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5

영화 가네코 후미코 - 박열 - 줄거리 평론 비교

영화 가네코 후미코 줄거리 및 평론 - Google Gemini




세진님, 요청하신 영화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金子文子 何が私をこうさせたか, 하마노 사치 감독)의 줄거리와 평론입니다.

<작품 정보>

감독: 하마노 사치

주연: 나하나(가네코 후미코 역), 코바야시 카츠야(박열 역)

개봉: 2026년 / 121분

<줄거리 요약>
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 제국주의 정권은 혼란 수습과 조선인 학살에 대한 비판을 덮기 위해 조선인 혁명가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를 천황 암살을 획책했다는 대역죄로 날조 기소한다. 법정에서 거짓 무죄를 호소하는 대신 국가 권력의 모순을 정면으로 고발한 두 사람에게 대심원은 사형을 선고하지만, 곧이어 일왕의 은사(사면) 형태로 무기징역 감형 처분을 내린다.

그러나 후미코는 국가 권력이 시혜처럼 베푸는 감형장을 찢어버리며 천황제에 대한 굴복을 단호히 거부한다. 도치기 여자형무소로 이송된 후미코는 옥중에서도 전향과 순응을 강요하는 간수, 교화사, 특고경찰의 압박에 맞서 타협 없는 단독 투쟁을 이어간다. 영화는 사형 판결 직후부터 1926년 7월 23일 스물셋의 나이로 옥중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역사 속에 공백으로 남아 있던 <121일간의 기록>과 후미코가 남긴 단가(短歌)들을 바탕으로 그녀의 결단을 응시한다.

<작품 평론: 타협 없는 실존과 주체적 저항의 기록>
<1. 박열의 '동반자'를 넘어선 독립적 사상가의 복원>
기존 미디어가 가네코 후미코를 식민지 조선 청년 박열을 사랑한 헌신적 조력자의 틀에 가두곤 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후미코를 철저히 독립된 아나키스트이자 허무주의 사상가로 화면 중심에 세운다. 가부장제의 학대와 빈곤, 제국주의적 억압 속에서 단련된 그의 사상은 타인에게 의탁한 신념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득한 실존적 반역이다. 포스터에 적힌 <현존하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라는 선언처럼, 작품은 기존 질서 전체를 부정했던 후미코의 치열한 내면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2. 시혜적 권력에 대한 거부와 죽음의 자유>
영화의 핵심 동력은 국가가 베푸는 생명 연장(은사)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권력은 감형을 통해 체제의 관용을 선전하고 후미코를 순종적인 복종자로 만들려 하지만, 후미코는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손발이 부자유할지라도 죽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죽음은 자유다"라는 그의 시구처럼, 후미코에게 자사는 절망에 의한 도피가 아니라 권력이 빼앗을 수 없는 마지막 주체적 선택이자 투쟁의 완성이 된다.

<3. 밀실의 침묵을 찢는 시(詩)적 울림>
여성의 주체성과 저항의 역사를 집요하게 기록해 온 하마노 사치 감독은 화려한 시대극의 외피를 걷어내고, 차가운 독방 안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심리적 긴장에 집중한다. 배우 나하나의 결연한 눈빛과 후미코가 남긴 단가들이 겹쳐지며, 100년 전 한 청년이 감내해야 했던 고독과 신념의 무게를 현대의 관객에게 묵직하게 전한다. 국가와 체제가 개인의 존엄을 억압할 때 인간은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는가를 묻는 처절하고도 숭고한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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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네코 후미코—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金子文子 何が私をこうさせたか>, 하마노 사치(浜野佐知) 감독, 2025

이 영화는 2026년 2월 일본에서 개봉한 121분짜리 전기영화다. 주인공은 일본의 아나키스트이자 허무주의자였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이며, 특히 박열과 함께 대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뒤 감옥에서 죽기까지의 마지막 121일을 중심으로 한다. 감독 하마노 사치는 가네코를 단순히 <박열의 일본인 연인>으로 다루지 않고, 독립된 사상가이자 국가권력에 맞선 여성으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 줄거리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어린 시절에는 법적 호적도 없는 <무적자(無籍者)> 상태였다. 가정에서도 안정된 보호를 받지 못했고, 9세 무렵 조선에 살던 친척 집으로 보내진다.

그러나 조선에서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친척 집에서 심한 차별과 학대를 받았으며, 동시에 일본 식민지배 아래 조선인들이 겪는 차별을 직접 목격한다. 특히 1919년 3·1운동은 후미코에게 중요한 경험이 된다. 자신을 학대한 일본인 가족과 식민지배를 당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함께 보면서, 개인적인 억압과 국가적 억압 사이의 연관성을 깨닫기 시작한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 도쿄에서 노동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여러 사상을 접한다. 기독교에서 사회주의로, 사회주의에서 아나키즘으로 이동하고 궁극적으로는 허무주의적 사상에 접근한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 독립운동가 박열을 만난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는 동시에 사상적 동지가 된다.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해 활동한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한다.

지진 직후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대규모 조선인 학살이 벌어진다. 이 혼란 속에서 박열과 가네코도 체포된다.

당국은 이들을 황태자 암살을 계획한 폭탄 음모 사건과 연결시키고 결국 <대역죄>를 적용한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단순히 자신들은 무죄라고 항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일본 천황제와 국가권력 자체를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공격하면서 재판을 일종의 정치적 투쟁의 장으로 바꾸었다.

1926년 3월 두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얼마 뒤 천황의 은사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지만, 가네코는 이 은사장을 찢어버린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판결한 국가로부터 다시 목숨을 <선물받는 것>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이 영화는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네코는 도치기 여자형무소에 수감된다. 국가권력은 그녀에게 천황의 은혜에 감사하고 충성의 태도를 보일 것을 요구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거부한다.

영화는 이 마지막 121일 동안 가네코의 외부 행동보다 내적인 투쟁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1926년 7월 23일, 23세의 가네코 후미코는 독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다. 공식 기록은 자살이다. 영화 역시 기본적으로 이 기록을 따른다.


2.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 <박열의 여자>가 아닌 가네코 후미코

한국에서는 가네코 후미코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2017)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하마노 사치는 바로 그 관점을 뒤집으려 한다.

『박열』에서는 자연스럽게 박열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고 가네코는 매우 강렬한 인물이지만 결국 박열과의 관계 속에서 등장한다.

반면 『가네코 후미코—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의 질문은 다르다.

<박열은 가네코에게 누구였는가?>가 아니라

<가네코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었는가?>

를 묻는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박열은 중요한 사람이지만 중심은 아니다. 영화의 진정한 상대역은 박열이 아니라 <국가>다.

가네코 대 일본제국.

여기에 이 영화의 독특한 힘이 있다.


3. 제목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 제목은 단순히 불행한 어린 시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왜 이런 반역자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영화가 제시하는 답은 하나가 아니다.

가족의 학대, 여성차별, 가난, 무적자라는 사회적 배제, 일본 사회의 계급질서, 식민지 조선에서 목격한 민족차별, 천황제 국가의 폭력 등이 겹겹이 쌓인다.

따라서 가네코의 반항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정치적 신념이 아니다.

<삶 전체가 그녀를 국가와 사회질서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밀어붙였다>는 것이 영화의 해석이다.

하마노 감독 역시 가네코가 일본 사회의 여러 차별에 맞섰다는 점을 자신의 여성 영화감독으로서의 경험과 연결해 설명했다.


4. 가네코의 사상은 단순한 조선 독립운동이 아니다

한국에서 가네코를 기억할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그녀가 조선 독립운동에 깊은 공감을 가졌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녀를 단순히 <일본인 친한파 독립운동가>로 이해하면 사상의 상당 부분을 놓친다.

가네코는 일본 제국주의만 반대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문제는 훨씬 근본적이었다.

국가, 천황, 권위, 가족제도, 남성 지배, 자본주의적 착취 등 인간 위에 군림하는 거의 모든 제도적 권위를 의심했다.

그래서 박열과의 관계도 흥미롭다.

두 사람의 사랑은 민족을 초월한 낭만적인 한일 연애라기보다는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는 공동의 정치적·윤리적 신념에서 나온 동지관계였다.

이 때문에 가네코에게 조선의 해방은 일본과 조선이라는 두 민족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지배하는 인간과 지배당하는 인간 사이의 문제>였다.


5. 영화가 마지막 121일에 집중하는 이유

영화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선택이다.

가네코의 어린 시절이나 박열과의 격렬한 활동기가 훨씬 드라마틱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를 선택한다.

사형판결도 났고 조직도 해체됐으며 박열과도 떨어져 있다.

남은 것은 한 명의 여성과 국가기관뿐이다.

따라서 영화의 핵심 갈등은 행동이 아니라 <복종 여부>다.

국가는 말한다.

<네 생명을 살려주었으니 감사하라.>

가네코는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내 생명을 맡긴 적이 없다.>

그래서 은사장을 찢는 행동은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상징이 된다.


6. 죽음은 패배인가

여기서 영화는 매우 어려운 문제에 도달한다.

가네코가 결국 자살했다면 국가권력이 승리한 것인가?

영화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육체적으로는 국가가 그녀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마지막까지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다>라는 권리를 넘겨주지 않았다는 식으로 그녀의 죽음을 해석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는 비판적 거리가 필요하다.

자살을 지나치게 <최후의 자유>나 <완전한 저항>으로 미화하면 실제 인간 가네코가 경험했을 절망과 고통을 낭만화할 위험이 있다.

더구나 형무소에서의 마지막 121일에 대해서는 사료가 매우 제한적이다. 한 일본 관객의 평가에서도 남아 있는 자료가 주로 가네코의 단가(短歌) 등 제한적인 기록이어서, 감옥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상당 부분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영화의 감옥 장면 상당 부분은 역사적 재구성이면서 동시에 감독의 상상이다.

이 점은 영화를 역사적 기록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중요하다.


7. 일본 영화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 작품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이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일본 감독이 일본 국가권력에 반역한 일본 여성의 이야기를 만든 영화>라는 사실이다.

가네코의 존재는 일본 제국주의의 가해자/피해자 구도를 조금 복잡하게 만든다.

일본인이라고 모두 제국의 지배자였던 것은 아니었고, 조선인이라고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식민지를 경험했던 것도 아니다.

가네코는 일본인이면서 일본 제국의 질서에서 철저하게 주변화된 여성이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조선에서 또 다른 피억압자를 발견했다.

여기에서 그녀의 조선에 대한 연대는 단순한 동정과 다르다.

<당신이 당하는 억압과 내가 당하는 억압의 근원에는 같은 지배 논리가 있다>

는 인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8. 『박열』과 비교하면

두 영화는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상당히 좋은 짝을 이룬다.

『박열』이

<박열과 가네코가 일본 국가권력을 조롱하며 벌이는 정치적 법정극>

이라면,

『가네코 후미코—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는

<모든 동료와 분리된 뒤 한 인간이 국가권력 앞에서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내면극>

에 가깝다.

전자가 두 사람의 <공동투쟁>이라면 후자는 한 사람의 <고독한 투쟁>이다.

그래서 이미 『박열』을 본 사람에게도 이 영화는 상당히 다른 가네코를 보여준다.


9. 평론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가네코 후미코를 민족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에서는 그녀를 <조선을 사랑했던 일본 여성>로 기념하고 싶은 유혹이 있고, 일본에서는 <특이한 여성 아나키스트> 정도로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가네코는 어느 쪽에도 편안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녀가 제기한 질문은 훨씬 위험하다.

<국가는 인간에게 왜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천황이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가?>

<가족·민족·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희생시켜도 되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 인간은 자신의 삶을 누구에게도 양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가네코 후미코가 100년 뒤에도 불편한 인물로 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포스터의 문구가 이 영화를 매우 정확하게 압축한다.

<現に在るものをぶち壊すのが私の職業です>

즉,

<지금 존재하는 것을 부숴버리는 것이 나의 직업입니다.>

그녀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남긴 정치가는 아니었다. 바로 이것이 그녀의 사상의 한계이기도 하다. 무엇을 파괴할 것인지는 명확하지만, 그 뒤 무엇을 만들 것인지는 훨씬 흐릿하다.

그럼에도 가네코의 역사적 가치는 다른 데 있다.

그녀는 23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민족의 경계를 넘어 억압받는 사람이 다른 억압받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드문 사례를 남겼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박열의 연인 이야기>도, 일본 아나키스트의 전기도 아니다.

<식민주의·가부장제·국가주의의 여러 층위에서 주변부에 놓였던 한 여성이 끝까지 자기 삶의 주권을 주장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100년 전의 가네코 후미코는 여전히 상당히 현대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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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영화 박열 줄거리 평론, 2) 두 영화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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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요청하신 한국 영화 <박열>의 줄거리 요약 및 평론과 하마노 사치 감독의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와의 비교 분석입니다.

<1. 한국 영화 '박열' (2017, 이준익 감독)>

<작품 정보>

감독: 이준익

주연: 이제훈(박열 역), 최희서(가네코 후미코 역)

개봉: 2017년 / 129분

<줄거리 요약>
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일본 내각은 사회적 혼란을 덮고 조선인 학살(간토 대학살)에 쏠린 비판을 피하기 위해 시선을 돌릴 배후 세력을 찾는다.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는 도쿄에서 아나키스트 단체 '불령사'를 이끌던 조선 청년 박열을 지목해 천황 암살을 모의했다는 '대역죄' 혐의로 몰아세운다.

일본 권력의 정치적 의도를 간파한 박열과 그의 사상적 동지이자 연인인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는 피하거나 변명하는 대신, 법정을 무대로 삼아 제국주의의 위선과 조선인 학살의 진실을 전 세계에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두 사람은 조선 예복 착용, 피고인과 판사의 동등한 좌석 배치 등을 요구하며 재판정을 권력 풍자의 장으로 바꾼다. 사형 판결 이후 일왕의 은사로 무기징역 감형이 내려지지만, 두 사람은 타협 없이 자신들의 신념을 지킨다. 영화는 후미코의 옥중 죽음과 끝까지 살아남아 저항을 이어가겠다는 박열의 다짐으로 맺어진다.

<작품 평론: 풍자와 연대로 일궈낸 반제국주의 법정극>
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한국 독립운동사 영화의 전형적인 비장미나 민족주의적 신파에서 과감히 벗어난 작품이다. 영화는 박열을 초월적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고, 체제의 모순을 조롱하며 법정을 하나의 거대한 극장으로 전복시킨 전략적 아나키스트로 묘사한다.

특히 일본인 여성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를 민족주의의 주변부 인물이 아닌, 독립된 주체이자 사상적 동등자로 전면에 배치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국적과 민족을 초월한 두 사람의 연대는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폭력 기구에 맞서는 보편적 자유와 인간 존엄의 가치를 경쾌하면서도 묵직하게 설득해 낸다.

<2. 두 영화의 비교 분석: '박열' vs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시선의 중심과 서사적 초점>

<박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라는 두 인물의 상호작용과 '불령사' 동지들의 연대에 초점을 맞춘다. 간토대지진 직후부터 재판이 진행되는 1923~1926년의 법정 투쟁 과정이 서사의 중심축이다.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철저하게 가네코 후미코라는 단독자의 내면과 실존에 카메라를 둔다. 사형 판결 이후 도치기 여자형무소로 이송되어 1926년 7월 23일 자사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록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던 <121일간의 옥중 투쟁>을 정밀하게 복원한다.

<장르적 문법과 톤앤매너>

<박열>: 대중 영화의 리듬감을 갖춘 시대극이자 법정 드라마의 형태를 취한다. 일본 제국주의 권력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과정에서 통쾌한 풍자와 유머, 역동적인 연대감을 적극 활용한다.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독방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정적이고 치열한 심리 드라마의 형식을 띤다. 후미코가 남긴 단가(短歌)를 낭독하며 그의 실존적 고뇌와 허무주의적 저항 의지를 시적(詩的)이고 묵직한 호흡으로 응시한다.

<저항과 '죽음'을 다루는 태도>

<박열>: 박열의 "나는 살아남아 끝까지 싸우겠다"는 생존 의지와 후미코의 결단이 대비를 이루며, 역사적 진실을 남기려는 '기록과 폭로'로서의 투쟁에 무게를 둔다.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국가 권력이 시혜처럼 내민 '은사(감형)'를 거부하고, 체제의 통제에 온몸으로 맞서 주체적으로 선택한 '죽음의 자유'를 탐구한다. 박열의 파트너라는 위치를 넘어 가부장제와 천황제 전체를 부정했던 급진적 아나키스트의 완성된 자의식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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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영화 박열 줄거리 평론, 2) 두 영화의 비교

1) 한국 영화 『박열』 줄거리와 평론

이준익 감독의 『박열』(2017)은 제목만 보면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의 전기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일본 제국을 상대로 벌인 공동의 정치극>에 더 가깝다. 영화는 1923년 관동대지진 뒤 벌어진 조선인 학살과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를 중심 사건으로 삼는다.

박열은 도쿄에서 인력거를 끌며 생활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 아나키스트들과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한다. 그는 천황제와 식민지배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급진적 청년이다. 그런데 그의 시 「개새끼」에 매혹된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가 그를 찾아온다. 후미코 역시 국가와 천황, 가족제도와 권위에 반감을 가진 아나키스트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전형적인 연애영화와 다르다. 서로에게 순종하거나 소유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동지가 된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장난스럽고 거칠고 때로는 우스꽝스럽다. 이것은 이준익 감독의 중요한 선택이다. 독립운동가를 엄숙한 성인으로 만들기보다 살아 있는 젊은 반역자로 그린다.

그러던 중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발생한다. 혼란 가운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고 일본 군·경과 자경단에 의해 수많은 조선인이 살해된다.

영화는 일본 정부가 이 학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박열을 이용했다고 해석한다. 박열이 이전부터 황태자 공격을 위한 폭탄 입수를 모색했던 사실을 확대하여 <천황가를 전복하려는 조선인의 거대한 음모>를 만들어냄으로써, 관동대학살에서 세간의 관심을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역전이 시작된다.

박열은 정부의 의도를 눈치채면서도 도망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자면,

<그렇다면 당신들이 만들어준 무대를 우리가 이용하겠다>

는 태도를 취한다.

후미코도 함께 대역죄 피고인이 되기를 선택한다.

따라서 재판은 일본 제국이 박열을 심판하는 장소에서 박열과 후미코가 <일본 제국을 심판하는 장소>로 뒤집힌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천황의 권위를 조롱하고, 조선인 학살을 폭로하고, 일본 제국의 도덕적 정당성을 공격한다. 재판에서 황제와 황태자를 상징하는 복장을 요구하는 등의 행동도 이 정치적 연극의 일부가 된다.

결국 두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되지만 곧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후미코는 감형을 천황의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후 두 사람은 떨어져 수감되고, 후미코는 1926년 감옥에서 죽는다. 박열은 장기간 복역하다 해방 이후인 1945년에 석방된다.

이 영화의 핵심은 <독립운동>보다 <제국의 권위 파괴>다

『박열』을 단순한 항일영화로 보면 영화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박열과 후미코는 일본인은 악하고 조선인은 선하다는 민족주의적 구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후미코 자신이 일본인이고, 불령사에도 일본인 동지가 존재한다.

두 사람이 공격하는 대상은 <일본인>이 아니라

<천황제·식민주의·국가권력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

그 자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일반적인 독립운동 영화보다 훨씬 아나키즘적이다.

<관동대학살>을 배경이 아니라 정치의 핵심으로 만든 점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폭탄사건보다 관동대학살이다.

박열 사건은 일본 정부가 학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조선인을 위험한 집단으로 만드는 데 이용된다. 실제 영화도 이 학살을 은폐하려는 국가의 정치적 필요와 박열의 대역사건을 직접 연결한다.

따라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꽤 현대적이다.

<국가는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를 희생양으로 만드는가?>

지진이라는 자연재난이 순식간에 인종적 폭력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박열』은 단순한 역사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화의 가장 훌륭한 인물은 사실 후미코다

흥미롭게도 제목은 『박열』인데 가장 강렬하게 남는 인물은 가네코 후미코다.

최희서가 연기하는 후미코는 박열에게 끌려다니는 일본 여성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자신의 사상을 가지고 박열을 선택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독립운동가와 그를 사랑한 일본 여자>

가 아니라

<서로 독립적인 두 반역자가 만난 것>

에 가깝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박열』 이후 한국에서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영화에는 한계도 있다. 후미코가 워낙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어지다 보니 그녀의 어린 시절 학대, 조선 체험, 사상적 변화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일부 평론에서도 후미코가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면서도 그녀의 사상적 동기가 충분히 탐구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바로 그 빈자리를 새 일본 영화 『金子文子 何が私をこうさせたか』가 파고든다고 볼 수 있다.


2)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비교

두 영화는 같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다루지만 시선은 거의 반대 방향이다.

『박열』(2017)『가네코 후미코』(2026)
제작국한국일본
중심인물박열 + 후미코가네코 후미코
핵심 시대관동대지진부터 재판후미코의 생애 + 마지막 121일
핵심 사건관동대학살과 대역사건후미코가 왜 반역자가 되었는가
주된 상대일본 제국정부국가·천황제·가부장제·권위
박열의 위치주인공후미코 인생의 중요한 동지
후미코의 위치공동주인공에 가까움절대적 중심
영화적 성격정치극·법정극·블랙코미디전기극·심리극·감옥극
중심 질문<어떻게 제국의 재판을 역이용할 것인가?><무엇이 한 여성을 반역자로 만들었는가?>

가장 큰 차이 1: <사건>과 <인간>

『박열』은 사건 중심이다.

관동대지진 → 조선인 학살 → 정부의 은폐 → 박열 사건 → 재판이라는 상당히 명확한 정치적 인과관계가 있다.

반면 『가네코 후미코』는 인간 형성의 과정에 관심이 있다.

<왜 후미코는 천황을 미워하게 되었는가?>

<왜 조선인의 처지에 공감했는가?>

<왜 죽음보다 국가의 은사를 더 모욕적으로 느꼈는가?>

따라서 『박열』이 <역사적 사건 속의 후미코>라면 새 영화는 <후미코의 내면에서 바라본 역사>다.


차이 2: 박열과 후미코의 관계도 달라진다

『박열』에서는 두 사람이 거의 대등한 공동주인공이다.

영화의 매력도 둘의 관계에서 나온다. 농담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함께 국가를 조롱한다.

그래서 『박열』의 핵심 단위는 <박열–후미코>다.

그러나 새 영화에서는 이 결합이 해체된다.

박열을 떼어내고 후미코를 혼자 세운다.

이 변화는 상당히 중요하다.

『박열』을 보고 나면 우리는 흔히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싸운 훌륭한 일본인 여성>

이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새 영화는 질문한다.

<박열을 만나기 전에도 가네코 후미코는 이미 누구였는가?>

그녀의 무적자 경험, 가족의 학대, 조선 생활, 여성으로서의 억압 등이 먼저 있었고, 박열은 그렇게 형성된 후미코가 만난 사상적 동지라는 것이다.

이것은 후미코의 역사적 주체성을 상당히 크게 회복한다.


3. 두 영화에서 조선의 의미도 다르다

『박열』에서 조선은 주로 <식민지배와 관동대학살의 피해자>다.

따라서 정치적 질문은 일본 제국이 조선인에게 무엇을 했는가에 집중한다.

반면 새 영화에서 조선은 후미코 자신의 사상이 만들어진 중요한 공간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조선에서 일본인 가족에게 학대를 받으면서 동시에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차별받는 광경을 본다.

여기서 매우 독특한 윤리적 인식이 형성된다.

<나는 일본인이지만 일본 사회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일본인이 조선인을 억압하는 것도 보고 있다.>

그래서 후미코는 피해자라는 위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에게 가해진 억압과 일본 제국이 조선인에게 가하는 억압 사이에서 <구조적 유사성>을 발견한다.

이것이 그녀가 단순한 친한파가 아니라 아나키스트가 되는 중요한 이유다.


4. 두 영화가 국가를 공격하는 방식

『박열』은 국가를 <웃음>으로 무너뜨린다.

박열과 후미코는 재판을 엄숙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국가가 자신들을 무서운 테러리스트로 만들어내려고 할수록 두 사람은 그 연극을 더 크게 만든다.

그래서 『박열』에는 독특한 유머가 있다. 사형을 앞둔 영화인데도 상당 부분이 우습다. 실제 평론에서도 이 영화의 비극적 소재와 경쾌하고 파격적인 서술 방식이 특징으로 지적됐다.

새 영화는 반대다.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국가와 개인이 일대일로 맞선다.

<감형해 주겠다.>

<거부한다.>

<살려주었으니 감사하라.>

<당신에게 살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

이런 구조다.

『박열』의 저항이 <공개적이고 공연적인 저항>이라면, 『가네코 후미코』의 저항은 <내면의 주권을 넘겨주지 않는 저항>이다.


5. 한국 영화와 일본 영화라는 차이

이것도 상당히 흥미롭다.

한국의 『박열』은 일본 제국이 조선인에게 저지른 국가폭력을 일본인 가네코와 함께 폭로한다.

반면 일본의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사회 내부에서 태어난 반역자를 통해 <일본 국가가 자국민에게 무엇을 요구했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두 영화를 함께 보면 가해자/피해자의 단순한 민족 구도가 무너진다.

일본인 후미코는 식민지배의 지배민족에 속하면서도 일본의 가부장제와 국가질서에서는 주변인이었다.

조선인 박열은 식민지 피지배민족이지만, 후미코와의 관계에서는 보호받는 피해자가 아니라 그녀와 대등한 동지다.

이 점에서 두 영화는 한일관계를 다룬 다른 많은 영화보다 훨씬 흥미롭다.


6. 어느 영화가 후미코를 더 잘 이해하게 하는가

후미코라는 사람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새 일본 영화가 더 깊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열』도 후미코를 매우 매력적으로 발견한 영화였다.

그래서 나는 두 영화를 이런 관계로 보고 싶다.

<『박열』이 가네코 후미코를 발견한 영화라면, 『가네코 후미코』는 그 발견된 인물을 박열에게서 다시 독립시키는 영화다.>

이것은 두 영화의 경쟁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2017년 한국 영화가 던진 질문을 9년 뒤 일본 영화가 다른 방향에서 이어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7. 두 영화를 함께 보면 더 크게 보이는 것

두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실 <한일 화해>라는 말보다 더 근본적인 무엇이다.

박열과 후미코는 서로의 민족을 화해시키려 만난 사람들이 아니다.

두 사람은

<국가가 인간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고 지배하고 죽일 권리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만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연대에는 민족주의를 넘어가는 힘이 있다.

관동대학살에서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죽었다.

후미코는 바로 그 순간 조선인이 아니면서도 조선인의 편에 선다.

그것은 “한국을 좋아했기 때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구도 출생한 민족이나 국가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훨씬 급진적인 윤리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영화는 한일관계의 역사영화인 동시에 <국가와 개인>, <민족과 인간>에 관한 영화다.

최종적으로 보면

『박열』의 가장 강력한 장면은 <두 사람이 함께 국가를 조롱하는 순간>이고,

『가네코 후미코』의 가장 강력한 순간은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후미코 혼자 국가와 마주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영화를 차례로 보면 한 사람의 모습이 완성된다.

<박열과 함께 있을 때의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이 없어도 가네코 후미코였던 사람>.

나는 후자가 특히 중요하다고 본다. 가네코를 단순히 <조선 독립운동을 도운 양심적인 일본인>으로 기억하면 그녀를 너무 작게 만드는 셈이다. 그녀는 조선 독립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간 위에 군림하는 권위 자체>를 문제 삼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이해하고 나면 박열과 후미코의 관계도 더 깊어진다. 두 사람은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가 국경을 넘어 사랑한 사례라기보다, <서로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함께 제국에 맞설 수 있었던 두 독립적인 인간>이었다. 그것이 두 영화를 함께 볼 때 가장 오래 남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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