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0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류대영 2004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류대영 (지은이)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2004




목차

간행사 : 윤경로
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며 : 류대영

시작하면서

제 Ⅰ 부 미국의 한반도 진출과 미국 선교사

제 1 장 미국의 한반도 진출
1. 미국의 북태평양과 동아시아 진출
2. 조선의 개항과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입장
1) 조선의 개항
2)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입장
3. 조선에 온 미국 : 환상과 실체
1) 환상의 근원
2) 환상의 실체

제 2 장 미국 선교사와 미국 정부
1. 선교사와 미국의 한반도 정책
1) 선교의 자유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
2) 미국 정부, 미국 선교사, 그리고 조선 정부
2. 선교사의 정치개입 문제
1) 국무부의 입장과 1897년 경고 회람
2) 회람 이후 독립협회 사태까지

제 Ⅱ 부 불평등 조약, 치외법권, 그리고 선교사업

제 3 장 초기 조약들과 기독교 선교의 문제
1. 개항과 기독교 전파의 문제
1) 일본, 서양, 그리고 기독교
2) 조미수교와 척사론
2. 조미조약 체결과 기독교 문제
1) 수교 협상과 "불립교당"문제
2) 고종 및 양무적 관료들의 기독교관
3. 조영조약과 미국 선교사의 조선 진출
1) 조영조약이 보여준 변화
2) 미국 선교사들의 조선 진출
4. 조불조약과 그 파급효과
1) 조불조약 체결과 신교의 자유 문제
2) 조불조약 이후

제 4 장 치외법권, 내지거주, 그리고 선교사업
1. 여권과 치외법권
1) 여권과 내지여행
2) 치외법권과 내지거주 문제
2. 막을 수 없는 불법, 넓혀지는 과정
1) 1888년의 선교금지 조치
2) 풀려 가는 기독교 금지
3. 대구(1890~1901)
1) 사건의 자연스런 시작
2) 사건의 불가피한 결말

제 Ⅲ 부 미국 선교사와 제국주의 침략기의 조선 정치

제 5 장 왕실과 미국 선교사
1. 민왕후 시해부터 춘생문 사건까지
1) 왕을 지키려는 선교사들
2) 사건 이후
2. 의화군 문제
3. 고종과 민왕후, 그리고 선교사들의 계산
1) 교차하는 이해관계
2) 부국강병을 위하여
3) 왕권을 위하여

제 6 장 개화, 제국주의 침략, 그리고 미국 선교사
1. 급진 개화파와 미국 선교사
1) 김옥균
2) 박영효와 서광범
3) 개화자강, 일본, 그리고 기독교
2. 기독교 개혁가들과 미국 선교사
1) 서재필과 윤치호
2) 국내 개종자들
3. 미국 선교사와 일본 제국 주의 침략
1) 망해가는 나라, 구원받는 영혼들
2) 대부흥, 그리고 국권상실

맺으면서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류대영 (지은이)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버지니아의 유니언신학교와 하버드대학교를 거쳐 밴더빌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성서 신학, 기독교 역사, 미국사를 주로 공부했다. 서양사학적 방법론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조명하는 일에 중점을 두면서, 《새로 쓴 한국 기독교의 역사》(2023), 《한국 기독교 역사의 재검토》(2019),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2009),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 사》(2004), 《북한 종교의 새로운 이해》(공저, 2002),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2001), Protestant Christianity in Modern Korean History(Institute of the History of Christianity in Korea, 2026), A History of Protestantism in Korea(Routledge, 2022) 등의 책을 출간했다. 한동대에서 기독교, 역사, 고전을 가르치다 은퇴했다. 접기

최근작 :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때>,<새로 쓴 미국 종교사>,<새로 쓴 한국 기독교의 역사> … 총 16종 (모두보기)



마이리뷰


    
동상이몽..  

450여쪽의 내용을 어느 것 하나 낭비되는 글 없이 꽉꽉 채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는이로 하여금 쉽지 않는 길을 걷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참고 걸어가서 그 종국에 이르렀을 때 쓰여진 내용을 꽉 채우고도 넘치도록 부어지는 듯한 깨달음, 통찰, 배움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가능한 것일게다. 이 책은 그렇게 꽉 채워져 있고, 또 채워지도록 한다. 마지막 결론 부분을 읽는 것은 딱딱한 역사로도 가슴이 설레이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참 잘 읽었다. 이 모든 내용을 머리 속에 다 기억하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구한말 문명개화를 꾀하고자했던 조선 조정, 고종과 그를 둘러싼 여러 정치 세력들의 움직임과 조선을 향하고 있는 세계 열강들, 그런 것과는 아랑곳이 종교적 열심을 최우선에 안고 영혼구령의 열정으로 기독교 선교의 기치를 올렸던 미국의 선교사들, 이들의 역학관계가 보여주는 제국주의적 힘의 구도. 미국 선교사들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준 서구 문명의 영향력과 그것을 받아들인 조선의 지식인들의 다른 꿈, 조선의 미래를 향했던 그들의 노력과 선교사들의 종교적 희망이 빚어내는 또 다른 갈등 양상. 이것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개화기의 역사가 총체적으로 드러난다. 때로는 거대한 담론으로 그러나 때로는 한 개개인의 세세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이렇게 적어가면서도 한숨이 나오는 것은 이것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꽉찬 알맹이들 때문이다.

USA 라는 나라에 대한 아련한 동경이 만들어낸 미국이라는 이름을 보더라도 한국에게 있어 미국은 뭔가 아름다움의 대상, 추구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가깝게는 6.25를 겪으면서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통해 극단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생산되고 고착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실상 그러한 이미지, 실제적 영향력은 그 오래전부터 역사의 흔적 가운데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유산처럼 쌓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개화기 조선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과 그들이 행한 인도적 차원, 종교적 차원의 여러 가지 일들이 양산한 긍정적 이미지들과, 철저히 상업적 자본주의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가운데 정치적 제국주의의 침략을 피해가며 정교분리의 허울을 통해 선한 나라의 이미지를 쌓아간 미국 국무부와 한국 주재 공사관의 노력은 이미 조선 조정에게 미국에 대한 환상을 낳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 조선 민중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00여년지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을 외치고 미국을 따라가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의 현실은 개화기에서부터 이미 그 역사적 노정을 암시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환상은 너무나 순진해 보인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쩌면 인간은 알면서도 애써 그 앎을 무시하면서 환상을 추구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앎 자체가 없을 경우도 허다하겠지만. 그래서 앎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알아버리는 순간, 환상의 묘약은 사라져 버리니. 현실을 마주하기에는 내가 감당해야할 책임이 너무나 커 보이기에.

그루터기 2010-01-1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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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요약과 평론>

<1. 서론: 신화화된 초기 선교의 탈구축>

류대영의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4)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개화기 조선에 진출한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동과 사상을 역사학적·사회정치학적 시각에서 엄밀하게 분석한 역작이다. 오랫동안 한국 교계의 주류 담론은 초기 미국 선교사들을 조선의 암흑기를 밝힌 순수한 복음 전파자이자 근대화의 은인으로 묘사해 왔다. 반면 민족주의 진영 일각에서는 이들을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로만 규정하는 단선적 시각에 머물렀다. 저자는 이러한 이분법적 신화를 탈피하여, 당시 미국 사회의 지적·신학적 배경과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 정책이라는 거시적 맥락 속에서 선교사들의 실제 궤적을 객관적으로 복원한다.

<2. 핵심 내용 요약>

<미국 제국주의 팽창과 선교 운동의 태동> 19세기 후반 미국은 서부 개척을 완료하고 산업화를 거치며 대외 팽창주의로 전환하던 시기였다. 이때 미국의 대외 선교는 단순한 종교적 열정을 넘어,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담론과 백인의 문명화 사명(White Man's Burden)이라는 문화적 제국주의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조선에 파견된 북장로회와 북감리회 선교사들은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과 함께 서구 문명에 대한 절대적 우월감을 내면화한 인물들이었다.

<조선 조정의 수용 전략과 초기 접촉> 고종과 조선 정부는 기독교 신앙 자체를 원했다기보다는, 서구 열강의 군사적·외교적 지원과 근대 기술 도입을 위한 지렛대로 선교사들을 활용하고자 했다. 알렌(Horace N. Allen),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등 초기 선교사들은 병원과 학교 설립을 통해 합법적 거점을 확보했다. 선교사들은 조선 왕실의 신임을 얻어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미국 외교관이나 사업가들과 결탁하여 이권 개입에 관여하기도 했다.

<정교분리 원칙의 기만성과 비정치화 전략>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격변하자 선교사들의 태도는 급격히 변화했다. 초기에는 조선의 주권과 개혁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나, 미국 정부가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을 통해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하는 현실주의 외교 노선을 채택하자 선교사 다수 역시 이에 순응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 신자들에게 '정교분리'와 '세속 권력에 대한 복종'을 강력히 주입했다. 이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원칙이라기보다는, 일본이라는 새로운 지배 권력과 마찰을 피하고 선교 기득권을 보존하기 위한 현실적 타협이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으로 대표되는 개인 영성과 죄책 고백 중심의 신앙 부흥은, 정치적 파국 앞에서 교인들의 사회정치적 에너지를 내면화하고 탈정치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선교사들의 조선관: 인종주의와 오리엔탈리즘> 저자는 선교사들이 본국에 보낸 편지와 보고서, 잡지 기고문을 면밀히 추적하여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조선관을 폭로한다. 그들은 조선의 전통문화와 종교를 '미신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단정했으며, 조선인을 '게으르고 무기력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미개인'으로 타자화했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은 일본의 식민 통치가 조선의 봉건적 후진성을 극복하는 데 오히려 유익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3. 비판적 평론>

<사료의 엄밀성과 탈식민주의적 통찰> 이 책의 가장 독보적인 학문적 기여는 미국 측 1차 사료(미국 해외선교본부 문서, 선교사 일기, 서신, 외교관 기록 등)를 철저하게 발굴하여 교차 검증했다는 점이다. 감상적인 일화나 회고록에 의존하지 않고, 선교사들이 실제로 어떤 언어로 본국과 소통했고 조선 사회를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이는 한국 교회사 연구가 서구 선교사의 시선에 포섭되어 있던 '식민화된 지식'을 탈피하여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역사학으로 도약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의 기원 규명> 이 저작은 오늘날 한국 보수 교회의 지배적 특성인 친미주의, 근본주의적 문자주의, 그리고 사회적 모순에 침묵하는 개인 구원 중심주의가 어디서 배태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규명한다. 미국 선교사들이 이식한 '정치와 종교의 분리' 담론이 실상은 체제 순응적 이데올로기였음을 밝혀냄으로써, 한국 기독교가 현대사에서 독재와 불의에 순응했던 구조적 기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낸다.

<아쉬움과 한계> 다만 선교사들의 인식과 지배 질서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들과 접촉했던 한국인 수용자들의 능동적 반응과 번안 과정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다. 한국인들은 선교사들의 서구 중심주의를 단순히 맹종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 평등사상을 발견하고 이를 계몽운동이나 민족운동의 동력으로 독자 변용한 측면이 존재한다. 선교사와 한국인 주체 사이의 복합적인 상호작용과 긴장 관계를 더 두텁게 다루었더라면 한층 더 입체적인 통사가 되었을 것이다.

<4. 결론>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는 한국 개신교의 출발점에 드리워진 제국주의적 그림자와 타협의 흔적을 냉정하게 직시하도록 이끄는 기념비적 저술이다. 선교사들을 무조건적 성자로 칭송하는 교조적 역사관과 이들을 침략자로 매도하는 단순한 민족주의를 모두 넘어서, 근대 전환기 종교와 제국이 교차한 복합적 실상을 정직하게 응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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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대영,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 1,000단어 요약·평론>

류대영의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제국주의 침략, 개화자강, 그리고 미국 선교사』는 2004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출간된 505쪽의 연구서다. 1880년대 개항기부터 1910년 국권상실까지 미국 선교사들을 단순한 종교인으로 보지 않고, 조선·미국·일본이라는 국제정치의 삼각관계 속에서 분석한다. 전체는 <미국의 한반도 진출과 미국 선교사>, <불평등조약, 치외법권, 그리고 선교사업>, <미국 선교사와 제국주의 침략기의 조선 정치>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비교적 명확하다.

“개화기 미국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의 대리인이었는가,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을 돕는 사람들이었는가, 아니면 복음전도를 가장 우선시했던 종교인이었는가?”

류대영의 대답은 어느 하나가 아니라 “이 세 가지 성격이 서로 얽혀 있었다”는 것이다.

<1. 조선이 기대했던 미국과 실제의 미국>

책의 첫 부분에서 류대영은 미국 선교사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국의 태평양 진출부터 설명한다. 미국은 대륙 팽창 이후 태평양을 건너 중국과 동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했고, 조선과의 관계도 이러한 미국의 확대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단순히 ‘우호적인 두 나라의 만남’으로 보지 않는다.

여기서 저자가 흥미롭게 분석하는 것이 조선 지배층의 ‘미국에 대한 환상’이다. 청·일본·러시아 사이에서 생존해야 했던 조선은 멀리 떨어져 있고 직접적인 영토 야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을 잠재적인 보호자로 생각했다. 특히 고종과 개화파 가운데 일부는 미국이 일본이나 러시아를 견제해 조선의 독립을 지켜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 미국 정부에게 조선은 핵심적인 전략적 이해관계가 아니었다. 미국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본과 충돌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과정에서도 미국은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따라서 류대영은 ‘조선이 생각한 미국’과 ‘실제 미국의 국익’ 사이의 간극을 강조한다. 이것은 선교사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조선인은 미국 선교사를 단순히 목사나 의사로만 보지 않고 거대한 서양 강국 미국과 연결된 사람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2. 선교사와 미국 정부는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류대영은 여기서 곧바로 “선교사=미국 제국주의”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정부와 미국 선교사 사이에 상당한 긴장이 있었다고 강조한다. 미국 국무부는 선교사들이 조선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여 외교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특히 1897년 국무부가 선교사들의 정치개입을 경고한 회람을 보낸 사실을 중요하게 다룬다. 책이 제2장 전체를 <미국 선교사와 미국 정부>에 할애하는 이유다.

선교사들 역시 하나의 통일된 집단이 아니었다. 알렌처럼 외교와 경제적 이해관계에 깊이 관여한 사람도 있었고, 언더우드·아펜젤러·헐버트처럼 교육·선교·한국 문제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선교사와 미국 정부를 동일시하면 당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이 미국의 힘과 무관했던 것도 아니다. 이것이 류대영의 중요한 지적이다.

<3. 치외법권이라는 선교의 ‘보이지 않는 보호막’>

이 책에서 특히 뛰어난 부분은 선교 확대를 단순히 ‘복음의 열정’으로 설명하지 않고 불평등조약과 치외법권이라는 국제정치적 조건을 연결한 것이다.

1882년 조미조약 자체는 미국 선교사들에게 조선에서 자유롭게 전도할 권리를 보장한 조약이 아니었다. 이후 조영·조불조약 등과 최혜국조항의 적용을 통해 외국인의 종교활동 영역이 조금씩 넓어졌다. 초기 미국 선교사들은 정식으로 선교할 자유를 확보하기 전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활동공간을 만들었다.

그런데 선교사들은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았다. 조선 정부의 법적·행정적 통제력이 그들에게 완전히 미치지 못했다. 내지여행과 거주도 원칙과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선교사들은 때로는 기존 조약의 범위를 넘어서 활동했고, 조선 정부는 그러한 활동을 충분히 통제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이미 벌어진 사실이 관행이 되고 관행이 새로운 권리가 되는 식으로 선교 영역이 넓어졌다. 저자가 제4장에 <막을 수 없는 불법, 넓혀지는 지평>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기독교 선교와 제국주의의 관계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선교사가 반드시 제국주의 침략을 의도해야만 제국주의와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는 개인적으로 조선을 사랑하면서도 서구 열강이 만든 불평등한 국제질서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4. 고종은 왜 선교사들과 가까워졌는가>

류대영은 선교사와 조선 왕실의 관계도 낭만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명성황후 시해 이후 고종은 자신의 신변과 왕권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서양인 선교사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일종의 보호막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일부 선교사는 왕실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고종이 기독교에 특별한 신앙적 호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고종에게 선교사들은 서양의 의료·교육·기술과 미국이라는 외교적 자원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즉 ‘부국강병’과 왕권 보존에 필요했다.

반대로 선교사들에게도 왕실과의 관계는 유리했다. 왕실과 가까워질수록 기독교와 선교사업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활동영역도 확대되었다.

따라서 류대영은 고종과 선교사의 관계를 ‘서로 호감을 가진 좋은 사람들의 만남’보다 ‘상호 이해관계가 교차한 관계’로 본다. 책의 목차도 이를 정확하게 <고종과 민황후, 그리고 선교사들의 계산―교차하는 이해관계>라고 표현한다.

<5. 김옥균·서광범·서재필·윤치호와 기독교>

책 후반은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류대영은 개화와 기독교의 관계를 추적하기 위해 김옥균·박영효·서광범·서재필·윤치호 등을 등장시킨다.

이들에게 기독교는 반드시 처음부터 개인적 신앙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19세기 말 동아시아에서 기독교는 ‘서양 문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교육·과학·의학·개인의 권리·남녀관계·국민교육·사회개혁 등이 기독교라는 통로를 통해 들어왔다. 따라서 일부 개화파에게 기독교는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문명적 자원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 모순이 있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야 일본의 지배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서구 문명 자체가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의 산물이기도 했다. 일본 역시 서구식 근대화를 통해 제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화=서구화=기독교=독립’이라는 단순한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6. 가장 역설적인 장면―‘대부흥과 국권상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1900년대 일본의 한국 병합 과정과 기독교의 급성장을 함께 바라본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전후하여 한국 개신교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대한제국은 일본에게 외교권과 주권을 빼앗기고 있었다.

류대영은 이 두 사건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지 않는다.

일부 선교사들은 정치적 독립운동보다 개인의 회개와 영혼구원을 강조했다. 미국 정부 역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과 대결할 뜻이 없었다. 따라서 국권을 회복하려는 한국인들의 정치적 열망과 선교사들이 요구하는 비정치적·종교적 신앙 사이에는 긴장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부흥운동을 ‘민족운동을 무력화한 친일적 종교운동’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류대영의 입장은 아니다. 부흥운동을 통해 형성된 교회조직, 교육, 문해력, 공동체, 지도자들은 이후 독립운동의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결국 ‘망해가는 나라’와 ‘구원받는 영혼’이 동시에 존재했다. 책 마지막 소제목인 <망해가는 나라, 구원받는 영혼들>, <대부흥, 그리고 국권상실>은 이 책 전체의 문제의식을 응축한다.

<평론―‘선교사=제국주의자’와 ‘선교사=한국의 은인’을 동시에 넘어선다>

이 책의 가장 큰 학문적 장점은 두 가지 상반된 한국 근대사의 기억을 모두 비판한다는 데 있다.

보수적 한국 교회사에는 언더우드·아펜젤러·알렌·헐버트 등을 한국을 위해 희생한 선교사로 기억하는 전통이 강하다. 반대로 탈식민주의적 해석에서는 선교사를 서양 제국주의의 문화적 선봉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류대영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다.

미국 선교사들이 의료·교육·출판과 새로운 사상을 전하고 조선인들과 깊은 인간적 관계를 형성했으며, 일부는 일본의 침략에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동시에 그들이 치외법권을 가진 특권적 외국인이었으며 서양 문명의 우월성을 상당 부분 당연시했고, 미국의 힘이 만들어준 안전한 공간에서 활동했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선교사를 “제국주의의 앞잡이였는가, 한국의 은인이었는가?”라고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한 사람이 조선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문명적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었고, 일본의 침략을 반대하면서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에는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있었으며, 한국인의 독립을 동정하면서도 선교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중립을 요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출간 당시의 서평에서도 이 책은 선교사를 목사에 한정하지 않고 의사·교사·정치고문·외교적 행위자로 조명하고, 국내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않았던 방대한 영문 자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반면 북·남장로회, 북·남감리회 등 미국 선교사 내부의 차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으며, 미국 선교사와 캐나다·호주 선교사의 차이도 더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새로 쓴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연결해서 보면>

앞에서 살펴본 2023년의 『새로 쓴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함께 읽으면 류대영의 문제의식이 더욱 선명해진다.

2004년의 이 책에서 이미 류대영은 한국 기독교사를 ‘선교사 영웅사’에서 떼어내 국제정치사와 사회사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2023년 책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선교사 중심의 역사 자체를 줄이고 한국인 신자들의 능동적 역할을 더욱 강조한다.

따라서 두 책 사이에는 약 20년에 걸친 하나의 지적 이동을 볼 수 있다.

<2004년>: “미국 선교사들은 실제로 어떤 국제정치적 조건 속에서 행동했는가?”

에서

<2023년>: “그렇다면 한국 기독교를 왜 선교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세진 님이 최근 읽고 계신 신복룡의 ‘외부의 시선으로 본 조선’ 및 함재봉의 개화기 해석과 연결하면 이 책은 특히 중요하다. 미국 선교사가 본 조선은 단순한 관찰자의 조선이 아니었다. 그들은 조선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동시에 조선 사회 자체를 변화시키는 행위자였다. 그래서 이들의 기록에는 ‘조선의 실제 모습’과 ‘문명화되지 않은 조선을 바라보는 19세기 미국 개신교인의 시선’이 겹쳐 있다.

결국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근대화는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자강의 과정이었지만, 그 자강에 필요한 지식·제도·종교 자체가 제국주의적 세계질서를 통해 들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침략’과 ‘근대화’를 어디까지 분리해서 말할 수 있는가?”

바로 이 역설 때문에 이 책은 일반적인 한국 교회사보다 오히려 신복룡·함재봉·헐버트·하야시 다다스·무쓰 무네미쓰 등을 함께 읽고 있는 현재의 독서 흐름에 더 잘 맞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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