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1

Park Yuha - 어제 쓴 글에 “일본가서 사세요.. 구조주의 일본애들 가르치시며. 쩝“이라고 쓴... | Facebook

(1) Park Yuha - 긴 글입니다. 어제 쓴 글에 “일본가서 사세요.. 구조주의 일본애들 가르치시며. 쩝“이라고 쓴... | Facebook

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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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입니다.
어제 쓴 글에 “일본가서 사세요.. 구조주의 일본애들 가르치시며. 쩝“이라고 쓴 이가 있기에 숨기기 처리하고 차단했다. 그러니까 그는 며칠 전 내 글을 가져가 나까지 친일파 취급을 했던 언론과 개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을 것. 
교류가 없던 사람이긴 해도 페삭을 넘어 차단까지 한 건, 그런 식의 배제주의자들,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만 함께 하겠다는 순혈/순결주의자들까지 설득할 생각은 접었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나름 노력해 온지라 지치기도 했지만, 이유가 무엇이 됐든 남의 집을 찾아가 굳이 혐오를 표출하는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변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변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제대로 된 친일파담론 논쟁이 필요하다. 4반세기 전에 낸 첫 번째 한일관계 책에서 ‘이제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히 전달하는 신친일파가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고 썼더니 훗날 그 단어를 가져가 나를 ”신친일파“라 한 이가 있었는데, 그런 태도의 저변에 깔려 있는 심성까지 포함해서.
마침 6년전에 쓴 나치에 협력했던 안익태 관련 글에 좋은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 계셨기에 우선 인용해 둔다. 
“제가 보기엔 리하르트 쉬트라우스나 안익태 선생이나 그저 24시간 음악만 생각하고 음악밖에 모르던 인물들이었던 것같습니다만 불행했던 시대 역사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려들어간 예술가들이라고 봅니다. 해방이후에도 안익태였기에 가능했던 우리 음악사에 업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공과가 균형있게 객관적으로 평가되기를 바랍니다.”
정치에 대한 관심 말고, 24시간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들은 불행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달리기에 소질 있던 손기정도 그냥 운동—마라톤연습 아닌 독립운동을 해야 옳았을까. 민주화운동이든 독립운동이든 마찬가지.
‘거대한 악‘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어 세상은 때로 위대한 변화를 이루지만, 김수영처럼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 하거나, 그저 골방에서 음악과 마주할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이도 세상엔 많다. 그 사실을 이해하는 걸 방해하는 건, 이데올로기적 가치관 이전에 심성이다. 
안상호에 대해 어떤 페친이 ‘공동체의 희생에 바탕해 자신의 영달을 꾀한 사람‘ 이라며 옹호의견을 비판한 이가 있었지만, 그가 한 일이 “영달을 꾀한” 결과인지, 그저 자기 일이 좋았던 결과인지는 사실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아니, 대화도 평화도 그 ’단정’앞에서 한걸음 멈추어 설 때 가능해진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단정이 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더 중요한 건 그 양쪽은 사실 대개는 함께 붙어다닌다는 점이다. 
시대를 바꾸기 위한 운동은 위대하지만, 자신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부터 하는 운동은 그 불관용 때문에 옹색하다. 사회운동이란 결국 한사람 한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고, 민족이나 국가라는 거대담론과는 먼 곳에서 비로소 행복한 사람들의 존재도 인정하고 포용할  때, 비로소 품 넓은 운동이 가능해진다. 
멀리 갈 것 없이, 오늘까지 융성하는, 식민지시대에 기원을 둔 모든 경제와 문화와 학문과 정치는, 그런 사람들이 일궈낸 것이기도 하다. 군산의 이성당처럼. 
공과 과를 함께 말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공’을 말하면 ’과‘가 희석되는 걸로 아는 이들이 많다. 그건 ‘공’을 자신과 연결시켜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족주의가 강한 사람이 자주 편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그런 이들이 목소리 높여 ’과‘만으로 한사람의 인생을 재단하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흠결이 없을 수 없고 국가 역시 마찬가지. 
전에도 썼지만, 
오욕을 오욕으로 끌어 안을 때,
비로소 친일파에 대한 진정한 비판도 이해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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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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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의 유명 빵집 ‘이성당’은 1920년대 일본인이 남긴 ‘이즈모야’(出雲屋) 제과점을 매입해 100년 가까이 명맥을 잇고 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1504010423747456

한국의 빵 역사, 공장제에서 수제빵으로-사회ㅣ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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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빵 역사, 공장제에서 수제빵으로
입력 2015.04.01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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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빵 역사는 1960년대 이후 공장제 빵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머니스트 제공

빵은 2만2,500년 전에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경이나 목축 이전에 야생 곡식을 먹던 시절부터 먹어온 빵은 인간의 문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빵은 언제부터 발달했을까. 최근 발간된 ‘빵의 지구사’(휴머니스트)에서 주영하 음식인문학자 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국 빵의 역사는 공장제 빵의 역사”라고 언급한다.

빵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차린 제과점을 광복 후 조선인이 이어받으면서부터다. 일제강점기에는 너무 비싸 조선의 소수 상류층만 먹을 수 있었다던 빵이었다. 전북 군산의 유명 빵집 ‘이성당’은 1920년대 일본인이 남긴 ‘이즈모야’(出雲屋) 제과점을 매입해 100년 가까이 명맥을 잇고 있다.

1960년대에는 미국에 의해 빵 양산업체가 빠르게 성장했다. 대표적인 게 상미당 제과점에서 출발한 삼립산업제과주식회사(현 삼립식품)와 영일당제과로 시작한 크라운제과다. 이들 양산업체는 미군이 제공하는 밀가루와 설탕을 받아 군대에 빵을 납품했고,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실시된 초등학교 급식빵 제도와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장려정책의 바람에 힘입어 전성기를 맞았다.

제빵업이 성장하면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중심으로 유명 빵집이 생겨났다. 뉴욕제과, 고려당, 태극당 등은 한국인이 기억하는 빵 역사의 한 페이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골목을 장악했고 동네 빵집은 운명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틀에 박힌 맛과 규격화된 ‘빵의 맛’이 소비자들에게 고정됐다. 주 교수는 “최근에는 수제 빵집이 등장해 건강하고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져 공장제 빵 맛에 길들여진 한국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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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정
차단 잘 하셨어요.
Reply

권영민
샘표 몽고간장 모두 적산기업에서 출발.
손기정도 올림픽 전 일본 신사간 마라톤에서 두각을 나타냈기에 올림픽 우승을 할수 있었죠.
편협하면 간장도 마라톤 우승도 사라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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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jeong Moon
'친일파'라는 용어 자체도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본 제국주의'가 행한 일이고 일본의 국민 역시 전쟁의 희생자이고, 친일파라는 용어는 일본 사람이나 역사, 문화를 단편적으로 지칭하는 국가주의적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치가 독일을 대표하거나 상징하지는 않듯이요(친나치라는 표현은 있어도 친독일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죠). 어릴 적부터 일본 애니메이션과 문학, 음악 등을 접하며 문화적으로 일본과 친숙한 젊은 세대에게 '친일파' 논쟁은 역사적 이슈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슈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순혈주의자'의 논리야말로 2차 세계대전의 토대가 된 우생학적이고 전근대적인 발상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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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hwan Rhee
구구절절 동의합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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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ee Kim
이성당 앞에 있는 군산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학교 다닐때, 일본 노인 분들이 간간히 찾아오셨어요. 어린시절 다니셨었다고. 선생님 글은 늘 생각과 시야를 깊고 넓게 만들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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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Doosoo
자기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타인을 헐뜯으면 본인의 위상이 올라간다는 잘못된 인식을 하는 것 같아요. 본인에게 좀 더 충실하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돨텐데 말입니다. 본인이 해보면 뭐든 쉬운 것이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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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Keun Park
참 좋은 글입니다.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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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y Troy Ko
공감 하는 글 잘 읽고 참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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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yong Yoo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응원합니다.
Reply
Juneb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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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hor
고맙습니다. 잘 차단하셨습니다. 저도 이제는 극단적인 분들은 아쉽지만 설득보다는 차단하고 있습니다. ㅡㅡㅡ우리 전통구들인 온돌을 처음 과학적으로 연구한 현규환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명이 이치로 신치이고 만주의과대학 위생학교실에서 '캉과 온돌의 위생학적 연구'라는 논문을 쓰셨는데 ...후에 세브란스에 계시다가 도미하셨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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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신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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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hor
”사회운동이란 한사람 한사람의
행복을 위한것“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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