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가 겪은 손석희, 김어준, 봉지욱, 조갑제, 그리고 그 밖의 인물들
기자명 평화나무
입력 202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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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에서 오보와 음모론에 대한 비판 여론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다소 늦었지만,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음모론과 오보를 양산해 온 김어준이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무척 고무적인 변화입니다.
저 또한 정정과 사과를 거부한 거대 언론과 유튜브 방송이 조직적으로 생산한 오보의 피해자입니다. 만일 그 피해가 단순한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사적 손해에 그쳤다면, 분하더라도 잊고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그 오보가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과정에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민간인 학살이자 가장 숭고한 시민 항쟁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조사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는 다소 길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사안이 엄중하고, 손석희·김어준·봉지욱 등 등장인물의 면면도 결코 가볍지 않은 만큼, 독자 여러분께서 끝까지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 ‘꿈의 증인’ 김용장의 등장과 명백한 거짓말
어쩌면 대중의 망각과 은폐야말로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었고, 그들은 이미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5·18의 이른바 ‘꿈 같은 증인’ 김용장 사건이 바로 그렇습니다.
2019년 3월부터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와 손석희의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용장은, 1980년 당시 광주에서 근무한 미 육군 군사정보관을 자처하며 5·18에 관한 온갖 주장을 쏟아냈습니다.
2019년 5월 13일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용장 씨 (출처=JTBC)
당시 보안사 요원이었던 허장환과 함께 등장한 김용장의 발언은 처음부터 거짓임이 명백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틀렸기 때문입니다. 김용장은 1980년 당시 광주에 CIA 요원이나 미 국무성 직원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광주에는 미 국무성 소속 미국문화원, 즉 USIS가 엄연히 존재했고, 당시 문화원장은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에 생존해 있습니다. 진짜 미국 정보요원이라면 문화원이 어느 기관 소속인지 모를 리 없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팩트체크만 거쳤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소동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사기극을 걸러낸 언론인들도 있었습니다. 허장환은 김용장을 앞세워 MBC ‘PD수첩’에 먼저 접촉했으나, 정황을 판단한 ‘PD수첩’ 측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오랫동안 5·18 탐사보도에 앞장섰던 광주MBC 역시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단신으로만 다루며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짜 증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곳이 바로 JTBC의 손석희, 이규연, 봉지욱이었습니다. JTBC는 제대로 된 검증 없이 2019년 3월부터 ‘뉴스룸’과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김용장의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그 결과 사회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2. 본질을 훼손한 복잡한 거짓말과 광주의 열광
40여 년 동안 5·18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모든 것을 걸어온 광주는 누구보다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5·18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모든 의혹을 단숨에 해결해 줄 것처럼 보였던 ‘미 군사정보관’의 등장은 그야말로 꿈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허장환과 김용장의 증언은 오히려 광주민주화운동의 본질을 깊이 훼손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복 차림으로 투입된 특수요원, 이른바 ‘편의대’가 시민들을 선동해 무기를 탈취하고 시설에 방화하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시민군이 자발적으로 무장해제를 시작하자, 시민군의 폭력성을 부각하려던 전두환의 의도에 따라 계엄군이 서둘러 유혈 진압에 나섰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의로운 항쟁이라는 5·18의 본질을 부정하는 주장입니다. 또한 무기 회수를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킨 시민들을 모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소설가 한강의 표현대로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결과적으로 조롱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발포 명령자 규명과 미국의 개입 여부 등 풀리지 않은 의문 속에서 평생 고통받아 온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김용장의 거침없는 발언은 강렬한 열광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언론의 상업화와 최용주의 이상한 제안
진상규명을 향한 유족들의 간절한 염원을 ‘가짜 증인’을 통해 상업화하려 한 손석희, 이규연, 봉지욱의 행태야말로 진짜 문제였습니다.
그해 3월 말, 5·18기념재단 상임이사와 JTBC 취재팀은 김용장이 거주하던 피지로 건너가 그의 귀국을 설득했습니다. 이후 봉지욱과 취재팀은 미국 현지 취재를 떠나는 등 일련의 촌극을 이어갔습니다.
이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과정에서 저에게도 석연치 않은 제안이 왔습니다. JTBC의 자문역으로 미국 취재에 동행하기로 한 최용주가 저에게도 동참을 권유한 것입니다.
최용주는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간부였으며,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권유로 도청을 떠났던 인물이었습니다. 항쟁 이후 복역을 마치고 미국에서 농촌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은퇴 후 5·18기념재단의 권유로 관련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깊이 있고 깔끔한 그의 연구 실적을 존경했습니다. 평소에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수많은 5·18 자료를 공유하던 사이였습니다. 그렇기에 김용장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의논한 사람도 최용주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미국 국방정보원, 즉 DIA와 육군 정보국 INSCOM의 비밀 해제 문서를 근거로, 당시 광주에서 근무한 한국인 군사정보관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짚으며 의구심을 전했습니다. 최용주는 별다른 반론 없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저에게 보조 취재 동행을 제안했습니다. 그의 의도가 의아했던 저는 결국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4. 첫 번째 경향신문 기고와 JTBC의 부실 보도
JTBC가 5·18 주간에 맞춰 ‘김용장 속편’을 제작하기 위해 미국 취재를 오가는 동안, 저는 INSCOM과 DIA에 김용장 관련 정보공개, 즉 FOIA를 청구하고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5월 초 귀국한 김용장은 국회와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보고서가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반복하며 헤드라인을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JTBC 취재진은 백악관 NSC 아시아 안보 담당이었던 도널드 그레그와의 인터뷰를 취소한 상태였습니다. 김용장의 보고서가 실제로 백악관까지 올라갔다면, 이를 검토했을 핵심 인물이 바로 그레그였는데도 말입니다. 훗날 봉지욱은 예산 부족으로 인터뷰를 취소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대형 방송사가 예산 핑계를 대는 것도 모자라, 그런 빠듯한 예산으로 저에게까지 동행을 제안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기만이었습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저는 최용주에게 미국 취재에서 김용장의 신원을 확인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망설이다가, 1980년 당시 DIA 한국지부장이었던 제임스 영을 만나 확인했으나 그가 김용장을 모른다고 답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경향신문 손제민 기자의 도움으로 2019년 5월 16일 오후, 김용장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는 기고문을 인터넷판에 게재했습니다.
그날 저녁 봉지욱의 미국 취재분이 방영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글이 올라가자마자 저는 최용주에게 링크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최용주에게서 쌍욕이 섞인 격앙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신이 믿고 말해준 ‘신원 미확인’ 사실을 방송 전에 먼저 폭로해 신의를 저버렸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방송에서 이 사실이 다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방영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제임스 영의 증언과 자막을 매우 모호하게 처리했습니다. 시청자들이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없도록 사실상 은폐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방송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김용장이 군사정보관 시절 받았다는 표창장을 화면에 비춘 것입니다. 정지화면으로 확인해 보니 그것은 군사정보관 표창이 아니라, 계약직 통역관, 즉 Language Specialist에게 수여된 근속 감사장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통역관과 군사정보관의 직무 차이에 대해 미 정보기관에 추가 정보공개를 요청했습니다.
5. 김어준의 가짜뉴스 비호와 두 번째 폭로
첫 기고 이후 김용장과 허장환의 신뢰성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5·18의 한 서린 감정 속에서 진실만을 갈구하던 일부 대중은 저에게 살해 협박 메일까지 보내며 비난했습니다.
그렇게 묻혀가던 가짜 증인들을 다시 살려낸 인물이 바로 김어준이었습니다. 김어준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과 TBS ‘뉴스공장’에 김용장을 세 차례나 출연시켰고, 유례없이 공손한 태도로 그를 비호했습니다.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김어준은 제 기고문을 의식한 듯 매체명을 숨긴 채 질문을 던졌고, 김용장은 본질을 비껴간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분명했습니다. 미 군사정보관을 자처한 사람이 1980년 광주에 미 국무성 소속 문화원장이 상주하고 있었음에도 “국무성 직원이 없었다”고 공언한 무지와 사기성,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봉지욱과 최용주의 미국 취재 또한 코미디에 가까웠습니다. 제임스 영 전 DIA 한국지부장은 김용장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고, ‘한국인 군사정보관’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만 눈치챌 수 있는 자막과 오디오의 괴리를 이용해 이 사실을 비겁하게 얼버무렸습니다.
제 경고를 무시하고 무리한 동행을 제안했던 최용주의 비상식적인 행각을 보며, 저는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5월 말, 미 정보기관으로부터 “김용장이 작성했다는 문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식 답신을 받았습니다. 미국 정보계의 관례상, 30년이 지난 문건에 대해 비공개 사유가 아닌 ‘존재 자체의 부재’를 통보하는 것은 그 문건이 아예 없다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저는 INSCOM 공보국을 통해 계약직 통역인 ‘언어전문가’가 ‘군사정보관’으로 직책 전환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최종 답변을 5월 30일 받아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 6월 3일, 저는 두 번째 경향신문 기고를 냈습니다. 완벽한 소스를 토대로 김용장의 신분 허위와 보고서 부존재를 공식적으로 논증한 글이었습니다.
그러자 광주 오월단체 등 제도권은 격렬하게 분노하며 저를 비난했습니다. 저는 유족들의 아픔을 생각해 쏟아지는 명예훼손성 반론과 공격을 묵묵히 감내했습니다. JTBC는 이 내홍을 즐기기라도 하듯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 와중에 뜻밖에도 보수 언론인 조갑제가 제 글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소개하며 김용장이 가짜임을 강조했습니다. 5·18 당시 광주를 직접 취재하고 부마항쟁 기록 등을 남겼던 그가 최근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언론 본류로 돌아온 것을 두고 “변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변한 것은 그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또한 그해 8월, MBC 박건식 PD는 ‘월간 신문과방송’ 기고를 통해 ‘PD수첩’이 이미 김용장 일행의 신빙성을 문제 삼아 아이템을 거절했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6. 전두환의 명예훼손 소송과 봉지욱의 안면몰수
JTBC의 침묵이 이어지던 2019년 12월, 봉지욱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전두환이 자신과 JTBC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으니 자술서를 써 달라는 읍소였습니다.
전두환 측이 내세운 증거가 제 기고문과 조갑제, 박건식의 글뿐이니, 제가 어렵게 수집한 미 정보기관의 문건 내용을 스스로 부정해 달라는 황당한 요구였습니다. 자신의 오보가 자초한 재판임에도, 그 태도는 뻔뻔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MBC 박건식 PD는 동종 의식과 대학 동문 의식 때문인지 봉지욱을 위해 자술서를 제출해 주었습니다. 이는 한국 언론계의 명백한 병폐입니다. 아무리 악인일지라도 사법 처리는 공정해야 합니다. 전두환이기 때문에 더더욱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광주정신입니다.
결국 법원은 보도의 진위 여부는 판단하지 않은 채, 이를 언론의 보도 자유 영역으로 인정하며 JTBC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판결 직후 봉지욱의 태도는 읍소에서 뻔뻔한 조소로 돌변했습니다. 제가 페이스북 메시지로 오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자, 그는 “뭐 하시는 분이냐”며 인신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나아가 제가 귀국하면 공항에서 체포되도록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명예훼손죄의 악용을 막아야 할 기자가 도리어 이를 협박 수단으로 삼는 모습은 제정신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메일로 말다툼이 이어지자, 그는 난데없이 제가 가진 김용장 관련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제가 뉴스본부장을 참조인에 넣어 함께 보내겠다고 제안하자, 그는 “그런 자료 없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다”며 신경질적으로 거부했습니다.
7. 뉴스타파 이적과 반복되는 오보의 굴레
봉지욱은 실제로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이 승승장구했습니다. 손석희, 이규연, 봉지욱이라는 견고한 카르텔에 대다수 언론이 침묵했기에, 제가 이 사실을 호소할 곳은 조선일보나 프레시안 정도뿐이었습니다.
그러던 2022년 11월, 봉지욱이 갑작스럽게 ‘뉴스타파’로 이적했습니다. 저는 평소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해 온 뉴스타파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단체인 ‘반올림’의 영문 블로그를 7년간 자원봉사로 관리해 온 인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에게 봉지욱의 과거 오보 행적을 고발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답장은 없었습니다.
이후의 사태는 모두가 아는 대로입니다. 봉지욱과 뉴스타파는 대선 정국에서 윤석열 후보 검증과 관련해 또다시 대형 오보 논란을 일으켰고, 정권의 압수수색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오보 행태가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국가 권력에 의한 언론 탄압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시적으로 고발을 중단했습니다. 뉴스타파는 해외 언론계와의 연대에 기대를 걸었지만, 취재 소스였던 신학림 전문위원이 김만배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적 연대의 동력은 상실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을 구한 것은 법정 공방 속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민초들의 지지였습니다. 최근 뉴스타파를 사퇴한 봉지욱은 페이스북에서 내부 구성원들을 향해 ‘검사 편’이라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과오를 깨닫지 못한 듯합니다.
(제공=설갑수)
결론: 5·18 진조위의 조직적 은폐와 끝나지 않은 책임 추궁
이제 글을 다시 출발점인 5·18로 되돌려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시사에 밝은 이들도 김용장 사건은 기억할지언정, 특별법으로 구성되었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이하 진조위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2019년 12월 출범해 2023년 말까지 200억 원 이상의 혈세를 쓴 진조위는 무능하다는 비판 속에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을 마쳤습니다.
진조위의 핵심 조사 대상 중 하나가 바로 김용장 증언의 진위였습니다. 실제로 진조위는 미국에서 검증 자료를 찾으려다 실패했고, 김용장을 직접 면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진조위가 발간한 최종 보고서 어디에도 김용장의 이름이나 면담 결과는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발포 명령자 규명에 버금가는 중대한 과제를 다루고도 조사 내용을 통째로 들어낸 명백한 은폐입니다.
이 은폐의 중심에는 과거 JTBC 취재팀과 미국에 동행했고, 이후 진조위의 핵심 요직인 조사1국장을 지낸 최용주가 있었습니다. 공적 목표를 사적 이익과 안위를 위해 훼손한 참담한 사례입니다.
2024년 5월 광주MBC 보도에 따르면, 최용주는 당시 미국 관료들을 면담 조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기밀 해제 문건 검토로 충분했다”고 변명했습니다. 미국 측이 대사관 전문을 재탕해 공개하는 수준에 그친 상황에서, 당시 국무성 한국국장 로버트 리치나 백악관 NSC의 도널드 그레그 등 생존해 있던 핵심 인물들을 서면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직무유기입니다.
현재 김용장 사건에 얽힌 JTBC 인사들 가운데 그곳에 남아 있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짜뉴스로 만들어낸 나비효과에 대해 손석희, 이규연, 봉지욱, 김어준, 그리고 최용주는 지금이라도 역사와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해명해야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의로운 5월의 봄은 다시 찾아왔습니다.
기고자 : 설갑수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는 미국 노동 전문지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실록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초판 영문 공동 번역자이기도 합니다.
※ 이상은 설갑수 작가가 스스로 기고한 것으로서 본사의 입장과 무관합니다. 이 기고문에서 거론된 인물의 반론도 환영합니다.
평화나무 news@logosian.com
최근 한국 사회에서 오보와 음모론에 대한 비판 여론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다소 늦었지만,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음모론과 오보를 양산해 온 김어준이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무척 고무적인 변화입니다.
저 또한 정정과 사과를 거부한 거대 언론과 유튜브 방송이 조직적으로 생산한 오보의 피해자입니다. 만일 그 피해가 단순한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사적 손해에 그쳤다면, 분하더라도 잊고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그 오보가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과정에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민간인 학살이자 가장 숭고한 시민 항쟁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조사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는 다소 길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사안이 엄중하고, 손석희·김어준·봉지욱 등 등장인물의 면면도 결코 가볍지 않은 만큼, 독자 여러분께서 끝까지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 ‘꿈의 증인’ 김용장의 등장과 명백한 거짓말
어쩌면 대중의 망각과 은폐야말로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었고, 그들은 이미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5·18의 이른바 ‘꿈 같은 증인’ 김용장 사건이 바로 그렇습니다.
2019년 3월부터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와 손석희의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용장은, 1980년 당시 광주에서 근무한 미 육군 군사정보관을 자처하며 5·18에 관한 온갖 주장을 쏟아냈습니다.
2019년 5월 13일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용장 씨 (출처=JTBC)당시 보안사 요원이었던 허장환과 함께 등장한 김용장의 발언은 처음부터 거짓임이 명백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틀렸기 때문입니다. 김용장은 1980년 당시 광주에 CIA 요원이나 미 국무성 직원이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광주에는 미 국무성 소속 미국문화원, 즉 USIS가 엄연히 존재했고, 당시 문화원장은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에 생존해 있습니다. 진짜 미국 정보요원이라면 문화원이 어느 기관 소속인지 모를 리 없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팩트체크만 거쳤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소동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사기극을 걸러낸 언론인들도 있었습니다. 허장환은 김용장을 앞세워 MBC ‘PD수첩’에 먼저 접촉했으나, 정황을 판단한 ‘PD수첩’ 측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오랫동안 5·18 탐사보도에 앞장섰던 광주MBC 역시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단신으로만 다루며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짜 증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곳이 바로 JTBC의 손석희, 이규연, 봉지욱이었습니다. JTBC는 제대로 된 검증 없이 2019년 3월부터 ‘뉴스룸’과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김용장의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그 결과 사회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2. 본질을 훼손한 복잡한 거짓말과 광주의 열광
40여 년 동안 5·18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모든 것을 걸어온 광주는 누구보다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5·18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모든 의혹을 단숨에 해결해 줄 것처럼 보였던 ‘미 군사정보관’의 등장은 그야말로 꿈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허장환과 김용장의 증언은 오히려 광주민주화운동의 본질을 깊이 훼손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복 차림으로 투입된 특수요원, 이른바 ‘편의대’가 시민들을 선동해 무기를 탈취하고 시설에 방화하게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시민군이 자발적으로 무장해제를 시작하자, 시민군의 폭력성을 부각하려던 전두환의 의도에 따라 계엄군이 서둘러 유혈 진압에 나섰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의로운 항쟁이라는 5·18의 본질을 부정하는 주장입니다. 또한 무기 회수를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킨 시민들을 모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소설가 한강의 표현대로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결과적으로 조롱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발포 명령자 규명과 미국의 개입 여부 등 풀리지 않은 의문 속에서 평생 고통받아 온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김용장의 거침없는 발언은 강렬한 열광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언론의 상업화와 최용주의 이상한 제안
진상규명을 향한 유족들의 간절한 염원을 ‘가짜 증인’을 통해 상업화하려 한 손석희, 이규연, 봉지욱의 행태야말로 진짜 문제였습니다.
그해 3월 말, 5·18기념재단 상임이사와 JTBC 취재팀은 김용장이 거주하던 피지로 건너가 그의 귀국을 설득했습니다. 이후 봉지욱과 취재팀은 미국 현지 취재를 떠나는 등 일련의 촌극을 이어갔습니다.
이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과정에서 저에게도 석연치 않은 제안이 왔습니다. JTBC의 자문역으로 미국 취재에 동행하기로 한 최용주가 저에게도 동참을 권유한 것입니다.
최용주는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간부였으며,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권유로 도청을 떠났던 인물이었습니다. 항쟁 이후 복역을 마치고 미국에서 농촌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은퇴 후 5·18기념재단의 권유로 관련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깊이 있고 깔끔한 그의 연구 실적을 존경했습니다. 평소에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수많은 5·18 자료를 공유하던 사이였습니다. 그렇기에 김용장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의논한 사람도 최용주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미국 국방정보원, 즉 DIA와 육군 정보국 INSCOM의 비밀 해제 문서를 근거로, 당시 광주에서 근무한 한국인 군사정보관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짚으며 의구심을 전했습니다. 최용주는 별다른 반론 없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저에게 보조 취재 동행을 제안했습니다. 그의 의도가 의아했던 저는 결국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4. 첫 번째 경향신문 기고와 JTBC의 부실 보도
JTBC가 5·18 주간에 맞춰 ‘김용장 속편’을 제작하기 위해 미국 취재를 오가는 동안, 저는 INSCOM과 DIA에 김용장 관련 정보공개, 즉 FOIA를 청구하고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5월 초 귀국한 김용장은 국회와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보고서가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반복하며 헤드라인을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JTBC 취재진은 백악관 NSC 아시아 안보 담당이었던 도널드 그레그와의 인터뷰를 취소한 상태였습니다. 김용장의 보고서가 실제로 백악관까지 올라갔다면, 이를 검토했을 핵심 인물이 바로 그레그였는데도 말입니다. 훗날 봉지욱은 예산 부족으로 인터뷰를 취소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대형 방송사가 예산 핑계를 대는 것도 모자라, 그런 빠듯한 예산으로 저에게까지 동행을 제안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기만이었습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저는 최용주에게 미국 취재에서 김용장의 신원을 확인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망설이다가, 1980년 당시 DIA 한국지부장이었던 제임스 영을 만나 확인했으나 그가 김용장을 모른다고 답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경향신문 손제민 기자의 도움으로 2019년 5월 16일 오후, 김용장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는 기고문을 인터넷판에 게재했습니다.
그날 저녁 봉지욱의 미국 취재분이 방영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글이 올라가자마자 저는 최용주에게 링크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최용주에게서 쌍욕이 섞인 격앙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신이 믿고 말해준 ‘신원 미확인’ 사실을 방송 전에 먼저 폭로해 신의를 저버렸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방송에서 이 사실이 다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방영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제임스 영의 증언과 자막을 매우 모호하게 처리했습니다. 시청자들이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없도록 사실상 은폐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방송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김용장이 군사정보관 시절 받았다는 표창장을 화면에 비춘 것입니다. 정지화면으로 확인해 보니 그것은 군사정보관 표창이 아니라, 계약직 통역관, 즉 Language Specialist에게 수여된 근속 감사장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통역관과 군사정보관의 직무 차이에 대해 미 정보기관에 추가 정보공개를 요청했습니다.
5. 김어준의 가짜뉴스 비호와 두 번째 폭로
첫 기고 이후 김용장과 허장환의 신뢰성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5·18의 한 서린 감정 속에서 진실만을 갈구하던 일부 대중은 저에게 살해 협박 메일까지 보내며 비난했습니다.
그렇게 묻혀가던 가짜 증인들을 다시 살려낸 인물이 바로 김어준이었습니다. 김어준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과 TBS ‘뉴스공장’에 김용장을 세 차례나 출연시켰고, 유례없이 공손한 태도로 그를 비호했습니다.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김어준은 제 기고문을 의식한 듯 매체명을 숨긴 채 질문을 던졌고, 김용장은 본질을 비껴간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분명했습니다. 미 군사정보관을 자처한 사람이 1980년 광주에 미 국무성 소속 문화원장이 상주하고 있었음에도 “국무성 직원이 없었다”고 공언한 무지와 사기성,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봉지욱과 최용주의 미국 취재 또한 코미디에 가까웠습니다. 제임스 영 전 DIA 한국지부장은 김용장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고, ‘한국인 군사정보관’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만 눈치챌 수 있는 자막과 오디오의 괴리를 이용해 이 사실을 비겁하게 얼버무렸습니다.
제 경고를 무시하고 무리한 동행을 제안했던 최용주의 비상식적인 행각을 보며, 저는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5월 말, 미 정보기관으로부터 “김용장이 작성했다는 문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식 답신을 받았습니다. 미국 정보계의 관례상, 30년이 지난 문건에 대해 비공개 사유가 아닌 ‘존재 자체의 부재’를 통보하는 것은 그 문건이 아예 없다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저는 INSCOM 공보국을 통해 계약직 통역인 ‘언어전문가’가 ‘군사정보관’으로 직책 전환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최종 답변을 5월 30일 받아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 6월 3일, 저는 두 번째 경향신문 기고를 냈습니다. 완벽한 소스를 토대로 김용장의 신분 허위와 보고서 부존재를 공식적으로 논증한 글이었습니다.
그러자 광주 오월단체 등 제도권은 격렬하게 분노하며 저를 비난했습니다. 저는 유족들의 아픔을 생각해 쏟아지는 명예훼손성 반론과 공격을 묵묵히 감내했습니다. JTBC는 이 내홍을 즐기기라도 하듯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 와중에 뜻밖에도 보수 언론인 조갑제가 제 글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소개하며 김용장이 가짜임을 강조했습니다. 5·18 당시 광주를 직접 취재하고 부마항쟁 기록 등을 남겼던 그가 최근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언론 본류로 돌아온 것을 두고 “변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변한 것은 그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또한 그해 8월, MBC 박건식 PD는 ‘월간 신문과방송’ 기고를 통해 ‘PD수첩’이 이미 김용장 일행의 신빙성을 문제 삼아 아이템을 거절했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6. 전두환의 명예훼손 소송과 봉지욱의 안면몰수
JTBC의 침묵이 이어지던 2019년 12월, 봉지욱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전두환이 자신과 JTBC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으니 자술서를 써 달라는 읍소였습니다.
전두환 측이 내세운 증거가 제 기고문과 조갑제, 박건식의 글뿐이니, 제가 어렵게 수집한 미 정보기관의 문건 내용을 스스로 부정해 달라는 황당한 요구였습니다. 자신의 오보가 자초한 재판임에도, 그 태도는 뻔뻔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MBC 박건식 PD는 동종 의식과 대학 동문 의식 때문인지 봉지욱을 위해 자술서를 제출해 주었습니다. 이는 한국 언론계의 명백한 병폐입니다. 아무리 악인일지라도 사법 처리는 공정해야 합니다. 전두환이기 때문에 더더욱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광주정신입니다.
결국 법원은 보도의 진위 여부는 판단하지 않은 채, 이를 언론의 보도 자유 영역으로 인정하며 JTBC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판결 직후 봉지욱의 태도는 읍소에서 뻔뻔한 조소로 돌변했습니다. 제가 페이스북 메시지로 오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자, 그는 “뭐 하시는 분이냐”며 인신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나아가 제가 귀국하면 공항에서 체포되도록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명예훼손죄의 악용을 막아야 할 기자가 도리어 이를 협박 수단으로 삼는 모습은 제정신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메일로 말다툼이 이어지자, 그는 난데없이 제가 가진 김용장 관련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제가 뉴스본부장을 참조인에 넣어 함께 보내겠다고 제안하자, 그는 “그런 자료 없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다”며 신경질적으로 거부했습니다.
7. 뉴스타파 이적과 반복되는 오보의 굴레
봉지욱은 실제로 먹고사는 데 지장 없이 승승장구했습니다. 손석희, 이규연, 봉지욱이라는 견고한 카르텔에 대다수 언론이 침묵했기에, 제가 이 사실을 호소할 곳은 조선일보나 프레시안 정도뿐이었습니다.
그러던 2022년 11월, 봉지욱이 갑작스럽게 ‘뉴스타파’로 이적했습니다. 저는 평소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해 온 뉴스타파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단체인 ‘반올림’의 영문 블로그를 7년간 자원봉사로 관리해 온 인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에게 봉지욱의 과거 오보 행적을 고발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답장은 없었습니다.
이후의 사태는 모두가 아는 대로입니다. 봉지욱과 뉴스타파는 대선 정국에서 윤석열 후보 검증과 관련해 또다시 대형 오보 논란을 일으켰고, 정권의 압수수색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오보 행태가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국가 권력에 의한 언론 탄압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시적으로 고발을 중단했습니다. 뉴스타파는 해외 언론계와의 연대에 기대를 걸었지만, 취재 소스였던 신학림 전문위원이 김만배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적 연대의 동력은 상실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을 구한 것은 법정 공방 속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민초들의 지지였습니다. 최근 뉴스타파를 사퇴한 봉지욱은 페이스북에서 내부 구성원들을 향해 ‘검사 편’이라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과오를 깨닫지 못한 듯합니다.
(제공=설갑수)결론: 5·18 진조위의 조직적 은폐와 끝나지 않은 책임 추궁
이제 글을 다시 출발점인 5·18로 되돌려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시사에 밝은 이들도 김용장 사건은 기억할지언정, 특별법으로 구성되었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이하 진조위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2019년 12월 출범해 2023년 말까지 200억 원 이상의 혈세를 쓴 진조위는 무능하다는 비판 속에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을 마쳤습니다.
진조위의 핵심 조사 대상 중 하나가 바로 김용장 증언의 진위였습니다. 실제로 진조위는 미국에서 검증 자료를 찾으려다 실패했고, 김용장을 직접 면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진조위가 발간한 최종 보고서 어디에도 김용장의 이름이나 면담 결과는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발포 명령자 규명에 버금가는 중대한 과제를 다루고도 조사 내용을 통째로 들어낸 명백한 은폐입니다.
이 은폐의 중심에는 과거 JTBC 취재팀과 미국에 동행했고, 이후 진조위의 핵심 요직인 조사1국장을 지낸 최용주가 있었습니다. 공적 목표를 사적 이익과 안위를 위해 훼손한 참담한 사례입니다.
2024년 5월 광주MBC 보도에 따르면, 최용주는 당시 미국 관료들을 면담 조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기밀 해제 문건 검토로 충분했다”고 변명했습니다. 미국 측이 대사관 전문을 재탕해 공개하는 수준에 그친 상황에서, 당시 국무성 한국국장 로버트 리치나 백악관 NSC의 도널드 그레그 등 생존해 있던 핵심 인물들을 서면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직무유기입니다.
현재 김용장 사건에 얽힌 JTBC 인사들 가운데 그곳에 남아 있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짜뉴스로 만들어낸 나비효과에 대해 손석희, 이규연, 봉지욱, 김어준, 그리고 최용주는 지금이라도 역사와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해명해야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의로운 5월의 봄은 다시 찾아왔습니다.
기고자 : 설갑수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는 미국 노동 전문지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실록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초판 영문 공동 번역자이기도 합니다.
※ 이상은 설갑수 작가가 스스로 기고한 것으로서 본사의 입장과 무관합니다. 이 기고문에서 거론된 인물의 반론도 환영합니다.
평화나무 news@logo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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