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8

* 민주화의 한국 정치: 박정희와 야당 정치인들 1961~1979, 木村 幹: 2008

民主化の韓国政治―朴正煕と野党政治家たち 1961〜1979― : 木村 幹: Japanese Books




民主化の韓国政治―朴正煕と野党政治家たち 1961〜1979―
by 木村 幹 (Author) Format: Tankobon Hardcover
4.0 4.0 out of 5 stars (1)


野党政治家の挑戦と挫折、そして金泳三・金大中ら新しい世代の登場 —— 歴史的成功事例といわれる韓国の民主化過程の苦難を、朴正煕政権期の徹底的見直しにより描出、民主化の成否を分けた前提条件を指し示し、脱植民地化過程の政治的困難をも捉えた刮目の政治分析。

About the Author
木村 幹(きむら かん)

大阪府に生まれる(1966年)。京都大学大学院法学研究科修士課程修了(1992年)。愛媛大学法文学部助手、講師などを経て、現在は神戸大学大学院国際協力研究科教授、博士(法学、京都大学)。
著 書:
『朝鮮/韓国ナショナリズムと「小国」意識――朝貢国から国民国家へ』(ミネルヴァ書房、2000年、アジア・太平洋賞特別賞)
『韓国における「権威主義的」体制の成立――李承晩政権の崩壊まで』(ミネルヴァ書房、2003年、サントリー学芸賞)
『朝鮮半島をどう見るか』(集英社新書、2003年)
『高宗・閔妃』(ミネルヴァ書房、2007年)

(所属等は初版第1刷発行時のものです。)

Product Details

  • Publisher ‏ : ‎ 名古屋大学出版会
  • Publication date ‏ : ‎ January 10, 2008
  • ===
From Japan

元祖パスカル
4.0 out of 5 stars 独裁が続いた韓国政治の裏面を鋭く抉る
Reviewed in Japan on February 17, 2008
Format: Paperback
朴正煕研究は河信基著「韓国を強国に変えた男 朴正煕」、趙甲済著「朴正煕、最後の一日―韓国の歴史を変えた銃声」が代表的だが、本書は、日本人若手研究者によるものとして注目され、各紙誌書評で取り上げられている。
前二書が朴正煕という特異な人物のビジョン・哲学・人物を描いたのと対照的に、野党指導者3人を通して、いわば裏面から、朴正煕大統領期の第三、第四共和制下での民主化闘争の限界と挫折を鋭く抉る。

金泳三や金大中ら40代の政治家が世代交代の波に乗って野党の指導権を握り、朝鮮戦争の影響で人口の8割を占めた40歳以下の国民の支持を得て朴正煕の強力な対抗者として登場したこと、しかし、自身の地位や面子にこだわってまとまりを欠き、民主化を遅らせたとする点などは新しい問題提起と言え、韓国政治への理解を深める。

だが、朴正煕が、哲学も言葉もなく、剥き出しの暴力のみによって独裁を維持したとするのは、一面的ではないか。
朴が「強小国」「韓国式民主主義」とのビジョンを掲げ、野党候補に論争を挑み、いわゆる開発独裁で「漢江の奇跡」を成し遂げ、慶尚南北道などを中心に国民の一定の支持を受けていたのは、否定できない歴史的事実である。
韓国の民主化は、朴正煕時代から四半世紀の時間を要したが、それを「長すぎた」とし、「民主化安定の典型的失敗事例」とするのも、一般的とは思えない。
日本を含め、多くの国がそれ以上の時間を掛けて、経済開発→民主化へと徐々に進化しているからだ。

民主化は単に1人当たりのGNPを上げれば済むものではないとする著者の指摘はその通りだが、同時に、民主化実現には、相応の闘争の蓄積と時間が必要であると言うことであ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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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간(木村 幹) 교수의 저작 <민주화의 한국 정치: 박정희와 야당 정치인들 1961~1979>(원제: <民主化の韓国政治―朴正煕と野党政治家たち 1961〜1979>, 나고야대학출판회, 2008)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도서 개요> 이 책은 비교정치학자 기무라 간 고베대학 교수가 1961년 5·16 군사정변부터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이 종언을 고하기까지의 18년을 다룬 정밀한 정치학 연구서다. 저자는 박정희 시대를 단순히 <군사독재 대 민주화 투쟁>이라는 도덕적 이분법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과 이에 맞선 <제도권 야당(신민당 등)>이 의회와 선거, 헌법 개정 등의 공간에서 주고받은 전략적 상호작용을 추적하여, 1987년 민주화의 제도적 뿌리가 어떻게 이 시기에 잉태되고 성숙했는가를 실증적으로 규명한다.

<핵심 요약>

  1. 출발점: 5·16 군사정변과 정치 제도의 재편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군부 세력은 구정치인을 정계에서 배제하고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며 강력한 국가 주도형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군부는 의회와 선거 자체를 완전히 폐지하지 못하고 민정 이양을 통해 헌정의 외형을 유지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구 민주당계 보수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야당 세력이 재결집하며 정권과 야당 간의 길고 치열한 제도적 각축이 시작되었다.

  2. 1960년대 의회 정치와 야당의 통합 과정 1960년대 야당(민정당, 민주당 등)은 전통적인 계파 갈등과 지연·학연 중심의 분열로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독주와 한일회담 반대 투쟁, 3선 개헌 추진이라는 거대한 권력 집중에 직면하면서 점차 통합 야당인 <신민당>으로 결집했다. 이 시기 야당은 원내 타협을 중시하는 유진산 중심의 <원내 온건파(타협파)>와 원외 투쟁을 불사하는 강경파로 나뉘어 체제 내 생존과 저항 사이에서 줄타기를 이어갔다.

  3. 40대 기수론과 대중 동원형 야당의 탄생 1970년대 초, 김대중·김영삼·이철승 등이 주도한 <40대 기수론>은 한국 정당사의 중대한 분수령이었다. 1971년 제7대 대선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선 김대중은 대중 연설과 정책 공약을 무기로 박정희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정권에 치명적인 정치적 위협을 가했다. 이로 인해 야당은 밀실 타협형 엘리트 정당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도시 중산층과 서민을 직접 동원하는 대중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4. 유신 체제의 강압과 야당의 분열, 그리고 붕괴의 도화선 대선에서 위기를 느낀 박정희는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하여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영구 집권 체제를 수립했다. 유신 정권은 긴급조치를 남발하며 야당과 비판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야당 내부에서는 유신 체제에 순응하며 원내 지분을 챙기려는 온건파(이철승의 중도통합론)와 선명한 민주화 투쟁을 요구하는 강경파(김영삼 등)가 격렬히 충돌했다. 1979년 김영삼의 총재 당선과 YH무역 사건, 의원직 제명은 부마항쟁을 촉발했고, 결국 지배 엘리트 내부의 균열(10·26 사건)을 낳으며 박정희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비평 및 평론>

  1. 한국 민주화의 '제도적 연속성'에 대한 독창적 규명 이 책의 가장 뛰어난 학술적 성취는 1987년의 민주화가 갑작스러운 혁명이나 외생적 충격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 18년 동안 제도권 야당이 정권과 타협하고 경쟁하며 축적해 온 <선거 경쟁과 정당 조직화의 연속적 산물>임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권위주의 체제 내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었던 선거와 의회 제도가 역설적으로 야당의 생존 공간이자 민주화 역량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2. 야당 내부의 권력 동학에 대한 정밀한 실증 분석 기존 역사서들이 박정희 정권의 억압성이나 재야·학생 운동의 희생에 주로 초점을 맞춘 반면, 이 저작은 신민당의 당내 선거, 파벌 간 합종연횡, 공천 갈등, 대여 협상 전략 등을 의회 회록과 방대한 1차 자료를 통해 미시적으로 복원했다. 야당 지도자들을 단순한 도덕적 투사가 아니라 냉철하게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며 생존을 모색했던 <현실 정치가>로 생생하게 복원해 냈다.

  3. 한계와 비판적 지점 제도권 의회 정치와 정당 엘리트의 행위에 분석이 집중되다 보니, 유신 체제의 폭압에 맞서 옥고를 치르고 거리에서 희생된 재야 지식인, 종교계, 노동자, 학생 등 비제도권 민중 운동의 독자적 기여가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또한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와 냉전기 대미 외교 갈등(카터 행정부와의 마찰) 등 대외 구조적 변수가 정권과 야당의 선택에 미친 외생적 압박에 대한 분석은 다소 제한적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 통치 이면에 숨겨진 의회 정치의 역동성을 복원하고,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원을 밝혀낸 비교정치학의 탁월한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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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간(木村幹), 『民主化の韓国政治―朴正煕と野党政治家たち 1961〜1979』

『민주화의 한국정치―박정희와 야당 정치가들 1961~1979』, 2008

1,000단어 요약·평론

기무라 간의 『민주화의 한국정치』는 2008년 나고야대학출판회에서 출간된 394쪽의 본격적인 정치사 연구서다. 영문 부제는 <The Precondition of Korean Democratization, South Korea 1961–1979>이다. 이 영문 제목이 책의 의도를 일본어 제목보다 오히려 더 잘 보여준다. 이 책이 직접 설명하려는 것은 1987년 민주화 자체가 아니라, <왜 1960~70년대의 민주화 시도는 실패했으며, 그 실패 속에서 어떻게 훗날 민주화를 가능하게 할 정치적 전제조건이 형성되었는가>이다. 출판사도 이 책을 박정희 시대 야당 정치인들의 도전과 좌절, 김영삼·김대중이라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통해 한국 민주화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전제조건을 찾는 연구라고 소개한다.

따라서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박정희만도, 민주화운동만도 아니다.

<박정희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면서 스스로도 끊임없이 분열하고 실패했던 야당정치가 어떻게 변하여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냈는가?>

이 질문이 핵심이다.


1. 1961년 5·16은 처음부터 ‘완성된 독재’의 출발이 아니었다

기무라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역사를 결과론적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박정희가 18년 동안 집권하고 1972년 유신체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1961년부터 모든 것이 독재를 향해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기 쉽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군사정부는 자신들의 쿠데타를 영구 군정으로 정당화하기보다는 부패한 정치질서를 정화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든 뒤 민정으로 이양하겠다고 주장했다. 기무라는 제1장을 <쿠데타에서 민주화로>, 제2장을 <군사쿠데타와 지식인―정당화 없는 불안정한 승리>라고 이름 붙인다.

즉 박정희 세력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을 힘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통치할 민주적 정당성은 없었다.>

군은 총으로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었지만, 국민에게 왜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통치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여기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일부 지식인들은 기존 정치인의 부패와 무능에 실망하여 군사쿠데타를 일종의 <민족혁명>, 세대교체, 국가개조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무라가 보기에 이러한 정당화는 안정된 새로운 정치문화로 자리 잡지 못했다. 군사혁명의 이념이 사회 전체의 합의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박정희 정부의 승리는 처음부터 <정당화되지 않은 불안정한 승리>였다.


2. 1963년 민정이양―민주화의 성공인가 실패인가

1963년 박정희는 군복을 벗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

형식적으로 보면 군사정권이 선거를 거쳐 민간정부로 바뀌었다.

기무라는 이 점을 중요하게 본다.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는 1987년에 갑자기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1961년 쿠데타 뒤에도 <군정에서 선거정치로 돌아가는 과정>이 존재했다.

바로 여기서 이 책의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왜 1963년 이후 선거와 국회가 존재했던 제3공화국은 안정된 민주주의가 되지 못하고 결국 1972년 유신독재로 끝났는가?>

후대 연구에서도 기무라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것, 즉 1963년 제3공화국에 민주정치 정착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유신체제로 귀결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었다고 평가된다.

기무라의 답은 단순히

<박정희에게 민주주의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뿐 아니라 야당, 학생, 지식인, 정치문화 전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살펴본다.


3.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민족주의가 반정부 이데올로기가 되다

책에서 매우 중요한 제3장의 제목은

<반정부 이데올로기로서의 내셔널리즘의 등장―한일국교정상화와 학생운동>

이다.

1964~65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은 박정희 정부에 중요한 정치적 타격을 주었다.

정부는 한일국교정상화를

경제개발,
외자확보,
미국 중심 동아시아 안보체제

라는 현실주의적 이유에서 추진했다.

그러나 학생과 야당은 이를

<굴욕외교>,
<민족적 정통성의 훼손>

으로 비판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역전이 발생한다.

박정희 정권 역시 자신을 강력한 민족주의 정권으로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 <민족주의>라는 언어를 야당과 학생운동이 정부 비판의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정부의 민족주의 → 반정부 민족주의>

로 이동한다.

이 변화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이후 성격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 요구가 단순한 자유선거 요구에 머물지 않고

<민족자주>,
<반외세>,
<독재반대>

와 결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무라는 이 대목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책 목차에 아예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민족주의를 적으로 돌린 민주주의>라는 절을 배치한다.


4. 그런데 야당은 왜 박정희에게 계속 졌는가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박정희의 강함보다 <야당의 약함>을 분석하는 데 있다.

제4장의 제목은 바로

<야당은 왜 분열했는가?>

이다.

1960년대 야당에는 윤보선, 유진산, 유진오 등 식민지와 해방, 제1공화국을 통과해 온 유명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박정희 정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딜레마가 있었다.

박정희가 군정을 계속한다면 야당은 민주주의라는 명백한 명분 아래 단결할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가 선거를 실시하고 국회를 만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선거에 참여할 것인가?>

<박정희 체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노릴 것인가?>

<거리투쟁을 할 것인가?>

라는 전략적 갈등이 발생한다.

기무라는 이를 <위로부터의 민주화에 대한 야당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완전히 없애지 않았다.

오히려 제한된 경쟁의 공간을 허용했다.

그 결과 야당은 체제를 전면 거부하기도 어렵고, 참여하면 체제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에 놓였다.


5. 문제는 ‘구정치인’들의 경력 자체였다

제5장 <야당 정치가의 경력적 한계―시대상황이라는 이름의 제약>은 기무라다운 분석이다.

그는 야당 지도자들의 실패를 단순히 능력부족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윤보선은 명문가 출신의 엘리트였고,

유진오는 뛰어난 법학자였으며,

유진산은 탁월한 정치적 협상가였다.

그러나 바로 그들의 경력이 새로운 시대에서는 약점이 된다.

목차에서도 윤보선을 <유한계급 출신의 강경파>, 유진산을 <막후협상의 명수의 한계>, 유진오를 <희대의 수재이기 때문에 겪은 우여곡절>로 묘사한다.

이들은 식민지기와 해방 직후의 엘리트정치에서 성장했다.

정치란

  • 명망가들 사이의 협상,
  • 인맥,
  • 파벌조정,
  • 의회정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960년대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대학이 확대되며,

젊은 세대가 등장하고,

학생운동이 성장하고,

대중적 정치동원이 중요해졌다.

기존 야당지도자들은 이 새로운 정치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기무라는 당시 야당의 문제를 <인재고갈>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왜 그런 고갈이 생겼는지를 세대와 경력의 문제로 설명한다.


6. 결정적인 전환―‘40대 기수론’

이 책의 클라이맥스는 제6장이다.

<40대 기수론이라는 돌파구―김영삼과 김대중의 대두>.

1969년 박정희의 3선개헌이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박정희가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하려 하자 기존 야당정치의 방식으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그리고 김영삼이 주장한다.<이제 40대가 야당 대통령후보가 되어야 한다.>

김대중과 이철승도 경쟁에 뛰어든다.

기무라가 보기에 이것은 단순한 나이 문제가 아니다.

<정치세대의 교체>였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기존 야당 지도자보다 젊었고, 대중을 직접 동원할 수 있었으며, 선거와 거리정치를 결합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애초부터 가장 강경한 반정부 투사였던 것도 아니다.

기무라를 소개한 서평이 지적하듯 제3공화국 시절 두 사람은 처음에는 야당 내 비교적 온건한 ‘중간보스’에 가까웠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가 점차 정치적 경쟁의 공간을 좁히자 이들의 정치적 위치 자체가 변했고, 40대 기수론 이후 대표적인 강경 반정부 지도자로 성장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민주화 지도자가 먼저 존재한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의 강화가 민주화 지도자를 만들어냈다.>


7. 1971년 대통령선거―김대중이 박정희를 위협하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은 박정희에게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도전을 한다.

박정희는 승리했지만 이제 선거를 계속하면 언젠가 정권을 잃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박정희에게 선택의 기로가 생긴다.

① 선거민주주의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거나
② 선거민주주의 자체를 바꾸거나.

박정희는 두 번째를 선택한다.

1972년 유신이다.

따라서 기무라에게 유신은 박정희 권력의 최고점이면서 동시에 <민주적 경쟁을 통해서는 더 이상 안전하게 집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결과>다.

그래서 종장의 제목이 <에필로그로서의 유신체제>이고 첫 절은 <박정희가 빠진 막다른 골목>이다.

강해 보이는 유신체제가 사실은 박정희의 정치적 불안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8. 역설적으로 유신은 김영삼과 김대중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없애고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제도화했다.

야당의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그런데 이것은 야당에게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기존에는  <선거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중심이었다.

이제는 <이 체제 자체를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가 중심이 된다.

따라서 민주화 요구는 훨씬 명확해진다.

김대중은 납치·연금·망명을 겪고,

김영삼은 제명과 정치적 탄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단순한 야당 정치인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지도자>가 된다.

기무라의 역설은 다시 나타난다.

<박정희가 야당의 정치공간을 없애자 오히려 민주화라는 더 강한 대안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주었다.>


9. 1979년―박정희 체제는 강했기 때문에 더 취약해졌다

유신체제 말기에는 야당의 공간을 더욱 좁히고 국가권력이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1978년 총선에서 여당 공화당은 의석에서는 우위를 유지했지만 득표율에서는 야당 신민당에 뒤진다.

김영삼이 신민당 총재가 되고 정부와 강경하게 충돌한다.

  • 김영삼 의원직 제명,
  • YH무역 사건,
  • 부마항쟁

등이 이어진다.

박정희 정부는 더 강한 탄압으로 대응한다.

하지만 바로 그 강경책이 체제 내부의 갈등까지 폭발시킨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다.

기무라는 이를 단순한 우연한 암살로 보기보다 <박정희가 빠져나갈 출구를 스스로 닫아버린 정치구조의 종착점>으로 읽는다. 실제 이 책을 소개한 서평도 더 강력한 체제를 구축한 뒤 오히려 선거에서 야당에 밀리고, 이에 탄압을 강화하다 결국 체제 내부에서 박정희가 살해되는 역설을 강조한다.


10.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장―민주주의는 1987년에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책을 1987년의 성공을 알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기무라는 민주화를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정치문화가 만들어지는 장기과정>으로 본다.

  • 1960년 4·19혁명이 있었다.
  • 1963년에는 군정에서 선거정치로 돌아갔다.
  • 1964~65년 학생운동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했다.
  • 야당은 계속 실패하면서도 선거와 의회를 유지했다.
  • 구세대 야당 지도자들이 퇴장하고 김영삼·김대중 세대가 등장했다.
  • 유신체제가 만들어지면서 민주주의가 오히려 명확한 대안 이념이 되었다.

<1960~70년대의 실패가 1987년 민주화의 정치적 자산을 축적했다.>

출판사의 영문 제목이 <The Precondition of Korean Democratization>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1. 평론―박정희 시대를 ‘박정희 없는 역사’처럼 다시 보는 책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박정희 시대를 박정희 개인에게서 떼어놓는 데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1961~79년을 말하면 거의 모든 것이 박정희 이야기로 흡수되기 쉽다.

  • 경제개발도 박정희,
  • 독재도 박정희,
  • 한일협정도 박정희,
  • 유신도 박정희다.

그러나 기무라는 묻는다.

<그동안 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 시대가 상당히 달라 보인다.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없애고 국민이 18년간 참고 있다가 1979년 이후 다시 민주화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박정희가 통치하는 바로 그 시대에

  • 학생운동,
  • 야당정치,
  • 선거경쟁,
  • 민족주의,
  • 세대교체

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김영삼과 김대중이 민주화 이후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아니라 <박정희 체제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인들>이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 이 책의 큰 성과다.


12. 그러나 ‘야당정치’ 중심에도 한계가 있다

반대로 이 책의 한계도 바로 제목에서 드러난다.

<박정희와 야당 정치가들>의 역사다.

그 결과 민주화운동의 다른 주체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

  • 전태일과 노동운동,
  • 농민운동,
  • 기독교 민주화운동,
  • 재야 지식인,
  • 여성운동,
  • 언론,
  • 부마항쟁의 시민

등을 중심으로 보면 1970년대 민주화는 훨씬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민주화의 동력이 야당 정치인의 세대교체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산업화 자체가 만들어낸

  • 도시 노동자,
  • 대학생 증가,
  • 중산층 성장,
  • 사회적 이동,
  • 정보와 교육 확대

도 장기적으로 권위주의를 흔드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따라서 기무라의 설명은 <정치엘리트와 정치문화>에는 강하지만 <사회사적 민주화 과정>에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13. 『한국에서의 “권위주의적” 체제의 성립』과 짝을 이루는 책

이 책은 앞서 읽은 2003년 『韓国における「権威主義的」体制の成立―李承晩政権の崩壊まで』와 사실상 한 쌍으로 읽어야 한다.

2003년 책은 묻는다.

<왜 이승만 시대 한국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만들어졌는가?>

2008년 책은 묻는다.

<그 권위주의적 정치문화는 박정희 시대에 어떻게 변화하여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문화로 바뀌었는가?>

두 책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승만 시대에는 야당이 국가행정기구와 대통령 권력에 맞설 안정된 조직과 정통성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

박정희 시대에는 반복된 선거와 탄압 속에서 야당이 점차 독립적인 정치적 정통성을 얻는다.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정권 밖에서도 대중적 정당성을 가진 지도자>가 생겨난다.

이것은 한국 민주화에 결정적인 변화였다.


종합평가

『민주화의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명제는 결국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들이 처음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체제와 싸우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삼는 정치세력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윤보선·유진산·유진오 세대는 박정희와 경쟁했지만 자신들의 정치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처음부터 민주화의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선거를 통해 출세하려던 야당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 3선개헌,
  • 1971년 대통령선거,
  • 유신,
  • 정치탄압

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기존 정치경쟁의 공간 자체가 파괴되자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자신의 정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상황에 들어간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강경한 민주화 지도자가 된다.

기무라의 분석에서 매우 흥미로운 역설은 이것이다.

<박정희는 야당을 약화시키려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훨씬 강력한 민주화 지도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유신체제는 민주주의를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무엇인지 한국사회에 훨씬 선명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1987년 민주화의 성공은 1987년 한 해의 기적이 아니다.

1960년 4·19에서 시작해 1965년 한일협정 반대운동, 1969년 3선개헌 반대, 1971년 대선, 1972년 유신, 1979년 부마항쟁에 이르기까지 <패배하면서 학습한 20여 년의 정치>가 그 배경에 있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기무라 간의 한국정치 연구 가운데 특히 중요한 저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한국현대사―대통령들의 영광과 좌절』이 지도자들의 생애를 통해 한국정치를 보여주는 대중적 정치사라면, 『민주화의 한국정치』는 그 밑에서 작동한 <정치문화의 세대교체와 야당정치의 학습과정>을 훨씬 깊게 해부한다. 공식 출판사 역시 이 책의 목적을 “민주화의 성패를 나눈 전제조건”을 밝히는 데 있다고 명시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기무라 간에게 한국 민주화의 뿌리는 박정희 체제가 끝난 뒤에 생긴 것이 아니라, 박정희 체제 안에서 야당이 계속 패배하고 세대교체를 겪으면서 ‘정권을 얻는 정치’에서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는 정치’로 변화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것이 『민주화의 한국정치』가 박정희 시대를 바라보는 가장 독창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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