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5 지사의 탄생,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된 이유

지사의 탄생,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된 이유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5회 - YouTube

지사의 탄생,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된 이유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5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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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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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 말기, 일본의 역사를 뒤흔든 새로운 젊은 세력 ‘지사(志士·시시)’가 등장합니다.
존왕양이를 외치며 기존 질서에 도전한 이들은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며 격변의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사이고 다카모리와 사카모토 료마 등 훗날 메이지유신의 중심에 서게 되는 인물들도 이 흐름 속에서 성장합니다.
개국과 쇄국, 막부와 천황 사이에서 갈라진 일본은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번 《한국인의 탄생》에서는 메이지유신을 움직인 ‘지사’들은 누구였으며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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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제75회 <지사의 탄생,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된 이유> 강연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지사의 탄생,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된 이유> 요약

  1. 270개 번(藩)으로 분열된 막번 체제의 한계 도쿠가와 막부 체제 아래의 일본은 단일한 통일 국가가 아니라, 약 270여 개의 독립적인 다이묘 영지(번)로 쪼개진 분권 체제였다. 각 번의 무사들은 자신이 속한 번의 주군에게만 충성했을 뿐, <일본인>이라는 단일한 민족적·국가적 정체성을 공유하지 못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이러한 분열적 막번 체제는 치명적인 안보적 취약점으로 드러났다.

  2. <탈번(脫藩)>과 초번적 <지사(志士)>의 탄생 서구의 외압과 국가적 위기 속에서 번의 경계를 뛰어넘어 국가 전체의 운명을 고민하는 새로운 지식인 집단인 <지사>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번을 이탈하는 <탈번>을 감행하며 지역적 충성심을 버리고, 천황이라는 초월적 상징을 매개로 <일본>이라는 근대적 국민국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사카모토 료마와 조슈·사쓰마의 청년 무사들이 연대한 삿초 동맹은 이러한 지사들의 네트워크가 낳은 결정적 성과였다.

  3. 폐번치현(廢藩置縣)과 단일 국민국가의 수립 메이지 유신 직후 권력을 장악한 지사들은 다이묘들의 영지를 국가에 반납하는 판적봉환과, 270여 개 번을 완전히 해체하고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를 파견하는 <폐번치현>을 단행했다. 이는 수백 년간 지속된 봉건적 분할 통치를 종식시키고, 단일한 법률, 조세, 군사 체계를 갖춘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를 형성하는 제도적 토대가 되었다.

  4. 사무라이 계급의 해체와 신분 철폐의 역설 메이지 혁명을 주도한 하급 무사(지사)들은 정권을 잡은 후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속해 있던 사무라이 계급의 특권을 스스로 폐지했다. 사민평등 조치와 폐도령, 징병제 도입을 통해 무사 계급을 물리적으로 해체하고 모든 인구를 평등한 근대 <국민(병사)>으로 재편성했다. 자신의 기득권을 파괴하면서까지 강력한 근대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지사들의 결단은 일본이 비서구권에서 가장 빠르게 단일 국민국가로 도약한 핵심 동력이었다.

평론

제75회 강연은 270여 개로 분할되어 있던 봉건 일본이 어떻게 단일한 근대 국민국가로 탈바꿈했는가를 <지사(志士)>라는 새로운 인간형의 출현과 계급 해체의 메커니즘을 통해 탁월하게 규명한다.

첫째, 근대 민족주의와 국민 정체성이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위기 극복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창출된 결과물임을 설득력 있게 밝힌다. 270개의 서로 다른 '나라'로 나뉘어 있던 사회에서 번을 초월한 지사들이 등장하여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주조해 낸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근대 국가 건설의 본질이 정서적 통일성과 제도적 중앙집권화의 결합에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유신 주도 세력이 보인 <자기 파괴적 개혁>의 역설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혁명의 주역이었던 하급 사무라이들이 정권을 잡은 뒤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이자 신분적 표지인 칼과 녹봉을 스스로 내려놓고 전 국민 징병제를 택한 대목은, 기득권 보전에 매몰되어 개혁을 거부했던 당대 조선 양반 지배층의 행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다만, 지사 중심의 위로부터의 혁명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신분 철폐와 봉건 해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몰락한 수많은 하급 무사와 농민들의 저항(사족 반란, 농민 소요) 등 사회적 비용과 폭력성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다소 축소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편화된 봉건 사회를 근대적 통일 국가로 변모시킨 지적·제도적 추진력을 거시적 비교사적 관점에서 명쾌하게 분석한 매우 깊이 있는 강연이다.

지사의 탄생과 메이지 유신 해설

메이지 유신을 이끈 주역들이 스스로 신분 특권을 해체하고 근대 국가를 형성해 간 핵심 논리를 집약적으로 설명해 주는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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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한국인의 탄생」 75회

<지사의 탄생,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된 이유> 요약·평론

75회는 앞선 73·74회에서 보았던 막부 말기의 정치적 혼란과 해외 학습의 흐름을 <지사(志士)>라는 새로운 정치적 인간형의 등장과 연결한다. 함재봉이 이번 강연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메이지유신이 단순히 막부와 천황, 조슈와 사쓰마 같은 기존 정치세력 간의 권력투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막부 말기의 혼란 속에서 기존 정치조직에 공식적인 자리를 갖지 않은 젊은 하급 사무라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자기 번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국가적 목표를 위해 움직이고, 다른 번의 젊은이들과 연대하고, 때로는 암살과 무력행동까지 감행한다. 이들을 당시 일본에서 <지사>라고 불렀다.

함재봉에게 이 지사들은 270여 개 번으로 나뉘어 있던 일본을 처음으로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상상하게 만든 정치적 행동세력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과격한 행동주의는 암살·테러·숙청·자결이라는 막부 말기의 어두운 정치문화도 만들어냈다.


1. ‘지사’라는 말은 어떻게 생겼는가

함재봉은 먼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애국지사>의 ‘지사’라는 말 자체가 막부 말기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지사는 단순히 훌륭한 애국자를 뜻하지 않는다.

기존의 다이묘나 막부 관리처럼 공식적인 정치적 직책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의와 국가의 운명을 위해 스스로 행동하는 젊은 사무라이>

를 가리킨다.

그들은 누가 명령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번에서 공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막부에 공식적인 책임을 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천황에게 충성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확신하면 그것을 직접 행동에 옮긴다.

함재봉은 이 새로운 정치적 인간형이 메이지유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2. 페리의 등장과 막부의 ‘여론 수렴’이 정치의 문을 열다

지사의 등장을 이해하려면 다시 페리의 내항으로 돌아가야 한다.

페리가 개항을 요구했을 때 막부는 처음으로 전국 다이묘와 조정에 의견을 묻는다.

함재봉이 반복해서 강조했듯 이것은 막부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국과 전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백 년의 쇄국정책을 막부 독단으로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이 결정이 뜻밖의 결과를 낳는다.

그전까지는

<막부가 결정하면 다른 사람은 따른다>

는 정치였다.

그런데 막부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묻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국가정책에 의견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 번 열린 정치적 참여의 문은 다시 닫히지 않았다.


3. 이이 나오스케의 강경통치가 오히려 지사를 만들어낸다

막부 최고권력자가 된 이이 나오스케는 이러한 정치적 개방을 다시 폐쇄하려 했다.

그는 개항을 밀어붙이고, 반대세력을 안세이 대옥을 통해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요시다 쇼인도 이 과정에서 처형된다.

하지만 함재봉이 보는 역설은 바로 이것이다.

<막부가 반대자를 억누를수록 반막부 정치운동은 더욱 과격해졌다.>

이이 나오스케 자신이 미토계 무사들에게 암살되면서 막부의 최고권력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 뒤 일본은 암살과 테러가 빈번한 정치사회로 변해간다.


4. 지사는 ‘무소속 정치행동가’였다

이번 강연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명 가운데 하나다.

지사들은 현대적인 표현으로 하면 일종의 <무소속 정치행동가>에 가까웠다.

자기 번을 떠나 에도와 교토를 돌아다니며 다른 번의 젊은 사무라이를 만난다.

조슈 사람은 사쓰마 사람을 만나고, 도사 사람은 미토 사람을 만난다.

서로 토론하면서 점점 공통의 질문을 갖게 된다.

<일본은 어떻게 서양을 막을 것인가?>
<막부가 과연 일본을 지킬 수 있는가?>
<천황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하지 않는가?>

여기서 기존 번의 경계가 약해진다.


5. 270개의 일본에서 ‘하나의 일본’로

함재봉이 이번 회에서 가장 강조하는 변화가 이것이다.

에도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는 조슈 사람이다>
<나는 사쓰마 사람이다>
<나는 도사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세가 등장하고 지사들이 전국적으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생각이 형성된다.

<우리는 모두 일본 사람이다.>

그리고 일본 전체를 상징할 존재로 천황이 부상한다.

따라서 함재봉에게 지사운동은 단순한 존왕양이 운동이 아니다.

<번 중심의 정치적 정체성을 하나의 일본국가 정체성으로 바꾸는 과정>

이었다.


6. 도사번의 지사들 ― 사카모토 료마와 다케치 한페이타

강연에서는 도사번을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도사에는 엄격한 신분질서가 있었고 하급 사무라이들의 불만이 컸다.

그 가운데 <다케치 한페이타>가 중심이 되어 도사근왕당을 조직한다.

천황을 받들고 서양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존왕양이 운동을 벌인다.

사카모토 료마 역시 같은 도사 출신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길은 점차 달라진다.

이 점은 후반부 메이지유신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존왕이라는 목표는 공유했지만 서양과 개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는 서로 다른 길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7. 지사의 윤리 ― 생각보다 행동

함재봉은 지사들의 특징을 <행동주의>에서 찾는다.

그들은 반드시 깊은 철학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학문적으로 완성된 정치이론을 가지고 움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옳다고 생각하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

이었다.

국가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번을 탈출한다.

천황을 모욕했다고 판단하면 암살한다.

서양을 물리쳐야 한다고 믿으면 검을 든다.

함재봉은 이러한 행동력이 막부가 우유부단하게 갈팡질팡하던 시기에 일본 정치의 방향을 실제로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고 본다.


8. ‘천주(天誅)’라는 위험한 논리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지사운동의 어두운 측면도 나온다.

자신들이 천황과 국가를 위해 행동한다고 믿게 되면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천황의 적>

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암살을 <천주>, 즉 하늘을 대신하여 내리는 벌이라고 정당화한다.

함재봉은 막부 말기의 사무라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암살과 칼부림이 실제 당시의 심각한 정치적 현실이었다고 설명한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행동>

이라는 지사의 장점은 동시에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 정치폭력>

이라는 위험과 맞닿아 있었다.


9. 조슈·사쓰마·도사가 천황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전국적 지사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교토의 정치적 중요성이 급상승한다.

천황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에도에는 막부가 있지만 교토에는 국가적 정당성의 원천으로 새롭게 떠오른 천황이 있다.

젊은 지사들은 교토에 모이고 조정 주변의 공가들과 접촉하며 정치에 개입한다.

이렇게 해서

<에도의 막부>

<교토의 천황>

이라는 두 개의 정치중심이 생긴다.

막부 말기의 권력투쟁은 점점 이 두 중심 사이의 경쟁으로 바뀌어 간다.


10. 천황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당시에는 새로운 정치적 경험이었다

함재봉은 지사들의 희생과 죽음도 중요하게 본다.

이들은 자신의 번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천황과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도사 지사들이 작성한 맹약문에는 천황의 뜻을 받들고 서양 오랑캐를 몰아내며 국가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강한 결의가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젊은이가 실제로 죽는다.

성공한 사람보다 처형·암살·자결로 끝난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 강연의 중요한 지적이다.


11. ‘순국 영웅’ 뒤에 있는 비극

함재봉은 이 점에서 메이지유신 성공자들의 화려한 이야기만 보면 안 된다고 말한다.

후대에는

  • 이토 히로부미
  • 야마가타 아리토모
  • 사이고 다카모리

같은 승자의 이름이 크게 남는다.

하지만 그 주변에는 이름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젊은 지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 암살당하고
  • 처형되고
  • 할복하고
  • 정치투쟁에서 제거된다.

함재봉은 이들의 희생과 강렬한 신념이 막부에서 메이지국가로 넘어가는 정신적 에너지가 되었다고 본다.


12. 그러나 지사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낼 국가를 알고 있었는가

강연 중반 이후 매우 흥미로운 문제제기가 나온다.

지사들이 과연

<사무라이 신분이 폐지되고>
<봉건제가 없어지고>
<근대 관료국가와 국민군이 만들어지는>

메이지국가를 처음부터 꿈꾸었느냐는 것이다.

함재봉의 답은 사실상 <아니다>에 가깝다.

그들은 주로

<천황을 받들자>
<막부를 몰아내자>
<서양의 침략을 막자>

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일으킨 혁명은 자신들의 신분인 사무라이 자체까지 없애버린다.

이것이 메이지유신의 가장 큰 역사적 역설 가운데 하나다.


13. 왕정복고 이후 가장 피해를 본 사람도 사무라이였다

메이지정부는 천황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를 만든 뒤 신분제를 해체한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계층 가운데 하나가 사무라이였다.

봉록도, 무사 신분의 특권도, 칼을 차는 권리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천황을 위해 싸운 사무라이들이 천황정부에 의해 사라진다>

는 역설이 생긴다.

강연에서는 이 모순이 훗날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쓰마 반란과 세이난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배경으로 제시된다.


14. 지사의 실패와 비극

함재봉이 특히 안타깝게 다루는 사례 중 하나가 도사 출신 지사 사카모토 료마의 주변 인물들이다.

막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수많은 인물이 제거된다.

심지어 메이지유신을 실제로 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따라서 함재봉은 지사를 단순한 성공한 혁명가라기보다

<자신들이 만들어낼 결과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이상과 행동에 모든 것을 걸었던 세대>

로 묘사한다.

이 부분은 75회의 가장 인간적인 대목이다.


15. 조슈에서 먼저 등장한 공무합체론

이번 회 후반부에서는 다시 <공무합체> 문제가 자세히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공무합체론이 막부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조슈 내부에서도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조슈의 젊은 무사 나가이 우타는 1861년 번주에게 상소를 올려

<막부와 천황이 협력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외세의 압력 앞에서 일본이 분열되어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00년 가까이 이어진 막부질서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기보다

<천황의 권위 + 막부의 행정·군사력>

을 결합하여 국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상당히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16. 공무합체론의 실제 내용

함재봉이 설명하는 나가이 우타의 논리는 흥미롭다.

일단 일본은 서양과 체결한 조약을 인정해야 한다.

항해술을 익히고 해군을 만든다.

무역을 통해 경제력을 키운다.

육군과 해군을 강화한다.

충분히 강해진 뒤 외국과의 관계를 다시 조정한다.

<당장 양이를 하는 대신 개항을 이용해 힘을 키운 뒤 진정한 자주를 달성하자>

는 전략이다.

공무합체도 이 목적을 위해 필요했다.

천황과 막부가 힘을 합해야 국력을 한 곳으로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 그런데 조슈 내부에서도 두 갈래로 나뉜다

문제는 조슈 안에서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쪽에는 나가이 우타와 같은 <공무합체파>가 있었다.

다른 쪽에는

<막부와 타협해서는 안 되며 천황 중심의 존왕양이를 실현해야 한다>

는 급진파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기도 다카요시>다.

기도는 훗날 메이지유신의 핵심 지도자가 된다.

이 갈등은 조슈 내부에서 점점 격렬해진다.


18. 나가이 우타의 비극

나가이 우타는 조슈와 막부, 그리고 조정 사이를 연결하며 공무합체안을 추진한다.

처음에는 번주도 찬성하고 천황측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막부도 좋아한다.

겉보기에는 모든 세력이 동의하는 매우 합리적인 정책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조슈 내부의 급진적 존왕양이파가 강하게 반발한다.

결국 나가이의 정치적 입지는 붕괴한다.

함재봉은 그가 결국 1862년 할복 자살을 명령받는 것으로 끝났다고 설명한다.


19. 지사 정치의 잔혹성

나가이 우타의 죽음은 당시 지사 정치의 특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어제까지 존중받던 사람이 오늘은 역적이 된다.

번의 노선이 바뀌면 정치적 운명도 바뀐다.

암살될 수도 있고 할복을 명령받을 수도 있다.

함재봉은 이를 통해 메이지유신을 낭만적인 젊은 혁명가의 이야기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보여준다.

<엄청난 신념과 희생이 있었지만 동시에 극단적인 정치폭력과 잔혹한 권력투쟁도 있었다.>


평론

1. 75회의 가장 중요한 기여 ― ‘지사’라는 새로운 정치적 인간형을 발견한다

이번 강연은 63회 이후의 여러 회 가운데 특히 사회학적으로 흥미롭다.

그동안 우리는

<막부>
<천황>
<다이묘>
<조슈·사쓰마>

같은 제도와 조직을 보았다.

그런데 75회에서는 <조직 바깥의 개인>이 등장한다.

자기 번의 명령도 없는데

<“내가 나라를 구해야 한다.”>

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시민과는 전혀 다르지만, 전통적인 봉건적 신하도 아니다.

그 사이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지사>였다고 볼 수 있다.


2. 이것은 근대적 ‘국민’ 형성의 중요한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함재봉의 설명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이다.

도쿠가와시대 정치질서에서는 충성의 대상이

<번주 → 번>

이었다.

그런데 지사들은 점점

<천황 → 일본>

으로 충성의 대상을 바꾼다.

<지역적 충성 → 국가적 충성>

이라는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270여 번으로 나뉜 일본을 하나의 국민국가로 묶는 정신적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된다.


3. 그러나 ‘지사 = 근대적 국민’이라고까지 말하면 지나치다

지사들이 전국적 일본 정체성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강연의 논리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현대적 의미의 민주적 시민과 동일시하면 안 된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 개인의 권리
  • 민주적 대표
  • 법치

보다는

  • 천황
  • 충성
  • 국가
  • 희생

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목적을 위해 상대를 암살하는 일도 정당화했다.

따라서 지사는 <시민 이전의 새로운 정치적 주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4. 이번 회에서 가장 불편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정치폭력이다

함재봉은 지사들의 행동력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확실히 그들은 우유부단한 막부 지도층과 달리 행동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위험한 질문이 따라온다.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확신하면 법과 정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가?>

막부 말기 지사들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 결과 수많은 암살과 숙청이 일어났다.

따라서 <행동하는 젊은이>라는 매력적인 이미지를 정치폭력과 분리해서는 안 된다.


5. 함재봉의 ‘행동주의’ 찬양에는 약간의 경계가 필요하다

강연에서는 지사들이

<이론보다 행동>
<사유보다 결단>

을 중시했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행동력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에는

<잘못된 판단 + 강한 신념 + 무장된 젊은이>

가 결합되어 엄청난 폭력이 발생했다.

따라서 메이지유신을 가능하게 한 행동력은 동시에 일본 근대 정치에서 훗날 반복되는 <목적을 위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정치문화>의 한 원형이 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이 마지막 연결은 강연이 직접 입증한 것이 아니라 자료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비판적 질문이다.


6. ‘270개의 일본이 하나가 되었다’는 설명도 조금 더 세분할 필요가 있다

함재봉의 제목은 매우 강력하다.

하지만 메이지유신 당시 모든 일본인이 갑자기 국민적 정체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강연 자체에서도 변화의 중심에 있던 것은 주로 젊은 사무라이와 정치엘리트였다.

농민·상인·여성 등 일반 백성들이 이 새로운 ‘일본’ 의식을 어느 정도 공유했는지는 이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회에서 실제로 입증되는 것은

<270개 번의 정치엘리트 가운데 일부가 번을 넘어선 일본국가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는 정도라고 보는 것이 더 엄밀하다.


7. 가장 뛰어난 부분은 ‘그들은 결과를 몰랐다’는 지적이다

75회에서 특히 좋은 대목은 메이지유신을 결과론적으로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메이지유신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시 지사들도

<근대적 중앙집권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원한 것은 대부분 훨씬 단순했다.

<천황을 받들자.>
<막부를 몰아내자.>
<서양세력에 굴복하지 말자.>

그런데 그 결과

<사무라이가 사라지고>
<신분제가 폐지되고>
<징병제가 생기고>
<근대 관료국가가 만들어진다.>

즉 자신들의 행동이 자기 계급을 없애는 혁명으로 귀결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통찰이다.


8. 74회와 75회를 함께 보면 일본 근대화의 두 얼굴이 보인다

74회에서는

<외국에 가서 배우는 젊은이>

가 등장했다.

75회에서는

<국내에서 칼을 들고 행동하는 젊은이>

가 등장한다.

두 집단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당히 겹친다.

존왕양이를 외치던 사람이 해외에 가서 서양을 배우고, 서양을 배운 사람이 다시 천황국가 건설에 참여한다.

따라서 메이지유신 세대에는

<강한 민족주의 + 급진적인 해외학습 + 폭력적 정치행동>

이라는 세 요소가 동시에 존재했다.

이 조합이 메이지유신의 힘이었지만 동시에 위험성이기도 했다.


종합 평가

75회는 지금까지의 함재봉 메이지유신 설명 가운데 특히 중요한 회차다.

그 이유는 처음으로 <제도나 지도자보다 그 아래에서 움직인 젊은 세대>를 중심에 놓기 때문이다.

함재봉이 그리는 지사는

<번의 관료도 아니고 막부 관리도 아니지만, 자신에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책임이 있다고 느끼고 스스로 행동한 젊은 사무라이>

였다.

이들이 번을 넘어 서로 만나고 교류하면서

<조슈 사람·사쓰마 사람·도사 사람>

이라는 정체성 위에

<일본인>

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 중심의 상징이 천황이었다.

따라서 이번 강연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이 하나가 된 것은 중앙정부가 국민을 위에서 통합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막부 말기의 위기 속에서 자기 번의 경계를 넘어 ‘일본 전체’를 걱정하기 시작한 젊은 지사들이 아래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 젊은이들의 정치에는

<헌신과 용기>

뿐 아니라

<암살·숙청·맹목적 충성·할복>

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역설은 그들이 천황을 받들어 자신들이 속한 사무라이 질서를 지키거나 일본을 구하려 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메이지국가는 결국 <사무라이 자체를 폐지했다>는 데 있다.

63회부터 75회까지 함재봉의 논의를 따라오면 메이지유신은 이제 단순한 ‘서양화’가 아니라

<에도의 경제·교육·난학 → 외세의 충격 → 막부 권위의 붕괴 → 천황의 부상 → 해외 학습 → 지사 네트워크 → 번을 초월한 일본 의식>

이라는 매우 긴 과정으로 나타난다.

75회는 바로 그 가운데 <정치적 정체성의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 회차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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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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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예를 들어서 철학, 또 예술, [음악] 어, 과학, 기술 이런 말을 그
단어들을 이제 영어의 어, 필소피, 테로지, science스, 아art스
이런 거를 번역을 했는데 그 번역을 한게 일본 사람들이었다고 [음악] 말씀을 드렸죠. 후쿠사이키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쓰는 단어 중에 어 또 하나 있는게 뭐냐면 지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애국 지사 할 때 많이 쓰는 그 열혈 지사라고 했을
때 그 지사라는 말 자체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인데 이거는 외국어를
번역하려서 그런게 아니라 막부 말기
메이주신을이 일어날 때에 그 당시에 나왔던 굉장히 특이한 계층의 젊은
그야말로 지사들을 일컬어서 처음으로 지사 일본말로 CC시라고 읽컫기 시작한
겁니다. 그니까 굉장히 특정의 인간형이고 그 인간형이 바로 어
메이지 유신을 [음악]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젊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우선 그
[음악] 시시 지지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구를 지지라고 읽컫는지
지사를 하고 읽컫는지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서 같이 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이인우스케가 막부 말기에 이제 그 다이로 대로 임명이 되고 그리고
강력하게 전왕위 파들을 억누르고 그을 숙청하고
어 그러면서 계국을 밀어붙이죠. 미국하구의 조약을 밀어붙입니다. 그
요시다 쇼인 같은 요시다 쇼인이 길렀던 소과 손주구에서 길렀던 그런 제자들 그다음에 사스마에 있는 어
여러 젊은 어 사무라이들 이런 사람들이 격렬하게
계국에 반대하죠. 서양 오랑캐들하고 어 교류를 하기 시작하는 거를 그
국교를 맺고 나라를 열고 하는 거에 격렬히 반대합니다. 그러니까는 어
페리즈독이 도착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서양의 무력 앞에서 맞설 수가 없으니까 독구가와 막부는 열기로가
결정을 하고 근데 여는 것이 너무나 큰 변화기 때문에 다이어들한테도 다
알리고 교도의 조종한테도 아 이런 거가 있는데 이런 요구가 들어오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제 여론 수렴을 하죠. 그러니까 이제 여론 수렴을 하니까 그전까지는 절대로
막부가 남의 여론 다른 나이묘들의 여론 천왕의 여론 이런 거 의견 이런
거에 전혀 신경을 안 썼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힘든 결정을 해야 되니까 몇백
년 만에 처음으로 한번 다이어들 하고 천왕부에 의견을 물었는데 이게 이제
벌집을 수어 놓는 거가 됩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막부의 말이라면 꼼짝없이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고 따라만 했던 사람들이 어
자기한테 의견을 물어보니까 이제 그때부터 의견 개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국론이 완전히 양분이
됩니다. 계곡을 하자라는 사람들과 절대 계곡을 하지 않으면 하면 안 된다라는 이제
조항 양입파들이 나오는 거죠. 그렇게 되니까 바구 후에는 박구 후에서 어쩔 수 없이 강력한 이인 아우스케라는
다이어를 데려다가 다이로라는 일본 역사상 세 명밖에 나온 적이
없는 정말로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정권을 주는 그런 자리를 이인하우스케라는 사람한테 이제 주는
거죠. 그래서 이인하우스케는 그 권력을 이어받자마자 전권을 받자마자
어떡합니까? 이거는 계곡을 해야 된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밀어붙여서 그때
이제 요시다 쇼인부터 시작해서 전국에 있는 존황양이 즉 즉 계국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하고 조약을 맺어서 안 된다라고 하는 그 세력들을
완전히 숙청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안세이 대옥이라는
엄청난 숙청 사건을 일으켜 갖고는 전국의 전왕양입파들 숙청을 합니다.
그래서 마크후가 역시 예전에 그 힘을 권력을 다시 잡고 총 통치를 제대로
하는가보다 했는데 밑도번에 있는이 조항양이파 사월이들이
에도에서 만나고 퇴청하는 이인 아우스케를 급습을 해서 암사를 해
버립니다. 엄청난 사건이 터짐으로써 다시 한번 바꾸는 강력한 지도자를
잃고 다시 필요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일본의 정정은 극도의 혼란에
다시 빠지게 됩니다. 이인이나우스케 같은 높은 사람도 죽였으니이
젊은 조항양이파 사무라이들은 그다음에 이제 눈에 보이는게 없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자기네가 봤을 때
천황을 모욕한다라든가 자기네가 생각하는 그러한 전왕위 정책에
어긋나서 뭐 왜곡하고 교류를 하자라든가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은 전부 다 다니면서 암살를
하고 하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애도 교도 이런 데가 완전히 그냥 암살의
천주로 변합니다. 우리가 가끔다가 사무라 영화들 보면은 거의 사무라 영화들은 대개가 바로 지금
말씀드리는이 막부 말기의 그 혼란기 그러니까 계국을 해야 되냐라는 것과
외국을 유지를 해야 된다라는 그 세력들 간의 다툼 속에서 그 낭인들이
론인들이 젊은 사무라이들이 상대편을 죽이고 암살하고 이런 얘기가 굉장히 많이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랬던
겁니다. 그래서 정말로 애도 곁도 이런 데는 공포 휩싸이고 밤에 다니면
안 되는 그런 거리가 되고 그럽니다. 칼찬 사무라이들도 무서워서 어 다니길
거리고 그런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치한 부제의 상황으로 빠지기
시작합니다.이 일을 버리는 사람들. 그러니까는
나라에 공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번에 다이며 자기한테 공직을 내려 준
것도 인무를 부여해 준 것도 아닌데 자기네 생각에 이것이 천왕한테 충성한
것이다. 이것이 나라를 위해 옳은 길이라고 자기네가 생각해서
행동에 옮기는 그래서
굉장히 과격한 사상을 갖고 아무런 책임은 없이
자기네 생각에 따라서 마구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젊은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그 사람들을 일컬어서 지사 일본말로 시시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이 주로 젊고 아무런 공직도 없고
그러니까는 자기 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애도로 갈 수도 있고 교도로 가서 거기에
가서 다른 번에서 온 자기랑 비슷한 그런 젊은 사무라이들하고 교류를 하기
시작하고 연대를 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아 우리가 공유하는 사상이
있구나. 그 공유하는 사상이 전황이. 그러니까 천왕을 모시고 막 막부이
외국하고 서양오랑캐들하고 교하는이 막부를 타도하자라는 그 뜻을 모으는
그 집단이 지금 지사라는 집단들입니다.이 지사들은요. 당연히 국정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굉장히 불만이었죠. 자기네가 전고 우리가 제대로 아는 거 같은데 아이 저 절 나이 맞는 대신들이나 이런
사람들은 막부에 있는 이런 사람들은 전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나라를 위해서
좋은게 뭔지 모른다. 언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고 그래서 항상
박후의이 정책 그다음에 자기네가 속했던 번의
다이며들의 정책 소극적일 이때가 이제 혼란스러우니까 어느 쪽으로 나라가 가야 될지 모르니까
다들 높은 사람들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죠. 서로 눈치를 보고 이게 어느
쪽으로 갈 건지 대국 쪽으로 갈 건지 계속 외국을 유지하는 쪽으로 갈 건지
그리고 바크후의 관력이 유지될 건지 아니면 갑자기 부상하기 시작한 교도의 천왕한테 천왕부의 세력이 쏠릴 건지
어느 편을 들어야 될지 그런 계산하고 있는데이 젊은 지지들은 시시들은 절대 그런 계산 안 하고
자기네가 생각하는 전왕이 예 사상으로 모든 것을 행동해 오기 시작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공부가 깊었던 것도 아니고 따라서 어떤 특정
뭐 철학이나 이걸 공유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사회고 다까머리 그렇죠. 결국은 나중에 유신을 메이지
유신을 일정적인 역할을 하는 삼걸 유신 삼걸의 하나인
사이고 다감리 같은 사람은 왕 왕양명 양명하게
심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지행합일
생각하는 거하고 행동이 같아야 된다라는 그 왕영의 사상을 깊이
받아들이고 그래서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그런 어 지사의
상징이 되기 시작합니다. 어떤 시시들은 맹자를
중시하고 충, 효, 정, 성 이런 거를
철저하게 따르는 또 그러한 그 지사들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거는이
사람들은 이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떤 사유가 중요했던 것도 아니고
행동으로 옮겨서 모든 거를 빨리빨리 행동으로 옮겨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은 그것을 곧바로 생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가장 중시했던 사람들입니다. 알아서 방향이 어떻게 됐든지간에
완전히 서로가 어느 쪽으로 갈지 몰라서 바꾸고 천왕 보고 다이며드리고
아무도 결정을 내리고 과감하게 어느 한쪽으로 가지 못할 때에 나라의
나라를 한쪽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과격한 행동을함으로써 실제를 실제로
나라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바로 또이 지사들입니다. 그리고 이제이 지사들은
젊은 사람들은 어 구왕위파들이 다 그랬듯이 이거는
세국을 유지하려 그러면 어떡합니까? 미국하고 결전을 불사해야 되는 거죠. 미국이 됐든 이제 뭐 영국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프랑스도 나타나는데 서양 오랑캐들하고 일전을 버려야 된다라는
이제 그 의식이 완전히 투해지고 그러면서 어떡합니까? 야, 우리가
천왕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되니까 무수를 갈고 닦아야 된다 그럽니다.
그러면서 이때에 일본 전국의 도장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죠. 우리가 이제
그 사무라 영화들에서 많이 보는 그 수많은 도장이 생기고 하는게 이때 생깁니다. 왜냐면에도 에도가에도
280년 동안 평화의 시기에는요. 임진회란 끝나고 그리고 새끼가 하라
전투 끝나고 도구가와가 딱 권력을 잡은다고부터는 전쟁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무술을 연마하고 한 거는 커녕 사무라이들이 점점 점점 무술을
무술의 특기마저도 없어지기 시작하고 더군다나 가난한 사무라이들은 어떡합니까?
자기 칼을 팔아서 농사 농부가 돼 버리는 경우들도 허다했고 그죠. 몰락하는 사무라이들이
생기고 이제 이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전까지는 굉장히 여러 번에 다양한 번뇌 있었고 그 번에서 맨
말단이었고 젊었기 때문에 사실 별 역할도 없었고
다른 번에 갈 일도 없었고 그랬는데 지금 막부 말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서 막부가 전국적으로 여론을 수렴하기 시작하고 서로가 교류가
시작되기 시작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계국이냐 세국이냐 냐 전왕이냐이
문제를 가지고 뭉칠 수가 있는 이념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이념으로 뭉치는 사람들이에도 아니면 교도로 가면서 같은 지리적 조건 속에서
같은 이념을 가지고 같은 지향점을 갖는 그런 젊은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이 사람들이
처음으로 아 우리나라가 이렇게 번으로 나눠져 있고 박가 있고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게 다 같은 일본이다. 이게 우리가 한 나라다. 한 운명
공동체다. 그리고 그 운명 공동체의 수장. 그 운명 공동체의 우두머리
상징은 도구와 막부가 아니라 뭡니까? 천왕이다."
라면서 일본이 하나로 엮어질 수 있는 270개 번호로 나눠져 있었던 그
일본이 하나의 국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뭉치기 시작하는 그런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 조항위파
지사, 조항양입파 시들의 등장입니다. 대표적인지지 지지사이
도사의 지사들입니다. 도사번이라는게 바로 사건모토도 료마의 그 번입니다.
자, 그러면이 도사의 지지들이 지사들이 어떻게
형성됐는가?이 이 사람들이 1861년 10월에 처음으로 도사의 젊은
사무라이들이 우리가 이제 지사라고 부르게 되는 그 사무라이들이 모여서
맹약을 서약을 하는 당당한 신주가 신주라는게 신의 땅 하늘이 내 우리
신성한 황토가 오랑케의 모욕을 받아 예로부터 전에
내려온 대화혼 야마토다마시도 이제는 이미 끊어지려고 한다.
천왕께서는이를 깊이 한탄하시거늘 오랜 평화로운 천왕의 치세에 인순과 위타의
풍석에 젖어서 누구 한 명도이 마음을 분발해서 황국의 화를 제거하려는
사람이 없다. 왜람때에도 우리 노송이
도사의 어 다이며입니다. 야마오치요도 당시에
이제 다이며죠. 우리의 노손께서는이를 근심하시어 관리들 즉 박후와 언쟁을
하셨는데 오히려이 때문에 죄를 얻게 되셨다. 이처럼 고귀한 생각을 가지신
분을 어째서 그런 죄에 빠뜨리시는 것인가? 군주가 치욕을 당하면 신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황국이 머지하나 좌임 즉 오랑케
풍속을 따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니 저 대화혼을 분발해서 이성 형제 모든
형제들 서로가 다른 형제들을 결합시키고 한 점에 사심 없이 서로
협력해서 국가의 부흥에 만분의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 어떻게
올바른 말씀을 하신 우리의 다녀를 저렇게 대할 수가 있느냐. 이거는
뭔가 정신이 썩었다. 너무 오랜 평화를 유지해오면서 지금 우리의 야마도 정신이 썩어 버렸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를 지킬 수 없고 이렇게 해서는 천왕을 제대로 보필할 수 없다.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이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근기 즉 태양을 그린 천왕 군대의 깃발입니다. 나중에 이제 그 실제로
그 보신 전쟁이 났을 때 도크가와 천왕군이 어 싸울 때 그때 사이고닷까머리가
천왕군을 이끌면서 천왕군의 깃발로 내세기했는데 그게 이제 금기입니다.
금기가 한번 나붙기면 단결에서 물불 가리고 뛰어들 것이다. 이에 신명께
맹세하노니 위로는 황제의 성의를 바들고 우리 노송의 뜻을 이으며
아래로는 만민의 근심을 제거할 것이다. 만약이 가운데 사심을 갖고
다투는 자 있으면 신의 분노가 벌을 내릴 것은 물론 동지들을 모아놓고 할복할 것이다. 각자가 이름을 적어서
넣어둔다. 그러면서 혈서를 씁니다. 이런 지지의
운동이 벌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지사들의 운동이 각 번마다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계국을 옹호하고 도구가 막부를 지지하는 다이어 밑에 있었던 젊은
사물아들은 어떡합니까? 자기의 번주가 잘못됐다. 그러면서 다이며들이 잘못했다라면서 자기의 번을
탈출을 해서 애도로 가고 교도로 가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같은 뜻을 품고 있는 다른 번에서 온 조왕양이들 지지들하고
교류를 하면서 그러면서 자기네가 천왕의 호위병 천왕의 근위병
그러면서이 조항양이 파 대신들을 자기네가
보호한다라든가 이런 역할을 자하면서 애도하고 교도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애도하고 교도가 공포의 도시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사들은요
굉장히 대부분은 아주 비극적인 삶을 삽니다. 월급도 없는 거고 아무것도 없는 거고 젊은이들이 그냥 뜻만
있어서 뜻으로 와서 무작정 상경을 해서 에도나 교도에 가서 그냥
여기저기 빌붙어서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렇죠. 그러면서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한
대표적인 성공한 이런 지사들이 사고닷가머리 기도가 여시 오쿠보도시미치 뭐 이런 사람들이지만은
대부분은 실패하고 일찍 죽고
그러면서 굉장히 비극적인 어 종말을 맞이합니다.
또 많은이 지사들한테는 젊은이들한테는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엄청난
대의명분 정말 나라를 위해서 자기내가 직접 뭐를 할 수 있고 그리고
국가의 방향을 틀 수 있는 그런 역할 할 수 있다라는 그러한 자부심과 그
흥분 이런 것이 이제 그 섞이면서 어
진짜 그야말로 삶을 만끽을 입니다.대 도사의 대표적인
지사 사까모토리오마 그 유명한 어 그 시 시 시바리오다라고 쓴 료마가
간다라는 그 소설의 주인공 어 그리고 그 연속국 유명한 일본 연속국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 사과머또 료마는 그 당시에 아직이 지사로 본인도 이제
그 에도에 갔다가 교도에 갔다 떠돌아다니면서 다른 그 다른 번에서 온 지사들하고
교류를 하기 시작하고 살고 닷가머리하고 만나고 기도 다과요씨 조요씨 기도 이런 사람들하고 만나고
교류하고 이제 그러면서 뭔가를 도모하는 그런 분위기 속에 들어갔을 때 그 살고 있을 때 자기 노의한테
편지를 쓰는게 남아 있습니다. 그 편지 이렇게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소위 황국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의리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천황폐학께 권력을 다시
돌려드리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래서이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같이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천황 폐악께서
마음을 놓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천왕폐하의 조종을 자신의 한이나 부모들보다 앞세우 있다. 자신의
친척들과 자신의 한을 번을 우선시하지 않고 어머니와 부인 아이들을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채물을 져버린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처에 있는
시대상에 비춰볼 때 바보 같은 관려들이나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말에 현혹된 부모들은 우리의 한 우리
가문 우는하면서 아들들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만들고 있다.
가족이고 부모고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나라다. 그러면서 무조건 자기같이
신분이 낫더라도 천왕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그 역할은
사실 오히려 우리가 우리만이 할 수 일이다라고 지금
자기 누이한테 어 자기의 뜻을 지금 펼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뭐 구체적인 방향성 있는 것도 아닌데
전왕위는 그냥 구호입니다. 그러니까는 사실 생각해 보면 나중에 우리가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이런 지사들이 토대를 이루어서 근대 국가를 근대
개혁을 해서 근대 국가를 만들었게 메이주신의 역사지만이 당시만 하더라도이
실제로 명치신을 일으킨 메주 의신을 일으키는이 지사라는 젊은이들한테는
자기네가 그대 국가를 만든다라든가 뭐 그래서 결국은 사무라이 계급도
폐지되고 신분 계급이 폐지돼서 사무라이 자체가 없어지는 어떠한 그런 근대 국가를 만든가 이런 생각은
추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네 같은 사무라이들이
다만 천왕한테 충성을 해서 천왕을 받들어서 천왕이 막불을 쫓아내 버리고 막불을
해임시키고 천왕께서 직접 나라를 통치하는데 거기까지 갈 수 있도록
그리고 당연히 뭐 이제 천왕이 직접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하면 자기네가 거기서 밑에서 보필를 하겠다 이런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그 전왕의 운동에 에
뛰어는 것이 이제이 지사들이었습니다.
법률 방송이 출간하는 시사 교양지 법치와 [음악]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 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결국 메이지 신이 가져온 그러한 변역 그러한 그것 메이지신을 통해서
만들어진 일본의 그 근대 국가는 지사들이 원하던 것도 아니고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만일에 알았다라면 알았더라면 이런 나라를 만든 것이다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콧방귀] 그렇게 열심히 조항양의 운동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전통적인
다만 막부가 아닌 천왕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나중에 나중에 또
하나 대표적인 사건모드려오마 말고 또 이제 정말로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던 사이고 다까머리라는 그 지사는 실제로 자기가
사스마의 사무라이들을 모아서 훈련을 시켜서 그 사람들을 그 사무라이들을
이끌고 천황의 군대가 돼서 도덕구가 막부의 군대와 싸워서 보신 전쟁에서
결국 이겨서 천왕의 왕정 천왕이 친정을 할 수 있는 왕정복고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제 그다음의 문제가 뭡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자기내가 세웠던 그 메이지 정부가 뭐를
합니까? 신분 철패를 해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제일 신분 철패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게 누굽니까? 사월이들이죠. 특권이 없어져 버린 거죠. 그러니까는
자기네가 왕정복고를 하고 그리고 천왕 밑에서
천왕군이 돼서 그러면서 천왕을 보필해서 그러면서 이제 살아가려고
그렇게 거사를 했던 건데 웬걸 그 천왕이 명령을 내려서 사무라이를 없애
버리는 거죠. 그랬을 때에 그 고민을 끌어앉는게 사고 닦까머리고 결국은
자기도 정부직을 사임을 하고 사스마로 내려가서 그때에 그 지사들 그
사무라이들이 사회고한테 와서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넘어갈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서 무슨 근대 국가는 무슨 근대 국가입니까? 왜
우리 사무라이들을 없니까? 하면서 사스마 반란을 일으키는 거죠. 세인
전쟁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다들 높은 사람들은 흐릿한 상황에서 우왕장하고 있을 때 어쨌든
본인들의 생각에 맞는다라는 조항양이의 인념을 끝까지 관철시키면서 결국은
실제로 왕종복가 이루어지게 만들면서 가장 큰 희생타가 되는 것이 바로이
지사들 사무라이들입니다. 아예 그 계층은 사라집니다. 근데 살아이지기
전에 막부 시대에서 메이지우신 시대로 넘어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사과 머토리오마는 실제로 메이저신을 보지 못하고 암사를 당하고 사회거 닷가머리는 메이저신을
주도했는데도 결국은 자기가 세세운 정부와 싸우다가
자결을 할 수밖에 없는 그 비극이 바로이 지사들의
비극입니다. 자, 그럼 이제 지사들이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젊은이들은
막부의 힘이 약해지니까 인하우스케가 암살이 되고 막부의 강력한 지도자가 상 없어지고 나서부터는 막부도 이제
어떻게 해올지 잘 모르겠는 거고 그런 상황에서 막부 시대 내내
내침을 받았던 가장 바깥에서 중앙정치에 전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던
대표적인 도자마변인 번 도자마 번인 조수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전에 말씀드렸듯이 조수는 사스마도 그렇지만 사실은 굉장히 탄압을
받으면서 독구가와 막부 시절 내내 탄압을 받으면서도 여러 경제적인 이유
그다음에 또 사무라이 숫자가 유난히 많았던 이유 등등으로 인해서 굉장히 역동적이고 경제력이 강하고 그리고
군사력까지도 갖추고 있었고 개항의 계국의 시대가 오니까 굉장히 먼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지금 정치적인 공백까지
생기니까 조수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특히 조수도 그렇고
사스마도 그렇고 원래 오랜 전부터 천왕부랑
천왕가랑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 혼도 이어지고 있었고
그랬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는 막부의 힘이 약해지니까이
조주 같은 경우는 사스마도 그렇고 교도의 천왕부랑 손을 잡기 시작을
합니다. 내통을 하기 시작하고 긴밀하게 움직이기 시작을 합니다. 요수가
궁극적으로는 조왕양이 파의 근거지가 되지만
먼저 움직였을 때는 이때 제일 먼저 움직였을 때는 사실은 공무합체론 그러니까
막부하고 천왕이 협력을 하는 고부가타이라는 그 이론을 먼저 들고
나오는게 사실은 조슈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어떻게 보면 온 온권
정책으로 나오는 거였죠. 조수의 사무라이 중에 나가이 우타라는 젊은
사무라이가 있었습니다.이 사람이 1861년에 자기 조수의 다이며한테 자기
다이며한테 상소를 옵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요. 우리 조슈는 황가하고 굉장히 특별한 관계를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대나이묘다. 근데 지금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박후하고 막부하고
천왕이 교도의 조종이 이렇게 서로 다 가지고는 어떻게이 나라가 국란을
극복할 수 있느냐. 300년에 가까운 독구가와 의화에도 시대가 이어져 왔고
그래서 그 박구후가 그래서 무기력해진 것이고 어떻게서든지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그래서 정말로 속된 마음을 품고서
외세와 구력적인 조약을 맺는 것이 맺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이제
애국자들이 분노하고 있고 지지들이 분노하고 있고 존항이 바가 만들어지고 있고 그렇다 그러면서 그렇게 돼 갖고
최고을 할 거냐 개곡을 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갖고 지금 허송 세월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지 않느냐 나라가
우왕저항하고 있지 않느냐 자 그런데 존황양파들은 무슨 뭐 천왕한테 다시
권력을 주자 그래서 왕종 복고를 하자 이런 얘기도 하지만은 자기가 봤을 때는 지난 300년간 천왕이 박구
마코프한테 모든 거를 맡겼지 않느냐. 국사를 맡겼던 거 아니냐. 그러니까는 외세가 외세 관련된 모든 것도 사실은
마크후프가 다뤄왔던 것이고 여태까지. 그리고 실제 외국 사람들은 천왕이 있는지도 모르고 바쿠후가 일본의
왕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정도인데 그거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니냐. 그러니까 그런 상황에서 이제 와서 양이들하고
맺은 헤르스 조약 조약들이 다 있는데 이거를 일방적으로 파괴하자라는
전항양입들의 얘기는 말이 안 되지 않느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 그러느냐?
1번이 우선 항해수를 익히고 바다로 나가야 된다.이 사무라이들이
육지에서만 싸우는데 그게 아니라 이제 바다로 나가야 된다. 항해수를 익히고
군대를 기른 다음에 무역을 통해서 나라를 부흥시키고
그리고 황국의 군사력을 전 세계에 그런 식으로 육군과 해군과 이런
힘을 과시해야 된다. 즉 부국 강병을 제대로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종이 천왕이 바쿠보고 이러한
전략을 추진할 것을 명하고 박후프는 그것을 실행해 옮기면은 그러면 양의와
조약을 맺었던 것이 오히려 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돼 버리고 전화혹이 돼 버리는 것이고
그리고 바구후는 오랑캐를 무찔러야 된다는 그 본업 원래 그래서 대장군
아닙니까? 쇼근이라는 것이 천왕이 오랑캐드를 무찔르라고 임명하는
장군이지 않습니까? 그 본연의 임무를 완수할 수가 있게 되고 천왕의 권위를
만방에 떨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면은 즉 천왕하고 마크후가 힘을 합쳐서 천왕의 명령을
내리고 마크후가 그것을 옮기는데 뭐냐면 나라를 열어서
해군을 기르고 육군을 기르고 무역을 증대시켜서 국부를 일으키고 그때 가서
박국한테 외스를 쫓아내라 그러면 그러면 이건 진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천왕부 좋고 박부 좋고 일본
전체한테 좋은 일이 아니냐라는 의견을 올린 얘기입니다. 천왕하고
박후가 손을 잡아야 된다라는 그래서 국란을 극복해야 된다는이
나가의 우타의 이론이 소위 공무합체 이론이 되는 겁니다. 고부가타이라는
이름이 여기에 이제 그 고부가타의 이론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는게
바로 나가의 우타의이 상소에서 나오는 겁니다. 어 조에다면 머리는
그래 좋다. 그러면 너 한번 교도로 가서이 제한을
네가 상소에서 얘기했던이 제안을 공부 합체론을 한번 교도에 교도의 조종에
가서 상진해 봐라. 뭐라 그런지 봐라. 그래서 나가이가 실제로 교도로
갑니다. 교도에 가서는 귀족 산조를 만납니다. 그때에
천왕부와이 조수하고의 연락을 맺는 그 연락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산조는 나가이의
그 안을 보고서는 어 이거 괜찮다. 그래 갖고 천왕한테 물립니다. 그래서 천왕도 아 좋다
그러면서 1861년 6월 2일 아예 나가이로 하여금 그러면
네가 이거를 가지고이 안을 지금 우리한테 얘기했던이 안 너희 다이묘한테 얘기를 했고 이제 우리
천왕한테 얘기를 했으니까 이거를 그러면 막부에 가서 얘기를 해 봐라.
그래 갖고 나가이가 에도를 향합니다.
그리고 에도로 가서 박구후한테 막부한테 올렸더니 막부도 이건 너무
좋다. 이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자, 근데 문제는 뭐냐면
천왕도 좋다 그랬고 아니 우 조의 다묘도 좋다. 좋다 그랬고 천왕도
좋다 그랬고 막부도 좋다 그랬습니다.이 공부 합체 이론. 그래서 다 합의를 했습니다. 문제가
어디서 터지는지 아세요? 조수 내부에서 터집니다. 조수 내부에서 어디서 터지냐면 조수 내부의
조항양입파에서 터집니다. 그 조항양입파. 그러니까 아니 왜 저
서양 오랑캐하고 국교를 튼 [목을 가다듬음] 그 막불을 쫓아낼 생각을 하지 않고
쫓아내고 천왕한테 신정을 하시라고 왕종 복구를 시켜 드릴 생각을 안 하고 무슨 둘이 협력을 하도록 하자는
거를 하자 그런다라고 하는게 그게 조항 양위파들입니다. 근데 그 조항 양위파 조수의 조항 양위파의 대표가
누구냐면 바로 기도다카요입니다. 즉 나중에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세
명 유신 삼걸이라고 하는 그 삼걸 중에 조슈를 대표하는 기도
다카요입니다. 나머지 둘은 이제 사이고 다가 머리하고 오쿠보도시미치 사스마 사람들이죠. 근데 거기에
이제이 사 조주의 기도가 이때 부상을 하는 겁니다. 스승 요시다 쇼인네
속과 손주구를 그죠. 그 조그만 마을에 있는 자기네가 태어난 하기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 그 조그만 학교를 지금 여시다 쇼인이
미랑을 하려고 갔다가 결국은 실패를 해서 잡혀와 갖고 유배를 향해서 위리한치같이 고향에 가서 있으라 그래
갖고 거기에 있으면서 그래도 허가를 받고서는 자기 작은 아버지가 하는 조그만 학교를 인수를 해서 거기서
이제 동네 어린애들을 가리키기 시작하는 거죠. 가르킨 것 2년 반, 3년을 최 못 가르키는데 그때
80명을 가리키고 그중에 60명이 나중에 매주신 이후에 대신을
여임한다라는 바로 그 속과 전주권인데 거기에 나온 대표적인 학생이 바로이
기도죠. 그러니까 기도는 어려서부터 매 조왕양이의 사상을 요시타
시인으로부터 받았고 조수의 조왕양의 팔을 이끌고 나가오다가 하는게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 왜 조번이 이런 일을 합니까라면서 그때에 들고
일어나면서 이거 우리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 나가고 있습니다라면서 조주 내부에서 발론을 일으킵니다. 기도는
이제 속가주구를 나와서 어 요지다시한테 거기서 배우고 그리고
1852년에 이제 에도로 갑니다. 에도로 가서 검술도 배우고 그러니까
그 당시에 지사들이 하는 전형적인 일을 하는 거죠. 가서 무도 무도장에 다니면서 검수를 배우고 다른 번에서
온 그런 지사들을 만나서 교류를 하면서 왕정복고 조항양이 사상 이런
거에 대해서 이제 논의를 하고 그러면서 같이 뜻을 이제 키워 가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나가 있다가이 공부 합체론을 들고서
자기 다이묘의 허락을 받고 천왕에 허락을 받고 그리고 에도에 왔을 때
에도에 와서이 공부합체론을 막부한테 전달했을 때 그때에 기도는
자기네 번에 조수 번에 관리로 애도에 파견되어 와
있었습니다. 조항양이파로 애더에 파견되 와 있었는데 바로 자기 같은
번에서 나가오다가 공부 합체론이라는 걸 들고서 온 겁니다. 그러니까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 기도는 에이나우스케를 암살했던 그 미토번의 그 그런
사무라이들 그렇죠. 그런 지사들 그리고 다른 조항의 지사들 이런
사람들과 교를 하면서 결국은 이때에 여섯 명의 사무라이들이 지사들이
모여서 천왕한테 충성하는 혈서를 씁니다. 이것이
존황양이파의 구체적인 시작입니다. 그 태동을 시킨 것은 기도
다카요습니다. 그 사람을 유신 삼걸로 치는 삼걸의 하나로 치는 이유도 바로 이만큼
근본적인 가장 기본적인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이
조항양이파들이 메주신을 일으키는 겁니다. 지금
나가이구타의 공부 합체로는이 조주의
기도닷가요씨 같은 번에 출신의 기도에가 주동하는 조항양위파의 반대만
부딪친 것이 아니라 히마즈
히사미스 그러니까 사스마 번의 번주의
에도의 개입으로 인해서 결정타를 맞습니다. 입니다. 히사미스는
조슈가 먼저 움직여서 공부합체론을 들고서 와서
중앙 정치를 정치 틀을 조가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수의 안에 따라서 천왕이 합의를 했고 막부가 합의를 했고 나가
오다가 실제로 그 역할을 다 하고 아 다 좋다 그럼 이대로 하자라고 하고 있었는데
비록 조주 내부에서 기도의 반대는 있었지만 갈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조주가 주도하는 전국이 형성이 될 것 같았었는데
시마즈 그러니까 사스마번의 번주로서는 같은 도자마번 같이
쫓겨나 외방에 쫓겨나 있었던 번이었는데 조주가 그렇게 되는 정권을 잡는 거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시마즈가 오히려 군대를 끌고서 그리고는 에도로 갑니다. 에도로 가서 안 된다. 지금
공부합체로는 말이 안 된다. 왜? 아니 지금 공부 합체론을 하자고
그러지 않아도 천왕의 여동생이 이복 여동생이 소근은하고 결혼까지 시키고
그랬는데도 도대체 무 이거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쇼근이
감히 천왕에 여동생을 부인으로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이 황가를
전혀 존중하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고 너무 북선하게 곤다. 이런 이유를
들고서 와서는 자기가 오히려 막부 대신에
사스마가 와서 천왕하고 천왕가하고 협력을 하면서 권력을 잡으려고 그러는
시도를 합니다. 그래서 심마스는
안세이 대혹 때가 경 사람들 다 풀어주고 조항양이 파들 바크후에
요직에 안치고 그죠. 그때에 이인나우스키한테 수청당했던 사람들을
앉칩니다. 다시 권자 권력의 핵심에 다시 배치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과격한 조랑 양이파들 요시다 쇼인의 제자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무력으로 다 제압을 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에도에 와 있었던 그 많은 조항양이파들를
젊은 지사들을 시마즈가 다 제압을 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자기네가 말하자면 온권 조항 양입하죠.
온권 조항양이 파로해서 박수후수후는 뒤로 물러나게 하고 자기가 천왕보하고
손을 잡고 그러면서 전국을 주도해 나가려는 그런 시도를
하면서 그러기 때문에 조주에서 왔던 극렬한 기도닷가요씨 같이 조항양이를
위해서 혈소를 쓰고 했던 그런 극급진 조항양이 파들을 숙청을 합니다.
에도에서 박구후를 타도하려는 그러한 그 조항 양이파들 교도의 조항
양이파들이 에도에 와서 박쿠후를 타도하려고 하는 거사를 일으킨다라는
그러한 정보를 입수하고는 이때에 히자미스가 군대를 보내 가지고이
교도의 론인들한테 지사들한테 거사를 포기하라고 하는데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이때에 전투가 벌어집니다. 그리고이 전투로
전왕향이 파들 론인들 지사들이 수없이 죽습니다. 사스마의 론인들은 조항
받으는 사스마로 강제 호송이 돼 버리고 이때에 조슈에 구사카 겐세이
같은 그 역시 일찍 죽게 되는 초기의 전왕위파의 핵심이었고 조슈의
사스마 조수의 지사들의 핵심이었던 쿠사카 겐세이 같은 이런 사람들이 다
조항양인파에 그때 있었는데 그때 도저히 사스마의 시마즈가
워낙 강하게 나오고 그리고 같은 사스마 출신 조항양이파
아리마라는 유명한 조항 양이파 사스마 출신데도 사스마의 다이메가 죽여 버립니다. 그러니까 전투를 피해서
달아납니다. 그래서 조슈로 가니까 히사미스가 조주 번에 대고서
너희 너희 번으로 도망친 조항양이파이 루인들 젊은 놈들 이거 내놔. 그런데
조주보는 못 내놓겠다고 그때 그럽니다. 이때부터 사스하고 조슈가 완전히
반목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궁극적으로는
협력을 해서 조수아가 사스마가 협력을 해서 그래서 메이지를 일으키지만
지금 막부가 약해지고 흔들리고 있을 때에
그때는 서로가 경쟁적으로 전국을 주도하기 위해서 조수가 먼저 고부가타의 공부 합체론을 들고서
움직였다가 사스마의 시마즈 가 와서 그거를 축출을 시켜 버리고
강 그리고 자기가 전국을 주도하려고 하는 와중에
완전히 조수하고 샀으면은 라이벌이 돼 버린 겁니다.이
라이벌이 된 거를 나중에 풀어서 화해를 시켜서 서로가 힘을 합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게 바로 도사의
지사였던 사과모도 료마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까모도리오마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는 거죠. 이렇게 반목을 하기 시작한 계국을 통해서 혼란에 빠진
그리고 권력의 공백이 생기기 시작한 애도의 권력 공백을 메우려고 서로
경쟁적으로 나선게 그 두 도자마 다이묘어였던 조슈하고 사스마였던 것이죠. 이렇게 되니까
시마즈가 사스마의 다이묘가 에도에 와서
꽉 잡고 그리고 군대를 보내서 교도에서
론인들이 일어나 갖고 또 전왕이 파여서 애도 막부를 타도하겠다라는 그
거사를 무력으로 진압을 해 버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고메이 천왕같은
같은 경우에는 아예 의존향이 원하지 않았어요. 그렇죠? 그냥 독구가 막보가 계속 잘
가면서 자기한테 자기가 쓰기 쓰는데 필요한 돈 체면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 주고
이러면 그냥 같이 가는 걸로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어차피 극렬한 조항양파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랬기 때문에 나가 우타가 공부 합체론을 가지고
오니까 어유 하자 그랬던 거고 자기 여동생도 소근하고 결혼을 시켰던 거고
이런 상황이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그 조항 양이파를 시마즈가 와서 다
평정을 해 준 거죠. 그러니까 전부 다 천왕이 됐든 막부가 됐든 오히려
시마즈한테 고마워하면서 시마즈의 대안을 받아들이는 거죠.
시마즈의 그 권력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면서 중앙 권력이 완전히 사스마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조슈는 어떻게 됩니까? 조우주의 [콧방귀] 지도층은
나가이 우타의 공부 합체론이 실패했다라는 거를 깨닫고
어떻게 합니까? 나가이한테 자결을 명합니다. 명합니다.
할복 자살를 명합니다. 그래서 1862년
11월 15일 나가 있는 조종과 조수에 저지른 죄
때문에 할복 자살을 합니다. 이것이 그 당시에
그 당시에 지사들의 젊은
사무라이들의 운명이었습니다. 지행합일 그야말로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겨서 전왕 양이파도 있었고 나가고타 같이
공부 합체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오히려 하급 사무라이로서 자기
다이며나 누구한테나 상소를 올리고 의견 개진을 해서 그래서 그걸
관철시키는 놀라운 행동력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이 엄청난
권력 싸움에서 권력 투쟁에서 참 억울하게
많은 경우에 억울하게 어처근이 없이
암살를 당하고 할복 자살를 명받고
할복 회복할 수 없게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운명의 처합니다. 이런 일들이
부지 기술로 일어납니다. 저는이 당시에 그 젊은 이들의 그 정신 비록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많은 경우에는 극히 일부만 나중에 메이신이 유신이
성공을 해서 유신삼걸에다가 뭐 야마가다리 또 뭐 이또 이러 이런 사람들이 엄청난
국가의 대신이 되고 나름대로 영화를 누리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기까지 갈 때까지 일본이이 격동기를 넘어가는 하 있어서 막부 시대에서
매지유신 시대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의이
강직하고 불같고 자기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김
옮기고 그래서 희생되는이 지사들의 희생이라는 것이 그 정신이라는 것이이
놀라운 본건제도에서 근대 국가로 넘어가는데 있어서 큰 정신적
밑받침, 밑걸음이 됐다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네. 오늘은 어
우리말로 지사 일본말로 CC시라는이 젊은 하급 사무라이 낭인이기도 하고이
사람들이 어떻게 막부 말기에 만들어 그 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
사람들이 누였으며 그 사람들이 결국은 메이지으로 넘어가는 밑걸음 역할을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지지들이 판을 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전국이 극하면서 그러는 와중에 조슈하고 사스마가
대립을 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결국은 결국은 그 대립의
와중에서이 조왕리 사상 때문에 결국은 조수하고 사스마가
외세하고 영국하고 프랑스하고 네덜란드하고 미국하고 전쟁까지 [음악]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 상황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음악] 정체성을 담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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