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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3

북한의 배짱, 어디까지? : 세계비핵화, 북한이 시작하다 - 통일뉴스



북한의 배짱, 어디까지? : 세계비핵화, 북한이 시작하다 - 통일뉴스





북한의 배짱, 어디까지? : 세계비핵화, 북한이 시작하다<기고> 김광수 정치학 박사
김광수 | no-ultari@hanmail.net





승인 2018.04.25 21:50:28






김광수 /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수령국가』 저자 · 21기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읽어내어야 할 핵심키워드는 핵-경제 병진노선의 최종 종착지가 ‘사회주의 경제 건설 총력집중’ 전략노선의 등장과 함께, 북한 자신이 ‘세계 비핵화 추동을 직접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지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북한은 이미 벌써부터 이번 남북, 북미정상회담을 넘어 세계비핵화 문제해결에 눈을 둘리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통일뉴스>에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라는 시리즈 기고문을 보냈고, 그 기고문에서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고 그런 결론을 예상하지 못했을 때 ‘북핵은 북-미대결의 산물이고, 그 북핵은 세계비핵화와 비례한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린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통일뉴스> ‘북핵, 북-미대결의 산물’(2017.08.21)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북핵은 전 세계 비핵화와 비례한다”는 소결론을 내렸는데, 지금 그것이 북한의 의도와 정확하게 부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2018년 4월 20일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제3차 전원회의(이하, 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직접 의정보고를 통해 "우리의 힘을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에까지 도달시키고 우리 국가와 인민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게 된 기초 우(위)에서 인류의 공통된 염원과 지향에 부합되게 핵무기 없는 세계(강조, 필자) 건설에 적극 이바지하려는 우리 당의 평화애호적 입장"을 밝혔고, 이를 <결정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 에 반영해 내고 있어서 그렇다. 셋째와 넷째 항목이 그것인데, 북한 자신이 세계비핵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들어가 있다. “셋째, 핵시험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다. 넷째,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다.”

며칠 뒤 북한은 이를 대중적으로 공개도 하는데 그 매체가 <노동신문>이었고, 신문(2018.04.24.)은 핵시험 중단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를 선언한 것은 “우리의 힘을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에까지 도달시키고 우리 국가와 인민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게 된 기초 위에서 인류의 공통된 염원과 지향에 부합되게 핵무기 없는 세계 건설에 적극 이바지하려는 우리 당의 평화애호적인 입장의 뚜렷한 반영”이라 하였다.

보다 명확해지고 분명해지고 있다. 북한은 ‘우리 국가와 인민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게 된 기초’가 담보된 조건에서 핵보유를 분명히 하면서 핵군축과 세계비핵화에 적극 나설 것이며, 북한 내부적으로는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전략적 노선이 내세운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수행된(강조, 필자) 오늘 우리 당 앞에는 승리의 신심 드높이 혁명의 전진속도를 보다 가속화하여 사회주의 위업의 최후 승리를 앞당겨야 할 중대한 혁명과업이 나서고 있다"는 의정보고에서 확인되듯이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힘있게 다그치기 위한 우리당(노동당)의 과업'이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하여'라는 결정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글은 바로 이런 전제하에서 북한은 이미 남북, 북미정상회담 이후의 자신들의 전략을 그려보고 있다는 것과, 북한의 전략은 이미 남북, 북미정상회담 이후에 가 있음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것을 위해 우선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시간 여행을 해 보고자 한다. 2018년 1월 1일 발표된 신년사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되돌아 봤을 때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1월 1일(2018)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국면전환에 대한 구상을 이미 끝낸 듯하다.

신년사에서 그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한다”고 밝혔고,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 의미가 지금-7기 제3차 전원회의가 소집된 이 시점에서 되돌아 봤을 때 보기에 따라서는 중국의 쌍중단(핵미사일 시험과 한미합동군사훈련 동시 중단)보다 후퇴한, 즉 한미합동군사훈련중단도 없이 먼저 선제적으로 북한이 왜 갑자기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겠다고 나섰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어준다. 이유는 다름 아닌, 북한은 더 이상 핵미사일 시험이 필요하지 않은 단계, 즉 바로 대량생산 실전배치 단계에 들어섰으니 시험 중단을 흔쾌히 약속할 수 있는 것으로 말이다.

또 그래야만 <결정서> 첫째 항목에 대한 이해도 되어 질 수가 있다. 북한의 일방적 조건 없는 선제적 조치가 왜 나왔는지 말이다. 즉 그도 그럴 것이 중국식 표현을 빌리면 핵·미사일 동결은 미국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는 조치와 맞바꿔야 하는 쌍중단의 입구인데, 북한은 이미 스스로 자기 패를 먼저 선보인 모양새가 되어져 협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도 동결을 선언하고 입구에 먼저 들어 가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초 예상대로라면 북한이 핵시험과 미사일 시험을 나누고 잘게 쪼게 살라미 전술을 쓰며 미국에게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하는데 북한은 협상을 하기도 전에 이미 엄청난 카드를 일방적으로 양보한 버린 것은 그 무엇으로 설명해내어야 한단 말인가? 그 퍼즐에 딱 부합하는 것이 핵무력 완성선언으로 맞이한 전략국가로의 위상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핵보유에 대해 “민족의 보검”, “영원불멸할 공화국의 운명”이라며 그 의미를 부여하며 국가 핵무력 완성선언(2017.11.29.)까지 한 북한이 왜 갑작스럽게 선제적으로 “비핵화는 선대 수령의 위훈”이라며 비핵화 입장을 밝힌 이유가 무엇인지도 해명되어지게 하였다. 국가 핵무력이 완성된 조건에서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포함한 세계 비핵화 논의를 시작, 과거 소련과 미국의 핵군축 회담에서 실패한 비핵화를 북미대화를 통해 진전시켜 내겠다는 의지가 읽혀지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이나 주한미군 철수 등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도 보다 분명해진다. 2018년 신년사에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한다”고 확신한 상태에서 주한미군은 이제 더 이상 실질적인 위협이 아니라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어서 그렇다(그렇다 하여 주한미군철수 문제를 포기하였다고 오독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본인의 <통일뉴스>(2018.04.13.) 기고글, ‘북은 과연 주한미군철수 문제를 포기할 것인가?’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 함의에 대해서는 먼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철수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국면이 ‘세기적’ 협상국면인데도 군사훈련을 강행해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미국이라고 한다면 이 미국에 대한 반감과 훈련에 대한 예산낭비와 불필요하게 전쟁을 부추기는 주범이란 지탄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에서 높아져 주한미군철수 문제를 대한민국 스스로의 전략적 문제로 인식하게끔 할 수 있는 고도의 계산된 전략적 셈법과, 또한 그 상황이 되면- 주한미군이 더 이상 북한자신을 위협하지 못하는 조건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대중전진기지가 될 것인데, 이는 자연스럽게 정전협정의 당사자이자 미국으로부터 위협받는 중국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군사훈련과 미군주둔문제를 전면적으로 받아 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듯도 하다. 즉 향후 진행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이 문제를 집중 문제제기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전선이 중·북과 미, 경우에 따라서는 중·북·한과 미국으로 대립되어 주한미군철수 문제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코 한번 안 풀고 해결해낼 수 있는 너무나도 멋진(?) 매력덩어리 의제로 재정의 되는 ‘신의 한 수’가 되는 것이다. 참으로 전략적 계산을 잘 한 북한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은 7기 제3차 전원회의에 대한 분석이다. 결론은 너무나도 전격적이었고, 담대했다. 이날 발표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13년 '핵·경제 병진노선' 채택 만 5년 만에, 또 그것도 남북,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서 이런 카드를 쓸 줄 아는 김정은의 담력이 참으로 커서 그렇다.

이런 통 크고 담대한 선언이 어떻게 가능했던가? 그 비밀열쇠는 다른데 있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개최된 노동당 제5차 '세포위원장 대회(2017.12.21.)' 개회사에서 내놓은 ‘전략국가’라는 위상에 대한 자신감에 있다. "최근 우리 공화국 핵무력의 급속한 발전은 세계 정치구도와 전략적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미국에 실제적인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전략국가(강조, 필자)로 급부상한 우리 공화국의 실체를 이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또 2018년 신년사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최대의 애국유산인 사회주의 우리 국가를 세계가 인정하는 전략국가(강조, 필자)의 지위에 당당히 올려 세웠다”고 언급하였다.

급기야 그 전략국가라는 개념은 이후 고위관리들도 적극 사용하고 있다.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그 대표적이다. 2018년 4월 11일 ‘김정은 당과 국가의 최고수위 추대 6돌 중앙보고대회’에서 “최고지도자 동지께서 우리 조국을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세계적인 군사대국으로 빛내주시고 전략국가(강조, 필자)의 지위에 당당히 올려세웠다”며 "(조국을) 전략국가(강조, 필자)의 지위에 당당히 올려세우신 것은 불멸의 업적"이라고 했다.

우선 집중분석 그 첫 번째는 과연 대한민국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처럼 북한은 경제-핵 병진노선의 폐기(?)가 핵보유가 오히려 고도의 압박과 제재를 유발시켰고, 그로인해 경제활 성화를 통한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국정목표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여 ‘경제-핵 병진노선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정말 사실인가? 하는 문제이다.

결론은 국내언론들의 근거 없는 추측성 기사이자 전문가들의 ‘의도된’ 오독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전략노선을 채택하면서 경제-핵 병진노선 폐기를 말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와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을 얘기할 뿐이었다. 이를 좀 의역하여 해석하자면 경제-핵 병진노선의 발전적 승계(계승)가 곧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하여 이는 폐기가 아니라 승계(계승)로 바라봐야 하는데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질 수가 있어서 그렇다.

‘승리(결속)’와 ‘폐기’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큰 개념의 차이이다. 폐기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이는 보다 더 명확해지는데 “못 쓰게 되거나 필요 없어진 물건을 아주 버림.(<다음> 국어사전, 2018.04.24.)”이라는 ‘폐기’의 뜻이 그 어떤 정책이나 노선이 잘못 입안되거나 채택되어 그것을 버리거나 중도반단 한다는 그런 개념이라면, ‘결속’은 “하던 일이나 말을 수습하고 정리하여 끝맺음.(<네이버>, 2018.04.24.)”이라는 말뜻에서 확인받듯이 그 무엇을 종료, 혹은 마무리 한다 라는 개념에 더 가까워 이는 정책과 노선이 제 역할을 다해 성과적으로 결속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된다는 의미와 같게 된다. 이른바 자기사명과 의무를 다하고 ‘발전적으로’ 해소되어 다음단계로 넘어갈 때 이 의미를 쓴다는 말이다.

했을 때 병진노선을 폐기했다는 해석은 옳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결정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에서 ‘위대한 승리(강조, 필자)’라는 문구가 분명하게 이를 근거해 준다. 뿐만 아니라 만약 폐기가 옳으려면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자체를 포기해해야 하고, 핵무기 폐기와 헌법에 명시된 핵보유국 지위도 삭제해야 하는 것이다. 실패한 노선과 정책의 결과물을 그대로 둔다? 그것은 상식적이지도 옳은 총화방식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속은 폐기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런 질문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북한이 주장하는 병진노선이 성공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라고 말이다. 또한 북한이 내세운 ‘국가 핵무력 완성’에 대해서도 합리적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대기권 재진입이라는 기술적 완성이 이뤄졌는가에 대한 의문 말이다. 했을 때 이 문제는 이후의 진행되는 시간이 그 진실여부를 말해줄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향후 남북, 북미정상회담 이후 핵무기 해법 로드맵을 어떻게 짜내는지 와도 연관되어 있다 하겠다.

그렇다하더라도 우리는 그 전제하에 몇 가지 분명한 것도 확인해 낼 수가 있다. 우선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북한이 경제-핵 병진노선 종결을 선언하였다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전략노선을 변경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승리적으로 더 엄밀히는 ‘정치적 승리’라는 결론은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2016년 5월 열린 노동당 7차대회에서 찾을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병진노선을 두고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이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노선”이라고 했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종결짓는다? 가능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는 발상이다. 그렇다면 조선혁명의 최고이익과 직결된 항구적인 전략노선이 완료됐다는 것은 말 그대로 최고 이익구현에서 제기된 정치적 목표 달성은 적어도 해내었다는 설명은 가능해진다.

이른바 그 어떤 제재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렸다는 성과가 그것이라고 한다면, 그 성과가 북한이 미국과 상대하면서 얻어내어야 할 전략적 근본이익과 부합한다는 말과도 같게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2016년 북한이 정부 대변인 성명으로 발표한 ‘조선반도 비핵화’에 관한 5개 대미 요구사항 △남조선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남조선 핵무기와 기지 철폐 △조선반도 주변 핵타격수단 전개 중단 △핵사용 전쟁위협 중단 △주한미군 철수 선포와 2018년 4월 12일 <한겨레신문>의 단독보도,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북한이 요구했다던 비핵화에 상응한 대가로 △미국 핵전략자산의 한국 철수 △한미연합훈련 때 핵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북미수교가 사실이라면 그 근본이익 관철이 상당부분 겹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주한미군 철수(선포)를 빼고서는 말이다. 이렇게 전략노선 변경의 근본요인이 충분히 발생한 셈이다.

또 다른 한 요인으로는 <결정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를 채택하면서 워딩된 ‘핵무기 병기화 완결’에 있다. “첫째, 당의 병진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림계 전 핵시험과 지하 핵시험,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초대형 핵무기와 운반수단 개발을 위한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여 핵무기 병기화(강조, 필자)를 믿음직하게 실현하였다는 것을 엄숙히 천명한다.” 액면그대로 해석하자면 기간 계속해서 핵무력(수소탄 등 다양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운반수단)을 양산해내었고, 이것이 실전 배치가 끝났다는 얘기와도 같은 것이라면 이것은 전략노선 변경의 충분한 요인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국가 핵무력 완성된 상태에서 북한은 다음단계, 경제문제로 중심축을 이동시켜 내고자 했던 것이 제7기 제3차 전원회의가 소집된 근본이유였다고 한다면 국가 핵무력 완성선언(2017.11.29.)과 신년사(2018.01.01.)에서는 “미국이 나와 우리나라를 향해 전쟁을 걸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고는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나가야”한다며 ‘핵전력 강화’를 공언했고, 연이어 7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핵무기 병기화 완결’선언이 나온 상태까지 그 궤적과 흐름을 추적해보면 지금의 정세국면전환이 북한 내부적으로는 강성국가의 3대 지표 중 마지막 단계인 경제 강국건설에 매진해야 될 전략적 목표가 발생했고, 대외적으로는 비핵화로 대변되는 세계평화실현에 매진해야 될 상황과, 민족적으로는 6.15공동선언 2항의 충실한 이행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맥을 그렇게 닿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5년 전 경제-핵 병진노선 채택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이 병진노선의 중요성을 “적들은 우리에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고 위협 공갈하는 동시에 다른 길을 선택하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회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항시적으로 핵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핵보검을 더욱 억세게 틀어쥐고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억척같이 다져나가지 않을 수 없다.”에서 왜 경제-핵 병진노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7기 제3차 전원회의를 통해서는 그 목표가 달성된 상태에서 핵 보유국가의 지위와 역할에 걸 맞는 높이에서 정세를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피력될 수밖에 없었음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겠다. 이른바 전략국가로서의 위엄 말이다.

해서 결론은 이렇다. 이번 7기 제3차 전원회의가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고, 이 의미가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현재와 미래의 핵은 모두 미국이 요구하는 폐기에 응하겠으나, 과거의 핵(완료형)은 미국의 태도, 즉 세계비핵화의 진도와 비례해서 처리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비핵화라는 선대 수령의 유훈을 지키면서도, 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는 세계 비핵화 실현에도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여 진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 <결정서> 넷째 항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 그것이다. 사실 이 문장은 대다수 대한민국 국내언론과 문재인 정부 및 미국코드에 입장을 일치시키려 했던 전문가들로부터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자신들의 희망적 사고분석법에 의해 둘째 항목인 “주체107(2018)년 4월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다.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풍계리)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란 시선에만 집중한 탓이다. 그런데 유독 빅터 차(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만이 미국의 인터넷매체 <악시오스>(2018.04.21.)와의 인터뷰에서 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서>에 대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의 모든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시험 금지, 선(先) 사용 금지, 이송 금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면서 “이는 비핵화 선언이 아니며, 북이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분석해내었다. 노회한 한 전문가인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그럼 왜 우리는 빅터 차와 같은 분석을 해내어야 하는가? 
그 첫째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승리(결속)’ <결정서> 넷째 항목이 앞의 둘째 항목 결과를 만들어 낸 원인이기 때문이다. 즉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화법이기에 우리는 이를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그래서 둘째 항목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본 결과 ‘비핵화’에 큰 “진전”이 아니라 ‘핵 보유’와 ‘핵 동결’전략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했을 때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란 표현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 올 수 있는 과거완료형 문장이자 향후의 행보에 있어 전략국가이자 핵보유국으로서 NPT체제 복귀와 질서를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분석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석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NPT체제 복귀와 그 틀 안에서 핵군축 문제를 본격적으로 미국과 담판하겠다는 전략의 함의의 내포로도 해석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는 <결정서> 셋째 항목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는데, 다름 아닌 “핵시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시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향후 미국과 소련이 실패한 ‘핵군축’문제를 자신들이 주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어서 그렇다.

다음으로 또 확실해진 것은 <결정서>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의 채택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승리적으로 결속한 상태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한다면 이는 핵과 경제의 병진 중 핵 무력을 완성한 조건하에서는 그 핵으로 미국과 정치·군사적 담판을 해 나가고, 앞으로는 모든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와 맞닿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근거는 이미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예고되어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에-핵·경제 병진노선에 대해 북한은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면서 경제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을 하루빨리 건설하기 위한 가장 정당하고 혁명적인 노선”이라 명명했고, 핵-경제 병진노선 승리(결속) <결정서>에서는 “나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강력한 사회주의 경제를 일떠세우고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투쟁에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총화 하였기 때문에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나라의 방위력을 철벽으로 다지면서”에서는 핵무력에 의한 나라의 방위력이 철벽으로 다져진 상태에서는 이제 경제건설에 매진할 수 있는 무력적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해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7기 제3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는 구호를 들 수 있었고,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당면목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기간에 모든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 정상화의 동음이 세차게 울리게 하고 전야마다 풍요한 가을을 마련하여 온 나라에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높이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강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1차성과는 공화국 정부 수립 70년이 되는 9.9절에 그 성과지표가 선보여 질 것으로 보인다. “풍요한 가을(강조, 필자)을 마련하여 온 나라에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높이 울려 퍼지게”라는 문장에 그 단서가 있다.

그리고 그 방법론도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2년 전에도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상승궤도에 확고히 올려 세우며 나아가서 자립적이고 현대적인 사회주의경제, 지식경제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곤 “과학,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제7차 당 대회)”고 강조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이번에도 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과학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 <결정서>를 채택하면서까지 “과학, 교육사업을 중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함은 물론, 해당 <결정서> 첫째 항목에서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밝혀 지난 2016년 당 7차대회에서 공표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2020년까지)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옮겨놓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전략적으로는 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을 통해 북한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하고,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라고 하는 새로운 전략적 결의가 그것이고, 의미적으로는 경제-핵 병진이라는 투 트랙에서 그 한 트랙인 핵무력이 완성된 조건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 그 마지막 점령단계인 경제강국 건설에 총력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 그 내용이 된다. 혹자는 이러한 노선전환을 북한이 핵과 경제를 바꾸는 새로운 선택을 했다고 분석할 수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북한은 이제 앞으로 분명하게 핵무력 건설을 위해 투자했던 자원과 노력을 본격적으로 경제강국 건설에 집중한다는 사실이다.

경제-핵 병진노선의 취지에도 철저히 부합되고, 또한 북한이 이번 남북, 북미정상회담에 임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던 제재문제 해결과 경제적 지원 및 보상을 일절 꺼내지 않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어지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경제건설 총집중이라는 새로운 전략노선의 성공 요인을 자력갱생 정신과 과학기술에 두고 있는 것이나, 경제건설에 집중할 수 있는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결정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리고 그 ‘유리한 국제적 환경’의 의미도 ‘자력갱생 정신과 과학기술’과 연동하여 볼 때 그 방도가 국제사회로부터의 보상에 따른 일방적 경제지원 방식 보다는 경제협력과 같은 국가대 국가의 대등한 경제협력 외교라 할 수 있겠다. 해서 이 대목을 우리가 오독하여 북한이 비핵화와 경제를 바꾸는 전략으로 수정했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엄청난 오판과 실수를 면치 못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북, 북미정상회담 이후 이런 태도는 엄청 기성을 부릴 것이다. 여전히 비핵화에는 미흡하다는 둥, 앞으로 대북협상의 기본목표를 북한의 비핵화에 두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지원으로 보상하면서 잘 접근해야 한다는 대책들이 세워져야 한다는 둥 그렇게 ‘어이없는 ’정책조언들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판 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현혹되지 않게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해서 우리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정독하기 위해서는 첫째, 북한이 핵과 경제의 보상패턴과는 완전히 결별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만 핵동결 선언이 지난 2013년 3월 수립했던 핵-경제 병진노선을 승리적으로 결속 짓고 7기 제3차 전원회의가 새롭게 제시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이라는 전략노선을 이해해 낼 수 있다. 총적으로는 정치사상 강국과 군사강국을 실현한 조건에서 경제강국으로 내달리겠다는 그 의도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정독해석이 필요한 대목은 새롭게 공식화한 핵전략의 문제이다. 기간 북한의 세계비핵화 전략은 ‘핵시험 중지’에서 ‘핵군축’이라는 2단계 해법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이번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제3차 전원회의의 결정사항을 보면 ‘핵 시험 중지’에서 ‘핵군축’을 묶어 크게 1단계로 제시하고, 다시 ‘핵군축’에서 ‘핵시험 전면 중지’로 가는 2단계 경로를 크게 제시하면서 ‘핵무기 없는 세계 건설’에로 지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선제적으로 ‘핵 시험 전면 중지’와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 전면 금지’조치를 한데서 증명된다.


세계비핵화
7기 제3차 전원회의 이전7기 제3차 전원회의 이후
1단계2단계1단계2단계
핵시험 중지핵군축핵시험 중지

핵군축
핵군축

핵시험 중지


참으로 통 큰 전략을 선제적으로 선보였다. 그 전략적 의의가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서는 제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그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한반도 비핵화를 마침내 세계비핵화와 연계해 낸 것이 그 첫 번째 통 큼이고, 핵무력 완성 그리고 그로 인해 ‘한반도와 지역에서 긴장완화와 평화에로 향한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국제정치 구도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한 시대적 변화를 주도함에 그 통 큼 두 번째 이유가 발생한다(이것을 잘 활용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도 크게 박수 받을 만하다).

해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북한이 절대 호락호락 하지 않는 국가라는 사실이고, 미국이 북한과 협상장에 마주 앉게 된 기본 동기가 미국과 대한민국 정부가 보는 것과 같이 제재와 압박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력 완성에 있고, 북한의 핵이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춘 데 있다는 사실을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즉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독점이 깨졌기 때문에 미국이 협상장에 나왔다는 그 사실과, 그것과 비례하여 미국이 그렇게 여유 있거나 느긋한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지렛대를 잡고 싶다면 제대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끼리 함께’라는 민족공조이념을 ‘정상적인’ 한미동맹 하에서도 실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분단 70년 만에 찾아온 이 천재일우(千載一遇]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정부로 ‘대한민국실록’은 기록해 낼 것이다.

1808 김광수. [4] ‘수령제’ 사회주의도 사회주의이다 - 통일뉴스



‘수령제’ 사회주의도 사회주의이다 - 통일뉴스


‘수령제’ 사회주의도 사회주의이다<연재> 김광수의 ‘제대로 된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 (7)
김광수 | no-ultari@hanmail.net

승인 2018.08.13 11: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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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외부자의 시선으로 북한체제의 ‘사회주의’ 속성을 부정하려 해도 부정될 수 없는 사실 하나가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국가라는 사실 그 자체이고, 이는 북한이 수령중심의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띠고 있다하여 변할 수 있는 그런 결론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그 결정적 증거들 때문이다.

첫째, 정치기제에 있어 ‘사회주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그렇다. 이는 사회주의국가 체제인가, 아닌가를 가름하는 결정적 징표 중의 하나가 유일정당 체제 유무가 그것이라 했을 때, 북한은 누가 뭐래도 ‘조선로동당’ 유일정당 체제를 띄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사회주의국가 체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경제체제 문제이다. 경제체제 문제에 있어 ‘사회주의’ 속성을 그대로 증명해주는 것도 ‘국가계획경제’ 형태를 띠고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고 한다면 북한은 그 어떤 사회주의국가들보다도 ‘국가계획경제’ 체제를 지속시켜나가고 있는 그런 국가이다. 그러니 어찌 사회주의국가 체제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북한은 엄연한 사회주의국가 체제인 것이다. 그것도 사회주의국가 체제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둘 다 교집합으로 충족시켜주는 그런 앤드(and)적 방식의 사회주의국가 체제인 것이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정치기제에 있어서는 유일정당 체제이지만, 이미 경제에서는 ‘시장사회주의’라는 수정주의 형태를 띄고 있어 사회주의국가 체제 원형이론에 충실한 국가라고는 할 수 없다. 이 외에 베트남, 베네수엘라, 쿠바 등도 정치기제에서는 유일정당 체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체제에 있어서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으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국가계획경제’에서 많이 후퇴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이들 국가들이 오리지널(original) 사회주의국가 체제라기에는 뭔가 좀 어색할 수밖에 없게 되어졌다.

해서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소련과 동구권 해체 이후, 그렇게 사회주의국가 체제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는 국가는 현존하는 (사회주의)국가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북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외부자들인) 왜 우린 그런 북한을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띤 국가로 잘 인정하지 못하는가?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현실 사회주의국가 체제에서 북한만이 그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엥겔스의 사회주의국가 체제 원형이론에 가장 잘 부합하는 그런 존재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자들의 인식에는 북한을 사회주의국가 체제로 인정해주고 싶지 않는 편견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그리고 그런 편견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희망적 사고’의 극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정리할 수가 있어서 그렇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소련·중국만이 사회주의 원형국가가 될 수 있다’는 현대판 ‘사대주의’, ‘대국주의’ 인식의 발로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간다면 외세(미국)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자유민주주의국가 체제인 대한민국의 국가주의적 관점에서는, 혹은 체제경쟁의 관점에서는 대한민국보다 못사는(아니, 못살아야만 하는) 북한이 비록 적대체제이기는 하지만 사회주의국가 체제의 원형이라는 국가이미지가 영 못마땅한, 즉 ‘사촌이 땅 사니 배 아프다’는 심보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그런 아주 고약한 마음, 혹은 자격지심(自激之心)의 발로가 아닌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정직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하겠다.

또한 모르긴 몰라도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사회주의’하면 러시아혁명, 마르크스와 레닌으로 상징되는 그런 인식적 흐름과, 또 한편으로는 학계의 잘못된, 혹은 지적 게으름의 풍토도 한 몫하고 있지는 않은지 충분히 검토해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 혁명 이후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국가 체제로 소련체제를 그 롤 모델로 하였음은 분명하다.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용하였고, 정치경제적으로는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협동)적 소유와 공산당(노동당) 중심의 일당유일 체제를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사회주의 = 소련체제>로 등식화되어지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연동되어져 북한사회도 소련에 의한 이식된 사회주의국가 체제라고 바라보는 경향이 생긴 것이고, 결과도 북한의 체제가 소련의 꼭두각시체제라는 의미와 맞닿게 하였고, 그 결정적 증거가 미 국무부가 편찬한 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북한이 소련의 위성국가(satellite)라는 사실과 함께, 그런 의미로써 북한이 ‘괴뢰’국가라는 이미지가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기도 하였다.

나아가서는 북한을 스탈린주의 국가체제로서 인식하려는 편견도 있었는데, 이는 여타의 사회주의국가와 소련마저도 작금의 그 스탈린주의를 포기하는 상황이 되어져가고 있는데도, 유독 북한만은 여전히 ‘과거의 체제’를 ‘현재의 그대로 지속해 나가는 아주 ‘잘못된’ 국가체제라는 인식이 그러한 결론 - <북한체제 = 소련체제>에 한 몫 더 하였다고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잘못된’) 인식과 결론은 다음과 같은 두 증명으로 당장 바로 잡혀져야만 한다.

그 첫째는 북한의 혁명역사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한다면 그 결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다름 아닌, 소련의 강력한 후원과 중국의 지원 등에 의해 지금의 북한식 사회주의체제가 가능했음도 분명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사실 못지않게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빨치산 세력들의 오랜 항일독립운동 결과라는 점 또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한체제 형성 그 과정이 정권의 수립과 함께 그런 정치체제가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의 오랜 항일투쟁의 결과물이자 그들이 역사적 과정에서 맞닥뜨렸던 현실적 과제와 국가적 목표, 또 그들이 이상으로 추구해왔던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건설이라는 변증법적 과정과 맞물려 공고화되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그것이고, 이념적으로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하면서(계승성) 북한의 처지와 실정에 맞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통치이데올로기로 확립하였고(독창성), 정치경제적으로도 최근의 국가적 어려움과 이러저러한 경제난으로 인해 계획공급 능력의 약화와 시장화 현상이 일부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북한은 그 어떤 사회주의 국가보다도 국영기업의 사유화가 전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등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협동)적 소유와 노동당 중심의 유일정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그런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8년 현재, 누가 뭐래도 사회주의이론 원형으로서의 사회주의국가 제체를 가장 많이 닮고 있고, 유지시켜 나가는 그런 국가가 역설적이게도 북한이고, 그런 북한의 ‘수령제 국가체제’야 말로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가장 오리지널하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게 하는 그런 힘 있는 정치체제임을 각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윗글에서 잠시 확인하였듯이 금방 확인될 수가 있다. 현존하는 사회주의국가들 중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사회주의국가 체제나 중국, 쿠바의 사회주의국가 체제와 비교를 해본다면 오히려 어느 국가가 더 사회주의이론 원형에 충실하고, 이탈하고 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설명할 수가 있어서 그렇다.

우선은 이들 국가들이 북한과는 달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혼합시킨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수정주의 경제체제를 만들어내었고, 엄밀히는 사회주의국가 체제의 한 특성인 국가계획경제 체제를 무너뜨려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산당(노동당) 중심의 유일정당 체제를 유지시켜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지도이념을 사상-마르크스·레닌주의와 같이, 혹은 북한처럼 주체사상과 같은 그런 철학적 개념으로 정립해낸 지도이념이나 통치철학이 아니라, 자국의 당대 최고 통치자(서기장, 주석, 국가평의회 의장 등)의 통치이념이나 지도사상으로 대체되는 등 개인화 이념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그렇다.

그 둘째는 북한체제를 전체주의(스탈린)국가 체제로 오독해낸 그런 인식에도 결국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봤을 때 북한의 ‘수령제 국가체제’가 봉건적이고도, 반민주주의적인 전형으로 간주되는 그런 사회과학적 문법체계의 인식의 연장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또한 백번 양보하여 스탈린과 함께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 시대 때에도 마오쩌둥 자신이 (수령) 권위를 이용하여 당과 당 우위에 국가체제를 파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북한도 수령중심의 사회주의국가 체제가 당과 당 우위의 국가체제를 파괴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그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야 한다면, 이 또한 다음과 같은 반론들에 직면해야하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위의 스탈린과 마오쩌둥과는 달리 더 철저하게 당과 관료체계를 통해 자신의 지도를 관철시켜나간 것으로 말이다.

증명은 이렇다. 북한의 수령체제에 대한 비판의 잣대로 활용되는 수령의 ‘직할통치’가 외부자들의 우려와는 달리(외부자들의 우려라 함은 수령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여 무조건적이고 독단적으로 정책결정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인식) 당과 내각, 그리고 현지지도라는 형식을 통해 나타난다 했을 때, 그것은 북한의 수령제가 결코 당과 유리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그 역시 당을 통한 추상적 지도와 구체적 지도의 결합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면 북한은 오히려 그 어떤 사회주의 국가들보다 더 당 우위의 국가체제를 잘 지켜나갔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다.

어떻게? 수령을 ‘아버지’라고 한다면 당은 ‘어머니’의 기능으로, 이는 다시 수령은 인민의 아버지이자 당의 어머니라는 ‘어버이’ 개념으로 연관되어져서 말이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의 특징으로 ‘위대한 지도자’의 존재와 사회주의 혁명전통, 당적 통제를 기본으로 하는 수령의 지도 등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지는 것이 사회주의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북한의 수령제는 외부의 시선과는 달리 수령의 임의적이고도 독단적인 지도가 아니라 당을 통한 지도와 당적 조직 체계를 통해서 움직인다는 지도원리가 배반되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더더욱 그러한 평가에는 조심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수령제가 제아무리 수령에 대한 정의와 수령의 권한에 대한 집중도, 그리고 권력이양 방식 등이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랐고, 높다고는 하나, 북한의 수령제 역시 어디까지나 당 우위의 국가체제, 국영화를 중심으로 한 중앙 집중형 생산체제, 이데올로기의 우위성 등을 갖고 있고, 이로부터 당을 통한 정치적 지도, 계획에 따른 생산과 분배 및 대중 동원형 구조, 일원화된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가 작동되고 있는 그런 특징으로서의 사회주의 보편적 특징들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그런 국가체제임이 분명해서 그렇다.

이래놓고 한편, 다른 시각에서도 북한의 수령중심 사회주의국가 체제가 엄연한 사회주의국가 체제임을 논증할 수도 있다.

그 첫째가 북한의 수령제 사회주의국가 체제에 대해 사회주의국가 체제가 아니라함은 다음과 같은 논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해서 그렇다.

다름 아닌, 자유민주주의국가 체제 또한 단지 부르주아들을 위한 민주주의일 뿐이며, 자유주의자들이 민주주의 가치로 자랑해대고 있는 선거도 종국에는 부르주아의 게임으로만 치부되어지는 그런 인식과도 연결되어져야만 한다면, 그 연결에는 자유민주의국가 체제 또한 20세기 이전의 전근대를 완전히 띄어 넘은 현대 민주주의국가 체제의 원형이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바라보는 인식과도 똑같이 그렇게 닮아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약점과 한계가 있다하여 그것을 근본문제로 환원하고 극대화하여 현실과 실천에서 모든 것이 잘못되어진 것으로 단정해버려야 한다면, 그 체제형식이 비록 자유민주주의국가 체제든 사회주의국가 체제이든 모든 체제가 다 문제가 있고 부정되어져버려야 하는 그런 오류가 똑같이 적용되어질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다르게는 대한민국이 약간 문제가 있는, 혹은 ‘잘못된’ 국가운영 체제를 갖고 있다하여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가체제가 자유민주주의국가 체제라는 사실 그 자체가 의심받지 않아야 한다면, 또 비유적으로도 한 국가가 독립국가임을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국군통수권 유무에 있다했을 때, 그 통수권마저도 다른 나라(미국)에게 빼앗겨져 있다하여 대한민국을 미국의 ‘괴뢰’, 혹은 미국의 ‘위성국가’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면(그렇게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인식적 잣대는 북한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비례적으로 적용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로 우리가 북한을 전체주의, 술탄체제, 신정(神政)국가, 극장국가 등의 정치체제로 이해해 그 사회주의적 속성을 부정하려 한다면, 같은 논리로 우리 대한민국도 ‘오래된’ 과거로부터는 군부독재체제로,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를 ‘新유신체제’, 혹은 1960~70년대의 반공주의가 버전-업(version-up)된 ‘종북·반북주의’라는 성격규정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함재봉의 저서,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서울: 전통과 현대, 2000)에서는 대한민국을 ‘유교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또한 참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둘째에 현실 사회주의국가 체제에 있어서도 소련식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위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북한식은 소련식 사회주의국가 체제가 아니었고), 그것은 곧 사회주의국가 체제의 본질적 속성은 그대로 갖고 있되 그 특수성으로 자국의 처지와 실정에 맞는 그런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북한의 수령중심의 사회주의국가 체제도 만들어졌다고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정치체제도 처음(초창기)에는 여타 모든 신생독립국가들처럼; 자유민주주의국가 체제를 선택한 국가들은 미국이나 영국의 체제를,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선택한 국가들은 소련의 체제를 그 롤 모델로 하는 그런 국가체제를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북한도 예외 없이 소련의 사상(마르크스-레닌주의)과 제도를 그대로 이식받을 수는 있었겠으나, 그 태생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북한의 정치체제가 소련의 사회주의국가체제와 하등 다를 것이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소련보다 더 지독한 전체주의 국가로 북한을 이미지 메이킹(making)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위에서도 잠시 언급하였듯이 북한도 대한민국과 똑같이, 혹은 신생독립국가임으로 인해 초기의 정치체제를 선택함에 있어 기존 그 어떤 특정체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은 우리(대한민국)가 그러했듯이 그들의 옷에 맞는 법, 질서, 체제, 문화 등을 체계화시켜나갈 수 있는 그런 국가적 권리를 행사하였고, 그 결과가 북한이 제 아무리 특이한 체제-수령제 국가체제를 선택하였다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주의국가체제 안에서의 특이체질(체제)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증명할 수가 있다.

마치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 체제라는 체제 안에서 미국식과 일본식이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듯이, 더 나아간다면 유신국가, 반공국가, 독재국가, 종속국가, 식민국가 등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 메이킹이 있지만 자유민주주의국가 체제가 부정되지 않듯이 말이다.

또 더 나아간다면 자유민주주의국가 체제 안에서는 내각제도 있고, 대통령중심제도 있고, 심지어 이원집중부제 등도 있듯이 사회주의국가 체제 안에서도 소련식이 있을 수 있고, 중국식, 베트남식이 있을 수 있듯이 북한도 북한식으로 수령제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충분히 채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했을 때 북한의 정치체제가 특수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함의는 사회주의국가의 보편적인 정치체제와 동형의 구조라는 의미가 더 간과되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북한이든, 소련이든, 미국이든, 대한민국이든 그 어떤 국가든 자국만의 특성에 맞는 국가체제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선택에는 자국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 지역성, 민중의 정치지향성, 상황적 조건-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경제적 조건 등이 충분히 반영되어 그들 국가들에게 가장 부합하는 그런 방향으로 국가체제를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맞물려 위 모든 사실들로부터, 그 비교의 잣대가 공정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잣대를 들이대고, 공격적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공정하지도 옳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마치 그것은 북한이든 남한이든 다 똑같이 그 나름의 체제특성과 부정성들을 갖고 있고(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들에게도 해당되는 그런 사항이다.), 또 현존하는 사회주의국가들 중에서 어느 국가가 더 사회주의국가 체제에서 이탈하였고, 어느 국가가 더 사회주의이론 원형에 가까운지를 보다 편견 없이 봐라보아야만 하는 것과 똑같이 그렇게 인식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서 말이다. 북한이라고 해서 소련중심의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금, 북한이 사회주의 원형국가의 롤 모델이 되면 안 되는 이유가 도대체 뭐이며 꼭 그렇게 폄훼하고, 부정하고, 편견을 가져야만 하는가?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당연히 그러한 인식들은 불필요하다. 그렇게 답해져야 하는 것이고, 이를 1991년 12월 25일 저녁 7시(모스크바 시간)에 주목하면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소련이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포기한 시간이 그날이었고, 이후 이론원형으로서의 사회주의국가 체제는 남아있는 사회주의국가들이 만들어나가야 될 역사적 소명으로 되어졌기 때문이다.

그 한복판에 북한이 서 있고, 그런 정치경제적 정답 찾기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그런 북한의 모습에서 많은 논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위에서 확인받듯이 북한이 2018년 현재에도 여전히 ‘수령제’ 사회주의라는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확립해나가고 있고, 그러한 행위가 소련식 사회주의 모델 해체 이후 새로운 사회주의국가 체제의 이론원형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그런 엄청난 (사회주의)체제 실험과도 맞물려 있어서 더더욱 주목받아야 하는 것으로 결론 나야한다는 것이다.

1807 김광수. [3] 북한의 수령제 사회에 대한 옳은 이해: 수령과 우상화를 중심으로 - 통일뉴스



북한의 수령제 사회에 대한 옳은 이해: 수령과 우상화를 중심으로 - 통일뉴스

북한의 수령제 사회에 대한 옳은 이해: 수령과 우상화를 중심으로<연재> 김광수의 ‘제대로 된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6)
김광수 | no-ultari@hanmail.net
승인 2018.07.26 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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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 뭐니 해도 북한의 ‘수령’ 개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우상화’와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수령을 마치 숭배의 대상으로 떠받들어지는 신격화와 거의 동일시되는 그런 믿음 때문이다.

같은 의미로 수령을 마치 천상계의 절대자로 개념화하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인간계(人間界)와는 달리, 인간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유형으로 리바이던((Leviathan))화하여 절대화, 신격화, 무조건화, 숭배하고, 섬겨야만 하는 그런 북한판 토테미즘과 연관된 부정적 의미에서의 극단으로 말이다.

북한의 ‘수령’ 개념을 바라보는 외부자들의 시선은 이렇듯 대부분 부정적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령은 천상계도, 인간계도 아닌 한 국가의 이념체계와 통치이념, 그리고 자국의 지도이념이자 철학으로 기능하고 있는 주체사상에 기반 한 사상적 개념이자 사회과학적 용어이고, 정의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이다. 그것만이 진정한 팩트(fact)이고, 진실로 존재한다.

물론 그런 ‘수령’ 정의를 수용하고 못하고는 그 수용자의 철학과 믿음체계에 따른 자유이다. 사회과학적 사유체계로서는 그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과, 위와 같은 편견과 무조건적인 우상화로 ‘수령’ 개념을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여야 한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로 존재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해서 결론부터 말하면 ‘수령 개념은 우상화 개념과는 하등 인연이 없다’이다.

다음과 같은 명확한 근거가 있어서 그렇다. 우선, 개념설정 분야가 매우 다르다. 수령 개념은 사회정치·철학적 개념이고, 우상화 개념은 사이비 종교적 개념이다.

둘째, 범주가 다르다. 수령 개념은 집단적 관계(수령-당-대중)의 범주이고, 우상화는 개인의 인식범주이다.

셋째, 수령 개념은 역사발전 단계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라면, 우상화는 그런 개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미신(迷信)적 믿음 문제이다.

전제를 이렇게 해놓고, 우리가 ‘수령’ 개념을 좀 더 사회정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파악하고 있는 사람의 본질적(본성적) 속성을 한번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북한에서 정의하고 있는 사람의 본질적(본성적) 속성 또한 사회정치적 개념이고 철학적 영역의 문제인데, 그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본질적 속성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3대 특징으로 규정하고, ‘수령’ 개념은 바로 그 개념의 정립토대 위에서 이뤄진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의 정수로 규정하고 있어서 그렇다.

논리전개는 다음과 같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자신들의 주체사회주의-수령제 사회주의를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집단주의적 요구>를 가장 훌륭히 구현하고 있는 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이론근거는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회적 집단 속에서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인 것만큼, 사회적 집단과 운명을 함께하면서 서로 협력하며 살려는 <집단주의>를 그 본성적 요구로 하고 있으며 그래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은 사회적 집단 속에서만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근본원리가 도출된다는 것이다.

집단주의는 바로 그 원리에 따라 사람이 사회적 집단의 한 성원으로 존재할 때만이 보람 있게 살기 위한 근본담보로 된다는 것이 그 관계의 연관본질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런 사회원리는 수령을 중심으로 유일적으로 작동되는 사회유기체 국가특성을 띄게 되고, 그 체제 안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본성적 요구인 집단주의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잘 구현되고 있는 그런 나라가 북한이고, 그 자긍심으로 충만한 북한인민들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매우 값진 삶을 자기들이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례해서 북한은 그런 사회유지를 위해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집단주의 교양을 강화하여 온 사회에 집단주의가 높이 발양될 수 있게끔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에서 <집단의 이익>이 철저히 옹호된다하여 <개인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우려인데,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집단의 이익>이 철저히 옹호되는 기초 위에서 <개인의 이익>도 철저히 존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북한의 집단주의를 집단의 발전과 번영 속에서 매 개인들이 발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 하고, 이 부분이 북한의 주체사회주의-수령제 사회주의의 본질적 우월성이 있다고 자랑하는 근거가 되는 것 같다.

주체사회주의-수령제 사회주의는 이렇듯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사회인 것으로 하여 민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 것이 민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민중 중심의 사회주의가 되고, 그 핵심 연결고리에 수령과 당, 군대, 대중이 일심 단결하는 원리가 있고, 수령이 그 관계에 있어서 <절대적인> 지위와 <결정적인> 역할, 즉 위상을 갖는 것으로 규정할 수가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역사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수령과 사회정치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자주적’ 주체가 될 수 없고, 그런 만큼 그 ‘자주적’ 본성은 결국 수령과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연결될 때만이 획득되는 그런 개념으로 철학이 정립되는 기반을 제공하여 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동시에 수령은 한 인간의 개체라는 의미에서의 개인이라기보다는 개개인의 합을 사회정치적으로 묶은 것이 민중(인민대중)이라 한다면, 그 인민대중의 집단적 기초의 최고 꼭지에 수령을 위치시켜 놓고 그 수령이 집단적 요구와 의사의 최고 체현자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끔 그런 개념으로 정립시켜 낸다.

이는 집단적 개념만으로 수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수령은 인민대중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개념으로 일치시켜 놓은 것이다.

이렇듯 북한의 수령 개념은 사회과학적 범주의 이론화 과정에서 정립된 핵심 키워드이다.

그 과정을 좀 더 부연 설명하며 다음과 같다.

북한은 1982년 김정일에 의해 「주체사상에 대하여」가 발표되면서 주체사상에 대한 사상·이론적인 체계성을 갖추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주체사상에 대한 이론화 과정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총서 10권>을 내오게 되는데, 북한은 이 작업과정에 비례하여 국가적으로는 주체사상을 전 사회적인 분야에서 통치이데올로기로 위상 지운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라는 개념을 북한식 사회 유기체관으로 반영시켜내고, 수령은 이 유기체의 최고의 지위와 역할을 갖는 존재로 자리매김 시킨 것이 그것이다.

다음의 논문,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김정일, 1986. 7. 15)」를 보면 이는 명약관화하다.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로까지 그 개념을 확장시켜 내는 것이 그 골자였는데, 그 수령을

“수령-당-대중의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최고뇌수로서, 이 생명체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다.”

이 정의(定義)로부터 ‘인민이 주인’이 되는 혁명을 승리로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주적 사상의식에 기초하여 형성된 ‘수령과 당, (인민)대중의 삼위일체이자 전일체’인 혁명의 ‘자주적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시켜 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이 혁명의 ‘자주적 주체’가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를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해석하자면 ‘자주적 주체’란 바로 걸출한 수령에 의해 영도되고 형성될 때만이 비로소 혁명승리를 개척하는 자주적 집단으로서 존립하고 기능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적 사유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 수령 없는 당과 인민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를 사람의 신체와 비교했을 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 ‘뇌수’로 정식화시켜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김정일의 위 논문은 “육체적 생명은 부모가 주는 것이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령이 부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수령은 “사회정치적 생명의 부여자이며 당은 사회정치적 생명의 모태”로 규정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구분

육체적 생명

사회정치적 생명


생명부여 주체

부모

수령


생명의 유무

유한

무한


나아가서 김정일은 위 정의에서 수령을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의한 이론적 정립뿐만 아니라 또 다른 정당성 하나를 더 부여한다. 다름 아닌, 수령제 사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위 이론은 1960년대 후반부터 북한이 당면하게 부딪혔던 ‘계승’의 과제와 결부되어 후계자론 정립으로 나타나게 한 이론적 토대이자 수령론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체계였다. 그 내용이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적 원리, 영도체계라는 이론에 의해 권력승계와 관련한 주체적 담론의 기준을 마련하고, 수령제 사회에 대한 정통성 부여와 수령-후계체제로 이어지는 권력승계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혁명과 건설의 추진 과정에서 제기하고 풀어나간 수령-당-대중의 통합체계를 북한 사회발전의 주체 문제로 인식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북한식 권력 승계논리를 형성시켜 나갔다는 뜻이면서도, 동시에 김일성·김정일 수령과 김정은 후계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수령이 주체사상의 핵심 키워드이자, 수령·당·대중은 하나의 생명을 가진 유기체적 통일체이며 개별적 사람의 생명의 중심이 뇌수인 것처럼 사회정치적 생명의 중심은 이 통일체의 최고뇌수인 수령으로부터 발현된다는 이론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고, 부연하자면 ‘뇌수’로서의 수령, 수령과 인민을 결합시키는 ‘신경’ 및 ‘혈관’으로서의 당, 그리고 ‘생명체’로서의 인민대중을 삼위일체로 하는 그런 사회 유기체론으로 정당화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뇌수가 혈관 및 신경을 통하여 세포와 손발을 활성화시켜 움직이게 한다면 그런 사회는 영원히 불멸할 것이라고 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고 그 중심에 수령을 위치지우고, 그 수령에 의해 사회정치적 생명이 부여된다는 체계화는 수령론을 주체사상의 정수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던 핵심요인이 되게 했던 것이다.

더불어 이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당의 지도 아래 수령의 주위에 결속되고,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형성하여 살아가는 그런 사회이자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된 사회, 즉 계급적 대립의 청산과 모든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로의 지향하는 그런 국가로 북한자신을 설정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정일은 이를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1991년)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는데, 이를 “수령·당·대중이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는 사회”로 규정하였고, 그 이론적 정립과 통치이데올로기의 위상반영을 수정헌법에 담아낸 것이다. 그 서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이다.”

이렇게 결론은 명확해졌다. ‘수령’ 개념 그 어디에도 ‘우상화’의 흔적은 없다. 다만, 우리들의 편견에 따른 작위적 인식뿐이다. 사회과학적 용어로서의 ‘수령’ 개념을 외부자들인 우리가 인정하고 있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그 또한 자유이지만, 분명한 것은 위에서 밝히고 있듯이 편견을 떼어내고 사회과학적 사유체계로 이해했을 때를 전제해야 한다.

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의문과 질문은 수령이 봉건시대의 그런 ‘절대군주’와 같다는 그런 편견이거나, 또는 미신적 범주로서의 우상화라는 인식이 아닌 ‘수령’ 개념을 사회과학화한, 철학화한 그런 개념으로 타당한가, 아닌가? 하는 그런 문제여야하며 더 나아간다면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런 문제여야 하는 것이다.

문제(의식)를 가지려고 한다면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그 연장선상에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지, 그냥 북한이 싫고, 북한체제가 마음에 안 들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마음에 안 든다하여 그냥 도매급으로 북한의 사상과 정치기제로 작동되고 있는 ‘수령’ 개념을 그렇게 우상화의 관점에서만, 절대군주의 관점에서만 무조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절대 정직한 태도가 아닌 것이다. 그 몽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수령을 철학·사회과학적 사유체계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루라도 빨리 해보자.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이사/현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현 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외 다수가 있다.



1807 김광수. [2] 북한은 왜 ‘수령제 국가체제’를 선택했고, 계속 유지하려 하나? - 통일뉴스



북한은 왜 ‘수령제 국가체제’를 선택했고, 계속 유지하려 하나? - 통일뉴스

북한은 왜 ‘수령제 국가체제’를 선택했고, 계속 유지하려 하나?<
연재> 김광수의 ‘제대로 된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5)
김광수 | no-ultari@hanmail.net
승인 2018.07.17 17:18:02



김광수 /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수령국가』 저자 · 21기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본인은 지속적으로 ‘제2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전제 하에 본인은 ‘제대로 된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 수령국가체제’라는 큰 주제를 갖고 왜곡된 북한이해를 바로잡고자 (이슈가 있을 때마다) <통일뉴스>에 정기 기고 글을 게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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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폴 북미선언 이행과정에서 있을 수도 있는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정론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의미도 담아내고자 한다. 또한 이미 사문화되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생명력과 위력을 가지고 있는 분단적폐의 제도적 주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데도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이번 연제의 큰 타이틀은 ‘북한의 수령체제에 대한 이해와 오해(들)’이다. (1)제1편은 ‘백두혈통에 대한 이해와 오해’이고, (2)제2편은 ‘북한은 왜 수령제 국가체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이고, (3)제3편은 ‘북한의 수령제 사회에 대한 옳은 이해: 수령과 우상화를 중심으로’이고, (4)제4편은 ‘수령제사회주의도 사회주의이다’로 끝맺는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필독을 권한다.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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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크기, 인구, 경제력, 군사력 등 모든 부분에서 미국과는 상대도 되지 않고, 특히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된 이후부터는 고립무원의 상태가 된 그런 북한이었지만, 북한은 그 모든 상황을 이겨내었다. 뿐만 아니라 핵보유와 함께, ICBM을 갖게 되어 미국, 중국, 러시아와 같은 반열의 전략국가가 되었다.

그 근원에는 누가 뭐래도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수령중심의 일심 단결된 국가체제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 어찌 북한의 ‘수령제 국가체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북한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두 가지 편의적 개념을 도입하고자 한다.

그 첫째는 ‘수령제 국가체제’를 소련식에다 북한식을 결합한 체제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그 둘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징을 수용하되, 동시에 그러한 당-국가 시스템 위에 수령을 추대한 북한식 정치체제 방식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 놓고-위 두 가지 개념을 전제해 놓고 북한은 왜 많고 많은 사회주의 국가체제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수령제 국가체제’를 선택했을까 하는 문제를 다음과 같은 시기구분을 통해 그 체제-‘수령제 국가체제’ 선택의 필요불가분성과 정당성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① 제일 먼저는 해방이전 항일무장투쟁의 경험과 교훈이 어떻게 해방이후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선택함에 있어 그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해보는 방식이다. 
② 두 번째로는 1960년대 현실 사회주의권 내에서 발생했던 권력교체기의 경험을 고찰해내어 여기서 북한이 어떤 교훈을 찾아내었는지 살펴보는 방식이다. 
③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발생되어졌던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체제의 몰락과정에서 북한은 또 어떤 총화방식으로 자신들의 체제유지 방어논리를 확립해내었는지 읽어내는 방식이다.

① 그 첫째에 해당되는 해방이전 항일무장투쟁의 경험부분이다.

딱 유일한 하나의 총화를 내온다. 최고사령관을 (유일)중심으로 하는 무조건적인 일심단결의 원칙수립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2가지 기준이 마련된다.

그 첫째는 (일심)단결해야 될 인물이 확정되고 나면 나이와 학력, 남성과 여성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무조건 그 인물(지도자)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기준이 성립된 것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라는 관계 맺기가 그 기본원리로 확립되고, 김혁·차광수 등이 실천적으로 그 모범을 선보였다. 김일성보다도 나이도 많았고, 항일운동의 선배이기도 하였고, 거기다가 차광수는 학력도 당시 최고의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일본 유학파 출신이었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김일성은 중퇴, 지금도 북한에서 가장 사랑받는 혁명구호 중의 하나가 <1980년대의 김혁, 차광수가 되자!>이다.)

그 둘째는 초기 공산주의 운동(민족주의자들의 독립운동도 경향적으로는 비슷한 모습을 띄지만, 논외로 한다.)의 경험과 교훈에서 찾아낸 것이 종파와 분파를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이다. 이른바 3인 1파, 3파 1당으로 대변되는 그 당시의 운동방식이 공산주의운동 후기로 넘어오면서는 본래의 목적인 항일독립운동에는 치중하지 않고 자파, 혹은 자당의 헤게모니 장악에만 몰두하게 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 인식의 구체성은 다음과 같다.

초기 공산주의 운동은 1925년 4월 17일 조선공산당이 창당되어 1926년 순종 사망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투쟁 등에서 그 일정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1928년 12월 조선공산당이 해산되기까지 내내 3인 1파, 3파 1당으로 대변되는 서울파, 화요파, 북풍파, 상해파 등의 종파·분파주의의 발호는 조선혁명이라는 대의를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자파의 이익과 헤게모니 장악에만 몰두한 패악이 더 컸다고 북한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신간회 해산의 결정적 요인이 이 종파·분파주의의 해악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초기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북한(김일성)의 결론이 그 첫째, 사대주의와 교조주의 등의 사상적 해악을 철저히 극복할 것. 둘째, 종파·분파주의의 사상적 독소를 철저히 청산할 것. 셋째, 항일무장투쟁세력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조선민중의 혁명적 역량에 철저히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그리고 그 교훈은 군(혹은, 당)과 인민의 관계가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비유로 정당화되어졌다.)

이는 당시 김일성과 그 동료(항일빨치산 세력)들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하지 못하는 조직은 결국 분열되고, 지향했던 목표 달성도 이뤄내지 못하는 조직으로 전락된다는 것을 가슴 깊이 각인했었음을 증명한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총화로부터 조직 내 종파와 분파를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이는 지금의 조선노동당이 그 정통을 이어가게 되는 원칙이 되었다. 오직 수령중심의 일치단결만이 가능한 조선노동당으로 말이다.(1960년대 ‘갑산파 숙청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 명명백백한 답변이 된다.)

②두 번째에 해당되는 사회주의권 내에서 발생했던 권력교체기의 경험부분이다.

사실, 북한은 자기들보다 먼저 세대교체가 이뤄진 사회주의권 내의 권력투쟁을 보면서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당 중심의 국가체제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당의 중심인 지도자(총서기, 총비서 등)를 중심으로 단결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심각한 교훈을 접수하게 된다.

역사적 경험도 위 총화가 옳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일어난 최고지도자 혹은 혁명 1세대의 몰락과정을 지켜볼 때도 그렇고, 특히 소련과 중국의 경우 그 최고 권력에 대한 도전의 과정을 보면 혁명 1세대가 반스탈린주의의 물결 속에 침몰되고, 임표의 사례와 같이 권력 장악의 과정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도전이 심심찮게 일어나거나 그 권위가 훼손되어 혁명전통이 부정되는 것은 다반사였다.

바로 이러한 전 과정을 지켜본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가 올곧게 지켜지고 지속성으로 항해하기 위해서는 혁명 1세대가 구축해놓은 혁명전통에 대한 철저한 고수와 계승, 수정주의의 집중적인 표현인 수령 혹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도전이나 권위를 방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그 어느 국가보다도 통절히 성찰해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은 고스란히 󰡔조선로동당의 반수정주의 투쟁 경험󰡕(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95)이라는 책에 소상히 담겨지게 되는데, 내용인즉 마르크스 이후의 엥겔스와 엥겔스 사후의 베른슈타인, 카우츠키의 사례에 대한 비교, 레닌 사후 스탈린과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의 경험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자기수령에 대한 변함없는 충실성과, 이의 궁극적인 목적이 수령과 당과 대중의 일심단결의 체제를 형성하는 데 있음으로 결론짓는다.

또한 그 핵심 연결고리에 지도와 대중의 올바른 결합에 착목하였고, 그것도 단순히 지도자와 대중의 친밀감이나 현지지도를 통한 지도자의 대중성이 강화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은 반드시 수령-당-대중의 통일체를 형성하는 것에 있는 것으로 말이다. 그 실현방도도 혈연적 연계에 의한 강화, 관료주의와의 투쟁, 전 인민의 조직화 등이 제시되고, 사회주의적 지도방법의 원리도 청산리 정신으로 대표되는 위와 아래의 결합이 강조되는 방식이었다.

③ 그 마지막에 해당되는 사회주의권 몰락에 따른 총화방식이다.

소련식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할 때 북은 건재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상상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여서 모두들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북한이 어떤 국가이기에 그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쓰나미마저도 피해가게 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은 이렇다.

우선은 북한이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권이었지만,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동구권과는 달리 ‘자주’를 앞세운 국가였다는 사실이 그 첫째 반증이다.

그 둘째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으로부터 얻는 교훈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반면교사(反面敎師)하였다는 것이다.

1992년 1월 3일 김정일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사회주의건설의 역사적 교훈과 우리 당의 총노선」이라는 논문을 보면 이는 명약관화해진다.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의 좌절 원인이 “사회주의의 본질을 역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의 중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의 질적 차이를 보지 못하고 사회주의 근본원칙을 일관성 있게 견지하지 못한데” 있고, “관료주의가 자라나 사람들의 창발성을 억제하고 당과 국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어 인민대중의 통일단결을 파괴하는 엄중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피력하고 있는데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동시에 북한은 이러한-소련 연방의 해체 및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의 탈사회주의화 흐름에 대해 “일시적 현상”이며 사회주의와 다원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는 인민들에게는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수령과 당에게 모든 운명을 의탁한 채 ‘우리식대로 살아가자’라는 주장을 가능케 하는 논리로 발전하게 되고, 또한 김정일(북한)은 김일성의 사망 직후인 1994년 12월에는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를 발표하여 과학으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승리의 신념을 표시하고, 과학으로서 북한의 사회주의가 지난 시기 사회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에 비해 우월하기 때문에 김일성이 개척하고 이끌어 온 ‘주체의 사회주의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현환은 자신의 저서, <주체사상과 나와의 대화>(서울: 출판사불명, 1999)에서 이렇게 설명해내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인식이 동구권과 구소련 붕괴의 경험은 영도의 계승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지 못하여 사회주의 위업이 곡절을 겪었으며 특히, 사회주의의 배신자들이 지도층에 등장하여 수정주의 정책을 강행하여 마침내 사회주의를 붕괴시켰고 이 중심에 흐루쇼프, 고르바초프가 있다.” (88~89쪽)

해석하자면 첫째, 북한은 수령에 대한 이해를 철저히 했다는 것인데, 이는 뇌수가 없는 사람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듯이 수령 없는 국가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북한의 결론이었던 것이다.

둘째, 정치사상적 자극 없이 물질적 자극만으로 이뤄진 경제성장의 위험성을 캐치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은 철저하게 정치사상적 자극을 우선시 하면서도 물질적 자극을 결합시키는 그런 경제성장 원칙과 사업 작풍을 견지해 갔다. 6.28 방침과 5.30조처 등도 다 이 총화위에서 성립된 개건조치인 것이다.

셋째, 인민과 당과의 관계가 비적대적 모순이어야 하나, 멸망한 소련과 동구권에게는 적대적 모순으로 전환돼 당과 인민사이에 그 괴리가 존재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니 북한은 수령과 당, 인민의 관계를 더 혈연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만들어가 갈 수밖에 없었고, 북한은 거기다가 한발 더 나아가 군대도 당과 수령의 군대로 재규정하여 수령-당-인민-군대의 일체성을 내오게끔 된다.

이에 대해서는 백학순 박사도 자신의 저서, 󰡔북한 권력의 역사: 사상·정체성·구조󰡕(서울: 한울, 2010) 672~676쪽에 당과 인민의 관계가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비적대적 모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혀놓고, 경우야 어떻든 실제적으로 발생한 당과 인민의 괴리에 대해 이를 대처하는 방법이 국가별로 상이했음을 논증하였는데, 예를 들면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당시 소련이 처한 총체적인 문제의 근원을 소련공산당 자체에 돌렸고, 중국은 그 탓을 중국공산당 자체가 아닌 지도자 개개인의 잘못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련은 정치권력의 주체와 그 주체가 행사하는 권력의 정당성을 훼손함으로써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한 반면, 중국은 그 정치권력의 주체를 온전하게 보존하여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악화된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다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럼 북한의 경우는? 중국보다 더 철저하게 ‘당의 영도’를 강조하면서 당시 자국의 어려움을 ‘사상’과 ‘당’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즉 북한은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을 통해 인민과 당의 괴뢰는 곧 국가체제의 존폐 문제로 심각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만큼 북한은 그러한 상황이 오지 않기 위해 더욱더 ‘수령-당-대중-(군대)’의 통일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론적 정립과 함께 실천성, 제도화의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으로 그 결론을 맺는 방식이었다.

특히 군과 관련해서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총화 해내었다. 소련 몰락 당시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야조프(Dmitri Yazov) 원수가 “소련군대가 사회주의를 지키지 못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찬성한 가장 주된 요인이 군 수뇌부가 외적(外敵)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도록 군대를 육성하는 데는 관심이 있었지만, 공산당 보위나 사회주의 수호 교양이 관심밖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밝혔는데, 이 견해를 단초로 하여 북한이 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시작되었고, 결과는 이른바 ‘군대가 곧 당’이라는 일체구호였다. 군대의 창건, 목적, 사명, 그리고 정치적 성격 등 그 모든 것에 있어서 당과 군대는 하나로 일치해한다는 논리에로의 집중 그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노동계급에 있어 당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려는 목적 하에 군대를 창설하며 군대는 당의 영도를 받들게 된다는 논리와 함께, 당이 자기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틀어쥐어야 하며, 군대는 당의 영도를 받아야 자기의 혁명적 성격을 고수하고 자기의 역할을 잘 해 나갈 수 있다는 논리를 성립시켰다.

그리고 이 논리는 사회주의 국가체제만이 구현할 수 있다는 인식도 드러내었다. 김철우,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평양: 평양출판사, 2000) 49쪽 서술부분을 보면 이는 금방 알 수 있다.

“정권과 민중이 적대관계에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정치구도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또 북한은 그 연장선상에서 군(軍)을 아예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킨다. 다름 아닌, 혁명의 주력군으로 하는 이념적 재구성까지 성립시키는 이론화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말이다.

근거는 이러했다. 소련 사회주의체제 몰락 그 원인들이야 무수히 많겠지만, 그 중 하나가 북한으로 하여금 군을 중시하지 않아 군대가 체제수호에 실패했다는 인식을 갖게끔 하였고, 이는 필연적으로 군대를 ‘국방의 수단’으로만 여겼지 ‘사회주의 정치의 주체’로 보지 못했다는 총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게 하였다. 그래서 얻어낸 그 결론에 북한은 시대환경의 변화에 따라 노동자의 처지와 역할도 크게 달라졌듯이 군대도 ‘새로운’ 시대적 상황변화를 반영하여 혁명의 주력군으로까지 내세운다는 원칙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북한은 위에서 열거된 세 가지 경험, 즉 1930년대와 1960년대, 그리고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경험이 북한으로 하여금 북한식 사회주의체제가 어떤 국가체제를 형성해야 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였고, 그 고민의 결과 유일해법으로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수령을 그 정점으로 하는 일심단결 된 사회주의체제가 정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북한은 자신들의 수정헌법 서문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이다”라고 명시하기에 이르게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2016년 5월 7일 조선노동당 7차대회에서 김정은이 발표한 「사업총화문」에서 북한이 지향하는 사회주의체제는 그 어떤 풍파가 몰아치더라도 ‘수령제 국가체제’에서 한 발짝도 이탈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천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 “모두다 김일성-김정일주의의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들고 당중앙위원회의 두리에 단결하고 단결하고 또 단결하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세계자주화위업의 실현을 위하여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북한의 최종적인 사회주의체제 목표가 김일성-김정일주의에 있으며, 이의 다른 표현이 수령중심의 사회주의체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향한다는 것을 분명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이 문장에서 우리는 김정일에 이어 29세의 김정은도 권력승계를 왜 무난히 받을 수밖에 없고, 수령으로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당과 인민적) 저항과 동요 없이 안착할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는 체제선택의 문제를 옳고 그름이 아닌, 또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닌, 또 자유주의체제냐 사회주의체제냐가 아닌 한 국가가 자신의 국가체제를 선택함에 있어 자신들이 구축해온 그 역사성과 공고화 과정을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권리문제로 인식한다면, 북한은 그러한 역사과정과 총화를 통해 자신들이 선택할 체제로 ‘수령제 사회주의체제’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우린 그것을 더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선택했듯이 말이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이사/현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현 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외 다수가 있다.


1806 김광수. [1] 백두혈통에 대한 이해와 오해 - 통일뉴스



백두혈통에 대한 이해와 오해 - 통일뉴스





백두혈통에 대한 이해와 오해<연재> 김광수의 ‘제대로 된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 (4)
김광수 | no-ultari@hanmail.net

승인 2018.06.21 17:46:13






김광수 /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수령국가』 저자 · 21기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본인은 지속적으로 ‘제2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전제 하에 본인은 ‘제대로 된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 수령국가체제’라는 큰 주제를 갖고 왜곡된 북한이해를 바로잡고자 (이슈가 있을 때마다) <통일뉴스>에 정기 기고 글을 게재하고자 한다.

동시에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폴 북미선언 이행과정에서 있을 수도 있는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정론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의미도 담아내고자 한다. 또한 이미 사문화되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생명력과 위력을 가지고 있는 분단적폐의 제도적 주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데도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이번 연제의 큰 타이틀은 ‘북한의 수령체제에 대한 이해와 오해(들)’이다.
(1)제1편은 ‘백두혈통에 대한 이해와 오해’이고, 
(2)제2편은 ‘북한은 왜 수령제 국가체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이고, 
(3)제3편은 ‘북한의 수령제 사회에 대한 옳은 이해: 수령과 우상화를 중심으로’이고, 
(4)제4편은 ‘수령제사회주의도 사회주의이다’로 끝맺는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필독을 권한다. / 필자 주




필자는 본인의 졸저, 『수령국가』(선인, 2015)에서 북한의 수령체제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놓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사회는 북한의 수령제 사회에 대해 사회주의체제의 특수성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김일성 왕조국가로 인식하는데 급급하다.

그 중심에 백두혈통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다. 잘못된 이해라함은 백두혈통은 원래 개념적으로도 없는 개념이고, 설령 개념화를 해내더라도 김일성의 직계가계, 혹은 외가가계와 연결되어 있다 하여 저절로 형성될 수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수령의 ‘핏줄’ 혈통으로만 보려는, 즉 ‘혁명의 명맥을 잇는다’는 사회정치적 개념으로 보지 않고 생물학적 개념으로 왜곡하는 오류가 그것이라는 말이다.

다시말해 백두혈통은 김일성의 혁명사상에 의한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의 신념(사상, 이념)체계, 즉 ‘정치적 혈통’을 일컫는 것이고, 그 혈통은 다름 아닌 김일성에 의해 영도되어진 항일무장투쟁에서만 유일하게 형성되어진다. 이른바 혁명전통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그 조합으로는 ‘주체의 혁명위업’과 ‘백두의 혁명정신’, ‘김일성의 혁명사상’ 이렇게 3가지가 and적 방식으로 유대되고, 후대로까지 순응적으로 이어져가는 그런 혁명전통이 곧 주체의 백두혈통이 된다는 말이다. 정확하게는 ‘주체의 혈통(강조, 필자)’을 일컫는다.

그 근거들은 아래와 같다.

첫째, <혁명전통강좌-김일성종합대학 강의록>(서울: 극동문제연구소, 1974), 16쪽에서 항일무장투쟁과 혁명전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첫째, 항일무장투쟁이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데서 핵심적인 작용을 했으며, 둘째, 항일무장투쟁 당시 항일투사들의 김일성 수령을 충성으로 떠받드는 모범을 따라 배울 수 있고, 셋째, 혁명전통이 당과 혁명의 역사적 뿌리이고 귀중한 재부라 했을 때 항일무장투쟁만이 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둘째, 함치영 또한 자신의 저서, <계속혁명에 대한 주체적 리해>(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92) 83~84쪽에서 혁명전통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서술해 놓고 있다.

혁명전통은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할 수 있게 하는 고귀한 재부이며, 자주위업이 명맥을 이어 나가게 하는 혈통”이고, 이러한 인식은 “혁명전통이 조선노동당이 혁명을 추동해 나가자는 역사적 뿌리이자, 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실천적 밑천”이다.

셋째, 또 다른 저서 김재천의 <후계자 문제의 이론과 실천> 159쪽에서도 혁명전통을 다음과 같이 해설해 놓고 있다.

“그것은, 항일혁명투쟁이 유일한 역명전통으로 되는 것은 김일성의 영도 하에 진행된 항일혁명투쟁이 참된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의 기치 밑에 진행된 혁명투쟁으로서 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주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일혁명투쟁의 시기에 시작된 혁명전통은 주체형의 혁명적 당의 역사적 뿌리이며 그 대를 이어주는 주체의 혈통(강조, 필자)이 된다.”


이상과 같이 김일성 종합대학 강의록, 함치영, 김재천의 주장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논리적 맥락은 자신들의 혁명위업 완성에 유일한 (정치적) 자산은 혁명전통이고, 그 전통이 곧 주체의 혈통인데, 그 혈통은 다시 백두산을 근거지로 했던 항일무장투쟁에서 형성된 수령중심의 일심단결의 정신에 기초한다는 논리적 구조가 그것이다.

했을 때 ‘백두혈통’은 남한사회가 만들어낸 정치적 용어이지 북한용어가 아님도 알 수 있다. 북한의 저서 그 어디에도 백두혈통이라는 용어가 없음이 그 증거이다. 동시에 대한민국 통일부에서 운영하는 「북한정보포털」에서도 백두혈통은 검색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철저하게도 남한적 용어이고, 정치적 의도가 있는 나쁜 분석법이라는 것이다.

해서 백두혈통은 위 정의에서 확인되어지고 있듯이 주체의 혈통으로 개념화되어야 하고, 그 개념 또한 수령의 ‘핏줄’ 전통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의 ‘주체의 혈통’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부연하면 주체의 혈통은 김일성의 항일혁명투쟁 노선을 수용하느냐 마느냐에 있다는 말이다. 즉 김일성의 사상, 이념, 노선과 일치하는 것, 그것이 곧 주체의 혈통인 것이다. 그래서 항일무장투쟁만이 북한의 혁명전통이 되는 것이고, 그 혁명전통이 당과 혁명의 대를 이어주는 핏줄기, 다시 말해 혁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줄기로 순결하게 이어주는 명맥으로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주체의 혈통이라는 정의가 이렇게 이념적이고도 사상적인 것인데도 주체의 혈통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수령의 ‘핏줄’ 혈통으로 왜곡하여 생물학적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제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분명 번지수를 잘못 짚은 오류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예들은 우선 일명 ‘장성택 종파사건’(주1)을 국내언론들이 취급하면서 가장 많이 다루었던 개념 중의 하나가 ‘백두혈통’이었는데, 그 시각에 바로 ‘핏줄’ 혈통으로 이해한 ‘불편한’ 진실이 담겨져 있다. 바로 주체의 혈통에 대한 잘못된 분석이 그것이다.

실제 남한에서 통용되는 백두혈통의 정확한 개념은 주체의 혈통이고, 그 본질 또한 '혈연적 가계'의 의미라기보다는 '정치적 혈통'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위 정의에서 이미 확인하였다. 해서 김일성 주석과 같은 핏줄로 연결되어 있다 하여 주체의 혈통이 되는 것은 아니며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 과정에서 당시 ‘김일성 사령관’과 ‘항일전사’들 사이에 맺어진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에 기초한 신념(정신, 이념)체계라는 것이 그 본질이다.

시간이 흐르지만 그러한 왜곡, 편견, 오류는 극복되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 세기의 회담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도 계속 반복되고 있어서 그렇다.

평창올림픽 기간 김여정(김정은 위원장 여동생·노동당 선전 제1부부장)이 방한하였을 때도 똑같이 그 망령이 되살아났다는 것, 그것 자체가 그 반복을 충분히 증명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장성택 숙청사건 때와 똑같이 보수수구 신문은 물론이고 진보적 언론도 그렇고, 청와대는 물론 진보·보수학자(전문가)들까지 가세하여 김여정을 ‘백두혈통’으로 소개한 것은 분명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더 심하게 말하면 제대로 보기위해 ‘절대’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참으로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고, 지독한 (북한) 편견이다. 골백번 얘기하고 또 하는데도 왜 그렇게 고쳐지지 않을까? 그래서 역설적으로 ‘제2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해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주체의 혈통 개념은 김일성의 핏줄가계 개념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제대로 된 이해는? 백두의 혁명정신이 그 모체가 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그 정점으로 하는 ‘정치·사상적 혈통’이고, 그런 의미에서의 정치·사상적 집합체이다. 해서 가장 넓게는 당규약과 헌법에 나와 있듯이 주체사상을 계승한 정당, 노동당이 백두혈통의 집합체이고, 좁히더라도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혁명정신으로 신념화되고 무장된 정치세력들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혁명열사릉에 안치된 후손들 중 혁명유자녀학원 등을 거친 인물들이 그들이고, 정치적 의미를 더 가해 좁혀 해석하더라도 노동당 중앙위원 이상의 간부급이 될 것이다.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김여정을 주체의 혈통으로 인식하고 싶다면 김일성의 손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원한’ 수령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혁명정신을 신념화하고 있고, 노동당 선전 제1부부장의 직책을 수행함에 있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수령의 사상과 의도대로 그 일본새를 구현하는 혁명가이자 당 간부이기 때문에 주체의 혈통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사회적 개념으로 확대하여 재해석하자면 주체의 혈통 계승은 수령의 혁명사상과 그 사상을 실현하기 위한 전위당 ‘노동당’의 영도를 받아 이루어진 시기의 모든 투쟁을 계승한다는 것이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노동계급과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고 사회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이 혁명전통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만약 그 전통에 위배되는 행위를 그 어떤 자가 했다면 그 인물이 제아무리 수령의 ‘핏줄’이라 하더라도, 또 주체의 혈통이라는 개념범주에서 그 역할이 주어졌고 일을 해왔더라도 그는 혁명의 배반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해서 장성택(김경희), 아니 수령의 육친적 아버지, 혹은 그 할아버지, 그 아들, 손자라 할지라도 주체의 혈통에 깃든 사상세계(사상·이념·노선)와 실천의지를 가지지 않는다면 결단코 주체의 혈통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더 확장하여 볼 때 리설주 여사도 수령과의 관계에서 본다면 ‘전사’일 뿐이다.

해서 남한식 표현으로는 ‘영부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는 있겠으나 이 또한 어디까지나 남한식 의미로서의 퍼스트 레이디일 뿐이다. 4.27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서 김정숙 여사와 만난 리설주 여사가 "한 것도 없는데 부끄럽다"는 표현은 이를 가장 잘 상징해주고 있는 장면이라 할 것이다.

이래놓고 결론을 내려 보자.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결론을 내려 보자. 제 아무리 희망적 사고에 집착에 보고 싶은 것만 보아도 어쩔 수 없이 분명하고도 명확한 것은 2013년 장성택의 처형은 ‘장성택 종파사건’에 따른 반혁명분자에 대한 처벌이었을 뿐이고,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때 김여정이 방한한 것을 두고, 언론보도의 헤드라인 제목을 대체로 “백두혈통 사상 첫 남한 방한”으로 요약할 수는 있지만, 진실한, 혹은 있는 그대로의 보도제목(헤드라인)은 “ 김여정(김정은 위원장 동생) 노동당 선전1부부장 대표단 일원으로 방한” 이렇게 뽑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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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2013.12.8)에서 채택한 장성택에 대한 죄목은 크게 다음과 같다. 
  • 먼저는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이다. 
  • 둘째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한 반혁명적인 행위이다. 
  • 세 번째는 사법검찰, 인민보안기관에 대한 당적 지도를 약화시킨 것이다. 
  • 네 번째는 국가재정 관리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행위이다. 
  • 다섯째는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물젖어 부정부패행위를 감행하고 부화타락한 생활이다.

알라딘: 수령국가 -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수령체제 이해하기



알라딘: 수령국가 -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수령체제 이해하기

수령국가 -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수령체제 이해하기

김광수 (지은이)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5-10-30





정가 35,000원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통일/북한관계 > 북한학 일반



저자는 분단체제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삶의 왜곡은 통일체제를 지향함으로써 치유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한 첫 시작은 북한체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 핵심은 북한체제 내에서 핵으로 존재하는 수령의 개념을 이해하고, 이 수령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 정치체제로서의 북한을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체제를 이해한답시고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북한알기, 탈북자들의 수다, 막장드라마와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로 우리 국민들의 눈과 귀, 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 사람의 인식이 자기가 속한 사회의 제도와 이념을 뛰어 넘어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사회에 살면서 분단과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북한인식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라는 물음 앞에 북한 제대로 인식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프롤로그(Prologue)

◆성찰과 이해

Ⅰ. 성찰: 민주공화국
1. 진단: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 않다
2.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이래야한다

Ⅱ. 이해: 수령공화국
1. ‘정상’ 국가로 이해하기
2. ‘북한식’ 사회주의로 북한 이해하기 : 북한은 왜 수령제 사회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개념과 상징

Ⅲ. 이론: 수령론
1. 이론 해설
2. 수령국가론
3. 상징조작과 상징정치
4. New Version: 수령론의 과제


Ⅳ. 혈통: 백두산(白頭山)
1. 함의 1: 주체의 혁명위업 뿌리가 내린 혁명의 성산
2. 함의 2: 수령체제의 상징적, 논리적 뿌리

Ⅴ. 영생(永生): 금수산태양궁전
1. 수령영생궁전으로 탄생되다
2. 태양궁전으로 상징하다
3. 참배예법: 철학적으로 사유하다

◆인물과 수령

Ⅵ. 1대 수령: 김일성
1. 김일성, 북한의 시각에서 보다
2. 김일성, 남한의 시각에서 보다

Ⅶ. 2대 수령: 김정일
1. 후계자, 김정일
2. 북한에서의 김정일
3. 남한에서의 김정일

Ⅷ. 3대 수령: 김정은
1. 김정은의 등장
2. 김정은 수령십
3. 김정은과 관련한 ‘불편한’ 이해

-에필로그(Epilogue)






지은이 :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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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수령국가>,<사상강국>,<세습은 없다> … 총 3종 (모두보기)
소개 : -1996년생. <no-ultari@hanmail.net>
-정치(북한정치)학 박사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민주공원 관장/6·15남측위원회 부산본부 공동대표/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등 역임
-현재는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 사)청춘멘토 이사,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 등을 맡고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 분단체제에서 발생되고 있는 정치적인 경직성과 비효율적인 경제체제, 불안한 안보와 이념에 치우친 우리의 사상문화가 북한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어떻게 장애되어 왔으며, 이 장애로 인해 우리 민족의 삶에 어떻게 규정되어 왔는지 살펴보고자 한 측면도 놓쳐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는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열렸던 남북관계가 왜 완전히 파탄 났는지, 남북관계가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발생하지도 않았을 서해교전이라든지, 북핵문제로 인해 툭 하면 터지는 한반도의 전운이라든지, 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색깔론이라든지, 특히 국가보안법에 의해 왜 표현의 자유가 제한당해야 하는지 등등이 이에 해당된다.

저자에게 위 인식은 결국 작고한 시인 김남주가 “38선은 38선에만 있지 않다”고 절규해야만 했던,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김구 선생이 “38선을 베고 죽을지언정 분단만은 안 된다”고 통탄했던 그 울림이 왜 계속해서 후대까지 연결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역설로 이어진다. 

이산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 창의성이 한참 발휘되어야 할 청춘시기의 병영생활, 예비군 동원체제, 민방위교육, 막걸리 국가보안법의 족쇄, 공순이들의 파업이 빨갱이로 전락, 3족이 멸하는 연좌제, “‘툭’치니 ‘억’하더라”는 고문치사, 인혁당과 같은 간첩조작, 북파공작원들의 비애, 수백만부가 팔려나간 태백산맥의 금서지정 등 헤아릴 수조차 없는 이 수많은 사실들도 결국 따지고 보면 분단관리를 제대로 해 내지 못한 우리네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인 것이다.
하여 이 모든 군상(群像)들은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대한민국의 숙제가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분단체제로 인한 우리 삶의 왜곡은 통일체제를 지향할 때만이 치유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한 첫 시작이 북한체제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을 깊게 이 책은 깔고 있다.

그 핵심에 북한체제 내에서 핵으로 존재하는 수령(首領)의 개념을 잘 이해하는 것이고, 이 수령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 정치체제로서의 북한을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 책에서 강변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이 책은 “니들이 게 맛을 알아?”를 “니들이 북한사회를 알아?”로 치환하게 하여 대한민국에 만연한 “너도 나도 모두가 북한 박사” 분위기기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즉, 잘 모르면서 4천 5백만 국민 모두가 북한을 잘 알고 있는 듯하는 위선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이제까지 북한체제를 이해한답시고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북한알기, 탈북자들의 수다, 막장드라마와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로 우리 국민들의 눈과 귀, 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 사람의 인식이 자기가 속한 사회의 제도와 이념을 띄어 넘어 형성될 수 없는 것이고, 대한민국사회에 살면서 분단과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북한인식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라는 물음 앞에 북한 제대로 인식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저자 또한 자신을 ‘북한학을 전공하여 이 분야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전문가이지만, 북한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백과 함께, 북한 이해에 대한 깊은 고뇌가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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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에 대한 어원을 추적하면서 조선시대 고을 ‘사또’, 엥겔스에 의한 ‘수령’개념, 해방이후에는 주로 ‘대장’, ‘두령’, ‘두목’, ‘우두머리’, ‘오야붕’ 등과 같은 복합어와 유의어 등까지 ‘수령’키워드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개념들을 다 추적해 낼 수밖에 없었고, 결론은 최정운의 저서 『한국인의 탄생』(서울: 미지북스, 2013)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다름 아닌, 우리 국민들은 그 영웅들을 생각할 때 “‘슈퍼맨’이나 ‘황금 박쥐’, ‘6백만 불의 사나이’, 그리고 ‘관세음보살’이나 ‘아멘’보다 훨씬 많이 홍길동이나, 녹두장군, 임꺽정, 이순신, 안중근(도마) 등(15쪽)”을 떠올리는데, 이를 북한에 적용하면 일본 강점기 동안 백두산과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신출귀몰’한 영웅이자 전설적인 유격전을 펼쳤다는 김일성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착목이 그것이다. 즉, 김일성 중심의 항일무장투쟁사만이 유일한 항일역사로 주입되고 있는 북한인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존 남북한 전체가 가지고 있던 특성으로서의 ‘수령’개념에 대한 친근성에다 국운흥망의 난세에 민족을 위해 희생해온 인물들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르게 강한 우리민족의 영웅사관이라는 공감대, 이런 것들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수령체제가 아무런 의심 없이, 반감 없이 수용할 수도 있겠다는 결론으로 말이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국가보안법이 현존하는 상황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북한체제를 봉건사회의 통치기제인 절대왕정으로 통치되고 있다는 관념과 편견이 자동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현실, 즉 우리안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이 북한의 수령체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피포위(被包圍)된 인식의 굴레가 강하게 작동되고 있는 사회임을 ‘가슴 아프게’ 지적한다. 즉, 반공국가인 대한민국은 “북한은 ‘리바이어던(Leviathan)’적 국가이다.” 이렇게 인식함으로써 사회주의가 멸망하고 현실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도래로 부흥을 맞이한 21세기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리바이어던으로 북한의 수령체제가 그 예에 가장 부합하는 희생물로 삼고 싶다는, 그래서 파시즘과 수령체제의 동의어가 되고, 공산주의(사회주의)의 탈을 쓰고 전무후무한 사악함을 보여주는 괴물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임을 꼬집어 내고 있다.
동시에 저자는 이러한 북한체제에 대한 극단적 부정이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는 물론이고 지금의 박근혜 정부하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음을 통찰해 내고, 여전히 북한은 리바이어던된 국가라는 한국적 인식을 다 까발리고, 이는 마치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 어디에 더 가까운가를 두고 지금까지도 ‘이기심’과 ‘이타심’이 대립하고 있는 것과 같이, 북한의 국가적 본성이 양육되어 협력이라는 진화된 시스템으로의 공동체국가를 설계하려해도 자본주의만이 국가체제의 유일정답으로 인정되는 한 생각하기에 따라 인류가 한번쯤은 꿈꾸어 본 이상세계를 ‘가능한’ 국가체제로 실현시킨 사회주의체제로써의 북한을 우리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초라한’ 세계 15위 내외의 국력 실체를 고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니 저자는 이 책에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수령체제가 리바이어던이 아니라는, 그 설득력이 실패하면(두 번의 남북한 정상회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아주 오랫동안 북한사회를 제대로 들어다보기가 불가능하고, 불가능 한 만큼 북한을 분단체제 극복과정의 일 주체라는 인식에 적신호가 켜지게 되고, 그 적신호는 북한체제를 붕괴해야 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데까지 이른다. 즉, 이 책의 서술 목적이 또한 대한민국 국민 다수의 뇌리 속에 박혀있는 북한의 수령체제는 곧 리바이어던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극복하려는 것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학술적으로는 북한의 수령체제를 세습체제, 봉건적 유산체제, 독재체제, 1인 지배체제, 술탄체제 등 부정적 개념으로 획일화되는 인식을 제어하고 현지지도체제, 인민체제, 유일체제, 백두혈통체제 등 재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저자는 북한이라는 국가를 ‘있는 그대로’로 인식하고 해석하고 싶은 것은 좋든 싫든 북한이라는 국가가 남한의 또 다른 반쪽이며, 이 반쪽은 사람 인(人)과 같이 서로 기대어 의지해야만 완성체가 되듯이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아플 때 같이 아프고, 즐거울 때 같이 즐거운) 앓이’가 동질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이라는 국가가 어떤 형태로든 ‘앓이’하고 있다면, 그것도 가장 부정적으로 ‘앓이’가 된다면, 대한민국 또한 제 아무리 GDP(Gross domestic product)대비 15위 내외의 국가서열을 갖는다하더라도 ‘앓이’ 할 수 밖에 없는 不완전체라는 인식의 확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멈춰선 정지 상태, 즉 동반자적 관계이면서도 적대적 상대인 북한을 ‘있는 그대로’봐라보게 되어 5천 년 동안 이어져온 민족사가 복원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결국 남과 북이 혈연과 언어, 단일민족 등이라는 요인의 공통의 과거만으로 통일된 국민국가의 토대여야 한다는 기준이 반드시 현재와 미래에도 그렇게 성립해야 한다는 당위가 부정될 수 있다는 결론에 주목을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과 북의 경계선인 휴전선이 앞으로 백 년, 이백 년의 세월이 흐른다면 그것은 ‘자연국경’으로 굳어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과 북은 우리가 당연히 가졌던 인식,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로 존재할 것이라는 통일한국(한반도)과는 다른 결론으로서의 국가가 서로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 저자의 우려인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통일과 관련한 인식은 우리가 관념적 당위로 여기고 있는 같은 언어, 혈연, ‘공통의 과거’ 등이 있기 때문에 남과 북은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가 될 것이라는 통념보다 더 필요한 것은 남북한 구성원들이 ‘공통의 미래’를 과연 함께 공유하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발전해야 하는 것이 맞게 된다. 즉, 함께 공유해야 될 그 공통의 미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고 항상 물어야 한다고 역설로 말이다.(36-37쪽)
마치 통일은 당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함께 공유해야 될 현실에 있음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정상국가와 전략국가 사이(하): 북한은 전략국가가 분명하다 - 통일뉴스



정상국가와 전략국가 사이(하): 북한은 전략국가가 분명하다 - 통일뉴스


정상국가와 전략국가 사이(하): 북한은 전략국가가 분명하다<연재> 김광수의 ‘제대로 된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 (3)
김광수 | no-ultari@hanmail.net

승인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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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전략국가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2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북미 간의 대결 의미를 잘 이해하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북미 간의 대결은 길게는 의도된 침략행위였던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년 발생)으로부터, 짧게는 분단과 한국전쟁으로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70년이라는 긴 세월이 있다. 치열한 정치·군사적인 문제이자 외교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런 대결에서 북한에 의해 대화와 협상의 문이 열려졌다면, 그리고 그것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사실이라면 이를 북한의 전략적 승리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북한의 전략국가와 관련한 그 본질이 집약돼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가체제를 기준 하는데 있어서는 그 국가의 규모, 경제력, 체제, 군사력, 외교력 등이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는 있겠으나, 그 국가가 전략국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데 있어서는 그 문제가 본질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세계체제의 관점에서 국제질서를 변경시킬 힘을 실질적으로 가졌느냐, 안 가졌는가가 더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문제이고, 그 핵심에 바로 핵무력 개념이 있고, 그 핵무력의 실체가 첫째는, 핵보유와 함께, 핵무기를 보유했느냐의 문제. 둘째는, 그 핵무기 보유로 인해 게임 체인지 국가가 될 수 있느냐의 문제. 셋째는, 그 게임 체인지를 통해 인류의 염원이라 할 수 있는 ‘핵 없는 세계’를 추동해 나갈 수 있느냐로 나타난다 하겠다.

바로 이렇게, 위 두 전제로부터 북한의 전략국가 위상을 논해야만 전략국가의 위상과는 하등 연관관계가 없는 정상국가론과 같은 그런 비교 관점의 정치·군사적, 철학적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다.

전략국가는 그렇게 개념화되어지는 것이다. 했을 때 북한은 위 3가지 요건 전부 다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첫째는, 핵과 ICBM을 보유하였다.

둘째는, 세계유일강국 미국과의 핵 담판을 통해 미국중심의 세계지배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한미동맹 해체와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구축과 동북아에서의 미국 지배력 약화를 추동해가고 있다.

셋째는,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확인될 수 있는 바와 같이 ‘인류를 핵 없는 세계’로 그 추동력을 확보해낼 수 있어서 그렇다.

해서 향후 예상해 볼 수 있는 세계정세 전망은 동북아에서의 냉전질서는 해체되고, 세계는 미국중심의 유일극 체제에서 유럽연합, 중국, 미국, 통일KOREA 등 핵 없는 인류의 다극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어졌다.

전략국가 위상으로서의 북한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것도 위 3요건을 or적 방식이 아니라 and적 방식으로 부합시켜 내고 있어 더더욱 북한 영상은 뚜렷하다.

이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기사가 있다. <동아일보>인데, 동아일보는 2018년 5월 30일자 기사를 통해 “북미정상회담 가시화되자 북-일, 북-러, 그리고 북-중-러까지 '꿈틀'”이라는 기사제목을 달아주었다.

철학적 오류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위와 같이 북한은 이미 전략국가인데도, 이를 억지논리로 다른 개념과 비교하려하다 보니 발생하는 그런 철학적 오류문제라는 것이다. 이른바 비교범주의 오류이고, 그것은 그 둘의-전략국가와 정상국가의 개념범주가 동등한 비교범주가 될 수 없다는 결론 때문이다.

설명하자면 전자 ‘전략국가’는 국가가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물론, 이와 같은 비교방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리즈 글 ‘중’편에서 이미 확인하였지만, 그래도 굳이 그 비교범주를 상정하고자 한다면 후자 ‘정상국가’는 서구사회의 규범적 인식-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갖는 보편성에 보편타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접근 방법을 일컫는다)를 묻는 그런 비교범주가 아니라, 현존하는 세계질서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져 그 현존질서를 변동시켜 내거나 전환시켜 낼 수가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그런 개념범주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국가를 정상국가와의 비교범주로 동일시하는 것은 개념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을 뿐더러 실제 북미협상 과정에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북한의 국가역량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즉 전략국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상황이고, 북한이 전략국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하등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계속하여 (우리는) 북한의 전략국가 위상을 거부해야 한다? 참으로 정직하지 않는 북한 들여다보기일 뿐이다. (아마도 가난하고 못살고, 독재국가는 절대 그런 전략국가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의 반영이자 위에서 정의되고 있듯이 전략국가는 도덕도 아니고, 국가의 규모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그런 개념이 전혀 아닌데도 그런 인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런-전략국가로서의 위상을 인정해줄 수 없다는 우리 안의 또 다른‘피포위 의식’의 발로이다.)

그러니 당연히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생겨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북한의 리설주 여사가 4.27정상회담 만찬과 북·중 정상회담 만찬 때 참석한 것을 두고 이제 북한이 <정상국가>로 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국내외 모든 언론들과 전문가들이 진단한 것 등이 그 예들이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방문했는데, 기차 대신 비행기를 타고 북·중 정상회담에 갔으니 이 또한 정상국가로 가는 징표라는 주석 달기가 그것이다.

정말 한심스럽고, 대한민국의 정신건강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나 싶다. 위 예시들이 그 무슨 근거로 그들이 억지로 부정하려는 전략국가와 상관이 있으며, 또 백번 양보 하더라도 그 무슨 근거로 위와 같은 행위들이 정상국가와 비정상국가를 구분하는 근거가 된단 말인가?

참으로 어이가 없고, 억지도 정도를 넘어선 큰 억지이다. 해서 답변 그 자체도 무의미하고, 논증할 가치도 분명 없다. 그래도 굳이 한다면 문제는 그것이 외교관례(혹은, 관행)이기는 하나, 외교시행세칙 등과 같이 명문화된 제도화 규범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상회담 만찬장에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 부인이 참석해야만 보편적 규범에 부합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편적 규범에 어긋난다는 그런 규범이 있다는 말을 들은 바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그 관행을 갖고 하나의 기준점을 만든다? 이 또한 대단히 웃긴 일이지 않는가? 정말 그렇지 않은가. 최고지도자의 부인은 단지 그 지도자의 부인을 일컫고(그 역도 성립가능하다), 그리고 그 ‘영부인’은 국가직책이라기보다는 대통령 부인(혹은, 그 남편)에 대한 존경과 예를 갖춰 부르는 호칭예절의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것인데, 그런 예절의 문제를 두고 기간 서방세계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정상회담 등 고위급 회담 등을 진행할 때 만찬 행사장에서 영부인(혹은, 그 남편)과 고위급 인사들의 배우자를 참석시켜 왔다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아무런 직책이 없는 인물이 정상회담(혹은 고위급) 만찬장에 참석해야만 그 국가는 정상국가이고, 배석하여 참석하지 않으면 그런 국가는 비정상국가라는 그런 식의 개념잣대를 어떻게 몰염치하게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비판하길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이지만, 그 어느 하나 없다. 아니, 받아쓰기에 바쁘다. 민낯의 적나라함이다.

그냥 하나의 관행으로 정착되어진 외교예절로 이해하면 그만인 것을. 그것을 (북한이) 무조건 싫다는 그 한 이유 때문에 가능하지도 정상적이지도 않는 이유를 갖다 붙여 억지논리를 구사해야하고,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북한을 폄훼해야 할 만큼 정상적이지 않는 대한민국이다.

삐뚤어져도 정말 삐뚤어진 뿌리 깊은 선민사고의 발로이고, 대한민국 안의 오래된 ‘북한판’ 오리엔탈리즘이자 북한이 무조건적으로 대한민국보다 못해야하고, 사회주의는 무조건 자유민주주의보다 못해야 한다는 그런 반공이념의 잔재이다.

해서 결론은 명확하다. 관행은 관행일 뿐이고, 제도화 규범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관행을 갖고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가름하는 것은 매우 잘못됐고,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 대한민국의 지식인들, 언론들이 얼마나 급했으면 북한을 그런 이유와 근거를 들이대서라도 정상국가로 만들고 싶었을까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만큼 이유 불문 북한의 정상국가 프레임이 시급했고, 절박했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이왕 말이 나왔으니, 본 시리즈 글 중 ‘중’에서 국가개념에 그 무슨 정상과 비정상이 있겠느냐 했지만, 그래도 정 정상과 비정상을 굳이 구분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기준점으로 북한을 들여다 봐주었으면 하는 성찰적 글도 한번 적어볼까 한다. 우리 ‘밖’이 아닌, ‘안’에서 성찰해보아 할 지점에 대해서 말이다.

먼저는 국가와 국가 간의 비교에서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가르는 것 중 가장 중요한 잣대중의 하나가 ‘자주국가’냐, 아니면 ‘예속국가’이냐 하는 그것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같은 식민지 경험이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좀 자유롭지 못하다면, 반면 북한은 국가가 생명과도 같은 그 ‘자주’를 지켜내기 위해 유일강대국의 극강 제재와 압박을 견뎌내 왔다. 아니, 견뎌오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체제와 이념을 떠나-제 아무리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고, 모든 것이 미국식 민주주의체제에 포섭된 대한민국이라 하더라도 그런 민족과 국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존중해줄 만한 국가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 다른 한 측면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하는 것 중의 하나가 그 국가의 민주성 국가원리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체들의 안전과 행복을 그 국가가 얼마나 보장해주느냐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에 대해 많은 견해와 시각이 있을 수는 있으나, 분명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제일 먼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이야기이다. 당시 소떼 방북을 한 정주영 현대회장의 숙소에 찾아와 “한 살이라도 어린 제가 먼 길 노고를 이끌고 오신 정주영 선생을 찾아뵙는 것이 도리이지요”라고 한, 한 국가의 최고수뇌가 보여준 겸손과 겸애에서 정상적인 최고지도자의 덕목을 볼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터져도 청와대 안에 머물던 그런 리더십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 연장선상에 또 2018년 4.27정상회담을 앞두고 파견된 대한민국의 방북특사단에 대해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선대 수령과 똑같은 방식으로 먼저 대한민국 방북특사단 숙소에 찾아와 그러한 예를 갖춘 것에 대해, 나이는 어리지만 최고지도자의 덕목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을 보아야 한다. 반면 그와는 달리 국민에 대해 ‘개, 돼지’ 취급하는 대한민국의 관료사회는 무얼 함의하고 있는가? 철저한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 체제와 이념의 문제를 걷어내고 국가의 존재이유와 책무란 관점에서 봤을 때도 1990년대 중반 남과 북은 똑같이 그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그 성격과 내용은 다르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과 교훈은 같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모라토리엄(국가부도)으로 나타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간 그나마 부족하게 시행되어왔던 국민복지, 노동복지, 인권과 경제권마저도 상당히 후퇴시키는 그런 정책(신자유주의정책)으로 선회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아주 높은 수준에서 국가가 시행해왔던 그 복지혜택이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으나, 전반적 무상 11년 의무교육제도(지금은 12년)와 무상 의료치료제도, 무세금제도, 무상주택 분배제도 등을 그대로 지켜내 국가의 무한책임을 다한 그런 국가였다. 누가 더 국가적 의무를 다했다고 보는가?

(체제가 어쨌든 간에) 국가를 부도내고, 하루아침에 그 평범한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간 그런 대한민국, 그 극복이후에는 권력과 돈으로 갑질‘gapjil’이 일상화되고, 그 결과가 1: 99사회가 되고, 전직 대통령들이 줄줄이 감옥 가는 그런 대한민국이 더 정상적인가, 아니면 모든 인민들을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만들기는 했으나 어려운 국가살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전략과 노선을 끝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더 나아가 자주의 문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당당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그런 국가가 더 정상적인가?

물론 쉽지 않는 판단의 문제일 수는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듯이 자주 또한 구걸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또 세계적 추세와는 별개로 한 국가가 자기 나랏말로 국어를 정해놓고, 그 장려정책으로 일환으로 꼭 필요한 외래어가 아니면 모두 우리말로 표현해야 된다(필자 본인도 외래어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 글만 하더라도 영어가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법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률은 이미 사문화되어져 외래어가 범람되어 도시 전체는 외국화가 엄청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국어인지 외국어인지 구분이 안 갈만큼 혼용되어진 일상 언어가 판치는 그런 국가와, 자기 민족의 전통을 존중하고 자기 민족의 언어 순수성을 잘 지켜가고자 하는 그런 북한과 어느 국가가 더 정상적이라고 보는가?

연동해서 국어보다 더 외래어가 일상화된 대한민국, 그런 대한민국에서 법으로 한글 이외의 옥외간판은 법률적으로 처벌대상이지만 이미 외래어 간판 천국이 되어 버린 그런 대한민국의 모습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시작되는 ‘웃고픈’ 현실은 시부모님이 찾아오지 못하게 아파트이름도 외래어로 어렵게 짓는다는 그런 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이다. 정말로 대단한 대한민국이지 않는가. 과연 정상적인가?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비교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다. 높은 자살률, 실업률, 교통사고율, 입시지옥(1등주의),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풍경 등 이 모든 것들이 일상화된 그런 대한민국이다. 그 모든 것들을 놔두고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을 외교무대에 영부인이 참석하면 정상국가이고, 그렇지 못하면 비정상국가로 낙인 되는, 또 한 국가의 국가원수인 국무위원장이 기차로 중국가면 비정상이고, 비행기로 가면 정상국가의 의지표명이고, 꼭 그렇게 ‘부질없는’ 잘난 척을 해야만 하는가?

전형적인 외눈박이 북한인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대한민국을 정상적으로 통치할 능력이 부족했던 이명박·박근혜 10년의 보수정권이 남긴 후과여서 더더욱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오직 믿는 구석 하나라고는 북한을 리바이어던(Leviathan)된 괴물로 제조해(manufactured)내 그 허상으로 권력유지와 함께, 60년 이상 지속시켜온 반공이념에다 더 반북(反北)화된 종북이데올로기를 탄생케 해 한국판 매카시즘(마녀사냥)도 가능하게 하였던, 그 최고 정점은 다름 아닌 재미동포 신은미의 ‘통일콘서트’ 불수용이 있다. 그런 것조차 하나 수용하지 못하고, 북한을 무조건적으로 악마화해야 하는 그런 대한민국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에 대통령이 파면될 만큼 민주주의체제는 사망 직전까지 갔고, 또 현대 정당정치에서 국민적 지지여부로 해결되어야 할 정당문제마저도 (국가보안법)법적 잣대가 개입돼 진보정당 정당이 해산되기에 이르기까지 한 그런 허약체질의 자유민주주의체제였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풍경이 낯설다. (북한보다 너무나)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 체제 대한민국이 갖는 현주소이다. 격언대로라면 ‘내 안의 티끌은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크게 보는’ 그런 못난 국가와 똑 닮아있다. 미국을 너무나 닮고 싶어 했고,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했던 그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북한을 찬양할 이유도 필요 없겠지만, 제대로 된 북한 들여다보기만큼은 정확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지구상에 여느 국가든 완벽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북한 또한 장점과 단점을 가진 그런 한 국가일 뿐이라는 모습이 보여지고, 그 결과 또한 불필요한 구시대적 적대의식과 분열구도도 사라져 성큼 통일의 기운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이사/현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현 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외 다수가 있다.

김광수 통일뉴스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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