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9

신복룡 - 내부의 식민주의 vs 함재봉

신복룡 - 내부의 식민주의 설명




신복룡
===
민족감상주의로부터의 해방이 필요

대일관계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근대 민족주의 운동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그 중의 하나로서 민족감상주 의가 차지했던 비중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민족감상주의는 민족을 응집시키는 일차적이고 부분적인 계기는 될 수 있지만 민족 의식이 나 민족 운동을 끝까지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은 아니다. 민족 문제는 엄연한 현실이며 전략과 경륜 그리고 의지가 필요한데, 대한제국은 이러한 점들을 소홀히 했고, 결국 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이 유가 되어 멸망했다.

이러한 약점은 해방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잔존하고 있다는 것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일제 시대를 체험한 기성 세대가 후대에게 들려주는 '경험으로서의 일본관'은 아직도 감상주의를 빚 어나지 못하고 있고, 역사학은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텔레비전의 멜로 드라마나 담징 왕인에 대한 나르시쿠스적 향수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물론 대한제국이 멸망할 당시 우리가 겪은 제국주의 열강의 외압 外壓이 중국이나 일본에게 가해진 그것과는 성격이나 강도에서 다른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이 내재적으로구 조적 모순을 안고 있었던 점도 멸망의 원인으로 지적되기에 충분하 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의 멸망이 역사적 연이었거나 운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피할 수도 있는 비극이
있다. 그것은 당시 지배 계급의 실수로 빚어진 인재였다.

내부식민지주의가 더 무서워

요컨대, 한국의 망국의 책임은 일본 군국주의의 참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자신, 특히 당시의 지배 계급이 있다. 우리가 외세의 침략보다 더 경계할 것은 <내부의 식민지주의>이다. 이 대목과 관련 하여,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 나라 스스로가 멸망 할 짓을 한 연후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國必自伐然後人 #2)는 맹자孟子에게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어수선한 반일 분위기 속에서이 글은 신문사와의 입장 차이로 게재되지 않았음.

====
신복룡이 말하는 <내부의 식민주의>란?
===

신복룡이 저서 <한국사 새로보기>에서 언급한 <내부의 식민주의>는 외세의 침략에 앞서, 자국의 지배 계급이 내부 민중을 수탈하고 억압하며 국가의 존립 기반 자체를 무너뜨린 내적 모순과 통치 행태를 뜻한다.

신복룡이 제시하는 논지는 크게 다음과 같다.

<망국의 일차적 책임과 인재(人災)>

  • 한국의 망국을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야욕 탓으로만 돌리는 이른바 <민족감상주의>적 사관을 비판한다.

  •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 아니라 피할 수 있었던 비극이었으며, 당시 조선의 위정자와 지배 계급의 무능·실정·부패로 인해 발생한 <인재(人災)>로 본다.

<내부 식민주의의 본질>

  • 외세(외적 식민주의)가 들어와 주권을 강탈하기 전, 지배 계급(왕실, 관료, 양반층)은 백성을 자국민으로 보호하기보다 가혹한 세금과 부패, 봉건적 특권으로 수탈하는 데 치중했다.

  • 이러한 착취 구조는 외세가 식민지를 경영할 때 자원을 수탈하고 주민을 통제하는 방식과 다를 바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민중의 저항 의지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맹자의 자벌(自伐) 논리>

  •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 나라 스스로가 멸망할 짓을 한 연후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國必自伐然後人伐之)라는 맹자의 구절을 인용한다.

  • 외세의 침탈이 결정타였을지라도, 그 문을 열어주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게 만든 원인은 바로 지배층의 자멸적 행태와 내부적 억압·수탈 체제에 있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신복룡의 <내부의 식민주의>라는 표현은, 외부의 적을 탓하는 감정적 민족주의에 머물지 말고, 권력을 쥔 내부 지배층이 어떻게 국가의 자생력을 파괴하고 백성을 등 돌리게 만들었는지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역사적 자기반성의 개념이다.


===

신복룡이 말하는 <내부의 식민주의>

신복룡이 이 글에서 말하는 <내부의 식민주의>란, 외국이 군사적으로 침략하여 식민지를 만드는 <외부의 식민주의>와 달리, 한 나라의 지배계급이 자기 백성을 식민지 주민처럼 억압하고 수탈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사진에 나온 그의 핵심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의 망국 책임은 일본 군국주의의 참혹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자신, 특히 당시의 지배계급에 있다. 우리가 외세의 침략보다 더 경계할 것은 내부의 식민주의이다.”

1. 조선의 백성을 ‘내부 식민지인’으로 만들었다

신복룡의 논리에 따르면 대한제국의 지배층은 국가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양반 관료와 지방의 수령·아전들은 일반 백성에게 과도한 세금과 부역을 부과하고, 토지와 재산을 빼앗으며, 법과 행정을 특권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백성은 외국의 식민지배가 시작되기 전부터 다음과 같은 처지에 놓였습니다.

  • 국가의 주권자나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수탈의 대상이었다.
  • 지배계급과 백성 사이에 같은 민족이라는 연대감이 약해졌다.
  • 백성에게 국가는 지켜야 할 공동체가 아니라 피하고 싶은 억압기구가 되었다.
  • 나라가 위기에 빠져도 백성이 왕조와 지배층을 위해 희생할 동기가 사라졌다.

즉 조선의 지배계급이 자기 백성을 사실상 <식민지 주민>처럼 다루었다는 뜻입니다.

2. 동학농민전쟁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신복룡의 동학농민전쟁 해석을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합니다. 그는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단순히 일본 침략에 맞선 민족운동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농민들이 일어난 직접적인 이유는 탐관오리의 수탈과 조선 내부의 신분적·경제적 억압이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신복룡에게 동학농민전쟁은 두 가지 적을 동시에 상대했던 사건입니다.

  1. 조선 내부의 부패한 지배체제
  2. 조선에 침입한 일본군과 외세

시간적 순서에서도 내부 억압에 대한 저항이 먼저였고, 그 뒤 청군과 일본군의 개입으로 반외세전쟁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신복룡은 동학을 처음부터 일관된 반일 민족해방운동으로만 규정하면, 농민을 봉기로 내몬 조선 지배층의 책임이 감춰진다고 생각합니다.

3. “일본이 아니라 조선이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인가

사진의 문장은 상당히 강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복룡의 주장을 정확히 읽으려면 <원인>과 <책임>을 구별해야 합니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강제로 병합한 가해자이며, 일본 제국주의의 책임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신복룡도 왼쪽 페이지에서 중국과 일본이 가한 외압과 제국주의적 침략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인정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의 침략만으로 망국을 전부 설명하면, 왜 조선이 침략에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약해졌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가 말하는 <내부의 식민주의>는 일본의 침략 책임을 면제하는 개념이라기보다, 일본의 침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조선 내부의 조건을 밝히려는 개념입니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차원주체내용
외부 식민주의일본 제국주의군사적 침략, 주권 박탈, 강제병합과 식민통치
내부 식민주의조선의 지배계급신분차별, 부패, 과세와 수탈, 백성의 정치적 배제
결과두 힘의 결합국가의 내부 결속 붕괴와 외세에 대한 저항능력 약화

4. 민족감상주의에 대한 비판

신복룡이 직접 비판하는 것은 <민족감상주의>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을 언제나 무고하고 단결된 피해자로 그리며, 모든 실패의 원인을 외세에서만 찾는 역사인식을 가리킵니다.

그의 관점에서 민족감정은 저항을 시작하게 할 수는 있지만, 국가를 유지하는 전략·규율·제도·의지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조선과 대한제국은 외세의 압력을 받았을 뿐 아니라, 내부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고 능력 있는 인재도 제대로 등용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의 “지배계급의 실수로 벗어난 인재”라는 표현도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합니다.

5. 이 주장에 대한 비판적 평가

신복룡의 개념에는 중요한 통찰이 있습니다. 식민지배를 외부 침략자와 내부의 순결한 피해자라는 단순한 구도로 보지 않고, 지배층과 민중 사이의 권력관계를 함께 살피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동학농민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데 유용합니다.

그러나 “망국 책임은 일본 군국주의가 아니라 한국인 자신에게 있다”는 문장은 지나치게 단정적입니다. 국가 내부가 아무리 부패했더라도 그것이 다른 나라의 침략과 병합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당시의 <한국인 자신>이라는 표현은 지배계급과 수탈당한 농민을 하나로 묶는 문제가 있습니다. 망국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인 전체가 아니라 왕실과 지배계급, 그리고 침략에 협력한 세력에게 차등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따라서 신복룡의 논지를 가장 타당하게 고쳐 말하면 이렇습니다.

대한제국의 멸망은 일본 제국주의가 실행한 침략의 결과였지만, 조선의 지배계급이 오랫동안 백성을 내부 식민지처럼 억압하여 국가의 결속과 저항능력을 파괴한 것도 일본의 침략을 가능하게 한 중대한 내부 조건이었다.

결국 <내부의 식민주의>는 “일본은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외부의 식민지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국내 지배층이 백성을 소외시키고 수탈한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자기비판적 역사 개념입니다. 다만 그 자기비판이 침략자의 책임을 희석하거나 피해 민중에게 망국의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주의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

함재봉의 주장과 비교한다면
====

신복룡과 함재봉은 모두 <외부 침략에만 책임을 돌리는 감상적 민족주의 사관>을 비판하고, 조선 말기의 멸망을 조선 내부의 모순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큰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내부 모순을 바라보는 초점과 조선이라는 체제를 해석하는 관점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공통점: 민족감상주의 극복과 내인론(內因論)>

  • <피해자 의식의 탈피>: 두 사람 모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만을 탓하며 도덕적 피해자 위치에 안주하는 사관을 비판한다.

  • <지배층의 자기 파멸 직시>: 맹자의 <국필자벌(國必自伐)> 논리처럼, 스스로 무너질 조건을 만든 내부의 실패를 해부해야 근대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신복룡: 계급적 수탈과 정치적 무능으로서의 내부 식민주의>

  • <분석 초점>: 지배층(왕실·관료·양반)과 피지배층(백성) 사이의 권력 관계와 수탈 구조에 집중한다.

  • <내부 식민주의의 의미>: 외세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조선 왕조 권력층이 백성을 식민지 피지배민처럼 가혹하게 착취하고 억압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 <진단>: 지도층의 부패, 정쟁, 무능으로 인해 백성의 마음이 국가로부터 완전히 이반되었고, 그 결과 외세의 외압에 저항할 기초 체력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정치사적·계급적 인재론>을 편다.

<함재봉: 문명론적 폐쇄성과 세계관의 실패>

  • <저서 배경>: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 등에서 조선의 패망을 문명사적 전환의 실패로 규정한다.

  • <분석 초점>: 계급 간의 단순 수탈보다는,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근본주의와 소중화(小中華) 세계관>이라는 이념적·지적 폐쇄성에 주목한다.

  • <진단>: 19세기 말 전 세계가 서구 근대 국민국가 및 자본주의 체제로 급변하는 와중에도, 조선 지배 엘리트는 명나라 중심의 도덕적 중화 질서에 갇혀 근대 국제정치와 문명 전환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고 본다. 즉, 무능이나 부패를 넘어 <문명사적 착오와 지적 자폐>가 망국의 핵심 원인이라는 <문명론적·세계관적 진단>을 내린다.

신복룡이 <지배 계급이 백성을 내부적으로 식민지화하여 국가를 갉아먹었다>는 내부 정치·사회적 모순을 파헤쳤다면, 함재봉은 <조선 엘리트의 낡은 세계관이 근대 문명과의 조우에서 어떻게 파탄 났는가>라는 문명론적 실패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

신복룡의 <내부의 식민주의>와 함재봉의 <동학란>론 비교

두 사람은 상당히 가까운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둘 다 “조선은 오직 일본의 침략 때문에 멸망했다”는 단선적인 민족주의 해석을 거부하고, 조선 내부의 책임과 구조적 취약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대상과 동학농민전쟁을 평가하는 방식에서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쟁점신복룡함재봉
조선 멸망의 내부 원인지배계급의 수탈과 무능, 백성의 소외성리학적 국가질서의 경직성, 국제질서 오판, 개혁세력의 취약성
핵심 개념<내부의 식민주의><동학란>, 문명사적·국제정치적 실패
동학의 발생 원인탐관오리와 지배층의 수탈에 대한 농민 저항반개화·반외세의 종교적 대중봉기이자 국가질서 붕괴
동학의 역사적 의미사회개혁운동에서 반외세·반일 투쟁으로 발전청·일 군대를 불러들이고 청일전쟁의 계기를 제공한 내란
농민군 평가정당한 저항의 주체이나 전략과 조직에는 한계근대적 국가건설 세력이라기보다 전통주의적·반근대적 운동
일본 책임침략과 병합의 책임을 인정하되 내부 원인도 강조일본의 침략성을 인정하지만 당시 조선·청·일의 선택을 국제정치 차원에서 분석
주된 비판 대상민족감상주의와 지배계급의 자기면책민족주의 역사학이 동학을 이상화하는 방식

1. 공통점: 조선을 순수한 피해자로만 보지 않는다

두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외세가 모든 것을 망쳤다>는 설명만으로는 조선의 몰락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보는 데 있습니다.

신복룡은 조선 지배층이 백성을 내부 식민지 주민처럼 수탈했기 때문에,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백성에게 왕조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봅니다. 함재봉 역시 조선의 붕괴를 일본 제국주의라는 외부 요인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조선 지배층의 세계 인식, 청에 대한 의존, 개화정책의 실패, 왕실의 권력투쟁, 동학 봉기를 통제하지 못한 국가능력의 붕괴를 함께 봅니다.

두 사람 모두 민족주의 역사서술이 다음과 같은 도식을 만들었다고 비판합니다.

선량하고 단결된 조선 민족

침략적 일본 제국주의

이 구도에서는 조선 내부의 신분제, 수탈, 권력투쟁, 국제정세 오판이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신복룡과 함재봉은 바로 이 지점을 다시 전면에 내세웁니다.

2. 가장 큰 차이: 누구의 책임을 더 무겁게 보는가

신복룡의 <내부의 식민주의>가 겨누는 주된 대상은 지배계급입니다. 농민이 봉기한 것은 국가의 질서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국가가 백성을 보호하지 않고 수탈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복룡의 인과관계는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지배계급의 부패와 수탈
→ 백성의 소외와 저항
→ 국가의 내부 결속 붕괴
→ 외세 개입과 망국

이에 비해 함재봉은 동학봉기 자체가 국가의 붕괴를 가속했다고 더 강하게 강조합니다.

조선 정부의 개혁 실패
→ 동학란과 국가 통제력 붕괴
→ 조선 정부의 청군 요청
→ 톈진조약에 따른 일본군 출병
→ 청일전쟁과 일본의 조선 장악

따라서 신복룡은 “지배계급의 내부 식민주의가 동학을 불러왔다”고 보는 반면, 함재봉은 “동학란이 이미 취약한 국가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리고 외세의 군사개입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간단히 말하면, 신복룡은 <왜 농민이 일어났는가>를 먼저 묻고, 함재봉은 <그 봉기가 국가와 국제정치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3. <동학농민전쟁>과 <동학란>이라는 명칭의 차이

두 사람의 차이는 명칭에서도 드러납니다.

신복룡은 동학농민봉기를 지배계급의 억압에 맞선 정당한 사회적 저항으로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동학농민군을 완벽한 근대 민족혁명 세력으로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그에게 동학은 내부 개혁운동으로 시작하여 일본군의 개입 이후 반외세·반일전쟁으로 전환된 복합적인 사건입니다.

함재봉은 의도적으로 <동학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농민을 비하하려는 표현이라기보다, 당시 조선이라는 국가의 관점에서 그것이 무장반란이자 치안과 통치질서의 붕괴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학란>이라는 명칭은 결과적으로 국가와 지배층의 시각을 우선시합니다. 왜 농민들이 목숨을 걸고 봉기했는지보다 봉기가 국가에 끼친 손실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복룡의 <내부의 식민주의>는 함재봉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 될 수 있습니다.

백성을 보호하지 않고 수탈한 국가가 농민의 저항을 단순히 <난>이라고 부를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었는가?

4. 근대화에 대한 평가도 다르다

함재봉은 동학의 폐정개혁 요구 가운데 일부 진보적 요소를 인정하더라도, 동학의 세계관 전체를 근대적 민주주의나 국민국가 사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동학은 서학과 외세를 배척하고 전통적인 도덕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종교적·복고적 성격이 강했으므로,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같은 근대국가 건설의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신복룡도 동학을 오늘날의 민주주의·민족주의 개념으로 소급해 이상화하는 데에는 신중합니다. 그러나 그가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동학의 사상적 완성도보다 농민이 제기한 현실적 요구입니다. 탐관오리 제거, 가혹한 세금의 시정, 신분적 차별의 완화는 당시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했던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동학이 완성된 근대혁명은 아니었다는 점에서는 가까우나, 함재봉은 동학의 <근대국가 건설 능력의 부재>를, 신복룡은 동학을 발생시킨 <국가의 정의와 정당성 부재>를 더 중시합니다.

5. 두 관점을 결합하면

신복룡의 설명만 따르면 조선의 지배계급이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농민봉기는 그에 대한 불가피한 저항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봉기의 결과로 국가가 더욱 약화되고 외세개입이 확대된 사실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함재봉의 설명만 따르면 동학농민군이 국제정세를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세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봉기의 근본 원인이었던 지배층의 수탈과 국가의 정당성 상실이 축소됩니다.

두 관점을 함께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가능합니다.

  1. 동학봉기는 조선 지배층의 <내부 식민주의>가 낳은 정당한 사회적 저항이었다.
  2. 그러나 동학농민군이 일관된 근대국가 건설계획과 국제전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3. 조선 정부가 청군을 요청하면서 일본군 출병과 청일전쟁의 직접적 계기가 형성되었다.
  4. 그렇다고 봉기한 농민에게 외세개입의 주된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5. 가장 큰 내부 책임은 백성을 수탈하고 개혁을 거부했으며, 국내 문제를 외국 군대에 의존해 해결하려 한 왕실과 지배계급에 있다.
  6. 최종적으로 침략과 주권 박탈을 선택한 책임은 일본 제국주의에 있다.

종합평가

신복룡과 함재봉은 모두 민족주의적 동학 미화에 비판적이지만, 신복룡은 <아래로부터 본 국가의 정당성>을, 함재봉은 <위로부터 본 국가의 생존능력>을 강조합니다.

신복룡은 이렇게 묻습니다.

백성을 식민지 주민처럼 수탈한 조선 지배층은 왜 농민의 저항을 비난하는가?

함재봉은 이렇게 묻습니다.

국제정치의 격랑 속에서 국가질서를 무너뜨린 동학은 실제로 조선을 구할 대안을 가지고 있었는가?

제 판단으로는 신복룡의 관점이 동학 발생의 원인과 농민의 도덕적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더 설득력 있습니다. 함재봉의 관점은 동학봉기가 가져온 국제정치적 결과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지만, <동학란>이라는 명칭과 국가 중심의 설명은 지배계급의 선행 책임을 약화하고 피해 농민에게 국가 붕괴의 책임을 옮길 위험이 있습니다.

가장 균형 잡힌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학농민전쟁은 조선을 멸망시킨 원인이기보다, 조선 지배체제가 이미 백성의 신뢰와 정당성을 잃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사건이다. 다만 그 봉기가 근대국가를 건설할 충분한 조직과 국제전략을 갖추지 못했고, 그 틈을 청과 일본—특히 일본 제국주의—이 이용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