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30

독부 이승만 평전 | 김삼웅 2012

[전자책] 독부 이승만 평전 | 김삼웅 | 알라딘
[eBook] 독부 이승만 평전
김삼웅 (지은이)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2012




종이책의
미리보기
입니다.



































책소개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분단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우남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엇갈려온 가운데 다시 그에 대한 우상화 또는 미화 ‘작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친일과 반공(친미)을 기반으로 기득권을 차지한 수구세력이 ‘박정희 망령’에 이어 ‘이승만 망령’을 불러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가치관을 전도시키려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물론이고 이승만도 독재자로서 민주주의와 국민 그리고 역사 앞에 씻지 못할 대죄를 지었다. 그런 역사의 죄인을 다시 불러내 ‘영웅’으로 미화시켜 현실을 호도하는 수구세력의 저의는 무엇인가. 이에 이승만의 공과功過를 엄정하게 논한 평전을 내어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



목차


여는 글_왜 ‘독재자 이승만’ 평전인가

01 젊은 날의 이승만, 출생과 성장
격동기에 태어나 서구사상의 세례를 받다
언론인 및 개혁정치가로 성장하다

02 일신의 영달을 위한 ‘겉치레’ 독립운동
초기 외교활동의 실패 그리고 미국 유학
짧은 귀향, 긴 미국 생활
일신의 영달에 기운 교포사회의 ‘문제아’ 이승만

03 분열을 부른 야망, 순진한 외교주의
탄핵당한 임시정부 대통령, 현실성 없는 외교독립론
태평양전쟁기의 외교활동과 독선에 따른 과오

04 자주독립민족통일을 외면한 권력의 화신
해방정국의 주역으로 등장, 분단정부 수립에 올인
권력에 눈멀어 ‘민족’을 외면한 ‘또 다른 반역’

05 실질 없는 허세만 일삼다가 전쟁을 부른 무능 대통령
반민주 폭압체제 구축하면서 민족민주세력 제거
백범의 암살 배후, ‘보이지 않는 손’ 이승만
6.25전쟁 초래, 피난 수도에서 민주주의 압살

06 상상을 초월한 세상의 모든 악행 그리고 파멸
기발한 꼼수 정치로 권력 연장
막장으로 치닫는 정권, 망령들어가는 독재자
정치보복의 극치 ‘조봉암 처형’의 내력

07 ‘검은머리 미국인’ 이승만의 슬픈 귀거래사歸去來死
파멸의 무덤을 판 늙은 독재자의 권력욕
혁명의 불길에 ‘껍데기’로 사그라진 독재자

에필로그_‘독부’ 이승만이 민족반역자·민주반역자인 증거
이승만 연보|주석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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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88 이승만의 “대일관은 현실주의적이고 대세 추종적인 것이었으며, 신념에 근거했다기보다는 개인적 이해와 결부된” 것이었다. 그의 일련의 언행을 살펴보면 반일, 배일, 독립운동 같은 의지나 개념을 찾기 어렵다. 그는 경술국치를 당해 많은 애국지사들이 해외 망명길에 나설 때 ‘금의환향’을 결행하고, 105인사건을 오히려 비판하면서 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심지어 미국 언론을 상대로 일제의 무단통치 상황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이 시기 이승만의 정체성은 ‘뼛속까지’는 몰라도 상당한 친일ㆍ친미의식으로 물들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접기
P. 254 이승만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직전인 6월 27일 새벽 2시에 국회에 통보도 하지 않고 대전으로 줄행랑을 쳤다.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국군의 총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국군은 적을 압록강까지 추격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달성하고야 말 것입니다”라는 거짓 녹음 연설만 라디오 방송에 되풀이하도록 해놓고 시민들이야 죽든 말든 내버려둔 채 자신만 줄행랑을 놓은 것이다. 이게 어디 ‘국부’라는 자가 할 짓인가. 접기
P. 332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에 앞서 우리는 대통령의 비서들에게 우리의 질문사항을 미리 제출해야 했다. 우리는 그들 비서들이 승인한 항목에 대해서만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언젠가 한 기자가 질문 항목에서 지워진 질문 중의 하나를 대통령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다. 그 기자는 얼마 후 모종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신문사에서도 해고되었다.”



저자 및 역자소개
김삼웅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한국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인물 중심으로 추적해 온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평전 작가. 2025년 제2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과 성균관대 교수를 거쳐 제8대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으며, 동학·천도교 사상과 3·1혁명, 독립운동사를 관통하며 민족사의 주체적 흐름을 복원하는 데 힘써 왔다.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 및 제주 4·3 사건, 민주화운동 관련 위원회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로서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함세웅 평전: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를 비롯해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안중근 평전》, 《장준하 평전》, 《이승만 평전》, 《박정희 평전》, 《김대중 평전》, 《노무현 평전》, 《신영복 평전》, 《3·1혁명과 임시정부》 등 평전 집필을 통해 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기록해왔다. 접기

최근작 : <이종일 평전 : 언론의 길을 묻다>,<할 말이 있다>,<만해 한용운 평전> … 총 19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만 사람의 경륜이 모두 틀려버린 ‘한 사람의 세상’

MB정권 · 새누리당을 비롯한 수구세력 그리고 이른바 ‘뉴라이트’를 필두로 한 어용 지식인 · 언론인 무리는 이승만을 ‘국부’ 곧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고, 1948년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왜곡한다. 이는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발상이자 헌법을 무시하고 역사와 진실을 모독하는 곡학아세다.
이는 저들이 ‘근대화의 아버지’로 찬양하는 박정희에 이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켜세워 저들의 구심으로 삼음으로써 친일 · 친미에 기반을 둔 기득권을 유지 · 강화하려는 속셈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승만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책들이 서점에 넘쳐나고 수구족벌신문과 어용방송은 이승만을 미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 조선일보 기자 이한우의 《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거대한 생애 이승만의 90년》, 조선일보 기자 출신 이도형의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로버트 올리버의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 안병훈의 《대통령 이승만》, 역시 조선일보 기자 출신 안보길의 《이승만 다시 보기》, 유영익 외 대학교수들이 공동집필한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사학자 이주영의 《이승만과 그의 시대》, 역시 사학자 남정옥의 《이승만 대통령과 6.25전쟁》 등 이승만을 미화하는 책들이 봇물을 이룬 가운데 조선일보 기자(출신)들의 맹활약이 눈에 띈다. 이에 저자는 왜곡을 바로잡고 음모를 분쇄하고자 《‘독부’ 이승만 평전》을 내놓았다. 저자는 심산 김창숙 선생의 말을 빌려 이승만을 ‘독부獨夫’로 규정하고 그의 시대를 “만 가지(사람) 경륜이 모두 틀려버린 ‘한 사람의 세상’”으로 평가한다.
“권력의 욕망은 인간 이성과 자제력을 넘어선다고 하지만, 이승만의 경우는 너무 지나쳤다. 그의 욕망 앞에 민주주의나 민생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찾을 수 없게 된” 현실에 직면하여 김창숙 선생은 “국가는 나날이 오그라들어가고 민족은 나날이 녹아들어갔도다. 남북은 어느 때나 평화로워지며 백성은 어느 때나 즐거워지려나. 아아 슬프도다, 한 사람의 세상 만 가지 경륜이 모두 틀려버렸다”고 한탄해마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시인 김수영은 4.19혁명 직후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썩은 놈의 사진이었느니, 아아 살인자의 사진이었느니”(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라며 치를 떨었을까.
그렇다고 이 평전이 이승만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기술한 것만은 아니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엄정하게 평하고자 이승만에 관한 거의 모든 저작과 자료를 섭렵하고 반영했다. 특히 젊은 날 이승만의 선구자적 반일 언론활동과 개혁적 정치활동은 높이 사고 있다. 그러나 임시정부 수립과 하와이 정착 무렵부터 발현된 그의 ‘독부’ 성향은 ‘독립 훼방꾼’ ‘통일자주독립국가 수립 훼방꾼’에 이어 끝내 ‘민주주의 반역자’로 귀결되고 말았으니, 역사의 불행이요, 민족의 불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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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전에도 부정적인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친일파등용등의 행위가 있었으니. 그런데 읽고나니 참 말이 안 나온다. 어떻게 이따위 인물이 있던것인지. 줄곳 어조가 비판적인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그의 행보가 죄다 그 따위인데
책수집가 2014-11-08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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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찬양하는 누구들은 명심해라... 이승만은 사람을 죽여도 굶겨서 죽인 놈이었단걸...
MAKWANGSOO 2016-02-24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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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주관적인 감정만 앞세우면 평전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희대의 학살자들을 다룬 평전도 이 정도로 분노와 증오로 일관하진 않는다. 비판하려거든 적개심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비판해야
jsprito64 2013-03-28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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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승만 평전을 쓰는 이유는 수구세력의 무분별한 망동이 걱정되서이다라고 글 쓰는 이유를 밝혔다.이승만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일본하야시공사와 친일 선교사의 도움을 받는 기회주의자였고 미국에 가서는 기독교에 빠져 교회운동이 독립운동보다 먼저였다.
산들바람 2014-05-04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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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민을 30만명이나 죽인 독재자가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이승만을 비판하는 책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NamGiKim 2016-08-29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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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남긴 어록 두 가지만 소개해 본다. ˝공산당이라면 부모 형제라도 용서하지 말고 처단해야 한다.˝, ˝내가 당나라 덕종이야? 난 사과 못해. 사과할려면 국회의원 당신들이나 해.˝
가람 2014-05-26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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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의 화신.. 아집의 상징.. 근데 외교의 달인? 당시 동북아의 정세와 미국의 이해가 맞아 어쩔수 없이 선택된,시대가 낳은 대통령인가? 버리고 간 한국의 본부인은 어떻게 살았을지...
sprenown 2017-07-03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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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승만과 같은 물건이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하지 못하도록 이 책을 반드시 읽고 이승만의 죄악에 치를 떨어야 한다.
choimos 2015-12-23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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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아니면 적이니까, 모두 죽여라!



구약성경 신명기 13장 6~9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여러분의 형제나 자녀나 사랑하는 아내나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이방 민족의 신들을 섬기자고 은근히 유혹하여도, 여러분은 그런 자를 사정없이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1950년 9월 22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공산당이었다면 부모 형제라도 용서하지 말고 처단해야 할 것이다."



시대순으로 본다면 저 구약성경이 쓰여진 때와 이승만의 발언은 약 3천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지문에 담긴 핵심적인 뜻은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타자에 대한 지독한 불관용과 배타성, 그리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니까, 모두 죽여라!"는 극단적인 잔인함과 인명경시.



구약성경과 이승만이 무슨 상관이냐고? 당연히 상관이 있다.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종교가 기독교고, 이승만은 평생동안 독실한 기독교인(개신교인)이었거든. 그리고 지금 이승만을 국부라고 추앙하려 하는 뉴라이트 구성 인사들도 대부분 개신교인이거나, 아니면 개신교 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구약성경의 저 구절을 신의 가르침이라고 믿은 유대인들은 이방 신을 섬기는 다른 부족들에게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고, 유대인들처럼 구약에 담긴 배타성과 폭력성을 숭배했던 이승만도 평생에 걸쳐 자신을 편들지 않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지독한 보복과 폭력으로 일관했으니까.



이승만의 배타성과 폭력성은 그의 일생에 걸쳐 일관되게 반복된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인 독립운동가 시절에도, 참여하는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마다 다음과 같은 일을 저질렀다.



1. 그가 최고 지도자가 되거나

2. 아니면 그 독립운동 단체는 내분으로 갈기갈기 와해되던가.



쉽게 말해 이승만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대상은 폭력으로 보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그가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신생 독립 국가인 한국의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승만은 결코 좌익 계열 인사만 탄압한 것이 아니었다. 반공 성향의 우익 인사들도 이승만에게 반대하거나 밉보이면 결코 무사하지 못했다. 좌익 인사들을 색출해 구속시키는 일로 이승만의 총애를 받았던 검사인 선우종원도 이승만의 정적인 장면의 비서실장을 지냈다고 황당하게도 공산당으로 몰려, 일본으로 밀항해 8년 동안 숨어 살아야 했다. 엄연한 우익 인사인 조병옥은 이승만이 추진한 반공 포로 석방 작업에 반대하자, 심야에 쇠뭉치로 머리를 맞고 실신하는 테러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조병옥은 기억력을 거의 상실해 폐인이 될 지경에 이르렀고, 육군형무소에 갇혀야 했다. 덧붙여 이승만이 이정재 같은 정치 깡패들을 총애하고 그들이 마음껏 서울 한복판에서 설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다. 이처럼 이승만은 자신의 눈에 거슬리면 고위 정치인이라고 해도, 서슴치 않고 테러를 자행했던 것이다. 오늘날 이승만을 숭배하는 뉴라이트들은 이승만이야말로 정치 깡패를 동원한 테러를 즐겼다는 사실에 대해선 뭐라고 말할까.



그렇다면 이런 이승만을 한국인들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숭상했을까? 그렇지 않다. 1950년 5월 30일에 실시된 총선거에서 이승만이 소속된 여당은 완전히 참패를 당했다. 전체 국회의원 당선자들 중 60%가 무소속이었고, 전체 당선자의 80%가 반 이승만 성향의 중도 인사들이었다. 1948년 8월 15일에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출범한지 고작 2년 만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미 진작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승만으로부터 등을 돌렸던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승만을 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눈은 곱지 않았다. 1954년 10월 11일 한국일보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무려 78.8%가 이승만이 연임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 여론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는 더 이상 이승만 당신이 대통령 하는 것을 원치 않으니, 대통령 더 해볼 생각 말고 임기 끝나면 바로 물러가라고. 만약 뉴라이트가 말하는 대로 이승만이 훌륭한 지도자였거나 혹은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면, 왜 78.8%의 반대가 나왔을까? 오히려 이승만이 대통령 한 번 더 해달라고 찬성을 해야 할텐데.



이처럼 이승만은 민심을 얻지 못했고, 그래서 지지 기반이 불안정했다. 흔히 이승만은 강력한 독재자라고 여겨지지만, 그는 이후에 들어선 박정희나 전두환과는 전혀 달랐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비교적 안정적인 집권 기간을 보냈던 것에 반해, 이승만은 그렇지 못했다. 한 예로 박정희와 전두환은 집권 기간 도중, 공권력을 동원해 조폭이나 깡패들을 철저하게 소탕해 버렸다. 하지만 이승만은 그렇지 못했다. 소탕은커녕 오히려 조폭과 깡패들을 지원하고 옹호하면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개 깡패인 이정재가 이승만이 속한 여당의 지원을 받고 국회의원이 되어 보겠다며 선거에 출마할 정도였으니까.



무엇이 이런 차이를 불렀을까? 우선 이승만은 오랫동안 조선을 떠나 미국에 살아서, 국내에 인맥이나 세력 기반이 없었다. 이승만이 국내의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친일파 처벌 기관인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친일파들과 손잡고 그들을 기용해 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권력 기반이 약하니, 당시 국내에서 많은 부와 권력을 지닌 친일파의 힘을 빌어서, 그들의 지지를 받고 권력을 다지겠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또한 박정희나 전두환은 군부를 확실히 장악했고, 그래서 깡패들을 소탕할 수 있었지만 이승만은 그조차도 못했다. 이승만은 군인들에 대한 처우를 형편없이 해주었다. 군인들이 월급이 너무 적다며 올려달라고 해도, 군인은 국가에 봉사하는 직업이라며 거부했다. 그래서 수많은 군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일반 병사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고위 장교들도 생활고에 찌들어 봉급만 받아서는 가족들을 굶기기에 딱 좋았다.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제대한 상이군인들도 국가로부터 푸대접을 받았고, 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그로 인해 한국 군부에는 자신들을 냉대하는 이승만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가득했다. 박정희가 주동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 배경에도 바로 이런 요소가 깔려 있었다. 아, 참고로 박정희는 원래 장면의 민주당 정권이 아니라,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을 몰아내려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박정희가 이승만을 뭐라고 평가했는지 보자.





"해방 직후 이 땅에 무려 수십여 개나 되는 정당이 비 내린 뒤에 돋아나는 참대 순처럼 어지럽게 돋아나 결국 겨레를 갈기갈기 찢어나누고 파당 의식만 키워 놓은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지난날 이승만 씨가 꾸며 놓았던 자유당이야말로 자기 파派만의 수지타산을 제일로 치는 정당의 본보기였으며, 세계 선거 역사 가운데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부정과 불법의 흉계를 꾸미고 이를 국민에게 강요했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국민의 기본 권리가 나라법에 규정되긴 했지만 그것은 한갓 종이 위에 적어놓은 글귀에 지나지 않았을 뿐, 자유당 정부는 그것을 지키고 실현시키기는커녕 도리어 그러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일쑤였다. 이리하여 정부에 의해서 자유를 짓밟히고 시달려게 된 온 국민은 정부의 억눌림에서부터 다시 자유를 되찾으려는 자유 투쟁의 운동을 벌였고 그것이 이른 바 자유당 정치하의 우리 형편이었다.



남한에서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12년 동안 기간 산업의 토대가 되는 전력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짓지 못하는 사치스런 소비경제로 말미암아 농촌은 메말라 갔으며, 메마른 농촌의 피와 살을 깎아서 도시만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썩고 그릇된 일만이 극심해져 갔다.



자유당 독재 12년에 농촌의 경제는 파탄되고 관기는 문란해졌으며, 부정축재자들은 건전한 국가 경제의 성장은 제쳐 놓고, 그릇되고 썩어빠지기만 했다. 해방 16년에, 남한에서는 이승만 노인의 어두운 독재와 썩어빠진 자유당과 관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해방 귀족'들이 날뛰어 겨레의 장래는 어려워만 갔던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배 형태인 카리스마적인 1인 정치는 이승만 독재로 끝났다."



- 박정희가 1962년에 발표한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에서 발췌.





이승만 시대를 직접 온 몸으로 경험하고 산 장본인, 그것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직접 남긴 글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승만에게 불만을 품은 군부는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분노한 국민들이 4.19를 일으키자, 이승만으로부터 발포 명령을 받고도 끝내 이를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결코 국민들의 생명을 아껴서가 아니었다. 한국 전쟁 이전이나 와중에 국군이 얼마나 잔혹하게 무수한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는데. 다만, 그동안 자신들을 홀대해온 이승만이 밉고 이제 곧 망할 운명의 이승만에 따라봤자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였으리라.



물론 이승만 본인도 이런 군부의 속사정을 잘 알았고, 불만을 품은 그들이 행여 자신을 몰아내려 쿠데타를 꾸미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미 쿠데타 준비는 진행 중이었고, 만약 4.19가 조금만 더 늦게 일어났다면 그 전에 쿠데타가 일어나 이승만은 틀림없이 축출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이정재 같은 정치깡패들을 총애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독부 이승만>이다. 독부는 외로운 신세가 된 권력자를 뜻하는데, 그처럼 이승만도 결국에는 모두로부터 버림과 외면을 받아, 영락없는 독부가 되고 말았다. 국민들이 반발하고 군부도 등을 돌렸으며, 그의 후원자이던 미국조차 그의 오만과 독선과 무능에 질려 더 이상 지켜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독부가 된 이승만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권력을 모두 잃고서, 하와이로 달아나 죽을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해의 민심을 잃어 독부가 된 자의 말로였다. 그나마 아프리카 나라들에서처럼, 쿠데타군에게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끔찍하게 죽어가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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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2014-05-26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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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부 이승만 평전 - 김삼웅



살다 살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은 처음이다. 읽다가 화가 나서 책을 덮고, 웹툰이나 만화책을 보았다. 그렇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이승만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철저히 이승만을 옹호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빙의해서 읽었다. 그래도 참, 해도해도 너무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굉장히 디테일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이승만의 행적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독부' 이승만, 이 말은 자유당 말기 심산 김창숙 선생이 칭한 것이라고 한다. 독부란, 민심을 잃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곳이 없게 된 외로운 남자라는 뜻이다. 독부, 독재자, 하지만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그들 나름의 이유를 대면서 항변한다. 이승만의 행적을 통해 사람들이 각자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의 모든 행적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할 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행적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1. 1908년 스티븐슨을 처단한 장인환 의사의 통역 의뢰를 받고 "예수인 신분으로 살인재판을 통역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2. 105인 사건으로 많은 애국지사가 시련을 겪었을 때 미국인 친일 목사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900명이 구속되고, 105명이 기소된 사건이고 그 중 미국인 24명이 구속되었다.




3. 1919년 2월 정한경과 "위임통치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4.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직과 상하이임시정부의 국무총리직을 '대통령'으로 행세했다.




5. 1922년 상하이임시정부 의정원은 이승만의 독선적 행위과 독립자금의 사적 유용 등의 5개항 사유를 들어 대통령직에서 탄핵했다. 또 임정은 1925년 이승만이 위원장으로 있는 구미위원부를 폐지했다.




6. 하와이 체류 중에 한인사회단체를 자기중심체제로 바꿔 교민사회를 분열시켰다.




7. 1946년 정읍 발언으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8. 반민특위를 와해시키고, 친일파를 중용하였다.




9. 제주 4.3 사건 때 관련 법률도 없는 게엄령을 선포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 후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정적 제거와 언론 탄압에 활용했다.




10. 북진통일을 주장했지만, 북한의 남침에 전쟁이 발발하자 후방으로 이동하여 서울시민을 속이고, 죄 없는 양민들을 용공분자,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다. 이승만 정부 아래 자행되었던 많은 양민학살사건.




11. 한국전쟁 이후 제대로된 경제 정책이 없어 국민들은 경제난에 허덕이는데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면서 반공ㆍ독재체제를 강화하며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몰두했다. 그 것이 3.15 부정선거를 통해 극에 달했고, 결국 4.19혁명이 발생했다. 4.19 당시 학생ㆍ시민들에게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승만의 공적으로 여겨지는 외교독립론이 있다. 하지만 궁금한 점은 그가 외교독립론을 주장했지만,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외교적 성과가 있었다면, 왜 미국은 한국임정을 승인하지 않은걸까? 한국임정이 승인되지 않은 점이 오롯이 이승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의사소통도 되는 그가 했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이승만은 외교를 통해 독립하고자 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현재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일제강점기에 사는 사람이라고 상상을 해보면, 독립을 향한 방법에 있어 무장독립투쟁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버리면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비판했다고 해서 그 것을 꼭 친일과 연결시킬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승만이 보였던 언행(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 국내 학생들에게 반일운동보다 해외유학 권장 등)은 그가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보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의로운 일, 공익보다 권력 욕심이 더 앞섰던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정읍 발언이나 1948년 5.10 총선거 때 상대 후보인 최능진의 입후보를 방해하고 무투표로 당선되었던 점을 보면 분명 권력욕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 때 가슴이 아팠던 역사가 있다. 상대 후보였던 최능진은 독립운동가 출신인데, 한국전쟁 때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쓰고 총살형을 당했다. 원통한 것은 최능진을 총살한 사람이 일본 관동군 출신 김창룡이다. 최능진 사건은 재심 소송을 통해 지난달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독립운동가가 독립 후에 그릇된 공권력 행사로 생명을 잃었다. 이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어떻게 보면 이승만은 권력욕이 있는 정치인이었고, 또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감각도 뛰어났던 것 같다. 그의 친일적인 언행은 하와이에 일본인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장인환 의사의 통역 거부한 것도 미국 주류사회의 여론이 그에게는 중요했을 것이다. (예수인의 신분으로 살인재판을 통역할 수 없다라...... 법에 근거하지 않고 행사했던 계엄령이나 4.19혁명 때 발포, 이승만 정부 하에 있었던 국민방위군 사건,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문경양민학살사건, 제주 4.3 사건, 여순 사건 등에서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은 무엇일까?) 해방 이후 반소, 반공, 친미를 주장하며 미군부와 긴밀하게 지냈던 점, 미군용기를 타고 귀국했던 점 등은 그의 정치감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의 이런 정치감각이 개인의 욕심보다 국가를 위해 쓰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있는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4.19민주이념이란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시민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승만은 그 부당한 권력의 핵심이었던 독재자이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갔다. 시민들은 그의 동상을 끌어내렸다. 그런데 다시 그의 동상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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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2018-06-10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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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독부 이승만 평전>(2012년 두레)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독부 이승만 평전>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생애와 정치적 궤적을 비판적 시각에서 집대성한 인물 평전이다. 저자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은 이승만을 독재자, 나아가 <독부(獨夫: 외딴 사나이, 즉 민심을 잃고 홀로 남겨진 독재자)>로 규정하며, 그의 집권 과정과 권력 행사 방식을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관점에서 가혹하게 평가한다.

책은 이승만의 출생과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부터 시작하여, 미주 독립운동 시기, 해방 후 정국에서의 권력 투쟁,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 그리고 4·19 혁명으로 인한 하야와 하와이 망명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반을 시기별로 상찰한다.

저자가 제기하는 핵심 비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임시정부 시절 탄핵과 미주 독립운동 단체 내에서의 분열에서 드러나듯, 그의 독선적·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독립운동 역량을 분열시켰다는 점이다. 둘째, 해방 후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친일파 세력을 정권의 기반으로 포섭하고, 제주 4·3 사건과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 민간인 학살과 정치적 반대파 제거를 방조·주도했다는 점이다. 셋째,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로 이어지는 장기 집권욕이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기틀을 유린했다는 점이다.

평론

<독부 이승만 평전>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인 이승만에 대한 진보·비판적 사학계의 시각을 정면으로 반영한 선명한 평론서이다.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이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칭송하는 보수 진영의 시각에 맞서, 그의 집권이 남긴 민주주의의 상흔과 역사적 과오를 1차 사료와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매섭게 추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권력의 형성 과정과 통치 방식에 숨겨진 그늘을 집요하게 파헤쳤다는 데 있다. 특히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서 발생했던 갈등과 주도권 싸움, 그리고 해방 후 반민특위 해체와 친일 경찰의 재용용 등 민족사적 정통성을 훼손한 지점들을 세밀하게 검증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국가 수립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민주적 절차의 파괴와 인권 탄압의 실상을 가감 없이 고발한다.

또한, 이승만의 외교술을 <용미(用美)>나 <자주적 외교>로 평가하는 기존의 긍정적 담론에 대해, 그것이 실상은 자신의 정권 유지와 미국 의존적 냉전 대결 구도를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대립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상적 대척점을 제공한다.

다만, 이 저작은 평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인물의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다루기보다는 <과(過)>를 입증하는 데 집중된 정치적·사상적 비판서의 성격이 강하다. 6·21 한국전쟁 당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한 안보틀 구축이나, 농지개혁을 통한 봉건적 토지 소유 구조의 해체 등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주요 정책적 성과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유예하거나 축소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저자의 강한 시각이 개입되어 있어 객관적 인물 평가라기보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진 민족주의적 비판 담론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부 이승만 평전>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한국 현대사에 남긴 중대한 영향력과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시련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렬한 사료이다. 이승만의 저작들과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서들과 비교하여 읽을 때, 한반도 근현대사의 복잡한 굴곡과 지도자 한 사람이 국가에 미친 빛과 그림자를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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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김삼웅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충실히 요약하면서도, 이 책이 반대 방향의 이승만 영웅화와 마찬가지로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평전이 될 위험을 함께 평가한 글이다.

<독부 이승만 평전> — 독립운동가에서 민주주의의 배역으로

김삼웅 지음, 2012

  1. 책의 성격과 ‘독부’라는 제목

김삼웅의 『독부 이승만 평전』은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으로 기리는 전기와 정반대편에 서 있는 비판적 평전이다. 부제는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다. 저자는 이승만의 젊은 시절 개혁운동과 반일 언론활동은 인정하지만, 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한 핵심 동력을 권력욕과 정치적 기회주의에서 찾는다.

책은 2012년 9월 출간된 422쪽 분량의 저술이며, 2020년에는 『이승만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이승만의 공과를 대략 ‘공 3, 과 7’로 평가하며,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움직임을 반박하려 했다.

‘독부’는 단순히 독재자를 줄여 부른 말이 아니다. 맹자에서 유래한 말로, 민심을 잃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외로운 지배자를 뜻한다.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김창숙은 이승만을 이 말로 비판했다. 김삼웅은 이 표현을 빌려, 이승만이 독립운동가와 초대 대통령이라는 영예를 얻었지만 결국 국민에게 버림받아 해외로 떠난 인물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이 책은 이승만의 생애를 중립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하나의 명확한 논제를 증명하려 한다. 젊은 시절의 개혁가가 어떻게 권력지상주의자로 변했고, 독립운동가가 어떻게 독립운동의 분열을 초래했으며,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어떻게 독재자가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 책의 중심이다.

  1. 젊은 개혁가 이승만

김삼웅도 이승만의 초기 활동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에 참여했다. 『협성회회보』와 『매일신문』 등을 통해 개혁과 자주독립을 주장했고, 전제군주제를 비판하며 입헌정치와 국민의 권리를 강조했다.

이 시기의 이승만은 상당히 급진적인 개혁청년이었다. 그는 일반 백성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국가가 소수 왕족과 관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갇힌 뒤에는 『독립정신』을 집필하여 교육, 법치, 개방과 국민의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삼웅은 이러한 활동을 이승만 생애의 긍정적인 부분으로 평가한다. 책의 소개도 젊은 이승만의 선구적인 언론활동과 개혁정치 활동은 높이 평가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기에도 이승만에게 강한 자기중심성과 명예욕, 동료와 타협하지 못하는 성향이 나타났다고 본다.

이러한 해석은 이승만의 훗날을 설명하기 위한 복선으로 기능한다. 초기의 개혁사상 자체가 거짓이었다기보다는, 공적 이상보다 자신의 지도권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점차 강해졌다는 것이다.

  1. 외교독립론과 미국 의존

출옥한 이승만은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교, 하버드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미국의 정치인과 종교계 인사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외교독립론을 발전시켰다.

이승만은 한국이 일본을 군사적으로 물리칠 힘이 없으므로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와 국제연맹에 기대를 걸었으며, 한국의 독립을 국제문제로 만들려고 했다.

김삼웅은 외교활동의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승만의 외교독립론이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이었으며, 국내 민중운동이나 무장투쟁, 독립운동 세력 사이의 협력보다 자신의 외교적 지도권을 앞세웠다고 비판한다.

특히 1919년 3·1운동 뒤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과정과 그 이후의 갈등을 자세히 다룬다. 이승만은 미국에 머물면서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지 못했고, 상하이의 국무위원들과 자주 충돌했다. 국제연맹에 한국을 위임통치해 달라고 청원한 일도 신채호와 박은식 등 독립운동가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이 청원을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노력이라기보다 한국의 운명을 강대국에 맡기려 한 사대주의적 행동으로 해석한다. 임시정부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재정과 권한을 둘러싸고 갈등한 결과, 이승만은 1925년 임시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되었다.

김삼웅에게 이 사건은 이승만의 ‘독부적’ 성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첫 장면이다. 그는 조직의 결정보다 자신을 앞세웠고, 동료를 협력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보았으며,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배척했다는 것이다.

  1. 하와이 독립운동 사회의 분열

이승만은 하와이의 한인사회에서 교육·종교·언론 활동을 전개했다. 한인기독학원과 교회를 세우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으며, 잡지와 신문을 통해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알렸다.

그러나 김삼웅은 이 활동의 긍정적 측면보다 하와이 한인사회의 분열을 더 강조한다. 이승만은 박용만 등 무장독립론자들과 대립했고, 대한인국민회와도 재정 및 지도권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자신을 따르는 조직과 교회를 별도로 만들면서 한인사회를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노선의 차이 그 자체가 아니다. 독립운동에는 외교, 교육, 군사 활동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승만이 다른 노선을 인정하거나 공동전선을 형성하기보다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데 있다.

김삼웅은 이승만이 실제 독립운동의 성과보다 자신의 정치적 지위와 명성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이 책에서 이승만의 장기간 미국 생활은 화려한 학력과 외교활동의 시대라기보다, 끊임없는 조직 분열과 권력경쟁의 시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부분은 김삼웅의 평가가 가장 논쟁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와 여론을 상대로 한국 독립을 꾸준히 주장하고, 일본의 대미전쟁 가능성을 경고한 활동까지 거의 권력욕의 표현으로 환원하면 이승만 외교의 실제 성과를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1. 해방과 단독정부 수립

1945년 해방 뒤 귀국한 이승만은 강력한 반공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을 신뢰하지 않았고, 미소협조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았다.

1946년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나 위원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발언은 이승만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다. 이승만을 긍정하는 쪽에서는 북한에 이미 공산정권이 형성되고 있던 현실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반면 김삼웅은 이를 분단정부 수립을 앞장서 추진한 행동으로 해석한다.

책에서 이승만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추진한 김규식·여운형·김구와 대조된다. 김삼웅은 이승만이 반공을 이용하여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미국의 지원 아래 남한 단독정부의 대통령이 되려 했다고 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도 이 책에서는 ‘건국의 위업’보다 분단체제의 고착이라는 측면에서 다뤄진다. 이승만은 제헌국회의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되었지만, 이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와 정당정치를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해석은 당시 소련 점령지역에서 진행된 권력 집중과 북한 정권 수립, 미소공동위원회의 실패와 냉전의 구조를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룬다. 분단은 이승만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과 소련의 군사점령, 국제적 냉전과 남북 정치세력의 대립이 함께 작용했다. 이승만의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를 분단의 사실상 단독 설계자로 보는 설명은 지나치게 인물 중심적이다.

  1. 친일파 청산의 좌절과 경찰국가

김삼웅이 이승만 정권을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친일파 청산의 실패다. 해방 뒤 국회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일제강점기의 주요 친일행위자를 조사하려 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했고, 경찰이 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승만은 국가건설과 공산주의 진압을 위해 일제하 관료와 경찰의 행정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결과 독립운동가들이 배제되고 식민지 통치에 협력했던 경찰과 관료들이 새로운 국가권력의 핵심에 들어갔다.

김삼웅은 이를 단순한 현실적 타협으로 보지 않는다. 친일세력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고, 이들을 이용해 독립운동가와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한 반민족적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 2020년 개정판의 소개도 친일 경찰과 총독부 출신 사법 관료를 중용하고 반민특위를 해체한 것을 이승만의 핵심 과오로 제시한다.

제주4·3, 여순사건과 국가보안법 제정 과정도 이러한 경찰국가 형성의 맥락에서 서술된다. 저자는 공산주의 반란과 폭력의 실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정부가 반공을 명분으로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반대세력 전체를 적으로 몰았다고 비판한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의 문제의식은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대한민국의 존립 위기와 공산주의의 위협을 인정하더라도, 국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과 법치의 파괴까지 불가피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 한국전쟁과 대통령의 책임

한국전쟁을 다루는 장에서 김삼웅은 이승만의 북진통일론과 전쟁 준비 부족을 비판한다. 정부는 강경한 구호를 반복했지만 실제 군사력과 국민 보호 계획은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북한군이 서울로 접근하자 이승만은 서울을 떠났으면서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정부가 서울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알렸다. 한강 인도교가 조기에 폭파되어 미처 피난하지 못한 시민과 군인들이 피해를 입었고, 많은 서울시민이 북한군 점령 아래 남겨졌다.

김삼웅은 이를 지도자가 국민을 버리고 자신의 안전부터 확보한 사건으로 본다. 이후 서울 수복 뒤에는 피난하지 못했던 시민들 가운데 부역 혐의자를 가혹하게 처벌했다. 전쟁 전후의 국민보도연맹 학살과 민간인 희생도 이승만 정부의 중대한 책임으로 다뤄진다.

반면 이 책은 이승만이 전쟁 중 대한민국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미국의 지속적인 참전을 요구했으며, 휴전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낸 외교적 역할은 충분히 평가하지 않는다. 반공포로 석방과 미국 압박은 전쟁을 확대할 위험이 있었지만, 그 결과 한국의 장기적인 안전보장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김삼웅에게 이러한 행동은 민족을 위한 결단보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도박에 가깝다. 그러나 이승만의 동기를 권력욕 하나로만 설명하면 국가안보에 대한 그의 실제 우려와 외교적 계산을 놓치게 된다.

  1. 개헌과 독재체제의 완성

이 책의 비판이 가장 확고한 근거를 갖는 부분은 이승만의 장기집권 과정이다. 국회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낮아지자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는 발췌개헌을 추진했다. 부산 정치파동에서는 계엄령 아래 국회의원들을 위협하고 체포하여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1954년에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을 없애는 개헌을 추진했다. 개헌안은 원래 필요한 의결정족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자유당은 수학적 반올림 논리를 동원하여 통과를 선언했다. 이것이 사사오입개헌이다.

김삼웅은 이 과정을 이승만이 헌법과 법률을 국가의 기본규범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증거로 본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해 온 사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절차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진보당 사건과 조봉암 처형도 중요한 사례다. 조봉암은 평화통일과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을 주장하며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이승만 정권은 그를 간첩 혐의로 처형했다. 김삼웅은 이를 유력한 정치적 경쟁자를 사법적으로 제거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언론 탄압, 야당 탄압과 관권선거가 계속되면서 이승만 정권은 점차 개인독재체제로 변했다. 반공은 국가안보의 원칙이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만능의 무기가 되었다.

  1. 3·15 부정선거와 ‘독부’의 몰락

1960년 이승만과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대규모 부정선거를 실시했다. 투표함 바꿔치기, 공개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과 투표수 조작이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분노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9일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경찰의 발포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승만은 결국 4월 2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하와이로 떠났고 귀국하지 못한 채 1965년 세상을 떠났다. 김삼웅은 이 결말을 ‘독부’라는 말의 완성으로 해석한다. 국민의 자유와 독립을 주장했던 지도자가 민심을 잃고 국민혁명에 의해 축출되어 외국에서 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4월혁명은 미국이 이승만을 버린 사건이 아니라 국민이 독재자를 몰아낸 민주혁명이다. 이승만의 퇴진은 그의 건국 공로를 잊은 배신이 아니라 스스로 파괴한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심판으로 제시된다.

  1. 책의 강점

『독부 이승만 평전』의 가장 큰 장점은 건국과 반공이라는 이유로 이승만 정권의 폭력과 민주주의 파괴를 가볍게 다루는 역사관에 강력히 맞선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수립과 한국전쟁기의 국가 생존이 중요하다고 해서 반민특위 해체, 민간인 학살, 부산 정치파동, 사사오입개헌, 조봉암 처형과 3·15 부정선거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김삼웅은 ‘공이 있으므로 과를 덮어야 한다’는 논리를 단호히 거부한다.

또한 이승만을 일관된 영웅이나 악인으로만 그리지 않고, 젊은 시절의 개혁적·계몽적 활동은 인정한다. 그가 처음부터 독재자였던 것이 아니라,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초기의 자유와 법치 원칙을 저버렸다는 것이 책의 핵심 비극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독립정신』과 함께 읽을 때 더욱 의미가 있다. 젊은 이승만이 주장한 국민주권, 법치와 자유의 원칙을 기준으로 대통령 이승만의 통치를 평가하면 그의 자기모순이 더욱 분명해진다.

  1. 책의 한계

그러나 이 책 역시 결론이 지나치게 선명하다. 저자는 이승만의 거의 모든 중요한 선택을 권력욕, 사대주의와 기회주의로 해석한다. 독립운동기의 외교활동, 남한 정부 수립, 한국전쟁기의 대미외교까지도 부정적인 동기의 결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의 정치적 행위에는 권력욕과 공적 목적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승만이 권력을 강하게 추구한 것은 분명하지만, 공산주의와 소련의 팽창을 실제 위협으로 인식했고 독립국가의 생존을 염려한 것도 사실이다. 모든 행동을 개인의 권력욕으로 환원하면 냉전과 분단이라는 구조적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책은 김구·김규식·여운형 등 이승만의 경쟁자들을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들의 통일정부 구상이 실제 미소대립과 북한의 권력구조 속에서 실현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하지 않는다.

‘분단정부’라는 표현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1948년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체를 통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의 성립 자체를 민족사적 잘못으로만 보면 자유선거와 제헌헌법, 의회정치의 역사적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이승만 우상화를 교정하는 데는 강력하지만, 이승만의 국가건설과 외교적 성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평전으로는 부족하다. 옹호론을 반박하려는 목적이 너무 강해 반대 방향의 단순화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1. 종합평가

『독부 이승만 평전』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는 한마디로 신성화하는 역사관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다. 김삼웅은 이승만의 생애를 독립운동, 국가건설과 반공의 업적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그가 파괴한 민주주의와 희생된 시민들의 역사도 함께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은 집권 이후다. 반민특위 해체, 경찰국가 형성, 정치적 경쟁자 제거, 위헌적 개헌, 언론과 야당 탄압, 부정선거는 단순히 시대가 혼란했기 때문에 발생한 실수가 아니다. 권력 연장을 위해 국가제도와 법을 의도적으로 훼손한 행위였다.

반면 독립운동기와 해방 직후의 이승만을 평가할 때에는 책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다른 연구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그의 외교독립론과 반공주의에는 개인적 야망뿐 아니라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도 들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미동맹 형성에서 그가 수행한 역할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승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김삼웅의 『독부 이승만 평전』과 로버트 올리버의 『이승만의 대미투쟁』 같은 옹호적 기록을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올리버의 책이 이승만의 국가생존 외교를 강조하면서 독재를 축소한다면, 김삼웅의 책은 독재와 국가폭력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국가건설과 외교적 성과를 축소한다.

두 시각 사이에서 내려야 할 결론은 이승만이 위대한 건국자이거나 권력욕만 가득한 악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동시에, 자신이 내세운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에 의해 축출된 권위주의 지도자였다.

한 문장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독부 이승만 평전』은 건국과 반공의 이름 아래 가려진 이승만의 권력욕,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파괴를 날카롭게 드러낸 중요한 비판적 평전이지만, 그의 외교독립운동과 국가건설의 성과까지 기회주의로 환원함으로써 이승만 우상화의 반대편에서 또 다른 단선적 평가에 빠지는 한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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