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戦争を甘く見る空気 1930年代と似た道を進む現代日本 (朝日新書)
by 山崎 雅弘 (Author) Format: Paperback Shinsho
4.6 4.6 out of 5 stars (51)
物価高と軍備増強、中国敵視……。いまの日本には、1930年代とよく似た空気が広がっている。高市首相の「台湾有事」発言以降、急激に悪化する日中関係。日中戦争が勃発し、戦時体制へと移行した1937年と2026年を歴史的に比較検証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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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자키 마사히로의 <전쟁을 얕보는 공기: 1930년대와 닮은 길을 걷는 현대 일본>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도서 요약 및 평론: 전쟁을 얕보는 공기 (야마자키 마사히로)>
<1. 핵심 내용 요약>
<전쟁 전야의 기시감> 저자 야마자키 마사히로는 현대 일본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담론이 1930년대 군국주의 파국으로 치닫던 시기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1930년대 일본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으로 돌입한 배경에는 단순한 군부의 폭주뿐만 아니라, 언론의 선동과 대중의 무비판적 동조가 빚어낸 '전쟁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공기)'가 존재했다. 저자는 현재 일본이 평화헌법 체제 하에 있으면서도, 과거의 파국을 이끌었던 위험한 사고방식을 여과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위기의 본질과 네 가지 메커니즘> 책에서 지적하는 현대 일본의 구조적 위험성은 다음과 같은 지점으로 구체화된다.
<가상 적국의 설정과 안보 위기론의 소비>: 주변국(중국, 북한 등)의 위협을 과장하여 방위비 증액과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정당화하며, 군사적 긴장을 외교적 해결책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역사 수정주의와 전쟁 경험의 풍화>: 침략 전쟁과 식민 지배의 가해 역사를 은폐하거나 미화하며, 참혹했던 실제 전장의 실상을 잊은 채 전쟁을 단순한 승패 게임이나 국위 선양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박함이 만연하다.
<이의 제기를 억압하는 동조 압력>: 국가주의적 노선이나 군비 확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비국민'이나 '반일'로 낙인찍고 배제하는 여론 몰이가 정치권과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정치적 무관심과 안이한 낙관주의>: "설마 진짜 전쟁이 일어나겠는가"라는 막연한 안전 불감증과 현실 회피가 지배층의 독단을 견제하지 못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2. 비판적 평론>
<역사적 유추의 탁월성과 구조적 통찰> 이 책은 전사(戰史) 연구자인 저자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저작이다. 단순히 감정적인 반전 평화론을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1930년대 관동군의 폭주 과정, 대본영 발표의 기만성, 당시 지식인과 언론의 굴종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하여 현대의 안보 법제 개편 및 개헌 논의와 교차 검증한다.
특히 파시즘이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언어의 왜곡, 작은 타협, 그리고 '대세에 거스르지 않으려는 나약함'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점을 설파한 대목은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정치권력이 대중의 불안을 먹고 자라며, 대중은 국가주의적 고양감을 통해 현실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악순환의 고리를 날카롭게 해부했다.
<보편적 경고로서의 가치와 한계> 저자의 시선은 일본 국내 정치 지형에 집중되어 있으나,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특정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다.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되는 현대 국제사회에서 군사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가 어떻게 시민사회의 합리성을 잠식하는지 보여주는 보편적 경고장 역할을 한다.
다만, 현대의 국제 안보 환경은 1930년대의 제국주의 블록 경제나 총력전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복합적 상호의존 관계(글로벌 공급망, 핵 억지력 등)를 띠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면은 다소 아쉽다. 1930년대와의 단순 병치로 인해 현실적인 안보 딜레마를 과도하게 군국주의 부활의 프레임으로만 환원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쟁의 비극은 전쟁을 낭만화하거나 쉽게 생각하는 무지에서 시작된다"는 평범하지만 본질적인 진실을 묵직하게 일깨운다. 역사를 거울삼아 집단적 맹목성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 수작이다.
山崎雅弘, 『戦争を甘く見る空気――1930年代と似た道を進む現代日本』
야마자키 마사히로, 『전쟁을 만만하게 보는 분위기――1930년대와 비슷한 길을 걷는 현대 일본』
<1,000단어 요약·평론>
※ 이 책은 2026년 7월 13일 출간된 264쪽짜리 신간이다. 현재 책 전문은 제공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래 글은 출판사가 공개한 상세 목차와 책의 여러 발췌문, 2026년 8월의 저자 인터뷰를 종합하여 책의 전체 논리를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출판사 책소개보다는 깊게 들어가되, 원문에서 확인되지 않는 세부 논증을 책의 주장인 것처럼 덧붙이지 않았다.
1. 이 책의 핵심은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쟁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회>이다
야마자키 마사히로(山崎雅弘)는 전쟁사·분쟁사 연구자다. 이 책에서 그가 묻는 것은 “일본이 다시 군국주의 국가가 되었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더 미묘한 것은 <전쟁에 대한 감각의 변화>이다.
전후 일본 사회에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라는 합의가 존재했다. 그러나 야마자키는 지난 10년 정도 사이에 이 전제가 조금씩 바뀌었다고 본다. 이제 “중국이 위협이므로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대만 유사시에 일본도 싸워야 한다”, “억지력을 높이려면 공격능력도 가져야 한다”라는 문장이 별다른 충격 없이 일상적인 정치언어가 되었다.
그에게 위험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전쟁을 하고 싶다>와 <전쟁도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역사에서 실제 전쟁은 흔히 그 두 번째 사고방식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1937년 일본 국민도 “중국과 대전쟁을 벌여 수백만 명이 희생되는 수렁에 빠지자”고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노구교 사건이라는 작은 충돌을 “일본군이 조금 혼내주면 끝날 문제”라고 생각했다. 야마자키가 말하는 <戦争を甘く見る空気>란 바로 이런 심리다.
2. 1937년과 2026년의 <세 가지 세트>
제1장에서 야마자키가 비교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의외로 거창한 군국주의 이념이 아니다.
<물가 상승 + 군비 증강 + 중국 적대시>
라는 세 요소다.
1937년 초 일본에서도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물가가 급등하여 생활이 어려워졌다. 실제 당시 신문에는 의복·식품·생활필수품 가격 상승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이 실렸다. 그런데 정부는 민생보다 군사비 확대를 우선했다. 야마자키는 2026년의 일본에서도 생활비 상승 속에서 방위비가 급증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사적 기시감을 느낀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감정이다. 1937년에도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중국을 정복하기 위한 전면전”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 근위문마로 내각은 중국에 “반성을 촉구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즉 일본의 요구에 따르지 않는 중국을 징벌하면 사태가 정리된다는 생각이었다.
야마자키는 이것을 2026년의 “중국이 문제다”, “대만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는 담론과 병치한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비판 자체가 아니라, <적을 단순화하면 전쟁의 비용 역시 단순화된다>는 것이다.
3. 억지력이 오히려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역설
이 책에서 상당히 중요한 대목은 군비 증강을 다루는 부분이다.
1930년대 일본도 군비를 늘리면서 “전쟁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군력을 키우면 미국이 일본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며, 독일·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으면 미국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방인 미국의 시각에서는 정반대였다. 일본의 군비 확장과 삼국동맹은 일본의 적대적 의도를 나타내는 증거로 보였고, 결국 미국 역시 대일 압박을 강화했다. 야마자키는 이를 오늘날의 일본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등 원거리 타격능력을 갖추는 상황과 연결한다. 일본은 “억지력”이라고 설명하지만 중국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한 능력 강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책이 제시하는 핵심은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안보 딜레마>와 유사하다.
A국: “우리 군비는 방어용이다.”
B국: “저 군비는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B국이 군비를 늘린다.
그러면 A국은 그것을 위협으로 보고 다시 군비를 늘린다.
양쪽 모두 전쟁을 피하려 군비를 늘리지만 결과적으로 전쟁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4. <대만 유사>를 너무 쉽게 말하는 위험
야마자키에게 2025년 11월 고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의 대만 유사 관련 발언은 중요한 사례다. 그는 일본의 <存立危機事態>, 즉 제한적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야마자키는 이 발언 자체뿐 아니라 그 이후 일본 사회의 반응을 문제 삼는다. 대만해협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일본이 실제 교전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한 외교적 선언이 아니다. 중국군과 자위대가 교전하면 일본 본토, 오키나와와 난세이 제도, 미군기지, 항만과 통신망까지 전쟁의 일부가 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대만을 지켜야 한다”라는 도덕적 명제는 쉽게 제시되는 반면,
<그러면 전쟁은 어떻게 끝낼 것인가?>
라는 질문은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질문은 상당히 중요하다. 전쟁을 시작할 조건은 이야기하면서 전쟁을 종료할 조건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전쟁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전쟁을 가능하게 만드는 <차별>과 <자국 우월주의>
제3장은 군사 문제가 아니라 사회심리를 다룬다.
야마자키는 1930년대 후반 일본에서 천황을 세계의 다른 군주와 다른 초월적 존재로 생각하고, 그러한 천황이 지배하는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국가라는 믿음이 확산되었다고 본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중국인·조선인·동남아시아인은 일본인보다 낮은 존재가 된다.
그 결과 타국을 침략하는 행위가 “침략”이 아니라
<열등한 상대를 지도하고 교정하는 행위>
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이 현대 일본의 외국인 혐오, 중국인에 대한 경멸, 과도한 국가적 자존심을 특별히 경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은 적을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는 동안에는 시작하기 어렵다. 따라서 실제 무기가 사용되기 전에 언어 속에서 상대를 열등하고 위험한 집단으로 만드는 과정이 먼저 진행된다.
이 부분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관계를 생각할 때도 특히 중요한 장이다.
6.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
제4장에서 야마자키의 비판은 일본의 이른바 역사수정주의적 보수세력으로 향한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보수주의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왜 과거의 전쟁을 미화하는 태도가 일본에서는 보수라고 불리는가?”라고 묻는다. 전쟁 희생을 “숭고한 희생과 봉사”로만 기억하기 시작하면, 국가를 위해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다시 긍정적인 가치로 만드는 효과가 생긴다. 책의 제4장 자체가 <先の戦争の反省を頑なに拒む「保守」主義者たち>이라는 제목을 갖는다.
여기서 야마자키가 말하는 역사기억은 과거사 논쟁만이 아니다.
<과거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는 미래 전쟁에 대한 심리적 장벽의 높이를 결정한다>.
이것이 그의 중요한 명제다.
7. 전쟁은 정부와 군대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제5장은 언론을 다룬다.
1930년대 일본에서 신문·잡지·라디오가 항상 정부의 강압 때문에 마지못해 전쟁을 선전한 것은 아니다. 전쟁 보도가 잘 팔렸고, 국민 역시 승전보를 좋아했다. 따라서 언론과 국민도 전쟁 분위기를 확대하는 능동적 행위자였다.
야마자키는 여기서 <media>와 <journalism>을 구별한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저널리즘이 아니다. 권력이 제공하는 정보를 검증하고 의심하며 질문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은 정부 발표를 확대 재생산하는 단순한 매체가 된다.
SNS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복잡한 설명보다 “중국은 적”, “일본은 약하다”, “군비를 늘려야 한다” 같은 짧고 감정적인 메시지가 훨씬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책 말미에서 제시하는 해법은 놀라울 만큼 평범하다.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천천히 검증하라.>
의심한다는 것은 무조건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사실과 논리를 확인한다는 뜻이라고 야마자키는 강조한다.
<평론>
8.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 ―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2026년 일본이 1937년 일본과 똑같다”라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쟁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전쟁으로 갈 수 있다>
는 통찰이다.
1937년 7월의 일본인에게 “앞으로 8년 동안 중국·미국·영국 등과 싸우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고 나라가 초토화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면 대부분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완성된 결과를 뒤에서 보기 때문에 필연적인 과정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당대인에게는 매 단계가 작은 선택이었다.
“이번 정도는 괜찮다.”
“조금 강하게 나가야 상대가 물러난다.”
“군비를 늘려야 전쟁을 막는다.”
“이번 충돌만 해결하면 끝난다.”
바로 이 작은 합리화들의 누적을 야마자키는 <공기(空気)>라는 말로 포착한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다.
9. 그러나 <1937=2026> 비교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동시에 이 책의 가장 큰 약점 역시 바로 이 역사적 유비다.
1937년 일본은 이미 1910년부터 조선을 식민통치하고 있었고, 대만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었으며,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을 세웠고 국제연맹에서도 탈퇴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2026년 일본은 선거와 의회, 시민사회, 언론자유가 존재하는 전후 민주주의 국가이며 군부가 정부를 장악하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물가 상승 + 군비 증강 + 중국과의 갈등>이 비슷하다고 해서 역사적 궤도가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에서 유사성은 경고를 가능하게 하지만, 인과관계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10. 더 중요한 반론 ― 오늘날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허구가 아니다
야마자키의 논의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보완해야 할 점이 이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대중국 경계가 전부 정치인이나 언론이 만든 <중국 적대시>라고 볼 수는 없다.
일본 방위성은 중국이 30년 이상 국방비를 빠르게 증가시키고 핵·미사일·해공군 전력을 확대했으며, 센카쿠 열도 주변 활동과 대만 주변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2025년에는 센카쿠 주변 중국 해경선에서 이륙한 헬기가 일본이 주장하는 영공을 침범한 사건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물론 일본 정부의 공식 평가이므로 그대로 중립적 사실판단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일본의 안보 불안이 완전히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일본은 실제로 FY2026 방위력정비계획 관련 예산을 8조8090억 엔 규모로 편성하고 있다. 군비 증강 자체는 명백한 현실이다.
따라서 더 정확한 질문은 <중국의 위협이 진짜인가 가짜인가?>가 아니라
<실재하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일본이 어떻게 대응해야 안보 딜레마와 전쟁 위험을 동시에 줄일 수 있는가?>여야 한다.
이 점까지 충분히 다루어야 야마자키의 평화주의적 경고가 더 강해진다.
11.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라는 관점에서
이 책을 한일관계나 일중관계를 생각하며 읽으면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 나온다.
<전쟁의 반대는 단순한 비무장이 아니라 상대방을 적으로 고정시키지 않는 정치다.>
일본이 중국을 본질적으로 공격적인 적으로 보고, 중국은 일본의 군비증강을 “군국주의 부활”로 해석하고, 한국은 다시 일본의 군사화를 식민지 기억 속에서 이해한다면 세 나라가 각자 자기 방어를 위해 행동하면서 서로의 공포를 키울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군비냐 비군비냐라는 단순한 양자택일보다
<억지 + 외교 + 역사인식 + 상호위협 감소>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마자키의 책은 군사전략서라기보다 <전쟁으로 가는 사회의 심리학>에 가깝다.
12. 최종 평가
『戦争を甘く見る空気』의 가장 중요한 문장을 내가 다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전쟁을 시작하는 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전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너무 쉽게 말하고, 상대국을 너무 쉽게 악마화하고, 군사적 해결을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면서 전쟁이 가능한 사회가 된다.>
야마자키의 1937년과 2026년 비교는 때로 지나치게 직접적이며, 오늘날 중국이 실제로 만들어내고 있는 안보위협을 충분히 평가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일본이 또 군국주의로 간다”라는 단순한 주장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더 가치 있는 독법은 이것이다.
<1930년대와 오늘이 같은 것이 아니라, 1930년대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위험의 징후 가운데 어떤 것들이 오늘 다시 나타나고 있는가?>
그 질문이라면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한국 독자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일본을 비난하기 위한 책으로 읽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북한·중국·일본을 이야기할 때 ‘전쟁을 만만하게 보는 공기’가 만들어지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되묻는 데 이 책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 질문까지 확장될 때 야마자키의 역사적 경고는 일본 비판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에 적용되는 평화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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