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들은 언제부터 제사를 지냈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3회
법률방송
1,262,398 views Oct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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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3번째 시간에는 주자 성리학을 받아들인 조선이 유교의 전통 제도라 할 수 있는 제사와 족보를 어떻게 들여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갔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조선 사람은 지금의 한국 사람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오랜 전통이라 믿어왔던 제사와 족보 그리고 성(姓). 그 형성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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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음악]
[음악]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 봉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선비라는 인간형이 중국에서 어떻게 형성이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조선에 소개되서 들어오게 됐는지 살펴봤습니다 오늘이
시간에는 그 선비가 들어옴으로써 종법 제도가 뿌릴 내리기 시작하는데요 그
종법제도 핵심은 제도의 핵심은 역시 제사입니다 그럼 제사라는 것은 사실
조선조가 세워진 이후에나 처음으로 조선에서 이제 정착이 되기 시작한
거고요 그리고 제사를 지내려 그러면은 당이 또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당이라는
것도 조선초에 처음으로 지어지기 시작을 하고 그리고 사당이 지어지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종법 제도가 뿌리를 내리고 같은 종친들 그리 같은
성씨들 그리 모여서 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족보라도 처음으로 쓰여지기
시작합니다 제사 사당 족보이 모든 것이 굉장히 오래된 우리 조선의 전통
한국사람 전통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빨리 봐야
일찍 잡아봐야 조선 초이고 실제로이 모든 것이 제사 들리고 사당에 사당을
짓고 족보를 만들고 하는 거는 15세기 16세기 조선 중반에 가서야
뿌리를 내리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최근에 그 관습 풍습이 되겠습니다
오늘은이 부분에 대해서 한번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네 오늘은 그 주제를 어 제사를 거부한 조선 사람들로
잡았습니다 한국 사람 어 그러면 지금 아직도 적어도 60% 한 70%
아직도 어한 제사를 지낸다 그럽니다 어 심지어는 를 금지하는 개신 교도들
중에서도 한 20% 아직도 제사를 지낸다는 그런 통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제사야 말로 한국 고유의 것이고 아주 오래된 고유의 전통이라고
생각들 많이 하십니다 근데 이제 오늘 제가이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사실이
제사를 드려온 것도 역시 주자 성리학을 드려온 어 조선이 쓰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에 이제 제사가
소개됐을 때는 제사를 지낼 줄 아는 조선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선이
1392년에 세워지기 전까지는 천년 동안 불교 불교를 했던 어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시대 내내 어 불교를 그 국교로
삼았었다 관원 상제 이런 거는 다 사실은 절에 가서 했던 거죠 사찰에 가서 했던 거 기 때문에 그니까
이것이 어떻게 소개가 그 부분에 대해서 이제 말씀을 드리고 특히 초기의 제사를 지내도록
하려고 조정에서 정부에서 많은 이제 홍보를 하고 역량을 기울일 때 굉장히
그에 대한 저항이 강했었다라는 것을 어 그 한번
밝히면서 고려 사람하고 조선 사람하고 어떻게 달랐고 조선 사람하고 어 한국
사람하고 어떻게 달랐고 이런 부분을 한번 우리가 몇밀리 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보통 제사라 그러면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장례 절차를 치르거나 했을
때는 불교에서는 사찰에 가서 하는 거죠 어 불공을 들이는 것도 사찰에
가서 하는 거고 그리고 개신교에서는 교회에 가서 하는 거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거고
그리고 천주교는 그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거고 마찬가지로 주자
성리학에서는 제사를 지내는 거죠 차례라고 하고 하여튼이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니까 종교마다 문명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다른 방식의 종교 행위가 있는데 유교에서는이
제사라는 걸 하는 겁니다 자 근데 말씀드리이 제사가 너무나도 낯설었던
조 조선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태조 때부터 계속해서 제사를 지내라 하는 명을 어
영을 내립니다 해조 6년 1397년 있니다 대부의 감여 제도
가 이미 영감에 나타나 있는데 오로지 부도를 숭상하고 귀신을 아첨하여 섬겨
사당을 세워서 선조의 제사를 받들지 않으오니 원컨데 지금부터는 나를 정하여 사당을
세우게 하되 감히 영을 어기고 오히려 예전 폐습을 따른 자가 있으면 헌사로
하여금 규리하 하소서 그러니까 뭐냐면 지금 당연히 사대부 그니까 조선이
이제 세워지고 주자 성약을 받아들여서 이제 대부의 나라가 됐으면 대부는
뭐를 해야 되냐면 제사를 지내야 되는데이 사대부들이 아직도 뭡니까 부도를 숭상 부도라는게 뭡니까 불교적
그러니까 그거를 상해서 절에만 가고 지금 그 제사를 안 지내 안 지낸다
그러니까 이거를 빨리 사당을 세워서 선조를 받들게 하고 안 하는 사람들은
사헌부 이런 데다 얘기해서 엄한 벌을 내리도록 하소서 이러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니까 조선 초에는 전혀 제사가 뭔지 어떻게 하는지 몰랐고
불공 만 드리고 있던 예불 만 드리고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제 이런 영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다음에 또
보시면요 이번 이제 태종 1년입니다 첫해에 사헌부에서 어 대사헌이지 이런
사람들이 이제 상소를 올립니다 가여 법은 가여 아는 것은 이제 그 저
사당이 가요의 법은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부모를 섬기는 자는 살아서는 효도를 다하고 죽으면
살아서 봉양하는 것보다 후하게 하여 섬기기를 생존한 것이 하되 것 같이
하되 종신토록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그 부모를 죽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 뜻입니다 부도의 속화이 행해지면서 남의 자식된 자는 간사한
말에 혹하여 부모가 죽으면 부처에게 천거하여 천당에서 산다고 생각하고
상을 마친 뒤에는 공허한 것에 붙이고 다시 사당을 세워 섬기지 않으니
그러므로 국가에서 풍속이 날로 박하여지는 것을 염려하여 매양 명령을 내리매 반드시 가요의 영을 먼저 하여
백성이 덕이 백성의 덕이 후한 대로 돌아가게 하려고 한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예전엔 그랬다는게 뭐냐면 사실은 예전엔 이런 적이 없습니다 조선에서는 6월을 찌 감치 어 행하든 중국에서는
그래서 돌아가시라 뭐 3년상을 치르고 마치 살아 계신 것 같이 계속해서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고 그런데 어이 불교에서는
불교에서는 그냥 화장을 해버리고 이제 그 그 원래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다
공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사단 같은 걸 세워서 주기적으로 제사를 지내고 이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됐냐 그러니까 자기는 해 보지 않았지만 중국 거를 받아들이면서 지금 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러나 즐겨 행하는 자가 없으니 대게 이단에 사설이 굳어져서
깨뜨릴 수 없고 또는 시설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이단의 사설이란게 뭡니까
불교의 이단 잘못된 설 때문에 지금 이런 거를 제사를 안
지내고 있고 그다음에 시설하는 방법을 알지 못 사당이라는게 도체 뭐라는 걸
모르는 거죠 그 절만 지었던 사람들한테 갑자기 사당을 지으라고 하면
사당을 어떻게 짓는 거고 절과 어떻게 다르고 거기서 뭘 하는 거고 이런 거를 전혀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이거를 일일이 가르쳐 줘야 됩니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신등은 생각하건데 왕성의 왕성은 그 수도는
풍화 이 다스리는 근본이니 사대부의 집으로 하여금 먼저 행하게 한 뒤에
그 나머지도 행하게 하면 무엇이 행하여지지 않겠습니까 또 도성은 집이
협착하여 사당을 설치하기가 어려우니 따로 괴 하나를 만들어 신주를 넣어서
깨끗한 방에다 두게 하여 간편한 것을 따르게 하고 외 방에는 각각 주부
군현의 공화 동쪽에 임시로 사당을 설치하여 명을 받고 나가는 수령이
적자라면서요 신주를 받들고 부임하게 하고 적장이 아니면 또한 주현의
사당에서 지방을 써서 행하게 하고 조종에 있든지 외방에 있든지 사당의
제사를 주장하는 자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분양 재배하고 출입할 때는 반드시 고하며 모든 죄를 한결같이
문공 가래에 의하여 아랫 사람에게 보이면 권면하기 않고도 자연히 교화가
백성에게 미칠 것입니다 그러니까는 친형 문제 장가 가지 말고 시집가라
했을 때 문제 같이 아 위에서 4대 부부터 행하고 왕실 아고 4대부 부터라도 좀 행하면 차차히 따아 오지
않겠습니까 했던 어
세종하우스 4대 부부터 합 행합시다 근데 어떻게 합니까 이거 더군다나
도성에서이 장소도 협소하고 그러니까 일일히 사당을 따로 건물을 짓구
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그러면 깨끗한 방에다 가 이렇게 괴작을 놔서 괴를
놓고 거기에다가 그 신주를 모시게 하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뭐냐면 집집마다 사당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다고 새 건물을 도성 한 가운데 있는 집들이 건물을 막고 질 수도 없으니까 이제 따로 방 하나라도
마련해서 이렇게라도 하게 합시다 그리고 이제 관리가 지방에 임명이
되면은 뭐 갈 때 인사를 하고 가게 하고 또 거기 가서도 관하 옆에다 다 이런 걸 만들어 넣어서 이게 도대체
뭐를 해야 된다는 거를 일일히 지금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본래부터 사당을 세우지 않은 자라도 반드시 이로부터기할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명년 정월부터 외방에서 2월부터 시작하여 거행하게 하고
따르지 않는 자는 사에서 리하여 파한 연후에 하게 하소서 그러니까이 사당을
설치해서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고 제사를 지내라는 거가 정확하게니까 년 정월부터 조금 이걸
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기한을 정해 놓고 그때까지 해라 해라 해라 그때까지도 안 해 놓은 사람들은
이제 파직을 하고 벌을 주자 이렇게까지 이제 얘기를 합니다 유기에 주장에서는 사당이 있어야 됩니다
사당에서 지금 그 제사를 지내야 되는 겁니다 근데이 사당이 지금 안
지어지고 있습니다 사당도 안 지어지고 있고 제사도 안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 이제 또 태종 6년에 0이
내려집니다 대사헌 허응 이런 사람들 상소를 올립니다 이제 가요를 세운 자가
사람의 한두 사람도 안 되고 그까 지금 태조 때부터
계속해서 세워라 그 제살 지내라고 아무리 얘기를 하고 명년 정원까지
하라고 명을 내렸는데도 지금 아직까지도 가요를 세운 자가 사람에 한두 사람도 안 되고 조선 사람들이
여러분 가열을 사당을 안 세웠다는 겁니다 그죠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나라의 법령을 따르지 아니하고도 예사로이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 조금도 사람의 자식된 뜻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교의 입장에서 봐서는 도대체 인간들이 도대체 효성이 있으면은 당연히 조상을 위한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야 되는데 도대체가 이거를 안 따르는 걸 보면이 사람 효성도 없다 원낙 한데 중요의 가요를 세워야
할 자들로 하여금 금년을 기한으로 하여 독하 세우게 하고 만일 따르지
아니하는 자가 있거든 경에서는 본 부에서 외방에서 감사가 자세히 살펴서
논지 하게 하소서 그럼 우리가 이제 조선에서 우리 한국으로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근대 국가를 하려 그러면 예를 들어서 재판소 있어야 되는 거고
그렇죠 재판소의 판사들이 있어야 되는 거고 거기에 가서 이런 거를 결정을 해야 되고데 이제 이런 거를 도대체
어떻게 세워야 되는 거지 재판소가 뭘 하 데지 법관들이 뭔지 어떻게 법관을
훈련해야 되는 훈련해야 되는 건지 그 사람들이 가서 도대체 어디에 앉아서 뭐를 무슨 절차를 거쳐서 어떻게
하는지 이런 걸 아무것도 몰랐듯이 사당이라는 걸 져서 제사라는 걸 그 안에서 짓는 방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한테 지금 이걸 다 가르키게 하고 대부들 본인들이도 제대로 이제
공부를 해서 알아서 사당을 세고 제사를 지내야 되는데 사대부들도 지금 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라에서 법을 줘 저 벌을 줘서까지도 이거를 하라 이제 이렇게 합니다 태종
6년입니다 태종 13년에 가면 또 이런 기록이 또 있습니다 성부에서 세 가지를 조목별로 아렸다
첫째 가의 설치는 이미 뚜렷한 갑이 있는데 사대부가 넓게 집터를 점령하고
당을 높이되 일찍이 가면은 세우지 아니하니 특히 근본에 보답하는 뜻이
없습니다 바라건데 중자로 하여금 금을 한정하여 모두 사당을 세우게 하고
어기는 자는 헌사의 문여 기하게 하소서 안됩니다 그니까 태조 때부터
종종 종 태종 1년부터 매년 이럽니다 13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터는 넓게
잡고 담장은 높이 쌓고 뭐 호화로운 집은 짓는데 사당이라는 건 도대체
사대부들이 안 짓고 있다 이제는 진짜 벌을 엄하게 내리셔서 해야 됩니다라고
또 어 그 그 상소가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그 일반 백성들
입장에서는 자기네가 그 누가 돌아가시면 가서 답
이식을 하고 그러니까 화장을 하고 그러는 거죠 그리고 불공을 드리고 예불을 드리고 수백년에 걸쳐서 수천에
걸쳐서 익숙해 있습니다 그니까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결혼을
하든 이런 모든 것을 절에 가서 해야 됐죠 삼국 시대 신라 고려 시대 가장
찬란하고 가장 화려하고 한 건물들은 다 사찰들이
있죠 절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그냥 지나가다 보면 있는 것이 사찰들이 그런 데에
가서 슬픈 일 기쁜 일 이런 거를 부처님한테 고하고 또 스님들이 다
있어 가지고 승려들이 있어서 그걸 다 어떻게 하는 이런 것를 표현을 하고 경전들이 이런 것이 다 완벽하게 갖춰
있었었던 겁니다 그것도 완벽한 정도가 아니죠 천년 동안 했었던 거죠
그런데 갑자기 그걸 할 수 있는 저를 다 니다 그죠 3천개가 있던 차를
36개로
태종하프 아내고 환속시키는 닫아버리고이 이러고 있는데이 사람들이
그럼 갑자기 어딜 갑니까 갑자기 제사를 하라 그러면은 지금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픈데 거기에 가서 그걸
하라 그러면 지금 절에 가서 하면은 스님들 하고 다 불공드리는 방식과
모든 거를 해소를 했었고 경험을 했었던 사람들이 이런 걸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이런
거를 하라 그래도 못 한는 거죠 자 그다음에 보면요 어 그다음 기록이
훌쩍 뛰어서 세종 13년 1431년 있니다 그러니까 나라 세운지 어떻게
됩니까 나라 세운지 한 40년대가 때입니다 세종에 이제 물어보는 겁니다 시자에서 돌아와 경연에 나아갔다 이제
경연이라는게 임금님이 공부하는 거죠 신하들고 대제학 하고 공부하는 겁니다 근데 그때 임금이 이금게 이르기를
서울과 지방의 사대부와 서인의 집에 모두 사당을 세웠는가 비록 사당을 세웠더라 신주를
설치하지 않고 제사를 지낸다면 한가 비인 그릇이 될 뿐인 것이다 그거 뭐냐면 이에게 이제 물어보는 거죠
우리가 지금 나라 세우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당을 세우라고 했 했는데 도대체 사당을 세웠냐 근데 참
재밌는게 뭐냐면 세종이 벌써 아는 거죠 사당을 세운 거는 같은데 문제는 뭐냐면 그럼 그 안에서 제대로 제사는
지내고 있느냐 신주는 걸 만들어서 우파라는 걸 만들어서 그럼 그거라도 하고 있는 거냐 이제 이런 것까지도
물어보는 거예요 그런데 이금이 이렇게 답합니다 이금이 대답하기를 사당은 이미 일정한 기한이
있으므로 모두 일을 세웠지만 신주를 설치했는지 아니 했는지는 신은 알지
못합니다 안 됩니다 그니까 사당을 지으라고 하나도 난리를 치고 뭐 깨끗한 방을
뭐 따로 마련하라 그러고 지방에 관화 옆에 뭐를 세우라고 하도 난리치니까
세웠는데 근데 그 안에 들어가서 뭘 하느냐 모르죠 그 신조조 아도 지금
안 갔다 놓은 사람들이 태반이고 아니 저나 거기까지는 저희가 조사를 못 해
봤습니다 그 안에 신주가 모셔서 제대로 지금 제사를 지내고 있는까지는 확인을 못했습니다 그럽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그다음니다 세종 14년 1432년 2월 2일 평민과 아전들의
가여 설치에 대한 예조의 보고가 들어옵니다 지금 크고 작은 인민과 아전들은 가를 세우지 않은 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청컨대 헌불 하여금 오는 갑인년 정호를 시작으로 하여 그
일을 행하지 않는 자를 조사하게 하여 일찍이 내린 교지에 의거하여 처벌하게
하소서 그중에 집이 가난하여 노비가 없고 살고 있는 집이 열을 넘지 않는
자와 여의 사이에 집터가 3 4부 이하인 자에게는 한 간을 세운 것을
허가하고 그 힘이 부족하여 세울 수 없는 자와 본래부터 의관한 사족의
집안이 아닌 자는 당분간 그 침실에서 제사 지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그러니까는 어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어 거쳐서
거쳐 나가면서 그게 여러 대가 지나가면서 바뀌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일이이 태조 태종 세종 하면서 성종
때까지의 많은 사람들은 나라에서 강요를 하니까 사당을 세워 갖고 아 가서이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거를
하다 보면은 그 어려서부터 따라다니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고 있던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부터는 완전히 몸에
익히기 시작하는 거고 그다음부터는 이제 아니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건어물은 여기다 놓고 과일은
여기에 이러면서 서로가 그 그 문제에 대해서 논할 수가 있게 되고 그런 너무나 자연스럽게 되는 거죠 이게
뭐냐면요 세종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뭐 한글 창제하고 뭐 장영실을 데리고
자격루를 만들고 대마도 정벌을 하고 참 많은 정말로 많은 일을 하지만은
그중에서 대표적인게 뭐냐면이 주자 성리학을 들려오는 일을 하는 겁니다 강남 농법이라고 그렇게 들여오려고
애를 쓴다 그러니까 그 강남 농법과 같이 짝을 이루고 있던
송의 유학 송 유학 주자 성도 같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니까 세종은 그
이념이 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이고 이앙법 모내기를 어떻게
하느냐를 그렇게 관심을 갖고 있는 거고 이런 새로운 사상을 퍼트리기 위해서 한글을 창제해서 한글을 더
쉬운 말로 또 퍼트리려고 하는 것도 있고 그런데 그 모든 것과 더불어서
예법 주자 성리학의 모든 제사법 그걸 위한 사당치 까지도 정말로 세밀하게
관심을 가지면서 완전히 새 문명을 뿌리 내리는데 집중적으로 저는 그런
의미에서 세정 대왕이 대단한 정말로 대단한 분입니다 그러니까 새 문명을
들여오기 위해서 천년 된 불교 문명을 가장 철저하게 뒤집고 그 불교 문명을
뒤집는 것과 동시에 뭡니까 새로운 농법을 들려오면서 산업 전반 자체를
변화시키 키려고 했던 뛰어났던 어 인물이고 뛰어났던 군주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저희가 세종의 스케일을 가끔가다 너무 오히려 과소 평가하는게 아닌가 해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자 그다음에 자 이렇게 이렇게 난리를
치니까 그니까 태조 태종 세종이 그 센 사람들이 그 막강한
사람들이 이렇게 심혈을 기어서 새 문명을 드리옵니다 자 그러면 사당 세워졌고 아 제사라는 거 이제 어느
정도지 지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 뭐냐면 또 하나가 그다음 단계가
뭔지 아십니까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집집마다 다 갖고 있는게 있습니다 족보입니다 그래서 그 족보에 따라서
아 우리 집안이 뭐 언제부터 있었고 언제부터 있었고 이런 거를 다 알고 있고 조상이 뭐를 했고 아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적보라게 추자 성리학 들어오기 전에는 없었습니다
족보를 따질 일이 없었습니다 부계 혈통 종법 이거를 따지는 주자 성
이하기 유교가 들어와야지 특히 대부라는 계층이 새로 생기면서 그
사대부란 계층이 자기네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는 거는 중국에서도
장횡거 정자 정호 그 형제 그러면서 주자가 이제
그런 걸 관성을 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조선에서도
사당 짓기 급급하고 제사 지내는 법 가르쳐주기 급급해서 사실은 족보
만드는 법은 그거보다도 훨씬 늦게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 최초에 가장 오래된 족보 우리가 알고
있는 현저한 족보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1476년 성 성종 7년에 만들어지는
안동 권시 성화보 여러분 1476년 있니다 성종 임은
태정태세문단 예성 그때 와서야 족보라도
만들어집니다 그만큼 아이 친족 부의 혈통을 해서 종을 따진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제 만들어진 겁니다 그래서 그런데 거기에 보면은
안동권씨 성화보 처음으로 족보를 만들면서 도와줬던 서거정이 그 유명한
학자가 서문을거다 씁니다 그 서거정의 서문을 읽어 보면은 아이 족보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새로운 일이었던가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서문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옛날 중국에는 종법이
아는 것이 있어 소목의 순서를 정하고 적선과 지선을 구별하여 백세가 지나도
그 관계를 분명하게 밝힐 수가 있었는데 대가 멀어지고 자손이 번성하자 국가에서이를 관장할 수
없어이 법을 폐지하였다 그 뒤 자기의 가게는 스스로 밝혀야 된다는
주장으로이 보첩 제도가 생겨났다 또한 수 당 이후에는 국가의 기관으로
도보구 설치하여 관리를 두고 문서를 제작하여 혼인의 사실과 과거의 급제
천거 등을 모두 기록하여 정사에 참고하게 한 것이 보초의 시초이다
그러니까 유여은 장자상속 원칙의 법입니다 그래서 그것 그 종법을
했었는데 나라에서 하던 것도 다 없어지고 이제 각 집안에서 그거 근근히 이어오다가 수당 때에 와서는
뭡니까 관리를 뽑기 시작할 때 그럼 관리가이 사람들이 사람의 배경이 뭘까
이런 거 우리 지금 말로 하면 신원조회 같은 거죠 그래서 조상이 누구고 과거는 언제
급제고 뭐 이런 거를 쭉 적는 기록들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보초의 시시 시작이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이제 족보라도
송나라의 사대부란 새로운 계층이 생기면서 과거 급제 못하면 못하면서
제지 지주 남았던이 사대부들이 자기네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제이 종법
보첩 족보를 만들어서 자기네 종을 이제 따지기 시작합니다 자 그래서
그것을 조선이 받아들여서 드디어 이제이 서거정이 와서 안동권 씨의
족보를 만들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어갑니다 얘기를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종도 없고 보초도 없어서 겨우 몇 대만 지나면 조상의 명호를
잊어버린 것이 예사로이 되어 있어 친족과 조상을 존경할 수 있는 근거를
잃어버렸었다 이렇게 되어서는 효를 권장하고 예속을 성취하고자 해도
불가능하기 때문에이 보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소원한 상계에
있어서는 참고할 문헌이 있는 것만 찾아서 기재하고 참고할 수 없는 것은
요약하여 40만을 기재하였으며 대수가 멀지 않아서 근거가 있는 것은 모두
찾아서 기재하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15세기에 만들 때도 몇대 전에 거는
아무도 기록을 해 놓은 사람이 없죠 그까 뭐를 모르는가 거죠 그니까 대충 알 수 있는 거를 연구를 하여튼
조사를 해서 찾아낼 수 있는 건 찾고 특히 최근 대의 거는 그래도 어느 정도 기록이 있으니까 그거를 다
합쳐서 만들었다 그렇지만 우리 원래 없었다 이런 거 그러니까
조선에서도 족보 가 14 76년에 처음 만들어집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뭐 뭐죠 김해김 씨 그러면 신라 시때 뭐
박혀 것에 거슬러 올라가고 그런다 그러는데 사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뭐냐면은
1470년 자기 족보를 따져본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천년 전에
얘기를 알 방법이 없죠 그니까 사실 그 족보는 이때부터 만들어 15세기
정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주자 성리학적인 유교적인 조건은 그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걸 어디서 알 수가 있냐면요 조선 초에는 인구에 90%
성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뭐 왕건 궁예 견 그러잖아요 그러면 어 건의 왕씨가
유교에서 말하는 그 왕이었는지 성이었지만 기록에서 보면은 태조가
왕시 성을 내렸다는 기록들이 있거든요 자기를 도와서 창업을 한 그죠 고려를
창건한 사람들한테 왕시 성을 내려요 그리고 예를 들어서 뭐 궁예가 시가
아니죠 견이 씨가 아닙니다 성이 없습니다 그럼 김씨
김유신 김춘추 중국식으로 생각하는 종법 제도에서 말하는 성씨 있을까 좋다죠
사실 우리가 다시 들여다봐야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은 성취라는게 제가
봐서는 그 전에 조선이 들어오기 시작하기 전에 주자 성이 성이
들려오기 전에는 사실 성취라는 것은 자위 같은 것을 것 같아요 특권들이
갖고 있는 자귀 같은 성격이 더 강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16세기까지 인구의 40% 성이 없었습니다 왜요
노비였다 성이 없었습니다 언제 성실을 갖게 된지세요 1894년에 갑보 경장으로 노비제
혁파를 해버리면서 그럼 파다는게 뭡니까 노비들도 성을 가져야 되는 거죠 개똥이 말똥이 이러지 말고 성과
이름을 가져야 되는 거죠 그때에 전체 인구들이 대부분이 성과 이을 받게
되는 거고 조선 사람들이 100% 무조건 성하고 이름을 가져야 되는
것은 1910년 한일 합방이 되고 나서 일제가 들어와서 민적법 지금의
주민 등록증 같은 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100% 인구 조사를 해 갖고이 사람들을 전부 다 등록을
시키면서 등록시킬 때 뭐라 그럽니까 성과 이름을 가지라 그러는 거죠 저의 가설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
김씨가 한 성의 전체 성의 인구의 1인가 뭐 그렇다 그러죠 씨 뭐 이씨
밀양박씨 전주희 씨 김혜 씨 몇백만 명씩 됩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몇백만 명씩 될 수가 있죠 한성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미국에 보면요
미국의 흑인들 흑인들 성을 보면 아 아실 수 있어요 존즈
스미스 제일 많은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이 얼마 전에 돌아간 제임스 존스 있죠 그 스타워즈에서 그 페이더
목소리내는 그 그 제임스 존입니다 대표적인 영국의 아주 좋은 이름이죠
그다음에 배우 중에 뭐 윌 스미스 스미스가 뭡니까 아담 스미스 같이 영국 스코틀랜드 그쪽 사람이 성이
근데 왜 흑인들이 존하고 스미스라는 성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왜 그런지 아세요 1864년에 남북 전쟁이
끝나고 링컨 대통령이 노예제를 해버렸습니다 어한 시이는 예
갑자기 그러면서이 사람들 보고 너도 성과 이름을 가지라 그러는 거죠 무조건 그럼 흑인들이 400년 전에
노예로 끌려와서 아프리카에서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무슨 족보가 있어 갖고 조상의 고향이나 이름이나 부족을
따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그러면 성과 이름을 가져라 그러 어떡합니까 그때 대부분 누구 이름을 갖습니까
대부분 자기의 주인이었던 사람의 이름을 따든 아니면 뭐 그 당시에
제일 그래도 재산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의 백인들의 이름을 닦겠습니다
그러니까 조사고 스미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왜 그렇게 김씨들이 많고
그렇습니까 이씨가 많습니까 그게 다 당시에 가장 권세 있었던 사람들이고
가장 재산 많고 힘 셌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노비로 아무 성 이름 없이
있다가 굳이 가지라 그러니까 희왕 힘은 힘센 성을 갖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김씨가 많고 그렇습니다 자 이러니까 이렇게
해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제 사람들 보고 제사 지내라 사당을 만들어라
족보를 만들어라 그러면 뭐가 나옵니까 사람들이 뭐에 따라서 살게 돼요
성씨에 따라서 성씨들이 집단적으로 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사당을
세워서 그 사당에서 그 사당에을 조상으로 같이 모시는
후손들이 같이 모여서 살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서 뭐가 생깁니까 집성촌이
아는게 생긴 거죠 동족 마을들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동 하회 마을 월성 양동 마을 이런
집성촌이 생기는 거예요 성씨별 살기 시작하하는 겁니다 이게
뭐냐면요 고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집성촌으로 안 살았죠 성식 없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살았습니까 여러분 많이 역사 시간에 배우셨을 거예요 고려 때까지만 해도 군현제를
했었습니다 군 현재라는게 뭐냐면 훨씬 단위가 큰 겁니다 굉장히 단위가
큽니다 사찰 같은 거를 중심으로 해서 두레라는 형식으로 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큰 단위 한 만 명씩
단위가 같이 살면서 같이 노동을 하면서 그때는 특히 농업 농법 같은
것이 발전을 못했기 때문에 훨씬 더 노동 집약적인 거죠 대단위로 살면서
대단위로 노동 투입을 해야지만 먹고 살 수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고려 시대는 군현제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동종 마을이라는 건 군 현재보다 훨씬 작죠 그러니까 뭘로 바뀝니까 조선에
오면은 동하고 리로 바뀝니다 동하고 리 동리 동리 동리 하면은 동네가
되는 거죠 동네라는 말도 동하고 리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훨씬 더
작은 단위의 집성 단위 그니까 동족 단위로 한 100호 정도 잘해 봐야
그러겠죠 그 호들이 자기네들끼리 농업을 농사를 지어서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효율적인 이제 농업이 개발이 된 거고 강남농법 이런 거를
들여오면서 그래서 동정 마을을 형성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성시가 무조건
성시 중심으로 사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개인 단위로 사는 거죠 개인이 중요한 겁니다 우리는 근대 사회에서는
그니까 인이 주민등록 중인 개인이 나가서 살면 세대가 되는 거고 이렇게 되는 건데 지금 여기는 성시 중심으로
살려 그랬던 거죠 그러니까 성씨 단위로만 모여서 살게 되니까 어떻게 됩니까 백성 성이 100개가 되면은
그게 요즘으로 말하면 국민 인민 피플이 되는 거죠 근데 뭐 성
100개가 넘으면 예를 들어서 앞에다 그냥 만자를 붙여서 만백성 이어 버리면 뭡니까 국민 전체
이렇게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조선이 그럼 어떻게 형성이 되냐 사대부
집안에서는 자기 조상 중심으로 해서 종종 중심으로 해서 사당을 세워서
사당 중심으로 동네를 형성해서 동정마을 형성해서 살고 자 그다음
단계가 뭡니까 왕은 뭡니까 그럼 왕은 뭐랍니까 만백성을
대표해서 묘하고 사직에 나가서 제사를 지냅니다 자 그러면 종묘 사직이 뭐냐
종 는 자기네 왕실의 그 종이죠
자기네 사당이 백성들 보고 아까 가묘를 설치하라고 태조에서 해서
결국은 설치하게 만든 그 가묘 사당이 그 사당을 왕실에서도 자기네 사당이 있죠
집안의 사당이 그게 종묘 그런 의미에서는 왕실도 다른 집하고 사대부
집하고 똑같아요 다만 뭐가 달 왕은 자기 집안에 사당에 가서만
제사를 지내는게 아니라 어떡합니까 만백성을 대표해서 사직단이데 가서
제사를 지립니다 사직은 뭐냐면 곡식과 땅의 신인을 모시는 대입니다 그래서
곡식과 땅의 신을 모시는 데에 만 백성을 대표해서 가서 제사를 지내는
역할을 하는게 그게 왕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종묘 사직을
지키십시오 그런 모습들을 우리가 영화에서도 많이 보고 사극에서도 많이 보는데 그게 뭐냐면 나라라는 것이
종묘와 사직으로 되는 거죠이 사대부의 나라 유주자 성약의
나라는 그렇게 되는 거죠 여기서 한 단계만 더 나가면 뭡니까 조선이 받드는
명의 청의 황제는 뭐라 그럽니까 천자라고 부르죠 그럼 천자는
어떡합니까 사해 사해네 전세계를 다 대표해서 하늘의 아들로서 어디를
갑니까 천단의 가서 합니다 북경에 가면 천단 공원 있죠 이렇게 동그란
멋있는 건물 있습니다 그 천단 가서 하늘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사해를
대표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그것이 천자 그래서 천자는 그 모든 제후들과
백성들을 대표해서 천단 가서 제사를 지내는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나중에 나중에 고종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세우지 않습니까
칭제건원 자기가 이제 황제다 그러면서 광무 이러면 이제 연호를 명나라에 뭐
숭정 이런 연호를 연호를 쓰지 않고 광무 이제 연어를 씁니다 근데 그때에
황제로서 즉위할 때 뭐를 하는지 아세요 원구단이라는 걸 만듭니다
고종과 그 주변에서 그때 우리도 독립된 국가가 됐다 그러니까 더 이상
중국을 안
받들도록 해서 광무제가 된 거지만 자 대한 제국도 사실은 그 주자
성리학적인 유교적인 중화질서적인 그 세계관 속에서 작동을 했다는 걸 여기서 이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조선의 질서는 이렇게 형성이 되는 겁니다 거기에
핵심은 제사를 지내는 거였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사당을 만드는 거고
그거를 통해서 성시 집단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그 성시 집단의 정체성을
기록하고 확립하기 위해서 적보라 거를 만들기 시작하고 하는데이 과정이
15세기 16세기 17세기 들어와서야 이게 완전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지 그 전에는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제사 지내기 시작한 것도 사당 만들 짓기 시작한 것도 족보
만들기 시작한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거보다 훨씬 더 근래에 와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렇게 해서 막 어렵게 어렵게 불교 천년 불교
국가를 주자 성리학의 나라로 이제 만들었습니다 제도적으로 이제 이렇게 만들어지는 나라인데 이렇게 만들어지는
나라 속에서 여기가 조선 사람이라 사람들이 저는 굉장히 특이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왜냐면 굉장히 친해지는
거를 중요시 생각합니다 여러분 친해진다는 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친짜 친척을 때 종친 할 때 그
진짜입니다 저는 요새도 보고 있으면은 한국 사람들의 참 놀라운 특징 중에
하나가 뭔지 아세요 친구의 형을 만나면 형 형님 친구의 누나를 만나면
누님 친구의 부모님을가 가서 어머님을 만나면 어머님 친구의 아버님을 만나면
아버님 이렇게 됩니다 영어로 하면 미국 같은 데서 어떡합니까 친구 친구의 아버지 만나면 어떡합니까
미스터 김 친구 어머님은 뭐 미스 리이 이러지 거기 그 사람들이
마더파더 이러지 않습니다 마 이러지 않아요 근데 우리나라는 분명히 그럽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저는 이제 대학에서도 보면 아직도 대학이
그렇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보면 쫙 신입생들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럼 신입생들이 들어오면 서로가 몰라요
그러 이제 서먹서먹 해서 한국 사람들은 말도 못 걸어요 잘 왜냐면 동기들한테 존대말을 할 수도없고
그렇다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막 막 하기도 참 어색하고 그런데 참 편한게 뭐냐면 선배들이 있으면 돼요 선배들이
옆에 있으면 예를 들어서 뭡니까 형 오빠 언니 누나 이래 버립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하고 친해진다는 거는 그 사람이 우리
가족이 된다는 뜻이 돼야 되는 거고 저 사람이 가족이었을 경우에는 나의
형이 될지 오빠가 될지 누나가 될지 언니가 될지를 따지는 거예요 그니까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누구를 만나면은
저 사람이 내 가족이었습니다 나하고 무슨 관계였을까 따져요 그래서 형 오빠 언니 누나가 되는 거고 그러면은
세상에 편해집니다 그다음부터는 누가 밥 사고 커피 사고 이게 쫙 정해져요
얼굴 표정 몸가짐 너무나 편하게 그 툴 속에 딱 들어가면서 우리가 편하게
생활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거죠 택시를 타더라도 택시 기사 아저씨 식당에 가도 아주머니
요새는 아예 이모라고 아지 부르더라고요 정말로 놀라웠던게 저는
옛날에는 아저씨 아줌마 그럴 때 저희 외가에서 특히
어 외숙모 외삼촌을 외삼촌 이렇게 못
부르게 하셨어요 그거는 촌수를 따질 때 하는 얘기지 실제로는 뭐냐면 아저씨 아줌마라는 거는 굉장히 정다운
거고 굉장히 가져 가까운 사람 숙부 숙모 그죠 이모 고모 이런 분들을
아줌마 아저씨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저는 큰 아저씨 작은 아저씨 큰 아주머니 작은 아주머니 이렇게
했었거든요 근데 식당에 가면 아저씨 아줌마 아줌마 그러면 여러분 그거 왜 그런지 아세요 아줌마 이모 저 깍두기
좀 더 주세요 그럼 뭐예요 정말로 더 줘요 왜 정말로 조카 같이
생각을 해요 한국 사람은 다 그 그 관계가 돼야 되는 거죠 그 관계를
만들어야지만 되는 거고 그 관계를 못 만들 면은 아주 어색합니다 외국
사람들 저는 요새 와 갖고는 참 재밌는게 외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이제 한국에 들어와서 삽니까 근데데 TV 쇼에서 이렇게 같이 친해지고 이런 사람들 보면은 외국 사람들한테도
외모적으로 아니면 말이나 이제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을 보면은 근데 그런 사람한테도 이제 형 오빠 언니 누나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아 이러면 이제 가까워지는 거구나 근데 문제는 뭐냐면 이렇지 않으면 왜 가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저는 그렇게 되는 것이 여태까지 조선이 만들어온 조선이
종법 제도를 들여와서 제사라는 거를 지내게 하고 사당을 건립을 하고 족보를 만들고 해서 친 친해져야 되는
걸로 친척이 돼야 되는 걸로 만들어 놓은 거고 따라서 그거에 따라서 모든 사회 관계를 친하게 만드는 거죠
그니까 이렇게 보시면 돼요 우리가 삼강 오륜 이런 얘기를 하는데 륜은
인간관계에는 딱 다섯 가지밖에 없다라고 보는 겁니다 부자유친 장유유서 남녀유별 하듯이요 다섯
가지만 있는 거예요 그 다섯 가지 관계를 정확하게 알아서 누구를 만나든지 저 사람이이 다섯 가지 관계
속에서 무엇일까 특히 그 중에서도 신이죠 부자유친 아닙니까 친해진다는
건 가족 관계로 만들어야 되겠다라는 거고 나머지는 거기에서 다 파생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거야말로 주자
성리학이 얼마나 깊이 우리 사회에 뿌리 내 내렸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가르쳐 주는 거고 우리가 갖고 있는이 복잡한 존대말 같은 거 저 사람하고
나하고의 관계가 친척이었던 경우에 뭐였을까 정확하게 따져 갖고 그걸 구사할 줄 알아야 되고 정확하게
구사를 할 때는 저 사람은 인간이 됐다 그러는 거고 그런 거를 못 할 때 저 인간이
덜됐다 그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 사람들은 만들어집니다
이제 강남 농법을 들여오고 종법 제도를 들여오고 족보를 만들고 사당을
설치하고 장가 가은 사람을 시집가게 만들고 그리고 집성촌을 만들어서 살게
하고 그러면서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고려 사회하고 조선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다는 걸 아실 수가 있죠 안 건드린게 없습니다 절에 가은
사람을 갑자기 사당에가 이런 정도가 아니라요 정말로 속속들이 이걸 고쳐내
그 세종이나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참 경외심 같은 걸 느끼는게
뭐냐면은 이렇게 지독할 정도로 불교를 배척을 하고 그 뿌리를 캐내면서 주자
성약이라는 걸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태조 태종 세종
세조 다 개인의 종교는 뭐였습니까 끝까지 불교 있습니다
여러분 조선의 왕 중에서 불교의 관계된 거를 전혀 안 보고
순전히 유교의 교육만 받고 자라서 왕이 된 최초의 왕이 성종 있니다
그전까지 전부 다 불교 세계에서 자랐죠 그러니까 여러분 태조 이성계가
지금 주자 성리학의 나라를 세웠는데 가장 친했던 사람이 누굽니까 무학
대사였어요 무학 대사하고 맨날 같이 다니고 뭐 도성을 어디에 질까 하도 뭐
그런 거 결정하는 거 모든 거를 무학대사 하고 그리고 나중에 이제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그런 절에 가서
그냥 있는 거죠 태종도 그랬고 세종도 유명했죠
세종도 석보상절이라는 걸 짓지 않습니까 석보상절이 뭡니까
1446년 자기 왕비 소혼 왕우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둘째 아들
수양대군 명을 내려서 수양대군이 김수원 등에 도움을 받아서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이 이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 그게 석보 상들이
왜냐면 아무리 이념적으로 아이 새 이념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뭡니까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부인이 돌아갔을 때 그거에 대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고 그 넋을
기르려고 하고 하는 거는 자기가 자라온 방법밖에 안 되는 거죠 그게 이제 불교의 방식입니다 그 유명한
월인 천강 지옥도 세종 1449년 불교 가로서 지은 겁니다이 역시 수양
그 수양대군이 엮은 석보 상조를 보고 그 대목 대목을 되도록 한글로 해서
가사를 지은 것이 또 어린 청강 지옥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여러분 개혁이라는 건요 저는 이때 세종 같은 사람들의 개혁을 보면서
아이 사람들이 개혁이 왜 저렇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그 당시에 기술이나 뭐 출판이나 모든 뭐
요즘같이 방송 국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SNS 있었던 거 아니고 전국적인 무슨 학교가 있어서 똑같은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150년 200년이 지나면 불교 국가였던
나라가 완전히 주사 성리의 국가가 되는 것은 개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자기의 종교임도 불구하고 자기의
기반을 버립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개혁의 주체 세력이 자기의 경제적
이권과 자기의 특권을 버릴 때에만이 개혁이 성공합니다 1번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는 것은 그 일본의 봉건 시대의 가장 특권층이
사무라이들이 어떡합니까 사무라이들이 사무라이 계급을 없애버림으로써 성공을
하는 거죠 그래서 사무라이 반들이 일어나지만 그걸 평정을 하면서 결국은
신분 제대로 없애버리는 거죠 태조 태종 세종 성까지 전부 다 조선의
왕들이 뭐냐면 자기의 종교인 불교를 버려 왜냐면 국가를 위해서는 지금
주자 이 들어와야 되는 거고 강남농법 들어오려면 이것이 다 어우러져서
완전히 사회를 다시 조직을 해서 동마을 식으로 해서 백성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 거 등등 등등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이 나라가 나갈 방향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기의
종교인 불교를 배척을 했습니다 그래서 세종의 개혁이 성공을 했습니다
그고 결과 고려 사람이 조선 사람으로 나오게 되고 그 조선 사람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한국 사람의 가장 큰 특중 중에 하나인 모든 인간관계를 가족 관계로 소급 키려고
하는 저는 사실 그러면 우리가 근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그러면
이런 것은 혹시 걸림돌이 되는 거 아닌가 그죠 모든 사람을 대등하게
대하고 똑같이 대해야 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다 친소 관계로 대하는 이런
것은 지금 우리가 근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사실 직시해야 되고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날 것인가 우리가 굉장히 고민을 해야지 데로서 개혁이 또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 조선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데
초기에는 조선 초기에는 참 어려웠습니다 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위로부터의 놀라운 개혁을 밀어
붙임으로써 비로서 이제 뿌리내리게 된 거고 어 제사 드리는 거 사당 짓는 거 족보 만드는
것은 사실 조선 중반 중기 정도에 와서야 보편화가 되고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오늘은 그 과정을 살펴봤고요 따라서 조선 사람은 뭐
항상 제사를 지내왔고 항상 족보를 갖고 있었고 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생각보다 최근에서 자에서 하기 시작했던 일이다
걸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렇게 들어온 종법제도 제사
지내는 거 친족 중심에이 사회가 뿌리를 내리면서 사실은 어떻게 보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 초선의 여성들이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장가를으로써 여자들이 경제권을 잡고 있었고
남자들이 가에 얹혀서 살고 가로부터을 받아서 살고이 재산을 받아서 살고
이런 이런 얘기를 저 말씀드렸지만 그것이 모두 친족 중심의 종법 제도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급격히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조선 말기가 되면은 여성들의 지위는 처참할 정도가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조선
여성들의 지위가 급격하게 낮아지기 시작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임무를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받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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