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떻게 단숨에 강대국이 되었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2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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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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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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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오늘은 어 지난 시간에이어서이
[음악] 미국 페리 제독의 함대의
도래로 인해서 일본에 200년에 걸쳐서
구축되었던에도 시대의 그 [음악] 평화의 그 체제 그 세력 균형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어 것을 살펴봤습니다. 외교관들이 일본에
처음으로 상주를 하게 되고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 하의
거래가 일상화되기 시작하면서 일본이 거기에 [음악] 어떻게 적응을 하고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 것지 좀 구체적으로 재밌는 예들을 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해리 제독은 1853년 7월에 왔다가
1년 후에 온다 그랬습니다. 근데 훨씬 일찍 옵니다. 1854년
2월 달에 원래 예정했던 거보다 한 3개월 일찍 들어옵니다. 왜 그랬냐면은 그 사이에
지난 시간에 마지막에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러시아 함대가 그 사이에 옵니다. 러시아의 퓨차네라는 제독이
와서 어우 미국하고 지금 뭐가 벌어지는 거 같은데 우리랑 합시다
하고 제안을 하고 돌아갑니다. 그러니까는 그 얘기를 또 이제 미국 측이 듣는
거죠. 그래서 어 이거 우리가 늦게 가면은 그 사이에 러시아가 먼저 먼저
일본을 열 수도 있다. 일본과 먼저 조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 우리가
빨리 가야 됐다. 그래서 원래 나 1년 후에 돌아올 거야. 그러면서
엄포를 놓고서 통보를 하고 돌아갔었는데 예장보다 훨씬 일찍 페리가
돌아옵니다. 돌아와서는 23일간 그러니까 그 사이에 사실
이제 로주 아베가 어 전국의 나이들한테 또 교도의 천왕 한
천왕부에 그 휠모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다 보내고 어떻게 할까 이제 뭐 그 온갖
여론을 수렴해 보고 근데 결국은 여론 수렴이 안 되니까는
어떻게 좋을지 사실 갈팡지 질팡하는 상황에서 일단 협상을 하면서 23일간
협상을 합니다. 그리고 1854년 3월 31일
소위 간나가와 조약이라고도 하는 공식명층 일이 화친 조약입니다.
그것을 조인합니다. 간나가와 조약으로 일본은 에도만 어유에 있는 시모다.
항 [음악] 그다음에 학고다 저 북회도 포카이도에 있는
학고다함을 개항하는데 합별합니다. 나중에 이제 일본이 운용호 사건을 일으키고
조선하고 협상을 해서 강화도 조약을 할 때 그때 부산을 [음악] 먼저 개항을 하고 그다음에 두 개항을 더
추가로 하기로 합의를 해서 나중에 이제 재물포와 원산을 열게 되는 거죠. 미국이 밀어붙였죠. 그래서
결국은 시모당 뭐 재물포 같은 거죠. 수 한양의
바로 앞에 있는 시모당을 열고 학고다항을 열도록 합니다. 그리고
미국 배들이이 두 항구에서 항상 가서 석탄 공급을 받을 수가 있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뭐 이제 미국 선원들이 조환당하거나 그랬을 경우에는 역시
일본에서 잘 구조를 해서 보호해 주고 미국 축에 임기하겠다. 이제 이런
약속을 하는 것이 그 조약의 구체적인 내용이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미국은
시모다의 외교관을 상주시킬 수 있게 됩니다. 다만이 조약에서 빠진 것이
뭐냐면 통상 조약에 빠집니다. 그니까 통상을 하자라고 하는 거는 사실은
끝까지 일본이 거절을 해서 결국은 통상 조약은 안 하고 그냥 열어서이
두 한구를 열어서 미국 배들이 왔을 때 석탄 보급받고 물자 보급받고 뭐
조난을 당하면 구해 주고 이제 그리고 미국 외계관이 와서 상조하는 거는 되는데
통상에 대한 합의는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 어떻게 보면은 바크후의
입장에서는 더다한국 절대 이걸 쇠국을 지켜야 된다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었는데 어느 정도 체면은 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통상 조약을 안 맺었으면 꽤 큰 꽤나 23일간 엄청난 협상력을
일본이 발휘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통상만큼은 안 내줬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다이며들 그리고 박후
내부에서도 내부에서도 이거는 구력이다. 어떻게이
한구를이 두구를 추가로 열 수 있고 어떻게음 미국 외교관이 우리이 땅의 황토에
와서 살게 하느냐라면서 엄청난 반대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을 합니다. 미도의 그 날리앗기
당대 가장 존경받고 있고 도독구가와 같은 도구가 가문이었던 그 미도
미도번 미토학파 존왕 사상을 배태시킨 그 미도번의
다임이었던 미도나리학기는 여전히 미국 그 조 미국과 조약에
반대를 하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나한테
론인하고 농부의 아들들로 된 구성된 군대 300명만 아니면 3,
400명 정도만 특공대를 나한테 주면은 내가이 특공대를 이끌고 미국에가 갖고 미국에
가서 싸우겠다. 그래서 미국에서 싸우면은 미국에 가서
우리가 싸우면은 다 전사해 버릴 건 다 우리가 옥세를 할 거다. 다 죽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 사람들도 야 일본을 개앙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라는 걸 미국 사람들도 깨닫고 그리고 일본의 무사도 정신도 좀
되살아날 것입니까? 그 나한테 그거를 그 특공대를 만들어 달라고
심각하게 조종에다가 상소를 올립니다. 그런데이 특공대는 3, 400명인데
전부 다 론인이나 농부의 막내 아들이어야 된다 그럽니다. 왜? 막내
아들이어야지만이 특공대는 가면은 무조건 전원
죽습니다. 전원 옥수야 합니다. 근데 그렇게 되더라도
그 집안에 대가 끊기지 않으려면 여러 아들들이 있는데 막내들만 내서 우리가
가서 다 죽을테니까 그래야지 일본이 정신 차린다. 그래야지 미국이 우리가
얼마나 무섭다는 거 안다라고 지금 도꼬가 날리학기라는 이런 얘기까지도
합니다. 자, 이러고 있는 와중에 디아나호가 다시 돌아. 그러니까
러시아의 퓨타틴 제독이 몇 달 전에 왔다가 왔었기 때문에 이제 페리도 그
부랴부랴 다시 와서 간나가와 조약을 맺은 건데 이제 그 소식을 듣고 푸티아틴이 이번에는 디아나호라는
배를 이끌고 이제 옵니다. 근데 오사만에 이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오사카에 나타나서 러시아는 뭐라 그러냐면 우리는 미국같이 감히 그렇게
불경스럽게 애도 수도로 가지 않고 일본에 열려 있는 나가사기로 우리는 간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을 더
자이하고 일본의 뜻을 더 존중하고 일본하고 제대로된 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까 우리랑 맺어라 이런 겁니다.
그래서 이제 오사감한 쪽으로 가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이제 지난번에 처음에 왔을 때는 팔라다라는 범선을
타고 왔었는데 이번에는 디아나라는 그 정기신 아주 신식 정기선을 이제 타고
옵니다. 디아나가 오사만의 정박에 있으니까 오사가가 이제 교도 바로
앞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2주 동안 정복 정박했는 동안 이제 교도가
난리가 나는 거죠. 지금 시모다의 회리가 오는 거는 이제 에도가 난리가
나는 건데 이푸티아티는 가지 않고 오사카 쪽으로 왔기 때문에
이제 거기에 정박을 러시아 군남이 정박을 하 있으니까 이제
교도에서 난리가 나죠. 그래서 이때 고메이 천왕이
나라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 일곱 개의 신도 사원과 일곱 개의 불교 사찰에
봉양을 하고 금식을 합니다. 푸테티는 나가사기에서 시모다로 가서 12월
22일 날 막보하고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협상을 하고 있을 때 이때 안세의 독화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엄청난 지진이었습니다. 때 그
지진이 혼슈를 일본의 본섬민 혼슈를 강탈을 합니다. 그리고 그
강진 때문에 쓰나미가 일어납니다. 그 쓰나미가 몰려와서 시모다를 덮칩니다.
그래서 거기에 푸아틴의 디아나호가 거기에 정박해
있는 있었는데 쓰나미가 닥치니까 그 배가 4세번인가를
회전을 하다가 결국은 그 금료에 휩쓸려서 하다가 결국은 좌처합니다. 이때부터
연호를 그 당시 일본의 연호를 안세의 이름 안정
좀 안정된 거를 원한다는 안세로 이제 연어도 이때부터 안세로 바뀝니다.
결국은 지진 때문에 협상은 10일간 또 지연이 됩니다. 그래서 그러고 나서도 또 아주 지리하게 협상이
이어집니다. 일본 사람들의 협상력 대단합니다. 이때도. 근대 조약에 대해서 잘 모를
텐데도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하여튼 대단한 협상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1855년 2월에 돼서야 2월 7일 날 일본과 러시아가 일로 화친 조약
일명 심모다 조약을 체결합니다. 푸티아틴하고 러시아 해군들은
미국 배하고 독일 상선들을 임대하고 떠나고 일부는 러시아 목수들의
지휘하래 일본 사람들하고 같이 일본인들이 건조한
배를 만들어서 그걸 타고 귀국을 합니다. 마지막 러시아인들이 시모다를 떠난 것은 1855년
여름이었습니다. 참 놀라운 것이요. 일본 사람들의 놀라운이 당시 일본 사람들 놀라웠던게 뭐냐면이 디아나호가
좌초된 것을 300명의 일본 목수들이 러시아 목수들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거기서 그 배를 건져내서 그 설계도를 찾아내서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러시아
선원들하고 일본 목수들이 300명이 같이 배를 만듭니다. 그러고 나선 단
두 달 만에 서양식 배를 [목을 가다듬음]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이 배가 결국은
100톤, 길이 24m, 그리고 두 개의 도대를 갖 갖춘 서양식 스쿠너입니다.이
배를 건조하는 거를 지원했던 그 마을 목수들이 살고 했던 그 마을이
해다라는 마을이었답니다. 그래서 배 이름을 해다라고 명을 합니다. 그
배를 타고 러시아 사람들이 이제 돌아가는 거고 1번 정부는 우리도
이때 배웠던이 기술을 이용해서 강한 해군을 만들어야 된다. 그래서 곧바로 해다랑 똑같은 배를 여섯 척을 더
건절을 하라고 해서 그 목수들이 여섯 척의 배를 서양식 스쿠너를 이때에
벌써 1855년에 만들어냅니다. 소적을 만들어내서 그것이 일본 근대
해군의 시초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면은
그 동네에 시모다 저 항 앞에 거기 푸아틴
동상도 있고 그리고 디아나호의 닭 격 저 침몰했던 그 배의 답도
지금 공원에 갔다가 놓고 있습니다. 무슨 상황이 됐든 좋은 상황이든 나쁜 상황이든
그렇죠. 자기네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은 자기네를 강제로 개곡시키려고
왔던 배에 배가 격심됐으면 아 그거 참 꼬소하다 그러지 않고 그거를
끄집어내 가지고 거기에서 설계도를 찾아 가지고 러시아 지금 협상하고
있던 러시아 사람들도 야 이거 우리 만들자. 우리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 줘. 그래서 같이 배를 만들어서 그
기술을 습득을 합니다. 그래서 한 척 만들어서 보내고 그 기술을 가지고
남척을 더 만들어서 자기네 해군으로 키우는 겁니다. 이런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메지유신이 가능했고 일본이 급속한 속도로 근대 국가로 부상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반학과 조약으로 합의한 것이 미국하고 일본이 합의한
것이 미국 외교관이 일본에 상조한다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1856년 8월 21일 날 미국의 초대 주일
영사 타운샌드 해리스가 미국 저남산자신토라는
배를 타고 시모다에 도착을 합니다. 4일 후에 시모다의 부교 시모다의
그니까 봉행 시모다의 관리를 만나 가지고 나는 앞으로 시모다에 상주할
거다. 이렇게 통보를 합니다. 그랬더니 심어다 봉행이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건 불법이다. 우리 안 된다라고
거절하니까 해리스가가 간학가와 조약에 따라서 나는 분명히 일본에 거주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만일에 그리고 나한테 영사에 준하는 대접을 제대로 안 해 주면은 나는
애도로 가서 난치 얘기를 할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막부가 박후가 한 달을 니다. 한 달을 끌다가 헬스가
포기를 안 하니까 결국은 알았다 그러면 살아라. 그래서
시모다의 해리스가 거주한 것에 동의를 합니다. 페리스는
에더에서 거주해도 좋다는 그 동의가 나올 때까지 그 사이에 기다리는 사이 한
달 기다리는 사이 이미 시모다이는 교구센지 옥천사라는
절을 사서 거기에 그걸 영사관으로 개조를 하고 거기에 성적기를 이미 내다 겁니다.
그 교구센지 지금도 그대로 있고 거기에 가면은 그 앞에 팬말과 모든
것이 설명하는 것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해리슨은이 교구센지에 2년 10개월간 머물니다. 체류 기간
동안에 해리스가 미국 식으로 미국 사람이니까 나
우유하고 소고기 좀 스테이크 좀 먹겠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때까지
소를 먹지 않았습니다. 소고기를 안 먹었습니다. 우유는 물론이고 소고기를 안 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구에 가면요. 거기에 탑이 하나인 기념비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은 거기에 소의 형상이 앞에 이렇게 부조가 떠 있고 그런데 뭐냐면이 여기가 일본에서 사람이 먹기
[음악] 위해서 처음으로 소를 도축한 장소라는 그걸 기념하는 장소라고 설명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념비의 영어에는 이렇게 이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이 이 기념비는 1931년 도쿄의 정역업자들이 세운
것으로 일본에서 사람이 먹기 위해 최초로 소가 도축된 장소를 기념한다.
해리스와 헨리 휴스켄이이를 먹었다. 이렇게 이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일본 낭농의 발상지라는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 뭐 우리도 사실 1960년대에
그 한국에서 우리 초등학교 이런 데서 처음으로 우유가 공급되기 시작해서
우유를 먹으면 뭐 배탈이 나고 뭐 이래 이런 얘기를 했었 그런 얘기가 많하셨습니까? 그래서 아 우리가
우유를 안 먹었었다고 굉장히 늦게 먹기 시작한 건는 알겠지만 그래도 소고기는 분명히 먹었을 텐데
우리는 불불불고기도 있고 여러 근데 일본에서는 아예 소를 먹줄 알았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먹은게
타운앤 해리스 미국 영사가 와서 처음으로 도저히 못 견디겠으니까 아마 날생선
스시만 먹고는 안 되겠다 싶어 갖고는 소를 먹어야겠다. 그래 갖고는 도축을
해서 그리고 이제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고 한 것이 일본에서
소잡고 우유마시기 시작한 최초의 장소가 바로 미국 영사관이었습니다.
그 해리스는이 2년 10개월 동안 코크센지에 교구센지에 머물다가 그다음에
1859년 7월 19일 날 소위 해리스 조약 그러니깐 일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영사관을 센후지 어 선복사라는 대로
옮깁니다. 그것도 그대로 지금 그 절도 남아 있는데요. 그러니까
1854년에 간학가와 조약을 체결을 해서 처음으로 두 개 한구를 심호도
하고 학고다 두 한구를 개항을 시키고 그렇죠. 그리고 영사관 영사가 와서
상주를 하게끔 해 놓고 그러고 나서는 어떡합니까? 그러고 나서는 해리스가 와서
수호 통상 조약을 협상을 하는 거고 그 수호 통상 조약을 59년에 가서 체결을 하는
거. 그래서 그게 이제 일수호 통상 조약이고 우리가 그니 해리스 조약이라고 하는 거죠. 간나 조약하고
달리 해리스 조약이 되는 거고 그게 이제 통상 조약을 통해서 미국하고 일본이 본격적으로 교육을 하기
시작하는 거고 그러면서 이제 센 후구지로 어 그 해리스도 옮겨갑니다.
이런 유적들이 일본에 그대로 지금 남아 있습니다.
법률 방송이 출관하는 [음악] 시사 교양지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의 [음악]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리스가 시모다에 도착을 해서 나 여기서 이제 살겠다라고 요구를
하는 것을 알고서 그때에 나가사기에
있었던 돼지마섬에 네덜랜드 상관장이 있 있었지겠습니까?
계속 있었던 거 200년 동안 있었던 거니까 그 상관장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 돈큐티우스라는
네덜랜드 사람입니다.이 사람이 아 결국은
일본이 미국하고 저액을 체결을 하고 미국 영사가 외교관이 상주하기에
이르렀구나. 그러니까 일본이 이제 바뀌기 시작하는구나.
그럼 어떻게 바뀌어야 되는가? 이거를 편지를 써서 나가사기 봉행을 통해서
에도의 박 후에 막부에 전달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간학가와
조약을 맺고서 외국과 통 그 교육을 시작하고 계국을 하니까이 사람은
재빨리 일본하고 협상을 해서 우리 네덜랜드도
이제는 동인도 회사가 아니라 네덜랜드의 네덜랜드와 일본의
국격을 협상을 해서 최초의 주일본 네덜랜드
영사가 되는 겁니다. 니다. 그 동인도 회사장에서 그냥 영사로 넘어가는 거죠. 그러면서이 사람이
에도의 상소를 올려서 하나하나 집습니다. 1번이 쇠국
정책을 고집하면은 이거는 구미 열광들하고 전쟁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때이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뭐냐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는
기리스, 그리스도, 크리스천들에 대한 철저한 포교 금지령이 내 내려
있었고 특히 일본에서는 그때까지도 그
가장 지독한 기독교 박해, 크리스천 기리스탄 크리스천 박해 가장 지독했던
점가 뭐냐면은 후미에라 라는게 있습니다. 발판이라 그러는데요.
후미에가 뭐냐면이 사진에서도 보시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있는
것을 저렇게 주조를 해서 동물판으로 만들어서 기독교인으로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한테 저거를 밟고 지나가라 그럽니다. 그래서 그거를
차마 못 밟으면은 저거는 신자라 그래서 처형을 하는 거고 고문하라고
처형을 하는 거고 그걸 밟고 지나가면은 괜찮은 겁니다. 그니까 참 그
잔혹하하고 이제 이런 것들이 그 엔도 슈구의 침묵이란 영화에서도 나오는
거고 그 소설에도 나오고 영화에도 나오는 이제 그런 그 그
참 아픈 장면들인데 그 관습이 그때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관습을 폐제하라. 그러니까 기독교 포교를 받아들여라. 네덜랜드
상관장으로서 가장 일본을 잘하는 당시 외국인 중에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이 충고를 해 주는 것이 세곡 정책 포기하고 기리스탄 탄압하는
거 빨리 금지해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왜 왜곡하고 교육을 해야 되는지 왜 그게 유익한지
일본이 수입품을 할 때는 수입품에 대해서 관세를 부과해라.
그리고 수출할 수 있는 물건들을 빨리 개발을 해. 수출 품목을 빨리 개발을
하라요. 참 놀라운 중요한 충겁니다. 왜? 조선은요.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을 일본하고 맺었을 때 관세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관세를 안 매깁입니다. 1876년에 강화도학을 통해서 부산이 열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본 물품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관세를 안 매깁니다.
그래서 그냥 일본 물건들이 그냥 들어오는 거죠. 얼마나 일본 사람들이 장사 잘했겠습니까?
그러다가 이거 도저히 안 되겠 나 뒤늦게 깨달니다. 그래서 1880년에
김홍집을 2차 수신사로 1번에 보내는 이유가 뭐냐면 야 우리 잘못했는데이
관세 좀 협상 좀 다시 하자. 강화도에서 우리 이거 빠뜨렸는데 4년
전에 조약 체결할 때 빠뜨렸는데 우리 다시 하자. 그래 갖고 1번에 가서 일본에가 갖고 거기에 어 인호에
가오르한테가 갖고 아 우리 다시 좀 하게 달려고 그랬더니 일본 측에서 그럼 가져왔어. 협상한 새로운
체결 그 조약 가져왔어. 거기에 이제 뭐 관세는 어떡한다? 아니, 그런 거 안 가져왔는데 당신들 알아서 좀
만들어 달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일본은 왜 이런게 가능합니까?
네덜랜드 상관장 했던 사람이 얘기를 해 주는 거죠. 빨리 교육을
세국 포기하고 교육을 해라. 그게 나라가 잘되는 길이다. 그런데
수입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라는게 있는데 그 관세를 꼭 먹겨라. 그리고 수출 품목들 많이 개발을 해라.
이렇게 얘기를 해 줍니다. 그리고 일본과 교육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전부
다 외교관이 됐든 상인 됐든지 무조건 부인과 아이들까지도 데려와서 일본에
살게 해라. 그리고 일본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해 줘라.
수도인에도 그렇죠. 바크후가 있는 초근 있는에도 마대로 가도록 해라.
이런 중요한 추고들을 다 해줍니다. 사실 네덜랜드 상관장을 통해서
네덜랜드 구광 필름 2세는 1800 1844년에도
개양을 하라고 종영하는 편지를 쇼군한테 보냈었습니다. 근데 그때는
일본이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불과 12년 후인 1856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로즈 회의에서
모든 회의 참석자들이 이제는 하루 빨리 계국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막부 박구후에서는에도 박구후 내부에서는
계국으로가 버립니다. 그니까 이게 참 에도부는 계국으로 가고 그래서 개항을
하고 외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거를 반대하는게 조주하고
사스마 사가 그렇죠. 도자마다 다이며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조왕 양이 그러면서 도구가와 막불를 상대로 기치를 들고서
깃발을 들고서 저항을 하기 시작하는 이유가 뭡니까? 저네들은 개항을 해 갖고 양이들을
들였다라는 거죠. 그래서 이게이 투쟁이 시작되는 거고 결국은 전쟁이
일어나는 거고 결국은 존황양이 세국주의자에서
출발했던 조수하고 사슴하고 도사가 개항을 처음부터 하자고 이미
1856년부터 적극적으로 자기네 로즈회를 통해서 개앙을 하자고 하는 그 도구가 막에도
막부를 상대로 해서 그걸 거꾸로는 것이 메주신입니다. 입니다. 그런데
그 메이지신을 하고 나서 어떡합니까? 적극적으로 조왕양이 파였던 조슈아 사스마의이
하급 사무라이들이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계곡으로 향해
나갑니다.에도 막분내에서는 완전히 개항으로 갑니다.
오히려 로주인 아베마사이로만 본인이 이게 너무 극단적으로 세국을 반대한
세력이 아직도 많은데 이거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냐 그러면서 완전한 계곡 시기상조라 그럽니다. 그런데
아무도 쇠곡 지속할 수 없다. 지속을 주장한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1857년
2월 28일 날 don't캐큐리티비스 그 마지막 상관장이고 초대 네덜랜드
영사 그 사람은 나가사크 병한테 또 편지를 보내서 중국이 지금 제2차
아편 전쟁을 하고 있고 그 아편 전쟁에서도 패하고 있는데
조약에 따라서 여러 한구를 다 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청은
자발적으로 역 개항을 한 건 아니지 않느냐. 앞편 전장을 두 번이나 치르면서 온갖
구력적인 일을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열었지만 그렇게 열어서
서양 국가들하고 열강들하고 교육을 시작하니까이 교육을 통해서
청애인 백성들이 너무나 번성을 하고 있다. 광동에서만
괜히 영국 국기를 끌어내리는 일이 있어서 괜히 그 그것 때문에 괜히
광동은 구력만 당했고 그리고 중국은 아직도 그것 때문에 서방의 우승거리가 되고 있는데 1번 당신들도 그럴
거냐? 그러지 말고 그 단계를 다 건너 뛰어라. 빨리 개항을 해라.
교육은 일본 일반 백성들한테도 다 도움이 되고 나라가 번창하는 길이라는
그러니깐 교육 국제 무역 왜 개방을 해야 되고 왜 무역을 해야 된다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지금 중국 광동에서 일어난 일들은
일본군 직접 성관은 없다. 그렇지만 한 번
왜곡하고 조약을 체결함 그 조약을 지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그러니까이 강화도 조약 이후에 우리가 맺는 조선이 맺는 모든 조약들도 그렇고
조약을 맺은 거에 대해서 그거를 좋은 지키지를 않습니다. 아무렇게 마음대로 그냥 그때 그때만
하는 걸로 생각하지. 아, 조약이라는 걸 한번 맺으면 그거는 끝까지 계속해서 지켜야 된다라는 거.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 한국에서는 한번 조약 맺은 거에 대해서 딴 정부가 맺은 거는 또 번복하고이 정부가 맺은 거
또 번복하고 이러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럼 이제 국제적 신뢰 체면 완전히
깎이는 겁니다. 지금 중국에서 그런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거죠.
그렇죠? 그러니까는 앞편 전쟁 1차했다가 또 말을 안
듣고 번복을 하고 그니까 또 2차 변쟁 또 일어나는 거고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거고 뭐 그래서
북경까지 러시 영국하고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가고 이제 이런 구력적인 일을 계속해서 다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거 하지 말고 한번 조약을 체결했다는 거, 한번 계약을
맺는다라는 것은 그건 그 계약이 효력을 발생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
내용을 그대로 안 보더라도 아무도 안 보고 있더라도 그거를 지켜야 된다라는 그
원칙 그 원칙을 일본 사람들한테 가르쳐 주면서 이렇게
큐리티브스는 이렇게 얘기를 미국 관리들한테들은 바에 의하면 일본은 협상을 한없이 지연시키고 작은
사안들을 갖고 불필요한 흥정을 하는가 하면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만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외국과 신뢰관계를 수립할 수 없습니다. 또 일본은 외국을 대하는데
너무 거만하며 마치 아랫 사람에게 명령하는 투의 말투를 [음악] 씁니다.이는 외국인들이 모두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가장 중요한 나라들은 영국, 미국,
러시아와 프랑스입니다. 이제 귀국은이 열강들과 통상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귀국은 과거의 관행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여 이득을 보면서 세계사의 흐름에서 나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네덜랜드의 외교관이 얘기를 해 주는 거죠.
강대국은 영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다.이 나라들하고 잘해라.라고
충고를 해 주는 겁니다. 결국 1858년 7월 29일 시모다의 봉행과 해리스는
미국 저남 퍼우해탄호에 선상에서 일 수호 통상조약 일명 헤리스 조약을
체결합니다. 여러분이 포탄 후 기억나세요?
이 포와 탄해가 무슨 배입니까? 요시다 쇼인이
내가 어떻게 쓴지 미국에 가서 미국을 배워야 되겠다. 스승인 사꾸하셔다니
나한테 그렇게 종영을 했던 거고 나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 그래서
폐리 제독이 다시 돌아왔을 때 해안가에 숨어 있다가
혼자 배를 타고 경 파도를 해치면서
가든 향에 가던 배가 바로 퍼탄 옵니다. 그리고 그 폐화 패턴에 도착을 해 갖고서
올라가려고 했을 때 결국은 어떻 합니까? 미국 병사들한테 수병들한테
잡혀서 그래서 잡혀 가지고는 박에 넘겨져 막부에 넘겨져서 그래서 감옥에
갔다가 고향에 또 보내줘서 고향에서 감옥에 있다가 거기서 잠깐 나와
가지고 속가 죽구라는 걸 만들어서 거기에서 기도닷가요씨 또 야마가 따다리 또
이런 제자들을 길르면서 미래의 일본 저걸 양성하죠. 그렇지만 결국은
요시다 쇼인이 처형을 당하죠. 파워탄호에
승선을 하려고 했던 것 때문에 결국은 요시다 시현이 잡히는 거고 그 계국의
열정 때문에 결국은 처형을 당하는 겁니다. 나라 보고 바꾸고 열어라
열어라. 제발 나라 열어라. 아니면 나 같은 사람 좀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해 달라.
그렇게 외치다가 결국은 참수 당합니다. 희생 당합니다. 7,
8년 만에 그 배에서 바로
일 수호 통상 조약, 헤르스 조약이 체결이 됩니다. 글쎄요. 요시다
쇼인이 그때 올랐을 때 그 배에 오르고자 했을 때 요시다 쇼인을
미국에 데려갔었고 그리고 뭐 역사의 가정은 없겠지만 없지만 일본하고
미국이 그때에 참 개을 했었더라면은 또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한번
상상을 해 볼 수가 있는 그런 참 어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고 어 한
대목입니다. 해리스 조약에서 그 해리스는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미국인들은 미국 총용사나
미국 영사에 재판을 받고 미국법에 따라서 처벌될 것이라는 조항을
습니다. 여러분 이게 뭡니까? 이게 치외법권 조항이죠. 우리가 불평등
조약의 가장 핵심이 뭡니까? 그게 치외법권 조약이죠. 왜냐면 조약을
체결하면서 서로 국교를 수립하지만
상대방 나라의 법을 법체계를 믿지를 않는 거죠. 그 법칙에는 원시적이고
전혀 개인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를 해 주지 않기 때문에 만일에 우리나라
사람이 너희 나라에 가서 가서 무슨 일을 하다가 범죄를 저질 수가 있다.
그러면 당연히 너희 나라 원래대로라면 너희
나라 법에 따라서 재판을 하고 처벌을 받아야 되지만 지금 너희 나라의 법은 너무 수준이
본건적이고 원시적이고 그죠 전혀 인권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 따라서 너희 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도 그거는 우리나라 판사들이 우리의 영사나 총용사가 판사
역할을 대신해서 또는 우리 법정에서 우리 법에 따라서 처벌을 하겠다라는
겁니다. 이게 가장 구력적인 치외법권 조항입니다.
근데이 조항을 해리스가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게 뭔지 모르는 거죠. 이게 얼마나 구력적이라는 사실. 이게 바로이
해리스 조약을 불평등 조약으로 만든다는 사실조차도에도 바크후 사람들은 몰랐던 겁니다.이
협상에 임했던 일본의 대표단이 몰랐던 거죠. 일본은 바로 메이주신이
일어나고 나서 곧바로이 불평등 조약들을 재협상을 하려는 그
엄청난 노력에 돌입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전에 초반에 제가 한번 말씀드렸던 적이 있지만은 이와꼬라 사절단이라는 거를 1871년에
메이 주신 한지 3년 만에 꾸려서 일본 최고의 지도자들이 2년 동안
해외 유학을 떠나는 놀라운 일을 버리는데 그때에 가는 이유가
1871년에 나갈 때 그때가 뭐냐면 이제 곧
해리스 조약이나이 조약들을 20년이 지나서 재협상을 해야 될 때입니다.
그래서 재협상을 해야 되니까 그 이때에는 우리가 그때 있었던이 치회복권 조항 같은 것들을 빼야
되겠다.라고 해서 재합상도 할 겸 외국의 문물도
배울 겸 해서 떠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끊임없이 불평등 조약을 재협상을
하려는 노력을 버리면서 결국은 치복권 조항을 빼는 영국과의 평등 조약을
체결을 합니다. 그러면서 일본은 이제 더 이상 열강한테 휘둘리는 약소
국가가 아니라 대등한 차원에 올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내부에서 끊임없이 자기네 법 체계를 서양 법체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하라는 거죠. 법학과를 만들어서 서양식 법관들 양성을 하고
판사들 양성을 하고 검사들 양성하고 그러면서 그 체 체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법 집행하는 과정이 서양의 소위 선진국들과 같은 수준에서 인권을
보호하고 평등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한다라는 걸
보이기 시작을 한 거죠. 그렇게 완전히 평등 조약을 맺는 소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를 하고 나서
청일 전쟁을 일으키는 겁니다. 이때는 그렇지만 아직
일본 사람들이 이게 뭐가 불평등 죄약인지도 몰랐던 거죠. 한편
로즈 아베는 본격적으로 국론 통일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도자마다며
심판 다이며들을 전부 다 국정에 [음악] 참여시키기로 합니다. 수백년 동안
정권의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했고 절대로 국정에 참여시키고 세력을
키우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던 그 세력들을
나라가 국란에 처하면서 외세 앞에서 나라가 무너진 거를
걱정하기 시작했을 땐 어떡합니까? 그 사람들까지도 원 철천지 원수였지 않습니까? 새끼가
하라 전투의 기념날이 되면은 뭐 조슈의 무장들은 다 무장을 하고
다묘한테 가서 때가 됐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뒤엎을 도구가를 뒤엎을 때가
됐습니까? 봉기할 때가 됐습니까? 막 때가 아직 아니다. 뭐 이러는 거고 새끼가라 군기 새끼가라의 전투 기록을
다 하루 종일 같이 공부를 하고 1년에 한 번씩 꼭 그러는 거고 뭐 조수의 어머니들은 아이들한테 동쪽으로
발을 뻗고 자기 해 갖고는 그 어 그 독구가를 밟으라는 그런 뜻을 그런
식으로 애들 가르쳤다라고 하면서 서로가 그렇게 참근 교대를 시키고 뭐
별짓을 다하면서 견제를 하던 사람들이 나라가 국란에 처하니까 어떡합니까?
다 같이 의견을 모으자. 중지를 모아야 된다. 지혜를 모아야 된다.
힘을 모아야 된다. 그러면서 그동안에 철천지 원수, 불구 대천의
원수, 서로 복수를 갈고 복수를 꿈꾸고 있었던
그런 세력들을 품어 안고 끌어앉고 같이 국정을 논하자. 같이이 나라를 지키자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우선적으로 가나가와조에게 끝까지 반대하면서
조랑양이를 주창하고 나한테 론인하고 농부 아이들 막내 아들들 300명만
주면은 내가 미국에 가서 옥세를 하겠다라고 하던 그 믿도의 그 독구가 나리아끼한테 일본 전체 해양 방위의
책임을 맞도록 합니다. 심판다이며 뭐 대표적인 뭐 심판다이면 원래 국정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이때 후구 이번에 마스다이라 ាន 같고 마스다이라는 성과 도구가는 같은 성입니다. 원래
도구가와 이스가 마스다이라 이아수였습니다. 근데 같은 집안입니다. 그러니까 마스다이라
순각구 그 당시에 제일 똑똑했던 별칭이라고 했었던 굉장히 똑똑하고
훌륭했던 지도자기네 라이벌이 될 수 있겠지만 불러드립니다. 그리고 도자마 대표적인
도자마인 어 사스마의 시마스나리아끼라를 적극적으로 불러드리면서 에도에서
같이 국정을 논하고 방어를 방위를 어떻게 하는 거고
외국과 어떤 교육을 해야 되고 이런 것을 같이 논하기 시작하면서
에도와 천왕부와 도자마다의 묘들이 하나가 화되면서
외세가 불러온 국란을 같이 극복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정책은
앞에 이런 정책은 당연히 도자마다 자묘들은 너무 좋아하죠. 조주하고 사스마 도사 이런 데서는 그동안에
완전히 280년 동안 열되고 있었는데 불러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가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국정에 참여를 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뭡니까? 후다이 다이며들이었죠. 원래 자기네만 국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후다이 다이어들은 완전히 이제 이게 뭐야 이렇게 되는
거죠. 자, 조주하고 사스하는 강한 번이었습니다.이 번들은 원래도
컸었고에도 시대 내내에도 엄청난 소출량과 경제적인 번영과
그리고 강한 군대, 강한 많은 사무라이들을 계속해서 양성하면서
강력한 태세를 유지를 해 왔습니다. 안면에 도구가와의의
친척 그리고 도구가와를 도았던 세력들은 여러 가지 새로 번도 얻고
특히 조주하고 사스마를 에워 싸서이 사람들이 독 그 조수나 사스마가
애도로 향하지 못하도록 길목을 차단하는 데에 번들을 새로 만들어
주고 다이며 만들어 준이 사람들이 후다이 다녀들렸는데
그런데 그렇다면 무슨 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구가와 자신들만 곧
원래 도구가와 영지 빼놓고 그 번만 빼놓고 나머지 후다의 번들은
상대적으로 역사도 짧고 원래 자기네 힘으로 그런 영지를 오랫동안 갖고서
습득해서 싸워서 얻어서 유지를 해왔던 데가 아니라 급조된 번을 순전히
도구가와 제공해 줌으로써 조시와 사스마를 막으라고 했었던
겁니다. 따라서 대게 굉장히 역사가 더 짧고 전통도 없고 규모도 작았던
것이 후다의 번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에는 옛날 일 때문에 절대로
중앙정치에 참여를 할 수 없었던 조수사스마 같은 거대한 번들이
도자마다 다이며들이 이제 아베로주의 적극적인 정책에 의해서 중앙 정치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은 기존의 후다이 다녀들은 아예 상대가 안 됩니다. 워낙 큰 번들이고 워낙
강했던 번들이기 때문에 조주하고 사스마가 후다이 다이며 우리가
말이 좋아서 후다이 다이며 거기가 갖고 똑같이 그 사람들하고 같이 국정을 돈나라 그럼 우리 목소리는
전혀 안 먹힌다. 상대가 안 된다라고 하면서 절대적으로 아베의이 정책에
극렬하게 반대를 합니다. 독구가 막부 내부로부터
로주의 정책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계국이냐 세국이냐이 문제에 있어서도 도자마다 다이며와
후다이 다이며 그러니까 그동안엔 국정에 참여 못 했던 다이며들과 신판
다이며들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아베가 결국은 포용 정책을 써서 끌어들렸던
도자마다 다이며인 조슈와 사스마는 세국주의자들이었어요. 그러니까는 지금 로주 아베 같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기네가 호다이 다이머로서
중앙정 정치에 참여를 하고 진짜 로즈로서 가장 강력한 소은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을 휘들르면서 나라의 정책을 다 결정을 하고 국정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이 아베터가 아는 거죠.
막상 와서 국정을 책임을지면서에도 마크후 막부의 국정을 책임지면서
보니까 뭡니까? 마크후가 막부가 얼마나 허약하다는 거. 얼마나 사실은
아 내실이 없다는 거. 외세가 오면서 거기에 이렇게 저항을 하려고 대응을
하려고 여러 가지를 움직여 보고 그러는데 후다이 다이머들만 데리고 바크후 내 원래의 그 핵심 세력들만
데리고는 아무것도 안 될 거. 에게 너무 허약하구나라는 거를 깨닫게 되는 거죠. 아베는.
그래서 결국은이 조슈나 사스마 같은 도자마 다묘들을
상대로 도구가와 박후가 막부가 버텨 나가려 그러면 어떡합니까? 빨리
계국을 해서 빨리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서 막부가 강해져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일단은 일단은 국론 통일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저주하고 사스마 같은
데를 사과 같은데 오고 중앙정치의 국정에 참여하도록
유도를 하지만 진정한 것은 뭡니까? 지금 빨리 계국을 해서
외세 문물을 받아 빨리 받아들여서 그래서 박구후가 막부가 도구가와
막부가 다시 강해져야지 서양 문물을 이용해서 서양 무기들을 이용해서
그래야지 조수가 사스마를 누를 수 있다. 그래서 빨리 계곡을 해야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박후를 강하게 하려고 나름대로 정책을 펴고 있는데 바로 그
박후의 막부의 핵심 세력인 후다이 다이며들이 거세게 조주나 사스마 같은
데를 끌어들이는 중앙 정책 끌어들이는 것에 거세게 정을 하니까 결국은
아베가 1857년 8월 6일 날 루주 자리를 사임하고
물러납니다. 외세의 도래로 인해서 일본 국내 정치가 요동을 치기
시작하고 그 요동을 치는 과정에서 천왕부 중심으로 세력이 기울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계국을 하면서
독구가 막부에 실력을 키우려고 하는 아베의
시도는 결국은 실패로 끝납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아베의 후임으로
로주에 임명되는 호따마사요시라는 로즈가이 어려운 막부와 점점 힘이 강해지는
교도의 천왕부 그리고 점점 힘이 강해지는 조슈와 사스마를 제어를
하면서이 일본이란 배가 한쪽으로 좌초되지 않도록 끌어가는 놀라운 줄타기를
하기 시작을 을합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막구마츠 막부 말기 시대의 그 격렬한 정치가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다음 시간에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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