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진님, 함재봉 교수의 사상적 틀(문명사적 시각, 국제정치학적 현실주의, <한국 사람 만들기>의 5대 파벌 담론)을 바탕으로, 그가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과 '중립화 구상'을 어떻게 읽고 평가할지에 대한 평론입니다.
함재봉의 시각에서 읽는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
함재봉 교수는 저서 <한국 사람 만들기>와 여러 문명사적 연구를 통해 구한말 한반도의 비극을 <세계 문명사적 대전환에 대한 조선 지배층의 무지와 체제적 무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1. 성리학적 중화질서에 갇힌 '친중 위정척사파'의 한계 확인
함재봉은 조선이 멸망으로 치달은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주자 성리학 근본주의에 매몰되어 서구 근대 국제법 질서(베스트팔렌 조약 체제, 만국공법)를 이해하지 못한 지배층의 지적 지체를 꼽는다.
샌즈가 <조선비망록>에서 묘사한 고종과 조정 관료들의 모습—주변 열강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미신과 밀실 음모, 감정적 외세 배척에 매달리는 행태—은 함재봉이 규정한 <친중 위정척사적 세계관의 파산>을 내부자 시선에서 증명하는 생생한 사료로 읽힌다.
2. '영세중립화론'에 대한 평가: 현실주의적 처방 vs 구조적 불가능성
함재봉 교수는 국제정치를 냉혹한 힘과 동맹의 역학으로 바라보는 현실주의 정치학자다. 따라서 샌즈의 '조선 중립화론'에 대해 이중적인 시선으로 독해할 것이다.
외교적 통찰에 대한 긍정:
샌즈가 청일전쟁 이후 조선이 취해야 할 생존 전략으로 '외세 의존(인아거일 등) 탈피'와 '다자간 세력 균형을 통한 중립 보장'을 제시한 것은, 당시 지정학적 환경에서 꺼낼 수 있었던 가장 합리적인 현실주의적 처방이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국력 없는 중립화의 허구성 비판:
그러나 함재봉의 관점에서 중립화는 스스로를 방어할 '무장력'과 '제도적 근대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공허한 선언에 불과하다. 샌즈의 구상이 실패한 이유는 열강의 배신 이전에, 조선 스스로 국가를 지킬 근대적 군사·재정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짚을 것이다.
3. '친미 기독교파'의 맹아와 미국의 국익 우선주의 목도
함재봉의 5대 정체성 담론 중 하나는 서구 근대 문명과 자유주의, 국제 연대를 체득한 <친미 기독교파>(서재필, 이승만, 윤치호 등)의 형성이다.
샌즈의 기록은 미국 정부가 도덕적 정의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자국의 팽창과 국익(필리핀 지배 확립 및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함재봉은 샌즈의 좌절을 통해, "단순한 맹목적 친미나 외세에 대한 환상은 독립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국제정치의 힘의 구조 속에서 동맹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교훈을 도출할 것이다.
4. '문명 표준(Global Standard)' 수용 실패에 대한 탄식
함재봉 교수는 "한국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이고 외부를 향해 열려 있을 때 번영했지만, 문을 닫았을 때는 쇠퇴하고 몰락했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샌즈가 제안했던 행정, 사법, 조세, 군사 개혁은 조선이 '문명국가의 표준'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함재봉은 샌즈의 기록을 <열린 근대 문명으로의 전환을 거부하고 기득권 수구에 안주하다 스스로 자멸해 버린 조선 왕조의 비극적 교훈서>로 읽을 것이다.
종합
함재봉 교수에게 윌리엄 샌즈의 <조선비망록>은, 근대 문명사적 거대한 해일 앞에서 조선의 낡은 성리학적 질서가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증명하는 '체제 파산의 현장 보고서'이자, 힘의 균형과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잊은 국가는 결코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현실주의적 경고장'으로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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