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독부 이승만 평전
김삼웅 (지은이)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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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분단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우남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엇갈려온 가운데 다시 그에 대한 우상화 또는 미화 ‘작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친일과 반공(친미)을 기반으로 기득권을 차지한 수구세력이 ‘박정희 망령’에 이어 ‘이승만 망령’을 불러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가치관을 전도시키려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물론이고 이승만도 독재자로서 민주주의와 국민 그리고 역사 앞에 씻지 못할 대죄를 지었다. 그런 역사의 죄인을 다시 불러내 ‘영웅’으로 미화시켜 현실을 호도하는 수구세력의 저의는 무엇인가. 이에 이승만의 공과功過를 엄정하게 논한 평전을 내어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
목차
여는 글_왜 ‘독재자 이승만’ 평전인가
01 젊은 날의 이승만, 출생과 성장
격동기에 태어나 서구사상의 세례를 받다
언론인 및 개혁정치가로 성장하다
02 일신의 영달을 위한 ‘겉치레’ 독립운동
초기 외교활동의 실패 그리고 미국 유학
짧은 귀향, 긴 미국 생활
일신의 영달에 기운 교포사회의 ‘문제아’ 이승만
03 분열을 부른 야망, 순진한 외교주의
탄핵당한 임시정부 대통령, 현실성 없는 외교독립론
태평양전쟁기의 외교활동과 독선에 따른 과오
04 자주독립민족통일을 외면한 권력의 화신
해방정국의 주역으로 등장, 분단정부 수립에 올인
권력에 눈멀어 ‘민족’을 외면한 ‘또 다른 반역’
05 실질 없는 허세만 일삼다가 전쟁을 부른 무능 대통령
반민주 폭압체제 구축하면서 민족민주세력 제거
백범의 암살 배후, ‘보이지 않는 손’ 이승만
6.25전쟁 초래, 피난 수도에서 민주주의 압살
06 상상을 초월한 세상의 모든 악행 그리고 파멸
기발한 꼼수 정치로 권력 연장
막장으로 치닫는 정권, 망령들어가는 독재자
정치보복의 극치 ‘조봉암 처형’의 내력
07 ‘검은머리 미국인’ 이승만의 슬픈 귀거래사歸去來死
파멸의 무덤을 판 늙은 독재자의 권력욕
혁명의 불길에 ‘껍데기’로 사그라진 독재자
에필로그_‘독부’ 이승만이 민족반역자·민주반역자인 증거
이승만 연보|주석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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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88 이승만의 “대일관은 현실주의적이고 대세 추종적인 것이었으며, 신념에 근거했다기보다는 개인적 이해와 결부된” 것이었다. 그의 일련의 언행을 살펴보면 반일, 배일, 독립운동 같은 의지나 개념을 찾기 어렵다. 그는 경술국치를 당해 많은 애국지사들이 해외 망명길에 나설 때 ‘금의환향’을 결행하고, 105인사건을 오히려 비판하면서 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심지어 미국 언론을 상대로 일제의 무단통치 상황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이 시기 이승만의 정체성은 ‘뼛속까지’는 몰라도 상당한 친일ㆍ친미의식으로 물들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접기
P. 254 이승만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직전인 6월 27일 새벽 2시에 국회에 통보도 하지 않고 대전으로 줄행랑을 쳤다.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국군의 총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국군은 적을 압록강까지 추격하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달성하고야 말 것입니다”라는 거짓 녹음 연설만 라디오 방송에 되풀이하도록 해놓고 시민들이야 죽든 말든 내버려둔 채 자신만 줄행랑을 놓은 것이다. 이게 어디 ‘국부’라는 자가 할 짓인가. 접기
P. 332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에 앞서 우리는 대통령의 비서들에게 우리의 질문사항을 미리 제출해야 했다. 우리는 그들 비서들이 승인한 항목에 대해서만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언젠가 한 기자가 질문 항목에서 지워진 질문 중의 하나를 대통령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다. 그 기자는 얼마 후 모종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신문사에서도 해고되었다.”
저자 및 역자소개
김삼웅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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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인물 중심으로 추적해 온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평전 작가. 2025년 제2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과 성균관대 교수를 거쳐 제8대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으며, 동학·천도교 사상과 3·1혁명, 독립운동사를 관통하며 민족사의 주체적 흐름을 복원하는 데 힘써 왔다.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 및 제주 4·3 사건, 민주화운동 관련 위원회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로서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함세웅 평전: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를 비롯해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안중근 평전》, 《장준하 평전》, 《이승만 평전》, 《박정희 평전》, 《김대중 평전》, 《노무현 평전》, 《신영복 평전》, 《3·1혁명과 임시정부》 등 평전 집필을 통해 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기록해왔다. 접기
최근작 : <이종일 평전 : 언론의 길을 묻다>,<할 말이 있다>,<만해 한용운 평전> … 총 19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만 사람의 경륜이 모두 틀려버린 ‘한 사람의 세상’
MB정권 · 새누리당을 비롯한 수구세력 그리고 이른바 ‘뉴라이트’를 필두로 한 어용 지식인 · 언론인 무리는 이승만을 ‘국부’ 곧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고, 1948년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왜곡한다. 이는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발상이자 헌법을 무시하고 역사와 진실을 모독하는 곡학아세다.
이는 저들이 ‘근대화의 아버지’로 찬양하는 박정희에 이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켜세워 저들의 구심으로 삼음으로써 친일 · 친미에 기반을 둔 기득권을 유지 · 강화하려는 속셈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승만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책들이 서점에 넘쳐나고 수구족벌신문과 어용방송은 이승만을 미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 조선일보 기자 이한우의 《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거대한 생애 이승만의 90년》, 조선일보 기자 출신 이도형의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로버트 올리버의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 안병훈의 《대통령 이승만》, 역시 조선일보 기자 출신 안보길의 《이승만 다시 보기》, 유영익 외 대학교수들이 공동집필한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사학자 이주영의 《이승만과 그의 시대》, 역시 사학자 남정옥의 《이승만 대통령과 6.25전쟁》 등 이승만을 미화하는 책들이 봇물을 이룬 가운데 조선일보 기자(출신)들의 맹활약이 눈에 띈다. 이에 저자는 왜곡을 바로잡고 음모를 분쇄하고자 《‘독부’ 이승만 평전》을 내놓았다. 저자는 심산 김창숙 선생의 말을 빌려 이승만을 ‘독부獨夫’로 규정하고 그의 시대를 “만 가지(사람) 경륜이 모두 틀려버린 ‘한 사람의 세상’”으로 평가한다.
“권력의 욕망은 인간 이성과 자제력을 넘어선다고 하지만, 이승만의 경우는 너무 지나쳤다. 그의 욕망 앞에 민주주의나 민생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찾을 수 없게 된” 현실에 직면하여 김창숙 선생은 “국가는 나날이 오그라들어가고 민족은 나날이 녹아들어갔도다. 남북은 어느 때나 평화로워지며 백성은 어느 때나 즐거워지려나. 아아 슬프도다, 한 사람의 세상 만 가지 경륜이 모두 틀려버렸다”고 한탄해마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시인 김수영은 4.19혁명 직후 “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 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이었느니, 썩은 놈의 사진이었느니, 아아 살인자의 사진이었느니”(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라며 치를 떨었을까.
그렇다고 이 평전이 이승만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기술한 것만은 아니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엄정하게 평하고자 이승만에 관한 거의 모든 저작과 자료를 섭렵하고 반영했다. 특히 젊은 날 이승만의 선구자적 반일 언론활동과 개혁적 정치활동은 높이 사고 있다. 그러나 임시정부 수립과 하와이 정착 무렵부터 발현된 그의 ‘독부’ 성향은 ‘독립 훼방꾼’ ‘통일자주독립국가 수립 훼방꾼’에 이어 끝내 ‘민주주의 반역자’로 귀결되고 말았으니, 역사의 불행이요, 민족의 불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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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전에도 부정적인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친일파등용등의 행위가 있었으니. 그런데 읽고나니 참 말이 안 나온다. 어떻게 이따위 인물이 있던것인지. 줄곳 어조가 비판적인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그의 행보가 죄다 그 따위인데
책수집가 2014-11-08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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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찬양하는 누구들은 명심해라... 이승만은 사람을 죽여도 굶겨서 죽인 놈이었단걸...
MAKWANGSOO 2016-02-24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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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주관적인 감정만 앞세우면 평전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희대의 학살자들을 다룬 평전도 이 정도로 분노와 증오로 일관하진 않는다. 비판하려거든 적개심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비판해야
jsprito64 2013-03-28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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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승만 평전을 쓰는 이유는 수구세력의 무분별한 망동이 걱정되서이다라고 글 쓰는 이유를 밝혔다.이승만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일본하야시공사와 친일 선교사의 도움을 받는 기회주의자였고 미국에 가서는 기독교에 빠져 교회운동이 독립운동보다 먼저였다.
산들바람 2014-05-04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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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민을 30만명이나 죽인 독재자가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이승만을 비판하는 책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NamGiKim 2016-08-29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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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남긴 어록 두 가지만 소개해 본다. ˝공산당이라면 부모 형제라도 용서하지 말고 처단해야 한다.˝, ˝내가 당나라 덕종이야? 난 사과 못해. 사과할려면 국회의원 당신들이나 해.˝
가람 2014-05-26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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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의 화신.. 아집의 상징.. 근데 외교의 달인? 당시 동북아의 정세와 미국의 이해가 맞아 어쩔수 없이 선택된,시대가 낳은 대통령인가? 버리고 간 한국의 본부인은 어떻게 살았을지...
sprenown 2017-07-03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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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승만과 같은 물건이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하지 못하도록 이 책을 반드시 읽고 이승만의 죄악에 치를 떨어야 한다.
choimos 2015-12-23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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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아니면 적이니까, 모두 죽여라!
구약성경 신명기 13장 6~9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여러분의 형제나 자녀나 사랑하는 아내나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이방 민족의 신들을 섬기자고 은근히 유혹하여도, 여러분은 그런 자를 사정없이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1950년 9월 22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공산당이었다면 부모 형제라도 용서하지 말고 처단해야 할 것이다."
시대순으로 본다면 저 구약성경이 쓰여진 때와 이승만의 발언은 약 3천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지문에 담긴 핵심적인 뜻은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타자에 대한 지독한 불관용과 배타성, 그리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니까, 모두 죽여라!"는 극단적인 잔인함과 인명경시.
구약성경과 이승만이 무슨 상관이냐고? 당연히 상관이 있다.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종교가 기독교고, 이승만은 평생동안 독실한 기독교인(개신교인)이었거든. 그리고 지금 이승만을 국부라고 추앙하려 하는 뉴라이트 구성 인사들도 대부분 개신교인이거나, 아니면 개신교 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구약성경의 저 구절을 신의 가르침이라고 믿은 유대인들은 이방 신을 섬기는 다른 부족들에게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고, 유대인들처럼 구약에 담긴 배타성과 폭력성을 숭배했던 이승만도 평생에 걸쳐 자신을 편들지 않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지독한 보복과 폭력으로 일관했으니까.
이승만의 배타성과 폭력성은 그의 일생에 걸쳐 일관되게 반복된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인 독립운동가 시절에도, 참여하는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마다 다음과 같은 일을 저질렀다.
1. 그가 최고 지도자가 되거나
2. 아니면 그 독립운동 단체는 내분으로 갈기갈기 와해되던가.
쉽게 말해 이승만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대상은 폭력으로 보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그가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신생 독립 국가인 한국의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승만은 결코 좌익 계열 인사만 탄압한 것이 아니었다. 반공 성향의 우익 인사들도 이승만에게 반대하거나 밉보이면 결코 무사하지 못했다. 좌익 인사들을 색출해 구속시키는 일로 이승만의 총애를 받았던 검사인 선우종원도 이승만의 정적인 장면의 비서실장을 지냈다고 황당하게도 공산당으로 몰려, 일본으로 밀항해 8년 동안 숨어 살아야 했다. 엄연한 우익 인사인 조병옥은 이승만이 추진한 반공 포로 석방 작업에 반대하자, 심야에 쇠뭉치로 머리를 맞고 실신하는 테러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조병옥은 기억력을 거의 상실해 폐인이 될 지경에 이르렀고, 육군형무소에 갇혀야 했다. 덧붙여 이승만이 이정재 같은 정치 깡패들을 총애하고 그들이 마음껏 서울 한복판에서 설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다. 이처럼 이승만은 자신의 눈에 거슬리면 고위 정치인이라고 해도, 서슴치 않고 테러를 자행했던 것이다. 오늘날 이승만을 숭배하는 뉴라이트들은 이승만이야말로 정치 깡패를 동원한 테러를 즐겼다는 사실에 대해선 뭐라고 말할까.
그렇다면 이런 이승만을 한국인들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숭상했을까? 그렇지 않다. 1950년 5월 30일에 실시된 총선거에서 이승만이 소속된 여당은 완전히 참패를 당했다. 전체 국회의원 당선자들 중 60%가 무소속이었고, 전체 당선자의 80%가 반 이승만 성향의 중도 인사들이었다. 1948년 8월 15일에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출범한지 고작 2년 만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미 진작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승만으로부터 등을 돌렸던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승만을 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눈은 곱지 않았다. 1954년 10월 11일 한국일보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무려 78.8%가 이승만이 연임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 여론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는 더 이상 이승만 당신이 대통령 하는 것을 원치 않으니, 대통령 더 해볼 생각 말고 임기 끝나면 바로 물러가라고. 만약 뉴라이트가 말하는 대로 이승만이 훌륭한 지도자였거나 혹은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면, 왜 78.8%의 반대가 나왔을까? 오히려 이승만이 대통령 한 번 더 해달라고 찬성을 해야 할텐데.
이처럼 이승만은 민심을 얻지 못했고, 그래서 지지 기반이 불안정했다. 흔히 이승만은 강력한 독재자라고 여겨지지만, 그는 이후에 들어선 박정희나 전두환과는 전혀 달랐다. 박정희나 전두환이 비교적 안정적인 집권 기간을 보냈던 것에 반해, 이승만은 그렇지 못했다. 한 예로 박정희와 전두환은 집권 기간 도중, 공권력을 동원해 조폭이나 깡패들을 철저하게 소탕해 버렸다. 하지만 이승만은 그렇지 못했다. 소탕은커녕 오히려 조폭과 깡패들을 지원하고 옹호하면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개 깡패인 이정재가 이승만이 속한 여당의 지원을 받고 국회의원이 되어 보겠다며 선거에 출마할 정도였으니까.
무엇이 이런 차이를 불렀을까? 우선 이승만은 오랫동안 조선을 떠나 미국에 살아서, 국내에 인맥이나 세력 기반이 없었다. 이승만이 국내의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친일파 처벌 기관인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친일파들과 손잡고 그들을 기용해 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권력 기반이 약하니, 당시 국내에서 많은 부와 권력을 지닌 친일파의 힘을 빌어서, 그들의 지지를 받고 권력을 다지겠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또한 박정희나 전두환은 군부를 확실히 장악했고, 그래서 깡패들을 소탕할 수 있었지만 이승만은 그조차도 못했다. 이승만은 군인들에 대한 처우를 형편없이 해주었다. 군인들이 월급이 너무 적다며 올려달라고 해도, 군인은 국가에 봉사하는 직업이라며 거부했다. 그래서 수많은 군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일반 병사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고위 장교들도 생활고에 찌들어 봉급만 받아서는 가족들을 굶기기에 딱 좋았다.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제대한 상이군인들도 국가로부터 푸대접을 받았고, 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그로 인해 한국 군부에는 자신들을 냉대하는 이승만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가득했다. 박정희가 주동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 배경에도 바로 이런 요소가 깔려 있었다. 아, 참고로 박정희는 원래 장면의 민주당 정권이 아니라,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을 몰아내려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박정희가 이승만을 뭐라고 평가했는지 보자.
"해방 직후 이 땅에 무려 수십여 개나 되는 정당이 비 내린 뒤에 돋아나는 참대 순처럼 어지럽게 돋아나 결국 겨레를 갈기갈기 찢어나누고 파당 의식만 키워 놓은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지난날 이승만 씨가 꾸며 놓았던 자유당이야말로 자기 파派만의 수지타산을 제일로 치는 정당의 본보기였으며, 세계 선거 역사 가운데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부정과 불법의 흉계를 꾸미고 이를 국민에게 강요했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국민의 기본 권리가 나라법에 규정되긴 했지만 그것은 한갓 종이 위에 적어놓은 글귀에 지나지 않았을 뿐, 자유당 정부는 그것을 지키고 실현시키기는커녕 도리어 그러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일쑤였다. 이리하여 정부에 의해서 자유를 짓밟히고 시달려게 된 온 국민은 정부의 억눌림에서부터 다시 자유를 되찾으려는 자유 투쟁의 운동을 벌였고 그것이 이른 바 자유당 정치하의 우리 형편이었다.
남한에서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12년 동안 기간 산업의 토대가 되는 전력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짓지 못하는 사치스런 소비경제로 말미암아 농촌은 메말라 갔으며, 메마른 농촌의 피와 살을 깎아서 도시만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썩고 그릇된 일만이 극심해져 갔다.
자유당 독재 12년에 농촌의 경제는 파탄되고 관기는 문란해졌으며, 부정축재자들은 건전한 국가 경제의 성장은 제쳐 놓고, 그릇되고 썩어빠지기만 했다. 해방 16년에, 남한에서는 이승만 노인의 어두운 독재와 썩어빠진 자유당과 관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해방 귀족'들이 날뛰어 겨레의 장래는 어려워만 갔던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배 형태인 카리스마적인 1인 정치는 이승만 독재로 끝났다."
- 박정희가 1962년에 발표한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에서 발췌.
이승만 시대를 직접 온 몸으로 경험하고 산 장본인, 그것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직접 남긴 글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승만에게 불만을 품은 군부는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분노한 국민들이 4.19를 일으키자, 이승만으로부터 발포 명령을 받고도 끝내 이를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결코 국민들의 생명을 아껴서가 아니었다. 한국 전쟁 이전이나 와중에 국군이 얼마나 잔혹하게 무수한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는데. 다만, 그동안 자신들을 홀대해온 이승만이 밉고 이제 곧 망할 운명의 이승만에 따라봤자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였으리라.
물론 이승만 본인도 이런 군부의 속사정을 잘 알았고, 불만을 품은 그들이 행여 자신을 몰아내려 쿠데타를 꾸미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미 쿠데타 준비는 진행 중이었고, 만약 4.19가 조금만 더 늦게 일어났다면 그 전에 쿠데타가 일어나 이승만은 틀림없이 축출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이정재 같은 정치깡패들을 총애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독부 이승만>이다. 독부는 외로운 신세가 된 권력자를 뜻하는데, 그처럼 이승만도 결국에는 모두로부터 버림과 외면을 받아, 영락없는 독부가 되고 말았다. 국민들이 반발하고 군부도 등을 돌렸으며, 그의 후원자이던 미국조차 그의 오만과 독선과 무능에 질려 더 이상 지켜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독부가 된 이승만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권력을 모두 잃고서, 하와이로 달아나 죽을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해의 민심을 잃어 독부가 된 자의 말로였다. 그나마 아프리카 나라들에서처럼, 쿠데타군에게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끔찍하게 죽어가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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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2014-05-26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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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부 이승만 평전 - 김삼웅
살다 살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은 처음이다. 읽다가 화가 나서 책을 덮고, 웹툰이나 만화책을 보았다. 그렇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이승만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철저히 이승만을 옹호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빙의해서 읽었다. 그래도 참, 해도해도 너무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굉장히 디테일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이승만의 행적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독부' 이승만, 이 말은 자유당 말기 심산 김창숙 선생이 칭한 것이라고 한다. 독부란, 민심을 잃어서 남의 도움을 받을 곳이 없게 된 외로운 남자라는 뜻이다. 독부, 독재자, 하지만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그들 나름의 이유를 대면서 항변한다. 이승만의 행적을 통해 사람들이 각자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의 모든 행적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가 생각할 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행적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1. 1908년 스티븐슨을 처단한 장인환 의사의 통역 의뢰를 받고 "예수인 신분으로 살인재판을 통역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2. 105인 사건으로 많은 애국지사가 시련을 겪었을 때 미국인 친일 목사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900명이 구속되고, 105명이 기소된 사건이고 그 중 미국인 24명이 구속되었다.
3. 1919년 2월 정한경과 "위임통치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4.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직과 상하이임시정부의 국무총리직을 '대통령'으로 행세했다.
5. 1922년 상하이임시정부 의정원은 이승만의 독선적 행위과 독립자금의 사적 유용 등의 5개항 사유를 들어 대통령직에서 탄핵했다. 또 임정은 1925년 이승만이 위원장으로 있는 구미위원부를 폐지했다.
6. 하와이 체류 중에 한인사회단체를 자기중심체제로 바꿔 교민사회를 분열시켰다.
7. 1946년 정읍 발언으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8. 반민특위를 와해시키고, 친일파를 중용하였다.
9. 제주 4.3 사건 때 관련 법률도 없는 게엄령을 선포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 후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정적 제거와 언론 탄압에 활용했다.
10. 북진통일을 주장했지만, 북한의 남침에 전쟁이 발발하자 후방으로 이동하여 서울시민을 속이고, 죄 없는 양민들을 용공분자,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다. 이승만 정부 아래 자행되었던 많은 양민학살사건.
11. 한국전쟁 이후 제대로된 경제 정책이 없어 국민들은 경제난에 허덕이는데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면서 반공ㆍ독재체제를 강화하며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몰두했다. 그 것이 3.15 부정선거를 통해 극에 달했고, 결국 4.19혁명이 발생했다. 4.19 당시 학생ㆍ시민들에게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승만의 공적으로 여겨지는 외교독립론이 있다. 하지만 궁금한 점은 그가 외교독립론을 주장했지만,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외교적 성과가 있었다면, 왜 미국은 한국임정을 승인하지 않은걸까? 한국임정이 승인되지 않은 점이 오롯이 이승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의사소통도 되는 그가 했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이승만은 외교를 통해 독립하고자 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현재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일제강점기에 사는 사람이라고 상상을 해보면, 독립을 향한 방법에 있어 무장독립투쟁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버리면서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비판했다고 해서 그 것을 꼭 친일과 연결시킬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승만이 보였던 언행(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 국내 학생들에게 반일운동보다 해외유학 권장 등)은 그가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보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의로운 일, 공익보다 권력 욕심이 더 앞섰던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정읍 발언이나 1948년 5.10 총선거 때 상대 후보인 최능진의 입후보를 방해하고 무투표로 당선되었던 점을 보면 분명 권력욕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 때 가슴이 아팠던 역사가 있다. 상대 후보였던 최능진은 독립운동가 출신인데, 한국전쟁 때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쓰고 총살형을 당했다. 원통한 것은 최능진을 총살한 사람이 일본 관동군 출신 김창룡이다. 최능진 사건은 재심 소송을 통해 지난달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독립운동가가 독립 후에 그릇된 공권력 행사로 생명을 잃었다. 이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어떻게 보면 이승만은 권력욕이 있는 정치인이었고, 또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감각도 뛰어났던 것 같다. 그의 친일적인 언행은 하와이에 일본인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장인환 의사의 통역 거부한 것도 미국 주류사회의 여론이 그에게는 중요했을 것이다. (예수인의 신분으로 살인재판을 통역할 수 없다라...... 법에 근거하지 않고 행사했던 계엄령이나 4.19혁명 때 발포, 이승만 정부 하에 있었던 국민방위군 사건,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문경양민학살사건, 제주 4.3 사건, 여순 사건 등에서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은 무엇일까?) 해방 이후 반소, 반공, 친미를 주장하며 미군부와 긴밀하게 지냈던 점, 미군용기를 타고 귀국했던 점 등은 그의 정치감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의 이런 정치감각이 개인의 욕심보다 국가를 위해 쓰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있는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4.19민주이념이란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시민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승만은 그 부당한 권력의 핵심이었던 독재자이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갔다. 시민들은 그의 동상을 끌어내렸다. 그런데 다시 그의 동상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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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2018-06-10 공감(2) 댓글(0)
김삼웅의 <독부 이승만 평전>(2012년 두레)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독부 이승만 평전>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생애와 정치적 궤적을 비판적 시각에서 집대성한 인물 평전이다. 저자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은 이승만을 독재자, 나아가 <독부(獨夫: 외딴 사나이, 즉 민심을 잃고 홀로 남겨진 독재자)>로 규정하며, 그의 집권 과정과 권력 행사 방식을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관점에서 가혹하게 평가한다.
책은 이승만의 출생과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부터 시작하여, 미주 독립운동 시기, 해방 후 정국에서의 권력 투쟁,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 그리고 4·19 혁명으로 인한 하야와 하와이 망명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반을 시기별로 상찰한다.
저자가 제기하는 핵심 비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임시정부 시절 탄핵과 미주 독립운동 단체 내에서의 분열에서 드러나듯, 그의 독선적·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독립운동 역량을 분열시켰다는 점이다. 둘째, 해방 후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친일파 세력을 정권의 기반으로 포섭하고, 제주 4·3 사건과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 민간인 학살과 정치적 반대파 제거를 방조·주도했다는 점이다. 셋째,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로 이어지는 장기 집권욕이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기틀을 유린했다는 점이다.
평론
<독부 이승만 평전>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인 이승만에 대한 진보·비판적 사학계의 시각을 정면으로 반영한 선명한 평론서이다.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이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칭송하는 보수 진영의 시각에 맞서, 그의 집권이 남긴 민주주의의 상흔과 역사적 과오를 1차 사료와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매섭게 추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권력의 형성 과정과 통치 방식에 숨겨진 그늘을 집요하게 파헤쳤다는 데 있다. 특히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서 발생했던 갈등과 주도권 싸움, 그리고 해방 후 반민특위 해체와 친일 경찰의 재용용 등 민족사적 정통성을 훼손한 지점들을 세밀하게 검증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국가 수립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민주적 절차의 파괴와 인권 탄압의 실상을 가감 없이 고발한다.
또한, 이승만의 외교술을 <용미(用美)>나 <자주적 외교>로 평가하는 기존의 긍정적 담론에 대해, 그것이 실상은 자신의 정권 유지와 미국 의존적 냉전 대결 구도를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대립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상적 대척점을 제공한다.
다만, 이 저작은 평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인물의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다루기보다는 <과(過)>를 입증하는 데 집중된 정치적·사상적 비판서의 성격이 강하다. 6·21 한국전쟁 당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한 안보틀 구축이나, 농지개혁을 통한 봉건적 토지 소유 구조의 해체 등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주요 정책적 성과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유예하거나 축소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저자의 강한 시각이 개입되어 있어 객관적 인물 평가라기보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진 민족주의적 비판 담론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부 이승만 평전>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한국 현대사에 남긴 중대한 영향력과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시련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렬한 사료이다. 이승만의 저작들과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서들과 비교하여 읽을 때, 한반도 근현대사의 복잡한 굴곡과 지도자 한 사람이 국가에 미친 빛과 그림자를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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