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6

함재봉은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ChatGPT -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

함재봉은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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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함재봉 교수의 사상적 틀(문명사적 시각, 국제정치학적 현실주의, <한국 사람 만들기>의 5대 파벌 담론)을 바탕으로, 그가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과 '중립화 구상'을 어떻게 읽고 평가할지에 대한 평론입니다.

함재봉의 시각에서 읽는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

함재봉 교수는 저서 <한국 사람 만들기>와 여러 문명사적 연구를 통해 구한말 한반도의 비극을 <세계 문명사적 대전환에 대한 조선 지배층의 무지와 체제적 무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러한 함재봉의 분석 틀로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을 읽는다면 크게 네 가지 핵심 지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성리학적 중화질서에 갇힌 '친중 위정척사파'의 한계 확인

함재봉은 조선이 멸망으로 치달은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주자 성리학 근본주의에 매몰되어 서구 근대 국제법 질서(베스트팔렌 조약 체제, 만국공법)를 이해하지 못한 지배층의 지적 지체를 꼽는다.

  • 샌즈가 <조선비망록>에서 묘사한 고종과 조정 관료들의 모습—주변 열강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미신과 밀실 음모, 감정적 외세 배척에 매달리는 행태—은 함재봉이 규정한 <친중 위정척사적 세계관의 파산>을 내부자 시선에서 증명하는 생생한 사료로 읽힌다.

2. '영세중립화론'에 대한 평가: 현실주의적 처방 vs 구조적 불가능성

함재봉 교수는 국제정치를 냉혹한 힘과 동맹의 역학으로 바라보는 현실주의 정치학자다. 따라서 샌즈의 '조선 중립화론'에 대해 이중적인 시선으로 독해할 것이다.

  • 외교적 통찰에 대한 긍정:

    샌즈가 청일전쟁 이후 조선이 취해야 할 생존 전략으로 '외세 의존(인아거일 등) 탈피'와 '다자간 세력 균형을 통한 중립 보장'을 제시한 것은, 당시 지정학적 환경에서 꺼낼 수 있었던 가장 합리적인 현실주의적 처방이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 국력 없는 중립화의 허구성 비판:

    그러나 함재봉의 관점에서 중립화는 스스로를 방어할 '무장력'과 '제도적 근대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 샌즈의 구상이 실패한 이유는 열강의 배신 이전에, 조선 스스로 국가를 지킬 근대적 군사·재정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짚을 것이다.

3. '친미 기독교파'의 맹아와 미국의 국익 우선주의 목도

함재봉의 5대 정체성 담론 중 하나는 서구 근대 문명과 자유주의, 국제 연대를 체득한 <친미 기독교파>(서재필, 이승만, 윤치호 등)의 형성이다.

  • 샌즈의 기록은 미국 정부가 도덕적 정의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자국의 팽창과 국익(필리핀 지배 확립 및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함재봉은 샌즈의 좌절을 통해, "단순한 맹목적 친미나 외세에 대한 환상은 독립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국제정치의 힘의 구조 속에서 동맹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교훈을 도출할 것이다.

4. '문명 표준(Global Standard)' 수용 실패에 대한 탄식

함재봉 교수는 "한국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이고 외부를 향해 열려 있을 때 번영했지만, 문을 닫았을 때는 쇠퇴하고 몰락했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 샌즈가 제안했던 행정, 사법, 조세, 군사 개혁은 조선이 '문명국가의 표준'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 함재봉은 샌즈의 기록을 <열린 근대 문명으로의 전환을 거부하고 기득권 수구에 안주하다 스스로 자멸해 버린 조선 왕조의 비극적 교훈서>로 읽을 것이다.

종합

함재봉 교수에게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은, 근대 문명사적 거대한 해일 앞에서 조선의 낡은 성리학적 질서가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증명하는 '체제 파산의 현장 보고서'이자, 힘의 균형과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잊은 국가는 결코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현실주의적 경고장'으로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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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은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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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이 질문은 꽤 흥미롭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함재봉이 샌즈의 『조선비망록』을 직접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제가 확인한 공개 자료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함재봉은 이렇게 말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 만들기』, 특히 2권과 5권, 그리고 <한국인의 탄생> 강좌에서 반복되는 함재봉의 역사해석을 적용하면, 그가 샌즈를 어떻게 읽을지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제 판단을 먼저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함재봉은 샌즈의 ‘중립화’ 자체보다, 샌즈가 중립화의 전제라고 본 국가개혁·행정능력·교육·국제질서 편입에 훨씬 더 주목했을 것이다. 그리고 샌즈의 실패를 ‘중립화라는 좋은 구상이 열강 때문에 좌절됐다’기보다는 ‘근대국가로 변신하지 못한 대한제국이 열강의 세력정치 속에서 자주독립을 유지할 수 없었던 사례’로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샌즈와 함재봉 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점과 중요한 차이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1. 함재봉은 샌즈의 국제정치 진단에는 상당히 공감했을 것이다

샌즈가 본 대한제국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쪽을 끌어들여 다른 쪽을 막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조선을 개혁한 뒤 여러 강대국으로부터 독립과 중립을 공동 보장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샌즈 연구자인 Wayne Patterson도 샌즈의 목표를 <국내 개혁 + 한국의 국제적 중립화>로 정리합니다.

이 사고방식은 의외로 함재봉의 <조선책략> 평가와 매우 가깝습니다.

함재봉은 조선이 미국 등 여러 나라와 수교하는 것을 단순한 개항으로 보지 않습니다. 러시아 같은 한 강대국이 조선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여러 국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근대적 세력균형 외교>를 배워가는 과정으로 해석합니다. 그의 설명에서 조미수교는 조선이 중국 중심 질서에서 빠져나와 <주권국가들이 서로 조약을 맺는 국제질서>에 들어가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샌즈가

<러시아도 일본도 조선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고 말한다면 함재봉은 상당 부분 동의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훨씬 뒤인 2014년 함재봉은 현대 한국 외교에서도 미·중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는 식의 단순 양자택일보다 여러 국가와 관계를 발전시키는 <hedging, 보험 들기>를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샌즈와 함재봉이 꽤 가깝습니다.


2. 그러나 함재봉은 <중립화>라는 말 자체에는 훨씬 냉정했을 것 같습니다

샌즈를 읽으며 함재봉이 가장 먼저 물었을 질문은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누가 그 중립을 보장하는가?>

조선이

<우리는 중립국입니다>

라고 선언한다고 중립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벨기에나 스위스식 중립화가 성립하려면 주변 강대국들이 그 국가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인정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 약속을 지킬 이해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1900년 전후의 동아시아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한반도를 자신의 <이익선>으로 보기 시작했고, 러시아도 한반도와 만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함재봉의 최근 강좌에서도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이익선> 논리를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일본 지도자에게 조선은 단순한 이웃나라가 아니라 일본 본토 방위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전략공간이 되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함재봉식 질문은 아주 냉정해집니다.

<일본이 조선을 반드시 필요로 하고 러시아도 조선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무슨 힘으로 양국에게 조선의 중립을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샌즈에게 바로 그 힘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미국 정부조차 샌즈를 뒷받침하지 않았습니다. 샌즈의 개인적 한국 독립론과 미국 정부의 실제 동아시아 정책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재봉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립은 의지가 아니라 힘과 제도의 결과다.>


3. 그래서 함재봉이 가장 높이 평가했을 샌즈의 생각은 오히려 <선개혁 후중립>입니다

저는 이것이 두 사람의 가장 중요한 접점이라고 봅니다.

샌즈는

<먼저 중립을 선언하고 그다음 나라를 고치자>

고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국가를 먼저 제대로 만들어야 국제사회가 그 국가의 중립을 보장할 수 있다>

고 보았습니다.

행정 개혁, 조세제도, 교육, 정부 능력, 질서 확립을 강조했습니다. Patterson 역시 샌즈가 고종에게 개혁을 설득하면서 그 위에 한국의 중립을 세우려 했다고 정리합니다.

여기서 샌즈와 함재봉은 거의 만납니다.

최근 <한국인의 탄생> 강좌를 관통하는 함재봉의 가장 강한 주장은 일본의 성공을 단순히 <서양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관찰 → 번역 → 학습 → 모방 → 제도화 → 국가능력 강화>

를 계속했습니다.

가나가와 조약·해리스 조약에서도 처음에는 굴욕을 당하지만 조약·관세·외교·군사기술을 배우고 국가제도를 바꾸어 갑니다. 함재봉에게 근대국가의 핵심은 바로 이런 <학습하고 제도화하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조선비망록』을 읽으면서 함재봉이 밑줄을 칠 대목은 아마

<조선은 중립화해야 한다>

보다

<중립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행정과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4. 고종 평가에서는 샌즈보다 함재봉이 훨씬 더 비판적일 것입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집니다.

샌즈도 고종에게 크게 실망했습니다. 우유부단함, 궁정 측근들의 영향, 개혁의 번복 등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샌즈에게는 고종에 대한 상당한 연민이 있습니다.

그는 고종을

<무능한 황제>

로만 본 것이 아니라

<일본·러시아와 여러 외국 세력에 둘러싸여 선택지가 극도로 좁아진 약소국의 군주>

로도 보았습니다.

함재봉은 이 부분에서 훨씬 엄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사람 만들기 5』의 목차만 보아도 그의 관점은 매우 선명합니다.

제1장의 제목부터 <독립 아닌 독립: 아관파천>이고, 그 안에 <고종의 보호령 요청>이 있습니다. 이어 <조선을 러시아의 보호령으로>, 러시아 군사교관, 러시아 재정고문, 독립협회의 러시아 내정간섭 반대 등을 상세히 추적합니다.

즉 함재봉에게 고종의 문제는 단순히 <강대국 사이에서 어쩔 수 없었다>가 아닙니다.

고종이

<일본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불러들이고 → 러시아가 부담스러워지면 또 다른 외세를 이용하는>

왕조적 세력균형 외교를 반복하면서도 정작 <국민·의회·근대적 행정·시민사회를 갖춘 국가>로 권력을 재편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는 것이 훨씬 중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샌즈가 고종을 보며

<개혁하려 해도 주변의 간신과 외세 때문에 못한다>

고 안타까워한다면, 함재봉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측근정치 자체가 고종 정치체제의 일부 아니었는가?>

라고 반문할 것 같습니다.


5. 특히 <독립협회> 문제에서 둘의 차이가 선명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샌즈의 구상은 상당히 <위로부터의 개혁>입니다.

황제에게 좋은 외국인 고문이 조언하고,

행정을 개혁하고,

재정을 정상화하고,

군대를 개선한 뒤,

열강과 외교협상을 통해 중립국가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개명된 황제 + 유능한 외국 고문 + 개혁관료>

모델입니다.

반면 후기 함재봉이 『한국 사람 만들기 5』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른 방향입니다.

<독립신문 → 토론회 → 만민공동회 → 관민공동회 → 헌의 6조 → 중추원 개혁 → 의회정치>

입니다. 책에서 독립협회의 종착점을 거의 <의회민주주의>의 탄생으로 읽습니다.

이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샌즈는

<좋은 정부를 만들어야 독립할 수 있다>

고 생각합니다.

함재봉은 거기에

<근대적 국민과 시민사회가 만들어져야 근대국가가 된다>

를 덧붙일 것입니다.

그래서 함재봉이 『조선비망록』을 읽는다면 샌즈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아마 이렇게 비판할 것 같습니다.

<샌즈는 근대국가를 만들려 했지만 근대적 국민을 만드는 문제까지 충분히 보지는 못했다.>

이것은 아주 함재봉적인 비판일 것입니다.


6. 그런데 샌즈를 <친미기독교파>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여기에도 재미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함재봉은 한국 근대의 중요한 인간형을

<친중위정척사파 / 친일개화파 / 친미기독교파 / 친소공산주의파 / 인종적 민족주의파>

라는 경쟁적 계보로 봅니다.

샌즈는 분명 미국인이지만 <친미기독교파>의 핵심 인물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언더우드·아펜젤러 같은 개신교 선교사가 아니었고, 오히려 가톨릭적 배경이 강한 미국인이었습니다. 훗날에도 저명한 가톨릭 평신도로 소개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함재봉이라면 샌즈를

<친미기독교파를 만든 선교사>

라기보다

<서구 근대 국제질서와 행정국가의 논리를 대한제국 궁정 안에 가지고 들어온 미국인>

으로 읽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구별입니다.

언더우드가 <학교·교회·병원·성경·한글>을 통해 아래로부터 사회를 바꾸었다면,

샌즈는 <외교·행정·재정·국제법>을 통해 위로부터 국가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함재봉에게는 아마 전자가 역사적으로 더 성공적인 근대화의 통로였다고 보일 것입니다.


7. 가장 큰 차이: 샌즈는 <중립국가>를 꿈꾸었지만, 후기 함재봉은 <자유주의 국제질서 편입>을 더 중시합니다

여기서 현대 함재봉과 샌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생깁니다.

함재봉은 2014년에는 미·중 사이에서 <hedging>을 강조했지만, 2018~2019년에는 훨씬 분명하게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한국의 선택으로 제시했습니다. 2019년 아산 국제정세전망 서문에서는 한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버리면 자유와 번영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매우 명시적으로 주장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함재봉이 샌즈에게 묻는다면 아마 이 질문이 될 것입니다.

<왜 굳이 중립이어야 하는가?>

샌즈 시대에는 미국이 한국을 지켜줄 생각이 없었고 한미동맹도 없었습니다.

반면 함재봉이 보는 1945년 이후 대한민국의 성공은 미국 중심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분리하여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는

<대한제국의 중립화 실패>

<대한민국의 한미동맹>

을 대비시킬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즉,

<1900년의 조선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중립을 원했다.
1948년 이후의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 안으로 확실히 들어갔다.>

그리고 후자가 성공했다고 평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8. 그렇다면 샌즈가 오히려 함재봉에게 던지는 반론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함재봉의 관점으로 샌즈만 비판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샌즈가 함재봉에게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대한제국의 내부 실패를 너무 크게 보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샌즈는 현장에서 제국주의가 실제 작동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조선이 개혁한다고 해도

일본은 조선을 전략적 이익선으로 보고 있었고,

러시아도 남하하고 있었으며,

미국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즉 <더 좋은 행정, 더 좋은 교육, 더 좋은 국민>만으로 제국주의를 저지할 수 있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점에서 샌즈는 함재봉의 설명을 보완합니다.

함재봉의 강점은

<왜 일본은 근대국가가 되었고 조선은 그러지 못했는가>

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샌즈의 강점은

<근대국가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약소국에게 강대국 국제정치가 얼마나 작은 행동공간만 허용했는가>

를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둘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9. 결국 두 사람을 한 문장씩 놓아보면

샌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선을 개혁하고 열강이 중립을 보장하게 해야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

함재봉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립을 보장받기 전에 조선은 먼저 근대국가와 근대국민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에 실패했기 때문에 아무도 조선의 독립을 지켜주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한 문장을 더 붙이고 싶습니다.

<그 근대국가가 좀 더 일찍 만들어졌다고 해서 일본과 러시아가 반드시 조선을 놓아주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바로 이 세 번째 문장이 샌즈를 함재봉과 함께 읽을 때 얻어지는 가장 중요한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함재봉 × 샌즈>의 관계를 <반대>라기보다 <70%의 공감과 30%의 결정적 차이>라고 봅니다. 둘 다 <약소국의 독립에는 내부 국가역량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매우 가깝습니다. 그러나 샌즈는 최종 해답을 <다자적 중립 보장>에서 찾았고, 후기 함재봉은 훨씬 더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도적 결속>에서 찾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현대 한반도 중립화론을 생각할 때도 결정적입니다. <샌즈 → 고종의 중립화 → 해방 후 중립화론 → 함재봉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론>을 한 줄에 놓으면, 결국 질문은 <약소국의 자율성은 비동맹에서 생기는가, 아니면 강력한 동맹과 국제질서에 들어감으로써 생기는가>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두 사람의 가장 생산적인 논쟁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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