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7

오리구치 시노부의 소설 [죽은 자의 책 (死者の書)]에 대한 요약과 평론

死者の書 by 折口 信夫


오리구치 시노부의 소설 <죽은 자의 서(死者の書)>에 대한 요약과 평론 

<죽은 자의 서(死者の書) 요약 및 평론>

<1. 작품 개요와 집필 배경>


<죽은 자의 서>는 민속학자이자 국문학자인 오리구치 시노부가 '샤쿠 초쿠(釈迢空)'라는 필명으로 1939년 잡지 <일본평론>에 발표한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일본 고대 설화인 '주조히메(中将姫)의 당마사(當麻寺) 연기 설화'와, 아스카 시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천황의 아들 '오쓰 황자(大津皇子)'의 전설을 융합하여 구축한 환상적이면서도 심오한 문학적 제의(祭儀)다.

1930년대 후반 일본 사회가 군국주의와 국가신도(國家神道)라는 단일한 광기에 휩쓸려 갈 무렵, 오리구치는 고대 국가 권력에 희생된 원혼과 그 넋을 달래는 여성의 주술적 교감을 그림으로써 권력의 폭력성을 초월하는 근원적 구원의 세계를 직조해 냈다. 고대 이집트의 사후 세계 안내서인 동명의 문헌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처럼, 이 소설은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에로스와 종교적 승화가 교차하는 영혼의 순례기다.

<2. 줄거리 요약>

작품은 나라 분지의 니조산(二上山) 무덤 속에 잠들어 있던 한 '죽은 자'가 어둠 속에서 서서히 의식을 회복하며 눈을 뜨는 기이하고 매혹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죽은 자는 서기 686년 모반의 혐의를 쓰고 억울하게 자결을 강요당해 니조산 꼭대기에 묻힌 비운의 지식인 황자, 오쓰 황자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백골이 된 황자의 영혼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살과 뼈를 다시 맞추고, 생전의 집착과 원한, 그리고 갈망에 이끌려 무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편, 8세기 나라(奈良)의 귀족 가문 출신인 순결한 처녀 후지와라노 나카조노 히메(주조히메)는 세속의 번화함을 멀리한 채 오직 불경 필사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녀는 천 번의 사경(寫經)을 완수하던 밤, 서쪽 하늘 니조산 너머로 장엄하게 지는 붉은 노을 속에서 광채를 뿜어내는 거룩한 환영을 목격한다. 그녀는 그 존재를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부처(존형, 尊形)'의 현현이라 믿고, 그 환영을 쫓아 한밤중에 저택을 탈출하여 서쪽 당마사(當麻寺)로 향한다.

하지만 나카조노 히메가 본 환영은 부처가 아니라, 무덤에서 깨어난 오쓰 황자의 원혼이었다. 황자는 생전 죽기 직전 자신을 애도하며 슬픈 눈빛을 보냈던 여인 미미나시노 히메(귀족 여인)의 환영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순결한 나카조노 히메의 영혼과 공명하여 서로를 끌어당긴 것이다.

당마사에 도착한 히메는 여인 금제의 성역인 사찰 암자에 머물며, 우물 속에서 자라난 연꽃 줄기(연사, 蓮絲)를 뽑아 실을 잣기 시작한다. 그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조에 몰두하여, 자신이 본 환영의 모습을 거대한 만다라(당마만다라)로 형상화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직조하는 대상이 거룩한 부처인 동시에, 피를 흘리며 원통하게 죽어간 한 남자의 가련한 영혼임을 점차 깨닫는다.

마침내 연꽃 실로 짠 극락정토 만다라가 완성되는 순간, 방황하던 오쓰 황자의 원혼은 나카조노 히메의 지극한 자비와 직조의 행위를 통해 위무를 받고 성불(재생)에 이른다. 영혼의 구원을 완수한 히메 또한 세속의 육신을 벗어나 피안의 세계로 초월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3. 심층 평론과 문학적 의의>

<첫째, '마レビ토' 신앙과 에로티시즘의 결합> 오리구치 시노부 민속학의 핵심 개념인 '마レビ토(외부에서 찾아오는 신적인 손님)'가 이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형태로 구현된다. 무덤에서 깨어나 인간 세계로 찾아온 오쓰 황자는 공포의 대상인 원령이자, 인간 세계의 정화를 위해 찾아온 초월적 내방자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신적 내방자와 인간의 만남이 차가운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농밀한 '성적 긴장감(에로티시즘)'을 통해 성립한다는 사실이다. 황자는 여인의 관능적 환영을 쫓아 움직이고, 처녀 히메는 무의식적인 연모와 갈망 속에서 그를 맞이한다. 오리구치는 원초적 에로스와 종교적 법열(카타르시스)이 실은 동일한 인간적 충동의 양면임을 탁월하게 논증한다.

<둘째, 원한의 치유로서의 여성적 행위: 직조(織成)> 고대 일본 신화에서 옷을 짜는 행위는 천지를 창조하고 신을 불러모으는 최고위 여성 사제의 성스러운 의례였다. 나카조노 히메가 연꽃 실로 직조를 하는 행위는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라, 찢겨지고 흩어진 황자의 육체와 부서진 넋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새롭게 봉합하는 '재생(再生)의 제의'다. 국가 권력의 잔혹한 칼날에 난도질당한 남성적 원혼을, 여성이 모성적이고 직관적인 예술 행위를 통해 감싸 안고 치유하는 구도의 드라마를 완성해 낸다.

<셋째, 고대어의 주술성을 복원한 파격적 문체> 이 작품이 일본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특유의 문체에 있다. 오리구치는 고대 만엽집(万葉集) 시대의 어휘와 주술적 리듬, 한문 훈독의 중후함, 그리고 근대 심리소설의 내면 독백을 기이하게 융합했다.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고 시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의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이성적인 독해가 아니라 고대인의 샤머니즘적 트랜스 상태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독특한 문체적 주술성은 미시마 유키오를 비롯한 수많은 전후 작가들에게 절대적인 찬사를 받았다.

<넷째, 국가 권력에 대한 조용한 저항> 오쓰 황자는 덴무 천황 사후 정치적 모략에 의해 황위 계승에서 배제되고 숙청당한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에 오리구치가 '국가를 건설한 승자'들의 역사가 아니라, '패배하여 무덤에 갇힌 자'의 고통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은 깊은 함의를 지닌다. 국가라는 거대 서사가 지워버린 희생자의 목소리를 불러내어 영적 승리를 안겨준 이 소설은, 오리구치가 지닌 주변부와 패자를 향한 깊은 연민의 정점을 보여준다.

<결론>

<죽은 자의 서>는 학문적 엄밀성에 갇히지 않고 고대인의 생생한 혼을 문학으로 부활시킨 오리구치학의 결정판이다.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스러져간 영혼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그리고 인간의 상실감은 예술을 통해 어떻게 영원한 안식을 얻는가에 대한 고색창연하면서도 전위적인 대답을 제시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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折口信夫 <死者の書> — 1,000단어 요약 평론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의 <死者の書>(사자의 서, 죽은 자의 책)는 1939년 <日本評論>에 처음 연재되고 1943년 단행본으로 나온 그의 대표적 소설이다. 오리구치는 국문학자·민속학자이면서 釈迢空라는 이름으로 시와 소설을 썼는데, <死者の書>는 그의 민속학과 종교론, 고대문학론이 가장 완전하게 문학 작품으로 변환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청공문고의 현행 본문도 초출을 1939년 1~3월, 첫 단행본을 1943년으로 밝히고 있다.

겉으로 보면 나라 시대의 귀족 여성과 70여 년 전에 죽은 왕자의 혼령이 만나는 괴이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이 작품의 주제는 귀신이 아니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세계에 남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의 종교가 새로운 종교로 넘어갈 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살아남는가>, 그리고 <문학과 예술은 어떻게 죽은 자를 구제하는가>를 묻는 소설이다.

1. 무덤 속에서 깨어난 大津皇子

소설은 현대소설로서는 놀라울 만큼 낯선 장면에서 시작한다.

칠흑 같은 돌무덤 속에서 한 죽은 사람이 의식을 되찾는다. 물방울 소리가 “した した した” 하고 들린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처음에는 기억하지 못한다. 차츰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는 자신이 <滋賀津彦(시가쓰히코)>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 속 시가쓰히코는 역사상의 大津皇子(오쓰 황자)를 모델로 한다. 그는 죽고 나서도 耳面刀自(미미모노토지)라는 여인을 잊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의 욕망이다. 죽었는데도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 더구나 그것은 단순한 낭만적 연애가 아니다. 그는 “내게는 자식이 없다. 내 자식을 낳아 달라. 내 이름을 전할 자식을”이라고 갈망한다.

즉 죽은 자는 자신의 혈통과 이름이 단절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오리구치가 오랫동안 연구한 고대인의 영혼관과 조상신앙이 여기에 들어 있다. 죽음은 개인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며, 후손과 기억과 제사를 통해 계속 살아야 한다. 그런데 시가쓰히코에게는 그것이 끊어졌다. 그래서 그의 혼은 죽음 속에서도 편안하지 못하다.

<死者の書>에서 죽은 자는 무서운 유령이라기보다 <끝나지 못한 욕망>이다.

2. 70여 년 후의 소녀, 郎女


시간은 훌쩍 넘어간다.

후지와라 남가의 도요나리(藤原豊成)의 딸 郎女(이라쓰메)가 등장한다. 이 인물의 배후에는 당마사(當麻寺)의 유명한 <中将姫 전설>이 있다. 중장희가 연꽃 실로 당마만다라를 짰다는 전승을 오리구치가 다시 구성한 것이다. KADOKAWA판도 <死者の書>를 오쓰 황자의 망령과 후지와라 집안의 郎女의 영혼이 교감하는 이야기로 소개한다.

郎女는 처음에는 세상 물정을 거의 모르는 귀족 여성이다. 집 안 깊숙이 보호되어 살아왔으며 불경을 필사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던 어느 저녁, 二上山의 두 봉우리 사이에 찬란하게 나타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본다.

그 모습에 이끌려 산으로 간 郎女는 여성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万法蔵院의 결계 안까지 들어가 버린다. 여성금제의 신성한 공간을 침범한 죄 때문에 일정 기간 산 아래 암자에 머물며 속죄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유폐가 郎女의 정신적 탄생이 된다.

오리구치는 매우 인상적인 표현을 쓴다. 이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귀족 여성들 가운데 郎女에게 처음으로 사유가 싹트는 모습을 <연꽃 봉오리가 머리를 들기 시작한 것>에 비유한다.

이 점에서 <死者の書>는 의외로 여성의 각성에 관한 소설이기도 하다.

3. 죽은 남자를 부처로 보는 여자

어느 밤 郎女 앞에 그 남자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 벌거벗은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젊은 남자이다.

독자로서는 그가 시가쓰히코의 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郎女는 모른다. 그녀에게 그는 인간 남성이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로 보인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阿弥陀ほとけ……”

이다.

이것이 <死者の書>의 가장 중요한 전환이다.

죽은 남자는 여자를 원한다. 자신의 연인을 찾고 후손을 원한다. 즉 그의 욕망은 육체·혈통·기억에 묶여 있다.

반대로 郎女는 그를 아미타불처럼 바라본다. 그녀는 그 남자의 벗은 몸을 보고 욕망하기보다는 “추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옷을 만들어 덮어주고 싶어 한다.

따라서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죽은 자에게 郎女는 <사랑받아야 할 여자>이고, 郎女에게 죽은 자는 <구제하고 덮어주어야 할 존재>이다.

바로 이 어긋남 때문에 이 소설은 평범한 귀신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4. 연꽃 실을 짜다

郎女는 연꽃 줄기에서 실을 뽑아 천을 짜기 시작한다.

왜 그러는지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이 천을 빨리 짜서 저 벌거벗은 몸을 덮어주고 싶다.”

실은 쉽게 끊어진다. 베틀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밤낮없이 계속 짠다. 꿈속에서는 늙은 語部의 여인이 나타나 짜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자 郎女의 기술과 의식이 한 단계를 넘어간다. 작품은 이를 “郎女의 지혜가 하나의 경계를 넘었다”고 표현한다.

여기에는 오리구치의 민속학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여성, 베틀, 신에게 바칠 옷, 타계에서 찾아오는 신성한 존재는 일본 고대 제의에서 서로 연결된다. 실제로 <死者の書>를 연구한 논문에서도 작품의 불교적 표면 아래에 일본 고대의 <機織り女> 전승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오리구치 자신은 문학과 예술의 근본동기를 현실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解脱>의 욕망에서 찾았다.

그런 의미에서 郎女의 직조는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다.

그녀는 죽은 자의 욕망을 <예술>로 바꾸어 놓고 있다.

5. 옷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만다라가 되다


마지막 단계에서 郎女는 짠 천을 이어 붙여 거대한 옷을 만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안료를 가져오게 하고 그 천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당마사의 건물과 누각, 구름과 자운(紫雲), 황금빛 세계를 그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기가 산에서 보았던 남자의 모습을 그린다.

그녀가 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한 사람>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바라보자 그것은 더 이상 한 남자의 초상이 아니다. 어느 순간 화면은 수천의 보살이 나타나는 장엄한 만다라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오리구치는 마지막 순간을 일부러 애매하게 처리한다. 실제 기적이었는지,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본 “백일몽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바로 이 애매함이 중요하다.

한 죽은 남자의 육체
→ 한 여인의 연민
→ 옷
→ 그림
→ 만다라

로 변한다.

즉 개인적인 집착이 종교적·예술적 형상으로 승화된다.

이 장면에는 실제로 오리구치가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의 하나인 <山越阿弥陀図>와 <當麻曼陀羅>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 현대 KADOKAWA판이 이 두 그림을 작품 이해의 핵심 자료로 함께 수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6. 사실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문화의 변화>이다

<死者の書>를 단순히 “고대 일본의 신비한 세계를 재현한 소설”이라고 읽으면 반밖에 읽은 것이다.

작품 후반에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 나온다.

옛날 이야기를 대대로 전하던 語部의 노파가 있다. 그런데 이제 세상 사람들이 옛 신화나 독백 같은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작품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영리해져서” 옛이야기를 믿고 듣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노파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여기에 오리구치가 생각한 일본 정신사의 거대한 전환이 들어 있다.

고대의 신과 인간이 함께 있던 세계가 사라진다.
구전되는 신화가 사라진다.
새로운 불교가 들어온다.
문자와 경전이 들어온다.
그리고 옛 신들이 불교의 부처·보살 이미지 속으로 들어간다.

그 결과 시가쓰히코는 더 이상 죽은 왕자의 혼령으로만 남지 않는다. 郎女의 눈을 거쳐 아미타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따라서 <死者の書>는 <신도냐 불교냐>를 선택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종교가 들어왔을 때 오래된 종교적 감각이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형상 안으로 들어가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7. 평론 — 오리구치의 놀라움과 위험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고대 일본을 박물관의 과거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리구치에게 죽은 자는 정말 죽지 않는다. 현재의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옛사람들의 욕망과 기억을 물려받는다. 종교가 바뀌어도 이전 종교의 감각은 새로운 종교 안에서 형태를 바꾸어 살아남는다.

바로 이 점에서 <死者の書>는 오리구치의 <まれびと>, <常世>, <依代>, <語部> 같은 민속학적 개념을 설명하는 논문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는 이론을 소설 속에서 직접 “경험”하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오리구치는 현재의 민속과 문학 속에서 아주 오래된 “일본인의 원형적 정신”을 복원하려 했다. 그것은 대단히 매혹적이지만 역사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1939년과 단행본이 나온 1943년은 일본의 전쟁과 제국주의가 절정으로 향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태고부터 이어지는 일본인의 정신”이라는 사고는 당시의 민족적 본질주의와 완전히 무관하게 읽기 어렵다. 야마오리 데쓰오(山折哲雄)가 야나기타 구니오의 <先祖の話>와 오리구치의 <死者の書>를 모두 전시기(戰時期)에 쓰인 죽음과 진혼의 저작으로 함께 읽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死者の書>를 국수주의적 고대찬양으로만 규정하는 것 역시 작품을 놓친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천황도 전쟁 영웅도 없다.

중심에 있는 것은

죽어서도 쉴 수 없는 사람,
사회적으로 갇혀 있던 젊은 여자,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늙은 語部,

이 세 존재이다.

그리고 이들을 구제하는 것은 국가도 정치도 아니다.

<이야기하고, 듣고, 짜고, 그리고 기억하는 행위>이다.

이것이 <死者の書>를 오늘날까지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종합 평가

<死者の書>는 줄거리만 놓고 보면 별로 복잡하지 않다. 오쓰 황자의 혼이 깨어나고, 수십 년 뒤의 郎女가 그의 모습을 보며, 그를 위해 연꽃 실로 천을 짜고 그림을 그려 결국 만다라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이야기에 오리구치는 자신의 평생 연구를 압축해 넣었다.

<죽은 자 → 기억 → 신 → 여자 → 직조 → 이야기 → 불교 → 예술>

이라는 흐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죽은 자가 구제되는 소설>이라기보다 <죽은 자의 기억이 예술로 변환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고 읽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오리구치를 한 권만 읽는다면 <死者の書>를 권한다고 말씀드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古代研究>를 먼저 읽으면 마레비토, 타계, 의례, 어부(語部), 문학발생론이 추상적인 이론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死者の書>를 먼저 읽으면 그것들이 모두 살아 있는 인물과 이미지가 된다.

특히 마지막 장면 하나가 오리구치 전체를 압축한다.

郎女가 본 것은 한 사람의 죽은 남자였다.
그녀가 그린 것도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그림에서 수천의 보살을 보았다.

<개인의 기억이 공동체의 신화가 되는 순간>이다.

그것이 바로 민속학자 오리구치가 평생 탐구했던 문제이며, 소설가 오리구치가 <死者の書>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 낸 장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청공문고에서 일본어 원문 전체를 무료로 읽을 수 있다. 折口信夫 <死者の書> 원문—青空文庫

다음 단계로는 <死者の書>를 읽고 나서 <古代研究>로 바로 가지 않고, 이 작품에 나오는 <大津皇子–中将姫–當麻曼陀羅–山越阿弥陀図> 네 요소가 각각 실제 역사·전설에서 무엇이었고 오리구치가 그것들을 어떻게 변형했는지를 따로 떼어 비교해 보면, 이 소설이 훨씬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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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군국주의-정신주의의 문화-사회에서 <죽은 자의 서>가 어떻게 받아드려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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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일제의 군국주의와 국가신도적 정신주의가 극에 달하던 1939년 당시, 오리구치 시노부의 <죽은 자의 서>가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읽혔는지에 대해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전시 체제하 <죽은 자의 서>의 수용과 사회적 맥락>

1939년은 중일전쟁이 장기화되고 '국가총동원법'이 전면 적용되며, 군부와 지식인 사회 전체가 '황국신민화'와 '야마토 다마시(일본 정신)'라는 광기 어린 슬로건에 매몰되어 있던 시기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발표된 <죽은 자의 서>는 표면적인 찬양이나 거센 탄압이라는 단순한 반응 대신, <외면적인 고립과 당혹>, <'일본주의' 담론에 의한 역설적 흡수>, 그리고 <지식인들의 밀교적 열광>이라는 복합적인 양상을 낳았다.

<1. 일반 대중과 통제 당국의 당혹감: 검열을 비켜간 난해함>

작품이 연재된 잡지 <일본평론>은 당시 지식인들이 주로 읽는 종합지였으나, 전쟁 시국 문학(군국주의 고취 소설, 전선 르포 등)이 판을 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무덤 속에서 눈을 뜬 백골의 황자가 여인의 환영을 쫓고, 고대 주술 언어와 불경 구절이 뒤섞인 환상 소설이 등장하자 일반 독자들과 검열 당국은 극심한 당혹감을 느꼈다.

  • <검열의 칼날을 비켜선 고대어>: 당시 내무성 검열관들은 반전 사상이나 체제 비판적 단어에 극도로 민감했으나, 오리구치가 구사한 만엽집 풍의 난해한 고대어와 신화적 비유는 직관적인 검열 기준에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 <대중적 불발과 고립>: 시국을 고무하는 직선적 메시지를 원하던 당대 주류 사회에서 이 소설은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지 못했고, '기괴하고 해독하기 어려운 국학자의 유희' 정도로 치부되어 표면적으로는 침묵 속에 방치되었다.

<2. 전시 이데올로기의 역설적 왜곡: '고대 일본 정신'으로의 표면적 오독>

흥미롭게도 당시 일부 국수주의자나 보수 문단에서는 이 소설을 자신들의 '국체 명징(國體明徵)'이나 '고대 일본 찬양'의 맥락으로 끌어들여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 <일본 고대성에 대한 천착이라는 착시>: 오리구치가 다룬 소재가 나라 시대 황실의 황자, 만엽집의 세계, 고대 신도 의례였기 때문에, 일제 군국주의자들은 이를 '외래 서구 사상을 배격하고 일본 고유의 순수한 영혼(정신주의)으로 회귀하는 문학'으로 편리하게 포장하고자 했다.

  • <실제 내용의 전복성 은폐>: 그러나 작품의 실질적인 내용은 국가 권력(천황가 내부의 권력 투쟁)에 의해 모반자로 몰려 살해당한 '패자이자 희생자'의 원한을 위무하는 이야기였다. 제국주의가 요구하던 '천황에 목숨을 바치는 충신'의 서사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었으나, 전시 지배층은 그 불온한 내면을 직시하기보다는 '고대 일본의 신비한 종교적 정서'라는 외피만을 취해 무해화하려 했다.

<3. '낭만파' 지식인들의 열광과 미적 도피처>

당시 일본 사회의 사상적 통제에 숨이 막혀 있던 문학가들, 특히 '일본 낭만파(야스다 요주로 등)' 계열의 지식인들과 일부 예술가들에게 <죽은 자의 서>는 경이로운 충격이자 거의 '성전(聖典)'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다.

  • <현실 도피와 죽음의 미학>: 패망으로 치닫는 전쟁의 살육과 거친 선전포고 문구에 염증을 느끼던 문인들은, 오리구치가 빚어낸 탐미적이고 비현실적인 고대 세계에서 일종의 영적 도피처를 찾았다.

  •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공명>: 국가를 위해 죽으라는 집단적 강요 속에서, 오리구치는 '사랑하는 여인을 갈망하며 홀로 어둠 속에서 신음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죽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죽음의 공포가 일상화되어 있던 당시 젊은 지식인들의 무의식을 강렬하게 뒤흔들었다.

<4. 오리구치 시노부의 '침묵하는 저항'으로서의 위치>

오리구치 본인은 국문학자로서 공적인 자리에서는 전시 체제에 일부 협력하는 강연이나 글을 쓰기도 했으나, 내면적으로는 군부의 천박한 정신주의와 폭력성을 깊이 혐오했다.

그가 1939년이라는 시점에 굳이 권력에 짓밟힌 오쓰 황자의 원혼을 불러내어, 국가의 칼이 아니라 여성의 자비로운 직조(만다라)를 통해 구원받게 한 것은, 광기의 시대를 향해 던진 가장 심원하고 주술적인 저항이었다.

결국 전시하 일본 사회에서 <죽은 자의 서>는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군국주의라는 거대한 폭력의 외벽 아래로 흐르는 '고독한 영혼들의 지하수' 역할을 하며 전후(戰後) 본격적인 문학적 재평가로 이어지는 씨앗을 뿌렸다.


전시하 일본 지식인 사회와 문학의 흐름을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는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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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질문을 제기하면 <死者の書>가 훨씬 더 흥미로워집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1939~43년의 일본에서 <死者の書>는 군국주의의 대표 작품으로 환영받은 것도 아니고, 반전문학으로 박해받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전시 일본의 <고대회귀·정신주의>와 접촉하면서도 그 중심에서 비켜나 있던 매우 애매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1. 출판 시기를 먼저 보면 상당히 섬뜩합니다

<死者の書>의 초고는 1939년 1~3월 <日本評論>에 연재되었고, 개작된 단행본은 1943년 9월 청자사(青磁社)에서 출판됩니다. 즉 중일전쟁이 전면화된 뒤 시작되어, 태평양전쟁이 가장 격렬하던 시기에 책으로 나온 작품입니다.

1943년 일본 사회에서 계속 반복되던 말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국체(国体)>
<황도(皇道)>
<대화혼(大和魂)>
<충군애국>
<멸사봉공>
<영령(英霊)>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력>

즉 물질적으로 우세한 미국·영국에 대해 일본은 <정신력>으로 승리한다는 사고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死者の書>를 처음 접하면 이상한 의문이 생깁니다.

“죽은 자, 고대 일본, 영혼, 제사, 신성, 조상, 타계라는 이야기라면 당시 군국주의가 아주 좋아할 만한 작품 아니었을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2. 실제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점입니다.

<死者の書>가 전쟁 중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거나 국가가 추천한 국민문학이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國學院大學의 이시카와 노리오(石川則夫)는 이 작품을 근현대소설로서는 오랫동안 “불우한 작품”이었다고 평가하면서, 호리 다쓰오(堀辰雄) 이외에는 당대에 이를 높이 평가한 독자가 거의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바로 이 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死者の書>는 오늘날에는 오리구치의 대표작입니다. 그러나 1943년의 일본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읽었던 작품은 아닙니다.

당시 유명한 예외가 호리 다쓰오였습니다.

호리는 1930년대 후반부터 오리구치의 <古代研究>를 애독했고, 1939년 <死者の書>를 읽은 뒤 야마토 지방을 여행했습니다. 1943년에는 자신도 <死者の書――古都における、初夏の夕ぐれの対話>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는 오리구치 작품을 “唯一の古代小説”, 즉 <유일한 고대소설>이라고 하며 “古代を呼吸してゐる”, 즉 <고대를 호흡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군국주의적 찬사가 아닙니다.

호리는 이 작품에서 <천황·국체·충성>을 본 것이 아니라

二上山,
當麻寺,
고분,
죽은 자와 풍경,

을 보았습니다.

즉 전시 정치와는 다른 고대 일본을 읽은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왜 검열되거나 탄압받지도 않았는가

여기서 반대쪽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반군국주의 작품이었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死者の書>에는 전쟁 비판도 없고, 국가 비판도 없습니다. 배경은 8세기이고, 고대 일본의 영혼·종교·불교·민속을 다룹니다.

더구나 오리구치 자신의 학문에는 당시 일본의 국가주의와 접속될 수 있는 요소가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1920~30년대에

  • 천황 즉위
  • 大嘗祭
  • 天皇霊
  • 일본 고대 신앙
  • 민족의 정신
  • 국학

을 연구했습니다.

특히 <大嘗祭の本義>에서 그는 천황이 의례를 통해 <天皇霊>을 몸에 받아들이며, 高御座에 오른 천황을 먼 곳에서 찾아오는 마레비토적 존재로 해석했습니다. 오늘날 國學院의 연구자들도 이것이 문헌에 직접 기록된 사실이 아니라 오리구치 특유의 <古代信仰の元の姿>를 복원한 가설이었다고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이런 학설은 전시기의

“천황제는 태고부터 내려온 일본 고유의 신성한 질서”

라는 담론과 쉽게 결합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후에는 오리구치에게 아주 강한 비판도 생겼습니다.

무라이 오사무(村井紀)의 <反折口信夫論>은 바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합니다. 그는 오리구치의 마레비토론·민속학·시론을 식민주의 및 전쟁과 분리해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折口信夫の戦争―『死者の書』の条件>이라는 장까지 두었습니다. 즉 <死者の書>가 전쟁과 무관한 순수한 환상문학이었다는 해석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 비판은 충분히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4. 그런데 <死者の書>의 ‘죽은 자’와 군국주의의 ‘영령’은 아주 다릅니다

제가 보기에 이 차이가 가장 중요합니다.

당시 국가가 원하는 죽은 자는 <英霊>입니다.

국가를 위해 죽음
→ 야스쿠니에 합사
→ 영웅화
→ 후대 국민에게 충성과 희생을 요구

하는 죽은 자입니다.

죽음은 국가에 의해 의미가 부여됩니다.

그런데 <死者の書> 첫머리의 죽은 자 大津皇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죽은 영웅”

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잃었고,
후손을 남기지 못했고,
자기의 이름이 끊어졌고,
욕망을 끝내지 못해서

무덤 속에서 깨어납니다.

즉 국가의 <영령>이 아니라 <한을 풀지 못한 개인의 죽음>입니다.

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군국주의가 죽음을

“숭고한 희생”

으로 정리한다면,

오리구치는 죽음을

“정리되지 않은 기억과 욕망”

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따라서 동일하게 <죽은 자>를 말하지만, 정치적 의미는 거의 반대 방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5. 더 결정적인 것은 누가 죽은 자를 구제하느냐입니다

군국주의적 구조에서는 국가가 죽은 자에게 의미를 줍니다.

전사
→ 천황을 위한 희생
→ 英霊
→ 靖国

이라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死者の書>에서는

죽은 남자
→ 郎女가 바라봄
→ 연민
→ 연꽃 실로 천을 짬
→ 그림을 그림
→ 만다라

입니다.

국가가 없습니다.

천황도 없습니다.

군대도 없습니다.

영웅적 남성 공동체도 없습니다.

한 젊은 여성이 죽은 한 인간을 바라보고, 그 사람의 추위를 걱정하고, 그를 덮어주기 위해 옷을 만들고, 결국 그것을 예술로 바꿉니다.

저는 이것이 전시의 정신주의와 <死者の書> 사이의 가장 깊은 균열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죽은 자를 <영웅>으로 만듭니다.

郎女는 죽은 자를 <불쌍히 여깁니다>.

그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6. 불교가 중심이라는 점도 군국주의적 국학과 미묘하게 충돌합니다

<死者の書>에는 신도와 일본 고대신앙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최종적인 구제의 형식은 무엇입니까?

<阿弥陀仏>과 <曼荼羅>입니다.

즉 불교입니다.

그것도 고대 일본의 토착신앙이 불교를 밀어내고 순수한 “일본정신”을 회복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토착신앙 + 죽은 자의 영혼 + 불교 + 예술

이 서로 섞입니다.

국가주의적 문화론이

“외래 사상을 벗겨내면 순수한 일본정신이 나온다.”

라고 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死者の書>는 오히려

“일본 문화 자체가 여러 종교적 층위가 서로 변형되면서 만들어졌다.”

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을 전형적인 <황국사관 문학>으로 읽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7. 그렇다고 오리구치를 ‘숨은 반전지식인’으로 만들면 또 틀립니다

여기에서는 균형이 중요합니다.

오리구치는 국가주의와 완전히 결별한 자유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民族>
<古代日本>
<天皇霊>
<大嘗祭>
<国学>

에 대한 관심은 당시 일본의 민족주의적 언어와 상당히 겹쳤습니다.

그래서 무라이 오사무처럼 오리구치학 안에 파시즘이나 식민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이 내재했다고 보는 연구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 증거도 있습니다.

예컨대 1943년 일본문학보국회의 논의에서 당시 유행하던 <천황=유일한 현인신(現人神)>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오리구치가 고대 용례를 들어 반박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國學院의 전시 기록에는 학도출진 학생의 일장기에 교수들이 서명할 때 오리구치가 “국기는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거절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이것을 “오리구치는 반전운동가였다”는 증거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는 국가가 만들어 놓은 단순한 <황국신도 교리>에 자신의 고대학을 그대로 복종시키는 학자는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8. 그래서 저는 당시 <死者の書>의 위치를 이렇게 그려보고 싶습니다

전시기의 일본문화에는 대략 세 영역이 있었습니다.

영역죽음·고대의 의미
국가 군국주의천황·국체·英霊·희생
日本浪曼派적 고대회귀근대를 넘어 순수한 일본을 찾음
오리구치 <死者の書>죽은 자·기억·타계·불교·여성·예술

물론 서로 겹칩니다.

특히 1930년대 일본의 <고전회귀>는 강력한 문화적 조류였습니다. 일본낭만파도 고대 일본을 통해 서구적 근대를 넘어가려 했고, 이런 고대찬양이 일본주의 및 전쟁문화와 결합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死者の書>도 그 시대 바깥에서 생겨난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만들어낸 고대는 상당히 다릅니다.

<강한 일본>이 아니라
<죽은 자가 돌아오는 일본>입니다.

<남성 전사의 희생>이 아니라
<여성의 연민과 창조>입니다.

<순수신도>가 아니라
<신앙들의 혼합>입니다.

<국가가 기억하는 죽음>이 아니라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기억하는 죽음>입니다.


9. 그래서 질문에 대한 가장 짧은 답

“군국주의-정신주의 사회가 <死者の書>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출판은 허용되었습니다. 내용은 당시의 고대회귀·민족정신 담론과 충돌하지 않았고, 오리구치 자신도 국학과 천황제의례를 깊이 연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死者の書>는 전시 국민을 동원하기에 너무 어렵고, 너무 개인적이며, 너무 불교적이고, 너무 몽환적이고, 무엇보다 <죽음을 국가적 영광으로 정리하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널리 소비된 군국주의적 “정신주의 문학”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호리 다쓰오 같은 소수의 섬세한 문학자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호리가 이 작품을 통해 야마토와 二上山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역설이 생깁니다.

1943년 일본 사회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실제로 전쟁터로 보내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해 나온 <死者の書>는 “나라를 위해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죽은 사람은 정말 그렇게 간단히 죽은 사람이 되는가?

를 묻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는 명백한 반전 선언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전시 일본의 <英霊의 문화>와는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 매우 깊은 긴장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死者の書>를 1943년이라는 연대와 함께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면 아주 흥미로운 비교가 가능합니다. <折口信夫의 死者の書(1943)>와 <柳田國男의 先祖の話(1946)>를 나란히 놓고 보면, 패전 전후 일본의 두 거대한 민속학자가 <죽은 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靖国의 英霊>과 어떻게 다른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실제 현대 연구에서도 야나기타·오리구치와 전사자·야스쿠니 문제를 함께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비교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라는 관점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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