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3 사쿠라다문 사건, 한 번의 암살이 일본을 바꾸었다

사쿠라다문 사건, 한 번의 암살이 일본을 바꾸었다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3회 - YouTube

사쿠라다문 사건, 한 번의 암살이 일본을 바꾸었다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3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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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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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요청하신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제73회 강의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이익선 개념과 조선의 지정학적 위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국가의 영토인 <주권선>뿐만 아니라, 주권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완충지대인 <이익선>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보았다.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은 시베리아 철도를 완공하며 남하하는 러시아와 전통적 종주권을 유지하려는 청나라의 위협을 차단하는 결정적 이익선이었다.

  • <청일전쟁의 필연성과 세력 균형의 파괴> 조선을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두지 못하면 일본 본토가 직접적인 안보 위협에 노출된다는 판단 아래, 일본 군부는 군비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청나라와의 결전을 기획했다.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은 단순한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청나라를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일본의 배타적 이익선을 관철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 <시모노세키 조약과 제국주의 열강으로의 진입> 청일전쟁의 승리로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일본은 청나라로부터 조선의 자주독립을 인정받아 조청 사대관계를 공식 해체시켰으며, 대만과 요동반도를 할양받고 막대한 배상금을 획득했다. 이를 통해 일본은 동아시아 전통 질서의 수혜자를 넘어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흥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했다.

  • <이익선의 팽창과 러일 대립의 예고> 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를 반환하게 된 일본은 러시아를 차기 가상적국으로 규정하고 '와신상담'의 군비 확장에 돌입했다. 조선을 둘러싼 청나라와의 갈등이 해소되자마자 만주와 한반도를 잇는 더 거대한 이익선을 방어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숙명적 대결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평론

제73회 강연은 청일전쟁 전후 메이지 일본의 안보 전략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군사 지정학과 세력 균형의 냉혹한 논리로 정밀하게 해부한다.

첫째, 안보적 위기의식이 공격적 제국주의로 변환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이익선 독트린은 단순한 영토 확장의 야욕이 아니라, 19세기 제국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자국의 생존을 도모하려 했던 현실주의적 안보 계산의 산물이었음을 밝혀냄으로써 동아시아 패권 경쟁의 구조적 본질을 직시하게 만든다.

둘째, 시모노세키 조약이 지닌 문명사적 파괴력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수천 년간 지속된 중화 조공·책봉 질서의 최종적 붕괴와 조선의 '독립' 선언이, 실제로는 한반도가 외교적 안전장치를 상실하고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으로 내던져지는 취약한 상태로 귀결되었음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다만, 일본 지배층의 전략 기획과 국제정치적 역학 관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러한 패권 교체기 속에서 조선 내부의 자강 노력이나 기층 사회가 겪어야 했던 침탈과 파괴의 현실에 대한 심층적 평가는 다소 축소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 한반도를 둘러싼 거시적 세력 전이와 일본의 제국주의화 경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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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한국인의 탄생」 73회

<사쿠라다문 사건, 한 번의 암살이 일본을 바꾸었다> 요약·평론

73회는 72회에서 다룬 개항 이후의 정치적 혼란을 이어받아, <도쿠가와 막부가 왜 급격히 권위를 잃고 천황 중심의 정치질서가 부상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중심 사건은 1860년 <사쿠라다문 밖의 변(桜田門外の変)>이다. 막부의 최고 실력자 이이 나오스케가 미토계 존왕양이파 무사들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다.

함재봉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페리의 흑선이 막부의 외교·군사적 무능을 드러냈다면, 이이 나오스케의 강압정책과 암살은 막부가 내부 정치까지 통제할 능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면서 도쿠가와 체제를 대신할 정치적 중심으로 <천황>이 급격하게 부상했고, 막부와 천황을 결합하려는 <공무합체>라는 마지막 타협책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타협마저 장기적으로는 막부를 구하기보다 천황의 정치적 지위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이번 회의 큰 줄기다.


1. 페리가 남긴 것은 외교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였다

1853년 페리가 일본을 떠나면서 막부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개항할 것인가, 쇄국을 유지할 것인가?>

막부는 더 이상 혼자 결정할 자신이 없었다. 당시 쇼군은 병약했고, 실무를 맡았던 노중 아베 마사히로는 전국 다이묘들에게 의견을 묻고 심지어 천황에게도 견해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함재봉은 바로 이 점을 중요하게 본다.

도쿠가와 막부가 200년 이상 유지한 기본원칙 가운데 하나는

<외교와 국가정책은 막부가 결정한다>

는 것이었다.

그런데 외세가 나타나자 막부가 스스로 이 독점권을 포기하고 다른 다이묘와 천황에게 의견을 묻는다.

막부가 약해진 것을 인정한 셈이었다.


2. 조슈·사쓰마 같은 도자마 다이묘가 정치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막부가 전국의 의견을 듣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변화가 발생한다.

그동안 중앙정치에서 배제되었던 조슈·사쓰마 등 도자마 다이묘가 정치적 발언권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함재봉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막부가 스스로 도쿠가와체제를 해체하는 첫걸음이었다.

막부를 구하기 위해

<전국의 지혜를 모으자>

고 했지만, 그 결과 막부가 가장 경계해 온 세력들을 중앙정치에 불러들였다.

앞선 회차에서 반복해서 보았듯 조슈와 사쓰마는 단순한 지방세력이 아니었다.

경제력도 강했고, 군사력도 성장했으며, 서양 학문과 군사기술을 적극적으로 배웠다.

결국 막부가 나라를 살리려 실시한 정치개방이 막부 자신의 독점적 권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3. 고메이 천황 ― 근대화의 지도자가 아니라 강력한 쇄국론자

이번 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고메이 천황>이다.

함재봉은 고메이 천황을 메이지유신의 결과만 보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고메이 천황은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력한 쇄국론자였다.

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데 반대했고, 외국세력을 일본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천황 중심 = 개혁·서구화>

라는 공식은 당시에는 성립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에는

<막부 = 현실적 개항>
<천황 = 쇄국·양이>

에 가까웠다.

이것이 훗날 메이지정부가 천황을 중심으로 가장 적극적인 서구화를 추진하게 된 사실과 비교하면 상당한 역사적 역설이다.


4. 이이 나오스케 등장 ― 강경한 막부 권력의 복원

막부 내부에서 우유부단한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진다.

그 결과 등장한 인물이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다.

1858년 그는 막부 최고직인 다이로가 된다.

함재봉은 이이 나오스케를 강력한 권위주의적 지도자로 설명한다.

그의 기본 판단은 명확했다.

<국가정책을 다이묘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 없다.>
<천황에게 외교정책의 결정을 맡겨서도 안 된다.>
<막부의 권위를 다시 세워야 한다.>

따라서 아베 마사히로가 열어 놓았던 정치적 참여를 다시 닫으려 한다.


5. 안세이 대옥 ― 막부가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이이 나오스케는 개항을 반대하는 세력을 강력하게 탄압한다.

이것이 <안세이 대옥>이다.

특히 피해를 입은 것은

  • 미토의 존왕파
  • 조슈·사쓰마 계열의 개혁파
  • 요시다 쇼인 같은 급진적 지식인
  • 막부정책에 반대하는 여러 다이묘와 귀족

이었다.

함재봉은 단순한 몇 명의 체포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다이묘를 강제로 은퇴시키고 봉록을 박탈하거나 연금하고, 하급무사와 지식인을 투옥하고 처형한다.

69회에서 다룬 요시다 쇼인이 1859년에 처형된 것도 이 과정이었다.

즉 이이 나오스케는

<막부의 권력을 강화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겠다>

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반막부 세력의 적개심을 폭발적으로 키웠다.


6. 1858년 해리스 조약 ― 천황의 허락 없이 체결하다

정치적 갈등을 폭발시킨 직접적인 사건은 미국과의 <미일수호통상조약, 해리스 조약>이었다.

고메이 천황은 조약 체결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이 나오스케의 막부는 천황의 재가를 받지 않은 채 조약을 체결했다.

천황을 정치적으로 중시하기 시작한 존왕파 입장에서는 이것은 단순한 외교정책의 차이가 아니었다.

<천황에 대한 모독>

이었다.

함재봉은 이 지점에서 존왕양이 사상이 폭발적인 정치적 에너지를 얻었다고 설명한다.

논리는 다음과 같다.

<막부가 서양 오랑캐와 조약을 맺었다.>
→ <천황의 뜻을 거역했다.>
→ <막부는 일본을 대표할 정당성을 상실했다.>
→ <천황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렇게 개항 문제가 정권의 정당성 문제로 바뀐다.


7. 천황이 실제 권력보다 훨씬 큰 정치적 상징이 된다

여기서 함재봉의 설명 가운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당시 천황에게는 실제 군사력도, 재정도, 행정조직도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상징적 존재였다.

그러나 막부가 약해지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막부 반대세력은 천황이라는 상징을 이용해 자기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막부에 반대한다>

라고 하면 반역자가 되지만,

<천황의 뜻을 받든다>

고 하면 충신이 된다.

즉 천황은 실제 권력이 없어도 <정치적 정당성을 생산하는 중심>이 된다.

이 변화가 메이지유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8. 1860년 사쿠라다문 밖의 변

이이 나오스케의 강압통치는 결국 폭력적인 반발을 불러온다.

1860년 3월 24일, 에도성 사쿠라다문 밖에서 미토번 출신 존왕양이파 무사들이 이이 나오스케를 습격해 살해한다.

PDF 6~7쪽에서 강연은 이 암살을 막부정치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설명한다. 막부 최고권력자가 수도 한복판, 에도성 바로 앞에서 살해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암살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막부가 자기 최고지도자조차 보호하지 못한다>

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함재봉이 제목에서 <한 번의 암살이 일본을 바꾸었다>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9. 암살이 오히려 존왕양이 운동을 강화한다

이이 나오스케를 제거하면 막부가 안정될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암살은 막부의 권위를 더욱 떨어뜨렸고 존왕양이파의 자신감을 높였다.

막부 입장에서도 문제를 군사적 탄압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공무합체(公武合體)>

다.

‘공’은 조정, 즉 천황을 뜻하고 ‘무’는 막부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천황과 막부가 손을 잡아 나라를 함께 운영하자>

는 것이다.


10. 공무합체 ― 막부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타협

함재봉은 공무합체를 매우 흥미롭게 해석한다.

막부는 천황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천황과 손을 잡으면 자기 정당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황측에서도 막부의 군사력과 행정력을 이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천황의 권위 + 막부의 실력>

을 결합하면 외세에 대응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이것은 68회에서 사쿠마 쇼잔이 주장했던 공무합체론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양쪽이 생각하는 ‘합체’의 의미가 달랐다.

막부는

<천황이 막부의 권위를 인정해 주기를>

원했다.

반면 존왕파는

<막부가 천황에게 복종하기를>

원했다.

같은 공무합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 정치목표는 전혀 달랐다.


11. 가장 놀라운 정치적 수단 ― 혼인

공무합체를 실현하기 위해 막부가 선택한 방법이 <정략결혼>이었다.

고메이 천황의 여동생 <가즈노미야 지카코 내친왕>을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와 결혼시키려 한다.

이것은 에도시대 정치질서에서는 매우 큰 변화였다.

도쿠가와 가문과 황실이 혼인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연 7~8쪽에서는 이 결혼 추진이 막부와 조정 사이의 정치적 결합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자세히 다루어진다.


12. 가즈노미야 혼인의 조건 ― 외국과 맺은 조약을 폐기하라

특히 흥미로운 것은 천황측에서 제시한 조건이다.

천황의 여동생과 쇼군의 결혼에 동의하는 대신,

<외국과 체결한 조약을 장차 폐기하고 쇄국으로 돌아가라>

는 요구를 한다.

막부는 이를 사실상 받아들인다.

그러나 함재봉이 지적하듯 당시 국제정세를 생각하면 거의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었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네덜란드와 이미 조약을 맺어 놓고 몇 년 안에 모두 없애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막부는 국내정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지킬 수 없는 약속까지 하게 된다.

이것은 막부의 정치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13. 참근교대까지 완화된다

공무합체와 정치적 타협이 진행되면서 막부가 수백 년 동안 유지해 온 핵심 통치제도도 흔들린다.

대표적인 것이 <참근교대>다.

다이묘가 일정 기간 에도에 머물고 가족을 사실상 인질로 두도록 했던 제도는 도쿠가와의 지방통제 핵심장치였다.

하지만 외세와 싸우려면 각 번도 자기 군사력을 강화해야 했다.

막부는 결국 참근교대의 부담을 줄이고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한다.

함재봉의 표현대로라면

<막부가 자기 손으로 지방 다이묘의 족쇄를 풀어주는>

상황이 된다.

그 결과 조슈와 사쓰마 같은 강력한 번은 더욱 자유롭게 경제력과 군사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된다.


14. 막부가 나라를 살리려고 할수록 자기 자신은 약해진다

73회 전체에서 반복되는 역설이다.

막부가 외세에 대응하려면

  • 전국 다이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 조슈·사쓰마를 중앙정치에 참여시켜야 한다.
  • 번들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
  • 천황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 참근교대를 완화해야 한다.
  • 서양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정책은 막부의 독점적 권력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일본을 강하게 만드는 것과 도쿠가와 막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서로 반대되는 상황>

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이번 회의 정치사적 핵심이다.


평론

1. 73회에서 가장 중요한 설명은 <권력과 정당성의 분리>다

이번 회에서 특히 유익한 것은 막부가 여전히 훨씬 많은 군사·행정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천황이 정치적으로 더 중요해지는 과정이다.

막부에게는 <실제 힘>이 있었다.

천황에게는 <정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막부의 실패가 계속되면 사람들은 실질적 힘보다 정당성을 찾게 된다.

그래서 천황은 거의 아무런 행정조직 없이도 정치적 중심으로 떠오른다.

메이지유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2. 이이 나오스케를 단순한 악역으로 보는 것은 피해야 한다

강연에서는 안세이 대옥의 강압성이 크게 부각된다.

그러나 이이 나오스케에게도 나름의 현실적 논리는 있었다.

막부가 다이묘들과 천황에게 계속 의견을 물으면 정부가 아무 결정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미국과 전쟁을 하면 승산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개항 + 강한 중앙정부>

를 만들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지나치게 강압적인 숙청으로 추진했다는 데 있었다.

즉 그는 단순한 반동주의자가 아니라 <막부 중심의 근대화를 추진하려 한 권위주의적 현실주의자>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3. 사쿠라다문 사건을 ‘한 번의 암살이 일본을 바꾸었다’고 하는 것은 절반만 맞다

이이 나오스케의 암살은 분명 엄청난 정치적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것 하나가 일본을 바꾸었다고 보면 지나치다.

이미 그 이전에

  • 페리 내항
  • 가나가와 조약
  • 해리스 조약
  • 천황의 정치개입
  • 조슈·사쓰마의 성장
  • 존왕양이 사상의 확산
  • 안세이 대옥

등이 누적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쿠라다문 사건은

<변화의 원인>

보다는

<누적된 막부의 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들어갔음을 보여준 사건>

이라고 보는 편이 낫다.


4. 함재봉의 설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의도와 결과의 역전’이다

73회에는 이런 역설이 반복된다.

아베 마사히로는 막부를 살리려고 정치참여를 확대했다.
→ 조슈·사쓰마가 강해졌다.

이이 나오스케는 막부를 살리려고 강압적으로 반대파를 제거했다.
→ 존왕양이 운동이 더 격렬해졌다.

막부는 천황과 손잡아 자기 권위를 높이려 했다.
→ 천황의 정치적 권위가 더 커졌다.

참근교대를 완화해 국방을 강화하려 했다.
→ 지방 다이묘가 더 강해졌다.

즉 <막부를 살리려고 취한 조치가 막부를 죽이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낳는다.

이것이 73회를 매우 흥미롭게 만든다.


5. 다만 ‘정치는 의도와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결론은 약간 지나치다

후반부에서 함재봉은 정치에서 인물들의 의도와 실제 결과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점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조적 조건만 중요하고 인간의 선택이 별 의미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아베 마사히로, 이이 나오스케, 고메이 천황, 조슈·사쓰마 지도자들이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변화의 속도와 형태는 달라졌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개인의 선택은 중요하지만 선택 가능한 범위 자체가 구조적 위기에 의해 빠르게 좁아지고 있었다>

고 해야 한다.


6. 공무합체는 실패였지만 메이지국가의 논리를 미리 보여준다

공무합체는 결국 막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롭다.

<천황의 권위 + 근대화된 군사·행정력>

을 결합해야 한다는 논리다.

막부는 이를 자기 생존을 위해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훗날 메이지정부가 실제로 해낸 것도 형태를 바꾸면 바로 이것이었다.

<천황을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삼고 근대 군대·관료제·산업을 결합한다.>

따라서 공무합체는 정치적으로 실패했지만 메이지국가의 형태를 미리 보여주는 과도기적 구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7. 63~73회를 연결하면

지금까지의 흐름은 더욱 선명해진다.

<도쿠가와의 평화와 세력균형>
→ <시장경제·교육·난학의 성장>
→ <조슈·사쓰마의 강화>
→ <사쿠마 쇼잔과 요시다 쇼인의 서양인식>
→ <페리의 등장>
→ <개항·쇄국 논쟁>
→ <미국·러시아와의 외교>
→ <불평등조약>
→ <막부 권위 약화>
→ <천황의 정치적 부상>
→ <이이 나오스케의 강권통치>
→ <사쿠라다문 암살>
→ <공무합체>

이제 메이지유신까지 남은 단계가 많지 않다.


종합 평가

73회는 메이지유신을 <사상이나 서구화의 성공>보다 <정치적 정당성의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게 해주는 중요한 회차다.

도쿠가와 막부는 처음에는 군사력·행정력·외교권을 모두 독점했다.

천황은 거의 상징뿐이었다.

그러나 외세의 압력이 계속되는 동안 막부가 반복해서 실패하자 상황이 뒤집힌다.

막부에는 여전히 실력이 있지만 정당성이 약해지고,

천황에게는 실력이 거의 없지만 정당성이 커진다.

그리고 정치에서는 때로 <정당성이 새로운 실력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전국의 젊은 사무라이와 강력한 번들이 천황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따라서 73회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쿠라다문 밖에서 이이 나오스케가 죽은 순간 도쿠가와 막부가 즉시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막부가 더 이상 일본의 미래를 혼자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분명해졌다.>

그리고 함재봉의 전체 논지에서 더욱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메이지유신은 처음부터 계획된 혁명이 아니었다. 막부가 살아남기 위해 하나씩 내린 현실적 결정들이 뜻밖에도 천황·조슈·사쓰마를 강화하고 막부 자신을 약화시키면서 만들어진 혁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73회는 ‘사쿠라다문 암살사건’의 이야기를 넘어 <도쿠가와 권력에서 천황 권력으로 정치적 중심이 이동하는 결정적 중간단계>를 설명하는 회차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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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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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이어서이
독구가와 막부 말기에 도구가와 애써서
구축해 놓은 [음악] 그 정치적 균형 체제. 어 그 체제가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음악]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도구가와 어
창근 교대라는 인질 [음악] 제도를 통해서 또 자기한테 도전했던 번들을 어 영 영
영영 영지를 [음악] 뺏고 세력을 약화시키고 어 자기한테 충성하는 번으로 에워싸게
하고 그리고 이제 외세와의 모든 관계를 끊도록 하죠. 특히 외라는
[음악] 것이 외국으로부터 서양으로부터 대포가 들어오고 총이 들어오고 이런 거를 알기 때문에
[음악] 어떤 특정 번이 특히 자기에 반대하는 번이 어 외세랑 서양
열강이랑 손을 잡으면 큰일 나니까 이제 철전국 정책을 하는 거죠. [음악] 이렇게 해서 280년간의
평화가 옵니다. 그런데 그 평화가 깨지는 것이 결국은 외세의 도래 때문이죠. 회리제독에 미국 함대가
오면서 그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되는지 이국을 어떻게 풀어야 되는지
그리고 풀면서 [음악] 풀으로 해서 일어나는 정치적 불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음악] 특히 도구가와의 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 이런 것을 가지고 독구가 막부에서 굉장히 고민들을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결국은 어
그 외세의 [음악] 도래로 인해서 독꼬가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하고 그
대안으로 부상하는 것이 [음악] 천왕이 부상을 하고 그리고 천왕을 미는 존양이파
쇠국주의자들 [음악] 젊은 사무라이들 그리고 옛날부터 독구어를 반대했던
번들이 [음악] 부상을 하기 시작하면서 세력 균형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그 핵심 부분에서 어 그
막부가 도구가와 막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천왕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어떻게서든지 어 동시에 다른 강한 번들을 견제를
하려고 하는 그 부분을 오늘 함께 [음악]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에도 안에 나타나서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어떻게서든지 쇼근한테 전달하겠다 했을 때에 처음에는
일본에서 막부가 그걸 거절을 하려고 애를 썼죠. 그렇지만 결국은 거절을
못 하고 그 친서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1년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라는 약속을
그 원포를 놓고 페리가 가고 나니까 그럼 이제 페리가 돌아오기 전까지
정확히 국가의 정책을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열어야 될 건지 계국을 해야 되는 건지 쇠국을 유지할 건지
이제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되는 거죠. 그때에 마침 도크가와의
그 당시의 쇼그는 굉장히 병약하고 국정을 살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즈라는 어 높은 대신을 하나 임명을 해서 그 로즈한테 모든 거를
맡기고 있었죠. 그래서 그 로즈가이 당시에 호타라는 사람이었었는데
호타 입장에서는 이렇게 큰 일이 벌어졌고 그리고 지금
도구가와 막부 자체가 굉장히 약화돼 있는 상태고
그러니까는이 큰 일을 처리하데 있어서 도저히
옛날 같이 독구가와 막구가 강했을 때 같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없겠다 싶어서
처음으로 독구가 막부가 형성된 이후 처음으로 다른 심지어는 조슈와 사스마 같이
자기네한테 처음부터 맞었던 따라서 어
그 다이묘들을 3등급으로 나눠서 제일 낮은 등급은 조시와 사스마 같은 그
번들은 아예 국정에 참여를 못 할뿐만 아니라
아무런 그런 중앙 정부가 그니까 독구가 막부가 상의도 하지 않는
그러면서 독단적으로 결정을 한 그런 구조였던 거를 깨고 조수하고 사스마를
비롯한 모든 번에 그
해리 저 페리가 가져온 친서를 복사를 해서 다
돌려주고 그러면서 어떡하면 좋겠냐고 처음으로 질문을 합니다. 상의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심지어는 천왕한테까지도 그때까지는 완전히 독국어가 막고
묻어버리고 무시하고 있었던 교도의 천왕부에도 그걸 보내서 천왕부의
의견도 물어봅니다. 사실은 이게 독가가 약해져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였지만은
바로 이것 때문에 조슈하고 사스마가 부상을 하기 시작하고 특히 천왕부와 손을 잡고 부상을 하고 그것이 이제
궁극적으로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거죠. 자, 그러면
그래서 호다가 이런 편지를 다 보내고 그래서 의견을 청취를 하는데 그런데
참 역설적인게 뭐냐면은 독구가와는
막보에서는 토론을 다 해 보고 결국은 열어야 된다. 열 수밖에 없겠다.
그러고 했는데 정작 처음으로 한번 상의를 국사를
같이 노네보자고 상의를 했던 조주나 사스마버는 물론이고 천왕이
당시 천왕은 고메이 천왕입니다. 나중에 메이지 천왕의 아버지죠.
고메이 천왕은 철저하게 반대를 합니다. 즉 천왕이 독구가 막부보다도
더 쇠국주의자들입니다. 더 쇠국주의자입니다. 그러면서
절대로 쇠국을 하는데 동의를 못 해 주겠다. 천왕이 그럽니다. 그러니까
이제 호다 로즈 호다 입장에서 독고감 막부의 최고 책임자 입장에서는
기껏 상의를 하려고 여러 의견을 물었는데 그중에서도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한 천왕의 입장은 절대로 안 된다. 이래
버리니까는 계곡을 하지도 못하고 못 하지도 못하고 아주 중간에 끼인
상태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호탄은 결국은 자기는 도저히이 문제를 해결 못
하겠고 더 이상 국정을 이끌 자신이 없다 그러면서 사임을 해 버립니다. 그리고 또 도크가와의 당시 수군이었던
도크가와 이해 사단은 결국 병으로 죽습니다. 그런데 병으로 죽은 또이
쇼구는 후사가 없었습니다.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어느 방
번에 방계 도구가와 가문에 누가 이거를 그러면
승계할 것인가 속은 자리를 승계하신할 것인가를 가지고 또 독구가와가와 감은
내에서 엄청난 내분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독구가 막부는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있고 내분까지도 일어나고 있고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그런
상황에 빠져 버립니다. 죽기 4개월 전에 이나오스케는
임무를 다이로에 임명을 합니다. 아이로라는 것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인나오스케가 나온 그 이문에서만
임명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도구가와 역사상이 다이로라는 자리는
세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나라가 위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이 감은 자기네가 항상 가장
나라가 어려울 때 의지했던이 가문을 찾아서 그이 가문에
나오스케를 다이로에 임명을 합니다. 그런데이이
나오스는 임명된지 3개월 만에
안사의 대옥이라는 걸 일으킵니다. 즉 무슨 말씀이냐면
강경론자였습니다.이 이 사람은이 사람은 이인하우스케은
독구가와 막부가 도대체 왜 조슈하고 사스마 같은 번들하고 상의를 하며
국정을 논하며 왜 그 사람들한테 국정에 참여할 수 있 왜 목소리를 주며 도대체 천왕부에다가 왜 그런
편지를 보내 가지고 천왕부한테 의견을 물을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절대로
그건 이제는 더 이상 안 된다 그러면서 대수 숙청을 합니다. 즉 계국을
반대하고 개항을 반대했던 세력들을 대거청을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같은 도구가와의
가문이 통차든 그 미토버낸 미토의 날리아키
그런 사람들도 외국을 주장했지 않습니까? 자기한테 300명의 그 저 론인들하고 농부의
아이들만 주면 자기가 미국에 가서 옥세를 하겠다 이럴 정도로
세국주의자였고 계국을 반대했던 그 믿도의 날이 아끼 그다음에
도대체 처음부터 이런 다이어들한테 의견을 물었던 호다
전 로주였던 호다 마사요씨 그다음에 도사번에
야마 마우치 요도 이런 사람들을 전부 다 연금 상태 그러니까 가택 연금
시켜 버리고 후구 이번에 다이며나 이런 사람들은 아예 다이며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도구가와 막부가 다시 한번 옛날에 그
권세를 되찾는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완전히 그 강경책을 밀어붙입니다.
그런데 그책의 목표는 뭡니까? 개항을 하자는 거였습니다. 그 그러니까
독가와 막은 개항을 하자는 거였고 그리고 지금 조슈나 사스마번이나 또
천왕은 계국을 하면 안 되겠다라는 겁니다. 근데 우리가 역사를 알지만 뭡니까?
계국을 하면 안 되겠다라는 천왕하고 천왕가하고 조수하고 사스마가 힘을
합쳐서 나중에 메이신을 일으켜서 완전히 계곡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참 역설입니다. 처음의 시작은 분명히 도크가와 개 계곡을
하려고 심지어는 이인우스케 같은 인물까지 나와 가지고 계곡을 반대한
사람을 대숙청을 하면서까지 계곡을 밀어붙였는데 처음에는 계곡을 했다라는 것 때문에
독구가 상대로 들고 일어났던 사람들이 도구가를 무너뜨리고 나서는
자기네가 도구가를 한 거랑 똑같은 거를 하는 겁니다. 그게 메이지 유신입니다. 하도 숙청이
심해 심해지니까 사스마번의 시마스나리아키
아주 그 그 사스마번의 큰 개혁을 주도했었고 했던 막강한 다이묘였는데이
사람은 아예인하우스케를 상대로
거병까지 계획을 합니다. 그런데 거하기 직전에 출하기 직전에 병사를
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인하우스케는 이때에 전국에 그동안에
자기가 봤을 때 그동안의 나약한 소군과 나약한 로주들 때문에
계속해서이 많은 번의 젊은 사무라이들이
들고 일어나서 뭐 조왕양이 어쩌고 하면서 막부에 맞서고 있었던 이런 인물들을
내버려뒀었는데 자기는 내버려두면 안 된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적으로
존황양이 파은 사무라이들까지 전부 다 숙청을 합니다. 이때에 바로 요시다
쇼인도 조슈의 요시다 쇼인도 이때에 원래는
자기네 고향 하스마의 감옥에 있었던 거를 에도로 불러올려서 에도에서 처형을 해
버리는게 바로 이때입니다.이가 가인나우스케가 안세의 대옥을 일으켜서이 대숙청을
버리면서까지 계곡을 밀어붙이는데 천왕은 더욱더 쇠국하자는 목소리를
높힙니다. 그래서 1858년 7월 27일에는 이세이신궁 뭐 이런 여러
신궁에다가 식사를 보냅니다. 그러고 조직을 내려갔고
여몽합군이 일본에 쳐들어올 때 가미카제가 와서
신풍이 와서 신이 내린 바람이 태풍이 불어 갖고 그 함대를 선멸시켰듯이 이번에도
어떻게서든지 가미가 신이 가미카제를 내려줘서
신풍을 내려줘 갖고이 오랑캐들 무찌르게 해 달라고 전국에 있는 중요
신 이런 데에다가
죄를 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고메이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반대를 천왕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반대를 하는데도 7월 29일 날 어떡합니까?
간학가와 해안에서 정박해 있던 미국 퍼우하텐호에서
해리스 조약이라고 불리우는 일이 수호통상 조약이 체결이 돼
버립니다. 조약 내용은 심어다하고 학고다를 즉시 개방하고
5년 안에 다른 여러 한구들을 개양한다.
이런 거를 명시하는 조약이었습니다. 그런데이는
천왕의 제가를 받지도 않았고 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천왕을 무시하는 겁니다. 옛날에 원래 박구 후 독구가 바꾸가
아듯이 천왕은 알 필요도 없고 우리가 천왕의 의견을 물을 필요도 없다. 우리 박 막부가 그냥 하면 된다.
이렇게 했던 거죠. 그리고 그래서 조약을 체결하고 나서 한 이틀
후 지나서야 교도에 있는 천왕부에
미국하고 어 조약을 맺었다. 사실 급해서 시간이 없어서 통보를 못 해
드려 죄송하다. 이렇게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간신이 독과의 이에모치라는 사람을 세소군으로
임명을 했는데 그것도 사후에 그리고 미국과의 조약 체결 한 일주일
후에서야 천왕부에다가 알립니다. 그러니까이는
원래 독구가 막부가 갖고 있었던 그 권세를
다시 회복하고 그걸 그대로 누려야 된다고 하면서 천왕부와 조황향이 계국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철저한 숙청으로 잠재어 버립니다. 고메인은 당연히 천왕은 경로 하죠.
나한테 상의도 하고 물어보지도 않고 뭐 알린다 그랬는데 알 뒤늦게나 알리고 이제 이러면서
개곡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 퇴 퇴를 해 버리겠다. 나 퇴임한다 그랬는데도 어
옆에서들 이제 말려서 퇴인을 못 합니다. 이러고 있는데 또 마크는 아예 한
걸음 더 나가서 곧바로 미국과의 수상 조약만 맺은게 아니라 곧바로이어서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과도 통상 조약을 맺어 버립니다. 완전히 계곡을 하는 겁니다. 고메인는 조종 회의를
열어서 고매 천왕은 조종 회의를 열어서 미국과 조약을 맺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라는 걸 인정을 하면서도 그렇지만 자기의 영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책망을 합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제안을 합니다. 그게 뭐냐면은 이렇게 나라가 어려워졌으니까 그러면
천왕부하고 도구가와 막부하고
협조를 하자, 손을 잡자라는 제한을 합니다. 그 제한이 공무 협체
공이라는게 그
천왕이고 그죠. 우리가 어 공공성할 때이 공 그죠 공이고 그다음에 부는
당연히 이제 무사니까 막부를 말하는 뜻이고 합체 둘이 같이
하자 그래서 고부갓타에 1번 말로 고부가라는 거를 하자라는 거를 제안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제 철왕은 그나마 그래도 좀 타협을 하려 그러고 그러는
입장을 했는데도 굉장히 구력적이었죠. 자기한테는 자기는 그래도 알려 달라
그러고 더군다나 반대한다라는 걸 했는데 완전히 무시하고
막부가 그냥 미국하고 뭐 네덜랜드하고 영국하고 다 조약을 체결해 버리니까
굉장히 경로를 하고 분노하면서 어 나 이러면 그만두겠다라는
어 그 퇴의하겠다라는 협박까지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이제 주위의
신하들의 이제 말을 듣고 그러면서 아 너무 그렇게 과격하게 하시 안 됩니다. 하는 얘기를 듣고서 자
그러면 어쨌든 내 칭령을 어긴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나라가
어려우니까 우리가 힘을 합치자 이랬었지 않습니까? 막보하고 천왕의
힘을 합치자. 이렇게 천왕이 얘기를 했는데도 막상 막부에서는 당시에 로즈
마나베 아키카츠라는 유명한 로즈를 그니까 다이로이 밑에 있었던 로즈죠.
로즈를 보냅니다. 근데이 로즈가 처음에는
미국하고 맺은 조약을 설명하겠습니다. 이러고 왔는데 막상 와서는
어떡합니까? 막상 와서는 마베가 천왕 주변에서 외국을 주장하든
그러니까 막부의 정책에 방대하든
미국과의 조약을 맺는 거에 반대하든 천왕 주변에 있는 대신들 그리고 천왕
주변에는 전부 다 후계 귀족들이죠. 원래 귀족들이요. 일본의 귀족들.이
이 사람들을 대고 숙청을 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천왕주의에 있는 천왕의 가장
친한 천왕이 가장 믿든 그러한 대신들조차도
귀족들조차도 막부에서 사람을 보내 갖고 다
숙청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인물들은 관직에서 물러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삭발을 하고 아예 출가하도록 합니다. 막부에서
로즈가 와서 천왕의 측근들을 다 잘라 버리는데
천왕이 어려서부터 같이 잘한 사람들 친했고 의지하는 사람들 잘자 숙청을
해 버린데도 사실 천왕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즉 천왕은
말로만 군주이지 실권은 전혀 없었다라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고
이인 아우스케는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만나를 보내서 천왕부에 아예 가서 그
주변의 인물들까지 숙청하면서 자기의 힘을 막부의 힘을 과실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이 이인나우스케의 안세의 대혹 때문에 바쿠마츠 어
도고가 막부가 끝나가는 그 시기에 새로운 정치적인
전선이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이이 나오스키가 이끄는 독구가 막부가
추진하고 있는 계국 계국 세력이 있는 거고 그리고 거기에 반대하는
양의 세력 즉 쇠국 세력이 있는데 그 쇠국 세력이 가장 쇠국을 앞장서서
지지하기 시작한 고매의 천왕
하고 힘을 합칩니다. 그러니까 양이 서양 오랑캐들을 물리쳐야 되고
서국을 지키지 않는 그 세력과
천왕을 따라야 된다. 천왕을 존중해야 된다.
천왕이 진짜 우리의 죽은이다라는 그 밑도번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던 그
존왕 사상이 합칩니다. 그래서 존왕 양이 사상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황제를 천왕을 받드는 것은 곧 서양 오랑캐를 무찌르는 거라는 그 존왕양이
사상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이 존황파들은 곧파들이 [웃음]
되는 거고이 존왕파들은이
나오스케가 천왕의 제가도 없이
헤르스약을 맺어버렸다. 이게 천왕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이 존황 양이파들은 전부 다 교도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천왕 주변에 천왕부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러니깐 미국
등의 외세와의 서양 세력들과의 조약을 맺고 그거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교도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하면서 국가 정책에 개입을 하기 시작하고
전국의 젊은 사무라이들 열혈분자 조황양입파 사무라이들이 다 교도에
모여들기 시작하고 이제는 는 박후나 막부나에도 대신에 천왕과
교도가 나라를 대표하는 중심으로 자꾸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서 다른묘들도
이제 세력 중심이 두 개가 돼 버리는 거 아닙니까? 에도의
에도의 박구후가 있고 막부가 있는 거고 교도의 천왕부가 있는 거죠.
전에는 아예 비교할 수도 없이 애도가 강했고 천왕분이 있으나 많나 한
거였었는데 지금 계국을 통해서 완전히
교도의 천왕부가 관심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그리고 세력이 점점 점점 그쪽으로 쏠립니다.
그러니까 전국에 있는 다른 다이어들도 모든 다이여들도이 어느 쪽에 가서
있어야 되지 그러면서 누구 쪽에 붙는게 이게 맞는 거지 하면서 그
합종 연행 복잡하게이 서로가 이편 저편 들고
고민하고 하는 그 정치판
교도와에도 사이에서 천왕과 막부 사이에서
갈등하는 고민하는 합종 연행하는 소위 말하는 바꾸마츠 막부 말기의 정치가
시작이 됩니다. 이인 아우스케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정치 지형이
만들어집니다.
법률 방송이 출관하는 시사 교양지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음악]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요를 중심으로 한 천왕을 중심으로 한이 전왕 양위파
세력이 얼마나 강해지기 시작했는지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사건이 뭐냐면은
1860년 3월 24일 일어나는 사꾸라다몽
사건입니다. 사꾸라다몽문은 에도송 지금의 그 고교죠. 저
도쿄에는 천왕의 거 그 거소인데 그게
그 당시에는 이제 독구가와 그 막부에 어 독구가 가문의
성이었죠. 거기에 가서 쇼근을 만나서 국사를 논하고 퇴청하는이
나오스케을 밑도한의 존양입파
론인들이 암사를 합니다.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참 끊임없는 아이런이지만 미터번은 도구가 번의 형제번입니다. 가장
가까운 번입니다. 근데 그 미토번에서 전왕이 사상이
나왔던 거고 그러니까 그 미토번에 사무라이들이
자기 그러니까 도구가와의 영을 어기고 도구가와의
다이로를 죽이는 거죠. 왜? 존왕
천왕을 모욕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서양오랑캐들과 조약을 맺어서 나라를
열으로서 천왕을 모욕했다. 따라서 그 이인
아우스케를 암사를 합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바코는 너무나도 충격고 놀랍 충격이고
놀랍기 때문에 몇 달 동안이가 죽었다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그럽니다.
그렇지만 강력한 지도자였고 강력한 계국주의자였던이가
죽음으로써 박푸는 막부는 다시 한번 표류하기 시작을 합니다.이가 가 죽고
나니까 막부의 힘이 약해지는 거고 요때에
고메이 천왕이 다시 한번 우리 천왕부하고
막부하고 같이 가자라는 공무합체 론 고부가를
제시를 합니다. 그리고 막부의 입장에서도
천왕부하고 손을 잡는 것이 자기네
힘을 유지하는 방편이다. 유일한 방편이다 생각을 해 갖고 그래서 천왕하고 손을 잡으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자 그런데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이 뭐냐면은 그러면 고매의 천왕을
고매의 천왕이 세력이 강해지는 것은 전왕이 파들이
거를 떠바들고 그리고이
천왕한테 천왕의 영을 어기고 오랑캐드를 조약을 맺은 막부를 타도해야 된다라는
그 조항양이파들 때문에 다시 천왕이 힘을 얻게 되는 건데
그런데 고메이의 천왕 본인은요 도구가 막보를 타도하고 자기가 뭐
왕정복고를 통해서 자기가 다시 친정을 하겠다. 친히 정치를 하겠다. 나라를
다스리겠다. 이런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오히려 바꾸에서 돈 주는 돈과 모든
잘해 주는 걸 갖고 그냥 자기는 편하게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고 생각을 했었지. 자기가 국정을 도모해
갖고 어떻게 하겠다 이런 생각 전혀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는 그를 추정하던 사람들이 생각했던 거하고
고매의 본인이 생각했던 건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고메가 사실은 독구가 막부를 타도하자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라는 것은 어디서 나타냐면 바로 그 공무합체 고부가에서 론에서 나오는 거죠. 그래서
1860년 6월 3일 날 바로 그 고부갓타이를 그럼 한번 우리가 실행에
옮겨 보자라는 취지에서 그래서이 그러면 공공무합체론
고부가를 실행에 옮기자고 해서 1860년
6월 3일 날 가노미아 치카코 내친 왕 고메이의 이복 여동생입니다.
도매하고 가장 친했고 가장 서로가 믿고 의지했던 여동생입니다. 하고
시억군하고 결혼을 하자 이렇게 된 겁니다. 그 제안이 나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죠. 그러니까 도구가 280년 역사상 항상
천왕부를 억누르고 가서 천왕을 갈아버리기도 하고 그랬던 독구가의 가문에서 이제는
혼인 관계를 맺서이 고부가타이가
실체를 갖게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박구 후측에서도 더욱더
적극적으로 적극적으로이 혼인을 성사시키자 이렇게 나오기
시작하니까 천왕이 자기가 가장 믿는 쿠게 그 귀족 출신 중에 이와꾸라
도모미한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당신 어떻게
생각하나 의견서를 제출하라 그럽니다. 이와꾸라 도무미는 나중에 이와꾸라
사절단이라는 꾸려서 전 메지우신 직후에 성공을 시킨 직후에 전 세계를
다니면서 그 2년 동안 어 외국을 보고 오는 그 유명한 이꾸라사절단의
그 그 수장이기도 합니다. 일본 근세사의 메이지신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인데 이때에 이제라가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임무가 뭐냐면은 과연 천왕의
여동생하고 도크가 이예모치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옳은 건가 했더니 그
가즈노미아 혼인에 관한 상신서라는 거를 제출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와꾸라는요. 조종하고 박후가 하나님을 대회에 과시하는 것 이거는 필요하다. 적극
동의한다. 그리고 만일이 혼인을 통해서 정말 고부가타의
공무 합체가 일어나면은 천왕부는 이제 점점 점점 국사에
참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조정 조종이라는게 이제 천왕구죠.
조종의 권위는 한껏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라면서 적극 찬성합니다라는
의견서를 제출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 대신에이 결혼을 성사시킨다.
그 대신에 도구가와 막부가
외국 오랑캐들과 맺은 그 모든 조약들은 모든 조약들은
결국은 취화할 것을 맹세해야 된다. 그러니까
막부로 하여금 모든 외곡과의 조약들을 추할 것을 맹세하도록 약속을 하면은 결혼을
시켜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천왕이 친서를 보냅니다. 독구한테 막부에 보내고 막부는 그걸
받아들이고 100% 동의 찬성한다. 그리고 어 이렇게 되면은
나라가 이제 천왕보하고 막부하고 손을 잡으면 나라가 이제 통합된 군사력도 갖게 되고 강렬하게 강력하게 대회의
그 외세의 개입에 저항을 할 수 있게 된다. 맞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 군사력을 통해서든 아니면 조약의
재협상을 통해서든 앞으로 7년에서 10년 안에
서양하구의 서양 양이 그 서양 오랑캐들과의 모든 조약을 7년에서 10년 안에 다
취화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니까는
존왕이 파들은 천왕주에 모여들면서 교도에 모여들면서 천왕 보고 저
당신한테 모욕을 준 오랑캐들하고 조약을 맺은 그 도구가
막부를 타도하고 천왕께서 직접 친정을 하십시오라고
하는 그런 와중에 천왕은 정작 고부가타이를
통해서 지금 독구가 막부랑 손을 잡는 겁니다. 근데 아무리 아무리 천왕이
독구가와 손을 잡고 본인은 친정을 할 생각은 곰의 천왕은 추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세력의 중심은 권력의 중심 추는 교도로 옮겨가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그러면서 박쿠는 이제 고부 갓때를 통해서 천왕부하고도 관계를
설정을하고 특히 혼인 관계를 통해서 그렇죠. 천왕의 여동생이
초군하고 결혼을함으로써 그 관계가 탄탄해지니까 그다음에는
다른 번들하고도
특히 자기네한테 저항하던 번들하고도 관계를 다시 재설정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이때 하는 것이 뭐냐면은 참근 교대 산긴따이 그 인질제도
그죠? 2년마다 한 번씩 그러니까 그 각 다이여들이 본인들은 2년마다 한
번씩 교 도쿄에 와서 살 애도에 와서 살아야 되는 것이고 그 정실 부인하고
그 후계자들을 무조건 에도에 늘 살아야 되고 했던 그 산킹고따의 제도
자체를 7년간 유회를 한다 이래 버립니다.
그래서 그 유회를 하는 이유는 그런 거를 참근 교대 할하는데 돈이 너무
돌아 들어가고 그걸 유지하는데 각 번이 재정을 너무 많이 쓰고 경제력이
약화되 됐었는데 그리고 사실 그런 목적으로 창근 교대 시스템을 제도를
만들어 놨었던 건데 이제는 나라를 지키려고 국방을 강화시키고 공동의적인
서양 오랑캐들 하고 맞싸우려 그러면은 그 번들이 들이 참근 교대 같은 데다
모든 재력, 경제력을 다 써 버리면은 안 되고 오히려 각 번마다 군사력을
길러서 국방을 강화시켜야지 된다 해서
산긴다이를 7년간 유예를 해 버린다. 사실 이렇게함으로써 참근 교대 제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렇게 되니까
사츠마와 조슈 같은 대표적인 도자마 다이묘 그죠. 또
그거한테 맞었던 그 다이묘들은 이제는
막간 경제력과 모든 거를 동원해서 자체의 국방력을 강화시키고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마음껏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나게 됩니다.
도구가와 그렇게 애써서 구축했던 세력 균형
280년 동안 에도의 평화를 가능케 했던 그 세력 균형은 이렇게 무너지게
됩니다.이 박쿠마스의 정치 막말 막부 말기의
정치는 정치 진술를 보여줍니다. 그러깐
정치라는 건요. 그 참여자들의 의도,
이념 이런 것과는 사실은 별 상관없이 흘러가는게 정치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 나오더라도 대혼란계에 나오면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선택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간 옳게 뜻대로 한 사람의 뜻대로 정치가
이루어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이런 것은 없습니다. 각자가 다 그 당시 그 순간순간에
나름대로 이런 결정을 내려야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고 이게 나의 번을 위하는 것이고
하는 그 모든 그렇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열심으로 그걸
위해서 노력을 하더라도 결국은 그 모든 의도와 노력이 합쳐지면서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지금
도구가와는 결국은 자기네가 힘이 약해지고 외세의 도래를 통해서 아
우리가 생각보다 너무 모든 것을 상황을 통제할 수 있 힘이 없구나. 외세를 막을 힘은 더운다는 없구나.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그동안에 우리가 갈라져 있고 서로
분열 통치를 하던 이런 다이여들 그다음에 억누르고 있던 천왕부 이런
세력까지 그래도 국론을 통일하기 위해서 우리가 다 다시 끌어들려야 되겠다라는 굉장히 좋은 의도에서 국론
통일을 하겠다는 의도 그리고 국가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시키는 방법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천왕부나 다이어들한테 그야말로 정책 참여할 수 있는 문호를
개방한 건데 그것 때문에 결국은 도덕가 막부는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반면에 천왕부라는데는 천왕은 특히 당시 고메이의 천왕이라는
사람은 그냥 쇠곡주의자였고 기존 체제 도구가 막불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체제가 그냥 유지되는 것만 바랬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최국을 해서 최국을 하라는게 독국어의 막부의 정책에 반대하는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반대하는게 됐지만이 사람은 뭐를 하고 싶었냐면 독가와 막부가 미워서 반대를 한게 아니라
독구와 막부가 좀 계속 그대로 가라 좀. 그래서 나 같은 우리 천왕한테는
그냥 그때그때 연금 주고 돈 주고 편하게 살게 내버려두고
국정 같은 거 우리 참여하도록 괜히 골치 아프게 그런 거 안 하도록 하자고
그런 의미에서 독구가 막부하고도 손을 잡고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천왕을 미는 존황이파들은
천왕을 모욕을 준 도구가와를 타도하고
그리고 천왕께서 직접 나라를 다시 다스리는 친정 체제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러면서 외세를 몰아내야 됩니다.라는 세력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럼이 세력이 서로가 전혀 다른 꿈을 갖고 있고 미래를 전혀 다르게
보는 겁니다.이 이 세력이 어떻게 서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삽종 연행을 하면서 그러면서 결과적으로는
고메이 천왕이 죽고 새 천왕 메이지가 나오면서 그 메이지 천왕부가
조슈하고 사스마하고 손을 완전히 잡으면서 결국은
도크가와 막부를 타도를 하지만 그 타도를 하는 과정에서 존황양이 파들의
양이 즉 서양을 물리치고 세곡으로 돌아가자라는 그 원칙은 사라져 버리고
천왕이 친정을 하는 왕종 복가 이루어지는 거는 맞지만
그 메이지의 새 정부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수입된 새 정부는 적극적인 개방 정책
독구가와 막부보다도 더 적극적인 개방 정책을 펼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은 독구가 막보는 굉장히 억울하죠. 자기네는 계곡을 하겠다고 그렇게
설득을 하고 그래서 전국을 설득하려 그러고 천왕을 설득하려 그러고 도자마이며들을 설득하려고 했는데 전부
다 그 계곡했다고 반대 벌대같이 일어나서 자기네를 다 타도해 갖고 무너뜨리고 나서는 결국 하는게
뭡니까? 자기네가 했던 정책을 그대로 오히려 더 심화시켜서 더 개방 개혁
정책으로 가는 겁니다. 그렇지만이 과정에서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변하는 거죠. 특히 전왕 양이파가
존황은 맞는데 양이가 아니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주신을
일으키는 기도 오크보도시미치 사이고 다까머리이 또
뭐 야마가이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전부 다 전왕 양입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다음 시간에도 계속 살펴보겠지만 외국
유학을 가고 사신으로 외국을 가보고 그러면서이 사람들이 전차
양의가 아니라 계국주의자들로 아주 친서방주의자들로
변해 나가면서 [목을 가다듬음] 결국은 메이주의신이라는 그 이상한
이상한 집합체가 생깁니다. 자들이 계국주의자들이 되고 계국
세국주의자들이 계국주의자들을 무너뜨리고 나서는 본인들이 계국주의자가 돼 버리는 그 과정을
통해서 메이주의신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혁명이 일본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러면 이제
막부하고 초왕부하고 손을 잡고 공무 합체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사스마 조슈 같은 도자마 다이여들도 국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참근 교대도
없어지면서 자유롭게 되기 시작하면서 그다음부터는
막부는 물론이고이 번들이 경쟁적으로 개방정책을 하고
특히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유학생들을
외국에 파견하면서 일본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을 다음 시간에 함께 살펴보도록 [음악]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음악]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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