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하야시 노리코.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하야시 노리코. Show all posts

2023-11-15

우호의 역사를 알자 한반도 연고의 사찰을 둘러싼 기획, 교토에서 19일 [교토부] : 아사히 신문 디지털

우호의 역사를 알자 한반도 연고의 사찰을 둘러싼 기획, 교토에서 19일 [교토부] : 아사히 신문 디지털:



우호의 역사를 알자 한반도 연고의 사찰을 둘러싼 기획, 교토에서 19일


유료 기사나카노 아키라2023년 11월 14일
필드워크 「사쿄 중의 조선」을 기획한 후미코 히로시(오른쪽)와 하야시 노리코씨=2023년 11월 4일 오전 11시 45분, 교토시 사쿄구, 나카노 아키라 촬영
[PR]

 한반도와 연고가 있는 사찰을 둘러싼 행사가 19일 교토시 사 쿄구 이다. 기획한 것은 교토로의 이주를 계기로, 뿌리의 땅과의 인연을 느끼는 친밀한 장소의 탐방을 계속하는 재일 코리안의 남성 이다 . 조상대대로 이 땅에 살아온 구가의 주민도 도래문화와의 관계를 말한다.

 이와쿠라에 살고 컨설턴트로 일한을 왕래하는 채광호씨(55)는 사카이시 출신. 고등학교까지 조선학교에서 배우고 오사카대에서 물리를 전공했다. 도쿄의 외자계 컨설팅 회사에 근무했지만 동일본 대지진 의 원전 사고를 계기로 가족과 옮겼다.


19일 필드워크 '사쿄 중 조선'이 있다. 참가 신청, 문의는 사무국(080・3785・9444).

 2012년 9월의 이사 당일, 신거리 근처의 신사에 참배하려고, 이시자(이와쿠라) 신사에 발길을 옮겼다. 유서를 설명하는 비석에 새겨진 제신 중 하나에 '신라'라고 있는데 눈이 멈췄다. 흥미롭게 조사하자 교토의 각 곳에 한반도와 연고가 있는 장소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윽고 히에이산 기슭의 가미코야에 있는 고민가를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고에몬」이라고 불리며, 오쿠도씨(카마도)가 있는 구가의 전 저택에는 자연 지향의 지역 주민들이 모여, 유기농업, 사토야마나 죽림의 재생, 수차 부활 등 다채로운 대처의 거점 으로 한다 있습니다.

 고민가에는 소유자의 임헌코…

2020-11-18

북한: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떠난 일본인 아내, 숨겨진 60년의 이야기 - BBC News 코리아

북한: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떠난 일본인 아내, 숨겨진 60년의 이야기 - BBC News 코리아:

북한: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떠난 일본인 아내, 숨겨진 60년의 이야기

이윤녕
BBC 코리아
2020년 11월 18일 오전 10:48



사진 출처,NORIKO HAYASHI
사진 설명,  재일조선인 남편과의 결혼식 기념사진을 든 미나카와 미츠코 씨는 현재 북한 원산에서 살고 있다


1959년 시작된 이른바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으로 당시 일본에서 많은 차별을 겪던 9만 3000여 명의 재일교포들이 일본을 떠나 북한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 곁에는 '조선인' 남편을 따라 함께 북한행 배에 오른 일본인 여성들이 있었다.

6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한반도에서도, 일본에서도 어느덧 잊힌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또 다른 여성이 있다. 사진작가 하야시 노리코 씨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1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그곳에 살고 있는 일본인 아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그들이 가슴속에 품어온 삶의 이야기는 최근 출간된 사진집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에 고스란히 담겼다.

60년 전 오늘, 975명이 배를 타고 북한으로 이주했다
월북한 미군 탈영병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
북한, '일본인 억류 관광객 관대히 용서하고 석방하겠다'


그 시절, 쉽지 않은 선택을 했던 '일본인 아내'들을 만나고 온 노리코 씨를 BBC 코리아가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반세기 전의 선택

일본에서 북한 관련 이슈라고 하면 대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떠올린다. 오래전, 어떤 이유에서든 자발적으로 북한에 건너간 이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노리코 씨는 북한 땅에 살고 있는 '일본인 아내'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재일 조선인 귀국사업으로 많은 일본 여성들이 북한에 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어요. 살아있다면 대부분 80-90대의 고령일 텐데 어떤 여성이 있었는지, 어떤 이름이었는지, 또 어떤 가족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졌어요."

이미 훌쩍 지나버린 세월에 지금이 아니면 그들의 삶을 취재할 수 없을 거라고 노리코 씨는 생각했다. 10년 혹은 20년 후에는 다들 세상을 떠나버릴 수 있으니 이야기를 들으려면 지금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정치적, 이념적 판단을 떠나 커다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종의 '선택'을 한 개개인의 삶에 집중하고 싶었다.

1959년부터 1984년 사이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약 9만 3000여 명의 사람들이 북한으로 떠났다. 그중에는 일본에서 '조선인' 남성과 결혼해 남편을 따라 북한행 배에 몸을 실은 일본인 여성 1830명도 있었다. 1962년 북송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간 사람 중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의 어머니인 고용희도 있었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당시 가장 큰 이유는 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생활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취업 제한으로 실업률이 일본인의 8배 정도 됐고 민족 차별도 심했죠. 일본에 있으면 아이들도 차별을 받을 수 있고 자녀가 대학에도 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해요."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 북한에서의 집과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은 당시 재일교포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그렇게 북한으로 향한 이들은 대부분 남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귀국'은 아니었다.

낯선 땅, 북한에서의 삶


일본에서의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북한으로 떠났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쉽지는 않았다. 특히, 상대적으로 생활 수준이 높았던 일본에서 살아온 '일본인 아내'들은 낯선 땅에서의 적응이 어려웠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NORIKO HAYASHI
사진 설명,  일본에서의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북한으로 떠났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쉽지는 않았다


"정착한 곳이 평양인지 시골인지에 따라 생활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고 해요. 그래도 평양에 사는 사람들은 괜찮게 지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골로 갔던 사람은 삶이 힘들었죠. 밥을 지을 때도 일본에서는 가스불로 밥을 했는데 북한에서는 점토 비슷한 걸 써서 불을 지펴야 했대요. 제가 만난 아내분들이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생활 수준이 일본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건 알 수 있었죠."


당시는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이 과학 기술을 통해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등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일본에서도 사회주의 학생 운동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 중에는 사회주의인 북한에 가면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꿈을 품고 간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을 따라 낯선 북한 땅에 내린 '일본인 아내'들은 당시 자신의 남은 삶을 모두 이곳에서 보내게 될지 몰랐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으로 북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간간이 진행되던 고향방문사업이 중단돼 더 이상 모국 땅을 밟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복잡한 감정인 것 같았어요. 이 50-60년의 시간이 너무 길다 보니까 어느 날은 엄청 후회를 하며 일본에 돌아가고 싶어 울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을 느낀 순간도 있었죠. 북한에 처음 도착했을 때 찍은 사진도 보여주셨는데 그걸 보면서 '아, 이때는 행복했었지' 하실 때는 저도 그런 감정이 느껴졌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들 복잡한 여러 감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고향인 일본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된 부분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아쉬워하는 점이었다. 그리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가볼 수 없었고 평범하게 왕래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가족들과도 인연이 끊어졌다.

"처음 일본을 떠날 때 지금의 저와 비슷한 나이인 20대, 30대에 떠났잖아요. 그때는 당연히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희망대로 되지 않았죠. 부모님을 간병조차 하지 못해 너무도 죄송한 마음을 갖고 계셨어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2시간 만이라도 좋으니까 일본에 가서 부모님 산소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라고요."

사라져가는 60년의 기억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고국에서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에 이제 고령이 된 아내들은 노리코 씨의 방문을 반겨줬다. 지나온 세월만큼 변했을 일본의 최근 모습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들을 여러 가지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데 타키코 할머니가 기억에 남아요. 이 사진이 돌아가시기 3주 전쯤 찍은 건데 제가 마지막에 돌아가는 날 왠지 그냥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악수를 하며 '다시 만나요' 하는데 '가지 마세요' 하면서 제 손을 꽉 잡으시더라고요. 그때 잡은 손의 느낌이 지금까지도 잊히지가 않아요."



사진 출처,NORIKO HAYASHI
사진 설명,  조선인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있는 이데 타키코 씨

사실 북한에 살고 있는 '일본인 아내'들은 일본에서 사실상 잊힌 존재가 됐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돼버린 것이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고 차별을 피해 북한으로 건너간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분들이 일본을 떠날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만약 나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런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부모님이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지만 그래도 사랑에 빠진 그 남자가 정말 성실하고 멋진 사람이었다고 했어요. 어쩌다 좋아하게 된 남성이 일본인이 아닌 재일조선인이었고 그 이유만으로 반대에 부딪혔죠."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아이를 먼저 가진 사람도 많았어요. 지금도 일본에서는 혼전 임신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이 많은데 5-60년대 당시 그런 결정을 했다는 건 의지가 대단했다는 거죠. 일본에 돌아오지 못해 가족과 연을 끊게 돼 가여운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여자로서 공감도 가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이유


일본인 프리랜서 사진작가로서 북한 현지 취재를 한다는 건 많은 제약이 따르는 일이었다. 양국 간 교류도 거의 없는 데다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취재는 더욱 어려웠다. 그럼에도 일본 내 북한 관련 NGO 활동을 통해 전문가와 교수 그룹에 동행해 2013년 처음으로 방북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사진 출처,NORIKO HAYASHI
사진 설명,  노리코 씨는 '일본인 아내'들의 삶을 기록하며 흑백 논리로 접근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

"처음에는 제약이 많았죠. 하지만 여러 번 가면서 처음에는 찍을 수 없었던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원래는 이분들을 지정된 호텔에서만 만날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집에서도 볼 수 있게 됐어요. 여러 번 만날 수 있었던 분도 있고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죠. 나중에는 집에서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 이야기 한 경우도 있었고요."


노리코 씨는 '일본인 아내'들의 삶을 기록하며 단순한 흑백 논리로 접근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고 전했다. 현실에는 여러 가지 인생이 있는 만큼 무의식중에라도 그들의 선택을 두고 '행복' 혹은 '불행'으로 임의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떠나온 가족을 반평생 넘게 그리워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산가족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와도 맞닿아있다.

"한국에도 북한에 있는 가족과 헤어져 있는 이산가족 1세대가 있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그들도 일본인 아내들과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산가족도 지금 만날 기회가 없으면 하나둘 세상을 떠나버리게 되는 것처럼 지금 그곳의 일본인 아내들도 그렇거든요. 한반도의 이산가족도 일본인 아내들도 모두 지금이 아니면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게 될 거예요."

관련 기사 더 보기



재일교포 북송: 60년 전 오늘, 975명이 배를 타고 북한으로 이주했다2019년 12월 14일



북한: '일본인 억류 관광객 관대히 용서하고 석방하겠다'2018년 8월 27일



월북한 미군 탈영병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2017년 12월 15일



2020-09-11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하야시 노리코 2020

 알라딘: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하야시 노리코
(지은이),정수윤 (옮긴이)
정은문고 2020-08-10

원제 : 朝鮮に渡った「日本人妻」: 60年の記憶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268쪽



---

책소개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역사, 재일교포 북송 60년. 남편을 따라 조선으로 건너간 일본인 아내를 취재한 포토 다큐멘터리. 1959년부터 1984년 사이에 이뤄진 재일조선인 귀국사업. 일본에서는 ‘귀환’, 한국에서는 ‘북송’이라고 불리는 귀국사업에 남편과 동행했다가 고령이 된 지금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사는 ‘일본인 아내’들. 정치적 긴장으로 일본 방문은 불가능해졌고, 잊힌 존재로 정체성은 분열되었으며, 그들의 목소리는 보도되지 않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희망을 품고 살까. 6년 동안 열한 번 진행한 방북 취재로 그녀들의 삶을 따라가 반세기의 기억을 잇는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1장. 원산에 사는 어머니와 딸: 1961년, 규슈를 떠나다

2장. 긴박한 상황 아래서: ‘화성-14’ 핵실험의 해에

3장. 아카시아의 추억: 홋카이도부터 배 속의 아이와 함께

4장. 최후의 잔류 일본인: 가족과 생이별, 조선의 아이로

5장. 닿을 수 없는 고향: 감동의 일본인 아내들

에필로그



책속에서



P. 4~6 한국의 독자들에게



1959년부터 1984년 사이에 진행된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으로 약 9만 3,000명이 일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중에는 일본에서 조선인과 결혼해 남편을 따라 바다를 건넌 ‘일본인 아내’라 불리는 여성 약 1,830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10년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한 이래 재일조선인의 수는 급증하여 1945년 종전 당시 20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제가 취재한 일본인 아내의 남편들도 교육을 받기 위해 또는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왔거나, 광산 노동자로 징용되어 강제로 끌려온 재일 1세 아니면 그 자녀로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2세였습니다.

1950년대 일본에 사는 재일조선인의 완전실업률은 일본인의 약 8배에 달했고, 그들은 빈곤과 민족 차별 등 고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시작된 것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의 ‘귀국사업’이었습니다. 몇 년 안에 일본을 오갈 수 있게 되리라고 믿은 일본인 아내들은 니가타항에서 북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후로 60년이 흐른 지금, 일본인 아내들은 바다 건너에서 아이와 손자 손녀를 기르고 남편을 돌보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처음 방북한 것은 20대 때였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취재한 일본인 아내들은 반세기 전, 저와 비슷한 나이에 일본을 떠났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 시절 젊은 일본인 아내들이 시대에 휘둘리면서도 일본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자신의 의지로 인생의 길을 모색하고 개척한 점에 깊이 공감해 오늘까지 취재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반도 정세가 긴장과 완화를 반복하던 2013년 이후 열한 번의 방북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미 고령이 된 그녀들을 인터뷰하면서 일본 각지의 고향도 찾아가고 여러 개인의 기억을 조금씩 이어가며, 지금을 살아가는 만년의 일본인 아내 모습을 담았습니다.  



P. 37~38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이란



1959년 12월부터 1984년 7월까지 일본에 사는 한반도 출신 사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주하는 귀국사업이 진행됐다. 주최는 북한과 일본적십자사. 이 사업으로 일본에서 바다를 건넌 재일조선인과 그 가족은 약 9만 3,000명이다. 그중 일본인 아내와 그 자녀 등 일본 국적 소지자는 약 6,800명, 일본 국적 일본인 아내는 약 1,830명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재일조선인 남편과 결혼해 국적을 조선으로 바꾼 일본인 여성도 있을 터라, 실제로 일본인 아내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열한 차례 방북했고 주로 일본인 아내를 취재해왔다. 1910년 일본이 한일합병을 강제해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이래 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패전하기까지 일본에는 조선인이 급증했다. 1911년 겨우 2,500명이 조금 넘던 재일조선인이 1945년 패전 때는 약 200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조선총련을 중심으로 한 재일조선인 통계편람 쇼와56년판』, 공안조사청, 1981). 그 이유는 조선에서의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교육을 받기 위해, 일본인 배우자와 함께 살기 위해, 탄광과 군수공장 등 노동 징용이나 징병으로 전쟁 중 동원된 경우, 유학 등 다양하다.

내가 취재한 일본인 아내의 남편도 일본에 온 재일 1세 혹은 그들의 자녀로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2세다. 이 시기 일본에 건너온 조선인 대부분은 한반도 남쪽, 오늘날 한국 출신으로 알려졌다.  



P. 96~97 평양에 사는 일본인 아내



옛사람들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순치보거唇?輔車라 불렀다고 한다. 입술과 치아처럼 관계가 밀접해서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될 사이라는 뜻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조선 침략 등 어느 시기 그 관계가 무너진 적도 있었지만, 에도시대에는 조선사절단이 일본을 방문해 문화와 학문의 교류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메이지시대 ‘정한론’, 1910년 한국합병에 의해 이 관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1945년 일본 패전으로부터 3년 뒤 냉전으로 인해 분단된 한반도 북측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했다.

일본인이 지금 이 나라를 바라볼 때 그 시선의 끝에는 일정하게 고정된 나라의 이미지가 상을 맺는다. 일본인을 납치한 ‘기분 나쁜’ 나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핵실험을 반복하는 나라. 이 나라 이미지의 원천은 이 나라가 탄생한 이후, 특히 2000년대 이후 미디어 보도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한편 일찍이 식민지 시대의 기억은 잊히고 있다.  



P. 106~107 이 만남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2015년 10월, 나는 평양 시내에 사는 후쿠시마 아이즈 출신 일본인 여성 나라 키리코 씨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현관문을 열고 실내로 한 걸음 들어서자 키리코 씨는 “아! 내 조국 분이 오셨구나”라며 손을 내밀어주었다. 일본어가 유창한 아들과 함께 오래전 앨범을 보며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잘 웃는 여성이었다. 그날 나는 사진은 하나도 찍지 않았다. “다음엔 봄에 올 테니 그때 취재하게 해주세요. 가능하면 사진도요. 다시 만납시다” 하고 악수를 한 뒤 헤어졌다. 헤어지는 현관 앞에서 키리코 씨는 “기념으로 가져가세요”라며 희고 붉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반년 후 평양을 다시 방문했을 때, 키리코 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결국 내게는 그녀의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키리코 씨 얼굴이 내 기억 속에서 조금씩 옅어진다. 만약을 위해 사진 한 장이라도 찍을까 했는데, 당시에는 아직 이 나라에서 막 취재를 시작한 참이라 ‘만약을 위해’라는 어설픈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건 그만두었다. 쓸데없이 진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키리코 씨의 사진을 찍지 못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지금은 자연스레 대화를 하지만 그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취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키리코 씨의 죽음으로 통감했다.  



P. 111~112 안내인 이 씨와의 솔직한 대화



“남조선에 가본 적 있어?”

갑자기 이 씨가 물었다.

“응, 있어. 서울엔 친구도 있고.”

“남쪽 사람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여기 사람들하고 똑같아.”

이 씨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 다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역사와 언어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어. 같은 조선 민족이니까.”



나도 질문을 했다.

“일본을 어떻게 생각해?”

열차에서 마주 앉은 사람들에게 던진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이 씨는 창밖을 바라보더니 다시 내 쪽을 보며 대답했다.

“이런 말 하는 건 미안하지만…… 많은 조선인이 일본을 싫어해. 하지만 개인적으론 일본 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내가 안내했던 일본인들은 단 한 사람도 내게 기분 나쁜 인상을 심어준 적이 없거든. 모두 친절하고 예의 발랐어. 너도 그렇고.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면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데 나라와 나라가 만나면 그게 어렵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어?”

“응, 잘 알겠어.”

---

나는 그의 눈을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번에는 그가 물었다.

“7월에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어떻게 생각해?”

그의 솔직한 질문에 놀랐다.

“음…… 그땐 나도 평양에 있었는데…….”

미사일 발사뿐만 아니라 그 이전 국제사회 움직임까지 모든 것을 다 포함해서 묻는 걸까 싶어 고민하는데, 그는 내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미국이 남조선과 군사훈련을 하지 않으면 미사일을 쏘는 일도 없을 거야.”  

---



저자 및 역자소개

하야시 노리코 (林典子(寫眞家)) (지은이)



사진작가. 1983년생. 미국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분쟁평화구축학을 전공하던 2006년 여름에 서아프리카의 감비아공화국을 방문했다. 2주간의 체류 계획을 바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현지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보도사진가로서 ‘젠더’와 ‘장소와 개인의 기억’을 테마로 각지에서 취재를 진행해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와 주간지 『뉴스위크』, 영국 문예지 『그란타』, 일본판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 사진과 기사를 기고했다. 프랑스국제포토저널리즘페스티벌 비자뿌르리마쥬Visa Pour L’lmage에서 보도사진 특집부문 금상(2013), 전미보도사진가협회 보도사진공모전NPPA Best of Photojournalism에서 현대사회 문제부문 1위(2014)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사진집 『키르기스의 유괴결혼』과 『야즈디의 기도』, 포토 다큐멘터리 『인간의 존엄: 지금, 이 세계의 끝에서』가 있다. 접기

최근작 :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 총 2종 (모두보기)



정수윤 (옮긴이)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문학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자이 오사무 전집 『만년』, 『신햄릿』, 『판도라의 상자』, 『인간실격』,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미야자와 겐지 『봄과 아수라』, 나가이 가후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이노우에 히사시 『아버지와 살면』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최근작 : <모기소녀> … 총 43종 (모두보기)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열한 번의 방북 취재로 감춰진 기억 60년을 잇다



1959년 12월 14일, 재일교포 975명은

일본 니가타항에서 ‘귀국선’에 몸을 싣고 북한 청진항으로 향했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된 후 일본에서는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이란 이름으로 약 9만 3,000명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건너갔다. 자본주의 진영에서 공산주의 진영으로 대규모 인구가 이주한 것은 대단히 특이한 사건이었다. 그들은 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택했을까? 아니면 선택당한 것일까?

1956년 2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북일적십자회담에서 북한에 남은 잔류 일본인의 귀국 문제와 재일조선인의 귀국 문제가 처음 대두되었다. 이후 1959년 12월 14일, 제1차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이 실시되었다. 북한 측은 재일 교포의 북한 귀국이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최초의 민족 대이동으로서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남한이 고향이었기에 엄밀히 말하면 귀국사업은 아니었다. 그중에는 일본에서 조선인과 결혼해, 남편을 따라 바다를 건넌 ‘일본인 아내’라 불리는 여성 약 1,830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귀국, 한국에서는 북송이라 불리는 귀환사업

남편을 따라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들

“오래 살았어. 죽은 남편은 다정한 사람이었어. 북한 사람들은 친절했고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어.”

북한에 살고 있는 일본인 아내들은 20대에 찍은 결혼 기념사진을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전부 가족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결혼식을 올렸지만, 젊을 때 만난 조선인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매우 깊다. 그들은 북한의 각지로 흩어져 저마다의 삶을 살았지만, 대부분 행복한 기억을 갖고 있다. 저자가 만난 9명의 일본인 아내들은 반세기 전 ‘선택(조선으로의 귀국)’을 후회하지 않는다. 유감인 것은, 일본에의 자유로운 왕래가 실현되지 않은 것뿐이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로 취급된다

국적, 민족, 분단의 디아스포라

일본에서 북한으로의 귀국사업은 한국인들에겐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뉴스로 나오긴 했어도 귀국사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1960년대 남북한 관계는 꽁꽁 얼어붙은 상황이었기에 서로에게 관심 두지 않았다. 우리는 피해국이라는 입장에 서서 조선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에 대한 관심은 더더구나 없었다. 북한과 일본 간의 귀국사업도 표면적으로는 인도주의 방침에 의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식민 지배의 산물로서 이미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재일조선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다. 한국 정부는 재일조선인의 ‘북송’은 일본 정부의 추방 정책과 북한 정부의 정치 목적이 야합한 산물이라며 그 추진을 격렬히 반대했다. 당시 북한을 선택한 사람들은 현재 일본에서도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잊힌 존재다. 정치학을 전공한 사진작가인 저자는 일본인 아내들의 삶을 증거로 남겨두고 싶다며,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이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로 취급될 것이라고 이 책을 쓴 이유를 설명한다.

----
평점    9.5
----

마이리뷰

그들은 왜 3년후에 돌아오겠다고 했을까 

바다를 건넌 일본인 아내들은 3년 후에는 북한과 일본이 서로 왕래할 수 있게 되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곳에 온 일본인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어느 일본인 여성은 말한다. 북한으로 가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3년 후에 돌아올게"하며 이해를 시켰다는 여성도 있다. (42쪽)

일본인 사진작가 하야시 노리코의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정수윤 옮김, 정은문고)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이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이뤄진 재일동포의 북송사업에서 재일동포 배우자(주로 남편)를 따라간 일본인 배우자는 1830명 가량이다. 그런데 북으로 갈 당시에 영영 되돌아가지 못하리라고 여긴 이는 없었다. '길어야 3년 정도 지나면 북한과 일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리라. 북한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고 나서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중 43명의 고향방문단을 빼고는 일본 땅을 밟을 수 없었다.(간혹 일본의 가족, 친척들이 북에 와서 상봉한 사례는 있다)

왜 그들은 '3년 후'를 기대했을까. 이 숫자가 그냥 나왔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조선총련 쪽에서 흘러나오지 않았을까? 당시 북일 당국간에 적어도 민간교류는 보장하는 방침을 갖고 있었던 것인가? 그런 분위기가 총련을 통해 북송자들에게 전해진 것일까. 당시 상황이 궁금해진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북한은 1954년부터 북일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었다. 1955년 북한의 남일 외무상은 대일관계에 관한 성명을 발표해 일본에 공식적인 국교정상화 제안을 했다. 북일간 접근은 속도를 내면서 일본 국회의원 대표단이 1955년 10월 방북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국교정상화와 제 현안 타결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 코뮤니케'를 채택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북한에 잔류해 있는 일본인들의 귀국과 재일조선인의 귀국문제를 둘러싼 공식 교섭이 시작됐다. 무역부문에서는 일본에 일조무역회사가 설립됐고, 북일간에 민간무역협정(1957)이 체결되기도 했다.

즉 북송사업은 195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북일 교류 무드' 속에서 추진됐던 것이다. 그런 만큼 '귀국사업'으로 가족을 따라 북으로 간 일본인 배우자들이 3년쯤 지나면 일본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었을 법 하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동북아 정세는 미일안보조약 체결, 한일 국교정상화, 중소분쟁 등으로 경직되기 시작했고, 이 영향으로 북일관계도 후퇴했다. 게다가 재일조선인들의 북한 체제 부적응 등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귀국사업'은 당초 예상과는 다른 형태로 변질돼 갔다고 할 수 있다. 재일동포 북송이 북일관계의 또다른 질곡이 돼버린 것이다.

2013년부터 2018년 11월까지 북한을 11번 방문해 이들의 삶을 기록한 저자는 "일본인 아내들의 삶을 증거로 남겨두고 싶다"며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그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로 취급될 것"이라고 했다. 저자의 말대로 60년째 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와 표정, 분위기를 선입견없이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느껴진다. 저자의 말 추가.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람 하나하나의 인생은 평등하고 둘도 없는 것임을 취재를 통해 강하게 느꼈다."
-
아지 2020-08-13 공감(3) 댓글(0)
---

フォト・ドキュメンタリー 朝鮮に渡った「日本人妻」: 60年の記憶 (岩波新書)
by林 典子

Customer reviews
3.4 out of 5 stars

美しい夏

TOP 500 REVIEWER

4.0 out of 5 stars志の高い、感動的な本と思うが、気になる点あり。

Reviewed in Japan on June 27, 2019



6年の歳月と11回の訪朝取材でまとめられた、8人の日本人妻と1人の戦後残留日本人女性からの聞き取り記録である。日本人妻とは、在日朝鮮人の帰国事業で夫に同行した日本人女性である。

第1章・・1927年生まれの元山在住の日本人妻。その後死去。娘(帰国時8歳)と孫も取材に登場。娘の出番が多い。日本では宮崎在住の弟に取材。

第2章・・1934年生まれの平壌在住の日本人妻。その後死去。高校時代の写真(87頁)は映画スター並みの美少女。この章はほかの話が多く、彼女の出番は多くない。子孫の登場もない。

第3章・・1939年生まれの元山在住の日本人妻。この人も大学生時代の美しい写真が載る。

一時帰国体験あり。同居の長女が出るが、その描写、発言はない。日本での取材は京都在住の夫の兄。

第4章・・1933年生まれの咸興在住の残留日本人女性(12歳で残留)。終戦前と苛酷な終戦後避難と戦後の長い記憶。同居の孫が一緒に写真に写り、少し話す。

第5章・・1942年生まれの咸興在住の日本人妻。元看護婦。1967年の帰国船。次男と同居するが、次男は出ず。著者による、日本の能登での家族探しが少し長い。



このほかに4人の日本人妻が、2章、4章、5章、あとがきに登場する。2人は故人。

あとがき・・「彼女たち一人ひとりの個人的な思いや人生を知ろうとする」作者の姿勢等。



私的感想

〇間違いなく、多大な労力と時間をつぎ込んだ力作である。聞き取られた内容は感動的で、作者の志も高い。

〇印象的なシーンも多い。第1章の自分の名前の説明。第2章のストーカーまがいの出会い。第3章の別れの母の言葉と日本語で歌う「この道」、第4章の売れなかったリンゴ、第5章の能登での家族探し。

〇気になる点はいくつかあるが、一つだけあげると、登場する日本人妻達がそれぞれ違っていても、次の点で似ていることである。ー、長生きしている。二、亡くなった夫は優しい人だった。三、夫の家族も、ほかの人たちも親切だった。四、北朝鮮帰国後、比較的順調な人生を過ごしてきた。五、子供、孫に恵まれ、皆優しく、その介護等を受けている。五、半世紀以上前の選択(朝鮮半島出身者との結婚、その後の帰国)は後悔していない。残念なのは、日本への自由な往来が実現していないことである。

10 people found this helpful

---

くくくくままま

TOP 500 REVIEWER

4.0 out of 5 stars 異国に渡った女性たちの生の証を刻みつけようとする。

Reviewed in Japan on July 2, 2019

Verified Purchase

 「一九四五年の終戦直後、引き揚げの際に家族と生き別れて、その後をこの国で生きてきた残留日本人の女性(p.47)」1名と、「帰国事業(p.20)」―「一九五九年一二月から八四年七月にかけ、日本に暮らす朝鮮半島にルーツを持つ人々が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に移住」するために進められた―で北朝鮮に渡った「日本人妻」数人を、いくたびか訪問・取材した書。ドキュメンタリーとあるが、対象となる女性たちを描写する文章だけでなく、著者の思いを綴る部分も少なくなくフォト・エッセイというおもむきもある。

 北朝鮮報道について「ジャーナリストの多くは……ここで生きる人々の人生を……単純に白か黒かで伝えようとしているように思う」が「ついそうした誘惑に駆られそうになっても、できるだけ抑えようとしてきた(p.245)」と著者は記す。その思いが、告発するでもなく、お涙頂戴になるでもなく、称えるわけでもない抑制された文章からよく伝わってくる。著者は、社会と時代の流れに翻弄され、しかしその中で生き抜いてきた女性たちの生きた証を文章に刻みつけようとしたのだろう。

 本書は「帰国事業」を解説する書ではないが、それでも知らないこと、驚くことが多かった。私は『キューポラのある街』でこの事業についてはじめて知ったのだが、少なくとも私が『キューポラのある街』を読んだ70年代には、「帰国事業」への、あるいは北朝鮮の政治体制への肯定的な評価はすでに消えかけていたように思う。そういえば、1970年前後を舞台とする「焼肉ドラゴン」にも、北朝鮮を地上の楽園のように考えるのは間違っているというようなセリフがあったな。それでも、この事業は、なんと1984年まで四半世紀も続いていたというのだ。

 本書には、1960年春に両親が「帰国事業」で渡航し、その年の秋に生まれた人も登場する。生まれが私と数か月しか違わない。この人の人生は、私の人生であってもおかしくなかったのだと思いつつ読む。

 同著者の『人間の尊厳』に比べると写真のインパクトは小さいが、それでも皺だらけの女性たちのポートレートは美しい。

2 people found this helpful

---

直いい親父

TOP 100 REVIEWER

5.0 out of 5 stars 北朝鮮の日本人妻、確かに大きな問題ですね!!

Reviewed in Japan on July 8, 2019

 北朝鮮と日本の間には、多数の問題点が存在しています。

 その内世間の耳目を集めるのは、やはり、原爆、ミサイル、

 そして拉致被害者問題ということになるのだろうと思います。

 しかし、帰国事業で彼の地にわたった日本人妻・・・少しは日本人夫もおられるそうです・・・、

 残留日本人についても関心を払ってもいい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本書は、11回にわたる北朝鮮訪問で、日本人妻9名、残留日本人1人についての

 現地の様子、北朝鮮に行くことになった経緯、現在の心境などをまとめたルポ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日本人妻については、自分の意志で反対を押し切り、北朝鮮へ行ったのだから、

 とやかく言うことはないという人も多いともいます。

 しかし、彼女たちは、 祖国と自由に行き来できると信じて、北朝鮮へ渡ったと思うのですが、

 その思いは、ほとんどかなえられずに現在に至っているのです。

 ましてや残留孤児の場合はどうなのでしょうか!おまけに彼女たちには残された時間がほとんどないのです!

 拉致被害者問題とともに、政府はこのような現況をよく認識してもらいたいものです。

 なお、本文中に、ミサイル発射時、そして、原爆実験の現地での様子が書かれていて、

 これも非常に興味深いと思います。

 また、時折挟み込まれているカラー・フォト、木がほとんど生えていないはげ山、

 現地のさびれた様子、一方高層ビルが立ち並ぶ平壌、

 このアンバランスさが北朝鮮のいまを象徴しているんでしょうね!!

 

7 people found this helpful

---

古本虫がさまよう

TOP 500 REVIEWER

4.0 out of 5 stars 取材の限界はあるけど、この本に出てくる日本人妻たちの母国や北に行くのに反対した亡き両親たちへの思い自体には嘘はなく、感涙モノといえよう。その点は高く評価したい。

Reviewed in Japan on July 31, 2019

林典子氏の『フォト・ドキュメンタリー 朝鮮に渡った「日本人妻」--60年の記憶』 (岩波新書)を読んだ。



(こんな内容)→1959年から84年まで行われた在日朝鮮人らの「帰国事業」.夫に同行し,高齢となった今もなお北朝鮮に暮らす「日本人妻」たちは,現地で何を考え,何を望んでいるのか.望郷の念,離ればなれとなった親族への思い――.この6年間に11回の訪朝取材を重ね,彼女たちに寄り添い,半世紀余りの記憶を紡ぐ.写真多数.



この人の本は以前、 『人間の尊厳 いま、この世界の片隅で  フォト・ドキュメンタリー』 (岩波新書)というのを読んだことがあるが、まっとうなレポートだった。



それはさておき、共産圏の人権問題には「鈍感」になりがちな岩波新書ではあるが、林さんのこの本は比較的真っ当なレポートだった。



もちろん、北朝鮮の現地を何度も訪れたとはいえ、いずれも、当局の「監視員」(案内人?)がそばにいての取材であるから「限界」もあるかもしれないし、寺尾五郎の北朝鮮ヨイショ本に触れつつも、まともな関貴星さんの本などは紹介していないといった説明不足などもある。朝鮮戦争が北朝鮮の侵攻によって始まった簡単な事実(主語)も明記はしていない。ことさら、朝鮮人に優しくしてもらって助けられたと強調する人ばかり……。



それはそれとして、やはり帰国運動に巻き込まれて、北朝鮮に在日の夫と共についていった日本人妻がどのように暮らしているかはあまりにも日本に伝わってきていない。これはすべては人道的措置をしない北朝鮮政権の横暴が原因である。少なくも日本国籍を所有している日本人妻は、帰国しようと思えば自由にできるはずなのに、それを容認しないのは非人道的というしかない。



この本でも、一時帰国を許された模範的な日本人妻が出てくる。こういう人たちは、一時帰国した時も、模範的な回答をするしかなかっただろうが……。



それはそれとして、何度も北朝鮮を訪れ、複数回のやりとりをし、彼女たちのかつて住んでいた日本の場所を訪れたり、親族と面談したり、可能な限り、日本人妻の「思い」を伝えようと努力したことは行間からも読み取ることが可能だ。



とはいえ、脱北した在日や日本人妻なども少数だがいる。その人たちの「証言」も忘れてはなるまい。どちらかといえば、そうした人々の証言のほうが生々しく、現実の姿をより的確に指摘しているともいえようか。



斉藤博子氏の『北朝鮮に嫁いで四十年 ある脱北日本人妻の手記』 (草思社)を読む限り、「日本人妻」にも「格差」があるということになろうか。



前川惠司氏の『夢見た祖国は地獄だった』 (高木書房)にも、斉藤博子さんやさまざまな帰国者や脱北した人々の「証言」が出てくる。



「帰国者の中でも、朝総連の幹部の家族や大資産を上納した一家などは、平壌、元山、新義州などの大都会に落ち着き先が決まった。たいした資産もなく、ただ『地上の楽園』と言う宣伝を真に受けた李相峰一家は、清津から九十五・五キロ離れた中朝国境の町、会寧近くの炭鉱の村で暮らすように指示された」



李さん(仮名・後に脱北)は、帰国する前に日本に残った兄から「総連の宣伝どおりだったら褒めて、手紙に書いてくれ。そうしたら自分も帰る。ウソだったら切手の裏に書いてくれ」と言われていた。「検閲」があるからだ。



すると、李さんは切手の裏に「村からの外出の自由なし、兄さんはここへくるべからず…の妹さんもこないよう…」と記して手紙を出したという。



その実物が本書69頁に収録されている。これは是非見るべきだ。こんな手段を通じて辛うじて悲劇から逃れることが可能だったのだ……。さすがの共産主義者も切手の裏まで「検閲」するのを忘れたわけだ!



何かの本だったか、笑い話だったか、北に戻って、地獄だったら青いペンで、天国だったら黒いペンで手紙を書くように示し合わせたところ、黒文字で、ここは天国、物不足もない、満ち足りている云々と記した手紙が日本に届いたそうな。ただ、最後に、「物は十分だが、あいにくと青ペンがない」と記してあったとか?



まぁ、そういった赤裸々な現実は、林さんの本には残念ながら(?)出てこないが、それはそれとして、林さんの本に出てくる日本人妻たちの母国や北に行くのに反対した亡き両親たちへの思い自体には嘘はなく、感涙モノといえよう。その点は高く評価したい。

3 people found this helpful

---

Amazon カスタマー

3.0 out of 5 stars 上辺だけ……でも、読んだ価値あり

Reviewed in Japan on July 27, 2019

正直、深く掘り下げない、といえば、厳しいかもしれないが、今ひとつ、人物たちが迫ってこないというか、肉迫してくるものがない。

あと、ここに出て来る人たちは、なんとなく(当時の)中流ぐらいの人たちで、もっと知るべきことがあるような人たちの意見は聞こえてこないような。でも、逆に考えてみれば、普通の家庭で大事に育てられ、高い教育を受けた女性が全てを捨てて移住したのだから、その決意は大変だったはず。

不満はあるけれど、読んだのは無駄ではなかった。

4 people found this helpful

---

#1 HALL OF FAMETOP 10 REVIEWERVINE VOICE

5.0 out of 5 stars 日本人妻に寄り添う真摯な姿勢が全編を貫いています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22, 2019

文章の上手さや分かりやすさが本書の質を高めていました。フォト・ドキュメンタリーとありますが、掲載写真は決して多くありません。それでいて、厳選された写真一つ一つから被写体の日本人妻の経てきた人生の足跡が如実に伝わってくるような見事なポートレイト(カラー写真)ばかりでした。

日本人妻の方へのレスペクトが根底にあり、肉親のように寄り添い、お里帰りのように訪朝する姿勢から林典子さんのジャーナリストとしての真摯な思いが強く伝わってきました。

「『行かないで』と、小さな声が聞こえた。握り続ける手の力はとても強く、多喜子さんのことを思い出す度に、このときの右手の感触が自然とよみがえってくる。(17p)」の文章も肉親との別れの一こまのような情景が浮かびます。

前のページで、若き日の朝鮮人の夫との渡航寸前の記念写真を持つ多喜子さんの写真から、より一層この言葉の重みが感じられました。

1959年12月14日からスタートし、「1984年7月まで続いた帰国事業。187回の船で約9万3000人が日本から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へ渡った。(28p)」と書かれています。

大昔、映画『キューポラのある街』でこの帰国事業のことを知りました。

「地上の楽園」という欺瞞を当時のマスコミも左翼も知らなかったのでしょうが、それがこの日本人妻の背景にあるわけで、罪深い帰国事業でした。



読了後、奥付の経歴を拝見してとても驚きました。若い写真家ですが、受賞歴の凄さは一目瞭然です。素晴らしい活躍ぶりが伝わってきました。

文章も写真も歴史ある岩波新書のラインナップに上るのに相応しい内容だったと高く評価します。

----

BORACHO

5.0 out of 5 stars 愛と望郷の物語

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26, 2019

北朝鮮各地に住む日本人女性の家庭に入り込み取材を重ねたフォト・ドキュメンタリーです。

60年前の若く聡明な日本人女性とステキな朝鮮人の彼氏が周囲の反対を押し切って海を渡ってしまうという情熱には驚かされました。

彼氏を看取った後でも彼女たち日本人妻は今日まで地域に根付いて生きてきたのですね。こういうロマンチックな生き方もあるのだと考えさせられました。インタビューする著者の心の動きまで記述がなされているので好感が持てるアッパレな一冊です。

===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요약 및 평론

1. 요약: 거대한 역사의 톱니바퀴에 짓눌린 개인의 삶

하야시 노리코의 포토 다큐멘터리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는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전개된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 약 9만 3천 명의 재일조선인이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향했고, 그중에는 조선인 남편을 따라 고향과 가족을 떠난 약 1천 8백 명의 일본인 여성들이 존재했다. 저자는 2013년부터 6년 동안 열한 차례 방북하며, 이제는 고령이 되어 북한 땅에 살아가는 '일본인 아내' 9명의 삶과 궤적을 카메라와 글로 기록했다.

이 책은 거창한 정치적 이념이나 거시적 역사 담론 대신, 개인이 감내해야 했던 지극히 사적이고 생생한 삶의 현장에 초점을 맞춘다. 전쟁 직후의 빈곤, 재일조선인을 향한 일본 사회의 차별, 그리고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의 선전에 속거나 오직 남편과의 사랑 및 가정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귀국선'에 올랐던 여성들의 서사가 펼쳐진다.

북한에 도착한 직후 마주한 현실은 이상과 전혀 달랐다. 생소한 언어와 문화, 극심한 물자 부족, 그리고 정치적 긴장감 속에서 이들은 '적국(敵國)의 여성'이라는 시선과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이를 育て고 가정을 유지하며 조선 사회의 일원으로 삶을 버텨냈다. 저자는 냉전의 소용돌이와 일·북 관계의 경색 속에서 고국 방문조차 가로막힌 채 잊힌 존재가 되어버린 여성들의 일상, 고향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 그리고 세월이 흘러 늙어버린 모습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2. 평론: 국가와 이념의 그늘에 가려진 '디아스포라'의 기록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는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성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고 파편화하는지를 날카롭게 고찰하는 작품이다. 한일 관계와 북일 관계라는 복잡한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 여성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중의 경계인이었다. 일본에서는 '조선으로 가버린 자'로 잊혔고, 북한에서는 '일본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늘 경계와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저자 하야시 노리코의 시선은 지극히 절제되어 있으며, 어떠한 정치적 성토나 섣부른 동정조차 경계한다. 이러한 중립적이고 경청하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이들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사진과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형식은 거창한 국가적 수사(修辭) 뒤에 숨겨진 '삶의 실체'를 드러낸다. 붕괴한 이념의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늙어가는 개인의 신체와, 닿을 수 없는 고향을 향한 아득한 그리움뿐이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재일교포 북송 사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종종 정치적 성패나 이념적 대립으로만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저자는 그 틈새에 끼어버린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함으로써,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저지른 침묵의 폭력을 고발한다.

결국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는 단순한 취재 기록을 넘어선다. 그것은 이념과 국경을 초월하여 한 인간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어떻게 버텨냈는지에 대한 숭고한 기록이며, 동아시아 현대사가 낳은 비극적 디아스포라의 초상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 개별적인 삶이 어떻게 마모되고 잊히는지를 명확히 증언하는 수작이다.

===

===

하야시 노리코,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 1,000단어 요약 평론

하야시 노리코(林典子)의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60년의 기억>(원제 <フォト・ドキュメンタリー 朝鮮に渡った「日本人妻」――60年の記憶>)은 1959년 시작된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을 국가와 이념의 차원에서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그 거대한 역사 속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한 집단, 즉 재일조선인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 여성들의 삶을 사진과 증언을 통해 복원한 포토 다큐멘터리다. 일본에서는 2019년 이와나미신서로 출판됐고, 한국에서는 2020년 정수윤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에는 일본어판에 없던 사진 13장이 추가되었다.

1. ‘귀국’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귀국사업

1959년 12월부터 1984년까지 약 9만3천 명의 재일조선인과 그 가족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했다. 그 가운데 조선인 남편을 따라간 일본인 아내가 약 1,830명이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주한 재일조선인의 약 95%가 실제로는 한반도 남부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업을 단순히 ‘귀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문제적이다. 일본에서는 주로 ‘귀환사업(帰還事業)’,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북송사업’이라고 불러왔다.

하야시는 이 거대한 이동의 정치외교사를 자세히 재구성하기보다 “그때 남편을 따라 배를 탄 일본 여성들은 이후 어떻게 살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의 구성을 보면 그 의도가 분명하다.

<제1장 원산에서 살았던 어머니와 딸―1961년 규슈에서>
<제2장 긴박해지는 상황 아래에서―화성 14형과 핵실험의 해에>
<제3장 아카시아의 추억―홋카이도에서 뱃속의 아이와 함께>
<제4장 ‘마지막’ 잔류 일본인―가족과 헤어져 조선의 아이로>
<제5장 이루어지지 않는 고향 방문―함흥의 ‘일본인 아내’들>

이라는 식으로 되어 있다. 즉 ‘북한’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얼굴, 가족, 고향, 기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2. 왜 일본 여성들은 북한으로 갔는가

오늘날의 북한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이것이다.

“도대체 왜 갔을까?”

그러나 하야시는 1960년의 선택을 2020년대의 북한 이미지로 판단하지 말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당시 재일조선인의 일본 내 생활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식민지 지배가 끝나고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면서 재일조선인들은 일본 국적을 상실했다. 취업과 사회적 권리는 제한되었고 차별도 심했다. 하야시가 만난 일본 여성들 가운데는 조선인 남성과의 결혼 자체를 부모가 반대한 경우가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차별을 목격한 여성이라면 “일본에 그대로 살 경우 내 아이도 차별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이 여성들의 선택에는 여러 요소가 겹쳐 있었다.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따라갔고,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일본 사회의 재일조선인 차별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당시에는 북한을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빈곤한 국가로 인식하지 않았으며, 몇 년 지나면 일본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이 책의 가장 비극적인 요소가 나타난다.

그들의 결정은 ‘북한을 선택한 정치적 결단’이라기보다 상당수의 경우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한 가족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한번 바다를 건넌 뒤 그 개인적 결정은 냉전이라는 거대한 정치구조에 갇혀버렸다.

3. 이데 타키코—“죽은 뒤라도 일본으로 갈 수 있을까”

책을 상징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미야자키현 출신 이데 타키코(井手多喜子)다.

그녀는 조선인 남성과의 결혼을 부모에게 반대당했지만 1961년 남편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하야시는 원산의 아파트에서 그녀를 두 차례 취재했다. 노년의 타키코는 일본을 떠나기 직전 남편과 찍은 젊은 시절의 사진을 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녀의 가장 가슴 아픈 소원은 매우 단순하다.

죽기 전에 한 번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뒤라도 일본에 갈 수 있느냐, 어머니의 무덤 옆에 묻힐 수 있느냐고 묻는다. 타키코는 2016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하야시는 여기서 취재를 끝내지 않는다. 일본의 타키코 고향까지 찾아가 가족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생전에 매일 아침 불단 앞에서 북한으로 간 딸과 손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부분에서 국가 간 적대관계와 가족사의 대비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국가는 북한과 일본으로 갈라졌지만 어머니에게 북한은 국제정치가 아니라 <돌아오지 않는 딸이 있는 곳>이었다.

4.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하야시가 만난 9명의 일본인 아내들은 대체로 자신이 북한으로 간 선택을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여성은 남편이 다정했고 북한 사람들도 친절했으며 비교적 순탄하게 살았다고 회고했다.

이 대목은 상당히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이를 곧바로 “북한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는 것도 곤란하고, 반대로 “북한 당국이 시켜서 한 말일 뿐”이라고 모두 무효화하는 것도 곤란하다.

하야시의 북한 취재에는 당연히 구조적 제약이 있었다. 북한 당국의 허가가 필요했고 취재 때 통역 겸 안내원이 동행했다. 하야시 자신은 촬영한 사진을 사후 검열당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애초에 외국 기자에게 인터뷰가 허용된 사람이 전체 일본인 아내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책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북한으로 간 일본인 여성 전체의 대표 표본>이 아니다.

오히려 “하야시가 접근할 수 있었던 소수 여성의 개인적 기억”으로 읽는 것이 정확하다.

그럼에도 이들의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또 하나의 인간적인 차원이 있다. 한 인간에게 60년 전 자신의 결혼과 자녀와 평생을 통째로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북한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자신이 사랑했던 남편과 자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정치학보다 인간학에 가깝다.

5.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생활’이 아니다

표지만 보면 북한 내부 생활을 보여주는 책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중심주제는 <단절>이다.

일본인 아내들은 일본에 가족을 남겨두었다. 편지를 보내도 제대로 도착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일본 가족은 “왜 아무 연락이 없느냐”고 오해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일본으로 한 번도 돌아가보지 못했다. 1997·1998·2000년 제한적인 일본 방문사업이 있었지만 북일관계 악화 이후 중단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극은 단순히 “가난한 북한으로 잘못 갔다”는 것이 아니다.

<국경을 넘은 뒤 다시 돌아갈 권리를 상실했다>는 데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다.

사람에게 이주의 자유가 있다면 잘못된 선택도 수정할 수 있다. 고향에 돌아가 부모를 만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전은 한 번의 선택을 평생의 운명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의 진정한 주제는 북한 체제라기보다 <이동할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6. 사진이 글보다 더 강하게 말한다

하야시는 본래 포토저널리스트다. 이 책에서도 사진은 삽화가 아니다.

노인이 된 여성이 20대의 자신과 남편이 담긴 흑백사진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 북한에서 살아온 얼굴, 일본의 옛 고향 풍경이 서로 대응한다. 하야시는 훗날 이 작업을 <sawasawato>라는 사진 프로젝트로 발전시키면서 북한의 현재 모습뿐 아니라 여성들이 젊은 시절 살았던 일본의 장소까지 다시 촬영했다.

사진의 힘은 역설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것’에 있다.

한 여성을 ‘북송 일본인’, ‘북한 주민’, ‘일본 국적자’ 같은 정치적 범주로 보지 않고, 젊었고 사랑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늙어간 한 사람으로 돌려놓는다.

이 점에서 하야시의 사진은 역사적 기록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윤리적 주장이다.

<국가가 한 인간을 하나의 정치적 범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7.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첫째, ‘북송사업’을 국가정책에서 개인사로 전환시킨다.

북송사업을 연구하면 북한 정부의 선전, 일본 정부와 적십자의 역할, 조총련, 냉전정치 등이 중심이 되기 쉽다. 그러나 하야시는 배에 탔던 한 여성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둘째, 일본 사회가 쉽게 잊은 사람들을 다시 일본사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일본에서는 북한 문제라 하면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본인 아내들은 스스로 북한으로 갔다는 이유 때문에 훨씬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야시가 강조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갔다”와 “평생 돌아올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셋째,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단순한 민족적 구도를 흐트러뜨린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 지배한 국가였다. 그러나 그 일본 사회 안에서 해방 후 재일조선인은 차별받았고, 그 재일조선인 남편과 결혼한 일본 여성도 가족과 사회의 반대에 부딪쳤다. 북한으로 간 뒤에는 이번에는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또 다른 짐이 되었다.

한 인간 안에서 ‘일본인’, ‘조선인의 아내’, ‘북한 주민’, ‘일본의 딸’이라는 정체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탁월한 점이다.

8. 그러나 중요한 한계도 있다

가장 큰 한계는 북한이라는 취재환경이다.

하야시가 2013년 이후 11차례, 이후 프로젝트를 포함해 12차례 북한을 방문했다는 것은 매우 드문 성취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조사와는 다르다. 인터뷰 상대를 임의 표집할 수도 없고, 북한 정부에 강하게 비판적인 사람이나 처벌받은 사람, 극심한 빈곤 속에 살아온 사람을 동일한 조건에서 만날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책을 <북송사업의 결과를 평가하는 책>으로 읽으면 부족하다.

북송사업의 정책 결정, 북한의 기만적 선전, 조총련의 역할, 일본 정부의 책임, 북한에 도착한 뒤 재일조선인들이 겪은 차별과 정치적 억압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려면 다른 역사 연구와 탈북 귀환자들의 증언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이 책의 약점만은 아니다.

하야시가 쓰려고 한 책 자체가 그런 정치사 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9. 종합평가 — ‘잘못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를 읽고 가장 경계해야 할 해석은 “북한에 속아서 간 불쌍한 일본 여성들”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다.

그런 요소가 없지는 않다. 북한은 귀국사업을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정치사업으로 이용했다. 자유왕래에 대한 기대 역시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야시가 보여주는 여성들은 수동적인 희생자만은 아니다.

그들은 당시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 남성을 사랑했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그 결정에는 사랑도 있었고 희망도 있었으며 오판도 있었다.

문제는 한 인간의 <오판할 자유>가 국가에 의해 <평생 되돌릴 수 없는 운명>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남북한과 일본의 역사를 생각하는 데 매우 좋은 책이다.

식민지 지배 → 재일조선인 차별 → 북송사업 → 북한의 폐쇄체제 → 북일 대립이라는 거대한 역사가 이 여성들의 일생 한가운데를 그대로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야시는 역사학자가 흔히 다루는 국가와 조직보다 더 작은 단위를 우리 앞에 놓는다.

<한 여자, 한 남편, 한 어머니, 한 아이, 한 장의 사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다.

이 작은 단위에서 보면 냉전은 추상적인 이념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딸이 어머니의 장례에 갈 수 없고,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매일 불단 앞에서 딸의 이름을 부르는 현실이다.

바로 이것이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가 가진 가장 오래 남는 힘이다.

<이 책은 북한에 간 일본 여성들을 평가하는 책이라기보다, 국가와 이념이 개인의 사랑·가족·고향을 어떻게 60년 동안 갈라놓을 수 있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한일·남북한 관계를 생각할 때도 상당히 중요한 교훈을 준다. 역사적 화해란 국가가 과거에 누가 옳았는지를 합의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간 개인들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을 북한의 기만이나 일본의 추방정책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보다, 당시 재일조선인의 차별받던 현실과 일본인 배우자의 선택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크다. 다만 북송사업 전체를 이해하려면 하야시의 책과 함께 테사 모리스-스즈키의 <북한행 엑서더스(The Exodus to North Korea)> 같은 구조적 연구를 같이 읽는 것이 가장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