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집 -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조경희 (지은이)사계절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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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경희는 재일조선인 3세로, 2001년 12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암송해온 할아버지의 본적지, ‘경상북도 경주군 내남면 이조리’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경주역에 도착해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고 택시에 올랐지만, 이상하게도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희미해졌다. 그날 그는 평생 암송해온 ‘고향’을 눈앞에 두고 돌아섰다. 디아스포라에게 고향은, 그리고 집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의 첫 번째 단독 저술인 『낯선 집』은 이 미완의 귀향에서 출발해, “주어진 장소로의 귀환이나 진정한 집을 찾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곳을 집으로 만드는 실천”이라는 시각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에 접근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동포들이 마주하는 시민권의 경계, 한국과 일본에서 나란히 ‘정상성’의 외피를 입고 있는 혐오의 정동, 그리고 날 선 경계 위에서 서로를 돌보고 관계를 회복하며 삶의 자리를 엮어온 재일여성들의 실천을 가로지른다.
외국인에게 어느 선까지 정치적 권리를 허용할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여기에는 이른바 1세계 출신과 3세계 출신의 차이까지 작동한다)과 난민 혐오, 자국민 우선권 또는 독점권을 내건 배외주의의 생생한 현장들이 한일 양국의 오가며 펼쳐진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어느 쪽 주류담론에도 온전히 담기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주목한다. 거기에서는 한일 양국의 경계가, 자국과 외국을 가르고 인종과 민족과 성별과 그 밖의 다양한 차이를 구별하던 차별이, 두 사회를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추고 있다. 이제 그 경계와 차별 위에서 삶을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목차
들어가며: Home is some-where
1부 시민의 경계
‘돌아온’ 불완전한 동포들: 디아스포라의 귀환이주
안전의 경계와 (비) 가시화되는 신체: 재난시대 주민의 권리
배반당한 다문화주의: 한국사회의 난민 혐오
‘재일시민’이라는 미완의 기획: 일본 지방참정권 문제의 좌절
2부 혐오의 거울
역사수정주의와 백래시의 결합: 새역모와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혐한’과 식민주의적 편집증
‘우리’ 안의 역사부정: 자기부정으로서의 『반일종족주의』
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 네이티비즘과 반젠더의 정동 정치
3부 사이공간의 페미니즘
일본의 미투운동과 포스트페미니즘
동시대적 정동과 번역 불가능한 신체성: 케이문학·페미니즘·문화번역
포스트식민페미니즘의 (재)소환: 1990년대 재일여성들의 위안부운동과 정체성 정치
재일여성의 교차성 실천과 반혐오의 정동
마치며: 집을 향한 길 위에서
주
접기
책속에서
P. 5 경계는 항상 누군가를 바깥으로 밀어내면서 유지된다. 누가 공동체의 성원으로 인정되는가, 누가 안전을 보장받을 자격이 있는가, 누가 끝끝내 바깥에 남겨지는가. 경계에 관한 담론이 넘쳐나는 오늘에도, 경계선의 실제적 작동과 그 경계 위 낯선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묻는 일은 여전히 절실하다. _「들어가며 」
P. 26 재일조선인들은 식민지 시기부터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탈국경적 관계망을 형성해왔다. 다만 해방 이후 오랫동안 문화적·정서적 유대의 형태로 유지되어온 고향과의 연결은 21세기에 들어 이동성과 통신기술의 발달, 제도적 변화 등을 배경으로 보다 일상적인 생활 실천으로 확장되었다. 자이니치들의 생활권은 일본 내 체류를 넘어 다층적 공간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_「‘돌아온’ 불완전한 동포들」 접기
P. 53 이 사례들은 의도적 배제라기보다는 전적으로 무지와 무관심의 결과였다. 또한 이것은 그동안 재외동포와 이주민을 ‘국민/지역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태만의 결과였다. 여전히 당사자의 호소와 고발이 있어야만 문제에 주목하는 현실 그 자체가 주민으로서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내국인을 핵심으로 하고 그 주변부에 재외동포, 탈북자, 결혼 이민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을 조건부로 배치하는 선별적이고 위계적인 주민관리 체계는 끊임없이 자격 미달인 ‘잉여 주민’을 만들 뿐이다. _「안전의 경계와 (비)가시화되는 신체 접기
P. 118 자신들을 ‘풀뿌리 네트워크 국민운동단체’로 칭하는 일본회의는 활동 목적을 ① 아름다운 전통(황실) 중시, ② 신헌법 제정, ③ 진정한 보수 정치의 실현, ④ 도덕적 교육 환경 실현, ⑤ 나라의 안전과 세계의 평화 공존, ⑥ 국제 이해와 우호 친선 등으로 정리하고 있다.21 이들은 종교적인 내용은 물론 ‘천황제’나 ‘개헌’ 같은 노골적인 정치 용어를 지양하고, ‘아름다운 일본’, ‘전통문화’, ‘긍지 높은 나라 만들기’ 같은 추상적이고 듣기 편한 단어를 사용한다. _「역사수정주의와 백래시의 결합」 접기
P. 145 한편 많은 재일조선인들에게 재특회 시위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 혐오발언 피해를 직접 겪은 조선학교 관계자와 학생들에게는 폭언으로 인한 상처, 일본사회에 대한 불신, 자존감 파괴 등 심각한 후유증이 남았다.35 혐한이라는 시대적 정동을 식민주의적 폭력과 낙인이라는 역사적 기억과 분리할 수 없다. 기억의 소거와 피해자화가 반복될수록 더 강한 역사부정과 혐오가 이어질 것이다. _「‘혐한’과 식민주의적 편집증」 접기
P. 238 강고한 가부장제를 경험해온 재일조선인사회를 떠올릴 때, 김지영이라는 표준화된 여성상보다 '엄마 오미숙'의 구조적 위치, 즉 재생산 노동과 돌봄을 통해 디아스포라적 생활세계를 지탱해온 여성들의 삶이 삭제되어서는 안 된다. 강렬한 냄새와 이질적인 신체성을 지닌 재일사회는 오랫동안 문학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재현되어왔고, 일본사회는 그 타자성을 주변부에 묶어두거나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해왔다. _「동시대적 정동과 번역 불가능한 신체성」 접기
P. 248 1990년대 재일여성들은 자신들의 교차적 위치에서 이른바 진보적 재일남성들의 가부장적 논리와 일본인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비역사성을 동시에 비판하는 담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김부자는 1976년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선구적으로 고발한 재일남성 지식인 김일면의 『천황의 군대와 조선인 위안부』의 의의에 주목하면서도, “‘더럽혀진 몸’, ‘결혼할 여지가 없다’고 바라보는 전통적 정조 관념이야말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말살해온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_「포스트식민페미니즘의 (재)소환」 접기
P. 271 신숙옥辛淑玉, 최강이자崔江以子, 야스다 나쓰키安田菜津紀 등 재일여성 당사자들에 의해 재일여성을 향한 인종차별과 여성혐오의 복합적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반도에 뿌리를 둔 재일여성이자, 기자·작가·활동가로서 공적 발언을 수행해온 ‘말하는 여성들’이었다. 이들을 ‘불온한 존재’로 낙인찍는 혐오발언이 시사하는 바는, 재일여성이라는 신체가 오랫동안 혐오와 욕망의 기호로 소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와 경험은 줄곧 공론장에서 주변화되었다는 역설이다. _「재일여성의 교차성 실천과 반혐오의 정동 」 접기
P. 294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서 삶과 앎을 접합하는 번역자로 사는 일은 나름의 기술과 통찰력을 길러준다. 국민 정체성의 동질성이 강한 이 사회에서 어설픈 한국어를 교정하며 “한국사람 다 됐다”는 말을 듣다 보면 점점 더 이질적이고 혼종적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서 산 시간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조선말과 일본말이 뒤섞인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묵직하게 울린다. 적응할수록 경계의 감각이 불쑥 나타나는 이 평범한 복잡함. 그런 점에서 디아스포라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와 기억이 충돌하는 경계의 감각을 간직하는 방식에 가깝다. _「마치며」 접기
P. 8 여러 글을 모으며 내가 길어 올린 것은 뿌리와 고향을폐기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과거에 가두지 않는방식으로 재구성되는 집home의 상상이다. 디아스포라에게필요한 것은 회귀적인 귀환 서사가 아니라 내부의 차이와경계를 허용하는 열린 집을 구상/구성하는 일이다. -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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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조경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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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열림교양대 및 평화월딩연구소 교수.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였고 「제국일본/식민지조선의 사회사업과 민중통치」 연구로 도쿄외국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탈식민주의와 젠더의 관점에서 일본사회·문화,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문제 등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질서를 이동과 경계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작업을 진행해왔고, 최근에는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정동 정치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주권의 야만: 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한울, 2017), 『‘나’를 증명하기: 동아시아에서 국적, 여권, 등록』(한울, 2017), 『포스트 냉전과 팬데믹: 오키나와의 코로나 경험과 정동』(소명출판, 2021), 『残余の声を聴く: 沖縄‧韓國‧パレスチナ』(明石書店, 2021) 등을 동료 연구자, 활동가들과 함께 썼다. 또한 『동아시아의 역사부정과 혐오 정동』(소명출판, 2025)을 책임편집하고 『보통이 아닌 날들: 가족사진으로 보는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 여성의 삶』(사계절출판사, 2019)의 한국어판을 감수했다. 접기
최근작 : <낯선 집>,<동아시아의 역사부정과 혐오 정동>,<수용, 격리, 박탈> … 총 1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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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분야 : 청소년 인문/사회 2위 (브랜드 지수 279,208점), 전쟁/평화 이야기 2위 (브랜드 지수 18,172점), 청소년 소설 2위 (브랜드 지수 829,945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귀환을 포기한 자리에서 다시 발견한 ‘집’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는 흔히 하나의 공식을 따른다. 고향에서의 이산, 타향에서의 수난, 그리고 언젠가 이루어질 귀환. 상실한 기원을 회복해야 이산의 삶이 끝난다는 이 회귀의 서사가 그동안 한국사회가 자이니치를 바라본 방식이다. 그러나 『낯선 집』은 정반대의 장면에서 출발한다. 일본에서 살면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암송해온 한국의 본적지를 눈앞에 두고 택시를 돌린 순간, 조경희는 귀환으로 이산을 끝내는 대신 ‘미완의 귀향’을 선택했다. 창밖으로 이어지는 겨울 들판과 낮은 산들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고향’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내가 있는 바로 이곳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고향은 돌아가야 할 저곳이 아니라 내가 있는 장소 바로 여기로 바뀌었다.
역사는 하나의 기원에서 직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과거의 파편들이 불현듯 번쩍이는 순간들로 구성된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 개념을 빌리자면, 내가 그날 택시에서 놓아버린 것은 고향이 아니라 고향으로 향하는 단선적이고 목적론적인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한 이산과 수난, 그리고 귀환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_「마치며」, 295쪽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삶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차별과 혐오에 맞서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있는 재일·이주·여성의 삶을 좇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들이 환대받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자기만의 집을 지어온 과정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그가 제시하는 집 만들기homing는 원래의 둥지로 돌아가는 ‘귀소’가 아니다. 장소로의 귀환이나 진정한 집을 찾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곳을 집으로 만드는 실천이다.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관계를 엮고 안전을 조직하며 낯선 장소를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가는 일이다. 주목할 점은 이 실천이 철저히 젠더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관계를 엮고 안전을 조직하는 일, 곧 집을 만드는 노동은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돌봄노동과 분리될 수 없었다. 재일조선인 연구와 페미니즘, 정동 이론을 교차시키는 이 책의 시각은 여기서 나온다. 『낯선 집』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결핍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기어이 집을 엮어온 사람들—특히 여성들—의 실천을 가리킨다.
한국은 ‘돌아온’ 동포들의 집이 되었을까?
1부 「시민의 경계」는 한국 안을 바라본다. 20세기 초 일본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수많은 ‘조선인’이 나라를 떠났다. 오늘날에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중국 간도 지역에 터전을 잡았던 조선족,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던 고려인 등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환이주’가 늘고 있다. 그러나 돌아온 동포들에게 한국은 온전한 집이 되어주지 못했다. 지은이는 재한 자이니치들의 보육료 지원 헌법소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케이방역’의 성공에 가려진 재외동포와 이주민 배제 정책, 2018년 예멘 난민 사태로 드러난 다문화주의의 폐쇄성을 차례로 짚는다. 그리고 2024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상대국의 우리 국민들은 어떤 참정권도 보장받지 못하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논리적 근거도 없고 실익도 없다”는 정치인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짙은 기시감을 느낀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 우파가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을 가로막으며 반복해온 논리가 한국에서 ‘상호주의’의 이름으로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배제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혜적 포용이 아니다. 국경을 넘는 이동 속에서 집과 정체성은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중첩된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제도와 인식을 극복하는 일이 배제의 경계를 허무는 첫 단계이다.
재한 자이니치들은 일본과 한반도 남북에 걸친 삶이 불가피했던 개인적 경험을 역사화하고, 나고 자란 일본과 조국 한반도에 대한 이중 혹은 삼중의 귀환권을 정당한 권리로 요구하고 있다. … 재한 자이니치에게 일본은 ‘재일’로 살아온 역사와 기억의 장소이며, 여전히 가족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다. 동시에 한국에서의 권리와 사회적 승인은 ‘재한’으로서의 삶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다. … 그것은 일본과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상상하고 일상에서 그 경계를 허물어가는 과정이다. _「‘돌아온’ 불완전한 동포들」, 37쪽
이주노동이 없으면 공장이 멈추고, 식당이 문을 닫으며, 이삿짐조차 옮길 수 없는 오늘의 한국에서, ‘복수의 집을 가질 권리’는 더 이상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혐오는 어떻게 정상이 되었나
2부 「혐오의 거울」은 일본사회가 지난 30년 동안 지나온 혐오의 궤적을 추적한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일본회의’로 대표되는 역사수정주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역사전쟁, 재특회의 노골적이고 위협적인 헤이트스피치, 그리고 『반일 종족주의』가 보여준 ‘한국의 역사부정’까지 살피면서 지은이는 한일 양국에서 부정론이 동시대의 산물로 자라났다고 말한다. 그가 혐오를 분석하며 던지는 질문은 집요하다.
‘이 두려움’과 ‘저 두려움’ 사이에 있는 깊은 낙차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두려움은 누구의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공포를 말하는가. 그것은 타당한 공포인가. _「‘혐한’과 식민주의적 편집증」, 146쪽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 노골적인 혐오발언을 규제하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배제의 언어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안전, 상식, 질서, 국민의 권리, 여성 보호 같은 ‘정상화된’ 언어로 교체되었다. 평범한 말로 평범하지 않은 맥락을 뱉어내는 혐오발언은 일상을 더욱 심각한 긴장상태로 몰아갔다. 2025년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인 퍼스트’를 내건 참정당의 약진이 그 귀결이었다.
“돌아가라”거나 “쫓아내자”는 노골적인 표현은 자취를 감추었을지라도, “일본인 퍼스트”나 “이민 반대” 같은 구호가 동일한 배제의 효과를 보다 제도적이고 정당화된 언어로 수행하고 있다. _「헤이트스피치 이후 배외주의의 ‘정상화’」, 174쪽
2부에 ‘혐오의 거울’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이 지나온 이 궤적이 고스란히 한국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을 1부에서 본 한국의 장면들과 겹쳐 볼 때, 일본의 궤적은 마치 예고편처럼 읽힌다. 코로나 초기 ‘우한폐렴’이라는 호명과 함께 쏟아진 중국 포비아는 서울 대림동과 가리봉동의 조선족 동포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태원 클럽에서의 감염은 ‘게이클럽’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어 성소수자를 불안하고 위험한 존재로 오염시켰다.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앞에서는 한국의 다문화주의가 내세우던 포용성이 파괴되었고, ‘여성의 안전’을 내세워 난민 배제를 정당화하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이 대목에서 조경희는 스마트폰을 소지한 난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감각이 여성의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고 축소하는 태도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혐한과 한국의 난민·이주민·특히 조선족 혐오, 일본의 역사부정과 한국의 뉴라이트는 이렇게 서로를 비추며 몸집을 불렸다. 안전과 상식의 언어로 정상화되는 배제가 이제는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다. 따라서 일본을 비판하는 일은, 우리 안의 혐오를 직시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돌봄과 회복의 ‘집 만들기’
3부 「사이공간의 페미니즘」에서 책은 다시 집 만들기의 장면들로 돌아온다. 이토 시오리로 상징되는 일본의 미투운동,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한 한국 여성문학의 재발견은 표준화된 여성상에 균열을 만들었다. 특히 ‘김지영’에게 공감이 집중되는 동안 가정노동과 돌봄으로 디아스포라의 생활세계를 지탱해온 ‘엄마 오미숙’의 자리는 삭제되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은 가부장제 극복과 성차별 철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에서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혹시 나였을 수도 있다”는 신체적 감각으로 받아들인 재일 2세 여성들이 진보적 재일남성들의 가부장적 논리와 일본인 페미니스트들의 비역사성을 동시에 비판하며 자신들의 교차적 위치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계보의 끝에서 지은이는 작가 이신혜의 싸움을 조명한다. 재특회의 혐오발언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 이신혜는 2017년 최종 승소했고, 법원은 그를 향한 공격이 “원고가 여성이라는 점에 착목하여 그 외모 등을 모욕하는 표현을 사용한 점에서 여성차별이 결합된 복합차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이 중첩된 복합차별을 일본 사법부가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이신혜는 상처 입은 몸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싸움을 위해 법정에 갈 때마다 “50년 전 어미니가 입던 하늘색 한복”을 입고 갔다.
여성들이 민족의 경계를 재생산하는 ‘공동체의 전달자bearers of the collective’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의 몸을 활용한 저항은 여전히 그러한 지배적 규범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신혜에게 한복은 민족과 전통을 재현하거나 과시하는 표상이 아니라, 민족과 여성이라는 복합차별 속에서 끊임없이 위협받아온 자신의 몸을 드러냄으로써 취약성을 가시화하고 혐오의 폭력이 만들어낸 관계를 전복하는 시도이다. 따라서 한복을 입는 행위는 재일여성이라는 교차적 위치를 살아내며 관계를 엮고 삶의 기반을 회복하는 ‘집 만들기’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_「재일여성의 교차성 실천과 반혐오의 정동」, 288쪽
혐오에 맞서는 여성들의 돌봄과 관계 회복의 실천은, 상실과 결핍으로 각인된 디아스포라의 정동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다.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살아갈 새로운 관계와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집 만들기다. 『낯선 집』은 일상을 지탱해온 여성들의 실천에 이렇게 이름을 부여한다. 단일한 정체성을 요구하는 백래시에 맞서기 위해 우리에게는 경계 위에 머무를 자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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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열려 있는 집 만들기를 실천하기 위하여
한국 사회 내부에도 얼마나 많은 실금과 빗금들이 있을까, 상상할 때마다 꼼짝 없이 그 줄에 걸린 듯 답답합니다. 다른 한편 상상할 필요조차 없이 굵고 단단한 줄들, 그 경계 밖에 존재할 것을 강요받은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낮고 작은 목소리들을 선명하게 기록한 책이 반갑고 감사합니다. 귀한 배움의 기회로 삼아 일신의 불평을 잠시 놓고 찬찬히 읽습니다.
“디아스포라에게 고향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신화적 장소이다. 귀환은 정체성의 결여를 채우는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경계와 마주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성장이란 건, 양육자를 떠나, 생가를 떠나, 고향 혹은 제 나라도 떠나 살게 될 수도 있는 사건이다. 떠나서 좋은 이들도 있겠지만, 일련의 이별은 그리움을 품게도 한다. 내 그리움의 성격은 대개 homesick보다는 nostalgic이었다. 부재를 선명히 인지하지만 그리운, 그 인지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슬퍼지는.
재구성을 거듭하는 기억 속 ‘고향’은 내게는 빛나고 행복한 내용일 수 있으나, 그렇게 기억될 수 있게 한 많은 수고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와 불평등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모든 수고를 감당한 분들이 가장 애틋하게 그립다.
떠난 분들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때로 재현해보는 내 기억 속 고향은, 그래서 부재와 상실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현실의 어디로도 ‘귀환’할 수가 없다. 그 비숫한 고향의 복원이란 현존하는 이들이 친밀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을 만드는 노력뿐이다.
“한국 거주 재일조선인, 즉 ‘재한 자이니치’라는 낯선 삶의 제도적 조건과 일상의 경험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의 상실과 부재를 몇배나 농축해서 느낄 것 같은 이들을 이 책에서 만난다. 선명한 공간적 경계를 넘나들며 축적된 경험, 그 경험으로 인해 평생 어디서 산다고 해도 ‘진짜 한국인’이 되기는 어려운 이들 -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분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혐오 정동”과, 실패를 보장하는 갖가지 정책들을 경험한 역사의 증인이다. 동시에 낡고 그릇된 절대화와 치명적 좌절을 경고하고 되짚어 재사유와 질문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한국에서는 반공주의나 가부장제(여성혐오)의 영향이 짙게 반영되었다면, 일본에서는 식민주의/인종주의(혐한)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도 있겠지만, 혐한 - 혐오 - 은 그렇지 않다. 혐오는 감정이지만, 그 분출은 타자 집단을 위계로 누르는 장치로 작동한다. 게다가 혐오 - 증오 - 는 감정이지만, 즉발적인 표현 행위가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혐오발언이 무한 확산되고 무한 재생산되는 온라인 소통 방식을 갖췄다.
말로써도 상대를 죽일 수 있다. 심각하게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 한탄스럽게도 이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는 비열한 정치인들이 있다. 휩쓸리지 않고 저항하는 지성은 역사를 보는 방식으로도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매번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공포를 말하는가. 그것은 타당한 공포인가.”
“타자성을 지우거나 평균의 서사로 환원하지 않고, 그 어긋남과 불일치를 견디면서 서로를 ‘듣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가.”
아무 때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아도, 동일한 존재란 없다. 서로 다른 존재의 생존 방식은 필연코 “ 차이를 매개로 연결되는”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삶도 출발과 도착이라는 직선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디아스포라의 삶 역시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한 이산과 수난, 그리고 귀환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공들인 논문집 같은 이 책이 그 먼 길에 힘과 의지가 될 것이다.
“집은 그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 그리고 그 길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 속에 흩어져 있다.”
*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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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 2026-07-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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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집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재미 교포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를 통해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의 삶이 궁금했다. 소설에서는 일본에서 최하층의 삶을 살며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 수 없었고 파친코 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 아이를 교육을 시키고 신분상승을 꾀한다. 이 책은 재일동포 3세가 일본과 한국에 살며 경험하고 고민한 뿌리, 고향, 귀환, 디아스포라, 페미니즘, 인종차별, 혐오의 문제를 12편의 글에 담았다. 저자는 성공회 대학교에서 탈식민주의와 젠더의 관점에서 일본사회, 문화, 재일 조선인, 디아스포라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친다.
저자의 할아버지처럼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민단 재일동포는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한국적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고향인 한국에 돌아왔을 때 다른 이민자들이 받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차별적 위치에 처한다. 외국인이 아니므로 한국어 지원을 받지 못하고, 2015년 이후에야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있었고, 한국 남자와 결혼해도 엄마가 자이니치여서 정부로부터 아이 보육료 지원받지 못하고, 코로나 방역에서도 제외된다. 의도적 배제가 아니라 무지와 무관심때문이며, 내국인 중심주의가 아닌 거주를 바탕으로 한 주민권을 주장한다. 저자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디아스포라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해 보인다.
디아스포라는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타지로 떠돌게 된 사람들이다. 언뜻 세계 각국에 퍼져 사는 이스라엘 민족이나 내란으로 떠도는 난민을 떠올리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정착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있다. 저자는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불평등을 맞닥드린다. 그러나, 연대를 통해 하나씩 불합리함을 고쳐가는 힘을 보여준다.
일본인의 혐오는 생각보다 심각해보인다. 새역모와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역사수정주의가 혐오를 조장한다. 기본적으로 종교조직과 정치적 권력이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역사를 왜곡하여 교과서를 고치고자 하고, 대동아전쟁 긍정론과 일본군 위안부 부정론을 외친다. 역사부정, 국가주의, 도덕적 보수주의, 반페미니즘을 포함하는 신보수주의자 아베의 장기집권 동안 역사인식과 영토문제로 아시아국들과 갈등을 일으킨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혐한에 에너지를 쏟는 정치인과 만화가 하스미 도시코를 비롯한 작가, 언론인들과 넷우익의 헤이트스피치가 존재한다. 생산적이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고 유지하는 이유는 국민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뉴라이트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일본의 평가가 우호적이었음은 예상대로다. 안병직 교수의 제자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며 일본의 우파와 같은 소리를 낸다. 저자는 왜 전쟁 피해자가 가해자 입장에서 역사를 부정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대리인 흉내를 내느냐고 묻는다. 이들이야말로 식민화된 사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미투운동이 활발하지 못한 것은 처음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가 지국장을 고발했을 때 일본 경찰에 의한 2차 가해와 사법제도의 구조적 문제와 여론에서 전형적인 피해자상에서 벗어난다는 정상적이지 않은 이유다. 저자는 문제를 개인의 수준으로 축소시키고 정치성을 희석시키는 일본의 포스트페미니즘을 비판하고,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분위기를 페미니즘이 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한일간에 동시대적 연대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K문학에서 확산되었다. 이 소설은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한국의 앞서가는 페미니즘에 부러워했다고 하니 약한 연대도 점점 힘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경계를 긋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배타적인 분위기가 개인에서 사회, 국가로 퍼지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3세의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그 원인과 연대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책이다. 각 편의 글은 소논문과 같이 많은 정보와 자료를 참고하였고 비판은 물론 해결책도 제시한다. 더이상 떠돌지 않고 한국에 정착하려는 재일동포의 깊이있는 역사의식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해하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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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댁 2026-08-0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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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집,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낯선 집,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
조경희 저 │ 사계절
재일 조선인 3세로 살아온 삶은 어떤 것일까. 쉽게 상상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삶이다. 디아스포라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남의 삶을 함부로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 나는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이 책을 펼쳤다. 조경희라는 이름을 가진 재일 조선인, 일본에서 나고 자란 연구자의 목소리를 직접 만나 보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 책이 누군가를 대신해 말하는 책이 아니라, 오랫동안 경계 위에 놓여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연결해 나가는 기록이라는 점이었다.
1부 '시민의 경계'를 읽으며
재일 조선인과 귀환 이주민, 난민 등 국가와 시민권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
특히 '돌아온 불완전한 동포들'은 '귀환'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사람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온전한 소속감을 갖기 어려운 현실이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난다. 국적은 있어도 집은 없는 듯한 느낌 아마 저자도 발길을 돌린 이유가 아니었을까??
또 '배반당한 다문화주의 챕터에서는 한국 사회가 다문화를 이야기하면서도 난민과 이주민에게 얼마나 배타적인 시선을 보이는지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2부 '혐오의 거울'은 가장 무겁게 읽은 부분이었다. 일본 사회의 역사수정주의와 혐한 정서, 그리고 혐오가 어떻게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혐오를 특정 집단만의 문제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혐오는 사회가 만들어 낸 구조와 감정이 반복되며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진지하게 느껴졌다.
'우리 안의 역사부정'을 다룬 장에서는 한국 사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일본 사회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 사회 안의 배제와 혐오까지 함께 성찰하는 저자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이 책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부 '사이공간의 페미니즘'에서는 재일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식민주의와 젠더, 민족이라는 여러 층위와 교차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일본의 미투 운동과 재일 여성들의 위안부 운동을 함께 읽어 내려가는 부분 정말 정독했던 부분이다.
페미니즘을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로만 설명하지 않고, 각자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디아스포라라는 경험 속에서 다시 해석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교차성'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보여 주어 이해하기 쉬웠다.
재일 여성들이 겪는 차별은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만도, 재일 조선인이라는 이유만도 아니라 여러 정체성이 겹쳐질 때 더욱 복합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는 '집'이었다.
이 책에서 집은 단순히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다.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이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자리이며, 마음 놓고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제목의 이유가 여기 있었다.
학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문장은 비교적 차분하고 논지가 명확하다. 역사와 사회학, 젠더 연구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 가볍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그만큼 여러 번 생각하며 읽게 된다. 한 장을 읽고 잠시 멈춰 메모를 하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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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2026-08-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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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삶을 보다
#도서협찬 📚 낯선 집 by조경희
🌱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
잡다하고 불순한 목소리들과 함께 집은 길 위에서 만들어진다.
상처받으면서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로 나아가는, 그리하여 굴레를 벗어나는 삶들의 이야기! 🌱
~한국에서 태어나 여행 외에는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내게 "디아스포라" 라는 감성은 낯설다.
그저 막연히 물과 기름처럼 둥둥 떠있으면서 외롭고 고립된 느낌? 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제대로 보기에 앞서 나는 디아스포라의 정확한 개념을 먼저 이해하려 했다.
본래 살던 고향이나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나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현상을 말한다.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는 고려인, 조선족, 재일동포 들이 있고 미국과 독일에도 있다.
이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tv에서 종종 본 적이 있다.
"경계는 항상 누군가를 바깥으로 밀어내면서 유지된다. 누가 공동체의 성원으로 인정되는가, 누가 안전을 보장받을 자격이 있는가, 누가 끝끝내 바깥에 남겨지는가."
그 안에 있는 누군가의 기득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경계다.
이주동포들은 자신의 모국과 현재 사는 곳의 경계에 서서 차별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존중받지 못한다.
특히, 새로운 곳에서 나고 지란 1.5세대나 2세대들은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정착하지 못 하고 떠돌아야 하는 삶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 책에서는 특히 여성들의 삶에 주목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여성들은 성차별도 극심했던 때를 산 지라 그녀들이 겪었어야 할 부당함의 강도는 더 극심했다.
매 순간 폭행과 모욕, 성폭행 등 신변의 위협을 겪는 일도 허다했다.
그 중에서도 식민지국이었던 재일 조선인들은 사람으로 대우받지도 못했다.
이 책의 저자는 과거에서 부터 현재까지 경계의 삶을 살고 있는 이주여성의 역사를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하나하나 들여다 본다.
차별과 경계의 삶은 과거의 일 만은 아니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우스우면서도 아이러니한 건 경계의 아픔을 치열하게 겪었던 과거의 조선인들, 지금의 한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오는 난민들과 이주 여성들을 차갑게 대한다는 것이다. 그 방식과 시선이 과거 재일 조선인들이 겪은 것 못지 않게 꽤나 잔인하다.
잘못된 역사의 굴레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우리 주변에서 망령처럼 떠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비단 경계인들이 아니더라도 헤이트스피치, 복합차별 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혐오한다.
각자의 삶에 지쳐 희생자를 찾아 짓밟으려는 사냥꾼의 그것과도 같다.
여러가지로 마음이 착찹해지는 내용이었다. 한국여성이라면 꼭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sakyejul
🔅< 사계절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낯선집 #조경희 #사계절 #재일이주여성 #역사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 #서평 #교양도서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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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2 2026-07-2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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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집
<출판사 '사계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수자 혐오는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한 현상이지만, 혐오의 주요 대상과 표출 강도 등은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 p.126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실제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현실을 듣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경험하지 못했거나, 앞으로도 경험하기 힘든 세상을 책으로써 접한다는 것은 도전이면서 공부와 같은 일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인간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제일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의 역사도 나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세계를 접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선택한 책은 조경희 작가님의 사회학 도서다. 재일한국인이라고 칭하는 자이니치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을 접하게 되면서 관심이 생겼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문화를 습득한 이들은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으로서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이를 배우고 싶었다. 이미 어려울 것을 예상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기대감이 있었다.
작가님께서는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하신 분이다. 조부의 고향은 경상북도 경주이며, 작가님은 현재 한국의 한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시다. 책에는 작가님께서 한국과 일본을 다니시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는 이주민들의 경험을 통해서 한국의 시민권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를 묻는다. 두 번째는 이주민들을 위협하는 혐오의 양상을, 세 번째는 이주민의 '여성'이 곧 주제가 된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우선, 나는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한때 다문화사회의 현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전문적으로 자이니치 사회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거나 이주민 당사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로서도 개념이나 담론이 어렵게 다가왔다. 아마 처음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처음부터 깊고 넓게 급진적으로 다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정당마다 접근 기준이 달랐던 다문화 정책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었고, 2012년에는 당시 새누리당에서 필리핀 결혼이주여성인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또한, 진보인 민주당은 한국어 교실을, 보수인 새누리당은 자국어 배움 교실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내세웠다. 흔히 진보로 생각했던 다문화 정책을 보수 정당이 다룬다는 것을 의아하게 느껴졌던 사람으로서 이 부분은 흥미로웠다.
어렸을 때 사회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대한민국을 '백의민족', '한민족'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배우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배제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한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만큼 다른 생김새를 가진 이들도 많다. 이미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이 사회를 지금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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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2026-08-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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