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3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4 조선 여성은 언제부터 차별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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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은 언제부터 차별받았을까?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4회
법률방송
138,501 views  Nov 13, 2024  #한국인 #역사 #함재봉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 조선 사람 만들기, 친중위정척사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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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4번째 시간에는 주자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사대부의 나라 조선이 여성들에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기록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대부들이 강조한 여성의 절개와 정조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됐고, 또 그것은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요? 또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무엇을 강요해왔을까요?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문화의 뿌리는 무엇인지 파헤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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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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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봉입니다 난 시간에는 조선 사람들이
언제부터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사당을 지었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족보를 만들게 되었는지 이런 거를 쭉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 주자
성리학이란 체제가 들어오는 과정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말씀을 드렸는데요 어 그 주자 성약 체제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조선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나 조선 여성들의 처지가
어떻게 밝혔나이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 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 제가이 특히 조선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고 싶었던 이유는 우리가
역사를 볼 때요 어 정치사 왕조사 그 사회 엘리트
계층의 역사만 봐선 안 됩니다 사실 근데 기록이 남아 있는 거는 는
엘리트들에 대한 기록밖에 없습니다 왕조실록 이런 건 다 왕실에서 왕하고
대신들이 나누는 대화들 나와 있는 거고 그다음에 무슨 문 집들이 있거나 이건 전부 다 정말로 최고의 엘리트들
사대부 집안에서나 그런 걸 기록을 남기고 그런 거죠 그런데 정작 인구의
90% 이상은 뭡니까 평민 천민 뭐 그렇죠 무슨 뭐 뭐 무반 서울 뭐
하여튼 이런 사람들이죠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은 거의 없습니다 근데 우리가 역사를 볼
때 어떤 시대를 평가하고 그럴 때에 전쟁을 얼마나 잘했고 뭐 어떤 어떤
왕이 무슨 훌륭한 통치를 했고 뭐 이런 얘기를 우리가 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 일반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가 가늠해 봐야 되는 거죠 근데 그랬을 때에
너무나 우리 기록이 없는데 다행이도 천만 다행이도 19세기부터 들어오기
시작하면은 서양의 선교사들 선교 분들이 와가지고 놀라운 기록을 남기죠
정말로 당시의 시대 상황 당시의 사회상 당시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우리가 알 수가 있고 특히 저는 사회 밑바닥에 있었던 가장
천대받고 가장 착취당하고 했던 그런 사람들의 삶을 우리가 들여다봐야지 그
사회의 수준과 정도와 모든 거를 간음할 수가 있는데 특히 인구의
절반이었다 여성들의 삶 을 조명해 보는 거는 우리가 조선말을 어떻게 볼
것인지 우리의 근세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생각해서 여성의 삶을 어 면밀히 저는 들여다봐야 된다고
생각을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때의 모습을 정말로 생생하게
절절하게 기르고 남긴 선교사 이런 분들 여행한 분들 특히
외국사람 그 으로 우리가 어 봐야 되고 다행히 그 기록들이 있어서
그래서 우리가 그 시대 상황을 재구성할 수가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그 외국 사람들이 이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어이 사람들이 목격했던
조선 여성들의 처지에 대해서 한번 같이 살펴보고요 늘 그렇듯이 항상 전
1차 문헌을 우리가 중시해야 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직접 목격하고 직접
기록했던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오늘 봐야 될 슬라이드는
뭐냐면 1894년에 95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나라를
샅샅이 보고 경험하고 조선과 그 이웃 Korea and her neb 아는
놀라운 책을 남긴 이벨라 비 여사의 기록 그중에서도 조선 여성들의 그분이
그린 조선 여성들의 모습에서부터 출발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처럼 조선에서도 풍속이 무섭게 부패해 있으며 그 필연적인 결과로 여성의 보통 처지는 불쾌
아리만큼 천하고 열등한 상태에 놓여 있다 여자는 남자의 반려가 아니라 노예에 불과하고 쾌락이나 노동의
연장에 불과하며 법률과 관습은 여자에게 아무런 권리도 부여하지 않고
말하자면 아무런 정신적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남편이나 부모의 지배
아래 있지 않는 여자는 누구나 주인 없는 짐승처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의
소유물이 된다는 것은 널리 인정되고 법정에서도 공인된 원칙으로서 논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여기서 남편이나 부모의
집배 아래 있지 않는 여자는 누구나 짐승처럼 먼저 찾아하는 사람 것이 된다는 건 이건 이제 보상 이런 거죠
우리는 과부를 뭐 구제해주는 아름다운 미풍 양속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외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는 너무나도 야만적인
어 풍수 있고 특히 여자들의 처지가 얼마나 어
처했는지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도 그거 못지 않게 충격적인 당시
상황을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달래 신부에 의하면 우발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외관 남자들이 손을 만졌을 경우 딸들은 아버지들 손에 부인들은
남편들의 손에 죽었고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는 한 하녀가
자신이 모시는 젊은 아씨를 불길에서 구하려고 시도조차하지 않고 방치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이유를 묻자 불이난 혼란 속에 어느 외관 남자가
자신의 아씨를 만졌고 따라서 살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죠 뭐 파키스탄 이런 데서 언어 링이라 그러죠 자기 딸이나 누이나 이런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은 연애를
하거나 이러다가 걸리면은 어 죽이고 어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 그
명예와 정조를 지켜주기 위해서 그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 딸을 죽
를 죽이고 하는 그런 관습이 있었는데요 지금 조선에서 똑같은 어 그 관습이 있었습니다 사진에서도
보시듯이 그 당시에 여염집 여자들이 저렇게 복장을 하고
나가는 건 지금 이슬람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나라에서 여성들이 눈만
내놓고 다니는데 그런 모습을 그대로 보실 수가 있습니다 이사벨 여사가
이제 이거 언제부터 이랬을까 얘기를 하면서 이제 조선이라 거를 사실
어떻게보면 굉장히 정확하게 지적을 해냅니다 여성들을 가둬놓는 전통은 500년 전 현재의 왕조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가족을 부패한 사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시작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은 한 조선 사람이 허버트 존스 그 당시에
저 선교사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버트 존스 씨에게 솔직히 털어 놓았듯이도 조선 남자들이 자신들의
부인을 믿지 못해서라고 서로를 믿지 못하게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조선의 도시 사람들과 상류층의 부도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 그러면 왜 언제부터 이렇게 조선
여성들의 지위가 하락하기 시작했는가 그걸 이제 오늘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주자 주자 성약의 도입이 주자 성리학의 도입으로
여성들이 재산권을 갖고 있었고 남자들이 장가 들어서 살던 결혼 제도도 밖 그고 무조건 장자 상속의
종법제도 그리고 남자 중심의 남전 여비의 시스템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여성들한테 이름도 주지 않고 돌림자 이름 같은 거 주지 않습니다 이제 그러면서 그 남성
중심의 사회가 만들어진게 이제 첫 번째 우리가 여러 번 살펴봤던 그 부분이고요 두 번째는 이제 임진 회란
때 경제가 완전히 이제 붕괴를 하는 거죠 그래서 경작지가 임진란 전과
후에 3분가 이제 파괴가 되고 그럼으로써 경제가 몰락을 하기 시작하는데 여러분 경제가 몰락 하면요
항상 뭐 남성들도 힘들어지지만 특히 평민들 천민들의 여성들의 삶이 정말로
고파집니다 왜냐면 매기고 입히고 하는 문제를 여성들이 해결해야 되는데 그
문제를 참 어 가해지기 시작하면은 해결하기 힘든데 조선의 후기가 임진란
후기가 이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 근데 그런 어떤 거시적인 뭐
종교적이거나 어 경제적이거나 이런 문제만이 아니라 뭐 윤리 도덕 문제
있어서도 조선 여성들을 정말로 놀랍게 속박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니라 병자 홀란이 병자 호란을 통해서 여성들에 대한이
정조 조선 여성들의 정조에 대한 집착이 조선 남성들 사이에서 굉장히
강해집니다 그 아까 베시 여사가 그랬죠 이게
이게 원래 조선 초기에는 어 사회가 혼란해 여자 여자들을 보호하려고
그래서 시작된 거 같은데 나중에 가면 서로를 믿 남자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서 여자들 가두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이런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어 병자 호환이란 것 때문에 조선
여성들을 가두기 시작하는 그 제도가 주자 성학과 종법 제도와 이런 것만이
아니라 이러한 전쟁을 겪고 나면서 그 전쟁을
어 해결하는 방법 새로운 도덕적 윤리적 결정을 내리고 가치관을 설립을
하면서 그때부터 더욱더 여성들을 속박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자 대표적인게 뭐냐면 뭐 잘 아시는 분들
많이 계시겠지만 소위 환향녀 문제입니다 뭐냐면 병자 호란을 통해서
이제 수십만 명이 그 포로로 그 청나라 군사들 이제 잡혀가 많은
경우에는 거기서 그냥 그 조선 사람들 노예로 쓰고 그러기도 했지만 또 많은 경우에는 몸값을 받고 도로 팔았습니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이 심양에 가서 거기에 가서 시장에 가면은 끌려갔던
조선 사람들을 돈을 주고 다시 사오고 그래서 그 데려오고 구제하고 이런
경우들도 많았었는데 아무튼이 과정에서 이제 그 그 여성들 잡혀갔던
여성들이 돌아오는 경우에 말하 그면 이제 몸을 더럽혔다 정조가 유린했다이
문제가 이제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그러면 예를 들어서 부인이 잡혀갔는데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다 그랬을 경우에 그러면 아니 정조가 유린된 여자를
도시 도루 받을 수가 있느냐 이제 이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하는
것이 병자 환을 겪고 난 직후의 조선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이제 대표
적 사건이 뭐였냐면 유라는 당시의 우정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딸이 봉림대군 씹을 갑니다 나중에 효종이 되는 그니까 효종의
장인 있죠 근데 그 장한테 장선진이라는 아들 그러니까는 효종
비의 오빠죠 그 장선의 처가 그 장유의
며느리가 병한 심양에 끌려갔다가 돌아옵니다
그랬더니 장유가 이런 상소를 올립니다 외 아들 장선이 있는데 강도의 변에
그의 처가 그의 처가 잡혀갔다가 속한 데와 지금은 친정 부모집에가 있다
그대로 배필로 삼아 함께 선조의 제사를 받을 수 없으니 이혼하고 새로
장가 들도록 허락해 달라 여러분 강도의 변이 뭡니까 강화도 왜
그러냐면 병자를 일으키면서 쳐들어왔을 때에 보통 조선의 왕들이 어떡합니까
강화도로 도망가죠 그러니까 몽골 군이나 여진 족이나 수구는 없다 거기 이제 바다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강화도로 피난을 갑니다 이번에도 이제 강화도로 재빨리 피난을 가려고
인조가 도성을 떠나 갖고 이제 강화도로 가죠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천군이 너무 날렵하게 생각보다 훨씬
빨리 쳐 내려오기 때문에 강화도 까지 가지 못하고 삼전도에서 잡히는 거죠
그래서 삼전도에서 잡히면서 어쩔 수 없이가 갖고 이제 거기서 삼괴 국어 두레를 하면서 그 구력 항복을 하게
되고 군신 관계를 맺게 된 거죠 청청 나라하고 그랬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은 강화도에
피난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잡혀 버리니까 항복을 해 버리니까 당연히
강화도 그냥 항복을 해 버리는 거고 그래서 이제 강화도에서 소현세자 내외
님 되고 내외도 있지만 여기 지금 장유의 그 며느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잡혀갔다가 돌아온 거죠 돌아왔더니 저 시아버지가 아유 우리 우리 매누이
실절 상태라서 더 이상 우리 조상 제사를 받들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이혼을 허락해 달라 이제 이제 예조에 다 했던 거죠 그랬더니 그런데 메누리 아버지는
도승지 있습니다 한이경 도승지 그러니까 비서실장이 지금 비서실장이
딸이 심양에 잡혀갔다 왔더니 우정이 이제 시아버지가 그
실절 했다고 이혼을 시킨다 그러니까는 아 도승지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니 당신이 무슨 증거가 있어서 우리 딸이
어떤 고초를 당하고 왔는데 이게 무슨 무슨 소리냐 하면서 절대 안 된다 그러니까 예조 예에서는 우정하고
도승지가 싸우니까 도저 안 되겠습니다 하면서 임금한테 아 저 어회 인한테 어전회의를
하십시오 그래서 어전 회의를 하면서 그때에 영의정이었던
어 최명길이 이런 발언을 합니다이 자리에서 뭐라 그랬냐면 신이 전에
심양에 갔을 때 출신 사족으로 속 속하기 위해 따라간 사람들이 매우 많았는데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만나자
부등켜 앉고 통곡하기 마치 저승에 있는 사람을 만난 듯이 하여 길가다
보는 사람들이 길가다 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모나 남편으로 돈이 부족해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장차 차례로 가서
속할 것입니다 만약 이혼해도 된다는 명이 있게 되면 반드시 속을 원하는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허다한 분자들을 영원히 이역의 귀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소원을 이루고 집에서 원망 품는다면 어찌
화기를 상하게 하기에 충분치 않겠습니까 신이 반복해서 생각해보고
정으로 참작해 보아도 끝내 이혼하는 것이 옳은 줄을 모르겠습니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대단한 사람입니다 뭐냐면 절대 안 됩니다 이혼 시키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면서이이 최명길이 뭐까지
하냐면요 야 그러면 우리가 임진 회란 때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 그럼 임진
회란 때도 선조 대왕이 뭔가를 결정을 내렸을 거 아니냐 그러면서 사신을 사고로 보내 갖고 왕조 실로
거기에 있는 선조 신록을 읽어 오게끔 해요 여러분 실록이 것은 사신들 그 사관들이 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못
봅니다 왕 자신들도 못 봅니다 그러니까 그거를 볼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그 사람 보고 가서 도대체 선조가 뭐라고 그때에 결정을 내렸는지를 보라 그럽니다 그때 이제
외군 테 잡혀갔던 사람들이 여자들이 풀려나고 그랬을 경우에 똑같은 문제가 그 논란이 벌어지니까 그때 선조가 안
된다 그랬답니다 그래서 이제 그 그것까지 인용하면서 절대로 안 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이어서 얘기를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한 이겸의 딸에 관한 일은 별도로 의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심양으로 갈 때들은 이야기인데 청나라 병사들이 돌아갈 때 자세이 잠옷
아름다운 한 처녀가 있어 청나라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달래고
협박하였다 사보에 이르러 굶어 죽었는데 청나라 사람들도 감탄하여
묻어주고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또 심양의 관사에 있을 때 한 처녀를
값을 정하고 속하려 하였는데 청나라 사람이 뒤에 약속을 위배하고 값을 더
요구하자 그 처녀가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끝내는 그녀의 시체를
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가령이 두 처녀가 다행히 기한 전에 속되라
반드시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정결한 지조가 있더라도 누가 다시
알아 주겠습니까 이로서 미로 본다면 전쟁에 급한 상황 속에서 몸을 더럽혔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서도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사로잡혀 간 녀들을 모두 몸을 더럽혔다고 논할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한 이겸이 상하여 진한 것도 또한 어찌 특별한 원통한 정상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름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인조가
그렇게였습니다 근데 여러분 다음 문장을 보세요 실록의 다음 문장이
뭐라고 써 있냐면요 그러나이 뒤로는 사대부집 자제는 모두 다시 장가를
들고 다시 합하는 자가 없었다 저는 이걸 보고 조선 남자들의 저
비열함 저 비겁함 정말 너무 놀랍습니다 자기네들이 못 지켜져서
끌려갔었는데 이것도 양반 4대부 집에서 지체 높을수록 어 몸을
더럽혔기 때문에 자기 조상들의 제사를 받들게 할 수 없다 이러면서 다
이혼을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왕도 최명길의 의견을 받아서 선저
때도 안 그렇기 때문에 임진란 직후에도 안 그었기 때문에 이혼하면 안 된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다
사대부 자재들은 다 새장가를 들어버렸다 끌려갔던 부인들을 다 버리고 그런데 실록에 보면 사관이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견을 집어넣는 부분이 꼭 있습니다 그 어전회의를 쭉한 얘기를 해갖고
이렇게 결정이 내렸지만 다 이렇게 이혼을 시켜 버렸다고 하면서 사관이
또 자기 의견을 지우는 부분이 나옵니다 뭐라 그러냐면 사신은 논한다 사신게 역사 사자입니다 사신은 논한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려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으니이는 절의가
국가의 관계되고 우주의 동이 되기 때문이다 사로잡혀 갔던 부녀들은 비록
그녀들의 본심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변을 만나 죽지 않 절리를 잃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절개를 잃었으면 남편의 집과는 의리가 이미
끊어진 것이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최명길은 삐뚤어진 견해를 가지고 망령되게 선조때이를
인용하여 니하는 말에 끊어버리기 어렵다는 의견을 갖추 진달 하였으니 잘못됨이 심하다 그러면서 최명길이
임진란 당시에 선조 실록의 기록까지 참조하면서 까지 했던 것조차도 이런
궤변을 늘어놓기 위해서 한다 여정들이 정절을 못 지켰으면 당연히 내쳐야
되는 거다라고 그렇게 사관도 써 버립니다 그러니까 사대부 자재들이 다 이혼을 시켜 버리는 거죠 자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송시열이 송자 대전에 나온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이 장선진 대대한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지금 어쨌든 다른 사대부
집안에서 어떻게는지 몰라 또이 장유의 아들 장선을 이혼시키는 건 결국은 어떡합니까 최명길의 말을 듣고 그래
그럼 이혼 안 된다 이렇게 결정을 내렸지 않습니까 그까 이혼을 못 했던 거죠 그거에 대해서 송시열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신은 또 상고 하건데 정자가 이르기를 절한 여자를 취하여
배필로 삼으면이는 벌써 자신이 실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정축년 별란 초에 절한
부인을 그 남편으로 하여금 버리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는 실적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 그때에 장유의 아들 장선을 이혼을 안 시킨
거는 실조를 하도록 만든거다 남자도 법을 의롭게 제정했다 아도 오히려
악용이 될까 걱정인데 이런 식으로 법을 만드니 어떻게 백성을 방지하겠습니다 삼가 듣건대 장선진
집에 실절 부인의 소생이 있는데 상신이 그와 혼인을 의논했다 하니
추함이 막심합니다 대신이 이와 같기 때문에 정이 날로 격화되고 임금의
위세가 날로 강화되니 매우 두렵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장선의 집에서 그 그
심양에 끌려갔다 온 그 부인하고 사이에 아들이 있었 아들이 있는데 그 집하고 다른 집하고 혼사가 오고 간
거예요 혼사가 오고 갔다는조차도 추하다는 겁니다 지금 어떻게 그런 집
자제하고 결혼할 생각을 하는 대신이 있느냐 라면서 비난을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고 법을 만드니까 나라가 지금 이모양 꼴리다 라면서 실제한 여자들을 내치지 못하게
한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이제이 부분을 읽으면서 야
정말 어떻게 저렇게 모든 일을 저렇게 여자들한테 다 떠넘기고
저렇게 비겁한 얘기를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저는요 이거에
대한 정말 놀라운 객관적인 자료를 찾았습니다 제가 책을 쓰면서 그 당시에 여러가지 책들에 대해서 읽다가
너무나도 놀라운 얘기를 발견했는데 이게 뭐냐면 미국 학자 페시아 이브라고 일리노이 대학에 있는 유명한
중국학 하는 교수가 그 쓴 저 편집한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이
Chinese Civilization a source book 그래 갖고 중국 역대에 유명했던 기록들 이런
것들을 발해 갖고 자기가 번역을 해서 낸 책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은 양주
기라 책이 있는데요 그 책의 내용을 쭉 그걸 완전히 번역을 했는데 그
중에서 제가 그걸 읽다가 발견한 대목입니다 우선 이게 이게 배경이
뭐냐면요 양주 1기라는게 뭐냐면 청나라가 이제 명나라를 제압을 하고
명나라가 무너진다면 청나라가 들어가서 그래서 처음에는이 중국 사람 명나라 사람들이 청군을 다 환영을 했습니다
왜냐면 너무 그전에 이자성의 난이 있고 너무나 어지러운데 오히려 천군이 들어와서 질서를 잡고 그러니까
처음에는 환영을 했었는데 그까 중국 사람들이 청조에 절 아주 결사적으로 저항을
하기 시작게 뭐냐면 변발령이 내립니다 여러분 변발령이 뭔지 아세요 변발이게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앞에 머리 이렇게 깍 면도 같이 하고 그다음에 어떻게하면 머리를 이렇게 땄지
않습니까 남자들이 그걸 변발이 그러는 거죠 이건 만주족의 머리죠 그죠 원래
머리는 어떡합니까 상투를 틀었죠 남자들이 똑같이 제갈량도 상투를었고 다 상투 입
손권도 상투 틀었고 그 상투가 없어진게 청나라 때문에 없어지는 거죠 그 그 전까지는 조선의 상나 중국의
상나 똑같았습니다 근데 그 상투를 다 잘라 버리라는 거예요 지금 청나라가
들어오면서 여진족이 변발령이 내리니까 이제 한족들이 중국 사람들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청나라가 수없는 전쟁을 하면서 이거 평정하러 다닙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청 조종이 뭐라 그러지 어느 날 안 되겠다 이제 뼈대를 지접 보야
된다 다음부터는 만일에 변발의 반대에서 저항을 하다가 함락이 함락이
되는 도시가 있으면 그 도시에서는 남녀 노소 다 죽여 버린다
완전히 전멸을 시켜 버리겠다 그럽니다 그래서 실제로 실제로
양주라는데 가장 큰 도시 무역의 그 그 그 그 도시였습니다 그 번창하는
도시에서도 또 반란이 라니까 그거를 공략을 해 갖고 청군이 들어가서
함락이 된 다음부터 10일 동안 처참한 학살극을 버립니다 근데
그 학살극을 버리는 거를 그중에 한 사람이 살아남아 갖고 그거를 탁
기록을 해한게 남아 있었던 거죠 그게 양주 기입니다 10일 동안 양주에서
겪은 일입니다 그런데이 사람이 그러니까 매일 같이이 집 저집이 창고
저 창고 뭐 지하실 베라벨대 다 숨으면서 간신히를 버텨냈는데 이날도
또 이제 어느 집에 피해서 또 어느 집 벽장에 이제 숨었답니다 그래서 벽장에 숨어 있는데 자기가 숨어 있는
그 벽장이 있는 방에 지금 천군 병사들이 들어온 거예요 중흥 여자들을
데리고 끌고서 그러면서 이제 여자들 희롱을 하는 거죠 거기서 근데 희롱을
하다가 그 청나라 병사가 이런 말을 했다 라는 기록이 지금 양주 11기에 나오는 거를 제가 피 페시 브레이
교수가 번역한 영어로 된 걸 제가 찾아서 읽어 읽어서 다시 번역을 한 겁니다 이런 얘기가 이런 대화고
겁니다 청의 군사들은 사람들에게 자주 말했다 우리가 고려 그러니까 그 당시
고려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을 정복했을 때는 수만 명의 여자를 포로로 잡았다
그러나 그 중 단 한 명도 정조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 같은 대국
여자들은 어찌 이리 수치심을 모르는 가라면서 천군 병사들이 본인 입으로
그러는 거예요 아니 우리가 그때 몇 년 전에 조선에 쳐들어가서는 수십만
명을 잡아왔는데 그중에는 조선의 여자들은 단 한 명도 실제한 여자가 없었다 그니까 아까 최명길 말대로
뭡니까 자결을 하거나 굶어죽거나 하면서 그걸 다 뿌리 쳤었는데 그런데 중국 여자들은 왜
이렇게 정조를 못 지키냐 오히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냐면은 지금
장선진의 부인에 대해서 장유 그다음에 그 그 사관들 이런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조선 여성들에 대한 그 의심과 오해 오히려 중국 병사들 청나라
병사들의 입으로 건 아니었다라고 증명이 오히려 되고
있습니다 그런 거를 보면은 정말 조선의 여성들은 대단했다 조선 남성들에 비해서 비할 바 없이
대단했다 그런데 이런 기록들이 조선의 기록에서도 나옵니다 이정암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임진 외란을 겪고 나서 이런 글을 쓴게 있습니다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옛사람의 글을 읽고 옛사람의 절리를 사모하여 평소에는 큰
소리 치면서 의에 죽고 구차히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가가
위험하고 어려운 전쟁으로 빼앗고 약탈하는 때를 만나면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는 자가 중한 둘도 없는 법인데 부인이나 처녀들 중에는 반대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으니 나는이를 우리 가문의 세 절부
보았다 임진란 당시에도 놀라운 기록들 많습니다 여러분 놀라운 기록들을 보고
있으면요 조선의 여성들은 끝까지 싸우는 모습들이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어떡합니까 그다음부터는 그렇게 여성의 정조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조선에 뭐가 세지냐 면요 문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세워집니다 그래서 연료의 통계를 보시면요 몇십 배가 늘어납니다
연료들이 갑자기 그리고이 병자호란 전에는 열려라 그러면은 뭐 수절 해도
열려고 그랬는데 병자 한부는 연료의 기준이 뭐냐면 실절 할 상태가을 때
자결을 하느냐 남편이 죽으면 따라서 죽느냐 안 안 죽느냐를 가지고 연료의
기준을 세우는데 그 연료비가 전국에 세워지기 시작하 겁 그니까 자기네가
못 지킨 못 지켜준 그 조선 여성들의 정조를 여성들 보고 지키라 그러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지키겠다 그러면서 연료비를 세우고 여성들을 꼼짝없이 속박을 하기 시작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여성들의 지위는 급전직하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교사들이 와서 서양의
선교사들이 19세기 말에 와서 보는 겁니다 그래서 스크랜턴 여사가 어
1895년에 조선에 들어와서 이제 어 이화학 땅이라는 걸 이제 처음 세우려
그런 거죠 1896년에 이제 이화학당이 본격적으로 세워지지만 이분들이 제일 먼저 와서 하는게
고아원을 세우는 겁니다 그러니까는 언더우드 목사도 경신 학교라는 걸 세우죠 그게 다 고아원에서 시작을
하는 겁니다 워낙 고아들이 많으니까 조선에 그러니까 이제 그 남자 고원도
생겼지만 이제 여자 고원을 그래서 스크랜튼 여사는 여자 아이들을 위한 고원을 세우려고 그래서 그 계획을
했다 하면서 그거에 대한 보고서를 쓴게 있습니다 내 다음 사역은 빈민 구제가 될 것입니다 2 3주 전 이런
생각을 하였는데 올바른 방향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나는 버려진 고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당장 와 두 명을 집에 데려올 생각이었습니다 새 집이 마련될 때까지 지 않고 형편대로 곧 시작하려
했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심사숙고한 끝에 두 명이 아니라 여섯 명을 데려다 기르기로 결심하고 내게 고아
이야기를 해준 사람에게 부탁해서 고아들을 더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기대를 갖고 기다렸는데 그는
며칠이지나 빈손으로 돌아와 여자 고아들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남자 고아들은 아주 많은데
어린 여자 아이들은 돈을 주고 사가기 때문입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건 남자들은 아주 극빈층이 아니면 부인이나 첩을 여러 명 거느리고 사는데 그런 배경에서 어린 여자
고아들을 사고 판아 봅니다
어 그러니깐 그이 여자아이들은 고화도 못 못
찾습니다 내버려두지 않는 거죠 다 처벌로 부모 없고 버려진 사람은
첩으로 데려오거나 뭐 기생으로 팔거나 뭐 노비로 팔거나 이렇게 하겠죠
그래서 이사벨라 비숍 여사가 또 이런 얘기를 합니다 조선에는 여자아이들
가르치는 학교가 없다 조선의 여성은에 대해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체가 높은 계층에서는
언문을 배우는 여자도 있지만 그 숫자는 1천명당 한 명도 안 된다
그렇죠 한글을 배우는 경우도 있지만 1천명에 하나 정도도 안 된다 여자들에게 부과된 영역은 글을 할
필요가 없다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맨날 그죠 옷이나 짓고 앉아 있는데
글을 알아서 뭘 하냐 이런 얘기가 됩니다 예외가 있다면 점자는 계층에 속하지 않은 여성들이다 뭐죠 기생
얘기죠 남자들의 잡다한 놀이 대상이 되어주기 위하여 그들은 이야기를 읽고 낭송하거나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는 등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들만 골라서 흘려 맞는다
이런 여성들은 신분 상승을 이룰 수도 있으나 절대로 누구의 부인이 될 수는
없다 조선의 남자들은 자신의 혈 흠집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부인은
비록 하얀 벽이 완전히 머리가 비어 있는 여자라도 다른 곳에서 찾지 결코
잔치 않은 계층에서는 찾지 않는다 그니까 글을 좀 알고 그래도
남자들하고 대화가 상대가 되는 거는 기생들 밖에 안 되고 그럼 기생들은
부인으로 맞이할 수 없고 잘해야 불어나 맞이할 수 있는데 그러면 부인들은 그러 글을 가리냐 아무것도
안가 그럼 어떻게니까 가 높은 집일수록
부인은 머리가 백치 백치 상태 백치처럼 하얗 되는 겁니다 이게 지금
조선 여성의 처지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다음에 이제
나오는게 또 이거는 언더우드 목사 부인이 한 얘기입니다 조선의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아름답지 않다 나는 이들을 그누구 못지 않게 사랑하고 내친 자매와 같이 생각하지만이는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비해 절망 노동 병마 사랑받지 못함 무지
너무나너무나 많은 경우에 수치심은 그들의을 눈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얼굴을 굳어지고 상처나게함으로써 25살이 넘은 여자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비슷한 것을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아직 염려와 고대 노동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나 젊은 부인들 시들 괄호열고
이분이 시라고 아예 쓰셨습니다 SSI 중에는 이쁘고 매력적이고
흔치는 않지만 아 아름답기까지 한 얼굴을 볼 수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들 불쌍한 궁중의 여인들은 그런 경우가 아니다 굳어질 때로 굳어졌고 거칠고 저속하게 한 이들을
보면 가쓴 마음만 들 뿐이다 그러니까 앞부분에는 조선 여성들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얘기를 하는 거죠 너무나
힘들게 살기 때문에 이쁜 여자 여자들 처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전 세계에서
미용이나 모든 거에 미에 있어서 앞서가는 조선 한국의
여성들의 100년 전에 모습이 절했다
뒷부분에 뭐라고 써 있냐면이 불쌍한 궁중의 여인들은 그런 경우가 아니다 이게
뭐냐면요 지금 이때가 언더우드 어 목사 부인이 고정하고 민비를 연하로
들어갔을 때입니다 궁중에 그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거기에 이제 궁궐에 있는 많은 뭐 상궁이 무슨 뭐 무수리 뭐
하여튼 여자들이 있을 거 아닙니까 경복궁에는 만 명이 항이 득을 거렸답니다 많은 경우 여자들이 근데
그 여자들은 일반 백성들 같이 헐벗고 굶주리고 그래서 아름답지 않은게
아니라 당연히 화장도 했을 거고 궁중 여인들이 했는데
너무나 굳어졌고 거칠고 저속하다 담배 피고 뭐 이러면서 그런 거를 보면서
아 조선의 여성들 또 이랬었구나 하는 거를 우리가 간음에 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독립 신문입니다 여러분 독립 신문이 1896년 서재필 씨가 와서 어 독립
신문을 만들지 않습니까 그 독립 신문에 이런 기사가납니다 서재필 씨가 쓴 기사입니다 세상의 불쌍한 인생은
조선 옆편 내니 우리가 오늘날이 불쌍한 옆편 내들 위하여 조선
인민에게 말하노라 여러분 여기서 옆편 내 이런 걸 보면 지금 우리말로는 굉장히 안 좋은 상수로 말 같이 돼
있지만 당시의 조선 말로는 좋은 말이었던가 봅니다 그니까 전혀 우리가 어투가
달랐었다 거죠 우리말로 지금하면 여성들이 옆편 내가 나이보다 조금 더
낮은이 아닌데 낮은이라는게 낮은이가 아닌데 낮은 사람이 아닌데 사나이들이
천대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이들이 문명 개화가 못되어 이치와 인정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자기의 심만 믿고 팔힘만 믿고 압제하는
것이니 만 믿고 하려는 것이니 어찌 야만에서 다름이 있으리요 사람이 야만과 다른 것은
정의와 예법과 의리를 알아 행신 하는 사람 것이을 조선 사나이가 옆편 내
대접하는 것을 보고 두면 정도 없고 의도 없고 예도 없고 참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대접하기를 나이보다 천한
사람으로 하고 무리하게 자는 풍속과 억지와 위험으로 행하는 일이 많으니
많이 있으니 그 옆편 애들을 대하여 어찌 불쌍하고 부한 마음이 없사
장부라고 하는 것은 강하고 교만한 사람을 없신 여기고 약하고 고한
피곤한 인생을 높이고 위해주는 법인데 옆편 내라는 것은 사나보다 약하니
장부의 도리에 약한 일을 존경하고 위하는 것이 높고 마땅한 일이라 조선
옆편 애들이 약한 고로 자유한 권위 권리가 없고 없어졌고 대접받기를 오게
갇힌 죄인 같이하니 그 산 아이들의 무리한 죄상을 생각하면 매우 천하고
심하더라 조선 남녀의 행실을 비교하여 볼데 옆편 내가 나이보다 100배가 나은 것이 첫째는 사나이 중에
음행하는 자가 더 많고 둔 사람이 많이 있으되 옆편 중에는 음행하는
이도 적고 간 부든 옆도 은즉 어찌 나이보다 높고 정결하지 하리요 무리한
사나이들이 풍성 만들기를 저희는 행하며 장가든 후 불 두어도 부끄러움이 없고 자기 아내는 음행이
있지 간부가 있으면 대변으로 아니 그런 고르지 못한 일이 어찌 있으리요
자기 행실이고 정결한 후 자기 아내가 행실이 그면 그때는 그 아내를
는다든지 법률로 다스리는 것은 하거니와 자기 행실이 그런즉 자기
안에 책망하는 권력이 없는지라 조선산 중에 음행을 하든지을 두는 자는
음행이 있는 내 다스리는 법률로 다스리는 것이 마하라 천 의 생각에
자기 아내가 문 더워 문밖에 임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내외하는 풍속을
마련하여 죄인 같이 집에 가두어두고 부리기를 종 같이 하고 대하기를
자기보다 낮은 사람으로 여기니 어찌 분치 아니리요 아내가 죽으면 치하는
것은 저희들이 옳은 법으로 정하였고 서방이 죽으면 가하여 가는 것은 천히
여기니 그것은 무슨인지 모라 가는 한 옆편 내가 소의 소년의 과부가 되면가
하여도 무방하고 사나이도 소년에 상처면 치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조선 부인 애들도 차차 학문이 높아지고 지식이 러지 부인의
권리가 산하이 권리와 같은 줄을 알고 무리한 사나이들을 제어하는 방법을
알리라 그렇기에 우리는 부인 네들 권하노니 아무쪼록 학문을 높이 배워
산 아이들보다 행실이 더 높고 지식도 더 넓혀 부인의 권리를 찾고 어리석고
무리한 사나이들을 교육하기 바라더라 독립신문 18 96년 4월 21일 일면
이단입니다 여러분 3주째 밖에 안 된 신문입니다 그니까 그런데 누가
썼습니까 외국 사람도 아니고 외국 여자도 아니고 조선 여자도 아니고
조선 남자인 서제 씨가 쓴 글입니다 그 서표 씨의 눈에서
보기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을 지금 여성들이 당하고 있다 조목조목 들어서
조선 남자들의 위선과 야만을 매섭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다음 하나 또 보겠습니다 이거는 이제 조선 남성이 본 조선
남성입니다 그니까 이거는 윤치호 선생이 또 쓴 일기에 쓴 글입니다
1903년 6월 19일자 일기에 나오는 글인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조선인 남성은 이기주의 의 화신이다
소인 남성은 자신이 편하기만 한다면 아내와 자녀들이 편하게 지내는지
불편하게 지내는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아내들은 자신의 군주이자
주인에게 봉사하는 것만이 의인 의무인 인일 뿐이다 우리 어머님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즐겁게 일하신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따로 상을 받아야 하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나 장소가 없기 때문에 어머님과 하녀들은 오랫동안
음식을 준비하고 밥상을 차린 일로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다 정해진
시간에 공동 식당에 차린 공동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면 걱정거리와 문제거리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버님은 그렇게 터이 없는 제안에는 전혀 귀를 기울지 않으신다
라면서 1903년 6월 19일자 일기에 썼습니다 지금 여기서 쓰고 있는 자기 아버님 얘기가 유능
씨입니다 윤흥열 씨는요 여러분 정말로 개화파 있습니다 개화한데도 전 세대는
했었던 거죠 그러니까 윤흥열 씨가 일찌감치 신사유람단 때 일본에
건너가서 그때에 후쿠사 유키치 만나고 그다음에 그 저 영국 영사도 만나고
다 만나고 옵니다 그러면서 오자마자 어떡합니까 오자마자 자기 아들 16살짜리 아들 윤치호를 일본에
보내는 거죠 그래서 후쿠사 테 의탁을 해서 후쿠사 가 동인사 보내줘서 1년간 일본말을 배우고 6개월간
영어를 배우고 후트 공사가 주한 주조선 미국 공사가 부임할 때 그때
도쿄에서 만나서 후트 공사의 통역으로 18살 때 다시 조선에 들어와서
이따가 갑신정변이 12월에 일어나서 실패하고는 이제 외국에 나가서 상해로
먼저 가서 상해의 중서 서원이라는 앵글로 아메리 레지라데 가서 4년 동안 영어로 대학을 졸업을 합니다
너무 공부를 잘해서 그 학교를 설립한 영 앨렌 목사라는 분이 자네는 미국
가야 된다 그래서 밴더빌트 대학에 유학을 보내줘서 밴더빌트 대학에서 또
대학을 졸업하는데 영문학을 전공을 해서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 거기 선생들이 어떻게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냐 그랬습니다 영어로 강연을 하면서 그 동네에 그 주변에 미국 남부를
돌면서 강연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답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것도 모 자라서 에모리 대학에 가서 석사
학기까지 하고 그러고는 이제 에 돌아가서 거기에서 자기가가 배웠던
중서 서원에 가서 3년 동안 또 교수 영어로 교수 노릇을 하고 그러고 나서는 갑보 영장이 나니까 조선에
이제 다시 들어오게 되는 거죠 자 이런 분이 전 세계를 지금 다 왔습니다 그러니까 뭐 조선말 하고
한문은 물론이고 일본말 영어 중국어 다 하는 분입니다 가장 열려 있고
가장 세상을 많이 받고 대단한 분인데 이분이 돌아와서 돌아와서 조선에 와서
보니까 그런데 도대체 우리 어머님은 참 좋으신 분이라서 남편을 봉양을
하고 자식들을 위해서 그렇고 온갖 손님들을 다 치지만 이게 얼마나 고대고 힘든
일이냐 그런데 도대체 서양식으로 가서 보면요 식구들이 밥 먹을 때 되면 그냥 다 한 번에 한 다이닝룸에 앉아
갖고 식탁에 앉아 갖고 다 같이 밥먹고 치우면 되는데 아 이거는 또 이제 양반집이라고 다 독상을 그것도
시 식사 시간도 없었습니다 따로 아무 때나 아무 때나 손님 오면 그냥 그때그때 밥상을내는 거예요 이제 이런
거를 보면서 얼마나 조선의 여성들이 고대다 그것도 하층민 아니라
자기 어머니 같이 굉장히 그래도 지체가 높고 재산도 많고 권세도
있었던 집안에서조차도 여성들의 삶은 이렇게 고됐다 거를 또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보통 평민들의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했었고 어 사대부집 어
그러니까 윤치호 신의 집안 같은 그 여성들에 대한 얘기도 했고 근데 정말이 다음이 황태자 비에 대한
얘기가 수 있어 아 참 그 조선 여성들의 처지를 너무 적날하게 보여주는 거 같아서 한번 같이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이 역시 윤치호 일기에 나온 얘기입니다 윤치호 일기가 1904년 11월 6일 날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어젯밤에 황태비 순명 민씨가
돌아가셨다 아니 의들이 여성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게 하는 부당한 조선의
관습 때문에 강제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어
순종황제가 비가 둘이 있었습니다 그니까 어 순명 황후가 있고
순정효황후가 있죠 순명 효우가 지금 아직
세자였던 필요한 처방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은 의학이 자랑할 수 있는 건 이상이다 황태자비의 경우는
아무것도 보일 수 없었다 그나마 잠깐 맥 맥을 보는 것도 못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손도 손목 주의 좁은 분분 부분을 제외하고는 비단으로 감쌌다
외국인 의사라면 황태자비를 살릴 수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황태자비를
진단하기 위해서 60여명의 의사가 소환되었다 하지만 그 의사 가운데 환자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환자를 못 본 거죠 형태 잡이를 어떻게 남자 의사들이 들어가서
봅니까 진각을 못 하는 거죠 의사가 처방전을 지을 때는 전체 의사들의
평가에 따랐다 의사들이 그렇게 처방전 짓는 과정을 다 끝냈을 때는
쓸모없거나 해로운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니까 뭡니까 회의를 통해 갖고 약을 조제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강한게 있으면 혹시 무슨 부작용이 있을까 봐 겁나서 다 다 빼 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아무
쓸데없 찌꺼기 약 강제만화 의사라 해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왕족이 궁궐에서 병이 났을 때는 오직 천우
신조나 기회나 운수 외에 그 왕족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영익이 민영익이 갑신정변 당시에 정변 파대는데 칼을 일곱
군데나 맞고서 거의 죽어 가는 것을 그때에 마침 10월 중순쯤에 알렌
목사가 아 알렌 의사가 해피면 와 있었고 그리고 그 알아서 그때
멜레프고 후트 공사가 이제 불렀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근데 그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남자고 그러니까 어쨌든간에 그걸 뜯어내고 다 한의사들
물리치고 꿰매고 자르 전부 다 해 갖고 그 사람을 살려내는 거죠 상투
날아가고 다 찢기고 한 사람까지도 살려냈는데 지금 못
살려냈습니다이이 비를 그러니까는 이런 걸 아는 윤초 씨
입장에서는 정말 통탄할 일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 있느냐
하면서 서양 의사였으면 무조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것이 여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황족이 황실도 겪어야 되는 그런 비극적인
삶이었습니다 자 자 그러면 지금 우리가 어 지금 대한민국은 제가 한국
사람들의 기대수명에 대해서 한번 찾아봤는데 아주 최신 정보를 하나 찾았습니다
2024년 각국 국가별 기대수명 이제 순위가 나온 겠 있습니다 근데 여기
보시면요 1위가 홍콩입니다 근데 홍콩은 뭐 사실 독립 국가도 아니고 인구도 얼마 안 되기 때문에 한
500만이 나 될까요 그러니까 어 거기는 어쨌든 그 남녀를 합쳐서 평균
기대 그니까 기대 명이 85.6 3세 2위가 사실은 1위가 나라로 치면
1위가 1번입니다 1 1번이 84.85 여성들이 87.88 C
남성들이 81.8 3세 그런데 한국이 대한민국이 그 다음입니다
84점 평균 84.4 3세 여성은 8.28 남성은
81.32 아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까지 세계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제일 오래 사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것은 조선이 아닌 다른 나라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다른 나라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
역사를 바라볼 때는 어떻게 어떻게 해서 조선 시대에는 여성들이 저런
대우를 받고 비록 황태자 비례도 저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세상 세계에서 제일 오래 사는 그런 남자들보다 오래 사는
그런 세상이 되었는가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발전했고 무엇이 좋아졌고 무엇이
근대화가 됐기 때문에 이루어졌지 조선 사람이 어떻게 해서 한국 사람이 되어서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지 그런
것을 살펴보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역사 한국의 역사를 어
바라보는 관점이 그런 근원을 어내는 것이 바로 역사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어 조선의 여성들의 어 삶이
어땠을까 아 그런 것을 그런 것을 말씀을 드렸는데요 글쎄요 저도 어
이것을 조사를 하고 읽고 쓰고 하면서 참 마음이 많이 아팠고 아 참 이런
이런 시대가 있었구나 우리 선조들이 우리 선대들이 이렇게 살았 구나
그러면서 참 오늘의 대한민국에 대한 감사와이 시대에 타는 거에 대한
고마움도 느껴보고 그랬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역사를 직시하는 어 아무리
아프고 슬픈 역사지만 그를 직시해야만 우리가 여기 어떻게 왔고 그리고
앞으로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될지를 알게 되는 거 같아서 어 힘들
때론 힘들지만이 문제를 깊이 한번 달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정한 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났던 논쟁인데 조선의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논쟁이
때문에 정한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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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은 언제부터 차별받았을까?> 요약 및 평론

1. 내용 요약

강좌 14회에서 함재봉은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와 지식인들의 1차 사료(기록)를 바탕으로, 조선 시대 유교 성리학과 종법 질서의 도입, 그리고 양란(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치며 조선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극단적으로 실추되고 억압받게 되었는지를 다각도로 해부한다.

(1) 외국 관찰자들의 기록과 조선 여성의 처참한 실상

  • 비숍 여사 및 달래 신부의 증언: 비숍 여사의 <조선과 그 이웃들>에 따르면 조선 여성은 법적·정신적 권리를 부인당한 채 노동과 쾌락의 연장선상에 있는 '노예'와 다름없었다. 외관 남자가 실수로 손만 대어도 남편이나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을 강요당하는 명예살인(Honor Killing)적 습속이 존재했다.

  • 외출 및 교육의 차단: 양반가 여성들은 얼굴을 가리는 장옷을 써야 했으며, 문해율은 1,000명 중 1명도 안 될 정도로 교육에서 소외되었다. 언더우드 부인의 증언처럼 과중한 노동, 비위생, 절망, 무지로 인해 20대만 지나도 외모와 건강이 극도로 피폐해지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2) 병자호란과 '환향녀(還鄕女)' 파동: 비겁한 남성성과 정조의 강제

  • 환향녀의 비극과 사대부의 이기심: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잡혀갔다 몸값을 치르고 돌아온 여성들에 대해, 효종의 장인 장유 등 사대부들은 '실절(失節)'을 이유로 조상의 제사를 받들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 최명길의 반대와 사대부들의 실행: 최명길은 선조 대의 전례와 억울하게 끌려간 부녀자들의 사정을 들어 이혼을 반대했고 인조 역시 이를 받아들였으나, 사대부 자제들은 끝내 돌아온 부인들을 버리고 새장가를 들었다.

  • 청나라 기록과 역사적 역설: 사관들과 송시열조차 실절한 부인을 내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 비난했으나, 정작 청나라 군사들의 기록(<양주십일기>)에서는 "조선 여성들은 단 한 명도 정조를 잃지 않고 자결하거나 저항했다"고 증언하여 조선 사대부들의 비겁함과 오해를 반증해 준다. 이후 조선 조정은 자기들의 무능을 덮고자 전국에 열녀문을 세우며 여성의 정절을 더욱 가혹하게 옥죄었다.

(3) 근대적 지식인들의 비판과 신분·성별을 뛰어넘는 비극

  • 독립신문과 윤치호의 고발: 1896년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통해 조선 남성들의 위선, 축첩 제도, 여성 학대를 야만적이라 매섭게 비판했다. 윤치호 역시 자신의 일기에서 "조선 남성은 이기주의의 화신"이라며 어머님과 여성들이 당하는 무급 노동과 억압을 통탄했다.

  • 황태자비(순명효황후)의 비극: 남녀 유별이라는 유교적 관습 때문에 60여 명의 한의사가 호출되고도 손목에 비단을 감은 채 진맥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황태자비 순명효황후가 사망했다. 궁궐의 최고 권력층 여성조차 유교적 가부장제의 비합리성 속에서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갔던 것이 조선 여성의 궁극적 실상이었다.

2. 평론: 유교적 가부장제의 폭력성과 근대적 인권의 탄생

강좌 14회는 조선 왕조와 사대부 담론의 화려한 겉껍질 뒤에 숨겨진 '인구 절반(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과 수탈'을 냉정하게 해부한 사상사적 및 문화인류학적 성과이다.

첫째, 여성 억압의 역사적 기원과 '남성성의 비겁함'에 대한 통찰이다. 조선 여성의 차별이 태고의 민족적 본성이 아니라 성리학적 종법제의 수용과 양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심화되었음을 밝혀낸다. 특히 병자호란 당시 나라와 국방을 지키지 못한 사대부 남성들이, 그 책임을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의 '정절 논쟁'으로 전가하고 열녀문을 통해 이념적으로 통제하려 했던 비겁성을 사료로 철저히 고발한다.

둘째, 서구 관찰자 사료와 내부 개혁파 사료의 입체적 결합이다. 비숍 여사, 달래 신부, 언더우드 부인 등 외부자의 눈에 비친 객관적 기록과, 서재필의 <독립신문> 논설 및 윤치호 일기라는 내부 선각자들의 고발을 결합함으로써 조선 말기 여성 인권의 비참함을 선명하게 입증했다. 이는 낭만적·민족주의적 조선관을 깨뜨리고 근대 인권 의식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셋째, 황태자비의 죽음이 보여주는 '제도적 비합리성'의 극치 고발이다. 아무리 높은 신분의 왕실 여성이라 하더라도 '남녀유별'이라는 관념에 갇혀 의사의 제대로 된 진찰조차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건을 부각함으로써, 유교적 명분론이 어떻게 인간의 생명권과 최우선적 가치를 침해했는가를 일깨워준다.

결론적으로, 함재봉의 14회 강연은 조선이라는 유교 성리학 국가가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한 체제였는가를 증명하며, 오늘날 대한민국 여성들이 누리는 자유, 교육, 세계 2위권의 기대수명이 조선 체제의 해체와 서구적 근대성(개인, 인권, 기독교 교육)의 수용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 문명사적 기적임을 통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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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4회

<조선 여성은 언제부터 차별받았을까?> 요약 + 평론

이번 강의에서 함재봉은 흔히 <조선 여성은 원래부터 유교적 가부장제 아래 억압받았다>고 생각하는 통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핵심 주장은 조선 여성의 지위가 처음부터 한결같이 낮았던 것이 아니라, 조선 중후기에 <주자학적 종법질서가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면서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세기 말 외국인, 특히 개신교 선교사들이 목격한 조선 여성의 처지는 이 변화가 완성된 뒤의 모습이었다.

1. 왜 여성사를 보아야 하는가

함재봉은 먼저 기존 역사기록의 한계를 지적한다. 전통 역사서는 왕, 대신, 전쟁, 정치 엘리트 중심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구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한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면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아야 하며, 특히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삶을 보지 않고서는 조선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함재봉은 19세기 말부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기록을 중요한 자료로 이용한다. 이들은 조선의 여성생활을 낯선 외부인의 눈으로 자세히 기록했기 때문이다. 강의 1쪽에서 그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Korea and Her Neighbours>를 대표적인 자료로 제시한다.

2. 19세기 말 외국인이 본 조선 여성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 여성의 처지는 매우 열악했다.

함재봉은 당시 여성에게 독립적인 법적·사회적 지위가 거의 없었으며 남편이나 부모의 지배 아래 놓였다고 설명한다. 여성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라는 관계 속에서 존재했다.

특히 양반사회에서는 여성의 정절을 극단적으로 강조했다.

함재봉이 강조하는 역설은 이것이다.

<신분이 높은 여성일수록 더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하게 속박되었다.>

천민이나 하층 여성은 생계를 위해 바깥에서 일해야 했기 때문에 일정한 활동 공간이 있었지만, 양반 여성은 집 안에 머무는 것이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여겨졌다.

3. 그런데 이것이 ‘원래 조선’의 모습이었는가

이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함재봉의 답은 <아니다>이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고려시대의 가족관습이 상당 부분 남아 있었다. 여성의 재산상속권이 있었고, 딸도 재산을 상속받았다. 혼인 후 남자가 처가에서 생활하는 관습도 흔했다.

즉 우리가 흔히 조선의 전형적인 가족제도라고 생각하는

<남계 중심>
<장자 중심>
<부계 혈통>
<출가외인>
<여성의 친정과의 단절>

이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함재봉은 이것이 주자학적 사회질서가 점차 확립되면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4. 주자학의 도입이 결정적인 변화였다

함재봉은 주자학이 단순한 철학이나 정치이론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자학은

가족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누가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
재산은 누구에게 상속해야 하는가,
남녀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과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까지 규정하는 생활질서였다.

따라서 주자학적 종법질서가 뿌리내리면서 조선의 가족제도 자체가 재편된다.

<양계적 가족 → 부계적 가족>

<아들·딸의 비교적 균등한 상속 → 장자·남성 중심 상속>

<처가살이 → 시집살이>

<여성의 친정과의 강한 관계 → 출가외인>

이라는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5. 임진왜란이 중요한 전환점

함재봉은 특히 임진왜란을 중요한 계기로 본다.

전쟁에서는 수많은 여성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왔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적에게 붙잡혀 있었던 여성의 정절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함재봉은 이 문제를 유몽인의 <어우야담> 등에 기록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강의 2~4쪽에서는 포로가 되었다 돌아온 여성을 남편과 이혼시켜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을 자세히 다룬다. 선조는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쪽이었지만 사대부들은 여성의 정절을 훨씬 엄격하게 적용하려 했다. 함재봉은 여기서 사대부들의 도덕적 규율이 왕보다도 더 강경해지는 현상을 주목한다.

6. 병자호란은 여성의 정절문제를 더욱 극단화한다

병자호란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을 흔히 <환향녀>라고 불렀다.

함재봉이 중요하게 보는 것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적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전쟁의 피해자였음에도 사회가 그들에게 정절의 책임을 물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여성의 몸이 단순히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가문의 명예>
<남편의 명예>
<유교적 도덕질서>

를 상징하게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전쟁의 피해자가 오히려 도덕적으로 심판받는 역설이 발생했다.

7. 사대부는 왕보다 더 엄격했다

강의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함재봉은 선조가 포로가 되었다 돌아온 여성들의 이혼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음에도 사대부들이 더욱 강한 정절 기준을 주장했던 사례를 소개한다.

즉 가부장제가 단순히 <왕이 위에서 강제로 만든 제도>였던 것이 아니다.

사대부 사회가 스스로 주자학적 규범을 내면화하고 경쟁적으로 강화했다.

함재봉에게 이것은 중요한 현상이다.

<주자학이 국가이념이 되었다 → 법으로 강제되었다>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대부가 주자학적 인간형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는 것이다.

이 점은 <한국 사람 만들기>라는 함재봉의 전체 주제와 직접 연결된다.

8. 열녀의 증가

그 결과 조선 후기로 갈수록 <열녀>가 크게 증가한다.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거나 평생 재혼하지 않는 여성이 칭송받았다. 국가도 열녀를 표창했다.

함재봉은 이것을 여성들이 갑자기 더 도덕적으로 변해서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정절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성은

<누구의 딸 → 누구의 아내 → 누구의 어머니>

라는 부계가족 내부의 위치로 규정되었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의 공간은 줄어들었다.

따라서 함재봉에게 열녀문화의 확산은 <주자학적 한국인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여성에게는 비극적인 결과였다.

9. 19세기 말 선교사가 만난 여성

이렇게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사회에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강의 5~6쪽에서 함재봉은 언더우드와 스크랜턴 등의 기록을 이용해 당시 여성의 삶을 설명한다. 여성교육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상류층 여성일수록 외부 활동이 제한되어 있었다.

흥미롭게도 선교사들이 처음 시작한 중요한 사업 가운데 하나가 <고아원>이었다.

그러나 남자 고아는 쉽게 데려올 수 있었지만 여자 고아는 돈을 주고 데려와야 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당시 여자아이의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낮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함재봉은 사용한다.

10. 그런데 선교사 기록도 다시 읽어야 한다

함재봉은 외국인 기록을 단순히 조선 비판의 자료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언더우드 부인의 기록을 통해 다른 모습도 보여준다.

그녀는 조선 여성들이 비참한 환경에서도 끈기 있게 노동하고 가족을 돌보며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했다. 함재봉은 특히 조선 여성들의 노동력과 생활력을 높게 평가한다.

<조선 여성 = 수동적 희생자>

라는 단순한 그림을 피하려 한다.

억압적 제도 속에서도 여성들은 가족경제와 일상생활을 실제로 떠받치고 있었다.

11. 윤치호의 일기에 나타난 조선 남성

강의 7쪽에서 함재봉은 윤치호의 1903년 일기를 소개한다.

윤치호는 조선 남성들이 아내를 자신의 ‘군주이자 주인’에게 봉사하듯 일하게 하면서 자신은 가정생활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비판했다.

함재봉은 이 기록을 통해 여성의 문제를 단순히 추상적인 유교이념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실제 일상의 노동분업 문제로 가져온다.

여성은 음식 준비, 자녀 양육, 집안일을 담당했고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12. 여성교육이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이후 선교사들이 여성교육을 시작한다.

함재봉은 이것을 한국 여성사의 중요한 두 번째 전환으로 본다.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점차

교사,
의사,
간호사,
전문직

등 새로운 역할을 맡기 시작한다.

강의에서는 윤치호의 가족 사례도 길게 다룬다. 해외유학을 하고 영어를 배우며 미국 대학까지 진학한 여성의 사례를 통해, 불과 한 세대 사이에 조선 여성에게 가능했던 삶의 범위가 얼마나 급격하게 넓어졌는지를 보여준다.

13. 명성황후의 죽음도 여성사라는 관점에서 본다

강의 후반부에는 명성황후 시해가 등장한다.

함재봉은 이것을 단순한 국제정치적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여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잔혹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라본다.

또 궁중의 여성들은 현대의학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남성 의사가 여성 환자의 몸을 직접 진찰하기 어려운 관습 때문이었다.

함재봉은 알렌이 왕실 남성들을 치료할 수 있었던 것과 대비하여 여성 의료가 왜 절실했는지를 설명한다. 이는 여성 선교사·여의사와 여성병원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14. 함재봉이 마지막에 던지는 역설

강의 마지막에는 오늘날 한국의 기대수명이 등장한다.

함재봉은 과거 조선에서 극도로 열악했던 여성의 삶과 오늘날 한국 여성의 세계적으로 높은 기대수명을 대비한다.

그에게 이것은 단순한 보건통계가 아니다.

<조선 후기의 여성 억압 → 개항 → 여성교육·근대의료 → 여성의 사회적 진출 → 현대 한국>

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 여성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오늘날 한국사회가 이룬 변화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말로 강의를 끝낸다.

평론

이번 14회는 <한국인의 탄생> 강좌 가운데 상당히 흥미로운 편이다. 가장 큰 장점은 <유교 때문에 조선 여성은 500년 동안 똑같이 억압받았다>는 단순한 통념을 깨뜨린다는 데 있다.

함재봉의 중요한 주장은 이것이다.

<조선의 가부장제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조선 초기와 후기의 가족제도는 같지 않았으며, 주자학적 종법질서가 수백 년에 걸쳐 사회에 침투하면서 여성의 상속권, 혼인관행, 거주방식, 재혼, 정절에 대한 규범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여성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강의의 강점이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도 있다.

첫째, <주자학 → 여성 억압>이라는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선명하다. 실제 조선 가족제도의 변화에는 주자학뿐 아니라 재산제도, 상속관행, 인구구조, 양반가문의 확대, 제사제도와 족보, 국가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주자학은 그 변화를 정당화하고 조직한 매우 중요한 언어였지만 모든 변화를 하나의 사상으로 설명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둘째, 외국 선교사 기록 역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들은 조선 여성의 열악한 현실을 실제로 관찰했지만 동시에 <억압받는 동양 여성과 이를 구원하는 기독교·서양문명>이라는 19세기 선교담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함재봉은 이 자료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셋째, 강의 후반에는 다시 함재봉 특유의 <근대화 서사>가 강하게 나타난다.

<주자학적 조선의 여성 억압>
→ <서양 선교사>
→ <교육·의료>
→ <여성해방>
→ <현대 대한민국의 성공>

이라는 구조이다.

앞서 개신교 강의를 검토할 때와 비슷한 문제다.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 매끄럽다. 한국 여성의 근대적 지위 향상에는 선교사뿐 아니라 여성 자신들의 운동, 개화파, 천도교·동학 계열, 3·1운동, 신여성운동, 사회주의 여성운동, 해방 이후 법제개혁 등 여러 계보가 존재한다.

특히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개벽파>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강의에는 흥미로운 공백이 있다. 함재봉은 여성해방의 중요한 동력을 주자학적 질서와 대비되는 <서구 근대·개신교>에서 찾는다. 그러나 동학의 <사인여천>, 천도교의 인간평등, 개벽사상이 기존 신분·성별질서를 어떻게 흔들었는지는 거의 다른 계보로 다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14회의 핵심 명제인

<조선 여성은 처음부터 차별받았던 것이 아니라 주자학적 조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더욱 심하게 차별받게 되었다>

는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질서에서 여성이 벗어나는 과정 역시 서양 기독교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국 여성 자신의 활동과 개화·개벽·민족·사회주의 등 여러 근대적 흐름이 함께 만들어낸 과정이었다.>

이렇게 보완하면 14회는 함재봉의 설명을 넘어 훨씬 풍부한 한국 여성사가 된다.


==
1] 함재봉이 이 강좌에서 언급하는 외국인의 책들에 대한 정보를 써주세요. 
2] 한국 여성사에서 이 강좌에서 다루는 부분을 다루는 책들에 대해정보를 써 주세요. 어떻게 다르게 다루는가 요약해주세요.

==

네. 이 14회는 함재봉의 강의 가운데 특히 <자료의 성격>을 구별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 회입니다. 강의에는 ① 19세기 말 외국인의 관찰기, ② 조선 내부의 실록·야담·일기, ③ 현대 역사학 연구가 섞여 있습니다. PDF 1쪽에서 함재봉 자신도 여성사를 복원하기 위해 19세기 말부터 들어온 외국인들의 기록을 적극 이용한다고 설명합니다.

1. 강의에 나오는 외국인의 책들

PDF에서 제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외국 저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강의가 모든 책의 정확한 서지사항을 말해주지는 않으므로, 아래 서지정보는 별도로 확인한 것입니다.

①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 Korea and Her Neighbours>

영국의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이 1894~1897년 여러 차례 조선을 여행한 뒤 쓴 책으로 189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함재봉은 이 책을 14회의 출발점으로 사용합니다. PDF 1~2쪽에서 비숍이 관찰한 조선 여성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여성은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 남편·부모의 지배 아래 있었고, 특히 상류층 여성의 외출과 남성 접촉이 엄격히 제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숍의 책 전체를 읽으면 조금 더 복잡합니다. 그녀는 조선 여성의 억압을 비판하는 동시에 여성의 노동력, 생활력, 경제적 역할도 상당히 강하게 관찰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불쌍한 조선 여성>만을 묘사한 책은 아닙니다.

이 책의 특별한 가치는 <1890년대 현장관찰>입니다. 반대로 한계도 분명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여성의 눈으로 조선을 보았으므로 서양의 문명/야만 기준과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Korea and Her Neighbours 관련 자료

②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Life in Korea>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 1851–1921)는 의사이자 장로교 선교사로, 호러스 언더우드의 부인입니다. 1888년 조선에 와서 왕실 의료와 선교활동에 참여했습니다.

1904년에 출간된 이 회고록은 약 15년간 조선에서 직접 생활한 경험을 기록합니다. 14회 PDF 5~8쪽에서 함재봉이 상당히 중요하게 사용하는 자료입니다. 특히 조선 여성들의 노동, 교육 부재, 상류층 여성의 폐쇄된 생활, 궁중 여성의 의료 문제 등을 설명할 때 사용합니다.

비숍과 다른 점은 언더우드는 여행자가 아니라 <거주자·의사·선교사>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의 사적인 생활에 훨씬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선교사였습니다. 따라서

<유교적 조선 여성 = 억압>
→ <기독교 교육·의료 = 해방>

이라는 선교사적 문명관이 개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③ Patricia Buckley Ebrey

<Chinese Civilization: A Sourcebook>

PDF 4~5쪽에서 함재봉은 미국의 중국사학자 Patricia Buckley Ebrey가 편집한 <Chinese Civilization: A Sourcebook>을 언급합니다. 그는 청나라의 중국 정복과 변발 문제를 설명하면서 이 자료집을 이용합니다.

이것은 앞의 두 책과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비숍과 언더우드는 <당대 목격자의 기록>이지만, Ebrey의 책은 중국사 1차 자료들을 현대 학자가 편집한 <사료집>입니다. 따라서 조선 여성에 관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함재봉은 청의 중국 정복 과정과 병자호란 이후의 상황을 비교·설명하기 위해 가져옵니다.

④ 윤치호의 <윤치호 일기>

윤치호는 외국인은 아니지만 강의 후반의 중요한 비교자료이므로 함께 보아야 합니다. PDF 7~8쪽에서 1903년과 1904년 일기를 이용하여 조선 남성의 가사노동 태도와 궁중 여성의 의료 문제를 보여줍니다.

이 자료는 특히 중요합니다. 비숍이나 언더우드에게 “서양인이 조선을 나쁘게 본 것 아니냐”고 반론할 수 있지만, 윤치호는 조선인 남성 자신이 조선 남녀관계를 매우 혹독하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윤치호 역시 미국에서 교육받고 기독교와 서구 근대문명을 받아들인 개화지식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역시 <중립적인 조선 내부 관찰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네 종류를 구별하면 함재봉의 사료 사용법이 보입니다.

<비숍: 여행자의 외부 관찰>
+
<언더우드: 선교사·의사의 내부 관찰>
+
<윤치호: 서구화된 조선인 개화지식인의 자기비판>
+
<현대 역사학과 사료집>

을 서로 겹쳐서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그림은 상당히 강력하지만, 세 사람이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서구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2. 그렇다면 현대 한국 여성사 연구는 어떻게 보는가?

여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함재봉의 14회 전반부, 즉

<고려·조선초 여성의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 → 주자학적 종법질서의 확산 → 조선후기 여성 지위 하락>

이라는 큰 줄기는 함재봉의 독창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현대 조선 사회사·가족사 연구의 중요한 연구성과와 상당히 일치합니다.

가장 중요한 책부터 보겠습니다.

① Martina Deuchler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A Study of Society and Ideology>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책

1992년의 고전적인 연구서입니다.

이 책은 14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Deuchler의 핵심 질문은

<고려의 가족·친족사회가 어떻게 조선의 성리학적 부계사회로 변했는가?>

입니다.

그녀는 혼인, 상속, 조상제사, 상례, 여성의 지위, 혈통집단 등을 분석합니다. 조선 건국과 함께 성리학적 법제화가 시작되었지만 사회 전체가 실제로 바뀌는 데는 수백 년이 걸렸고, 대략 17세기 중반에 이르면 상당한 변환이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이것은 함재봉의 12·13·14회 논리와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함재봉>
주자학이 조선 사람을 새롭게 만들었다.

<Deuchler> 성리학적 국가와 사대부가 혼인·상속·제사·친족구조를 장기간에 걸쳐 변환시켰다.

그러나 Deuchler가 훨씬 정교합니다. 함재봉처럼 <주자학 때문에 여성이 차별받게 되었다>는 식으로 압축하기보다 법제, 재산, 혼인, 친족집단, 제사와 권력관계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추적합니다.

따라서 <14회의 학술판>을 한 권만 읽는다면 저는 이 책을 가장 먼저 권하겠습니다.


② Mark A. Peterson

<Korean Adoption and Inheritance: Case Studies in the Creation of a Classic Confucian Society>

이 책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Peterson은 특히 <상속과 입양>을 통해 조선사회가 어떻게 부계화되었는지를 연구합니다.

함재봉은 강의에서 초기 조선에서는 딸도 재산을 상속받았고 처가살이도 흔했지만, 후기로 갈수록 장자·남계 중심 사회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Peterson은 바로 이 변화를 실제 가족문서와 상속관행을 통해 훨씬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함재봉이

<여성의 지위가 떨어졌다>

고 큰 그림을 그린다면 Peterson은

<재산이 누구에게 갔는가?>
<제사는 누가 맡았는가?>
<아들이 없을 때 누구를 양자로 삼았는가?>

를 추적하여 그 변화를 증명합니다.


③ Jisoo M. Kim

<The Emotions of Justice: Gender, Status, and Legal Performance in Chosŏn Korea>
《정의의 감정: 조선의 젠더·신분·법적 수행》

이 책은 함재봉의 설명에 중요한 <수정>을 가합니다.

함재봉의 강의를 들으면 조선후기 여성이 거의 법적 주체성을 상실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Jisoo Kim은 조선시대 법정 기록을 연구해 훨씬 복잡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조선은 분명 신분제와 유교적 성차별이 강한 사회였지만, 여성과 낮은 신분의 사람들도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국가의 사법제도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원(冤), 억울함>이라는 감정과 정의관념이 신분과 성별을 넘어 법적 호소의 근거가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따라서

함재봉:
<여성의 법적·사회적 권리가 거의 없어졌다>

Jisoo Kim:
<강한 성차별은 존재했지만 여성도 법적 행위자였다>

라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후자가 오늘날 여성사 연구의 방법론에 더 가깝습니다. <억압받았는가?>만 묻지 않고 <그 조건 속에서 여성은 무엇을 했는가?>를 묻기 때문입니다.


④ JaHyun Kim Haboush(김자현 하부시)

<The Great East Asian War and the Birth of the Korean Nation> 《임진왜란과 한국 민족의 형성》 정도로 옮길 수 있음

이 책은 14회에서 다룬 <전쟁과 여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함재봉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여성의 정절규범이 강화되는 중요한 계기로 설명합니다.

Haboush는 전쟁을 단순히 국가 간 군사충돌로 보지 않고 포로, 여성, 민간인, 기억, 이야기와 민족정체성의 형성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함재봉에게 전쟁 속 여성은 주로

<성폭력·포로 → 정절 문제 → 사대부 가부장제 강화>

를 보여주는 사례라면,

Haboush식 사회문화사는

<전쟁을 실제로 겪은 사람들은 그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했는가?>

까지 묻습니다.

함재봉보다 여성과 민간인의 경험 자체가 역사서술의 중심에 가까워집니다.


⑤ <Women and Confucian Cultures in Premodern China, Korea, and Japan>

Dorothy Ko, JaHyun Kim Haboush, Joan R. Piggott 편

이 책은 한 단계 더 중요한 비교를 가능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유교 = 여성억압>이라는 간단한 등식을 문제 삼기 때문입니다.

중국·한국·일본에서 유교가 여성에게 미친 영향은 동일하지 않았고, 여성 역시 유교적 가치의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었습니다.

여성은 가족 안에서 권위를 갖기도 했고, 교육·문학·종교생활에 참여했으며, 유교적 언어 자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함재봉의

<주자학의 심화 → 여성의 지위 하락>

이라는 설명을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모든 여성이 동일하게 수동적인 희생자가 된 것은 아니다>

라고 보완하게 합니다.


3. 개항 이후라면 최혜월의 책이 가장 중요합니다

Hyaeweol Choi(최혜월)

<Gender and Mission Encounters in Korea: New Women, Old Ways>
《한국에서의 젠더와 선교의 만남: 신여성, 옛 방식》

함재봉 14회의 <후반부>를 검토하려면 이 책이 가장 중요합니다.

함재봉은 대체로

<유교적 여성 억압>
→ <미국 선교사>
→ <여성교육·의료>
→ <여성해방>

이라는 방향으로 설명합니다.

최혜월은 훨씬 복잡하게 봅니다.

그녀는 한국의 근대적 여성상이 <한국인과 미국 개신교 선교사의 만남>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과정에는 기독교뿐 아니라 민족주의, 유교적 젠더관, 서양 이미지, 여성의 자아에 대한 새로운 욕망 등이 함께 작용했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역설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 여성에게

교육,
의료,
직업,
공적 활동

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여성은 반드시 오늘날 의미의 <해방된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적 아내,
좋은 어머니,
청결한 가정의 관리자,
도덕적인 여성

이라는 새로운 여성규범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최혜월의 책 제목이 <New Women, Old Ways>입니다.

즉,

<옛 가부장제가 사라지고 자유로운 근대여성이 탄생했다>

가 아니라

<새로운 자유와 새로운 규율이 동시에 만들어졌다>

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최혜월은 함재봉의 설명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완합니다.


4. 결국 함재봉과 여성사학자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제함재봉 14회여성사·가족사 연구
조선 초기 여성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음대체로 동의하되 계층·지역별 차이 강조
변화의 원인주자학의 정착주자학 + 법 + 재산 + 제사 + 친족구조 + 인구·사회변화
변화 시기조선 중후기수백 년에 걸친 점진적 변화
상속딸의 권리 감소실제 분재기·가족문서로 구체적으로 분석
처가살이점차 시집살이로 변화혼인·거주방식의 장기변동으로 분석
임진·병자호란정절 강화의 중요한 계기전쟁·포로·성폭력·기억·가족재편까지 분석
열녀여성 억압의 극단화억압뿐 아니라 명예·가문·국가포상·여성의 행위성도 분석
조선 여성주로 피해자제약받았지만 협상·소송·경제활동을 하는 행위자
선교사여성해방의 중요한 주체해방의 기회와 새로운 기독교적 젠더규율을 동시에 가져옴
근대화여성 지위의 급격한 개선개선 + 새로운 젠더규범 + 식민주의·민족주의의 복합작용

5. 그래서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은가

이 주제에 관해서는 책을 많이 읽기보다 세 권을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1.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 Martina Deuchler
    → 함재봉 12·13·14회의 <학문적 토대에 가장 가까운 책>.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혼인·상속·제사·친족과 여성의 위치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해합니다.
  2. <The Emotions of Justice> — Jisoo M. Kim
    → 함재봉의 그림을 <수정>합니다. 억압받는 여성뿐 아니라 법정에서 말하고 요구하고 행동하는 조선 여성을 볼 수 있습니다.
  3. <Gender and Mission Encounters in Korea> — Hyaeweol Choi
    → 함재봉 9·10·14회의 <개신교가 여성을 해방시켰다>는 서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완합니다. 기독교 선교가 새로운 기회를 주면서 동시에 새로운 여성규범도 만들었다는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이 세 권을 읽고 함재봉 14회를 다시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합니다.

함재봉의 가장 중요한 명제, 즉 <조선 여성의 낮은 지위는 고대부터 내려온 불변의 한국문화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특히 조선의 유교화 과정에서 크게 강화되었다>는 주장은 현대 역사학의 중요한 연구성과와 상당히 잘 맞습니다. Deuchler의 연구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여성사 연구는 함재봉보다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여성에게 무엇이 행해졌는가?>뿐 아니라

<여성은 그 상황에서 무엇을 했는가?>

를 묻습니다.

그리고 근대에 대해서도

<서양/기독교가 여성을 해방했다>

보다

<조선의 여성들이 유교·기독교·서구 근대·민족주의 등의 새로운 자원을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다시 만들어갔다>

고 설명합니다.

앞서 옥성득과 함재봉의 개신교사를 비교하면서 나왔던 차이와 매우 비슷합니다. 함재봉은 <어떤 문명체계가 새로운 한국인을 만들었는가>를 묻는 반면, 전문 사회사·여성사는 <그 문명체계가 실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협상되고 변형되었는가>를 더 집요하게 묻습니다. 이 차이를 염두에 두면 《한국인의 탄생》의 장점과 한계가 동시에 훨씬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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