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6

제국의 후예들 - 대한제국 후예들의 삶으로 읽는 한반도 백년사| 정범준 2006

제국의 후예들 | 정범준 | 알라딘


제국의 후예들 - 대한제국 후예들의 삶으로 읽는 한반도 백년사
정범준 (지은이)황소자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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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근대와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며 조선의 왕조는 무너졌고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불우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만화와 드라마에서 상상된 황실은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고 로맨스가 난무하는 공간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을 떠돌다 2005년 시신이 되어서야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영친왕의 아들 이구가 그 대표적인 경우.

이 책은 기존 언론의 선정적인 태도와 대중의 동정 섞인 시각을 배제하고 지난 100년간 펼쳐진 이들 황손들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고자 한다.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과 그의 일본인 왕비 이방자(본명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의친왕 이강과 덕혜옹주, 이구와 그의 전 부인 줄리아 뮬록과 민갑완 등의 일생을 각 장마다 담아냈다.

마치 영화 같은 느낌마저 전해주는 이들의 비극적이고 애절한 역사가 먼저 눈에 띈다.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옹주는 망국의 공주라는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에 시달렸고, 일본인 황후 이방자는 한·일 간의 불협화음을 감내해야 했다. 한편 MIT를 나온 청년 건축가로 성장한 이구는 푸른 눈의 여성 줄리아와 사랑에 빠지지만 황실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그녀를 매몰차게 버리기도 한다.

그동안 황손들에 대해 잘못 알려졌던 사실들을 르포라이터 경력을 지닌 지은이의 치밀한 자료 조사로 바로잡은 것도 주목할 부분. 이방자의 석녀(石女)설, 덕혜옹주가 남편에게 구타당해 유산을 했다는 설 등의 오류를 공개한다. 또한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이강에 대한 또다른 평가, 해방 후 주저없이 일본인으로 귀화한 황족의 이야기 등에서 "민족의식의 구심점", "거지가 된 왕자" 등 기존 황실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을 지적한다.


목차


프롤로그

1장 고난의 황태자 - 영친왕 이은
일본 황태자의 방한 / 타국의 밤 / 황태자의 탄생 / 단 한 번의 만남 / 황태자의 유년 / 낙선재의 조약돌 / 엄 황귀비의 흥거 / 가례를 올리다 / 민갑완, 잔인한 날들의 시작 / 이어지는 불행 / 상하이로 망명을 떠나다 / 싹트는 민족의식 / 유럽 여행 / 그대에게 구하는 바 없노라 / 차라리 죽기로 마음먹다 / 제왕의 풍모 / 전쟁의 소용돌이 / 사라져라 번뇌어 / 해방 혹은 종전 / 신정부에 충성을 다하겠다 / 영친왕저 문제 / '일본인'이 되다 / 약해지는 황태자 / 다시 쓰러지다 / 세 번의 통곡와 영면

2장 두 조국의 사이에서 - 이방자
유년의 기억 / 엄격한 황실 교육 / 약혼 발표 / '기막힌 법' 황실전범 / 추모시와 연가 / 신혼의 황복 / '석녀' 이방자 / 첫 방한 / 첫 아들 진을 하늘로 보내고... / 새로운 신앙 / 국상을 치르다 / 이구의 탄생 / 휩쓸려가는 사람들 / 해방과 6.25 / 남편의 분노를 보다 / 막다른 곳 / 일본이여 안녕, 일본이여 안녕 / 문화재보호법 / 쪽발이 물러가라 / 고독한 이를 위해 기도해 달라 / 장애인 복지사업 / 명휘와 가혜 / 애끓는 모정 / 여로의 끝

3장 황태자 아들과 탄광부의 딸 - 이구와 줄리아
폭풍우 속의 출발 / 미국 생활 / 줄리아라는 여성을 만나다 / 처음 밟은 한국 땅 / 다툼과 균열 /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여 한국을 떠나다 / 아리타 기누코 / 사기 사건에 휘말리다 / 영구 귀국 / 줄리아의 마지막 편지 / 아카사카에 지다

4장 덕수궁의 금지옥엽 - 덕혜옹주
황제의 여인과 자녀들 / 덕수궁의 꽃이 태어나다 / 황제의 밀약 / 아버지 고종 황제의 붕어 / 끌려가는 옹주 / 순종 황제의 붕어 / 고아가 된 덕혜옹주 / 병이 시작되다 / '고아들'의 결혼 / 아기씨에 대한 추억 / 병의 재발 /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 언니의 기억 / 김을한의 충격적인 증언 / 이혼이 성립되다 / 정혜의 죽음 / 성대한 환대 / 덕수궁의 꽃이 지다

5장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왕자 - 의친왕 이강
불우한 탄생 / 보빙대사 활동 후 귀국 / 유럽 순유는 없었다? / 역모에 연루되다 / 이토 히로부미의 계략 / 신변의 위협 / 엇갈리는 평가 / 배일과 울분의 나날 / 3.1운동과 그의 역할 / 가장 빛나는 불꽃 / 정운복의 역할 / 유고에 담긴 뜻 / 다시 어둠 속으로 / 경비관계철 / 그의 최후 / 의친왕비의 부덕

6장 일본인이 된 황족 - 이건
출생의 비밀 / 일본식 교육 / "나는 천황을 존경하기로 결정지었다" / 재빠른 적응 / 이혼과 소송

7장 원폭에 희생된 미남 황손 이우
운현궁의 새주인 / 일본 유학 / '민족과 해협' / 박영효의 기지와 열성으로 결실을 맺은 결혼 / "나는 일본 것이라면 병적으로 싫습니다" / 안타까운 죽음

8장 남아 있는 황실의 후예뜰
황실 재산 몰수 / 의친왕의 12남 9녀 / 살아 있는 황손들

에필로그
참고문헌
주석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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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963년 11월 22일 이은 일가는 영구 귀국했다. 이구는 줄리아에게 '이제 한국은 왕도 왕자도 없는 사회이고 건설과 발전의 의욕이 높은 나라이므로 (...) 한국의 발전에 기여하며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자'고 약속했다. 물론 줄리아는 동의했다. 이구 부부는 한남동 외국인 아파트와 낙선재를 오가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이구는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첫 방한 때도 기자들에게 '한 사람의 '서민'으로 이땅에서 일했으면......' 하는 소망을 피력했었다. 하지만 그런 소박한 소망마저 자신의 뜻대로 이룰 수 없었다. 황실의 친인척과 종친들에게 이구는 '평범한 시민'이 아니었다.

(...) 더욱 참기 힘들었던 것은 종친회의 이혼 강요였다. 종친들은 이구에게 황손으로서의 의무를 요구하며 줄리아에게 이혼을 강요했다. 영친왕이 일본 여자와 결혼하여 피를 흘렸는데 이구마저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종친들의 강요는 이구가 귀국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 '이유도 모른 채 1964년 4월에 난 미국으로 보내졌습니다. 아무 설명도 없이 미국에 가 있으면 나중에 부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난 6개월 동안 미국에 있는 아파트에서 혼자 지냈어요. 한국에 돌아오라는 연락이 오거나 남편이 미국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면서요. 당신(이구)에게 새로운 여자를 들이기 위해 나를 미국으로 보냈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 본문 267~269쪽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정범준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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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77년, 부산으로 이주했다. 부산에서 초?중?고를 다 졸업했다. 추첨으로 1986년 금성(錦城)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제일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됐다. 그곳에서 나는 평생의 지기(知己)를 만났다. 금성고 졸업(1989년)은 롯데 자이언츠 창단 어린이회원 활동(1982년)과 함께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경력이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1997년 8월)했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잠시 공부했다(2000년 1학기). 2000년 5월 〈넷벤처〉라는 잡지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7개월 만에 잡지가 폐간되어 실업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 일자리를 구할 때마다 함께 일하게 된 동료와 상사들이 한결같이 좋았다.
지금까지 《제국의 후예들》, 《이야기 관훈클럽》, 《거인의 추억》, 《작가의 탄생》, 《마흔, 마운드에 서다》, 《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 《돌아오라 부산으로》, 일곱 권의 책을 냈다. 이 책은 정범준이란 필명을 건 여덟 번째 책이다. 이 필명에는 나를 포함한 네 사내의 인연과 우정이 깃들어 있다. 접기

최근작 : <이광환 야구 이야기>,<흑백 테레비를 추억하다>,<마흔, 마운드에 서다> … 총 7종 (모두보기)
정범준(지은이)의 말
그동안 언론이나 방송은 그들의 불우한 삶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황손 아무개가 양로원에서 쓸쓸히 죽었다거나, 무허가 단칸방에 머물고 있다는 식이었다. 나에겐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 이방자 등 주요인물의 생에에 대한 올바른 고증과 복원이 훨씬 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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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언제 끝이 났는가? 어정쩡한 연결고리에 대하여



순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가? 아니면 대한제국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황제'인가? 재위시 '융희'라는 연호를 사용했던 순종은 대한제국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황제임에는 틀림 없지만, 조선의 마지막 '왕'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리가 흔히 '국치일'로 기억하는 1910년 8월 27일의 한일합방을 통해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호를 조선으로, 황제를 '왕'으로 격하시켰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니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어져버린 것이 아니라, 일제는 조선의 '왕'을 비록 꼭두각시이기는 하지만 그대로 둠으로써 그들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조선백성들의 저항을 조금이나마 무마시키려 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임금을 '천황'이라하고 '천자'와 제후인 '왕'의 봉건관계가 더 익숙한 일본의 입장에서는 식민지 조선을 그대로 일본과는 분리된 제후국 정도의 '국가'로 인식하는데는 모순이 없었나 보다.

아무튼 순종이 붕어한 1926년 이후 황태자에서 세자로 격하되었던 '영친왕' 이은이 조선의 28대 국왕으로서 왕위를 이었고, 1945년 일본이 미국에 패하고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천황'만 남겨두고 모든 왕공족 제도가 폐지되면서 '평민'으로 격하될때까지 이은은 명목상 조선의 왕으로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비록 식민지였지만 일국의 왕이 볼모로서 식민지 종주국의 일개 장교로(나중에는 중장까지 진급했다지만) 복무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국민에게는 참을 수 없는 수치이지만, 왕위를 강제로 빼앗긴 것도 공식적으로 퇴위하지도 않은채, 정적인 이승만에 의해 귀국을 방해당하고 조선왕조의 법적/제도적인 청산도 없이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은 뭔가 허술해 보인다.

건국한지 60년이나 된 '대한민국'이 아직도 일제 잔재와 친일파 정리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은, 부패/무능한 임금의 목을 쳐본 민주주의 쟁취의 경험도 조선왕조의 완전한 단절이나 계승도 없이, 친일부역자에 대한 청산도 독립투사에 대한 평가도 거치지 않고 미군정에 의해 갑자기 탄생한 '공화정' 자체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몇달전 한겨례21에서 우연히 만난 '대한제국 마지막 황손 이우, 야스쿠니에 있다'라는 기사를 읽은 후 관심을 가지게 된 '대한제국' 후손들의 삶과 행적을 살펴보다 우연히 '정범준'이라는 필명을 쓰는 같은 세대 작가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과대평가나 폄훼없이 여러 인물들의 행적에 대해 소상히 쓴 노력이 돋보였고, 또한 능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도도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친 파도를 헤쳐가다 좌절한 황실 식구들에 대한 연민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왕자'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의친왕' 이강공과 운현궁으로 입적된 그의 차남 이우공의 행적에서, 의친왕이 상해 탈출에 성공했다면, 또는 이우공이 히로시마로 떠나지 않고 살아서 해방을 맞았다면 오늘의 우리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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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지영이 아빠 2007-08-2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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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근대화가 그려낸 단면



정범준 씨가 쓴 <제국의 후예들>은 고종의 직계 후손들(영친왕 이은, 의친왕 이강, 덕혜옹주, 이건, 이구 등)이 대한제국이 몰락해 버린 이후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 인물별로 통시대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족들이 실상은 어떠한 삶을 살아갔는가에 대해서 저자는 다른 나라의 왕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우리나라에 있었던 왕실이나 왕족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지도 못한 채 잠깐의 화제거리로만 등장하고 마는 현실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삼아 그가 나름대로 조사한 내용과 인터뷰 내용 등을 기반으로 그네들의 삶에 대해서 접근해 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후예들이 과연 왕조가 몰락한 이후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서 인물사적으로 접근해서 참고해서 보기에는 나름대로 괜찮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의 이행 그리고 그 이후에 근대화가 착실하게 진행되어 실패하지 않고, 고종의 구상대로 입헌군주제의 틀이 뿌리를 내렸다면 왕족으로서 그네들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방식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에 그네들은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무거운 짐을 얹고 일생을 살아야 했음을 저자는 조사한 바를 토대로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몰락한 왕조의 왕족들의 일생은 분명 우리네 근대의 슬픈 자화상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읽는 내내 씁쓰름한 감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덧붙여 왕실이나 왕족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데에는 한국의 근대 역사에 있어서 입헌군주정의 논의가 영향력을 상실하고 아예 자취를 감추게 것과 동시에 민주주의나 공화정 혹은 사회주의 등으로 정체(政體)에 대한 관심을 돌리게 된 것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한 국가의 몰락에 대해서 어찌 되었든 간에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군주 및 그의 측근들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반영된 것으로도, 왕족들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한 명의 시민 혹은 국민으로 인식하게 되는 가운데 근대 사회의 사회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바뀌어 버린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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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香 2006-09-3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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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요청하신 정범준 작가의 <제국의 후예들>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제국의 후예들: 몰락한 왕조의 혈족과 격동의 백년사

<제국의 후예들>(정범준 저, 2006)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부터 몰락, 식민지기, 해방, 분단,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구 황실 일가의 개인적 삶의 궤적을 추적하여 한반도 근현대사 100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역사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황실의 거시적 정치사나 제도사 대신 고종과 순종, 의친왕 이강, 영친왕 이은, 덕혜옹주, 이우, 이구 등 왕족 개개인의 선택과 비극적 운명에 초점을 맞춘다.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하면서 왕공족(王公族)이라는 기형적 신분 체제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체제 안정과 내선일체 홍보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영친왕 이은은 불과 열한 살의 나이에 인질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도일하여 일본 황족 마사코(이방자)와 정략결혼을 맺었고, 철저히 일본 군인으로 육성되었다.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 역시 어린 나이에 대마도 번주 가문의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치렀으며, 망국의 울화와 정신질환, 이혼과 딸의 실종이라는 극단적 비극을 겪었다.

반면 황실 내부의 대응은 일률적이지 않았다. 의친왕 이강은 상해 임시정부 탈출을 기도하는 등 끊임없이 항일과 독자적 노선을 모색했고, 그의 아들 이우는 일본 육군 장교가 되어서도 한국인 정체성을 고수하려 분투하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생을 마감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후예들의 비극은 종결되지 않았다. 공화정을 선포한 이승만 정권은 황실의 복권 가능성을 경계하며 이들의 귀국을 가로막고 황실 재산을 국유화했다. 제국의 후예들은 조국과 일본 양쪽 모두에서 버림받은 무국적 상태의 디아스포라로 전락했다. 1963년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서야 영친왕 부부와 덕혜옹주는 귀국할 수 있었으나, 이미 병마와 노환으로 심신이 황폐화된 상태였다. 마지막 황세손 이구는 미국과 일본을 떠돌며 건축가이자 사업가로서의 정체성과 '황세손'이라는 굴레 사이에서 방황하다 2005년 도쿄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책은 이들의 엇갈린 궤적을 꼼꼼한 사료와 구술을 통해 담아내며, 국가와 개인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비극의 현장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평론] 비운의 왕조를 넘어선 보편적 경계인의 초상

정범준의 <제국의 후예들>은 한국 근현대사 서술에서 오랫동안 양극단으로 소비되던 황실 담론—식민지 근대화론의 무능한 공범이거나, 감상주의적 민족주의의 순교자—을 벗어나 개인의 실존적 조건에 밀착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취를 지닌다.

책의 가장 뛰어난 미덕은 황실 인물들을 탈신화화하는 동시에 탈악마화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황실이 지녔던 무능과 구체제의 한계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거대한 제국주의 폭력과 근대 국민국가 수립이라는 이중의 격랑 속에서 개인이 겪어내야 했던 고통을 정밀하게 기록한다. 영친왕과 이구의 삶은 특정 국가의 충성스러운 신민이 되기를 강요받았으나 끝내 온전한 국민으로 정착하지 못한 전형적인 '경계인'의 비극을 드러낸다.

세계사적 시각에서 볼 때, 이들의 삶은 20세기 합스부르크, 로마노프, 오스만 등 몰락한 유라시아 제국 황족들의 유랑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해체되었을 때 국적과 정체성을 강제로 박탈당한 이들은 제국주의 권력의 선전 도구로 소비되다가, 냉전과 민족주의 공화정의 대두 속에서는 기피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취했던 배타적 봉쇄와 대중의 냉담은 '단일민족'과 '국민국가'라는 단일한 틀에 포섭되지 않는 경계인을 어떻게 지워버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쉬운 지점은 풍부한 일화와 기록에 비해 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 그리고 초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구조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이 다소 약하다는 점이다. 사료의 나열이 종종 개인의 기구한 운명론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어, 역사적 사건들이 빚어낸 구조적 폭력성보다는 개인의 한탄과 비장미가 두드러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국가주의적 애국심이나 맹목적 민족의식의 렌즈를 걷어내고 읽을 때 훨씬 깊은 울림을 준다. 특정 국가나 민족이라는 협소한 범주를 넘어, 20세기 야만의 시대에 국가와 체제의 폭력 아래 부유해야 했던 한 인간 집단의 실존적 비극을 다룬 '보편적 인간의 기록'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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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준 《제국의 후예들》(2006) — 1,000단어 요약과 평론

부제: 대한제국 후예들의 삶으로 읽는 한반도 백년사 황소자리, 2006년, 559쪽

브런치

정범준의 《제국의 후예들》은 1910년 대한제국의 멸망 이후 황족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추적한 역사 르포이자 집단전기이다.

이 책의 핵심은 황실의 복권이나 왕정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제국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된 황족들의 삶을 통해 식민지배, 해방, 분단, 공화국 수립의 역사를 다시 읽는 데 있다.

저자는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의친왕 이강, 덕혜옹주, 이구와 줄리아 뮬록, 이건과 이우 등 황실 구성원들의 생애를 재구성한다. 당대 신문과 문헌, 회고록, 후손 인터뷰 등을 활용하면서 기존의 감상적이고 부정확한 황실 이야기를 교정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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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핵심 문제의식 — 제국이 무너진 뒤 황족은 어떻게 되는가

대한제국은 1897년 성립해 1910년 일본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황실 구성원들은 제국과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식민지배 아래에서 일본 황실에 종속된 특수 신분으로 살아야 했고, 1945년 이후에는 공화국 체제 속에서 왕조의 유물처럼 취급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황족들이 두 체제 모두에서 정치적으로 불편한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일제에 그들은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홍보할 수 있는 상징이었고, 해방 이후 한국 정부에는 국민통합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구왕조의 잔재였다.

저자는 이러한 정치적 조건 때문에 황족들이 특권을 누리는 동시에 자유를 잃었으며, 결국 신분과 재산,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2. 영친왕 이은 — 일본 제국에 편입된 조선의 황태자

영친왕 이은(1897~1970)은 이 책의 중심인물이다.

1907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 황실과 군부의 교육을 받았고, 일본 육군 장교가 되었다. 1920년 일본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곧 이방자와 결혼했다.

그의 인생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황태자가 일본 제국의 제도 속에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은은 일본 황실과 가까운 생활을 했고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그를 자발적인 친일 인물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정치적 자유가 극히 제한된 인물이었다.

동시에 그를 독립운동가로 미화할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

저자가 보여주는 이은은 영웅도 반역자도 아닌, 일본 제국에 종속된 황태자라는 모순된 신분을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그는 제국의 보호를 잃었다. 그러나 독립한 조국도 그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 시절 귀국이 실현되지 않았고, 박정희 정부 때인 1963년에야 병든 몸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생애는 한 개인이 두 국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통제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3. 이방자 — 식민지 정략결혼에서 사회복지 활동으로

이방자(1901~1989)는 일본 황족으로 태어나 조선의 황태자비가 된 인물이다.

그녀의 결혼은 일본의 조선 병합 이후 양국 황실을 결합하여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범준은 이방자를 단순한 제국주의의 대리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았지만, 남편과 함께 조선 황실의 몰락을 경험했다. 패전 이후에는 일본 황족으로서의 지위도 상실했다.

특히 저자는 일본이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을 끊기 위해 출산할 수 없는 여성을 일부러 영친왕과 결혼시켰다는 이른바 '석녀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이방자는 두 아들을 출산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방자는 장애인 교육과 복지에 헌신했다. 그의 활동은 과거의 황족이라는 신분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헌신이 결혼의 식민지 정치적 성격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삶에는 제국주의 정책의 수혜자이자 피해자라는 두 측면이 공존한다.

4. 이구와 줄리아 — 왕조의 혈통과 개인의 사랑

이은과 이방자의 아들 이구(1931~2005)는 미국에서 교육받고 건축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미국인 줄리아 뮬록과 결혼했지만, 한국 황실의 후손이라는 지위 때문에 결혼생활에 심한 압박을 받았다.

황실의 혈통을 이어야 한다는 기대는 개인의 결혼과 행복보다 우선시되었다. 부부는 결국 이혼했고, 이구의 삶도 불행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가 2005년 도쿄에서 사망한 것은 대한제국 직계 황실의 역사에서 하나의 상징적인 종결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이야기의 중요한 주제는 왕조가 몰락한 뒤에도 혈통과 가문의 관념이 개인을 계속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왕정은 사라졌지만, 왕조적 사고방식은 가족 내부에서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5. 덕혜옹주 — 식민지배와 여성의 비극

덕혜옹주(1912~1989)는 고종의 딸로,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일본 귀족 소 다케유키와 결혼했으나 정신질환을 겪었고, 오랜 세월 일본에서 생활했다. 1962년 귀국한 뒤에는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냈다.

덕혜옹주의 삶은 흔히 일본 제국주의가 파괴한 한 여성의 운명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정범준은 그녀에 관한 여러 소문과 과장된 이야기를 검토한다. 남편의 폭력, 결혼생활, 질병의 원인 등에 관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들 가운데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역사서술에서 매우 중요하다.

덕혜옹주가 정치적 환경 때문에 고통받았다는 사실과, 그녀의 모든 불행이 특정한 일본인의 악행에서 직접 발생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비극은 식민지배의 폭력뿐 아니라 황실의 가부장제, 여성의 제한된 선택권,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결합된 문제로 읽어야 한다.

6. 의친왕 이강 — 저항하는 황족인가, 무력한 귀족인가

의친왕 이강(1877~1955)은 영친왕과 달리 일본의 지배에 반감을 보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탈출하려던 사건은 그의 생애에서 중요한 장면이다. 그러나 탈출은 실패했고 그는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부에서는 그를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애국적 황족으로 평가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은 그의 정치적 활동과 실제 영향력을 제한적으로 해석한다.

정범준은 이러한 상반된 평가를 비교하면서 의친왕을 일방적으로 미화하지 않으려 한다.

그의 생애는 식민지배에 대한 개인적 반감이 반드시 조직적인 민족해방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황족이라는 신분이 독립운동에서 정치적 상징성을 갖는 동시에 실제 행동을 제약할 수도 있었음을 드러낸다.

7. 이건과 이우 — 일본화와 조선인 정체성 사이

의친왕의 아들 이건(1909~1990)과 이우(1912~1945)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갔다.

이건은 일본식 교육과 생활방식에 적응했고, 패전 후에는 일본에 정착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반면 이우는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일본에 대한 반감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유지한 인물로 소개된다. 그러나 그 역시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고,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피해를 입어 사망했다.

두 사람의 비교는 식민지배 아래 황족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일본에 적응하는 것은 생존의 한 방법이었지만, 그것은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충돌했다. 반대로 일본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더라도 제국의 군사제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8. 평론 — 이 책의 역사학적 의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황실사를 민족주의적인 영웅담이나 비극담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노력이다.

첫째, 저자는 황족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식민통치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일본의 지배는 단순히 폭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결혼, 교육, 군복무, 신분제도 등의 방식으로 황실 구성원들을 제국 체제에 편입시켰다.

둘째, 해방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황실의 후예들에게 1945년은 일본 지배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법적 지위와 경제적 기반의 붕괴였다.

셋째, 잘못된 역사적 소문을 검토한다. 이방자의 출산 능력에 관한 이야기나 덕혜옹주의 결혼생활을 둘러싼 속설에 대한 비판은 역사적 사실과 민족적 감정을 구별하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상당한 분량의 주석과 다양한 자료 조사, 후손들에 대한 인터뷰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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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판적으로 검토할 부분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황실의 비극을 강조하는 서술이 자칫 대한제국의 정치적 책임을 희석할 위험이다.

고종과 대한제국의 지배층은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권력을 행사한 통치집단이었으며, 대한제국 내부의 정치적 갈등과 제도적 한계에 대해서도 책임을 갖는다.

또한 황실 구성원들은 식민지시대의 일반 조선인들과 달리 상당한 물질적 특권을 누렸다. 이들의 고통이 실제였다고 해서 그러한 신분적 불평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은 통치자로서의 책임과 통치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개인에게 가해진 고통이다. 두 문제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9. 일본 황실과의 비교 — 왜 한쪽은 살아남고 다른 쪽은 사라졌는가

이 책에서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흥미로운 문제는 일본 황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운명을 비교하는 것이다.

1945년 일본은 패전했지만 천황제는 폐지되지 않았다. 쇼와 천황은 정치적 권력을 상실했으나 국가의 상징으로 남았다.

반면 대한제국 황실은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독립에도 불구하고 복구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천황제가 새로운 헌법질서 안으로 편입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공화주의와 왕조의 단절이 새로운 국가의 정통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특히 이승만 정부는 대한제국 황실을 새로운 국가의 상징으로 활용하려 하지 않았다. 구왕조의 후예들은 정치적으로 불필요하거나 잠재적으로 불편한 존재였다.

다만 한국에서 왕정복고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이승만 개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화주의 전통, 독립운동의 변화, 해방 후 정치세력의 구성, 왕정복고를 지지하는 실질적 사회세력의 부재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비교는 왕조의 존속 여부가 왕실 구성원의 개인적 덕성보다 국가의 정치적 정통성과 제도적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0. 종합 평가 — 황실의 몰락은 누구의 비극인가

《제국의 후예들》은 황실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책이라기보다 역사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적 평가에서는 세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대한제국의 멸망은 한 국가가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주권을 상실한 사건이다. 황실의 몰락은 오랫동안 특권을 누렸던 지배집단이 정치적·사회적 지위를 상실한 사건이다. 그리고 황실 구성원들의 개인적 불행은 국가와 왕조의 운명에 얽매인 인간들이 겪은 고통이다.

이 세 사건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왕조가 사라진 것을 반드시 민족 전체의 비극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왕조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그 구성원들의 인간적 고통을 무시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

정범준의 성과는 바로 이 마지막 문제를 역사서술의 중심으로 가져온 데 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은 황실 후손들의 이야기가 한국과 일본을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하는 시각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일본 황족이었던 이방자는 한국에서 장애인 복지를 위해 헌신했고, 조선 황족이었던 이건은 일본인으로 살기를 선택했다. 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했던 이우는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이러한 모순은 제국주의가 단지 영토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가족관계까지 재편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결론적으로 《제국의 후예들》의 가치는 대한제국 황실의 정치적 복권이 아니라, 식민지배와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인간이 겪은 모순된 경험을 구체적인 생애를 통해 보여준다는 데 있다.

역사학적으로는 대한제국 황실의 책임 문제와 황족들의 개인적 삶을 분리하여 평가하면서 읽을 때 가장 생산적인 책이다.

자료 범위: 이 평론은 책의 공개 목차, 출판사 소개, 2006년 당시 서평과 역사적 배경에 근거한 재구성이다. 559쪽 본문 전체를 직접 대조한 정밀 독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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