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国における「権威主義的」体制の成立: 李承晩政権の崩壊まで (MINERVA人文・社会科学叢書 71)
by 木村 幹 (Author) Format: Tankobon Hardcover
4.1 4.1 out of 5 star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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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Author
日本統治と解放後韓国の連続と断絶
この著作は、東亜日報グループと李承晩政権の関係を分析することにより、日本統治が解放後の韓国に何を残し、どのような影響を与えたかを分析することを目的としています。前著『朝鮮/韓国ナショナリズムと「小国」意識』とあわせて、よりよい、そして客観的な朝鮮半島理解の一助となれば幸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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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敗戦により解放された韓国は、なぜ希望から失意に満ちた「権威主義的」体制へ行き着いたのか。その過程と原因を、日本植民地支配とそこからの特異な脱却過程、それらが李承晩政権期の与野党に与えた影響を中心に解説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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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Japan
기무라 간 교수의 저작 <한국 권위주의 체제의 성립: 이승만 정권의 붕괴까지>(원제: <韓国における「権威主義的」体制の成立―李承晩政権の崩壊まで>, 미네르바쇼보, 2003)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도서 개요> 이 책은 비교정치학자 기무라 간 교수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기까지의 정치 과정을 추적한 연구서다. 저자는 이승만 정권을 단순한 <독재 대 민주화>라는 이분법적 도덕관이나 외세의 꼭두각시론으로 보지 않고, 해방 직후 신생 독립국이 직면한 취약한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제도가 어떻게 변형되어 <권위주의적 체제>로 정착해 갔는지를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실증 분석한다.
<핵심 요약>
출발점의 역설: 비서구 사회의 민주주의 제도 도입 해방 후 한국은 근대적 정당 정치나 시민사회의 성숙을 거치지 못한 채, 미군정의 영향과 헌법 제정을 통해 고도의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헌정 제도를 단번에 수입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전통적인 지연·혈연·학연 중심의 파벌주의가 지배적이었고, 광범위한 문맹과 빈곤으로 인해 정책 중심의 대중 정당이 출현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원내 정당의 취약성과 대중 동원의 한계 초기 한국 정치는 지주·엘리트 중심의 한국민주당(한민당)과 비정당적 카리스마를 지닌 이승만 간의 갈등으로 전개되었다. 한민당을 비롯한 원내 엘리트들은 의회 내 표 대결에는 익숙했으나, 농지개혁 등으로 인해 기득권 기반을 잃어가며 대중적 지지 기반을 동원할 능력을 상실했다. 이로 인해 의회는 대중과 유리된 채 권력 분점과 파벌 다툼에 매몰되었다.
이승만의 카리스마와 대중 조직화: 자유당의 성립 이승만은 원내 파벌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 권력을 구축하기 위해 대한청년단, 대한노총, 농민회 등 국가 기구와 연계된 거대한 대중 외곽 조직을 장악했다. 1951년 창당된 자유당은 이러한 대중 조직을 기반으로 삼아, 원내 중심의 보수 정당들을 압도하는 권력 기구로 자리 잡았다. 이승만은 이를 바탕으로 1952년 부산정치파동(발췌개헌)을 일으켜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켰다. 이는 의회 다수파의 통제를 무력화하고 대중적 지지를 직접 흡수하여 권력을 집중시키는 권위주의적 전환의 분수령이었다.
1950년대 후반의 딜레마와 체제의 붕괴 1954년 사사오입 개헌 이후 이승만 정권은 장기 집권을 제도화했으나, 점차 모순에 봉착했다. 전후 부흥 과정에서 교육 수준이 향상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정권의 관제 동원에 비판적인 도시 중산층과 학생들이 급증했다. 반면 정권은 경찰 권력과 부정선거에 의존하는 경직성을 보였다. 1960년 3·15 부정선거는 제도화된 권위주의가 성숙해진 사회적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열한 사건이었으며, 결국 4·19 혁명을 통해 체제의 종언을 고했다.
<비평 및 평론>
제도의 형식성과 사회적 실재 간의 괴리 규명 이 책의 탁월한 학술적 성과는 서구의 헌정 민주주의라는 <형식>과 전근대적 파벌 구조라는 <실질> 사이의 구조적 긴장을 정밀하게 해체했다는 점이다. 이승만 정권의 권위주의화를 특정 지배자의 권력욕으로만 단순화하지 않고, 취약한 중간 매개 조직과 대중 정당의 부재 속에서 국가 권력이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 직결형 권위주의를 선택해 간 구조적 필연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제1공화국 정치사의 탈이념적·객관적 복원 기존의 한국 현대사 연구가 독재 규탄이나 반공 건국론이라는 상반된 진영 논리에 갇혀 있던 것과 달리, 이 저작은 정당 규약, 선거 데이터, 의회 회록 등 방대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냉정한 제도 분석을 수행했다. 특히 이승만이 원내 엘리트의 과두 지배를 분쇄하기 위해 대중 동원과 직선제를 활용했다는 분석은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의 결합 메커니즘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한계와 비판적 지점 선거와 정당 정치, 엘리트 간의 권력투쟁에 초점이 집중되다 보니,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적 역학(미국의 원조와 군사적 개입) 및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전시 국가 체제가 국내 권위주의 형성에 미친 물리적·구조적 강제력이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어진 측면이 있다. 또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을 규율하며 억압적 지배를 정당화했던 내면화된 기제에 대한 심층적 분석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한국 현대 정치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이식과 변형, 그리고 권위주의 체제가 싹트고 붕괴하는 내적 메커니즘을 규명한 비교정치학의 수작이다.
기무라 간(木村幹), 『韓国における「権威主義的」体制の成立――李承晩政権の崩壊まで』
『한국에서의 ‘권위주의적’ 체제의 성립―이승만 정권의 붕괴까지』, 2003
요약·평론
이 책은 앞서 살펴본 『조선/한국의 내셔널리즘과 소국의식』과 『대한제국의 패망과 그림자』보다 훨씬 정치학적인 저작이다. 2003년 미네르바서방에서 출간되었으며, 같은 해 산토리학예상 정치·경제 부문을 받았다. 책의 중심 질문은 단순하다.
<1945년 해방 당시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컸던 한국은 왜 불과 10여 년 만에 이승만과 자유당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체제에 도달했는가?>
기무라의 답은 “한국인에게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이승만이 독재자였기 때문”도 아니다. 그는 <일제 식민지배의 유산, 특수한 탈식민화 과정, 보수 야당의 붕괴, 이승만이라는 독립운동 지도자의 카리스마, 그리고 국가 행정조직과 결합한 자유당의 형성>이 상호작용하여 권위주의 체제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책은 크게 제1부에서 동아일보 그룹과 ‘정통 보수야당’의 흥망을, 제2부에서 이승만과 자유당 체제의 성립·붕괴를 다루고, 마지막에 4·19에서 5·16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검토한다.
1. 제목에서 왜 ‘권위주의적’에 따옴표가 붙어 있는가
먼저 제목의 <「権威主義的」>이라는 따옴표가 중요하다.
기무라는 이승만 체제를 처음부터 완성된 독재체제로 규정하고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적 제도와 선거가 존재하는 가운데 그 제도 자체가 점차 권위주의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자유당 체제의 매우 중요한 특징은
<선거가 없어져서 독재가 된 것이 아니라, 선거를 계속 실시하면서 권위주의화되었다>
는 데 있다.
기무라가 자유당을 분석한 별도 논문의 영문 초록에서도 1952년과 1954년 선거를 거치면서 체제가 강화되었으며, 특히 지방 행정조직과 자유당 조직의 결합이 농촌에서 강력한 동원력을 제공했다고 설명한다. 즉 자유당은 고전적인 대중정당이라기보다 <정부당>, 더 정확하게는 <행정정당(Administrative Party)>이었다.
이 대목이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이다.
2. 출발점은 이승만이 아니라 식민지기의 ‘동아일보 그룹’이다
흥미롭게도 책의 상당 부분은 이승만이 아니라 김성수와 <동아일보 그룹>에 할애된다.
김성수를 중심으로 한 세력은 일제강점기에 기업·교육·언론을 운영하며 조선인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구축했다. 경성방직, 보성전문학교, 동아일보 등을 중심으로 자본·지식인·언론·사회적 명망이 결합한 일종의 엘리트 네트워크였다.
그런데 여기에 근본적인 모순이 있었다.
이들은 분명 조선인 민족주의 세력이었지만 동시에 식민지 체제 안에서 기업과 교육기관을 운영하기 위해 총독부 및 식민지 금융기관과 협력해야 했다. 산토리학예상 심사평도 이들의 성격을 <민족적이면서 동시에 친일적 요소를 가진 세력>으로 요약한다.
해방되자 이 모순이 폭발한다.
식민지 시대에는 조선인 사회의 지도층이었던 사람들이 해방 후에는 “왜 일본과 협력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했다. 따라서 독립운동의 강력한 정통성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도덕적·정치적 위치가 취약해졌다.
기무라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주장을 한다.
<식민지 유산이 곧바로 이승만 독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식민지 경험이 독립 후 보수정치세력의 정통성과 조직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3. 이승만에게 있었던 것은 조직이 아니라 ‘정통성’이었다
여기에서 이승만이 등장한다.
이승만에게는 김성수 세력과 정확히 반대의 자산과 결함이 있었다.
김성수·동아일보 그룹에는 국내 조직과 자본, 언론,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지만 독립운동의 정통성이 취약했다.
반면 이승만에게는
독립운동가라는 경력,
미국에서 활동한 국제적 명성,
기독교 지도자의 이미지,
강력한 반공주의,
미국과 연결될 수 있는 능력
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 정치조직은 약했다.
산토리상 심사평이 정확히 지적하듯, 이승만은 <강력한 정통성을 지녔지만 조선 국내의 현실적 정치세력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지도자>였다.
따라서 처음에는 국내 기반을 가진 보수 엘리트와 이승만이 협력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양자는 안정된 동맹을 형성하지 못한다.
이 실패가 매우 중요하다.
기무라의 관점에서 한국 권위주의의 탄생은 단순히 <이승만이 야당을 탄압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율적인 보수 정당체계가 먼저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국가기구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당조직을 만들게 된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였다.
4. 자유당은 아래에서 올라온 정당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온 정당이었다
1951년 이후 자유당 체제가 만들어진다.
이 정당의 특징은 유럽 정당들처럼 노동조합, 종교집단, 지역사회단체 같은 자율적 사회조직에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에서 출발했다는 데 있다.
대통령 → 정부 → 지방행정기관 → 지역 유지 → 유권자
라는 연결망을 자유당이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농촌에서 이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해방으로 식민지기의 지방 엘리트들은 상당한 사회적 권위를 잃었다. 그러나 지방 행정조직 안에서 직책을 얻으면 다시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자유당은 바로 이 이해관계를 이용해 지역 엘리트들을 정부당 조직으로 흡수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유명한
<여촌야도(與村野都)>
즉
<농촌에서는 여당, 도시에서는 야당>
이라는 선거지형이었다.
기무라가 자유당에 관한 연구에서 이를 매우 중요하게 보는 이유가 있다. 권위주의는 단순히 중앙의 경찰탄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방사회에 뿌리내린 행정조직을 선거동원체제로 전환함으로써>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5. 따라서 이승만 독재는 단순한 ‘개인독재’가 아니다
이 책은 이승만을 무시하지 않지만, 이승만의 성격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승만이 권력욕이 강했다.
야당을 억압했다.
헌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었다.
경찰과 행정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이것들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이승만이 독재자였기 때문에 독재가 되었다”라고 말하면 다음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왜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기무라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국내의 자율적 정당조직이 약했고,
식민지기를 통과한 보수엘리트의 정통성이 훼손되었으며,
국가기구가 사회조직보다 강했고,
대통령은 독립운동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으며,
냉전과 반공주의가 국가정통성의 핵심이 되었다.
이 조건들이 결합하면서 대통령 중심 권위주의의 길이 열린 것이다.
6. 그런데 자유당은 가장 강력해졌을 때 무너졌다
기무라의 두 번째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게 강력한 자유당 체제가 왜 1960년 갑자기 무너졌는가?>
이것이 이 책을 단순한 ‘독재 성립사’보다 흥미롭게 만든다.
1950년대 후반 이기붕을 중심으로 자유당 조직은 이전보다 훨씬 정비되었다.
그런데 정비가 잘될수록 문제가 생겼다.
이승만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던 체제가 점차 이기붕과 자유당 조직에 의존하게 되었고, 조직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선거승리를 반드시 보장해야 했다.
그 결과가 1960년 <3·15 부정선거>였다.
자유당은 행정기구를 동원하여 선거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체제의 정당성을 완전히 파괴했다.
마산의 저항과 김주열의 죽음,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폭발하면서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중요한 역설이 있다.
<자유당 체제가 무너진 것은 조직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나치게 개입했기 때문이다.>
즉 조직의 강화가 자기파괴로 이어졌다.
7. 4·19는 권위주의를 무너뜨렸지만 민주주의를 자동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책의 마지막 제목은 <이승만 이후―4·19에서 5·16으로>이다.
이 부분에서 기무라는 더욱 구조적으로 생각한다.
이승만을 제거하면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유당 체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구조적 조건들,
즉 약한 정당,
취약한 사회조직,
국가기구의 우위,
보수세력의 분열,
탈식민 과정에서 형성된 정치적 불연속
이 이승만 퇴진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2공화국은 이 구조적 취약성을 물려받았고, 결국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발생한다.
따라서 기무라에게
<이승만 → 4·19 → 박정희>
는 완전히 분리된 세 시대가 아니다.
식민지 이후의 국가와 정당체계가 안정적인 민주적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하나의 긴 과정이다.
8.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 ‘독재자의 성격’에서 ‘정치체제의 형성’으로
이 책이 매우 좋은 이유는 이승만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승만을 둘러싸고 흔히
<건국의 아버지인가 독재자인가>
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그러나 기무라가 묻는 질문은 더 생산적이다.
<왜 건국의 아버지가 독재자가 될 수 있었는가?>
두 이미지는 반드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독립운동에서 얻은 강한 정통성과 국내의 약한 조직기반이라는 조합이 이승만의 권위주의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즉
<강한 카리스마 + 약한 정당제도>
가 문제였다.
나는 이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통찰이라고 본다.
9. 그러나 기무라의 설명에도 빠지는 것이 있다
동시에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민중>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인다.
4·19를 자유당 조직의 실패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지만, 학생·시민·언론·지식인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만들어낸 적극적 정치문화를 충분히 중심에 놓지는 않는다.
둘째, <국가폭력>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제도론 속에 들어가 버릴 위험이 있다.
제주4·3, 국민보도연맹,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 국가보안체제, 경찰폭력 등을 충분히 중심에 놓으면 이승만 체제의 권위주의는 단순한 ‘정부당 체제’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셋째, <미국과 냉전>의 비중도 더 크게 잡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일반적인 탈식민 신생국이 아니라 미군정, 남북분단, 북한 국가의 수립, 한국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냉전 조건에서 만들어졌다. 이 국제정치적 상황은 반공주의와 국가권력 강화에 결정적이었다.
따라서 기무라가 제공하는 정당·조직 중심 설명은 매우 강력하지만 <전쟁국가와 냉전국가의 형성>이라는 관점을 함께 놓을 필요가 있다.
10. 앞의 기무라 간 두 책과 연결하면
이제 기무라 간의 세 책을 함께 놓으면 그의 역사관이 상당히 선명하게 보인다.
『조선/한국의 내셔널리즘과 소국의식』에서는
<왜 한국은 강대국에 의존하면서도 강한 민족주의를 유지했는가>
를 물었다.
『대한제국의 패망과 그림자』에서는
<왜 고종의 외교적 노력에도 대한제국은 국가를 지키지 못했는가>
를 물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왜 해방과 독립 이후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대신 권위주의로 기울었는가>
를 묻는다.
세 질문을 관통하는 기무라의 방법은 같다.
그는 쉽게
“고종이 무능했다”
“이승만이 독재자였다”
“한국인은 사대주의적이다”
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이 그러한 선택을 하도록 만든 제도와 국제환경, 조직구조가 무엇이었는가>
를 묻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기무라 간의 책들이 함께 읽을 가치가 있다.
종합평가
『한국에서의 ‘권위주의적’ 체제의 성립』은 이승만 정부를 단순한 독재정권으로 규탄하거나 건국정권으로 미화하는 책이 아니다.
핵심 주장은 오히려 다음과 같다.
<한국의 최초 권위주의 체제는 민주주의 제도가 없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선거·정당·국회가 존재하는 가운데 국가권력과 ‘정부당’이 그 제도를 장악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의 배후에는 일제 식민지기의 정치사회 구조와 불완전한 탈식민화가 있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1945년은 모든 것이 제로에서 다시 시작된 해가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그대로 대한민국의 독재로 이어진 것도 아니다.
<식민지에서 물려받은 사람·조직·제도가 해방이라는 정치적 단절을 만나 재편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권위주의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기무라의 보다 정교한 주장이다.
그래서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이승만 독재는 한 독재자의 권력욕이 만들어낸 우연한 일탈이 아니라, 식민지에서 독립국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율적 정당과 사회조직은 약한 반면 국가 행정기구는 강했던 한국에서, 독립운동가의 카리스마와 ‘정부당’ 조직이 결합하여 선거를 통해 만들어낸 권위주의 체제였다.>
2003년 산토리학예상 심사평도 이 책을 <식민지 시대와 박정희 시대 사이에서 연구의 공백처럼 취급되었던 이승만 시대를 ‘연속성’이라는 관점으로 분석한 역작>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개념과 논지의 엄밀성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평가는 지금도 적절하다.
특히 앞서 읽은 두 권과 함께 보면 기무라 간에게 <대한제국의 실패 → 식민지 → 해방 → 이승만 권위주의>는 단순히 “한국이 계속 실패한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약한 국가와 약한 정치제도 속에서 엘리트들이 외부의 힘과 국가기구를 이용하여 살아남으려 했고, 그 선택들이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낸 역사>로 보인다. 바로 이 구조주의적 시각이 기무라 간 역사서의 가장 큰 매력이면서, 민중의 능동성과 식민주의·국가폭력의 책임을 상대적으로 희미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한계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