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부터의 통신 - 세계로 발신한 민주화운동
지명관 (지은이),김경희 (옮긴이)창비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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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에서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보도, 그리고「세까이(世界)」에 실린 지명관 교수의 연재기사를 바탕으로 격동에 휩싸인 7,80년대 한국의 현대사를 재구성해내며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한일 양국에 걸친 매체의 시각으로 비교 고찰한 책.
지명관 교수는 일본에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던 시절 ‘TK生’이라는 필명으로「세까이」에「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했으며, 지난 2003년 이 사실을 처음 공개해 한일 양국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책은 1973년부터 1988년까지 15년간에 걸쳐 연재된「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두 언론의 보도를 비교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황과 그 역사적 의의 등을 차분하게 되짚고 있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바라본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독재체제의 탄압과 여기에 맞서는 학생-지식인의 저항, 그리고 광범위한 민중세력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어쩌면 80년 광주사건과 87년 민주화항쟁은 그와같은 과정이 똑같이 반복된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역동적인 한국 민주주의의 형성과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후대에 전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한국 민주주의를 되새기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일본어판 서문
1부 『동아일보』가 전한 것
유신체제의 시작
‘백지광고’ 투쟁
3?1민주구국선언
광주사건
민중혁명의 시대로
2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 전한 것
비관과 거절
순교의 시대
희망의 저류
누가 오는 봄을 막을 수 있겠는가
시대의 어둠을 넘어
3부 『아사히신문』이 전한 것
유신체제를 바라보는 걱정스런 눈길
김대중 납치사건을 둘러싸고 고조되는 한일갈등
정치탄압에 쏟아지는 국제적 비판
시시각각 깊어지는 증오와 분열
불기 시작한 자유의 바람
맺음말
대담: 국제공동프로젝트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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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공포정치로 대학이 침묵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더욱더 비장한 투쟁으로 바뀌었다. 4월 11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는 김상진이 정부의 폭정에 저항하며 할복자살했다. 정부는 김상진의 추도식을 금지하고 강제로 화장을 해버렸다.-p57 중에서
검열 당국과 출판물의 경쟁도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출판물은 다투어 비판적 또는 반체제적인 것을 내놓는다. 검열의 종료를 기다리면서 한편에서는 지하에서 팔아치운다. 검열 당국도 차츰 원망을 살만큼 심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말하자면 뻗어오르는 민중의 힘에 권력 측은 조금씩 양보하고 마는 것이었다.-p196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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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지명관 (池明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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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46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제1회 입학생으로 입학하였으나 1947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중퇴하고, 월남했다. 1950년 한국전쟁에 통역장교로 참전했다. 1954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1958년 동 대학원 종교학과 석사 이후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60년 덕성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월간 『사상계』 주간으로 근무했다. 1967년에서 1968년까지 뉴욕 유니언신학교에서 유학했으며 1972년 일본으로 망명해 1972년부터 1993년 일본 도쿄여자대학 교수직을 역...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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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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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일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비교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림대학교 국제교육원 시간강사이며, 역저서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창비)가 있다.
지명관(지은이)의 말
미완의 역사로서 현대사는 자칫하면 쓰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실로 복잡하고 중층적인 현대를 묘사한다는 것은 때로는 일방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모험적인 기도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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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한일 양국에 걸친 매체의 시각으로 비교 고찰한 독특하고 뜻깊은 책이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한림대 지명관(池明觀) 석좌교수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에서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보도, 그리고 『세까이(世界)』에 실린 저자 본인의 연재기사를 바탕으로 격동에 휩싸인 7,80년대 한국의 현대사를 재구성해냈다. 지명관 교수는 일본에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던 시절 ‘TK生’이라는 필명으로 『세까이』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했으며, 지난 2003년 이 사실을 처음 공개해 한일 양국에서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책은 1973년부터 1988년까지 15년간에 걸쳐 연재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두 언론의 보도를 비교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황과 그 역사적 의의 등을 차분하게 되짚고 있다.
동북아시아를 결집시킨 한국의 민주화운동
이 책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한일 양국의 세 매체를 비교 분석한 점이다.
저자는 1972년 10월유신에서 87년 민주항쟁까지의 한국 민주화운동을 다루되, 전체 구성을 3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동아일보』,
2부에서는 『세까이』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3부에서는 『아사히신문』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있다.
이와같은 구성 덕분에 한가지 사건이 세 언론의 관점에 따라 각각 다르게 서술되는 스펙트럼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크게 한국언론의 시각, 망명자의 시각,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으로 삼분되고 있다. 여기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현실을 걱정하고 공감하며 때로는 비판하기도 한 일본언론의 대응이다. 한국의 독재체제가 모든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있을 때, 일본의 언론이야말로 한국의 상황을 가장 풍부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이를 세계로 전달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런 사실은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을 다룬 세 매체의 시각을 분석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10월유신이 선포된 다음해인 1973년 8월 8일, 김대중이 토요꾜오(東京)의 한 호텔에서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신체제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동아일보』로 대표되는 한국언론은 이 사건이 정부와는 무관하다는 박정희 정부의 주장을 되풀이해 보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과 『아사히신문』은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한국 정보기관의 개입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분명하게 전했다. 특히 『아사히신문』은 진정한 한일우호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양식있는 사건 해결’을 강조했으며 이웃 나라 한국의 자유를 염원하는 일본인의 마음을 사설로 전했다. 저자는 김대중사건을 다룬 『아사히신문』의 이런 태도가 협력 속에 번영을 모색하는 동북아로 나아가는 도정에서 나온 중요한 역사의 첫걸음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결국 평화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동북아인들을 결집시켰고, 이를 통해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세계로 발신한 한국의 민주화운동
이처럼 이 책에는 한국 민주화 과정의 역동성과 여기에 반응하는 한일 양국 언론들의 좌절과 환호가 함께 숨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저자는 2003년 자신이 「통신」의 필자였음을 처음으로 밝히면서 이 연재의 역사와 의의 등에 관해 오까모또 아쯔시 『세까이』 편집장과 대담했다(「부록」 참조). 이 대담에 따르면 「통신」은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태어난 연재물이었다. 미국·캐나다·일본 등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내로 들어가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가 씌어졌고, 이 과정에서 몇몇 외국인들은 당국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덕분에 「통신」은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3·1민주구국선언, 80년 광주사건, 87년 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생동감있게 세계로 발신할 수 있었다.
「통신」은 언론탄압과 보도통제가 만연하던 당시 주한 외국대사관들에서 주재국 한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당국의 눈을 피해 열독하던 자료였다. 또한 일본 시민사회에서 우리의 정치현실과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으며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서 읽히기도 했다. 오까모또 편집장은 한국 민주화를 위한 일본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만들어낸 원류가 바로 이 「통신」이었으며 그로부터 한일 시민사회의 진정한 연대가 시작됐다고 회고한다.
「통신」에는 학교, 노조, 교회 등에서 나온 여러 선언문들과 전단, 노래, 시 등이 직접 인용돼 있는데, 이 역시 당국의 눈을 피해 일본으로 들여온 여러 자료 덕분이었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또한 이러한 자료들은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민주화운동, 나아가 세계의 민주화운동사에도 기록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저자가 이 책에서 바라본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독재체제의 탄압과 여기에 맞서는 학생-지식인의 저항, 그리고 광범위한 민중세력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어쩌면 80년 광주사건과 87년 민주화항쟁은 그와같은 과정이 똑같이 반복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렇듯 역동적인 한국 민주주의의 형성과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후대에 전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책이자,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한국 민주주의를 되새겨본 책이라 할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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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조선과 동아의 옛 모습
지금이야 싸잡아 타박하지만 이 시절 <동아일보>가 이 만큼 한 것은 이채롭다. 물론 해방 직후에는 <조선>이 <동아>보다 나았지만 말이다. 김일성대를 졸업한 저자가 북한에 관대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일본에 남아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통신> 이후론 한국에 들어올 수도 없... + 더보기
파고세운닥나무 2009-03-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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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의 청춘적 독서
오늘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이번주에 나온 강상중 교수의 <청춘을 읽는다>(돌베개, 2009)이다(원제는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 책의 해제를 청탁받고 쓴 덕분에 출판사에서 보내온 것. 긴 분량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부담을 안고 고민하면서 보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강상중의 청춘적 독서'라고 제목을 붙인 해제를 여기에 옮겨놓는다.


강상중 교수와의 첫 만남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이산, 1997)를 통해서였다. 나는 강상중이란 이름보다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주제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속표지엔 날카롭고 이지적인 모습의 일러스트가 저자의 사진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간략한 저자 소개는 그를 ‘정치사상사를 전공한 재일동포 지식인’ 정도로 분류하게 했다. 나는 그가 도쿄대학 교수이면서 일본 이름이 아니라 ‘강상중’이란 한국 이름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재일동포’라는 정체성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저자의 개인사보다는 ‘근대문화 비판’에 더 관심이 있었고, 베버와 푸코, 그리고 사이드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무관심은 ‘적극적인’ 무관심이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이렇게 써놓은 것을 애써 간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한국인 2세인 나는 학생 때부터 언제나 한 가지 질문을 줄곧 던져 오지 않았던가 싶다. 그것은, 왜 내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하여 근대화의 낙오자로서 엄청난 희생을 강요받게 되었던 것일까 하는 물음이다.”
나는 그의 물음을 나의 물음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냥 눈으로만 읽었을 것이다. 사실 저자와 같은 세대라 할지라도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가 여전히 학술적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그것은 정서적인 한(恨)으로까지 경험되지는 않는다. 역사적 경험이자 공동체의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현실에서의 자기 체험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한국인’ 세대에 무관심했다.



생각이 조금 달라진 건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을 읽으면서다. 그사이에 강상중과 같은 세대의 ‘재일 조선인’ 서경식 교수의 책들을 즐겨 읽은 것도 재일 지식인들의 개인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문체로만 분류하자면 유려한 에세이들을 통해서 소개된 서경식이 ‘소프트’했고, 오리엔탈리즘을 비롯하여 내셔널리즘과 세계화 등 주로 ‘이즘’과 ‘이슈’에 관한 책들이 소개된 강상중은 ‘하드’했다. <고민하는 힘>은 그런 강상중에 대한 인상을 바꾸어놓았다. 그건 ‘소프트한’ 강상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대중적 지식인이면서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 때문에 강연회를 할 때마다 극우파의 공격에 대비해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친 김에 나는 그의 자서전 <재일 강상중>(삶과꿈, 2004)까지 찾아서 읽었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 한국을 방문하고 일본 이름 ‘나가노 데쓰오’ 대신에 ‘강상중’이란 본명을 쓰게 된 사연과 독일 유학시절에 대한 회고 등이 흥미로웠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한국인 2세인 나는 학생 때부터 언제나 한 가지 질문을 줄곧 던져 오지 않았던가 싶다.”고 한 그의 말을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재일 2세로서 강상중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자란 우리와는 다른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에게 피식민 지배의 굴욕적인 역사는 현실에서 그가 겪는 직접적인 모욕과 소외의 원인이자 원흉이었고, 따라서 그러한 역사를 낳은 ‘근대화’의 문제를 깊이 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근대화 이론의 태두라 할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 대한 연구로 나아간다. 그 방향성을 규정한 것이 ‘개인’ 강상중이 아니라 ‘재일’ 강상중이라는 점에서 그의 학문적 선택은 동시에 ‘자유로운 선택’이자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되짚어보면, 강상중에게서 실존적 물음과 학문적 과제는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실존적 물음에 학문의 보편적 언어를 통해서 기술하고 해명하며 답하고자 했다. 나로선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지만, 말하자면 그런 것이 강상중의 학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태도가 강상중에게서 배울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과 학문을 일치시키려는 태도 말이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청춘을 읽는다>를 읽으면서도 나는 그의 그러한 태도를 다시금 읽는다.
청춘을 읽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에서 출발하여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이르는 여정이기도 한 이 책을 손에 들면서 독자들이 제일 처음 던질 법한 질문이다. 한국어본의 부제가 된 책의 원제도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이다. 하지만 이미 <고민하는 힘>을 읽어본 독자라면 ‘청춘은 아름다운가?’란 장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에 발표된 <청춘을 읽는다>와 <고민하는 힘>과 서로 짝이 될 만하다. <고민하는 힘>이 ‘고민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이들을 자극하고 격려하는 ‘멘토’로서의 강상중과 만나게 해준다면, <청춘을 읽는다>는 독서노트의 형식을 빌려서 강상중의 성장사와 함께 시대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그렇다, 이것은 독서록이면서 자서전이고 동시에 한 시대에 대한 증언이다. 그것을 뭉뚱그려서 강상중은 ‘청춘’이라고 말한다. 대단한 청춘 아닌가!
강상중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청춘’을 ‘젊음’과는 구별되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가 말하는 청춘은 미숙하고 서툴더라도 진지하게 무언가를 찾아서 계속 방황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청춘은 단순히 ‘피부’와 ‘근육’의 문제로 따질 것이 아니다. 강상중이 청춘론이 문제삼는 것은 고민의 함량이고 방황의 진정성이다. ‘고민하는 힘’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청춘이다. 반대로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 기업에 얼른 취직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친다면, 비록 나이는 청춘이더라도 청춘이 버거운, 이름만 청춘인 경우가 된다.
<고민하는 힘>에 따르면, “타인과 깊지 않고 무난한 관계를 맺고, 가능한 위험을 피하려고 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별로 휘말리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구애되지 않으려고 행동하는”, 한마디로 ‘요령이 뛰어난’ 젊음은 젊음이긴 하되 청춘은 아니다. 기껏해야 탈색된 청춘이다. 이런 생각에서 강상중은 심지어 ‘청춘적으로 원숙함’이란 표현까지 쓴다. 나이를 먹더라도 청춘의 문제의식과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보존하는 원숙함이다. 그리고 그것과 반대되는 것을 강상중은 ‘표층적으로 원숙함’이라고 부른다. 고민 없이 나이만 먹은 경우다. <청춘을 읽는다>는 ‘청춘적 원숙’에 이르기 위한 길잡이이자 ‘청춘적 독서’의 모범적인 사례담이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곧 ‘청춘기’에 저자가 읽은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하고 또 추천하고 있기도 하므로 ‘청춘’이란 말은 일차적으로 그 시기를 가리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청춘’의 의미가 종결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청춘을 되새기며 이야기하는 현재의 시간 또한 ‘청춘’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현재라는 시간이 그의 청춘 시대와 무척 닮았다고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마무리하며 그가 “나는 지금 제2의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고백한 것도 일방적인 생각이나 믿음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이면서 우리가 되사는 시간으로서의 청춘은 언제 시작되는가? 열일곱이다. 열입곱은 구마모토의 현립 고등학교에 다니던 강상중이 야구선수의 꿈을 접게 된 나이이면서 ‘은둔형 외톨이’ 시절을 보내며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접한 나이이다.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는 강상중의 글 「어른으로 향하는 외나무다리, 움츠리지 말고 건너가보자」가 가리키는 나이도 열일곱이다.
그가 열일곱에 맞닥뜨린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경구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인상적인데, 이 걸출한 일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한 갑 성냥을 닮았다. 소중하게 다루는 건 어리석다.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강상중은 이 경구가 마치 ‘하늘의 계시’와도 같은 선물이었다고 회고한다.
아쿠다가와의 경구는 인생의 모순, 인생을 고민하는 청춘의 모순을 집약해주고 있다. ‘인생을 너무 소중히 다루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니 ‘인생을 소중히 다루지 말라’는 명제와 ‘인생은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곧 ‘인생을 소중히 다루라’는 명제는 서로 모순된다. 하지만 이 모순을 두 다리로 삼아서 우리는 깊은 계곡에 가로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가지 태도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생이 너무 소중하다면, 우리는 그 위태로운 다리를 감히 건너갈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인생을 함부로 다룬다면, 우리는 신중하지 못하게 다리를 건너다 추락하고 말 것이다. 짐작컨대, 이것이 열입곱 살 강상중의 깨달음이지 않았을까.
흥미로운 건 이 깨달음이 이후에 그의 정치적 입장과 활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싶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신을 ‘전위’가 아닌 ‘후위’에 위치시키는 입장이다. 후위라는 것은 물론 ‘재일’, 곧 ‘자아니치’로서의 정체성과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와 “자신을 너무 앞세우지 말라”는 상충적인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강상중 자신의 표현을 빌면, 현상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떠한 ‘주의’나 ‘도그마’에도 붙들리지 않는 ‘리버럴’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한 입장을 강상중은 이렇게 요약해놓고 있다.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을 후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앞에 아무도 없고 어느새 내가 전위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후위라고 생각하거니와 후위라는 사실을 영광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내가 마치 전위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만큼 일본이라는 사회가 변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강상중은 하나의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 ‘후위’에 놓인 그의 입장이 전위로 보이는 만큼 한국사회도 일본의 변화를 따라잡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러한 변화 속에서 ‘척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강상중 자신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따라서 ‘청춘의 독서’라고 하지만 이 책은 그에게 ‘일생의 독서’를 기록한 책이기도 하다. 사실 그럴 만하지 않은가. 그의 일생을 결정한 책들과의 만남이었으니까.
강상중의 <청춘을 읽는다>를 통해서 우리는 “나는 야구도 못해. 친구도 없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걸까?”라고 묻던 ‘시골뜨기’이자 <산시로>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길 잃은 양’이었던 한 재일 대학생이 어떻게 성장해가는가, 격동의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이 던진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찾아나가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 자세한 내막은 독자가 읽어나갈 몫으로 남겨놓는 것이 나의 소임인 듯싶지만, 한 가지 감상만은 덧붙이고 싶다. 그가 맺음말에서 이 책이 “청춘 독서노트인 동시에 또 하나의 도쿄, 또 하나의 일본을 모색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라고 적을 때, 우리 또한 자연스레 “또 하나의 서울, 또 하나의 한국”을 모색하는 우리의 ‘청춘 독서노트’를 떠올리게 되리라는 것. 그럴 때만 우리는 아직 청춘이리라.
09.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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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10-29 공감 (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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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읽을 만한 책
대책없이 봄이고 3월이다. 3월이라고 또 '3월의 읽을 만한 책'이 발표되었다. 간식 시간에 잠시 틈을 내서 어젯밤에 스크랩해놓은 기사에 살을 붙이도록 한다. 선정도서 및 추천사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웹진(www.kpec.or.kr/webzine)을 참조한 것이다.




1. 문학
작가 신경숙씨가 문학분야에 추천한 책은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문학동네, 2008)이다. 알라딘에서는 이미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인데 저자는 생소하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마커스 주삭이라는 <책도둑> 의 저자 이름이 낯설어 다시 살펴보니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소설가'라는 평을 받는 작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런 그의 명성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책도둑> 이 처음 번역되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철학적인 소설이다."라고 추천자도 적어놓았다.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듯하여 생략한다.

내가 보태자면 미국의 중국계 작가 하진의 단편집 <카우보이 치킨>(현대문학, 2008)은 어떨까? 이스마일 카다레의 신작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문학동네, 2008)와 견주어보다가 내가 손을 들어준 쪽이 하진인데, 그건 아직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하진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761943 참조). 여차하면 대표작인 <기다림>(시공사, 2007)에까지 손을 뻗칠 수도 있겠다.




2. 역사
역사분야의 책으로 추천된 것은 타이먼 스크리치의 <에도의 몸을 열다>(그린비, 2008)이다. 내가 지난달에 과학분야의 책으로 올려놓은 것이어서 따로 설명은 필요 없겠다(http://blog.aladin.co.kr/mramor/1885413). "<에도의 문을 열다> 는 난학(蘭學)이 에도 시대의 일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탐구한 책"이라는 게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간명한 소개다.
나는 에도시대보다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 그리스에 관심을 두고 싶다. 이번에 새로 번역돼 나온 키토 교수의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갈라파고스, 2008)에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로 평해지는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1934173 참조). 원제('The Greek')대로 그냥 깔끔하게 <그리스인들>이란 제목이 붙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키토의 책과 함께 나란히 읽어볼 만한 것은 데브라 하멜의 <네아이라 재판소동>(북북서, 2008)이다. 고전학자 인 저자가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 사회에서 일어난 네아이라 재판 사건을 설명함으로써 당시 시대상을 파악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네아이라라는 고급 창녀를 두고 일어난 재판 과정을 새심히 다루면서, 그와 연관된 역사적 사실들이 자연스레 드러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하므로 그리스 '입문'에 이은 '실습'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저자 자신의 직접적인 책소개는 http://www.youtube.com/watch?v=blwjt0aAvgY 참조).




3. 철학
철학분야의 책으로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책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이학사, 2008)이다. 물론 잘 알려진 책이고 이번에 새로 번역됐다. 추천사에 따르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는 왕년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강연문이다. 강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0월 파리에서 열기로 가득한 청중들 앞에서 열렸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철학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하고 자신의 사상에 던져진 이런 저런 비판에 맞서 반박하는 가운데 자신의 실존주의가 휴머니즘임을 천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저자의 주저이자 난해한 철학 작품 <존재와 무> 의 입문서라 불린다."
하지만 추천자가 밝히고 있는 이 책의 의의는 따로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사르트르의 철학이 새로운 주기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지독한 개인주의라는 인상을 주던 실존주의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에 대한 이론으로, 실천의 무기로 탈바꿈되는 시발점이 이 강연문이다. 골방의 철학이 광장의 철학으로 전환되는 장면이라 할 수도 있다. 역사상 유례없는 전쟁을 경험하면서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완전히 다시 태어난 철학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역력하다. 의도와 내용, 그리고 문체부터 대중과 만나는 데 성공한 첫 번째 사례로 꼽을 만한 책이다. 점점 전문화되고 어려워지는 요즘의 철학책들이 다시 회복해야 할 목표지점을 표시하고 있는 책이라 할까. 독자는 여기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외치는 가장 드높은 찬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사르트르의 육성은 http://www.youtube.com/watch?v=85vEXo7Wntk 등을 참조.)

이 '드높은 찬가'는 하지만 적잖은 상처와 고통을 뒤로 한 것이다. 때문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소설가이기도 한 어빈 얄롬의 <실존주의 심리치료>(학지사, 2007)와 함께 1945년 이전의 몇 년간이다(얄롬의 책은 '교재'다). 가장 대표적으로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책으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2007)를 들 수 있겠다. 이것은 두번째 장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바닥'에 관한 책이다. 인간성의 바닥이면서 인간에 대한 기대의 바닥.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새물결, 2008)도 이 '바닥'에 대한 성찰로 이끈다. 아감벤 또한 레비와 함께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숙고하고 있는 이탈리아인이로군.




4. 정치, 5. 경제/경영
정치와 경제/경영분야의 책은 묶어서 다루기로 한다.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전대원의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2008)이다. 저자는 현직 교사라고 하며 "힘없는 일반 국민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리에 대한 이해는 곧 그 사회에 대한 이해에 다름 아니며 억압이나 부조리와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이 문제의식에서 씌어진 이 책은 현직 사회과목 교사가 쓴 책답게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평범한 언어로 중요한 우리 사회의 권리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리고 정운찬 교수가 경제분야의 책으로 추천한 것은 이해영/정인교의 <한미FTA, 하나의 협정 엇갈린 '진실'>(시대의창, 2008)이다. 알다시피 양국 국회/의회의 비준이 남은 상태인데, "이 책은 FTA를 지지하는 인하대의 정인교 교수와 반대하는 한신대의 이해영 교수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논점을 하나도 빼지 않고 토론한 결과를 한겨레신문 정남구 기자가 정리한 것이다." 해서 한미FTA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으로 추천되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미국의 좌파 도시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의 신간 <엘리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후, 2008)와 작년에 나온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 2007) 등도 눈여겨볼 책들이다(<빈곤의 역사>에 대해서는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2291745565&code=900308 참조). 사실 한미FTA가 낳을 최악의 결과는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고착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정말로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사악한 천국'인 것인지 미리미리 따져볼 필요가 있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토마스 휴즈의 <테크놀로지, 창조와 욕망의 역사>(플래닛미디어, 2008)이다. 소개에 따르면, "저명한 기술사학자 토마스 휴즈가 십여 년 전 버지니아 대학에서 행한 과학과 예술에 관한 특강 내용을 정리해 2004년도에 발간한 이 책의 원명은 'Human-Built World: How to Think about Technology and Culture'이다. 즉, 기술 자체를 논의한 책이 아니라 기술을 사회문화적 변동과의 연관성 하에서 고찰한 것이다."

거기에 보태진 추천사에 따르면 "기술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지금까지 자크 엘루나 루이스 멈포드와 같은 사회비판론자들에 의해 촉발되어 레이첼 카슨과 같은 기술비판론자들로 계승되어 왔다. 따라서 기술의 사회적 파장을 그 혜택과 해악을 망라한 균형적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 이 책이 과거의 외눈박이 기술관을 시정하는 보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풍성한 인문학적 속살을 지닌 이 책은 과학기술계와 인문사회계의 인식적 간극을 해소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찾아보니 휴즈 교수가 공저한 책으로 <과학기술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가>(새물결, 1999)에 거의 10년 전에 소개된 바 있다. 분야로 치자면 '과학/기술의 사회학'에 속할 듯한데, 추천사 덕분에 생각난 책은 루이스 멈포드의 <예술과 기술>(민음사, 1999)이다(을유문화사의 문고본으로도 나왔던 책이다). 레이첼 카슨의 물론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02)의 저자를 말하는 것일 텐데, 찾아보니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란 부제를 달고 있는 <레이첼 카슨 평전>(샨티, 2004)이 출간돼 있다(내가 인지하고 있지 않은 책의 80%는 2004년에, 그러니까 '당신이 없는 사이에' 나온 책들이다). 774쪽이니까 3월 한달로는 부족하겠다. 세 달 동안 내리, 그리고 틈틈이 입다물고 읽을 만한 책.




7. 과학
장경애 과학동아 편집장이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린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사이언스북스, 2007)이다. 추천사에 따르면, "세포생물학과 미생물의 진화, 지구시스템 과학에 기여한 린 마굴리스. 칼 세이건의 첫 번째 부인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사실 그는 공생진화론으로 학계에 충격을 던져 준 생물학자다. 책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공생이란 고리로 연결하며 생물의 다양성을 공생과 공생진화로 설명하고 있지만 어린 나이에 세이건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학자로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있다. 세포핵 유전과 다윈주의 대신 세포질 유전과 신라마르크주의를 택하게 된 배경과 주류 학계에서 비주류로 살지만 자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자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도 소개한 적이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894262 참조). 이 참에 마굴리스의 다른 책들인 <생명이란 무엇인가>(지호, 1999), <섹스란 무엇인가>(지호, 1999)도 같이 챙겨볼 수 있겠다. 두 권 모두 아들 도리언 세이건과 같이 쓴 책이다. 찾아보니 마굴리스도 참여한 신간은 <마음, 생명, 우주>(2007)이다. 저명 과학자들과의 대담집이므로 교양서로 소개됨 직하다.



8. 예술
예술분야의 책은 마크 스트랜드의 <빈방의 빛>(한길사, 2007)이다. 미국 화가(어쩌면 가장 미국적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다룬 책인데, 추천자인 김춘미 교수에 따르면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1930, 40년대 미국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유화로 담아내어 이름을 낸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다. <이른 일요일 아침 1930> , <펜실베이나 탄광촌> , <주유소> 등의 그림들이 이야기 해주듯 집, 길, 자동차, 기차, 호텔, 어디나 있는 방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린 사람이 호퍼이다."

그리고 "호퍼의 대표작 30점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아마 그의 작품을 감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이 모처럼 제공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의 특별함은 이러한 호퍼의 작품이 마크 스트랜드라는 시인의 글로 새롭게 조망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 스트랜드는 <눈보라 한 조각> 이라는 작품으로 1999년 퓰리처상을 탄 바 있는 시인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시인의 논평을 담은 그림책들이 더러 출간된 바 있는데, <빈방의 빛>도 그런 종류이겠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분야의 책은 박종인의 <한국의 고집쟁이들>(나무생각, 2008)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23명 한국인의 범상치 않은 삶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신체상의 장애라는 역풍을 맞은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역풍이 있건 없건 그들은 앞을 향해 항해를 계속 해온 사람들이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머리 속으로가 아니라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것은 우리 삶의 범상함 때문일 것이다."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그런 '범상치 않은 삶'의 또 다른 주인공은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다. "1970-1980년대 일본의 진보 성향 월간지 '세카이(世界)'에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칼럼이 'TㆍK生'이라는 필명으로 연재됐다. 10월 유신 이듬해인 1973년부터 6월 항쟁 이듬해인 1988년까지 15년간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연재된 이 칼럼은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에 한국의 정치 상황과 한국인의 민주화 열망을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당시 국내 정보기관의 끈질긴 추적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TㆍK生'의 정체는 연재가 끝난지 15년 뒤인 2003년에야 세카이지를 통해 지명관(84) 한림대 석좌교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 나온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창비, 2008)은 "지 교수가 'TㆍK生'으로서 연재한 칼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중심으로 유신 선포와 80년 광주사건, 87년 민중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1970-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짚어본 책이다." 이미 재작년에 자서전 <경계를 넘는 여행자>(다섯수레, 2006)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한국으로부터의 통신>과 겹쳐 읽으면 되겠다(리뷰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72964.html 참조).
지명관 교수의 이야기가 너무 '노티' 난다 싶은 독자라면 동시대 사람들을 만난 또 다른 이야기로 영화기자 김혜리의 인터뷰집 <그녀에게 말하다>(씨네21, 2008)도 챙겨둘 만하다. "배우, 감독, 촬영감독 등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뿐 아니라, 소설가, 만화가, 미학자, 사진작가, 북디자이너, DJ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온 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 기록이다.




10. 전기
끝으로 이제 내 맘대로 고르는 전기/평전류이다. 내가 고른 건 마크 에드문슨의 <광기의 해석>(추수밭, 2008). 저자는 예전에 <문학과 철학의 논쟁>(문예출판사, 2000)의 저자 '에드먼드슨'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조악한 번역으로 빛이 바랜 책이었다(저자는 철학자 리처드 로티의 제자다). 이번에 '개명'하고 다시 소개된 셈. 책은 '프로이트 최후의 2년'을 다루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히틀러의 삶과 대조하고 있다는 것.

"책은 1909년 오스트리아 빈을 무대로 가난한 고학생 히틀러와 정신분석학의 권위자 프로이트를 대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 30년 후에 주목한다. 약 30년이 흐른 뒤 세상에 막 등장해서 대중의 열광을 한 몸에 받은 히틀러와, 인생의 막바지에 들어서 암으로 투병한 프로이트가 이 책의 주인공인 것이다. 지은이 마크 에드문슨은 1938년부터 1939년까지 기이하게 수렴되는 두 사람의 인생을 되짚어 보고, 프로이트가 나치 통치하의 빈에서 탈출해 런던으로 망명한 최후의 2년을 따라가면서 파시즘과 근본주의를 열망하는 대중의 심리를 분석한 프로이트 말년의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죽음>이다(<광기의 해석>이란 타이틀은 물론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살인의 해석>을 염두에 둔 것이겠다).
프로이트의 전모를 일람해보는 건 물론 한두 달 읽기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견적이 아니다. 나로선 그의 생애와 저작의 흥미로운 지점들을 염탐해보는 것 정도로 만족하려고 한다. 거기에 도구상자가 되어줄 만한 책은 마르트 로베르의 책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문예출판사, 2007)과 조시 코언의 <HOW TO READ 프로이트>(웅진지식하우스, 2007) 등이다...
08. 03. 01.




P.S. 이달의 고전은 베르그송의 두번째 주저인 <물질과 기억>(아카넷, 2005)이다. 최근에 해설서로 김재희의 <물질과 기억: 반복과 차이의 운동>(살림, 2008)이 출간되었기에 떠올린 것인데(알라딘에 아직 이미지가 뜨지 않고 있다), 황수영의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그린비, 2006)까지 '장비'로 챙겨둘 수 있겠다(나는 영어본과 러시아본도 갖고 있다. 준비야 그럴 듯하지만 기동성은 장담 못하겠다). 들뢰즈의 <시네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독해야 하는 책인데, 음.. 예전에 '물질'까지 읽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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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3-01 공감 (2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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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읽는다 읽다가 잡담
<고민력>을 먼저 읽고 싶었는데, 알라딘에서 책이 올 생각을 안 하는 관계로(힘주어서 째려보며) <청춘을 읽는다>를 먼저 읽게 되었다. 강상중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면, 부모는 경상도 사람, 아버지는 마산, 어머니는 진해 출신이다. 그들이 1931년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 정착 (책 속에서 구마모토 현의 '토착성과 중앙에 대한 반골, 강고한 보수성' 같은 모순된 현민기질이 경상도와 닮아 있어서 더 잘 정착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가 나... + 더보기
하이드 2010-01-10 공감 (19) 댓글 (2)
숨은책 242 續 韓國からの通信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42
《續 韓國からの通信》
T·K生 글
‘世界’ 編集部 엮음
岩波書店
1975.7.21.
2003년에 지명관이라는 분이 스스로 ‘T·K生’이라고 밝힌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분이 그렇게 안 밝혔어도 ‘T·K生’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2000년대 첫무렵까지 헌책집을 드나들던 ‘숨은 똑똑이 어르신’이 참 많았어요. 이분들 가운데 한 분이 어느 날 불쑥 저한테 말을 걸어요. “자네 이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일본책은 잘 모르겠네요.” 그분은 ‘世界’라는 일본 잡지에 1973∼1988년에 실린 글하고 얽혀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에는 좀 시큰둥했습니다. 이러다가 사전 짓는 밑책을 그러모으며 《續 韓國からの通信》을 헌책집에서 장만하여 사전편찬실로 가져가니 출판사 사장님이 “너 어떻게 이런 책을 알아서 사 왔니?” 하고 놀라시면서 “얘, 예전에 이 책 보았다가는 잡혀갔다.” 하면서 주섬주섬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를 나무란 글을 일본 어느 잡지에서 참으로 오래도록 실었구나 싶던데, 알 만한 분은 글쓴이도 알고 뒷이야기도 다 아셨구나 싶어요. 나중에 들으니 그 서슬퍼런 때에 ‘사복경찰’조차 일본에서 지명관 님을 감싸 주었다고 하더군요. 한국은 입도 눈도 귀도 코도 모조리 틀어막았고, 옆나라는 숨통을 틔워 주었고 …… 그런데 오늘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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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0-03-01 공감 (3) 댓글 (0)
이런 사실은 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을 다룬 세 매체의 시각을 분석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10월유신이 선포된 다음해인 1973년 8월 8일, 김대중이 토요꾜오(東京)의 한 호텔에서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신체제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동아일보』로 대표되는 한국언론은 이 사건이 정부와는 무관하다는 박정희 정부의 주장을 되풀이해 보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과 『아사히신문』은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한국 정보기관의 개입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분명하게 전했다. 특히 『아사히신문』은 진정한 한일우호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양식있는 사건 해결’을 강조했으며 이웃 나라 한국의 자유를 염원하는 일본인의 마음을 사설로 전했다. 저자는 김대중사건을 다룬 『아사히신문』의 이런 태도가 협력 속에 번영을 모색하는 동북아로 나아가는 도정에서 나온 중요한 역사의 첫걸음이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결국 평화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동북아인들을 결집시켰고, 이를 통해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세계로 발신한 한국의 민주화운동
이처럼 이 책에는 한국 민주화 과정의 역동성과 여기에 반응하는 한일 양국 언론들의 좌절과 환호가 함께 숨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저자는 2003년 자신이 「통신」의 필자였음을 처음으로 밝히면서 이 연재의 역사와 의의 등에 관해 오까모또 아쯔시 『세까이』 편집장과 대담했다(「부록」 참조). 이 대담에 따르면 「통신」은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태어난 연재물이었다. 미국·캐나다·일본 등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내로 들어가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가 씌어졌고, 이 과정에서 몇몇 외국인들은 당국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덕분에 「통신」은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3·1민주구국선언, 80년 광주사건, 87년 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생동감있게 세계로 발신할 수 있었다.
「통신」은 언론탄압과 보도통제가 만연하던 당시 주한 외국대사관들에서 주재국 한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당국의 눈을 피해 열독하던 자료였다. 또한 일본 시민사회에서 우리의 정치현실과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으며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서 읽히기도 했다. 오까모또 편집장은 한국 민주화를 위한 일본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만들어낸 원류가 바로 이 「통신」이었으며 그로부터 한일 시민사회의 진정한 연대가 시작됐다고 회고한다.
「통신」에는 학교, 노조, 교회 등에서 나온 여러 선언문들과 전단, 노래, 시 등이 직접 인용돼 있는데, 이 역시 당국의 눈을 피해 일본으로 들여온 여러 자료 덕분이었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또한 이러한 자료들은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민주화운동, 나아가 세계의 민주화운동사에도 기록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저자가 이 책에서 바라본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독재체제의 탄압과 여기에 맞서는 학생-지식인의 저항, 그리고 광범위한 민중세력의 등장으로 요약된다. 어쩌면 80년 광주사건과 87년 민주화항쟁은 그와같은 과정이 똑같이 반복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렇듯 역동적인 한국 민주주의의 형성과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후대에 전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책이자,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한국 민주주의를 되새겨본 책이라 할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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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조선과 동아의 옛 모습
지금이야 싸잡아 타박하지만 이 시절 <동아일보>가 이 만큼 한 것은 이채롭다. 물론 해방 직후에는 <조선>이 <동아>보다 나았지만 말이다. 김일성대를 졸업한 저자가 북한에 관대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일본에 남아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통신> 이후론 한국에 들어올 수도 없... + 더보기
파고세운닥나무 2009-03-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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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의 청춘적 독서
오늘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이번주에 나온 강상중 교수의 <청춘을 읽는다>(돌베개, 2009)이다(원제는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 책의 해제를 청탁받고 쓴 덕분에 출판사에서 보내온 것. 긴 분량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부담을 안고 고민하면서 보낸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강상중의 청춘적 독서'라고 제목을 붙인 해제를 여기에 옮겨놓는다.
강상중 교수와의 첫 만남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이산, 1997)를 통해서였다. 나는 강상중이란 이름보다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주제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속표지엔 날카롭고 이지적인 모습의 일러스트가 저자의 사진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간략한 저자 소개는 그를 ‘정치사상사를 전공한 재일동포 지식인’ 정도로 분류하게 했다. 나는 그가 도쿄대학 교수이면서 일본 이름이 아니라 ‘강상중’이란 한국 이름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재일동포’라는 정체성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저자의 개인사보다는 ‘근대문화 비판’에 더 관심이 있었고, 베버와 푸코, 그리고 사이드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무관심은 ‘적극적인’ 무관심이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이렇게 써놓은 것을 애써 간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한국인 2세인 나는 학생 때부터 언제나 한 가지 질문을 줄곧 던져 오지 않았던가 싶다. 그것은, 왜 내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하여 근대화의 낙오자로서 엄청난 희생을 강요받게 되었던 것일까 하는 물음이다.”
나는 그의 물음을 나의 물음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냥 눈으로만 읽었을 것이다. 사실 저자와 같은 세대라 할지라도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가 여전히 학술적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그것은 정서적인 한(恨)으로까지 경험되지는 않는다. 역사적 경험이자 공동체의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현실에서의 자기 체험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한국인’ 세대에 무관심했다.
생각이 조금 달라진 건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을 읽으면서다. 그사이에 강상중과 같은 세대의 ‘재일 조선인’ 서경식 교수의 책들을 즐겨 읽은 것도 재일 지식인들의 개인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문체로만 분류하자면 유려한 에세이들을 통해서 소개된 서경식이 ‘소프트’했고, 오리엔탈리즘을 비롯하여 내셔널리즘과 세계화 등 주로 ‘이즘’과 ‘이슈’에 관한 책들이 소개된 강상중은 ‘하드’했다. <고민하는 힘>은 그런 강상중에 대한 인상을 바꾸어놓았다. 그건 ‘소프트한’ 강상중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대중적 지식인이면서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 때문에 강연회를 할 때마다 극우파의 공격에 대비해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내친 김에 나는 그의 자서전 <재일 강상중>(삶과꿈, 2004)까지 찾아서 읽었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 한국을 방문하고 일본 이름 ‘나가노 데쓰오’ 대신에 ‘강상중’이란 본명을 쓰게 된 사연과 독일 유학시절에 대한 회고 등이 흥미로웠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한국인 2세인 나는 학생 때부터 언제나 한 가지 질문을 줄곧 던져 오지 않았던가 싶다.”고 한 그의 말을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재일 2세로서 강상중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자란 우리와는 다른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에게 피식민 지배의 굴욕적인 역사는 현실에서 그가 겪는 직접적인 모욕과 소외의 원인이자 원흉이었고, 따라서 그러한 역사를 낳은 ‘근대화’의 문제를 깊이 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근대화 이론의 태두라 할 사회학자 막스 베버에 대한 연구로 나아간다. 그 방향성을 규정한 것이 ‘개인’ 강상중이 아니라 ‘재일’ 강상중이라는 점에서 그의 학문적 선택은 동시에 ‘자유로운 선택’이자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되짚어보면, 강상중에게서 실존적 물음과 학문적 과제는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실존적 물음에 학문의 보편적 언어를 통해서 기술하고 해명하며 답하고자 했다. 나로선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지만, 말하자면 그런 것이 강상중의 학문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태도가 강상중에게서 배울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과 학문을 일치시키려는 태도 말이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청춘을 읽는다>를 읽으면서도 나는 그의 그러한 태도를 다시금 읽는다.
청춘을 읽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에서 출발하여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이르는 여정이기도 한 이 책을 손에 들면서 독자들이 제일 처음 던질 법한 질문이다. 한국어본의 부제가 된 책의 원제도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이다. 하지만 이미 <고민하는 힘>을 읽어본 독자라면 ‘청춘은 아름다운가?’란 장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도 거의 같은 시기에 발표된 <청춘을 읽는다>와 <고민하는 힘>과 서로 짝이 될 만하다. <고민하는 힘>이 ‘고민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이들을 자극하고 격려하는 ‘멘토’로서의 강상중과 만나게 해준다면, <청춘을 읽는다>는 독서노트의 형식을 빌려서 강상중의 성장사와 함께 시대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그렇다, 이것은 독서록이면서 자서전이고 동시에 한 시대에 대한 증언이다. 그것을 뭉뚱그려서 강상중은 ‘청춘’이라고 말한다. 대단한 청춘 아닌가!
강상중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청춘’을 ‘젊음’과는 구별되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가 말하는 청춘은 미숙하고 서툴더라도 진지하게 무언가를 찾아서 계속 방황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청춘은 단순히 ‘피부’와 ‘근육’의 문제로 따질 것이 아니다. 강상중이 청춘론이 문제삼는 것은 고민의 함량이고 방황의 진정성이다. ‘고민하는 힘’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청춘이다. 반대로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 기업에 얼른 취직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친다면, 비록 나이는 청춘이더라도 청춘이 버거운, 이름만 청춘인 경우가 된다.
<고민하는 힘>에 따르면, “타인과 깊지 않고 무난한 관계를 맺고, 가능한 위험을 피하려고 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별로 휘말리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구애되지 않으려고 행동하는”, 한마디로 ‘요령이 뛰어난’ 젊음은 젊음이긴 하되 청춘은 아니다. 기껏해야 탈색된 청춘이다. 이런 생각에서 강상중은 심지어 ‘청춘적으로 원숙함’이란 표현까지 쓴다. 나이를 먹더라도 청춘의 문제의식과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보존하는 원숙함이다. 그리고 그것과 반대되는 것을 강상중은 ‘표층적으로 원숙함’이라고 부른다. 고민 없이 나이만 먹은 경우다. <청춘을 읽는다>는 ‘청춘적 원숙’에 이르기 위한 길잡이이자 ‘청춘적 독서’의 모범적인 사례담이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곧 ‘청춘기’에 저자가 읽은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하고 또 추천하고 있기도 하므로 ‘청춘’이란 말은 일차적으로 그 시기를 가리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청춘’의 의미가 종결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청춘을 되새기며 이야기하는 현재의 시간 또한 ‘청춘’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현재라는 시간이 그의 청춘 시대와 무척 닮았다고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마무리하며 그가 “나는 지금 제2의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고백한 것도 일방적인 생각이나 믿음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이면서 우리가 되사는 시간으로서의 청춘은 언제 시작되는가? 열일곱이다. 열입곱은 구마모토의 현립 고등학교에 다니던 강상중이 야구선수의 꿈을 접게 된 나이이면서 ‘은둔형 외톨이’ 시절을 보내며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접한 나이이다.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는 강상중의 글 「어른으로 향하는 외나무다리, 움츠리지 말고 건너가보자」가 가리키는 나이도 열일곱이다.
그가 열일곱에 맞닥뜨린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경구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인상적인데, 이 걸출한 일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한 갑 성냥을 닮았다. 소중하게 다루는 건 어리석다.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강상중은 이 경구가 마치 ‘하늘의 계시’와도 같은 선물이었다고 회고한다.
아쿠다가와의 경구는 인생의 모순, 인생을 고민하는 청춘의 모순을 집약해주고 있다. ‘인생을 너무 소중히 다루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니 ‘인생을 소중히 다루지 말라’는 명제와 ‘인생은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곧 ‘인생을 소중히 다루라’는 명제는 서로 모순된다. 하지만 이 모순을 두 다리로 삼아서 우리는 깊은 계곡에 가로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가지 태도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생이 너무 소중하다면, 우리는 그 위태로운 다리를 감히 건너갈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인생을 함부로 다룬다면, 우리는 신중하지 못하게 다리를 건너다 추락하고 말 것이다. 짐작컨대, 이것이 열입곱 살 강상중의 깨달음이지 않았을까.
흥미로운 건 이 깨달음이 이후에 그의 정치적 입장과 활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싶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신을 ‘전위’가 아닌 ‘후위’에 위치시키는 입장이다. 후위라는 것은 물론 ‘재일’, 곧 ‘자아니치’로서의 정체성과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와 “자신을 너무 앞세우지 말라”는 상충적인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강상중 자신의 표현을 빌면, 현상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떠한 ‘주의’나 ‘도그마’에도 붙들리지 않는 ‘리버럴’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한 입장을 강상중은 이렇게 요약해놓고 있다.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을 후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앞에 아무도 없고 어느새 내가 전위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후위라고 생각하거니와 후위라는 사실을 영광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내가 마치 전위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만큼 일본이라는 사회가 변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강상중은 하나의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 ‘후위’에 놓인 그의 입장이 전위로 보이는 만큼 한국사회도 일본의 변화를 따라잡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러한 변화 속에서 ‘척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강상중 자신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따라서 ‘청춘의 독서’라고 하지만 이 책은 그에게 ‘일생의 독서’를 기록한 책이기도 하다. 사실 그럴 만하지 않은가. 그의 일생을 결정한 책들과의 만남이었으니까.
강상중의 <청춘을 읽는다>를 통해서 우리는 “나는 야구도 못해. 친구도 없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걸까?”라고 묻던 ‘시골뜨기’이자 <산시로>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길 잃은 양’이었던 한 재일 대학생이 어떻게 성장해가는가, 격동의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이 던진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찾아나가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 자세한 내막은 독자가 읽어나갈 몫으로 남겨놓는 것이 나의 소임인 듯싶지만, 한 가지 감상만은 덧붙이고 싶다. 그가 맺음말에서 이 책이 “청춘 독서노트인 동시에 또 하나의 도쿄, 또 하나의 일본을 모색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라고 적을 때, 우리 또한 자연스레 “또 하나의 서울, 또 하나의 한국”을 모색하는 우리의 ‘청춘 독서노트’를 떠올리게 되리라는 것. 그럴 때만 우리는 아직 청춘이리라.
09.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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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10-29 공감 (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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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읽을 만한 책
대책없이 봄이고 3월이다. 3월이라고 또 '3월의 읽을 만한 책'이 발표되었다. 간식 시간에 잠시 틈을 내서 어젯밤에 스크랩해놓은 기사에 살을 붙이도록 한다. 선정도서 및 추천사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웹진(www.kpec.or.kr/webzine)을 참조한 것이다.
1. 문학
작가 신경숙씨가 문학분야에 추천한 책은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문학동네, 2008)이다. 알라딘에서는 이미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인데 저자는 생소하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마커스 주삭이라는 <책도둑> 의 저자 이름이 낯설어 다시 살펴보니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소설가'라는 평을 받는 작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런 그의 명성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책도둑> 이 처음 번역되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철학적인 소설이다."라고 추천자도 적어놓았다.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듯하여 생략한다.
내가 보태자면 미국의 중국계 작가 하진의 단편집 <카우보이 치킨>(현대문학, 2008)은 어떨까? 이스마일 카다레의 신작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문학동네, 2008)와 견주어보다가 내가 손을 들어준 쪽이 하진인데, 그건 아직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하진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761943 참조). 여차하면 대표작인 <기다림>(시공사, 2007)에까지 손을 뻗칠 수도 있겠다.
2. 역사
역사분야의 책으로 추천된 것은 타이먼 스크리치의 <에도의 몸을 열다>(그린비, 2008)이다. 내가 지난달에 과학분야의 책으로 올려놓은 것이어서 따로 설명은 필요 없겠다(http://blog.aladin.co.kr/mramor/1885413). "<에도의 문을 열다> 는 난학(蘭學)이 에도 시대의 일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탐구한 책"이라는 게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간명한 소개다.
나는 에도시대보다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 그리스에 관심을 두고 싶다. 이번에 새로 번역돼 나온 키토 교수의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갈라파고스, 2008)에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로 평해지는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1934173 참조). 원제('The Greek')대로 그냥 깔끔하게 <그리스인들>이란 제목이 붙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키토의 책과 함께 나란히 읽어볼 만한 것은 데브라 하멜의 <네아이라 재판소동>(북북서, 2008)이다. 고전학자 인 저자가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 사회에서 일어난 네아이라 재판 사건을 설명함으로써 당시 시대상을 파악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네아이라라는 고급 창녀를 두고 일어난 재판 과정을 새심히 다루면서, 그와 연관된 역사적 사실들이 자연스레 드러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하므로 그리스 '입문'에 이은 '실습'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저자 자신의 직접적인 책소개는 http://www.youtube.com/watch?v=blwjt0aAvgY 참조).
3. 철학
철학분야의 책으로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책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이학사, 2008)이다. 물론 잘 알려진 책이고 이번에 새로 번역됐다. 추천사에 따르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는 왕년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강연문이다. 강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0월 파리에서 열기로 가득한 청중들 앞에서 열렸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철학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하고 자신의 사상에 던져진 이런 저런 비판에 맞서 반박하는 가운데 자신의 실존주의가 휴머니즘임을 천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저자의 주저이자 난해한 철학 작품 <존재와 무> 의 입문서라 불린다."
하지만 추천자가 밝히고 있는 이 책의 의의는 따로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사르트르의 철학이 새로운 주기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지독한 개인주의라는 인상을 주던 실존주의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에 대한 이론으로, 실천의 무기로 탈바꿈되는 시발점이 이 강연문이다. 골방의 철학이 광장의 철학으로 전환되는 장면이라 할 수도 있다. 역사상 유례없는 전쟁을 경험하면서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완전히 다시 태어난 철학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역력하다. 의도와 내용, 그리고 문체부터 대중과 만나는 데 성공한 첫 번째 사례로 꼽을 만한 책이다. 점점 전문화되고 어려워지는 요즘의 철학책들이 다시 회복해야 할 목표지점을 표시하고 있는 책이라 할까. 독자는 여기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외치는 가장 드높은 찬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사르트르의 육성은 http://www.youtube.com/watch?v=85vEXo7Wntk 등을 참조.)
이 '드높은 찬가'는 하지만 적잖은 상처와 고통을 뒤로 한 것이다. 때문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소설가이기도 한 어빈 얄롬의 <실존주의 심리치료>(학지사, 2007)와 함께 1945년 이전의 몇 년간이다(얄롬의 책은 '교재'다). 가장 대표적으로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책으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2007)를 들 수 있겠다. 이것은 두번째 장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바닥'에 관한 책이다. 인간성의 바닥이면서 인간에 대한 기대의 바닥.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새물결, 2008)도 이 '바닥'에 대한 성찰로 이끈다. 아감벤 또한 레비와 함께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숙고하고 있는 이탈리아인이로군.
4. 정치, 5. 경제/경영
정치와 경제/경영분야의 책은 묶어서 다루기로 한다.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전대원의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2008)이다. 저자는 현직 교사라고 하며 "힘없는 일반 국민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리에 대한 이해는 곧 그 사회에 대한 이해에 다름 아니며 억압이나 부조리와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이 문제의식에서 씌어진 이 책은 현직 사회과목 교사가 쓴 책답게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평범한 언어로 중요한 우리 사회의 권리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리고 정운찬 교수가 경제분야의 책으로 추천한 것은 이해영/정인교의 <한미FTA, 하나의 협정 엇갈린 '진실'>(시대의창, 2008)이다. 알다시피 양국 국회/의회의 비준이 남은 상태인데, "이 책은 FTA를 지지하는 인하대의 정인교 교수와 반대하는 한신대의 이해영 교수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논점을 하나도 빼지 않고 토론한 결과를 한겨레신문 정남구 기자가 정리한 것이다." 해서 한미FTA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으로 추천되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미국의 좌파 도시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의 신간 <엘리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후, 2008)와 작년에 나온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 2007) 등도 눈여겨볼 책들이다(<빈곤의 역사>에 대해서는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2291745565&code=900308 참조). 사실 한미FTA가 낳을 최악의 결과는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고착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정말로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사악한 천국'인 것인지 미리미리 따져볼 필요가 있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토마스 휴즈의 <테크놀로지, 창조와 욕망의 역사>(플래닛미디어, 2008)이다. 소개에 따르면, "저명한 기술사학자 토마스 휴즈가 십여 년 전 버지니아 대학에서 행한 과학과 예술에 관한 특강 내용을 정리해 2004년도에 발간한 이 책의 원명은 'Human-Built World: How to Think about Technology and Culture'이다. 즉, 기술 자체를 논의한 책이 아니라 기술을 사회문화적 변동과의 연관성 하에서 고찰한 것이다."
거기에 보태진 추천사에 따르면 "기술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지금까지 자크 엘루나 루이스 멈포드와 같은 사회비판론자들에 의해 촉발되어 레이첼 카슨과 같은 기술비판론자들로 계승되어 왔다. 따라서 기술의 사회적 파장을 그 혜택과 해악을 망라한 균형적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 이 책이 과거의 외눈박이 기술관을 시정하는 보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풍성한 인문학적 속살을 지닌 이 책은 과학기술계와 인문사회계의 인식적 간극을 해소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찾아보니 휴즈 교수가 공저한 책으로 <과학기술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가>(새물결, 1999)에 거의 10년 전에 소개된 바 있다. 분야로 치자면 '과학/기술의 사회학'에 속할 듯한데, 추천사 덕분에 생각난 책은 루이스 멈포드의 <예술과 기술>(민음사, 1999)이다(을유문화사의 문고본으로도 나왔던 책이다). 레이첼 카슨의 물론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02)의 저자를 말하는 것일 텐데, 찾아보니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란 부제를 달고 있는 <레이첼 카슨 평전>(샨티, 2004)이 출간돼 있다(내가 인지하고 있지 않은 책의 80%는 2004년에, 그러니까 '당신이 없는 사이에' 나온 책들이다). 774쪽이니까 3월 한달로는 부족하겠다. 세 달 동안 내리, 그리고 틈틈이 입다물고 읽을 만한 책.
7. 과학
장경애 과학동아 편집장이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린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사이언스북스, 2007)이다. 추천사에 따르면, "세포생물학과 미생물의 진화, 지구시스템 과학에 기여한 린 마굴리스. 칼 세이건의 첫 번째 부인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사실 그는 공생진화론으로 학계에 충격을 던져 준 생물학자다. 책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공생이란 고리로 연결하며 생물의 다양성을 공생과 공생진화로 설명하고 있지만 어린 나이에 세이건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학자로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있다. 세포핵 유전과 다윈주의 대신 세포질 유전과 신라마르크주의를 택하게 된 배경과 주류 학계에서 비주류로 살지만 자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자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도 소개한 적이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894262 참조). 이 참에 마굴리스의 다른 책들인 <생명이란 무엇인가>(지호, 1999), <섹스란 무엇인가>(지호, 1999)도 같이 챙겨볼 수 있겠다. 두 권 모두 아들 도리언 세이건과 같이 쓴 책이다. 찾아보니 마굴리스도 참여한 신간은 <마음, 생명, 우주>(2007)이다. 저명 과학자들과의 대담집이므로 교양서로 소개됨 직하다.
8. 예술
예술분야의 책은 마크 스트랜드의 <빈방의 빛>(한길사, 2007)이다. 미국 화가(어쩌면 가장 미국적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다룬 책인데, 추천자인 김춘미 교수에 따르면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1930, 40년대 미국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유화로 담아내어 이름을 낸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다. <이른 일요일 아침 1930> , <펜실베이나 탄광촌> , <주유소> 등의 그림들이 이야기 해주듯 집, 길, 자동차, 기차, 호텔, 어디나 있는 방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린 사람이 호퍼이다."
그리고 "호퍼의 대표작 30점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아마 그의 작품을 감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이 모처럼 제공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의 특별함은 이러한 호퍼의 작품이 마크 스트랜드라는 시인의 글로 새롭게 조망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 스트랜드는 <눈보라 한 조각> 이라는 작품으로 1999년 퓰리처상을 탄 바 있는 시인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시인의 논평을 담은 그림책들이 더러 출간된 바 있는데, <빈방의 빛>도 그런 종류이겠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분야의 책은 박종인의 <한국의 고집쟁이들>(나무생각, 2008)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23명 한국인의 범상치 않은 삶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신체상의 장애라는 역풍을 맞은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역풍이 있건 없건 그들은 앞을 향해 항해를 계속 해온 사람들이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머리 속으로가 아니라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것은 우리 삶의 범상함 때문일 것이다."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그런 '범상치 않은 삶'의 또 다른 주인공은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다. "1970-1980년대 일본의 진보 성향 월간지 '세카이(世界)'에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칼럼이 'TㆍK生'이라는 필명으로 연재됐다. 10월 유신 이듬해인 1973년부터 6월 항쟁 이듬해인 1988년까지 15년간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연재된 이 칼럼은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에 한국의 정치 상황과 한국인의 민주화 열망을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당시 국내 정보기관의 끈질긴 추적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TㆍK生'의 정체는 연재가 끝난지 15년 뒤인 2003년에야 세카이지를 통해 지명관(84) 한림대 석좌교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 나온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창비, 2008)은 "지 교수가 'TㆍK生'으로서 연재한 칼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중심으로 유신 선포와 80년 광주사건, 87년 민중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1970-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짚어본 책이다." 이미 재작년에 자서전 <경계를 넘는 여행자>(다섯수레, 2006)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한국으로부터의 통신>과 겹쳐 읽으면 되겠다(리뷰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72964.html 참조).
지명관 교수의 이야기가 너무 '노티' 난다 싶은 독자라면 동시대 사람들을 만난 또 다른 이야기로 영화기자 김혜리의 인터뷰집 <그녀에게 말하다>(씨네21, 2008)도 챙겨둘 만하다. "배우, 감독, 촬영감독 등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뿐 아니라, 소설가, 만화가, 미학자, 사진작가, 북디자이너, DJ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온 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 기록이다.
10. 전기
끝으로 이제 내 맘대로 고르는 전기/평전류이다. 내가 고른 건 마크 에드문슨의 <광기의 해석>(추수밭, 2008). 저자는 예전에 <문학과 철학의 논쟁>(문예출판사, 2000)의 저자 '에드먼드슨'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조악한 번역으로 빛이 바랜 책이었다(저자는 철학자 리처드 로티의 제자다). 이번에 '개명'하고 다시 소개된 셈. 책은 '프로이트 최후의 2년'을 다루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히틀러의 삶과 대조하고 있다는 것.
"책은 1909년 오스트리아 빈을 무대로 가난한 고학생 히틀러와 정신분석학의 권위자 프로이트를 대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 30년 후에 주목한다. 약 30년이 흐른 뒤 세상에 막 등장해서 대중의 열광을 한 몸에 받은 히틀러와, 인생의 막바지에 들어서 암으로 투병한 프로이트가 이 책의 주인공인 것이다. 지은이 마크 에드문슨은 1938년부터 1939년까지 기이하게 수렴되는 두 사람의 인생을 되짚어 보고, 프로이트가 나치 통치하의 빈에서 탈출해 런던으로 망명한 최후의 2년을 따라가면서 파시즘과 근본주의를 열망하는 대중의 심리를 분석한 프로이트 말년의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죽음>이다(<광기의 해석>이란 타이틀은 물론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살인의 해석>을 염두에 둔 것이겠다).
프로이트의 전모를 일람해보는 건 물론 한두 달 읽기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견적이 아니다. 나로선 그의 생애와 저작의 흥미로운 지점들을 염탐해보는 것 정도로 만족하려고 한다. 거기에 도구상자가 되어줄 만한 책은 마르트 로베르의 책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문예출판사, 2007)과 조시 코언의 <HOW TO READ 프로이트>(웅진지식하우스, 2007) 등이다...
08. 03. 01.
P.S. 이달의 고전은 베르그송의 두번째 주저인 <물질과 기억>(아카넷, 2005)이다. 최근에 해설서로 김재희의 <물질과 기억: 반복과 차이의 운동>(살림, 2008)이 출간되었기에 떠올린 것인데(알라딘에 아직 이미지가 뜨지 않고 있다), 황수영의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그린비, 2006)까지 '장비'로 챙겨둘 수 있겠다(나는 영어본과 러시아본도 갖고 있다. 준비야 그럴 듯하지만 기동성은 장담 못하겠다). 들뢰즈의 <시네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독해야 하는 책인데, 음.. 예전에 '물질'까지 읽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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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3-01 공감 (2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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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읽는다 읽다가 잡담
<고민력>을 먼저 읽고 싶었는데, 알라딘에서 책이 올 생각을 안 하는 관계로(힘주어서 째려보며) <청춘을 읽는다>를 먼저 읽게 되었다. 강상중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면, 부모는 경상도 사람, 아버지는 마산, 어머니는 진해 출신이다. 그들이 1931년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 정착 (책 속에서 구마모토 현의 '토착성과 중앙에 대한 반골, 강고한 보수성' 같은 모순된 현민기질이 경상도와 닮아 있어서 더 잘 정착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가 나... + 더보기
하이드 2010-01-10 공감 (19) 댓글 (2)
숨은책 242 續 韓國からの通信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42
《續 韓國からの通信》
T·K生 글
‘世界’ 編集部 엮음
岩波書店
1975.7.21.
2003년에 지명관이라는 분이 스스로 ‘T·K生’이라고 밝힌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분이 그렇게 안 밝혔어도 ‘T·K生’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2000년대 첫무렵까지 헌책집을 드나들던 ‘숨은 똑똑이 어르신’이 참 많았어요. 이분들 가운데 한 분이 어느 날 불쑥 저한테 말을 걸어요. “자네 이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일본책은 잘 모르겠네요.” 그분은 ‘世界’라는 일본 잡지에 1973∼1988년에 실린 글하고 얽혀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에는 좀 시큰둥했습니다. 이러다가 사전 짓는 밑책을 그러모으며 《續 韓國からの通信》을 헌책집에서 장만하여 사전편찬실로 가져가니 출판사 사장님이 “너 어떻게 이런 책을 알아서 사 왔니?” 하고 놀라시면서 “얘, 예전에 이 책 보았다가는 잡혀갔다.” 하면서 주섬주섬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를 나무란 글을 일본 어느 잡지에서 참으로 오래도록 실었구나 싶던데, 알 만한 분은 글쓴이도 알고 뒷이야기도 다 아셨구나 싶어요. 나중에 들으니 그 서슬퍼런 때에 ‘사복경찰’조차 일본에서 지명관 님을 감싸 주었다고 하더군요. 한국은 입도 눈도 귀도 코도 모조리 틀어막았고, 옆나라는 숨통을 틔워 주었고 …… 그런데 오늘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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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0-03-01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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