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김지하.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김지하. Show all posts

2020-07-26

알라딘 이전에 구매하셨던 상품입니다.

알라딘


이전에 구매하셨던 상품입니다.
전자책은 중복 구매가 불가능합니다.
PC뷰어, 스마트폰뷰어 에서 다시 다운 받아 주세요.
뷰어의 구매목록에서 구매한 전자책이 표시되지 않으면 "숨김" 상태입니다.
숨김상태는 나의계정>eBook 주문내역에서 해제할 수 있습니다.
---

2018년 4월 2일 주문
001-A576695536  [eBook] 이종석 - 이 나라엔‘주사파’와‘극우파’밖에 없는가? (시사만인보 078) - 시사만인보 78
2018년 4월 10일 주문
001-A093335746  [eBook] 강원용 -‘반공 대화 진보주의’? (시사만인보 039) - 시사만인보 39
2018년 4월 13일 주문
001-A204565546  [eBook] 김지하 -‘생명사상’과 현실 정치의 갈등 (시사만인보 020) - 시사만인보 20
2018년 4월 13일 주문
001-A204565546  [eBook] 김종철 -‘생명공동체’를 추구하는 김종철의『녹색평론』(시사만인보 019) - 시사만인보 19
2018년 4월 13일 주문
001-A204565546  [eBook] 송호근 1 - 이론은 진보, 실천은 보수 (시사만인보 063) - 시사만인보 63
2018년 4월 13일 주문
001-A204565546  [eBook] 송호근 2 - ‘진중권 신드롬’이 지식인을 망친다 (시사만인보 064) - 시사만인보 64
2019년 6월 1일 주문
001-A316787526  [eBook]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 국가와 권력은 어떻게 성을 거래해왔는가 | 인사 갈마들 총서
2019년 6월 1일 주문
001-A316787526  [eBook] 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2019년 9월 3일 주문
001-A410968186  [eBook] 유영모·함석헌의 생각 365

2020-07-16

생명평화로 열어가는 다른 한국 - 제1회 개벽포럼을 마치고 2019 조 성 환

생명평화로 열어가는 다른 한국
- 제1회 개벽포럼을 마치고 
by소걸음Apr 11. 2019
조 성 환 |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생명평화운동의 시작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평화’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표적인 것이 ‘평화헌법’으로, 평화주의를 담은 헌법9조를 일본 사람들은 ‘평화헌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조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9조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평화학’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도 일본에서이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평화학’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한편 당시에 나는 중국 도교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중국인 도교연구자들이 쓴 글을 보면 ‘생명’이라는 말이 숱하게 등장하였다. “유교=도덕”이라면 “도교=생명”이라고 할 정도이다. 단지 도교연구자들뿐만 아니라 현대 중국철학자 대부분이 생명예찬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생명평화’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그것도 불교, 기독교, 한살림 할 것 없이 누구나 쓰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최근에 일본에서도 ‘생명평화’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 것 같지만, 빈도수나 분야면에서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 말이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를 추적해 보았다. 맨 처음 나온 자료가 기독교 진영이다. ‘생명평화마당’, ‘생명평화센터’ 등의 용례가 보인다. 좀 더 찾아보니 2011년 무렵에 진보적 기독교 진영에서 이 담론을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없어진다고 하는 -. 
 은덕문화원(종로구 원서동)에서 개최된 제1회 개벽포럼 (강사 - 도법스님)
그러다가 마침내 도달한 것이 2001년 2월 16일에 시작된 ‘생명평화결사’이다. 이 결사는 “좌우익희생자와 뭇 생명 해원상생을 위한 범종교계 100일 기도”를 드렸고, 이 기도가 끝난 5월 26일에는 지리산 달궁에서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위령제>가 거행되었다. 이 위령제는 “좌우대립으로 희생된 원혼들과 지리산에서 죽어간 뭇 생명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세기의 비전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지역과 종교와 이념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화합을 모색하는 한마당이자, 개발과 파괴로부터 지리산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한 생명살림운동”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1 범종교계에서 전개한 이 ‘영성운동’은 죽은 영혼도 달래주고 지리산도 보존하며 민족의 화합을 도모하는 일종의 종교계의 ‘한살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낭독된 선언문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리산 선언문>

오늘 우리는 생명평화와 민족화해를 염원하면서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 모여 위령제를 올렸습니다. 지리산은 1억 5천만년 전부터 이 땅을 지켜온 우리의 삶 그 자체입니다. 우리 역사 그 자체인 지리산 봉우리 봉우리마다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자취가 남아 있고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마다 역사의 아픔이 배어 있습니다.

지리산은 민족사의 가장 비극적인 현장입니다. 너와 나, 영남과 호남, 세대와 세대, 좌익과 우익, 종교와 종교, 인간과 자연을 가리지 않은 지리산은 그 누구도 외면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그 넉넉한 품안에 모두를 끌어안았습니다. 그처럼 소중한 어머니의 산, 지리산이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리산의 핏줄을 끊고 가슴을 갈라 지리산을 죽이는 것은 끝 모를 인간의 물질적 탐욕입니다. 어리석은 우리는 욕심에 눈 멀고, 편안함에 귀먹어 마침내 삶의 뿌리마저 파헤쳐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리산을 죽이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니,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며, 나아가 후손들을 영원히 죽이는 것입니다. 지리산은 살아야 합니다. 지리산이 더 이상 고통의 땅, 절망의 땅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지리산을 탐욕의 불구덩이로부터 살려내고자 합니다. 지리산을 살리는 것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을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지리산에 서려 있는 역사의 아픔을 달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한을 안은 채 지리산에서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의 원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지리산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며 한많은 세상을 떠난 많은 넋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 넋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맺힌 한을 풀어내 지리산이 품고 있는 역사의 아픔을 치유할 때 비로소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냉전의 찬바람이 물러가고 사랑과 평화의 나무가 자라날 것입니다.

오늘의 위령제는 생명평화와 민족화해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지리산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넋들의 원통함을 풀어줄 때 비로소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며, 나아가 온 누리의 생명과 온 누리의 사람들을 행복하고 평화스럽게 만드는 새 삶의 계기가 마련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위령제를 통해 살아 있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함께 풀릴 것으로 믿으며 위령제를 올렸습니다. 영령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 . 살아있는 우리들은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고, 나라와 겨레의 발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겠습니다.

2001년 5월 26일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위령제 봉행위원회 일동2

이날 공동봉행위원장인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스님은 봉행사에서 “오늘 위령제를 통해 민족에게 화합을, 생명에게는 평화를 움트게 하는 서원을 모아야 하겠으며 지리산 골짜기를 떠나지 못하는 숨져간 넋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맺힌 한들이 풀어지도록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고 정성을 모으도록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3 이에 의하면 ‘생명평화’라는 말은 “억울하게 죽어간 생명들을 위로하여 평화를 주자”는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원혼들의 해원상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령제가 끝나자 <생명평화 민족화해 평화통일 지리산 천일기도>가 이어졌다. 이 기도에는 각 종교계를 비롯하여 김지하 시인, 김영호 교수(경북대) 등도 함께했다. 대표로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이 하루에 4번씩 1000일간 기도를 올리며 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 남과 북, 지역과 지역, 종교와 종교, 이념과 이념 등 한반도의 평화를 가로막아온 벽들을 허물고, 상생과 화해를 기원했다.

이 1000일 기도는 2003년 11월 15일에 회향식을 갖고, 이번에는 다시 ‘생활 속의 평화’를 추구하는 <지리산평화결사>로 이어졌다.4 운동의 대상이 죽은 자들의 영혼에서 산 자들의 생활로 전환된 것이다. 생명평화결사 기획위원장을 맡은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장은 “생명평화결사는 요구나 비판이 아니라 스스로 평화가 되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라며 “자기 수련과 공부를 통해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가슴에는 평화를 담고 즐겁고 신명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생명평화운동”이라고 말했다.5 여기에서는 ‘생명평화’가 지금 살아있는 자들에 대해 쓰이고 있다. 즉 살아있는 이들이 “평화롭고 생명력있는” 삶을 살자는 운동으로 생명평화운동이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운동의 중심에는 항상 도법스님이 있었다. <개벽포럼>의 오프닝을 도법스님으로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2. 생명평화운동과 촛불혁명
 개벽포럼의 취지를 설명하는 조성환 박사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 ‘다시 개벽’을 처음 주창한 동학의 핵심사상은, 해월
지난 3월 21일 목요일 오후, 창덕궁 옆에 위치한 은덕문화원에서 제1회 개벽포럼이 열렸다. 이날 모신 ‘개벽의 일꾼’은 생명평화운동과 화쟁운동의 대명사로 알려진 지리산 실상사의 도법스님. 40여명 가까이 모인 청중들과 1시간 동안 강연을 듣고 1시간 반 동안 대화하였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대화마당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도법스님이 걸어온 생명평화의 발자취가 우리 사회에 평화의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보이지 않는 촉매제 역할을 했음을 모두가 공감하였다.

포럼을 마치고 머릿속에 맴도는 한 마디는 ‘현장’이었다. 그는 철저한 현장주의자였고, 그런 점에서 민중실학자였다. 일본의 국민적 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주인공 아오시마 형사는 “사건은 현장에서 일어난다”는 명대사를 남겼다. 이 말을 빌리면, 도법스님은 이번 포럼을 통해서 “개벽은 현장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최시형의 ‘활인도덕(活人道德)’이라는 말로부터 알 수 있듯이 동학은 살림사상이었다. 그 사상은 1894년에 동학농민군의 「살생하지 말라」는 규율로 이어졌고, 1919년의 <삼일독립선언문>에서는 “폭력의 시대가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온다”는 비폭력평화주의로 재현되었다. 그리고 70년 뒤인 1989년에는 ‘농민과 농토와 밥상 살리기’의 일환으로 한살림운동이 일어났고, 그로부터 10여년 뒤에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생명평화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촛불혁명이 비폭력적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운동의 축적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리라. 멀게는 동학사상과 농민혁명의 유산이 바탕에 깔려 있었고, 가깝게는 2001년 이래 15년 동안 지속되었던 생명평화운동의 내공이 암암리에 작용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촛불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인 2015년 12월에 있었던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사상 유례없는 평화집회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에도 도법스님의 역할이 컸다. 당시 도법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이었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계사에 피신해 와있었다. 도법스님은 이날 포럼에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2015년의 일입니다.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 와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적이 있었죠? 이때 한상균 위원장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2차 민중궐기대회를 성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평화적인 집회가 이루어지도록 하자고 합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종교계를 비롯하여 시민사회, 노동계, 민중계가 모두 결심을 하였습니다. 당시 종편에서는 98% 평화집회는 불가능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불교 내부에서도 걱정을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불교계에서 평화의 꽃길을 만든다고 앞장섰고 여러 종교계에서도 도와주신 덕분에 12월 5일에 실제로 평화집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경찰은 경찰대로 우리 어떻게 해야지? 노동계와 민중계도 우리 어떻게 해야지?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노동계와 민중계는 강력 투쟁하는 것만 대비해 왔기 때문입니다. 경찰도 마찬가지이고요. 현장에서 나온 얘기들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싸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하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 하고는 말로는 별것이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 일이 있고 1년 뒤에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촛불정국이 절정에 달했던 날, 집회를 기획하는 측에서 폭력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토론이 오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행히 비폭력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이때의 평화집회 경험도 한몫 했을 것이다. 1894년에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개벽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1919년의 삼일만세운동도 상대적으로 쉬웠듯이 말이다.

3. 생명평화는 함께 사는 길
 강의중인 도법스님 
도법스님은 생명평화 개념에 도달하게 된 배경에는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함께 사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지난 20세기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편을 갈라서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된 이유가 뭘까? 그것은 반드시 함께해야 할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반드시 함께 해야 할 것, 그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물었을 때 우리가 도달한 결론이 ‘생명’이었습니다. 누구나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는 결국 내 생명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한 목숨 지키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가치는 누구도 자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함께 하겠다면 누구든지 같이 하자,’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다음에 던진 물음은 그렇다면 ‘그 생명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였습니다. 당연히 평화롭게 살고 싶겠죠. 평화가 없는 생명은 정상적인 생명이라 할 수 없고, 생명이 없는 평화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생명과 평화를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명평화’라는 말을 쓰게 된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사실은 “2001년 당시만 해도 생명평화라는 말을 벌벌 떨면서 썼다”는 고백이었다. 실제로 김지하 시인은 90년대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하여 민주세력으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투쟁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되던 시기에 생명평화라는 기치는 회색분자로 보이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들은 누구나 생명평화라는 말을 쓰고 있고, 그것을 당연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개벽’이라는 말을 종교의 틀을 벗어나서 학문적으로, 그리고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쓰고자 하는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개벽’이라고 하면 여전히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두려워해서는 아무런 운동도 시작할 수 없다. 도법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생명평화’라는 말을 누구나 거부감 없이 쓰고 있듯이, ‘개벽’이라는 말도 20여년쯤 운동이 쌓이게 되면 국민적 상식이 되지 않을까? 마치 일제강점기에 조선학운동에서 시작된 ‘실학’이라는 말을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주석
1  <녹색연합> 홈페이지. http://www.greenkorea.org/?p=18052
2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위령제 ‘성료’ : 달궁서 좌우익 초월...7대 종단, 2백여개 단체, 5천명 참석>, <<불교신문>>, 2002.02.15.
3 위와 같음.
4 <지리산 1000일 ‘평화기도’ 마쳤다: “간절한…기도는…결국 세상을 바꾸리라”>, <<한겨레신문>>, 2003.11.12.  
5 <자기로부터의 혁명 “시~작! ” : 지리산생명평화결사 출범 … 남 비판보다 스스로 실천 중시>, <<한겨레신문>>, 2003.11.18. 

2020-06-28

황대권 김종철 선생님을 보내며

Facebook


황대권 12 hrs · 김종철 선생님을 보내며

어제 오늘 선생님 가시는 길에 함께 했다.
영광 산속에서 처음 비보를 들었을 땐 너무도 놀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막상 장례식장에 오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수많은 동지와 지인들이 장내를 채워서일까. 선생님께서 최선을 다해 살고는 “난 여기까지야” 하고는 마음 편히 저 세상으로 가신 것 같았다. 

사실상 김종철 선생님은 남한 땅의 거의 유일한 생태사상가였다. 국민 사이에 그리고 정치권에 생태주의의 중요성을 받아들이게 한 강력한 인플루언서였다. 처음엔 생경했지만 지금은 친숙해진 말인 기본소득, 지역화폐 등이 대표적이다.
내가 감옥에서 야생초를 통해 생태적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녹색평론이 없었다면 내가 몸으로 체득한 그 감성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황대권의 이름 앞에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야생초 편지> 역시 김종철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샘은 감옥에서 갓 나온 나를 시민 사회에 데뷔시켜준 은인이기도 하다. 2001년 11월 <녹색평론 10주년 기념 강연회>에 생태사회계에 완전 무명인 황대권을 메인 강사로 초청한 것이다. 파격이었다. 중요한 강연회이니만큼 편집진에서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김지하 시인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허나 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를 지목했다고 한다. 무슨 근거로? 나는 출소 직후 앰네스티 초청으로 2년 동안 유럽에 있다가 강연회 직전에 귀국했다. 샘이 나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라곤 내가 영국에 있을 적에 녹색평론에 기고한 글 두 편이 전부였다. 아마도 그 글을 보시고 뭔가 들어볼만한 것이 있을 거라고 자신만의 직감을 믿은 것 같다.

강연회장에는 한국에서 생태운동과 관련해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다 모여 있었다. 무명의 인사가 너무도 귀중한 자리에서 첫 인사를 올리게 된 셈이다. 강연 말미에 잡초와 함께 하는 농사 얘기를 하면서 감옥에서 보낸 편지 구절 일부를 인용하였다. 이것을 보고 어느 귀 밝은 출판인이 내게 접근하여 책을 만들자고 제안하여 <야생초 편지>가 탄생하였다. 이후로 샘은 나를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 명단에 끼워주시어 지금까지 함께 해왔다.

샘과 함께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녹색평론사에서 출간한 <오래된 미래>의 판권과 관련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와의 분쟁이었다. 양쪽의 얘기를 들어보면 각자의 입장이 이해되지만 헬레나 여사가 신의를 저버린 것만은 분명했다. 샘은 싫어하시는 것에 대해 적대감 표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내 앞에서 육두문자를 써 가며 분을 삭이지 못하셨다. 그런데 그 얼마 후 헬레나 여사가 나를 자신이 주도하는 국제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초청한 것이었다. 샘과의 관계도 있고 해서 잠시 고민했지만 장소가 내가 꼭 가고 싶었던 호주의 ‘크리스탈 워터스 공동체’ 근처에 있는 Byron Bay였다. 크리스탈 워터스 공동체가 아니었다면 나는 일정을 핑계로 거부했을 것이다. 영어도 신통치 않은 사람이 공연히 국제 강연회까지 쫒아가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샘에게 말도 않고 열흘 전에 출국하여 크리스탈 공동체와 강연회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돌아왔다. 다녀와서도 괜히 화만 돋울 것 같아 그냥 호주에 다녀왔다고 얘기하고 말았다. 사실 <오래된 미래>는 오랫동안 녹색평론사의 자금원 역할을 했기 때문에 판권을 잃은 것은 크나 큰 타격이었다. 어찌 되었건, 샘 이제 하늘나라에 가셔서는 헬레나 여사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다 자기 나름대로 생태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 정도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샘의 유골함은 명진 스님의 소개로 삼각산 금선사에 안장되었다. 거기에는 사회운동을 하시던 분들과 장기수 어르신들이 함께 안장되어 있고 자택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안성마춤의 장소가 아닌가 싶다. 주지 스님도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하신 분이라 샘을 모시는 것을 영광이라고 말씀하신다. 금선사에서 마지막 의식을 치르고 경내를 둘러보니 샘께서도 맘에 들어 하실 것 같다. 아래에 사진을 첨부했는데 영정 사진이 놓인 탱화가 보기 드문 걸작이었다. 주지스님의 지휘로 만들어졌다는데 탱화 속에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이 다 들어 있다. 주지스님은 탱화가 몇 십 년 후에는 문화재가 될 거라고 농을 하신다.
샘, 사랑합니다.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샘께서 남겨놓은 과제들은 전국의 녹색평론 독자들과 편집위원들, 그리고 수많은 녹색동지들에게 맡겨두십시오. 생태평화를 앞당기기 위해 남은 힘을 다하겠습니다.

552You, 회리, 강길모 and 549 others

25 comments

현영애

저도 어제 다녀왔어요...혼자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는데 사람들과 함께 조문하며 말씀 나누니 기운이 좀 나더라구요...장례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생명평화 마을로 선생님 뵈러 가고 싶습니다


원혜덕

감사합니다.
크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경미

잘 읽었습니다!
이생에서 열심히 사신 만큼 편히 쉬실 거예요 ㅠ


김영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종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Tai Kim

_(())_


이복자

감사합니다. 두 손 모읍니다


이상옥

삼가 김종철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민가령

고맙습니다.
선생님 글에 위로를 받습니다.

손장희

훌륭한 어르신이시니 더 좋은곳으로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김혜정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양시영

함께 합니다...!


윤차차로

남은 사람의 빚진 마음을 이끌어 뒤를 잇고, 완성하라는
기회와 위로 감사합니다.


이태옥

편안하시길...


김혜원

장례식장에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한채 울고 있었는데...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기석

위로의 글 감사합니다.

한웅

고인의명복을빕니다


백승종

감사합니다, 황 선생님!

조성대

<오래된 미래> 판권을 다시 녹평사로 찾아올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선생님이 안계시는 녹평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젠 남은 이들이 그 유산을 잘 지켜나갈 방법을 찾고 다방면에서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허인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소중한 인연과 이별이군요~

윤경빈

생태운동 대중화에 헌신해온 김종철 선생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_()_​


Sandeul Ayoung Chu

김종철 선생님이 본향에서 안식을 취하시길 바라며, 남기신 뜻을 새기고 따르겠습니다 두 분의 일화를 통해 두 분 선생님을 더 가깝게 느낍니다. 모신 곳, 사람, 탱화 모두 참 귀하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

Hun Jung Cho
1 hr ·



몸으로 뵌 적이 없는 분. 멀리서 존경과 흠모하던 분. 난 그럴만한 인연이 없어 글 쓰기를 할 수가 없어 이 글을 공유함으로 하늘 가시는 길 지려 밟히는 한송이 진달래꽃 대신합니다









최종수
11 hrs ·

이제 누구의 삶의 품에 안겨 행복할 수 있을까.
황망한 길을 떠나신 김종철 선생님 발인식 전날 밤, 군산에서 5시간 넘게 새만금살리기해수유통 운동하는 형님차로 올라가 조문을 했다. 사모님과 마주하게 되었다.
“제가 최종수 신부입니다.”
“그동안 선생님에게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처음 뵙습니다.”
그 인사말과 동시에 사모님 눈가에도 내 눈에도 붉은 이슬이 고였다. 서로 두 손을 맞잡고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주고받았다. 다른 문상객들이 있어, 선생님을 위해 백일 동안 미사를 드리겠다는 말씀드리고 대화를 마쳤다. 오랜만에 뵙는 분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새만금해수유통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형님이 막둥이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자급자족 생태공동체를 지향했기에 가능한 품목은 농사를 지었다. 진안고원은 추위가 빨리 와서 11월 20일 경이면 김장을 했다. 몇 년 동안 김장을 해서 맛보시라고 보내드렸다. 자급자족 효도 품목인 블루베리도 수확을 하면 첫 번째로 선생님께 보내드렸다. 야콘, 인디언 감자, 고구마 등 수확하는 농산물을 보내드렸다. 그렇게 무언가 보내드리고 안부전화를 드렸다. 그럴 때마다 “자급자족 공동체 한다면서 다 퍼주면 어찌합니까.”라며 걱정을 하셨다. 아버지의 아들 사랑이었다. 서울에 가면 종종 찻집에서 만났다. 나는 그동안 어찌 살았는지 말씀드리고 아버지는 요즘 관심사에 대해 말씀하셨다. 전화를 드리거나 둘이 만나면 아버지였고 여럿이 만나면 종종 선생님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최근 들어 강우일 주교님께 나의 책이라는 원고청탁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주교님이 그런 어려운 원고청탁을 들어주실지 의문이라며, 한 번 알아보겠다고 통화를 마쳤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숙제를 하지 못해 안부전화도 드리지 못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 첫 부탁이었다. 그 부탁을 알아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큰 불효를 저지른 것인가. 왜 내가 그런 게으름을 피웠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다시 만나는 천국에서, “아버지가 주신 그 숙제를 못해 죄송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하며 응석을 부려야 겠다. 

잠자리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스승, 생태운동가이며 평화운동가이자 대안사회를 실현하려고 고군분투하시는, 아버지의 그 너른 품에 내가 함께 있었다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런 훌륭한 분을 개인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이제 내 영혼의 보물창고가 되었다. 아버지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발인식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문상객이 온 분도 처음이고 발인식에 이렇게 많은 분이 오신 것도 처음이라며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의 삶을 흠모했던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담이었다. 발인식이 시작되자, 딸이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앞자리에 섰다. 영정 속에 웃고 계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두 눈에 이슬이 맺혔다. 20년 넘게 존경하고 사랑하고 흠모했던 아버지, 이제 그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슬픔이 내 영혼의 강물로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관을 운구차에 모시고 유족들이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한다. 주일 준비를 하러 가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가을 쯤 찾아뵙겠다고 사모님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운구차가 떠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있는 사람들. 소중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의 아름다운 연대다.
등짝으로 송골송골 땀방울 흘리며 신촌역으로 왔다. 군산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사제관으로 돌아와 손을 씻으려고 화장실에 갔다. 수도꼭지를 뜨는 순간 물소리와 함께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발인식 때 참았던 눈물보가 터진 것일까. 눈물보다 큰 슬픔을 입으로 쏟아내며 엉엉 흐느끼며 울었다. 한참을 넋을 잃고 울었다.
생태마을을 시작할 수 있는 싹을 심어준 예수회 정일우 신부님도 돌아가시고, 친아버지처럼 달포 만에 진안에 찾아오셔서 몸보신 음식을 사주신 김봉희 신부님도 천국으로 돌아가셨다. 사상적 뿌리이자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신 김종철 아버님도 하늘로 돌아가셨다. 이제 누구의 삶의 품에 안겨 행복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하소연하고 누구에게 길을 묻고 지혜를 구할 수 있을까. 사무치게 그리운 아버지.



2020-06-24

알라딘: 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

알라딘: 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

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 | 종교와 공공성 총서 2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엮은이)모시는사람들2019-06-15










































미리보기 전자책으로 미리 읽기


정가
18,000원
판매가
17,100원 (5%, 900원 할인)

마일리지
900원(5%) + 멤버십(3~1%)
+ 5만원이상 구매시 2,000원
세액절감액
770원 (도서구입비 소득공제 대상 및 조건 충족 시)


전자책
12,600원

배송료
신간도서 단 1권도 무료
수령예상일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6월 25일 출고
최근 1주 97.8%
(중구 중림동 기준) 지역변경

Sales Point : 60

0.0100자평(0)리뷰(0)
이 책 어때요?


카드/간편결제 할인
무이자 할부








수량










장바구니 담기
바로구매
선물하기
보관함 +



중고 등록알림 신청
중고로 팔기














기본정보

400쪽
152*225mm
760g
ISBN : 9791188765362

주제 분류
신간알림 신청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세계의 종교 > 원불교
국내도서 > 추천도서 > 외부/전문기관 추천도서 > 세종도서 학술 선정도서 > 2019년


시리즈
종교와 공공성 총서 (총 3권 모두보기)

신간알림 신청
전체선택
보관함 담기
장바구니 담기




근대한국 개벽운동을 다시읽다
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
근대한국 개벽종교를 공공하다



이벤트


6월 특별 선물! 오로라 유리컵.본투리드 머들러(이벤트 도서 포함, 국내서.외서 5만원 이상)


이 시간, 알라딘 굿즈 총집합!





책소개
동학과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근대한국의 개벽종교가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서구문명과 근대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사상, 종교, 정치사회, 문화, 교육의 전 부문에서 개벽운동을 추동해 간 흐름을 따라 그 근간으로서 개벽사상을 재조명하는 연구 성과를 집성한 책이다.


목차


제1부 개벽사상을 되살리다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토착적 근대 / 허남진
Ⅰ. 머리말 Ⅱ. 서구 중심적 근대와 토착적 근대
Ⅲ. 토착적 근대종교로서 한국 개벽종교 Ⅳ. 맺음말

탈식민적 관점에서 본 동학의 현대적 의미 / 박치완
Ⅰ. 머리말: 제3세계권에서 학문하기의 ‘슬픔’ II. 로컬문화에 대한 자기 인식과 아프리카의 철학적 독립선언이 주는 교훈
III. 다일상보성에 기초해서 본 동학의 세계철학적 가치와 함의 IV. 맺음말: 오늘, 우리의 연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공공성과 시대정신 / 류성민
Ⅰ. 머리말 Ⅱ.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등장과 공공성
Ⅲ.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공공성과 시대정신 Ⅳ. 맺음말

종교없음 시대의 종교성과 동학 시천주 개념의 내재적 초월성 / 염승준
Ⅰ. 머리말 Ⅱ. 종교와 종교성, 종교의 세속화
Ⅲ. 시천주 개념의 내재적 초월성 Ⅳ. 맺음말

마음혁명을 통한 독립국가 완성과 국민 만들기 / 김석근
Ⅰ. 머리말: 시각과 방법 Ⅱ. 예비적 검토: 텍스트, 사상적 배경, 자리매김
Ⅲ. 정산의 『건국론』독해: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철학적 모색 Ⅳ. 치교병진(治敎竝進)과 정교동심(政敎同心): 정치와 종교
Ⅴ. 맺음말: 건국과 마음혁명

동학의 생명사상과 원주의 생명학파 / 조성환
I. 머리말 II. 윤노빈의 생존철학
III. 김지하의 개벽사상 IV. 장일순의 생명운동
V. 맺음말


제2부 개벽사상을 공공하다
근대한국 공공성의 전개와 연대 / 야규 마코토
Ⅰ. 머리말 Ⅱ. 동학의 공공성 전개
Ⅲ. 의암의 ‘공공하는 종교운동’ Ⅳ. 맺음말

비서구적 근대의 길로서의 동학과 원불교의 공동체운동 / 박맹수
Ⅰ. 머리말 Ⅱ. 근대한국 개벽종교와 ‘비서구적 근대’
Ⅲ. 동학이 추구한 ‘비서구적 근대’ Ⅳ. 원불교가 보여준 ‘비서구적 근대’
Ⅴ. 맺음말

전남 영광 지역의 종교 지형과 민족사회·경제운동 / 김민영
Ⅰ. 머리말 Ⅱ. 1910년대 전남 영광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
Ⅲ. 1910년대 전남 영광 지역의 종교 지형 Ⅳ. 영광 지역의 민족사회·경제운동과 종교의 공공성
Ⅴ. 맺음말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민족자결주의 수용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 김봉곤
Ⅰ. 머리말 Ⅱ. 일제강점기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정교분리
Ⅲ.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민족자결주의 수용과 정치 참여 Ⅳ.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역할
Ⅴ. 맺음말

근대 개혁불교의 사회적 공공성 / 원영상
Ⅰ. 머리말 Ⅱ. 귀환전재동포구호사업의 역사
Ⅲ. 귀환전재동포구호사업과 현실정토론 Ⅳ. 원불교의 공공성 이념과 사회적 실천
Ⅴ. 맺음말

동학과 한살림: 생명공공성의 차원변화 / 주요섭
Ⅰ. 머리말: 생명의 지평 Ⅱ. 동학: 생존의 생명공공성
Ⅲ. 한살림: 생활의 생명공공성 Ⅳ. 다시개벽과 생명공공성의 차원변화
Ⅴ. 맺음말: 제로하우스
접기


책속에서



P. 40 한국 개벽종교는 개화와는 또 다른 ‘근대’를 주장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서구적 근대가 아닌 전통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다른 근대의 길이다. 지식층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근대’를 지향하고 유교적 전통을 고수하는 척사파, 서구적 근대화를 지향한 개화파와 다르게 한국 개벽종교가 지향한 근대는 아래로부터 즉 민중이 개벽의 주체가 되어 개척하는 토착적 근대화의 모색이었다. 이들은 척사파와 개화파와 다른 제3의 길을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비서구적 근대화 운동인 ‘토착적 근대화’의 한 선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초기 동학과 다르게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후기 동학인 천도교와 같이, 문명개화를 중심으로 한 서구 근대문명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접기
P. 67 동학의 대상이 조선 민중이었던 것처럼, 한국철학은 당연 한국, 한국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폭을 넓히고 깊이를 심화해 가야 한다. 이는 ‘사실’의 표현이자 동시에 ‘당위’의 요청이다. 이제 더는 ‘보편’이라는 서구의 유령과 씨름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동학 고유의 정신과 비전을 몸에 익혀 새로운 한국철학의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다. 아프리카철학자들이 그랬듯, 오늘 우리에게도 탈서구, 탈자본, 탈식민은 “보편적인 것의 야만”에 대한 정당방위라는 것을 되새길 때다. 조선의 동학은 21세기 한국철학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배아를 이미 품고 있다. 한국철학은 우선 먼저 한국인의 학(學)이며, 한반도학이다. 각자성, 독립성, 자주성 없이는 세계철학에 다가설 수 없다. 접기
P. 89-90 근대에 등장한 개벽종교들은 봉건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을 하면서 미래의 이상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 비판과 미래지향은 종교적 신념으로 승화되면서 공공성을 지닌 종교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이러한 개벽종교들의 공공성은 구체적으로 개인에서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세계(자연과 우주)로 지향되고, 나에서 남으로 지향되었으며, 당대의 우리 사회와 민족이라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모든 인류와 자연이 공생공영으로 가는 길을 지향했다. (중략) 개벽종교들의 이러한 공공성은 봉건사회의 억압과 일제의 탄압에도 우리의 민족종교로 수용되었고, 동학농민혁명과 항일 투쟁, 사회개혁운동, 각 종 복지사업 등을 지속하게 한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개벽종교들은 창교 당시의 공공성을 오늘날에도 종교적 신념과 그 실천으로 계승하고 있다. 천도교, 대종교, 증산교, 원불교는 하나의 종교나 여러 종단으로 오늘날까지 한국의 개벽종교이자 민족종교로 존립하고 있다. 접기
P. 142 정산(송규, 원불교 2대 종사) 은 ‘마음혁명’을 말한다. “외부의 혁명을 하기 전에 먼저 마음혁명을 하게 하는 것이요”, 그리고 동포들에게 말한다. “동포 여러분! 이때를 당하여 우리 최대 급무는 각자의 마음을 반성하여 항시 그 개선에 전력할 것이요 각 지도급에서는 민중에 대하여 매양 바른 지도를 잘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 … 나는 생각하기를 주의의 선불선(善不善)이 그 근본은 마음의 선불선에 있다고 생각하며….” 요컨대 각자의 마음을 반성하여 항시 그 개선에 전력하는 ‘마음혁명’을 하라는 것이다. ‘마음혁명’을 통한 ‘독립국가’ 완성과 ‘국민’ 만들기, 이것이야말로 정산이 종교인으로서 제시한 ‘건국론’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한다. 접기
P. 156 윤노빈과 김지하와 장일순의 사상적 특징 (...) 세 사람은 모두 동학을 생명사상으로 해석하고, 생명현상의 특징을 ‘전일성’으로 파악하여 각각 ‘생존철학’, ‘개벽사상’, ‘생명운동’을 전개하였다. 나아가서 그것으로 근대가 초래한 문제들, 가령 민족 분단(윤노빈), 민중 억압(김지하), 천인분리(인간과 자연의 분단. 장일순)와 같은 생명 단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추구하고자 한 생명의 전일성은 새로운 근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사상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 서구 근대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토착적 근대성’이다. (...)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한국 사상으로서의 개벽학을 정립하는 데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원주의 생명학파의 미래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접기
P. 181 의암(손병희, 천도교 교주) 에게 ‘국가’는 인민·민족의 행복을 위해 편의상 존재해야 할 것으로, 그것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불필요한 것이다. 그가 한일합방에 중립적 태도를 취한 것도, 또 그런 그가 3.1독립운동에서는 중심적 역할을 맡았던 것도 결국 대한제국도 대일본제국도 ‘인민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마음속에 그렸던 비전은 고도의 자치권을 가진 각국이 한 명의 ‘지식이 높은 자’에게 통괄되는 국가연합체 혹은 연방제 같은 것으로, 당분간은 한국·일본·중국 등의 동양 각국이 한 무리가 되어서 서양세력의 침략과 맞서고 장차 세계 전체가 그러한 형태로 통합되어서 침략 그 자체를 없앤다는 것이었다. 접기
P. 215 근대한국에서 자생한 동학과 원불교는 ‘천지공심’의 실현을 지향하였다. 서세동점으로 일컬어지던 ‘서구적 근대’가 초래한 병폐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동학과 그 동학의 새로운 전개인 원불교는 사람을 포함한 만물을 가장 거룩한 존재로 모시는 ‘천지공심’의 실현을 지향했던 것이다. 이것은 곧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우리나라 나름의 독자적인 근대의 길을 모색하려는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특징이기도 했다. 접기
P. 271-272 근대한국 개벽종교의 공공성은 국권이 피탈되어 종교적 자유마저 제약되는 식민지적 토양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났다. 1900년대 들어서며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근대한국 개벽종교에서는 정치적 활동 때문에 종교가 친일화되거나 탄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교분리를 선언하였다. 천도교는 일진회의 친일 행위를 막기 위해서 정교분리를 선언하여 광제창생의 종교적 가치를 되찾으려고 했고, 대종교에서는 정치적 활동을 포기하고 대종교를 통한 민족혼을 보존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접기
P. 296 최근 원불교는 미국의 전략무기인 사드(THAAD)가 반입된 경상북도 성주군 소성리에서 사드 철폐 운동을 벌이고 있다.61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원불교 재가·출가 구성원들은 인권, 행복추구권, 평화권 등 국민의 기본권에 제약을 느끼는, 성주와 김천의 지역민들의 아픔에 공감하여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더보기
P. 324 제로하우스, 무지의 지에서 시작한다. 사회적 깨달음 운동이다. 대각은 아니어도 좋다. 모른다는 것만 알면 된다. 삶과 생명의 무한한 복잡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면 된다. 큰 깨달음이 있으면 더욱 좋고. 그러고는 무궁한 가능성의 자유로운 선택. 사는 법(know-how)을 나누는 삶의 플랫폼이 된다. 그리고 가끔은 투표로 표현하고, 또 언젠가는 정치사회적 대변혁의 순간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을 그만 둘 수 있다는 희망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무엇보다 제로하우스는 금기를 허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상상력의 장이다. 혼밥, 혼술하는 탁월한 개인주의자들의 상상력 놀이터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사람,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 공동체의 틀과 결사체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역설적으로 공동체도 해 보고 결사도 해 보고 네트워크도 해 보는….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엮은이)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신간알림 신청

원불교 사상을 바르고 넓고 깊게 연구함으로써 원불교와 인류 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74년 7월 4일 설립되었다. 또한 단순히 사상에 대한 연구보다 좀 더 심층적이며 구체적인 원불교학 수립과 사관 수립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작 : <근대한국 개벽운동을 다시읽다>,<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구국과 개벽의 길을 찾다, 선산 변중선> … 총 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150년 동안 득세해 온, 서구적 근대문명의 종언
개벽파, 개벽사상에서 그 대안을 다시 발견한다

1. 서구 근대문명 시대의 종언

산업혁명과 지리상의 발견으로 촉발된 서구 근대문명의 폭발적 성장과 세계적인 확산은 19세기와 20세기를 경과하면서, ‘서구 근대문명’이 주도하는 지구촌 세계를 구축하였다. 민주주의와 인권,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르는 물질적 풍요와 질병의 퇴치 등은 서구 근대문명 시대에 인간이 누리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자연자원의 고갈과 기후위기,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국지분쟁과 테러의 빈발로 드러나는 근대 세계 구조의 모순 등은 근대문명의 풍요로움이 숱한 식민(국가, 개인, 자연 등을 망라한)의 피와 눈물 위에 자라는 ‘팜므파탈적인’ 것임을 웅변해 준다. 더욱이 근대문명은 인간 개개인의 정신 상태에도 깊숙이 영향을 끼쳐, 혐오표출과 자기연민의 양극단 사이를 오가며 정신적 황폐화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의 등장이나 사물인터넷, 생명공학의 발전 등은 인간의 정체성에까지 심각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구 근대문명이나 그 결과로서의 현재 세계는 인간이 걸어가야 하는 길의 최선의 모습인가? 모두가 그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가는 것이, 필연이며 당위인가? 지난 150여 년의 역사에서 한국사회는 그 전반부에 ‘서구적 근대화’ 물결의 흐름에 성공적으로 편승하지 못하여 그 희생자로 전락하였으나, 후반부에서는 거의 기적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의 양 날개를 달고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전무후무한 나라고 거론된다. 그러나 세계 차원의 ‘서구 근대문명’ 수립이 그러했듯이 한국사회의 (서구적) 근대화 역시 이룬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은 깊이의 희생의 결과일 뿐이다.

2. 개화파와 척사파 사이-너머, 개벽파의 길

‘실현된 근대한국’의 이면에는 ‘실현되지 않은’ 그러나 ‘주체적이고, 토착적이고, 영성적이고, 비서구적이며, 전통계승적인’ 제3의 길이 있었다. 이들은 한말 개화기에 서구적 근대를 지향한 개화파와도 다르고, 유교적 전통을 근본적으로 고수하려는 척사파와도 다른 “개벽파(開闢派)”로서의 일련의 사상과 운동을 형성하였다.
개벽파의 시원이 되는 동학은 1860년에 창도된 이래 다시개벽으로서의 후천개벽을 주창하였고, 천도교로 개신한 이후에는 이를 ‘영성개벽, 제도개벽, 문명개벽’ 또는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의 삼대개벽론으로 계승하고 승화 발전시켰다. 동학-천도교는 서구 세력 또는 그 주구로서의 일제나 분단 체제에 끊임없이 좌절을 겪었지만, 한국근대의 주체적인 주역으로서, 최근의 ‘촛불혁명’의 연원이 되었다.
그 흐름과 궤를 같이하면서 증산의 ‘삼계개벽’, 원불교의 ‘정신개벽’, 대종교의 개천개벽이 개벽파 흐름을 살찌우고 깊이와 넓이를 심화 확장해 왔다. 이들 개벽은 한결같이 “‘민중’이 중심이 되어 자기 안의 신성(神性)을 자각하고 수양하고 구현함으로써 이 세계에 새로운 문명세계를 열어 나가자”는 의식을 공명?공유?공공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였다.

3. 개벽파, 오래된 미래로 가는 새 길

서구 근대와는 다른 방식과 철학적 기반 위에서 인간의 평등성을 주체적으로 설파하였고 제국주의의 확산(침략)에 편승한 일본과 달리 이를 극복하는 독립운동, 공동체운동, 문화운동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사상적, 문화적 자원들을 계발하고 비축하였다.
근대한국의 개벽종교는 ‘종교(서구 근대문명적 개념)’적 실천일 뿐만 아니라 수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국 전통사상의 창조적인 계승이었으며,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자생적 근대화운동이었으며, 이상의 현실화를 위한 자기희생과 헌신이었다.
동학의 보국안민 운동과 유무상자(有無相資;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도움), 증산의 해원상생, 대종교의 성통공완과 원불교의 정신개벽 등 개벽파의 사상과 실천들은 오늘의 세계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세계로서의 ‘개벽세계’로 나아가는 길로서, 현재와 미래에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다.
개벽파, 개벽종교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그 이름과 모습을 드러내지만, 전에 없던 것이 새롭게 생겨난 것은 아니다. 짧게 보아도 지난 150여 년의 한국근대 역사 속에서 좌절당하고 되풀이하여 무너지면서도 끝끝내 그 생명력을 이어 왔으며, 거대한 서세동점의, 서구적 근대화의, 물질문명의 득세 속에서 이제 점점 그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 근저에는 개벽파, 개벽종교를 한데 묶어 세우는 것으로서 개벽사상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무엇보다, 개벽파, 개벽종교, 개벽사상은 과거의 영광이나 한때의 추억, 이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한국사회는 물론 이 세계가 만인 대 만인, 만물 대 만물의 투쟁 상태를 넘어 서로(만인, 만물)를 한울님처럼 모시고, 살리는 개벽 시대에 적확한 사상, 종교, 철학으로서 예정된 것이라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원불교사상연구원의 “종교와 공공성 총서” 제2권에 해당하는 <근대한국 개벽사상을 실천하다>는 우리나라는 물론 그리고 인류사회가 지금 직면한 과제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담고 있다.


저자 소개

허 남 진|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박 치 완|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류 성 민|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 인문대학장
염 승 준|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소장
김 석 근|아산정책연구원 한국학연구센터장
조 성 환|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야규 마코토(柳生眞)|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박 맹 수|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장, 원광대학교 총장
김 민 영|군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 봉 곤|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연구교수
원 영 상|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사무국장,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회장
주 요 섭|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