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9

청일전쟁의 시작, 풍도해전과 성환전투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2회 - YouTube

청일전쟁의 시작, 풍도해전과 성환전투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2회 - YouTube

청일전쟁의 시작, 풍도해전과 성환전투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32회
법률방송
29,433 views  Jul 23, 2025  #한국역사 #함재봉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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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동학 봉기를 구실로 조선에 들어온 청과 일본군이 추가 병력을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청일전쟁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청일전쟁의 첫 번째 해전인 풍도해전, 또 첫 육상 전투인 성환전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또 전쟁을 맞이하는 청의 북양함대와 일본 연합함대는 어떤 차이가 있었고, 두 나라 군사력의 차이는 어땠는지 다양한 사료와 함 교수의 해석을 통해 동아시아 최초의 근대전쟁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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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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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섬재봉입니다. 오늘은 이제 드디어 청일 전쟁의 첫
번째 어 첫 전투 어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 오토리 공사가 일본
군 군사를 이끌고 경복궁에 침입을 해서 대원군을 모시고 가서 고정으로
하여금 대원군한테 전권을 의시키고 곧바로 군국 김무철를 만들어서 이제
무서운 기세로 사보 경장 어 개혁을 근데 개혁을 추진을 합니다. 동시에
거의 같은 시간에 어 본격적으로 이제 중국하고 전쟁이 어 시작이 됩니다.
기억하시겠지만이 그때 당시에 아산에는 이미 중국 배들이 들어와 있었고
구남들이 들어와 있었고 전주 어 성 전투 때문에 청군이 진주했었던
상황입니다. 역시 조선에 진주한 서울에 진주했던 일본군하고 천군간에
그리고 바다에서 서로가 어 군대를 수송하고 있던 1분하고 천군 간의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첫 번째 해상 해상 전투가 어 풍도
회전이고 그리고 육상에서 벌어진 첫 번째 전투가 성환 전투입니다.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미흥장이 1894년 7월 22일 날 드디어
추가로 병력을 조선에 파병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동학란이 일어났을 때
그때에 천군이 파병을 하죠. 그래서 섭시초 장군이라는 사람이 군대를
이끌고 아산만에 들어가서 그리고 전주성에 입성을 합니다. 그래서
동학을 어 동학권을 이제 그 선멸을 하고 그리고 전주성을 회복을 하고
그러면서 그 부근에 계속해서 남아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때 이제
일본군이 아예 한양으로 진주를 해 버려서 오토리가 군대를 이끌고 이제
한양을 점거를 하고 그리고 이제 어 경복까지 점령을 하고 대원군을 모셔
와서 이제 개혁을 시작하지 않습니까? 자, 그러면 지금 이미 조선에 남쪽에는 어 천군이 와 있는 거고
한양에는 일본군이 진주를 해 있는 상태입니다. 자, 그러니까
정작 중국이 싸울 수 있는 군대를 갖고 있는게 이홍장의 북양군하고
북양한 데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홍장은 지금 상황에서 일본하고 전쟁하는 것이
버겁다라는 걸 정확히 알죠. 그렇지만 옆에서들은 계속해서 압력을 넣는 거죠. 전쟁을 해야 된다. 더 많은
군사를 보내서 일본을 격태시켜서 해 격대시켜야 된다라는 사람들의 논리는 그거죠. 아 조선이 우리 속방
아니냐?이 상황에서 지금 일본군이 저렇게 진주해서 마음대로 일본식
개혁을 그냥 추진하는 거를 이게 내버려든다라는게 어떻게 우리가 종주국으로서 할 수 내버려둘 수 있는
일이냐? 그러면서 빨리 가서이 일을 처리하라. 그러려면 군대를 더 보내라고 이제 계속해서 이영장한테
압력을 넣는 거고. 그리고 이제 섭취처 본인도 어 일본군이 진주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현재 전주에
와 있는 병력 갖고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거죠. 그래서 원군을 또 이용한테 요청을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장이 7월 22일 날 추가 파병을 하게 되는 거죠. 결정을
하죠. 그러니까 기억하시겠지만 7월 23일 바로 다음날 옷돌리가 군대를
가지고대 저 군를 쳐들어가는 거고 24일 날 전권을 대원군한테 고정에
이임을 하는 거고 그러면서 이제 개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 7월 22일입니다. 어토리가 궁에
쳐들어가기 바로 전날 추가 파병을 이장이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2,500명의 병력을 아산에다 추가로 투입을 하기로 하면서 2,500명의
병력을 여덟척에 수송선에 태워서 그리고 그 부양함대의 자랑인 순양함
재원 그다음에 그 포함을
그 수송선들을 호위하도록 해서 텐진 닦고 그 포항에서 항해서 추량을
합니다. 그래서 그중에 두 척은 7월 23일 날 밤 아산만에 도착을
합니다. 일본군에서는이 소식을 듣고서 자 그러면 어떻게 싸워야 되느냐?
당연한 거죠. 수성선들이 조선에 도착하기 전에 바다에서 이거를
막아야 되는 거죠. 수성선이라는 거는 사실은 별로 자기 자신을 방어할 적도
없고 물론 호회함들이 가는 거지만은 중간에서 수송선을 차단을 해서 거기서
격을 시키는 것이 훨씬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당연한 방법이니까. 자, 그러면이
수성선들이 오기 전 소선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중간에 차단을 한다라고
해서 이제 해군을 어 보냅니다. 그래서 일본의 연합함대 이때 처음으로
일본의 연합함대가 만들어집니다. 그 연합함대라는게 이제 2차대전 때 우리가 알고는 야마또 이런 사람들이
그 지휘하게 돼서 진주만 습격을 하고 뭐 미드웨이 회전을 버리고 하는 바로 그 연합함대입니다. 그 연합대가 이때
청일 전쟁 때 처음으로 이제 만들어지는 거죠. 그리고 연합대의 초대 사령관이 이또 스케유키라는 저
제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또가 15척에 전함하고 일곱청에 어래정을
이끌고 사세보를 출발해서 군산으로 갑니다. 군산은요 아직 그냥
어촌이었고 아무것도 없었던니다. 제대로 된 어 한구라고 볼 수도 없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서해안을 서해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군산이 결정적이다. 재물포만 하더라도 인천만 하더라도 너무 중국하고 가깝고
그리고 인천은 아예 조선이 자꾸 안 열겠다고 하는 상황이었고 인천에는 다른 나라 배들도가 있고 이러니까는
안 되는데 군사는 아주 최적의 모든
한구로서 최적의 입질를 다 갖고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를 자기네 어
임시 본부로 정합니다. 그리고 해저 케이블을 깔아서 군산하고 아예
케이블을 통해서 전부 전신까지도 자기네 한대랑 연결을 시켜 놓습니다.
그래서 군산이 이때부터 사실은 크기 시작을 하는 거죠. 청일 전쟁에서
일본의 연합함대의 조선 본부가 되는게 바로 군산입니다. 그리고 이제 군산을
어 기지로 삼아서 일본 배들이 이제 군남들이 나가면서 어떻게서든지
텐진에서 건너오는 중국 수성선들, 중국 군남들을 이제 차단을 막으려고
수세에 이제 나서는 겁니다. 그래서 7월 25일 새벽 4시 반쯤에
연합함대의 한 부분이죠. 그러니까 유격대라고 그 사람들은 불렀는데 빠른 기동타격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 기동타격대 제1대에 순양함이 난이와 요시노 아키스시마라는
세척의 순양함이 있었는데이 세 척의 순양함이 군산을 떠나서 새벽 4시 반
7월 25일 새벽 4시 반에 지금도 있습니다. 상공경도 영어로는 베이커 아일랜드인데 거기에 도착을 합니다.
근데 거기에서 다른 그 같은 그 그 함대에 있었던 야에마와 오시마라는
배를 거기서 만나기로 했었는데 안 보여서 일단
최종 자기네가 가기로 했던 풍도까지 따로 그럼 가자. 먼저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니까 하면서 이제 상공경도에서 풍도로 움직여 가기 시작을 합니다.
이시반내 장공경도에서 출발을 해서 한 두시간쯤 항해를 해서 천남 쪽을
향해서 풍도로 거의 가고 있는데 그때에 그때에이 츠보이의 그 그
제1인류대 어 기동타격대가 그 수송선을 호위하고 있던 청양함
북양함대의 수양함 재원하고 어래정 광어를 발견을 합니다. 그래서 그때
7시 52분부터 일본군이이 재원과 광어를 향해서 사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당대 당시로서는 최신 배들입니다. 청측의 배도 그랬고
일본측의 배들도 그랬습니다. 이런 배들을 이미 북양함대하고 일본에 어
연합하면 되는 그런 배들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참 조선에는 조선 해군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배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튼 자 일본이 먼저 재원하고 광어를 발견하고
수송선을 발견하고 사격을 시작을 합니다. 어 재원이 곧바로 어 그
명중 탈을 맞고서 중간 부분에서 이제 화제가 어 발생하랍니다. 그래서
그근데 빨리 수병들이 이제 그거를 수리를 하고서는 탈출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 반면에
어래정 광을 포탄에 맞아서 직격탄을 맞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함장이었던 임국상이 배를 그 영어로 비칭한다 그러죠. 일부러 무에다가
이제 배를 갖다가 올려 버리는 거죠. 그래서 무태 비칭을 하도록 해서
올리고 근데 그 과정에서 이제 배가 폭발을 해서 탈출하지 못한 천국 어
수병 37명이 전사를 하고 그 함장하고 71명의 수병들은 거기에
그냥 있으면서 7월 말이 돼서야 한 일주일 후에야 지나가던 영국 전함
아처하고 포포이스 포에 의해서 구출이 돼서 이제 슬프로 귀국을 하게
됩니다. 아무튼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청의 전함 두 척이 다 하나는
맞고서 도망치기 시작했고 하나는 아예 어 폭발이 돼 버렸습니다. 제1격대가
광을를 격침시킨데 15분도 안 걸렸다. 그리고 이제 도망치기 시작한
재원 순양함 재원을 이제 쫓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8시 10분쯤 됐을 때에 요시노와 난니와 일본 그
두 순양함이 재원을 어 딱 따라잡습니다. 어 재원의 방백겸
어 함장 함장이 항복을 해야 되겠다 하고 항복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항복을 딱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때에 요신노 일본 수양 요신호의 척후병들이
탑에 올라가서 마운경을 보고 있다가 어 배 두 척이 더 오고 오고 있습니다. 연기를 내뿜고 배 두 척이
더 옵니다. 그래서 이게 뭐냐 그래서 무슨 배냐 그랬더니 그 배가 뭐냐면
여덟척의 수송선의 그 경사들을 지금 추가로 파병한 거 아닙니까? 이장이
그중에 수성선 두 척을 발견을 거예요. 그죠? 지금 수성선 호위하던
배들을 두척을 먼저 발견을 해서 이미 전투를 벌려서 하나는 격짐시켜 버리고 하나는 지금 쫓아서 곧 항복을 받을
때가 됐는데 그때 이제 수성선이 딱 오는 거죠. 보니까는 그게 바로 이제
그 까오포하고 저 호위하고 있던 조강호라는 이제 두 배 배가 발견이 어 된 겁니다.
지금이 제16억대 연합함대 일본 연합한대 제1유 6유격대 임무은 뭡니까? 그쪽 전함들을 하고 싸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뭡니까? 추가로 파병한 병력이 조선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하는게 주된 임무 아닙니까? 전남의 항복을 받는게 중요한게이 수상수 수성선을 막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곧바로 어 그 수송손을 그 차단하저 하러 이제 가는 겁니다. 자
그리 그래 갖고 이제 그 까우숑이라는 수송선을 향해서 이제이 일본 배들이
가는데 그 까오 호는 전혀 이게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그냥 계속해서 이제
아산으로 어 그 가는 겁니다. 그랬는데 참
그 직전에 이미이 도망치고 있던 재원호하고
여전히 아산으로 가고 있는 까오숑호가 이렇게 서로 만나요. 왜냐면 재원호는
지금 중국으로 도망가고 있는 거고 저쪽에서는 까오시용호는 지금 중국에서 텐진에서 지금 아산으로 가고 있는
거니까 당연히 서로가 이렇게 지나치는데 재원호의 함장이 그러면 까오숑한테 야 지금 우리 전투가
벌어져 갖고 일본이 도서 저기서 기다리고 있는데 선수를 돌리든지 어떻게 준비를 하라든지 했어야 되는데
아무 말 안 하고 도망가는데 바빠서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니까는 까오로는
아 그냥 뭐 우리 배가 지나가 가는 거보다 생각하고 전혀 모른 채 아산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드디어 이제 난 난이와 일본 배들이 접근을 하니까
까오에서는 자기네 수성 자기네 호위하고 있는 그
저 베드리겠건 이제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데 결국 일본 순양함 세 척이 이제
까우호의 호를 외워 쌉니다. 그랬는데 그 까우시용호가
실고 가는 병력이 한 천명 정도의 병력을 싣고 가지만
실제로 그 배 자체는 청나라 거가 아니었습니다. 청은 사실 그런 수성이 없어 가지고
자슨 홍콩에 있는 영국계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해운 회사의 배를 지금
빌려서 거기에다가 자기네 병력을 실어 갖고 오는 거기 때문에 그 배의 선장
까우호의 선장도 라이더 즈워이라는 영국 사람입니다.
영국 사람이니까 아 이게 청배가 아니라 일본 배구나 하는데도 전혀이
사람은 놀라질 않는 거죠. 그 영국 배인데다가 그리고 뭐 전투를 지금 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일단 씁니다.
여신노 난이와 이런 일본 배들이 다 포위를 하면서 난이와가 공포 두 발을
발사하면서 정풍원행 그러니까 he to 배를 멈춰라. 천천히 멈춰라.
속도를 낮추고 엔진을 꺼. 그래서 그렇게 그대로 말을 당연히 듣죠.
군남들이 와 세척이 와서. 그러니까 연구 감장은 그냥 세우고 그래. 그리고 뭐 승선을 해야 되겠다.
그러니까 승선하라. 그래서 일본군이 이제 까우호에 올라가서 보니까 승무원
예수 네명 청군 1100명 장비 보급품 그리고 거기에 청군의
독일군 고문인 포병장 한네켄소령이란 사람도 승선을 해 있었습니다. 외국
사람들도 여러 명이 승선을 해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이용장이라는 사람이
북양함대 운용을 하면서 항상 외국인 고문들 굉장히 많이 갖다 쓰죠. 나중에 그 루항을
거대한 현대식 막강한 요새로 만드는데 그런
것도 전부 다 독일 사람들, 외국 사람들을 불러서 호병 장교들 그
공병대를 이용을 해서 그걸 다 짓고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때에 그
청병을 추가로 아산에 파견을 할 때에도 이영장이 그렇겠죠. 자기
고문들도 보내고 그래서 혹시 일본하고 뭐가 되면 전투가 일어나가 이러면 참관도 하고 그러도록 이제 같이
보냈던 거죠. 자, 그래서 일본군이 승선을 해서 그걸 확인을 합니다. 그
확인을 하는 역할을 한 배가 이제 난이와라는 수양함인데 그 난이와라는
수양함에 당시 함장이 도거헤이하치로입니다.
도거해하치로가 누굽니까?이 이 사람이 나중에 러일 전쟁 때 스시마 헤어벳
전투를 통해서 러시아의 발티캄들을 괴멸시키는
일본 최고의 전쟁 영웅이 되는 바로 그 도거해야로가 아직은 젊어서 지금
난이와의 순양함에 함장을 하고 있었습니다.이 도고가 까우를 잡고서
승선을 시켜서 이제 확인을 하고 그다음에 그러면 모든 거 여기 있는 거 다 배를 압류한다. 이렇게 이제
그쪽에다가 그 까오퍼에다가 통보를 합니다. 그랬더니
걸스워이 함장이야 당연히 한복을 하죠. 같이 그 배를 움직이고 있었던
모든 서양 선언들이고이 사람들이야 당연히 지금 순양함 세척에 와서 대포를 공포를 쏘면서 지금 와서
당연히 전쟁 중에 적군이니까 그걸 압수를 하겠다 하니까 뭐 자기네야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랬는데 이때에 배에 승선하고 있던 1100명의 천군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걸즈워이랑 서양 선원들을 잡고서는 우리 절대 항복
못한다. 이렇게 돼. 배를 못 넘기겠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계속해서 일본 측하고
그쪽 걸즈워티하고 어떻게든지 청병들을 설득을 해서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거냐? 아무 무장을 하지 않은 수송선을 타고 앉아서 지금 세척에
순양함하고 어떤 뭐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아무리 설득해도 설득이 안 되는 거. 그래서 나중에는 야 그러면
우리 서양 선원들만이도 좀 내려 달라고 그것도 그것도 거부를 하는
그래서 결국은 협상이 지의한 협상이 몇 시간째 이제 되는 겁니다. 그시
그때에 도고 해야치로 난이와의 함장이 국제법 책들을 다 섞고 보도록
합니다. 그러면서이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이 배를 격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를 그거를 국제법으로 확인을 하고는 결국은 해도 된다라고 해석을
하고는 배를 격침시키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오후 1시
10분쯤이 돼서 150 앞에 떨어져 있는 수송선 수송선 까우을 향해서
난이와 어를 발사를 해 버렸고 있고 껄스워티 함장하고 한네켄
소령하고 다 타고 있는데 그냥 어래를 발살해 버려서 격이 됩니다. 까우중이
격이 되기 시작하니까 뭐 당연히 서양 승무원들은 얼릉 뛰어내려서 수영을
합니다. 서양의 수병들은 수영을 당연히 하죠. 수병 중국
군인들은 전혀 수영할 줄 모다로 떠 뛰어들고 구명정이 있어서 구명장이
올라타려 그러는데 올라타려 그러면 먼저 타 있던 청군들이 다음에 타려는
청군들을 향해서 총을 쏘기 시작을 하고 그래서 아비 교환이 되고 있는데 난이와는
거기다 되고 계속해서 폭격 그리고 심지어는 바다에 빠진 청병들을
향해서도 기관총 공수 그러면서 완전히 괴멸을 시킵니다.
그래서 1시 47분이 되면은 이제 어래를 처음 발사한지 한 30몇 분
만에 까우시형이 완전히 침몰을 하고 그리고 난이와도 이제 사격을 중지하고
일본군은 유럽인들만 구조를 합니다. 그 까우에서 구조한 사람은 걸즈워디
함장하고 부함장 그리고 필리핀 카판장 한 사람 정도 독일 고문 한케는
배에서 뛰어내려서 진짜 기적적으로 모든 기총 사격을 다 피해 가지고
4시간 동안 해엄을 쳐서 1.5헬이 떨어져 있는 섬에 도달을 해서 합니다. 간신이 거기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그 100명의 천군 병사 중에서 147명도 거기 그
섬까지 한해켄이 같은 섬까지 간신히 헤엄을 쳐서 도착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나중에 영 독일하고 영국 전환들한테 구출이 돼서 엔타이로 이제 귀환을
하게 되는 거고요. 44명의 병사들은 침몰한 까우에
다채 매달려 있다가 나중에 그 프랑스 군남이 지나가다가 구출을 해 줍니다.
영국 선장하고 필리핀 가판장은 순양함으로 일본 그
옮겨졌다가 일본으로 갔다가 이제 석방이 됐고요. 결국은 까으에 있었던
1100명 군사 중에서 4여명만 다 죽습니다. 죽은 사람들 중에는
다섯 명의 유럽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군사 전문가들은 이때
전사한 이천영은 천군의 최정의 군사, 북양군의 최정의
군사였었다고 합니다. 그 최정의 군사가 아예 전투에 한번 참참해 보지도
못하고 수장이 됩니다. 당시 러시아 전문가 한 사람이 이렇게 그 당시
상황을 기록을 한게 있습니다. 승선하고 있던 두 명의 장군을 포함한
수많은 청군 장교들 중에 상선의 탄채 막강한 군함을 상대로 교전을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근이 없는 일이라는 사실조차 이해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아무런 군대 경험이 없었다는 것은 실로 애처로운 일이다.
아무리 정신 승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무장을 하지 않은 육군
1100명이 수송선에 타고 앉아서 세명 세척에 주장을 하는 최정의
순양함을 상대를 한다. 있을 수가 없는니다. 근데 야 그래도 넘기자.이
이 배 넘기고 우리 살자고 하는 그 서양 사람들의 모든 설득을 물리치고선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은 다 죽습니다. 숨어합니다. 자, 그러면
아까 말씀드렸듯이이 배가 지금 영국 배입니다. 영국 회사 매슨 배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메세슨이 당연히 일본 정부한테 부호상을 요구를 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언론도 이제 화탁지가 난 거죠. 야, 청하고 일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야, 우리 배와 우리 선원들이 죽었는데 이게 말이 되냐면서 영국
언론이 막 엄청나게 이제 그 일본에 비판적이면서 자기네 회사 편을 영국
회사 편을 드는 거죠. 홍콩에 있는 영국 회사죠. 그런데 영국 정부가 일본 측이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는 결론을 자기 내가 위원회를 결성을 해서 만들어서 그렇게 결정을
내려봅니다. 왜 그랬냐? 당시 일본하고 처음 이미 전쟁이 시작된 상태였고 까오숑은 군사를 수상수하고
있었고 일본은 분명히 항복을 하라고 계속해서 명령을 했는데 그거를 따르지
않았는데 그 따라서 배를 까우싱을 격침한 것은 그거는 정당한
일이었다라고 영국의 정부의 위원회가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그러고 나니까
영국 언론도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덮어 버립니다.
[음악]
이렇게 해상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어 7월 23일 날
오돌리가 경복궁을 쳐들어가서 고정을 인질로 잡고 전국을
장악하고 나니까 곧바로 한양에 전개했던 여단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군 여단. 그 여단은 오시마
요시마사 장군이 지위를 하고 있는데 그 여단은 어떻합니까? 당장 남쪽으로
가서 지금 아산에 진치고 있는 천군을 공격을 해야 된다라고 해서 곧바로
그니까 전국을 장악을 하고 대원군을 집어넣어서 전권을 장악하게 하고
완전히 일본이 요구하는 개혁을 다 하는 정부를 만들어내고 군국
기무처까지 만들어 놓고 그러고 나서는 군대를
남쪽으로 전개를 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오토리가 뭐라 그러냐면요. 자, 우리가 조선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한테 요청을 해서 조선에 와 있는 천국군을 축출하라는
그러한 요청을 하도록 하겠다라고 이제 옷돌리가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옷돌이가 이미 여러 차례 조선 보고 조선 정부 보고 뭐냐면 지금 천국
군대들이 와 있는 거를 철병을 하라고 천국한테 자꾸 요청을 하라 그러는 거죠. 그거를 이제 못 하고 있었던
거죠. 조선은. 그러니까 이제 전국을 완전히 장악을 한 상태에서 그러면 다시 한번 조선 정부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와 있는 천국군은 다 나가라는 조선 정부의
명령을 받기로 하는 거죠. 그래서 그거를 오시마한테 줄테니까 오시마는 그걸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미리
아산으로 내려가라. 빨리 군대를 이끌고 내려가서 너희가 아산에 도착해서 청군하고 교전할 때쯤 되면은
그 명령이 도착했을 거라 이렇게 해서 이제 보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7월 25일 날 그 오시마가 병력
4,명과 대포 사문을 이끌고 아산으로 향해서 내려갑니다. 반면에 이제
천구는 3,명이 성환에 천안엔 천명이 그렇게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이 이 천군의 주력군은 아산의 동쪽에 있는 어 동쪽하고
동북쪽 그러니까 아산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의 포진이 있죠. 보니까 그쪽에서 내려올테니까 일본군이 남쪽에
전주석 문제는 다 해결이 됐으니까 동학 문제는 다 해결됐으니까 이제는 일본군이 한양 쪽에서 내려올 거를
준비를 해서 이제 동북쪽을 향해서 그쪽에 이제 포진을 어 한 겁니다.
그래서 3주간에 걸쳐서 진지를 구축을 하고 차모를 파고 주변에 논의 물을
댑니다. 논의 물을 댄다는 것이 논이라는게 전쟁할 때가 되면 최고의
장애물이 됩니다. 저 물로 채워 놓는 거니까 군대가 뭐 포대가 이런게 진
저 진군을 하기가 힘들게 만드는 거기 때문에 제례식 전쟁할 때 보면 꼭 논에다가 물을 댑니다. 그래서 이때도
역시 논에다가 물을 댑니다. 7월 25일 9시 45분쯤에
오시마가 아산으로 열심히 내려가고 있는데 그때 벌써 풍도회전의 소식을
듣습니다. 풍도에서 이미 교전이 벌어졌고 우리가 어 까우를 격을 했고
뭐 저쩌이 보고를 받는 거죠. 그래서 이미 전쟁이 시작됐구나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뭐 조선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청군을 축출해 달라는 뭐 명령을 받고 이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더욱더 길을 제촉을 해 갖고 오시만은 아산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7월 27일 날 아침에 일본군이 성환에 도착해서 성환에 있는 천군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시마가 처음에 먼저 어떡하냐면 소규묘
병력으로 천군 진지 정면을 이제 공격을 하고 주력부대는 후방으로 돌려
버립니다. 전투가 안성당을 가운데 놓고서 이제 양쪽에서 어 전투가
벌어지는데 일본군이 도강하는데 안성강을 건너가는데 성공하고 그러면서
천군을 측면을 갖다가 기습하 하는데 성공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천군이
굉장히 격렬하게 저항을 하지만 결국은 성환을 일본군한테 그 내주고
일본군은대 엄청난 양의 무기를 탈출을 하고 그리고 이제 아산으로 어 청군을 쫓
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일본군이 너무 쉽게 성환을 청안에 있는 청군
진지를 돌파하고 있으니까 아산에 있던 청군들이 놀라갖고 일본군이 오기도 전에 다 도주를 해 버립니다. 그래서
아산도 그냥 일본 수중에 떨어집니다. 성환 전투에서 천군는 500명이 전전
전전사고 모든 중화기를 다 했습니다. 일본군은 전사 34명 부상 쉬운
네명입니다. 그리고 7월 30일 날 아선 아산에 입성한 일본군은 일주일
내 천군의 잔존병들 모두 이제 어 소탕을 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섭지초
장군은 천안을 버리고 남은 군사를 이끌고 한양 동쪽을 멀치감치 위해서
평양으로 향해서 26일간에 엄청난 고된 행국 끝에 평양에 도착을 해서
다음 전투를 이제 준비를 하는 겁니다. 모든 무기를 놓고 가고 그러는게 이제 전쟁 내내 벌어지는
일인데 그 청구는 무기를 적군의 수중에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그거를
파기를 파괴를 하면 절대 안 된다는 내명률부터 내려오는게 있기 때문에 절대 못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일본군은 가는 데마다 엄청난 양의 보급품과 최신식 무기들 제대로 쓰지도
못한 무기들을 계속해서 노액을 어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사실은 아산의 천군이 있고 그리고 북쪽 평양이나 이런 데로 또 군대를
전개를 하고 그러면 사실은 일본군이 오히려 천군의 샌드위치가 돼서 굉장히
쉽게 한양에서 축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성환 전투를 통해서 아산에 있는 천국군이
너무 쉽게 괴멸을 해 버림으로써 조선반도의 난반부가 완전히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는 거죠. 청군이 이제 완전히 퇴각을 해 버리고 다 이제 그 평양에 어 집결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평양 전투가 결국은 그다음 전투가 큰 전투가 되고 사실
총 전쟁 중에 제일 큰 전투 중에 하나가 되는데 그건 뭐냐면 무슨 상징이냐면은
평양에서 만일에 청이 지면은 조선 반도에서 청구는 완전히
중국의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지는 거죠. 조선이 청의 속방이다라는 얘기는 평양에서
회전을 하는 순간에는 완전히 의미가 없는 얘기가 되고 남쪽은 물론이고
북쪽에서도 천군이 완전히 퇴각을 해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은 사실은 일본으로서는 중국을 조선 반도로부터
완전하게 축출하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 입장에서도
평양에서 결사항전을 버려야 된다. 우리가 수백년 동안 조선을 우리의
속방이라고 했었고 임진회란한 때도 군대를 보내서 우리가 결국은 외군을
격태시키면서 조선을 지켰고 어쩌고 어쩌 했었데 그때부터 계속해서 자기네 속방이라고 하였던 것이이 평양
전투에서 지지면은 이제 관계 자체가 이제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 없는
그런 상황이 되는 거죠. 그리고 전략적인 의미에서 뭐냐면 평양에서 지면은 그다음부터는 전투가 어떻게
됩니까? 모든 전투는 중국 본토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지금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거죠. 성환 전투, 평양 전투만 하더라도 조선을
놓고서 청나라하고 일본이 싸우는 거지만 만일에 평양에서도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다음부터는 중국 본토에서 일본하고 조청이 싸우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평양 전투가 여러 가지로 굉장히 중요한 전투가 되고 섭취
장군도로 가고 그다음에 본격적으로 이흥장의 군대를 일으키면서 평양으로
끊임없이 군대를 파견을 하기 시작하는 거 수천을 이제 보내는 거고 일본도
그 평양 전투를 이제 위해서 엄청난 준비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지금까지만
하로 오시마의 제9 혼성 여단 하나 갖고 전투를 했었던 거죠. 근데 여단
갖고 전투할 상황이 아니까 이제 4단을 몇 개를 보내야 되니까 1군단을 편성을 해서 그 군단을
그러면 이제 조선에 전개하는 대작전이 벌어지면서 평양 전투로 이제 향해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이 송환 전투를 통해서 그 풍도 회전에서도
이미 나타난 상황이지만은 중국군은 청구는 전쟁을 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어요. 아까 성환 전투에서 잠깐만 그 안성강을 놓고서
격렬하게 정하는 청군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은 대부분의 청구는 그다음에
아산에 있는 청구들이 다 미리 일본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도망갔다라는 그 소식 거기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지만은 어 천군이 전혀 전투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것이 자명합니다. 그 당시에 제팬
위클리라는 일본에서 발행되는 영국 사람들이 어 출판 출관하고 있었던
영자 신문에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중국인들은 역시 36개의 능하다. 그들은
주렉치면서도 제복들을 벗어던지고 조선 사람들 옷을 입고서는 각자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달아났다.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달아났는지는
그들이 벗어던진 제복들이 정확히 알려줍니다. 청군의 부사령관도이 같은
방법을 택하는 유혹을 벗어 뿌리치지 못한 듯 그의 제복은 진중에 남아 있었다. 청군의 전통은요. 민간인이든
뭐든 상대 포로는 물론이고 특히 적군에 그 조금이라도 협조했다 하면은
무조건 죽입니다. 사실이 모습은 전쟁 내내 그 반복이 되는 거고 어
그러니까 뭐 제네바 협정 이런 개념이 전혀 없죠. 본건적으로 전쟁을 하니까
그러니까 그 포로를 잡으면은 나중에 이제 그 루 전투까지 가면은 일본군이
그야말로 엄청난 루션 대학사를 버리게 되는 계기도 뭐냐면 포로로 잡힌 일본
군들을 능지 이렇게 그야말로 그 살을 이렇게
한 점 한씩 떠내서 죽이는 그런 거를 일본군한테 행하는 행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천구는 어 아직까지도 본건적인 중세적인 전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자기네들도 잡히면 그렇게 되는 줄 알아요. 그러니까 이게 근대
전쟁에 있어서 저렇게 맹렬이 싸우다가 그래도 포로하고 항복을 하면은 인간적으로 대접을 해 주고 무슨 뭐
부상병을 치료를 해 주고 나중에 송환을 해 주고 이런 것이 있으리라고는 청군들은 전혀 상상도 못
하기 때문에 무슨 한이 있더라도 싸우다가 죽든지 아니면은
대부분은 뭡니까?이 이 전세가 아 불리하게
기우는 거 같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그냥 무조건 도망을 갑니다. 자기네가 포로들한테 하는 똑같은 일을 자기네도
당할 줄을 알고 그래서 다 대부분 전투도 벌어지기 전에 도망을 갑니다.
그래서 일본군이 어떤 전투에서 이겨서 그 진지에 들어가 보면 이미 다
아니면 밤 사이에 다 철수를 해 버릴까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청일 전쟁 내내 벌어집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7월 28일이 되니까 이홍장이 조선 공동 점령안을 내놓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조선 반도 한 반도를 반으로 나눠서 두 열강이 그걸 반으로
나눠서 따로 통치를 하자. 이런 얘기가 2차대전 이후에 해방 이후에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도 그런 경우지만
사실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았었죠. 그런 경우가 임진회란 때도 있었고 저
평양 전투에서 명군이 일본군을 격태를 간신히 하고 나서 그리고 곧바로 휴전
협정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협정에 들어가면서 내내 하는 얘기가 야 남쪽은 남쪽은 너희가 통치하고
일본군이 일본이 통치하고 북쪽은 우리가 할게 이런 얘기 수없이 얘기들이 나옵니다 사실은. 그런데
이때에도 이때에도 이홍장이 어차피 남쪽은 뺏겼는데 나머지도 뺏기지
않으려고 그렇죠. 평양에는 집결을 했지만은 이것도 지금 잘못하면 내놓으면은 완전히 조선을 다 내놓는
거니까 그러면 우리가 공동 점령을 하자 이렇게 안을 내놓습니다. 기억해
아시겠지만요.이 전쟁나기 직전에 일본이 뭐라 그랬습니까? 끊임없이 끊임없이 중국
보고 청나라 보고 우리 같이 들어와서 공동으로 조선을 개혁해 나가자. 같이
근대 개혁을 해 나가자고 하는 거를 청에서 말도 안 된다라고 이런 이제 거절을 했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
전쟁으로 결국 갔더니 이번에는 풍도 회전에서지고 성환 전투에서지면서
이홍장이 거꾸로 야 우리가 공동으로 점령을 하자. 북쪽은 우리가 점령을 하고 남쪽은 일본인 너희가 점령을
하라 그럽니다. 그래서 이거를 러시아한테 부탁을 하면서 러시아 공사
카시니한테 부탁하면서 일본이 이거를 들어 달라. 그리고 안 들어 줄 경우에 안 들어 줄 경우에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열강들이 개입을 할 거다. 이렇게 좀 해 달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러면서 영국도 끌어들이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 러시아를 다 끌어들이려 그러시아의
공사가 그렇게 하기로 해 주기로 했다고 영국 정부에다가 이장이
거짓말을 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는 영국 정부를 비롯해서 러시아 정부도 천국에가 있는 우리
공사가 카스니가 그런 약속을 했어. 조선 반도를 청하고 일본이 나누어서
공동으로 점령을 하고 그리고 일본이 그 요구를 안 들어 주는 경우에는 영국, 독일, 이태리, 러시아가
개입을 하해서 일본 보고 그걸 받아들이라고 하려고 그랬었어. 보니까 카스이가 그게 무슨 소리냐 난 그런
적 한 번도 없다 그러면서 이영장한테 사람을 무슨 소리 했냐고 나 그런 소리 한 적 없다. 그러니까 이제
이장이 아이고 내가 너무 급해서 우리가 뭔가 강력한 주치를 피할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얘기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사과를 합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은 지금 어 그
이용장의 입장에서는 어 너무나도 전쟁을 해서는 불리하다는
걸 아는 상황에서 떠밀려서 등 떠밀려서 전쟁을 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역시 예상했던 대로 완패를 하니까 매 단계마다 어떻게든지 열강들의 개입을
불러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열강들이 개입을 시켜서 일본이 파죽
지세로 조선반도에서 청문을 청을 축출을 시키고 청까지 쳐들어오는 거를
막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 러시아 공사가 이런 말을 했다. 그러는
거짓말까지도 해보면서 열강대의 개입을 어 요청을 해보지만 실패로
돌아갑니다. 결국 8월 1일 1894년 8월 1일 청이 선전 포를 합니다.
이미 전투에서 몇 번 졌지만 그래서 이날 광서제의
영의로 되는 조치 발표를 되는데이 조치의 선전 포그에는 득 외놈
외인이라는 말이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그 선전 포고에
영어 번역번이 있는데요. 그 영어 번역번에는 외인이라고 해 놓고 거기에다 괄호로 놓고서 이거는 매우
모욕적인 뜻임. 보니까 서양 사람들이 외인이 뭔지 모를테니까 그걸 친절하게
설명까지 하면서 어 그 선전 포거를 합니다. 1번도 사실은이 선전 포거를
하기 전까지는 일본의 언론도 중국 사람들 보고 신진
청인 또는 뭐 어 지나인 그러니까 차이나라는 걸 음역을 해서 일본은
지나라고 중국이라 그러지 않고 지나라고 부르기 시작했었죠. 그런데 조직후에는
찬찬보즈 짱골레라는 뜻이죠. 돈병 돼지군 돈미 돼지꼬리 이런 식으로
이제 부르기 시작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이제 감정까지 격해지면서 양국간의 인종적 민족적
감정까지 개입이 되기 시작하면서이 전쟁이 어
본격적인 그 군사들만의 전쟁이 아니라 여론전이 되는 거고 진짜 국민 두
국민 간의 어 본격적인 근대 전쟁으로 번지기 시작을 합니다. 자, 그런데
선전 포가 벌어지자마자 일본이 축제가 축제가 벌어집니다. 이게 근대 국가의
힘입니다. 근대 국가라는 거가 입펀치를 의회 정치를 통해서 국민들이
투표를 하기 시작해. 물론 아직도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게 남자고 뭐 재산을 어느 정도가 있고 굉장히
극소수지만 그래도 국민이 참정을 하하는 의회 정치, 헌정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 이미 1890년대 메이저 헌법 때부터 했었기 때문에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서 자기 대표를 뽑고 한다라는 건 뭐냐면요. 그만큼
그 국가에 대한 지분이 생기는 거죠. 자기 이게 내 나라는 것이 강하게 생기는 거죠. 그래서 그게이 청일
전쟁을 통해 갖고 일본에서 폭발적으로 처음으로 일어난 거죠. 그전만 해도 사무라이들이 그냥 전진네들끼리
전쟁하는 거고 옆에 밑에 있었던 양민들, 평민들 맨날 피해만 보는 거죠. 우리가 사무라이 영화 같은
데서도 보듯이 뭐 보통 양민들은 자기들을 어떻게 지킬까 이것만 걱정해야 되고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됩니까? 근대전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으로 전쟁을 하는 나라의 국민들이 전부 다 실제 전쟁에 참여를
하지 않더라도 그 전쟁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게 내 전쟁이다. 우리 전쟁이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특히 젊은
남자들이 엄청나게 지원을 하기 시작합니다. 군데 필요 없다고 지금 너무 군인이
많아서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자원을 하기 시작을 하다. 그래서 그때 이제파인 위클리라는 영자 신문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선전폭을 기쁨과 열정 전쟁 광풍으로 맞이했다고 그렇게까지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된 거죠. 드디어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죠. 일본의 야당이라는 당들은
메이지 정부를 공격하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게 뭐냐면 메이지 정부가 조선 같은 데서 임 이임모근란 때도 패
패해서 쫓겨나고 갑신정변 때도 폐해서 쫓겨나고 그러면서 뭐 김옥균을
암살에도 가만히 있고 이러면서 너무나도 나약한 대회 정책을 하고 있는 거를 계속해서 일본의 야당들이
공격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 정부가 드디어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다. 그러면서 국 의회를 해산시켜 버리고
전쟁으로 간다. 그리고 이제 전쟁을 시작하는 거 아닙니까? 야당들도 자기네가 여태까지 그렇게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서 비판하는데 사용하는 논리였지만 어쨌든 정부가 지금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을 해서 이기기 시작을 하니까 야당까지도 전부 다 적극적으로
정부를 밀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이러므로써 일본이 완전히 하나가 되면서 청나라고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 당시 상황을 재팬 우이클리가 또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일본 국민은 중국과의 문제로 인해 깊이 동요하고
있다. 고화를 막론하고 국민 모두의 관심은 온통이 문제에 쏠려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군대에 자완하는 청원들이 지방으로부터 중앙참모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러면서 어 우찌무라 간조 나중에 기독교인으로서
일본 근대 지식인의 양심으로 항상 묘사되는 지식인이 있었는데이
사람마저도 조선 전쟁의 정당성이라는 글을 8월 1일 날 어 발표를 하면서
왜 일본이 전쟁을 해야 된다라는 거를 어 논합니다.이 이 논리가 당시 일본
사람들의 논리였었고 일본에서 왜 개화파들을 돕지 않느냐 하는 그
논리가 바로이 논리입니다. 조선 전쟁은 서양에서 이미 오랫동안 그래 왔듯이 진보가 동방의 법이 될 것인지
아니면 한때 페르시아 제국이 그다음에는 카르타고가 또다시 스페인이
그리고 드디어 세계 역사의 마지막이 되기를 우리는 바르지만 중국의
만주제국처럼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 동양의 발목을 영원히 잡을 것인지를
정할 것이다. 일본의 승리는 지구의 이쪽 편에 살고 있는 6곡 영혼들에게 자유로운 정부,
종교의 자유, 교육의 자유, 교육의 자유를 제공할 것이다. 일본은
동방에서 진보의 투사, 그의 숙적, 중국, 저 진보를 증오하는 구제불능의
중국 말고는 누가 일본의 승리를 원하지 않으랴? 그 당시에 뭔가
조선이 빨리 개화를 하고 문명 국가로 나가야 되고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하고
청이 싸운다. 중국이 싸운다. 그럼 일본이 뭐를 상징하냐? 진보죠. 그 당시로서 청은 뭐냐? 이건
구습 구태. 당연히 일본이 이겨야 된다 이제 이랬고 심지어는 기독교
인사들조차도 일본의 기독교 인사들조차도 정전쟁을 이렇게 이해를 하고 정당화를 시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의 상황을 보 그 보고 있었던 히트로보 주일 러시아 공사는 뭐라
그러냐면 전체적으로 기백이 살아나고 동시에 일본 전체의 애국심이
폭발적으로 분출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정부에 반대하고던 모든 야당들도 언론 전체에 일치된
찬양에 동참한다. 국민들한테는 다 뭐라 그러냐면은 모든 정파간의 반대와
차이를 잊어버리고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정부를 모두 지지할 것. 정부가
요구하는 그 어떤 것도 거절하지 않고 정부가 하는 일이나 정부 요인들의
능력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중지할 것을 야당에서조차도 다 언론한테 그런
주문을 합니다. 그러면서 의회와 내각 사이에 뭐 불렵함 뭐 맨날 내각
불시민한을 야당은 제출하고 이런 불려함은 다 잊혀지고 대회적인 갈등이
오히려 대뇌적인 평화를 가져옵니다. 이것이 일본이 청일 전쟁에
임하는 모습입니다. 반면에 천국에서는 중국에서는 청일 전쟁에 대해서 중국
국민들이 이렇게 반응을 합니다. 일본과는 완전히 대주적 애국심이라는 건 전혀 발 발 발효되지
않 발휘되지 않습니다. 외국인들은이 모습 보고 깜짝 놀라면서 너무나
실망을 합니다. 중국이 문명 국가고 훨씬 큰 국가고 강한 국가고 해서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은 뭐 전투 한두
개는 질 수도 있지만은 결국은 중국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가장 중요한게 뭐냐면 중국 사람들은 전쟁을
할 의지가 없는 거고 전쟁을 왜 해야 되는지 국가라는 것이 모으고 국민과
정부의 관계가 모으길래 정부가 하는 일에 국민이 적극 동참을 해서 지지를
하고 이런 개념 자체가 전혀 없는 그것이 지금 본건 중국 국가
중국입니다. 일본만이 근대 국가의 모습을 제대로 갖춰가고 일반 중세본의
백성들을 국민으로서 개조를 해 나가기 시작했던 거죠. 그것이 성공하는 첫
모습이 청일 전쟁입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그 당시 북양함대의 고문으로 있었던 서양 사람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국이 아니라 이홍장이 전쟁을 하였고 대부분의 전중국인들은
전쟁이 일어났는지 조조차 모른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일이 없다. 그저 그들의 주인의 이해 관계나 자신의 이해 관계만 추정할
뿐이다라면서 비판을 합니다. 여러분, 근데 전쟁이 벌어진지 어떻게 합니까?
신문이 있어야죠. 그러니까 독립 신문 같은 신문이 나중에 나오지만은 독립 신문 같은 신문이 있어서 같은 날,
같은 시점에 똑같은 뉴스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야지. 어,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아, 나라가 이런 일을 당했구나. 따라서 나는 어떻게 이게 지금 일본에는 뭐지지 신법
자기네 일본 신문분고 서양 신문들로 해 갖고는 그게 모든 소식이 다
전해지고 있는 거고 저 매일같이 전해지고 전보를 통해서 전해지고 이러고 있는 거고 거기다가 참정권이
생기고 학교가 생기면서 학교에서 국민으로서 교육을 다 시키고 있고 이러는 상황 속에서 아 나와 국가
나와 정부의 관계가 뭐라는 것이 재설정이 되는 건데 그게 이제 근데 국민 시민이 이 되는 겁니다. 그것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지금 중국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었던 거죠. 뭐 이용이 개혁을 하고 동치 중을 통해서
이런 사람들이 이런 공장도 말 만들어 보고 무기창도 만들고 전함도 지어보고 하지만 그런 것만 갖고 전쟁이 되고
나라가 강해진 것이 아니라 국민을 하나로 엮어 줘야지 오히려 그 국민을 갈히리 찢고 서로 반목하게 하는
신분제 남녀 차별 이런 것만 있는 거죠. 그러니까 국민의 의사가 하나로
모아줄 수가 없는 상황이고 이것이 여실하게 일본하고 중국 청일 전쟁에
임하는 두 나라에서 보여줄 겁니다.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라는 근대 개혁이
얼마나 놀라운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근대 국가가 왜 힘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가장 교과서적인 예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네. 오늘은 어 성환 전투와 풍도 회전 어 청일 전쟁 첫
번째 회전과 청일 전쟁 첫 번째 어 육상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보고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양국이 청일양국이 전쟁에 임하는 태도 자세
이런 거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조선 내에서 일어나는 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하는 갑장 그리고 바깥에서는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전쟁
특히 평양 전투를 향해서 가면서 청일 양국이 어떻게 준비를 해 나가는지이
부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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