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민주주의는 한국형 기독교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까
https://www.dogdrip.net/59862577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365220?sid=103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50> 함재봉의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
2019.02.18

함재봉(오른쪽) 아산정책연구원장이 지난해 2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벨퍼 센터 초청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함 원장은 이 자리에서 미중 사이의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에 대해 발표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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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한 이채로운 지식인을 살펴보려 한다. 정치학자 함재봉이 그다. 그가 왜 이채로운 지식인일까.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그는 미국에서 고교와 대학을 다녔고, 박사학위를 마친 다음 한국으로 돌아와 가르치고 연구했다. 둘째, 이런 지적 배경에서 그가 정작 내놓은 것은 유교사상과 민주주의를 결합한 유교민주주의론이다. 서구 교육에 오랫동안 세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사상인 유교를 앞세운 그의 연구들이 내겐 흥미롭고 이채로웠다.
지난 100년의 지성사를 돌아볼 때 우리 지식사회에선 학파 또는 그룹들이 존재했다.
- 보수적 경제학자들로 이뤄진 ‘서강학파’,
-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주축이 된 ‘학현학파’,
- 진보적 문예이론을 내세운 ‘창비(창작과 비평) 그룹’,
- 자유주의 문예이론이 두드러진 ‘문지(문학과 지성) 그룹’은 대표적인 사례들이었다.
- 진보적 사회학을 내건 ‘산사연’(산업사회연구회)이나
- 마르크스주의에 주력한 ‘서사연’(서울사회과학연구소)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학파들 가운데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잡지 ‘전통과 현대’에서 활동한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전통사상인 유교가 갖는 의미를 재발견하고 현대화하려는 지적 기획을 펼쳐 보였다. ‘전통과 현대’는 사회학자 전병재가 편집인을, 정치학자 함재봉이 편집주간을 맡았고, 유교자본주의론과 유교민주주의론을 주창해 지식사회 안에서 상당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채로운 지식인 함재봉을 다루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 전통과 탈근대 사이에서
함재봉은 1958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부친 함병춘의 유학과 외교관 생활로 어린 시절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성장했다. 칼튼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존스홉킨스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UNESCO) 본부 사회과학 국장을 맡았다. 이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교수와 랜드연구소 선임 정치학자를 거쳐 현재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및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유학파 출신인 함재봉 원장은 미국 주요 인사들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지난 2013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뉴욕 자택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함 원장,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 키신저 전 장관. 뉴욕=연합뉴스
함재봉은 1997년 여름에 창간한 ‘전통과 현대’의 편집주간을 맡으면서 국내 지식사회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당시 ‘전통과 현대’의 등장은 앞서 말했듯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 다양한 ‘포스트주의’가 성행했던 상황에서 전통을 화두로 삼았기 때문이다.
철학자 이승환, 사회학자 유석춘, 정치학자 김병국 등이 참여한 ‘전통과 현대’는 전통주의 내지 보수주의와 가까웠다. 하지만 동시에 ‘전통과 현대’는 그 비판 대상의 하나를 오리엔탈리즘에 맞춤으로써 방어적 국수주의와도 거리를 뒀다. 주요 필자들이 이른바 ‘국내파’가 아닌 ‘유학파’였다는 점도 이채로웠다. ‘전통과 현대’는 한편으로 전통의 재발견과 창조적 계승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론 보수와 진보에 큰 영향을 미쳐온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함으로써 서구 이론 및 사상의 일방적 수용에 회의하던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 모았다.
‘탈근대와 유교’(1998)는 이즈음 발표한 함재봉의 첫 저작이다. ‘한국 정치담론의 모색’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그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유교라는 사상적 프리즘을 통해 근대사회와 한국사회의 논리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시도했다.
함재봉은 스스로 보수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의 보수주의는 ‘철학적 보수주의’에 가깝다. 철학적 보수주의는 후기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마이클 오크숏으로 대표된다. 이들은 인간의 불완전성에 주목하고, 사회 문제들을 대화로 풀고자 한다. 전통을 중시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들의 사상은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상대주의 인식론과 흡사하다.
주목할 것은 이런 철학적 보수주의와 유교사상이 갖는 친화성이다. 뿌리 깊은 전통주의, 가족·국가를 중시하는 공동체주의, 선차적 중요성이 부여되는 도덕주의, 배움을 바탕으로 한 엘리트주의와 같은 유교사상의 핵심은 철학적 보수주의로부터 먼 거리에 놓인 사유가 아니다. 탈근대와 유교라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사유 방식 사이에서 함재봉은 한국정치의 생산 및 재생산의 문법을 탐구했다.
◇ 유교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함재봉이 2000년에 발표한 저작이다. ‘탈근대와 유교’에 이어 이 책에서 그는 유교사상을 자본주의, 민주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탐구하고 해석한다.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보편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정립이다. 그는 말한다.
“유교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비교해 보는 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유교적 토양 위에 정착시키는 작업이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유교화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교를 보편화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당시 유교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높인 것은 유교자본주의를 둘러싼 토론이었다. 유교자본주의는 국가와 교육의 역할에서 볼 수 있듯 동아시아 경제발전에서 유교적 가치관이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 담론은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정실자본주의’로 불리면서 작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함재봉 원장은 유교 사상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이념과 접목시키는 데 노력해왔다. 2000년에 집필한 책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그의 대표 저작이다. 최근에는 한국사람의 정체성을 연구한 ‘한국사람 만들기’란 책을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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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유교민주주의란 ‘아시아적 가치’의 하나인 유교를 바탕으로 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지칭한다. 함재봉은 말한다.
“유교민주주의란 다름 아니라 종교, 계급, 인종, 지역 간의 갈등을 긍정하거나 활용하지 않고 보다 공동체주의적인 민주주의를 모색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한국사회의 도덕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통합력을 유지시키면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유교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함재봉은 서구 자유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병폐와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그리하여 이 자유주의를 도덕·가족·국가를 중시하는 유교적 공동체주의로 대체하려는 정치담론으로서의 유교민주주의를 제시한다. 유교민주주의는 서구 자유민주주의와는 상이한, 동아시아에서 관찰할 수 있는 담론이자 현실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성사적으로 유교민주주의는 아시아적 가치론의 정치학인 셈이다.
이러한 유교민주주의론에 대해선 당시 상반된 평가가 이뤄졌다. 한편에서 유교민주주의론은 동아시아 정치의 역사적 특징을 주목함으로써 서구 정치이론의 무분별한 적용에 경종을 울렸다. 근대화론이든 마르크스주의든 서구 이론이 서구중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유교민주주의론의 문제제기는 음미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선 유교 사상이 자유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 또한 작지 않았다. 유교는 전통주의·도덕주의·공동체주의의 사상인 동시에 권위주의·국가주의·가부장주의의 사상이라는 게 그 비판의 핵심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공감보다 비판에 더 동의했다. 하지만 한국정치의 특수성을 유교사상에서 찾으려는 함재봉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 지식사회의 미래
최근 함재봉은 ‘한국 사람 만들기’라는 야심만만한 제목을 단 책의 저자로 돌아왔다. 그는 ‘조선 사람’이 지난 20세기를 거쳐 ‘한국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 ‘한국 사람’의 정체성은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 사람의 계보학을 다룬 이 저작은 이제까지 두 권(‘친중위정척사파’와 ‘친일개화파’)으로 나왔고, 앞으로 계속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함재봉 원장이 지난해 3월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네이버 주최 ‘열린연단’의 연사자로 초청돼 강의를 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제공.
완성된 저작이 아닌 만큼 여기서 ‘한국 사람 만들기’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함재봉의 연구 태도가 주목 받아 마땅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과 사회 탐구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서양과 동양의 거리, 서구사회와 한국사회의 차이는 그 공통점 못지않게 중요한 인식 대상이다.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주목하려는 함재봉의 학문적 태도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비서구사회에서 살아가는 지식인들은 자기 삶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서구 이론 및 사상을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서양중심주의와 동양중심주의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이 둘을 모두 넘어서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아우르는 담론 및 분석을 천착하는 것은 우리 지식사회의 미래에 부여된 중대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유교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유교민주주의란 ‘아시아적 가치’의 하나인 유교를 바탕으로 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지칭한다. 함재봉은 말한다.
“유교민주주의란 다름 아니라 종교, 계급, 인종, 지역 간의 갈등을 긍정하거나 활용하지 않고 보다 공동체주의적인 민주주의를 모색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한국사회의 도덕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통합력을 유지시키면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유교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함재봉은 서구 자유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병폐와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그리하여 이 자유주의를 도덕·가족·국가를 중시하는 유교적 공동체주의로 대체하려는 정치담론으로서의 유교민주주의를 제시한다. 유교민주주의는 서구 자유민주주의와는 상이한, 동아시아에서 관찰할 수 있는 담론이자 현실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성사적으로 유교민주주의는 아시아적 가치론의 정치학인 셈이다.
이러한 유교민주주의론에 대해선 당시 상반된 평가가 이뤄졌다. 한편에서 유교민주주의론은 동아시아 정치의 역사적 특징을 주목함으로써 서구 정치이론의 무분별한 적용에 경종을 울렸다. 근대화론이든 마르크스주의든 서구 이론이 서구중심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유교민주주의론의 문제제기는 음미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선 유교 사상이 자유주의를 대신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 또한 작지 않았다. 유교는 전통주의·도덕주의·공동체주의의 사상인 동시에 권위주의·국가주의·가부장주의의 사상이라는 게 그 비판의 핵심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공감보다 비판에 더 동의했다. 하지만 한국정치의 특수성을 유교사상에서 찾으려는 함재봉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 지식사회의 미래
최근 함재봉은 ‘한국 사람 만들기’라는 야심만만한 제목을 단 책의 저자로 돌아왔다. 그는 ‘조선 사람’이 지난 20세기를 거쳐 ‘한국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 ‘한국 사람’의 정체성은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 사람의 계보학을 다룬 이 저작은 이제까지 두 권(‘친중위정척사파’와 ‘친일개화파’)으로 나왔고, 앞으로 계속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함재봉 원장이 지난해 3월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네이버 주최 ‘열린연단’의 연사자로 초청돼 강의를 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제공.
완성된 저작이 아닌 만큼 여기서 ‘한국 사람 만들기’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함재봉의 연구 태도가 주목 받아 마땅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과 사회 탐구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서양과 동양의 거리, 서구사회와 한국사회의 차이는 그 공통점 못지않게 중요한 인식 대상이다.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주목하려는 함재봉의 학문적 태도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비서구사회에서 살아가는 지식인들은 자기 삶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서구 이론 및 사상을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서양중심주의와 동양중심주의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다. 이 둘을 모두 넘어서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아우르는 담론 및 분석을 천착하는 것은 우리 지식사회의 미래에 부여된 중대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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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권 중도우파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또한 부권주의적 보수주의와 온건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며,
이에 따라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주장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경제이념으로 삼고,
사회적으로는 전통과 관습, 공동체, 특히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낙태 문제에 있어서 친생명 입장이면서도 일부 쟁점에서는 사회문화적 자유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온건한 사회보수주의 노선인
기독교 민주주의를
우리나라의 유교 전통에 적용한 '유교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흥미로운 글이 있어서 가져왔음.
다만, 이 글에서는 함재봉 교수님이 주장한 '유교 민주주의'가 서구 자유민주주의와 상이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소개했는데,
보통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하면
민주주의는 받아들이지만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법치주의 등 자유주의적 요소는 거부하거나 제한해 자유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포퓰리즘을 의미하지 않나?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교도민주주의'나 '한국적 민주주의'와 같이 이름만 민주주의이고 선거를 할 뿐이지 명백한 권위주의 독재인 경우도 당연히 권위주의 체제에 포함) 사이에 위치해 있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폴란드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싱가포르의 리셴룽 등의 사례가 대표적인 것으로 알고 있음.
(그런데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서는 이들 사례를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혼합형 체제'나 '권위주의 체제'도 아니고 '결함 있는 민주주의' 정도로 분류하고 있더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방이나 우리나라 언론에서 이들이 권위주의 체제에 근접했거나 아예 명실상부한 권위주의 독재자라고 보도하는 것에는 과장된 측면이 다분해 보임. 튀르키예의 레제프 에르도안도 권위주의 체제가 아니라 혼합형 체제로 분류되던데, 이들은 혼합형 체제도 아니고 결함 있는 민주주의 수준임. 싱가포르의 리셴룽은 혼합형 체제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 수준으로 올라간 것을 고려하더라도 결함 있는 민주주의 수준으로 분류된 국가들 가운데 하위권이라면,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폴란드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 수준으로 분류된 국가들 가운데 중상위권 내지 중위권.)
그런데 기독교 민주주의는 전혀 그런 개념이 아니거든. 어디까지나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법치주의 등 자유주의적 요소를 긍정하는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존재하는 개념이고, 그 안에서 기독교의 인본주의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공동체, 특히 가족과 생명 등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며, 그렇기에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주장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경제이념으로 삼는 온건 보수주의 수준이고, 그 어떤 정치학자도 기독교 민주주의를 앞서 언급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사례로 분류하지 않을 거임.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 안에서의 개념이지.
함재봉 교수님이 주장하는 유교 민주주의 개념도 내가 이해하기로 민주주의는 받아들이지만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법치주의 등 자유주의적 요소를 공격해서 자유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그러나 권위주의까지는 아닌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맥락이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다만, 함재봉 교수님이 주장하는 유교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유교 전통의 조화를 추구하겠다, 자유주의의 한계를 도덕·가족·국가를 중시하는 유교적 공동체주의로 보완하겠다는 수준이라면 기독교 민주주의와 통하는 개념이겠지만, 아예 자유주의를 폐기하고 유교적 공동체주의로 완전 대체하겠다는 것이라면 그건 너무 나간 것이라고 봄. 함재봉 교수님이 자신이 주장하는 유교 민주주의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 마지막으로 함재봉 교수님의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가 궁금하기는 한데, 한국인의 다섯 가지 유형인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 중에서 '친중위정척사파'는 좀...... 위정척사파가 왜 친중임?? 전통시대, 즉 전근대 시기에 중화사상이나 소중화 의식은 친중 개념이라기보다는 문명 개념일 텐데.....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는 그래도 납득이 되는 네이밍인데, '친중위정척사파'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안 되네. (나는 개인적으로 '친미기독교파'와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혼합이지 않을까 싶기는 함. 엄밀히 말하자면, 종족적 민족주의보다는 문화적 민족주의에 가깝기는 한데.)
서구권 중도우파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또한 부권주의적 보수주의와 온건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며,
이에 따라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주장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경제이념으로 삼고,
사회적으로는 전통과 관습, 공동체, 특히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낙태 문제에 있어서 친생명 입장이면서도 일부 쟁점에서는 사회문화적 자유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온건한 사회보수주의 노선인
기독교 민주주의를
우리나라의 유교 전통에 적용한 '유교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흥미로운 글이 있어서 가져왔음.
다만, 이 글에서는 함재봉 교수님이 주장한 '유교 민주주의'가 서구 자유민주주의와 상이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소개했는데,
보통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하면
민주주의는 받아들이지만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법치주의 등 자유주의적 요소는 거부하거나 제한해 자유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포퓰리즘을 의미하지 않나?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교도민주주의'나 '한국적 민주주의'와 같이 이름만 민주주의이고 선거를 할 뿐이지 명백한 권위주의 독재인 경우도 당연히 권위주의 체제에 포함) 사이에 위치해 있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폴란드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싱가포르의 리셴룽 등의 사례가 대표적인 것으로 알고 있음.
(그런데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서는 이들 사례를 '완전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혼합형 체제'나 '권위주의 체제'도 아니고 '결함 있는 민주주의' 정도로 분류하고 있더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서방이나 우리나라 언론에서 이들이 권위주의 체제에 근접했거나 아예 명실상부한 권위주의 독재자라고 보도하는 것에는 과장된 측면이 다분해 보임. 튀르키예의 레제프 에르도안도 권위주의 체제가 아니라 혼합형 체제로 분류되던데, 이들은 혼합형 체제도 아니고 결함 있는 민주주의 수준임. 싱가포르의 리셴룽은 혼합형 체제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 수준으로 올라간 것을 고려하더라도 결함 있는 민주주의 수준으로 분류된 국가들 가운데 하위권이라면,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폴란드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 수준으로 분류된 국가들 가운데 중상위권 내지 중위권.)
그런데 기독교 민주주의는 전혀 그런 개념이 아니거든. 어디까지나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법치주의 등 자유주의적 요소를 긍정하는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존재하는 개념이고, 그 안에서 기독교의 인본주의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공동체, 특히 가족과 생명 등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며, 그렇기에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주장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경제이념으로 삼는 온건 보수주의 수준이고, 그 어떤 정치학자도 기독교 민주주의를 앞서 언급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사례로 분류하지 않을 거임.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주의 안에서의 개념이지.
함재봉 교수님이 주장하는 유교 민주주의 개념도 내가 이해하기로 민주주의는 받아들이지만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법치주의 등 자유주의적 요소를 공격해서 자유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그러나 권위주의까지는 아닌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맥락이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다만, 함재봉 교수님이 주장하는 유교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유교 전통의 조화를 추구하겠다, 자유주의의 한계를 도덕·가족·국가를 중시하는 유교적 공동체주의로 보완하겠다는 수준이라면 기독교 민주주의와 통하는 개념이겠지만, 아예 자유주의를 폐기하고 유교적 공동체주의로 완전 대체하겠다는 것이라면 그건 너무 나간 것이라고 봄. 함재봉 교수님이 자신이 주장하는 유교 민주주의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 마지막으로 함재봉 교수님의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가 궁금하기는 한데, 한국인의 다섯 가지 유형인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 중에서 '친중위정척사파'는 좀...... 위정척사파가 왜 친중임?? 전통시대, 즉 전근대 시기에 중화사상이나 소중화 의식은 친중 개념이라기보다는 문명 개념일 텐데.....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는 그래도 납득이 되는 네이밍인데, '친중위정척사파'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안 되네. (나는 개인적으로 '친미기독교파'와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혼합이지 않을까 싶기는 함. 엄밀히 말하자면, 종족적 민족주의보다는 문화적 민족주의에 가깝기는 한데.)
자유없는 민주주의 사회는 권위적이고 공동체 우선의 디스토피아같은데
그게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폴란드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싱가포르의 리셴룽 등 아닌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라던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지만 견제와 균형, 언론과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법치주의 등의 자유주의적 요소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에서 벗어난, 그러나 권위주의라고 보기에는 힘든 경우.
이 글에 나오는 인명중에 함재봉 유석춘은 조선일보에 좆같은 글 써서 20수년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딱 그 정도. 차라리 댁이 미는 낙태반대 기독교주의가 더 나을 정도였다는 기억.
남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그것도 반드시 특정 종교인 기독교여야만 하는 것도 아닐 텐데 꾸역꾸역 "낙태반대 기독교주의"로 표현하시는 분이 하는 말이라 딱히 신뢰가 가지는 않네요.
오홓 김호기 교수님 되게 좋으신 분인데
저런 연재글도 쓰셨었구나ㅎㅎ
저명한 진보 성향 사회학자로 알고 있는데, 이 연재글이 꽤 유익하더라. 틈틈이 읽고 있는 중.
이분 본인 스스로 진보 지식인이란걸 거리낌 없이 드러내면서도 뭐랄까..진보 지식인들이 종종or무심코 가지고 있는 특유의 과격함 없이, 주장하는 내용이든 문체든 상당히 부드럽고 유해서 좋음
내가 이분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들었던 생각을 네가 일목요연하게 말해줌. ㅇㅇ 나도 그래서 이분께서 쓰신 글이 정말 좋더라.
개인적으로 유교민주주의, 유교자본주의 담론에 관해 약간 거부감을 느낍니다. 온건한 공동체 보수주의, 자본주의가 동아시아라는 환경속에서 발현되는 양상을 넘어, (만들어진 전통으로서의)유교라는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보편성을 괄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점은 십분 공감합니다. 다만 본문만 놓고보면 함재봉 교수의 “유교민주주의”가 리콴유 등이 말하던 “아시아적 가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유교 담론이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단편적인 주장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유림과 유학(儒學) 전공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유학 전공자와 함께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 유림과 성균관의 현재 위상을 감안하면 서구의 ‘기독교 민주주의’처럼 유교 민주주의가 등장하기에는 시일이 다소 걸리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디터 젱하스의 『문명내의 충돌』이라는 책도 추천드려요!
https://www.khan.co.kr/article/200704131535511
해당 책 내용에 대한 간략한 소개 기사에요.
이렇게 정성스러운 댓글을 달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와 같이 유교 민주주의, 유교 자본주의 담론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님과 같이 거부감을 느끼거나 우려하는 시각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 김호기 교수님의 글에서도 유학 또는 유교의 양면성을 지적하고 있지요. "전통주의·도덕주의·공동체주의의 사상인 동시에 권위주의·국가주의·가부장주의의 사상"이라는 대목에서요. 다만, 저는 되도록 전자를 지향하고 후자를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기는 합니다. 물론, 님께서는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 우파와 기독교 민주주의도, 그 둘이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엄연히 구분되는 개념인 것처럼요.
(이 대목에서는 유학 또는 유교가 보수적인 것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양면성을 거론하고 있는데, 유학 또는 유교에 진보적인 것과 보수적인 것이 공존한다는 시각도 있더군요. 어떻게 보면 기독교도 마찬가지이지요. 서구권에서 중도우파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기독교 민주주의도 경제적 쟁점에서는 중도좌파로 여겨진다면, 사회적·도덕적 쟁점에서는 중도우파로 여겨지고요. 생각해봐야 할 지점입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유교 담론이 장님 코끼리 만기는 식의 단편적인 주장으로 그치지 않고 서구의 기독교 민주주의처럼 유교 민주주의로 등장하기 위해선 유림과 유학 전공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유학 전공자와 함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유림과 성균관의 현재 위상을 감안하면 한국형 보수주의, 한국형 기독교 민주주의로서의 유교 민주주의의 등장은 아직 멀었다는 분석에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함재봉 교수님의 『유교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대략적으로나마 읽어봤는데, 함재봉 교수님의 '유교 민주주의'는 리콴유 등이 말하던 '아시아적 가치'와 다른 개념이기는 한 것 같아요. 일부 대목을 가져와 봤습니다.
"(앞부분에서 1974~1990년 민주화의 제3의 물결에 역류한 사례, 즉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실패하고 권위주의로 돌아간 사례 제시) 이들 국가는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인 자유선거를 실행하면서도 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인권,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절대적인 보장을 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
그러나 민주화의 제3의 물결과 그 역류 중에서 헌팅턴을 비롯한 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시아적 권위주의'다. (...) 아시아의 일부 정치인과 학자들이 자국의 근대화 경험을 바탕으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흔히 '아시아적 가치론'으로 표현되는 이 주장에 대하여 서구의 지식인들은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궤변 정도로 치부하면서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아시아적 가치론'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해온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중국과 같은 나라들에서는 정치적 기본권과 인권이 많은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시아적 가치론이 권위주의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선거 등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절차조차 도입하지 않고 있는 국가들이 이러한 주장을 펴는 데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아시아적 가치론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기보다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가져오는 사회적 병폐와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고 보다 공동체주의적이고 따라서 '비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 서구 사회는 도덕적인 차원과 사회질서의 차원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서구의 과도한 자유개인주의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데 일조를 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모두가 동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나 대만, 그리고 일본과 같은 나라들은 이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으면서도 과도한 개인주의, 가족의 해체, 사회윤리의 붕괴 등의 현상은 아직 상대적으로 적게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의 아시아적 가치론은 오히려 그것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등보다는 이미 나름대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한국, 대만, 일본 등에 적합한 이론이다. "
책을 읽어보면, 함재봉 교수님이 아시아적 가치를 긍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교 민주주의'를 아시아적 권위주의, 개발독재, 독재 또는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아시아적 가치를 거론하는 경우와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함재봉 교수님의 '유교 민주주의'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개념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함재봉 교수님 본인이 '유교 민주주의'를 '비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로 소개한 것은 조금 걸리긴 하네요. 저는 김호기 교수님이 함재봉 교수님의 유교 민주주의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분류하신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본인이 그렇게 소개하고 있더군요.
보통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하면, 견제와 균형, 언론과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법치주의 등의 자유주의적 요소를 제한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하지 않나요? 자유민주주의에서 벗어났지만 권위주의 독재까지는 아닌 것으로 알고요. 집권에 성공한 포퓰리즘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동일어라고도 하고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폴란드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싱가포르의 리셴룽 등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피드백 부탁합니다.)
과연 함재봉 교수님이 '유교 민주주의'를 소개하면서 사용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그런 의미인지는 책을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지금까지 읽은 바로는 적어도 견제와 균형, 언론과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법치주의 등의 자유주의적 요소를 제한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견제와 균형, 언론과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법치주의 등은 함재봉 교수님이 말하는 '민주주의'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요. 그렇지만 함재봉 교수님의 '유교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유교 전통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유교 전통의 조화를 추구하는 의미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 꾸준히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이를 극복한 대안으로 '유교 민주주의'를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서구식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를 유교적 공동체주의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함재봉 교수님께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특히 서구식 자유주의의 어떤 점을 문제 삼는지, 어떤 점을 비판하는지에 집중하면서 이 책을 더 읽어봐야 '유교 민주주의'를 소개하면서 사용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듯합니다.
머리가 아프네요. 이와 관련해서는 책을 더 읽어보고 님께 댓글을 달거나 댓글을 달 수 있는 기간이 지날 경우 글을 따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요.
마지막으로 독일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디터 젱하스의 저작인 『문명내의 충돌』을 추천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의 저작인 『문명의 충돌』을 반박한 책인 듯한데, 검색해서 이 책을 소개하는 글들을 읽어보니 흥미가 생겼습니다. 저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셨네요. 지금 당장은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어서 바로 읽기는 힘들겠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추천해주셨으니 잊지 않고 꼭 읽어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온건한 공동체 보수주의, 자본주의가 동아시아라는 환경속에서 발현되는 양상을 넘어, (만들어진 전통으로서의) 유교라는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보편성을 괄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까요?
'온건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신 것으로 보아 리콴유 등이 말하던,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운(달리 말하면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동아시아에 적용할 수 없는 서구적 가치일 뿐이라 일축하고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정당화하는) 권위주의적 보수주의와 개발국가 또는 개발주의 모델(동아시아형 자본주의 모델로서 정실 자본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하고,
아무래도 제가 추구하는 바(서구권 중도우파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며, 이에 따라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주장한 사회적 시장경제를 경제이념으로 삼고, 사회적으로는 전통과 관습, 공동체, 특히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낙태 문제에 있어서 친생명 입장이면서도 일부 쟁점에서는 사회문화적 자유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온건한 사회보수주의 노선인 기독교 민주주의를 우리나라의 유교 전통에 적용한 유교 민주주의)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 같은데,
동아시아라는 환경속에서 발현되는 양상을 넘어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보편성을 괄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정성들여 써주신 댓글에 늦게 답글을 드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 기한을 넘길 것 같아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글을 씁니다. 글에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롭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ㅠㅠ
함재봉 교수가 추구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단순히 공동체주의 vs. 자유주의에서 공동체주의를 택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책을 읽어보질 못해서 단언하기가 어렵네요.
유교민주주의 담론은 크게 2가지 동기로 제기된다고 봅니다.
1. 유교를 단순히 구시대적 사상으로만 취급하는 태도는 온당하지 않다.
2. 서구의 담론을 무조건 수용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한국의 시대정신을 담은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저는 1번과 2번이 결합하며 다음과 같은 논리가 등장하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 서구와 한국은 서로 다른 환경에 놓여있다. 따라서 서구 담론을 버리고 우리 고유의 지적전통을 따르자
이 과정에서 서양사상 vs. 동양사상이라는 대립구도를 형성하며 유가사상의 현대적 의의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반서구를 내세우는 담론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는데, 현대 정치사상으로 변화하기 위한 자기혁신보다는 “서양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양사상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전개된다는 뜻에서 보편성이 괄시된다고 적었습니다.
이에 관해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여 교수신문과 학술지에 실린 김상봉•장은주 교수 간의 논쟁, 프레시안에 게재된 전대호 시인의 김상봉 교수 철학 비판을 읽고 댓글을 달려고 생각했는데, 계엄령 사건에 정신이 팔려 미처 읽지를 못했네요. 피곤하여 글을 조리있게 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ㅠㅠㅠ
오늘로 넘어가는 새벽에 신경을 써서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대통령의 위헌적이고 위법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지켜보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 잠들어버렸습니다. 다음날 일정도 있고 해서요.
책을 더 읽어봤는데, 아무래도 함재봉 교수님이 추구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는 받아들이지만 자유주의는 거부하거나 제한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벗어났지만 권위주의라고 보기는 힘든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기보다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히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에서 공동체주의를 택한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 책에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특히 서구식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할 때마다 나오는 것이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입니다. 게다가 '공동체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로도 '유교 민주주의'를 설명하고 있네요.
다만, 그렇다면 용어 선정을 더 신중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까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해서 더 알아봤는데, 대개 제가 말한 의미로 쓰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결함이 있는 자유민주주의부터 '교도 민주주의'나 '한국적 민주주의'와 같이 이름만 민주주의이며 선거를 치를 뿐인 권위주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넓은 범위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더군요. 오해를 사기에 좋아 보입니다.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현대 공동체주의 자체도 이미 고전적 자유주의와 현대 자유주의가 등장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이기 때문에(서구 근현대 정치사상사에서 대략 고전적 공화주의 - 고전적 자유주의 - 아나키즘이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파시즘 등이 난립하는 혼세 - 현대 자유주의 - 현대 공동체주의 또는 공화주의 순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압니다) 자유화된 세계관을 기반에 두고 있으며, 즉 자유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고 집단주의적인 것, 전체화에는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공동체주의는 공동체의 전통과 관습에 대한 존중, 공공선 강조, 공동체주의적인 덕성 함양 등을 특징으로 하며, 이에 따라 공동체의 회복을 도모하며, 도덕이 개개인의 느슨한 동의와 교집합에 의해 생긴다고 보는 자유주의와 달리 관습적이거나 전통적인 것, 혹은 어떤 진리에 의한 것(기독교적 관점) 등 보다 절대적인 것으로 본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유주의가 공공선을 파괴하고 개인의 파편화를 초래한다고 비판하고요.
공동체주의가 자유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개념은 아니라는 점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유교 민주주의'를 설명할 때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공동체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만 썼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자유민주주의에서 벗어났지만 권위주의라고 보기는 힘든, 자유주의는 거부하거나 제한하는 민주주의 형태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일컫든지요.
(다만, 패트릭 드닌과 같은 경우도 있어서 헷갈리기는 합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인 드닌은 가톨릭 보수주의자이자 공동체주의자인데, 원래 공동체를 중시하는 온건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인 미국연대당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 사상이 급진화되면서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자유주의 질서를 초극해야 한다는, 탈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을 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비자유주의적 강경우파인 우파 포퓰리스트, 대안우파와 접점이 생겼고, 서구권에서 전통적 보수주의와 반자유주의 흐름의 선구자격인, 앞에서 언급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대표적 인물이기도 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과 만나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국 부통령인 J. D. 밴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밴스는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시절부터 자신이 탈자유주의 우파임을 자처하고 있지요.)
다른 한편으로 관점에 따라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공동체주의에 해당하지 동아시아의 유교적 공동체주의는 훨씬 집단주의적이지 않느냐, 혹은 아예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집단주의이지 않느냐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적어도 함재봉 교수님이 주장하는 유교적 공동체주의는 그저 서구의 기독교를 동아시아의 유학 또는 유교로 대체한, 서구의 공동체주의를 유교 전통에 적용해서 실현하겠다는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 집단주의라기보다는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님께서 말씀하신 유교 민주주의 담론의 두 가지 동기(1. 유교를 단순히 구시대적 사상으로만 취급하는 태도는 온당하지 않다. 2. 서구의 담론을 무조건 수용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한국의 시대정신을 담은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는 정확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동기가 "서구와 한국은 서로 다른 환경에 놓여있다. 따라서 서구 담론을 버리고 우리 고유의 지적 전통을 따르자"는 논리로 이어진다, 반서구를 내세우는 담론으로 변한다, 이에 따라서 현대 정치사상으로 변화하기 위한 자기 혁신보다는 “서양사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동양사상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전개된다는 말씀에는 딱히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서구의 담론을 무조건 수용하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한국의 시대정신을 담은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가 "서구 담론을 버리고 우리 고유의 지적 전통을 따르자"라는 극단적인 논리로 반드시 이어진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그런 극단적인 논리도 등장할 수는 있다. 그런 논리로 이어지는 경우에 특수성을 강조한 나머지 보편성이 괄시될 것을 우려한다"는 말씀 정도로 이해하겠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서구의 정치사상으로 보수주의의 한 갈래인 부권주의적 보수주의에 해당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면서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며 가족과 생명 등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기에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주장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경제이념으로 삼는 온건 보수주의인 기독교 민주주의를 우리 전통에 적용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유교 민주주의 담론을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서구 담론을 버리고 우리 고유의 지적 전통을 따르자"는 논리에 전혀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님께서 무엇을 우려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인지는 이제 정확하게 알겠습니다. 반드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기에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님 같은 비판자가 있기에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훨씬 더 줄어들 것입니다.
님께서 추천해주신 김상봉-장은주 교수 간의 논쟁, 프레시안에 게재된 전대호 시인의 김상봉 교수 철학 비판 등은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 번 어떤 내용인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11004/40801903/1
참고로 이 글을 보니,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히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에서 공동체주의를 택한 것이 확실하네요. 괜히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오해를 사기 쉬워 보입니다. 그냥 '공동체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만 썼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네 1번과 2번이 결합된다고 해서 반드시 3번의 논리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3번의 논리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거부감을 느낀다고 썼던 것은 ‘아시아적 가치’로서의 유교민주주의를 거부한다는 뜻이었지, 유교와 현대적 가치관을 조화시키려는 시도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함재봉 교수님의 유교민주주의도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배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현대적 공동체주의로서의 유교를 추구한다면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아시아적 가치’, ‘중국식 민주’ 등의 담론을 의식하다가 그런 표현을 썼는데(기민주의님께서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행히 선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제가 선해하다니요. 굳이 선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런 의미로 읽혔습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읽었다고 밝혔을 뿐이고요. 님과의 대화를 통해 저의 견문을 조금이나마 넓히고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