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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일본은 부모를 버린 불효자식”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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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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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이헌동
입력 2025.05.08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동해 섬 중 어린 것들 젖 먹여 길렀다.'고 한다.

글: 이헌동(김해근대역사위원회 위원장)



일제 19세기 임나일본부설에 따른 정한론 만들어

광개토태왕비 신묘년조 조작하여 조선침략 정당화

비문에 나오는 왜는 야마토왜 아닌 큐슈지역 왜

이형우, 조선총독부의 야마토왜 중시사관 추종
▲ 일제가 조작한 광개토태왕 비문을 새롭게 해석한 책, 비문전쟁. 자료: 북랩



고고학으로 본 광개토태왕비문의 왜

1871년 일제가 천황의 비호 아래 군사뿐 아니라 학문까지도 통제하는 육군 참모본부를 창설하였고 임나일본부가 조선의 가야에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터 잡은 정한론을 만들어 냈다.

정한론의 이론적 토대를 세우려고 했던 인물이 요코이 다다나오(橫井忠直)다.

그가 임나일본부가 조선에 있었다는 근거로 사용한 것이 밀정 사카와의 쌍구가묵본에 있는 광개토태왕릉비 '신묘년조'의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과 '경자년조'의 "任那加羅 從拔城"이었다.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격파하여 신하의 백성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사실이 아님은 신묘년에 왜가 백제와 신라를 격파했다는 역사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백제와 신라, 야마토왜의 국력을 비교하면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자년조는 고구려가 왜를 격파하여 임나가라 종발성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해 금관가야의 역사 기록인 <가락국기>에 고구려의 침략이 있었다면 기록이 나타날 것인데 없다.

그래서 요코이 다다나오(橫井忠直)의 광개토태왕릉비문 해석은 임나일본부설을 만들기 위해 조작되었다고 본다. 밀정 사카와가 탁본을 가져와서 발표하는데 5년이 소요되었고, 이것을 발표한 사람이 요코이 다다나오 인것을 보면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도명스님은 2025년 2월 발간한 <비문전쟁(碑文戰爭)> 책에서 渡海破百殘의 '渡海'가 '渡二' 인데 '二'를 '海'로 조작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백잔과 신라는 옛날 우리의 속민이었고, 전부터 조공을 왔다. 왜는 신묘년부터 물을 건너 (조공을) 왔다. 두 쳐부술 백잔과 왜가 신라를 침공해 신민으로 삼으려 했다. 이에 영락 6년 병신년 대왕께서 몸소 수군을 이끌고 왜와 백잔을 토벌했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에 적합한 해석이다.

<인류문명의 기원과 한>,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 등 많은 저서를 남긴 김상일 한신대 명예교수는 "도명스님의 이 책 속에 다른 어떤 역사서에서도 볼 수 없는 클로징멘트 마무리발언와 역사를 다루는 인문학적 지식과 함께 융합적인 글쓰기 방법론은 그 어느 서가에서도 발견이 쉽지 않는데, 필시 독자를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게 할 것이다. 향후 태왕의 비가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의 비운을 시운으로 바꾸는데 공헌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추천한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북큐슈 이토시마지역에는 일본열도에서 제일 선참으로 선진적 묘제와 새로운 농구, 공구, 무기무장, 마구류, 도질토기 등이 출현하였다.

이토시마평야의 수끼사끼고분은 철제단갑 등 가야계 특유의 유물이 드러난 가야계통 무덤으로서 돌칸구조와 껴묻거리로 보아 축조 년대는 5세기 초엽으로 추정된다.

수끼사끼고분과 후쿠오카시에 있는 로오지 고분들에서 나온 가야식 갑옷과 칼, 쇠낫, 주조식 도끼 등은 4세기에는 일본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유물들로 이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전쟁에 참가한 왜의 우두머리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북한학계의 가야사 연구> 참고)

부산대 박물관 특별학예연구원인 히로세 유이치(廣瀨 雄一) 고고학 박사도 "큐슈 이토국 주변은 고고유물에서 가야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고고유물로 볼 때, 이토국 주변에는 가야의 흔적이 강하게 나타난다.

가야산과 같은 가야의 지명도 남아있고 가야의 철과 관련된 유물도 지배자층 고분 출토품 중 가야의 유물도 많이 발견된다. 그런 점에서 가야와 왜와의 관계를 입증하는 좋은 예가 된다."고 한다.

<김해시사> 가야사 토론자 이형우도 "고고학으로 보면 서기 400년대 큐슈지역에서 나오는 유물과 유적이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왜라고 한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게 큐슈만의 출병은 아니라는 것이다. 야마도 왜가 지휘부라고 본다. 그래서 상상이지만 축자왜에서 가장 많이, 길비왜서 그보다 적게, 출운왜에서 다시 그보다 적게, 야마도왜에서는 지휘관급 정예부대라고 하는 거다."라고 한다.

당시 통합된 국가로서의 왜가 없었음에도 이형우가 상상으로 야마토왜를 중시한 것은 조선총독부 시절의 야마토왜 중시 교육을 연상하게 한다. 야마토왜를 중시한 황국사관으로 왜곡하고 조작한 <일본서기>에도 광개토태왕비문과 관련된 기록은 없다.

히로세 박사는 "문헌자료는 작성자의 의도에 따라 왜곡되거나 지워지기도 하지만, 고고유물의 경우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하였다. 이 관점에서 고고학으로 본 광개토태왕비문의 왜는 야마토왜가 아니라 큐슈에 있었던 왜였다.

일제가 광개토태왕비문에 나오는 왜를 야마토왜라고 한 것을 극복하는 심도있는 연구가 많이 나오는 가야사학계가 되기를 바라면서 쓰는 글이다.

일본에서 고대 가야는 일본의 식민지로 <일본서기> 임나관련 지명을 가야와 연결시켜 교육하는 것을 시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ㅡ고대한일관계를 제대로 연구한 학자들은 일본열도는 우리 땅에서 이주해간 사람들 역사라고 한다. 미국인 코벨, 북한학자 김석형과 조희승, 한국 최재석, 일본학자 에가미 등이 있다.

존 카터 코벨(John Carter Covell·1910∼1996)은 미국인으로서 일본 미술사를 전공했다. 처음에는 일본에 심취하여 일본 역사와 문화를 연구했다. 그러다가 원류가 한국임을 깨닫고 한국역사문화 연구로 여생을 마친다. 그녀는 "한국은 일본의 부모이고 일본은 부모를 버린 불효자"라고 일갈했다. 대표저서로는 <기마민족과 왜>가 있다. 이헌동 mukto@naver.com 기자의 다른기사

2025-04-13

북송 재일교포, 한국서 ‘북 상대 손해배상’ 승소 – RFA 자유아시아방송 2409

북송 재일교포, 한국서 ‘북 상대 손해배상’ 승소 – RFA 자유아시아방송

북송 재일교포, 한국서 ‘북 상대 손해배상’ 승소
서울-한도형 hando@rfa.org
2024.09.12

사진은 법원 로고 (/연합뉴스)


0:00 / 4:09

앵커: 북한의 체제 선전에 속아 북한으로 갔다가 탈출한 재일교포들이 한국에서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이겼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서울중앙지법 염우영 부장판사는 12일 북송재일교포협회 이태경 대표 등 북송 재일교포 5명이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앞서 이태경 북송재일교포협회 대표 등 북송 재일교포 원고 5명이 지난 3월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거짓 선전에 입국했다가 억류돼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입니다.

재판부는 북한 정부가 원고들에게 1명당 1억 원, 미화 7만4천5백 달러씩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소송을 지원한 한국의 북한 인권단체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는 승소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로 북송 재일교포들이 북한에서 겪은 인권침해 실상이 밝혀지고 법적 책임이 규명돼 북송 재일교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원고 5명 가운데 한 명인 이태경 북송재일교포협회 대표는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통화에서 “이번 재판을 통해 북송 재일교포들이 ‘억류 피해자’로 인정 받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태경 북송재일교포협회 대표 :일본에서는 '인도주의적 사업',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품에 안긴 귀국자'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다 거짓말이라는 것이 이번 승소에서 증명된 것으로, 우리가 억류 피해자라는 사실이 재판에서 승소하며 인정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에선 소장, 즉 재판을 받기 위하여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을 미국 뉴욕에 있는 북한 유엔 대표부에 보내야 한다고 지정했지만, 재판은 소장을 직접 전달하지 않은 채 ‘공시송달’ 상태에서 진행됐습니다.

공시송달은 소장을 직접 보내기 어려운 상황에 법원이 관보, 홈페이지 등에 소송 서류를 올리면, 소송 상대방에 소장이 전달됐다고 간주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제도입니다.

원고들이 이번 재판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향후 북한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이번 재판에 앞서 탈북 국군포로들도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한국 내 민간단체인 경문협, 즉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과 손해배상금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별개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 내 민간단체인 경문협은 조선중앙TV 등 북한 저작물을 사용한 한국 내 언론사나 출판사들로부터 북한을 대신해 저작권료를 걷은 뒤 송금해 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윤승현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인권침해지원센터장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에 “남북 경제협력 과정에서 북한 당국에 지급하지 않은 자금이 있는지 여부 등을 세심히 밝혀 향후 법적조치를 통해 실질적인 구제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윤승현 북한인권정보센터 인권침해지원센터장 :남북경협 과정에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이 갑자기 중단이 됐잖아요. 그러면서 북한 당국에 아직 미지급된 자금들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되고 우리는 그 방향으로 계속 밝히고 찾아내려고 노력할 예정입니다.

이태경 대표는 “만약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로부터 사과를 받아낸 것과 같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태경 북송재일교포협회 대표 :지금까지는 절반을 했다고 생각하고요. (손해배상금을) 받아냄으로써 김정은이를 무릎을 꿇어앉히고 사과를 받아낸 것이다 이렇게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는데 아마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북송 재일교포, 한국서 북 상대 소송...“역사 기록될 것”

탈북국군포로 추심금 청구 좌절...“대법원 상고할 것”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에 따르면 이번에 승소한 원고 5명은 1959~1984년 북한 당국의 지휘로 이뤄진 이른바 ‘재일교포 북송사업’ 피해자들입니다.

북한은 약 25년 동안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통해 9만 3천여 명의 재일교포를 북한으로 이주시켰고, 이들의 자발적인 귀국을 지원하는 인도주의적 사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대다수는 북한 내에서 이른바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등 인권 침해를 당했고, 북송 재일교포와 그 가족 가운데 약 500명은 한국과 일본 등으로 탈북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도형입니다.

에디터 홍승욱, 웹편집 김상일

북송 재일교포, 한국서 북 상대 소송...“역사 기록될 것” – RFA 자유아시아방송 2403

북송 재일교포, 한국서 북 상대 소송...“역사 기록될 것” – RFA 자유아시아방송

북송 재일교포, 한국서 북 상대 소송...“역사 기록될 것”
서울-홍승욱 2024.03.15

왼쪽부터 윤승현 NKDB 인권침해지원센터장, 북송 피해자 이태경 씨, 한장헌 변호사. (/RFA PHOTO)


0:00 / 3:53

앵커 :북한의 체제 선전에 속아 북한으로 갔다가 탈출한 재일교포 출신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959년부터 1984년까지 9만 3천여 명의 재일교포를 북한으로 보낸 이른바 ‘재일교포 북송사업’.

이들은 북한 내에서 적대 계층으로 분류돼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등 인권 침해를 당했고, 이들 가운데 5백여 명은 목숨을 걸고 한국과 일본 등으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15일, 한국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출신 탈북민 5명은 한국의 북한인권단체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와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찾아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NKDB는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거짓 선전하며 입북시킨 뒤 억류했던 북송 재일교포 탈북민 5명을 대리해 한국 법원에 이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습니다.

탈북민 한 명 당 1억 원, 미화로 약 7만 5천 달러를 청구했고, 소장 송달 장소로는 미국 뉴욕에 있는 북한 유엔대표부 주소를 명시해 소장을 북한 측에 실질적으로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재판에서 이길 경우 북한 측 재산에 대한 집행 측면에서 더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윤승현 NKDB 인권침해지원센터장(변호사):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도 북한의 자산이 일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송달이 된다면 그에 대해서도 한국 내 판결을 통해 집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공시송달로 선언적 의미의 판결만 받았지만, 이번에는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실질적인 집행이 가능하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원고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인 이태경 북송재일교포협회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손해배상을 받는 것 만으로도 역사에 기록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이번 소송의 의미를 평가했습니다.

이태경 북송재일교포협회 대표 :이렇게 피해에 대한 배상을 받는 것 만으로도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송된 9만 3천 재일교포들과 한을 품고 돌아가신 우리 부모, 형제들의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 소송을 지원하는 NKDB는 “재일교포 북송 사업의 주된 책임 주체는 북한이고, 조총련과 일본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당시 재일교포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한국 정부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원고들이 북송 당시 한국 국적자였고, 북한이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라는 점 등을 고려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설명입니다.

북한을 상대로 한 북송 재일교포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일본에서 먼저 제기돼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고등재판소는 지난해 10월 열린 2심 재판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고 북한 당국의 불법행위를 다시 판단하라며 사안을 1심으로 돌려보낸 바 있습니다.

원고들은 일본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이들과 관련 자료 및 입증 방법 등을 공유하며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에디터 목용재, 웹팀 김상일

2025-04-08

한국 학생 10명 중 6명 “북은 경계·적대 대상” –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국 학생 10명 중 6명 “북은 경계·적대 대상” –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국 학생 10명 중 6명 “북은 경계·적대 대상”
서울-홍승욱 hongs@rfa.org2025.04.04


북한군 병사들이 2012년 4월 1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AP)

앵커: 한국 초·중·고등학교 학생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은 북한을 경계와 적대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3년 전 조사와는 크게 달라진 결과입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가 4일 결과를 공개한 ‘2024 학교 통일교육 실태조사‘.

이에 따르면 한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8.2%는 북한을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적대적인 대상‘이라는 응답이 15% 나온 것을 감안하면, 10명 중 6명 이상이 북한을 ‘경계·적대’ 대상으로 여긴다는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북한이 ‘협력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응답은 27.8%, ‘도와줘야 하는 대상‘이란 응답은 6.5%로 경계·적대 대상으로 보는 인식의 절반 정도에 그쳤습니다.

지난 2021년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 협력·도움 대상이란 인식이 전체의 60%, 경계·적대 대상이란 인식이 35%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3년 만에 한국 학생들의 대북 인식이 180도 바뀐 결과입니다.

학생들은 현재 남북관계에 대해선 75.8%가 ‘평화롭지 않다‘고 응답했고, ‘평화롭다‘는 답변은 4.6%에 그쳤습니다.

통일 공감대도 급격히 약해지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년 만에 61.2%에서 47.6%로 13.6%포인트 떨어졌고, ‘통일이 필요 없다‘는 응답은 25%에서 42.3%로 17.3%포인트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역시 통일이 필요하다는 학생 비율이 필요 없다는 학생의 2배 정도로 조사된 2021년 설문 결과와 차이를 보인 것입니다.2024 학교 통일교육 실태 조사 (한국 통일부 제공)

‘통일에 관심이 있다‘는 학생도 3년 전 조사에선 50%를 넘었지만, 지난해엔 40% 정도로 감소했습니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남북 간 전쟁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전체의 38.4%로 가장 많았고,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14.4%), ‘한국이 보다 선진국이 될 수 있기 때문에‘(14.1%), ‘이산가족의 아픔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11.9%) 순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통일이 필요 없다고 응답한 학생들은 ‘통일 이후 생겨날 문제‘(29.4%),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22.2%), ‘남북 간 정치제도의 차이‘(18.7%), ‘남북 간 사회문화적 차이‘(13.3%), ‘나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13.1%)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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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35% ‘통일 필요없어‘…2007년 이후 최고치”

학교 통일교육 실태조사는 통일교육 지원법에 따라 지난 2014년 도입됐습니다.

한국 통일부와 교육부는 전국 7백75개 초·중·고교 학생 7만4천2백88명과 교사 4천4백2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21일부터 11월 15일까지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0.36%포인트입니다.



통일부 “UN 인권이사회 북 인권결의 채택 환영”



한편 통일부는 이날 제58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결의가 컨센서스, 즉 표결 없는 합의로 채택된 데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김인애 한국 통일부 부대변인] 정부는 북한 내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 침해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깊이 우려하며, 북한이 납북자, 억류자, 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강제송환 탈북민들에 대한 비인도적인 대우를 중단하는 등 인권 상황의 개선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합니다.

통일부는 북한 내에서 벌어지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 상황을 우려하면서, 당국이 인권 상황 개선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유엔 인권이사회 ‘임의구금 실무그룹‘(WGAD)이 지난 13일 북한의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장기 억류가 불법적인 임의 구금에 해당한다는 의견서를 채택했다며, 이들을 포함한 한국 국민을 즉각·무조건 석방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또 북한인권결의에서 지적된 북한 강제노동 실태와 북한 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인한 비인도적 상황에도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의 실질적 증진을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는 지난 2003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인권위원회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23년 연속으로 채택됐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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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통일 필요’ 여론 하락 추세”
서울-이정은 leeje@rfa.org2025.02.26

통일의 이익 인식 추이 [통일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0:00 / 3:34

앵커 :한국에서 남북 통일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하락 추세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서울에서 이정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통일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통일의식조사 2024‘ 보고서.

보고서는 지난해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18세 이상 성인 남녀 1천1명을 상대로 대면면접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담았습니다.

이에 따르면 남북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52.9%로 지난 2023년 대비 1%포인트 하락했습니다.

한국 내 통일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지난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인 2020년 52.7%로 최저치를 기록한 후 회복되는 듯 하다 다시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보고서는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통일에 소극적인 경향이 관찰된다며 통일필요성에 대해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통일 필요성 여론 추이 [통일연구원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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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통일 포기 선언과 관련 응답자의 52.6%는 이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지난 2023년 12월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남북 통일을 지향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응답자의 과반이 관심이 없거나(40.9%) 들어본 적이 없다(11.7%)고 답한 겁니다.

북한에 대한 관심도를 묻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65.5%가 관심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응답자 3명 중 2명 "한국 핵보유 찬성"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응답자의 66%가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지난 2023년 조사 대비 6%포인트 상승한 수치입니다.

미국의 핵확장억제를 신뢰한다는 의견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북한이 한국을 핵으로 공격한다면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로 보복 공격 한다는 미국의 핵우산 정책을 신뢰하냐는 질문에 신뢰한다는 응답이 66.9%로 지난 2023년 대비 5.2%포인트 감소한 겁니다.

미국의 핵우산 정책이 있기 때문에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55.5%로 2023년 대비 7.6%포인트 상승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미국에선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한국의 신뢰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지난 24일 토론회에서의 레베카 하인리히스 미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의 말입니다.

[레베카 하인리히스 미 허드슨연구소 수석연구원]미래에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한국이 확장 억제를 신뢰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미국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은 한국에 대한 안보 투자와 신뢰 구축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이번 통일연구원 조사의 표집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입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정은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2025-02-09

[남북 엘리트의 역설] 북한의 만행을 세상에 폭로한 이상조 — RFA 자유아시아방송

[남북 엘리트의 역설] 북한의 만행을 세상에 폭로한 이상조 — RFA 자유아시아방송

[남북 엘리트의 역설] 북한의 만행을 세상에 폭로한 이상조

서울-이승재 yis@rfa.org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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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엘리트의 역설] 북한의 만행을 세상에 폭로한 이상조한국전쟁 휴전회담 북한측 대표로 나온 이상조 전 소련 대사의 모습.
/KBS "한국전쟁 6부 - 또다른 전쟁" 화면 캡쳐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승재입니다매주 이 시간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소수의 특수계층하지만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바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북 엘리트의 역설>은 탈북민 조현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조현 선생님 안녕하세요.

 

조현: 안녕하십니까.

 

이승재: 선생님이 “남북한 외교관은 겉으로 보면 모두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듯 보이지만 남한은 국가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을 위해북한은 오로지 김씨 일가 정권을 위해서만 일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최근 들어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이 늘고 있습니다이어 그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의 민낯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죠.

 

조현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한국 국회의원이 된 태영호 씨가 한국에서 출판한 책 제목이 ‘3층 서기실의 암호입니다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죠 2019년 가족과 함께 탈북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대사대리는 북한에 12만 명 이상의 남녀와 어린아이를 수용하는 정치범 수용소가 있다는 것과 외교관을 비롯해 페르시아만 지역에만 파견된 1만 명 이상의 외화벌이 노동자들이 번 돈이 고스란히 김씨 정권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어요.

 

북한 정권의 실체를 세상에 알린

북한 외교관

 

이승재: 그랬죠지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탈북 외교관들 이전에 북한의 외교관으로 가장 먼저 북한 정권의 실체와 북한 인민들이 처한 진짜 현실을 바깥 세상에 알리려던 분이 바로 이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1950년대 이상조 전 소련 대사북한 주민들은 과연 이분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조현: 북한에 있을 땐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8월 종파사건을 일으킨 연안파의 주역인데요이 사람이 항일운동을 하다가 북한에 들어가 중앙당 조직부 부부장상업성 부부장 등을 하다가 외교관이 됐고요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패전 위기에 직면한 인민군이 이상조를 중공에 보내 모택동주은래팽덕회 등과의 회담을 통해 중공군을 끌어들였다네요심지어 남북 휴전을 맺을 땐 북측 대표로 나왔답니다이상조는 1955년부터 소련주재 특명전권대사로 일했는데 김일성은 6.25전쟁 이후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을 치르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그 명분으로 위상이 높아지지 않았습니까김일성은 이를 발판으로 박헌영과 남로당을 무너뜨리면서 자기중심의 역사를 만들어간 건데요. 1956 2소련 대사였던 이상조는 흐루쇼프가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난하는 연설을 보게 됩니다이 연설은 김일성 체제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이상조가 8월 종파사건에 나서도록 만든 것이죠

 

북한에서 모르는 사람 없는 8월 종파사건

그런데 이상조 이름은 모른다?

 

이승재: 8월 종파사건하면 북한에서 절대 몰라서는 안 될 사건이고 박헌영이나 최창익 등 숙청된 사람들은 모두 역사책에 나올 텐데 왜 이상조는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조현: 그 사람의 이전 행적을 북한이 모두 지워버렸기 때문이 아닐까요아마도 이상조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항일 투쟁이나 북한 정권 수립과정에서 김일성의 포장된 거짓 역사가 다 드러나기 때문이겠죠이상조는 자신이 숙청될 것을 직감하고 북한을 폭로하는 문서를 만들었는데요.

 

이승재: 안타깝게도 그때 공개되지는 못했죠.

 

조현그 내용은 “북한은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는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다김일성의 업적으로 자랑스럽게 선전되는 보천보 전투는 실제로 일본인 몇 명을 살해한 아주 작은 전투였으며 별의의가 없었다북한에선 스탈린보다 더한 김일성 개인숭배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8월 종파사건이 실패로 끝나면서 김일성은 이상조에게 소환명령을 내렸지만 이상조는 결국 소련과 잘 협상해 거기 남았습니다결국 북한 정부수립 이래 최초의 최고위층 외교관 망명이 된 거죠.

 

만약 8월 종파사건이 성공했다면

지금 북한은

 

이승재: 8월 종파사건이 김일성을 수상으로최창익을 노동당 중앙위원장에최용권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배치하는 3인 집단지도체제를 주장한 거잖아요만약 종파사건에 성공했다면 북한은 어땠을 것 같으세요?

 

조현: 저는 공산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종파사건에 성공했어도 북한이 지금 한국처럼 잘 살게 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그러나 입법사법행정이 완전히 분리된 한국은 정치적으로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할 기능은 충분히 주어집니다당시 8월 종파사건이 성공했다면 최소한 그거 하나는 좀 나았을 것 같아요

 

이승재: 선생님은 이상조 씨가 위인으로 보이세요한국전쟁도 일으키고 북한의 권력을 누리다가 해외로 도망갔다고 볼 수도 있잖아요.

 

조현: 권력을 오랫동안 누린 사람이 아니라 정권 초기 북한이 잘못됐음을 알고 바로잡으려 했던 사람이니까 나름 존중할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비록 망명했다고 하나 소련에서 1990년대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을 거예요그 분이 1989년에 한국에 와서 6·25전쟁이 분명히 남침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강연도 했는데요지금 시대의 탈북 못지않은 용기라고 생각합니다사실 민간인보다 외교관이 용기내기가 더 힘든 것 같습니다외교관이 바깥에서 한국이 어떻게 사는지 다 보는데 어떻게 그 사실을 모른 척할 수 있으며협력하고 싶어도 선뜻 손을 내밀 수가 있겠습니까?

 

남북한 외교관이 협력해 목숨 구한

유일무이한 영화 같은 이야기

 

이승재: 하지만 그런 믿기지 않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더라고요선생님 영화 모가디슈 보셨습니까작년에 개봉된 한국 영화인데 해외에서 위급한 상황에서 남북한 외교관들이 협력한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거든요이게 실제 있었던 얘기라고 하더라고요.

 

조현: . 1991년에 벌어진 실제 이야기입니다영화 속 배경은 남북이 유엔에 가입하기 이전인데 당시 남북 모두 UN가입을 위해 투표권을 가진 아프리카 국가들과 가까워져야 했답니다그래서 소말리아에 남북 외교관이 체류하는데요때마침 반군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무너뜨리고 심지어 그 정권과 협력했던 해외 대사관들까지 침입해서 죽이고 뺏고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내용이 길지만 짧게만 말하면 결국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남한 대사관으로 피신합니다그리고 남북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결국은 케냐까지 탈출합니다정작 케냐에 도착하니 각국의 상사들이 마중 나와 있어서 서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지만요그러나 남북 외교관들은 서로 협력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또 협력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처한 현실도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북한 외교관도 위기에 닥쳤을 때 본인들이 구해달라고 한국 대사관으로 뛰어 들어갔거든요자존심 내려놓고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 거 아닙니까그게 부끄러운 행동비겁한 행동이 아니에요결국은 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었던 행동입니다영화를 보면 함께 탈출하는 과정에서 북한 외교관들은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남한 외교관이 살아나기도 합니다이런 과정에서 분명 북한 외교관들도 자신들이 쓸모 있는 사람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을 겁니다.

 

이승재저는 영화를 보면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된다는 게 영화 속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 영화 속 얘기는 1991년의 일이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많은 것 같습니다.

 

북한 외교관들은 볼모로 잡힌 가족을 두고

왜 탈북할까?

 

조현: 지난 시간에 외교관은 자국을 대표해 해외에 파견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한 마디로 북한 외교관은 김정은을 대신해 해외에 나가 있는 것이죠그럼에도 그런 외교관들이 북한에 볼모로 잡혀 있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탈북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북한 당국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강경하게 억누를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고요어쩌면 남과 북이 나뉘었을 때부터 잘못됐다는 판단으로 김일성과 북한 정권의 거짓을 세상에 알리려고 했던 이상조 전 소련 대사처럼 앞으로 북한 외교관의 임무는 더 엄중할 지도 모릅니다북한에는 외국에서 세상 문물을 경험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그래서 사실 북한 외교관들은 뛰어난 엘리트로서 북한의 미래까지 이끌어야 할 중요한 사람들입니다북한 외교관들도 진짜 외교관의 업무가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진정으로 인민을 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국제사회에 북한이 처한 현실을 바로 알리고 북한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갖가지 지원들을 많이 이끌어내기를 바랍니다북한은 김씨 일가의 나라가 아니라 2000만 인민들의 나라이며북한 외교관도 북한의 2000만 인민들을 대표하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승재: 네 선생님 오늘 말씀도 감사합니다지금까지 남북 엘리트의 역설이었습니다.

 

기자 이승재에디터 이예진웹팀 김상일



2025-01-07

한미 외교장관 만나 북러 군사협력 우려 —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미 외교장관 만나 북러 군사협력 우려 —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미 외교장관 만나 북러 군사협력 우려
서울-홍승욱 hongs@rfa.org
2025.01.0


토니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외교부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앵커: 한미 외교장관이 한국 계엄사태 이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양국 장관은 정치 상황과 관계 없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북러 간 군사협력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6일 서울에 있는 한국 외교부 청사에서 만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조태열 한국 외교부 장관.

블링컨 장관은 오찬 회담 뒤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위성기술을 공유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신뢰할만한 정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북한은 이미 러시아로부터 군사 장비와 훈련 등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우주 및 위성 기술을 공유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신뢰할만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수십 년 간의 정책을 뒤집어 북한 핵을 용인할 가능성에 가까워졌다면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말 쿠르스크에서 북한 군 1천 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북러 협력 심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안보에선 대서양과 태평양이 분리될 수 없다”면서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계속 공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북한 측 포탄과 병력 뿐 아니라 중국에서 나오는 이중기술(Dual-use technology)에 대한 지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중기술’이란 인공지능이나 초고속통신망, 핵분열 기술 등 평화적인 목적이나 군사적인 목적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조태열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북핵 문제와 북러 협력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습니다.

[조태열 한국 외교부 장관] 오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빈틈없는 연합방위태세와 확장억제 강화를 통해 그 어떤 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하고 단호히 대응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조 장관은 한미가 이번 회담에서 “동맹에 어떠한 공백도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도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로서 연대하며 모든 정책 행보를 긴밀히 협조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외교부에서 한·미 합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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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언급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이 흔들림 없이 견고하다는 공감도 이뤄졌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한국 비상계엄 사태 등에 대한 질문에, 한국에서 내려진 일부 조치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고 이에 대해 한국과 직접적으로 소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몇 주 동안이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서 일종의 시험대였는데 한국 국민들은 회복력을 발휘하며 응답하고 있다”며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민주국가로서 헌법에 입각해 앞으로 나아갈 것을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무안국제공항에서 일어난 여객기 사고에 대해선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위로를 전한 뒤 “미국은 모든 방식으로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장관은 “지난 한 달 동안 블링컨 장관,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 등과 소통하는 가운데 한미 간 완벽한 신뢰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한미관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양 장관은 비상계엄 이후 두 차례 통화한 바 있지만,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홍승욱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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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6

동학농민운동과 북한의 반제반봉건운동 — RFA 자유아시아방송

동학농민운동과 북한의 반제반봉건운동 — RFA 자유아시아방송



동학농민운동과 북한의 반제반봉건운동
김주원∙ 탈북자 xallsl@rfa.org
2021.12.01


지난 2015년 평양에서 미 제국주의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북한 동포 여러분, 지난시간에 1894년에 있었던 갑오개혁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갑오개혁에 대해 더 잘 이해하자면 같은 해 갑오개혁이 있기 전에 벌어졌던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19세기 이조왕조 시기에 있었던 반제반봉건운동이었던 동학농민운동을 소개하고 20세기 북한에서 김일성에 의해 제시되었던 반제반봉건운동의 허위성을 폭로하려고 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이조왕조 말기 고종 31년(1894)에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제반봉건 운동입니다. 동학운동은 고부(백산) 봉기라고 불리는 1894년 3월에 있었던 제1차 동학농민운동과 전주와 광주일대에서 그해 9월에 있었던 제2차 동학농민운동으로 나뉩니다. 동학운동의 이념인 동학사상, 일명 천도교 사상은 철종 시기인 1860년에 동학교의 사상가인 최제우가 내세운 우리민족 고유의 경천사상(敬天思想)을 바탕으로 그 위에 유교와 불교 등 여러 교리들을 혼합하여 만든 민족종교 사상입니다.

동학에서는 사람은 곧 하늘과 같고, 사람을 섬기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과 같으며, 신분과 계급을 초월한 모든 인간의 평등과 인도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내려오던 신분제도에 대한 강한 반발을 예고하는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노예제 폐지와 신분제 철폐가 시작되었고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되고 자유민주주의국가가 설립되면서 신분제도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그러면 과연 동학농민운동의 발달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봉건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에 맞서 조직적으로 일어나 무장봉기로 맞선 동학농민운동은 동학농민군 대장이었던 전봉준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급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라북도 정읍시와 부안군 일대에 고부군이라는 지역이 있었습니다. 전봉준 대장의 아버지 전창혁은 고부군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저항하다가 모진 곤장을 맞고 한 달 만에 사망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원한을 품은 전봉준은 동학사상을 받들어 낡고 부패한 봉건사회를 뒤집을 큰 뜻을 품게 되죠. 600여 평의 세마지 논에서 농사를 지어 다섯 명 가솔이 근근이 먹고 살아가면서도 동네 어린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훈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봉준은 35세가 되던 1890년경에 동학사상에 매료되어 동학에 입교했고 얼마 후 동학의 제2세 교주였던 최시형(崔時亨)으로부터 고부지방의 동학접주(接主)로 임명되었습니다. 동학에서 지역의 책임자를 ‘접주’라고 불렀습니다.

이 무렵 아버지를 죽인 고부 군수 조병갑의 백성들에 대한 횡포가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 농민들에게서 여러 가지 명목으로 과중한 세금과 재물을 빼앗고 가뭄이 들어 농사가 망쳤는데도 조세를 오히려 3배나 높게 징수하여 백성들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백성들에게서 더 빼앗을 벼나 가축 등이 없게 되자 부농들에게도 온갖 죄명을 씌워 재물을 약탈했습니다.

1893년 12월 고부군 농민들은 조병갑에게 어려운 형편에 놓인 백성들을 구제해 줄 것을 간청하는 진정서를 올렸습니다. 진정서에는 동학접주였던 전봉준의 이름이 맨 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이 진정서를 무시하자 전봉준은 함께 싸울 사람들을 모집하였습니다. 한 달 후인 1894년 1월 10일에는 1,000여 명의 동학농민군이 궐기해 나섰습니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농민군이 고부군 관공서를 습격하자 고부 군수 조병갑은 전주로 도망쳤고 농민군은 무기고를 들이쳐서 무기를 획득하였습니다. 무장한 농민군은 조병갑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에게서 빼앗은 곡식들을 창고에서 꺼내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조봉건정부는 이러한 사태를 잠재우기 위해 조병갑 등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들을 처벌하고 전라남도 장흥군 부사(府使)였던 이용태(李容泰)를 동학농민군 사건과 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핵사(按覈使)로 파견했고 박원명(朴源明)을 새 고부 군수로 임명해 내려보냈습니다. 자연발생적으로 고부민란에 참여하였던 농민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전봉준의 동학농민군 주력부대는 백산(白山)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사태를 주시하면서 주둔해 있었습니다.

이조봉건 중앙관청에서 농민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려온 안핵사 이용태 모든 사태의 책임을 동학교도들에게 돌려 체포와 처형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에 격분한 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은 1894년 3월 하순에 인근 지역의 동학접주들에게 통문을 보내 보국안민을 위하여 봉기할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전봉준이 호소한 ‘무장포고문’에는 “지금 이 나라의 신하라는 자들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갓 봉록(俸祿)과 벼슬자리만 탐내면서 아첨만을 일삼고 있으며, 안으로는 잘못되어가는 나라를 바로잡을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들을 수탈하는 관리들만 많으니, 백성들은 집에 들어가도 기쁘게 종사할 생업이 없고 집을 나오면 제 한 몸 보호할 방책이 없건마는 가혹한 정치는 날로 심해져 원망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와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윤리,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의 분별은 마침내 다 무너지고 남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라고 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동학농민군들은 비록 시골에 사는 이름 없는 백성들이지만 이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이 땅에서 나는 것을 입고 사는 까닭에 나라의 위태로움을 차마 앉아서 볼 수 없어서 팔도가 마음을 함께 하고 억조(億兆) 창생들과 서로 상의하여 오늘의 이 의로운 깃발을 들어 잘못되어가는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한다고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삽시에 백산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의 수는 1만 명을 넘었고 전봉준은 동도대장(東徒大將)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리고 손화중(孫和中), 김개남(金開南)을 총관령(總管領)으로 삼아 전봉준 대장을 보좌하게 하였습니다.

동학농민군이 무장한 무기라고는 대나무 창이나 농기구밖에 없었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하얀 옷을 입은 농민군이 서 있는 곳은 산 전체가 새하얗고, 마치 고슴도치처럼 빼곡하게 바늘이 돋아난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결국 전라도의 작은 마을인 고부군에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은 동학농민전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894년 4월 4일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전라북도 부안에 이어 전주, 정읍, 흥덕, 고창을 점령하였습니다. 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은 창의문을 발표하여 동학농민이 봉기하게 된 뜻을 재천명하였고, 4월 12일에서 4월 17일 사이에는 영광, 함평, 무안 일대에 진격하였으며 4월 24일에는 장성을 출발하여 4월 27일에는 전주성을 점령하였습니다.

삽시에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고 전국으로 세력을 확대한 동학농민군의 기세에 겁에 질린 이조봉건정부는 무사 홍계훈(洪啓薰)을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로 임명하여 동학농민군을 제압하도록 했습니다. 농민군의 기세에 눌린 홍계훈은 봉건정부에 외국군대를 끌어들여서라도 농민군을 제거해야 한다고 요청서를 진정했습니다.

홍계훈의 외병차입(外兵借入) 요청을 수락한 이조봉건정부는 중국 청나라에 지원병을 요청했습니다. 청나라 군사들이 충청남도 아산만에 상륙하자 일본군도 인천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전봉준 휘하의 10만여 명의 남접농민군과 최시형을 받들고 있던 손병희(孫秉熙)휘하의 10만 명의 북접농민군이 합세하여 봉건왕조와 외세를 반대하여 싸웠으나 수적으로 우세한 정부군과 일본군에 의해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은 진압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전라도 순천, 황해도와 강원도에서 일부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였으나 모두 진압되었고 전봉준 대장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 전라북도 정읍 등지로 피신을 하였다가 전라북도 순창에서 부하였던 김경천(金敬天)의 밀고로 12월 2일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넘겨져 서울로 압송되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현대판 봉건독재국가인 김씨왕조 북한에는 여전히 신분제도가 존재하고 있어 성분, 토대가 나쁜 사람들은 일생을 가장 비천한 광부, 탄부, 농민으로 살아가야 하며 자녀들에게도 성분이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김정은 정권은 이조왕조를 능가하는 반민족, 반인륜집단이며 제2의 동학농민전쟁의 도화선에 언제 불이 달릴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주원,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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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현실과 앞으로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RFA 주관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 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입니다. 오늘은 중국과 러시아인들이 생각하는 북한 관광의 매리트, 즉 장단점에 대해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과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연구위원님 안녕하십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네 안녕하세요.



기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 위원장이 삼지연과 원산 갈마반도를 부쩍 강조하고 북한 매체도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제 북한 최고지도자의 행보를 보면 예측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은 대북 제재 속에서도 가장 실현 가능한 산업 중 하나가 관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고요. 왜냐하면 코로나19 직전까지 꾸준히 북한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으니까요. 또 거기에 더해서 최고 지도자가 최근 관광지 개발에 더욱 집중한다는 사실은 기존보다 더 많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간 투자와 관광객 유치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관광지를 개발해도 북한을 갈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서는 아시다시피 러시아나 중국 외에는 크게 없으니까요.



기자: 그 말씀은 일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자마자 김 위원장이 삼지연을 이제 시찰했고요. 그리고 또 원산까지 이어진 것을 보면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실제로 푸틴 대통령 방북 직후에 러시아 여행사 모스트코 인트루가 최근 새롭게 여행 상품 8개를 추가했는데요. 그중 7개가 북한 여행 상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제 코로나19로 인해서 중단되었던 북한과 러시아 간 열차를 이용하는 북한 관광이 재개된 시기도 바로 이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이후였으니까요.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북한 최대 국제관광지를 연이어서 방문한다는 사실은 관광과 관련해서 중국과 러시아 간에 더 많은 협의가 이루어졌다는 시그널로 보여집니다. 북러 회담 중 관광과 관련해서는 또 수차례 언급도 했고요.

기자: 그런데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그런 국가가 중국과 러시아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관광 정책이 얼마나 성공하겠는가 이것이 관건인데요. 러시아나 중국인들에게 있어 북한이 얼마나 매력적인 관광지가 될 것인가 이것이 관건인 것입니다.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북한의 관광지는 어떤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네 아무래도 북한은 러시아의 극동 지역보다는 훨씬 더 따뜻한 곳이잖아요. 그리고 이제 나선 등 해수욕장을 다녀간 러시아 관광객의 얘기를 실제로 들어보면 북한은 무엇보다 물가가 저렴하고, 그리고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또 깨끗하기 그지없어서 한두 달 이상 해수욕을 하고 또 서구인들이 좋아하는 바캉스를 보내기에 좋다고 합니다. 다만 이것이 과연 지속 가능성의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 관광객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올지가 좀 의문입니다.



기자: 그러면 왜 러시아 사람들이 발길이 선뜻 북한으로 가지 않는지 그 이유가 좀 궁금합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네 우선 극동 지역 같은 경우는 아시는 대로 인구가 굉장히 적잖아요. 그래서 시장 수요가 낮을 가능성이 높고요. 또한 러시아인들은 동양과는 좀 다른 문화를 가졌다고 해야 되나요?
물론 해양 스포츠 등도 이들은 좋아하지만 서구인들에게는 무엇보다 밤문화가 좀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녁에는 각국의 다양한 분위기를 즐기고 또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식당이나 술집들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은 아시다시피 밤문화에 대한 자율성이 상당히 낮고, 또 즐길거리가 장마당 정도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장마당조차도 저녁에는 열지도 참 불투명하고요. 따라서 러시아 같은 경우는 한두 번 방문하면 더 이상 방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수요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보면 인구가 많은 쪽에 러시아 모스크바 지역이 있는 곳인데, 그들은 터키나 헝가리 그리고 세르비아 등 친러시아 지역을 갈 가능성이 더 크고요. 그리고 아시아라고 해도요. 설령 오히려 중국의 대련과 여순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곳은 러시아가 점령을 했던 적도 있고요. 그리고 1945년 해방 이후 10여 년간 러시아가 점령을 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러시아인들을 인터뷰 해보면 이런 곳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해요. 그래서 유적지 등 러시아 관련 시설들이 있는 이 연구지임을 감안한다면, 러시아인들은 북한보다는 훈춘과 대련 그리고 여순을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본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당히 무한한 관광객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 그렇군요. 그러니까 러시아 사람들은 오히려 북한의 나선이나 청진 이쪽보다는 여순이나 대련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말씀이신데요. 그러면 중국인의 북한관광 수요가 높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정연구위원: 네 우선 중국 동북 지역은 인구가 아시다시피 굉장히 많잖아요. 그리고 통제 사회에 대해서 러시아인들은 서구적인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답답함을 느끼지만, 중국인들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라고 봐야 되고요. 오히려 “못 사는 사회주의를 보고자” 하는 그런 욕망도 있습니다. 북한을 옛날 이제 중국의 사회주의 시대 문화혁명 시기에 못 사는 중국으로 인식을 해서 이른바 ‘홍색 관광’이라고 하죠. 레드 투어 즉 공산주의 시대에 중국과 같은 의미가 있어서 중국인들이 “몇십년 전 중국을 본다”는 의미에서 투어가 상당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자: 혹시 만나본 중국인들은 그렇게 답변을 하고 있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예 제가 북한 관광에 대해서 연구를 하면서 중국인도 만나보고, 또 러시아 출신의 이탈 주민도 만나보고, 또 원산 갈마지구에 참가했던 이탈 주민도 만나보고, 또 러시아인도 또 이제 몇몇 인터뷰를 해보면요. 중국과 같은 경우는 상당히 대북 사업가들 같은 경우는 원산 갈마지구를 많은 분들이 또 방문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 얘기를 들어보면은 다시 가고 싶고, 특히 모래 사장이 너무나 깨끗하다고 해요. 무엇보다도 저렴한 비용 때문에 해산물도 실컷 먹을 수 있고, 특히 원산 같은 경우는 명사심리 이런 모래 사장이 너무나 아름답고 절벽도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체로 보면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같은 경우는 아직 개발이 크게 되어 있지 않아서 깨끗함을 중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런 지역이다라고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코로나19 이전 2018년 2019년도에는 중국인 사업가들이 원산 갈마지구 공사 현장을 방문 또는 답사를 했고요. 이것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투자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자: 그러면 관광 인프라 시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최소한 원산 갈마지구는 북한과 접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인들에게는 흥미로운 공간인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길림성이나 흑룡강성 같은 경우는 바다가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바다를 보고 해수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매력적이죠. 그리고 특히 청진까지도 기차가 연결돼 있고요. 2018년도에는 개별 관광 연습을 한 적이 있고 이것이 CCTV에 방영도 됐습니다. 따라서 부족한 시설이나 물자는 중국 관광회사에서 일부 중국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서 열차로 실어 나르는 연습도 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북한 관광 투자에 관심을 가진 중국인들은 남방 지역 원주 상인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보면은요. 중국인 관광객에 대해서 북한은 무한한 수요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고 또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투자도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자: 예 중국인들이 북한 관광을 하는 진짜 이유가 거기에 있었군요. 오늘 말씀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재미있는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은이 연구위원: 네 고맙습니다.

경제와 우리 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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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1

자주시보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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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시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자주시보》
종류인터넷 신문
편집장김병길
창간2015년 3월 24일
언어한국어
본사경북 고령군 다산면 평리6길 30 304동 804호
웹사이트http://www.jajusibo.com

자주시보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문으로, 논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매우 우호적이며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한국 중립이고, 미국에는 적대적인 논조를 보인다. "6·15 남북 공동선언과 10·4남북선언을 전면이행하여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데 일조"하기 위하여 창간되었다.[1] 우리민족끼리와 친화적이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여 특히 대한민국의 보수 우파에 대한 강한 비판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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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시보의 전신은 자주일보이며, 자주일보는 자주민보의 후신이다. 자주민보는 지금과 같은 특유의 친북 성향으로 잦은 논란을 샀다. 대표 이창기는 2013년 북한 공작원과 연락하고 이적표현물을 게시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여 징역 및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았다.[2]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자 서울특별시는 자주민보가 신문법의 발행 목적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하여 등록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법원까지 간 공방 끝에 2015년 자주민보는 행정소송에 패하였으나 대법원이 폐간 결정을 확정하기 직전 자주민보 측이 '자주일보'를 창간하면서 사실상 폐간 위기를 모면하였다.[3] 이에 서울시는 신문법 제22조[4]를 근거로 들어 자주일보를 3개월 발행 정지시켰다.[5] 곧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게 자주민보가 차단[6]까지 당하자 자주일보는 홍번을 발행인으로 등록 지역을 옮겨 '자주시보'로 이름을 고쳤고, 다시 홍번 대표의 건강 악화로 새 대표 김병길의 주소지가 속한 지자체로 등록 지역을 옮겨 지금에 이르게 된다.

필진의 국가보안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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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시보는 친북 논조로 인하여 필진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자주 구속되었다. 2017년 8월에는 김병길 대표가 자택 압수수색을 당하였으며,[7] 11월에는 이용섭 기자가 찬양고무죄를 저질러 징역 1년 2월을 선고받았다.[8]

상징의 의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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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원은 사진기, 펜은 글을 상징한다. 붉은빛 황토색은 한반도와 해를 상징하며, 두 원은 과녁을 상징한다. 자주시보의 핵심 기사인 정세분석글 등에서 그 과녘을 적중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제호는 아람회 사건으로 옥중 고초를 겪고 나와서도 굴함없이 전교조를 만드는 최전선에서 평생 참교육 운동을 전개해온 정해숙이 써 준 것이다.

필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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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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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번: 발행인 겸 편집장
  • 이정섭 기자
  • 김홍식 기자
  • 남산 기자
  • 이용섭 역사가
  • 이창기 기자[10]
  • 최천택 전 교수
  • 이성원 후원회장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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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호석 통일학연구소장
  • 유태영 목사
  • 중국시민
  • 김동균 목사
  • 김상일 교수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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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이동:  “자주시보”. 2018년 10월 29일에 확인함.
  2.  “北공작원과 연락하고 北 찬양한 '자주민보' 대표 실형 확정”. 2018년 11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1월 2일에 확인함.
  3.  “[판결] 대법원, '종북 논란' 자주민보 폐간 확정”. 2015년 3월 2일. 2018년 11월 2일에 확인함.
  4.  발행인 또는 편집인이 신문법을 위반해 등록이 취소된 지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일 경우 시장이나 도지사가 3개월 이내의 발행 정지를 명할 수 있다.
  5.  '從北 매체(자주일보)' 3개월 발행정지”. 2018년 11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1월 2일에 확인함.
  6.  “방심위 “종북 자주민보 사이트 폐쇄””. 2018년 11월 2일에 확인함.
  7.  “[자주시보] 자주시보 김병길 대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자택 압수수색”. 《자주시보》. 2018년 11월 2일에 확인함.
  8.  “[자주시보] 본지 이용섭 기자 1년 2개월 실형 선고”. 《자주시보》. 2018년 11월 2일에 확인함.
  9.  “자주시보”. 2018년 11월 2일에 확인함.
  10.  이창기(자주시보 기자) 별세 연합뉴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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