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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201024
원효, 그는 幻(환)에 물들지 않았을까.
어쩌다 길을 걸으면서 나무아미타불을 읊조릴 때가 있다. 그러다 원효생각이 났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위태로운 신라의 밤거리를 걸어갔을까. 신비롭고 깊은밤 어둠에 그는 물들지 않았을까.
책을 찾았는데 마침 이 책이 다가왔다. 괴이쩍게도 춘원 이광수의 <원효대사>다.
진덕여왕의 구애에 응하지 않고 분황사 무애당에 칩거한 원효는 곧 닥친 여왕의 죽음 앞에 흔들린다. 거기에 다시 끊임없이 마음을 전해오는 요석공주를 피하여 숨으려던 길에 그만 사흘낮사흘밤을 요석궁에 붙들리게 되는 것이다.
원효는 이로 인해 길을 떠나게 된다.
그가 요석공주와의 파계의 날을 통과하지 않았더라면 이름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흠 잡을 데 없는 당대의 고고한 학승으로 널리 존경을 받으며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게다.
하지만 그는 그 이름에 갇혔을 것이다. 삼계육도의 중생을 설교단 아래 내려다보는 생이었을 것이다. 중생과 함께 하는 보살행을 '아는 자'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환의 시간을 통과함으로써 자기 이름을 깼다. 환은 그의 몸과 영혼에 물들고 그는 물든 환을 통해 비로소 이 환의 세상에 내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환은 꿈인 줄 알면서 꾸는 꿈이어서 그의 길을 비틀지는 못했다.
사흘낮사흘밤을 환에 들어 그 사흘을 채우자 분연히 그 환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깨인 채로 꿈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만 예상치 못했던 것은 환의 내상이 뜻밖에 컸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청정한 마음에 물든 독같은 환을 빼면서 자신과 우주의 실상에 더 깊이 들어가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독을 빼기 위해 세상을 뒹굴면서 비로소 학승이 아닌 보살도의 제 길을 갈 수 있었다.
그의 무애행은 물을 보면 물을 피하지 않고 불을 보면 불을 피하지 않는 길이다. 물에도 조금 젖고 불에도 몰래 타면서 떨치고 가는 길이었다.
그는 이제 보살이 '되어가는 자'로 섰다.
글을 읽어가면서 다른 두 가지 줄거리도 눈에 띄어 쫓아가보았다.
하나는 번뇌로 인하여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던 원효가 신라기층민들의 등불로 서는 과정이다.
또 하나는 전생의 업연으로 얽힌 두 여인, 요석공주와 아사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관한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는 그게 한 가지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전생의 업연으로 얽힌 두 여인, 요석공주와 아사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관한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는 그게 한 가지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원효는 곧은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 자기 길을 갔다. 거짓없어 곧은 마음과 변함 없어 깊은 마음으로 뚜벅뚜벅 제 길을 갔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들림없는 그 발자국에 자기발자국을 포개면서 멀고도 기약없는 그 길을 따라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