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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지난 시간에 청교도들이
미국 신대륙으로 가면서 뉴잉글랜드를 건설하게 되는 그 과정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건설된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의 그 공동체가
어떤 정치적인 체제를 갖고 있었고 그것이 우리가 나중에 궁극적으로 알게
되는 미국이라는 국가와 그 세속 국가와 어떤 연결이 있고
따라서 조선이 받아들인 조선 말에 어
우리가 미국 선교사들 바로이 뉴잉글랜드에서부터 오는 그 선교사들을
통해서 받게 되는 신앙은 물론이지만
공동체 조직하는 방식, 정치의 방식, 특히 종교와 국가의
관계는 뭔가 그 모든 것을 우리가 답습을 하게 되는데
뉴잉글랜드 사람들이 초기에 청교도들이 어떤 체제를 꿈꿨고 어떻게
만들었는가? 오늘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그 흔히 재정 분리, 종교와 국가의 분리 어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사실 굉장히 힘든 얘기입니다. 어
자기가 어떤 종교를 믿는다 그러면은 그 종교가
사실은 자기 삶의 모든 거를 규정하지 않습니까?
어 윤리 도덕 어 세상을 보는 눈 하여튼 모든 것이 종교
특정 종교의 신앙을 깊은 믿음을 갖고 있으면 당연히 그 종교의 영향을 받고
그 종교라는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사실
종교와 그렇지 않은 나의 부분을
분리를 한다. 굉장히 어려운 얘기입니다.이 이슬람 당연히 그렇죠. 어,
이슬람에서 그런게 안 되는 거고 유대교에서도 유대 교인들이 세속과
자기 자기의 종교를 갖다 분리를 한다. 참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근대 국가 그러면 당연히 재정 분리, 종교와 세속적인 정치 체제는
정치는 분리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긴지 이게
가능이나 한 얘긴지 그리고 왜 굳이 그거를 구분을 한다는
얘기를 하는지 그냥 신정 국가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이란 같은 데가 신정 국가 아닙니까? 아야톨라들이
그냥 결 모든 거 결정하고 통치하는 거고 그래서 이슬람의 법에 의해서
그냥 나라법도 있지만 그 이슬람법이 더 우의를 차지하면서 이슬람법에 의해서
다스리면 되는 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세속과 종교를 분리한다라는 원칙은 사실은 굉장히 기독교적인
겁니다. 그러니까 교황이 따로 있고 국왕이 따로 있어야 되는 그래서
국왕하고 교황이 서로 겨루고 어디까지가 내 영역이고 너의 영역이고 이걸 다 그렇게 다 서로가 투쟁을
하고 분쟁을 분교가 있다라는 자체가 사실 굉장히 특이한 굉장히 기독교적인
사고 방식입니다. 그 방식을 개신교가 한 걸음 더 갖고 나갔고
그러면서 개신거 특유에
세속 국가라는 걸 만듭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독교를 믿지만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는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종교적인 것이 영향을 주면 안 된다.
또 국가도 당연히 종교의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라는 그런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지극히 개신교적인
지극히 미국적인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어떻게 왜 그런 논리가 형성이
되기 시작했고 왜 이게 중요하면 지금 우리가 답습하고 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근대 국가가 사실 그런 제정 분리의 원칙을 갖고 있는 거고
그렇지만 우리가 늘 그렇듯이 어디까지가 어디까지 교회가 정치에 간여함
되나 안 되나 목사님이 설교 중에 정치 얘기를 어디까지 얘기할 수가 있는 건가 아예 하면 안 되는 건가?
국가는 교회에 어느 정도 간섭을 해야 되는 건가? 이런 문제 우리 우리도 지금 계속해서
실름하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그런 문제가 그런 문제의 근간을 이룬 그
체제를 맞는게 지금 미국의 청교도들입니다. 그 모습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메이플라우가 1620년에 미국을 건너갑니다. 그때 메이플라워가 건너갔을 때에 어 원래는 사실은 어
브지니아로 가려 그랬습니다.이 사람들도 너무 추워서. 근데 브니아로 가려 그랬는데 풍랑을 만나서 배가
밀리고 밀리고 밀려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케이카드 메스 보스던 바깥에 있는 버스 메사투스 바깥에
있는 거기 해안가에 밀려간 겁니다. 그때이 사람들이 하선을 하기로 그
자리에서 그냥 하선을 하기로 하는 겁니다. 1620년
11월 21일 날 해변의 발을 냈습니다. 그런데이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기 전에 메이플라워
서약, 메이플라워 콤팩트라는 거를 만들어서
거기에 다 그때 타고 있었던 남자 명이 다
서명을 하고 내립니다. 근데이 메이플라워 콤팩트라는게 참으로 놀랍고
특이한 문서였습니다. 그 내용이 지금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진음 및 국과 국가의 명예를 위해 베제니아
북부의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항해를 했고 보다 나은 질서를 확립하고 우리 자신들을 보존하기 위해
그리고 앞서 언급한 목적의 촉진을 위해서 하나님과 서로의 앞에서 엄숙하게 계약을 체결하며 우리 스스로
시민정치 공동체 civ디폴리티컬을 결성한다.이를 이를 통하여 우리
식민지 전체 이익을 가장 잘 충족시키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당하고 평등한 법률, 조례, 법, 헌법이나 직책을 때로 만들고 이에
복종하고 따를 것을 약속한다. 근데 여러분,
이거 굉장히 이상합니다. 왜 그러냐면요. 지금
종교적 자유를 위해서 본국을 피해서 왔습니다.
본국에서 종교 박해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기네 개신교에 대한 종교 박 박해가 청교들에 대한 종교 박해가
시작된다. 그래서 안 되겠다. 그래서 미국으로 신대륙으로 건너왔습니다.
자, 그러면 신대력을 건너온 이유가 종교 자유를 위해서 왔으면은 그러면
무슨 공동체를 건설하겠습니까? 청교도들의 공동체를 건설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기네의 관습과 자기네 법과 율법과 모든 것이
있을 텐데 그거를 가지고 그냥 공동체를 결성하면 되는 거죠.
종교 공동체를. 그런데 여기서는 굳이 뭐라 그럽니까? 우리 스스로 시민정치
공동체를 결성한다 그럽니다. 그니까 리스가 아니라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시민적인 한답니다. 청교도적인 종교 공동체가
아니라 세속적인 시민정치 공동체를 만든데 만들고 그거를 위해서
정당 거기에 따라 필요한 법률 조례 법 헌법 직책
청교도들 자기네 개신교회 법 조례 헌 헌법 직책이 아니라 시민 정치
공동체에 필요한 법률 법 헌법이나 직책 그걸 만들고 필요할 때마다 다
이거를 만들고 여기에 복정하고 따를 것을 약속한다라고 서명을 하는 겁니다.
아니 그러면 종교 탄압을 피해서 와서 종교 공동체를 만들면 되는 거지. 왜
굳이 시민 공동체를 만들겠느냐? 종교 공동체와는 별개의 거. 이게
지금 칼뱅주의의 굉장히 특이한 성격입니다. 자기네만 사는게 아니라 청교도들만
사는게 아니라 청교도들이 아닌 사람하고도 같이 살고 그리고 설사
청교들끼리만 살더라도 청교도 법만 있는게 아니라 세속
시민, 정치, 공동체 법을 따로 만들어서 그리고 목사님, 장로님
그렇죠. 집사님 이런 분들만 있는게 아니라 시장도 있고 무슨 뭐 의원도
있고 이런 거를 따로 만들겠다 그러는 겁니다. 진짜로 정치사에 있어서 정치
사상에 있어서 획기적인 문서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은
종교적 자유를 위해서 미국까지 건너와서 만든 최초의 공동체는
청교도들이 만든 최초의 공동체는 종교 공동체가 아닌 세속 정치 공동체였습니다.
중세 카톨릭 국가는 신정체제입니다. 교황은
일차적으로 종교 지도자이지만 동시에 한 국가의 지도자입니다.
국가 바티칸이라는 국가의 원수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천주교는 어디까지나
종교 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중세 내내 마티칸하고 세속군주들은
계속해서 투쟁을 합니다. 그런데 칼뱅주의는
국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교황청과 같은 그러한 종교 공동체를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종교라는 거는 처음부터 세속 국가와
같이 있어야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정치 체제로부터
독립된 교회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종교를 버리는 건 물론
아니죠. 해결이 뭐냐면 해결책이 뭐냐면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세속 국가를 만드는
겁니다. 종교 국가를 만들어서 세속 국가랑 싸우는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세속 국가를 만드는데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
그거를 그 속에서 종교를 믿기 위해서 만듭니다.
그러니까이 굉장히 어려운 개념인데요. 지금 교회하고 어디까지가 교회고 어디까지가
국가고이 영역 우리가 해결 못 하고 있습니다.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원래
딱 분할을 할 수 없게 만들어 오는 겁니다. 서로가 완전히 의존을 하고
그렇다고 상대방을 침범은 못 하게 만들어 놓고
하는 절묘한 균형을 절묘한 긴장 상태와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게끔 하는
그래서 끊임없이 야 어디까지가 교회의 영역이지 종교의 영역이 어디까지가
국가의 영역이지 그걸 가지고 우리가 뭐 재판도 해야 되고 뭐 모두 싸우기도 하고 별화별 얘기를 다 해
늘 그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원래 목적입니다.
지금 청교들이 미국에 와서 고안한 것은 자기 공동체를 유지를 하면서 그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재정
분리입니다. 사실은 재정 분리 못 하게 만들어 놓고 나서 재정 분리를
하겠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청교도 사회에는요. 결국은 두 가지 상의한 공동체가 있었죠.
종교 공동체가 있고 세석 공동체가 있는 거죠. 교회 영향력이 막강했지만 신정국가
신정통치제차는 아니었죠. 심지어는 보스던에 처음에
청교도들이가 갖고 만든 공동체도 신정통 공동체가 아니었죠. 왜 자기네가 시민 정치 공동체를 만든다
그랬으니까. 그렇다고 세속 정부가 그럼 완전히 우의를 차지하니? 아니죠. 청교도들이
절대 다수고 청교도적인 율법과 모든 거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세속 국가가 그거를 마대로 할 수도
없는 그렇지만 분명히 청교도들 본인들이
일부러 의식적으로 세속 국가라는 걸 만들었기 때문에 세속 국가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 식민지들 이러한 청교들이 만든 그 공동체의 법들을 보면요.
물론 구약이나 이런 데서 나오는 성소에 나온 율법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보다 일반적인 것은 영국의 일반법 커먼 law 영국 사람들 그
커먼로가 훨씬 더 많이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법을 집행하데 있어서도요.
교회 영역과 국가의 영역이 엄격하게 구분이 되어 있죠.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 사회의 질서 뭐 뭐가
도덕적으로 틀렸다, 윤리적으로 틀렸다. 그래서 그런 질서 유지하는 역할들도 당연히 목사님들도 하고
장로님들도 하고 교회 역할이 그런 거니까 하는 거지만 사실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그런 걸 유지하기 할 때는 어떡합니까? 훈계하는 거죠.
설교하고 훈기하면서 그러면 안 된다라는 걸 얘기를 하는 것이지. 그리고 뭐 아주 심한 경우에 가까다
파문을 하거나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속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한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특이한 점이 뭐냐하면
처음부터 목사님들은 시장이나 뭐 의원이나 이런
관직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계속 관료들은 목사를 목사직을 겸직할
수 없었습니다. 유럽의 개신교 지역에서는 오히려 재정
일치가 이루어진 적이 있어. 제네바 같은데 재정 일치가 이루어져 버리는 거죠. 사실은. 그런데 미국
식민지에서는 교회의 기록하고 관가의 기록은 완전히
별개로 합니다. 뭐 우리 지금 당연스럽게 생각하는 거지만 유럽식 전통으로 봐 갖고 사실
당연할 필요가 없었던 일이죠. 미국에 와서 그게 당연해지기 시작합니다.
너무나도 세속 질서와 종교 질서가 혼합이 되기 되면은 일어나는 폐해를
너무나 많이 봤던 청교도들이기 때문에이 사람들은 세속 질서하고 교회
질서가 짬뽕이 되는 거 이런 거 절대로 용납을 안 하겠다. 그래서
오히려 청교도들이 세속 국가를 세워 놓고서는 그
차이를 완전히 사회를 갈라놓습니다. 그러니까이 영역이 저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영역이 공존할 수밖에 없게끔
종교적인 이유로 의해서 세속 호가를 만든 겁니다.
사실 간단한 거 같으면서도이 미묘한 국가와 세속 국가와 교회의
관계, 종교와 국가의 관계, 재정 분리의 문제에 대해서 가장 그 당시에
영향력 있게 이거를 설포한 사람이 어 존 커튼이라는 초기 뉴잉글랜드 초기의
지도자 중에 지식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이 사람이이 사람이 이제 정리를 한 거를 소위 지금도
뉴잉글랜드 웨이 뉴잉글랜드 방식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시민 사회 등 두 개의 행정부를 만들고 임명하셨다.
그러니까 교회라는게 리시아스tic 그다음에 시민 사회가 civil.이 이 두 개의 행정부를 만들고
임명하셨다. 각 행정부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따르도록 강제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법과 관리들을 보유하고 있고 각기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시민 공동체의 목적은 생명의 유지처럼 자연히 부여해 주는 공공의 이익과
인간적인 사회에서의 정의와 정직처럼 도덕적인 공공의 이익 그리고 평화,
자유, 상업처럼 시민 사회 공공선 아니면 교회를 지키기 위한 영적인
공공선, 비록 때로는 외적인 평화와 순수의 질서와 행정을 위한 공공선이다.
그러면 교회 영적이지만 외적인 가보는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1648년에 공표된 클레임 케임브리dge 플랫폼
케인브릿ge 강령이란데 이렇게 전 커튼이 쓰고 있습니다. 우상숭배
신성모독 이단 근본을 무너뜨리는 부정하고 사악한 견해를 피력하는 행위
설교 말씀을 공개적으로 병멸하는 행위 주의 나을 불경스럽게 하는 행위 하나님에 대한 숭배와 성스러운 일들을
위한 평화로운 행정을 방해하는 행위 등은 모두 억제되어야 하며 시민 사회의 권위로 처벌해야 한다. 만일
교회들이 분여를 조장하면 관리는 자신의 공권력을 동원해야 된다라면서
요런 부분에 대해서 교회 외적인 거버넌스를 관리가 해야 된다. 계속 관리가 해야
된다라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시민 사회가 영적인 삶을 관리하는
외적인 거넌스 통치를 제대로 해야 된다면은 교회는 시민 사회의 내면의 가버넌스
역할을 해요. 중요한 것은요 유능한이 커튼이 내내 강조하는 것이 유능한
판관들을 길러내야 된다. 좋은 통치자들을 배양해야 된다. 이게
지금 뉴잉글에 있는 수많은 대학들 그 명문학교들이
사람들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려고 하는 그런 지식인 그러한 지도자들이죠.
지금 자기네가 만들려고 하는이 교묘한 절묘한
종교적인 이유를 위해서 만들어진 세속 국가의 원리를 이해를 하고 그걸
집행할 수 있는 목자들과 세속 지도자들을 다 길러놔야 되는
거죠. 미국의이 굉장히 독특한 모습을
청교도들이 만들어 놓은이 이상한 그 모습을 본 보고서 야 이거 정말
이상한 나라다. 얘네들 정말 특이한 일을 하고 있네라고 그거를 완전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하고 쓴 사람이 바로 알렉시스드 토크필이라는 프랑스의
귀족입니다.이 이 사람이 1830년대에 미국에 건너와서
관찰을 하면서 9개월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자기가 자라온 프랑스,
유럽하고는 너무나도 다른 미국의 정치 체제를 보고서 그거를 돌아가서 쓴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미국의 민주주의. 아직까지도 미국 사람들이
가장 완벽한 미국 민주주의 묘사라고 생각하는 미국 민주주의 경전같이 돼
있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입니다. 거기에서 앞부분에 토크빌이
이렇게 얘기하는게 있습니다. 영국계 아메리카 문명은 뚜렷이 구별되는 두 요소의 결합물이다.이 이
두 요소는 다른 곳에서는 서로 자주 충돌하지만 아메리카에서는 말하자면
하나가 다른 하나 속에 뒤섞여서 훌륭하게 결합되었다.이 두 요소란
바로 종교 정신과 자유정신이다. 그니까 와서 보고는 야 이거
종교와 자유라는 어떻게 보면은 유럽의 입장에서 봐서는 완전히 충돌되는 이상입니다. 지금
프랑스의 계몽주의에서는 뭐라 그럽니까? 종교는 나중에 막스의
말을 빌리고 막주의자들의 말을 빌리자면은 인민의 아편
미신 본권적인 잔재 따라서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로 나누기 위해서 인간이 개몽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없애야 되는게 종교라고
하는 것이 프랑스의 계몽주의 아닙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몰테르 무슨 루서
뭐 칸트 해결 다 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토크필이 뭐라 그럽니까?
미국에 와 아니 어딜 가든지 이건 충돌하는 요소고
종교는 없애야 되는 요소라 그러는데 미국에 오니까이 둘이 뭡니까?
하나 속에 뒤섞여서 훌륭하게 결합되어 있다라는게 지금 바로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세속 국가를 만든이 메이플라워 콤팩트에 나오는 그
청교도들이 디자인한 그 체제죠. 그 속에는 종교도 살아 있고 세속적인
의미의 정치적인 자유도 살아 있다라는 겁니다. 이거를 도크빌이 간파를 한
겁니다. 이렇게도 또 얘기를 합니다. 도크빌이 내가 합중국에 도착했을 때
우선 나의 시선을 잡아 것은 바로이 나라의 종교 양상이었다. 합중국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나는 이런
새로운 양상이 얼마나 대단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나는 종교 정신과
자유정신이 거의 언제나 서로 정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아왔다.
하지만 아메리카에서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 있으며 같은 땅에서
함께 군림한다. 미국인들은 머릿속에 자유와 기독교를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기 때문에이 둘을 떼어놓는 것은 상상조차 할 줄 모른다라고 니다.
윈트롭 커튼 메이플라우 컨 컨팩트를 통해서 만들어 놓은 체제죠.
그러니까 사실은 세속 국가를 형 만들어서 그 속에 자기네 청교도 종교를 집어넣어서
꼭 먹고 안 먹고 하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거를 분리하는 거는 이론적으로 분리하는 거 굉장히 힘든
얘기죠. 제임스 존 커튼이 그렇게 어렵게 분리를 해 놓고 사실
이론적으로 이게 가능한 건지 아닌지도 불불명하지만은 끊임없이 그거를
하나 속에 뭉쳐 놓고 떼어 놓을 수 없게 만들어 놓고서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구분을 하는 그런 일을
하면서 종교도 지키고 그리고 세속적인 의미의 자유도 지키는
그러 절묘한 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을 간파한 것이 토크빌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이 휩쓸던 유럽에서
교회 건설은 곧 국가 건설이었습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국가의 지원
없이는 종파를 유지할 수가 없었죠. 당연히 교회를 유지할 수 없었죠. 국가의 힘을 업은 업은 종교
지도자들은 다른 종파들을 탄압을 했었던 거죠. 국가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종교적 통합을 가져와야지만 국가의 안정을 가져오죠. 그렇죠. 자기가
통치하는 국가 내에서 다른 국교 신교가 맨날 전쟁하고 이러면은 통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권 권력도
사라지게 되는 거죠.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는 국가의 입장, 국가 지도자 입장에서는 종교적
통합이 절대적 국가 안정에, 사회 안정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종교 개혁 당시, 종교 전쟁 당시에 유행했던 관용구가 뭐냐면
종교는 사회를 하나로 묶어 주는 끈이다. 릴리오큘라
소시에타티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적
통화 없으면 아무것도 안 이게 그러니깐 100년 200년 종교 전쟁을 겪으면서 너무나 많은 살상과
너무나 많은 왕국들이 무너지고 왕실들이 무너지는 거를 본 유럽 사람들이 한 얘기가 이게 얻은
결론이죠. 종교적 통합이 있어야 된다. 그래서
30년 전쟁을 통해서 독일북부의 인구의 1분이 죽어갑니다.
종교 전쟁 때문에. 이거를 결국은 종결 짓자고 해서 만든
것이 그 소위 유명한 베스트렌 조약입니다. 그 베스트렌 조약은 다른
걸 다 떠나서 가장 중요한 조약의 결론이 뭐였냐면요.
어떤 나라의 종교는 그 나라의
군주가 정한다 그 군주가 나 카톨릭 할래 그러면 그
밑에 있는 신민들은 다 카톨릭 해야 되는 거고 나 개승교 할래? 나 장로교할래? 그러면 다 장로교해야
되는 거죠.이 일을 제기할 수 없게. 그 원칙이 그게 베스팔렌 조약입니다.
정치 체제와 군주와 곧 종교가 일치가 되니까
그 내부에서의 내전이 종교 전쟁이 안 일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군주가
옆나라랑 전쟁을 할 일으키기 전까지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전쟁이 국가간에 일어난 일이 없어집니다. 그게 베스팔렌 조약입니다. 이게 우리 근대 국가
체제의 효시라 그래서 국제정치에서 보을 배우는게 베스팔렌 조약 이후로
우리가 알면 국가 국가 체제가 나왔다. 이런 얘기를 하지만 그 국가 체제의 핵심이 뭐냐면 1국과 1
종교. 그 대신 이제 카톨릭은
자기네가 보편 종교라는 그 주장을 못 하게 되는 거죠. 자, 이제는
종교를 왕이 정합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통일이 돼 버리기 때문에
왕권이 강화가 될 수밖에 없죠. 안정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이때부터 뭐가 나옵니까?
드디어 국가가 종교보다 강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근데 국가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강력한 중앙직권적 통치권을
가진 세속 군주가 종교까지도 자기 밑에 둘 수 있는 그런 국가. 그런
강력한 근대 국가가 이때부터 형성이 되는 겁니다.
법률 방송이 출간하는 시사 교양지 법치와 자유는 우리 사회가 증면하고
있는 법치의 문제들을 가장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정론지입니다.
2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깊이 있게 읽어 볼 수 있는
법치와 자유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편하게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베스발렌 조약이 일어나면서 이때부터요.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가 미풍양속 도류구를 관리하고 사회 교회를 관리하고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이때부터 눈에 뜨게 눈에 뜨게 일어나기 시작을 합니다. 오히려
백성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교율을 통해서 통치하고
이런 건 물론 교혁 이전에도 있었죠. 그렇지만 그런 거를 할 수 있는
국가의 힘은 사실은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교회가 있었던 거죠.
국가의 행정력은 거기까지 미칠 수가 없었죠. 노동률을 뭐 또 이건 교회 역할이었으니까.
그런데 베스팔렌 조약 이후로 세속 국가가
교회를 장악을 하게 되면은 어떻게 됩니까? 국가의 힘이 국가가 교회를
통해서 뭐까지 합니까? 일일이 도둑률, 윤리, 도덕 모든 것까지
간섭을 하게 됩니다. 그전까지 교회의 영역이었던 교육의 영역, 성적인
도덕성, 윤리도 이런 거의 영역이 다 교회 영역이지 국가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가
종교를 장악하면서 강력한 근대 국가가 나오면서 전에는 종교의 영역이었고
교회의 영역이었던 것까지도 국가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종교 계획을 통해서 열정적인
칼뱅주의 루토교 이런 목사 이런 이런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가정 방문 뭐 종교 재판소 이런 거를 통해서
사람들의 일반 백성들의 일상 속에
계속해서 이제 종교가 본격적으로 침투를 해가기 시작하면서 일상생활에
대한 감시도 하기 시작하는게 교회입니다. 그러니까이 사람들이
도둑을 제대로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이런 문제를 카톨릭 시대 중세 카톨릭
때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감시를 하고 처벌을 하고 그러기 시작하는게 종교
개혁을 통해서 나오는 개신교들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이 이 과정에서
한쪽에서는 전혀 이런 문제에 관 간섭을 하지 않고 교회에만 맡겨 놨던 국가가
교회를 통해서 그런 문제들에 간섭을 하기 시작을 하는 거고 그리고 그
교회가 간섭을 하 하는 영역도 중세 카톨릭 시대보다도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에 교회가 국가의 힘을 얻고서 침투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교육죠. 빈민구호, 의료,
온갖 복지 이런 문제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을 간섭을 하고 개입을 하고
좋은 의미에서 구유를 해 주고 하는 거지만 사실은 간섭하고 개입하고 상황을 파악을 해야
되는 거고 가난한 사람들다가 훈련을 시켜서 교육을 시켜서 가난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되는 거고 그러려면 주율과
기강이 들어가야 되는 거고 이러면서 점점 점점 좀 강한 기간과 강한
규율이 세세하게 침투에 들어가기 시작하는게 종교 개혁을 통해서
일어나는 그리고 1국가 1교의 베스발렌 체제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근대 국가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이 이 종교적 열정이 개신교 이쪽에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전쟁이 일어나서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일국가 1 종교로 바뀌고 그러면서 그 강력한
칼뱅이 만들어서 존스가 만들어 갖고 네덜랜드로 전파가 되고 영국의
청교도로 전파가 되고 미국까지 오는 그 장로교 청교도 칼맹주의 세세히
일상 속에 침투에 들어가서 서로 간섭하고 감시하고 처벌하고 하고 그러면서 주율잡힌 신앙을 삶을 유지해
가도록 강요하는 그런 사회 모습이
이때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조선에 조선 말에 완전히
국가가 무너져 내렸고 그렇죠. 실패한 국가로 전락하고 있던 조선에서 나라가
해 주는 거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구율도 못 해 주고 병관호도 못 해주고 교육도 못시켜 주고 하는
상황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학교 세우고 병원만 세우고
고화원 만들고 그러면서이 사람들을 구해줄 어떻게 쓰는지 살려
주려고 하는 거 그게 뭡니까? 그게 개신교가 지금 종교 개혁을 통해서 해왔던 거.
청교들이 해왔던 바로 그거죠. 그걸 조선에 갖고 오니까 조선 사람들 입장에서는
와 세상에 이런게 어디 있나? 그리고 감수록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대한민국이 건국이 되면서 근대 국가가 만들어지는 것은 사실은 그런 구유를
하고 하던 그 개신교 교회가 하던 그 역할들을 국가가 떠앉게 되는
거고 아니면 국가랑 같이 하게 되는 거고 그러면서 그러한 국민들의 세세한
일상까지도 알고 그거를 지켜 주려 그러고 물론 간섭도 당연히 하는 거고요.
재금도 거둬야 되리고 정확하게 모든 그 사람의 건강 상태
그렇죠 뭐 우리 신체 검사 그 검사 안 받으면 건강 검지 안 받으면 왜
안 받았냐고 나라에서 문자 오지 않습니까? 이렇게까지 미사하게 개개인에 대한 거를 모든 거를
파악하고 있는 뭐 세금 문제는 이러면 말할 수 없는 거고요. 그런 국가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은 다 뭡니까?이
이 개신교의 종교 개혁을 통해서
개신교 특유의 칼뱅주의 특유의 것이 국가로 전파가 되고 국가가 그거를
이용을 하면서 일상에 개입을 하고 교육을 세우고
기강을 세우는데 그 모델이 바로 메이플라워 언약을 통해서 만들어지게
되는 미국의 종교적인 이유로 세워진 세속 국가에 때문에 거기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그 모습을 보고서 미국에 야이
칼뱅주의라는게 이런 역할을 하는 거구나 라면서 그거를 설파 분석해서
설파한게 바로 그 유명한 막스베버지 않습니까? 그니까 막스베버의 대표적인
프로테스턴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인데 그 여기서 말하는 막스베버가 말한 프로테스턴 준리라는게 그게 뭡니까?
그게 칼뱅주의입니다. 막스베버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개신교회에 그러니까 칼뱅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이 규율이라는 겁니다.
교회 공동체 회중의 규율과 기강 그거를 잡을 줄 아는 강력한 제도를
갖고 있는게 그게 그니까 지금 우리가 교회에서 장로교 한국의 장로교회가
바로 그런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목사님의 영역 영 영향 영 영향
영양력 절대적이고요. 그 목사님이 신방과 뭐 하여튼 모든 거를 통해서
신자들 삶의 가족과 그 그 신상에 대한 세상 부문까지 완벽하게 파악을
하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그걸 도와 돕고 그 모든 거를 하하는 그 놀라운
제도를 만들어 낸게 칼뱅이었고 그게 조선에까지 전파가 됐는데
막스베버가 왔을 때는이야 아, 이게
칼뱅주의 핵심이고 그 칼뱅주의 핵심은 규율과 기강 그리고 그 강력한
공동체의 규율과 기강을 지켜낼 수 있는 조직력.
그게 이제 뭐 장로회부터 시작해서 이런 여러 가지 우리가 알고 계신교회 제도들이 되겠습니다. 지금 여여때까지
말씀드렸던이 이중적인 사회 어떻게 보면 중첩적이고 세속적인 것 국가와
종교적인 것이 중첩되는 이중적인 거를 마스베는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전 아주 프로테스턴주의 자본주의 정신에
기가막히게 묘사를 했는데 요렇게 묘사를 했습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기독교 금역주인은 처음에는 속세를
거부하고 이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고립시키지만 결국 수도원과 교회를
통하여 자신이 거부한 세상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세속의 일상은 대체로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상의 시장 바닥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등 뒤에 수도원의 문은 힘껏 닫아버리고 일상적인 삶의 미세한 부분까지 특유의
질서 정연함으로 무장한 채 침투하여 세속적이지도 않고 속세를 위한 삶도
아닌 삶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니까
기독교가 처음에는 카톨릭이 나와서 금욕주의 했죠. 당연히 프란치스코
성인 수많은 그 탁발 수도의 사람들 금역적이고 정말
아무것도 안 갖고 그죠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그야말로 거지같이 살아야 되는 그 맨디컨트 오더라는 거 아닙니까?
근데 그 속세로부터 떨어져서 수도원을 만들고 수녀원을 만들고 결혼도 안 하고 그런 삶을 살다가 결국은 중세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교회가 그 속세를 떠나려고 했던 금역주의적인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어떡합니까? 결국은 세속을 통치하게 되는
그게 중세 본문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러니까 자신이 버린 속세를 통치하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수도원과 교회를 통하여
자신이 거한 세상을 통치했다. 그럼에도 불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세속의 일상은 대처로 간섭하지
않고 내버렸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 비민 구제를 하지도 않았고 무슨 그런 대단한 교육
시스템들을 만들어서 학교를 국민학교 초등학교를 사방에 만들어서 교육시킨 것도 아니고요. 병원들을 도체에
세워서 민 보통 사람들을 구원해 준 것도 구제해 준 것도
아닙니다. 그건 누가 합니까? 나중에 개신교가 들어와서 하죠.
속세를 떠나서 수동원에서부터 바깥 세상을 통치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세세히 간섭하지 않고 속세
내버려뒀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중세 사회는 굉장히 자유스럽죠. 저희가 우리가 네덜랜드가 얼마나 율 기강
잡힌 사회였던가를 얘기할 때 그때에 어 사생아의 숫자에 대해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사생활라는게 아버지가 누군지 뭐라는 모르는 그런 그 그러한
경우가 네덜랜드서 거의 없었는데 프랑스 같은 데서 굉장히 많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그런 데까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어떡합니까? 그냥 무슨 죄를 짓더라도 시모님한테 가서
주말에 가서고해 성사해 버리면 죄를 사해 준다 그랬습니다. 개신교에서는요. 장로교에서 그런 거
없습니다. 끊임없이 뭐를 누가 잘못하는가? 옆에서 계속해서 감들이
간섭하고 감시하고 있고 다른 집사들이 간섭하고 있고 다른 교인들이 서로
감시를 하고 그러면서 절대로
간통 못 하게 하고 나쁜짓 절대 못 하게 하. 그러니까 그거를 배보가
뭐라 그럽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개신교가 어떡합니까? 시장바닥에
일상의 시장 바닥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서 등 뒤에
수도문은 힘껏 닫아버리고 그러니까 수도운 내에서 아예 나와 버려 갖고
나 이제 수도 안 들어가 문을 차서 닫아 버리고는 그다음에 어떡합니까?이 이 일상 사람들 사람 속에 카톨
교회는 대충 내버려뒀던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야 너
세수 몇 번 했고 아 메시아에 일어나 갖고 무슨 뭘 어떻게 했고 그렇죠 뭐
11조를 돈을 얼마를 냈고 애들 교육은 어떻게 시켰고 애는 며칠
났고 하여튼 이런 말할 수 없는 간섭을 하기 시작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일상적인 삶의 미세한
부분까지 특유의 질서 정연함으로 무장한 채 침투하여 세속적이지도 않고 속세를 위한 삶도
아닌 삶을 만들어 되기 시작해. 그러니까 이게 뭡니까? 장로교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
개신교의 교도들의 삶이 뭡니까? 이게 세속적인 삶입니까?
아니죠. 항상 우리가 일주일을 지난다고 무슨 죄를
지었는가? 교회 가서 고백을 해야 되는 거고 기도를 해 갖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어야 되는 거고
기도를 끊임없이 해야 되는 거고 그러면서 저 세상에 나가서 또 돈 벌고 일은 해야 되겠지만 내 나가면
또 이제 죄에 오염이 되고 물들고 하는 거에 대한 그러면 이게 도대체 종교적인 삶입니까? 세속적인
삶입니까?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삶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막해번은 이게 굉장히 이상한
굉장히 이상한 삶이라는 거죠. 중세에는 딱 나눠져 있었죠. 중세는
평상시에는 그냥 마음대로 엄청나게 그냥 뭐 뭐라 그래요? 무질싸하게
부덕적으로 살다가 그냥 주말에 신부님 가서 만나고 수녀님 만나면 죄고해
성사해 갖고 죄를 사 받으면 또 가서 술 마시고 뭐저 이게 되는 거였었는데
아이 개신교라는게 들어와 갖고는 어떻게 됩니까? 그냥 일상 속에 들어와 갖고는 꼼짝 못하게 만들었는데
그렇다고 다 사제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목사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속적인 삶을 살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속적으로 마음껏 그러면 술 마시고 담배 피고 뭐 하고 마음대로 하게 하냐 그것도
아니고 이게 너무 이상한 삶을 만들어낸다는데 막스베버가 뭐 뭐라 그럽니까 그게
뭐라 그럽니까 그게 근대 시민입니다. 끊임없이 규율 기강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고 건강 지켜야 되고 자기가 절제를 해야 되고 남이 안 보더라도
이런 거를 끊임없이 하는 거 교회 다니면 더 할 거 없는 거 이러한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 근대 사회인데
그 삶이 바로 근대 시민들의 삶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개신교적인 칼행주의적인 삶이요 도처에서 우리가 시각적으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우선
건축을 보시면요. 여러분 빠리에 노트릇 한번 보세요. 카톨릭 저 건축
보시 얼마나 화려합니까? 스테인글래스 진짜 이렇게 찬란한 것이 없죠. 그런데
뉴잉글랜드에 청교도들이 만든 세운 장로교들이 세운
그 교회에 보십시오. 그냥 하얀 나무로 만든
하얀 첨탑 하나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신뢰 장식이 어떻게 돼 있습니까?
그야말로 청기어도적인 그냥 하얀 나무로 만든 아무런 장식품 없습니다.
그게 개신교 복식을 보실까요? 여러분 카톨릭 복식 얼마나
화려합니까? 아직도 카톨릭 교황님들 축이 경들 교황 이번에 선출할 때
작년에 선출할 때 교황이 그 시스템 성당에 모여서 그때 했을 때 그
축기경들이 있던 빨간 옷들 얼마나 화려합니까?
반면에 청교도들이요. 지금
렘브란트가 그린이 청교도들입니다.이 사람들이 지금
네덜랜드에서 제일 부자 사람들을 지금 모아 놓은 겁니다. 상인들을 모아놓은 그림입니다. 근데이 사람들이 뭘 읽고
있어요? 까만 옷밖에 못 있습니다. 까만 옷에 흰칼라밖에 없습니다. 돈을
과시한는데 쓰지를 못하게 합니다. 이게 뭡니까? 개신교적, 칼뱅주의적,
청교도적 금욕주의입니다. 이게 여기 어디도 나타납니까?
음식문화에도 그대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여러분,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유럽에 어느 나라에 가야지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까?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종교가 어떤 나라? 어떤 종교입니까? 카톨릭카들이죠.
유럽에 가면 음식 제일 맛없는 나라가 어딘지 아십니까? 영국, 스코틀랜드,
네덜랜드, 스위스 음식 정말 맛없습니다.
왜? 거기서 그런 거 그 욕심 부려 갖고 이렇게 빡 거 만들어내고 이런데
시간 안 씁니다. 안 됩니다. 그런 거. 그게 그렇게 좋은 거 아닙니까?
뭐 미실린 미실랭 미실랭 뭐 별이 몇 개가 있고 이런 거
그런 거 개신교회에서 전혀 원하는 거 아닙니다. 자, 그리고 뭐가 남습니까? 와인이요? 여러분, 와인
마시러 영국 갑니까? 아니요. 스쿼터랜드 갑니까? 네덜랜드 갑니까?
와인은 어디로 갑니까? 역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죠. 그 뭡니까? 커널리 국가입니다. 이렇게 다릅니다. 그럼 미국의
뉴잉글랜드는 뭡니까? 음식 맛 없고 건축물도 별거 없고 그렇죠.
검소하고 우중충하고 그 대신
카톨릭의 영향이 강하게 있는 캘리포니아. 왜? 멕시코로부터
놀라오는 그 스페인의 영향이요. 그러니까 건축부터 시작해서 거기는 화려하고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로데어 거리는 어디 있습니까? 로스앤젤스 캘리포니아 있죠.
뉴욕엔 그런 거 없습니다. 물론 5번가가 있지만은 그건 나중에
그쪽에 영향을 받는 거고 그쪽 패션은 그냥 로데어거리 나온다면 한 번에 날아가는 겁니다. 지금 캘리포니아에는
와인 컨트리가 있어 가지고 나파밸리가 있어서 와인을 먹고 온갖 맛있는 음식이 다 있지만 동보인 그런 거
없습니다. 이런 것이 문화의 차이인데 그 문화의 차이는 개신교의 문화와 카톨릭의
문화의 차이기도 합니다.
사실 조선이 조선이 미국으로 받부터 받은
그 문화 우리가 알고 있는 아펜젤러, 스크랜턴, 언더우드, 알렌 이런
분들을 통해서 받은 그 문화라는 것은 말씀드렸던 뉴 잉글랜드의 청교도적인
문화이고 그 청교도들이 만들어 놓은 정치 제도
세속 국가가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세속 국가라고 해서 종교와
국가의 관계가 애매하면서 분리된 거 같으면서 분리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서로 견제하고 하면서 종교의 자유도 누리고 개인의 자유도
누리는 그러한 국가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국가인데 그것은 개신교 청교도 미국의 뉴잉글랜드 대 체제에 기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어
청교도의 정치 체제가 어떤 체제였고 그 사람들이 고안해냈던 세속 국가가 어떤 국가였는가를 살펴봤습니다.
오늘까지 장시간에 걸쳐서 어 우리가 종교 개혁이 왜 일어났고 종교 개혁을
통해서 만들어진 개신교가 어떤 종교였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조선에까지 건너왔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조선의 근대화의 한 토대를 형성했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부터는 또 다른 토대 우리가 조선이 근대
국가로 향하는데 있어서 또 다른 토대를 놓은 개화파들이
배워온 일본의 모델이 도대체 어떤 모델이었는지 그러니까 개신교 선교사들이 배워온이
개신교가 어떤 모델이었는지 우리가 살펴봤다면 다음 시간부터는
개화파들이 일본으로부터 배운 그 모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완성이 되는 그 모델이
어떤 모델이었는지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그 사람들이 개화파들이 그 모델을 배우려고 했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는 시간들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이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종교와 정치의 절묘한 조화, 세계 최강 미국의 비밀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62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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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I: 친미기독교파 1』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도서 구입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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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 https://www.ypbooks.co.kr/books/20230...
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청교도들이
종교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세속적인 시민 정치 공동체를 세우고,
그 과정에서 정교분리의 기틀을 마련해 간 역사를 살펴봅니다.
또한 이들이 일상 속에서 강조한 엄격한 규율과 자기 절제가
어떻게 성실하고 책임 있는 ‘근대 시민’의 탄생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훗날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에 전해진 이 정신이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발전하는 데
어떤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함께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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