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2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박훈2020

[전자책]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박훈 | 알라딘


[eBook]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 서가명강 시리즈 14
박훈 (지은이)21세기북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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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강의를 책으로 만난다.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엄선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의 열네 번째 책이 출간됐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긴 서가명강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지식의 확장과 배움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의 저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는 메이지유신의 토대를 닦은 4명의 사무라이인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일본사를 풀어냈다. 여러 언론에서 칼럼 연재 및 강의와 집필 등으로 일본에 대한 이해를 도왔던 저자는, 필사의 도약과 비극적인 최후 등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근대 일본을 만든 혁명가들을 조명한다.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을 통해 일본의 역사를 이해하는 색다른 경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이 책을 읽기 전에 학문의 분류
주요 키워드
들어가는 글 일본 역사와 친해지기

1부 시대적 배경: 위기 앞의 일본
막부 말기 일본과 조선의 경제 상황
울분에 찬 사무라이들, 도약을 꿈꾸다
열도에 찾아온 위기
Q/A 묻고 답하기

2부 메이지유신의 스승, 요시다 쇼인
바깥세상, 더 바깥세상을 찾아 나서다
송하촌숙에서 혁명의 불씨를 지피다
해외팽창을 위해선 체제 혁신을!
‘초망굴기’와 일본 혼을 남기고
Q/A 묻고 답하기

3부 일본을 세탁하다, 사카모토 료마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
일본을 위해 도사번을 버리다
사쓰마-조슈번의 동맹을 주도하다
료마가 그린 새로운 일본의 청사진
Q/A 묻고 답하기

4부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
서양과 근대, 일본과 전통을 함께 껴안다
정치적 위기를 이겨내고 거물이 되다
사무라이 사이고의 결정적 순간
전설로 남은 마지막 사무라이
Q/A 묻고 답하기

5부 근대 일본의 철혈재상, 오쿠보 도시미치
냉혹한 혁명가가 되다
필사의 도약, 개혁 드라이브
죽마고우 사이고 다카모리와 대결하다
서양을 배워 그보다 강한 일본을!
Q/A 묻고 답하기

나가는 글 ‘생각 많은 시민들’의 일본사 읽기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우리가 역사상 인물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렸을 때 영웅전, 위인전을 읽는 것과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P. 16 일본을 상대하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또 전략적이어야 한다.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서양인들은 일본 사회를 조금 이상하게 보기는 해도 무시하지는 않으며, 중국인들은 꽤 미워하지만 그렇다고 깔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무시하고 본다. 꼭 알아야 할 지점에서 눈을 그냥 감아버린다. 그래서는 안 된다. 혹여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무시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들어가는 글 | 일본 역사와 친해지기】 접기
P. 27 특히 18세기 말, 19세기에 들어가면 하급 사무라이들의 경제적 궁핍이 아주 심해진다. 많은 사무라이들이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그런데 일본에는 과거제도가 없다. 조선의 양반들은 가난해도 과거에만 붙으면 일거에 신세가 핀다. 그런데 사무라이는 문장 배우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 사회엔 당연히 과거제가 없다. 그럼 사무라이는 무엇으로 출세할 수 있나? 전쟁이다.

【1부 | 시대적 배경】: 위기 앞의 일본】 접기
P. 86 그들이 주장한 천황의 정치화, 무사토착(병농분리의 폐지), 농병제 도입, 참근교대 완화, 대선 제조 금지해제 등의 정책은 거의 막부체제의 근간을 변혁시키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양이론자들이 무모한 서양과의 전투를 잠시 유보하고 미래의 승리를 위해 당분간은 자강노선을 걷자고 노선을 수정하는 순간, 이들은 강력한 부국강병 세력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1863~1864년경 이런 노선 전환이 일어났고, 이들은 곧바로 반反막부 유신 세력의 핵심이 되었다.

【2부 | 메이지유신의 스승, 요시다 쇼인】 접기
P. 132~133 전국을 군현제로 만들어 도쿠가와 왕조를 만들도록 도와주겠다는 프랑스의 유혹도 막부는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받아들이지 않았다기보다는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외세의 지원은 분명히 엄청난 힘이 되는 건 사실이었지만, 료마가 분노한 데서 보듯 외세와 결탁했다는 꼬리표는 그것을 능가하는 정치적 손실을 가져오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권력투쟁이 격렬해져도 외세와 결탁하는 것은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정치 엘리트 간에 암묵적으로 진행되어 있었다.

【3부 | 일본을 세탁하다, 사카모토 료마】 접기
P. 177~188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는 사후 우상화되었다. 천황을 옹립하고 있는 메이지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으니 역적임에 틀림없는데 아무도 맘속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메이지 천황도 오쿠보 도시미치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는 근대 일본인의 아이덴티티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 메이지유신은 엄청난 서구화 변혁이었다.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서구화를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민족적 상실감을 사이고를 통해서 만회하려고 했던 것이다.

【4부 |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 접기
P. 260 미국과 유럽 각국을 직접 보니 일본 국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아이들 장난 같았다. 사무라이 기득권이니 일본 전통 보존이니 하는 것들을 운위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필사의 각오로 일본 자체를 유럽처럼 만들지 않고서는 기득권도 전통도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었다. 일본 전통과 일본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을 ‘유럽적인 하나의 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5부 | 근대 일본의 철혈재상, 오쿠보 도시미치】 접기
P. 20 우리는 모두 하늘이 펼쳐놓은 그물망 속에서 산다. 달리 말하면 시대적 제약이다. 역사상 위업을 이룬 인물들은 이 그물망의 한 부분을 뚫고 나간 사람들이다. 이들의 영웅적 활약에만 흥미 본위로 집중하다 보면 영웅사관에 빠지거나 궁중사극의 재판이 될 것이고, 그물망 분석에만 치중하다 보면 역사에서 인간의 주체성은희미해질 것이다. 이 책은 이 양자 간의 긴장관계를 항상 염두에 둘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접기 - 페넬로페
P. 5 일본사란?
日本史, Japanese History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한국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일본의 역사를통해, 일본 및 일본인에 대한 이해 도모를 목표로 한다. 역사적으로 한국과교류가 가장 많았던 일본을 바로 알기 위한 전제로서 일본의 역사에 대한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한국에서의 일본사 연구는 한국사 연구가 보다유기적이고 비교사학적으로 발전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동아시아 역사의 해석을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는 데기여하고 있다. 접기 - 대장정
P. 6 연호(年號)
특정 군주 즉위 후 통치 기간을 일컫는 용어다. 일본은 오늘날까지 천황의연호를 사용하는 유일한 국가로, 일본 역사상 천황의 가문이 한 번도 바뀐적이 없기에 천 년이 넘게 이어져오는 전통이다. 근대 일본이 만들어진 과정을 ‘메이지(여성) 혁명‘이 아닌 ‘메이지유신‘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연호로는 ‘메이지‘, ‘헤이세이‘, 서기 2019년부터 사용하고있는 ‘레이‘ 등이 있다. 접기 - 대장정
P. 6 막부(幕府)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천황을 신앙적 존재로 두면서 실질적으로 국가를다스렸던 무사 정권을 말한다. 이는 각 지방에 영주를 보내 통솔케 하는 일본식 봉건제 체제였으며, 막부의 수장인 ‘장군(정이대장군이 실질적인 통치자 역할을 했다. 에도(도쿠가와) 막부를 끝으로 막부 시대는 막을 내리고메이지유신이 선포되면서 근대 일본이 열리게 된다. 접기 -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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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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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국민대 일본학과를 거쳐 현재 서울대 역사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세기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체제 비교, 일본인의 대외 인식과 내셔널리즘의 형성 과정을 연구해왔다. 저서로 《위험한 일본책》,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 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등이 있다.

최근작 :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과 근대>,<사료로 보는 아시아사> … 총 3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근대 일본을 만들어 낸 결정적 인물들!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강의를 책으로 만난다!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엄선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의 열네 번째 책이 출간됐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의 명강의를 책으로 옮긴 서가명강 시리즈는 독자들에게 지식의 확장과 배움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의 저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는 메이지유신의 토대를 닦은 4명의 사무라이인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일본사를 풀어냈다. 여러 언론에서 칼럼 연재 및 강의와 집필 등으로 일본에 대한 이해를 도왔던 저자는, 필사의 도약과 비극적인 최후 등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근대 일본을 만든 혁명가들을 조명한다.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을 통해 일본의 역사를 이해하는 색다른 경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서가명강' 시리즈를 유튜브 · 강연 · 팟캐스트로 만나보세요!
▶ 강연 www.book21.com/lecture/
▶ 유튜브 youtube.com/서가명강
▶ 오디오클립 audioclip.naver.com/channels/345
▶ 팟빵 www.podbbang.com/ch/14808
▶ 포스트 post.naver.com/21c_sgmk

“나는 일본을 완전히 세탁할 것이다!”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우리에게 일본과의 문제는 숙명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속에서 일본과 당당히 경쟁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그들을 외면하고 밀어내는 것이 아닌, 그들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 역사의 이해는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국내 최고의 일본사 권위자 박훈 교수는 근현대 일본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메이지유신’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오늘날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닦아놓은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이란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일본열도를 강타했던 사회적 대변혁을 말한다. 성공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체제를 혁신하며 대변혁을 이루어 낸 일본은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명실상부한 근대 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그렇다면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으며, 이를 설계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책에서는 대변혁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네 명의 사무라이가 등장한다.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주 ‘요시다 쇼인’, 근대 일본의 아이콘 ‘사카모토 료마’, 마지막까지 사무라이로 남은 ‘사이고 다카모리’, 냉철한 판단력과 리더십으로 혼란을 정비한 ‘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근대 일본이 탄생한 과정을 소개한다. 저자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과감한 판단으로 극적인 혁신을 이루어낸 이들의 드라마 같은 삶을 보여주면서, 대정봉환, 삿초맹약, 흑선사건 등 일본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유려하게 풀어냈다.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메이지유신 주역들을 통해 배우는 일본사 강의!
이 책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낯설게 느껴지는 일본사에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막부 말기 혼돈의 시대에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네 혁명가의 삶을 역사적 사건과 묶어 설명한다.
1부에서는 막부 말기 도쿠가와 시대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설명하며, 메이지유신이 태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한다. 저자는 장기간의 평화로 인해 출세의 길을 잃은 하급 사무라이들이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을 들고 유학을 공부하게 된 것을 강조하면서, ‘칼’로 대변됐던 사무라이를 새롭게 접하게 한다. 책을 든 사무라이들은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존왕양이론’을 주장했고, 이는 이후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무사 계급을 결집시켰다.
2부에서는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주로 여겨지는 요시다 쇼인을 조명한다. 쇼인은 송하촌숙이라는 작은 학교에서 인재를 가르치며 사상을 전파하고 토론의 장을 열며 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저자는 쇼인이 송하촌숙에서 주장했던 존왕양이론이 단순히 외세를 배척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쇄국을 부정하며 부국강병을 꿈꿨던 일종의 ‘양이개혁론’이었음을 강조한다.
3부에서는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사이를 중재하며 삿초맹약을 이끌었던 시대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를 그리고 있다. 저자는 탈번에서 삿초맹약과 대정봉환까지,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았던 료마의 삶을 가감 없이 서술하고 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읽어내려가면 왜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이 ‘근대 일본의 아이콘’ 료마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4부에서는 ‘근대 일본의 로망’으로 불리면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모델이 된 사이고 다카모리의 삶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서구 문물과 일본의 전통을 모두 지키고자 했던 그의 모습이 대변혁의 과정 중에서 상실되었던 일본인들의 정체성과 밀접하다고 말하면서, 역사적 인물 속에 시대의 요구가 투영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5부에서는 ‘유신삼걸’ 중 하나이자 근대 일본 최초의 내무경이었던 오쿠보 도시미치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이 책에서는 현실적인 리더십으로 인해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지는 않았지만 혼란의 시대를 정비한 오쿠보 도시미치의 업적을 재조명한다. 이처럼 저자는 메이지유신이라는 대변혁 뒤에 숨겨져 있었던 개혁가들의 필사적인 행보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왜 일본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경쟁하기 위해선 먼저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네 명의 사무라이들은 모두 하급 무사 출신으로, 지배층이었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 직면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설계한 대로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쓰였다. 그들의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과감한 추진력은 오늘날에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혹여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무시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존경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다. 다만 자세히 알 필요는 있다.”
이 책은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마지막 사무라이들을 통해 거리감이 느껴졌던 일본사와 가까워지도록 하면서 역사를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일본의 역사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한일 양국이 건강한 경쟁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발판이 될 것이다.

내 삶에 교양과 품격을 더해줄 지식 아카이브, ‘서가명강’
서울대 학생들이 듣는 인기 강의를 누구나 듣고 배울 수 있다면?

★★★ 서울대생들이 듣는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 직장 생활에 지친 나에게 주는 선물 같다!
★★★ 살아가는 데 진짜 필요한 공부였다!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울대학교 강의를 엮은 시리즈로, 현직 서울대 교수들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의를 재구성하여 도서에 담았다. 2017년 여름부터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은 ‘서가명강’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다른 주제의 강의를 펼쳤으며, 매회 약 100여 명의 청중들은 명강의의 향연에 감동하고 열광했다. 서가명강의 다채로운 인문학 콘텐츠는 도서뿐만 아니라 현장 강연과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으며, 서울대생들이 직접 뽑은 인기 강의, 전공을 넘나드는 융합 강의, 트렌드를 접목한 실용 지식까지, 젊고 혁신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출퇴근길을 이용해 교양 지식을 쌓고자 하는 직장인, 진로를 탐색하려는 청소년, 나아가 늘 가슴에 공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교양인들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명강의를 손쉽게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 서가명강 유튜브 https://www.youtube.com/서가명강
* 서가명강 온.오프라인 강연 www.book21.com/lecture
* 서가명강 팟캐스트 audioclip.naver.com/channels/345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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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네 명을 통해 본 일본 변혁기의 역사. 정신적 절대지주 ‘요시다 쇼인‘, 삿초 동맹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 냉철한 현실관료 ‘오쿠보 도시미치‘. 면면히 흐르는 인물들의 역사를 통해 메이지 유신의 전개양상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음.
피라미 2022-11-07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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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주도세력 하급 사무라이
150년 전 그들의 전략적인 현실인식이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구나하는 느낌에 소름끼친다.
그래서 일본을 철저하게 알아야한다는 저저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인간군상들이 득실대는 일본이란 이웃을 가진 대한민국이 한편으론 참 박복한 느낌이다.
deng 2022-04-1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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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와 적대적 공생관계인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리트머스 시험지, 메이지 유신, 막부의 마지막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조슈번의 토막파 리더인 기도 다카요시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해진다. 평전이 나왔을 텐데....
군자란 2021-06-0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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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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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세계가 두려워하는(?) 일본을 유독 한국은 무시한다고 합니다. 35년간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경험이 그런 불편함을 가져다 주었지요. 하지만 어느 나라보다도 일본을 잘 알아야 합니다. 다시는 식민지배의 비극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요.

일본을 잘 알기 위해서는 메이지 유신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메이지유신은 서구문명이 아닌 곳에서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룬, 나아가 세계대전까지 일으킨 일본을 만든 뼈대이기 때문이죠.

이 책은 그 메이지유신이 일어날 시기의 시대상황과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을 이야기합니다.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가 그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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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 2021-09-05 공감(2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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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지금의 일본을 만든 인물들













격월간 서평 전문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이하 서리북)를 구독하고 있다. 서리북 덕분에 좋은 필자들을 여럿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쓴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이 그중 하나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박훈 교수가 집필하거나 번역한 책들을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몇 해 전에 읽은, 21세기북스에서 나온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박훈 교수가 번역한 걸 뒤늦게 알고 반가웠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일본의 역사를 바꾸고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역사를 바꾼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이지유신 전후를 다룬다. 메이지유신의 결과 약 270년 동안 지속되었던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고 일왕 중심의 메이지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이후 일본에선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이 정권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이들은 조선 침략과 한일병합, 식민통치를 이끌었다.




저자는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쳤던 네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네 인물은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스승 같은 인물이다. 그는 강력한 쇄국정책이 시행되었던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해외의 사상과 문물에 관심을 가졌고, 유학뿐 아니라 병학에도 능통해 해군 육성을 재촉했으며, 신분과 지역의 구분을 넘어서는 협력을 제안했다(초망굴기론).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2010년 방영된 후쿠야마 마사하루 주연 NHK 드라마 <료마전>을 비롯해 메이지유신 전후가 배경인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등에 반드시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의 대기업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가 존경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관습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국제적인 마인드, 이웃나라들과 반목하지 않고 협력하는 태도를 보인 점 등은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요시다 쇼인과 사카모토 료마가 메이지유신의 기틀을 다졌다면,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는 메이지유신을 실행했다고 볼 수 있다.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는 둘 다 '유신삼걸'로 불리지만 리더십이나 스타일이 매우 달랐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최후의 사무라이'라고 불릴 만큼 완고한 캐릭터였다면, 오쿠보 도시미치는 유연하고 현실적이었다. 이들과 함께 유신삼걸로 불린 또 다른 인물, 기도 다카요시에 대해서는 다른 책에서 다룬다고 한다. 그 책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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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2022-04-19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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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제목에서처럼 메이지유신으로 가는 길을 연 4명의 사무라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이 4명이 모두 메이지유신을 직접 이끈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이는 5부의 오쿠보 도시미치 한 명 뿐이다. 2부의 요시다 쇼인은 혁명으로 가는 불씨를 지폈으며, 3부의 사카모토 료마는 메이지유신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연 극적인 인물이다. 4부의 사이고 다카모리는 유신으로 가는 길에는 동참했지만 결정적 순간에 다른 길을 택함으로써 전설로 남은 마지막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바로 그 장군) 이 책은 이렇게 4명의 인물을 통해 일본의 메이지유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촉발되었는지 재밌게 설명해준다. 역사학자의 글이지만 대중 독자들을 위해서 쓴 글이니만큼 내용도 친절하고 학술 용어들을 쉽게 풀어 써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근대 일본이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메이지유신이 어떤 경로를 통해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한 이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다만 메이지유신 그 자체에 대한 내용은 소략하다.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는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의 후속편 같은 느낌이다. 즉 후자가 메이지유신으로의 길을 연 사무라이들을 소개한다면 전자는 어떻게 그들이 메이지유신을 성공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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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lp 2022-01-17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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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서구 열강의 출현은 무엇보다도 군사적 위협을 의미했다.성경이나 무역품에 앞서 함선과 대포가 먼저 나타났기 때문이다.무인 집단인 사무라이는 본능적으로 전쟁의 위기를 직감했고,승산을 냉혹하게 계산했다.무인의 입장에서 전쟁의 승산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40-)


다음 날 형자으로 가면서는 "나는 지금 나라를 위해 죽는다.죽어서도 주군과 부모를 배신하지 않는다.천지의 일은 유유하며 신명이 모든 걸 비추고 계신다."라는 시를 읊었다.(-93-)


라슼트사무라이.사이고는 사후 우상화되었다.천황을 옹립하고 있는 메이지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으니 역적임에 틀림없는데 아무도 맘속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메이지 천황도 오쿠보 도시미치도 마찬가지였다.(-177-)


메이지유신 당시에는 '일신'괴 '유신'이라는 말이 경쟁하다 유신으로 정착되었다.700년간 계속된 사무라이 지배를 무너뜨리고 신분제를 혁파하고 서양화를 추구했으니 혁명이라고도 할 만한데,일본인들은 지금까지도 '일본 혁명' 혹은 '메이지 혁명'이라 하지 않고 유신이라고만 한다. 왜 그럴까?(-248-)


대한민국에는 10월 유신이 있다.일본은 10월 유신 이전에 메이지 유신 혹은 명치 유신이 있었다. 여기서 유신은 중국 고전에서 따온 말이며, 시대적 변화와 흐름의 큰 물결을 나타내고 있었다.유신은 혁명과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메이지 유신은 프랑스대혁명,러시아 혁명과 결을 다르게 하고 있다.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신분제 혁파가 일어났으며, 시대적인 변화,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번과 막부 위주의 사무라이의 정신을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따라 자신을 바꿔 나갔다.그 때가 1877년에서 1878년 그 사이였디. 즉 일본을 알려면,메이지 유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최후의 사무라이, 요시다 쇼인, 시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오쿠보 도시미치의 삶을 이해할 때, 일본의 역사,문화, 정치를 이해할 수 있다.막부와 번,사무라이는 사라졌지만, 일본은 여전히 사무라이 정신을 잊지 않고 있으며, 천황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들은 시대적 격변기를 마주하면서, 요시다 쇼인은 29살에 처형 당했으며, 시카모토 료마는 31살에 암살당했다.사이코 다카모리는 49살의 나이로 전삳괴었으며,오쿠보 도시미치는 48살에 암살되고 말았다.즉 그들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면서도,그로 인해 그 격변의 변화를 몸으로 받아들인 인물이며, 지금까지 일본인들의 정신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었다.


이 책은 메이지 유신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는 하나의 길잡이다. 격변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있으며,일본인들의 위기 의식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형성했음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었다.그들은 서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세계속의 일본이 되고 싶었다.봉건제 밑에서 안정을 꾀했던 그들의 위기의식이 그들 스스로 변화하였고, 경제대국 일본을 만들었다고 보면 ,어느정도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반면 조선은 그렇지 않았다.그들은 중국을 믿고,서양을 배척하게 된다.일본이 섬나라라는 특수한 환경이 그들을 스스로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생존술을 터득해 나갔지만,반도국가 조선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믿어 의심하지 않은 중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대주의에 갇혀 있었던 조선과 탈 새대주의를 외쳤던 일본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으며, 마지막 사무라이의 발자취를 좀더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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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21-01-08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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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메이지유신은 지배층인 사무라이층 내부의 다툼과 그 파장으로 일어난 것이고, 그 속에서 급진개혁파가 주도권을 잡아 이뤄낸 변혁이었다. 이런 메이지유신의 성격은 일본사회에 보수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보수성이라고 해서 변화를 거부한다는 뜻은 아니다. 커다란 변혁을 보수세력이 점진적인 방법을 통해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변혁이 진행되어도 사회질서가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일 없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일본 대중은 정치참여에 관심이 덜하다.


...변혁 과정에서 번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엇갈렸다. 요시다 쇼인은 번의 보수성에 절망한 나머지 일반 사무라이나 상층 농민이 번을 뛰어넘어 연계해서 정치세력을 만드는 ‘초망굴기론’을 주장했다. 조정의 공경도 번의 대명도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것이다....사쓰마번의 오쿠보 도시미치는 한 차례 일반 사무라이들의 봉기를 시도한 적은 있으나 그것이 실패로 끝난 후 현실을 자각했다. 그는 번 권력을 이용하기 위해 권력자에 열심히 접근해서 그의 신뢰를 획득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결국 그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사쓰마번의 전체 권력을 이용하여 메이지유신의 왕정복고 쿠데타를 성공시켰다...한편 사카모토 료마는 일찌감치 탈번을 감행했다. 낭인이 된 것이다. 그는 교토, 에도, 나가사키 등지에서 여러 동지들을 모아 반막부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그에게는 번이 없어도 좋았다. 그러나 번이 스스로 알아서 도와준다면 마다할 이유는 또 없었다. 사면, 탈번, 사면을 반복하던 그는 결국 도사번이 지원하는 해원대를 창설했고, 도사번의 힘을 이용하여 장군의 권력을 천황에 반환하는 대정봉환을 실현시켰다...번 밖 초망들의 단결된 힘과 번 권력의 지원을 함께 묶어낼 수 있었던 데 료마의 성공배경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는 사후 우상화되었다. 천황을 옹립하고 있는 메이지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으니 역적임에 틀림없는데 아무도 맘속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메이지 천황도 오쿠보 도시미치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는 근대 일본인의 아이덴티티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 메이지유신은 엄청난 서구화 변혁이었다.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서구화를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민족적 상실감을 사이고를 통해서 만회하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새삼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무장봉기 세력은 그렇다 쳐도 일본의 초기 민주주의운동을 주창한 세력이 그 뿌리를 정한론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후 메이지 정치세력 중 중요한 한 부분인 민권파는 대내적으로는 인민의 자유와 정치참여를 촉구했지만, 대외적으로는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침략적인 태도를 강하게 드러냈다. 오히려 메이지 정부가 이들의 강경한 주장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메이지 정부를 비롯한 국권파뿐 아니라 이들도 공격적인 내셔널리즘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메이지유신은 그 자체로도 혁명사의 흥미로운 사례다. 거대한 변혁을 수행하면서도 기존사회의 어떤 부분은 잔존시켰고 연속성을 중시했다. 천황제의 온존은 대표적이다. 그 과정은 격렬하지만은 않았고 매우 타협적이었다. ‘연속하면서 혁신’한 것이다. 본격적인 계급투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외세와의 전쟁도 광범한 내전도 회피했다. 민중 대다수는 변혁 과정을 관망하는 데 그쳤고, 막부는 서양 열강과 전쟁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메이지 정부 수립 직후 막부잔존세력과 벌인 무진전쟁도, 사이고 다카모리가 반란을 일으킨 서남전쟁도 국지전에 머물며 단기간에 끝났다. 이 때문에 변혁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 수는 다른 혁명에 비하면 매우 적었다.


...한편으로 메이지유신은 일본의 한계와 약점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 강렬한 일본우월주의는 끊임없이 주변 국가인 조선, 중국과 마찰을 일으켰고, 끝내는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려 자멸했다. 우월주의는 콤플렉스의 다른 면이다. 천황에 대한 맹신은 사회 전체를 체계적으로 권위주의화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근대 일본의 눈부신 성취에 비해 아직도 일본 사회에서 초라한 존재다. 메이지유신을 존왕양이와 부국강병으로만 회상하는 것은 위험하다. 메이지유신의 또 하나의 목표였던 문명개화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관한 한, 아직도 미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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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2023-06-06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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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역사책 추천: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일본사를 읽다보면 개인적으로 읽을 때마다 상대적인 분노(?)를 느끼는 구간이 있다. 그게 바로 일본에 흑선(쿠로부네, 서양 증기선)이 상륙했던 시점부터 메이지유신 직후까지다. 분명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에 통신사를 요청해서, 조선의 문물을 배워간 일본이었다. 하지만 저 시기를 기점으로 일본은 급격하게 근대화 노선을 타기 시작했고, 성공적으로 근대화에 이르렀다. 반면 조선은 발전의 시계가 더 뒤로 갔다. 주 권력층이었던 민생을 생각하기는 커녕 노론들은 권력 싸움하느라 바빴다. 그 과정에서 가렴주구한 행태가 빈번히 나타났다. 조선 후기 잦은 민란이 발생한 이유다.











당시 일본 지배층은 도쿠가와 막부 및 사무라이였다. 쉽게 보면 조선의 왕과 신하(양반)들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의 양반네들처럼 도쿠가와 막부 하 사무라이들도 백성들을 부려먹으로 가렴주구 했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도쿠가와 막부 하에서 피지배층인 농민들이, 지배층인 사무라이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했다.



지속적인 경제 발전으로 인해 상인들이 부를 축적했다. 농민들도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부를 축적했다. 농민들이 부를 쌓으니, 막부에서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걷을라 치면 바로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당시 일본의 농민들은 그정도로 단합이 잘 되어 있었다. 반면에 신분상으로는 지배계층인 사무라이들은 피지배층인 농민, 상인보다 실질적인 생활수준은 매우 낮았다.



당시 일본은 계층에 따라 거주지가 제한되어 있었고, 병농이 분리되어 있었다. 농민들은 농지(대충 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상인은 시장에서 가업을 이어가며 살았으며, 사무라이들은 번주가 부르면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도시에서 살았다. 농민들은 농사만 지을 수 있었고, 상인들은 상업만 할 수 있었으며, 사무라이들은 오로지 번주를 지키는 무업이 숙명이었다.



농업 및 상업 활동을 하며 실질적인 부를 챙긴 농민, 상인들과는 달리 사무라이는 주군에게 받는 봉급 외에는 소득이 없었다. 심지어 도시에 거주하다보니, 경제발전으로 오르는 물가상승에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이되,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임노동자들도 경제적 상황이 안좋은 건 매한가지였다.



여기까지가 도쿠가와 막부 당시 일본 상황이다.




보통 사회적인 불만을 가진 계층이 늘어나면, 그 계층에서 개혁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다만 피지배층에서 시작된 개혁은 보통 실패하거나 성공해도 오랜 기간 진통을 앓는다. 하지만 일본 근대화 개혁인 메이지 유신은 달랐다. 안정적으로 시행되었고, 짧은 시간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개혁을 주도한 계층이, 다름아닌 지배계층 사무라이라는 것!



칼 차고 싸움질만 하던 사무라이들이 어떻게, 그 어려운 근대화 개혁을 성공했을까? 그 이유는 다름아닌 거주지 제한에 있었다. 그들은 거주지 제한으로 인해 돈이 없어도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살아야만했다. 도시에 살다보니 자연스레 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났다. 실제로 19세기에 이르면, 이미 많은 사무라이들이 유학(주자학)을 배우거나, 이미 배워서 그 수준이 꽤 높았음을 여러 사료를 통해 알 수 있다. 한마디로 19세기 당시 사무라이는 허리에는 칼을 차고, 책을 읽는 ‘독서하는 사무라이’ 였다.



이뿐만 아니다. 도시에 살다보니, 격변하는 정세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세계 정보가 도시로 몰려들었다. 제일 큰 변화는 함선과 대포로 무장한 서구열강 증기선이 일본 항구에 나타난 사실이다. 무인이였던 사무라이들은 느꼈을 것이다. 서구와 싸웠을 때, 자신들에겐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심지어 일본에는 해군도 없었다. 이는 개인의 생명 문제가 아니었다. 서구열강이 쳐들어보면, 지금으 일본이라는 나라는 지도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근본적인 위기였다.



서구열강을 향한 위기감을 느낀 ‘독서하는 사무라이’들. 그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본을 근대화 시키는데 앞장섰고, 성공시켰다. 그게 바로 메이지 유신이다. 메이지 유신까지 이르게 한 ‘왕정복고(대정봉환)’ 도 역시 ‘독서하는 사무라이’들이 주도했다.



중세를 살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근대를 살아야 하는건 엄청난 변화다. 하지만 일본은 이토록 거대한 변화를 충격없이 받아들였다. 이유는 단 하나다. 앞서 언급했듯이 개혁을 주도한 ‘사무라이’가 지배계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으로 인해 사회질서가 무너질 일이 없고, 처음부터 지배계층이서 시작된 개혁이니 피지배계층은 기존 처럼 수긍하며 따랐던 것이다.



이 책은 메이지 유신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4명에 대해 설명한다. 그들의 이름은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일본사 또는 일본 드라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1~2명 정도는 들어봤을 그들의 이름이다.






요시다 쇼인


‘병학사범’ 쇼인은 이제 검술로는 서양을 상대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해군 육성을 재촉한 것이다. 뒤에 나오겠지만 사카모토 료마도 이 무렵 고향의 난학자에게서 해군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고, 이어 일본 해군 탄생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가쓰 가이슈의 제자가 된다. 사무라이는 원래 해군과는 무관한 존재들이다. 창검술, 기마에 대한 이들의 집착은 거의 중교적인 것이었다. 그만큼 해군 육성이라는 발상의 전환은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쇼인도, 료마도 이런 오랜 전통과 관례를 끊어버리고 해군 양성의 절박성을 바로 간파했다. p 063


요시다 쇼인은 어려서부터 신동이었다. 10대 때 아편전쟁에 대륙이 패배했다는 사실은 인지하는 것은 물론 서양관련 서적을 탐독하였다. 그가 19세 나이에 번에 올린 「수륙전략」은, 그가 얼마나 서양에 대해 공부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본인조차 땅에 발을 디디고 검을 사용하는 사무라이였음에도 그는 ‘해군’ 양성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이는 전국시대 당시 총검술을 버리고 조총을 선택했던 오다 노부나가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었다.



동시간대 조선은 어땠을까. 강화도령 철종이 즉위하던 무렵이었으며, 세도정치가 한창인 시기이자,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한 행태로 농민들은 죽거나, 도망가거나, 죽지못해 살거나 였다.




그는 옥중에서 죄수들을 상대로 『맹자』를 강의했다. 이 강의는 1855년 12월 보석으로 풀려난 후에도 친족과 찾아오는 청년들을 상대로 자택에서 1857년 6월까지 계속되었고, 그 내용은 저 유명한 『강맹차기』로 정리되었다. (…) 숙부 중 한 명인 다마키 문노신이 이전부터 송하촌숙이라는 사숙을 열고 있었는데, 쇼인의 학생이 날로 늘어나자 그가 이것을 인계했다. 쇼인 송하촌숙의 탄생이다. p 068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근대 일본의 정계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쌍벽을 이루던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송하손축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이인데 훗날 정적이 되었다. 이토가 온건파라면 야마가타는 강경파다. (…) 늘 대외강경 노선을 걷던 야마가타는 한국병합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토 한국통감이 보호국하에서 병합으로 나아가는 걸 주저하고 있을 때 그와 가쓰라 내각은 한국병합을 향한 움직임을 강화해나갔다. 이토도 결국 거기에 동의했다. p 099




요시다 쇼인의 일생은 여행 및 감옥으로 갈린다. 당시 막부 하에서는 자신이 속한 번을 떠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라를 떠나는 건 더욱 그랬다. 하지만 쇼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다니며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해외 정보를 수집했다. 여행이 끝나면 여행을 떠났다는 이유로 또는 너무 급진개혁파인 이유로 감옥에 들어갔다. 다만 감옥이라고는 해도 사무라이다보니, 옥중에서도 어느정도 생활을 보장받았다. 심지어 쇼인은 옥중에서 죄수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고, 출옥한 이후에는 정식으로 사숙을 열었다. 우리말로 바꾸면 대충 서당 또는 서원 느낌인 교육기관이라고 보면 된다.



요시다 쇼인의 강의를 듣기위해 많은 사무라이들이 각지에서 몰려왔다. 그렇게 요시다 쇼인의 제자가 된 사람들 중 일부를 보자. ‘구사카 겐즈이’, ‘다카스기 신사쿠’, ‘시나가와 야지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노무라 야스시’, ‘이리에 구이치’. 흡사 훗날 메이지 정부의 내각 진용을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한 느낌이다. 특히 이들 이름 중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름도 있으니 바로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모두 메이지 정부 내각총리 출신이며, 이토 히로부미는 경술국치 이후 초대 조선통감이었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조선통감부 부의장이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요시다 쇼인의 제자였던, 메이지 정부 요인들은 과거 쇼인이 구상했던 해외팽창을 착수해나갔다.




쇼인의 해외팽창 구상을 들어보자. 북으로는 만주, 훗카이도, 더 나아가 캄차카반도와 오호츠크해, 서로는 조선, 남으로는 류큐, 대만, 필리핀까지 일본의 수중에 넣자는 것이다. “조선을 옛날과 마찬가지로 공납하도록 촉구”하자는 말은 고대에 진구황후가 신라를 정벌했다는 『일본서기』의 전설 같은 얘기에 기초한 것인데 당시에 크게 유행했었다. 여기까지도 황당무계하고 무모한 발상인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류큐, 필리핀을 넘어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그 장대한 구상에 한편으로는 놀라게 되기도 하지만, 무모하다고밖에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생각이다. p 077




▶대동아 공영권

일본·중국·만주를 중축(中軸)으로 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타이·말레이시아·보르네오·네덜란드령 동인도·미얀마·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인도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의 정치적·경제적인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블록화하는 정책.



이는 요시다 쇼인이 생전에 구상하던 해외팽창 계획이자, 요시다 쇼인 사후 메이지 유신을 성공한 쇼인의 제자들이 진행한 프로젝트다. 실제로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정책하에 조선을 비롯한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를 식민지배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물론 미국 건드리는 바람에 대차게 패배했지만.

​​

이 책의 저자 박훈 교수는 프롤로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서양인들은 일본 사회를 조금 이상하게 보기는 해도 무시하지는 않으며, 중국인들은 꽤 미워하지만 그렇다고 깔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무시하고 본다. 꼭 알아야 할 지점에서 눈을 감아버린다. 그래서는 안된다. 혹여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무시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존경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다. - 들어가는 글 中




한일관계는 가위바위보도 지면안된다. 이 말 하나로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일본을 무시하고 미워한다는 사실을. 문제는 ‘알려하지 않고’ 무작정 미워한다는 것이다. 반일이건, 극일이건 일본을 알아야만 가능한 것인데, 일단 우리 기본 전제는 ‘무시’다. 일본 따위를 왜 알아야 하느냐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근데.. 과연 그럴까? 정말 일본을 모른채 무작정 미워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더군다나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지금에 말이다.



역대 정권들을 보면 정당에 따라 한 쪽은 무작정 반일, 또 한 쪽은 무작정 친일이었다. 한창 반일이 치솟을 땐 일본의 매우 몰염치한 행위가 있었다. 물론 그에 동조하는 국내 친일세력도 있었다. 심지어 일본의 몰염치는, 정확히 일본 정부의 몰염치는 지금도 진행중이라는게 함정이다. 예컨데 과거사 문제라던가,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도 그렇고. 이런 일본의 몰염치한 행위 때문에, 일본을 알아야된다는 생각이 더욱 사라지는 것 같기는 하다만. 근데 또 우리나라 현재 정권은 역대급 친일이라 당황스럽다. 이건뭐 냉탕, 온탕도 아니고 정권마다 이렇게 차이가 있어서야 원.



뭐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알아야한다. 빡치면 빡칠수록, 저놈들이 대체 왜그러는지 알아야만 그에 맞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조금더 바라는게 있다면, 정권 따라 대일관계 기조가 극심하게 바뀌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고. 다른나라는 그렇다치더라도 대일관계에 있어서는 좀 체계적인 방식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적어도 지금처럼 정당따라 난 친일! 난 반일! 이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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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2023-11-16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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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역사를 알기 위한 첫 걸음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일본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 적대적인 감정이 무조건적으로 튀어나오지만 막상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무척 곤란해요. 일본에 대해, 일본 민족에 대해, 일본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해서는 공부하지만 그 시대 이외의 일본을 배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죠.



서울대학교 박훈 교수님은 이런 현실에서 일본을 상대하기 위해 일본을 알아야하고 그 첫걸음으로 오늘의 일본을 만든 메이지유신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그런 저자의 생각은 강의에서, 또한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이라는 책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요.



처음부터 놀랐어요. 사무라이랑 메이지유신이랑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무라이라고 하면 칼을 차고 전쟁터를 누비는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는데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사무라이들은 전투 능력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우수한, 소위 말해 문무를 겸비한 인재들이었어요.



저자는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라는 네 명의 인물들이 걸어간 행적을 살펴보면서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시대의 일본의 모습과 사무라이들이 칼 대신 책을 든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세요.



저자가 설명한 네 명의 인물 중 요시다 쇼인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인물이었고 나머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이들이라 낯설기는 했지만 한 편의 시대극을 보는 듯한 서술에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정말 재미있게 읽었네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그저 적으로 여기며 무시하기만 하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어요. 또한 그들의 역사가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기 위한 첫 걸음이라 생각하고 일본을 알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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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a6363 2021-01-06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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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4. 일본방식은 틀렸다! 대한민국을 주목하게 만들어라



'서가명강' 시리즈를 구매한 지도 꽤나 오래전에 지났고, 책꽂이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장식해두었건만, 좀처럼 읽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출근길에 '책등'을 바라보며 읽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상기시키곤 하지만, 늘 다른 책에 밀려 읽지 못하고 있다. 쟁여두고 읽지 않은 책이 어찌 이 책뿐일까. 허나 요즘 오래 묵힌 책장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책정리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 가뿐해진 마음으로 휘릭 읽어보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해본다.



저자 박훈은 '일본사'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불편한 이웃이라하더라도 '알아야' 대비할 수 있으며, '알아야' 유리하게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고작 '일본따위'에게서 배울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생각에도 일침을 놓는다. "어느 나라 역사이건 간에 배울 것이 없는 역사는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기왕 배울 요량이면 '철저히' 배우려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한다. 여기까지 듣고 보니 더없이 옳은 말이라서 다시금 '일본사'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보기로 했다.



허나 '일본사'가 좀 껄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천 년이 넘도록 우리나라 옆에서 알짱거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허를 찌르며 알멩이만 날름 빼가며 '받은 것 없이 주기만'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얻는 것 없이 빼앗기기만' 한 것도 같아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우리보다 열악하다 못해 조악할 지경이라 솔직히 배울 것도 없고, 이후로는 배은망덕하게도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치욕스런 수모를 겪게 만들었기에 '일본사'는 배우다가 열폭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일본사'를 꼭 배워야 한다면, 저자는 '명치유신(메이지유신)'부터 공부하라고 귀띔해주었다. 확실히 일본이 급속도로 '변화'를 보이며, 빠르게 '발전'을 하고 있어 배울 맛이 나는 지점이기도 하고, 오늘날의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기 때문이란다. 역시나 이 말에도 수긍해버렸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명치유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임진왜란 이후 대략 360년간 실제적인 권력을 갖고 있던 '에도 막부(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의 왕(천황, 이하 '일왕')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이양(대정봉환)하면서 '근대 일본'으로 변환됨과 동시에 점점 조여오는 '서양의 침탈'과 극심한 '내부의 혼란'을 대외 팽창으로 극복해보려는 의욕과 야심이 복합적으로 표출된 일대 개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는 '명치유신'을 4인방을 중심으로 해부하고자 했다. 바로 '요시다 쇼인'과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다.



요시다 쇼인은 근대일본의 상징 같은 존재다. 일본의 '명치유신'을 이끌었던 인물들이 거의 '쇼인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스승이라는 작자가 가르친 덕목 가운데 하나가 '침략'이었으니, 근대 일본이 제국주의에 물들어 '이웃나라'를 침공한 원흉이 바로 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가르쳐도 부족할 판에 제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가르쳤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도 일본의 극우파들은 '쇼인의 사상'을 내세우며 일본의 단결을 주장하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말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망언을 일삼곤 한다. 우리가 일본의 침략본성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이 사람'을 철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그렇게 유명인사는 아니었으나 일본의 국민작가로 알려진 시바 료타로가 쓴 <료마가 간다>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개혁인물이다. 료마는 근대일본의 핵심인물을 많이 배출한 조슈번과 사쓰마번 출신이 아니라, 도사번 출신이다. 하지만 료마는 일찌감치 '번 탈주'를 시도해 '낭인' 신분으로 명치유신의 한복판에서 대활약을 했으니 '아싸'와 '인싸'를 오가는 대활극을 보여준 유명인이다. 하지만 쇼인과는 다르게 '대외무역'을 주장하면서도 '침략'에는 동조하지 않은 인물이라 우리로서도 호의적인 인물로 봐도 무방하단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도 일찍이 '료마'를 존경한다고 표방했고, 료마가 말했다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꼭 집어 예를 들었다고 한다. 만약 근대일본이 료마의 사상으로 나아갔다면 '동양의 평화'를 이루는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우리가 주목하기에 바람직한 인물이라고 보면 좋겠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라스트 사무라이'로 곧잘 표현한다. 그는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서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보를 보이면서도, 정작 '일본의 전통'을 지키는 쪽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상반된 활약을 보여주어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어찌 보면 '극단적인 인물'로 중간이 없는 사람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테지만, '명치유신'의 주역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거침없이 시도했으면서도 끝내는 '사무라이'로 남아 죽음을 자초한 인물이다.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우호적인 듯 싶다가도 품속에서 칼을 꺼내들고, 속내를 알 수 없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도 난데없는 헛발질로 사람을 놀래키는 것이 '일본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고 당췌 이해할 수도 없는 일본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 꼭 연구해야 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근대일본'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다. 도중에 암살을 당하긴 하지만, 일본은 끝내 도시미치의 구상대로 '진격'을 한다. 그래서 친구였던 다카모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개혁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해 완성을 시켜나갔다. 그의 모토는 '서양을 배워 강한 일본을 만들자'였고,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도시미치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다. 우리가 보기에 그가 '정한론'에 반대한 점을 들어 보기에 좋은 느낌도 들지만, 그가 반대한 까닭은 어디까지나 '아직 준비부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막부의 잔당들이 일으킨 '사무라이 봉기'에 싹쓸이 작전을 펼치는 잔혹함 면을 확연히 드러냈지만, 이후 '대만 문제'에서처럼 신중한 모양새를 띤다. 허나 준비를 마치자 '청일전쟁'부터 1945년 패망 때까지 줄기차게 전쟁을 일삼는데, 이게 '도시미치의 계획'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책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근대일본의 방향키를 알 수 있는 '명치 유신지사들과 일왕의 속셈', 더 나아가 '일본국민들의 속마음'까지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유명한 '4인방'을 중심으로 분석을 해나갔지만, 일본국민들이 유독 '4인방'에 주목하는 까닭을 짐작해보면 얼추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웃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찌해야 할까? 무엇보다 '평화적인 해법'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분이 풀리고 일이 손쉽게 해결할 것처럼 보이는 '전쟁'과 '팽창'은 근대일본의 패망에서 보여지듯 망조만 가득한 해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은 인류의 공영과 평화의 선두주자다. 전세계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주목하는 까닭도 바로 이 점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쓰지 않고도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으니, 인류의 공영과 평화도 '그런 방식'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실현시킬 것인지 말이다. 그 어려운 일을 또 해내는 대한민국을 떠올리며 '일본사'를 낱낱이 파헤쳐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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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之我_또다른나 2023-02-26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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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체성의 출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한 관심과 교류는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를 자문해보면 모른다는 사실 밖에는 답변이 없어 궁색하던 터에, 일본의 현재를 있게 한 메이지 유신부터 살펴보자는 흐릿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메이지 유신의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므로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단번에 파악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역사의 전환점에서 인물들의 서사가 어떤 매듭으로 잇달아 연결되는지 뒤따르는 과정을 통해, 역사에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 한층 더 무게를 두도록 이끈다.





일본의 천황 중심 국가주의나 식민주의를 지향하는 팽창적 국가관, 보수적 사회상의 근간을 이룬 메이지 유신의 유산을 이끈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영웅들의 발현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두려움이면서, 동시에 당대 그들이 가진 실용성, 유연성, 객관적인 현실 판단 능력 등을 갖춘 인물들이 우리에게서는 왜 웅거하지 못했나 아쉬움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메이지 유신은 막번 체제의 혼란과 계급 간 경제적 격차, 서양과의 교류 등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도쿠가와 막부는 에도에 수도를 두고 전국은 번으로 나뉘어 다이묘에게 자치를 허용했다. 막번 체제 속에서 상인 계급의 경제적 성장은 두드러졌지만, 농민이나 하급 무사 등은 경제적 빈곤에 처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페리호의 내항, 외세와의 불평등 조약에서 막부가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점차 신망을 잃기 시작한다. 더욱이 서양 문물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개화 사상이 퍼지기 시작했고, 사쓰마, 조슈 등의 유력 번에서는 자체적으로 군사력, 경제력을 갖추면서 합종연횡을 통해 천황 중심의 새로운 사회를 꿈꾸게 된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이 책에서는 메이지 유신의 주요 인물로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유신을 직접 실행한 당사자는 아니지만, 메이지 유신이 실현될 수 있는 사상적 기틀을 만드는 인물로 광인으로 묘사된다. 그는 지성을 다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는 신조 아래 서양 관련 서적을 구해 필사하면서 서구 열강의 침략 의지를 짚어낸다. 또 존왕양이 사상을 중심으로, 번주에게 서양 무기와 서양식 병제의 채용, 군함 건조의 필요성 및 네덜란드로부터의 군합 구입 등을 촉구하는 등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페리 함대를 지켜본 쇼인은 해외도항까지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송하촌숙을 세워 인재들을 길러낸다. 송하촌숙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토론이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해외팽창에 대한 구상이 이루어졌다. 부국강병을 통해 함선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해외팽창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왕양이는 단순한 쇄국 정책이 아니라 항해통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단순한 양이가 아니라 천황을 중심으로 막부체제의 개혁을 꾀해야 한다는 다다른다. 그러나 쇼인은 막부의 불평등 조약에 대해 반대하고 막부 인사의 살해 및 정치 체제를 전복하려는 반란을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사형된다.




사카모토 료마는 도사번 출신으로 탈번까지 감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막번을 극복하고 천황 중심의 국가주의를 탄생시키는 데 유연성을 발휘한다. 일본의 근대적 해군을 창설하는가 하면 서로 원수였던 사쓰마와 조슈번의 동맹을 이끌어내면서 막부에 대항하는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데 발굴의 능력을 발휘했고, 나아가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권력을 반환하도록 설득하여 대정봉환을 성사시킨다. 일본의 첫 신혼여행이라고 불리는 오료와의 여행,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막부에게 끝내 암살당한 비운 등은 그의 업적과 더불어 낭만성을 더욱 고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는 서양과 근대를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전통을 껴안으려는 행보를 보여줌으로써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 인물. 그는 사쓰마번 출신으로 히사미쓰의 부하 위치였으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를 갖추고 대중의 인기를 얻었으며 권모술수보다는 성심을 앞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쓰마 조슈 동맹의 당사자로 나섰고, 대정봉환 이후에 말만 천황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여전히 도쿠가와 막부가 권력을 행사한다는 판단하에 막부제를 공식 폐지하고 천황 중심의 행정 체계를 포고하는 왕정복고를 단행한다. 이에 반발한 요시노부와의 전쟁에서 총사령관으로 나서게 되고 요시노부측 가쓰 가이슈와 차 한잔으로 회담을 하면서 에도성에 무혈입성한다. 이후 천황 중심의 신정부가 막부보다 더 서구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사무라이 계급의 동요가 일어나자 그는 조선을 무력으로 정복하자는 정한론을 내세우지만, 정권 내에서 기각되면서 실권을 잃고 사쓰마로 돌아간다. 거기에서 나름의 독자적인 군대도 만들면서 권력을 유지했는데, 정부가 가고시마의 탄약고를 반출하려는 데 맞서 사무라이들이 탄약을 탈취하면서 마침내 정부군과 갈등하게 되고 이는 서남전쟁으로 이어진다. 서남전쟁에서 정부군에 패퇴하면서 결국 할복을 선택한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친구로서, 바둑을 배워서 히사미쓰에게 접근했다고 알려질만큼 전략적이고 현실적이다. 사쓰마 조슈 동맹에서 사이고와 함께 업적을 이루었고,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하는 중앙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다. 필사적인 서양 공부를 통해 산업을 장려하고 국가주도의 근대화를 지향하면서 서구에서 배워 더 위대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실천한다. 그는 사이고의 정한론을 기각하고, 서남전쟁에서 정부군의 총괄 책임자로 사이고와 적으로 마주한다. 사이고 죽음의 책임자로 각인되면서 사무라이 계급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힌 후 결국 급진파에게 암살당한다.




메이지 유신은 주역들은 비록 암살당하거나 사형, 자결했지만, 정작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은 칼이 아니라 협상 또는 담판으로 이루어졌다. 저자가 붙인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라는 부제는 그러므로 더 의미심장하다. 사상과 행보는 달랐을지라도 냉철한 현실 인식 속에서 일본의 미래를 그린 사무라이들을 우리 입장에서 무조건 비판할 수 없는 이유, 일본을 더 많이 알아야 할 까닭, 묵직한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이제 내 조국은 일본의 식민지도 아니고 상대도 안 되는 후진국도 아니게 됐다. 한일 간에는 이제야 비로소 ‘베스트 팔렌 체제‘가 시작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의 경쟁이다. 그러려면 양국 시민들은 역사를 숨김없이 직시해야 한다. 그런데 직시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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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fox 2025-07-29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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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서가명강 시리즈 열네 번째 책이에요.

저자는 우리에게 메이지유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있어요.

일본인들은 근현대 일본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메이지유신을 떠올린다고 해요.

메이지유신은 그 자체로도 혁명사의 흥미로운 사례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혁명'은 아니라는 것.

일본인들은 지금까지도 일본 혁명 또는 메이지 혁명이라 하지 않고 유신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혁명은 원래 역성혁명의 준말로 왕조를 교체한다는 뜻이라고 해요.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고려 왕씨에서 조선 이씨로 천명이 옮겨갈 때 이것을 혁명이라고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일본은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6세기 이후로는 한 번도 왕조가 바뀐 적이 없어요. 이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일이라고 해요. 일본 사람들은 그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그리 자랑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메이지유신 역시 막부는 쓰러졌어도 무너진 것은 도쿠가와씨지 천황 가문이 아니에요. 무너지기는커녕 유신으로 천황에게 대권이 다시 돌아왔어요. 이러니 혁명이란 말을 쓸 수 없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어요. 일개 인간을 천황으로 모시는 일본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현재 아베 정권이 잠시 물러나고 스가 정권이 들어선 것도 일본이 가진 한계점으로 보여요.

사실 저자가 처음에 우려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아요. 무관심과 무시.

그러나 우리가 일본을 상대하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철저하게 알아야 하며, 또한 전략적이어야 해요. 일본은 여전히 강대국의 힘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무시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자는 일본을 알아가는 첫걸음으로 근대 일본의 메이지유신부터 시작하자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일본은 메이지유신이 깔아놓은 레일 위에서 근대를 달려왔고 현재도 그 레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에요.

이 책은 근대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을 주목하고 있어요. 메이지유신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 일본을 세탁하겠다던 사카모토 료마,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 근대 일본의 철혈재상 오쿠보 도시미치까지 그들을 분석해보면 일본의 현재를 좀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민족주의자들은 요시다 쇼인을 끄집어내며 강렬한 일본정신을 찬양하고, 국제주의자들은 사카모토 료마를 상기하며 그의 오픈 마인드를 강조하고 있어요. 요시다를 즐겨 소환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베 신조 전 총리라고 하네요.

현재 일본 사회가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사카모토 료마가 곧잘 소환된다고 해요. 소프트뱅크의 회장인 손정의가 존경한 인물이 사카모토 료마예요. 손정의는 17세에 미국 유학을 갈 때의 심정을 청년 료마의 탈번(脫藩, 자기 봉건국가인 번을 이탈하여 망명하는 것)에 비유했고,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라는 료마의 말이 자신의 인생 모토라고 하기도 했대요. 우리에게는 낯선 료마가 일본에서는 대중 스타라고 해요. 처음부터 유명했던 건 아니고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 『 료마가 간다』가 대히트를 치고, NHK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그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네요. 현재 일본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래요. 저자는 일본 시민들이 쇼인보다는 료마를 더 주목해주길 희망한다고 이야기해요.

메이지유신은 지금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역사 기억투쟁의 주전장 중 하나라는 것.

그러니 우리는 현대 일본의 유래와 현재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깊게 이해하려면 메이지유신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역사왜곡에만 혈안이 되어 자국민의 역사 교육에는 소홀한 일본을 반면교사로 여겨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해요. 특히 일본 역사와 친해지기.

이 책을 읽고나니 메이지유신은 일본의 한계와 약점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천황을 맹신하며 사회 전체를 체계적으로 권위주의에 가둔 일본의 본질을 확인한 것 같아요.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역사를 아는 똑똑한 시민들이 많아져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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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즐 2021-01-0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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