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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0

유교적 군자와 야만인 사절: 한국의 개항 1875-1885 by Martina Deuchler

ChatGPT -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Opening of Korea, 1875-85 by Martina Deuch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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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교수의 초기 명저 
  • <Confucian 1875–1885 Barbarian Envoys: Gentlemen Korea, Opening and of> 
  • (국역명: <유교적 군자와 야만인 사절: 한국의 개항 1875-1885>)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1. 서론: 전통적 조공 질서와 서구적 국제법의 충돌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1977년 저작 <유교적 군자와 야만인 사절>은 1875년 운요호 사건부터 1885년 거문도 사건 및 한성조약에 이르기까지, 조선이 은둔의 왕국에서 벗어나 세계 자본주의 체제 및 근대적 외교 질서로 편입되는 가파른 10년을 다룬 고전적 연구다.

도이힐러는 이 시기를 단순한 <외세의 침략과 조선의 수동적 동요>라는 단순 프레임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유교적 조공 체제(Tributary System)와 서구의 근대 국제법 체제(Westphalian System)가 정면으로 충돌할 때, 조선의 위정자와 지배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전통적 세계관과 제도적 틀 안에서 이 미증유의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했는지를 입체적으로 추적한다.

2. 요약: 개항 10년의 구조적 변용 (1875–1885)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1876): 유교적 명분과 근대적 조약의 균열

1875년 일본의 운요호 사건 이후 체결된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은 조선이 맺은 최초의 근대적 불평등 조약이었다. 도이힐러는 이 과정에서 조선 조정이 보여준 논리를 정밀히 분석한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일본을 근대화된 국가라기보다는 여전히 유교적 조공 질서 내의 <교린(交隣) 대상>으로 인식하려 애썼다. 강화도 조약 제1조에 명시된 <조선은 자주독립국>이라는 구절에 대해, 일본은 청나라와의 조공 관계를 단절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던 반면, 조선 조정은 전통적 조공 관계와 근대적 자주권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이해했다.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는 향후 외교적 혼란의 씨앗이 되었다.

청국의 개입과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조공 체제의 근대적 변용

조선이 서구 열강 중 최초로 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청나라의 이홍장(李鴻章)이었다. 청국은 러시아와 일본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에 <이이체이(以夷制夷)> 전략을 강요했다.

도이힐러는 청국이 조선을 서구 열강과 조약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종주국으로서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던 패러독스를 지적한다. 청국은 조선이 서구 국가들과 맺은 조약 부유문서에 <조선은 청국의 속국>임을 명시하려 시도하는 등, 전통적 조공 관계를 서구적 Imperialism(제국主义)의 틀을 빌려 재해석하고 고착화하려 했다.

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 개화파의 분열과 유교적 보수성의 벽

1880년대 초 조선 내부에서는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도이힐러는 개화파 내부의 균열에 주목한다.

  • 온건개화파(동도서기론): 유교적 질서와 도덕(東道)을 유지한 채 서구의 기술과 무기(西器)만을 수용하려 했다.

  • 급진개화파(갑신정변 주역):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삼아 유교적 지배 구조와 청국과의 조공 관계를 뿌리부터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갑신정변의 실패는 급진개화파가 조선 사회의 깊은 유교적 전통과 사대부층의 보수적 기반을 경시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1885년 톈진 조약과 거문도 사건에 이르러 조선은 청·일 양국의 강대국 정치의 담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3. 평론: 외교사와 사상사의 결합, 그리고 그 의의

성과: 전통의 관성(Inertia)을 통해 읽어낸 외교사

이 책의 가장 큰 학술적 공헌은 조선의 개항을 외부의 충격에 의한 일방적 수동성으로 다루지 않고, 조선 지배층의 사상적·제도적 맥락(유교적 정치문화)에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까지 서구의 동아시아 외교사 연구는 주로 청국이나 일본, 혹은 서구 열강의 기록에 의존한 Imperial History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도이힐러는 <승정원일기>, <고종실록>, 문집 등 조선 측 1차 사료를 대량으로 구사하여, 조선의 위정자들이 결코 무지하거나 무기력하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자원이었던 성리학적 명분론과 조공 외교의 관례를 동원하여 근대 서구 질서라는 폭풍을 막아내려 했던 <유교적 군자(Confucian Gentlemen)>들이었다.

비판적 논점 및 제한점

첫째, 지배 엘리트 중심의 정치외교사에 편중되어 있다. 책의 제목처럼 연구의 초점이 조정의 관료, 학자, 그리고 외국 사절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개항이 농민과 상인 등 기층 민중의 삶과 경제 구조에 미친 심대한 영향이나, 1890년대 동학농민혁명으로 폭발하게 되는 아래로부터의 역동성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둘째, 유교적 전통의 구조적 중력에 대한 과도한 강조다. 도이힐러는 조선이 근대화와 외교적 자율성 확보에 실패한 주요 원인으로 사대부들의 유교적 세계관이 가진 강고한 보수성을 꼽는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잘 반영하지만, 동시에 내부의 자발적 개혁 시도나 변용 가능성을 다소 저평가하고 조선을 <변화 불가능한 유교적 틀에 갇힌 국가>로 고착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4. 결론: 유교적 세계관의 비극적 종말

<유교적 군자와 야만인 사절>은 마르티나 도이힐러가 훗날 <한국 사회의 유교적 전환>(1992)이라는 사회사적 대작으로 나아가기 전, 19세기 말 조선의 정치·외교적 파국을 정밀하게 해부한 명저다.

이 책은 전통적 세계관을 고수하려 했던 조선의 <유교적 군자들>이 어떻게 근대적 힘의 논리로 무장한 <야만인 사절들>과의 외교전에서 몰락해 갔는가를 보여주는 비극의 기록이다. 오늘날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사이에 놓인 한국의 외교적 현실을 되돌아볼 때, 도이힐러가 제시한 150년 전의 충돌과 기획의 실패는 여전히 생생하고 서늘한 역사적 교훈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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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의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The Opening of Korea, 1875–1885>는 1977년에 출간된 책으로, 훗날의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보다 15년 앞선 연구입니다. 19세기 말 조선의 개항을 다루지만, 단순한 외교사가 아니라 <성리학적 세계질서가 새로운 국제질서와 충돌하는 과정>을 분석한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초판은 워싱턴대학교 출판부와 주한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가 함께 냈고 310쪽 분량입니다.

1. 책의 핵심 문제

도이힐러가 다루는 시기는 1875년부터 1885년까지입니다.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 시작해
1876년 강화도조약,
1880년대 조선의 대외개방,
미국 등 서양 국가와의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을 거쳐가는 약 10년입니다.

일반적인 개항사라면 질문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켰는가?>

그런데 도이힐러의 질문은 조금 다릅니다.

<조선의 지배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던 세계와 전혀 다른 국제질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여기에 제목의 의미가 있습니다.

<Confucian Gentlemen>은 조선의 유교적 관료·사대부이고, <Barbarian Envoys>는 그들이 처음에는 기존 화이론적 범주 속에서 이해했던 일본 및 서양의 외교사절들을 가리킵니다.

즉 이 책은

<유교적 세계관을 가진 조선 엘리트가 근대 국제질서와 처음 본격적으로 조우한 역사>

입니다.

2. 개항 이전 조선의 세계관

도이힐러의 출발점은 조선의 고립성 그 자체가 아닙니다.

조선에는 이미 매우 완성된 국제질서관이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습니다.

중국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천하질서 안에서 조선은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것은 현대적인 의미의 국제법적 주권국가 관계와는 전혀 다른 질서였습니다.

조선의 사대부에게 세계는 대체로

중화 문명
→ 조선
→ 문명 바깥의 오랑캐

라는 문화적 위계 안에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서양 국가가

“우리는 조선과 동등한 국가로서 외교관계를 맺겠다”

고 들어왔을 때 문제는 단순히 외국인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조선인이 알고 있던 <세계의 구조 자체>를 흔드는 문제였습니다.

3. 1875년 운요호 사건과 1876년 강화도조약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식 국제질서를 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일본이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고 이를 빌미로 조선에 개항을 요구합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은 따라서 조선에게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중국과 독립된 국가라고 규정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것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목적은 청의 종주권을 약화시키고 일본이 조선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길을 여는 데 있었습니다.

조선에게는 매우 낯선 상황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사대관계에서는 조선이 청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구식 국제법에서는 모든 ‘주권국가’가 형식적으로 동등하다고 전제했기 때문입니다.

도이힐러는 이 충돌을 중요하게 봅니다.

조선은 개항과 동시에

<중국 중심 천하질서>

와

<서구식 국가체제>

사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4. 조선이 단순히 ‘쇄국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조선의 관료들을 단순히 시대착오적인 쇄국주의자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조선 내부에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했습니다.

위정척사파는 서양문명과 일본의 개항 요구를 성리학적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일부 관료들은 국제환경이 이미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외교기술과 군사기술을 배울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즉 조선의 대응은

<쇄국 대 개항>

이라는 단순한 양분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였습니다.

군사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서양사상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본은 문명국인가 오랑캐인가?

서양과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중국과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조선 정치의 중심문제가 됩니다.

5. 김홍집과 <조선책략>

1880년 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조선 수신사 일행이 일본을 방문합니다.

이 과정에서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받아옵니다.

이 문서는 당시 국제정세를

러시아의 남하를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친중국·결일본·연미국>

을 조선의 외교전략으로 제안했습니다.

이는 조선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외교는 도덕과 명분의 문제였는데 이제는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사이의 세력균형을 계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의리의 외교>에서 <국익의 외교>로 넘어가야 했습니다.

이 변화가 쉽게 이루어질 리 없었습니다.

<조선책략>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외교정책 논쟁이 아니라

<조선이 앞으로 어떤 세계에 속할 것인가>

라는 문명론적 논쟁이었습니다.

6. 미국과의 조약

1882년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합니다.

이것도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조선이 서구 국가와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습니다.

이제 조선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등과 차례로 조약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조선 지도부가 서양 국제질서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조선은 미국과의 조약에 포함된 우호적 표현을 실제 군사적·외교적 지원 약속에 가까운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이를 훨씬 제한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도이힐러가 보여주는 것은 이런 <국제질서의 언어 차이>입니다.

조선은 기존의 도덕적 관계관을 가지고 새로운 조약을 이해하려 했고, 서양국가는 국제법과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행동했습니다.

7. 청나라의 위치는 특히 복잡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강점은 조선-일본 관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청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입니다.

조선은 개항 이후에도 청과의 전통적 관계를 쉽게 버릴 수 없었습니다.

청 역시 조선을 완전한 독립국가로 내버려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임오군란 이후 청의 조선 내 영향력은 오히려 강해졌습니다.

여기서 이상한 이중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서양 국제법의 관점에서는 조선은 독립국가인데,

동아시아 전통질서에서는 여전히 청과 종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모순이 1880년대 조선 외교의 핵심 문제였습니다.

조선은

<독립국인가?>
<청의 속국인가?>

라는 질문에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8.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은 단순한 국내정치 사건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개화정책과 신식 군대의 도입은 기존 군인들의 불만을 초래했고, 임오군란 이후 청의 군사적 개입이 강화됩니다.

갑신정변에서는 김옥균·박영효 등의 급진개화파가 일본의 도움을 받아 빠른 개혁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청군의 개입으로 정변은 사흘 만에 실패합니다.

이 사건은 조선이 단지 ‘근대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조선의 개혁은

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따라서 국내개혁과 국제정치가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9. 도이힐러가 말하는 ‘유교’의 의미

이 책을 앞서 이야기한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과 연결해서 읽으면 흥미롭습니다.

1977년의 이 책에서 이미 도이힐러는 유교를 단순한 철학으로 보지 않습니다.

유교는

국가관,
외교관,
문명관,
도덕관,
정치적 판단

을 결정하는 <세계인식의 틀>입니다.

조선 사대부들이 국제정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나름의 정교한 국제질서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19세기 후반 세계에서 그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입니다.

<무지해서 실패했다>

라기보다

<기존의 매우 정교한 세계관이 급격히 변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10. 책의 강점

첫 번째 강점은 조선의 개항을 일본의 침략사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군사적 압력은 분명하지만, 도이힐러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조선 내부의 지적·정치적 대응입니다.

두 번째는 개항을 <문명관의 충돌>로 본다는 점입니다.

조선의 지도자들은 단순한 외교기술 문제가 아니라

<중국 중심 세계가 끝나고 있다는 사실>

에 직면했습니다.

세 번째는 청·일본·조선·서양을 하나의 국제체제 안에서 본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 한국사 연구로서는 상당히 선구적이었습니다. 실제로 1979년 <Journal of Asian Studies>의 서평에서도 이 책이 조선 초기 근대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통찰을 제공한다고 평가했습니다.

11. 한계

하지만 지금 읽으면 한계도 보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책이 거의 철저하게 <엘리트 정치사와 외교사>라는 점입니다.

농민,
상인,
여성,
천주교 신자,
동학 세력,
일반 백성

에게 개항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거의 중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또한 ‘Confucian gentlemen’이라는 틀이 때때로 조선 관료사회를 너무 하나의 유교적 집단처럼 보이게 만들 위험도 있습니다.

실제로 위정척사파, 온건개화파, 급진개화파 사이에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후의 연구에서는 조선의 개항을 단순히 ‘전통적 유교 대 근대적 서양’이라는 대립으로 설명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조선 내부에서도 이미 새로운 정치·경제적 사고가 형성되고 있었고, 중국과 일본 역시 단순한 ‘전통’과 ‘근대’라는 두 범주로 나누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2.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과 비교하면 더 흥미롭다

도이힐러의 연구경력을 보면 두 책이 서로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1977)

15세기 이후 확립된 성리학적 세계관이
→ 19세기 서양 국제질서를 만나
→ 어떻게 흔들리고 붕괴하는가

를 다룹니다.

반대로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1992)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이
→ 고려의 기존 사회질서에 들어와
→ 어떻게 가족과 사회를 재편하는가

를 다룹니다.

즉 두 책을 합치면 도이힐러의 연구 전체에는 아주 아름다운 대칭이 있습니다.

<15~17세기: 유교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

↓

<18~19세기: 유교질서의 완성>

↓

<1875년 이후: 그 질서가 근대 국제체제와 충돌하는 과정>

입니다.

도이힐러는 1967~69년 규장각에서 자료를 연구했고, 그 결과가 이 첫 번째 저서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그의 관심은 19세기 외교사에서 조선 사회를 만들어낸 성리학의 사회적 힘 자체로 더 깊이 이동했습니다.

종합평가

이 책은 오늘날의 개항사 연구를 모두 포괄하는 최신 종합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1977년의 연구이고 이후 한국·미국·일본에서 방대한 개항기 연구가 축적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도이힐러가 개항을 단순히

<일본이 문을 열었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500년 동안 유지되어온 조선의 세계관이 새로운 국제질서와 만나면서 어떻게 해체되고 재구성되었는가>라는 훨씬 큰 질문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앞서 논의했던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과 연속해서 읽으면 도이힐러의 한국사관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그녀에게 성리학은 책 속의 철학이 아닙니다.

15~17세기에는 <가족과 사회를 실제로 만들어낸 힘>이었고,

19세기에는 <조선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규정한 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876년 이후 그 세계관이 현실과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이 책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개항은 항구 몇 곳을 외국에 개방한 사건이 아니라, 성리학적 천하관 속에 살던 조선 지식인들이 근대적 주권국가체제라는 전혀 다른 세계로 강제로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저는 도이힐러의 두 책을 함께 놓고 보면,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보다 먼저 쓴 이 책이 오히려 그의 훗날 연구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고 봅니다. 그는 처음에는 <왜 조선이 19세기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어려웠는가>를 연구했고, 결국 더 근본적인 질문, 즉 <그렇게 강력했던 유교적 사회와 세계관은 애초에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로 거슬러 올라간 셈입니다.

조상의 눈 아래에서 | 마르티나 도이힐러 2015

[전자책] 조상의 눈 아래에서 | 마르티나 도이힐러 | 알라딘

[eBook] 조상의 눈 아래에서 - 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지역성
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은이),문옥표,김우영 (옮긴이)너머북스2023-
원제 : Under the Ancestors' Eyes: Kinship, Status, and Locality in Premodern Korea




종이책의
미리보기
입니다.































전자책 미리 읽기




책소개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지난 50년 동안의 열정을 다한 한국사 공부를 집대성한 <조상의 눈 아래에서>. 신라시대 초기에 생겨나 가장 대표적인 사회 단위로 뿌리내린 한국 고유의 출계집단(씨족 또는 족, 겨레라 불리는)에 초점을 두고, 신라 초기(4~5세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는 한국 출계집단의 역사를 다룬다.

도이힐러 교수는 신유학의 변혁능력을 강조한 기존 한국사의 관점은 토착적인 친족 이데올로기의 지속성을 간과했다고 한다. 경상도의 안동과 전라도의 남원을 선택하여 그들이 만들고 다진 촘촘하게 짜인 사회구성을 들여다보고,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목차


지도와 그림 목록
머리말

서론: 친족, 신분, 지역성

1부| 한국사회의 토대
서언

1장 신라와 고려의 토착적 출계집단
신라의 토착적 출계집단 |고려 초 건국 엘리트층의 형성 |과거제도: 중앙집권화의 도구 |고려 전기의 저명한 출계집단들 |고려 전기 귀족층의 성격 |고려 후기의 엘리트 출계집단: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남기 |고려 후기 엘리트의 면면

2장 정체성의 위기: 새 왕조의 모험
실패한 개혁 노력: 변화의 적 |권문: 고려 후기의 악당 |신유학자: 국가 부흥의 이론적 선도자 |조선 초기의 출계집단 |세족 엘리트층에게 다시 힘을 실어준 새로운 관료적 질서 |권력경쟁: 귀족의 과두정치 대 왕의 독재

3장 신유학의 도전
신유학에 대한 양면적 접근 |과거제 개혁과 경연 |도학 이상주의의 발전 |사림의 부상 |한국 ‘도통’의 구성

2부| 지방의 재구성
서언

4장 지방의 재점령: 재지 엘리트 출계집단의 형성
지역적 배경 |초기 엘리트의 형성: 안동과 남원의 토착 출계집단 |이주와 초창기의 선구적 정착자들 |공동체의 강화를 통한 지역의 안정화

5장 조선 중기 재지 엘리트 세력의 공고화: 사회적 차원
안동의 재지 엘리트 |남원의 재지 엘리트 |적절한 혼인망의 구축 |엘리트와 서자

6장 조선 중기 재지 엘리트 세력의 공고화: 경제적 차원
경제적 기반의 확립 |노비: 도처에 편재한 사족 엘리트의 ‘수족’ |공동체적 노력을 통한 안동의 지역적 발전 |시대별 경제적 전략: 유산의 관리 |안동과 남원의 토지와 노비: 비교

3부| 유학: 학문과 실천
서언

7장 유학자로서의 사족 엘리트
안동의 초창기 사림 |전라도의 초창기 유학 |안동의 관학과 사학 |퇴계의 제자가 된 사족의 자손 |학문과 과거: 유생들의 딜레마 |처사: 초야의 유학자 |경상도 남부의 처사: 남명 조식 |안동 최초의 서원 설립 |퇴계의 지적 유산 전승을 둘러싼 갈등

8장 의례적 실천과 재지 종족의 초기 형성
관습적인 상례와 제례 |주희의 의례 개념에 대한 한국적 이해 |종법의 초기 신봉자들 |오래된 종교적 관행과의 경합 |개혁된 의례: 엘리트 문화의 발현 |묘제집단의 개혁 |조상묘의 재발견과 묘지의 재배열 |정체성과 초기의 족보 기록 방식 |의례의 혁신과 사회적 변화

9장 공동체의 계층화와 지역사회의 지도력
공동체적 관계의 실천: 동계 |엘리트 신분의 각인: 향안 |안동의 향안 |지배의 규범: 향규 |유향소 |유향소 대 국가 |공동체의 방위: 임진왜란 |안동의 전후 복구 |전후의 개조: 새로운 향안과 향규 |도덕의 회복: 향약의 개정 |남원의 전쟁피해 |17세기의 문턱에 선 재지 사족

4부| 분열과 결속
서언

10장 중앙과 지방: 이해의 상충
중앙과 지방 사이의 점증하는 격차 |안동의 사례 |남원의 사례 |지방에서의 정치적 대결 |안동의 사례 |남원의 사례 |국가의 향촌 침투

11장 종족제도의 성숙: 정체성과 지역성
승중자의 입지 강화 |조상을 모시는 삶 |특이한 의례적 관행 |유교적 원리에 도전한 서자 |부계제의 안전장치: 친족 결사체로서의 문중 |성숙한 재지 종족조직 |지방화와 동성마을의 발달 |정체성과 출계의 역사 |정체성의 상실과 회복: 드문 이야기 |존경의 표지: 친족의 통합요인

12장 학문과 정치: 정통성을 둘러싼 경쟁
퇴계 사후의 지적 재편 |사족의 보루: 안동의 서원들 |붕당의 이해에 매몰된 유교의 도 |붕당의 갈등과 딜레마 |전라도의 사례 |영남 내부의 불화와 세력경쟁 |안동과 1728년 이인좌의 난 |영조 치하의 영남: 깨어진 화해의 희망 |노론 침투 압력하의 영남 남인 |18세기 후반의 영남

5부|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서언

13장 안정 속의 변화: 사족 신분의 유지
신분 유지를 위한 농업책 |농촌공동체 생활의 에토스 |선비의 ‘경제적 형편’ |분쟁의 대상이 된 위토와 묘소 |엘리트의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모임 |조상에게 바치는 기념물: 사우 건립과 문집 편찬 |신분의 배타성: 족보의 차원 |사족의 계층분화와 경쟁

14장 사족 우위의 종말?
안팎으로부터의 도전 |구세력 대 신세력: 당파적 동기로 인한 갈등 |압력집단으로 부상한 서얼 |사족의 보루에 침투한 서자 |전국적인 서자운동 |안동과 남원에서 재부상한 향리 |“통제 불능의 하급자들” |전통적 사회신분제의 종말

결론

부록 A: 문서자료
부록 B: 안동과 남원의 주요 출계집단의 세계도
주
참고자료
감사의 말
찾아보기: 본관별로 나열된 인명 | 기타 출계집단 | 인명, 지명, 용어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출계집단이 한국사의 주요 동인이었다는 명제는 저명한 사대부 양성지梁誠之(1415~1482)가 15세기 중엽에 올린 상소문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다.



P. 77~78 ‘권’은 주로 ‘강력한’으로 번역 되지만, ‘상황을 저울질’하거나 ‘사태의 긴박성을 판단’한다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 ‘기회주의적’이라는 의미를 띨 수도 있다. 이 해석이 옳다면, 권문은 ‘강력한 가문’보다는 ‘기회주의적 가문’을 나타낸다. 물론 권문이라는 용어에는 ‘권력’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권문은 과거제의 틀 밖에서 왕의 은총을 입어 권세를 잡은 다음 협잡과 뇌물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평민을 괴롭힌 사람들, 요컨대 부도덕한 행위로 전통적인 사회정치적·경제적 질서를 위협한 사람들을 지칭했다.
통상적인 역사서는 대개 권문과 세족을 하나의 단어, 즉 권문세족으로 뭉뚱그려 ‘오랫동안 권세를 누리면서 타락한 고려 후기의 기성 정치세력’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지만, 최근에 박용운은 그 두 용어가 당대의 문헌에서 합성어로 쓰인 적이 없고, 사실은 상이하게 구성된 두 집단, 즉 ‘기회주의적 가문’(권문)과 지체 높은 세습 엘리트층(세족)에 별도로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바 있다. 이 통찰은 고려 후기의 권력구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족과 권문 사이의 경계선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두 용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1300년대 초반에 두 집단의 권력관계가 사상 최초로 역전되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접기
P. 256~257 주인과 노비의 관계는 종종 군신관계에 비유되었다. 이는 상호의존성을 암시함으로써 지배와 종속의 가혹한 현실을 은폐하는 방법이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은 노비의 본분이고, 그 공로에 보답하는 것은 주인의 권한이다.” 그럼에도 주인이 노비의 신체, 노동, 재산, 자손까지 완벽하게 통제했다는 사실은 그 관계의 극심한 불평등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주인과 노비의 관계는 긴장과 적대감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유학자의 인도적 양심에 위배되는 상황에 날마다 직면했던 일부 엘리트 노비주는 엄격함과 인자함을 적절히 안배하여 노비들을 다루는 방침을 마련했다.
노비의 관리는 당대의 수많은 ‘가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예컨대 본인이 노비주였던 이퇴계는 아들 준에게 권위만 내세우지 말고 자애심을 갖고 노비를 다루라고 충고했다.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노비들이 원한을 품지 않게 하라고, 또 “무지한 여자노비를 관대한 마음으로” 대하라고 배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휴식할 시간을 주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규율에 따르게 하라고 준에게 타일렀다. 하지만 “비협조적이고 방자한” 노비들이 가문을 망칠 수도 있다고 우려하면서, 소심하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들의 불복종을 부추기지 말라고 훈계했다. 그는 노비란 천성적으로 완고하고 태만하므로 엄격하게 감독하지 않으면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비료를 주는 적기를 놓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게으른 노비 한 명을 골라 매질하면 다른 노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또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노비들이 수령의 관아에 자주 출입하고 소문을 퍼뜨리고 서로 싸움질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분명히 퇴계는 노비들을 단호하면서도 관대하게 통제하고자 했다. 접기
P. 727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유의 친족 이데올로기는 신분의 위계와 신분의 배타성을 찬미하면서 운명의 붉은 실처럼 신라 초부터 19세기 말에 이르는 한국의 역사를 관통했다.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이 이데올로기는 출생과 출계를 기반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엘리트를 창출했고, 엘리트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엄청난 내구력을 부여했다. 접기 - 겨울호랑이



저자 및 역자소개
마르티나 도이힐러 (Martina Deuchler) (지은이)

1935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라이덴대 동아시아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 규장각에서 연구했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런던대 아시아·아프리카 대학(SOAS)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런던대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한국의 유교화과정: 신유학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었나》(서울: 너머북스, 2013), 《조상의 눈 아래에서: 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지역성》(서울: 너머북스, 2018) 등이 있다.

『한국의 유교화 과정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으로 1993년 위암 장지연상을, 2001년에는 용재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영국학술원 회원이며 2008년 1회 한국국제교류재단상과 2009년 미국동양학회 아시아연구공로상을 수상하였다.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The Opening of Korea, 1875~1885』, 『Culture and the State in Late Chos? Korea』(공 편저) 등의 저서와 다수의 한국사 관련 논문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추억의 기록>,<조상의 눈 아래에서>,<한국의 유교화 과정> … 총 13종 (모두보기)

문옥표 (옮긴이)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 인류학과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From Paddy Field to Ski Slope: The Revitalisation of Tradition in Japanese Village Life』, 『동아시아 문화전통과 한국사회』(공저), 『조선양반의 생활세계』(공저), 『교토 니시진오리의 문화사』 등이, 역서로 『문화의 해석』 등이 있다.

최근작 : <종가문화, 대중과 만나다>,<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이야기>,<동아시아 관광의 상호시선> … 총 24종 (모두보기)

김우영 (옮긴이)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코넬대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역사학과 인류학 분야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대표적인 역서로는 『조상의 눈 아래에서』,『전염병의 세계사』, 『세계의 역사 1, 2』, 『중세의 사람들』, 『멩켄의 편견집』, 『문화의 숙명』,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등이 있다.

2026-08-09

조직량박사 (r2 판)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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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 박사 조직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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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량((1927~1966) 박사는 한국인 최초로 1960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본명 조직호(曺稷浩)이고 영문명은 Ching Young Choe 이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6.25 전쟁 때 유엔군 통역을 하다가 도미하여 8년 만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대원군 시대 개혁정치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 전체로는 1956년 경제학의 최기일 박사에 이어 두 번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가 최근에 발굴됐다.
조직량 박사는 스위스 출신으로 우리나라 역사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er) 박사의 남편이다. 도이힐러(1935~) 박사는 2018년 <조상의 눈 아래에서>를 비롯하여 4권의 우리나라 역사서를 저술한 조선사의 대가로, 우리나라 역사를 씨족사회의 역사라고 갈파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조직량 박사의 본가 영천 귀애고택
도이힐러 박사가 한국에 머물 때 한국의 전통과 친척 교감을 이룬 시댁, 즉 조직량 박사의 본가는 경북 영천 화남면에 있는 귀애고택이다. 문화재 귀애정과 연지(연못)이 일품인 조선후기 양반가옥으로, 1831년 과거 급제하여 영남인물로는 드물게 당상관 공조참의에 오른 귀애 조극승의 고택이다. 학문 천석, 재물 천석, 자식 천석이라 불렀던 가문으로 조직량 박사는 조극승의 현손이다.
조 박사는 이곳에서 태어나 일본 야마구치고보를 마치고 6.25 때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25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덴버대학을 거쳐 33세에 하버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 후 독일로 건너가 본 대학 등지에서 수년간 한국사를 강의하다가 1966년 39세 나이로 스위스 취리히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아내 도이힐러 박사는 1967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개항기 조선 외교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학문적 동기와 시댁 방문을 위해 혼자 한국으로 들어온다.
남편 조 박사의 뜻을 이어받아 규장각과 국내외 대학교에서 50년간 조선사를 연구하여 우리나라 친족, 문중, 신분, 유교화 과정 등 조선사회사 연구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다. 고택에는 도이힐러 박사가 시댁친척과 찍은 사진, 영문 저서 등이 있고 한국 이름이 ‘두정나’라고 한다. 그녀가 고택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곳은 250여 년 전에 지어진 조선양반가옥의 부엌이라고 한다. 1970년에는 조 박사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돼 영천의 문중 선산에 묻혔다.
'조직량 박사의 유작 <대원군의 개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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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량 박사의 사후 6년이 지난 1972년에,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센터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The Rule of the Taewŏn’gun, 1864-1873; Restoration in Yi Korea"이란 이름으로 유작을 출간한다.
조 박사의 유작에는 동아시아 연구센터가 쓴 서문과 감사 말씀, 목차, 본문, 마지막으로 도이힐러 박사가 쓴 에필로그가 있다. 본문은 총 1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860년 이전의 조선왕조 사회·경제적 환경에 대해 서술한 1장에서 시작하여 흥선대원군의 몰락을 다룬 13장까지 총 분량은 263쪽이다.
조 박사는 죽기 1년 전 1965년 9월에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책 출간에 대한 감사의 글을 썼는데 <조선왕조사회의 성취와 귀속>을 저술한 동연배의 한국사 대가,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와의 친분이 언급돼 있고 이 때 이미 책 발간 준비를 마친 것 같다. 하버드 동아시아 연구센터에서는 유작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연구일 뿐만 아니라 재능 있고 유망한 젊은 학자에 대한 기념비'라고 했다.
그리고 감사의 말에 동아시아 연구센터 편집장의 다양한 편집 단계 지원과 세심한 관심, 도이힐러 박사의 헌신적 도움에 감사한다고 했으니 하버드에서 배운 이론 적용하여 지극히 서구적인 방법론과 분석기법으로 과정을 탐구하고 결론을 도출한 것 같다. 유작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다면 한국인이 하버드에서 한국역사에 대해 쓴 역사학 방법론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많은 후학들이 따라할 수 있을 터인데 번역서가 나오지 않아 많이 아쉽다. 유작의 분량 260여 페이지 중에서 주 해설과 참고 논저가 90페이지이다. 서구 역사학 방법론에서 볼 수 있는 방대한 문헌 인용과 서술 주장에 대한 철저한 주 해설이 부록으로 들어가 있다.
아울러 하버드 옌칭 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관련 모든 문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및 영어권 나라의 서적까지 참고 문헌으로 활용하였다. 따라서 하버드 옌칭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구한말 조선 역사에 관한 수장고가 어떠한지 조 박사의 유작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도이힐러 박사의 유작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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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박사의 유작 맨 뒤에는 도이힐러 박사가 쓴 에필로그(발문)가 있다. 에필로그는 출간 1년 전인 1971년에 썼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부분이다. “한국사의 미개척 분야는 우리에게 한국사에 대한 심층적인 지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발전에 대한 유익한 비교를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더 많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작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연구를 자극하면 그 목적이 달성됩니다. 1971년 1월. 취리히에서 마르티나 도이힐러”
남편 조 박사가 별세하고 그의 유작을 발간할 때 남편의 학문적 성과를 회고하고 미국 내 한국사 연구의 출발을 알리는 글이다. 에필로그는 지극히 서구적인 기법으로 대원군 시대를 분석하고 역사적 관점을 서술하였기에 매우 신선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조 박사는 부모님 기억에 이 책을 바친다고 했으니 오랫동안 뵙지 못한 어버이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우리나라 대학교 도서관 소장 자료를 검색하면 조 박사의 유작을 어느 한 곳에서도 소장하고 있지 않다.
하버드 한국학파 1세대 인물들
조직량 박사와 동시대에 하버드에서 한국학을 전공, 연구한 인물들을 한국학 1세대라 부르는데 다음 네 사람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하버드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내 하버드 한국학파의 선구자적인 인물들이다.

1. 에드워드 와그너(1924~2001), 1959년 학위, <조선왕조사회의 성취와 귀속>
2. 조직량(1927~1966), 1960년 학위, <대원군의 개혁정치>
3. 마르티나 도이힐러(1935~), 1967년 학위, <조상의 눈 아래에서>
4. 제임스 팔레(1934~2006), 1968년 학위,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
위 네 사람 가운데 한국인은 조직량 박사뿐이다. 조직량 박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서구 한국학의 시조, 비조라 칭송받으며 국내에서 그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들의 저서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조직량 박사는 일찍 요절하였고 사후에 그의 유작이 출간되어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며 유작마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동시대에 같이 하버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최초 인물인데도 그러하다. 하버드와 학문 교류가 매우 잦은데도 오랫동안 잊힌 인물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 널리 알려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안다는 미국의 친한파 한국학자, 미국 유타주 브리검 영 대학교(Brigham Young Uni. BYU)의 마크 피더슨 교수는 1987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조선중기 입양제와 상속제"이며 저술로 <유교사회의 창출>이 있다.
조직량 박사의 연구 현양
조직량 박사가 요절하지 않고 한국학을 더 많이 연구했더라면 하버드 동아시아 역사학파 중심 인물이 되었을 터인데 많이 안타깝다. 학문적 성취는 널리 알려져야 빛이 나니, 어려웠던 시기에 조국의 미래를 깊이 침잠하고 학문에의 열정으로 매진한 젊은 사학자의 연구가 현양되어야 한다. 빠른 시기에 그의 유작이 한국어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기다린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33세에 하버드 박사가 되었건만 하늘이 그를 거두었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1954년에 하버드에 입학하여 1960년에 학위를 받고 1966년에 요절했으며 1972년에 유작이 출간됐다. 6년 터울의 삶이다.
6.25 전란 속에서 어렵게 미국으로 건너가 각고의 노력을 하여 한국인 최초로 하버드 역사학 박사가 된 조직량 박사의 학문적 성취를 발굴하고, 요절한 남편 조 박사의 뜻을 이어받아 50년간 조선사를 연구하여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을 던져준 그의 서양인 아내 도이힐러 박사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그 배경이다.
조직량 박사 생애

-1927년 12월 27일 경북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 귀애고택에서 출생
-4세 때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야마구치고보에 유학
-1946년 중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받고 경주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침
-1948년 서울 중앙대학교에 입학 (영문학과로 추정)
-6.25전쟁 때 유엔군 통역관으로 복무
-1952년 1월 도미하여 미국 덴버 대학교에 입학
-1954년 여름에 국제관계학 학사 학위를 받음
-1954년 가을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 하버드 옌칭 연구소의 장학금으로 중국역사, 일본역사, 러시아 연구, 경제학 및 인류학 등 광범위하게 공부함
-1956년 6월 하버드 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지역학 석사 학위를 받음
-1960년 6월 하버드 대학교에서 대원군의 개혁정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음
(한국인 최초 하버드 역사학 박사가 됨)
-1956년부터 1958년까지 하버드에서 한국어를 가르침.
-1960-61년 미국 학술 단체 협의회를 위해 한국사 강의 계획서를 편찬함
-1962년 하버드 동아시아연구센터 연구원 역임
-1962년 10월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에서 펠로우십을 받고 독일 본으로 건너가 한국의 사회 경제사를 연구하고 본 대학교에서 한국어와 역사를 가르침.
-1963년 11월 논문 <김육(1580-1658)과 대동법 개혁>을 아시아학 저널(제23권 제1호; 1963년 11월)에 발표함
-1965년 가을 독일 마르부르크/란(Marburg/Lahn)의 부름을 받아 국립도서관(Staatsbibliothek)의 한국어 분과인 Preussischer Kulturbesitz를 담당
-1966년 7월 8일 수개월간 투병 끝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
-1972년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센터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영문으로 출간.
저서: The Rule of the Taewŏn’gun, 1864-1873; Restoration in Yi Korea (1972,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센터)

(본 자료는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연구센터에서 쓴 유작 서문에서 발췌함)

“신라 이후 1500년, 왕조는 바뀌어도 지배 엘리트는 동질했다” - 경향신문

“신라 이후 1500년, 왕조는 바뀌어도 지배 엘리트는 동질했다” - 경향신문

“신라 이후 1500년, 왕조는 바뀌어도 지배 엘리트는 동질했다”

수정 2018.11.2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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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한국 연구한 도이힐러 교수

‘조상의 눈 아래에서’ 번역 출간

“친족 이데올로기가 사회 규정”

“신라 이후 1500년, 왕조는 바뀌어도 지배 엘리트는 동질했다”

‘신라에서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왕조의 성씨가 바뀜에 따라 사회를 주도한 세력들도 달라졌다’는 것은 한국사에서 오래 전해 내려온 상식이다. 스위스 출신 세계적인 한국학자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명예교수(84·사진)는 사뭇 다른 견해를 밝힌다. 5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 1500년간 한국 사회를 이끌어 온 지배집단은 사실상 동질적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토록 대담한 주장을 펴는 까닭은 씨족이나 족, 겨레 등으로 불리는 ‘출계집단(出系集團·descent group)’의 존재 때문이다. 출계집단은 “공동의 조상으로부터 혈통을 추적하는 친척의 집합체”를 뜻하는데, 이들은 줄곧 한국 엘리트 사회의 기본 단위를 구성했다. 양반, 사족 등 명칭이 어떠하든 엘리트층은 스스로를 자신의 출생 배경, 조상을 통해 정의했다. ‘친족 이데올로기’는 신라 시대 골품제가 등장한 4~5세기 무렵부터 조선 후기인 19세기 말까지 한국 정치·사회를 규정했다는 것이 도이힐러의 시각이다.

도이힐러가 최근 신작 <조상의 눈 아래에서>(너머북스)의 번역 출간을 계기로 한국을 찾았다. 이 책은 그가 50년간 매달려 온 한국사 연구를 집대성한 것으로, 2015년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출간됐다. 각주를 포함해 1000쪽에 달하는데, 한국 전통사회 엘리트 집단의 원형을 포함해 사회사 측면에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는다.

“신라 이후 1500년, 왕조는 바뀌어도 지배 엘리트는 동질했다”

지난 20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한국 역사를 보면 사회적 배경이 정치적 성취보다 중요했다”며 “왕조가 교체돼도 엘리트 집단의 기본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도입한 과거제나 ‘신유학’도 위계질서를 허무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양반에 속하지 않으면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습니다.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구별이 매우 심했던 것이죠. 엘리트가 유교를 받아들인 것도 출계집단을 부계로 제한시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엘리트가 이렇게 뿌리내린 사회는 세계에도 별로 없습니다.”

그의 관점은 신진사대부가 조선을 건국했다고 보는 한국사학계의 ‘정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도이힐러는 이날 “이기백 교수 등이 조선 초기 시골 출신 향리 후손들이 시험을 거쳐 등용되면서 새로운 계층이 나타났다고 봤지만, 실제로 여말과 선초의 엘리트는 똑같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고려의 세족이 조선의 사족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도이힐러는 엘리트 집단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조사를 벌였다. 안동과 남원 지역을 방문해 문중이나 양반 후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엘리트층은 유교의 특정한 교의, 특히 남계친 중심의 의례적 의식과 승계의 원리를 취사선택하여, 출생과 출계에 기초한 자신들의 귀족적 특권을 강조하고 엘리트 출계집단의 성원권을 제한했다”며 “한국식으로 해석된 유교는 사회적 차별을 완화시키기보다는 강화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문중’이라는 독특한 ‘비공식 집단’에 대해 “부계사회에서는 장자가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경제적으로도 많이 상속하게 된다”며 “과거의 양계적 관념에 따라 형제간 평등을 지향하는 문중을 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이힐러는 해외 한국학 1세대 연구자였던 고 에드워드 와그너 하버드대 교수의 제자로, 존 덩컨(UCLA), 고 김자현(컬럼비아대) 등과 더불어 대표적 2세대 한국학자로 꼽힌다. 1960년대 서울대 규장각에 유학했던 최초의 외국인 중 한 명인 그는 “한국학자가 많아졌지만 마을(현장)보다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들여다보는 ‘암체어 스칼라’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 아쉽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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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a Deuchler - Wikipedia 마르티나 도이힐러

Martina Deuchler - Wikipedia



Martina Deuch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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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a Deuchler (born 1935 in Zurich) is a Swiss academic and author.[1] She was a professor of Korean studies at the SOAS University of London from 1991 to 2001.

Profile

Martina Deuchler developed her interest in Korea by way of Chinese and Japanese studies. She was educated in Leiden, Harvard and Oxford, at a time when Korea was still hardly known in the West. As one of the first Western scholars, Martina Deuchler studied Korean history and published a number of key works: 

  •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1977), 
  •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1992), and 
  • Under the Ancestors' Eyes (2015). 

With her original scholarly work, combining history with social anthropology, Martina Deuchler created a framework for exploring Korean social history, within which she continues to research landed elites and their perception of the historic changes in East Asia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As Korean studies emerged as an academic field in the second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Martina Deuchler, generously supported by the Swiss National Science Foundation, contributed to the networking among Korea specialists isolated in a few European universities and was one of the founding members of the Association for Korean Studies in Europe (AKSE) in 1977. She participated in numerous scholarly workshops and conferences a few of which she herself organized. As Professor of Korean Studies at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University of London from 1988 to her retirement in 2000, she dedicated herself to educating future generations of Koreanists and advancing Korean Studies as an academic field. She continues to be active as researcher and consultant.

Education

Martina Deuchler studied classical and modern Chinese language and history as well as classical and modern Japanese language and literature at Leiden University, NL, from 1954 to 1959. She received her B.A. in Chinese and Japanese with honors in 1957. From 1959 to 1963 she continued her studies of modern history of China and Japan as a scholarship student in the Regional Area Program in East Asia of Harvard University. Her advisers were Prof. John K. Fairbank and Prof. Edwin O. Reischauer. She received a PhD in History and Far Eastern Languages with a dissertation entitled "The Opening of Korea, 1875–1884" in 1967. Supported by the Swiss National Science Foundation, she studied social anthropology with Prof. Maurice Freedman at Oxford University in 1972. In October 1979 she presented a second dissertation (Habilitation) with the title "Confucianism and the Social Structure of Early Yi Korea" to the University of Zurich and was awarded the Venia legendi for Classical Sinology and Korean Studies.

Activities

1967–1969Research in Korea as research fellow in East Asian studies, Harvard University
1973–1975Research in Korea as part of the SNSF project „History of Korea"
1978–1988Elected member of the Board of the Swiss Society of Asian Studies (Schweizerische Gesellschaft für Asienkunde)
1983–1986Member of the Committee on Korean Studies (CKS) of the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AAS), Ann Arbor, Michigan
1983–1988President of the Schweizerische Gesellschaft für Asienkunde
1975–1988Teaching Korean history and language, University of Zurich
1980–1983Member of the Joint Committee on Korean Studies of the 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and the American Council of Learned Societies (SSRC/ACLS)
1987–1988Elected member of the Research Council of the Swiss Academy of Sciences, Berne
1988–1991Senior Lecturer for Korean Studie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 University of London
1989–1998Chair of the Centre for Korean Studie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
1991–1993President of the Association for Korean Studies in Europe (AKSE)
1991–2001Professor of Korean Studie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 University of London
2000Member of the Visiting Committee on East Asian Studies (Board of Overseers of Harvard College), Harvard University. Responsible for the Korea program
2001Visiting Professor of Korean History at Cornell University
2002–2005Member of the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of the Korea Foundation
2004Member of the Visiting Committee on East Asian Studies (Board of Overseers of Harvard College), Harvard University. Responsible for the Korea program
2004Visiting Professor, Academy of Korean Studies, Seoul
2006Member of the Visitatie Commissie Niet–Westerse Talen en Culturen, Leiden University; responsible for the Korea program
2002–2014Research Professor, Centre for Korean Studie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 London
2008–2009Visiting Professor of Korean History at Sŏgang University, Seoul

Research

Martina Deuchler has conducted intensive research in Korea for over fifty years. Due to the fact that in the 1960s there were few historical sources on Korea in Western libraries, she went to Korea to study in the former royal library (Kyujanggak) from 1967 to 1969. The result of this two-year stay was the publication of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1977), a history of Korea's diplomatic opening by Japan and the Western powers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At that time, Martina Deuchler also conducted fieldwork on Confucian ritualism, especially ancestor worship. Thanks to her affinal relations through her husband, Dr. Ching Young Choe, she was granted unique access to social and religious traditions and ceremonies, rarely witnessed by Westerners, in a remote rural area in North Gyeongsang Province. She documented her observations in numerous color slides. In 1972 she moved to Oxford University to study social anthropology with Maurice Freedman. During a second sojourn from 1973 to 1975 she expanded her knowledge of Korea's social history with archival and field research. This resulted in a major, highly acclaimed work,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1992). This book, translated into Korean and partly into Japanese, focuses on the influence Chinese Neo-Confucianism exercised on Korean society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documents the stages by which Neo-Confucianism, as a socio-political ideology, transformed the originally bilateral Korean society into a patrilineal one.

After many more years of research on social and intellectual history, in particular Korean Neo-Confucianism, and sustained dialogue with Korean scholars, she published Under the Ancestors' Eyes in 2015. This work argues that Korean elite society was structured on the basis of descent groups throughout its long history, and actually up to this day. In premodern Korea, therefore, it was social origin (i.e., birth and descent) rather than political office that served to identify elite status. The research materials of Martina Deuchler are since 2017 preserved in the Ethnographic Museum of University of Zurich.

Selected works

  • "Neo-Confucianism in Early Yi Korea: Some Reflections on the Role of Ye," Korea Journal Vol.15, Nr.5 (May 1975): 12–18. Reprinted in Korean Philosophy: Its Tradition and Modern Transformation, ed. Korean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 Elizabeth, N.J. and Seoul: Hollym, 2004, pp. 43–54.
  • "Koreanische Musik" (in collaboration with Lee Hye-gyu) in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Kassel: Bärenreiter Verlag, 1980. Second printing in Aussereuropäische Musik in Einzeldarstellungen. München and Kassel: dtv and Bärenreiter Verlag, 1980.
  • Confucian Gentlemen and Barbarian Envoys: The Opening of Korea, 1875-1885. Seattl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1977. 310 pp. Second printing: 1983.
  • "The Tradition: Women during the Yi Dynasty." In Virtues in Conflict: Tradition and the Korean Woman Today. Ed. by Sandra Mattielli. Seoul: Royal Asiatic Society, 1977. pp. 1–47. Second printing: 1983.
  • "Neo-Confucianism: The Impulse for Social Action in Early Yi Dynasty Korea, "The Journal of Korean Studies 2 (1980): 71-111.
  • "Self-cultivation for the Governance of Men: The Beginnings of Neo-Confucian Orthodoxy in Yi Korea," Asiatische Studien XXXIV.2 (1980): 9-39.
  • "Reject the False and Uphold the Straight: Attitudes Toward Heterodox Thought in Early Yi Korea." In The Rise of Neo-Confucianism in Korea. Ed. by Th. William de Bary and JaHyun Kim Haboush.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5. pp. 375–410.
  • "Neo-Confucianism in Action: Agnation and Ancestor Worship in Early Yi Korea." In Religion and Ritual in Korean Society. Ed. by Laurel Kendall and Griffin Dix. 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Korea Research Monograph 12, 1987. pp. 26–55.
  •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A Study of Society and Ideology. Harvard-Yenching Institute Monograph, No. 36. Cambridge, Massachusetts: Council on East Asian Publications, Harvard University, 1992. 439 pages. Paperback edition, 1994. ISBN 0-674-16088-6. Korean translation: Han'guk sahoe ŭi yugyojŏk pyŏnhwan. Trsl. by Yi Hun-sang. Seoul: Acanet, 2003. Second Korean edition: Seoul: Nŏmŏ puksŏ, 2013.
  • Culture and the State in Late Chosôn Korea. Coedited with JaHyun Kim Haboush. Harvard East Asian Monograph 182, Harvard-Hallym Series. Cambridge, 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1999. ISBN 0-674-17982-X.
  • "The Practice of Confucianism: Ritual and Order in Chosŏn-Dynasty Korea." In Rethinking Confucianism: Past and Present in China, Japan, Korea, and Vietnam. Ed. by Benjamin Elman, John B. Duncan, and Herman Ooms. Los Angeles: UCLA Asian Pacific Monograph Series,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2002. pp. 292–334. ISBN 1-883191-06-8
  • "Propagating Female Virtues in Chosŏn Korea." In Women and Confucian Cultures in Premodern China, Korea, and Japan. Ed. by Dorothy Ko, JaHyun Kim Haboush, and Joan R. Piggott.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 pp. 142–169. ISBN 0-520-23105-8 (cloth); ISBN 0-520-23138-4 (paper).
  • "Abstract History of the Kwangsan Kim." In Kugyŏk Och'ŏn se'go (Translation of Och'ŏn se'go into modern Korean), Andong: Han'guk kughak chinhŭngwŏn, 2005. 2 vols.
  • Under the Ancestors' Eyes: Kinship, Status, and Locality in Premodern Korea. Harvard East Asian Monographs 378. Cambridge, 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2015. ISBN 978-0-674-50430-1
  • "Kimchi-Erinnerungen an Südkorea." In S(e)oul food. Koreanisch-kulinarische Erinnerungen mit Bildern von Cookie Fischer-Han. Ed. by Mareile Flitsch. Zürich: Völkerkundemuseum der Universität Zürich, 2016. pp. 64–67.

In a statistical overview derived from writings by and about Martina Deuchler, OCLC/WorldCat encompasses roughly 18 works in 56 publications in 4 languages and 1,694 library holdings.[2]

Honors

1993Wiam Chang Chi-yŏn Memorial Award for Korean Studies
1995Reischauer Memorial Lectures at Harvard University
1995Order of Cultural Merit (Eun-Gwan, Silver Crown), Republic of Korea
2001George L. Paik Scholarship Award (Yongjae haksulsang) der Yonsei University, Institute of Korean Studies, Seoul
2001Citation of Appreciation for "outstanding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Studies in the World" from Korea Foundation, Seoul
2006Elected Corresponding Fellow (H3) of the British Academy, FBA.
2008Honorary Member of the British Association of Korean Studies (BAKS)
2008First Korea Foundation Award for Contributions to Korean Studies
2009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AAS), Lifetime Achievement Award, 2009.[3]
2011Honorary Member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Seoul
2018Award Honorary degree by the Faculty of Humanities, University of Zurich

References

  1.  Katalog der Deutschen Nationalbibliothek (DNB), Deuchler, Martina
  2.  WorldCat Identities Archived 2010-12-30 at the Wayback Machine: Deuchler, Martina 1935-
  3.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AAS), 2009 Award for Distinguished Contributions to Asian Studies Archived 2008-05-17 at the Wayback Machine, retrieved 201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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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나 도이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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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나 도이힐러
Martina Deuchler
작가 정보
출생1935년 9월 23일(90세)
스위스 취리히
직업역사학자, 저술가, 대학 교수
학력하버드 대학교
장르역사학
수상용재학술상
은관문화훈장

마르티나 도이힐러(독일어: Martina Deuchler 도이흘러[*], 1935년 9월 23일~)는 스위스의 역사학자, 저술가이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1년에서 2001년까지 동양 아프리카 연구 학원에서 한국학 교수를 지냈다. 1995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

  • 《한국의 유교적 변환 - 사회와 이데올로기 연구》(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A Study of Society and Ideology, 1992)
  • 《조선 후기 문화와 국가》(Culture and the State in Late Chosôn Korea, 김자현과 공저, 1999)
  • 《조상의 눈 아래에서 - 한국의 친족, 신분 그리고 지역성》(Under the Ancestors' Eyes: Kinship, Status, and Locality in Premodern Korea,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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