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1 일본은 왜 미국과 싸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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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미국과 싸우지 않았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1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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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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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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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군입니다. 어 오늘은
일본의에도 막부 어 말기에 외세가 등장하기 [음악] 시작하면서
어 일본의 정치적 균형이 어떻게 깨지기 시작했고 막부 중심에 도구가와
막부가 주도했던 [음악] 그 정치 체제가 무너지고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지 유신으로 [음악] 향해 가는지 그런데 특히 천황이 왜 일본 정치의
[음악] 중심으로 떠오르게 됐는지 특히 그 부분을 오늘 살펴보도록 [음악]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일본에서 도미가 정권을 잡게 되는 과정을 그걸
천하통일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그 도요도미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일본을 일본의 천하를 통일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전국 시대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우리가 보통 춘추전국 시대라 그러지 않습니까? 춘추 시대는 이제 공자 어
뭐 그 종가 뭐 묵과 여러 가지 이제 사상가 그야말로 백가명의 시대였었고
그다음에 이제 그 질서가 주나라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그게 이제
전국 시대가 되고 전국 시대의 중국의 전국 시대의 시대의 종지부를 찍은
찍은 것이 바로 진시황이죠. 그래서 진시황이 처음으로 천하 통일을 해서
황제라는 칭호를 가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중앙직권적 절대 전제군주의 체제가 이제 거기서부터 나오는 거. 그때부터 나오는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이제
왕조만 교체가 되고 항상 황제가 통치하는 그런 체로 바뀌는데
일본에서도 사실은 우리가 지금 일본이라고 하지만에도
시대에만 하더라도 270개 번으로 나눠져 있었고 그 번들이라는
것은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실제로 곡이라 그랬습니다. 곡. 그렇죠?
그러면 그 국이 없고 그 국의 우두머리들이 다묘들이었고
다묘들은 각자가 자기 조종이 있는 거죠. 정부가 있는 거죠. 다묘가
있고 자기 신하들이 다 있고 자기 밑에 군대 사무라이들이 있고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들이 있고 그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걷둬 갖고 자기네가 쓰는 거죠. 그렇게 서로가
간섭을 하지 않고 물론에도 막부 같은 데가 이제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뭐 우리가 그동안 쭉 노네 왔듯이 이제 참근 교대, 산긴다이
같은 거를 통해서 어떻게든지이 다양한묘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특히 더군나 중앙의에도 막부에 반기를 들지
못하게 이제 계속해서 그걸 억누르고 견제하고 이제 이런 걸 했죠.
그렇지만 수많은 번로 나눠져 있었고 일상에 있어서
보통 일본 사람들은 자기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그러면 나는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조슈 사람, 나는 사스마 사람, 나는
미도인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실 자기네가 천하고
천하에 200억의 나라가 있었다 생각을 했었던 거죠. 자기네들끼리 세
개요. 하나의 세계였던 거죠.이 일본 사람들이 자기내가 천하를 이루고
있고 그 안엔 다양한 나라들이 있어서 서로가 싸우고 견제하고 이런 이러면서
늘 간신히 통합을 유지하는 거. 통합이라는게 이제 전쟁 안 나게 간신이 어느
막부가 이제 그 힘으로 이제이에도 시대에는 도구가와 막부가 워낙 힘이
세서 그거를 그 전쟁으로 다시 전국 시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그거를 이제 꽉 막고 있었던 거죠. 그랬는데
외세가 나타나면서 외세가 나타나면서 일본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던 전혀 바깥으로부터의 적이 오니까 그 적이
외세 침략으로 인해서 어 우리를 어떻게 지키지? 우리의 영토를 어떻게
지키지?이 이 미국 사람으로부터 뭐 영국 사람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이렇게
되면서 아 자기네가 운명 공동체구나. 일본을
자기네 천하를 외세로부터 지키려 그러면은 그러면은 자기네
번끼리 나눠서 지켜지지가 않는 거죠. 자기네가 다 같은 은명 공동체고
우리가 같이 힘을 합쳐서 외세를 외침을 막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아 우리가
조슈 사람이 아니고 사스마 사람이 아니고 에키젠 사람이 아니고 도사이 아니고
어 우리가 일본이라는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나라의
그러면 중심이 누구냐 여태까지 조주번도 아니고 미도번도
아니고 사스마번도 아니고 그렇죠. 도사번도 아니고
사과번도 아닌데 그 그러면은 그럼 독구가와는 당연히 막부 막부가 중심이어야 되지만
사실 막부는 뭡니까? 또 하나의 번이죠.에도
에도 번입니다. 번 하나의 번이죠. 그러니까 나라의 중심이 그러면 과연
우리 여러 번 중에 으뜸이긴 하지만 그 번이 과연 번주가 그 번의 다이며
도구가와가 과연 나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1번이라는이 새롭게 의식을
갖기 시작하는 일본 사람들이 아 우리가 일본 사람이구나 번으로 나눠져 있는게 아니라 그 번들을 다 포괄하는
하나의 공동체구나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을 근데 그것을 대표할 수 있는 어떠한 존재 상징
그게 이제 생겨야 되는 거죠. 그게 누구냐 하면서 그때에 그때에 바로
이게 천왕이다. 천왕이야말로 우리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그러한
존재이구나라는 의식이 들기 시작을 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로 역설적인
것은 천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천왕이란 존재가 어떻게 우리 전체를 대표하는
일본 역사 속에서 1번을 끊임없이 대표해 왔던 것은 역시 천왕가
천왕이라는 그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도구가와가
가문에 직 가문이 직접 통치하고 있던 미도번이라는 데에서
밑도 학파가 나와서이 존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까
밑도번에 있는 학자들이 일본 대일본사라는
역사서를 쓰면서 그 역사의 중심을 천왕으로 보기 시작하는 거죠. 그런데
그러니까 이도버은 미도버은 결국은 도구가와 막부의
마지막 소군도 미도번 출신입니다. 그런데 그 밑도
번에서 해피림은 존황 사상이 나오면서 나라가 흔들리기 착하고 외세 침략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독구가와 막부가 어 이거를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잘
만들어 놓은 균형이 깨지고 있고 이런 도전들이 오는데 그럼 어떻게 되지? 하는 사이에 같은 도구가와 집안에서
만들어 냈던 그 미도학파의 존왕 사상이 일본의 젊은이들 일 일본의
새 시대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외세로부터 일본을 지켜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천왕이라는 존재를 안겨다 주는게
그게 바로 믿도번입니다. 그러니까 도구가와 내 가문에서 자기네가
자기네의 가문을에도 시대를 종을 짓게 하는 결국 그 조항
사상이 그것도 도구가 가문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일본에서 조왕 사상이
부각이 되기 시작하면서 천왕이 살고 있는 교도
교도가 갑자기 나라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하고 특히 각 번에 있었던 [음악] 젊은 과격한 극진 개혁자들
도구가와 막부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도 있었고 외세의 외치 침략을 막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이 [음악] 모든 사람들이 교도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천왕부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교도가 일본 정치의 중심이 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거기에 있는 천왕이 일본 정치의 중심 그리고 일본의 새로운 상징 통일된
일본의 상징으로 떠오르기 시작을 합니다. 대표적인 도자마 다이묘,
조슈나 사스마 같은이 다이묘들은 중앙정치에 애도 정치에 참여는 못
했지만 안 시켜 주니까 그랬지만 천환가하고 오랜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어왔다라고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전통적인 관계를 통해서 교도의 천왕가하고의 깊은 관계를 혼인 관계
이런 거를 계속해서 유지해 오고 있던 조슈하고 사스마에도
힘이 심립니다. 교도가 중심이 되기 시작하고 천왕이 중심이 되기 시작하니까 거기랑
가까웠던 조슈하고 사스마 나중에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두 번이이
큰 애도로부터 도쿄로부터 교도로 세력 중 정치 중심 무게
중심이 움직여 가는데 있어서 가장 크게 이득을 보는 것이 바로
도구가와의 처음부터 맞섬으로써 도구가와의 가장 큰 견제를에도 시대
받아야 됐던 조슈와 사스마가 그 권력의 이동을 통해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보게 됩니다. 이러면서 세력 전의가 일어납니다. 이런 외세의 도래라는 것이 이런
다양한 차원에서 새 나라의 중심을 천왕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 천왕과
교도랑 가장 유대 관계가 깊었던 조수하고 섰으만 의성을 부각을 시키고
중앙에서의 목소리를 키워 주고 그리고 나라를 지켜야 되기 때문에 지키는데
있어서 가장 군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던 또 조주하고 사스마의 의의존 지원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서
엄청난 세력의 권력의 이동이 일어나기 시작을
합니다. 1853년 7월 14일 미국 필머 대통령의
친서가 막부에 마크후에 에도의 마크후에
전달이 됩니다. 페리제독이 요구하듯이 미국이 요구하듯이 정말로 계국을 해서
미국하고 조약을 맺어 가지고 미국 사람들이 맘대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하고 이제 그러면 분명히 이제
영국도 올 거고 프랑스도 올 거고 독일도 올 거고 러시아도 올 텐데 뼈한데 그럼 이제 개국을 해야 될
텐데 그러면 이게 이거를 우리가 할 수가 있는
거냐 에더 입장에서 그렇죠에도 마구 입장에서 더군다나
이렇게 계국이 되면은 자기네가 그동안 만에 그렇게 억눌르려고 했던 도자마
다이묘들 그죠? 조수사하고 사스마 같은 그 도자마의 다녀들 카톨릭을
그렇게 처절하게 파괴해를 하면서까지 [음악] 외세와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던 바로 조수사스마 같은 그
도자마다 다녀들 다시 외국들과 [음악] 결탁을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은 자기 내가에도 막부가 더
이상 마음대로 제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게 뻔했던 거죠.에 에 시대의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외세의 개입을 완전히 단절한 채 그 내부에서의 세력
균형을 창출했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외세가 나타난 거죠.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만일에 우리 계속해서 쇠곡하겠다.
미국 당신애들 말 못 듣겠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뭐 페리제독 함대가
와서 벌써 대포 몇 번 쓰고 그 엄청난 배들을 보고 나서 일본이
미국하고 전쟁할 일은 아니라는 걸 알죠. 그러면 전쟁도 못 하겠고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계곡을 당장 해 버릴 수도 없고 완전히 진퇴
양난에 빠집니다. 더군다나 이때에 쇼그는 중병으로 국사를 전혀 돌보지도 못하고
있었던 상황입니다. 참 나라가 힘들어지는 정권이 힘들어진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해필이면은이 도구가와는 마지막에 갈수록 그 쇼군들이 굉장히
허약하고 신체적으로 허약하고 짧은 통치 기간을 갖고 계속해서 다음
후계자로 넘어가고 후계자로 넘어가면서 강력한 지도자가 또 나오질 않습니다.
도꾸가와 이요이이 이에요시 쇼근이 와병 중이니까 이때에
로즈 쇼근이 통치를 하는데 가장 옆에서 돕는게 말하자면 어 수상 가치
그죠 총리 대신 영의정 가치 국사를 대신해서 옆에서 보필하고 가장 모든
큰 책임을지고 돌보는 것을 노중 로주 우리 말 이제 우리 발음으로 노중이
되겠습니다. 노중이었는데 그 당시에 노중이 아베마사히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후쿠야마네 번주 다이며였고요. 그리고 어 가장
어 그 도구가랑 신 친했던 그 그 한 패였던 신판 다이며기 때문에 거기에
다이묘들이 로즈로 와서 중앙 정치를
어 이끌었던 거죠. 아베가이 문제를 이제 자기 중신들하고
논의를 합니다. 당시 그나마 해외랑 접촉이 가장 많았던
나가사키 그렇죠. 대지마섬이 있었 그 나가서 나가사키의 봉행을 여임하고
조선 통신사들을 늘 대접을 하는 역할을 했었든 따라서 사실 애도 막부
내에서는 가장 외교 경험이 많았던 츠스히 마사놀리 이런 사람들은 계국을
해야 된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정말이 사람들이 이때 당시에 계곡을 로즈
옆에서 계곡을 종용하던이 사람들의 논 논가 저는 참 중요하고이 부분이
일본이 갖고 있었던 일본이 결국은
결국은 성공적으로 근대를 자력의 힘으로 자력으로 맞을 수 있었던 가장
핵심적인 것이 뭐냐면 이때에 이런 얘기를 입니다. 지금 우리가 200년
넘게 평화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우리의 군사력이 우리가 전쟁을 안
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 군사력이 형편없다. 우리가 지금 외세하고 맞서서
싸울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백성들도 그런 마음의 준비 결기도 없어졌고
이제 우리가 너무나 군사력에 있어서 정신력에 있어서
약해져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싫더라도 미국의 요청을
들어서 요구를 들어서 개항을 해야 된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저는이 일본 사람들이 지금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로주 중심의 막부 중심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에요.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잡고 있는 애도 막부 내부에서부터 뭐냐면 우리는
군사력이 약하다. 우리는 형편없다. 정신 상태가 너무 나약해져 있다라는
그 의식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실을 직시하면서 직시하면서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이냐에
갖고 거기서 이제 갈라지는 거죠. 현실인 현식은
똑같고 명확합니다. 그 입장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게 이제 도구가와
날리학기입니다. 밑도번에 그 밑도번입니다. 이제이
도구가와 이제이 사람도 도구가와입니다. 도구가와 날이 아끼니까 에도의 그
도구가랑 똑같은 집안이고 따라서 밑도번에서는 에도에서 초군의 대가
끊기면 밑도에 도구가 가해서 또 사람을 데려와갖고 쇼근을 이제
만들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마지막 소근도 결국은이 밑도번에서 나오죠.이
도크가와 나리아키의 손자가 나중에 마지막 소원이 되는 거죠. 그런데이
도크가와 나리아키 같은 사람은 당시에 가장 일본에서 존경을 받는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크 후에 내에서도 가장 존경을 받으니까 이제 아베 로즈 같은
사람이 가서 상의를 하죠. 그러면 나리학기관은 뭐라 그러냐면요. 미국은
우리보다 군 기술력과 군세력이 월등하다는 걸 너무나이 사람은 잘합니다.
계속 공부를 했었고 사람들 보내서 공부를 시켰던 거고 계국을 한다라는
것은 양이 서양 오랑캐들한테 나라를 내주는 거라면서 개항을 반대를
합니다. 아까 나가사기 봉행 같은 사람은 외교 경매 맞고 외국 사람을 많이 만나봤던 사람은 당연히 개양을
해가겠다. 이유는 우린 국력이 너무 약하고 군사력도 약하고 정신력도 약하다 그랬는데요. 도크가 나리학기는
아니다. 쇠곡 계속해야 된다. 그런데 이유가 뭔지 아세요? 물론
세국을 고집해 갖고 하면은 미국하고 전쟁을 해야 될 거고 미국이 월등이
우리보다 강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당연히 질 거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나리아키 그다음에 미도
확파는 뭐라 그러냐면요. 그래 마저 우리 무사도 정신도
없어졌어. 그 혼 다 잊어버렸어. 전쟁 안 해 갖고 200년 동안 평화 때문에. 그러니까 그러면 그 정신을
어떻게 되살리느냐? 지들에도 전쟁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저서 전쟁을 해서 아주 참혹하게 접지 우리가 정신을 차릴 거라는 겁니다.
따라서 전쟁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군사력도 형편없고 정신력도
무뎌져 있다라는 거 다 동의를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개양을 하자는
거고 어떤 사람은 그러니까 이때에 이때에 뭡니까?
한번 세게 당해 봐야지 우리 일본 사람들이 정신 차릴 거라고. 이렇게
의견이 갈리니까 그러면 로즈 아베가 놀라운 결정을 합니다.
이것도 이제이 정치 균형이 깨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데요. 뭐냐면은
다른들의 의견을 물어보자 이럽니다. 어떻게
해야 될 건지 계곡을 해야 될 건지 미국의 욕을 받아들일 건지 끝까지 싸울 건지를 결정을 지금 도저히 못
하겠으니까. 근데 이거를 전국에 있는 다묘들 그러니까 어차피 신반다묘는
자기네는 늘 같이 도구가 자기네이 도구가와 나리학기 같이 같은
도구가하고 후쿠시마의 그 로즈도 그렇고 전부 다 같은 사람들이니까
자기네들끼리 당연히 이제 다이며 있지만은 정체 참여를 했었지만 도자마다 다이며 호다이다며 같은
사람들 조주 사스마 이런 데는 아예 참여를 안 시켰고 의견도 물어본 적이
없었어요. 어떤 산에 대해서도 국정을 챙겨
나가는데 있어서 에도막부가 도자마다이며나
후다이다묘의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뭐 정치 정책 과정에
참여시키는 건 주체고 아예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아베는 물어봐야 되겠다 그럽니다. 우리끼리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우리
내부에서도 지금 나가사기에 봉행하고 나리아키가 서로
부딪히고 있듯이이 핵심에도
막보 핵심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러면서 물어보기로 합니다. 미국 함대가
다녀간지 한 달 후인 8월 5일 날 마크는 아베의 명령에 의해서 페리가
전달하고 간 필모 대통령의 친서를 전국 나이들한테 다 전달을 합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해 달라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270개
번의 다이들이 전부 다 의견을 개진을 합니다. 그때
당시에 로즈의 요청에 의해서 자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이 좋겠느냐
했는데 답을 한 그 답 중에서 쉬운 아홉 개가
59명의 달의 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기록들이 그중에서 가장
극적으로 극적으로 의견을 극적인 의견을 개진한 것이 후고가에 다이며
구로다 나가루라는 사람입니다. 구로다는 세상이 바뀌었다. 세국 정택
절대로 유지 못한다 우리가 그러면 미국하고 통상을 허락하자. 그런 그
대신 나가사기를에만 국한을 시키면 되지 않겠느냐? 나가서는 어차피
돼지마 선을 통해서 네덜랜드
동인도 회사의 상관장이 와 있었던데니까 200년 [음악] 동안 와 있었던데니까 거기로 국한을
시키자. 그리고이 조약도 미국하고 맺는 조약도 한 5, 6년짜리 조약을
맺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 대신에 미국이 지금 요구하는 것이 석탄 저장고 이런 거거든요. 미국이 미국
같은 나라들이 고래잡이를 하고 무역을 하고 돌아다니면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이게 이제는 이제는 증기선들이니까
가는 데마다 석탄 보급을 받아야 되는 거고 그러려면 자기네가 석탄 저장소를
곳곳에 둬야 되니까 그러니까 1번에도 석탄 저장고를 짓게 해 달라. 특히
무인도 같은 거를 내주면 거기에다가 그냥 할테니까 당신들 귀찮게 안 할테니까 무인도를 내주면 우리가
거기다 석탄 저장고를 짓겠다. 이제 이랬던 거죠. 그런데 이제이 구로다는 뭐라 그러냐면 그런 거는
들어 주면 안 된다. 왜냐면 미국한테 석탄 저장고 짓게 해 주면 영국
프랑스 다 나타날 것이다. 그거는 거절하되
5, 6년짜리 계약을 맺고 그리고 통상을 하되 나가기를 국한을 시키는
그런 조약을 맺으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참에
이미 1804년부터 통상을 요구하고 있었던 그 러시아하고
또 이참에 그냥 해 버리십시다. 본격적인 계곡을 합시다. 물론 5,
6년짜리 제한된 거고 나가사길 국한되는 거지만 근데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면 당연히 전쟁은
불불불가피해지고 전쟁을 하면은 이제 미국 완전히 일본은 초토화가 되고
일본 배은 전혀 미국 배의 상대가 안 된다. 군남들의 상대가 안 된다.
그리고 연한이 봉쇄가 돼 버릴 거고 그러면 일본은 견딜 수가 없다. 이제 이렇게 어 그 분석을 합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5, 6년 동안 뭐냐면 시간을 벌자라는 겁니다. 무슨 시간을
버느냐? 태양방어를 제대로 그 사이에 갖추면 되지
않느냐. 그래서 5, 6년 후에 조약을 다시 맺을 때쯤 되면 우리가 국력이 강해져서 그때 가서 거절하고
한 판 일전을 버려 갖고 나라를 지키면 되지 않겠냐. 그러니까 지금
미국하고 그런 제한된 조약을 몇대 그 사이에 그 시간을 이용해서 해양 방어를 해야
된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이 사람이 제안하는 것이
배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철패하라. 그동안에 일본은 에도막부에 들어서서 큰 배들을 못 만들게
합니다. 왜? 큰 배드를 만들어서 바깥으로 나가면은 도자마다 다이며
같은 사람들이 외세들랑 결탁하고 외국에 가서 물자들 가져오고 배워오고
하는 그게 다 해양을 통해서 그 배들을 통해서 하는 거니까 아예 배의
큰 배조 자체를 금지했던 거죠. 해금용이죠. 일종의 해금용이죠.
청나라도 해금을 내리고 있었고 조선도 해금을 내리고 있었고 일본도 해금령을
내리고 있었고 그 해금령의 핵심 뭡니까? 큰 배를 못 만들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뭐라 그럽니까? 배를 못 만들게 했던 그 법안을 철패를 하자. 그래서
서양의 조선 기술자들, 무기 기술자들을 전부 다 초빙해서
그래 가지고 서양의 첨난 방위 산업을 다 배우고
일본 일들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해야 된다. 사쿠마 쇼산 이런 사람들이 했던 얘기죠. 그래서이 사람
역시 일본은 너무 오랜 평화를 인해 갖고 무사 정신 땅에 떨어졌다.
이제 빨리 시간을 벌어서 군비태사를 갖추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대표적인 도자마다 다이묘였던
조주의 어 모리 다카치카는
교육을 거부하고 방비책을 마련해 된다.이
초기에는요. 초기에는 나중에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주역이 되는 조수구
사스하고 사가 전부 다
철저한 쇠국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게 이제 아이런이죠. 그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나서는 접는 잡는 과정에서
계곡주의자로 돌아서면서 메지신이 일어나는 거게 됐는데 이때 당시만 하더라도
조수 절대로 안 된다. 안 된다. 사가 나베시마 나오마사
유명했던 다이며입니다. 그리고 도사에 나중에 사건부터 막가 나오는 그
도사의 야마우치 요도이 사람들 전부 다 미국의 요구 다 거져하자 그러면서
데지마섬에 네덜랜드가 와 있으니까 네덜랜드에 도움을 받아서 빨리 우리가 국방을 튼튼히 해 갖고 미국의 요구를
물리치자 이러한 의견들이 대부분입니다. 파스마번에
시마즈나리아끼라 역시 당대에 가장 열려 있었던 사람이고 외국 문물을 많이 받아들이고
그렇지만 미국의 요구는 거절해야 된다. 우리 방비 튼튼히하고 이걸 끝까지 싸우자. 그 대신에 2,
3년간 좀 시간을 벌자. 그리고 주도면밀한 방어책을 그 사이 만들어
내자.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우리가이 서양 오랑캐들을에 맞써야 된다. 그 대신에
국방을 강화하자.이 국방을 강화하자. 서양의 맞서기에서 국방을 가가
강화하자라는 것이 이때부터 존황 양이 나중에 존황 양이가 되는
오랑캐를 물리쳐야 된다라는 양이라는 그 구호가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게 히마즈 같이 사스마번주
그렇죠. 조수번, 도사번 이런 사람들이 양의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법률 방송이 출간하는 시사 교양지 [음악]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아베가 필모의 친서를 모든 다이모드한테 다
보내서 의견을 물을 때 그 친을 교도의 천왕부에도 보냅니다.
교도의 천왕부는 사실 도자마다 다이묘보다도 더 국정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몇백 년 동안 묻혀 있었죠. 제가 며칠 전에
교도를 다녀왔는데 세삼스럽게 다시 한번 가서 보면서 놀게 놀라운게 뭐냐면 교도에
가면은 거기에 천왕이 살고 있는 고쇼가 있습니다. 그럼 거기에 가면 큰 [콧방귀] 궁전이 있습니다. 그냥
무료 개방된 큰 궁전이 있는데 멋있습니다. 가서 보고 근데 그다음에
그 옆에 있는 니조궁이라는데 이건 유료입니다. 더 크고 더
화려합니다. 근데 그 니조궁이 뭡니까? 니조궁은 도구가와 내가
자기내가 교도를 방문할 때 [음악] 쓰는
[콧방귀] 쓰는 궁입니다. 이런 식으로 완전히
천왕부를 제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아베가 로즈 아베가
필머의 친서를 전달을 하게 하고 천왕부의 의견을 묻습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사실은
뒤돌아보면 뭡니까? 천왕부의 괜히 국정에 간여할 수 있는
비밀을 제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이때 폐리제도 보내온 미국 대통령의
친서에 대해서 어떻게 답을 하면 좋겠느냐고 도자마다 다이묘들한테도 물어보고
심지어는 천왕부에까지도 물어보면서 그러면서 세상이 바뀌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이 이 친서는 8월 16일 날 도착을 하는데요.이
교도의 조종 이제 묘당이라 그러죠. 우리가 묘당이라 그는데 그니까 왕이 있는 천왕이 있는 그 조 진짜
조종입니다. 막부라는 거는 그냥 전쟁할 때 임시루 하는 막부인 거고 사실은 원래는 그렇죠. 그 진짜
정부는 교도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교도의 천왕 밑에 있는 그 쿠계들 공가 귀족들하고 이런 사람들이
하는게 그게 묘 진짜 묘당이죠. 그런데이 묘당은요.이 친석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묘당에서 교도의 천왕부에서
실이 문제를 논나는 것이 그 친서를 받은지
아을의 후 9일 후에나 8월 25일에나이 문제를
논합니다. 천왕부가 얼마나 현실 정치나 이런 국가의 문제에 있어서
무뎌져 있었고 별 관심도 없었고 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게 다른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각자 온갖 의견을 개진해서 전부 다 올리는데
천왕부는 물어봤는데 자기네끼리 의논도 안 합니다. 한참 동안 의논 안
합니다. 거의 열흘 가까이 은논을 안 합니다. 그럴 정도로 사실은 천왕은
정치 나라의 정치에서는 열외 자진에서도 열외였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던 천왕부가 어떻게 다시 일본 정치 중심이 되느냐?
그게 우리가 에도에서 쇠국 정책에서 계국으로 가고 매진
뉴스로 가는 그 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자, 이제 친서 그 필모의 대통령의 친서가 이제 뭐
통역번역 번역 번역이었겠죠. 이제 도달을 해서 받은지 9일 만에 드디어 이제 묘당에서 모여서 야, 이런게
왔다더라. 우리 야, 그래도 뭐라고 답을 해야 될 거 아니냐. 그래서 이제 모여서 논의를 합니다. 그때
이제 모여 있는 그 사람 중에서 가장 높은게 이제 관백. 우리가 이제 역사에서 배우지 않습니까? 신라 시대
이럴 때 관백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관백이 이제 천왕의 제일 오른편, 제일 높은 어 고문입니다. 그
관백이었던 다카스카사 마사미치라는이 사람은요.
미국의 통상 요구를 들어 주자. 그럼 미 일본이 말은 외국이지만 사실 우리
네덜랜드랑 교육을 해 왔었고 꾸준히 중국하고도 계속 교육을 하고 있지 않느냐. 그래서 미국하고 지금 한다
그래서 그럼 두 나라라고 하했던 것은 세 나라랑 그냥 교육하자는 것이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라면서
관백이 조종의 묘당의 관백이 적극적으로 개국을 주장을 합니다. 그
대신 역시이 사람도 통상 그냥 나가게 국한시키자. 지금까지 네덜랜드랑
해와듯이 그리고 그걸 어길 경우에는 뭐 추방을 하든지 하면 되지. 일단은
받아들이자. 그러면서이 사람도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일본의 군대는 일본의
군은 사무라이들은 이미 과거의 힘과 정신을 모두 다 잃었다.
비겁하고 게으러졌다. 외국인과 싸울 능력이 없다. 따라서
괜히 싸우다가 큰 일을 화를 당하느니 차라리 통상을 허용하고 이윤이라도
챙기자. 이렇게 관백이 얘기를 합니다. 나머지 묘당의 나머지
천왕보의 나머지 사람들은 다 반대합니다. 그때 다 쇠국 유지해야 된다 그럽니다. 다카스카사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반대를 하니까 일단은 그냥
애도 막부에다 뭐라 그러냐면 어떻게 결정되는지 미국의 요구를
어떻게 대응할 건지 결정되는 대로 우리 천왕부에 알려만 그러고 맙니다.
그만큼 천왕부 내부에서는 별다른 의견도 없었고 자기네가 의견을 개진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것도 워낙 오랜 세월 억눌려 있으면서 알았기 때문에 별 답을 안 하고 그냥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 알려 달라. 이게 천왕부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천왕부의 힘이 형편 없었던
거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왕이 천왕부에서 감히 에도바크
후보고 어떻게 결정이 되는지 그래도 알려라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이게 일본의 막부 정치하에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바로 요때 그러니깐 자기네는 별다른
의견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결정하는지 우리한테 알려라 하는
얘기가 나왔을 때가 천왕이 일본 정치의 무 중앙 무대로
복귀하는 복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고 역사학자들이 얘기를 합니다. 이것이
그 당시에 권력이 에도에서 교도로 그리고 에도에서 도자마다
다이며들 조슈나 사스마로 이동해 가기 시작하는 첫 신어가 됩니다. 그리고
물론 천왕한테까지도 의견을 묻는 아주 위험한 설례를 만듭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조슈하고 사스마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고 천왕이 국정의
중심으로 급속히 부강을 부상을 하기 시작합니다.이 이때에 러시아의 함대도 나타납니다.
러시아에서는요. 어, 미국이 다녀갔어. 그러면서 아까
러시아는 이미 1804년부터 일본하고 교육을 하자고 와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페르제독이 와 갖고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라는 소식을 당연히 러시아가죠. 그래서 러시아에서도
함대를 보내서 야, 우리랑 교육을 하자. 우리랑 먼저 하자. 이제이 이럽니다.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니까 사실 이때에에도 막부는
세국을 포기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계국을 하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러시아 함대가 나타나기 7일 전에 이미 며칠 전에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후국가에 다며 구로다나가로가 배를 건조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없애자고 상소를 올렸고 그리고 사스마의 다이며 시마즈
나리아끼라는 네덜랜드로부터 배와 무기를 사웁시다라는
편지를 또 막보에 올립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제 움직이 1번에서 아
이제는 안 된다. S국은 안 되는구나. 그럼 빨리 어떻게 우리 국방을 강화하느냐? 서양에서부터 배를
건조하는 방법 이런 거를 다 군함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 되는 거고 그리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큰 배 건조 금지법 이런 거 다 없애 버리자.이 이러 이러는 겁니다. 그러 결국 로즈 아베
마사히로는 10월 21일 날에 220년 동안 존속해 온
큰 바다 항해용 선박을 건조하는 것을 금지하던 법을 폐지시킵니다. 그리고
곧이어서 네덜랜드로부터 정기선 전함 건조를 해 달라고 주문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때 이제 각 번에서 각 번에서도 큰 배들을 이제 건조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1854년 8월에 바크후는
새 주문한 새함정에 계양할
신바탕에 붉은 태양이 그려진 국기를 정합니다.
일본의 일장기가 일장기가 이때 1854년
8월 만들어지는데 왜 만들어지느냐? 네덜랜드로부터 건조한 거를 주문한
배가 그 배에 계양을 할 국기가 있어야 된다. 서양에서는 그렇게
한다. 그 나라의 군함이 되는 거고 그 나라의 군함이면은 그 나라의 국기라는게 있어야 되는데 그럼 그
국기를 어떻게 할 거냐? 이때 박쿠후가 도구가 박쿠후가 신바탕에
빨간 태양이 있는 일본 국기를 만듭니다. 1853년
11월 23일에는 지난 7월에
사망한 독구가와 이해요 씨의 아들 이에사다가
제13대 소근에 임명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이때 천왕이 고메이 천왕입니다. 태쇼 소근이 왔으니까 장군이 올 임명이 될
때마다 정의대장군 오랑캐드를 정복하라는
장군입니다. 그게 쇼군이죠. 원 쇼군의 공식 명칭이 그러니까 도구가와이아스부터 시작해서 천왕은
모든 쇼군한테는 정의 대장군의 칭호를 내리는 거죠. 그래서 이제 이해사 독구가와 이해사다가 13대 소군으로서
정의 대장군의 칭호를 회의 천왕으로부터 하살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때 그 정의 대장군의 침호를 전달을 했던 그렇죠. 천왕의 오른팔 관백
간바꾸 다카스카가 로즈 아벨을 만난 김에 자 미국
배들이 지금 출연을 하고 있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 어떻게 된 거냐? 천왕이 굉장히 걱정을
하시는데 어떤 결정을 해서 어떤 방식으로이 문제를 해결할 거냐 그랬더니 아베가 다카스카 관백한테
뭐라 그러냐면 아무런 결정 내려준 거 없다. 그렇지만 결정을 내리면은 천왕
부에 분명히 알리겠다 그럽니다. 그리고 천왕이 원하는게 있으면 우리가
다 받들겠다라고 아베가 로주가 그죠.
막부의 최고인 아베가 그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전달을 합니다.
초왕부에. 그런데 1854년 3월 31일
드디어 미국하고 일본이 가나가와 조약을 맺을 때 아베는 독구와 막부는
천왕한테 알리지도 않습니다.이 바쿠마스 시대에 요때에 계국을 할
것이냐을 유지할 것이냐이 논쟁은요. 일본의 쇠국주의자들은요.
조선의 위정척 사파들과는 달리 서양의 무력과 기술이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면은 질 거라는 것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덕구가 날리기 같이 그 대신 뭡니까? 전쟁을 해서
져야 된다. 전쟁을 해서이 좋고 지더라도 한번 호대게 전쟁을 해서
접어야지 일본 우리가 정신을 차려서 제대로 된 나라를 그다음부터라도 세울
수 있다. 그러니까는 계속이 세국 정책을 밀고 나가자.
우리가 이길 것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지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해서도 정신을 차려야 된다라고 했기 때문에 쇠국을 주장을 했던 거고요.
계국주의자들은요. 그냥 그 맹목적으로 서양화를 하자
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계곡 주의자들은 왜 그 개고를 하자 그랬습니까? 나라를 지켜야죠.
당연히 나라를 지키죠. 그런데 문제 뭡니까? 나라를 지키려면은
서양의 기술을 서양의 군사력을 그거를 빨리 배워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그러려면은 어떡합니까? 계국을 해야죠. 계국을 하는 이유도 서양을 궁극적으로
물리치기 위해서 그 서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계국을 하자는 거고 세국주의자들도
서양이 약해서 우리가 이길 거라는 어떠한 그런 과대망상
헛된 잘못된 상황 인식 때문이 아니라 질 거라는 거 명확히 알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싸워서 지는이 있더라도 싸워 봐야 된다. 그래야지만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라고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일본에도 당시 일본에도 세국과
계곡 문제를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사쿠마 쇼ઝ산 그리고 그 제자 요시다 쇼인입니다. 에 대한 일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그 당시에 단순한 계국주의자 단순한 외국주의자들이이
사람들을 얼마나 잘못 이해했는가 즉 진짜 일본
바꾸마츠 막말의 일본의 지도층이 일본의 지도층이 쇼근에서부터
천왕에서부터 어 후다이 다이며 도자마 다이며 이르기까지이 모든 지도층이
얼마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다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어서 차이를 보여
보였는데 그 그 미묘한 차이를 그 중요한 차이를 몰랐던 계국주의자
세국주의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시다 쇼인의 스승이고 그렇죠.
그리고 요시다 쇼인 보고 야 미랑을 해서 미국 가서 배우고라고 했던 바로 그 사쿠마 쇼사 그럴 정도로 서양
기술을 배워야 되겠다라는 사쿠마쇼사는 사실은 계국을 반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서 배워오자라는 것이 계국을 하자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쿠마 쇼산이 누구 손에 죽습니까? 무지 목매한 쇠국주의자들한테 죽습니다.
서양 말한장을 타고 다녔다. 그래서 그러니까이 무지매한 세국주의자들이
보기에는 아 서양거를 저렇게 배우고 저런 거 맨날 저런 서양 서양 안장
타고 다니고 서양거를 도입하자는 소리만 자꾸 하는 놈 보면 저거 완전히 계곡주의자 서양 친서방놈이다
이래서 죽여 버리는 거죠. 근데 사마셔서는 뭡니까? 우리 거를 지키려면 서양거를 배워야
되겠다라는 거죠. 안장을 말한장을 타 보니까 우리 안장보다는 서양 말한장이
훨씬 더 편하고 튼튼하고 좋으니까 이거를 갖고 우리가 전쟁을 해야지 된다라고 해서 그걸 탔던 것이지
모든게 서양 것이 좋다. 그래서 한 거 아니죠. 그렇지만
잘못된 쇠국이 진정한 의미의 쇠국이 뭔지를
몰랐던 사람들에 의해서 사쿠마 소잔이 주장하던 그 쇠국이 뭔지를 몰랐던
무지 목매한 쇠국주의자들 손에 사꾸마가 효산이 암사를 당합니다.
반대로 요시다 쇼인 사쿠마 쇼산의 제자 요시다 쇼인은 미국으로
미랑을까지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계국을 해야 된다고 주장을 하다가
사용을 당합니다. 그런데 요시다시오인는 또
극단적인 세국주의자들의 영웅이 돼 버리는 거죠. 그렇지만 그 당시
계국이냐의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버렸던 일본의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쇠국을 했을 때
문제가 뭐고 계국을 했을 때 문제가 뭐고 그다음에
쇠국을 했을 때 어떤 이점이 있고 계곡을 했을 때 어 어떤 이점이 있고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국가 가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이 결국 가서는 존황 양이
사상 그죠. 서양의 오랑캐를 무찌르고 천왕을 받들자라는
쇠국 사상과 그다음에 계국 사상을 나라를 열어서 배워야 된다라는 거를
그 두 사상을 합치는 것이 그게 바로 매지유신이거든요.
존왕양이와 계국이 같이 갈 수 있는 그래서 나라를 바꾼 것이 매주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던 것도 사실은 개국파가 됐든 쇠국파가 됐든
바깥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었고 국가 목표에 대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제 구체적으로 조약을
미국하고 가나가 조약을 체결을 하고 미국의 외교관이
일본에 와서 상주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러면서 급격한 투쟁과 혼란과
암살과 놀라운 소용돌이에 휩쓸기 휩쓸리기 시작하는 것이 일본의
전국입니다. 그 전국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지 그러면서 왜 그것이 결국은
메지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 처음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계국을 하고 서양의 미국의 외교관이
일본 본토에 와서 돼지마 같은 인공섬이 아니라 본토에 올라와서
건물을 사서 영사관을 차리고 상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본 정치의
경남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음악]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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