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1 일본은 왜 미국과 싸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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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미국과 싸우지 않았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1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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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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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제71회 강연 내용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과 동아시아 안보 환경의 급변>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의 팽창과 청나라의 쇠퇴 속에서 메이지 일본은 국가의 생존과 독립 유지를 위해 전통적인 조공·책봉 질서와의 결별을 서둘렀다. 일본은 서구 중심의 국제법 체계인 만국공법 질서를 생존의 유일한 규칙으로 받아들이며, 자국 안보의 핵심 완충지대인 한반도를 외세에 빼앗겨서는 안 될 전략적 요충지로 규정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과 '이익선' 개념>
일본 육군의 창설자이자 근대 군부의 대부인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1890년 제1회 제국의회에서 <주권선(主權線)>과 <이익선(利益線)> 이론을 제시했다. '주권선'이 일본 본토의 영토적 국경을 의미한다면, '이익선'은 주권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영향력 아래 두어야 하는 주변 완충 구역(조선)을 의미했다. 이는 일본의 대외 군사 팽창과 한반도 침략을 '국가 방어를 위한 필수적 조치'로 정당화하는 핵심 전략 독트린이 되었다.

<탈아입구(脫亞入歐)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일본의 계몽사상가들은 아시아적 봉건성과 중화적 질서를 전근대적 미개(未開)로 규정하고, 서구식 문명개화를 통한 <탈아입구>를 역설했다. 그는 조선과 청나라가 서구식 근대화를 거부하고 구태의연한 유교적 명분론에 갇혀 있을 경우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며, 이는 일본의 안보에도 치명적 위협이 된다고 보아 무력에 의한 조선 개조 및 병탄 논리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했다.

<군사적 중앙집권화와 대외 팽창 노선의 완성>
일본은 징병제 도입과 내각제 개편, 천황에 대한 군의 직속 통수권 보장을 통해 고도로 규율된 군사 국가 체제를 완성했다. 이는 내부의 사족 불만을 흡수하고 대외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한반도를 독점적으로 장악해 나가는 구조적 동력이 되었다.

평론
제71회 강연은 메이지 일본이 근대화의 완성 단계에서 어떻게 '방어적 위기의식'을 '공격적 제국주의 독트린'으로 변환시켰는지를 지정학적·사상적 층위에서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첫째,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과 이익선' 개념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내적 논리를 명쾌하게 분석한다. 침략 행위를 단순한 악의적 야욕이 아니라, 19세기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환경에서 자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주변국을 완충지대화해야 한다는 냉혹한 안보 현실주의의 산물로 설명함으로써, 동아시아 패권 경쟁의 구조적 본질을 직시하게 돕는다.

둘째,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이 지닌 문명사적 이중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서구 문명을 배우자는 진보적 계몽주의가 동아시아 이웃 국가들을 멸시하고 침략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적 팽창 담론'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비서구 근대화 프로젝트가 필연적으로 내포했던 사상적 위험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다만, 일본 지배층의 전략 수립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러한 '이익선' 침탈 시도에 맞서 자체적인 개혁과 외교적 줄타기를 시도했던 조선 내부의 저항이나 복합적인 대응 양상은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다루어진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 한반도가 강대국의 군사 전략상 왜 필연적인 침탈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안목으로 규명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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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한국인의 탄생」 71회

<일본은 왜 미국과 싸우지 않았나?> 요약·평론

71회는 70회에서 다룬 페리 제독의 출현 이후, 일본 내부에서 <개항이냐 쇄국이냐>를 둘러싸고 어떤 정치적 논쟁과 권력 재편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함재봉은 이 시기를 단순히 “미국의 압력에 일본이 굴복했다”는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페리의 등장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정치적 균형이 깨졌고, 그 균형이 무너지면서 천황이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새로운 정치적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재봉은 개국파와 쇄국파가 겉으로는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했지만, 실제로는 <일본을 서양에 정복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궁극적 목표에서는 상당히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1. 에도 일본에는 처음부터 ‘하나의 일본’이 없었다

함재봉은 우선 에도시대 일본을 근대적 국민국가처럼 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일본에는 약 270개의 번이 있었고 각 다이묘는 자기 영지, 신하, 군대, 세금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을 우선

<조슈 사람>
<사쓰마 사람>
<미토 사람>

등으로 생각했지 현대적 의미에서 자신을 하나의 ‘일본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막부는 참근교대, 다이묘 통제, 인질제도, 신분제 등을 통해 이 수많은 번이 서로 전쟁하지 않도록 관리했다.

따라서 에도시대의 평화는

<강력한 국민국가가 만들어낸 평화>

라기보다

<여러 정치단위를 절묘하게 균형시킨 평화>

였다.


2. 외세의 등장이 ‘일본’이라는 공동체를 만든다

그런데 페리가 나타나면서 전혀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미국이 공격하면 조슈만 싸울 것인가?>
<사쓰마만 싸울 것인가?>
<에도만 지키면 되는가?>

아니다.

외국인이 보는 일본은 여러 번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나라였다.

따라서 일본 내부 사람들도 점차

<우리는 서로 다른 번 사람이지만 외세 앞에서는 같은 운명을 가진 일본인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함재봉은 여기에서 일본의 국민적 정체성이 급속히 성장한다고 본다.

역설적으로 <외부의 적>이 내부의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점이 71회의 중요한 주장이다.


3. 그렇다면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여기에서 정치적 문제가 발생한다.

막부는 전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도쿠가와 가문이 운영하는 하나의 정권이었다.

그러면

<조슈·사쓰마·미토·도사 등 모든 번을 초월해 일본 전체를 대표할 존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 답으로 천황이 떠오른다.

천황은 실제 정치권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았지만 일본 역사 전체를 상징할 수 있는 존재였다.

함재봉은 이 과정에서 <존왕사상>이 단순히 보수적인 복고사상이 아니라 오히려 근대적 국민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자원이 되었다고 해석한다.

<천황 = 과거의 유물>

이 아니라

<번을 초월해 일본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중심>

이 된다.


4. 또 하나의 역설 ― 존왕론은 도쿠가와 내부에서 성장했다

함재봉은 여기에서 일본사의 역설을 다시 강조한다.

천황 중심의 역사관을 발전시킨 대표적 학파가 <미토학>이었다.

그런데 미토번은 도쿠가와 집안과 매우 가까운 번이었다.

<도쿠가와 집안에서 발전한 학문이 결국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는 사상적 무기가 된다.>

미토학자들은 일본 역사를 천황을 중심으로 해석했다.

천황이 일본의 역사를 끊임없이 이어온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훗날 존왕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다.

이 때문에 외세가 나타나 막부의 권위가 흔들리자 천황이라는 대안적 정당성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5.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싸울 것인가

1853년 페리의 국서를 받은 막부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다.

선택지는 대략 두 가지였다.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전쟁한다>

또는

<요구를 받아들여 개항한다>

였다.

함재봉은 당시 막부 지도층 상당수가 미국의 군사력이 일본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강조한다.

난학을 통해 서양의 군사력과 국제정세를 이미 연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하면 일본이 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는 판단 자체는 비교적 명확했다.

문제는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막부의 권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6. 아베 마사히로의 놀라운 선택 ― 의견을 묻다

이때 막부의 핵심 인물로 노중 <아베 마사히로>가 등장한다.

함재봉이 특히 중요하게 보는 것은 그가 전례 없는 행동을 했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각 번의 다이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이전까지 외교와 국가정책에 관해 번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묻는 체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막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의견을 제출하게 한다.

강연에서는 약 270개 번 가운데 상당수가 의견을 제출했으며 다양한 견해가 나왔다고 설명한다.

함재봉에게 이것은 일본 정치질서가 변하기 시작한 결정적 순간이다.

막부가 의견을 물었다는 것은

<막부만이 국가정책의 독점적 결정자가 아니라는 사실>

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7. 온건 개국론 ― “시간을 벌자”

특히 흥미로운 견해는

<당장 미국과 싸우지 말고 제한적으로 개국해 시간을 벌자>

는 입장이었다.

논리는 현실적이었다.

현재 일본은 군사력이 너무 약하다.

따라서 일단 미국과 단기적인 조약을 맺고 전쟁을 피한다.

그 사이

  • 해군을 만들고
  • 서양식 군함을 건조하고
  • 포술을 배우고
  • 해안방어를 강화하고
  • 군사기술을 습득한다.

몇 년 뒤 힘을 기른 다음 다시 대외정책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함재봉은 이것을 단순한 굴복이 아니라 일종의 <전략적 후퇴>로 본다.


8. 쇄국론자도 반드시 서양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71회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쉽게 생각하면

<개국파 = 현실적이고 개방적인 사람>
<쇄국파 = 무지하고 완고한 사람>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함재봉은 이 구분을 거부한다.

쇄국론자들 가운데 상당수도 서양의 강함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오히려

<지금 개항하면 나라가 서양에게 종속될 수 있으니, 차라리 한번 전쟁을 해 국민의 정신을 깨우고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

고 생각했다.

즉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해서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질 가능성을 알면서도 전쟁을 통해 국가를 각성시키자>

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차이는 상당히 중요하다.


9. 개국파와 쇄국파가 공유한 목표

함재봉이 이번 회에서 가장 강조하는 주장은 아마 이것이다.

개국파와 쇄국파는 수단에서는 달랐지만 궁극적으로

<일본의 독립과 국가역량 강화>

라는 목표를 공유했다.

개국파는

<서양을 배우기 위해 문을 열자>

고 했다.

쇄국파는

<서양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먼저 힘을 길러야 한다>

고 했다.

양쪽 모두

<일본이 서양의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는 목표를 공유했다.

따라서 훗날 메이지유신에서 개국과 존왕이 결합할 수 있었다는 것이 함재봉의 설명이다.


10. 천황에게 의견을 묻는다 ― 정치적 혁명

막부는 다이묘들에게 의견을 물은 데 이어 교토의 천황에게까지 대응방침을 묻는다.

강연 후반에서 함재봉은 이 사건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에도시대 동안 천황은 국가정책에 사실상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교라는 중대한 문제에서 막부가 천황의 의견을 묻는다.

한번 이 문이 열리면 다시 닫기 어렵다.

천황은 점차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최종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존재>

로 변한다.

함재봉은 이를 천황이 일본 정치의 중심으로 복귀하는 출발점으로 본다.


11. 1854년 가나가와 조약

결국 막부는 1854년 미국과 가나가와 조약을 체결한다.

즉 전쟁이 아니라 개항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막부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보는 세력에게는 막부의 정당성이 더욱 약해졌다.

동시에

<막부가 외교정책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
<천황의 허락 없이 외국과 조약을 맺어도 되는가?>

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한다.

따라서 개항은 외교문제인 동시에 국내정치의 정당성 위기가 된다.


12. 쇄국을 주장한 사람들이 훗날 개국의 주역이 되는 역설

71회 마지막 부분에서 함재봉은 매우 중요한 역설을 지적한다.

막부 말기에 가장 강하게 ‘양이’를 외쳤던 조슈·사쓰마의 젊은 지사들이 훗날 메이지정부의 주역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가장 적극적인 서구화 정책을 추진한다.

이것을 보면 당시의 쇄국론을 단순한 반서구 사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핵심 목표는

<서양을 싫어하는 것>

보다

<서양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것>

이었다.

따라서 서양을 물리치기 위해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배우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했다.

바로 이것이

<존왕양이 → 개국·서구화>

로 이어지는 메이지유신의 역설이다.


평론

1. 71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탄생’을 설명한 점이다

71회는 지금까지의 강연 가운데 <일본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중요하다.

함재봉의 설명에 따르면 외세가 들어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주로 번에 충성했다.

그런데 미국의 등장으로

<조슈도 사쓰마도 결국 같은 일본이다>

라는 인식이 강해진다.

외부 위협이 내부 통합을 촉진한다는 것은 역사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메이지유신은 단순히 정치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번의 일본 → 국민의 일본>

으로 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2. 천황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새로운 국민국가의 도구였다

이 점은 함재봉의 설명 가운데 상당히 설득력 있다.

흔히 메이지유신의 왕정복고를 보면

<근대화하면서 왜 천황이라는 옛 제도를 다시 살렸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보면 오히려 답이 분명하다.

270개 번을 초월해 일본 전체를 상징할 수 있는 기존의 제도가 천황이었다.

즉 천황은 오래된 전통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국민국가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상징이었다.

따라서

<복고를 통해 근대국가를 만든다>

는 메이지유신의 역설이 가능했다.


3. 개국파와 쇄국파를 단순한 진보·보수로 보지 않은 것은 좋다

이번 강연의 가장 유익한 부분이다.

개국파와 쇄국파의 차이를

<문명인과 야만인>
<개방과 폐쇄>
<합리와 비합리>

로 설명하지 않는다.

양쪽 모두 국제정세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으며 목적도 상당 부분 동일했다.

차이는 전략이었다.

<지금 싸울 것인가?>
<시간을 벌어 힘을 기를 것인가?>

였다는 것이다.

19세기 일본정치를 이해하는 데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4. 그러나 쇄국파의 합리성을 너무 크게 복원할 위험도 있다

반면 함재봉의 설명은 쇄국·양이론자들을 지나치게 전략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로 만들어 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막부 말기의 존왕양이운동 안에는

  • 외국인 혐오
  • 정치적 암살
  • 과격한 민족주의
  • 현실성이 떨어지는 전쟁론

도 존재했다.

따라서

<쇄국파 역시 모두 서양의 힘을 정확히 알고 장기전략으로 전쟁을 주장했다>

고 일반화하면 지나치다.

당시 세력 내부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함재봉이 강조하는 전략적 쇄국론은 중요한 한 흐름이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5. ‘평화 때문에 일본이 군사적으로 타락했다’는 주장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번 회에서도 함재봉은 200년 이상의 평화 때문에 일본 사무라이들의 군사적 정신과 능력이 약화되었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일부 맞지만 다소 군사주의적 언어로 들릴 수 있다.

에도의 평화가 없었다면

  • 높은 문해력
  • 상업경제
  • 도시문화
  • 전국 교통망
  • 난학
  • 교육 확대

도 그렇게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균형 있게 보면

<평화는 일본의 전쟁능력을 약화시켰지만, 동시에 근대화를 가능하게 할 사회적 능력을 강화했다>

고 해야 한다.

평화 자체가 실패였던 것은 아니다.


6. 조선과 비교할 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쇄국이냐 개국이냐’가 아니다

함재봉의 긴 일본사 설명을 조선과 연결하면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일본이 성공한 이유를 단순히

<일본은 개국했고 조선은 쇄국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일본에서도 강력한 쇄국론과 양이론이 존재했다.

더 중요한 차이는

<외세의 충격이 왔을 때 국가 전체가 대응방식을 공개적으로 논쟁하고, 번·막부·천황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적 연합과 대안 권력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가>

이다.

일본은 내부적 갈등이 극심했지만 바로 그 갈등 속에서 새로운 국가체제를 만들어냈다.


63~71회를 함께 보면

이제 함재봉의 일본 근대화론은 거의 완성된 형태가 된다.

63회 — 도쿠가와의 정치적 균형
64회 — 조슈·사쓰마의 정치적 잠재력
65회 — 시장경제와 지방 번의 성장
66회 — 교육·문해력·사상적 다양성
67회 — 난학과 서양과학
68회 — 사쿠마 쇼잔의 국가안보론
69회 — 요시다 쇼인과 정치적 인재양성
70회 — 페리의 등장과 기존 균형 붕괴
71회 — 개국·쇄국 논쟁과 천황의 정치적 부상

즉 페리가 일본을 근대화한 것이 아니다.

<페리는 이미 변화하고 있던 일본사회의 여러 힘을 한꺼번에 정치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촉매였다.>


종합 평가

71회는 70회보다 오히려 메이지유신을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하다.

70회가 <외부 충격>을 설명했다면 71회는 그 충격이 <내부 정치구조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세 가지다.

<첫째, 번 중심의 정체성이 일본이라는 국가 정체성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둘째, 막부가 독점하던 국가정책 결정권이 흔들리고 다이묘들의 의견이 정치에 들어온다.>

<셋째, 오랫동안 정치 밖에 있던 천황이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정당성의 원천으로 부상한다.>

이 세 변화가 합쳐지면서 메이지유신의 정치적 공간이 열린다.

함재봉의 논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미국의 흑선이 일본을 하나로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의 위협이 일본인들에게 자신들이 결국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고, 그 공동체를 대표할 상징으로 천황이 재발견되었다.>

다만 여기서부터는 한 가지를 특히 경계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외세의 위협 → 국민통합 → 천황 → 강력한 국가>

라는 논리는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는 힘이 되었지만, 같은 논리가 훗날

<외부의 적을 강조하여 내부를 통합하고 국민 전체를 국가에 동원하는 일본 국가주의>

로 발전할 가능성도 이미 품고 있었다.

따라서 메이지유신의 국민국가 형성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양면적인 역사였다. 일본을 서양 제국주의의 직접적 식민지화에서 지켜낸 국가통합의 힘이 훗날 일본 자신이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는 힘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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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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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군입니다. 어 오늘은
일본의에도 막부 어 말기에 외세가 등장하기 [음악] 시작하면서
어 일본의 정치적 균형이 어떻게 깨지기 시작했고 막부 중심에 도구가와
막부가 주도했던 [음악] 그 정치 체제가 무너지고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지 유신으로 [음악] 향해 가는지 그런데 특히 천황이 왜 일본 정치의
[음악] 중심으로 떠오르게 됐는지 특히 그 부분을 오늘 살펴보도록 [음악]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일본에서 도미가 정권을 잡게 되는 과정을 그걸
천하통일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그 도요도미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일본을 일본의 천하를 통일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전국 시대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우리가 보통 춘추전국 시대라 그러지 않습니까? 춘추 시대는 이제 공자 어
뭐 그 종가 뭐 묵과 여러 가지 이제 사상가 그야말로 백가명의 시대였었고
그다음에 이제 그 질서가 주나라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그게 이제
전국 시대가 되고 전국 시대의 중국의 전국 시대의 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찍은 것이 바로 진시황이죠. 그래서 진시황이 처음으로 천하 통일을 해서
황제라는 칭호를 가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중앙직권적 절대 전제군주의 체제가 이제 거기서부터 나오는 거. 그때부터 나오는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이제
왕조만 교체가 되고 항상 황제가 통치하는 그런 체로 바뀌는데
일본에서도 사실은 우리가 지금 일본이라고 하지만에도
시대에만 하더라도 270개 번으로 나눠져 있었고 그 번들이라는
것은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실제로 곡이라 그랬습니다. 곡. 그렇죠?
그러면 그 국이 없고 그 국의 우두머리들이 다묘들이었고
다묘들은 각자가 자기 조종이 있는 거죠. 정부가 있는 거죠. 다묘가
있고 자기 신하들이 다 있고 자기 밑에 군대 사무라이들이 있고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들이 있고 그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걷둬 갖고 자기네가 쓰는 거죠. 그렇게 서로가
간섭을 하지 않고 물론에도 막부 같은 데가 이제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뭐 우리가 그동안 쭉 노네 왔듯이 이제 참근 교대, 산긴다이
같은 거를 통해서 어떻게든지이 다양한묘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특히 더군나 중앙의에도 막부에 반기를 들지
못하게 이제 계속해서 그걸 억누르고 견제하고 이제 이런 걸 했죠.
그렇지만 수많은 번로 나눠져 있었고 일상에 있어서
보통 일본 사람들은 자기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그러면 나는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조슈 사람, 나는 사스마 사람, 나는
미도인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실 자기네가 천하고
천하에 200억의 나라가 있었다 생각을 했었던 거죠. 자기네들끼리 세
개요. 하나의 세계였던 거죠.이 일본 사람들이 자기내가 천하를 이루고
있고 그 안엔 다양한 나라들이 있어서 서로가 싸우고 견제하고 이런 이러면서
늘 간신히 통합을 유지하는 거. 통합이라는게 이제 전쟁 안 나게 간신이 어느
막부가 이제 그 힘으로 이제이에도 시대에는 도구가와 막부가 워낙 힘이
세서 그거를 그 전쟁으로 다시 전국 시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그거를 이제 꽉 막고 있었던 거죠. 그랬는데
외세가 나타나면서 외세가 나타나면서 일본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던 전혀 바깥으로부터의 적이 오니까 그 적이
외세 침략으로 인해서 어 우리를 어떻게 지키지? 우리의 영토를 어떻게
지키지?이 이 미국 사람으로부터 뭐 영국 사람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이렇게
되면서 아 자기네가 운명 공동체구나. 일본을
자기네 천하를 외세로부터 지키려 그러면은 그러면은 자기네
번끼리 나눠서 지켜지지가 않는 거죠. 자기네가 다 같은 은명 공동체고
우리가 같이 힘을 합쳐서 외세를 외침을 막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아 우리가
조슈 사람이 아니고 사스마 사람이 아니고 에키젠 사람이 아니고 도사이 아니고
어 우리가 일본이라는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나라의
그러면 중심이 누구냐 여태까지 조주번도 아니고 미도번도
아니고 사스마번도 아니고 그렇죠. 도사번도 아니고
사과번도 아닌데 그 그러면은 그럼 독구가와는 당연히 막부 막부가 중심이어야 되지만
사실 막부는 뭡니까? 또 하나의 번이죠.에도
에도 번입니다. 번 하나의 번이죠. 그러니까 나라의 중심이 그러면 과연
우리 여러 번 중에 으뜸이긴 하지만 그 번이 과연 번주가 그 번의 다이며
도구가와가 과연 나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1번이라는이 새롭게 의식을
갖기 시작하는 일본 사람들이 아 우리가 일본 사람이구나 번으로 나눠져 있는게 아니라 그 번들을 다 포괄하는
하나의 공동체구나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을 근데 그것을 대표할 수 있는 어떠한 존재 상징
그게 이제 생겨야 되는 거죠. 그게 누구냐 하면서 그때에 그때에 바로
이게 천왕이다. 천왕이야말로 우리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그러한
존재이구나라는 의식이 들기 시작을 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로 역설적인
것은 천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천왕이란 존재가 어떻게 우리 전체를 대표하는
일본 역사 속에서 1번을 끊임없이 대표해 왔던 것은 역시 천왕가
천왕이라는 그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도구가와가
가문에 직 가문이 직접 통치하고 있던 미도번이라는 데에서
밑도 학파가 나와서이 존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까
밑도번에 있는 학자들이 일본 대일본사라는
역사서를 쓰면서 그 역사의 중심을 천왕으로 보기 시작하는 거죠. 그런데
그러니까 이도버은 미도버은 결국은 도구가와 막부의
마지막 소군도 미도번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 밑도
번에서 해피림은 존황 사상이 나오면서 나라가 흔들리기 착하고 외세 침략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독구가와 막부가 어 이거를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잘
만들어 놓은 균형이 깨지고 있고 이런 도전들이 오는데 그럼 어떻게 되지? 하는 사이에 같은 도구가와 집안에서
만들어 냈던 그 미도학파의 존왕 사상이 일본의 젊은이들 일 일본의
새 시대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외세로부터 일본을 지켜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천왕이라는 존재를 안겨다 주는게
그게 바로 믿도번입니다. 그러니까 도구가와 내 가문에서 자기네가
자기네의 가문을에도 시대를 종을 짓게 하는 결국 그 조항
사상이 그것도 도구가 가문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일본에서 조왕 사상이
부각이 되기 시작하면서 천왕이 살고 있는 교도
교도가 갑자기 나라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하고 특히 각 번에 있었던 [음악] 젊은 과격한 극진 개혁자들
도구가와 막부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있었고 외세의 외치 침략을 막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이 [음악] 모든 사람들이 교도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천왕부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교도가 일본 정치의 중심이 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거기에 있는 천왕이 일본 정치의 중심 그리고 일본의 새로운 상징 통일된
일본의 상징으로 떠오르기 시작을 합니다. 대표적인 도자마 다이묘,
조슈나 사스마 같은이 다이묘들은 중앙정치에 애도 정치에 참여는 못
했지만 안 시켜 주니까 그랬지만 천환가하고 오랜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라고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전통적인 관계를 통해서 교도의 천왕가하고의 깊은 관계를 혼인 관계
이런 거를 계속해서 유지해 오고 있던 조슈하고 사스마에도
힘이 심립니다. 교도가 중심이 되기 시작하고 천왕이 중심이 되기 시작하니까 거기랑
가까웠던 조슈하고 사스마 나중에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두 번이이
큰 애도로부터 도쿄로부터 교도로 세력 중 정치 중심 무게
중심이 움직여 가는데 있어서 가장 크게 이득을 보는 것이 바로
도구가와의 처음부터 맞섬으로써 도구가와의 가장 큰 견제를에도 시대
받아야 됐던 조슈와 사스마가 그 권력의 이동을 통해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보게 됩니다. 이러면서 세력 전의가 일어납니다. 이런 외세의 도래라는 것이 이런
다양한 차원에서 새 나라의 중심을 천왕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 천왕과
교도랑 가장 유대 관계가 깊었던 조수하고 섰으만 의성을 부각을 시키고
중앙에서의 목소리를 키워 주고 그리고 나라를 지켜야 되기 때문에 지키는데
있어서 가장 군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던 또 조주하고 사스마의 의의존 지원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서
엄청난 세력의 권력의 이동이 일어나기 시작을
합니다. 1853년 7월 14일 미국 필머 대통령의
친서가 막부에 마크후에 에도의 마크후에
전달이 됩니다. 페리제독이 요구하듯이 미국이 요구하듯이 정말로 계국을 해서
미국하고 조약을 맺어 가지고 미국 사람들이 맘대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하고 이제 그러면 분명히 이제
영국도 올 거고 프랑스도 올 거고 독일도 올 거고 러시아도 올 텐데 뼈한데 그럼 이제 개국을 해야 될
텐데 그러면 이게 이거를 우리가 할 수가 있는
거냐 에더 입장에서 그렇죠에도 마구 입장에서 더군다나
이렇게 계국이 되면은 자기네가 그동안 만에 그렇게 억눌르려고 했던 도자마
다이묘들 그죠? 조수사하고 사스마 같은 그 도자마의 다녀들 카톨릭을
그렇게 처절하게 파괴해를 하면서까지 [음악] 외세와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던 바로 조수사스마 같은 그
도자마다 다녀들 다시 외국들과 [음악] 결탁을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은 자기 내가에도 막부가 더
이상 마음대로 제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게 뻔했던 거죠.에 에 시대의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외세의 개입을 완전히 단절한 채 그 내부에서의 세력
균형을 창출했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외세가 나타난 거죠.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만일에 우리 계속해서 쇠곡하겠다.
미국 당신애들 말 못 듣겠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뭐 페리제독 함대가
와서 벌써 대포 몇 번 쓰고 그 엄청난 배들을 보고 나서 일본이
미국하고 전쟁할 일은 아니라는 걸 알죠. 그러면 전쟁도 못 하겠고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계곡을 당장 해 버릴 수도 없고 완전히 진퇴
양난에 빠집니다. 더군다나 이때에 쇼그는 중병으로 국사를 전혀 돌보지도 못하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참 나라가 힘들어지는 정권이 힘들어진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해필이면은이 도구가와는 마지막에 갈수록 그 쇼군들이 굉장히
허약하고 신체적으로 허약하고 짧은 통치 기간을 갖고 계속해서 다음
후계자로 넘어가고 후계자로 넘어가면서 강력한 지도자가 또 나오질 않습니다.
도꾸가와 이요이이 이에요시 쇼근이 와병 중이니까 이때에
로즈 쇼근이 통치를 하는데 가장 옆에서 돕는게 말하자면 어 수상 가치
그죠 총리 대신 영의정 가치 국사를 대신해서 옆에서 보필하고 가장 모든
큰 책임을지고 돌보는 것을 노중 로주 우리 말 이제 우리 발음으로 노중이
되겠습니다. 노중이었는데 그 당시에 노중이 아베마사히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후쿠야마네 번주 다이며였고요. 그리고 어 가장
어 그 도구가랑 신 친했던 그 그 한 패였던 신판 다이며기 때문에 거기에
다이묘들이 로즈로 와서 중앙 정치를
어 이끌었던 거죠. 아베가이 문제를 이제 자기 중신들하고
논의를 합니다. 당시 그나마 해외랑 접촉이 가장 많았던
나가사키 그렇죠. 대지마섬이 있었 그 나가서 나가사키의 봉행을 여임하고
조선 통신사들을 늘 대접을 하는 역할을 했었든 따라서 사실 애도 막부
내에서는 가장 외교 경험이 많았던 츠스히 마사놀리 이런 사람들은 계국을
해야 된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정말이 사람들이 이때 당시에 계곡을 로즈
옆에서 계곡을 종용하던이 사람들의 논 논가 저는 참 중요하고이 부분이
일본이 갖고 있었던 일본이 결국은
결국은 성공적으로 근대를 자력의 힘으로 자력으로 맞을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것이 뭐냐면 이때에 이런 얘기를 입니다. 지금 우리가 200년
넘게 평화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우리의 군사력이 우리가 전쟁을 안
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 군사력이 형편없다. 우리가 지금 외세하고 맞서서
싸울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백성들도 그런 마음의 준비 결기도 없어졌고
이제 우리가 너무나 군사력에 있어서 정신력에 있어서
약해져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싫더라도 미국의 요청을
들어서 요구를 들어서 개항을 해야 된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저는이 일본 사람들이 지금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로주 중심의 막부 중심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에요.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잡고 있는 애도 막부 내부에서부터 뭐냐면 우리는
군사력이 약하다. 우리는 형편없다. 정신 상태가 너무 나약해져 있다라는
그 의식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실을 직시하면서 직시하면서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이냐에
갖고 거기서 이제 갈라지는 거죠. 현실인 현식은
똑같고 명확합니다. 그 입장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게 이제 도구가와
날리학기입니다. 밑도번에 그 밑도번입니다. 이제이
도구가와 이제이 사람도 도구가와입니다. 도구가와 날이 아끼니까 에도의 그
도구가랑 똑같은 집안이고 따라서 밑도번에서는 에도에서 초군의 대가
끊기면 밑도에 도구가 가해서 또 사람을 데려와갖고 쇼근을 이제
만들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마지막 소근도 결국은이 밑도번에서 나오죠.이
도크가와 나리아키의 손자가 나중에 마지막 소원이 되는 거죠. 그런데이
도크가와 나리아키 같은 사람은 당시에 가장 일본에서 존경을 받는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크 후에 내에서도 가장 존경을 받으니까 이제 아베 로즈 같은
사람이 가서 상의를 하죠. 그러면 나리학기관은 뭐라 그러냐면요. 미국은
우리보다 군 기술력과 군세력이 월등하다는 걸 너무나이 사람은 잘합니다.
계속 공부를 했었고 사람들 보내서 공부를 시켰던 거고 계국을 한다라는
것은 양이 서양 오랑캐들한테 나라를 내주는 거라면서 개항을 반대를
합니다. 아까 나가사기 봉행 같은 사람은 외교 경매 맞고 외국 사람을 많이 만나봤던 사람은 당연히 개양을
해가겠다. 이유는 우린 국력이 너무 약하고 군사력도 약하고 정신력도 약하다 그랬는데요. 도크가 나리학기는
아니다. 쇠곡 계속해야 된다. 그런데 이유가 뭔지 아세요? 물론
세국을 고집해 갖고 하면은 미국하고 전쟁을 해야 될 거고 미국이 월등이
우리보다 강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당연히 질 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나리아키 그다음에 미도
확파는 뭐라 그러냐면요. 그래 마저 우리 무사도 정신도
없어졌어. 그 혼 다 잊어버렸어. 전쟁 안 해 갖고 200년 동안 평화 때문에. 그러니까 그러면 그 정신을
어떻게 되살리느냐? 지들에도 전쟁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저서 전쟁을 해서 아주 참혹하게 접지 우리가 정신을 차릴 거라는 겁니다.
따라서 전쟁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군사력도 형편없고 정신력도
무뎌져 있다라는 거 다 동의를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개양을 하자는
거고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이때에 이때에 뭡니까?
한번 세게 당해 봐야지 우리 일본 사람들이 정신 차릴 거라고. 이렇게
의견이 갈리니까 그러면 로즈 아베가 놀라운 결정을 합니다.
이것도 이제이 정치 균형이 깨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데요. 뭐냐면은
다른들의 의견을 물어보자 이럽니다. 어떻게
해야 될 건지 계곡을 해야 될 건지 미국의 욕을 받아들일 건지 끝까지 싸울 건지를 결정을 지금 도저히 못
하겠으니까. 근데 이거를 전국에 있는 다묘들 그러니까 어차피 신반다묘는
자기네는 늘 같이 도구가 자기네이 도구가와 나리학기 같이 같은
도구가하고 후쿠시마의 그 로즈도 그렇고 전부 다 같은 사람들이니까
자기네들끼리 당연히 이제 다이며 있지만은 정체 참여를 했었지만 도자마다 다이며 호다이다며 같은
사람들 조주 사스마 이런 데는 아예 참여를 안 시켰고 의견도 물어본 적이
없었어요. 어떤 산에 대해서도 국정을 챙겨
나가는데 있어서 에도막부가 도자마다이며나
후다이다묘의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뭐 정치 정책 과정에
참여시키는 건 주체고 아예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아베는 물어봐야 되겠다 그럽니다. 우리끼리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우리
내부에서도 지금 나가사기에 봉행하고 나리아키가 서로
부딪히고 있듯이이 핵심에도
막보 핵심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러면서 물어보기로 합니다. 미국 함대가
다녀간지 한 달 후인 8월 5일 날 마크는 아베의 명령에 의해서 페리가
전달하고 간 필모 대통령의 친서를 전국 나이들한테 다 전달을 합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해 달라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270개
번의 다이들이 전부 다 의견을 개진을 합니다. 그때
당시에 로즈의 요청에 의해서 자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이 좋겠느냐
했는데 답을 한 그 답 중에서 쉬운 아홉 개가
59명의 달의 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기록들이 그중에서 가장
극적으로 극적으로 의견을 극적인 의견을 개진한 것이 후고가에 다이며
구로다 나가루라는 사람입니다. 구로다는 세상이 바뀌었다. 세국 정택
절대로 유지 못한다 우리가 그러면 미국하고 통상을 허락하자. 그런 그
대신 나가사기를에만 국한을 시키면 되지 않겠느냐? 나가서는 어차피
돼지마 선을 통해서 네덜랜드
동인도 회사의 상관장이 와 있었던데니까 200년 [음악] 동안 와 있었던데니까 거기로 국한을
시키자. 그리고이 조약도 미국하고 맺는 조약도 한 5, 6년짜리 조약을
맺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 대신에 미국이 지금 요구하는 것이 석탄 저장고 이런 거거든요. 미국이 미국
같은 나라들이 고래잡이를 하고 무역을 하고 돌아다니면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이게 이제는 이제는 증기선들이니까
가는 데마다 석탄 보급을 받아야 되는 거고 그러려면 자기네가 석탄 저장소를
곳곳에 둬야 되니까 그러니까 1번에도 석탄 저장고를 짓게 해 달라. 특히
무인도 같은 거를 내주면 거기에다가 그냥 할테니까 당신들 귀찮게 안 할테니까 무인도를 내주면 우리가
거기다 석탄 저장고를 짓겠다. 이제 이랬던 거죠. 그런데 이제이 구로다는 뭐라 그러냐면 그런 거는
들어 주면 안 된다. 왜냐면 미국한테 석탄 저장고 짓게 해 주면 영국
프랑스 다 나타날 것이다. 그거는 거절하되
5, 6년짜리 계약을 맺고 그리고 통상을 하되 나가기를 국한을 시키는
그런 조약을 맺으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참에
이미 1804년부터 통상을 요구하고 있었던 그 러시아하고
또 이참에 그냥 해 버리십시다. 본격적인 계곡을 합시다. 물론 5,
6년짜리 제한된 거고 나가사길 국한되는 거지만 근데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면 당연히 전쟁은
불불불가피해지고 전쟁을 하면은 이제 미국 완전히 일본은 초토화가 되고
일본 배은 전혀 미국 배의 상대가 안 된다. 군남들의 상대가 안 된다.
그리고 연한이 봉쇄가 돼 버릴 거고 그러면 일본은 견딜 수가 없다. 이제 이렇게 어 그 분석을 합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5, 6년 동안 뭐냐면 시간을 벌자라는 겁니다. 무슨 시간을
버느냐? 태양방어를 제대로 그 사이에 갖추면 되지
않느냐. 그래서 5, 6년 후에 조약을 다시 맺을 때쯤 되면 우리가 국력이 강해져서 그때 가서 거절하고
한 판 일전을 버려 갖고 나라를 지키면 되지 않겠냐. 그러니까 지금
미국하고 그런 제한된 조약을 몇대 그 사이에 그 시간을 이용해서 해양 방어를 해야
된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이 사람이 제안하는 것이
배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철패하라. 그동안에 일본은 에도막부에 들어서서 큰 배들을 못 만들게
합니다. 왜? 큰 배드를 만들어서 바깥으로 나가면은 도자마다 다이며
같은 사람들이 외세들랑 결탁하고 외국에 가서 물자들 가져오고 배워오고
하는 그게 다 해양을 통해서 그 배들을 통해서 하는 거니까 아예 배의
큰 배조 자체를 금지했던 거죠. 해금용이죠. 일종의 해금용이죠.
청나라도 해금을 내리고 있었고 조선도 해금을 내리고 있었고 일본도 해금령을
내리고 있었고 그 해금령의 핵심 뭡니까? 큰 배를 못 만들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뭐라 그럽니까? 배를 못 만들게 했던 그 법안을 철패를 하자. 그래서
서양의 조선 기술자들, 무기 기술자들을 전부 다 초빙해서
그래 가지고 서양의 첨난 방위 산업을 다 배우고
일본 일들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해야 된다. 사쿠마 쇼산 이런 사람들이 했던 얘기죠. 그래서이 사람
역시 일본은 너무 오랜 평화를 인해 갖고 무사 정신 땅에 떨어졌다.
이제 빨리 시간을 벌어서 군비태사를 갖추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대표적인 도자마다 다이묘였던
조주의 어 모리 다카치카는
교육을 거부하고 방비책을 마련해 된다.이
초기에는요. 초기에는 나중에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주역이 되는 조수구
사스하고 사가 전부 다
철저한 쇠국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게 이제 아이런이죠. 그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나서는 접는 잡는 과정에서
계곡주의자로 돌아서면서 메지신이 일어나는 거게 됐는데 이때 당시만 하더라도
조수 절대로 안 된다. 안 된다. 사가 나베시마 나오마사
유명했던 다이며입니다. 그리고 도사에 나중에 사건부터 막가 나오는 그
도사의 야마우치 요도이 사람들 전부 다 미국의 요구 다 거져하자 그러면서
데지마섬에 네덜랜드가 와 있으니까 네덜랜드에 도움을 받아서 빨리 우리가 국방을 튼튼히 해 갖고 미국의 요구를
물리치자 이러한 의견들이 대부분입니다. 파스마번에
시마즈나리아끼라 역시 당대에 가장 열려 있었던 사람이고 외국 문물을 많이 받아들이고
그렇지만 미국의 요구는 거절해야 된다. 우리 방비 튼튼히하고 이걸 끝까지 싸우자. 그 대신에 2,
3년간 좀 시간을 벌자. 그리고 주도면밀한 방어책을 그 사이 만들어
내자.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우리가이 서양 오랑캐들을에 맞써야 된다. 그 대신에
국방을 강화하자.이 국방을 강화하자. 서양의 맞서기에서 국방을 가가
강화하자라는 것이 이때부터 존황 양이 나중에 존황 양이가 되는
오랑캐를 물리쳐야 된다라는 양이라는 그 구호가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게 히마즈 같이 사스마번주
그렇죠. 조수번, 도사번 이런 사람들이 양의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법률 방송이 출간하는 시사 교양지 [음악]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아베가 필모의 친서를 모든 다이모드한테 다
보내서 의견을 물을 때 그 친을 교도의 천왕부에도 보냅니다.
교도의 천왕부는 사실 도자마다 다이묘보다도 더 국정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몇백 년 동안 묻혀 있었죠. 제가 며칠 전에
교도를 다녀왔는데 세삼스럽게 다시 한번 가서 보면서 놀게 놀라운게 뭐냐면 교도에
가면은 거기에 천왕이 살고 있는 고쇼가 있습니다. 그럼 거기에 가면 큰 [콧방귀] 궁전이 있습니다. 그냥
무료 개방된 큰 궁전이 있는데 멋있습니다. 가서 보고 근데 그다음에
그 옆에 있는 니조궁이라는데 이건 유료입니다. 더 크고 더
화려합니다. 근데 그 니조궁이 뭡니까? 니조궁은 도구가와 내가
자기내가 교도를 방문할 때 [음악] 쓰는
[콧방귀] 쓰는 궁입니다. 이런 식으로 완전히
천왕부를 제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아베가 로즈 아베가
필머의 친서를 전달을 하게 하고 천왕부의 의견을 묻습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사실은
뒤돌아보면 뭡니까? 천왕부의 괜히 국정에 간여할 수 있는
비밀을 제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이때 폐리제도 보내온 미국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서 어떻게 답을 하면 좋겠느냐고 도자마다 다이묘들한테도 물어보고
심지어는 천왕부에까지도 물어보면서 그러면서 세상이 바뀌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이 이 친서는 8월 16일 날 도착을 하는데요.이
교도의 조종 이제 묘당이라 그러죠. 우리가 묘당이라 그는데 그니까 왕이 있는 천왕이 있는 그 조 진짜
조종입니다. 막부라는 거는 그냥 전쟁할 때 임시루 하는 막부인 거고 사실은 원래는 그렇죠. 그 진짜
정부는 교도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교도의 천왕 밑에 있는 그 쿠계들 공가 귀족들하고 이런 사람들이
하는게 그게 묘 진짜 묘당이죠. 그런데이 묘당은요.이 친석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묘당에서 교도의 천왕부에서
실이 문제를 논나는 것이 그 친서를 받은지
아을의 후 9일 후에나 8월 25일에나이 문제를
논합니다. 천왕부가 얼마나 현실 정치나 이런 국가의 문제에 있어서
무뎌져 있었고 별 관심도 없었고 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게 다른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각자 온갖 의견을 개진해서 전부 다 올리는데
천왕부는 물어봤는데 자기네끼리 의논도 안 합니다. 한참 동안 의논 안
합니다. 거의 열흘 가까이 은논을 안 합니다. 그럴 정도로 사실은 천왕은
정치 나라의 정치에서는 열외 자진에서도 열외였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던 천왕부가 어떻게 다시 일본 정치 중심이 되느냐?
그게 우리가 에도에서 쇠국 정책에서 계국으로 가고 매진
뉴스로 가는 그 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자, 이제 친서 그 필모의 대통령의 친서가 이제 뭐
통역번역 번역 번역이었겠죠. 이제 도달을 해서 받은지 9일 만에 드디어 이제 묘당에서 모여서 야, 이런게
왔다더라. 우리 야, 그래도 뭐라고 답을 해야 될 거 아니냐. 그래서 이제 모여서 논의를 합니다. 그때
이제 모여 있는 그 사람 중에서 가장 높은게 이제 관백. 우리가 이제 역사에서 배우지 않습니까? 신라 시대
이럴 때 관백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관백이 이제 천왕의 제일 오른편, 제일 높은 어 고문입니다. 그
관백이었던 다카스카사 마사미치라는이 사람은요.
미국의 통상 요구를 들어 주자. 그럼 미 일본이 말은 외국이지만 사실 우리
네덜랜드랑 교육을 해 왔었고 꾸준히 중국하고도 계속 교육을 하고 있지 않느냐. 그래서 미국하고 지금 한다
그래서 그럼 두 나라라고 하했던 것은 세 나라랑 그냥 교육하자는 것이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라면서
관백이 조종의 묘당의 관백이 적극적으로 개국을 주장을 합니다. 그
대신 역시이 사람도 통상 그냥 나가게 국한시키자. 지금까지 네덜랜드랑
해와듯이 그리고 그걸 어길 경우에는 뭐 추방을 하든지 하면 되지. 일단은
받아들이자. 그러면서이 사람도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일본의 군대는 일본의
군은 사무라이들은 이미 과거의 힘과 정신을 모두 다 잃었다.
비겁하고 게으러졌다. 외국인과 싸울 능력이 없다. 따라서
괜히 싸우다가 큰 일을 화를 당하느니 차라리 통상을 허용하고 이윤이라도
챙기자. 이렇게 관백이 얘기를 합니다. 나머지 묘당의 나머지
천왕보의 나머지 사람들은 다 반대합니다. 그때 다 쇠국 유지해야 된다 그럽니다. 다카스카사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반대를 하니까 일단은 그냥
애도 막부에다 뭐라 그러냐면 어떻게 결정되는지 미국의 요구를
어떻게 대응할 건지 결정되는 대로 우리 천왕부에 알려만 그러고 맙니다.
그만큼 천왕부 내부에서는 별다른 의견도 없었고 자기네가 의견을 개진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것도 워낙 오랜 세월 억눌려 있으면서 알았기 때문에 별 답을 안 하고 그냥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 알려 달라. 이게 천왕부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천왕부의 힘이 형편 없었던
거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왕이 천왕부에서 감히 에도바크
후보고 어떻게 결정이 되는지 그래도 알려라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이게 일본의 막부 정치하에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바로 요때 그러니깐 자기네는 별다른
의견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결정하는지 우리한테 알려라 하는
얘기가 나왔을 때가 천왕이 일본 정치의 무 중앙 무대로
복귀하는 복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이 얘기를 합니다. 이것이
그 당시에 권력이 에도에서 교도로 그리고 에도에서 도자마다
다이며들 조슈나 사스마로 이동해 가기 시작하는 첫 신어가 됩니다. 그리고
물론 천왕한테까지도 의견을 묻는 아주 위험한 설례를 만듭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조슈하고 사스마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고 천왕이 국정의
중심으로 급속히 부강을 부상을 하기 시작합니다.이 이때에 러시아의 함대도 나타납니다.
러시아에서는요. 어, 미국이 다녀갔어. 그러면서 아까
러시아는 이미 1804년부터 일본하고 교육을 하자고 와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페르제독이 와 갖고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라는 소식을 당연히 러시아가죠. 그래서 러시아에서도
함대를 보내서 야, 우리랑 교육을 하자. 우리랑 먼저 하자. 이제이 이럽니다.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니까 사실 이때에에도 막부는
세국을 포기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계국을 하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러시아 함대가 나타나기 7일 전에 이미 며칠 전에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후국가에 다며 구로다나가로가 배를 건조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없애자고 상소를 올렸고 그리고 사스마의 다이며 시마즈
나리아끼라는 네덜랜드로부터 배와 무기를 사웁시다라는
편지를 또 막보에 올립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제 움직이 1번에서 아
이제는 안 된다. S국은 안 되는구나. 그럼 빨리 어떻게 우리 국방을 강화하느냐? 서양에서부터 배를
건조하는 방법 이런 거를 다 군함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 되는 거고 그리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큰 배 건조 금지법 이런 거 다 없애 버리자.이 이러 이러는 겁니다. 그러 결국 로즈 아베
마사히로는 10월 21일 날에 220년 동안 존속해 온
큰 바다 항해용 선박을 건조하는 것을 금지하던 법을 폐지시킵니다. 그리고
곧이어서 네덜랜드로부터 정기선 전함 건조를 해 달라고 주문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때 이제 각 번에서 각 번에서도 큰 배들을 이제 건조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1854년 8월에 바크후는
새 주문한 새함정에 계양할
신바탕에 붉은 태양이 그려진 국기를 정합니다.
일본의 일장기가 일장기가 이때 1854년
8월 만들어지는데 왜 만들어지느냐? 네덜랜드로부터 건조한 거를 주문한
배가 그 배에 계양을 할 국기가 있어야 된다. 서양에서는 그렇게
한다. 그 나라의 군함이 되는 거고 그 나라의 군함이면은 그 나라의 국기라는게 있어야 되는데 그럼 그
국기를 어떻게 할 거냐? 이때 박쿠후가 도구가 박쿠후가 신바탕에
빨간 태양이 있는 일본 국기를 만듭니다. 1853년
11월 23일에는 지난 7월에
사망한 독구가와 이해요 씨의 아들 이에사다가
제13대 소근에 임명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이때 천왕이 고메이 천왕입니다. 태쇼 소근이 왔으니까 장군이 올 임명이 될
때마다 정의대장군 오랑캐드를 정복하라는
장군입니다. 그게 쇼군이죠. 원 쇼군의 공식 명칭이 그러니까 도구가와이아스부터 시작해서 천왕은
모든 쇼군한테는 정의 대장군의 칭호를 내리는 거죠. 그래서 이제 이해사 독구가와 이해사다가 13대 소군으로서
정의 대장군의 칭호를 회의 천왕으로부터 하살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때 그 정의 대장군의 침호를 전달을 했던 그렇죠. 천왕의 오른팔 관백
간바꾸 다카스카가 로즈 아벨을 만난 김에 자 미국
배들이 지금 출연을 하고 있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 어떻게 된 거냐? 천왕이 굉장히 걱정을
하시는데 어떤 결정을 해서 어떤 방식으로이 문제를 해결할 거냐 그랬더니 아베가 다카스카 관백한테
뭐라 그러냐면 아무런 결정 내려준 거 없다. 그렇지만 결정을 내리면은 천왕
부에 분명히 알리겠다 그럽니다. 그리고 천왕이 원하는게 있으면 우리가
다 받들겠다라고 아베가 로주가 그죠.
막부의 최고인 아베가 그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전달을 합니다.
초왕부에. 그런데 1854년 3월 31일
드디어 미국하고 일본이 가나가와 조약을 맺을 때 아베는 독구와 막부는
천왕한테 알리지도 않습니다.이 바쿠마스 시대에 요때에 계국을 할
것이냐을 유지할 것이냐이 논쟁은요. 일본의 쇠국주의자들은요.
조선의 위정척 사파들과는 달리 서양의 무력과 기술이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면은 질 거라는 것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덕구가 날리기 같이 그 대신 뭡니까? 전쟁을 해서
져야 된다. 전쟁을 해서이 좋고 지더라도 한번 호대게 전쟁을 해서
접어야지 일본 우리가 정신을 차려서 제대로 된 나라를 그다음부터라도 세울
수 있다. 그러니까는 계속이 세국 정책을 밀고 나가자.
우리가 이길 것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지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해서도 정신을 차려야 된다라고 했기 때문에 쇠국을 주장을 했던 거고요.
계국주의자들은요. 그냥 그 맹목적으로 서양화를 하자
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계곡 주의자들은 왜 그 개고를 하자 그랬습니까? 나라를 지켜야죠.
당연히 나라를 지키죠. 그런데 문제 뭡니까? 나라를 지키려면은
서양의 기술을 서양의 군사력을 그거를 빨리 배워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그러려면은 어떡합니까? 계국을 해야죠. 계국을 하는 이유도 서양을 궁극적으로
물리치기 위해서 그 서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계국을 하자는 거고 세국주의자들도
서양이 약해서 우리가 이길 거라는 어떠한 그런 과대망상
헛된 잘못된 상황 인식 때문이 아니라 질 거라는 거 명확히 알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싸워서 지는이 있더라도 싸워 봐야 된다. 그래야지만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라고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일본에도 당시 일본에도 세국과
계곡 문제를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사쿠마 쇼ઝ산 그리고 그 제자 요시다 쇼인입니다. 에 대한 일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그 당시에 단순한 계국주의자 단순한 외국주의자들이이
사람들을 얼마나 잘못 이해했는가 즉 진짜 일본
바꾸마츠 막말의 일본의 지도층이 일본의 지도층이 쇼근에서부터
천왕에서부터 어 후다이 다이며 도자마 다이며 이르기까지이 모든 지도층이
얼마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다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어서 차이를 보여
보였는데 그 그 미묘한 차이를 그 중요한 차이를 몰랐던 계국주의자
세국주의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시다 쇼인의 스승이고 그렇죠.
그리고 요시다 쇼인 보고 야 미랑을 해서 미국 가서 배우고라고 했던 바로 그 사쿠마 쇼사 그럴 정도로 서양
기술을 배워야 되겠다라는 사쿠마쇼사는 사실은 계국을 반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서 배워오자라는 것이 계국을 하자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쿠마 쇼산이 누구 손에 죽습니까? 무지 목매한 쇠국주의자들한테 죽습니다.
서양 말한장을 타고 다녔다. 그래서 그러니까이 무지매한 세국주의자들이
보기에는 아 서양거를 저렇게 배우고 저런 거 맨날 저런 서양 서양 안장
타고 다니고 서양거를 도입하자는 소리만 자꾸 하는 놈 보면 저거 완전히 계곡주의자 서양 친서방놈이다
이래서 죽여 버리는 거죠. 근데 사마셔서는 뭡니까? 우리 거를 지키려면 서양거를 배워야
되겠다라는 거죠. 안장을 말한장을 타 보니까 우리 안장보다는 서양 말한장이
훨씬 더 편하고 튼튼하고 좋으니까 이거를 갖고 우리가 전쟁을 해야지 된다라고 해서 그걸 탔던 것이지
모든게 서양 것이 좋다. 그래서 한 거 아니죠. 그렇지만
잘못된 쇠국이 진정한 의미의 쇠국이 뭔지를
몰랐던 사람들에 의해서 사쿠마 소잔이 주장하던 그 쇠국이 뭔지를 몰랐던
무지 목매한 쇠국주의자들 손에 사꾸마가 효산이 암사를 당합니다.
반대로 요시다 쇼인 사쿠마 쇼산의 제자 요시다 쇼인은 미국으로
미랑을까지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계국을 해야 된다고 주장을 하다가
사용을 당합니다. 그런데 요시다시오인는 또
극단적인 세국주의자들의 영웅이 돼 버리는 거죠. 그렇지만 그 당시
계국이냐의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버렸던 일본의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쇠국을 했을 때
문제가 뭐고 계국을 했을 때 문제가 뭐고 그다음에
쇠국을 했을 때 어떤 이점이 있고 계곡을 했을 때 어 어떤 이점이 있고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국가 가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이 결국 가서는 존황 양이
사상 그죠. 서양의 오랑캐를 무찌르고 천왕을 받들자라는
쇠국 사상과 그다음에 계국 사상을 나라를 열어서 배워야 된다라는 거를
그 두 사상을 합치는 것이 그게 바로 매지유신이거든요.
존왕양이와 계국이 같이 갈 수 있는 그래서 나라를 바꾼 것이 매주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던 것도 사실은 개국파가 됐든 쇠국파가 됐든
바깥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었고 국가 목표에 대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제 구체적으로 조약을
미국하고 가나가 조약을 체결을 하고 미국의 외교관이
일본에 와서 상주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러면서 급격한 투쟁과 혼란과
암살과 놀라운 소용돌이에 휩쓸기 휩쓸리기 시작하는 것이 일본의
전국입니다. 그 전국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지 그러면서 왜 그것이 결국은
메지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 처음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계국을 하고 서양의 미국의 외교관이
일본 본토에 와서 돼지마 같은 인공섬이 아니라 본토에 올라와서
건물을 사서 영사관을 차리고 상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본 정치의
경남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음악]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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