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30

황규식 - #아주 늦은 감사 인사 지난주, 김우창 교수님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다가 문득 가슴 한구석이 덜컥... | Facebook

황규식 - #아주 늦은 감사 인사 지난주, 김우창 교수님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다가 문득 가슴 한구석이 덜컥... | Facebook


황규식

#아주 늦은 감사 인사
지난주, 김우창 교수님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다가 문득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80년대 초, 전두환 군부정권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 교수님이 어디론가 끌려가 무릎을 꿇린 채 고문을 당하셨다는 대목이었습니다. 화면을 바라보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염치없는 질문 하나가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혹시, 그때의 그 비극이 우리 때문은 아니었을까.’

김우창 교수님은 81년부터 83년까지 3년 동안 저희 동아리 ‘사회과학연구회’의 지도교수를 맡아주셨습니다. 그 시절엔 지도교수가 없으면 동아리 등록조차 되지 않던 때였지만, 어느 교수도 골치 아픈 이념 서클의 지도교수를 선뜻 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도교수가 되는 순간 경찰서나 보안사에 학생들의 동향을 보고해야 하는 야만적인 의무가 지워졌고, 이를 다하지 않으면 괴롭힘이 뒤따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 위험을 온전히 짊어지셨던 교수님께, 정작 저희는 제대로 된 감사 인사 한 번 올리지 못했습니다. 시대의 거센 물결에 떠밀려 감옥으로, 혹은 노동 현장으로 황급히 뛰어드느라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교수님이 살아 계실 때 어떻게든 이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열망이 차올랐습니다. 서둘러 80, 81학번 선배들과 82학번 동기들에게 연락을 돌렸고, 어제 우리는 평창동 교수님의 자택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마주한 교수님은 생각보다 더 쇠약해져 계셨습니다. 계단에서 넘어져 다치시는 바람에 휠체어에 의지하고 계셨고, 백내장으로 시력조차 거의 상실하신 상태였습니다. 화면 속 모습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스승의 모습에 울컥함이 밀려왔지만, 우리는  준비해 간 꽃다발을 드리고 고개 숙여 깊은 절을 올렸습니다.
교수님은 이제 세월의 무게로 우리 개개인의 이름과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지도교수를 맡았던 일, 감옥에 갇힌 제자를 찾아 면회를 갔던 그 엄혹했던 시대의 상황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함께 간 영문과 80학번 재형이 형은 당시 교수님을 찾아가 염치없이 지도교수를 부탁드렸던 당사자이자,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교수님의 면회를 받았던 바로 그 제자였습니다. 세월을 뛰어넘어 마주 앉은 스승과 제자의 대화속에서 깊은 고마움과 미안함이  흘렀습니다.
"교수님, 100세까지는 꼭 사셔야 합니다." 우리가 건넨 덕담에 교수님은 "아이구, 101세까지는 살란다"라며 따뜻한 농담으로 좌중을 웃음 짓게 하셨습니다. 여전히 삶의 여유와 품격을 잃지 않으신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김우창 교수님은 티 내지 않고 조용하게 물심양면으로 제자들을 지켜주시던 용감한 분이었고, 사유와 행동이 완벽하게 일치했던 이 시대의 참된 지성이었습니다.
 인생의 끄트머리에 서 계신 스승께서 이제는 부디 덜 아프시기를, 더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하직인사를 드리고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잘 사는 것인가.’ 오래 잊고 살았던 삶의 무게와 스승의 그늘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안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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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계실때
만나뵙다니
다행이고 복입니다
Reply
고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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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찾아 주는 선생님 이시니 여한이 없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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