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52 칼뱅의 제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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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의 제네바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52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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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프랑스에 르네상스를 꽃피운 프랑수아 1세가 라이벌이었던 카를로스 5세와의 파비아 전투에서 참패한 뒤 마드리드에 포로로 끌려가면서 정세가 급변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동안 왕실의 비호 아래 비교적 안정적인 입지를 유지하던 종교개혁가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왕권의 후원이 약화되자 개혁운동은 더 이상 온건한 형태로 머물 수 없었고, 오히려 억압 속에서 더욱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프랑스가 한층 과격한 종교개혁 사상을 낳게 된 데에는 이러한 정치적·종교적 긴장이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탄압은 사상을 잠재우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더 강한 확신으로 밀어붙이게 하는 법입니다.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 억압은 사상의 불씨를 더욱 크게 키워냅니다.

오늘은 이러한 격동의 흐름 속에서 마침내 등장하게 되는 한 인물을 살펴보려 합니다. 바로 철저하고 급진적인 개혁 사상을 펼쳤던 장 칼뱅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는지 함께 추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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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제52회 <칼뱅의 제네바>에 대한 요약과 비판적 평론입니다.

<요약>

  1. 제네바의 지정학적 독립과 종교개혁 수용 16세기 초 제네바는 사보이 공국의 정치적 지배와 사보이 가문 출신 가톨릭 주교의 종교적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제네바 시민들은 베른 등 스위스 동맹 도시들의 지원을 받아 사보이 세력과 주교를 축출하고 도시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이후 프랑스 출신 개혁가 기욤 파렐의 주도로 1536년 가톨릭 미사를 폐지하고 개신교 종교개혁을 공식 결의했다.

  2. 칼뱅의 제네바 도착과 1차 추방 1536년 스트라스부르로 가던 칼뱅은 제네바에 들렀다가 파렐의 강력한 권유로 종교개혁에 동참하게 되었다. 칼뱅과 파렐은 신앙고백문 채택, 엄격한 도덕 규율, 교회 중심의 출교권(성찬 금지권)을 요구했으나, 독립 직후 자유를 만끽하던 제네바 시민들과 시의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1538년 도시에서 추방당했다.

  3. 칼뱅의 복귀와 <교회 헌법(1541년)> 제정 칼뱅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마르틴 부처와 교류하며 목회 경험을 쌓은 뒤, 제네바 시의회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 1541년 제네바로 복귀했다. 그는 시의회와의 타협 끝에 <교회 헌법(Ordonnances ecclésiastiques)>을 공포하며 목사, 교사(박사), 장로, 집사의 4대 직분 제도를 확립했다.

  4. '컨시스토리(Consistoire)'와 근대적 공화주의 거버넌스 칼뱅은 목사들과 시민 대표인 장로들로 구성된 종교법원 성격의 기구인 <컨시스토리(치리회)>를 창설했다. 컨시스토리는 시민들의 신앙과 도덕 생활을 엄격히 감시·치리하는 동시에, 세속 시의회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의 영적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켜냈다. 목사와 평신도 대표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이 집단지도체제는 교황 중심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근대 장로회 제도와 대의제 민주공화정의 제도적 모태가 되었다.

<평론>

함재봉은 이번 글에서 칼뱅의 제네바 종교개혁을 단순한 신학적 교리 확립이 아니라, 사보이 공국의 봉건적 지배로부터 탈피하려던 <도시공화국의 독립 투쟁>, <세속 정치와 교회의 권력 분립>, <제도적 거버넌스 구축>이라는 입체적인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명쾌하게 풀어낸다. 특히 목사와 장로가 함께 교회를 다스리는 '컨시스토리' 모델을 서구 대의민주주의와 자치 제도의 원형으로 짚어낸 분석은 사상사적으로 매우 정교하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과 서사 구도를 비판적으로 엄밀하게 따져보면 다음과 같은 중대한 한계들이 드러난다.

첫째, <칼뱅의 제네바 신정체제가 지닌 독재성과 폭력성의 은폐>다. 저자는 컨시스토리를 세속 권력과 교회의 권력분립 및 대의제 훈련의 긍정적 모델로 조명한다. 하지만 역사적 실체로서의 컨시스토리는 시민들의 사생활, 의복, 춤, 오락까지 철저히 감시·통제하고 이견을 용납하지 않았던 엄격한 '도덕 경찰 국가'였다. 삼위일체를 부정한 미겔 세르베투스를 산 채로 화형에 처하고 정적들을 가혹하게 처형·추방했던 칼뱅주의의 광신과 불관용은 철저히 탈색되어 있다. 제네바 체제의 전체주의적 억압성을 거세한 채 오직 '근대 민주주의의 산파'로만 이상화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편향이다.

둘째, <도시공화국 발전사를 개신교만의 전유물로 환원하는 단선론>이다. 제네바의 자치와 공화정 전통은 종교개혁 이전부터 북이탈리아(베네치아, 피렌체)와 스위스 자치 도시들이 수백 년간 발전시켜 온 유럽 도시공화주의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러한 세속적 도시 자치 전통의 축적을 칼뱅의 <교회 헌법>과 개신교 장로회 제도의 독점적 성과인 것처럼 서술한다. 이는 복합적인 서구 정치사상사를 개신교 교회사로 축소시키는 오류다.

셋째, <외재적 제도 모델의 조선 투영을 향한 목적론적 빌드업>이다. 본 연재의 일관된 궤적은 서구의 '칼뱅주의 장로회 제도'를 근대 민주주의의 완성된 모형으로 전제한 뒤, 향후 19세기 말 조선에 전래된 장로교회가 성리학적 신분제를 해체하는 유일한 해방적 기제였음을 논증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접근은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 작동하던 향약, 유계(儒契), 민회 등 자생적인 자치·공론 공동체의 역동성을 '봉건적 잔재'로 격하하고, 오직 서구 개신교 제도만을 진정한 자치와 민주주의의 시원으로 떠받드는 외인론적 역사관을 강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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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한국인의 탄생』 52회

<칼뱅의 제네바> — 요약 + 평론

52회는 앞선 50회의 <칼뱅의 회심>, 51회의 <프랑스 복음주의와 종교 분열>에 이어 칼뱅이 어떻게 프랑스를 떠나 결국 제네바에 정착하게 되었는가를 추적한다. 그러나 이번 회의 진짜 주제는 단순한 여행 경로가 아니다.

함재봉이 강조하는 것은 <칼뱅이 처음부터 제네바에 가서 종교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계획을 가진 지도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정치적 격변, 개혁파 탄압, 우연한 이동, 전쟁으로 막힌 길, 친구와 동료들의 설득이 연속되면서 결국 제네바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우연의 연쇄 속에서 우리가 오늘날 <칼뱅주의>라고 부르는 개혁교회가 만들어진다.

이번 52회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칼뱅주의는 칼뱅 개인의 치밀한 장기계획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종교개혁·정치적 탄압·망명과 우연이 한 인간을 제네바로 밀어 넣으면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종교였다.>


1. 파비아 전투가 프랑스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다

함재봉은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수아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에게 패배하고 포로가 된 사건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동안 프랑수아 1세와 그의 누이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와 종교개혁적 지식인을 상당히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이 포로가 되어 마드리드에 억류되면서 그의 어머니 루이즈 드 사부아가 섭정을 맡는다.

함재봉의 설명에 따르면 루이즈는 개혁주의자들을 매우 싫어했고, 보수적 가톨릭 세력, 특히 소르본 대학 신학자들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개혁파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다.

책은 금서로 지정되고 불태워지고, 개혁적 지식인과 출판업자들도 공격받는다.

이에 르페브르, 루셀, 파렐 등 기존의 프랑스 개혁파들이 프랑스를 떠나 스트라스부르 등으로 피신한다.

함재봉은 이 사건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교회 안에서 점진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는 희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 탄압이 개혁운동을 없애기보다 급진화시킨다

함재봉은 이번 회에서도 51회의 중요한 주장을 반복한다.

<억압은 사상을 반드시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급진화시킬 수 있다.>

프랑수아 1세와 마르그리트는 처음에는 르네상스와 개혁운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그러나 독일 농민전쟁 같은 폭력적 혼란과 프랑스 내부의 종교갈등을 보면서 점차 조심스럽게 된다.

함재봉은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가 200여 년 뒤 프랑스혁명을 바라보며 느낀 공포를 끌어와 설명한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혁명이 가져올 살상과 혼란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프랑수아 1세에게도 생겼다는 것이다.

온건한 내부개혁의 가능성이 좁아질수록 파렐이나 칼뱅처럼

<기존 교회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교회를 세워야 한다>

고 생각하는 세력이 강해진다.


3. 함재봉에게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이번 회에서 상당히 중요한 이론적 대목이다.

우리는 흔히 르네상스를 미술·문학·건축의 부흥으로, 종교개혁을 기독교사의 사건으로 따로 배운다.

그러나 함재봉은 둘을 사실상 동일한 문명변동의 두 모습으로 본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가 고대 그리스·로마의 원전을 찾아 읽고 기존 권위를 비판했다면, 종교개혁자는 성서의 그리스어·히브리어 원전을 찾아 기존 교회의 해석을 비판했다.

따라서

<원전으로 돌아가라>

는 정신이 둘을 연결한다.

함재봉의 표현을 따르면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상당 부분 종교개혁자가 되었고,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와 인문주의가 낳은 가장 근본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였다.


4. 종교개혁은 언어혁명과 문학혁명이기도 했다

함재봉은 여기에서 다시 한글 성경과 연결될 중요한 논리를 제시한다.

성경을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독일어·영어 등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하려면 기존 언어에 없던 표현과 개념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단어와 문체, 표현방법이 생긴다.

그는 프랑스의 라블레와 영국의 셰익스피어를 예로 들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새로운 자국어 문학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즉,

<성서 번역 → 새로운 언어와 표현 → 문해력 확대 → 문학의 발전>

이라는 경로다.

그리고 이를 조선의 성서 번역과 연결한다.

성경을 조선말로 번역하려면 기존 조선어에 없던 개념을 표현해야 했고, 이것이 새로운 문학적 표현과 근대문학의 발전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5. 개인의 내면을 말하기 시작한다

이번 강의에서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근대적 개인의 내면>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함재봉은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가 쓴 <죄에 빠진 영혼의 거울> 같은 작품을 예로 든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인이나 성경 속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이 자기 자신의 종교적 경험과 내면을 말한다>

는 것이다.

신앙은 더 이상 교회 의식에 참여하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는가>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
<나는 어떻게 회심했는가>

를 자기 언어로 고백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함재봉은 이것을 근대소설의 탄생과도 연결한다.

밖의 객관적인 사건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과 사적 경험을 서술하는 문학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6. 엘리자베스 1세까지 연결되는 종교개혁과 인문주의

함재봉은 여기서 흥미로운 사례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든다.

11세 때 엘리자베스는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의 프랑스어 종교시를 영어로 번역했다고 설명한다.

함재봉에게 이것은 상징적이다.

엘리자베스는 훗날 영국의 개신교 질서를 확립한 군주이면서 동시에 르네상스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개신교 + 인문주의 + 개인적 고백 + 자국어 문학>

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근대적 문화세계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7. 1533년 파리대학 총장 취임연설 사건

52회의 중심 사건 가운데 하나는 니콜라 콥(Nicolas Cop)의 파리대학 총장 취임연설이다.

당시 파리대학은 프랑스 가톨릭 보수주의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새 총장이 된 콥이 <기독교 철학>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면서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성서해석에 가까운 내용을 제시한다.

특히 모든 기독교인이 직접 성경을 읽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자국어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들어간다.

문제는 콥 자신이 신학자가 아니라 의사였다는 것이다.

함재봉은 바로 이 점 때문에 누가 이 연설을 작성했는가가 논란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칼뱅의 친구 테오도르 베자의 전기에 따르면 그 연설문 작성에 칼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학계에서는 칼뱅이 전부 썼는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그 사건에서 칼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강하게 제시된다.

함재봉에게 이것은

<칼뱅이 프랑스 종교논쟁의 중앙무대에 공개적으로 등장한 순간>

이다.


8. 그 사건 이후 칼뱅은 도망자가 된다

니콜라 콥의 연설은 파리와 프랑스를 뒤흔든다.

결국 콥과 칼뱅 모두 도피한다.

칼뱅은 친구 루이 뒤 틸레의 집 등에서 숨어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연구와 집필을 시작한다.

함재봉은 이 시기의 칼뱅 일기 또는 회고를 소개한다.

칼뱅 자신은 평화롭고 조용하게 학자의 삶을 살고 싶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으며, 자신에게 뜻밖에 조용한 공부의 장소가 주어진 것도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중요한 복선이다.

칼뱅은 아직

<“나는 위대한 종교개혁자가 되어 새로운 교회를 만들겠다.”>

고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9. 1534년 벽보사건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1534년 10월 17일 이른바 <벽보사건, Affair of the Placards>이 일어난다.

급진 개혁파가 가톨릭 미사를 공격하는 내용의 벽보를 파리 곳곳에 붙인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가 프랑수아 1세의 침실 문에까지 붙는다.

함재봉은 이것이 프랑수아에게는 단순한 종교논쟁을 넘어

<왕에 대한 직접적인 정치적 도전>

처럼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한다.

프랑수아 1세는 그동안 개혁가를 상당 부분 보호했고 인문주의를 후원했지만, 이제는 그들을 반란세력처럼 보기 시작한다.

대대적인 탄압이 뒤따른다.

개혁주의자들이 체포되고 저서들이 압수되며 일부는 처형되고 수많은 사람이 추방된다.

함재봉은 이를 프랑스의 온건한 개혁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닫아버린 사건으로 본다.


10. 칼뱅은 결국 프랑스를 떠난다

벽보사건 이후 칼뱅은 더 이상 프랑스에 머물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그는 가능하면 자기 조국에서 학자와 개혁가로 활동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1534년 말 결국 친구와 함께 프랑스를 떠나 알자스를 거쳐 스트라스부르로 이동하고, 당시 대표적인 독일 종교개혁자였던 마르틴 부처에게 의탁한다.

그 뒤 좀 더 조용한 곳을 찾다가 스위스 바젤로 간다.


11. 바젤에서 『기독교 강요』를 완성하다

1535~1536년 칼뱅은 바젤에 머물면서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되는

<『기독교 강요』,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를 집필한다.

1536년 3월 초판이 출판된다.

함재봉은 이 시기를 칼뱅주의가 처음으로 체계적인 이론적 형태를 갖춘 순간으로 본다.

지금까지 성서읽기, 르네상스 인문주의, 법학, 회심, 종교논쟁 등으로 흩어져 있던 요소들이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의 체계로 정리되기 시작한다.

즉 아직 제네바 교회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칼뱅주의의 이론>이 먼저 형성되고 있었다.


12. 르네 드 프랑스와 페라라

바젤의 『기독교 강요』를 읽고 칼뱅에게 깊은 관심을 보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페라라 공작부인 르네 드 프랑스였다.

그녀는 프랑스 왕실 출신이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호의적이었다.

함재봉은 그녀가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와 마찬가지로 개혁주의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보호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칼뱅은 페라라까지 찾아가고, 그곳에서 다시 비교적 안전한 후원공간을 찾는다.

그러나 르네의 남편 에르콜레 2세 데스테는 가톨릭 전통을 지키려 했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13. 다시 프랑스로 — 그리고 마지막 고향 방문

1535년 프랑수아 1세는 <쿠시 칙령>을 발표한다.

과거를 뉘우치고 가톨릭교회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는 일부 개혁파에게 일정 기간 귀국 기회를 준다는 내용으로 설명된다.

칼뱅도 이를 이용해 마지막으로 고향 노용을 방문한다.

가족의 재산을 정리하고 땅을 처분한 뒤 남동생과 여동생을 데리고 다시 프랑스를 떠난다.

함재봉은 이것을

<칼뱅이 평생 마지막으로 고향 프랑스를 방문한 때>

라고 강조한다.

이제 그는 사실상 망명자가 된다.


14. 제네바는 원래 목적지가 아니었다

여기서 52회의 가장 극적인 부분이 등장한다.

칼뱅은 프랑스를 떠나 바젤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 사이의 전쟁 때문에 통상적인 길이 막힌다.

그래서 우회하여 제네바를 거쳐야 했다.

제네바는 그에게

<목적지>가 아니라 <하룻밤 묵고 갈 경유지>

였다.

칼뱅은 여관에 투숙하고 자신의 방문 사실도 알리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다니던 친구를 통해 기욤 파렐이 칼뱅이 제네바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5. 파렐의 유명한 설득

당시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추진하던 파렐은 즉시 칼뱅을 찾아온다.

칼뱅은

<나는 학자이고 공부하고 책을 쓰고 싶다>

며 제네바에 남을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파렐은 강하게 설득한다.

함재봉이 전하는 칼뱅의 회고에 따르면 파렐은 거의 위협에 가까운 말을 한다.

<지금 제네바의 종교개혁을 돕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 평안만 추구한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공부를 저주할 것이다.>

칼뱅은 이 말에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하려던 것은 조용히 공부하고 집필하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부름을 외면하는 이기적 행동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결국 그는 제네바에 남기로 한다.


16. 제네바에서 <개혁교회>가 탄생한다

이것이 역사적 전환점이다.

칼뱅이 제네바에 남으면서 지금까지 책으로 존재하던 종교개혁 사상이 실제 제도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함재봉은 이것을

<Reformed Church — 개혁교회>

의 제도적 완성으로 설명한다.

파렐이 칼뱅을 제네바에 묶어두었고, 칼뱅은 자신의 신학과 법학적 능력을 이용하여 교회의 조직과 제도를 만들어낸다.

그 뒤 존 녹스 같은 인물이 제네바에서 이 체제를 배우고 스코틀랜드로 가져가면서 장로교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보는

<칼뱅의 제네바>
→ <존 녹스>
→ <스코틀랜드 장로교>
→ <미국 장로교>
→ <조선의 장로교>

로 이어진다.

이것이 함재봉이 이 긴 유럽사를 한국 근대사와 연결하려는 궁극적인 이유다.


평론

1. 이번 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연>이라는 요소다

52회는 함재봉의 앞선 강의들과 조금 다른 흥미로운 측면을 보여준다.

앞선 강의들은 자칫

<르네상스 → 종교개혁 → 칼뱅주의 → 근대 → 미국 → 한국>

이라는 필연적 발전과정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 회의 칼뱅 개인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제네바에 갈 계획도 없었고, 지도자가 될 생각도 없었으며, 오히려 조용히 연구하고 집필하려 했다.

전쟁 때문에 길이 막혔고, 우연히 제네바에 들렀고, 친구가 그의 방문을 알렸으며, 파렐이 찾아와 강제로 가까울 정도로 설득했다.

즉 오늘날 세계사적으로 거대한 영향을 준 <칼뱅의 제네바>는 상당 부분 우연의 산물이었다.

이것은 역사 이해에서 매우 중요한 점이다.


2. 함재봉 자신의 단선적인 문명사관을 이번 회가 오히려 수정해 준다

지금까지 함재봉의 논리를 따르면 거의

<칼뱅주의가 근대화를 향해 발전해 간다>

는 식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52회에 나타나는 실제 역사는 훨씬 복잡하다.

온건한 개혁이 있었다.
탄압이 있었다.
후퇴가 있었다.
망명이 있었다.
국제전쟁이 있었다.
우연한 길 변경이 있었다.
개인의 망설임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제네바가 탄생했다.

따라서 근대는 예정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특정 조건과 우연을 통해 살아남은 결과>

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3. <탄압이 급진주의를 만든다>는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51회와 52회를 함께 보면 이 부분이 특히 분명하다.

처음의 르페브르나 브리소네 같은 사람들은 가톨릭교회를 완전히 떠나려 하지 않았다.

프랑수아 1세와 마르그리트 역시 어느 정도 개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르본의 탄압, 독일 농민전쟁에 대한 공포, 벽보사건 등이 반복되면서 중간지대가 점점 사라진다.

그 결과

<내부개혁파>

<완전한 분리파>

사이의 경계가 선명해진다.

칼뱅은 결국 후자에 속하게 된다.

이것은 종교개혁을 단순히 <새로운 신학이 승리한 사건>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4. 다만 함재봉의 <르네상스 = 종교개혁>이라는 명제는 조금 강하다

두 운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있다.

특히

<원전 연구>
<언어 능력>
<기존 권위에 대한 비판>

이라는 공통점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르네상스 인문주의자가 종교개혁자가 된 것은 아니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도 있었다.

따라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같은 것이다”>

보다는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한 핵심 지적 자원 가운데 하나였다”>

고 표현하는 편이 역사적으로 더 안전하다.


5. <성서 번역 → 근대문학>이라는 설명 역시 중요하지만 과장될 수 있다

함재봉은 성서의 자국어 번역과 라블레·셰익스피어·근대소설의 탄생을 강하게 연결한다.

매우 흥미로운 통찰이다.

특히 개인의 신앙경험을 자기 언어로 고백하는 문화와

<근대적 자아의 출현>

을 연결한 것은 생각해 볼 가치가 크다.

그러나 근대문학의 탄생에는 인쇄시장, 도시화, 고전문학의 재발견, 교육 확대 등 다른 조건도 중요했다.

따라서 성서 번역이 근대문학을 <만들었다>기보다, 근대적 자국어와 내면적 글쓰기의 발전을 강하게 촉진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6. 이번 회는 오히려 <개혁자의 신화>를 깨뜨린다

흥미롭게도 함재봉이 칼뱅의 중요성을 매우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번 회에서는 칼뱅을 영웅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칼뱅은

<내가 세상을 바꾸겠다>

며 뛰쳐나온 사람이 아니다.

도망가고, 숨어 지내고, 조용히 공부하고 싶어 하고, 제네바에서도 빨리 떠나려고 했다.

파렐에게 붙잡히다시피 해서 남는다.

이 모습은 오히려 역사적으로 흥미롭다.

후대에는 <위대한 사상가>가 된 사람이 당시에는 자신의 역할을 거의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함재봉 자신의 표현처럼 칼뱅이 제네바까지 오는 과정은 <우연과 기적의 연속>처럼 보인다.


7. 그리고 이것이 <한국인의 탄생>이라는 문제에 중요한 이유

이 시리즈의 목적은 결국 유럽사가 아니라 한국사를 설명하는 것이다.

함재봉의 머릿속에는 계속 다음 계보가 있다.

<제네바 칼뱅>
→ <개혁교회>
→ <존 녹스와 장로교>
→ <영미 개신교>
→ <미국 선교사>
→ <조선>

그렇다면 52회의 핵심 의미는 한국 개신교의 제도적 뿌리를 제네바까지 추적하는 데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매우 익숙하게 생각하는

  • 목사
  • 장로
  • 집사
  • 설교 중심의 예배
  • 성경공부
  • 엄격한 생활규율
  • 교회의 조직적 운영

같은 것이 어느 날 조선에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유럽과 미국을 거쳐 들어온 역사적 제도라는 시각이다.


8. 그러나 앞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나는 여기서 함재봉의 논리를 한 단계 더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네바 → 스코틀랜드 → 미국 → 조선>

이라는 계보가 있다고 해서 그 내용이 그대로 전달된 것은 아니다.

칼뱅의 16세기 제네바 교회와 19세기 미국 장로교는 이미 상당히 다른 종교문화였다.

그리고 그것이 조선에 들어와 다시

  • 유교적 가족문화
  • 한글문화
  • 조선의 신분질서
  • 민족주의
  • 식민지 경험

과 만나 또 다른 형태로 변형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칼뱅주의의 전파> 자체보다 <칼뱅주의의 변형>이다.


전체 평가

52회는 45회부터 이어진 칼뱅 논의 가운데 역사적 드라마가 가장 강한 회다.

그 핵심은 역설적이다.

<칼뱅은 제네바를 선택하지 않았다. 제네바가 칼뱅을 붙잡았다.>

칼뱅은 조용한 학자의 삶을 원했다. 프랑스에서 종교전쟁의 지도자가 되려 하지도 않았고 새로운 국제적 교파를 만들 계획도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탄압 때문에 망명하고, 『기독교 강요』를 쓰고, 전쟁 때문에 바젤로 가는 길이 막혀 우연히 제네바에 들렀으며, 그곳에서 파렐의 강력한 설득을 받아 남는다.

그리고 그 우연한 정착이 이후 세계 개신교사의 거대한 분기점이 된다.

이 점에서 이번 52회는 함재봉의 지금까지의 설명을 오히려 더 깊게 만들어준다.

근대가 탄생한 것은 어떤 하나의 사상이 예정된 순서에 따라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탄압·망명·번역·인쇄·인문주의·개인의 회심·우연한 만남>

이 끊임없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은 조선의 근대 역시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말 조선에 개신교가 들어와 한국 근대의 중요한 한 흐름이 된 것도 <서구 문명이 우월해서 필연적으로 승리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보다, 조선왕조의 위기와 국제정세, 선교사들의 우연한 선택, 조선인 개종자들의 능동적인 해석과 번역, 교육과 정치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만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그런 의미에서 52회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칼뱅주의가 무엇인가>보다 오히려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는 계보가 있지만, 계보가 곧 필연은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 관점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제네바에서 만들어진 칼뱅주의가 스코틀랜드·미국을 거쳐 조선에서 어떻게 <한국적인 개신교>로 다시 만들어졌는지를 보는 것이 『한국인의 탄생』을 가장 생산적으로 읽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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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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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4 seconds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0:077 seconds지난 시간에 어 프랑스의 인문주의를 꽃 피우게 했던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0:1414 seconds가져온 프랑스와 1세가 자기의 그 라이벌인 어 합스부르 왕국 그러니까는
0:2222 seconds신송로마 제국의 카로스 오세와 하비아 전투에서 대패해서 포로로 마드리드에 잡혀가는 바람에
0:3131 seconds그동안의 왕실이 뒷받침을 해줬던 종교 개혁가들의 입지가 가 본격적으로
0:3838 seconds흔들립니다. 이것이 프랑스가 보다 더 극진적인 종교 개혁들을 양산하게 되는
0:4545 seconds결정적인 계획입니다. 왜? 그 개혁자주의자들을 탄압을 하기 시작하니까이 사람들이
0:5353 seconds급진 주의로 갑니다. 모든 혁명은 항상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일어납니다.
1:001 minute오늘은이 과정을 거쳐서 칼뱅이라는 극단적인 종교 개혁가가 프랑스에서
1:071 minute, 7 seconds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1:251 minute, 25 seconds파비아의 전투에서 대패한 어 프랑스와 일세가 마드리드의 2년 동안 이제 포로로 어 감금되어 있는
1:351 minute, 35 seconds상황에서 그 프랑스와 1세와 마그레트 나바르의 어머니인 모친인 루이즈 사브아가
1:451 minute, 45 seconds섭정을 합니다. 그런데이 루이즈가 그렇게 개혁주의자들 싫어했고 뭐모임을 싫어했습니다. 그동안에
1:541 minute, 54 seconds그렇지 않아도이 개혁주의자들의 어 인문주의자들에 대해서 못 만땅했던
2:012 minutes, 1 second솔르보느 대학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 그죠? 이제 카톨릭 어 보수파들이
2:082 minutes, 8 seconds역공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특히 파비아의 전투에서 그렇게 참패를 한 이유가 프랑스가 이단인 개혁주의자들을
2:172 minutes, 17 seconds허용했기 때문에 신이 벌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본격적으로 개혁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합니다. 그래서이 사람들이 책을
2:262 minutes, 26 seconds금소로 만들고 책을 공개적으로 불을 태우고 어 공격을 하기 어
2:332 minutes, 33 seconds시작합니다. 그래서이 개혁주의자들의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들 그런 책을
2:412 minutes, 41 seconds파는 그 상점들도 전부 다 위협을 받기 시작하고 책을 걷둬하고 불태우고
2:482 minutes, 48 seconds그리고 이제 특히 모임에 가담하고 있었던 인문주의자들, 개혁주의자들
2:542 minutes, 54 seconds브리소네를 비롯한이 모든 사람들이 렐른 모든 사람들이 이단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프랑스와는 마드리드
3:033 minutes, 3 seconds과목에서 물론 어떻게서든지이 개혁주의자들, 인문주의자들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뭐 역부적이었고요.
3:113 minutes, 11 seconds그 사이에 모모임의 핵심
3:163 minutes, 16 seconds인사들은 뭐 루페브르, 루셀, 어 카롤리, 파렐은
3:253 minutes, 25 seconds결국은 모에서 배하지 못하고 탈출합니다. 그러면서 그때 이제 스트라즈브르크 그 유명한
3:323 minutes, 32 seconds스트라즈브르크에 모여듭니다. 거기는 비록 영토는 신성검 제국의 영토였지만이
3:403 minutes, 40 seconds스트라즈브는 개혁주의자들의 피난처 같은 열린 도시였기 때문에 그곳에 전부 다 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3:483 minutes, 48 seconds프랑스와일세는 2년 후인 1526년에 이제 석방이 돼서 귀국을 하면서 다시 개혁주의자들을 어 그 해 저 지원을 합니다.
4:004 minutes그렇지만 역시 한번 이렇게 흩어지고 깨지는데 원래로 돌아갈 방법은 물론 없었죠. 그리고 여기서 나간 사람들이
4:094 minutes, 9 seconds결국은 곧 잠깐 프랑스와 1세의 어머니가 섭정을 하는 동안에 일어났던 탄압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4:184 minutes, 18 seconds바깥 세상으로 흩어 프랑스 외부로 어 그 흩어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급진 개혁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4:284 minutes, 28 seconds사실 그 프랑스와 1세나 어 마르게나 나바르나 인문주의자들 르네상스 어
4:374 minutes, 37 seconds그다음에 종교 개혁가들을 지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호를 했지만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그 독일의
4:454 minutes, 45 seconds농민 전쟁 같은 것이 벌어지는 거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지는 거를 보고서는 급진적인 루터식 그런
4:544 minutes, 54 seconds급진적인 종교까지는 갈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합니다.
4:594 minutes, 59 seconds교회 기존 교회 내부에서의 어 개혁을 어 꿈꾸게 되지 그 바깥으로 나가는 개혁은 사실은 꿈을 꾸지 못하게
5:075 minutes, 7 seconds됩니다. 어 영국에서 어 같은 사람이 프랑스 대혁명의 참상을
5:155 minutes, 15 seconds보면서 야 아무리 우리도 개혁을 해야 되고 고쳐야 되지만 프랑스에서
5:225 minutes, 22 seconds일어나는 저렇게한 참 저런 참상은 우린 따라가면 안 된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는 그 에드먼 훨씬
5:305 minutes, 30 seconds이전이지만 프랑스 혁명이 이전이지만 200년 전에이 새로운 종교 개혁이 일어날 때도이 혁명이 일어날 때에도
5:385 minutes, 38 seconds그 혁명이 가져다 주는 너무나 피비에 나는 그 살상이 이뤄지고 그 대혼란이
5:455 minutes, 45 seconds이러는 것을 그것까지는 도저히 안 되겠다 그러면서 결국은 급극단적인 급진 개혁까지 급진적인 종교 개혁까지 못합니다. 합니다.
5:565 minutes, 56 seconds이때에 칼뱅은 그다음에 팔렐 이런 급진 개혁가들은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6:046 minutes, 4 seconds제가이 종교 개혁에 대해서 개신교가 탄생되는 과정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6:106 minutes, 10 seconds여러 차례 어 반복해서 강조하면서 말씀드렸지만은 그 인문주의하고 종교 개혁 르네상스는
6:206 minutes, 20 seconds같은 겁니다. 동시대에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르네상스나 인본주의가 어떤 문화적인 측면에서 더
6:286 minutes, 28 seconds아름다운 뭐 건축이 나오고 조각이 나오고 그림이 나온다라든가 새로운 그런 그 그 사조가 나온다라든가
6:376 minutes, 37 seconds문학적으로 뭐가 나왔다다. 보통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변화는 종교
6:446 minutes, 44 seconds개혁이었습니다. 그 종교 개혁이 인문학과 르네상스가 옵션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6:526 minutes, 52 seconds특히 프랑스에서 보면은 인문주의와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은 그냥 같은 겁니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은 종교 개혁가들이었습니다.
7:047 minutes, 4 seconds르네상스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사실은 종교 개혁가들이었던 거죠. 그리고 이제 인문학이라는 거 자체가 카톨릭
7:127 minutes, 12 seconds교회에 말하자면 저항을 하면서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러한 흐름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문학이죠. 프랑스의
7:217 minutes, 21 seconds쉐스피어라고 불리는 저 라블레 같은 사람 프랑스 근대 인문학의 아버지인 사람이죠. 근데 문학의 아버지입니다.
7:297 minutes, 29 seconds프랑스와 라블레라는 사람도 바로이 시대에이 사람이 쓴 이제 팡타그레이라는
7:367 minutes, 36 seconds유명한 풍자 글인데 그게 이제 소르본의 박사들을 풍자하는 글이거든요. 근데 그 풍자하는 글이
7:447 minutes, 44 seconds거기서 그 사용하는 그 거기서 사용하는 그 문학적 기법들 이런 코메디 코 웃기게 만들고 하는 그런
7:547 minutes, 54 seconds얘기들 그리고 실제로 라블레가 불어에 없었던 수백개의 신조들을 만들어내면서 황타그로에를 씁니다.
8:058 minutes, 5 seconds달라진게 아니라 새로운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없었던 언어를 만들어내는 거고 그렇게 해서 영문학이 나오는
8:148 minutes, 14 seconds거고 그렇게 해서 불문학이 프랑스 문학이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조선에서도 성서를
8:228 minutes, 22 seconds언문으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전혀 쓰지 않았던 조선말에는 없는 그러한 수많은
8:318 minutes, 31 seconds용어들, 단어들, 표현들이 성서에 나올 거 아닙니까?
8:358 minutes, 35 seconds그거를 번역을 해내기 위해서 조선말에 전혀 없었던 새 말들을 만들어 내야 되는 거죠. 새 문학 기법들을
8:438 minutes, 43 seconds만들어내고 새 표현법들을 만들어내야 되는 거죠.
8:488 minutes, 48 seconds그러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새문 완전히 새로운 문학이 나오는 거를 그걸 이름하여 우리가 근대문학이라고
8:578 minutes, 57 seconds조선의 근대문학이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9:019 minutes, 1 second서양했어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지금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와 라블레라는 사람이 대표적으로
9:099 minutes, 9 seconds역시 종교 개혁 문제를 다루면서 지금 기존의 구교인 소르본누의 박사들이 신학
9:189 minutes, 18 seconds박사들이 신학대학이 대표하는이 종교가 잘못됐다라는 거를 온갖 풍자를 하면서
9:279 minutes, 27 seconds비꼬우면서 새로운 표현력과 새로운 걸로 해서 번역을 해내니까 그게 이제 쉐스피어의
9:349 minutes, 34 seconds글을 보고 쉐스피어 때문에 영국 문학이 나오듯이 라블레를 보면서 와
9:419 minutes, 41 seconds프랑스도 이런 말이 있는 거구나 우리가 아 이런 표현을 쓸 수가 있는 거구나 그리고 특히 이제 그런 책들을
9:479 minutes, 47 seconds읽으면서 보통 일반 프랑스인들의 문회력이 점점 점점 높아지는 거고 글을 쓸 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거고
9:579 minutes, 57 seconds그야말로 문학이 나오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칼뱅도 바로이 시대에 살았던 거죠. 종교
10:0510 minutes, 5 seconds개혁이라는 것을 떼어놓고 볼게 아니라 르네상스 인문주의라는대 문명적 대전환기에
10:1410 minutes, 14 seconds일어났던 일이고 그 문명적 전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게 종교 개혁이었던
10:2210 minutes, 22 seconds것입니다. 또 하나 역사의 참 재밌는 그 내용인데요. 이게 뭐냐면은 이때에 이제 그 소르붙는 대학에서 온갖
10:3010 minutes, 30 seconds책들을 금서로 정할 때 죄에 빠진 영혼의 거울이라는 그런 시가 있었습니다. 근데이 시가
10:4010 minutes, 40 seconds굉장히 유행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의 내용이 뭐냐면은 굉장히 깊은 영성적인 체험을 하한
10:4710 minutes, 47 seconds어떤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아버지, 오빠 또는 연인으로 이렇게 표현을 하면서
10:5510 minutes, 55 seconds굉장히 강렬한 신앙 고백을 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이 하나님을 신을 만나고 이제 이런 얘기 얘기
11:0311 minutes, 3 seconds아닙니까? 그러니까 이제 교회에서는 이걸 금서로이 시조차도 금서로 정합니다. 제도나 절 교회의
11:1111 minutes, 11 seconds전례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성서를 읽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면서
11:2011 minutes, 20 seconds사적인 경험을 하고 영성적인 체험을 해야지 되는 거고 그거를 이제 표현하는 것이 신앙을 고백을 하는
11:2711 minutes, 27 seconds것이고 이게 이제 루터 같은 사람들이 강조를 했던 거죠. 개혁주의자들이.
11:3311 minutes, 33 seconds그러니까 빠리의 소르본 대학의 신학 대학에서 신학자들이 금서를 지정하는이
11:3911 minutes, 39 seconds대표적인 그 당시에 유행 첨단 유행을 했던 그 시의 저자가 누구냐면 마가레트 나바르입니다.
11:4811 minutes, 48 seconds마르게트 나바르가 아까도 전에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죠. 프랑스 최초의 근대 여성이라고 하는 것이 뭐
11:5511 minutes, 55 seconds개혁주의자들을 돕고 정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많이 알고 한 것뿐만 아니라 착가였습니다.
12:0212 minutes, 2 seconds본인이 문학 작품을 써내기 시작하는 거죠. 이게 근대인입니다. 자기 내부에 있는 이야기들을 나의 사적인
12:1112 minutes, 11 seconds경험들을 글로서 써내기 시작하는게 그게 뭡니까? 그게 근대문학 소설인 거죠.
12:1812 minutes, 18 seconds바깥에 있었던 역사 얘기나 뭐 성 성경에 있었던 얘기나 이런 것만 하는게 아니라 뭡니까? 순전히 사적인
12:2612 minutes, 26 seconds체험, 사적인 경험을 하면서 그거를 자기의 말로 자기의 말로 고백을 해내는 거죠.
12:3512 minutes, 35 seconds그게 소설입니다. 그게 근대 소설이 옛날 조훈만 잔뜩 있는 권선 증악기만
12:4212 minutes, 42 seconds있는 그런 소설들과 홍길동전하고도 다르고 그 전에 어떤 홍로 뭐 다 다른 이유가 뭡니까? 근대 소설이라는
12:5012 minutes, 50 seconds건 내면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 그다음에 그 주인공들의 사적인 체험
12:5712 minutes, 57 seconds그런 근대 문학의 첫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마르게트 나바르가 쓴
13:0413 minutes, 4 seconds죄에 빠진 영혼의 거울이라는 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는게 아닙니다.이 이 시를이 시를
13:1413 minutes, 14 seconds1544년에 엘리자베스라는 11살짜리 여자 여아가 번역을 합니다. 영어로. 그게 누구냐면 엘리자베스 여왕입니다.
13:2513 minutes, 25 seconds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그니까 엘리자베트 1세가 어머니 앤볼린이
13:3213 minutes, 32 seconds처형을 당하고 그렇죠. 그러니까 아버지 헨리팔세가 종교 자기 원래
13:3913 minutes, 39 seconds부인이었던 스페인의 카트린과 이혼을 하겠다고 그래서 이혼을 안 시켜 주니까 교회를 탈퇴해서 나와서
13:4813 minutes, 48 seconds종교 개혁을 영국의 종교 계획을 일으켜서 성공회를 일으켰고 그리고 결국은 캐린을 쫓아내고 이혼을 해
13:5713 minutes, 57 seconds버리고 강제로 이혼을 하고 그다음에 앤보올린이랑 앤볼린이랑 3년 동안 천일의 앤이죠. 3년 동안
14:0614 minutes, 6 seconds같이 살다가 아들을 앤이 못 낳고 아들을 사산이 되고 그 그러니까 결국은 이혼을 또 시키고 처형을 시켜
14:1514 minutes, 15 seconds버리는 거죠. 그래서 천일이라는 영화에 대해서도 제가 말씀드리고 그랬었는데 그런데 그 엘리자베스가
14:2314 minutes, 23 seconds어머니 처형이 됐지 그러면서 어느 성에 유패돼서 어린 시절 굉장히 부루하고 불안
14:3214 minutes, 32 seconds속에서 살면서 근데 그때 11살 때 마그리트드나바르의 그 불어로 된 시를
14:4214 minutes, 42 seconds보고서 그거를 영어로 번역을 하고 그때 당시에 자기 개모인 앙리의
14:5114 minutes, 51 seconds세 번째가네 번째 부인한테 그 시를 자기가 바칩니다. 살짜리 엘리자베스가 그리고 그때에 그
15:0015 minutes엘리사베스가 그 책을 만들어서 책 표지를 위해서 이렇게 뜨개질를 해 갖고 그때 하여튼 만들었다라는 그
15:0715 minutes, 7 seconds표지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고 옥스포드 대학의 보들레안 그 유명한 보들레안 그 도서관에 그 그 표지가
15:1615 minutes, 16 seconds아직도 어이 사진에 나오는 표지가 보관이 되어 있다고 그러는데 그러니까 엘리자베스도 인문주의자였죠.
15:2515 minutes, 25 seconds그리고 개신교도였던 거죠. 그러니까 엘리베스 밑에서 쉐스피어 같은 그러한
15:3215 minutes, 32 seconds그니까 고해가 고백하는 거 개인의 체험을 하고 개인의 거를 고백해내는
15:3815 minutes, 38 seconds아주 전형적인 근대적인 문학 근대인의 심리
15:4415 minutes, 44 seconds금대인의 내면 세계 이런 인문학 소위 말한 인문학이 본격적으로 탄생을 하는데 바로 이것도 종교 개혁의
15:5315 minutes, 53 seconds와중에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마그레이트가 이제 가만히 안 있겠죠.
15:5915 minutes, 59 seconds야, 감히 자기 남동생 프랑스와테 가서 감히 인간들이 내 씨를 금서해.
16:0616 minutes, 6 seconds이게 말인데 그러니까 이제 안 된다고 그래 갖고 다시 다 집어서 소르본의 신학자들이 신학대학 사람들이 전부 다
16:1416 minutes, 14 seconds왕 앞에 끌려 갖고 조사를 받기 시작을 하고 거꾸로 이제 비난의 대상이 되고 그럽니다. 그래서 사실
16:2116 minutes, 21 seconds어떻게 보면은 모든 상황이 프랑스와 이세가 포로로 잡혀갔다 와 갖고 여러 가지 상황이 다시 개혁주의자들한테
16:3116 minutes, 31 seconds종교 개혁가들한테 유리한 인문주의자들한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가 되는 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16:3916 minutes, 39 seconds1533년에 또 새로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16:4316 minutes, 43 seconds두쌍이라는게 all the SA라는 뜻이죠.
16:4716 minutes, 47 seconds불어로 어드 모든 성인 대축일이라는 날인데 그날 대학 그 파리 대학의
16:5416 minutes, 54 seconds신인총장으로 니콜라스이라는 사람이 빠리 대학에 총정이 돼 갖고 취임
17:0217 minutes, 2 seconds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연설 제목은 기독교 철학이었어요. 문제가 뭐냐면은 지금 이게 빠리 대학이면은
17:1217 minutes, 12 seconds프랑스의 카톨릭 이게 본산 보루 보수주의의 보루인데
17:1817 minutes, 18 seconds거기에 총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기독교 철학이라는 제목에 취임 연설을 하면서
17:2617 minutes, 26 seconds그 성서 해석을 보니까 전부 다 에라스무스랑 루터의 성경 해석을 따르는 내용으로
17:3417 minutes, 34 seconds가득자 있습니다. 그리고 연설의 첫 부분이 뭐였었냐면은 에라스무스가 1516년에
17:4217 minutes, 42 seconds라틴 성경을 이제 번역을 해서 내지 않습니까? 그 거기에 서문격으로 파라클레시스라는
17:5217 minutes, 52 seconds글을 에라스무스가 씁니다. 그니까 라틴어 성서 번역을 새롭게 자기가 해내면서
18:0018 minutes입문학자로서 최고의 학문적 권위와 배움을 동원을 해서 카톨릭 교회에서 쓰는 성경이 잘못됐다
18:0718 minutes, 7 seconds그러면서 완전히 새 성경 새 번역 성경을 내면서 거기에 서문에다가 파라클레시스라는
18:1418 minutes, 14 seconds글을 썼는데 그 내용을 레러스무스의 그 글 내용을 고대로 컵이 자기 취임사에다가 인용을 한 겁니다.
18:2318 minutes, 23 seconds그러니까이 파라클래시스라는게 뭐냐면은 왜 성경을 공부해야 되는가?
18:3118 minutes, 31 seconds모든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공부해야 된다.라는 거를 강조를 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18:3818 minutes, 38 seconds에레슨스가 뭐라고 썼냐면요. 그 그리스도의 철학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돼 있다.
18:5118 minutes, 51 seconds누구나 자기 나라 말의 언어로 그리스도의 철학을 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그렇게 써
18:5918 minutes, 59 seconds놓은 거다.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가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면서 각자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 말로, 독일 사람은 독일 말로, 조선 사람은 조선 말로
19:0819 minutes, 8 seconds그 그리스도의 말을 말씀을 복음을 그대로 받아야 되 받아들여야 되고 그렇게 해 줘야 된다는 거죠.
19:1619 minutes, 16 seconds그러니까 교회가 그런 성서들 번역을 다 금지를 시키고 불같아 라틴 말로만 된 성를 만들었는데 이건 절대 안 된다. 에라스가 뭐라고 했어요?
19:2819 minutes, 28 seconds성서를 새롭게 번역하면서 아무나 성서는 읽을 수 있어야 되고 쉬운 말로 돼 있어야 되는 거고 그 성소의
19:3519 minutes, 35 seconds내용을 이해한다라는 것은 교회가 지정한 학술적인 어떤 방법론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뭡니까? 각자가
19:4219 minutes, 42 seconds읽으면서 순전히 자기의 신앙적인 체험, 애면 세계 변화 그것이 종교의 핵심이고 신앙의
19:5219 minutes, 52 seconds핵심이라고 그렇게 썼던 에라스무스의 글을 지금 프랑스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19:5919 minutes, 59 seconds프랑스의 카톨릭 교회의 보르인 빠리 대학의 총장이 취임을 하면서 그거를 정 자기의 취인사에다 쓴 거죠.
20:0920 minutes, 9 seconds그런데 더 문제가 뭡니 뭔지 아십니까? 새로 부임한이 컵은 의사였어요.
20:1620 minutes, 16 seconds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는 지금 자기가 읽은 연설문에 있는이 굉장히
20:2520 minutes, 25 seconds첨단적인 신학 논쟁과 철학 논쟁과 모든 문논문학적 인문학적 논쟁의 그
20:3320 minutes, 33 seconds내용들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20:3720 minutes, 37 seconds그러니까 그 사람은 지금 자기의 연설문이 담고 있는 그 내용이 얼마나
20:4420 minutes, 44 seconds지금 첨단 철학적이고 사상적이고 그런 논쟁의 핵심적인 건지도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러니까 읽었겠죠.
20:5420 minutes, 54 seconds그리고 그 내용을 파악하고 있을 수 있는 정도의 신학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어요.
21:0321 minutes, 3 seconds그러니까 누구 누가 보더라도 명확 관화해진 것이 뭐냐면 이거는 컵 자신이 쓴게 아니다라는 거였습니다.
21:1321 minutes, 13 seconds본인이 쓴 취임사가 아니다.이 이 사람이 이렇게 지독하게 과격하게
21:2021 minutes, 20 seconds개혁주의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이런 거를 겁도 없이 빠리 대학 총장으로 부임하면서 그거를 읽었을 썼을 수도
21:2921 minutes, 29 seconds없고 읽었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뭡니까? 누가 쓴 거냐? 어떤 놈이 이거를 써서 코한테 줘서 아무것도
21:3721 minutes, 37 seconds모르는 의사로 하여금 이런 걸 읽어서 이렇게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이일 벌린 놈이 누구냐 하면서 그때부터이 연설문을 쓴 놈이 누구냐고 색출 작업을 시작합니다.
21:4921 minutes, 49 seconds그런데 칼뱅의 전기를 쓴 평 칼뱅의 평생 동지였고 칼뱅을 나중에 칼뱅이
21:5921 minutes, 59 seconds돌아간 다음부터는 제네바 교회의 그 지도자의 역할을 물려받은 베사라는
22:0622 minutes, 6 seconds친구가 있었는데이 배사가 칼뱅의 전기를 두 번이나 씁니다. 근데 그 배자가 쓴 칼뱅의 전기에 의하면은이
22:1622 minutes, 16 seconds코의 취임 연설문을 칼뱅이 썼다는 거.
22:2122 minutes, 21 seconds학자들은 후대 학자들은 칼뱅이 이걸 진짜 다 썼는지에 대한 여부는 아직도 논쟁이 많습니다.
22:3222 minutes, 32 seconds그렇지만 분명한 거는 칼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다. 여러 사람이 썼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도
22:3922 minutes, 39 seconds썼었고 할지 모르겠지만 칼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었던 것만은 사실이고 그리고 그렇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22:4822 minutes, 48 seconds시작합니다. 어떻게 보면 칼뱅이 국내 학계 최고 무대에 이제 본격적으로 등장을 하게 되는 그런 결정적인
22:5722 minutes, 57 seconds계획입니다. 칼뱅이 뭔가 여기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프랑스가 뒤집어집니다.
23:1123 minutes, 11 seconds법률 방송이 출간하는 시사 교양지 법치와 자유. 2025년 겨울호가
23:1723 minutes, 17 seconds최근에 출간되었습니다.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3:2923 minutes, 29 seconds20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23:3923 minutes, 39 seconds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23:5123 minutes, 51 seconds우선 컵은 컵 본인은 총장 취입을 못 합니다. 취임은 커녕 사실 본인은 별 죄가 없는 거죠.
24:0124 minutes, 1 second뭔지도 모르고 읽었죠. 누가 좋은 거라서 읽었는데 나라가 나라가 뒤집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스위스 빠젤로 그냥 도망을 쳐버린
24:1024 minutes, 10 seconds거고 칼뱅 역시 지목이 되기 시작하니까 빠리를 빠져나옵니다.
24:1524 minutes, 15 seconds그래서 남소 쪽에 안골렘에 있는 그러니까 안굴렘이라는게 이제 나바르 근처죠. 그러니까 마리당굴이라는게
24:2424 minutes, 24 seconds아 그쪽 남서쪽 그 피레네 산매 그쪽입니다. 거기서 거기에 있는 친구
24:3024 minutes, 30 seconds집으로 가서 그 듀틸레라는 집에 친구 집에 가서 피신을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이때에 전체를 다 썼는지 아니
24:3924 minutes, 39 seconds부분만 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프랑스를 발칵 뒤집어 놓고 프랑스의 종교의 전개를 발칵 뒤집어 놓은 짓을
24:4624 minutes, 46 seconds해놓고 친구 집으로 도망을 쳐서 그리고 여기에 가서 칼뱅이 앉아서 처음으로
24:5424 minutes, 54 seconds본격적인 연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개신교의 핵심적인
25:0125 minutes, 1 second책들이 되는 것들을 이때에 집필를 합니다. 그때에 안굴의 피신을 그 난리통에 피신을
25:1025 minutes, 10 seconds가면서 거기서 저술 활동을 하면서 칼뱅이 이런 글을 남니다. 일기에 나옵니다. 내가 쉽고 평화로운 삶을
25:1925 minutes, 19 seconds살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을 했을 때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고 내 상황이 안 좋아 보일 때면 내가
25:2725 minutes, 27 seconds전혀 예상치 못하게 조용한 복음 자리가 마련되어졌다.이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역사하심이다.
25:3625 minutes, 36 seconds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25:3825 minutes, 38 seconds근데 그 후에 빠리에서 1534년 10월 17일 날
25:4525 minutes, 45 seconds정말로 큰 사건이 터지매만 벽보 사건이라는게 터집니다.이 벽보 사건이 뭐냐면요.
25:5225 minutes, 52 seconds그날 밤 빨리 도처에 도처에 카톨릭 미사라는 거는 아주 혐스러운 짓이다.
25:5925 minutes, 59 seconds이사라는 거는 절대 지내면 안 된다라는 그런 내용이 담긴 복 벽보들이 빨리 곳곳에
26:0826 minutes, 8 seconds갑자기 붙습니다. 그중에 벽보 하나가 다른데도 아니고 프랑스와 일세의 침실 문앞에도 거쳤다는 겁니다.
26:2026 minutes, 20 seconds누군가가이 개혁주의자가 급 급진 개혁주의자가 미사 자체가 혐오스러운 행위라고 절대
26:2826 minutes, 28 seconds하면 안 된다. 반 그리스도적인 거라고 그렇게 욕을 하는 벽보가 다른데도 아니고 왕의 침실에까지 붙을
26:3726 minutes, 37 seconds정도면은 프랑스와 일세는 어떻겠습 경로합니다.
26:4326 minutes, 43 seconds야, 내가 아무리 개혁주의자들 이놈들을 봐주고 우리 누이가 맨날 그사람 이런애들 끼고 돌 돌아도 아니
26:5126 minutes, 51 seconds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내가 프랑스 왕으로서 내가 카톨릭 교회랑 이렇게 중심을 잡으려고 얼마나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27:0027 minutes이놈들이 감히 딴데 다니고 내 침실에까지 내가 자고 있는 틈에 이걸 갖다 붙였면
27:0727 minutes, 7 seconds이거는 이거는 반란이다. 이거는 얘네들이 괜히 붙이는게 아니다. 이건 뭔가
27:1527 minutes, 15 seconds심각하게 반란을 일켜서 세상을 뒤집어 버리겠다라는 놈들이 하는 짓이다.
27:2027 minutes, 20 seconds반란의 전조다 그러면서 프랑스와 1세가 당장 수색을 해 갖고 색출 해내고이
27:3027 minutes, 30 seconds개혁주의자들을 탄압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수백명의 개혁주의자들이라고 하는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 수백명을
27:3927 minutes, 39 seconds잡아들이고 불원 소적이라고 하는 개혁주의자들이 썼던 이문학적인 책들 전부 다 압수하고 그러면서 결국은 아홉 명을 사용을 시킵니다. 한
27:4827 minutes, 48 seconds3개월 후에 1530년 2월 달에 또 욕법 그러니까 프랑스와는 더욱 탄압을
27:5527 minutes, 55 seconds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10개월 동안 열명이 또 사형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방이 되고 루소주의자
28:0228 minutes, 2 seconds73명의 명단이 발표되고 그리고 그 명단 중에는 세 명의 인쇄소주인 두 명의 책방 뭐 서점주인 이런
28:1128 minutes, 11 seconds사람들까지 표 포함이 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더 이상대 개혁주의, 인문주의이
28:2028 minutes, 20 seconds사상이 퍼지는 것을 맡겠다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최소한 중립을 지키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28:2828 minutes, 28 seconds임문주의를 수입했던 프랑스 1세 본인이 개혁주의자들을로부터
28:3528 minutes, 35 seconds완전히 등을지고이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하는 그러한 계기가 되는데 그것이 바로 벽보 사건이었습니다.
28:4528 minutes, 45 seconds이런 사건까지 터지니까 결국은 칼뱅은 잠깐 빨리 왔다가 또 이번에는 오를 내형으로 이제 탈출을
28:5328 minutes, 53 seconds합니다. 그래서 이때 처음으로 칼뱅이 해외의 만 명을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정말 가기 싫어했습니다.
29:0229 minutes, 2 seconds해외에 어떻게 프랑스에 남아서 자기 고향에서 자기 나라에서 이걸 입을 해야 일을 해야 되고 공부를 해야 되고 학자로서 역할 해야 된다고
29:1029 minutes, 10 seconds생각을 했었는데 그리고 프랑스를 떠나 본 적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때까지.
29:1529 minutes, 15 seconds근데 결국은 1534년 말에 칼뱅하고 그의 친구 틸레가
29:2229 minutes, 22 seconds쓰면서 프랑스를 떠나서 알자스를 거쳐서 스라스브루브에 갑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죠. 스라스풀라게이
29:2929 minutes, 29 seconds개혁주의자들이 모여두는 어 그 데였는데 칼뱅도 거기를 자기 친구하고 틸레랑
29:3729 minutes, 37 seconds같이 어 갑니다. 그래서 마틴 부처라는 그 개혁주의자한테
29:4429 minutes, 44 seconds그 자신들을 의탁을 합니다. 부처라는 사람 마틴 부처는 이제 독일 당시
29:5129 minutes, 51 seconds독일 남부의 이제 대표적인 종교 개혁가였었죠.
29:5529 minutes, 55 seconds그리고 그런데 칼뱅은 그렇지만은 거기 스트라스에 계속 머물 생각이 전혀
30:0330 minutes, 3 seconds없었어요. 자기는 사실은 뭐 그렇게 대단한 종교 개혁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별로 안 하고 있었고 이때까지 특히
30:1030 minutes, 10 seconds무슨 뭐 새 교회를 만들어서 개신교를 만들어서 자기가 그 교회의 새로운 지도자가 우두머리가 이런 생각 전혀
30:1830 minutes, 18 seconds안 하고 있었던 거기에서 어떻게서든지 아니까 어디를 가서든지 안굴렘 같은데
30:2530 minutes, 25 seconds다만 조금 더 안전한 데를 찾고자 해서 결국은 마셀 스위스의 바셀로 떠나게 됩니다.
30:3630 minutes, 36 seconds그리고 1535년에서 36년까지 어 마셀에 머물면서 어 그 마틴
30:4230 minutes, 42 seconds부처가 주도하는 그 마셀의 종교 개혁 속에서 굉장히 학문적인 분위기 속에
30:5030 minutes, 50 seconds어서 안주하면서 여기에서 그의 역작 그러니까 개신교를
30:5630 minutes, 56 seconds만드는 가장 중요한 책 기독교 강요 the 크리스천인스티라는 영어로
31:0431 minutes, 4 seconds하느는 그 책을 을 집필하기 시작하고 1536년 3월 달에 기독교 강요라는
31:1331 minutes, 13 seconds책이 초판이 출간이 됩니다. 이로써
31:1931 minutes, 19 seconds본격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의 이론적 틀이 갖춰지기 시작을 합니다.
31:2831 minutes, 28 seconds아셀에서 기독교 강요 초판을 출간한 어 그 갈은 1536년 3월 달에
31:3731 minutes, 37 seconds르네드 프랑스 그러니까 르네 르네드 프랑스라는 쉐레라 공국의 왕비가 있습니다.
31:4531 minutes, 45 seconds공작의 부인이죠. 근데 그 프랑스 여자였었고 프랑스의 전 국왕 루이
31:5231 minutes, 52 seconds12세의 딸이었었죠.이 이 르네드 프랑스도 열렬한 종교 개혁가였습니다. 개신 그러니까 어 그 인문주의자고 개신교도였습니다.
32:0432 minutes, 4 seconds나중에 개신교라고 하는 그 어쨌든 개혁가가 있었는데 페라 공국의 그러한 종교 개혁가들을이
32:1232 minutes, 12 seconds여인도 그러니까 마르게 나바르 같이 아주 여걸리었습니다. 그래서이 또
32:1832 minutes, 18 seconds프랑스의 또 다른 여걸이 어 칼뱅을 부릅니다. 페라로 공국으로 그니까
32:2732 minutes, 27 seconds르네이드 프랑스는 인문주의자였고 종교 개혁을
32:3432 minutes, 34 seconds지지원 지원했었던 사람이고 그리고 사실 칼뱅을 여기까지
32:4132 minutes, 41 seconds페라까지 부른 이유도 아마 학자들이 추정하건데 그때에
32:5032 minutes, 50 seconds바셀에서 칼뱅이 갓출간 그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읽어보고
32:5732 minutes, 57 seconds와 감동을 해서 초청을 한 거라고 그렇게들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칼뱅이 페라라로 갑니다. 그러니까
33:0733 minutes, 7 seconds바셀에 가서 자리 있었지만은 어쨌든 더 안전한 더 적극적으로 자기를 밀어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33:1433 minutes, 14 seconds이제 페라라로 르네드 프랑스에 추하고가 갑니다.
33:2033 minutes, 20 seconds그근데 이제 이게 참 우리가 역사를 아는게 재밌는게 뭐냐면요. 그러면이 르네드 프랑스의
33:2833 minutes, 28 seconds남편 그죠? 엘골레데 이세데스는요이 사람이 누구냐면 교황 알렉산더
33:3833 minutes, 38 seconds6세의 손자였습니다. 여러분 교황이 어떻게 손자가 있습니까?
33:4633 minutes, 46 seconds유명하죠? 알렉산더 육사 육세가 굉장히 유명했죠.
33:5033 minutes, 50 seconds그러니까 교황이면서도 알렉산더 육세는 사생활을 수없이 낳습니다.
34:0034 minutes아주 공예적으로 대표적인 그 사생아 중에 가장 역사적으로
34:0734 minutes, 7 seconds유명한 알렉산더 육서의 아들이 누구냐면 세사레 보르지였습니다.
34:1434 minutes, 14 seconds세사레 보르시아라는 유명한 군인이었고 귀족이었었죠.
34:1934 minutes, 19 seconds아 누구냐면은 마키아밸리가 존경에 맞지 않아서 마키아벨리가
34:2634 minutes, 26 seconds군주론이라는 책을 쓰면서 정치라는 건 권력이라는 건 이렇게 잡아야 되는가라고 하면서 가장 자기의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던게 바로이
34:3534 minutes, 35 seconds세살레 보르지아였습니다. 왜? 세 보르지 않은 교황의 사생화로 아무 정통성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4:4334 minutes, 43 seconds순전히 자기의 지략과 자기의 힘으로 공국을 또 하나 만드는 사람이었거든요.
34:5034 minutes, 50 seconds그게 정치력이다. 그게 권력을 잘 사용하는 거. 그래서 이제 마케아벨이 군주론의 모델로 썼던 사람인데 그런데
34:5834 minutes, 58 seconds그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오빠 체살 부르지 못지 않게 우리 인문학사 역사에서 유명한 여성이죠.
35:0835 minutes, 8 seconds루크레이시아 보르시아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35:1135 minutes, 11 seconds초상화도 수없이 있고 영화도 수없이 나오는 알렉산더 6세의 유명한 사생화 딸이었었습니다.
35:1935 minutes, 19 seconds그 루크레시아 보르자가 바로 엘골레 이세데스데의 어머니예요.
35:2535 minutes, 25 seconds그러니깐이 집안이 종교 개혁을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35:3235 minutes, 32 seconds그니까 절대로 부인이 종교 개혁가들을 그렇게 보호하려 그러는데 프랑스
35:3935 minutes, 39 seconds여자로서 인문주의자로서 그런데 이쪽에 이탈리아의 또 인문주의
35:4635 minutes, 46 seconds그 유명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표상이었던 알렉산더 육세나 이런 사람들은 철저하게 카톨릭 교회를 지키려고 했었던 거죠.
35:5835 minutes, 58 seconds그래서 결국은 벽보 사건까지 터지고 나니까 그 벽보 사건에 르네드 프랑스도 연루가
36:0736 minutes, 7 seconds되었었다라고 그럽니다. 결국은 르네드 프랑스가 남편하고 아주 심하게 다니니다. 그니까 그 소식을 듣고선
36:1536 minutes, 15 seconds그 얘기까지 듣고서는 갈이 도저히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 그러면서 급히 페라 공국을 떠나 갖고
36:2436 minutes, 24 seconds바셀로 돌아옵니다. 어 프랑스를 떠나서 어
36:3236 minutes, 32 seconds스트라스브로 갔다가 마젤로 갔다가 페라라로 갔다가 결국은 다 안 되니까 결국은 다시 어 마젤로 돌아옵니다.
36:4436 minutes, 44 seconds끊임없이 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36:4736 minutes, 47 seconds할문은 개혁가로서 프랑스의 종교 개혁주의자의 입지가 점점 점점점 약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36:5836 minutes, 58 seconds페라르라 공국에서 다시 바젤르 돌아오자마자
37:0637 minutes, 6 seconds고향을 방문합니다. 프랑스로 잠깐 돌아갑니다.
37:0937 minutes, 9 seconds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1535년 7월 달에 그때에 프랑스와 1세가 뭐를 하냐면 쿠치의 측용이라는 걸
37:1737 minutes, 17 seconds내립니다. 이때 뭐라 그랬냐면은 그 사이에 벽보 사건이나 이런 거를 통해서 그다음에
37:2437 minutes, 24 seconds총장 취임사건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결국은 프랑스를 떠나서 막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37:3337 minutes, 33 seconds종교 개혁가들한테 6개월을 줄테니까 그 앞으로 6개월 사이에 내가 잘못했습니다. 과거를 뉘칩니다.
37:4437 minutes, 44 seconds카톨릭 교회에 다시 잘 귀의해서 잘 살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하면은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귀국을 허용하겠다.
37:5337 minutes, 53 seconds그래서 사면영을 내립니다. 그걸 쿠치의 측령이라 그럽니다.
37:5837 minutes, 58 seconds그래서 칼뱅도 이때에 그 쿠치의 측령이 잠깐 유기가 6개월을 주니까
38:0638 minutes, 6 seconds그때 잠깐 귀을 합니다. 물론 자기가 잘못됐다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죠. 어,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38:1438 minutes, 14 seconds자기 고향 놓을 들립니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가족 명의 땅들을 다 팔고 다 재산을
38:2338 minutes, 23 seconds정리하고 그리고 자기의 남동생 여동생 남동생앙 또한 여동생 어 마리를 데리고 그리고 마셀로 돌아옵니다.
38:3538 minutes, 35 seconds이것이 칼뱅이 일생 마지막으로 고향 프랑스를 방문하는 때였습니다.
38:4538 minutes, 45 seconds그런데 바리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바셀로 돌아가겠다고
38:5338 minutes, 53 seconds해서 가는 길에 보통 스라스브르그를 지나서 라인강을 따라서 가는 길이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39:0239 minutes, 2 seconds빠젤로 가는데 그런데 이때 바로 뭐냐면 프랑스와 워스 하고이
39:0939 minutes, 9 seconds카를 오세간에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나서 스라스브룹을 통해서 라인강을 따라서
39:1639 minutes, 16 seconds바셀로 가는 그 길이 막혀 버렸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돌아가기 위해서 제네바를 거쳐갑니다.
39:2539 minutes, 25 seconds그러니까 제네바는 잠깐 거쳐가려는 거였습니다. 하룻밤만 묻고 그냥 거쳐가는 걸로 생각해서 제네바를 가서
39:3339 minutes, 33 seconds거기에 있는 여관에 그냥 투석을 합니다. 물론 아무한테도 이걸 알리지 않습니다. 그랬는데
39:4039 minutes, 40 seconds같이 갔던 친구 같이 늘 같이 다니던 그 틸레 루이드 틸레라는 친구가
39:4739 minutes, 47 seconds제네바에 온 김에 그 귀염 팔렐 그러니까 같이 모임에
39:5339 minutes, 53 seconds있었으면서 가장 극단주의자로서 결국은 탈출을 해서 제네바로 와 있던 그
40:0040 minutes기온 파렐한테 친구 틸레가 못 참고 기온파한테 아이 우리가 내가 지금
40:0940 minutes, 9 seconds지금 깔뱅하고 같이가 둘이서 마세 가는 길에 길이 막혀서 전쟁통이
40:1740 minutes, 17 seconds길이 막혀서 그로 못 가고 잠깐 제네바를 거쳤는데 그냥 오 오늘 밤 여기 하루만 묻고 갑니다라고 렐한테 알려요.
40:2640 minutes, 26 seconds그랬더니 파렐이 당장 찾아옵니다.이
40:3340 minutes, 33 seconds이 파일이라는 사람은 프랑스에서 이제 종교 개혁이 심해지니까 탈출을 해 갖고 스프링글리라는 사람 밑에서
40:4340 minutes, 43 seconds취리라는 도시가 개신교 혁명을 겪는 거를 보고 개신교 개혁에 거쳐가는
40:5040 minutes, 50 seconds거를 보고 그다음에 스트라즈브크에서 마틴 루처 밑에서 또 스트라즈브가 개신교로 바꿔 가는 그 과정을 다
40:5940 minutes, 59 seconds목격을 합니다. 그리고는 1530년에는 뉴샤텔이라는 당시까지만 해도 카톨릭 교
41:0741 minutes, 7 seconds카톨릭이었던 도시가 종교 개혁 편으로 넘어놓도록 설득을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무슨 얘기냐면요.이 당시에
41:1541 minutes, 15 seconds유럽이라는 것은 공국들도 있었고 도시들도 있었고 그죠. 우리가 뭐 필렌체가 됐든 피자가 됐든 베네치아가
41:2441 minutes, 24 seconds됐든 그렇지만 아까 페라 공국도 있었고이 특히 스위스에 있는 지금
41:3041 minutes, 30 seconds말씀 취리 제네바 이런 도시들은 독립적인 도시들입니다.
41:3841 minutes, 38 seconds자기네 의회가 있고 그래서 이때에 종교 개혁가들이이 도시들에 가서 그
41:4441 minutes, 44 seconds교 도시들을 의회 거기 사람들을 설득해서 하나씩 개신교 소위 개혁 교회 쪽으로 적구
41:5341 minutes, 53 seconds종교 개혁 쪽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그런 대표적인 역할을 했던게 팔레입니다. 그러니까 헤은 스딩가
42:0142 minutes, 1 second하는 것도 보고 뭐 부처가 하는 것도 여러 라즈브도 가서 보고 쭈리도 보고 그러면서 이제 자기가 1532년부터는
42:0942 minutes, 9 seconds제네바에 와서 제네바에서 종교 계혁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헬이요 참 대단한 사람인게
42:1742 minutes, 17 seconds자기가 하는 거보다는이 칼뱅이란 내가 알았던 그 젊은 친구인데 얘이 친구가 보통이 아니라는 거야.
42:2542 minutes, 25 seconds그래서 딜레가 잠깐 우리 지나갑니다.
42:2842 minutes, 28 seconds하루 지나가는데 여기 여거 잠깐 묻고 있다고 칼뱅 본인은 아예 알리고기지도 않았는데 알리지도
42:3642 minutes, 36 seconds않았는데 힐레의 그 말을 듣고서는 프레엘이 그 여관으로 오밤중에 칼뱅을 만나러 쳐들어갑니다.
42:4842 minutes, 48 seconds그래서 거기에서 그 자리에서 그 여관방에서
42:5542 minutes, 55 seconds파렐이 설득을 합니다. 마젤로 가지 말아라. 당신 공부 책 쓴 거 나중에 해라. 지금 더 급한게 있다.
43:0443 minutes, 4 seconds제네바를 제네바에서 종교 개혁을 해야 되는데 그 종교 개혁을 할 수 있는 적임자는 당신밖에 없다. 제발 좀
43:1243 minutes, 12 seconds여기 남아서 남아서 나를 도와줘서 우리 같이 제네바의 종교 개혁을 우리가 이루어내자.
43:2043 minutes, 20 seconds그렇게 밤새도록 설득을 합니다. 그 당시 상황을 칼뱅이 이렇게 기록을
43:2743 minutes, 27 seconds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놀라운 열정에 불타고 있던 렐은 나를 잡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경조했다.
43:3643 minutes, 36 seconds내가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서 다른 일은 모두 거부하기로 마음을 굳쳤으며 자신이 애하여도 내가 마음을 바꾸지
43:4443 minutes, 44 seconds않자 만일 이처럼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할 때 돕는 것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은 나의 공부를 저주할 것이라고
43:5343 minutes, 53 seconds협박했다. 나는 그의 협박에 너무나 겁을 먹은 나머지 남기로 하였지만 그 대신 나 자신의 소심함과 내성적인
44:0144 minutes, 1 second성격을 잘 알았기에 아무런 직책도 맞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44:0744 minutes, 7 seconds칼병은 너무나도 소심했고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은 공부하고 책 쓰는 것밖에 없었고 그거를 지금 찾아다니는 거였고
44:1544 minutes, 15 seconds그거를 위해서 스라스로 갔다 바셀로 갔다 페라 공국으로 갔다가 다시 어쩔 수 없이 이제 고향에 가서 재산 다
44:2344 minutes, 23 seconds정리해서 나 이제 바셀가 갖고 거기에서 뼈를 묶어서 공부할 거야라고 하는 길에 우연히 어쩔 수 없이
44:3144 minutes, 31 seconds전쟁 때문에 원래 바벨러 가는 길이 막혀서 제네바로 왔는데 거기에 해필이면 가장 친구 중에서
44:4044 minutes, 40 seconds극단적인 종교 개혁가인 파엘이 그때 마침 제네바의 종교 개혁을 맡아서
44:4744 minutes, 47 seconds와서 있으면서 알리지도 않았는데 동행하고 있던 친구가 알리는 바람에 나타나서 밤새 설득을 해서 본인이
44:5644 minutes, 56 seconds생각했을 때도 전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적임자가 성격상으로 너무나 소심하고 안 돼서 그랬던 칼뱅이
45:0445 minutes, 4 seconds결국은 은 설득을 당하고 제네바에 남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에 칼벤이
45:1245 minutes, 12 seconds바젤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제네바에 남습니다.
45:1745 minutes, 17 seconds그리고 바로이 제네바에서 칼뱅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
45:2745 minutes, 27 secondsreformed church 이론적으로 제도적으로 완성을 합니다.
45:3345 minutes, 33 seconds그거를 기념하기 위해서 지금 제네바에 유명한 종교 개혁 기념비가 있습니다.
45:3845 minutes, 38 seconds그 종교 개혁 기념비는 100m의 벽이 있고 거기에 수많은 종교
45:4645 minutes, 46 seconds개혁가들의 동상들이 이제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45:5145 minutes, 51 seconds그리고 그 가장 그 벽에 종교계혁 기념비 가장 중앙 의한네
45:5845 minutes, 58 seconds명의 인물이 조각이 돼 있죠. 이게 종교 개혁의 상징적인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46:0746 minutes, 7 seconds거기에 왼쪽에서부터 보시면 윌리엄 퍼다이 장갈행 그다음에 세우돌드 베사 그리고
46:1746 minutes, 17 seconds맨 향해서 맨 오른쪽이 존녹스입니다.
46:2246 minutes, 22 seconds그러니까 렐은 칼뱅을 설득해서 평생 그냥 학자로 공부할 사람을
46:3146 minutes, 31 seconds제네바에 묶어 두고 결국은 개신교 리폼 처치를 만들어 내게 하는 적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대사 물론
46:4046 minutes, 40 seconds최고의 당시 유럽의 제네바 그 스위스의 수많은 도시들을 종교 개혁으로 돌리는 사람이었고 칼뱅이
46:5046 minutes, 50 seconds기독교 강요라는 책과 과이 모든 제도 개혁을 통해서 이론적으로 제도적으로 개신교를 만들어내는 것을 그다음에
46:5846 minutes, 58 seconds존녹스 존녹스가 누굽니까? 바로 칼백 밑에서 와서 영국의 개혁 종교 개혁을
47:0747 minutes, 7 seconds탄압을 하니까 그때에 제네바로 막으로 와서 칼뱅 밑에서 파렐 밑에서이 종교
47:1547 minutes, 15 seconds개혁하는 거를 보고서 그걸 그대로 배워서 그대로 베겨서 자기 고향인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스코틀랜드의
47:2447 minutes, 24 seconds종교 개혁을 일으키면서 칼뱅이 계획 교회를 스코틀랜드에서 퍼트리죠.
47:2947 minutes, 29 seconds그래서 그 전녹스가 퍼티인 그 스커틀랜드에서 퍼티린 칼뱅주의를 이름하여 장로교라 그러는 겁니다.
47:3847 minutes, 38 seconds그게 프레비테리아니즘입니다.
47:4147 minutes, 41 seconds그런 의미에서 칼뱅 베자 렐녹스는
47:4847 minutes, 48 seconds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를 만들어낸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47:5447 minutes, 54 seconds칼뱅이 제네바까지 오게 되는 그 길은 출록 우연의 일치 기적 글쎄요.
48:0348 minutes, 3 seconds그리고 기독교를 믿는 분들 입장에서는 뭐 하늘의 뜻,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48:1048 minutes, 10 seconds할 수 있겠지만 참으로 드러마틱한 과정을 거쳐서 제네바에 안착을 하고
48:1648 minutes, 16 seconds계신교는 이렇게 해서 제네바를 본부로 해서 탄생을 하게 됩니다.
48:2448 minutes, 24 seconds오늘은 칼뱅이 제네바에 오기까지의 그 그야말로 역정이죠. 프랑스에서 어떤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왜 분열이
48:3248 minutes, 32 seconds일어나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제네바까지 왔는지 함께 살펴봤습니다.
48:3848 minutes, 38 seconds그야말로 우연애이라면 우연, 기적이라면 기적인 과정을 통해서 별로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자임한 적도
48:4648 minutes, 46 seconds없고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큰 혁명을 일으킬 종교 개혁을 일으킬 적임자라고 지도자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던 사람이
48:5548 minutes, 55 seconds칼뱅이 결국은 제네바의 종교 개혁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우리가 오늘 살펴봤습니다.
49:0249 minutes, 2 seconds다음 시간에는 그러면 왜 왜 제네바라는 데가 칼뱅의 그 개혁을
49:0949 minutes, 9 seconds받아들일 수가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방인이었던 제네바 사람들도 봐서는 전혀 이방인이었던 프랑스에서 쫓겨난
49:1849 minutes, 18 seconds막가가 와서 왜 그 사람한테 자기네 그 도시의 종교을 맡겼고 그것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게 돼서 우리가
49:2649 minutes, 26 seconds알고 있는 개순교가 나오게 됐는지 다음 시간에 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습니다.
49:3849 minutes, 38 seconds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49:4649 minutes, 46 seconds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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