼 수 없게 한다. 무업은 종교적 소명인 동시에 여성, 장애인, 빈곤층이 생계를 얻을 수 있었던 제한된 직업 공간이었다.

3. 무당이 섬기는 신들

무당의 신계는 단순하지 않다. 하늘의 신, 산신, 용왕, 칠성, 성주, 조상신, 장군신, 대신, 부군신, 서낭신, 동자신, 죽은 가족의 혼령 등이 한 무당의 신당에 함께 모셔질 수 있다.

조선 무속은 일정한 경전과 교단을 가진 중앙집권적 종교가 아니었다. 지역과 무당에 따라 신의 이름과 위계가 달랐고, 역사적 인물도 신이 되었다. 최영 장군, 임경업 장군, 남이 장군처럼 억울하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인물들이 수호신으로 모셔졌다. 위험한 원혼이 충분한 제사와 기억을 얻으면 오히려 공동체를 지키는 강력한 신으로 전환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신당에는 무신도, 신장상, 칼, 방울, 부채, 의복과 같은 신구가 놓인다. 굿을 할 때 무당이 장군의 옷이나 왕실 복장을 입는 것은 단순한 연극이 아니다. 그 순간 무당은 특정 신의 몸이 되어 신의 성격과 권위를 재현한다.

무속의 신들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잘 모시면 복을 주지만 무시하거나 노하게 하면 병과 재난을 일으킬 수 있다. 인간과 신의 관계는 절대자에 대한 일방적인 복종이라기보다 제물과 정성, 약속과 보답이 오가는 상호적 관계이다.

4. 굿의 구조와 기능

굿은 무속의 중심 의례이다. 무당은 노래와 춤, 음악, 이야기, 점복을 통해 신을 불러오고 대접한 다음 인간의 문제를 신에게 전달한다. 마지막에는 신을 즐겁게 보내거나 원귀를 저승으로 인도한다.

굿의 목적은 다양하다.

가정의 평안과 재수를 비는 굿, 병을 고치는 치병굿,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는 진오기굿이나 씻김굿, 새로 무당이 되는 사람을 위한 내림굿,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굿, 어업의 안전과 풍어를 비는 굿 등이 있다.

굿은 대체로 청신, 오신, 송신의 구조를 가진다. 먼저 신을 불러 모시고, 음식과 술·노래·춤으로 신을 즐겁게 하며, 인간의 소원을 전달한 다음 정중히 돌려보낸다. 그러나 실제 굿은 고정된 예식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무당은 가족의 사정과 현장의 반응에 따라 내용을 바꾸고, 신의 말을 즉흥적으로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무당은 신과 인간 사이의 통역자이자 상담자, 배우, 음악가, 무용가, 치료자가 된다. 굿판은 초자연적 의례이면서 동시에 종합예술이고 집단적 심리극이다.

죽은 자를 위한 굿에서는 특히 무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당은 죽은 사람의 말투와 몸짓을 재현하며 유족에게 말을 건넨다. 유족은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죽은 사람에게 전하고, 죄책감과 슬픔을 표현하며, 마지막 작별을 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굿은 죽은 자를 실제로 불러내는 의식인 동시에 억압된 애도를 사회적으로 표현하도록 허용하는 장치였다.

5. 점복·치병·축귀

무당은 굿만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혼인, 이사, 출산, 여행, 장사, 과거시험, 실종물, 가족 갈등을 두고 무당에게 점을 물었다. 무당은 신의 말을 직접 전하거나 쌀, 동전, 방울, 막대기 등을 사용해 길흉을 판단했다.

질병 역시 무속의 중요한 영역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은 조상신의 노여움, 객귀, 잡귀, 신병, 터의 문제로 해석되었다. 무당은 굿, 푸닥거리, 부적, 독경, 제물, 환자의 몸에서 악귀를 몰아내는 행위 등을 사용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의학적으로 무효하거나 환자에게 위험한 행위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식민지기의 신문과 행정기관은 무당이 치료를 지연시켜 환자를 사망하게 하거나 과도한 비용을 받는 사건을 ‘미신의 폐해’로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는 근대 의료기관과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한 연구가 인용한 당시 통계에 따르면 의료 종사자는 약 6,800명, 그중 정식 의사 자격자는 약 1,600명에 불과한 반면, 무당과 판수는 1만 2천 명을 넘었다. 무속에 대한 의존은 조선인의 비합리적 민족성 때문이라기보다 의료와 복지의 공백을 메운 결과이기도 했다.

6. 무당과 여성의 삶

조선 무속에서 여성은 종교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었다. 유교 사회에서 여성은 공식 제사와 정치, 학문에서 배제되었지만, 무당은 신의 권위를 빌려 남성에게 명령하고 양반과 권력자의 집에도 출입할 수 있었다.

무당은 여성의 고통을 말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불임, 산후병, 남편의 폭력, 시집살이, 아이의 죽음과 같은 문제들이 굿판에서 공개적으로 표현되었다. 신의 말이라는 형식을 빌리면 평소 침묵해야 했던 며느리나 아내의 불만도 발언권을 얻었다.

그렇다고 무당이 완전히 해방된 여성은 아니었다. 무당은 천시받았고, ‘음란하다’, ‘속인다’, ‘돈을 빼앗는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되었다. 의례가 필요할 때는 찾아가면서도 일상에서는 멸시하는 이중적 태도 속에 살았다.

무당은 가부장제의 바깥에서 자율성을 얻기도 했지만, 그 대가로 사회적 낙인과 불안정한 생계를 감수해야 했다.

7. 무속의 사회적 성격

무라야마는 무속을 개인의 미신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가 수집한 자료를 자세히 보면 굿은 개인적 행위만이 아니었다.

마을굿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비용을 내고 참여하는 공공의례였다. 풍년, 풍어, 전염병 방지, 마을의 화합을 기원하며 공동체의 경계를 확인했다. 굿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음식을 나누며, 주민들의 소속감을 강화했다.

굿은 또한 사회가 처리하지 못한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전쟁, 전염병, 자살, 객사, 여성과 어린이의 억울한 죽음은 공식 역사에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혼의 이야기와 굿 속에서는 그 죽음이 계속 기억되었다. 무당은 국가나 유교적 제사의 바깥으로 밀려난 죽은 자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따라서 무속은 단순한 종교라기보다 의료, 상담, 예술, 장례, 공동체 축제, 역사 기억이 결합된 생활체계였다고 할 수 있다.

8. 무라야마의 결론과 식민주의적 시선

무라야마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지만 무속을 독립적인 종교로 존중하지 않았다. 그는 무속을 조선인의 귀신 신앙, 운명론,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규정하고, 교육과 경찰행정을 통해 개선하거나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당시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 무라야마는 서구적 근대 종교를 발전된 단계로 놓고, 경전과 교리, 조직이 불분명한 조선의 무속을 원시적 단계에 위치시켰다. 그의 조사는 조선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학술활동이면서 동시에 식민정책의 판단자료를 제공하는 행정조사였다.

특히 경찰을 통한 조사방식은 무당을 살아 있는 종교인보다 관리해야 할 ‘무업자’로 만들었다. 분포, 수입, 행위, 피해 사례를 조사하는 것은 이후 단속을 위한 지식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책이 출간된 1932년 무렵부터 경성과 개성 등에서는 무녀와 굿에 대한 강한 경찰 단속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식민권력만 무속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당시 조선의 언론인과 계몽운동가, 기독교인도 무속을 민족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미신으로 보았다. 이들은 무당의 경제적 착취와 비과학적 치료를 비판하며 미신타파를 주장했다. 따라서 무속 억압은 식민주의와 조선 내부의 근대주의가 결합한 결과였다.

9. 책의 가치와 한계

<조선의 무격>의 가장 큰 가치는 1930년 전후 조선 무속의 전국적 모습을 한 권에 담았다는 데 있다. 무당의 명칭과 종류, 지역별 분포, 입무 과정, 신당과 신구, 굿의 절차, 점복과 치병, 무속단체, 경찰 단속, 사진 자료까지 폭넓게 수록했다. 당시의 신당과 무신도, 맹인 판수의 독경 장면 등을 담은 사진은 오늘날에도 귀중한 연구자료로 활용된다.

하지만 자료의 질은 일정하지 않다. 행정기관의 보고, 신문기사, 문헌기록, 직접 관찰이 뒤섞여 있으며 지역별 조사 깊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 무당 자신의 목소리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의 신앙과 삶은 조사자와 경찰, 지식인의 언어를 거쳐 기록된다.

또한 무라야마는 무속의 미학, 여성의 경험, 애도와 공동체 회복의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굿을 ‘미신적 행위’로 분류하면서도 사람들이 왜 굿을 필요로 했는지는 깊이 묻지 않았다.

종합평론

<조선의 무격>은 한국 무속을 잘 이해한 완성도 높은 민족지라기보다, 식민지 행정기관이 조선의 무속을 조사하고 분류한 거대한 자료집이다. 저자의 해석은 낡았고 식민주의적이다. 그러나 그가 수집한 자료는 지금도 대체하기 어렵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선 사회에서 무당이 차지한 역할의 넓이다. 무당은 단순한 점쟁이가 아니었다.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치료자였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게는 대변인이었으며,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는 가족에게는 애도의 중재자였다. 여성에게는 공식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던 권위를 제공했고, 마을에는 공동체 의례와 축제를 마련했다.

물론 무속을 낭만화해서도 안 된다. 공포를 이용한 금전 요구, 치료 지연, 가족 갈등의 악화 같은 문제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폐해만을 근거로 무속 전체를 조선인의 후진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근대 의료와 복지, 상담, 장례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던 사회에서 무속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적 안전망 가운데 하나였다.

무라야마는 무당을 사라져야 할 ‘미신업자’로 보았지만, 오늘날 독자는 그 자료에서 다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무당은 제도 밖으로 밀려난 여성과 장애인, 빈민이 종교적 권위를 얻는 통로였고, 공식 역사에서 잊힌 죽은 자의 목소리를 보존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두 가지 역사를 동시에 보여준다. 하나는 조선 민중이 질병과 죽음, 불행과 억울함을 이해하고 견뎠던 무속의 역사이다. 다른 하나는 식민권력과 근대 지식인이 그 신앙을 ‘미신’으로 명명하고 조사·분류·단속한 지배의 역사이다.

<조선의 무격>을 오늘 읽는 핵심은 무라야마의 결론을 반복하는 데 있지 않다. 그가 수집한 자료를 식민주의적 해석으로부터 분리하고, 그 속에서 무당과 신도들이 실제로 수행했던 치유, 애도, 기억, 공동체 회복의 기능을 다시 발견하는 데 있다. 그렇게 읽을 때 이 책은 사라져가는 기이한 풍속의 기록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억압되고 주변화된 한국 민중 종교의 사회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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