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8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9회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Ⅰ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Ⅰ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9회 - YouTube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Ⅰ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9회
법률방송
19,424 views  Oct 29, 2025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V: 친일개화파 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

"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랴오둥반도를 얻게 되자, 국제 정세와 무역 등으로 얽혀있던 서구 열강이 숨 가쁘게 움직이면서 발생한 삼국간섭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9세기 말 근대 국제 정치에서 청과 랴오둥반도는 어떤 의미가 있었기에 러시아와 프랑스, 독일이 움직이게 됐는지, 또 열강의 움직임에 맞서 일본은 어떤 선택을 해나갔는지를 따져보고 21세기의 한국에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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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음악] 한국인의 탄생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시무노 새끼 조약이
[음악] 어떻게 어 우여곡절 끝에 이홍장이 암살 어 위협까지 받아가면서
어 그 간신이 어느 정도는 어 중국
측에 어 유리하게끔 그 맺어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은 일본이
요동성을 야동성을 하량받기로 했습니다. 우리말로 그 유명한 요동 반독 이성계가 정보 하러
갔던 그 요동 그 요동을 어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완전히받은
겁니다. 뺏은 겁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으로서는 놀라운 어 승리를 거두었고 모든
전리품도 막대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독일, 프랑스이
세 나라가 삼국이 연합을 해서 개입을 합니다. 뭐라 그러냐면은 [음악]
다른 건 다 좋은데 요동반도를 중국으로부터 받는 것만큼은 안 된다.
다시 뱉어내라 [음악] 그럽니다. 참 일본으로서는
그 엄청난 [음악] 희생을 치르고이긴 전쟁의 가장 큰 어 수학이었고
전리품이었는데 바로 그거를 다른 열강들이
개입을 해서 [음악] 내노라고 한 겁니다. 참기 힘든 구력이었지만
결국은 일본의 [음악] 지도자들이 내놓습니다.
요동반도를 다시 내놓습니다. 저는이 얘기가이
과정이 당시 [음악] 국제정세가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줄뿐만 아니라 일본이 결국은
요동반도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음악] 보여주는 일본 나름의 그 외교력이 참으로 놀랍고
국익을 위해서 백방으로 뛰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사실은 굉장히 감명을 [음악] 받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처해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 다 외교로 풀어야
되는 문제들입니다.이 당시에 일본의 외교관들이 어떻게 국익을 보호하고자
요동반도를 [음악] 지키려고 했었던가를 우리가 면밀히 검토해 보면서 외교라는 것이 [음악] 이런
거구나. 국익을 지켜 나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는 거를 배울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만이 아니라 두 시간에 걸쳐서 삼국 간섭의 얘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
시몬 새끼 조약은 1895년 4월 17일 날 체결이 됩니다.
그런데 6일 후인 4월 23일 날 독일, 러시아, 프랑스 공사가 일본의
외무성의 하야 차관을 면담하러 갑니다. 그리고이 자리에서 한 사람씩
들어가서 일본이 요동반도를, 레오동반도를 하량 받았는데 그거
반환해야 된다. 이런 바바 삼국 간섭이었습니다. 일본의 조야는 경악을 합니다.
전승 어 전쟁에 승리했을뿐만 아니라 어 엄청난
전류품을 챙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금 아편전쟁 때부터
영국으로부터 시작해서 서구 열강들이 전부 다 중국에 모여듭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엄청난 이권을 따내고 교육을 하고 선교사들을 보내고 뭐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어떤 나라도 사실은 중국의 본토를 그니까 홍콩 같은 섬이
아니라 그것도 한 섬을
아예 뺏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니까 일본이 처음으로
요동반도라는 땅덩어리를 본토의 땅덩어리를 이제 얻은 거죠.
사실 이또 당시 이또 히로부미 총리나
무스무네미스 외무대신은 이게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너무 좀 큰 거를 중국으로부터 요구를 [음악] 했기 때문에 혹시 열강들이
야동반도를 못 가져가게끔 할 개입을 할 여지가 있다고 알고 [음악]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조심을 하고 이제 서양 열강들의 그 생각을
염탐해 보려고 그러고 굉장히 애를 씁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이나 모츠 같은
젊었을 때부터 국제무대에서 끊임없이 뛰면서 서구 열강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이런 거를 알고 있었던 외교관들이나 그랬지.이 이 전쟁을 승리로이 이끌었던 군부 그리고 그
일본군의 승리에 취해서 있던 일본 [음악]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이거는 있을 수가 없는
청천 병력과 같은 그러한 어 일이었었습니다. 사실 이때
이또나 무스 같은 외교관들은 여동반도 얻고 웨하이웨를 얻고 그러면서 맨만
대군이 본토에 상륙을 해 갖고는 곧바로 베이징으로 쳐들어가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우리가 압박을 하면은
이거는 분명히 열강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렇지만 일본 국민과 여론은 신문들은
뭐라 그랬냐면 이참에 베이징을 우리가 들어가서 점령을 해야 된다 그랬습니다. 글쎄요. 그게 뭐 일본
국민들이나 여론의 입장에서선 그럴 수도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외교관들이
봐서는 사실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전쟁을 마치려고 오히려
애를 쓰고 있었던 참이었습니다. 열강들의 입장에서는요.
중국이 그냥 일본의 점령당하고 무너지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앞편쟁 전쟁 이후로 유럽의 열강들은 중국에 가서 엄청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으로만 수많은 기업인들이 들어가서 투자를 하고 중국의 그 엄청난 시장을 상대로
막대한 이혼을 남기는 차이나 트레이드 그야말로 중국 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에 걸쳐서 구축한 소위 말하이 개항장
영어로 트위키포 시스템이라 그러죠. 개항장 체제를 잘 구축해서 어떤 한
나라가 모든 거를 차지하는게 아니라 한 열강이 들어가서 티엔진을 열고 너
누구는 홍콩을 열고 모든 열강들이 와서 똑같이 대우를 받고 똑같이
장사를 할 수 있고 그런 체제를 만들어 놨었기 때문에 사실은 어떤 한
열강이 들어와서 혼자 중국을 잡아먹고 중국을 차지하고
한다 이건 있을 수 오늘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이 지금 그러려고 하는 거에 대해서 열강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전략적인 이유로 뭐 지정학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경제적인 이유에 있어서도 중국 시장을 일본한테
다 뺏길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지난 시간에도 우리가 지도를 통해서도 보여 드렸듯이
야우동반도를 얻고 웨하이웨를 얻고 그러면 베이징은 북경 그냥 도관해던
주위가 됩니다. [음악] 요동반도를 일본이 차지한 거는 그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그거는 곧 중국이
일본의 속국이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기존의 교육 질서, 기존의
동부가 국제 질서를 갖다가 유지해야만 된다라고 열강들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특히이 삼국 간섭을 주도했던 러시아는 더 강경할 수밖에 없었죠. 왜?
러시아로서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지어서 그것을 블라디보스터까지 연결을
하고 그러면서 만주를 자기 걸로 만들려고 하는 그런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일본이 들어와서 바로고 만주의 핵심인
요동반도를 일본이 차지한다라는 것은 곧 러시아가 계획하고 있었던 그
대동부가 정책 대전략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음악]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어떻게서든지
일본이 덕동반도를 갖게 되는 것을 막아야만 했습니다. 이도 총리하고 무수 대신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럴
가능성이 있다. 없지 않다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일본군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그러면서이 전쟁을이긴 것이고 어떻게 보면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의 시대에이기는 나라가 진나라의 땅을 뺏는 것은
당연한 [음악] 일인데 그런 맥락에서 와서 어쩌면은 잘만 설득을 하고
일본이 조심스럽게만 운신을 하면은이 레오동반도를 일본이 차지하는 거를
혹시 열강 강들이 눈감아줄 가능성도 [음악] 있다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희망을 끝까지 버리질 않습니다. 그러나 러시아하고 독일하고 프랑스가 군대까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무력 개입도 있을 수 있다라는 모습을 보이니까
이하고 무수는 곧바로
여동반도를 포기합니다. 지금 일본으로서는 2년에 걸쳐서
국가의 모든 힘을 다 기울여서 지금 청날하고
싸웠습니다. 일본이 이기기 힘들다. 거의 불가능하다는 전쟁을 모든 징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다 징집을 하고
물자들을 다 대면서 지금 심신히 전쟁을 승리로 입꾸고 있었는데 그만큼
일본의 입장에서는 국력을 소진을 한 상황이고이 상황에서 만일에 요동을 고집해서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한다.이 3국을 상대로 또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노력은 많이 해 봅니다. 영국한테도 가서 얘기를 해보고 우리
편 좀 들어 달라 그러고 어 미국 편에도 가보고 그러지만 영국은 우리가 삼국 간섭을 안 한만큼 일본의 입장을
옹호할 순 없다 그러면서 딱 중립을 지켜 버립니다. 그렇게 되니까 일본은 어쩔 수 없이 만주 요동반도 반환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군부와 언론이었습니다. 저렇게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가면서 나라를 위해서 싸워서 피로서 피로서 쟁취한 저
땅인데 이게 도대체 외교관들은 뭐를 하고 있는 거냐 라면서 질을 합니다.
이또하고 모추는 군부를 달낼 길이 없으니까 야마갔다 아리더마한테 부탁을
해서 야마갔다가 일본에 돌아와 있다가 다시 만주로 가서 가서 일본 군인들을
군부를 설득을 합니다. 이럴 수밖에 없다라고 설득을 해서 간신히 일본
군부가 저 요동 반환을 어 받아들립니다. 사실 여론의 입장에서 봤을 때 군부가
딴 따 따온 그 전리품을 외교관들이 외교의 실패를 통해서 잃어버렸다.
이런 것이 나중에 러일 전쟁에 가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도
일본군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간신히 러시아를 이기는데 그때에
러시아가 전쟁 배상금 같은 걸 하나도 안 물게 됩니다. 그랬을 때에 일본 여론이 다시 한번
우리 군부가 이룬 일을 왜 외교관들이 다 망치느냐라면서 점점 점점 국제 정책에서 믿을 거는 국력밖에 없다.
무력밖에 없다. 그러면서 군국주의로 1번이 점차 넘어가게 되는 그런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이때 요동반도의 반환이었습니다. 사실이 삼국 간섭의
쇼크는 대단했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계속해서
계국을 하고 서구의 모든 제도와 법과 문화와 이거를 다 받아들이면서
근대화를 하면은 결국은 서구 열강이 우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대등한
국가로 받아줄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삼국 간섭을 통해서 일본은 뼈지르게
느낍니다. 지금까지 해온 근대화, 지금까지 싸온 우리의 군대 실력,
무력 이거 갖고는 택도 없다. 더 큰 실력을 길러야만 된다. 라면서 일본
국민 전체가 이때 소위 [음악] 와신상담 천왕을 중심으로 더욱 강하게 뭉치기
시작합니다. 분국주의로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자, 지금까지 이제
전체적인 개어를 말씀드렸습니다. 아까 서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한번 자세하게
어떻게 각 열강들이 움직이기 [음악] 시작을 했고 요동반도를 하량받게 되는 그 상황에
일본은 어떻게 움직였고 결국은 요동반들도를 내놓을 수는 밖에는
없었지만 [음악] 얼마나 일본의 외교관들이 최선을 다하면서 그거를 지켜내려고 했었는지
[음악] 우리가 면밀하게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저는 [음악]
그렇습니다. 국제관계 이런 것 간단한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열강들의 각
정부와 각 지도자들과의 그 [음악] 샘법 그때그때의 전략 끊임없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서로가 영향을 주는 거기 때문에 러시아는 독일의 눈치를 봐야 되고 [음악]
영국의 눈치를 봐야 되고 독일은 영국의 눈치를 보 이럴 수밖에 없는 거고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모두의
눈치를 [음악] 다 봐야 되는 거죠. 그 속에서 어떻게 운신의 폭을 넓히려고 하고 어떻게 쓴지 자기 국가
최고의 이익을 쟁취하려고 [음악] 하는지 일본의 지도자를 내부의 그
끊임없는 [음악] 토론 그리고 러시아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토론 독일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고민 이런 것들을 우리가 살펴봐야 [음악] 됩니다. 국제정세
국제정치 그렇게 돌아갑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삼국 간섭을
통해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그 당시 열강들끼리에 일본을 포함 열강들 내부에서 일어났던 국제 정세에 대한
깊이 있는 정말로 깊이 있는 고민 국가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그 전략적
고민 이런 것들을 과연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지 우리의 지도자들이 그
정도까지 하고 있는지 [음악]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역사지만 우리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청일 전쟁이 시작될 때에 이홍장은 어떻게서든지 영국이
됐든 러시아 됐든 누구든지 개입을 좀 해서이 전쟁이 안 일어나도록 해
달라고 수없이 열강들의 개입을 호소했었죠.
그런데 결국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일본하고 전면전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렸죠. 자, 그런데 열강들의 입장에서도 자기네가 처음에는 아이 뭐
일본이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도 않고 대충 싸우다 그만두겠지 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일본이
대성을 거두면서 베이징을 향해서 북경을 향해서 진격을 해 나가니까 열강들이 이제 초조직사 시작한
겁니다. 어 이게 웬 일이야? 어 루이 합락이 되고 왜하회가 합락이 되고 이러면 그냥 베이징까지 일본군이
쳐들어가겠네. 그러니까 뒤늦게 열강들이 개입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서든지 일본 군대가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도록 해야
되겠다라면서 간섭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시원의 새끼 조약을
이제 협상을 하기 시작을 했했을 때에 열강들이 개입을 하려다가 그때
이홍장이 저격을 당했고 다시 일본하고 재협상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청의
강화 조약을 갖다가 받아들는 거 같다. 그러니까 아 그럼 잠깐 우리 개입을 하지 말자라고 잠깐 또 일본이
시간을 벌었습니다. 자 그런데 막상 평화조에게 조건으로
요동반도의 하량을 요구할 수 있다라는 그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점점 열강들이 개입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우선 어 영국의상
캠블리는 처음에 영국은 무슨 한이 있어도 우리는 개입하면 안 된다. 사실 영국은 처음부터 일본
편이었습니다. 계속해서 1번 편이었고 나중에 영국하고의 관계가 완전히
굳어지면서 사실은러 전쟁도 일본이 감히 수행을 할 수 있게끔 됩니다.
영국이 자기 편이라는 거 알게 되면서 청일 전쟁 때부터도 영국은 분명히
우리는 어떤 한이 있어도 무슨 한이 있어도 개입을 안 한다. 이제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청의
입장에서는 야 영국이 제일 중요한 영국인데 자기네가 이렇게지고 있는데도 전혀 개입을 안 한다. 그러니까 영국
입장이 뭔지를 어떻게 떠보지? 그러면서 그때 당시 주영 천국 공사
공조원이 영국상 캠벌리를 찾아갑니다. 일본이 혹시 대만을 완전히 자기 걸로
하겠다고 할 경우에 영국은 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캠블리한테 슬쩍 물어봅니다. 그랬더니
영국 입장에서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 그렇다고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니까 전쟁의 당사자가니까 계획은
할 수 없겠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대만 정도가 일 정도로 일본이 가지고 가는 거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들이
없었다는 얘기죠. 그리고 뭐라고까지 얘기하냐면 만일에 [음악] 그러니까 대만을 일본이 차지하겠는데 청이 그걸
못 내놓겠다. 그것 때문에 강화 조약이 안 맞아진다. 어유 그러면 안 돼. 그러면은 영국은 오히려 청보고
강화지역을 맺기 위해서 그냥 대만 포기하라고 얘기를 하겠다라고 캠블리 영고 부예상이 공조원 주영국
천국 공사한테 얘기를 합니다. 대만은 그렇다 치더라도이 요동반도를 지금
얻으려고 하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음악] 이거를 조건으로 내걸 경우에
열강이 개입할 가능성이 굉장히 [음악] 높다라는 걸 알기 때문에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접근해. 요 뭐냐면
강화조의 조건으로 뭐를 내걸지 자체를 절대 비밀로 합니다. 직접 심는 새끼
온 이홍장한테 얘기하기 전까지는요. 일본 내각의 대신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이 [음악] 며치 안 됐었습니다. 그렇죠. 입도 추상하고 총리 대신하고 무수 외무 대신하고 핵심적인 물
빼놓고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을 정도로 극비에
붙여 놓습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타진을 해 보죠. 혹시 이럴 경우에는 어떨까 이제
타진을 해 봅니다. 니시도쿠지로라는 주러시아 일본 공사는 야 이게 전쟁이
길어질수록 분명히 열왕의 개입은 높아진다. 특히 러시아의 개입이 높아질 거라는 걸 이제 점점 알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1800 94년 12월에는 본국에 보고를 한는데
이렇게 보고를 합니다. 일본의 우호적인 러시아 친구들이 일본이 전쟁 배상금을 많이 받고 전쟁을 빨리
종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라고 보합니다. [음악] 그러니까 너무
일방적으로 일본이 이기고 있다. 그러니까 빨리 일본이 얻을 거를 많이 받아내고 빨리 종전을 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할 것이다. 왜냐 안 그러면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이 [음악]
개입을 해 버릴 것이기 때문에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보고서 이런 것도 더 합니다. 또한 그 친구들은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음악] 영토를받는 것은 열강의 개입으로 어려울 것이며 다만 타이완을 할량받는
것은 러시아도 반대할 가능성이 낮다라고 하였다고 보고합니다. 즉
벌써 나오는 거죠. 대만은 섬이니까. 그리고 이미 1884년
일본이 대만 정벌도 했었던 거고요. 그리고 확실히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게 완전히 청의 영토연지 이런 문제가 국제법상으로도 불명했던 상황이었기 [음악]
때문에 전쟁 전립품으로 내놓라 그거는 뭐 되는데 중국의 본토의 영토를 하량받는
[음악] 거 이거는 문제가 있을 거라고 이미 그 니시도크지로의
러시아 친구들이 [음악] 이제 얘기를 합니다. 저는요 대목에서 잠깐 니시도 구지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이
삼국 간섭의 상황에서 등장하는 그 일본의 외교관들 [음악]
그 사람들의 배경이나 어 그런 거를 좀 자세히 말씀을 어 드리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왜냐면 정말로 놀라운게 국제화가 돼 있었고 세계 정세를 잘
알 수밖에 없는 그런 놀라운 인적 자원들을 개발을 해 놨었고 [음악]
그러니까 막구 시대에서 메이지 시대로 넘어가는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일본은 끊임없이 외국으로 유학생들을 보냈고
끊임없이 외국에서 선진 기술과 문명들을 받아들였고 메이지 유신이 1868년에 일어나고 그로부터 26년
만에 지금 총일 전쟁이라는 거 아닙니까? 하급 사무라이 출신들이었고 저 시골에
있었던 [음악] 한의사의 아들 뭐 이런 사람들이 그 26년 후에는 당당하게 국제 무대에 나가 가지고
소구 열강들하고 협상을 [음악] 할 수 있고 단판을 지울 수 있고 국가의 이해 관계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그러한 [음악] 인척 자원들을 배양을 해 놨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니시도구지로
같은 사람이죠.이 이 사람은 가고시마의 사무라이 출신이다. [음악] 어 사스마 출신이죠. 사이고
다까머리하고 같은 번 출신입니다. 1870년에서 1873년 4일
러시아의 유학을 갑니다. 거기에서 러시아 말을 완벽하게 배우고 그리고 있으면서 중앙아시아를
싹이 여행하러 다닙니다. 3년 동안 [음악] 돌아와서 외무성에 입사 입사를 해서 외무성에서 프랑스 대사관
1등 서기관을 하고 1896년에는 주러시아 공사를 여임을 합니다.
1897년 1898년에는 외무 대신을 하고요. 그리고 1898년에 [음악]
니시로젠 협약 즉 만한 교환을 하는 것도 바로이 니시 어
독구치료입니다. 그 재밌는게 [음악] 그 아들이 니시도구줄의 아들이 니시
닭게이치라는 [음악] 어 군인이었는데이 사람은 1932년
올림픽에서 승마에서 급메달을 답니다.이 사람은 또 1945년
2차대전 유황도 전투에서 [음악] 전사를 합니다. 그러니까 참 일본의 그 엘리트들이 일지감치 국제화가
[음악] 되고 서양문명의 모든 정수를 받아들이지만 또 그 대단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서 아버지는 가장 청일 전쟁에 막바지 어려웠을 때 외교를 담당하는 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이었고
아들은 승마 선수로 나가서 올림픽에서 급메달까지 땄지만 역시 또 2차
대전이 벌어지니까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유황도에서 전사를 [음악] 하는 그런 집안이 아닙니다. 왜 이런
말씀드냐면 진짜로 일본을 그때 이끌어가던 일본의 엘리트들은 사실 지금의 일본의
엘리트들보다도 [음악] 훨씬 더 세상을 알고 그리고 자기
나라를 알고 지략과 능력을 겸배했던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1895년 2월 10일 날 외무대신 무스는이
또에게 뭐라 그러냐면 런던 타임즈가 기사에서 뭐라 그랬냐면 만약에 일본이
중국의 본토에 조금이라도 [음악] 중국의 본토를 얻으려 그러면 유럽의 열강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런던 타임스지가 그런 기사를 썼다라는 거를 [음악] 이제 이또한테
어 그 보여줍니다. 일본의 외교관들끼리 [음악] 이제 공유를 했했겠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주러시아 공산하고 니시한테까지도 [음악] 이게 이제 알려졌겠죠. 그런데 니시는
자기가 러시아의 정부한테 확인을 해 봤는데 러시아 정부는 아이 그건 근거없는
소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거를 우리가 욕을 하더라도 러시아가 개입을
안 할 거다. 또 열강들이 무조건 개입할 거라는 이런 기사들이 사실은 별로 근거 없는 거다라고 보고를
[음악] 올립니다. 4월 2일 날에는 또 니시는 외무성의 보고를 하기를 뭐라 그러냐면은 일본이
러시아하고 접경하고 있는 중국의 어떤 지역을 만일에 일본이 중국으로서
내놓으라고 그런다든가 그러면은 러시아가 개입할 여지가 있지만 금주
이거를 요구하는 거에 대해서는 러시아는 전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또 이시는 4월 2일 날도 그렇게 보고서를 보냅니다. 반면 무추 외무 대시는이
일본의 정치인들 의회에서 그 여론들이 아 우리 군대가 이기고 있으니까
이김에 들어가서 요동성 정도가 아니라 아예 뭐 산동성이나 절강성 같은 그런
데를 일본이 점령을 해야 된다. 그러니까는 무슨이 이제 전전금 하는 거죠. 아
이런 황당한 얘기까지도 하고 있다라는 것이 열강들은한테 알려지면 이거 정말 우리한테 불리한데 이거 큰 일이다.
그러면서 굉장히 [음악] 걱정을 많이 하고 그러니까 의회 정치를 하는 거고 언론이 자유로우니까는 이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일본은 이미 어쨌든 [음악] 제한적이나 아마 헌정을 하고 있었고
의회 정치를 하고 있어서 야당들이나 정치인들이 외교관들과는 달리 마구
혹스러운 얘기를 하고 요구를 하는 거가 있었던 거고 여론은 언론은 또 그걸 받아서 막고 퍼트리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무추는 이또한테 아예 그럽니다. 차라리 우리가 어떤
조건들을 청으로부터 요구할 것인지 미리 알려주고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고 미리 그 사람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는게 차라리 낫지 않느냐 이렇게 우리가 뭐를 하면은
열강이 받아들이고 개입을 안 하고 우리가 뭐를 요구하면은 이거는 안 된다 그러고 개입할 거 이럴 바 얘는
차라리 그럼 아예 열광간 대놓고 아이 우리가 뭐 요동반도랑 이거 대만을 달라 그럴 텐 당신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렇게 해보자고 고 그랬더니 이도가 안 된다 그럽니다. 왜? 우선 첫째
그걸 하면은 열강들한테 괜히 전쟁에 개입할 구실만 제공해 준다.
그래서 전혀 그런 개입할 여지를 지금 아직 줘서는 안 된다라고 얘기를
하는. 그다음에 두 번째 그래서 우리가 이런 거를 요구하겠다 그런는데 그러면 열강들이 아니 그거 요구하면
안 돼. 그럼 우리 안 할 거냐? 그렇다고 열강이 반대하는데도 그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국에다
욕을 할 거냐? 그것도 말이야 되는지 않느냐? 이미 열광이 반대한다는 거 알고 있는데 우리가 중국한테 요구하면
그 중국이 뭐하러 주겠냐 이러면서 절대 안 된다. 그러니까 끝까지
함부하고 비밀로 하고 우리가 뭐를 요구할지는 내비치면 안 된다. 다만 중국의
본토를 일부를 내놓으라 그러면은 어 이건 문제가 있을 거라고 얘기하는
여러 열간들의 얘기는 이제 들어서 알고는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드디어 어 4월 16일 날
시문세 기조액이 체결이 되는데 4월 4일 그때 이제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우리가 이런 것을 요구할 것이다. 특히 요동반도의 하량을
요구하고 할 것이다라는 거를 알립니다. 그래서 4월 4일 날 일본 외무차관 하야시 다스가 주 1 러시아
공사 히트로버한테 알립니다. 레오동반도의 하량을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히트로버의 안색이 굳어져 버렸다 그니다. 그러면서
히트로버가 뭐라 그랬냐면 일본의 요구가 유럽 열강들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다. 그리고 개입의 구시를 제공할 수 있라면서
이거는 문제가 있다라고 벌써 히트로버가
경고를 합니다. 그리고 일본한테도 이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4월 4일 같은 날
이번에는 니시가 그니까 주 러시아 일본 공사인 니시가 러시아 외무상
로바노프에게 전달을 합니다. 리어동반도를 하량을
우리가 요구할 것이다라고 강화 조건으로 그랬더니 로바노프는 전혀 동아시아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시아를 전혀 지리도 모르고 아는 사람인데 그 조건들을 들어보더니 어 그런데 펑티엔성이 어디냐 봉천성이
어디냐 그랬더니 니시가 이게 진조 금주다 즉 요동반도다라면서 지도해서
보여줍니다. 그랬더니 로바네프는 어 중국이 본토일부를 상실하게 된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 될 거 아니냐 그랬더니 니시가 아이 그거는 일본이건 너무나 합리적인 거다. 이건 전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이기이기는 나라가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만큼은이 요동반도
문제만큼은 일본이 절대로 양구할 수 없다라고 아예 딱 엇을 박습니다. 그랬더니 로바노프는 자기가 아유 짜르
우리 우리 황제 짜르 니콜라세한테 이걸 상주를 해서 뭐라고 그러신지
의견을 들어봐야 되겠습니다라고 얘기를 하고 그 정도만 얘기를 합니다. 그랬던 니시는 영국의 오
러시아가 생각보다 입장이 유연한 것 같다라고 또 보고를 합니다. 여기서
잠깐 또이 하야시 타다스 일본 외모 차관이 사람은 그럼 누군가
하야시는 누구냐면은 란꾸 의사의 아들입니다. 다치스다리
네덜랜드 하이 들어와 갖고 그 난가구를 이제 [음악] 모든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그랬었는데
그 난학을 공부했던 의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감치부터 나중에 메이지 갖고인
메이지 학원이 되는 그 학교의 전신이 해번 아카데미인데요. 그 해번
아카데미를 이미 어려서부터 다닙니다. 거기서 해번 아카데미에서 영어를 배우고
그다음에 영국 유학을 떠납니다. 그래서 킹스 칼레지 런던에서 유학을 하고 그때는 이제 박후 막부가 보낸
요학단에서 이제 보내지는 [음악] 거죠. 그리고 도구가와
메이지 유신파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그 보신 전쟁 때에 하야신은 도구가와
막부편을 듭니다. 그래서 결국은 에노모또 닫기라는 사람이 끝까지
저항을 하다가 지금 호가이도로 가서 거기에 애조공화이라는
나라를 만들어서 끝까지 저항을 하하다가 학고 다태 해전이란 데서
참패를 하면서 이제 전부 다 잡혀드는 거죠. 거기에 하야씨도 같이 [음악] 끼어 있었던 거죠. 그래서 학고
회전에서 패하고 나서 수감이 됩니다. [음악] 그런데 그때 가나가와 지사로
있던 무스무네미스가이 하야시의 그 영어 실력과 이런 걸 너무 아깝게 여겨 갖고 자기가이
사람을 풀어 주라 그럽니다. 풀어줘서 자기가 고용을 합니다. 1871년에서
73년 이와꾸라 사절단이 떠날 때에 하야시를 끼워 줍니다. 그래서 하야
씨도 2년 동안 미국하고 유럽을 전체를 또다시 보고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이만큼 인재들을 아꼈던 겁니다. 메이지 유신을 하려는데 그거를 반대하는
반동의 편에서 섰었던 친구데도 온갖 기회를 주고 다시 세상을 보게 해
주고 그러고는 고용을 해 갖고 외무성에 자기가 장관으로 있 있으면서
차관으로 하여시다스를 계속 쓰는 거죠. 그러면서 이와꾸라사절단의
단녀와 갖고는 어 공부대학교라는 최초의 공대 일본의 공대를 설립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나중에 주청 주러시아 공사를 여임을 하고 그리고
1904년에 일본하고 영국이 관계를 승격시킵니다. 이제
처음으로 대사 베사더를 죽어봤습니다. 그러니까 유럽의 국가들끼리는 전부 다
대사들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일본하고
청나라하고 조선에는 뭡니까? 인노의 공사 하듯이 공사급으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처음으로 1905년에 일본하고의 관계를 대사거 격상을 시키는데 그때 하에시 다다스가
처음으로 초대 주영 일본 대사가 [음악] 돼서 부임을 합니다. 그래서 그때 그
부인도 같이 부임을 하면서 그때 [음악] 찍은 사진이 있고 그런데
완전히 서양화가 된 문명을 [음악] 자유스럽게 구사하는 어 그런
사람들이었음을 우리가 어 알 [음악]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러시아
입장은 뭐였을까? 일본이 점점 점점 점점 본색을 드러나기 시작하고 이제 드디어 야우동반도를 내놓 그럴
것이다라는 얘기까지 듣고 이제 러시아 조종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즉
일본이 이번에 심호새끼 조약을 통해서 라우동 반도를 내놓라 그럴 것이다라는
걸 알게 되면서 4월 7일 날 로바노 러시아 외무상이 짜르한테 두 번에
걸쳐서 상주문을 올립니다. 일본이 야오똥 반도를 차지하게 되면은
베이징이 완전히 도관에 던지다. 항시 일본에 언제든지 일본이 [음악]
베이징을 공격해 갖고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 돼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조선의 독립이라는 것도 무의미해지는
것이 되고 [음악] 왜냐면 완전히 일본 차지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서 일본이 요동반도를 포기하지
않을 거를 끝까지 고집할 것을 대비해서 다른 열광등들과 공동 보조를 취해야 되겠습니다라고
보고서 럽니다. 그까 처음으로 아 러시아 혼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요동 반도를 차 일본이 차지하는 것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게 러시아겠지만 어쨌든 러시아 입장에서 그렇다고 혼자서 놔줄 수 없으니까 다른
열강들하고 공동 보조를 맞춰야 됩니다라고 벌써 계획을 짜서 자기
황제한테 상주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상주문을 올립니다.이 두 번째
상주문은 제가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굉장히 명확하게 그 당시의 상황 그리고 특히 러시아가
보는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가 어땠는가를 너무나 명쾌하게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청일 전쟁 종결 이후 러시아의 미래 동맹국으로서 청이냐
일본이냐의 선택은 우리의 정책이 소극적인가 적극적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극동에서의 우리 위상이
만족스럽다고 판단하고이를 강화하는 것을 원하면 청이 최선의 동맹국입니다. 청은 이번에 패배로부터
쉽게 회복하지 못할 것이고 러시아에게는 위험한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극동에서 필요한 것을 획득하고자 한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우리의 목적은 태평양 연한의 부동항 획득과 시베리아 철도와
연된 만주의 어떤 한구를 병합하는 것 두 가지입니다. 청은 조선을 상실한
이후 러시아에게 제공할 한구가 없으며 만주의 일부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청은 적극적이고 유용한 동맹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일본은 앞으로 한동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청에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영국의 우월한
해군역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더구나 동향에서 새로
부상한 강국 일본과 러시아가 동맹을 맺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우리의 주적이고 가장 위험한 상대는 영국입니다.
아시아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영국의 우방은 언제나 우리의 적이었고 그
반대도 사실입니다. 영국은 러시아와의 충돌에서는 청의 우월적인 영향력에
의존하였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해양 세력이기 때문에
영국과 적대 관계가 될 것입니다. 영국과의 분쟁이 우리를 위협할 때마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우리 정책의 중요 과제였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중립을 선언하면서 분쟁 당사국의 한구를 폐쇄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홍콩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에게 일본의 한구들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유리에게는 절대 필요합니다.
보스토크는 겨울 4개월 동안 결빙되므로 일본의 한구 없이 영국과의 전쟁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국이 더 중요한지 일본이 더 중요한지의 문제는 우리
정책이 얼마나 적극적인지 여부에 달린 동시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극동에서 어떻게 얽히고 설는지에
달렸습니다. 어찌 되었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다른 열강, 특히 영국과 함께 일본이 이번 전쟁을 통해서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장차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열강들에 동조 없이 단독으로 일본의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자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로마노프는
일본이 이번에서 전쟁에서 이길 것이고 그럼 극동에서 러시아가 어느 나라랑
동맹을 맺어야 되느냐? 지금처럼 그냥 청 하고 잘 지내는 거 그거는 좋다.
그렇지만 청은 앞으로 러시아한테 제공해 줄 것이 사실 없다. 그러니까 따라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취하려
그러면 일본을 동맹으로 만들어야 된다. 사실 일본은 해형 세력이기 때문에 우리의 적적인 영국하고도
그렇게 사이가 꼭 좋을 일 리만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서
일본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려야 되겠다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에 러시아가 개입을 하더라도 러시아 혼자 개입을 해서 일본으로
하여금 요동 반도를 뱉어내게끔 할 수 없다. 다른 나라랑 같이 끼어서
거기에 끼어서 같이 설득을 해야 된다. 왜? 장기적으로론 일본이 러시아 편이게끔
만들어낸다라고 로바노스는 보는 거죠. 사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정책적인
해안이었습니다. 문제는 청일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가 삼국
간섭 주도를 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리고 그리고는 나중에 가서는 러시아가 결국은 [음악]
욕심을 버리지 않고 요동반도를 자기가 차지하게 되면서 러일 전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어 러시아와 일본의 그 적대 관계 2차 대전까지도
계속되는 그 적대 관계가 형성이 됩니다. 사실 로바노프의이
당시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래서 훨씬 더 조심스럽게 일본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갔었더라면 글쎄요. 러시아가
일본한테 러일 전쟁에서 패배하는 그런 구력도 맛보지 않고 동보가시아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니콜라의 이세는 로바노프의상의 거를 글을 읽고서 답을
합니다. 여백에게 [음악] 상주문 여백에게 러시아는 연중 자유롭고 열린 한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이 이 한군은 본토 즉 조선의 동남부에 위치해야 하고 우리의
다른 영토와 육로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니콜라이도 우리가 이러한 전략적 목표가 있지만 우리 혼자서 1번을 자극해서 안 된다.
몰아붙여서 안 된다. 공동 보조를 어 취한다.
그러면서 어 정책을 결정을 합니다. 저는 여기서도 엿볼 수 있는게
니콜라 이세 황제와 밑에 있는 외무상과의이
긴밀한 대화 이런 고차원의 전략 논의를
군주와 대신들이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다라는
것이 이런 것이 강대국을 만든 것이라는 어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퀄라이가 나중에 가서는 결국은 그 판단 자체가 어두워지고 오판을 하기
시작하면서 멸쟁으로 치닫게 되는 거지만 지금이 대목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러시아의 지도자들도 면밀하게 모든 것을 거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정책을 공유했는지를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니콜라이가
자 그래 다른 열광들과 공동 보조를 맞춰라라는
얘기를 하니까 로바노프는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다른 열광들한테 얘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우선
영국 대사 주러시아 영국 대사 러셀한테 얘기를 4월 8일 날 얘기를
합니다. 로바노스는 뭐라 하냐면 일본이 대륙토를 한량받는 것을
러시아가 반대하는 이유는 조선의 독립을 무효화시킬뿐만 아니라 일본이
러시아와 적경할 가능성도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반대를 할 것이다.
요동반도를 일본이 갖는 것을 반대한다. 왜냐면 결국 그러다 보면은 일본이
차지하는 중국의 영토와 만주 북 쪽에 있는 시베리아 쪽에 있는 자기네 러시아 영토하고 일본이 접경을 하게
된다. 이거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그렇게 구시를 이제 되는 거죠. 거기에 대해서 라셀은 라셀은
일본이 야오똥 반대를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러시아가 전쟁도 불사할
준비가 돼 있느냐. 그러니까 로바네프는 그것은 매우 심각한 결정이라 그러면서 답을 얼버무립니다.
주로 일본 공사 니시도 같은 날 로바노스를 또 만납니다. 그래서
일본의 평화 협상 조건 즉 요동반도를 할량받겠다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 러시아가 어떻게 생각한지 반응을
살핍니다. 로바노프는 우리가 아직 다른 열광들 열광들과 이런 것을 상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좀 시기상조다. 적절지 않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일본 굉장히
가까이 있는 대만을 할량받는 거 그거는 뭐 이해가 되지만 만주의 일부를 일본이 받는다. 일본보다도
강한 해군역을 갖고 있는 열강들이 있는데 요동반도로 하량받아서 그걸 도대체 어떻게 지켜내려고 그러느냐?
이거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라고 니시한테 얘기를 답을 합니다.
그러면서 4월 9일 날 로바노스는 니시한테 또 한 번 얘기를 합니다. 일본이 유지불가능한
강화조약보다는 지속 가능한 강화 조약을 맺어라.
그니까 요동반도라는 거 이거 지속할 수 없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니시가 로마노프한테 아 그러면 당신이 보기에 일본의 [음악]
요구 조건이 너무 과한 거라고 생각하느냐 한번 더 이제 확인을 하는 거죠. 로마오프는 [음악]
글쎄 자기가 봐서는 아직은 자기는 역시 정확한 입장을 내놓을 계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청의 공사가 그러는데 이거는 좀
심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자기가 이거는 과도하다라고 얘기는 참아
못하고 아이 청의 입장에서 그렇지 않겠냐라고 슬쩍 얘기를 돌리지만
결국은 이거는 과도한 어 요구 조건이라는 것을 [음악] 로마노프가 전달을 니시
니시에게 전달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 여기에서요. 그 세력 균형 그러니까이 균세
김홍집이 2차 수신사로 1번에가 가지고 그때에 하여장하고 황준원을 만나서 어
조선 책략을 받아오지 않습니까? 그때에이 사람들이 처음으로 무슨 얘기를 하냐면 아 균세 이론이라는게
있다. 균세 이론이 뭐냐면 그게 밸런스 파워라는 거다. 뭐 밸런스 오 파워가 도대체 뭐냐? 그러면
서양 사람들은 희한하게 어떤 한 강대국이 있으면 그 강대국에 와서 다
차지하고 남을 다 뺏고 가는게 아니라 자기네들끼리 놀라운 세력 균형을 한다라는 겁니다.
영국하고 러시아가 나폴레옹을 격퇴시키고 그러면서 그 그다음부터
소위 말하는 유럽의 컨설트 오브 유럽이라 그러죠. 그 수많은 열강들끼리 서로 끊임없이 균형을 하고
견제를 하고 그니까 러시아가 너무 터키를 쳐들어가면 러시아를 또 크림 전쟁에 들어가고 그걸 막아 갖고 다시
크림반도를 백 이런 일들을 계속해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개항장을
만들어 갖고 사실은 다 중국을 뜯어먹고 있으면서도 어느 한 나라가 다 혼자서 다 족차지 못하게 하는
지금 그 밸런스 파워가 끊임없이 작동하는 모습이이 삼국 간섭을
통해서도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러시아가 자기의 자기의 국익에 이거는 일본이 야오똥 반도를 갖는
거는 국익에 완전히 반한 거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혼자서 하지 않고 다른
열강들의 눈치를 보고 다른 열광들과 힘을 합치고 어떻게서든지 공동전선을
펴야지만 이게 되는 겁니다. 어느 한 나라가 아무것도 못 하게 됩니다. 사실은이
균형이 안 깨집니다. 그게 나폴레옹을 워털로에서 격파하는 1812년부터
1차 세계 대전이 나는 1914년까지 사실은 100년 동안 유럽이 물론
보블 전쟁 같은 창감의 전쟁이 있었죠. 그렇지만 항상 보블 전쟁
같은 것도 비스마르크가 어떡합니까? 곧바로 돌아가서 다시 세력 균형을 유럽의 세력 균형을 다시 재건을
합니다. 그것이 깨뜨리게 되는 것이 1차 대전인 거죠. 그러니까 이러한 그 세력 균형을
통해서 유럽이 100년 동안 열강들끼리의 평화는 유지하면서 전
세계에 자기네 제국을 넓혀가는 그 시기, 그 정책이 어떻게 작동을 하고
있었는지를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영국이 서로 눈치를 보고 끊임없이
상대방의 생각을 탐지를 하면서 보여주는 그 모습이 바로 세력
균형입니다. 그리고 그 세력 균형의 이론에 의하면 일본이 야 요동반도를
차지해서 중국을 완전히 복속시키는 것은 세력 균형을 완전히 [음악]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라면서 러시아가 주도해서 독일과 프랑스와 간섭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세력 균형 이론이었었습니다. 지금까지 어 삼국 간섭이 어떻게
일어난지 전체적인 개어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특히 이제 러시아
입장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고 일본이 어떻게 해야지 요동반도를
차지하 있어서 열강들을 자극하지 않을까를 어 노심 초사하는 그 모습을
보여드렸 보여 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한 시간 더 삼국 간섭을에
대해서 [음악] 말씀을 드리는데 다음 시간에는 독일이 그렇죠. 독일의
입장이 도대체 어떻게 변하는지 굉장히 일본의 우호적이었던 독일의 입장이 또 변해가는 모습 그 모습 속에서 독일도
급변하는 국제 성세 속에서 자기의 국익을 전혀 다르게 계산을 하기 시작하는 그러면서 이제 그 와중에
일본이 어떻게든지 삼국 간섭을 막어 보려고 끝까지 노력하는 그 모습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음악]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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