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재봉 『한국인의 탄생』 50회
<칼뱅의 회심> — 요약 + 평론
이번 50회는 앞선 45~49회에서 다소 거시적으로 다루어 온 <중세의 붕괴 → 르네상스 → 종교개혁 → 칼뱅주의 → 근대사회>라는 흐름을 칼뱅이라는 한 인간의 생애 속으로 좁혀 들어간다. 함재봉은 특히 칼뱅의 교육, 지적 형성, 법학 공부, 엄격한 생활습관, 그리고 1533년 무렵의 <회심>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훗날 칼뱅주의가 보여준 특징들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칼뱅 자신의 삶에서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번 강의의 중심 명제는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칼뱅은 중세 가톨릭 세계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법학을 통하여 기존 교회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개인적 회심을 거쳐 자신이 배운 모든 지식을 동원해 새로운 개신교 신앙과 교회질서를 만들어냈다.>
함재봉은 이것을 다시 19세기 말 조선에 연결하여, 칼뱅주의적 <회심·규율·새로운 인간 만들기>가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 근대인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1. 칼뱅은 처음부터 종교개혁가가 아니었다
칼뱅은 1509년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방의 노용에서 태어난다.
함재봉이 강조하는 첫 번째 특징은 그의 집안이 매우 가난한 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는 재통을 만드는 수공업자였으나 아버지는 성실성과 능력으로 지역 영주와 교회 관계 속에서 사회적 지위를 상당히 높였다.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따라서 어린 칼뱅에게 가톨릭 신앙은 외부에서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족과 지역사회 전체가 가톨릭적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칼뱅 자신도 처음에는 성직자가 되는 길을 걷는다.
함재봉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훗날 가톨릭교회를 근본적으로 비판한 칼뱅은 사실
<가톨릭을 모르던 외부인이 아니라 가톨릭 세계 내부에서 철저히 교육받은 사람>
이었다는 것이다.
2. 교회 장학금으로 파리 유학을 시작하다
칼뱅의 집안은 지역 교회와 연결되어 있었고, 교회 재산에서 나오는 장학금의 혜택을 받는다.
그 결과 그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파리로 유학한다.
함재봉은 당시 교회와 영주들이 지역 출신의 유능한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주어 파리에서 공부시키고 다시 고향의 성직자나 관리로 활용하는 제도가 이미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고 설명한다.
칼뱅은 약 14~15세 무렵 파리로 가서 라틴어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는다.
이것은 그의 지적 생애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3. 최고의 라틴어 교육과 인문주의
파리에서 칼뱅은 당시 최고 수준의 라틴어 학자들에게 교육받는다.
함재봉은 특히 마튀랭 코르디에(Mathurin Cordier)를 강조한다.
코르디에는 단순히 문법을 암기시키는 교사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고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글을 쓸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교육자였다.
함재봉은 여기서 <인문학>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인문학은 단순히 고전을 많이 외우는 학문이 아니다.
<말과 글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설득하는 능력>
을 훈련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칼뱅은 이러한 교육을 통해 훗날 강력한 설교자이자 저술가가 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갖춘다.
그는 훗날 코르디에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고 강의는 소개한다.
4. 몽테귀 대학과 극도의 규율
칼뱅은 이후 파리의 콜레주 드 몽테귀에서 공부한다.
함재봉은 이 학교의 생활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한다.
학생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고, 5시부터 수업을 시작하며, 7시에 미사를 보고 간단한 아침을 먹은 뒤 다시 수업한다. 점심 후에는 공개토론과 논쟁 훈련을 하고 저녁에도 공부와 기도를 계속한다.
식사는 빈약했고 생활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그러나 함재봉에게 중요한 것은 그 엄격성이다.
<시간을 정하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토론하고, 다시 공부하는 규율적인 일상>
을 칼뱅이 청소년 시절부터 몸으로 익혔다는 것이다.
함재봉은 여기에서 훗날 칼뱅주의의 특징이 된
<discipline — 규율·기강>
의 개인적 기원을 찾는다.
즉 칼뱅은 어느 날 규율사회를 이론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중요한 성장기에 바로 그런 삶을 직접 살았다는 것이다.
5. 토론 훈련과 근대 시민의 능력
몽테귀 대학에서는 단순 암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개 토론도 중요했다.
함재봉은 이것 역시 인문주의 교육의 핵심으로 본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여기에서
<인문주의 → 토론 능력 → 시민적 의사표현 → 민주주의>
라는 연결까지 제시한다.
칼뱅의 뛰어난 설교와 논쟁 능력도 이러한 교육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6. 신학에서 법학으로
그러나 1520년대 후반 칼뱅은 중요한 결정을 한다.
신학공부를 중단하고 법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함재봉은 정확한 동기는 명확하지 않다고 인정한다. 흔히 아버지가 성직자보다 법관이나 법률가가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 있지만, 강의는 이를 확정적인 이유로 제시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칼뱅은 파리를 떠나 오를레앙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당시 유명한 법학자인 피에르 드 레투알과 안드레아 알치아토 등의 학문적 영향을 받는다.
이 법학 공부가 칼뱅의 사상 형성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다고 함재봉은 주장한다.
7. 왜 법학이 칼뱅주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가
이번 50회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장 가운데 하나다.
함재봉은 오늘날 장로교에서 사용하는 많은 표현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
증거
-
증인
-
입법자
-
재판관
-
변호자
-
정당화(justification)
등이다.
이것들은 종교언어인 동시에 상당 부분 <법률언어>다.
함재봉은 칼뱅이 법학을 철저하게 공부했기 때문에 신앙과 성서도 법률적 사고방식으로 해석하게 되었다고 본다.
즉 그는 성서를 막연한 신비의 책으로 읽기보다는
<개념을 정의하고, 논리를 세우고, 증거를 검토하며, 질서와 제도를 만드는 방식>
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훗날 칼뱅이 제네바에서 새로운 교회법과 교회조직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도 법률가로서의 능력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8. 법학은 칼뱅에게 현실세계를 가르쳤다
법학의 영향은 언어에만 그치지 않는다.
함재봉은 칼뱅이 법을 공부하면서
같은 현실 문제를 구체적으로 접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칼뱅주의가 다른 종교운동과 달리 현세의 사회질서와 제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하나의 배경이었다는 것이다.
48회와 49회에서 반복된
<칼뱅주의는 세상을 버리는 종교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질서를 만드는 종교>
라는 명제가 여기서 개인사의 근거를 얻는다.
9. 칼뱅의 엄청난 공부량
함재봉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칼뱅의 지독한 공부습관이다.
그는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책을 읽으며, 아침에는 침대에서도 계속 공부했다고 전한다.
이것은 건강에는 나쁜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일생을 지배한 생활방식이 되었다.
함재봉은 이를
<청교도적·칼뱅주의적 인간형>
의 원형으로 본다.
열심히 일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절제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인간이다.
10. 다시 파리로 돌아가 인문주의와 개혁주의를 만나다
1529년경 칼뱅은 오를레앙을 떠나 부르주 등으로 이동하면서 법학과 인문주의 학문을 더욱 넓게 접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사상이 점점 확산되고 있었다.
특히 함재봉은 프랑수아 1세의 여동생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가 개혁적 지식인들을 후원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결과 부르주에는 기존 가톨릭 질서를 비판하거나 새로운 신앙을 모색하던 학자들이 모여들 수 있었다.
칼뱅은 바로 이곳에서
<중세 가톨릭교육 + 르네상스 인문주의 + 법학 + 종교개혁사상>
을 동시에 흡수하기 시작한다.
11. 다시 파리 — 그리고 기존 대학과의 충돌
칼뱅은 다시 파리로 돌아가지만 당시 파리대학은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 기관이었다.
함재봉은 이것을 앞선 49회의 논의와 연결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배워 성서 원전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기존 교회와 대학은 그런 움직임을 위험하게 보았다.
왜냐하면 원전을 직접 읽기 시작하면 기존 라틴어 성경과 교회의 해석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칼뱅은 바로 이 충돌의 한복판에 있었다.
12. 1532년 첫 저서: 세네카 주석
아직 본격적인 종교개혁가가 되기 전에 칼뱅은 1532년 세네카의 『관용론(De Clementia)』에 대한 주석서를 출판한다.
함재봉은 이것을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본다.
첫 저서가 성경 주석이 아니라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에 대한 인문주의적 연구>
였다는 것이다.
칼뱅은 당시 최고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세네카 해석에도 오류가 많다고 판단하고 직접 수정된 판본을 낼 정도로 고전학적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즉 회심 직전의 칼뱅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였다.
13. 그러던 칼뱅에게 <회심>이 일어난다
1533년경 칼뱅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되는 회심을 경험한다.
함재봉은 이것이 단순한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종파를 바꾼 사건>
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칼뱅 스스로 훗날 회심 당시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정신을 변화시켰고 그때까지 자신이 의지했던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회고한다.
그는 기존 교회의 권위가 진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 그 권위 자체가 잘못된 전통 위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충격은 매우 컸다.
14. 회심은 단순한 <종교 변경>이 아니었다
함재봉이 이번 회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회심(conversion)은 개종과 다르다.>
개종이 하나의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옮기는 것이라면, 칼뱅의 회심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의 기반을 끊고 완전히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사건>
이었다.
칼뱅에게 가톨릭교회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키웠고 교육했고 장학금을 주었으며 성직자의 길을 열어준 세계였다.
그런데 그 세계 자체를 부정해야 했다.
함재봉은 칼뱅이 이것을 매우 고통스럽고 두려운 경험으로 느꼈다고 설명한다.
<“내가 지금까지 믿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실존적 위기다.
15. 회심과 <순례의 삶>
그러나 바로 그 위기가 칼뱅에게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함재봉은 이를 <순례>라는 말로 설명한다.
기존 교회의 보장된 구원체계에서 벗어나면 신자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안전한 제도 안에 머무는 삶>
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계속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의 삶>
이 된다.
여기에서 개인의 책임이 중요해진다.
16. 회심과 규율의 관계
칼뱅은 회심 이후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는지를 인간이 확실히 알 수 없다>
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함재봉의 답은 다시 이전 회들과 연결된다.
-
규칙적인 삶
-
근면
-
절제
-
기도
-
성경 읽기
-
죄를 피하는 생활
-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살려는 노력
이다.
함재봉은 이 <회심 → 규율>이라는 연결이 훗날 장로교와 청교도의 특징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17. 조선에 들어온 <회심>이라는 새로운 인간관
이번 회의 마지막에서 다시 조선이 등장한다.
함재봉은 언더우드·아펜젤러 등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가지고 온 개신교가 사람들에게 단순히
<“예수를 믿으라”>
고만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회심>이었다.
즉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끊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라.>
술을 끊고, 도박을 끊고, 방탕하지 않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근면하게 일하며, 하나님이 보고 있다는 의식 속에서 자신을 규율하라는 것이다.
함재봉에게 이것은
<새로운 근대 인간을 만드는 과정>
이었다.
평론
1. 50회는 지금까지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강의다
45~49회에서는 칼뱅이 다소 추상적으로 등장했다.
<칼뱅주의 → 규율 → 자본주의 → 민주주의 → 미국 → 조선>
이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계보 속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50회에서는 칼뱅이 구체적인 사람으로 나타난다.
-
어머니를 일찍 잃고
-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고
-
혹독한 학교생활을 견디고
-
인문학을 배우고
-
법학을 공부하며
-
자신이 성장한 교회를 의심하다
-
결국 고통스러운 회심을 경험한 청년
이라는 모습이다.
이렇게 개인사를 통하여 칼뱅주의를 설명하는 방식은 앞선 강의보다 설득력이 높다.
2. 특히 <법학자 칼뱅>에 대한 강조가 매우 흥미롭다
이번 회의 가장 좋은 통찰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한국 장로교의 언어를 생각해 보면 실제로
<죄, 심판, 증거, 증인, 의롭다 함, 율법, 언약>
같은 법률적 표현이 매우 많다.
함재봉은 이것을 단순히 성경 자체의 특징으로만 보지 않고
<칼뱅이 법학자였다는 사실>
과 연결한다.
그리고 칼뱅의 교회가 조직적이고 제도적이며 규칙을 중시하는 이유도 그의 법률가적 정신과 연결해 본다.
이것은 칼뱅주의를 단순히 <엄격한 신학>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한 설명이다.
3. <규율의 기원>을 칼뱅의 학교생활에서 찾는 것도 설득력은 있지만 주의가 필요하다
함재봉은 몽테귀 대학의 혹독한 생활규율과 칼뱅주의의 discipline을 강하게 연결한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심리적·사회학적 해석이다.
그러나 자료 자체가 보여주는 것은
<칼뱅이 엄격한 환경에서 교육받았다>
는 사실이지,
<그래서 칼뱅주의가 규율주의가 되었다>
는 인과관계까지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함재봉의 해석이 상당히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개인의 습관과 사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유용한 가설은 된다.
4. <회심>을 강조한 것은 한국 개신교 이해에도 중요하다
이번 회를 들으면서 한국 개신교의 특징이 왜 단순한 신앙고백 이상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에서 흔히
<“예수 믿기 전의 나”>와 <“예수 믿은 후의 나”>
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간증 전통이 있다.
함재봉의 설명을 따르면 이것은 칼뱅 자신의 회심경험을 원형으로 하는 개신교적 인간관과 연결된다.
즉 신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의견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되는 것>
이다.
이 점에서 칼뱅의 회심과 한국 초기 개신교의 개종문화를 연결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제기다.
5. 그러나 여기에서도 <근대인 = 규율적 개신교인>이라는 도식은 너무 강하다
이번 회에서도 함재봉은 결국
<칼뱅의 규율적 삶 → 칼뱅주의 → 청교도 → 미국 → 조선 → 근대 한국인>
이라는 기존 구도를 반복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통찰이 있지만, 모든 근대적 생활규율의 기원을 개신교에서 찾는 것은 지나치다.
이번 자료 자체에서도 칼뱅이 규율을 처음 접한 장소는 <가톨릭교회가 세운 대학>이었다.
그가 경험한
는 종교개혁 이전의 가톨릭 교육기관에서도 이미 존재했다.
따라서 더 흥미로운 질문은
<개신교가 규율을 발명했는가?>
가 아니라
<기존 성직자·수도자 중심의 규율을 어떻게 평범한 세속인의 일상생활 전체로 확대했는가?>
일 것이다.
이렇게 질문을 바꾸면 함재봉의 주장도 훨씬 강해진다.
6. 49회와 50회를 연결하면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보인다
49회에서 함재봉은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강조했다.
50회에서는 칼뱅 자신이 바로 그 인문주의 교육의 가장 뛰어난 수혜자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인문주의를 거부한 기독교 보수주의>
라고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다.
오히려 칼뱅은
<최고의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 교육을 이용하여 기존 교회를 비판하고 새로운 기독교를 만들어낸 사례>
로 나타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문명은 옛 문명을 전부 버림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옛 제도가 제공한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그 제도를 비판함으로써 만들어지기도 한다.
7. 이것은 조선의 근대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칼뱅 이야기는 오히려 조선을 생각하게 한다.
칼뱅이 가톨릭 교육을 완전히 받았기 때문에 가톨릭을 강력하게 비판할 수 있었듯,
한국의 근대 지식인 역시 전통교육·일본 근대교육·미국식 교육 등을 거치면서 기존 체제를 비판했다.
따라서 근대 한국인을
<전통을 버리고 서양을 받아들인 사람>
으로 보는 것보다
<기존 전통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외래 지식과 만나 자신의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한 사람>
으로 보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이것은 함재봉의 서사를 조금 수정하면서도 오히려 『한국인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더 깊게 만드는 해석이다.
전체 평가
50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회심>이라고 본다.
함재봉은 칼뱅주의의 출발을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실존적 붕괴와 재구성에서 찾는다.
칼뱅은 가톨릭교회가 제공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성직자가 되려던 사람이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법학을 철저히 공부했고, 바로 그 지식을 통해 자신이 속해 있던 교회의 권위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단순한 지적 비판에 그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믿고 살아온 길이 잘못되었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개인적 위기로 발전했다.
함재봉은 바로 그 위기가 <회심>이라고 본다.
이 해석은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개신교가 단순히 새로운 교리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기 삶 전체를 다시 설계하라고 요구하는 종교>
였다는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재봉은 바로 그 힘이 300여 년 뒤 조선에서도 작동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 회를 포함한 45~50회의 논의를 조금 수정해서 정리한다면 다음처럼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칼뱅주의가 근대의 규율을 처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중세 가톨릭 교육과 르네상스 인문주의, 법학, 종교개혁을 결합하여 기존의 종교적 규율을 세속적 직업생활과 개인의 일상 전체로 확장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인간형이 미국 개신교를 거쳐 조선에 들어와 한국 근대인의 여러 유형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하나가 되었다.>
50회는 그런 의미에서 앞선 강의들의 추상적인 <칼뱅주의>에 인간의 얼굴을 붙여준 회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칼뱅이 <가톨릭의 외부에서 가톨릭을 공격한 사람>이 아니라 <가톨릭 세계가 최고 수준으로 교육해 낸 뒤 그 세계를 떠난 사람>이었다는 역설이 가장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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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3 seconds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황제봉입니다. 지난 시간에 저희가 그 정칼뱅의
0:1212 seconds시대적 배경 그 사람이 태어난 시대 즉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있었고
0:1818 seconds인문학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어 그 시제 [음악]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칼뱅이
0:2727 seconds당시 최고의 학문인문학 르네상스의 모든 것을 다 합수를 하면서
0:3535 seconds기독교를 를 새롭게 해석을 하면서 어 우리가 알고 있는 칼뱅주의 개신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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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2 minutes, 17 seconds하는데 재통장이 뭐냐면은 뭐 물통, 목욕통 이런 통을 만드는 사람 영어로 그 쿠퍼라 그럽니다.이 이 사람들은
2:262 minutes, 26 seconds이제 어 재통장 어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이제 워낙 그 전갈병의
2:332 minutes, 33 seconds아버지가 근면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
2:392 minutes, 39 seconds노용을 통치하고 있던 영주 가문의 그 그 사람들 눈에 들어서 아주 급격하게
2:482 minutes, 48 seconds신분 상승을 이릅니다. 그러니까 제통장님은 제일 하측민 중에 하나였었는데 말하자면 이제 부르조화 계급으로
2:572 minutes, 57 seconds급격하게 신분 상승을 이루던 그런 집안에서 어 칼뱅이 태어납니다.
3:063 minutes, 6 seconds장칼뱅의 어머니는 그 같은 마을 그 마을의 노용의 여관 주인 어 딸이었고
3:153 minutes, 15 seconds굉장히 어머니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평생 어
3:213 minutes, 21 seconds장갈뱅이 양이 그 신앙심을 유지하고 어 특히 처음에 이제 그 교회에 대한
3:293 minutes, 29 seconds그 충성하고 이러는 것이 그 어머니의 영향이 가의 절대적이었다고 그럽니다.
3:343 minutes, 34 seconds그런데 안타깝게도 어 장이 여섯 살 때 어 어머니가 일찍 돌아갑니다.
3:413 minutes, 41 seconds장한테는 나중에 사제가 되는 형이 있었고 샤르가 있었고 남동생 둘이 있었습니다. 어, 프랑스와 앙또안 둘이 있었습니다.
3:513 minutes, 51 seconds프랑스와는 그 이제 일찍 죽었지만 앙또아는 나중에 형인장하고 같이 장이
3:593 minutes, 59 seconds제네바에 가서 이제 본격적으로 종교 개혁을 이루기 시작하고 새 교회를 만들고 할 때에 그때 내내 그 형이
4:064 minutes, 6 seconds옆에서 어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조력자가 어 됐었다고 합니다. 이복 여동생들도 둘이 있었다 그러지만 그
4:154 minutes, 15 seconds중에 하나가 어 오빠를 따라와서 제네바에 갔다라는 얘기 말고는 사실은 어 다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4:234 minutes, 23 seconds이런 기록들이 저는 이게 지금 16세기인데 16세기에 참 놀랍게 기록들이 사실은 많습니다.
4:304 minutes, 30 seconds조선의 16세기 기록들에 비해서 훨씬 어 자세하게 특히 뭐 이런 귀족 가문이 아니라 별치 않은 가문에 어
4:394 minutes, 39 seconds진짜 그 재통장 이런 사람들 그다음에 여관인 딸 근데 이름하고 이런 생렬
4:474 minutes, 47 seconds생물 연대 이런게 정확게 남아 있습니다. 이 다 교회가 조구에서 다 그
4:564 minutes, 56 seconds차제들이 신부님들이 일일이 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은 어 처음에 세례를 주 유아 세례도 주고
5:065 minutes, 6 seconds그다음에 여러 가지 그 성사를 내리기 때문에 결혼도 시키고 그다음에 죽을 때는 종부 성사라고 이런 기록들이 다
5:145 minutes, 14 seconds사실 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굉장히 이런 얘기들 오래된 얘기들이 있지만 자세하게 그 내용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5:245 minutes, 24 seconds노용의 이제 대성당이 있습니다. 그 노용의 대성당에 이제 보시면은 그런 카톨릭 성당 유럽의 큰 카톨릭 성당들
5:335 minutes, 33 seconds가서 가다 보시면은 그냥 앞에 큰 재단도 있지만 내 옆에 여러 다른 성인들한테 받쳐진 재단 같은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5:445 minutes, 44 seconds그리고 거기 가서 보시면은 신자들이 와서 거기 와서 촛불도 밝히고 뭐 여러 가지 헌금도 내고 어 뭐 선물도
5:535 minutes, 53 seconds갖다 바치기도 하고 이제 이런 거를 한 거죠. 근데 그런 식으로 해서 이제이 가문이이
6:016 minutes, 1 second그 노용을 통치하던 가문이 아까 말씀드린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모든 것이 중세가 무너지고 있을 때에
6:116 minutes, 11 seconds이런 성당이나 수도원이나 이런 거조차도 이제 교회가 더 이상 운영을 못 하게 됐을 때 이제 동네 유지들이 그걸 다 자기네가 접수해서 자기 걸로
6:186 minutes, 18 seconds만들었다는데 지금이 집안이 노형의 영주 집안이이 교회를 접수를 한 거죠. 죠. 어이
6:286 minutes, 28 seconds노의 그 드라는 가문인데 그 라제신이라는
6:356 minutes, 35 seconds제신이라는 그 재단이 있는데 여러 재단 중에 그 성당 안에 거기에서
6:416 minutes, 41 seconds나오는 수입의 일부를 장의 장학금으로 영주가 줍니다. 그 이제 그런데 쓰라고 그 아마 이제 걷 거뒀던 거
6:496 minutes, 49 seconds같습니다. 그래서이 사람들이 이제 자기네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제이 그리고 자기네 고향의 인재들을 키우기
6:586 minutes, 58 seconds위해서 그런 거죠. 우리도 서울에 보면은 가끔 뭐 어느
7:057 minutes, 5 seconds지방의 어느 도시에 어 어느 동네의 그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라고 이렇게 써 있고 그러지 않습니까? 뭐 어떤
7:137 minutes, 13 seconds문중의 그런 어 기독사들도 있고 그렇지만은 그런 식으로 이렇게 자기 지역 사람들을
7:207 minutes, 20 seconds공부시키고 하는 어 그런 데다가이 영주들이 또 투자를 하고 그랬습니다.
7:267 minutes, 26 seconds그 혜택을 어 받은게 이제 또 장뱅입니다.
7:317 minutes, 31 seconds그리고 이제 그 장학금을 받아서 그 노형이란 말을 있는 콜레스트라는
7:387 minutes, 38 seconds대학에 뭐 대학이라는게 지금의 꼭 대학은 아닐 수도 있지만 뭐 중고등학교 수준에 어 것도 권이라
7:477 minutes, 47 seconds그랬는데 거기에 가서 어쨌든 어 공부를 하면서 처음으로 라틴 말을 라틴어를 이제 배웁니다. 원래 피카디
7:567 minutes, 56 seconds지방에 불로만 하다가 이제 카페 컬레스 카페에 가서 라틴마을 그러니까 조선으로 치면 이제 한문을 어 가장
8:058 minutes, 5 seconds보편적인 중요한 언어를 이제 배우게 되는 거죠.
8:108 minutes, 10 seconds근데 그 당시 기록들을 보면 정말로 그 학교가 무서웠답니다. 진짜로 어
8:178 minutes, 17 seconds거칠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 모든 거 그냥 암성 암성 그냥 무조건 외워야 됐던 거고 그리고 그렇게 채보를 많이 가했다 그럽니다.
8:278 minutes, 27 seconds그렇지만 칼뱅이이 모든 거를 이제 견뎌냅니다.
8:318 minutes, 31 seconds칼뱅이 노용을 떠난 것은 정확하게 언젠지는 어 알려져지 있지 않지만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한 1523년
8:418 minutes, 41 seconds경에 그니까 태 1509년에 태어났으니까 한 14살 15살쯤 돼서
8:488 minutes, 48 seconds이제 빠리로 처음 갑니다. 빠리에 가서 이제 빠리 대학 중에 골레지라마라는 그 대학에 어 들어가서 공부를 합니다.
8:598 minutes, 59 seconds칼뱅한테는 칼뱅을 평생 추정했고 어 칼뱅의 부하 역할도 했고 칼뱅이 죽은
9:089 minutes, 8 seconds다음에는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그 뒤를이어서 제네바의 교 그 종교 개혁을 이끌었던 돌도르드베라는
9:169 minutes, 16 seconds아주 절친이 있었는데이 르베사가 칼뱅에 대한 전기를 두 편이나 어 씁니다. 그래서 상당히
9:249 minutes, 24 seconds우리가 자세하게 어 그 칼뱅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가 있는데 드베은
9:319 minutes, 31 seconds이때 이제 그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고 특히 그때 그 빠리 대학에
9:409 minutes, 40 seconds있었던 어 마튜랑드 코디에라는 당대 최고의 라틴 학자한테서 라틴말을
9:489 minutes, 48 seconds배웁니다. 굉장한 행운이었다 그럽니다. 그니까 라틴 말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깊이 있게 어
9:559 minutes, 55 seconds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직업으로 치면 다시 말씀드리지만 조선으로 치면 이제 한문 공부를 아주 제대로 한 거죠. 최고의 선생 밑에서 한을
10:0410 minutes, 4 seconds제대로 이제 공부를 하게 되면서 방대에 그 당시 프랑스 문명, 유럽 문명의
10:1210 minutes, 12 seconds뭐 핵심인 기독교 문명 그리고 그것 떠고 있던 라틴어를 완벽하게 어 배울
10:2010 minutes, 20 seconds수 있는 그런 행운을 얻습니다. 역시 코르디에도 뷰데나 이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 입문학의 챔피언이었습니다.
10:3010 minutes, 30 seconds진짜 프랑스 입문학을 확산시키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그리고 기독교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그러면서 젊은
10:3910 minutes, 39 seconds학생들한테 열기를 불어놓고 열정을 불어놓고 학문을 숭상하고 사랑하게 만들면서 하여튼이 당시에 프랑스의
10:4710 minutes, 47 seconds젊은이들 교육에 결정적인 역할한데 그중에 수해자 중에 하나가 바로 또 양칼뱅이었었습니다.
10:5510 minutes, 55 seconds이게 거듭 말씀드리지만 인문학이 발달한다라는 것은 뭐냐면 같은 표현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더
11:0311 minutes, 3 seconds효과적인 것이고 어떤 어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그러니까 이런
11:1211 minutes, 12 seconds수사학적인 문학적인 표현 이런 것들을 하나하에 이제 가려내기 시작하는 거죠. 그게 인문학의 발전입니다.
11:2111 minutes, 21 seconds그러니까 말을 정확하게 글이 정확하게 화자나 필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11:2811 minutes, 28 seconds수 있는 것이 중요해지는 거죠. 이런 것은 물론 학문적인 논쟁은 물론이지만 나중에 가면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11:3611 minutes, 36 seconds시민들이 자기의 의사를 개진을 하고 토론을 할 줄 알고 하는 그 핵심이 되기도 합니다. 인원학이 모든 근대문명의 근근간인 이유입니다.
11:4811 minutes, 48 seconds이코르디에가 1530년에 빠리에서 작은 책자를 어 출간을 합니다. 책자의 제목이 우리의
11:5611 minutes, 56 seconds언설 중 왜곡된 표현들을 고치기 위한 소책자. 그러니까 우리가 말을 뭐 어떤 어떤 용어들을 어떻게 써야 되고
12:0412 minutes, 4 seconds어떤 표현을 써야 되는지를 대한 어 그 책을 씁니다. 그리고 그 책의 서문에다가 자기가 왜이 책을 쓰는지를 갖다가 밝힙니다.
12:1512 minutes, 15 seconds내가이 책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교육받은 사람들이 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다음은 젊은이들이
12:2412 minutes, 24 seconds라틴 말을 할 수 있도록 감동을 받도록 할뿐만 아니라 보다 고귀한 삶을 살도록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12:3212 minutes, 32 seconds경건함이 없이 어떻게 학문에 뛰어날 수 있나?
12:3712 minutes, 37 seconds이게 그전까지 있었던 어떠한 맹목적인 외우는 거. 그죠? 딱딱하고 힘들고
12:4512 minutes, 45 seconds한 그 성의 내용이나 성서 해설서 이런 것들을 외우고 암송하고 이런 거와 달리 아 어떤 것이 글을 잘
12:5312 minutes, 53 seconds쓰는 것인가? 라틴어를 어떤 표현을 어떻게 쓴 것이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 수 있고 감동적인 문장을 만들 수
13:0113 minutes, 1 second있고 설득을 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고 이런 것들이 이런 모든 것들이 인문학입니다. 그 인문학이
13:0813 minutes, 8 seconds본격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우리가 여기서도 찾아볼 수가 있고 칼병은 바로 그런 것에 수혜를 입었기 때문에
13:1613 minutes, 16 seconds나중에 글이나 수많은 설교 이런 거를 통해서 사람들을 설득을 하고 종교 개혁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13:2813 minutes, 28 seconds칼백은 나중에 그 여러 책을 쓰지만 그 그중에 하나 데살로니카 전서에 대한 그 주석을 자기가 출판하면서
13:3613 minutes, 36 seconds거기에 그 끄르디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어 글이 있는데 부분인데 거기에 라틴어 실력이 아직 형편
13:4513 minutes, 45 seconds없었던 어린 학생을 받아서 열정적으로 그러나 인내심을고 가르쳐준 것을 고르디에가 가르쳐준 것을 하나님의
13:5413 minutes, 54 seconds놀라우신 친절함이라고 그렇게까지 표현을 입니다. 골대는 갈행보다 30살이나 많았었는데
14:0314 minutes, 3 seconds학생으로서 배우고 그 이후에도 40년간 끊임없이 서로 교류를 합니다. 그리고
14:1014 minutes, 10 seconds그 스승과 제자가 거르디와 어 정장칼뱅은
14:1614 minutes, 16 seconds같은 날 죽습니다. 1523년에는 이제 골레지라마시라는 데에서 골레지
14:2414 minutes, 24 seconds몽태규라는 학교로 전학을 합니다. 자, 그러면이 몽태규 그다음에 콜레지 마시이 모든
14:3314 minutes, 33 seconds것이 이제 빠리 대학 우리가 알고 있는 유니버시테드 빠의 빠리 대학의 일부분입니다. 자, 그럼 빠리 대학이
14:4014 minutes, 40 seconds그 당시 어떻게 구성이 돼 있었냐면요. 빠리 대학은 처음부터 뭐 생긴지가 언제가 정확하게지지 모지만
14:4814 minutes, 48 seconds한 11세기 12세기에 이제 나오기 시작한 대학인데 처음부터 인문학스라 그랬죠. 인문학, 의학, 법학, 신학이네 학부로 나뉘져 있었습니다.
15:0215 minutes, 2 seconds학생들은 어떻게 되냐면 학생들의 골레지라는 것은 그 지역에서 자기 지역 출신들이에 가서 공부할 수
15:1115 minutes, 11 seconds있도록 후 그 지역의 후견인들이 유지들이 돈을 내서 건물을 지어 주고 기숙사를 지어 주고 해서 자기 동네
15:2015 minutes, 20 seconds사람들이 청년들이 파리에 가서 거기에 가서 기숙을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게끔 해 줍니다.
15:2915 minutes, 29 seconds그런 40흔의 골레주로 컬레지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15:3615 minutes, 36 seconds그리고이 컬레지 골레지들이 지금 말하는 그 라틴 쿼터 어 그 강 좌측에 있는 거죠. 라틴 쿼터에
15:4415 minutes, 44 seconds있는데 거기에 그 위치에 있었고 그때부터 이제 라틴 쿼터라는게 왜 지금 짝티아 라땅이라고 그 프랑스
15:5315 minutes, 53 seconds사람들이 이제 빠리에 그 그 지역을 그렇게 부르는데 왜 그러냐면 전부 다 학생들이 와서 전부 다 빠리 대학에서
16:0116 minutes, 1 second무슨 말로 공부를 했습니까? 다 라틴말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는 라틴말밖에 안 들린다.
16:0716 minutes, 7 seconds라틴 말밖에 없다. 그래 갖고 라틴 쿼터 아직도 깨약아 라탕이라고 어 부릅니다. 연 그 어원이 어 거기에서 어 비롯됩니다.
16:1916 minutes, 19 seconds수업은 이제 각 콜리에서 진행이 되었지만 당시 정말로 유명했던 교수들은 모든 학생들의 존경의
16:2716 minutes, 27 seconds대상이었습니다. 저는 참 이런 체제가 이미 16세기에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고 어 그리고
16:3616 minutes, 36 seconds그때가 되면 벌써 몇백 년 동안 이미 그 체제가 유지해 온 후였다라는게 참 놀랍고 그러면서 서양의이 대학계
16:4416 minutes, 44 seconds전통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전통이고 저희 저로서 참 저로서 굉장히 부러운
16:5116 minutes, 51 seconds전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이 대학은 또 프랑스, 피카디, 노르망디, 독일 등네 개 국가로도 또 나눠 놓습니다.
16:5916 minutes, 59 seconds나시용이라고 하는 말이 이때부터 이제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다시 브루스바리, 랜스, 상스, 튜르 등 다섯 지방으로
17:0817 minutes, 8 seconds또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각 지역에 이제 학생들이 와 갖고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 거고 각 대학은 이제
17:1517 minutes, 15 seconds학제 학장이 누구였냐에 따라서 굉장히 성질이 그 성격이 다르고 그 학문 수준이나 이런 것도 천천히
17:2417 minutes, 24 seconds안별했다고는 합니다. 칼뱅이 컬레지도 몽태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1520년대는
17:3317 minutes, 33 seconds당시 빠리 대학에서 가장 최고의 학부로 치는 것이 바로이 골레지 몽태규였습니다.
17:4217 minutes, 42 seconds그리고이 골 그 골지 몽태의 학장을 맡은 노엘베라는 유명한 어 학자가 있었는데이 학자가
17:5217 minutes, 52 seconds어 오랫동안 몽태교와의 학장을 맡면서 학교의 명성이 굉장히 올라갑니다.
17:5817 minutes, 58 seconds그런데 개신교 나중에 이제 개신교라 종교 개혁을 철저하게 반대를 합니다.
18:0418 minutes, 4 seconds비록 인문학적인 책을 많이 치지도 않고 르네상스가 만들어내는 종교 개혁적인 서적 같은 것도 못 읽게
18:1118 minutes, 11 seconds하고 전통적인 라틴으로 된 전통 중세 기독교 카톨릭
18:2018 minutes, 20 seconds교회 로마 카톨릭 교회의 그 커리큘럼을 유지하지만 그것을 철저하게 가르킵니다.
18:2818 minutes, 28 seconds그래서 이때에 몽태교 골레지도 몽태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에는
18:3618 minutes, 36 seconds놀라운 인물들이 많습니다. 에라스모스 프랑스와 라블레 대문호죠 라블레
18:4418 minutes, 44 seconds그리고 칼뱅과 같이 몽태교육 학교를 다녔던 사람 중에는
18:5118 minutes, 51 seconds이야쇼드 로열라 즉 예수회 제주위트를 나중에 창설하게 되는 이야쇼드 로열라도
18:5918 minutes, 59 seconds어 그 같은 학생 중에 한 명이었었습니다.
19:0519 minutes, 5 seconds당연히 이때 몽태규 대학에 학부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 200여명이
19:1219 minutes, 12 seconds있었는데 한 목표는 물론 사제가 되는게 주대 목표죠. 이거 다 카톨릭에서 만든 학교들이고 전부 다 카톨릭
19:2119 minutes, 21 seconds사제들이나 박사들이 가르킨 거고 당연히 학생들이 거기를 가는 이유도 이제 사제가 되기 어 위한 거였는데 정말로 혹독한 교육을 받았답니다.
19:3119 minutes, 31 seconds그래서 바로이 몽태규 대학을 졸업한 칼뱅의 선배가 되겠죠.
19:3619 minutes, 36 seconds선배인 에라스무스가 당시 몽태 대학의 학부분 분위기 수업을 적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기록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19:4619 minutes, 46 seconds이것이 바로 그 기록입니다. 한 겨울이면 그들은 작은 빵조각을 얻어 먹었고 물은 아침 추위에 아예 꽁꽁
19:5419 minutes, 54 seconds얼어 버렸거나 아니면 위험하게 썩은 우물에서 길어다 먹어야 했다. 나는 오늘날까지도 당시 몽태교에서 얻은
20:0120 minutes, 1 second병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학생들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잔인하게 채찍질 당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다.
20:1420 minutes, 14 seconds그 당시에 어 로열라나 또 칼뱅이 그 다녔을 당시에 또 학생을 저 학장을
20:2320 minutes, 23 seconds했던 띠에 똥배트라는 교수가 있었는데 정말로 엄격한 주율로 학명이 높았다 그럽니다. 자 그러면 학생들의 일괄 한번 보시겠습니까?
20:3320 minutes, 33 seconds학생들은 새벽 4시에 기상에서 다음 5시부터 수업을 들었습니다. 7시에는 미사를 보았고 아침 식사로 빵 한
20:4220 minutes, 42 seconds조각을 먹은 다음 8시부터 정어까지 또 수업을 들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공개 토론을 하면서 토론
20:4920 minutes, 49 seconds기술을 디베이트 하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공부와 기도 후 9시면은 취해야 했습니다.
20:5820 minutes, 58 seconds칼뱅은 이때에 익힌이 엄격한 기유를 평생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몸이 아주
21:0721 minutes, 7 seconds심하게 아플 때를 빼놓고는 죽을 때까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해서 간단한 어 식사를
21:1621 minutes, 16 seconds하는 거 그 외에는 사실 하루 종일 일만 했다 그랬어. 글만 쓰고 강연만
21:2321 minutes, 23 seconds하고 교회 운영해 나가고 하는 일만 했었다 그럽니다. 그 당시에 놀라운
21:3121 minutes, 31 seconds엄격한이 훈육과 조율 기강 이거 역시 칼뱅주의의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되는
21:3721 minutes, 37 seconds거죠. 그렇죠. 청교도, 장로교이
21:4421 minutes, 44 seconds모든 아주 금역적이고 아주 규율, 엄격한 규율에 사는 그 종파. 그게 다 칼뱅 주의파들이거든요.
21:5421 minutes, 54 seconds그 삶의 양식이 어디였어?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칼뱅이 빠리학의 몽대규 칼레지에서 배웠던 그때부터
22:0422 minutes, 4 seconds몸에 익었던 당시 전형적인 신학생들의 삶. 그 삶이 그 삶이
22:1222 minutes, 12 seconds결국은 나중에 청교도를 통해서 그리고 어 네덜랜드 개혁교를 통해서
22:2222 minutes, 22 seconds그리고 장로교를 통해서 탈뱅이 전술를 하는 것이 하시고 하는 것이고 그게
22:2822 minutes, 28 seconds유럽으로 퍼지고 미국으로 퍼지고 그리고 조선에까지 건너오면서 조선에서
22:3622 minutes, 36 seconds언더워드 아펜젤러 이런 분들의 금역적이고 부지런하고
22:4422 minutes, 44 seconds일만하는 그러한 지극히 근대적인
22:5122 minutes, 51 seconds그리고 마스베의 말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그러한 인간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
23:0023 minutes인간의 원형이 바로 골레지 몽태교회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을 체험했던
23:0623 minutes, 6 seconds팔이 이 자기가 경험했던 그 삶을 그대로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사는
23:1323 minutes, 13 seconds것이 올바른 사입니다. 그러면서 종교 개혁의 이름으로 새 종파인 장로교,
23:2023 minutes, 20 seconds청교도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면서 확산을 시켰던 것입니다.
23:3323 minutes, 33 seconds법률 방송이 출간하는 시사 교양지 법치와 자유. 2025년 겨울호가
23:4023 minutes, 40 seconds최근에 출간되었습니다.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3:5123 minutes, 51 seconds20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24:0124 minutes, 1 second이제는 [음악]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24:1324 minutes, 13 seconds콜레지 몽태교에서는 다 이제 사제가 되기 위해서 신학자가 되기
24:1924 minutes, 19 seconds위해서 어 공부를 했었는데 하는 학생들이었고 칼뱅도 물론 그랬습니다.
24:2624 minutes, 26 seconds그런데 1520년대 후반에 칼뱅이 전공을 신학에서 법학으로 바꿉니다.
24:3724 minutes, 37 seconds정확히 왜 칼뱅이 법학으로 바꿨는지를지는 우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24:4624 minutes, 46 seconds근데 그냥 흔히 알려 준 거는 아버지가 어 아들한테 야 신부가 되는 것보다 법관이 되는 것이 돈을 더
24:5424 minutes, 54 seconds많이 벌지 않겠냐고 이제 그래서 바뀌었다 그러는데 뭐 그건 요즘 우리 한국 사람들도 뭐 충분히 이해할 만한 그런 이유였던 거 같습니다. 아버지
25:0325 minutes, 3 seconds입장에서는 돈 좀 좀 벌어야 될 텐데 그러려면 신학자 되거나 무슨 사제가 되거나 할 할 일이 아니라 밖 공부해라 이제이 이랬던 거 같습니다.
25:1225 minutes, 12 seconds아무튼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주 결정적이이 굉장히 중요한 결정입니다.
25:1925 minutes, 19 seconds칼뱅이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라면 우리가 알고는 개중교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칼뱅은 1528년에 이제
25:2725 minutes, 27 seconds법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빠리 대학을 떠내서 떠나서 오를 내앙 대학으로 갑니다. 오를래 대학은 역시
25:3425 minutes, 34 seconds13세기에 건립된 북유럽의 가장 유명한 대학 중에 하나죠. 그 그런데
25:4225 minutes, 42 seconds그 학교에서 비에르드 레두알이라는 당대 최고의 법학자한테서 학문을 전수받습니다.
25:5025 minutes, 50 seconds레두알 역시 당시 모든 프랑스의 대학들이 그렇듯이 철저한 전통주의자 즉 로마 카톨릭 교회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6:0026 minutes그래서 이런 개혁주의자들 자기네들 그 사람들이 말해 이단 그죠 인문학 이런 거 다 배촉을
26:0926 minutes, 9 seconds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개혁을 해야 된다는 것도 인정을 했지만 그 개혁이라는게 완전히 새 교회를 만들려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부정,
26:1726 minutes, 17 seconds부패, 직권 남용 이런 것들을 없애자는 것일 뿐이었고 교회의 권위에도 도전을 해서 교회를
26:2426 minutes, 24 seconds무너뜨리자거나 이런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던 그런 전통 주의자였습니다.
26:3026 minutes, 30 seconds그런데이 레두알 밑에서 철저하게 법을 갈병이 배웁니다. 그 전기를 썼던 그
26:3826 minutes, 38 seconds동료의자 추정자였던 배자가 쓴 전기의 내용에 보면 얼마나
26:4626 minutes, 46 seconds갈이 법학을 학문이라는 학문 세 학문을
26:5226 minutes, 52 seconds달구하고 완전히 흡수를 했었는지 그걸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대학 공부를 열심히
27:0027 minutes하였으며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그를 잘 알았던 사람들 중에는 그가 밤 12시까지 공부하고자 하는
27:0727 minutes, 7 seconds열정에 저녁 식사는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언해 줄 사람들이 있다. 매일 아침 그는 친대에 잠시 누은 채 그 전날 공부했던 것들을
27:1627 minutes, 16 seconds기억해 보곤 하였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렸던 기록같이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빵 몇 조각 먹고는 하루 종일 일하고 공부하고 했었다
27:2527 minutes, 25 seconds그럽니다. 법학을 공부함으로써 칼뱅의 사고 방식이 바뀌면서 완전히 새로운
27:3427 minutes, 34 seconds언어, 법학의 언어를 통해서 교회의 개혁을 논하게 되고 그러면서 우리가 읽은 개시교가 나오게 됩니다.
27:4327 minutes, 43 seconds아까 에라스무스 같은 사람이 얘기했듯이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에서 혹독하게 축구 배고픔 속에서 오직
27:5227 minutes, 52 seconds정신력으로 기강으로 졸로서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가장 철저하게 준 그런 삶을
28:0028 minutes준수했던게 칼뱅이었기 때문에 건강이 좋았을 일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인문학과 법학을
28:0928 minutes, 9 seconds철저하게 물론 법학이 인문학에도 들어가지만 그 법학을 포함한 그 인문학의 넓은 세계를 그것도 라틴
28:1728 minutes, 17 seconds말로 그리스어로 모든 말로 소화를 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8:2428 minutes, 24 seconds법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결혼, 재산,
28:3128 minutes, 31 seconds범죄 문제 이런 문제에 대한 굉장히 현실적인 주제에 대한 이해도 도모할
28:3828 minutes, 38 seconds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미 새로운 법안을 만들고 헌법을
28:4528 minutes, 45 seconds초환하고 또 법률적 자문을 해 주고 하는 그런 능력을 키웁니다. 나중에 제네바에 가서 자기 새 교회를 만들어
28:5328 minutes, 53 seconds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법률 지지가로서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29:0129 minutes, 1 second것뿐만 아니라이 법학적인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갈이 실제로 즐겨 쓰는
29:0929 minutes, 9 seconds말. 지금 오늘날의 개신교, 오늘날의 장로교 같은 데서 아주 흔히 쓰는 말들. 예를 들어서 이런 것이
29:1729 minutes, 17 seconds있습니다. 증거 증인 witness 신의 영어로 justific이션
29:2529 minutes, 25 seconds입법자 재판관 영원한 변호자 이런 표현들이 무수
29:3329 minutes, 33 seconds있습니다. 이게 모두 지금은 한국의 장로교 같은 데서는 개신교에서는 이걸
29:4129 minutes, 41 seconds신학 적용으로 생각하는데 한번 보십시오. 철저하게 법학적 법학 용어들이지 않습니까? 법률
29:4929 minutes, 49 seconds용어들입니다. 근데 어떻게 그 법률 용어들이 교회에서 쓰게 됐습니까? 바로 칼뱅 때문에 그렇습니다.
29:5629 minutes, 56 seconds그러니까 지금 오늘날에 개신교도들이 쓰는 그 언어, 표현 방식,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그 자체가 칼행이
30:0630 minutes, 6 seconds제공을 하고 그 큰 부분이 그 특성 개신교회의 가장 큰 특성 중에 하나가 바로이 법학적인 법률적인 세계관과
30:1530 minutes, 15 seconds용어가 만연해 있었다는 그러한 점입니다.
30:2030 minutes, 20 seconds그리고 원학, 역사학, 법학적 방법론들을 이용을 하면서이
30:2830 minutes, 28 seconds용어들과이 개념들과이 논리들을 가지고 성서를 해석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 성 전혀
30:3730 minutes, 37 seconds다른 성서 해석이 나오면서 강연을 통해서 강론집을 통해서 이거를 퍼트리고 그리고 새로운 교회 법을
30:4730 minutes, 47 seconds만들고 제도들을 만들어 가면서 개신교를 reformed 처치를 칼뱅이 만들어
30:5430 minutes, 54 seconds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칼뱅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이 이 보통 사람들이이
31:0231 minutes, 2 seconds죄의 신락원을 해 갖고 낙원에서 쫓겨나서 원죄를 짓고
31:0931 minutes, 9 seconds현실 세계에 떨어져서 죄의 구렁덩에 빠져서 살고 있는이
31:1731 minutes, 17 seconds사람들 그렇죠.이 이 지옥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그 사람들한테 성경을
31:2631 minutes, 26 seconds어떻게 설명을 하고 신앙심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냐? 법화 법을 통해서 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31:3531 minutes, 35 seconds그래서 법률 이론과 용어들을 대고 성사 해석에 도입을 하는 겁니다.
31:4131 minutes, 41 seconds칼백은 1529년 올래을 떠나서 골레지 브루즈로 갑니다.이 이골레지 브루즈는
31:5131 minutes, 51 seconds프랑스에서 그때의 기존의 교회에 저항하면서
31:5831 minutes, 58 seconds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된다라는 종교 개혁주의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던 그런 대학이었습니다.
32:0832 minutes, 8 seconds그리고이 대학의 그 종교 프랑스의 모든 종교 개혁가들이 모여둘 수 있었던 것은 그 학교를 후원해 주는
32:1832 minutes, 18 seconds사람이 누구냐면 말게리트드 나바르입니다. 말게리트드 나바르가 누구냐면 프랑스와 1세의 여동생입니다.
32:2832 minutes, 28 seconds르네상스와 인문주의를 그렇게 좋아해서 심지어는 레오나르다빈치까지 프랑스로 모셔왔던 바로 그 그 프랑스
32:3832 minutes, 38 seconds1세의 여동생이 마르게리트 나바르고 마르게리트 나바 나바르의 말게리트는 철전 종교 개혁주의자가 됐기 때문에
32:4632 minutes, 46 seconds자기가 관리할 수 있는 걸레지도 부주에는 개혁주의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32:5632 minutes, 56 seconds발게리트가 지켜주기 때문에 이때에 칼뱅이 그로 갑니다. 이러면서
33:0233 minutes, 2 seconds본격적으로 개혁주의자 개혁주의 흐름에 편승을 하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33:1033 minutes, 10 seconds칼뱅 본인은 사실은 개혁주의자가 아니었죠. 여기에 가서 본격적으로 개혁주의자들을 만나면서
33:1733 minutes, 17 seconds이제 자기가 이미 갖추고 있는게 많은데 이문학적인 법학적인 언어적인 모든 건 다 갖췄는데 이제 이념적으로
33:2633 minutes, 26 seconds굉장히 진보적인 그 당시를 보면 진보적인 나중에 훗날 개신교적인 것이 되는 그 종교 개혁가들과 섞기기 시작하는 거죠.
33:3633 minutes, 36 seconds2년 후에 깔뱅은 다시 빠리로 갑니다. 그런데 갔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이
33:4433 minutes, 44 seconds노형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근데가 봤더니 아버지는 거기 성당하고 사실은 큰 분쟁을
33:5433 minutes, 54 seconds일으켜서 그래서 아예 파문까지도 당합니다. 아버지가 그리고 종부 성사도 받지 못하니 그러니까 화문을
34:0234 minutes, 2 seconds받으니까 돌아갈 때 내 사제가 와서 하는 종부 성사도 못 받고 1531년에
34:0934 minutes, 9 seconds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그 장례를 하러 고향으로 돌아갑니다.도
34:1734 minutes, 17 seconds장례를 가서 마치고 그리고는 빠리로 돌아옵니다. 빠리로 돌아와서 골레지 골레지 로얄이죠. 그건 뭐냐면
34:2634 minutes, 26 seconds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프랑스와 1세가 만든 빠리 대학은 너무나 보수 정통주의자들이 잡고 있기 때문에
34:3434 minutes, 34 seconds대한로 만든 나중에 골레지 프랑스라는 지금 최고 명문이 되는 그 대학의 원조였던
34:4234 minutes, 42 seconds거기에 가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는 정통주의와 맞서서 개혁주의적인 성향을
34:4934 minutes, 49 seconds당연히 뛴 거죠. 처음부터 태생적으로 거기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34:5534 minutes, 55 seconds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시본는 파리대학의 대표적인 솔로보느 같은
35:0235 minutes, 2 seconds데서는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라틴어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예루니무스가 번역해 놓은 그 불같아
35:1035 minutes, 10 seconds성소만 있으면 되는 거지. 도대체 뭐하러 그리스를 배우고 히브리어를 배울 필요가 있느냐? 그러면서 아예
35:1935 minutes, 19 seconds이때에 그리스도나 히브리어는 공부하면 안 된다. 교회의 사제가 되고이 대학에 빠리 대학에 와서 공부하는
35:2735 minutes, 27 seconds학생들이면은 그리스와 히브리어는 공부하면 안 된다고 그래버려.
35:3335 minutes, 33 seconds인문주의 르네상스를 개혁주의를 막으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빠리대학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35:4235 minutes, 42 seconds와중에 칼뱅은 1532년 2월 그의 첫 저서입니다. 세네카의
35:4935 minutes, 49 seconds디클레멘티아에 대한 주석을 답니다. 디클레멘티아는 원래
35:5635 minutes, 56 seconds로마의 유명한 사상가이자 정치인 세네카의 글입니다. 클레멘티아라는 거는 용서입니다.
36:0336 minutes, 3 seconds용서. 이것을 이것을 에라스무스가 번역을 하고 주석을 달아 갖고 그걸
36:1036 minutes, 10 seconds냅니다. 칼뱅은 감히 감히 아직 풋내인데
36:1836 minutes, 18 seconds자기의 학자로서 첫을 드디는 첫 작품으로서 뭐를 하냐면은 다른 것도 아니고
36:2636 minutes, 26 seconds원절 아침말로 돼 있는 그 세네카의 그 글을 당대 최고의 임문학자인
36:3436 minutes, 34 seconds에라스무스가 주석을 달고 한 것이 잘못됐다고 틀린 곳이 너무 많다고 해서 자기가
36:4236 minutes, 42 seconds다시 이거를 수정해 봤고 제대로 된 판본을 낸다. 그래서 냈습니다.
36:4936 minutes, 49 seconds한편으로는 자기가 인문학자로서 얼마나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너무나 보여 주는 것이고 다른
36:5736 minutes, 57 seconds한편으로는 아 저 정도의 배장이니까 종교 혁명을 일으키고 새 교회를
37:0537 minutes, 5 seconds만드는구나 하는 생각도 어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때 이제 또
37:1237 minutes, 12 seconds중세에 자주 있었던 일이지만 중세 말개에 있었던 일이지만 학사병이 돕니다. 빠리에 그래서 어 모든
37:1937 minutes, 19 seconds수업이 학교의 수업이 취소가 되고 결국은 빠리를 떠나서 올래으로 갔다가 1533년에나
37:2737 minutes, 27 seconds다시 어 빠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37:3437 minutes, 34 seconds칼뱅이 이때 회심을 합니다. 여러분 이제 회심이라는게 글쎄요. 지으로 충종이겠죠.
37:4237 minutes, 42 seconds어쨌든 개혁주의자가 되는 건데 개혁주의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그 됐다라는 것만으로는 사실 설명이 안 됩니다.
37:5237 minutes, 52 seconds정말로 세계관의 근본적인 변화가 오는 거고 칼뱅으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종교 개혁가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이
38:0138 minutes, 1 second바로이 회심의 경험입니다. 이때 회심을 하는 칼뱅이 나중에 훗날 당시에 자 자기의 심리
38:1138 minutes, 11 seconds상태 자기의 그 마음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갑작스에
38:1938 minutes, 19 seconds개정하게함으로써 나의 정신을 제압하고 배울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주셨다.
38:2538 minutes, 25 seconds나의 마음은 젊은 나이에 맞지 않게 매우 굳어 있었다. 이렇게 진정한 신성을 어느 정도 맛본 나는 곧바로
38:3338 minutes, 33 seconds더 많은 것을 맛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에 불탁 그렇다고 다른 공부들을 소홀리한 것은 아니지만 전에보다는 덜 열정적으로 공부하였다.
38:4538 minutes, 45 seconds무슨 얘기냐면은 그니까 여태까지 한문으로 한문의 세계를 걸으면서 당시의
38:5238 minutes, 52 seconds프랑스, 당시의 유럽, 당시의 인문학, 당시의 르네상스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학문은 다 섭을
39:0039 minutes했습니다. 카톨릭 교회가 지어 놓은 설립해서 해 놓은 최고 당대 최고의
39:0939 minutes, 9 seconds카톨릭 주의 대학들을 다니면서 공부를 다 했든 그리고 한 때는
39:1839 minutes, 18 seconds사제까지 되려고 했든 그 칼뱅이 어느 날 회심이라는 걸라는 거죠. 그리고 그
39:2539 minutes, 25 seconds회심으로 인해서 카톨릭 교회는 아니다라는 거를 절강을 하면서
39:3439 minutes, 34 seconds하나님의 뜻이 뭐라는 것을 나름대로 그 신성 여기서 말하는 그 신성이 뭐라는 것을 흥렬하게 느끼면서 전혀
39:4239 minutes, 42 seconds다르게 방향을 잡고 나가서 결국은 개혁 교회를 교회 개혁을 완수하게 되는 그 전환점이 바로이 회심입니다.
39:5239 minutes, 52 seconds교회의 권인은 뭔가 거짓에 기반하고 있다.라는 거를 자기가 깨닫게 되면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회심을 하게 됐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40:0340 minutes, 3 seconds그러면서 사돌레토 축기경한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40:0940 minutes, 9 seconds교황이 그처럼 고귀한 지위에까지 오음으로 인하여 세상은 무지와 태만의 늪에 빠졌고 마침 깊은 잠에 빠진
40:1840 minutes, 18 seconds것처럼 되었습니다. 더구나 교황이 교회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도 아니요 교회의
40:2640 minutes, 26 seconds합법적인 절차에 의해한 것도 아니며 순전히 자신이 자신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40:3440 minutes, 34 seconds교황이 아무런 정통성이 없다.
40:3840 minutes, 38 seconds성경에도 그런 말씀 없다.라고 선포를 합니다.이 정도이 정도 되면
40:4540 minutes, 45 seconds어떻게 됩니까? 교회에 대한 완전한 선전 포고입니다. 전면적인 선전 포고입니다. 그렇지만이 회심 쉬운
40:5540 minutes, 55 seconds일이 아니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교회가 가르쳐 준대라는 것은 아닌 것이다.
41:0241 minutes, 2 seconds성소에 있는 대로만 한 것이다라고 해서 자기가 회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어디로 가야 되는지 그럼
41:1041 minutes, 10 seconds구체적으로 지금 뭐를 해야 될지 모르지. 안 해 봤으니까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모 모르는
41:1941 minutes, 19 seconds상태에서 지금 거대한 전통을 갖고 있는이 엄청난 전통의
41:2641 minutes, 26 seconds덩어리인 교회. 자기도 그 안에 빠져 있던 그 교회를 더불하고 나온 본인은
41:3341 minutes, 33 seconds사실은 가공할 공포에 휩사 휩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자신의 심리
41:4041 minutes, 40 seconds상태를 이렇게 칼뱀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41:4541 minutes, 45 seconds나 자신이 비참한 상태에 빠진 것에 대해 무척 놀랐을뿐만 아니라 영원한 죽음이 내 앞에 있음을 알고 더욱
41:5241 minutes, 52 seconds놀라게 되면서 나는 우선적으로 나를 당신의 길을 따르게 하는 것을 제 자신의 의로 삼고 나의 과거의 삶을
42:0042 minutes거우하였습니다.이는 신음과 눈물을 동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오 주여 나와
42:0742 minutes, 7 seconds같이 가련한 자에게 난 것은 변명보다 당신의 말씀을 져버린 그 무서운 죄 당신의 놀라운 선하심으로 나를 끝내
42:1642 minutes, 16 seconds구원해 주신 그 죄를 심판하시지 말아 달라고 진정으로 호소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42:2542 minutes, 25 seconds여태까지 내가 죄의 사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고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 교회 때문에
42:3442 minutes, 34 seconds자기가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자기의 구원과 모든 것을 보장해 줬던 그거를
42:4142 minutes, 41 seconds다 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이니까 어 내가 이러고도 구원을
42:4942 minutes, 49 seconds받을 수 있을까? 이거 영원한 죽음 아니야? 내가 이거 혹시 내가 잘못
42:5642 minutes, 56 seconds생각해 갖고 괜히 나 구원받았던 내 영혼을 이제 차버린 거 아니야. 그
43:0343 minutes, 3 seconds고통이 엄습해 올 수밖에 없죠. 그게 진짜 솔직한 회심이죠. 다시 말씀드릴게요.이 회심이라는게
43:1143 minutes, 11 seconds그냥 개정하는 거 아닙니다. 여러 종교 중에서 다른 한 종교이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를 가는게 아니에요.
43:1843 minutes, 18 seconds지금 칼뱅한테는 사실은 선택의 여지는 최고의 권위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43:2743 minutes, 27 seconds내가 사랑하던 교회 아니면은 사실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43:3343 minutes, 33 seconds아무것도 없는 거를 내가 뭔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막 어떻게 보면 막연한
43:4143 minutes, 41 seconds대안 없이 이거는 아니다라고 해 버리는 거죠.
43:4643 minutes, 46 seconds그래서 칼뱅은 사실은 나의 회심은 성지순례의 시장이다. 인생 자체가 성지 같은데
43:5543 minutes, 55 seconds필그램 첫 순례자 순례자. 우리의 삶은 순례자의 삶이다. 그리고 회심은 사실은 그
44:0444 minutes, 4 seconds순례 여정의 출발점이라는 거죠. 진정한 하나님을
44:1144 minutes, 11 seconds구원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회심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길로 나간다.
44:2344 minutes, 23 seconds우리가 회개한다.
44:2544 minutes, 25 seconds요새 우리가 뭐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그러면은 회개한다 이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개종한다, 회개한다라는
44:3544 minutes, 35 seconds것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기반은 전혀 다른 걸로 간 것이다. 그 강렬한 깨달음
44:4444 minutes, 44 seconds그게 있어야지 그게 이제 개정이 되고 회가 되는 거고 회심이 되는 거죠.
44:5244 minutes, 52 seconds칼행은 본인이 그걸 처절하게 느낍니다. 사실은 그 경험을 그거를 교회 자기가 만드는 개신교를 통해서
45:0245 minutes, 2 seconds사실 회심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자기의 회심을 모델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45:0945 minutes, 9 seconds회심을 한다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내용을 설명할 때 자기의 경험을
45:1745 minutes, 17 seconds얘기를 하는 거죠.이 이 종교가이 칼주의가 조선에 떨어졌을 때 언더워드고 아펜슬러고 게일리고 이런
45:2645 minutes, 26 seconds분들이 조선의 민중들한테 가르킬 때 회심해라. 회심은 뭐냐? 여태까지의
45:3345 minutes, 33 seconds삶을 다 끊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이제 구원의 길로서 순례의 여정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이거를 해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 무서운 분이시다.
45:4445 minutes, 44 seconds심판 안 받으려면 할 수 있는 것이 뭐냐?
45:4845 minutes, 48 seconds주율적인 삶 기강잡고 방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45:5745 minutes, 57 seconds늘 하나님에 대한 경우의 심거를 무기로 삼아서 나 그걸 통해서 나를 추동시키면서
46:0546 minutes, 5 seconds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유 잡히고 기강 잡힌 술도 안
46:1246 minutes, 12 seconds하고 담배도 안 하고 축적도 안 하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을
46:2046 minutes, 20 seconds회심을 할 수 있는 회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수동력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구세주와
46:2846 minutes, 28 seconds똑같은 삶을 그런 삶을 내가 살아야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이다라는 거를
46:3546 minutes, 35 seconds깨닫고 그렇게 살아가기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죠. 이게 개신교회의 모습이 그래서 나오는 거죠. 그
46:4246 minutes, 42 seconds종교가 조선 말에 들어와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기강이 무너지고 너무나 피폐하고 약탈만
46:5146 minutes, 51 seconds당하고 그러던 사람들한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무서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46:5946 minutes, 59 seconds회심을 하면서 기강 잡힌 죄율 잡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그러한 삶을
47:0747 minutes, 7 seconds살아야 된다라고 하면서 그 군대 대인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군인대인이 칼뱅
47:1647 minutes, 16 seconds때에 칼뱅 같은 사람을 통해서 칼뱅주의를 통해서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유럽에서 일어나는
47:2547 minutes, 25 seconds것이고 그것이 300년 후에 조선에 건너와서 조선에 무너진 본건 사회
47:3247 minutes, 32 seconds속에서 새로운 인간을 새로운 근대인을 근대 국민을 근대 시민을 만드는 그런
47:3947 minutes, 39 seconds과정이 그런 과업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7:4547 minutes, 45 seconds오늘은 칼뱅의 어 태생 그다음에 성장 교육 배경 그리고
47:5447 minutes, 54 seconds회심까지 유럽의 당시의 정치 경제 상황들을 배경으로 삼아서 그걸 이제 설명을
48:0248 minutes, 2 seconds드렸 드렸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가 어떻게 나오는지 칼행 본인의
48:0848 minutes, 8 seconds경험 속에서 나오고 그리고 그 경험을 교회를 통해서 정영화를 시키면서
48:1548 minutes, 15 seconds우리가 읽은 대신교도들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가 배웠습니다. 자, 그러면 칼뱅이 기존
48:2448 minutes, 24 seconds교회를 부정하고 전혀 새로운 순례의 길을 나서는 그런 회심을 경험하게
48:3048 minutes, 30 seconds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에 프랑스 교회가 분열를 일으킵니다.
48:3648 minutes, 36 seconds교회가 아니라 성경만으로 해야 된다는 그 복음주의가 칼백만 느꼈던 것이 아니라
48:4448 minutes, 44 seconds많은 개혁주의자들이 느끼면서 그 개혁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가 되기 시작하고 결국은
48:5148 minutes, 51 seconds프랑스 교회가 카톨릭이냐 개신교냐로 분열이 되기 시작하고 그 분열이 되는 와중에
49:0049 minutes칼뱅은 결국은 프랑스에서 자기 고향 자기 모국에서 에서 완전히 축출이
49:0749 minutes, 7 seconds되고 제네바란대로 가서 새로운 교회를 만들 수밖에 없는 그러한 그야말로
49:1549 minutes, 15 seconds술의 길, 필그름의 여정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프랑스의 복음주의 그리고 프랑스 교회의 분열에
49:2449 minutes, 24 seconds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9:3449 minutes, 34 seconds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음악] 탄생. 오늘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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