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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그 일본의 근대화
과정 어 메이지 유신, 명치 유신에 대해서 어 좀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이 개화파들이 어 추구했던 그 일본의 모델 왜 그
사람들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명치 유신을 모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어 그리고 그 명치 유신을 통해서 실제로 일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번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주신을 통해서 일본이 근대화를 이룬 거는 비단 우리 조선의 그 영향이
어떻게 왔는지 어 조선의 개화파들이 그걸 어떻게 배웠는지
그것만을 알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
세계 사회에 있어서 매주신을 통한 근대화라는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한 나라가 어이
서양이 200년 300년에 걸쳐서 참으로 어렵고 복잡하고 진난한 과정을
거쳐서 이륙한 그 근대화 예를 들어서 이제 뭐 산업화 그다음에 헌정 헌법
정치 이런 근대 교육 근대 군대 이런 거를
이루는데 몇백 년이 걸렸던 거를 일본이 말 그대로 한 세대 세대만에
이루거든요. 이거는 어 우리하고의 관계, 조선하구의 일본의
관계를 떠나서 그냥 아 근대 국가 건설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거를 보여주는 너무나도 놀라운 놀라운 모델이기 때문에 전 세계 역사학자들이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그런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조선이
근대화를 누구한테 배웠는가 생각해 보면 그런 거죠. 그러니까 어
조선이 자체적으로 근대를 어디서 쇠국을 했기 때문에 박화 세상으로부터 근대화를
배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실 근대화라는 개념을 처음 조선한테 전수해 준 것은 일본입니다.
그 당시에 흥선 대원군 그죠. 구한 말이 예를
들어서 최국 정책을 추구하든 흥선 대원군의 입장이나 그다음에 어 또
흥선대군하고 정치적 숙적이 되면서 맞서고 있던 어
민시 척들 그렇죠. 이런 사람들. 그다음에 또이 그 조선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어 4대부들 주자성리학자들
그죠. 선비들이 사람들 중에는 그 누구도
서양식 근대화를 추구하려던 사람 없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금수와 같은 존재다 그죠. 화서 이학로가 그랬듯이 이건
완전히 금수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거기서도 배울 건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서든지 그 사람들의 영향을
영향이 들어오는 걸 차단해야 되겠다라는 것에서만 집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물론 중국은 물론
어 앞편쟁 때부터 1848년부터 어쩔 수 없이 영국한테 홍콩 지금의
홍콩을하고 그러면서 여러 한구들을 개항을 하면서 서양 세력들이 들어오면서 당연히
서양의 근대를 접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실제로 그 서양의 근대화를 접혀서 그 서양식 군대의 힘을 입어서
예를 들어서 태평국의 난도 간신히 진압을 할 수 있었고 그리고 또
그 태평 천국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서양식 군대의 힘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소위 우리가 아는 양무운동이라는 걸 통해서 서양식 무기 체계, 서양식 전략 전술 이런 걸
이제 급격히 받아들이기 시작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분명 어떡합니까?
청나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체 서용이다. 우리가 비록 서양의
기술, 과학 이런 거는 필려오지만 실제 체 본체는 뭐냐? 그건
중국이다. 우리 유교다 이러는 거죠. 그럼 도대체 조선이 어디로부터
근대를 배웁니까? 그건 일본일 수밖에 없고 그 일본의 근대화를 배우고자
했던 그 사람들이 바로 이름하여 우리가 개화파라고 하는 것입니다.
입헌군 주제 어 민권 그다음에 어
근대 산업 기반 근대 교육 제도 군사 군사제도 이런 거를 다 배우려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배웁니다. 그중에서 사실은
개화파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그리고 개화파의 정치적인
방향성을 가장 강력하게 규정한 것은 바로
독립이라는 개념입니다. 독립 정신입니다.이
독립이라는 개념이 조선에는 없었습니다. 왜? 초소는 중국의
속방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건 뭐 중국이 우리를 촉방이라고 강제로 한게 아니라 조선의 주자 성리학자들,
조선의 4대부들은 전부 다 아 우리는 중국의 속방, 중국이야말로
세계의 중심이고 모든 문명의 근원이고 중국의 천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중국의 제국으로서
제후으로서 중국의 문명을 수입하고 떠바뜨는 존재다. 그러므로써
우리가 조선의 왕, 조선의 세자, 조선의 왕비 누구나 모든 사람은 청의
그 전에 명이었고 그다음에 청의 황제의 책뽕을 받는 거죠. 조선의
왕이 되려 그러면 중국 천자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게 속방이라는
거죠. 그런 조선에서는 독립이란 개념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근대
세계 국제질서에서는 모두가 각 국가가 다 독립 국가고 대등한 국가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지금 UN에 들어가 있는 거 같죠? UN에 거의 200개 국가가 있는데 어쨌든
UN 총에서 한 1국가 1표 아무리 인구가 많고 적고 국력이 강하고
약하고 떠나서 1국과 1표로 하는 거죠. 그 대등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중국하고 조선의 관계는
그런 대등한 거는 아무도 상상도 하지 않았고 그렇죠. 4대 교율인
큰 국가는 작은 국가를 보호해 주고 얼음 만져 주고 작은 국가는 큰 국가를 섬기는 거대를 하는 거였던
거죠. 자, 그러니까 지금 독립이란 개념을 어디서 배우느냐? 일본으로도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이미 근대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서양법 국제법을
들려오고 배우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소위 말하는 마 만국 공법 그렇죠.
서양식 국제법을 이제 배우면서 어 아 이런 국가라는 것은 각 국가가 주권을
갖고 있고 그 축권을 갖고 있는 각 국가는 대담 대다 대등한 것이고
서로의 주권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고 뭐 이제 이런 국제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서
딱 개화파들이 배우는 거죠. 아, 우리 여태까지
중국의 속방임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와 우리가 소중하다. 중국 문명을
유교 문명을 우리가 완벽하게 소화를 시켜서 우리 걸로 만들어서 중국도 우리를 거의 자기네 정말 신하
국가로서 제대로 된 유기 국가로서 받아들인다. 이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 그게
사실은 얼마나 모욕스러운 거냐. 얼마나 치욕스러운 거냐.
왜 우리가 큰 나라고 딴 나라를 옆에 나라를 섬기느냐? 전 세계가 각각
국가를 세우고 각자가 주권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독립된 국가로서 서로를
대해야지 어떻게 우리가 일부러 자칭 남의 나라의 속방일 수가
있겠느냐라면서 이제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와 갖고 비판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독립이란 개념을
배운 건 일본으로부터 배웠고 그 일본으로부터 배운 독립이란 개념의 대상,
독립 투쟁의 대상이 누굽니까? 중국입니다. 일본이 아니죠. 그래서
지금 보시면은 독립문 있지 않습니까? 그 독립문이 지금 서대문에 거기 뒤에 서대문
형무소 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분들이 많은 분들이이 독립문이라는 것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독립문이라고들 착각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그런데
그 독립문이 1898년에 세워지는데 일제 시대가 1910년에 시작되지
않습니까? 한일 합방이 소위 합방이 일어나는게 1910년인데 그러면 일제가 그로부터 36년 동안
조선을 통치했으면은 그 사이에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을
내버려둘 리가 없죠. 당연히 허로 써야죠. 그렇지만 어떻게 됩니까? 왜 남겨 놓습니까?일체 시대 내내 그게
남아 있고 지금도 남아 있습니까? 그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리를 거기로 한
것도 그 자리가 뭡니까? 중국에서 식사가 내려오면은 조선의 왕이 그
영은문 은혜를 영접하는 그 문 앞에가 갖고
책사 앞에서 삼고의 둘 삼고의 둘레 무릎 세 번 꿇세번 꿇을 때마다
머리를 세 번씩 땅에다 찢는 그 예식을 행하면서 책사들을 영접하는
그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독립문 앞에 가면은 이렇게 기둥 두 개서 있지 않습니까? 그 기둥이
뭡니까? 그 기둥 위에 이렇게 문을 세웠던게 그게 영혼 문이었던 거죠. 그러니깐 서제필 박사가 나중에
1896년에 청일 전쟁 때 들어와서
드디어 일본의 힘을 얻어서 청이 조선에서
물러나니까 쫓겨나니까 그때에 야 드디어 조선이 독립을 했다.
중국으로부터 몇 천 년 만에 독립이다. 그래서 그 독립을 기리기 위해서 그리고 조선
사람들한테 이렇게 어렵게 얻은 독립인데이 독립이라는게 뭔줄를 좀 알고 우리
이거를 기념하고 유지하자라는 뜻에서 독립 문을 그 자리에다가 영혼문을
부수고 그 자리에다 세운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이란 개념은 참
역사의 아이런입니다. 역사언이라는게 우리는 독립하면은 무조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일제 시대로부터의 독립 일본에 대한 저항
그서 그게 뭐 3일 운동부터 유관순열 이부터 열사로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으로밖에 우리가 이해를 못 하지만 실제 원래의 독립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이었고 그 개념은 누구로부터 배우느냐? 바로 일본으로부터 배웁니다. 자, 이렇게
사실 일본으로부터 근대 사상, 근대 체제를 배워는 것이
조선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한번
일본이 어떻게 해서 명치 유신을,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이지 유신 일어나기 직전에 일본은요. 사실 전 세계에서 가장
분열된 국가 중에 하나였었습니다. 270개 한 그러니까 일본 말로
한이라고 발음하고 우리 말로 이제 번이죠. 그리고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고 그리고 이제 가끔다 전국
시대 같은데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이제 그랬던 거죠. 그러니까 그리고이 번들은요 각자가
각자의 다이묘가 있고 각자 다스리는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각자 그 다이묘들 밑에 대신들이 다 있고 그
대신들 밑에 사무라이들이 다 있고 사무라이들 밑에 뭐 백성들이 있고 이러면서 그 번은 완전히 따로 세금
걷고 따로 정치제도 갖고 있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공통의 문화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는 저 북쪽에 있었던 실제로 동경에 있는
동쪽 끝에 있는 직금의 동경이죠. 애도 같은데 사람들하고 저기 후곡가 쪽 지금 후곡가 같은
거긴 여행을 다는데도 며칠을 가야 되는 거고 그런 데는 너무나 서로가 달랐습니다.
이렇게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이지신을 통해서 불과 한 세대만에 전 세계에서 가장 중앙직권적인
가장 강력한 중앙직권 국가로 태어납니다. 근데 이때 일본이이 중앙
직권을 하라는 과정이라는 거가요. 사실 1번만 하는게 아닙니다. 거의
동시대 일본보다 조금 앞섰지만 예를 들어서 미국 같은 나라도요. 미국 같은 나라도 사실 중앙 직권 잘 안
됐습니다. 아 아시다시피 미국이 연방제고 각 주마다 국주들의 힘이
굉장히 강하고 독립시이 강했던 거고 그리고 1860년 초에남북 전쟁을 치르지
않습니까? 노예제 문제를 가지고 남북 전쟁을 치르면서 나라가 완전히 갈라지는 거죠. 그러니까 남부
국가들이 우리 연방에서 탈퇴하겠다. 그러니까 그 갈라져 있던 미국이
점점 점점 남북 전쟁 이후 철도를 대륙 횡단 철도를 놓고 그러면서
연결이 되기 시작하고 그리고 이제 경제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강한 하나의 국가가 같은 공유 정체성을 공유하는 그런 나라로 크기
시작합니다. 영국도 그렇습니다. 영국도 어떻게 됩니까? 영국이
18세기 19세기 들어서도 역시 잉글랜드, 스커틀랜드, 웰즈, 북부
아랜드 말고 문화 다르고 그죠? 문학 다르고
음식 다르고 그런 나라들이었습니다. 이거를 강한 대형제국이라는 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중앙 집권화 과정이라는게 사실은
우리가 아는 거보다 서양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굉장히 늦게 시작을 하는 겁니다. 19세기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거죠. 이런 과정이 서양에서는 자연스럽게 내제적인
동인회에서 일어나지만 1번은 서양이 굉장히 강력한
부국강병 정책을 피면서 강력한 중앙직권 국가가 돼 가지고 그 배들을
보내 갖고 일본을 끊임없이 개양시키고 이러는 과정에서 무서운 그 서양의
화력을 보고 이러면서 거기에 놀래서 아 우리도 빨리 따라가야 되겠다 그러면서
일본이 이 서양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막상이 사람들이 깨닫는게 뭐냐면 어
서양도 이거 한지 얼마 안 됐네. 우리도 따라가면 되겠네 하면서
오히려 여유를 갖고 철저하게 근대화의 과정을 읽어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메지유신입니다. 일본이 서양의 압력에 의해서 근대화를
시작하면서 사실 근대화를 촉진한 가장 큰 동력은 구력감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처음에 미국부터 시작해서 강제로
일본을 열면서 일본에 부과한 그 불평등 조약 우리가 이제 나중에 일본으로부터 당하고 서양 열 서구
열강으로부터 당하는 그 불평등 조약 이거를 일본이 먼저 당하거든요. 그러면서이 불평등 조약을 어떻게 고쳐
나갈까? 평등한 대등한 조약으로 그러기 위해서 국력을 길러야
되겠다라는 이것이 명치유신 메이지 유신의 강력한 동인이 됩니다. 그리고
일본도 사실은 그런 맥락에서 보면요. 조선의 위정 척사파랑 똑같은 맥락에서
근대하기 시작합니다. 근데 이게 참 역설인데요. 우리는 위정 척사파라 그러지 않습니까? 우리 거를 받들어야
된다라고 하는 지켜내겠다라는 그정 척사파가 나는데 일본에서는
존황양이파라는게 나옵니다. 한자를 보시면 황제를 존중하고
오랑캐들을 쫓아낸다이 뜻입니다. 사실은 오랑캐들이 이제 서양 오랑캐들인데이 서양 오랑캐들을
쫓아내야겠다라고 해서 시작되는 것이 그게 메지유신입니다. 그런데 서양
오랑캐를 쫓아내려고 서양 거를 배우기 시작하다 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어
이게 그러니까 우선 서양의 오랑캐들을 쫓아내려면 우리 전통적인 힘으로 갖고
안 되겠다. 아무리 사무라이들이 옛날엔 전쟁을 잘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서양 사람들 앞에서 서양의 화력
앞에서 개틀린간 이런 대포들 앞에서 아무게 쓸모없는 일이다. 칼 들고
달려들어 봐 소용이 없다. 그러면서 어떡합니까? 그럼 일본 서양거를 배우자.
그래서 서양을 배우기 시작을 합니다. 근데 왜 배웁니까? 우리 거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천왕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고토를 지키기 위해서 하면서 서양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떻게 됩니까? 근대 국가가 돼 버리는 거죠. 전통을 지키겠다는
명목하에 근대화를 이루어서 근대 국가가 되어 버리는
놀라운 기재가 작동을 하는 것이 그게 메이지신을 통해서 근대하는 하는
1번입니다. 메이지신을 우리가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요. 그 전 시대 전야 메지신의 전야를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전야라는게 그 전 시대가 뭐였냐면요. 메이지 유신이
1868년부터 우리가 메이지 유신 그다음부터 이제 메이지 시대가 열리는 거고 근대화의
근대 화학 과정이 일어나는 건데 그 전까지를 역사학자들은
그전에 일본을에도 시대라고 부릅니다.에도 시대라는 이름은 왜 에도라 그러냐면
그 한자로 보면 강호 시대입니다. 강호라는게 이제 강호의 우리 무협지에
나오는 강호의 호골들하는데 그 강호라는게 그 에도라는 일본 말로 에도인데 에도가 지금의 도교입니다.
동경입니다. 자, 그런데 그럼 왜 이게에도 시대라고 불렀냐? 그 에도가
바로이에도 시대의 다른 이름이 뭐냐면 도구가와 시대입니다.에도
시대를 연 도구가와 가문의 영지가 지금 도쿄 근처이고 그 영지의
도구가와 번 그 사람들이 통치하는 일본에서 가장 크고 부유했던 번의
수도가 그게 에도였습니다. 자 그러면 그 전까지는에도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시대는 어떻게 열리느냐?에도 에도 시대는 우선 조선하고 연관될 부분이 이런 겁니다.
1598년에 어 9월 9월 18일 날 도요토미
히데오 씨가 죽습니다. 그러니까 임진회란을 1592년에 일으켰고 1997년에 다시 정유재란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조선이 이제 초토화가 되는 거고 그렇지만 결국은
이순신 장군 뭐 권율 장군 이런 분들의 활약을 통해서 그리고 명군의 도움을
받아서 결국은 일본군을 격태를 하지 않습니까? 근데 격태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일본이 물러가데 있어서 조선의 저항 명장들의 조
저항들 못지 않게 중요했던 사실은 뭡니까? 도요데미 히데오씨 본인이 죽습니다.
1598년에 죽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에 출했던 모든 군대들 다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죽어 죽어 버립니다. 자 그런데 도유도미가
그렇게 해서 임진혜라는 그렇게 해서 끝이 나는 겁니다. 근데 도미가 죽기
전에 굉장히 뒤늦게 아들 어린 아들을 하나 낳습니다. 노토미가 뒤늦게 어린
아들을 낳고 나서 자기가 죽어갈 때 이거 분명히이 아들이 정권 유지하기
힘들테니까 그걸 알아서 자기가 그래도 가장 믿고 자기를 따르던 다섯 번
번주들을 다섯 명을 오대로 고다이로라고
다섯 명을 임명을 합니다. 그 다섯 명한테 다섯 살짜리 어 도요돔이
히데요이 다섯 살짜리 아들한테 맡깁니다. 근데 그 다섯 명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도구가와 이에야스죠.
근데이 도구가와 이에아스가 어떡합니까? 배신을 하는 거죠. 도요토미를 배신을 하고 그도 그 아들
히데요리를 결국은 어 그 축을
합니다.이 과정에서 도토비 가문에 충성했던
파들하고 다이어들하고 그다음에 도구가와 편을 드는 그 판들하고
엄청난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마지막 가장 처절했고 가장
컸던 전투가 바로 새끼가하라 전투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요도미 측에
충성했던 사람을 서군 그리고 도크가와 충성한 사람들이 동군이 군대가
새끼가라는 중앙에서 거기서 만나서 개 전투가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60만 대군인가 격도를 벌려 갖고 결국은 동군 독구가 편이이기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유 그 그 이후로부터이 전투가 이제 새끼가라 전투인데 그
전투 이후로 이후로 정권을 잡은 도구가와
통치하는 시대 도구가와 가문이 대대로 도구가 이해야서부터 대대로 총
통치하는 그 시대가 바로에도 시대 도구가와 막부 시대라고도 하지만 보통에도
시대라고 어 하는 겁니다.
법률 방송이 출간하는 시사 교양지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 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에도 시대의 정치라는게 어땠느냐? 소위이 사람들을 뭐라 그냐면 장군이라
그럽니다. 쇼군. 장군을 일본말로 발음하면 쇼군이죠.
그 그런데이 장군들이
장군이기 때문에 장군이기 때문에 장군은 전쟁하는 사람 아닙니까? 장군이
가서 있는데 장군이 있는데 우리가 보통 막사 전쟁하는 장군들이가 있으면 막사에가 있지 않습니까? 군인들이.
자, 그러면 소군들이 있는 데를 막부라 그럽니다.
막부라는게 진짜 전쟁 중에 전장에서 텐트 쳐 놓고 막사 쳐 놓고 거기에
있는게 그게 막부죠. 그러니까는 도요도미도 그랬고 도크가도 막부에서
사는 거죠. 그러면서이 막부는 근데 왜 있느냐? 천왕이 천왕이 야 지금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아니면 뭐 누가 다른 오랑캐가 쳐들어왔으니까 내가 너를 쇼군에 장군에 임명을
할테니까 너는 나가서이 오랑캐들을 선멸을 하라. 내 이름으로 선멸을
해서 우리 고토를 나를 지켜라. 이렇게 해. 그래서 임시로 명령을
내리는 거죠. 그래 갖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거고
천왕의 이름으로 나가서 싸우라. 그 그렇게 해서 막부가 생기는 거고 장군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면
오랑캐를 섭려하고 나면은 그럼 어떻게 됩니까? 다시 돌아와야죠. 그렇죠? 다시 돌아와서 하고 왔습니다. 이렇게
돼야 되는데 일본 정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막부 정치라는게 일어나기
시작한데 그게 뭐냐면 이렇게 해서 천왕으로부터 전쟁을 치르라는 권한을
받은 장군이 나가서 전쟁을 하고 전쟁 끝난 다음에도 어떡합니까? 나이 병권
안 내놓을 거야. 그러면서 거꾸로 천왕한테 내가 병권을 잡고 있으니까 당신이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천왕으로 그냥 있도록 내버려는 두겠지만 실제 권력은
내가 다 할테니까 당신 잔수를 하지 마시오. 이렇게 되는게 이게 막부 정치입니다. 그리고에도 정권이
1868년에 끝날 때 그게 메이지 유신이고
왕정복고라고 일본 사람들 그걸 왕종복고라 그러는데 왜 왕정복고냐면 그 전까지 거의
글쎄요. 8, 900년 동안 천왕은 그냥 교도에다가 처박아 놓고
나서 바깥에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서는 이건들이
지네가 직접 통치를 해 왔던 거죠. 그런데 그걸 뒤집어서
그 갇혀 있던 천왕이 나와서 천왕이
조금 보고 야 도로 내놔. 내가 너한테 줬던 그 권한 있지. 그거
도로 내놔. 너 이제 장군 아니야. 평민으로 돌아가. 이렇게 해서 일어난
이렇게 해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는 거고 메이지가 직접 통치를 하는 중앙직권 왕권 왕권이 다시 회복이
돼서 그래서 왕정 복고가 일어난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렇지만
거의 막부 정권이 이루어진하고 있던 거의 천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는요. 8, 900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는
교도에 그런 천왕이란 존재가 있는지조차도 몰랐답니다. 그니까 외국 상인들이 19세기부터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에 와서 일본하고 교육도 하고 일본에 와서 뭐 이제 가게도 차리고
진짜 외교관들도 와서 상조하고 그럴 때에 처음에는요
천왕이라는게 따로 있는지 몰랐답니다. 그 도구가와 막부의 그 쇼군이
쇼군이 최고인 줄 알았다는 거죠. 그 정도로 완전히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자, 교도에 천왕만 있었던게 아니라 천왕 옆에는 귀족들 있지 않습니까? 그니까 귀족들이 무슨
귀족입니까? 문반 귀족들이겠죠. 거기에 이제 귀족들이 있었는데 그 귀족들을
한자로 공가라고 쓰고 일본말로 크게라고 읽습니다.이 크게라는
사람들은 일본의 진짜 귀족들이죠. 원래 일본에 황실이 있고 황질주의에
있는 귀족들이죠. 우리나라면 왕 왕이 있고 왕주의 있은 대단한 사대부 지반들이 되는 거죠. 명문대가
무반들은 조선 시대는 완전히 무시되고 명시를 했지만은 일본에서는 거꾸로 그
무반들이 진짜 모든 힘을 다 갖고 있고 재산을 다 갖고 있었던 거고 경제권을 다 갖고 있었던 거고이
황제와 그 두 변 주변을 둘러싼이 무 문반 사대부들은 사실은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메이주이 어떻게 일어납니까?이
이 다이묘들 그 쇼근이 이제 다스리고 있는 소근 밑에 있었던 수많은 다이묘
중에서 도구가와의 반대하는 도구가와를 싫어하는 그 다이어들하고
천왕부에 있는 그 크게 옛날 규적들 중에서
어떻게서든지이 무단 정치를 없애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손을 잡기 시작하는 거죠.
내통을 하면서 황실 황 천왕 옆에 있었던 귀족들과
도구가에 눌렀었던 그러한 다이묘들이 손을 잡고 일으킨게
또 매주십니다. 그렇지만은 그 전까지는 철저하게 감시를 받습니다.
그러니까이 쿠개들이 누구랑 결혼하는지 그다음에 이제 다이묘들이
전통적으로이 귀족 가문 또는 황가 황가도 결혼을 해야 되니까 결혼을
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이런 것도 덕구가 맞고해서 전부 다 검증을 받고 허락을 맡아야만 되는 그런 상황이죠.
그러니까 완전히 천왕은 어 유명 무시랍니다. 그래서 실제로 교도에가
보시면요. 교도에가 보시면 재밌는게 교도에 가면은 거기도 고소라는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천왕이 살던 데가 있죠. 천왕의 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소보다도 훨씬 크고 화려한게 뭡니까? 니조성이라고 해서 뭡니까? 도구가와
내가 도구가와 쇼군이 가끔 가다가 곁도에 와서 묵려
그러면은 자기가 묵을 때가 있어야 되니까 그래서 그 니조성이라는 엄청난 군걸을 지어 놓습니다. 그러니까
쇼근의 군궐이 고소보다도 그러니까 천왕의 것보다도
더 크고 화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시절에 천왕하고
독구가와 그렇죠. 그러니까 어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조종 중앙 조종
하고 막부 장군 내 힘이 이렇게 달랐다는 것입니다. 제가 일본이
나중에 굉장히 강할 수 있게 그 그 근대와 과정을 조선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는 뭐냐면요. 번이 250개나 있었고 그리고 그
번마다 다이며만 있었던게 아니라 그 밑에 소군들 저 사무라이들이 있었고 그
밑에 대신들이 있었고 그리고 학자들이 있었고 학교들이 있었고 이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조선에는 왕 한 명의 왕실 하나의
대신들고 옆에 있는 삼정승 6조판서 이것밖에 없었을 텐데 일본에는
말하자면 삼정승 6조판서가 각 번마다 있었던 거죠. 250배가 있었던 거죠. 그러면 그 인적 자원이 그런
거를 그런 번을 통치하기 위해서 서로가 경쟁하면서 통치하기 위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교육을 시켰고 전쟁을
가리쳤었고 전략을 연말을 했고 경제를 일으키려고 했었고 그러한 인적 자원이
조선에 비해서 글쎄요. 단순하게 한 250배는 많았던 거 같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독구가와는 독구가와 박후는 막부는 어떻게 이렇게 지방
분권화돼 있는 일본을 통치를 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통치라는게 가능합니까?
각자가 자기 번이 있고 자기 영지가 따로 있고 따로 모든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다 제도 따로 운영하고 그런대요. 세금조차 따로 걷어서 쓰고 그런데
이게 이제 절묘한 겁니다. 그러니까이 도구가와 시대를 보고서 중앙직권된
본건 제도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을 쓰는 역사학자들도 있습니다. 분명히
본건제들 같이 분권화가 되는 건 맞는데 그런데 또 다른 의미에서 굉장히 중앙직권화가 돼 있었다. 자,
그럼 뭐가 중앙직권화가 돼 있었냐? 우선 대표적인 것은 이런 거죠. 복납금이라는 걸 각 다이들은 비록
평소에는 자기 번을 통치했지만 주기적으로
애도의 막부에 쇼근한테 복납금을 돈을 받쳐야 됐던 거죠.
그러니까 자기 보내서 세금을 징수해서 1부는 어쨌든 독구가 막부에 보내고
이제 이랬던 겁니다. 또 박구후가 막부가 애도에서 야 우리 애도 송 좀
고쳐야 되겠다. 여기 뭘 하겠다 그러면 전국적으로 아 사람 좀 보내. 돈 좀 보내.이이 토목사업 해야 돼.
그러면 이제 그런 건 이제 따라했던 거죠. 그러니까 일상적인 통치에
있어서 삶에 있어서 개입은 안 했지만 주기적으로 주기적으로 각 영지로부터
각이로부터 돈도 걷고 사람들도 징수하고 토목 사업 같은 거 하는데 동원을 하고
그다음에 이제 뭐 예를 들어서 어 다이묘들끼리 결혼할 때 그럴 때 이제 다 독어가의 허락을 받아야 되죠.이
이 다이묘하고는 저 다이묘는 굉장히 너무 가까운 거 같다. 얘네들끼리 연합을 하면 우리한테 맞설 수 있을
것 같다. 안 된다. 이런 거를 이제 다 중앙에서
컨트롤을 하는 거죠. 조정을 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중앙치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정말로에도 시대의 아주 특이한 제도 그리고에도 시대의 중앙 집권화를
가능하게 했던 제도는 산킹고따이 일본 말로 산킹고타이라 그러고 우리 우리
식으로 한자를 읽어 버리면 참근 교대라는 것이 있습니다.이 이 참근 교대라는
것이 참 놀라운 이게 효과적인 중앙 직권적 제도였습니다. 이게 뭐냐면요
간단합니다. 다이묘들이 그러면 이제 사스마의 다이묘는 지금 가고시마 저 남쪽 끝에
그럼 거기 가고시마에 거기 성에서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리고 뭐 조수 조수번 그러면 저기 지금 그
야마구찌 현회 거기 하기성 같은데 이뭐 가는데만 며칠이 걸리고 산맥이 있고 바다가 있고 그런데 이걸 어떻게
통치를 합니까? 말을 듣게 합니까? 반란 안 일으켜 갑니까? 그게 바로
참근 교대 제대로입니다. 뭐냐면은 초구는 자기 영제에 가서 살아도
되지만 정부인과 정실부인과 제일부인
그렇죠. 그리고 후계자 다이며 후계자는
성에서 못 삽니다. 고향에서 못 삽니다. 어디서 살아야 돼요? 에도에 와서 살아요.
뇌 늘 에도에 본부인하고 제일 중요한 후계자 자식 중에 제일
중요한 후계자는 무조건 애도에 와서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다이며들도
1년 고향에 가서 살지 않습니까? 그러면 다음 1년은 에드와에 와서 살아야 됩니다.이
제도는요. 그니까 당연히 인질제도죠. 간략해 만 인질제도. 그러니까 그
가족들 부인하고 애를 잡고 있는 거니까 꼼짝 못 하는 거죠. 그래서
인질 제도인데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서 어떡하는 겁니까?이 이 참근 교대를 하러 오는 그 행렬에 쓰는 쏟아붙는
돈 엄청난 돈이 듭니다. 조선 시대에
명나라나 청나라에서 왔다 가면요.에 행찰하는게 엄청났었던
거죠. 의주에서부터 들어올 때부터 평양을 거쳐 가지고 서울에 내려올 때까지 엄청난 행렬을 가지고 오는데
그걸 갖다 다 대접을 하다 보면은 어떻게 합니까? 조선이 재정이 고갈이 났습니다. 식사 대접을 하기 위해서
재정이 고갈이 납니다. 근데 일본에서는 독가가고가 어떡하는 겁니까? 다이며들 보고
참근 교대하러 와라 그러면서 완전히 그거 할 때마다 재정을 고가를 시켜
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각 번들이 다이어들이 감히 중앙에 자기네근한테 맞을 수 있는
힘을 경제력조차도 소진하게끔 만드는 것이 또 참근 교대 제도이기도 했습니다. 다이묘들이 이제 자기 정실
부인하고 후계자가 도쿄에 사니까 그러면 이제 도쿄의 집을 마련해 줘야지 않습니까? 근데 집만
마련합니까? 그래도 다른 번 못지 않게 잘 살아야죠. 자기 부인이고
자식인데 그러면 어떡합니까? 경쟁적으로 번마다 돈을 쏟아붙습니다. 그러면서
화려한 저택들을 도쿄 지금 도쿄 에도에다가 짓기
시작을 합니다. 그거를 번저라 그럽니다. 각 번이 번의 저택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 번저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저택들이 일본에 생겨납니다.
지금 그 번저들도 다 없애 버렸지만은 참 안타깝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이 흔적들이 꽤 있습니다. 대표적인
흔적이 뭐냐면은 그 일본의 도쿄 도쿄
대학 일본 최고명문 도쿄 대학의 정문이 아카먼이라는 유명한 문이
있습니다. 그 관광 가시는 분들 특히 일본에서 뭐 유학을 했거나 이런 거 하시는 분들 다 아는데 그
아카몽이라는게 빨간 문이란 적문이죠. 적문. 그 아카문인데 그 아카문은
그냥 도쿄 대학 앞에 있는 오래된 문이다 이렇게 하시는데 그게 아닙니다. 그게 카가번이라는 굉장히
컸던 번에 번저가 있었고 그 번저의
정문이었던 거죠. 그러면 다이며들은 지금 뭐 삼킨것도에 하러
갈 삼근교대 하러 갈 때도 돈을 써야 되고 늘 번을 유지하고 자기 부인하고
자식들이 그래도 남멋지 않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거기서는 계속해서 물자를 대야 되는 거고 좋은
옷을 대야 되는 거고 좋은 가구들을 줘야 되는 거고 좋은 음식을 대야 되는 거 이거를 위해서 얼마나 투자를
많이 해야 됩니까? 그러면 사스마나 조나 이런데 번내서 이걸 어떻게 돈을
만듭니다. 자기네가 자기 번에서 이제 세금을
걷지 않겠습니까? 자기 번에 있는 농부들한테서 세금을 걷습니다. 그럼 쌀을 걷습니다. 그럼 쌀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쌀을 갖고 본 절을 애도까지 와서 본절을 지울 수가 없죠.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
쌀을 오사가에 가서 오사가에 있는 쌀 시장에 가서 그 쌀을 파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돈으로 바꿔서 그걸 가지고 뭐 집도 사고 가구도 사고
음식도 사고 재료도 사고 그러면서 뭐가 되려합니까?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면서 오사카가 일본 상업의 중심지로 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도 그대로죠. 그러니까 도쿄는 정치, 문화의 도시고 오사가는
장사하는 도시 아닙니까? 경제의 도시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때에 그렇게 되기 시작. 그러니까에
저 오사가에 가면은 오사가에는 각 번이 유지하는 커다란
창고들 하고 집들이 있어서 거기에서 각 번마다 자기네
저 쌀 그다음에 이제 토산품 특산품들 갖고 와서 거기서 이제 쭉 하는 거죠. 그래서 그 돈으로 바꿔 가지고
번저에서 필요한 것들을 이제 팔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깐 일본의 상업은에도 시대에 놀랍게 발전을
합니다. 조선 똑같은 산농 공상이라 그래 갖고 상을 업신 여긴 거
같으면서도 일본은이 참근 교대 시스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업이 발달을
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가냐면 나중에는 가난한 번에서는 그 번저를
유지하는 그 생활비를 대기 위해서 돈이 없어 가지고 어떻합니까? 결국은 오사가에 가서
쌀 장수한 사람 오사가에 있는 장사하는 사람들한테 상인들한테 돈을
꾸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상인들의 힘이 엄청나게 강해지는 거고
여기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미스이 같은 미스이 뭐뭐 미스빛이
나중에 생기지만 가장 오래된 일본의 그 사이바스 장사하는 집들 있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이때 생겨나는 거죠. 그러니까 오사가에서
그러니까 그 엄청난 귀족들이 엄청난 집들을 도쿄에다지 짓고서
살면서 온갖 음식 먹을 거 그다음에 뭐 재밌게 놀아야 되니까 뭐 가복기
의인형극도 봐야 되고 무슨 극장도 생겨야 되고 책도 팔아야 책도 읽어야 되니까 인쇄술도 발달하고 책
가게애들도 몇 천 개가 생기고 도쿄에 조선에는 그런 거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이 창근 교대 시스템을 위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참근 교대 시스템이 결국은 뭡니까? 완전히 소비 향락입니다.
그냥 계속해서 돈 쓰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뿐만 아니라
결국은 에도에서 쭉 자할 수밖에 없었던
차이 다이며 각 번마다 다음 후계자 그 후계자들은
자기 고향에가 보지도 못합니다. 그냥 계속해서 잘하는 거예요.
애도에서 자합니다. 애도에서 자라고 나중에 성인이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거나 그럴 때에야 고향에 가서 다이며 직을 이어받는
거죠. 그러니까는 그 사스마의 그 유명한 시마즈 가문
그 시마즈 가문의 시마즈 나리앗기라라는 그 유명한 나중에 막부 말기에 근대화를 아주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던 아주 유명한 그 그 저 다이묘어가 있는데이 사람도 완전히
애도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중에 다이묘가 되기 위해서 자기 가고시마에
가보고 너무 실망을 했답니다. 너무 후줄고래하고 아무것도 없고 애도의 그
화려에 비해서 너무 아무것도 없고 그리고 말투가 너무 달라 갖고 사스마를 할 줄을 몰라 갖고 아예
말도 안 통해었답니다, 처음에는. 그러니까 이게 뭡니까, 여러분? 사실은 중앙직권 국가가 변방의 제들을
약화시키는 방법이 대표적인 방법이 수도에 와서 살게 하는 거. 어떻게
쓰든지 수도에 와서 살게 하는 거. 그래서 화려한 삶을 살게 해줌으로써이 사람들이 원래 다이어들이 뭡니까?
사무라이들 아닙니까? 사무라이들. 사무라이들은 뭐를 해야 됩니까? 전쟁을 해야 되는 거죠. 자기 영토를
지키고. 근데 그 전쟁을 하게 합니까? 전쟁 못합니다. 못하는 못한 것뿐만 아니라
뭡니까? 사치와 향락. 맨날 엄청난 양의 사개와 음식과 삭개가 막 40만
통씩 애도로 들어왔다니깐요. 그리고 키가막힌 그 아름다운 조각이
생긴 무슨 자장들부터 시작해서 온갖 사치품을 옷 이런 걸 이제 제공을 했던 거죠. 그러면은 사무라이들이
지방의 영주들이 점점 점점점 자기 지방의 정체성이 고향의 정체성이
흐려지기 시작하는 거고 그리고 다른 한편에 그런데 반대로 반대로이 에도에서 각
번의 후계자들이 다 애도에서 자라면서 서로 다 잘 알았지 않겠습니까?
교류가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이거는 이제 막부가 수호근이 전혀
의도치 않았던게 뭐냐면이 사람들이 동질 의식이 생긴 거다.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참근 교대가 한편으로는
다이묘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다른 남편은 아 우리가 다
일본 사람이라는 그 의식을 일본의 엘리트들이 또 갖게 하는 그런 역설적인 결과도 나옵니다. 참근
교대에 대해서 한 마디만 더 말씀을 드리면 대표적인게 전 참근 교대
제도를 공부하면서 딱 느꼈던게 아, 이게
프랑스의 베르사유 공전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여러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공전을 빠리에다 짓지 않고 빠리 외곽에 있는
깡촌 조그만 마을인 베르사이에다가 거대한 걸 지어 놓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 베르사이도 가서 보시면
베르사이의 그 유명한 이제 앞에서 뒤에서 이제 호수 쪽에서 이렇게 분수 쪽에서 쫙 보면은 기가 막힌 이제 긴
창이 있고 뭐 중간에 그 거울에 방도 있고 그렇지만은 그 방 하나하나가
수십개가 있는데 그거를 그거를 아파트멍이라 그럽니다. 그걸 아파트멘트라 그 우리가 아파트란 말이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아파트멍인데 그게 왜 아 뭐가 아파트멍이라는게 서로 떨어져 있다. Apart 영어로
그러면 뛰어놓는 거 아닙니까? 그럼 아파트멍이 뭐냐면요.
루이 14세가 강력한 태양왕이 그전에 본들로
나눠 있던 프랑스를 자기 사실 아버지 때부터
통일을 시킨 다음에 그다음에 그 제들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각 영지에 있는 제우들을 전부 다
야, 너희 동네에 살지 말고 빠리로 올라와. 베르사이로 올라와. 내가
기가 막힌 아파트 지어주고 여기서 우리 맨날 놀고 먹고 술 마시고 이러면서 유희하면서
살자. 그래서 불러드립니다. 그러면서 그 영주들을 자기 영주로부터
떼어냅니다. 그러면서 점점 점점 사치 향락만 하는 그러한 전쟁할 줄도
모르는 그런 무형 질물들로 만들어 버리면서 중앙직권을 강화시키는데 참근
교대가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은
애도 시대에는 분명히 본건 제도였지만 또 참근 교대
같은 걸 통해서 굉장히 중앙 집권화가 돼 있는 그러한 역설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사실
나중에 메이지 성공하는 거를 보면요. 아, 원래도 자기네가 한 나라는
공통적인 의식이 분명히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또 나의 각 지방에 대한
그 특색과 그거에 대한 굉장한 프라이드와 그걸 지키려고 하는 것이 또 있었고 이게 절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그니까 이런 이렇게 지방도 살리고 중앙 집권화도 되고 하는 그런 그
팽팽한 균형감, 긴장감을 통해서 강력한
중앙치권화 국가를 놀라운 분화됐던 국가로부터 그거를 도출해내는 것.
그것이 또 메이지 유신입니다. 네. 오늘은 그 이제 메지 유신을
살펴보는 어 그 소문격으로 한번 어
개괄적인 어 부분 그리고 특히 그이
메이저 유신이 일어나기 전에 일본의 모습을 한번 살펴봤습니다. 특히 조선이나 이런 나라들 다른
나라들하고의 비교를 통해서 우리가 일본의 어 전 근대의 모습을 살펴보면
아 왜 일본이 매주신에 성공할 수 있었는가? 조선하곤 뭐가 달랐을까? 뭐 중국하고
뭐가 달랐을까? 이런 거를 우리가 보다 더 신도 있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어
포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 말씀을 드렸고요. 다음 시간에는 자
그러면 이제 중앙직권에 된 그런 그거 그
본 제도였었는데 메이지 씨는 그중에서도 그중에서도
조슈하고 사스마라는 두 개의 번이 막강했던 번인데 분명히 독구가한테
맞었던 번입니다. 근데 결국은 그 번이 둘이서 힘을 합쳐서 도구가와를
무너뜨리면서 왕종복을 일으킨 그게 메지신이군요. 그러면 왜 조주
번이라는 번이 그렇게 강했었고 사스마란 번이 왜 강했고 왜이 번들은
끝까지 도구가와 저항하라고 결국은 도구가를 무너뜨리면서
왕정복고라는 걸 일으키면서 매주 일으켰는가?요 요 부분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선 근대화의 설계도, 메이지 유신과 독립의 재발견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6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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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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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 https://www.ypbooks.co.kr/books/20230...
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조선의 개화파가 근대화의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일본의 '메이지 유신(명치유신)'과, 그 성공의 발판이 된
에도 시대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봅니다.
한 세대 만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로 탈바꿈한
일본의 놀라운 과정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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