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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8

이병철 - -2016년 베네수엘라에서 본 차베스의 꿈과 마두로의 현실/

이병철 - -2016년 베네수엘라에서 본 차베스의 꿈과 마두로의 현실/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상 최근 도널드... | Facebook



-2016년 베네수엘라에서 본 차베스의 꿈과 마두로의 현실/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상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 문제를 둘러싸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한 평가는 다시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독재자의 종말”이라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제국주의적 내정 간섭”이라 규탄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좌·우 진영 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은, 베네수엘라 민중이 실제로 겪어온 삶의 결을 놓치게 만든다.

나는 2016년 1월, 일주일 남짓 베네수엘라에 머문 적이 있다. 짧은 체류였지만 그곳에서 본 풍경은 이념의 언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 썼던 소감을 다시 소환해,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철망의 나라에서 묻다 (2016년 방문 메모에서)/

베네수엘라는 나의 이번 여정에서 중요한 방문지였다. 차베스의 실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으로 갈린다. 독재자와 혁명가, 성공과 실패. 그와 그의 실험에 관한 총체적 평가는 뒤로 미루고, 이번 방문에서 내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를 넘어』의 저자인 마헤슈와난다 다다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협동조합 등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일이었다.

마헤슈와난다 다다지는 자본주의 붕괴 이후의 대안 사회이론인 프라우트(PROUT) 사상 연구소 소장으로, 차베스 경제정책을 자문해온 인물이었다. 그를 통해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눈앞에서 쿠바의 카스트로와 연대하며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을 기치로 중남미를 이끌고자 했던 차베스의 실험,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마두로 정권의 실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와의 인연은 그의 책 『자본주의를 넘어』가 2015년 한살림출판사에서 칫다다지의 번역으로 출간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한국에 와 한살림 생협 등을 중심으로 순회 강연을 했고, 그 과정에서 숲마루재에도 하루 머문 적이 있다. 마침 함께 공부하던 도반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책은 그 뒤에 우리 공부모임의 교재로 함께 읽은 적이 있다.
자본주의의 필요성이나 호불호를 떠나, 이 체제가 이대로 지속될 수 없다는 데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이후, 혹은 그것을 넘어서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는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질문이다. 수행·봉사 단체인 아난다마르가에서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프라우트 사회경제이론을 제시하고 있으며, 나 역시 이 이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이번 베네수엘라 방문의 계기이기도 했다.

2016년 1월의 베네수엘라는 나의 여정 가운데 가장 무거운 질문을 안겨준 땅이었다. 이곳은 단순한 방문지가 아니라, 차베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혁명의 실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우고 차베스. 그를 두고 세상은 여전히 갈라진다. 독재자냐 혁명가냐, 성공이냐 실패냐.

그러나 이 질문은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 혁명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니었고, 사람들의 하루를 감싸고 있는 공기이자 긴장이었으며, 불안과 체념 그 자체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택시 요금을 치르며 지폐 다발을 건넸다. 100볼리바르짜리 지폐가 묶음으로 오가고, 그 위에 다시 절반이 넘는 돈뭉치를 얹어야 했다. 화폐로 불쏘시개를 삼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요금은 20볼리바르(약 360원), 지하철은 왕복 티켓인데 5볼리바르, 30원이 채 안된다.
가솔린은 1리터에 0.9볼리바르, 달러로는 2센트에 불과해 사실상 무상에 가까웠다.
반면 피자 한 판은 1,000볼리바르, 보통 식당의 한 끼 식사는 1,000볼리바르로 하루 임금을 훌쩍 넘었다. 공산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절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차가 없으니 석유가 아무리 싸도 쓸 데가 없었다. 연이은 인플레이션으로 돈은 거의 가치가 없어졌다. 거리는 적막했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큰 건물들은 비어 있는 듯 보였다. 활력을 잃은 도시, 마치 생명의 움직임이 정지된 공간 같았다. 돈은 있었지만, 그 돈이 지탱해야 할 삶의 질서와 신뢰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철망으로 닫힌 도시와 텅 빈 진열대/

도시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철망이었다. 이미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었던 이들은 거의 떠난 뒤였고, 남아 있는 집과 건물들은 하나같이 철창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도 한 겹이 아니라 두 겹, 세 겹으로. 대문에 철망, 현관에 다시 철문, 창문에는 촘촘한 쇠창살, 그 안쪽 침실 방문 앞에도 철망이 처져 있는 집들. 도시 전체가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듯했다. 치안이 무너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국가가 아니라 철망에 의지해 잠을 자고 있었다.
큰 도로와 주요 건물 앞에는 무장한 경찰과 경비병들이 서 있었지만, 그 뒤편은 사실상 무법지대였다. 혼자서는 시내에 나갈 수 없었고, 함께 나갈 때조차 거리에서는 스마트폰을 꺼내지 말고 공공장소에서는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다.
아침이 되면 국영 마트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차베스 시절 ‘민중의 식량 주권’을 상징하던 국영 마트 앞에, 말없이 묵묵히 서 있는 사람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진열대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설탕도, 밀가루도, 식용유도 없었다.
가끔 물건이 들어오는 날이면 사람들은 새벽부터 줄을 섰지만, 자기 차례가 오기 전에 바닥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차베스 시절 거의 무상 배급에 가깝게 생필품을 구매하던 공간은 이제 텅 빈 진열대 앞의 긴 줄로만 이어지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돈은 이미 가치가 없었다. 문제는 물건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차베스의 약속/
차베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약속했다. 오래 지속되던 권력 구조를 깨겠다는 것, 가난을 물리치겠다는 것, 부정부패를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첫 두 가지를 해냈다. 가난한 이들의 정당이 집권했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대규모 주택 공급을 통해 절대빈곤은 분명 줄어들었다.
그러나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실패는 곧 경제 기반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차베스 이후 그를 계승하겠다고 나선 이는 니콜라스 마두로였다. 그는 차베스의 혁명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장에서 느껴진 것은 ‘계승’이라기보다 정체와 무력감이었다. 차베스의 포퓰리즘은 위험했지만, 오랜 기득권 중심의 권력·금력 카르텔을 무너뜨리고 석유 수출의 혜택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민중을 설득하는 언어와 기존 질서를 흔드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마두로에게서는 그런 힘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차베스의 경제정책에 대한 프라우트 연구소의 평가는 분명했다. 차베스의 경제정책은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그 원인은 포퓰리즘을 통해 국민을 의존형으로 만든 점, 관료와 기득권 세력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청산하지 못한 점,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 속에서 공산주의적 정책을 무리하게 강행한 점 등에 있었다.

한때 20만 개에 이르던 협동조합은 집권 기간 동안 오히려 5만 개로 줄어들었고, 이후 중국식 사회적 기업 형태로 전환했으나 이 역시 실패했다.

현지에서 유기농 체험농장을 운영하던 책임자 역시 차베스의 과오로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무지, 포퓰리즘에 빠져 중산층을 고려하지 못한 점, 민중의 자립 의지를 키우기 위한 교육과 문화적 노력의 부재, 그리고 주변의 부패를 정리하지 못한 점을 들었다.

차베스에 비해 카리스마도 부족하고 능력에 대한 평가도 박했던 마두로는, 무너진 균형 위에서 아무것도 새로 세우지 못한 채 과거의 정책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 유가의 폭락, 쿠바의 쇠퇴, 미국의 제재가 겹치면서 국가 경제 기반은 급속히 붕괴했고 통치 기반 역시 와해됐다.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의 강화, 의회의 장악, 사법부의 종속, 언론 통제, 야당과 반대 세력에 대한 탄압뿐이었다.
그 결과 한때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했던 국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카리브 해안의 아름다운 관광지였던 나라는 탈출을 위해 사람들이 앞다투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석유의 재앙과 포퓰리즘/
이곳에서 포퓰리즘의 실패는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국가가 나눠주던 삶에 익숙해졌고, 스스로 만들고 책임지는 구조는 자라나지 못했다. 생산은 멈췄고 유통은 붕괴됐으며, 사람들은 줄에 서는 법만 익혔다.
현지에서는 “석유가 국민을 타락시켰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막대한 석유 수익을 자립 체계 구축이나 기간 산업에 투자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한 결과였다. 석유 수익으로 해외에서 대부분을 수입하는 나라, 농사를 지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농촌, 제대로 된 관개 시설조차 없는 넓은 땅. 석유와 시혜적 정책에 기대어 국민 다수가 자립의 필요성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큰 불행처럼 느껴졌다.
차베스 시절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마두로 정권에 이르러 더 깊고 더 넓게 퍼져 있었다. 석유는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자원이었지만, 결국 국민을 의존에 길들인 독이 되고 말았다.
전등 없는 밤, 머물던 방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화장실에는 휴지도 비누도 없었다. 연구소와 연계된 명상센터로 갈 때는 쌀자루를 챙겨가야 했다. 마트에서 쌀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박한 삶의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가 멈춘 상태였다. 긴 줄과 빈 진열대, 삼중의 철망과 탈출 행렬은 그 결과였다.

-민중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배신에 대하여/

베네수엘라와 그 뒤의 쿠바를 다녀온 뒤, 내게 남은 것은 깊은 허탈감과 분노였다. 이 두 나라를 방문하기 전, 나는 다른 어떤 나라를 갈 때보다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차베스 정권과 협동조합적 사회주의를 성공 사례로 소개하는 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협동조합 운동에 깊이 관여해 온 나로서는 그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농민운동을 하며 70년 대 중반에 우리 지역에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일에 참여했고, 이후 한살림운동과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통해 생협 운영과 확산의 현장을 오래 지켜보았다. 그런 경험과 문제의식으로 찾은 현장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리고 민중의 이름으로 포장된 체제의 붕괴였다.
그 체험은 내가 한때 꿈꾸고 지향해 왔던 것들이 얼마나 쉽게 관념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통절하게 일깨워 주었다. 동시에 민중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민중을 배신한 권력, 그리고 그것을 정파적 이해 속에서 미화하고 소비하는 태도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갖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개입에 대해/

나는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국제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차베스와 마두로 정권의 독재와 국가 파산, 민중에 대한 배신 역시 지지할 수 없다.

이번 사태를 진영 논리로만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나는 이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번 개입은 독재자나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중 대립과 세계 권력 재편 과정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사태는 새로운 패권 경쟁의 일부이자, 현존 문명 질서의 균열을 드러내는 징후처럼 느껴진다.

다만 이 기억 그 체험을 통해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치는 나눠주는 것으로 시작할 수는 있어도, 자립의 토대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국민을 배신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베네수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과 양극화 속에서 우리 사회 또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이 나눠주느냐의 경쟁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일 것이다.

차베스 정권의 협동조합적 사회주의 이론을 제시하고 정책 자문을 했던 프라우트 연구소 소장 마헤슈와난다 다다지는, 마두로 정권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미제국주의의 간첩으로 몰려 투옥됐다. 우리가 베네수엘라를 떠난 직후의 일이었다. 그로 인해 다음 해(2017년) 원불교 10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같은 세션의 발표자로 만나기로 했던 약속도 지킬 수 없었다. 정책 비판이 곧바로 투옥으로 이어지는 현실은, 이 체제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오랜 기억을 다시 소환한 소회를 나눈다.

(2026. 1. 7)

















이종구

잘읽었습니다.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정보입니다.


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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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선생님의 눈을 통해 사태를 바라보니 가슴이 먹먹합니다.트럼프의 작전 자체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기원합니다. 또 다다지소장님의 안녕을 빕니다.


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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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가슴아픈 현실. 차베스 집권 당시의 현장을 본 형님의 눈이 부럽네요. 혁명이건 변화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기득권을 극복하는 일이 곧 혁명이지만...


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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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규

아..선생님..그때의 기록을 지금껏 가지고 계셨네요..저는 기록도 제대로 못 했지만 지금은 없군요..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그때 공부(?)했던 기억들이 조금 살아나네요.. 카리브해의 이름다운 해변이 떠오르고.. 프라우트연구소에서의 명상도 생각나고..고맙습니다..^^♡


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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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iho Shin

귀한 글 감사합니다. ^^ 제 삶터의 현안도 이 문제입니다. 2월에 찾아뵙고 고견 청하겠습니다.


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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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이

자급과 자립을 기반하지 않은 모든 것은 위태로워 보이네요. 의미 있는 글! 고맙습니다.


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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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m Oksang

이병철 도반!
글 잘 읽었습니다.
세월이 참 많이 지났습니다~^*^


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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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만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


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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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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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7

손민석 - 미국의 제재 실패가 '마두로 납치'를 불러왔다 -

미국의 제재 실패가 '마두로 납치'를 불러왔다 - 오마이뉴스

26.01.04

미국의 제재 실패가 '마두로 납치'를 불러왔다
[시각] <자본 이후의 세계>(출간 예정) 저자 손민석 작가가 본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손민석(news)


▲미국 백악관의 엑스(옛 트위터) 긴급대응 계정은 3일(현지시간) 뉴욕에 있는 마약단속국(DEA) 사무실에서 구금 상태로 복도를 걸어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영상을 공개했다. ⓒ 백악관 긴급대응 엑스 계정 게시물 갈무리관련사진보기


2026년 1월 3일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여 베네수엘라 현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하는 사태가 발발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주도하던 초강대국 미국이 국제규범 등을 모조리 무시하며 자국법에 따라 타국의 대통령을 '납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예상치도 못한 전격적인 기습에 베네수엘라 당국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으며 채 2~3시간만에 마두로 대통령이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납치되어 미국으로 호송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마두로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이 충격적인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사태는 미국의 제재가 얼마나 효과적이지 못한지를 잘 드러내는 사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이중권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선거부정 등을 이유로 후안 과이도(Juan Guaidó) 국회 의장이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직을 맡겠다고 선언하고 유럽, 미국 등의 친서방 세력 50여 개국이 그걸 승인한 순간부터 그랬다.

분명 마두로 정부는 선출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기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 연임에 성공했지만 야당후보들을 탄압했을 뿐만 아니라 친(親)마두로 성향의 의원들이 다수 포진된 초헌법적 기구인 '제헌의회'가 선거를 주관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이도를 정부 수반으로 인정한 뒤에 미국은 거듭해서 베네수엘라를 제재했고 베네수엘라는 달러 수입의 대략 98%에 해당하는 수입원인 원유수출길을 상실했다. 안그래도 파탄으로 내몰리고 있던 베네수엘라 경제는 파국에 직면했다. 미국은 과이도 임시정부를 앞세워서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군부를 비롯한 다른 국가기관들의 이반을 유도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2020년 4월 일부 망명자들이 주도한 무장반란은, 쿠바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처참하게 실패했고 마두로 정부는 제재 이전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인 권력유지를 해냈다.

결국 2022년 임시정부 해산이 결정되면서 후안 과이도는 임시대통령에서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장직에서도 물러나면서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석유공급지로서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과 척을 지자 바이든 행정부는 서둘러 베네수엘라와의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했고 그것이 마두로 정권에 힘을 실어줬던 것이다. 그렇게 2023년 베네수엘라 임시정부가 완전히 소멸하면서 2026년 현재까지 마두로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다.

후안 과이도 임시정부로 대표되는 베네수엘라 내의 반체제 세력과 미국 및 서방세력의 압박을 통한 '평화적'인 정권이양은 실패로 끝났고 마두로 정권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 게 바로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군사적 개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보면 미국은 외과수술과도 같은 정밀 타격을 통해 마두로 정권의 수뇌부를 제거하고, 정권 내에서의 권력변동에 따른 협력자의 등장을 꾀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작년에 있었던 이란 핵시설 타격의 연장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시설 타격, 베네수엘라 참수작전 등과 같은 외과수술적인 군사적 개입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변수에 기초해 협상을 이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제재의 효과가 약해진 결과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마두로의 '마피아 자본주의'로 후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 12월 1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지역사회 기반 단체들의 취임 선서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마두로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열린 행사다. ⓒ 로이터/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이와 같은 방식의 군사적 개입을 왜 반복해서 시도하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협상 스타일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국의 한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은 광범위하게, 특히 러시아, 중국 등에 대해 제재를 남발해왔다.

미국의 제재 외교를 분석한 일본의 스기타 히로키는 <미국의 제재 외교>
라는 책에서 제재 외교가 등장하게 된 이유로 전쟁에 반대하는 국민여론, 핵무기 등으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살상력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대규모의 지상전을 치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전쟁이 불가능해진 상황이지만 갈등과 분쟁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제재'이다.

스기타는 이런 맥락에서 제재를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이라 지적한다. 미국은 전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제재라는 다른 수단을 통해 계속해서 전쟁을 해왔던 것이다.

문제는 제재의 효과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러시아, 중국,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들에 광범위한 제재를 가해왔지만 그 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베네수엘라를 예시로 설명하자면 제재의 목적과 효과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는 '남발'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광범위한 제재 이전에 이미 경제가 파탄나고 있었기 때문에 제재로 인한 효과와 진행중이던 경제붕괴의 추세를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려웠다. 아마 대체로 효과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베네수엘라의 1인당 GDP는 80% 이상 감소했지만 그 대부분은 제재가 이뤄지기 이전인, 2017년 이전에 발생한 것들이었다. 즉, 미국의 제재는 무너지는 경제에 가속도를 붙였을 뿐, 정권의 명줄을 끊는 결정적 변수는 되지 못했던 셈이다.

둘째로 제재는 상대방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광범위한 경제제재는 중국의 경우에는 미국의 제재를 무력화시킬 여러 수단과 역량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러시아의 경우 최소한 그에 대비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서 마두로 정권은 국내외의 압박을 계기로 새로운 권력기반을 창출하였다.

예컨대 마두로 정권은 초인플레이션으로 베네수엘라 통화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서둘러 국내외의 모든 교환체계를 '달러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비공식 달러화'라고 불리는 현상이 급격하게 퍼지면서 베네수엘라 전체 거래의 절반 이상이 미국 달러로 결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비공식 달러화'는 기존의 국가통제 하에 놓여 있던 경제를 완전히 '자유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무역자유화와 비공식 달러화가 함께 이뤄지면서 민간의 수요에 맞게 어떠한 형태의 상품이든 공급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편에서는 국가의 권위주의적인 통제, 특히 마두로 개인의 사적인 지배연합으로 전락해가는 질적 하락이 이뤄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화를 매개로 한 시장자유화에 힘입어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두로 정권은 경제위기를 맞이해 조용히 국유자산들을 매각하며 민영화했고 이 과정은 거의 대부분 비밀에 붙여졌다.

이렇듯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마두로의 '마피아 자본주의'로 후퇴했던 것이다. 이러한 후퇴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정권은 살아남았다. 중국, 튀르키예, 시리아, 이란 등의 반미 성향의 국가들과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역관계를 형성해나가면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확장했다. 미국 등의 서방 세력의 압력 속에서 반(反)제국주의를 기치를 내걸고 국영부문을 '구조조정'하는 우경화된 정책들을 견지했던 것이다.

마두로 정권을 전복해야 할 이유가 무엇?… 우리의 시선은 '대만 해협'으로 향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군 공습 이후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마러라고 관저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UPI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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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7년 간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무역관계의 수립, 비공식 달러화를 매개로 한 자본주의의 발전, 군대의 사병화, 국가기구의 사조직화 등의 변화를 거쳐 마두로 정권은 2021년을 기점으로 베네수엘라 경제를 다시금 성장세로 돌렸으며 회복 중이기는 하지만 중남미 내에서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서방세력의 압박이 베네수엘라의 체제 성격을 바꿔놓았던 것이다.

이렇듯 제재의 효과가 낮아지자 미국으로서는 정밀한 외과수술적 타격이라는 군사적 개입의 '최소화'를 전제로 한 내부 변화의 유도를 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두로 정권을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적 수단을 활용하지 않고 타격해 전복시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개입이 현실화된 건 이런 맥락이다. 이라크, 아프간 등의 대규모 군사개입의 실패가 경제제재의 남용으로 이어졌고, 그 제재의 효과가 줄어들자 다시금 '최소한'의 군사적 개입으로 선회한 것이다.

지금은 최소한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처럼 미국이 지상군을 주둔시키는, '대규모'의 군사개입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전세계적 개입에서 지역적 개입으로 그 개입 범위를 축소시키면서 경제제재와 군사적 개입이라는 다양한 선택지를 활용하여 세력권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제재의 무력화, 군사적 개입의 최소화 등의 '합리적'인 수단의 활용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이 바로 지금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전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자는 석유 자원의 확보 때문이라고 하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미국의 석유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 투자할 것이라 공언하지만 핑계에 가깝다. 베네수엘라 석유 시설들은 이미 노후화된 지가 오래라 미국이 제대로 수익을 내고자 한다면 상당한 기간, 상당한 정도의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이는 곧 대규모의 지상군 주둔을 전제로 한다. 지상군 주둔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그리 합리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마약과의 전쟁 운운하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유통되는 마약의 대부분은 태평양을 통해 유입되지, 베네수엘라나 카리브해를 경유하지 않는다. 당장 콜롬비아가 세계 최고 수준의 코카인 생산국이지만 미국이 그를 공격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베네수엘라 이주민, 난민 등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합당한 설명이라 보기 어렵다. 중남미 출신 유권자들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미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에 패했던 전략이다.

수단의 합리성은 보이지만 목적의 합리성이 보이지 않는 이 기묘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란, 미국이 다시금 먼로독트린(Monroe Doctrine)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정도이다.

앞으로 미국이 멕시코, 캐나다 등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하고 그린란드를 병합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대규모의 군사적 개입부터 경제제재까지 활용가능한 수단이 여전히 '효과'를 보일 수 있는 지역으로만 세력권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여러모로 이번 사태는 미국의 제재와 군사적 개입의 효과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징표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미국이 베네수엘라, 멕시코, 캐나다, 그린란드 등에 취할 조치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시선은 대만해협을 향해야 한다.
미국이 국가이성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과 대립의 위험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일이 정말로 현실화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동북아의 평화를 지켜나갈 것인가. 미국 없는 세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고민해볼 때가 아닌가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손민석 작가는 <매일노동뉴스> 등에 강의와 기고를 병행하고 있다.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를 썼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이론을 다룬 <자본 이전의 세계>와 
근대사회론을 다룬 <머리없는 국가>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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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보면 미국은 외과수술과도 같은 정밀 타격을 통해 마두로 정권의 수뇌부를 제거하고, 정권 내에서의 권력변동에 따른 협력자의 등장을 꾀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작년에 있었던 이란 핵시설 타격의 연장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시설 타격, 베네수엘라 참수작전 등과 같은 외과수술적인 군사적 개입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변수에 기초해 협상을 이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제가 어제 지적한대로 군사적 개입을 통해 협력자의 등장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네요. 어쩌면 군사적 개입 자체가 내부 협력자의 협력 덕분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지금 와서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만.. 쿠바계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는 음모론에 솔깃해질 지경이네요. 아무튼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마두로의 마피아 자본주의를 거쳐 로드리게스의 식민지적 자본주의로 퇴보하는 중으로 보입니다. 대규모 지상전을 통한 레짐 체인지를 유도한 네오콘의 실패를 교훈 삼아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제재와 외과수술적인 군사적 개입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뤄내고 있습니다. 대규모 군사 동원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와 같은 성공 사례는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기동타격대를 활용한 군사적 개입을 항상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련해서 내일 올라갈 칼럼을 미리 쓴 게 다소 아쉽네요ㅎㅎ 대규모 지상전으로 인해 제2의 이라크-아프간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 걸로 드러났습니다.

2026-01-04

백승종 - 앱솔루트 리졸브: 새벽의 파열음과 제국의 귀환 글쓴이 백승종... | Facebook

(3) 백승종 - 앱솔루트 리졸브: 새벽의 파열음과 제국의 귀환 글쓴이 백승종... | Facebook

앱솔루트 리졸브: 새벽의 파열음과 제국의 귀환
글쓴이 백승종

​1. 새벽의 기습과 침묵한 방패
2026년 1월 3일, 카라카스의 덥고 습한 밤공기는 예고 없는 파열음으로 찢겨나갔다. '작전명 앱솔루트 리졸브(Operation Absolute Resolve)'로 명명된 미국의 군사 행동은 외교적 수사나 경고 사격이 아닌, 베네수엘라 심장부를 겨냥한 비수였다. 델타포스의 군홧발이 푸에르테 티우나(Fuerte Tiuna) 관저의 적막을 깨트렸을 때, 니콜라스 마두로가 자랑하던 러시아제 S-300 방공망은 기이할 정도로 침묵했다. 30분도 채 되지 않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지난 25년간 서반구의 지정학적 두통거리였던 '차베스주의'의 수장은 결박된 채 카리브해의 미 군함으로 압송되었다. 이는 단순한 체포가 아니라, 1989년 파나마 침공 이후 가장 노골적인 제국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 썩어버린 뿌리와 도래한 파국
이 파국은 하루아침에 잉태된 것이 아니었다. 우고 차베스가 쏘아 올린 '21세기 사회주의'의 이상은 마두로 치하에서 부패와 무능이라는 곰팡이로 뒤덮였다. 한때 남미의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초인플레이션과 기아의 땅으로 전락했고, 2024년 대선에서 자행된 노골적인 부정 선거는 국제 사회가 품고 있던 마지막 인내심마저 앗아갔다. 외교적 해법이 질식한 자리에는 무력의 논리가 들어찼다. 2025년 하반기, '작전명 남부의 창'과 함께 카리브해를 메운 미 해군의 회색 선체들은 이미 예정된 결말을 향해 조용히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3. 돈-로 독트린: 패권의 노골적 선언
트럼프 행정부는 이 작전을 '마약 테러와의 전쟁'이라 명명했지만, 그 이면에는 19세기 먼로 독트린의 망령이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활해 있었다. "서반구에서 미국의 지배력은 의심받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선언은, 주권이란 미국의 안보와 이익에 복무할 때만 유효하다는 냉혹한 통보였다. 미국은 더 이상 막후의 조정자로 남기를 거부했다. "우리가 운영하겠다(We're going to run it)"는 대통령의 말처럼, 그들은 베네수엘라의 영토와 자원을 직접 관리하는 신탁 통치의 시대를 예고했다

]

​4. 검은 황금의 저주와 지정학적 체스판
이 모든 사태의 기저에는 오리노코 강 유역에 잠든 3,000억 배럴의 석유, 그 검은 황금에 대한 갈망이 흐르고 있다. 미국의 셰브론과 정유사들은 낡고 녹슨 베네수엘라의 파이프라인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다시금 피를 돌게 하려 한다. 이는 단순히 에너지를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유라시아의 경쟁자들이 미국의 앞마당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지정학적 쐐기 박기였다. 베네수엘라와 '전략적 동반자'를 맺었던 러시아도, 막대한 차관을 빌려준 중국도, 미군의 압도적 무력 앞에서는 규탄 성명이라는 종이 방패 뒤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5. 승리 뒤에 드리운 그림자
마두로는 사라졌지만, 베네수엘라에 평화가 깃들었다고 믿는 이는 드물다. 권력의 공백은 혼란을 부르는 초대장과 같다. 도시의 빈민가와 정글에는 마두로 정권이 키운 무장 조직 '콜렉티보(Colectivos)'와 국경을 넘나드는 게릴라들이 여전히 숨 죽이고 있다. 이라크의 전례가 보여주듯, 정규전의 승리는 종종 지루하고 피비린내 나는 비정규전의 서막일 뿐이다. 미군은 이제 파산한 국가를 재건하고,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워야 하는 거대한 수렁 앞에 서 있다.
​한때 고국을 떠났던 난민들이 희망을 품고 돌아오려던 찰나, 전면적인 개입은 또다시 수백만 명을 국경 밖으로 내몰지 모른다. 2026년의 베네수엘라는 해방의 환희와 내전의 공포가 위태롭게 공존하는 살얼음판 위에 있다. '앱솔루트 리졸브'는 단호했으나, 그 결의가 가져올 미래는 여전히 안개 속에 휩싸여 있다. 지금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카라카스의 불 꺼진 밤거리 위로 제국의 그림자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드리워졌다는 사실뿐이다.

2026-01-02

신춘 대담 지금 마르크스/지위 와오 의장×마르첼로·무스트 교수/공통점 많이, 기쁜 놀라움 | 신분 적기 |일본 공산당

신춘 대담 지금 마르크스/지위 와오 의장×마르첼로·무스트 교수/공통점 많이, 기쁜 놀라움 | 신분 적기 |일본 공산당




2026년 1월 1일
신춘 대담 이제 마르크스
志位和夫
지위 카즈오 의장 × 마르첼로 무스트 교수
공통점 많고 기쁜 놀라움


 국제적으로 유명한 마르크스 연구자로 캐나다 요크 대학 교수의 마르첼로 무스트 씨를 일본 공산당 본부에 맞이해 지위 카즈오 의장과의 신춘 대담이 실현되었습니다. 2회의 커피 브레이크를 끼고 4시간에 걸친 신춘 토크로, 2명은 「지금이야말로 마르크스」를 종횡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사진) 상대의 저작을 손에 넣는, 마르첼로 무스트 교수(우)와 지위 카즈오 의장=2025년 12월 23일, 당 본부

 시위 카즈오 의장 신년, 축하합니다.

 마르첼로 무스트 교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위 무스트 교수를 우리 당 본부에 맞이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일본에 오는 것은 몇번째가 될까요?

 무스트 네 번째입니다. 지금까지는 일본 공산당 여러분과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만, 이렇게 이번에 지위 의장을 만나서 매우 영광입니다.

 지위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는 당신의 3권의 저작 - '마르크스 리바이벌'(지평사, 2025년), '어나더 마르크스'(호리노우치 출판, 2018년), '만국의 노동자, 단결하라! 마르크스와 제1인터내셔널의 싸움」(오츠키 서점, 2023년)을 정중하게 배독했습니다.

 무스트 감사 합니다.

 지위 전체를 읽고, 특히 공산주의론에 대해, 우리의 견해와 매우 가까운 것이 있다는 것을 기쁜 놀라움으로 읽었습니다.

 무스트 공통점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같은 놀라움을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의장이 보내준 텍스트(『Q&A 공산주의와 자유』〈“청본”〉, 『Q&A 지금 ‘자본론’이 재미있다’〈“아카모토”)와 그 이론적 배경을 가진 두 개의 논고=별항=의 영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론도 그렇고, 정치적 과제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확실히 학문의 세계에 있습니다만, 한 명의 활동가이고, 게다가 전투적인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지위 당신은 『인터내셔널』의 책으로, 헌사를 엄마에게 바치고 있군요. 엄마가 메이데이에 데려가 주고, 그 때에 적기를 보았다고.

 무스트 어머니는 이탈리아 노동 조합의 활동가였습니다. 지금도 강한 노동조합입니다. 의장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첼로라는 이름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임에서 온다.

 지위 화가 역으로 나오는 마르첼로군요.

 무스트 예 .

 지위 한때 서구 최강의 당이라고 불린 이탈리아 공산당이 소멸한 것은 슬픈 뉴스였습니다. 다만, 재작년 8월, 베를린의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주최의 국제회의에 나온 대로, 오랫동안 이탈리아 공산당의 국회의원을 근무해, 지금은 이탈리아 좌익의 루치아나 카스테리나씨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오래된 친구입니다. 이 사이의 선거에서 이탈리아 좌익이 약진하고 있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무스톨 치아나 씨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96세라고 들었습니다만, 건강하게, 하루 2회 회의를 한다고 합니다.

 지위 저는 당신보다는 상당한 해가 되었습니다만, 1960년에 일본에서 일미안보조약 반대의 국민적 대투쟁이 일어났습니다. 부모님도 일본 공산당원으로, 아버지의 어깨차를 타고 데모에 참가한 것을 기억합니다. 유치원아였습니다. 이것은 내 첫 정치적 경험입니다. 우리는 비슷한 곳이 있습니다.

 지위씨가 「아오모토」 「아카모토」의 영역과 함께 무스토 씨에게 준 두 개의 논고(영역)란, 「자유로운 시간과 미래 사회론--마르크스의 탐구의 발자취를 더듬는다」(「전위」2024년 9월호)와 「노동자 계급의 성장·발전을 주축으로 하고, 사회 변혁의 전망을 「Q&A 「자본론」」(아카모토)의 이론적 배경에 대해」(「월간 학습」2025년 11월호)입니다.
마르크스는 죽었다는 상황에서 마르크스 부활 시대에


(사진)지위 와오 의장

 지위 무스토씨는 저서 속에서 "마르크스의 진정한 사상이 오늘만큼 적시에 존경이나 관심을 부르는 시대는 없었다", "2008년에 발생한 공황 이후 마르크스는 붐이 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견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무스트씨로부터 마르크스·붐에 대해, 지금 주로 활동되고 있는 미국, 유럽등에서 느끼고 계시는 것, 왜 지금 마르크스·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무스트 오늘의 마르크스 부활이라고 불리는 주목 전에는 마르크스 부정의 시기가있었습니다. 저 자신은 2002년에 이탈리아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합니다만, 그 때, 마르크스에 초점을 맞춘 논문에 임하고 있는 박사과정의 원생은 나의 학교에서는 나만 혼자라는 상황이었습니다. 1989년부터 2008년까지 말하자면 침묵의 20년이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에 관한 출판물, 마르크스의 저서의 재출판도 거의 없는 상황이 세계에서 나타났습니다. 이탈리아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독일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랬습니다. 모두가 "마르크스는 죽었다"고 선언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마르크스가 부활한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히 경제 문제입니다. 2008년에 경제공황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부활을 촉구했습니다. 2008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 스쿨 오브 이코노믹스(LSE)를 방문하자 교수들 경제 전문가에게 “왜 아무도 이 위기를 예측할 수 없어 예방할 수 없었는가”라고 질문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일어나고 있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밝힐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마르크스에 다시 관심이 모였습니다.

 그 무렵, 나는 베를린에서 (새로운)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신메가(MEGA)')의 편집에 관련되어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신문을 사러 가면, 독일에서 제일의 보수 신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가 1페이지 전부를 사용해 마르크스의 논평을 게재한 것을. 마르크스가 1857년에 '뉴욕 데일리 트리뷴' 종이에 쓴 논평입니다. 2008년에 일어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그는 150년 전의 경제 위기(1857년의 공황) 휩쓸려 논하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 부활의 가장 큰 이유는 자본주의, 이 혼돈적이고 중대한 생산 양식을 이해할 필요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마르크스 붐은 우연이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사진)대담하는 마르첼로 무스트 교수(왼쪽)와 지위 카즈오 의장(오른쪽)

 지위 나는 지금 마르크스가 세계적으로 붐이 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도, 일시의 것이 아니고, 3개 정도의 요인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요인은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의 깊이입니다. 여러분이 말했듯이, 2008년에 세계 공황이 일어나고, 그 후, 빈부의 격차가, 눈이 얽히는 기세로 퍼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파리 협정에서는, 산업혁명전에 비해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만, 이미 「1・55도」(2024년)가 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의 근본적인 설명을 할 수 없고 처방전도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으로 인류는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요인으로서, 나는 이른바 '마르크스 레닌주의'라는 말의 이론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 이후 스탈린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라는 이름으로 마르크스 엥겔스의 이론과는 '닮은 비이론 이론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여러가지 특징이 있습니다만, 2개만 주고 싶다.

 하나는 마르크스의 풍부한 미래 사회론을 말살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만, 「자본론」안에는 미래 사회의 풍부한 내용이 많이 나타납니다. 「인간의 자유」, 「인간의 발전」, 「인간의 해방」, 이것들이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스탈린은 그들을 모두 잘라버리고 사회주의의 이론을 소련 제도의 회색 해설로 대체해 버렸습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마르크스 레닌주의'도 붕괴했습니다.

 또 하나는 세계관의 왜곡입니다. 그 최악의 전기가 된 것은 스탈린이 썼다고 하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에 대해」(1938년)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역사적 유물론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와 같은 경제적 카테고리의 상호관계에서만 설명된다. 가장 나쁜 형태의 '경제 결정론'(경제가 사회의 운동을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입장)이 나타납니다. 거기에 누락된 것은 계급투쟁이야말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마르크스의 입장입니다. 아직도 마르크스에 대해 '경제 결정론'이라는 비판이 되고 있습니다만, 나는 스탈린이 만든 죽은 도식을 마르크스의 책임으로 '경제 결정론'이라는 레텔을 붙이는 것만큼 큰 실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공산당에 대해 말하면, 솔직히 말해서, 우리도,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수년의 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의한 일정한 이론적 오염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은 1950년 스탈린과 중국에 의해 무장투쟁을 밀어붙이는 격렬한 패권주의적 간섭을 받아 당의 분열이라는 비극을 체험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주 독립의 입장을 확립했습니다. 상대가 소련이든 중국이든, 어떠한 강국이라도 말할 수 없고, 일본의 혁명 운동의 진로는 스스로 결정해 나간다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에 서서, 우리는 이론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스탈린에 의한 이론적 오염을 없애고 쇄신하는 노력을 거듭해 왔습니다. 1976년 당 대회에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라는 용어를 규약에서 제거하고 당의 이론적 기초를 과학적 사회주의로 규정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당으로서 1991년에 소련공산당이 해체했을 때 '패권주의의 거악당의 해체로서 손을 들고 환영한다'는 성명을 내린 것입니다.

 조금 전 무스트씨의 이야기로, 91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마르크스의 출판물이 거의 없어진 시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단지 일본 공산당 자신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91년의 격변을 오히려 긍정적인 것으로 파악해, 이 시기에도 94년, 2004년의 강령(일부) 개정 등, 이론과 노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제3의 요인으로서, 나는, 1975년부터 시작되어, 일시의 중단을 끼고, 98년에 재개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새로운 「마르크스·엔겔스 전집」(「신메가」)의 간행이 가져오고 있는 새로운 풍부한 지견은, 마르크스의 오늘적 부활의 중요한 팩터(요인)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신메가』의 극히 일부이며,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아직 극히 일부입니다. 다만, 『신메가』의 제2부문――『자본론』과 그 준비 초고의 모든 것을 담은 부분이 간행된 것은, 우리에게 큰 이론적 혜택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그 중의 「1857~58년의 경제학 초고」와, 「경제학 비판(1861~63년 초고)」등의 방역이, 오츠키 서점으로부터 전 9권으로 간행되어, 일본어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중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아오모토」와 「아카모토」에서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의 의의를 베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자본론 초고집」을 읽는 가운데서 움켜잡은 것입니다.

 엥겔스도 아마는 『자본론 초고집』을 차분히 읽을 여유는 없었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자본론』 제2부와 제3부의 청서, 정리, 간행으로 손 가득했으니까. 우리는 '신메가' 덕분에 엥겔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자본론'을 읽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가지의 요소를 이야기했습니다만, 우리는 21세기의 오늘, 지금이야말로 『자본론』의 생명력이 제일 꽃이 열리는 시기에, 살아 있다고 말해도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옛 스탈린주의와 함께 새로운 마르크스 공격으로 치


(사진) 마르첼로 무스트씨의 약력 1976년 이탈리아 출생. 현재 캐나다의 요크 대학 교수 (사회학 이론). 마르크스 복권,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큰 공헌을 해온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25개 언어로 15개 이상의 저서를 출판하고, 일본 번역은 '마르크스 리바이벌 키워드와 신해석'(지평사), '만국의 노동자, 단결하라! 마르크스와 제1 인터내셔널의 싸움」(오츠키 서점), 「어나더 마르크스」(호리노우치 출판)의 3권. 사회주의 사상, 노동 운동사, 새로운 사회 경제 시스템 등도 연구.

 무스트 의장은 많은 중요한 것을 말했습니다. 당신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을 거쳐 마르크스가 '경제 결정론'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완벽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지금 북미에서 새로운 문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2008년 이후,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새로운 비난이 나오고 있어 세계의 경향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의장은 한때 마르크스 비난, 즉 스탈린주의와 '경제 결정론'에 대해 썼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승리하고 극복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진보적 혹은 리버럴한 학자·연구자로부터의 마르크스주의에의 새로운 공격은, 마르크스의 이론이 노동자와 자본의 문제만을 다루고, 그 유용성은 유럽에 한정되고 있어 남성, 그것도 공장 노동자만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마르크스를 다시 옆으로 쫓아 버리자는 것입니다.

 좌익 속에도 경제적인 평등의 것만으로 자유의 문제를 접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좋지 않다. 동시에 개인 자유의 문제만을 우선하는 새로운 이론이 있습니다. 이 입장은 계급 투쟁이나 사회 정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은이 중간에 있으며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물론 계급투쟁을 치르고 있어 사회정의를 추구해야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권리, 개인의 자유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우리의 오랫동안 계속되는 우호 속에서 이번에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앞으로는 내가 이 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매년 전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사회주의의 깊이, 폭넓은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저의 저서 『아나더 마르크스』는 마지막 부분에서 만년의 마르크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년에 그는 세계 주변 지역에 대해 생각하고 이민, 성별, 환경 등의 카테고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 연구의 또 다른 포인트는 전쟁입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어떻게 사회주의운동의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요소인가?

 우리는 오래된 스탈린주의와 부딪칠 뿐만 아니라, 북미 유래의 새로운 공격, 마르크스주의는 유럽의 남성 노동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춘 경제주의에 불과하다는 북미 리버럴로부터의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공격과도 견뎌야 한다.
자주 독립은 정당으로서의 생존권이며, 그 존망을 좌우한다

 무스트 의장이 제시된 두 번째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설명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과제가 정치적으로 정당에 있어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의 자주독립을 확립하고 있었으므로, 1991년(의 소련 붕괴) 후에도 대처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미에서 이 자주독립성은 정당으로서의 생존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위 생존권, 즉 정당으로서의 존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무스트씨의 말은 본질을 붙이고 있습니다. 1950년에 스탈린과 중국에 의한 간섭이 있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간섭에 의한 분열을 해결하고 1958년 제7회 당 대회에서 통일을 회복했습니다. 이 때 자주 독립의 입장을 확립했습니다.

 그 후 소련과 중국 모두에서 심한 간섭을 받았다. 최초의 간섭은 소련으로부터의 것으로, 1963년부터 64년에 걸쳐 후르시초프가 개시한 것입니다. "소련 외교의 응원단이 되라"는 간섭이었습니다. 우리 당은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게다가 1966년, 중국·모택동파로부터, 「중국형의 무장 투쟁을 일본에서도 채용하라」라고 하는 난폭한 간섭이 행해졌습니다. 우리는 이것도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바로 당의 '생존권'--존망을 끼친 따뜻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거쳐 도대체 소련과 중국은 '사회주의'를 자칭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옛 이론을 마르크스 엥겔스에 되돌려 재검토하는 쇄신의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1976년의 대회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삭제한 것은, 그러한 흐름 속에서의 판단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일본은 유럽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소련과의 관계는 결국 소련이 간섭 오류를 인정하게 했다. 끝까지 논쟁은 계속되었지만 소련 붕괴로 끝났습니다. 중국과의 관계는 98년에 중국이 간섭의 잘못을 문서로 인정했습니다.

 그러한 체험을 거쳐 마르크스 엥겔스의 원점으로 돌아와 그것을 오늘날 발전시키는 이론 활동을 당으로서 독자적으로 다녀왔다는 것이 경과입니다.
소련 붕괴와 그 후의 세계 정세의 전개에 대해

 무스트 일본 공산당의 당사를 연구했습니다. 소련과 중국으로부터의 간섭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공산당, 예를 들어 인도 공산당(마르크스주의)=CPIM도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의장으로부터, 즉시 당의 역사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되는 질문입니다만, 의장의 이야기가 나에게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일본 공산당의 자주 독립성, 혹은 나의 말로는 정당으로서의 생존권의 확립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입니다. 유럽과의 차이점을 언급했지만 유럽의 경우 두 가지 중요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1956년, 다른 하나는 68년입니다.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있었습니다. 56년 소련의 헝가리 개입 때는 어느 공산당도 비판하지 않았다. 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에의 개입시에는 비판한 당도 있고, 용인한 당도 있었습니다.

 제가 듣고 싶은 것은 우리가 공산주의 제당의 복잡한 경험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 종언을 지지해야 하는지, 혹은 그것을 지키고 개혁해야 하는가. 이것은 나에게 매우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의장은 91년 소련 공산당의 해체를 억압 체제의 해체로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나도 전반적으로 찬성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숙한 활동가로 생각하지만,이 오래된 사회주의 경험, 이것은 결코 좋은 경험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끝난 후 정치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는 상황도 있습니다.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하나는 우리도 잘 아는 인도 서쪽 벵골 주입니다. 34년간, 인도 공산당(마르크스주의)=CPIM의 통치가 계속되었지만, 그 후, 좌익 정권이 종말해, 심한 세력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지금 하나는 베네수엘라입니다. 분명히 (현재는) 개인의 자유,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관면에서 끔찍한 사태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마음속에서 심각하게 물어보고 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침인지, 가짜 사회주의 경험의 종말을 환영하는지, 혹은 그 내부적인 개혁을 희망하는지, 왜냐하면 그 경험이 끝나면 그 때는 비참한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위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붕괴된 소련의 구 체제의 본질을 더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레닌이 초기 시기에 실시한 몇 가지 시책은 세계사적으로도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자결권을 세계로 옮겨 선언하고 실행한 것. 신경제정책(네프)이라는 경제정책을 만년에 제창하고 실행한 것 등입니다. '시장경제를 통해 사회주의로'라는 길은 합리성을 가진 길이었습니다.

 그것이 스탈린에 의해 중단되었습니다. 결정적 전기가 된 것은 1929년에 시작되는 강제적인 농업 집단화였습니다. 대량 탄압이라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히틀러와의 동맹(1939년의 독소 불가침 조약과 비밀 의정서)에서 볼 수 있는 패권주의가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붕괴된 소련의 구체제라는 것은 사회주의와는 무연의 전제주의, 패권주의를 특징으로 하고, 정치적 상부구조는 물론 경제 체제에서도 사회주의와는 무연의 사회였다는 결론을 1994년 당대회에서 확인했습니다. 거기에는 국유화가 있었다. 집단화는 이었다. 그러나 생산자는 주인공은 커녕 노예처럼 억압된 존재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체(어소시에이션)'라고 특징짓고 있습니다만, 그것과는 무연한 사회에 타락한 것입니다. 이 사회의 타락의 깊이는 내부 개혁으로 타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당이 소련공산당 해체에 휩싸여 환영 성명을 내린 것은 결코 강세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자칭할 만한 것이 없어진 것은 일시적으로는 실망이나 역행을 낳더라도 대국적으로 보면 세계에 있어서 거대한 진보로 이어졌다고 자신의 체험으로

 실제로, 그로부터 30년 남짓해 지금 마르크스 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도 '사회주의'를 자칭하는 엄청난 것이 없어져, 세계의 이론과 운동이 자유로워진 것의, 하나의 결과가 아닐까요.

 인도의 서쪽 벵골주의 좌익 정권에 대해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2001년 서 벵골주를 방문하여 부다뎅 바타차리아 총리(당시)와 회담했습니다. 그 후의 서쪽 벵골의 좌익 정권의 패배에 대해서, 일본 공산당으로서 그 요인을 말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2001년의 방문시에 서벵골의 좌익 정권이 취하고 있던 시책은, 합리성이 있어, 인민의 입장에 서진 것이라면, 매우 강한 공감을 기억한 것을 생각해 냅니다. 인도 공산당(마르크스주의)=CPIM은 지금도 3000만명을 넘는 인구를 옹호하는 케랄라주에서는 좌익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당의 역사를 살펴보고 특히 강한 존경을 받은 것은 이 당도 소련과 중국 모두에서 격렬한 간섭을 받고 많은 희생을 내면서 그것을 깨뜨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혁명운동은, 상대의 공격도 있어, 지그재그가 붙는 것입니다. 꼭 새로운 정세 아래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전을 이겨내길 바란다.

 베네수엘라에 대해 말하면, 차베스 대통령이 초기에 취한 정책은, 대미 자립의 나라를 목표로 하는 등 합리적인 방향과 평가를 했습니다. 다만, 마두로씨에 대해서는 강한 비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강권정치는 국제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베네수엘라의 전도도 열 수 없습니다. 물론 미국의 무력 행사나 군사 개입에는 단호 반대입니다.

 다만,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대국적으로 보면, 개개국의 정권의 입장은 여러가지입니다만, 중남미·카리브제국 공동체(CELAC)라고 하는, 이 지역의 모든 나라 구니를 포섭한 지역의 평화 협력의 흐름이 태어나, 비핵지대 조약이 묶여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진행된 흐름은 동남아시아에 있습니다. ASEAN(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이 중심이 되어 평화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 지역도 비핵지대조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크게 말해 동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이 세 대륙이 비핵무기의 대륙이 되고 있는 것, 핵무기 금지조약의 많은 참가국이 이 세 대륙에서 나오는 것은 큰 희망이 아닐까?

 세계에는 여러가지 역류나 지그재그도 있습니다만, 대국적으로 보면, 평화의 본류가 퍼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도 대국적으로는 소련 붕괴가 가져온 긍정적 변화의 하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소련 붕괴에 의해 세계는 평화, 운동, 이론, 다양한 면에서 대국적으로는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우리의 실감입니다.

 무스트 베네수엘라에 대한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부정면은 '자유없는 사회주의'에 의해 젊은 세대가 사회주의에서 벗어나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베스는 중요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마두로 씨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혁명적 생각을 가진 사회주의 지도자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르헨티나이든 칠레이든, 젊은 사람들은 베네수엘라를 위해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오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많은 베네수엘라의 이민자들이 다른 나라로 나가고, 그들은 거기에서 반공산주의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식으로 베네수엘라가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중남미에 미치는 복잡한 상황이 있습니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사회주의를 논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내 질문입니다.

 지위 전혀 그대로입니다. 나중의 주제가 되지만, 나는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인간의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유가 억압된 사회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에서도 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 「아오모토」--「Q&A 공산주의와 자유」를 정리한 것도, 공산주의라고 하면 자유가 없는 사회라는 오해가 일본에도 널리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근본과 다른 '인간의 자유', '인간의 해방'이야말로 공산주의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의 발전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무스트 수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나는 하나의 논고를 썼다. 그래서 내가 논한 것은 칼 마르크스는 정치적, 철학적, 경제적 사상의 주택이지만, '신메가'에 의한 새로운 지견에 의해 밝혀져 온 것은 지난 30년간에 매우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위 당신은 30년간 어디에서 가장 큰 변화를 발견하고 있습니까?

 무스트 문헌적으로 말하면 우선, 마르크스의 초기의 중요한 저작으로는, 「1844년의 경제학・철학 초고」, 「독일・이데올로기」(1845~46년)가 있습니다. 불완전하고 단편적이지만 개방형으로 출판됩니다. 그리고 의장이 지적한 「자본론」을 비롯한 경제적 저작, 「자본론」의 준비 초고를 비롯한 제초고입니다. 또한 마르크스 노트북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주제입니다. 이를 통해 마르크스의 더 광범위하고 명확한 이미지를 얻을 수있었습니다.

 동시에, 이 발견에서 뭔가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려고 하는 학자의 이야기에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이 새로운 마르크스의 페이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이며, 한때의 마르크스 동상은 틀렸다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음색으로 '알 수 없는 마르크스'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알 수 없는 마르크스'에서 중요한 것은 인류학의 수고였다. "알 수 없는 마르크스" = "경제학 비판 요강", "알 수 없는 마르크스" = "초기 마르크스", 그런 상태의 주장이 있습니다만, 마르크스의 노트북은 이러한 "알려지지 않은 마르크스"가 아닙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이해를 돕는 새로운 소재입니다.

 지위 당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마르크스가, 이것 이것의 계기로 완전히 다른 사상가가 되어 버렸다고 하는 논의에, 나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과 이론은 항상 발전 속에 있으며 그 과정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것은 불파철전 의장이 돌진해 연구하고 밝힌 것입니다만, 공황론의 발전이 있습니다. 어느 시기까지 마르크스, 엥겔스는 “공황이 일어나면 그 뒤를 이어서 반드시 혁명이 일어난다”는 “공황=혁명” 이론에 서 있었다. 1850년대 두 사람은 공황을 기다리고 있었고, 당신의 '어나더 마르크스'에서도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듯이 공황의 징후가 조금이라도 우키우키하여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러한 혁명론에서 이끌어지는 혁명세력의 임무는 "만일 공황이 일어났을 때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혁명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를 준비"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1857년 대망의 공황이 일어났지만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실을 근거로 마르크스는 공황은 어떤 운동 메커니즘에 의해 일어나는가 하는 탐구를 해 나갑니다. 그 대답은 『신메가』의 제2부문에 수록되어 있는 『자본론』 제2부 제1초고 속에 쓰여져 있었습니다. 자본의 유통과정에 상인자본이 개재하는 것으로, 「가공의 수요」가 만들어져, 버블이 일어나, 공황이 일어난다. 이런 운동 메커니즘을 1865년에 마르크스는 밝혀 갑니다.

 이 탐구에서 이어진 결론은 공황은 자본주의가 '몰락' 과정에 들어간 것의 드러나지 않고, 자본주의에 특유의 산업 순환의 일 국면에 지나지 않고, 자본주의는 그러한 순환을 반복하면서 발전을 이루는 것이었다.

 거기가 알면 혁명운동의 임무가 크게 바뀌어 옵니다. “공황을 기다리고 막상 때에 대비”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끈질기게 노동자 계급의 다수를 획득하여 혁명을 근본적으로 준비하는 것에 혁명운동의 임무가 바뀌어 옵니다.

 저는 그러한 입장에서 최초로 쓰여진 작품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제일부 완성고(1866~67년 집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새로운 사회의 객관적인 여러 조건이 만들어져 온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모순이 확대됨에 따라 “훈련되고 결합되고 조직되는 노동계급의 반항도 증대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롱의 종이 울린다」. 그러한 자본주의의 「몰락」론이, 제일부 완성고로 처음으로 쓰여졌습니다.

 거기에는, 1859년에 마르크스가 쓴 「경제학 비판의 서언」에서의 사적 유물론의 정식과 비교해도 발전이 있습니다. 물론, 당신이 저서 속에서 정당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이 '서언'도 '경제 결정론'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경제적 토대와 법적·정치적 상부구조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최종적으로 경제적 토대가 '제약'한다 - '결정'이 아니라-라는 역동적인 사회발전론이 담겨 있습니다. 단지 『서언』에서는 혁명적 계급의 주체 문제가 시야 밖에 놓여져 있어 혁명적 계급이 역사의 표무대에 등장해 오는 것은 경제적 모순의 발전과 함께 '사회혁명의 시기'가 시작된 이후의 일이라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마르크스가 「공황=혁명」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하나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르크스가 이 한계를 돌파하고 사적 유물론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 '자본론'의 제일부 완성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마르크스가 가져온 큰 이론적 발전 속에 그의 이론과 행동의 여러가지 발전을 자리매김해 보면, 분명히 그 의의가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커피 브레이크 1
이론과 실천의 양면을 통일하고 진행하는 것의 중요성

 지위 여기까지, 나 자신의 감상으로서는, 매우 자극적이고, 나에게도 많은 유익한 시사를 얻을 수 있는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무스트 나는 사실 놀랐다. 저는 세계의 많은 공산당과 노동조합을 많이 방문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는 어떤 정치적 운동을 만들어 나갈지가 큰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론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정치지도자는 이론의 사람이기도 하고, 이론과 실천의 양면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헌(「아오모토」 「아카모토」와 그 관련 문헌)을 읽고,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또,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아트홈에) 느꼈습니다. (세계의 다른) 공산당의 이론에는 일정한 전통성이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도그마(교조)의 선언이기도 합니다만, 이것(「아오모토」 「아카모토」와 그 관련 문헌)에는, 뚜렷한 정치적인 인도가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지위 그러한 평가를 받은 것은 정말 기쁩니다.
사회발전에 있어서 정당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위 다음의 테마에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싶습니다. 『자본론』이 21세기에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큰 테마를 논의할 수 있으면(자) 생각합니다.

 무스토 씨는 '마르크스 리바이벌' 속에서 마르크스가 환경, 이민, 젠더 등 현대의 많은 정치적 의제(과제)에 대해 깊이 들어가 논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동시에, 당신은 얼마 전의 발언 속에서 지금 북미에서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세 가지 점을 지적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노동자와 자본의 문제만을 다룬다", "그 유용성은 유럽에 한정되어 있다", "남성, 그것도 공장 노동자만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라는 마르크스 비판입니다. 나도 이들은 아무도 성립되지 않는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스트 내 걱정은 이런 종류의 이론이 천천히 좌파 당에 침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급진 좌익조차도 있습니다. 매우 복잡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인종 차별은 흑인이 말하는 이야기,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자가 말하는 이야기, 동성애와 차별은 게이가 말하는 이야기, 등의 상태입니다. 이것은 사회를 오히려 분단하는 흐름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 것은 북미의 강한 헤게모니라는 문제입니다. 예전의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은 예를 들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또는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약하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의 교수가 없다는 것도 일어난다. 그런 가운데,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 씨, 혹은 DSA(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와 같은 정치 운동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것이 사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는 샌더스와 같은 온건한 생각에 비해 더 풍부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위 미국의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우리의 주목점을 이야기합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 교수의 앤드류 하트만 씨가 쓴 '칼 마르크스 인 미국'(2025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이 가운데 “우리는 4차 마르크스 붐을 살고 있다”고 썼습니다. 1회째는 ‘금피카 시대’로 불리며 급속한 경제성장이 일어난 19세기 후반, 2회째는 ‘대공황’이 일어난 1930년대, 3회째는 베트남 반전운동이 일어난 60년대, 그리고 4회째가 2008년 리먼 쇼크로 시작되는 지금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하트만씨의 발언으로 강한 인상에 남은 것은, 왜 마르크스가 19세기, 20세기, 21세기에 걸쳐서, 여러가지 공격의 파도가 있으면서도, 미국에 계속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해서, 「인간의 자유를 설명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미국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금 말해진 DSA의 운동입니다. 뉴욕 시장 선거에서 졸란 마무다니의 승리는 훌륭한 역사적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DSA 속에서 '자본론'의 학습운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부 적기' 특파원의 보고에서는 학습운동이 전국 수준과 지역 수준에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국의 심장부에서도 이런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본도 지지 않고 마르크스를 읽는 무브먼트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무스트 지금 소개된 움직임은 매우 든든한 움직임이었고, 프린스턴 대학의 나의 친구는 새로운 영어판 「자본론」의 출판에도 관여했습니다. 저는 「자코반」이라고 하는 DSA와 매우 관계가 깊은 잡지에도 집필하고 있습니다.

 단지, 지금 내 관심은 잠재적으로 더 복잡한 측면에 있습니다. 현재의 정치 상황 속에서 정당 자체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나에게 정치 조직은 중요하다. 정당, 노동조합, 사회운동으로서의 정치조직을 지키고, 장래를 위해서 그것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조직이라는 것의 이해에 이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일본 공산당과 같은 정당이라는 것의 이해에 이르지 못했다. 그들은 정당은 민주적이지 않다고 한다. 스탈리니즘과 정치적 억압을 비판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모든 정당이 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지위 그대로입니다.

 무스트 그들은 말하자면 모든 고양이는 검은 색이지만, 그것은 밤에 고양이를 보지 않고 낮에는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젊은 세대에게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은 지금 정당에는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와는 온라인 참가라고 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정당의 운동은 거의 모든 나라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습니다.

 왜 정당조직이 매우 중요한가? 그것은 젠더, 인종차별 반대, 마이너리티 차별 반대, 이런 것은 모두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이러한 것을 종합해 나가는, 이것이 할 수 있는 것이 정당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직이 없는 나라에서는 어떤 것은 기껏 섹트적인 투쟁이며, 모두가 질서에 반대라고 하며, 거리에서의 차별 반대 시위에도 참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위 그러한 우려는 잘 이해합니다. 다만, 재작년 유럽의 각지를 방문해, 예를 들어 벨기에 노동당 등은 확고한 정당 조직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독일의 좌익당으로 해도, 여러가지 곤란을 극복하고, 그동안, 새롭게 7만명의 새로운 당원을 맞이해, 그것을 힘으로 약진을 이겨내는 변화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DSA입니다만, DSA는 정당 조직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전의 뉴욕 시장 선거의 싸움 방법을 봐도, 단순히 온라인 뿐만이 아니라, 꽤 대규모의 전호 방문을, 자원봉사를 대규모로 조직해 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DSA가 벨기에 노동당을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연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공산당에도 콘택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DSA는 지금 모색 상태가 아닐까요?

 일본 공산당은 노동자와 국민의 다수를 결집해 사회변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령과 세계관에서 단결하고 민주주의와 행동의 통일을 중시하고 당조직을 꾸준히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낮과 밤을 힘쓰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이러한 정당론을 각국의 운동에 밀어붙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요소를 잘 찾아내고, 잘 배우고, 일치점에서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스트 내 생각은 운동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만을 과대 평가해서는 안되는 제약도 있다는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 인 미국'에서 하트만 씨가 밝히고 있지만, 마르크스 자신이 불행히도 미국에서의 노동 운동의 제한은 미국인의 노동자를 획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독일계 이민, 헝가리계 이민, 아일랜드계 이민으로 각각 각각 신문을 가지고 있는데 통합할 수 없었다. 불행히도, 그러한 어려움이 지금도 미국에는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분이 말씀하신 여러분들은 나도 이해하고 공유합니다.

 지위 운동뿐만 아니라 정당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은 전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마르크스를 읽는 운동으로 국제 협력

 지위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자, 우리는 ‘아오모토’와 ‘아카모토’를 정리해, 마르크스를 읽는 무브먼트를 일본에서도 만들자고 부르고, 여러가지 대처를 해 왔습니다. 저는 인기 있는 인터넷 프로그램에도 몇 가지 출연해 '아카모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이토 유키히라 히가시 오준 교수와도 대담했습니다. 그와는 의견의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대담이 되어 협력해 일본에서도 마르크스를 읽는 무브먼트를 만들어 가자는 것으로 일치했습니다. 일련의 넷 프로그램의 재생 회수는 맞추면 70만 정도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쓰기 코멘트가 매우 재미 있습니다. "공산당 지지는 아니었지만, '자본론'은 공부해야 하는 책이라고 잘 알았다", "공산주의의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코멘트가 꽤 많이 있습니다. 70만이라고 하는 것은 첫걸음이지만, 이것이 100만, 200만이라고 하는 단위에 퍼져 나가면, 일본의 여론도 바뀌어 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것은 상당히 반공주의의 사상적 풍토가 강한 나라입니다. 그러한 나라에서도,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의 손이 닿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자본론」이라고 하는 화제를 제공하면, 현대를 살아가는 데서 피해 다닐 수 없는 중요한 서적이라고 하는 것은, 꽤 넓은 컨센서스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원래 인터내셔널, 즉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하는 인물입니다. 마르크스를 읽는 무브먼트를 인터내셔널에서 일으켜 가기 위해 협력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스트 물론입니다. 말씀에 동의하고 그 중요성을 이해합니다. 의장도 나도 쓰고 있는 것입니다만,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시대보다 더욱 퍼지고 있어, 그에 의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중요성은, 지금, 마르크스의 시대보다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단지 지리적으로 확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헤겔이라면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르크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물론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제도에) 비판적이었던 세대가 지금은 매우 자본주의의 정신 (생각)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노동자 계급은, 미국류의 생각을 하고 있어, 개인주의, 개인의 개인에 대한 경쟁이라고 하는 사고 방식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과거 세대와 달리 사회 사상으로서의 혁명 사상에 오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리치가 되는 것, 자신의 생활의 문제를 유일한 문제로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마르크스 부활을 실현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직면하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역설적)이 되지만, 우리가 더 큰 여지를 가지고 있으면, 어려움도 동시에 커지고, 그 어려움은 정치조직이 약하기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는 관계가 있습니다.
21세기의 「자본론」의 가능성--착취, 교육, 젠더, 환경


(사진)마르첼로 무스트 교수(오른쪽)에 당 본부의 옥상 정원을 안내하는 지위 카즈오 의장(왼쪽)

 지위 무스토씨의 문제의식은 잘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어려움을 우리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조직을 사상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강화할 필요가 있군요.

 게다가 『자본론』의 가능성에 관계되어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역시 자본주의적 착취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본론』 제일부의 중심과제입니다만, 「아카모토」의 학습 운동 중에서 가장 강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착취의 문제입니다.

 「아카모토」중에서, 착취를 어떻게 알기 쉽게 이야기할까 하는 것으로, 이런 그래프를 제공했습니다(「아카모토」59페이지). 일본의 연구자의 시산입니다만, 전 산업 평균으로, 8시간 노동으로 환산해, 필요 노동 시간이 3시간 42분, 잉여 노동 시간이 4시간 18분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패널로 해, 당신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을 만드는 노동 시간은 단 3시간 42분으로, 본래라면 나머지는 「자유로운 시간」입니다. 여기에 강한 공감이 전해집니다. 나는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문제를 노동자 계급의 자각으로 한다는 것은 이 사회를 바꾸는 토대중의 토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쁜 이야기도 최근 있었습니다. 『자본론』 제일부의 「제8장 노동일」을 읽으면, 당시의 영국에서 노동 시간의 「조로마카시」가 행해지고 있었다고 하는 고발이 있네요.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을 깎아 일하고 있었다. 이것을 「아카모토」에서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아카모토'를 읽고 '내 직장에서도 바로 '조로마시'가 되고 있다'가 됐다. 그녀의 직장에서는 점심의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틈을 찾아 점심을 먹는 매일이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착취는 용서할 수 없었고, 그녀는 단 혼자 용기를 하고 사용자와 협상을 했어요. 다리가 떨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30분의 점심 시간을 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노동자 계급에게 착취의 진실을 전하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자각·성장·발전의 토대가 된다고 강하게 느낍니다. 그러한 노력을 우리는 해 나가고 싶다.

 지금 하나는 무스트씨가 말씀한 젠더, 인종차별, 환경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자본론』이 이론적 사거리에 파악하고 있는 것을 말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자본론』 제일부의 「제13장 기계와 대공업」은 매우 흥미로운 장입니다. 기계제대공업이 발전하는 가운데, 노동자가 얼마나 심한 눈을 당하고 있는지를 고발함과 동시에, 미래사회의 싹싹과 요소가 태어난다는 것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장법 안에 교육 조항이 쓰여짐으로써, 「미래의 교육의 싹이 싹트렸다」라고 말해, 미래의 교육의 임무는 「전면적으로 발달한 인간을 만드는」 것에 있다고 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대공업이 '오래된 가족제도'를 해체하고 남녀평등의 경제적 기초를 만들어 낸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환경 문제에 대한 선구적인 해명도 있습니다.

 민족차별과 관련하여 『자본론』의 제일부의 「제23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적인 법칙」의 마지막에, 아일랜드에 대한 정리된 서술이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아일랜드의 비참한 상황을 분석하고, 이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일랜드의 독립이 필요하고, 그것은 영국의 사회혁명에 앞서 임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밝혀 갔습니다. 또한 인종차별과 관련하여 '제8장 노동일' 중에는 북아메리카의 노예제 문제에 대한 중요한 서술이 있습니다. 「노예제의 죽음」이 뉴잉글랜드에서 캘리포니아까지 「8시간(노동제를 요구한다) 운동」을 일거에 펼쳤다는 서술입니다. 민족자결권의 철저한 옹호, 노예제에 대한 단호한 비판, 배외주의를 극복하는 중요성을 마르크스가 말한 것은 모두가 21세기에 사는 선구적인 것입니다.

 조금 전 무스트씨는, 「『자본론』의 중요성은, 지금, 마르크스의 시대보다 강해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스트 지금 말한 것은 매우 중요하며 동시에 희망을 갖게하는 것입니다. 내 정치적 참여 활동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의장이 지금 소개해 준 여성 노동자의 예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의 노동조합에서의 일입니다만, 나라중의 노동조합으로부터 200명의 리더가 모여 왔고, 거기서 내가 강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거기서, 마르크스는 평등한 임금을 요구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모두 놀랍습니다. 마르크스는 임노동의 폐지를 지지한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노조의 지도자들이 나에게 지금의 노동운동에는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좀 더 도발적인 형태로, 그곳을 제대로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 이와 같이 노동조합주의자조차도 ‘적책’에서 말하는 4시간 18분(잉여 노동시간)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위 당신의 책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는 인터내셔널의 회합으로,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의 상태의 개선을 위한 일상 투쟁에 취하는 것과 동시에,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임금 제도의 폐지!」라고 하는 「혁명적인 슬로건」을 그 깃발에 쓴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계급적 자각을 어떻게 만들어 낼지는 우리의 일입니다.

 무스트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의장이 내 '만국의 노동자, 단결하라! 』에서 인용한 것은 정말 기쁩니다. 이 책은 첫 번째 국제에 대한 최초의 독점입니다.

 지위 아주 좋은 일을 했어요.

 무스토세 에게 일부 곳에서 믿어지고 있는 것은 마르크스는 신이었고, 인터내셔널에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당황하는 수백만의 노동자가 있었다고. 그것은 큰 실수입니다. 제1인터내셔널의 가맹자수는 실제로는 매우 적다. 비 숙련 노동자의 문제가 있었고, 대공장의 노동자에 관여하는 것은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아일랜드계 노동자, 영국계 노동자, 독일계 노동자들 사이의 모임도있었습니다.

 만약 낡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교조대로 믿는다면 사람은 아, 당시에는 계급투쟁을 전개하기가 쉽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어렵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되었습니다. 마르크스 자신도 당시 어려움에 당면했다. 계급 투쟁은 항상 어려운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현재는, 제2 인터내셔널 당시와 달리 정치 조직의 적음이라는 점에서, 또, 노동자가 분단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1 인터내셔널 당시와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위 나도 가까운 견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제1인터내셔널에 임한 시기라는 것은 노동자 운동은 이른바 '성운상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내셔널의 집행위원회 중에서도 마르크스파는 매우 적었다. 그런 "성운 상태" 중에서 자주 그만한 운동을 정리해 갔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가 쓴 인터내셔널의 '창립선언'을 읽어도 그 전반은 영국 정부의 보고서 등을 인용하여 노동자의 상태에 대한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서 들어가서 마지막은 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이 사회를 바꾸려는 결론에 도달하는 멋진 문장입니다. 성운상태였던 운동을 마르크스의 노력으로 하나의 방향성으로 전체를 정리해 이끌어갔다. 그 노력은 힘든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세계의 운동 상황도 비슷한 곳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련 붕괴와 동시에 '마르크스 레닌주의'도 붕괴했습니다. 그러면 그 대신에, 어떤 이론이 사회발전의 지침이 되는 이론이 되는 것인가.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확실히 있습니다. 붐이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붐이라고 해도, 마르크스가 행한 자본주의 비판에의 주목이라고 하는 곳에, 아직 머물고 있는 것이 많지 않을까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앞에 어떤 미래 사회를 구상했는가에 대해서는 운동의 측에는 아직 컨센서스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즉 '성운 상태'가 아닐까요. 이것을 오늘에 울리는 말로 밝히고, 긍정적인 컨센서스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큰 과제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피 브레이크 2
공산주의론에서의 일치--「옛날 친구가 처음으로 여기에서 만났다」


(사진) 적기 편집국을 방문. 「『적기』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낡은 공산당의 신문의 하나입니다. 여러분과 만나서 영광입니다」라고 인사하는 마르첼로·무스트 교수(오른쪽으로부터 2명째). 안내하는 지위 의장(그 왼쪽), 코기소 편집국장(왼쪽 끝)

 지위 드디어 마지막 테마입니다. 공산주의 문제에 대해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무스트 씨의 '마르크스 리바이벌'에 들어간 논문을 읽고 공산주의론에서 우리의 견해와 너무 일치점이 많은 것에 놀랐습니다. 특히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의 '기본 원리'를 '각 개인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자본론')에 요구한 것,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는 열쇠는 모두 인간이 충분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에 있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무스트 씨가 이런 공산주의론을 마르크스의 어떤 텍스트를 읽고 풀어 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무스토 마르크스는 “미래의 음식점을 위한 레시피를 만든다”(“자본론”, 미래 사회의 “청사진”을 그린다)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내가 그 의미를 정말로 이해하는 것은 훨씬 나중이었습니다. 저의 저작을 읽어 주셔서, 제가 철저하게, 주의깊게,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에 관여하는 사상가들의 쓴 것을 읽고 있는 것을 깨달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789년(프랑스 혁명)부터 1848년(공산당 선언)까지 쓴 프랑스, ​​독일, 영국 등 모든 유럽 사상가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저작을 읽었습니다. 이 연구가 끝나면 마침내 마르크스가 정말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이해할 수있었습니다.

 마르크스 이전의 공산주의 이론에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음을 이해했습니다. 하나는 그것이 일종의 전체주의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매우 가난한 가운데 완전한 평등을 밀어내려고 한다. 즉 매우 가난한 가운데, 완전히 식도 옷도 살도 모두 평등하게 한다. 그러한 형태의 사회를 바라면 그것은 전체주의적인 공산주의라는 것이 됩니다.

 지위 에티엔느 카베의 「이카리아 여행기」등이군요.

 무스트 그도 그 중 하나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마르크스 이전의 사상가들의 문제는 의장이 지적된 것처럼 노동자 자신에 의한 스스로의 해방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지도자가 노동자를 위한 결정을 지도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라는 것은 그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 나의 이해입니다.

 그리고 『자본론 초고집』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가운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공산주의는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초기의 마르크스보다 한층 전진하고 있어, 「경제학 비판 요강」(「1857~58년 초고」)에서는 보다 사회 경제적인 관계를 논하고 있습니다.

 지위 『자본론 초고집』을 중시했다는 것이군요. 그동안 ‘아오모토’와 ‘아카모토’를 정리해, 그 이론적 배경의 2개의 논문을 정리하는 가운데, 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약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회주의·공산주의의 특징을 한마디로 어떻게 말하는가? 엥겔스는, 1894년, 최저년의 시기에,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의 주제페·카네파로부터의 서한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한마디로 말하는 슬로건에 대해 묻고, 반서로, 「공산당 선언」의 일절을 끌어,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소의 연체」를 소개했다.

 저는 “각 개인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을 기본 원리”로 하는 사회(『자본론』)라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 엥겔스가 초기 시기부터 만년까지 일관되게 추구해 온 미래 사회의 특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독일·이데올로기'에서는 분업의 폐지에 그 보장을 요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도 일정한 분업은 필요하며, 이 생각은 극복되고 있습니다.

 1851년 마르크스는 대영 박물관에서 한 권의 익명 브로셔를 만났습니다. 찰스 웬트워스 디르크의 것이라고 지금은 알고 있는 브로셔입니다. 거기에는, 「부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이며,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디르크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한, 프리드리히·빌헬름·슈르츠라고 하는 경제학자의 「생산의 운동」이라고 하는 책에도 쓰여져 있어, 그것을 마르크스는, 「1844년의 경제학·철학 초고」 속에서 자세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엥겔스와 함께 같은 해에 쓴 '성가족'에서 자신의 말로 '자유로운 시간'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이런 경과가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디르크의 팜플렛을 만나, 「우리의 뜻을 얻거나」라고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것을 "런던 노트"에 씁니다. 그리고 『자본론 초고』의 일에 임해, 그 가운데 자본주의적인 착취의 구조를 풀어내는 가운데, 착취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그는 몰아갔다. 「1861~63년 초고」로 그 총괄적인 결론이 쓰여져 있습니다만, 거기에서는 착취되고 있는 것은, 「돈」이나 「물건」과 함께,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오모토」와 「아카모토」에서는, 그것을 과감히 전면에 내고 써 보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강합니다. 물론 임금을 올리고 싶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간"을 원한다면,이 소원은 매우 강한 것이 있습니다.

 나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자본론 초고집』의 연구가 아무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고집」에서는 「자유로운 시간」에 대한 매우 풍부한 이론의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본론'의 미래 사회론 - '진정한 자유의 나라'의 확대, 그것을 위한 노동 시간의 단축이라는 제기로 풍부한 열매를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론 초고집』과 『자본론』과 세트로 읽고, 처음으로 커뮤니즘의 풍부한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요.

 무스트 우리는 같은 시기에 두 개의 책을 쓰고 있고, 그 중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죠.

 지위 그렇네요.

 무스트 오래된 친구가 처음으로 여기에서 만났다는, 그런 것을 느낍니다.

 지위 정말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도 아마 『초고집』을 읽고 이 논문을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스트 그대로입니다. 바로 돈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시간'이야말로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한 것은 사회주의는 이런 것 뿐 아니라 사회주의는 여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경제적 자주성이야말로 노동자에게 '자유로운 시간'에 의해 스스로를 교육하고, 인생을 구가하고,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헌하며, 사회주의를 건설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정말 어렸을 때부터 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교수가 될 필요는 없다. 사회주의는 노동 시간의 단축이며,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나에게 이론적 발견이라고 할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치적 인식입니다. 나는 노동 시간의 단축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계급 의식의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위 「여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명언입니다. 지금의 노동시간 단축의 따뜻함은 미래사회로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시다.


(사진)대담 후 악수하는 마르첼로 무스트 교수(왼쪽)와 지위 카즈오 의장(오른쪽)

 지위 이 문제의 탐구를 통해, 나는 마르크스가 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매우 풍부한 포착 방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노동이 만들어내는 물질적인 부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필요한 물질적 부는 인간의 삶의 기초입니다.

 두 번째는 "자유로운 시간"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인간의 발달의 장"("임금, 가격 및 이윤")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은 정말 무거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자연의 부(풍부함)라는 문제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초고집'에서 가장 짧은 노동시간에 필요한 물질적 부를 창출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인간적인 생산의 본연의 방법이며, 그것은 환경 보전이라고 하는 것과 바로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저서에서 “근무 시간 단축으로 인해…

 넷째, 인간 그 자체입니다. 즉 인간의 자유로운 전면적인 발전,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입니다. 마르크스는, 「1857~58년 초고」로, 「현실의 부」란, 「모든 개인의 발전한 생산력이다」라고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적인 부, 자유로운 시간, 자연의 부, 그리고 인간 그 자체의 자유로운 전반적인 발전, 그러한 것의 총체를 마르크스는 부로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무스트 매우 아름다운 슬로건이 한때있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도 통용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빵(살아있는 양식)과 함께 장미(존엄)를 위해 두드린다. 이 슬로건입니다. 한층 더 많은 것을 토론하고 싶습니다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 우리의 공동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위 오늘은 훌륭한 대담을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을 말하면, 당신은 마르크스 연구자인 동시에 혁명가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기쁜 일입니다.

 무스트 감사 합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 중요한 의미있는 인간 관계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있었습니다. 앞으로의 협력이 진행될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지위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