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4

복거일 - 나무위키, 위키백과, 비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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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최근 수정 시각: 2026-07-27
분류
1946년 출생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국 남성 작가
SF 작가
대체역사물 작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아산시 출신 인물
면천 복씨
서울대학교 출신
희귀성씨인 인물
우송고등학교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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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卜鉅一 | Bok Geo-il


출생
국적
본관
가족
(1983년생)
학력
직업
소설가, 시인, 시사평론가
종교
무종교
소속
문화미래포럼 (대표)
1. 개요2. 상세3. 행보4. 성향
4.1. 문학4.2. 정치·사회
5. 작품 목록6. 작품 특성 및 개인사7. 기타 저서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본관면천(沔川)이며 충청남도 아산시[2]에서 태어나 미군 기지촌에서 자랐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을 쓴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상학과를 1964년에 입학하여 1968년 졸업했다. 1960년대 말 최전방에서 포병부대 관측장교로 복무하며 북한군과 교전을 한 적도 있었고, 전역한 뒤에는 무역회사, 은행, 선박회사 등에서 16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이때 노동운동도 했던 것 같다. 여기서 쌓은 경험들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에서 나오는 전투와 죽음에 대한 묘사, <비명을 찾아서>에 담긴 주인공의 생생한 직장생활 묘사 등이 대표적이다.

1983년부터 창작에 전념하기로 작정하고 늦깎이로 문단에 발을 들여 1987년에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작인 <비명을 찾아서>, <역사 속의 나그네>, <파란 달 아래>는 모두 SF 소설이며 <비명을 찾아서>는 한국 최초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꼽힌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논객활동에 전념한 탓에 소설가로 언급되기 보다 경제/시사 평론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장주의 우파 작가이며, 우파 작가 모임인 문화미래포럼 대표를 맡았다.

3. 행보[편집]

"역사 속의 나그네’ 세 권(4∼6권) 매듭짓고 세 권 더 썼어. 논픽션도 여섯∼일곱 권 분량이 되고. 나도 놀랄 정도야.”[3]

2012년 3월 이화여자대학교의 특강중에 "여자는 항상 혼외정사의 의도가 있어"라는 말을 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홈페이지나 블로그 같은 걸 운영하지는 않았다. 과거 <파란 달 아래>에서 가장 선구적으로 독자들과 소통했던 것을 감안하면 참 안타까운 측면이다. 그의 작품과 글들을 보고 싶다면 그의 팬이 운영하는 여기를 참고하자. 아래에 언급되는 '역사 속의 나그네'도 수록되어 있다.

2014년 3월에는 2년 반째 간암 투병 중이라는 뉴스가 올라왔다. # 소설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치료를 거부한 것이지만, 남들도 이럴까봐 두렵다는 소감을 올렸다. 죽음을 상당히 덤덤히 맞고 있는 편이지만 회한도 많은 편. 대표적인 인터뷰로는 #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와의 인터뷰를 참고하자. 그러나 2011년 암 선고 이후 2020년에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건강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월간중앙의 2016년 1월호부터 소설 '이승만'[4]을 연재하고 있다.

자유경제원 주최의 이승만 시 공모전의 심사위원이었다. 하지만 이 공모전은 이승만 시 공모전 세로드립 사건 때문에 매우 시끄러웠다.

2017년 6월 2일 자유한국당 연찬회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결정적 사유인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서투르긴 하지만 용감한 시도였다. 정부의 돈이 편협한 작품에 들어가는 건 막아야 한다." 라며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反)박근혜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이념에는 무지한 젊은 세대들이 경제난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일"이라고 폄하하면서 보수 진영의 탄핵반대 운동(일명 태극기 집회)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빛난 보수의 희망적 증거"'라는 식으로 감쌌다.[5] 자유시장경제정책에 대한 신념은 여전해서 "자유한국당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념적 선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지난 18대 대선에서 들고나온 경제민주화 공약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언론 인터뷰에서 작가 본인이 그동안 정치 평론가, 우파논객이란 명함에 취해 작품에 집중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우파 문화예술단체인 '문화자유행동'의 2023년 창립식에 참여하는 등 여전히 정치질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4년에도 논객활동에 집중하고 북한이 화살머리고지를 기습공격하여 한국군을 격파하고 문재인이 닦은 도로를 통해 철원, 인천을 기습점령한 뒤 한국과 휴전한다는 내용의 경고를 신동아에 올렸다. 6.25 때와는 달리, 그렇게 하면 북한군은 전멸한다 #

2025년에는 친 윤석열 행보를 보이면서 새로운 대한민국 집필에 참여했다.

4. 성향[편집]

오랫동안 직장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했고, 군대에선 사람 죽어가는 실전을 치러보았으며, 당시에는 드물게 해외를 돌아본 경험까지 있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양쪽에 지식이 풍부하고 히피 문화도 탐구하는 등 폭넓은 교양을 겸비해 이를 바탕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사회의 인문사회학적 변화상을 정말 상세하게 그려낸다. 외형적 묘사, 기껏해야 (작가 자신의 생각이 담긴) 철학적 묘사에 그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미래사회가 돌아가는 메커니즘까지 손을 뻗친다. 이 바닥이 원래 그렇지만 특히 SF의 경우엔 독학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의 제자나 후예는 딱히 없다. 꾸준한 SF 발표라는 점에서 최근 작이 매우 드문데도 불구하고 한국 SF계에서 매우 독보적인 존재. 한국 SF의 첫 번째 흥기였던 1980~90년대에 활동한 작가 중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작가이며 장편작가로선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았다.[6] 한국 SF 작가풀은 2000년대 들어 배명훈이나 김보영이 가세해서 약간 더 숨통이 트였고 2010년대 후반에 가서야 양적으로는 제법 늘어났다.

다만 다른 SF작가들과는 달리 사변주의, 사회주의에 가까운 관념적인 작품을 주로 내서 작품 평가에 진영논리가 끼어들기 때문에 평이 극과 극이다. 여기서 사회주의라는 의미는 작품이 좌파적이라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과학입국을 위해서 정책적으로 SF를 장려했고 과학발전에 따른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건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주로 장려했다. 역설적으로 자유롭게 주제를 발표할 수 없었던 반체제 작가들은 그런 점을 이용해서 SF를 통해 소련 사회 자체를 비판하기도 했다. 복거일이 많은 SF에서 맘에 안 드는 정책을 비판하는 건 이 오랜 전통에 기반했다.

과학에 해박하며, 특히 생물학에 애착을 보인다. <쓸모 없는 지식을 찾아서>에서는 경제학과 생물학을 연계시켜 논평하기도 했고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서는 진화심리학을 논증수단으로 활용했다.

다른 장르 소설가들에 대해 논평한 적도 있는데 이우혁이영도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도 '젊은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싱싱한 힘이 느껴진다'거나 '탁월한 이야기꾼이다'라며 호의적인 평가 또한 내렸다. 다만 이영도에 대한 비판은 소설을 전혀 읽어보지도 않은 헛소리이기 때문에[7] 전혀 비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4.2. 정치·사회[편집]

SF에 관심없는 일반인에게는 영어 공용어화론으로 대표되는 괴짜 평론가 정도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 주제로 철학자 박이문(1930~2017)과 논설문 배틀을 뜬 것도 일반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유명했다. 그래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논란 속에도 인물과 사상 등에도 기고하며 "겨뤄볼 만한 우파 논객"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복거일 개인 역시 '주류 정설'(시장주의)의 우위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진보신당과 같은 사민주의를 포용하자고 주장하는 등 다양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설들이 활발하게 나와야 사회가 진화할 수 있다"라는 논지. #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영미의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을 즐겨 인용한다. 특히 신자유주의자들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프리드먼을 자주 인용하며, 그 관점에서 글을 썼다. 영어 공용화론, 원화 폐지 및 달러화 도입론, 쌀시장 개방 지지로 대표되는 주장을 내세웠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기도 했다.

이런 강경한 시장자유주의적 논의들은 외부필진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한 데다 우파적 스탠스의 조선일보조차도 바로 반박 칼럼을 올릴 정도로 충격이 컸다. 우선 달러공용화폐론을 살펴보자. 경제가 개막장에 접어들어서 미국의 원조만을 바라는 제 3세계 국가나 1950년대 한국조차도 자국 통화폐지는 하지 않는데, 이는 민족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실용적인 이유가 크다. 통화발행권을 가진다는 것은 독립된 경제권역을 가진다는 의미이고 독립적인 경제정책을 펼 수 있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주권국가의 경제권역에서 독자적인 통화발행권을 가지지 않을 경우 통화발행주체(미국 달러라면 연준을 포함한 미국 경제권)의 판단에 따라 자국 경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환율 등의 완충장치 없이 타 경제권의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된다는 의미다. 단, 복거일을 포함한 원화폐지론자들이 주장했던 2006년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는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의 중국 경제 의존도가 지금만큼 높지 않았고, 비록 유로가 있기는 했지만, 미국 달러가 여전히 기축화폐로서 견고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2010년대 이후 체결된 통화스와프도 해당사항이 없었다. 한국은 미국 경제에 대한 동기(同期)의 정도가 비교적 높았기 때문에 환율 방어 손실을 절약하기 위해 아예 환율이 불필요한 달러화로의 동기화가 하나의 대안으로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영어 공용어화론의 경우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이나 "복거일의 영어공용화론: 혹은 진보의 성배를 찾아서"(블로거 소넷의 글)를 참고하자. 흔한 오해에 따르면 영어 공용화론을 마치 일제강점기에 조선어 말살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영어 공용화 하에서도 민간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재벌의 불공정 행위마저도 하이에크를 들어 합리화할 정도로 오독하고 있다는 것. 하이에크는 자유시장 못지않게 공정경쟁을 중시했다는 것을 참고하자. 경쟁이 공정하지 않다면 아무도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밀튼 프리드먼은 생전에 유로화 같은 정치적 통합 없는 통화연합/외국통화 도입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었으며 경기가 좋을 때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거부하면서도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바라는 기업들의 행태를 경계했다.

우파라기 보다는 "숭미주의자" 혹은 "종미주의자", 심하면 미빠라고 보는 게 더 좋을 정도로 미국을 "절대선"으로 생각한다는 평가도 있다.[8] 그래서 한때 조선일보와 함께 영어공용화론을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03년 이라크 전쟁마저도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 미국을 도와 참전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9]

심지어 어떤 칼럼에서는 5.18 민주화운동미군이 계엄군으로 들어갔으면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비평집 <진단과 처방>에 나온 글로 주한미군 철수나 미군 범죄 비판하는 세력들에 대한 반박글에서 나왔다. 미군은 민주적인 시민군대라서 광주의 비극은 없었을 거라는 논지.[10]

기업의 자유의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심지어 과거에는 비판했었던 대한민국의 1970 ~ 80년대의 관치금융이나 재벌의 독점 같은 경우는 사실상 자유시장 원리에 해로운 부분임에도 위에 설명한 이유로 찬양하고 기업 독점을 옹호하기도 한다. 심지어 모 회장님이 아들 문제로 폭력 행사를 한 사건에 대한 대중의 비난도 반기업 정서로 비판한다.

복거일은 헤겔식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는 특정 지점으로 수렴한다는 논리를 펴는데, 여기서 그의 "진보"는 일반적인 의미의 진보와는 좀 다르며, 말하자면 자신이 보기에 가장 "진보"적인 나라인 미국이 보여주는 모든 게 진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자신은 보수나 진보 등의 정치적 진영과 달리 인간의 "기술"에 의한 발전을 신봉한다고 한다. 1980년대는 그 자신이 고백했듯이 사회주의에 애정을 가졌고 지금은 신자유주의에 애정을 가지는 것이 각각 이 이념들이 인간의 진보와 발전에 영향을 준다는 것으로 믿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진보주의적 믿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봉건주의, 포퓰리즘, 민족주의는 역사 발전을 위해서 없어져야 마땅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영어 공용화론을 주장한다.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서 왕조 말기의 조선을 까는 게 같은 논리였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황석영이 동행하자, 그가 종북주의자라며 이문열이 동행했어야 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사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변화는 19세기 말 아시아 지식인들에게 많이 퍼져 있던 사고방식이었다. 일제 연간 당시 수많은 선각자나 원로 문학가들이 꿈꾸었던 사상의 근간은 사회진화론과 극도의 자본주의와 인종주의였다. 이런 시대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이광수가 내놓은 작품이 민족개조론이며 윤치호의 절망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메이지 유신 연간에도 일본어 완전 폐지와 일본민족의 혼혈화를 주장한 개화지사가 있었다. 복거일의 이론 엘리트주의는 이들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초기작인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광수 식의 절망적인 민족론과 동양인, 특히 일본인들의 서구에 대한 열등감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자국어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복거일이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미국을 과거 동아시아 주류 문명권이었던 중원에 빗대고 있는 다음 인터뷰를 보아도, 자신의 문화권에 대한 변방 의식은 분명한 듯하다.
(전략) 백호 임제(白湖 林悌·조선 중기 천재 시인)가 돌아가실 때 뭐랬는지 알아? 5호 16국이니 뭐니 하면서 선비족 돌궐족 여진족 다 중원으로 가서 천자 칭호하고 황제가 됐다, 그런데 우리 조선은 한 번도 못 했다, 조선 땅에 태어난 게 부끄럽다. 그러니 (나 죽었다고) 곡(哭)을 하지 말라 했다고. 나도 그래. 이 문명의 변두리 나라에 태어나서 한 번도 중원인 미국에서 학설 하나 못 폈다고. 근데 한 가지는 건졌어. 문명권의 변두리 지식인 눈에 비친 세상, 그건 보편적인 것 아냐? 그걸 소재로 소설을 썼어.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년) ‘보이지 않는 손’(2006년)이 바로 그거야. (후략) #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노대원 교수는 본인의 저서 '소설 쓰는 로봇'에서 복거일의 정치 성향을 그의 작품 세계로부터 분석했다. 요점은, 그는 좌파였을 때건 우파였을 때건 똑같이 "세상 모든 것을 '중심부의 강자'와 '주변부의 약자'로만 보는 진영논리적 사고관을 갖고 있다. 젊어서는 주변부 약자 편에서 중심부 강자를 비판하더니 늙어서는 자기를 주변부의 약자(동양의 유색인종)라고 자처하면서 중심부의 강자(미국 백인)에게 스스로 고개를 숙인다."는 것.

5. 작품 목록[편집]

데뷔 후 초기 수년간의 복거일은 순수 문학이 달성하지 못한 성취를 완전히 한국적인 SF 문학(과학소설)으로 달성한 선구자라고 단언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서구)문명권의 변두리(한국) 지식인 눈에 비친 세상"이란 보편성을 달성한 것이다. 이것은 저자나 평론가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비명을 찾아서>가 인기를 얻은 건 19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자랑하는 군사정권에 대한 풍자와 조롱 때문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강해지는 기노시다 히데요의 성장을 제외하고는 요새 기준으로 보면 신문만평이나 블로거의 풍자 개그 수준으로 당시 사회를 빗댄 경우가 많다. 심지어 주인공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종속 경제론의 복사. 또 <파란 달 아래>의 경우, 지금이야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높으신 분들에게 논의될 정도였지만 당시만 해도 연방제 통일을 언급하는 것은 코렁탕의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파란 달 아래는 버젓히 연방제 통일 국가가 나온다.
  • 비명을 찾아서 - 1987년 3월 발표한 첫 번째 장편작. 신춘문예를 거치지 않고 원고지만으로 당당히 발표되었다. 대단히 현학적이고[11] 1980년대의 내용인 만큼 문체와 가치관이 상당히 까다롭지만 순수문학 진영과 SF 진영에서 수작으로 인정받는다. 작가도 독자도 평론가도 절대다수가 좌파인 한국 SF판에서도 비명을 찾아서 만큼은 순순히 인정한다. 발표하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는 그의 데뷔작이자 최고작으로, 지금까지 세간의 평가, 판매량 모두에서 이 작품을 넘어선 그의 작품은 없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 언어가 모두 말살된 상태에서 조선말과 한글을 찾아 되살리려고 하는 주인공의 노력이 애처로운데 막상 지금 작가의 행보는 그와 정반대인 점이 흥미롭다.
    작가 개인적 측면에서는 스스로의 "변신"을 예언하는 측면도 있는데, 작가는 굳이 따지면 "불행한 뿌로메떼우스"인 이광수의 길을 따른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최후의 인터뷰에서 나오는 "절망"이란 단어가 비명을 찾아서에서 카프카의 말을 인용하는 등 부정적인 단어로 몇 차례 등장하며, 자신은 이광수처럼 절망하지 않겠다라고 외치는 주인공의 말에서 주인공 히데요와 현실의 복거일이 걸은 지향과 방향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작가는 이 소설 자체를 그렇게 중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명을 찾아서>의 작가 복거일이 죽었다"라는 부고 기사를 보기 싫다고 했던 적도 있고, 그래서 <역사 속의 나그네>에 더욱 애정을 가져서 대작으로 써보겠다는 말도 남겼으나 논객활동으로 외유가 심해지면서 지키진 못했다.
  • 역사 속의 나그네 - 두 번째 장편작. 2074년의 "조선민주공화국"에서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한 시간비행사 "이언오"의 이야기. 양산형 대체역사소설에 비해 수준 높은 고증과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어를 최대한 복원해냈다. 1988년부터 <중앙경제신문>에 3년간 연재된 후 제 1부 "시간여행자"에서 제 8부 "혁명가"까지(1991년 3권 단행본 출판), 원래는 세계역사 전반을 다루는 장대한 대하소설로 기획되었으나 작가가 논객활동 하느라 작품에 집중을 못하고, 연재처를 찾아 떠돌다가 2012년에야 탈고되고 2015년 6월 30일이 되어서야 전6권 출간되었다. 전형적인 근대주의, 계몽주의에 기대고 있는 작품이라 SF로서는 비명을 찾아서 보다 못해도, 중세 한국어를 최대한 고증하려 노력해 끌어올린 문학성으로는 복거일의 최고작이 될 수 있다 점쳐쳤으나 이런 이유로 많은 이야기가 증발되어 완결되었지만 미완성작인 안타까운 작품이 되었다. <파란 달 아래>와 30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세계관을 공유한다.
  • 높은 땅 낮은 이야기 - 1988년 4월 작. 세 번째는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어느 장교 이야기다. 내용은 GP(소설내에서는 '지피'라고 한다)에서 근무하면서 부하들이 죽어나가면서 군 생활을 하고, 북한군과도 싸우다가 제대한다는 내용인데, 사람이 픽픽 죽어나가는 모습을 담담하다 못해 무건조한 문체로 표현했다.
    후속작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란 소설이 있는데, 첫 장편작인 '비명을 찾아서'의 영화화인 2009 로스트 메모리즈(현재와는 전혀 상관없는 영화)의 문제(모티브만 베끼기로 했는데 완전히 베껴버린...) 때문에 소송이 일어났다. 이 소설은 그 소송 사건을 소설화한 것이다. '높은 땅 낮은 이야기'의 주인공 정이립이 나오며, 사실상의 자서전이라는 평가. 복거일은 허문명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비명을 찾아서가 아닌 높은 땅 낮은 이야기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서전은 순 거짓말이야. 더럽고 부끄럽고 잘못한 건 다 빼고 솔직하지 않지. 소설가가 소설 쓰면 되는 거지 뭐 자서전까지. 작가나 예술가는 나이 육십 넘어가면 창의성이 갑자기 떨어져. 자기 모방이 많아지고 옛날에 한 거 되풀이하고…."라고 밝혔다.
  • 파란 달 아래 - 1992년 5월 작. 하이텔에서 최초로 연재된 전문작가의 소설로 당시엔 완전히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았다. 책 말미에는 달에 관한 여러 정보, 데이터와 독자들과의 대화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다만 출간본은 서두의 액자식 구성, 즉 작품 전체를 미래에 쓰여진 '소설 <파란 달 아래>'로 분류하는 통일 시대의 역사가들의 (가상) 해설이 생략되어 있다. 액자 구성 제목의 "파란 달"은 지구를 의미한다.
    시기는 연방 통일을 가정한 2037년의 미래. 북한과 남한이 달기지를 따로 건설했다(각각 김일성 혁명기지, 장영실기지). 여자 북한 우주 요원 입장에서 연애담과 통일(완전한 통일)이야기가 함께 쓰여진 책. "SF 분단문학의 이정표"라는 평과 함께 비명을 찾아서와 함께 지금도 간간히 회자되는 책. <역사 속의 나그네>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5천 원의 가격으로 아직 재고가 남아있다는 말이 있으나 구하기는 쉽지 않다.
  •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 1994년 작. 복거일의 전반기 마지막 작품으로 마지막 작품답게 자신("재근")이 살았던 기지촌에서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사실상 기지촌이 지어져 철수하기까지 한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를 그린 소설이기도. (서문에서 부모님께 바친다고 했다.) 6.25 전쟁남로당 활동을 하다가 조부모와 큰 형을 두고 빠져나와 가족들을 죽게한 아버지의 마지막 고백이 소설의 클라이막스. # 평가
  • 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 - 2005년에 발표한 판타지소설로 어린이용 동화다. 자신의 정치적 감각을 투영하는데, 점령군 수하에서 적군 앞잡이 노릇을 한 자를 옹호한 건 아무리 봐도 친일파 옹호고 적군의 지도자가 둘째부인 아들이라는 설정은 아무리 봐도 북한 김정일을 풍자한 듯하다.
  •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 - 문학과 지성사. 신문 연재 소설을 모아 2001년에 출판한 어린이용 판타지소설이다. 참고로 '끼끗한'은 '깨끗한'의 오타가 아니다.
  •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 21세기의 친일문제- - 들린아침, 2003년 11월작. 친일파에 대한 옹호까지는 아니더래도 기존의 시각과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종 통계나 비시 프랑스 등의 예를 들면서 친일파에 대한 범위와 객관적 시각을 팩트 안에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결론이라면 일제 치하 친일파를 단정하여 구분하기엔 쉽지 않으며 좋지 않은 과거라고 과거를 부정, 단절해야 하는가? 또 매번 과거에 매달리는 건 (정리하기 어려운 과거를 정리하려는 모순 때문에) 미래를 위해 좋지 않다 정도. 분량도 꽤 많고 재미있거나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2012년 표지도 일신해서 재판됨.
  • 그라운드 제로, 목성잠언집 - 동/서로 나뉜 목성의 가장 큰 위성 가니메데와 화성 등을 배경으로 남북 문제, 특히 북핵문제를 정면으로 풍자했다. 복거일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으로 쓰여진 소설으로, 햇볕정책네빌 체임벌린이 맺은 뮌헨 늑약의 '우리시대의 평화'라고 노골적으로 인용했다. <목성 잠언집>이 더 먼저 나왔고(2002년 1월), <그라운드 제로>는 역시 정권 말인 2007년에 희곡의 형태로 나왔다. <그라운드 제로>는 대학로 동덕여대 극장에서 연극으로 올려지기도 했는데 흥행은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한국을 풍자한 이스트 개니미드의 대통령인 "티모시 골드슈타인"은 민주당 정권의 두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빗댄 인물이다.[12][13] 마찬가지로 웨스트 개니미드의의 지도자 메가리스는 아무리 봐도 북한의 김씨 부자를 연상시키며, 특히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김일성이 독살당했다는 음모론을 여기서 써먹는다. Alt SF라는 필명의 블로거는 이 작품을 두고 "관현악단으로 연주한 뽕짝" 같다고 평가하며, 한국인 등장 인물이 한국어로 한국의 고민을 하는 복거일 소설의 장점이 모두 사라지고 국적불명의 인물들이 등장했다고 평했다.
  • 애틋함의 로마 - 2008년 작으로 오랜만에 문학과 지성사에 출판한 작품. SF소설 단편집. 대부분이 SF이다. 일부는 '그라운드 제로'와 똑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 내 몸 앞의 삶 - 2012년 12월 작. 5년 만에 나온 11번째 장편이다. 중국에게 예속된 207X년의 북한을 그렸다. 통일은 안드로메다로 북한에서 반중활동을 하다가 김일성 가계의 몰락으로[14] 25년 만에 강제노역에서 풀려난 44세의 주인공 윤세인이 자기도 모르고 임신시킨 애인 박민히의 딸 '신지'의 결혼자금을 위해 중국 부호에게 정신만 남기고 1100만 위안[15]에 몸을 64세로 바꿔파는 내용이다. 그런데 또 그 몸은 한 번 바꿔친 리진호라는 청년의 몸으로, 역시 30년이 흐른 몸이었다(...) 작가 본인은 정체성과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데, 이번에도 딸이 나오고, 40대에 리즈시절을 맞았던 60대 작가의 글이라는 것이 낯설지 않다. 2014년의 인터뷰로 간암 투병 상태에서 쓰여졌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문학과지성사.
  • 오장원의 가을 - 1995년쓴 시집. 가끔 복거일의 문학을 보면 시가 자주 인용되는 경우도 있는데(대표적으로 비명을 찾아서), 그게 모두 자작시다. 문학과지성사.
  • 복거일의 세계환상소설사전 - 2002년. 김영사 펴냄. 환상문학 장르 전반을 훑어내리고 있으며 한국의 현대 판타지 소설로서는 퇴마록드래곤 라자 두 작품을 비평의 도마에 올렸다. 이우혁의 '퇴마록'에 대해서는 국수주의적이고 어설픈 인도주의로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기교도 떨어지기 때문에 권장할 만한 작품은 못 되지만 글을 처음 써보는 작가 특유의 싱싱하고 강한 힘이 있기 때문에 즐겁게 읽히는 글이며 앞으로도 계속 읽힐 것이라고 전망을 내렸다.
  • 쓸모 없는 지식을 찾아서 - 1996년작.
  •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 1998년작. 제목이 "국제화"가 아니다. 영어 공용어화론을 최초로 표방한 그의 문제작. 고등학교 문제 지문으로 인용된다. '글쓴이의 의도를 비판하는 것을 고르시오.'같은 지시문이 딸려나오거나, '우리말을 지켜야 하는 이유' 등을 설명할 때 인용된다. 당연히 좋은 뜻이 아니다.
  • 현실과 지향, 진단과 처방, 소수를 위한 변명 - 1990년, 1994년, 1997년 문학과지성사 출판. 경제/시사평론집. 보수 시장주의적 평론집이라 주장하는 바가 좀 많이 다르다. 논은 환경 파괴적이라든지, 외국인 정치가를 영입하자든지외국이라고 별 도리 있나, 음란물은 청소년에게 '유용'하게 쓰여 성범죄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으니 허용해야 된다든지. 세 권 모두 논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 각각 2003년2005년 출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출판.
  • 물로 씌어진 이름 - 이승만을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소설. 2016년부터 월간중앙에서 연재되고 있다. 2023년 백년동안에서 1부가 출판되었다.

6. 작품 특성 및 개인사[편집]

1. 서문에는 다른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데, 출처도 밝힌다. 가끔 작정하고 작가가 지어낸 가상의 작품의 구절을 인용하는 경우가 무척 많으니 조심해서 읽을 것. 세계관 해설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16]

2. 부녀 관계가 강조된다. 1. 비명을 찾아서처럼 주인공이 딸을 위해서 살인하거나, 2. '애틋함의 로마'의 단편인 '서울, 2029년 겨울'은 정자은행에서 받은 정자로 태어난 딸이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찾으러 가거나, 3. '꿈꾸는 지놈의 노래'에서는 고대인의 복제인 딸을 키우는 생물학자가 나온다. 4. '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의 주인공(딸)에게는 아버지만 있으며, 5. '내 몸 앞의 삶' 역시 주인공이 딸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다.

하다못해 '역사 속의 나그네'에서는 (미래의) 태어나지도 못한 태아 상태의 주인공의 아기가 딸이다. 실제로 복거일은 딸이 한 명 있는데(1983년생), 희곡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삽화를 담당했다. 책을 발간할 때마다 딸을 자주 언급하는 걸 보면 무척 아끼는 딸인 듯. 오랫동안 고향이 가까운 대전광역시에서 살았으나 2002년을 전후해 딸의 대학 진학으로 서울 은평구 수색동으로 전셋집 상경하면서 '서울 아닌 곳에서 살기란 참 힘들다'라는 평을 남겨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3. 과학적 지식이 많이 나온다. 심지어 분단문학인 '높은 땅 낮은 이야기'마저도 갑툭튀한 과학상식이 나온다. 본격 SF인 '역사 속의 나그네', '파란 달 아래', '그라운드 제로'는 물론이다. 의외로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 특이한 점.

4. 정치적 성향이 분명하고 강한 소설을 쓴다. 앞에서 말했듯 <보이지 않는 손>, <그라운드 제로>, <목성 잠언록>이 대표적. 작품 속에서도 시장경제를 드러내 놓고 옹호하는 편이다.

5. 자기가 쓴 시(詩)들을 작품 속에서 자주 인용한다. <비명을 찾아서>에선 주인공 직업부터가 시인이다. <오장원의 가을> 한 권을 낸 것을 제외하고는 소설에 전념해온 작가이나 시업을 완전히 놓진 않은 듯. 책 속에 나오는 가상의 시인들의 시는 죄다 그의 작품. 단, 그가 무척 애호하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것을 수록하는 것이 예외다. 김현 평론가는 40대의 복거일에 대해 '예이츠의 시에 대한 절망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7. 기타 저서[편집]

[1] 現 경영대학 경영학과[2] 당시는 아산군이었으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역사 속의 나그네의 주인공의 고향도 아산이다.[3] 여기서 3편 더 썼다는 것은 <내 몸 앞의 삶>을 포함한 다른 작품으로 보인다.[4] 물로 씌어진 이름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5] 정작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복거일은 특별 기고를 통해 "대통령의 도덕적 권위가 완전히 상실되었으므로 하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국이 보수에게 불리해지자 진영논리적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6] 듀나는 평가는 둘째 치고 제대로 된 장편하나 못 쓴 채 단편집 3권만에 전성기가 막 내렸고, 장강명은 학생, 기자생활을 하다가 2013년부터 전업작가가 되었다.[7] 체호프의 총을 인용하면서 소설 내에 등장하는 두 개의 달과 같은 세계관적 장치가 플롯의 복선으로 의미있게 사용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지만 두 개의 달은 트윈문 축제를 비롯하여 플롯의 장치로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후치 네드발이 차후에 드래곤 라자로 밝혀진다는 전개가 작위적이라고 비판하는데 그런 전개는 애초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책을 겉핥기는커녕 아예 펼쳐보지도 않은 것.[8] 사실 우파 자체가 사회의 갑작스러운 진보 대신 현실의 가치 고수와 그에 대한 소소한 수정을 통한 현상 유지를 지향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친미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민족주의든지 "숭미주의"든지 현상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버릴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9] 이러한 숭미적 관점은 소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에 여실히 피력되어 있다[10] 그러나 여러 전쟁에서 보듯 미국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11] 결말 뒤에 실린 평론을 보면 민중문학 하는 인사들에게 지식인 티를 낸다며 백안시 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들이 보인다.[12]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엔 목성잠언록에서는 '그 정권에서 그나마 가장 시장주의적인 사람이 티모시 골드슈타인'이라거나, 티모시 골드슈타인 퇴임 후의 원만한 말년도 그려내는 등 어느 정도 온건한 평가들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예 티모시 골드슈타인의 대에 위성이 멸망했다는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그 증오가 더욱 증폭된 측면이 있다. 여담으로, 티모시 골드슈타인은 후일 연극에서 여성 배우가 연기하였는데, 그 점에서 환생경제류의 노골적 조롱은 희석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이는 의도적인 TS인데, 원 희곡의 야당 당수 역이 박근혜를 연상시키는 여성이었다는 걸 고려하면...[13] 진중권이 한창 복거일을 까댈 때 이 소설도 비판했는데, 골드슈타인이라는 성씨를 보더니 김대중을 뭔 유대인으로 비유했냐면서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아슈케나짐 유대인 인명 같긴 하다.[14] 김씨 왕조 몰락 후 새로운 주석이 들어선 상태. 그래도 제 나라는 조선이고 남한은 남조선으로 부르는 건 그대로다.[15]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19억이 된다.[16] 비슷한 기법을 사용하는 잘 알려진 작가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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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복거일
卜鉅一
로마자 표기Bok Geo-il
출생1946년 3월 20일
대한민국
성별남성
국적대한민국
학력대전상업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경력작가
직업소설가, 시인, 수필가

복거일(卜鉅一, 1946년 3월 20일 ~ )은 대한민국작가로, 소설, 수필 등을 집필했다. 대전상업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활동

충청남도 아산군 출신이다. 대전상업고등학교(현 우송고등학교 전신)를 거쳐 서울대학교 상대 경제학과를 나온 뒤 중소기업은행을 비롯하여 기업, 연구소 등에 16년간을 근무하다가 1983년에 소설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생활을 선언하였다. 1987년 소설 《비명을 찾아서》로 등단하였는데 이 소설은 대체 역사 소설로는 드물게 한국 주류 문학계에서 관심받는 소설에 속한다. 이후, 소설에 국한하지 않고 시와 소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그리고 대표적인 보수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 발표한 수필집 '현실과 지향'에서부터, 한국에서는 드물게 자유주의/자본주의의 전파에 앞장서는 보수내 지식인으로서 활동해 왔다.

그는 한국어와 함께 영어국어로 사용하는 '영어 공용화' 제안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1] 원화 대신 달러를 통화로 채택하자는 주장으로 탈민족주의를 주장했다.[2] (본인 스스로는 이것을 열린 민족주의라고 표현)

2006년 문화미래포럼이란 비정치적, 자유민주주의, 정부비지원의 기치의 문화단체를 설립하였다.,[3]

현재 암투병(간암) 중에 있지만 치료를 거부하고 치료를 받기보다는 자신의 남은 시간을 집필에 매달리는 쪽을 택하여 신문에 보도되기도 하였다.[4]

복거일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액턴 경의 얘기를 빌어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고 평하였다.[5]

저서

소설

시집

  • 《오장원의 가을》, 문학과지성사, 1995

평론집

  • 《현실과 지향》, 문학과지성사, 1990
  • 《진단과 처방》, 문학과지성사, 1994
  • 《소수를 위한 변명》, 문학과지성사, 1997
  •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문학과지성사, 1998
  •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삼성경제연구소, 2003 ISBN 8976332180
  • 《죽은 자를 위한 변호-21세기의 친일문제-》, 들린아침, 2003
  • 《복거일의 세계환상소설사전》, 김영사, 2002
  •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삼성경제연구소, 2005 ISBN 8976332490
  • 《자유주의의 시련》, 문학과지성사, 2009
  •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문학과지성사, 2009
  • 《보수는 무엇을 보수하는가》, 도서출판 기파랑, 2011
  • 《복거일의 자유롭게 한 걸음》, 곰, 2013

같이 보기

각주

  1. 열린 민족주의를 찾아서. 조선일보. 1998년 7월 7일. 2008년 4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2. 아침논단- 출렁대는 환율 잡을 수 있는 한가지 방법. 조선일보. 1998년 9월 17일. 2008년 11월 25일에 확인함.
  3. 복거일씨, 중도 보수 깃발 내건 '문화미래포럼' 대표 맡아. 한국일보. 2009년 5월 28일. 2006년 11월 16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문단에 때아닌 암투병 논란 매일경제(A34면 TOP, 2014.03.31) 기사 참조
  5. 이제 도덕을 말할 때다 동아일보(A28면 TOP, 2014.04.30) 기사 참조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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卜鉅一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卜 鉅一
生誕1946年3月20日(80歳)[1]
忠清南道牙山
(現在の大韓民国の旗 韓国
職業小説家
言語朝鮮語
国籍韓国
教育ソウル大学校
活動期間1987 -
ジャンル小説
代表作京城・昭和六十二年 碑銘を求めて
デビュー作京城・昭和六十二年 碑銘を求めて
テンプレートを表示
卜鉅一
各種表記
ハングル복거일
漢字卜鉅一
発音:ポク・コイル
日本語読み:ぼく きょいち
英語表記:Pok Koh-il
テンプレートを表示

卜 鉅一(ポク・コイル、복거일、1946年3月20日 - )は、韓国小説家評論家忠清南道牙山出身[1]本貫沔川卜氏朝鮮語版[2]

略歴

1987年、長編小説『碑銘を求めて』(비명을 찾아서、日本語訳題『京城・昭和六十二年 碑銘を求めて』)を発表して文壇にデビュー。デビュー後は空想科学小説を書いた。彼が書いた空想科学小説は科学の発達と変化が人間の生活にどのように影響し、未来はどうなっていくのかを文学的に描いている。

代表的な空想科学小説として、朝鮮中期へタイムスリップする「歴史の中の旅人」と「青い月の下で」などがある。

その後、再び本格的な創作活動に入り、米軍基地の周辺、いわゆる基地村で起きる話を幼い少年の視線を通して、文化の衝突を事実的に描いた長編小説『キャンプセネカーの基地村』を出版した。

評論家としても活動し、保守系の作家で結成した文化未来フォーラムの代表を務め、親日派市場原理主義を評価している。1998年には『国際語時代の民族語』で、英語公用語化論を提起して社会的に大きな波紋を巻き起こした。

主な作品

小説

  • 1994年、『캠프 세네카의 기지촌』(キャンプセネカーの基地村)[3]
  • 2006年、『보이지 않는 손』(見えない手)
  • 2007年、『그라운드 제로』(グランドゼロ)
  • 2008年、『애틋함의 로마』(切ないローマ)

詩集

  • 1988年、『오장원의 가을』(五丈原の秋)
  • 2001年、『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年をとっていく妻のための子守唄)

その他

  • 1998年、『국제어 시대의 민족어』(国際語時代の民族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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卜鉅一(포크 코일, 복거일, 1946년 3월 20일 - )은 한국 의 소설가 · 평론가 . 충청남도 의 아산 출신 [ 1 ] . 본관 은沔川卜씨 ( 조선어판 ) [ 2 ] .

약력
1987년, 장편 소설 「비명을 찾아서」( 비명을 찾아서 , 일본어 번역제 「게이죠·쇼와 62년 비명을 요구해」)를 발표해 문단에 데뷔. 데뷔 후 공상 과학 소설 을 썼다. 그가 쓴 공상과학소설은 과학의 발달과 변화가 인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미래는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문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대표적인 공상과학소설로 조선중기에 타임슬립하는 '역사 속 여행자'와 '푸른 달 아래' 등이 있다.

그 후 다시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들어가 미군기지 주변, 이른바 기지촌 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어린 소년의 시선을 통해 문화 충돌을 사실적으로 그린 ​​장편소설 '캠프세네커의 기지촌'을 출판했다.

평론가로서도 활동해 보수계의 작가로 결성한 문화 미래 포럼의 대표를 맡아 친일파 나 시장 원리주의 를 평가하고 있다. 1998년에는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에서 영어 공용어화론을 제기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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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찾아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
상권 표지
작가복거일
원제碑銘을 찾아서. 京城, 쇼우와 62년
국가 대한민국
언어한국어
장르대체 역사
출판사대한민국 문학과지성사
일본 세이코 서점
출판일대한민국 1987년 3월 1일
일본 1987년 10월
미디어 유형도서

비명을 찾아서 : 경성, 쇼우와 62년(碑銘을 찾아서 : 京城, 쇼우와 62년)》은 대한민국소설가 복거일1987년에 발표한 장편 대체 역사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본 제국 추밀원 의장이었던 이토 히로부미1909년 (메이지 42년) 10월 26일 하얼빈(만주국)에서 있었던 안중근저격에서 부상만을 입었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해,[1] 대체 역사 속 1980년대의 일본 제국을 배경으로 한다.

각 장의 앞에는 여러 매채들을 발췌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문단이 있는데, 주제를 강화해 주는 격언들과 세계관을 설명해 주는 가상의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는 본문과 가상의 글들을 통해 배경을 천천히 서술해 나간다. 또한 이 소설에는 국한문 병용과 작가 고유의 외국어 표기가 적용되어 있다.

줄거리

1987년 (쇼우와 62년). 기노시다 히데요(木下英世)는 노구찌(野口) 그룹 산하 한도우(半島) 경금속 주식회사 과장이자 시집도 낸 적이 있는 무명 시인이다. 히데요는 부장 승진에서 내지인에게 밀려 탈락된 이후, 조선인이 내지인에 비해 차별받는 것을 부당하게 여기게 된다.

히데요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과 그로 인한 일본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했다는 대체 역사 소설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東京、昭和61年の冬)》 (작가: 다까노 다쯔끼찌(高野達吉))을 접하며 일본에 대한 반감을 떠올리고, 일본 제국에서 금서로 지정된 《독사수필(讀史隨筆)》 (작가: 사노 히사이찌(佐藤壽一))을 읽고 공식 역사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 마침 세이슈우의 큰아버지 댁을 방문하다 우연히 큰아버지로부터 죽산 박씨 족보를 보게 되고, 조선의 언어와 역사에 대해 듣게 되면서 조선인은 스사노오 노미꼬도의 자손이며 수천 년 전 일본의 징꼬우 황후가 조선을 정복했다는 공식 역사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히데요는 집으로 오던 길에 세이슈우의 고서점에서 《조선 고시가선(朝鮮 古詩歌選)》 (작가: 후지와라 다까지까(藤原孝第))을 구입하게 되고, 그 책에 실린 사이찌엥조우지조우의 시들을 읽고 조선의 언어와 역사에 대해 더 알아보기 시작한다. 조우다이(城大)의 도서관에서 《한불(韓佛) 사전》을 복사하고 1971년(쇼우와 46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조선의 역사를 찾게 된다.

모또야마에 살던 장모가 사망하여 장례를 위해 안삥샤꾸오우지를 찾은 히데요는 절의 주지 소우고우(소공, 小空) 스님을 만나고 조선어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던 소공 스님은 히데요에게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조선어로 낭독한다. 소공 스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반하지만, 히데요는 한용운의 의발을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된다.

회사에서 내지로 출장을 가게 된 히데요는 교토제국대학 도서관에서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의 조선의 옛 역사책들을 찾아내 복사하고 조선으로 돌아오나 그사이 일본에서 일어난 정변 이후 강화된 보안검색 때문에 가네우라 공항에서 입국 도중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된다. 고문과 심문을 번갈아 받던 그는 '전선사상보국연맹(全鮮思想報国連盟)'의 하꾸야마에게 교육을 받고 연맹에 참가하게 된다. 그에게서 변절한 가야마 미쯔로우 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히데요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히데요는 석방 이후 조선 독립의 필연적 이유를 깨닫고, 언젠가 올 독립의 그 날을 위해 다음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자신의 석방을 위해 아오끼 소좌에게 몸을 허락한 것을 알게 된다. 히데요는 아내의 생일에 그가 집으로 초대한 아오끼가 술에 취해 히데요의 중학생 딸 게이꼬를 성희롱하는 것을 보고 마침내 그를 낚싯줄로 교살한다. 결국 히데요는 집을 나와 명맥만 유지되는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 떠난다.

등장 인물

  • 기노시다 히데요(木下英世/박영세, 朴英世): 38세. 1948년 (쇼우와 23년) 10월 18일생. 게이조우 제국대학 상학과 출신으로 만주에서 소좌로 전역한 후 노구찌 그룹 산하 한도우 경금속 주식회사의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향은 세이슈우이다. 부인 세쯔꼬와는 선을 통해 결혼했으며, 이 때문에 소설 내에서는 세쯔꼬보다 부하직원 도끼에에게 마음을 둔다.
  • 기노시다 세쯔꼬(木下節子): 히데요의 부인. 모또야마의 명가 출신이다. 결혼 전 성은 리노이에(李家)이다.
  • 기노시다 게이꼬(木下惠子): 히데요와 세쯔꼬의 외동딸. 중학교 3학년.
  • 기노시다 헤이따로우(木下平太郞/박원신, 朴元信): 히데요의 큰아버지. 세이슈우에 거주한다. 세이슈우로 내려온 히데요에게 조선의 언어와 역사에 대해 들려준다.
  • 기노시다 헤이지로우(木下平次郞/박정신, 朴正信): 히데요의 아버지. 소학교 교사와 교장을 지냈으며 바람직한 "황국신민(皇国臣民)"으로 무정하게 살았지만 후반부에야 아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 리노이에 도시오(李家敏雄): 히데요의 처남이자 세쯔꼬의 남동생. 스나가와 건설회사에 근무한다. 누나인 세쯔꼬와 히데요와 매우 친하게 지낸다. 히데요의 가족이 거주하는 스나가와 아파트의 분양권도 그가 구해줬으며, 히데요가 구속되자 세쯔꼬와 함께 면회를 온다.
  • 시마즈 도끼에(島津時技): 한도우 경금속 직원. 히데요의 직속 부하로, 시마즈 요시히로의 직계 후손인 화족이다. 히데요를 짝사랑하나 에릭 앤더슨과 결혼한다.
  • 다나까 슈우지(田中修二): 한도우 경금속 부장. 히데요의 상급자. 이후 이사로 승진하면서 그 자리가 야마시다에게 간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으로 식견이 높고 해군과 민주화에 우호적인 편이다. 히데요에게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東京、昭和61年の冬)》을 소개한다.
  • 에릭 앤더슨(Eric Anderson): 스웨덴계 미국인. 한도우 경금속과의 합작 투자 대상인 미국 기업 '유사라무'의 직원. 도끼에와의 결혼 이후 유럽으로 부임한다.
  • 브라우넬(Brownell): 유사라무의 일본 지사장.
  • 야마시다 소우따로우(山下曾太郞): 한도우 경금속 과장으로, 히데요의 경쟁자이다. 오사카 제국대학 출신으로 입사도 늦었으나, 내지인이라는 이점과 군부 요직의 외삼촌 덕분에 히데요 대신 부장으로 진급한다.
  • 하세가와 이찌로우(長谷川一郞): 한도우 경금속 감사. 히데요의 조력자. 예비역 육군 중장. 히데요를 엘리트 사원으로 보고 있다.
  • 시까자와(鹿沢) 이사: 한도우 경금속 이사. 히데요의 조력자. 잠시 상무이사가 되었다가 도우아 경금속으로 개명되면서 다시 이사가 된다. 히데요에게 가장 우호적인 인물 중 하나.
  • 이시다 겐지(石田顯治): 한도우 경금속 직원. 히데요가 무척 아끼는 인물인 듯 하다. 사실상 차기 과장.
  • 히라오까 요시꼬(平岡芳子): 한도우 경금속의 신입직원. 꽁고우산 전철 집안의 딸. 야마시다와 집안이 인맥이 있다.
  • 후꾸다 스즈꼬(福田鈴子): 한도우 경금속 직원. 비서로 근무한다.
  • 이또우 소우끼(伊東桑姬): 한도우 경금속 신입직원. 스즈꼬의 고향 동창.
  • 가나자와 하나꼬(金沢花子): 한도우 경금속 직원. 비서로 근무한다. 히데요를 대단히 존경하지만 히데요는 항상 "그 옷 예쁜데, 얼마 주고 산건가?"라고만 질문한다.
  • 아오끼 류우사부로우(靑木龍三郞): 보안대 소속의 헌병 소좌. 세쯔꼬의 후배인 아오끼 리에(靑木李技)의 남편으로, 세쯔꼬를 농락하고 게이꼬를 성희롱하다 히데요에게 살해당한다.
  • 아오끼 리에(靑木李技): 세쯔꼬의 후배. 류우자부로의 아내.
  • 야나기자와 다다오(柳澤忠雄): 조선 시인 연맹 부위원장. 히데요의 문학계에서의 조력자. 아버지는 남작으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지냈다고 한다.
  • 오오꾸보 나리하라(大久保業平): 검사. 가네우라 공항에서 사상범 용의자로 수감된 히데요의 담당 검사.
  • 소우고우(소공, 小共) 스님: 샤꾸오우지의 주지. 한용운의 의발의 두 번째 계승자로, 한시에 능하며 히데요에게 《님의 침묵》을 조선어로 낭독해 주고 한용운의 의발을 전수한다.
  • 하꾸야마 마사오미(白山正臣): 조선 평론가 협회 간사이자 전선사상보국연맹 회원이자, 히데요의 '갱생교육(更生教育)' 강사이다. 본래 촉망받던 평론가이나, 일본에서 열린 학회에서 가야마 미쯔로우의 소설 원본을 발견하여 처음 조선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독립운동을 시도하고, 고문을 받고 전향한다.
  • 노다 슈우이찌(野田周一): 친일파 송병준의 직계후손으로 노다 백작가의 당주 자리를 이어받았다. 히데요의 대학 동창으로 사람은 착한 편.
  • 김두산: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해)의 비서장. 뉴스월드 인터뷰에 나온다. 임정 요인들과 함께 조선어 사전을 편찬 중이다.
  • 토니아(Тоня): 러시아인 여자다. 1952년(쇼우와 27년)생. 북만주에서 소위로 근무할 때 자주 다니던 카페에서 일했다고 한다. 히데요의 첫사랑이라고 하며, 가끔씩 그녀를 그리워하는 히데요의 모습이 작중 간간이 등장한다.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언급된 인물

  • 사노 히사이찌(佐藤壽一): 도쿄제국대학 교수이자 《독사수필(独思随筆)》의 저자. 1987년 (쇼우와 62년) 쿠데타 이후 체포된다.
  • 다까노 다쯔끼찌(高野達吉):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東京、昭和61年の冬)》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과 그로 인한 일본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했다는 대체 역사 소설)의 저자.
  • 후지와라 다까지까(藤原孝第): 《조선 고시가선(朝鮮 古詩歌選)》의 저자.
  • 기다하라 고우운사이(北原耕雲齋): 《인적(人跡)》의 저자.
  • 도우고우 노부오(東鄕信夫): 해군 출신의 조선 총독. 영부인 사에꼬는 활발하다고 한다. 총독을 그만둔 후 칙선 귀족원 의원이 된다.
  • 도우고우 사에꼬(東郷冴子): 조선 총독 영부인. 활발하고 정치적 식견이 높다고 한다. 도끼에와도 아는 언니로 친분이 있는 듯하다. 남편보다 낫다는 평이 있고 히데요도 그렇게 여긴다.
  • 아베 하루노리(阿部治憲): 소설의 시작 시점의 일본 수상.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전쟁 실패와 민주화 운동 진압 실패의 책임을 물어 사퇴한다.
  • 사또우 게이스께(佐藤圭介): 아베 총리 후임으로 들어선 공군 예비역 대장 출신 수상. 공군이 조각한 내각이나 결국 육군의 쿠데타에 무너진다. 이후 연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 아라끼 마사야스(荒木正休) 중장: 사또우 내각을 뒤엎은 쿠데타의 주역인 육군 중장으로 쿠데타 당시 보직은 수도군단장. 처음에는 히또쯔바시 대장을 내세우나 자신이 전면에 나서 수상이 된다.
  • 히또쯔바시 히로모또(一橋廣元) 대장: 육군 참모차장으로서 아라끼의 쿠데타를 묵인하는 대가로 호국군사위원회 위원장이 되나 아라끼에 의해 제거된다.

언급된 실존 인물

배경

비명을 찾아서에서의 1987년(쇼우와 62년)의 아시아 지도
  소련 소련 (수도: 모스크바)
   몽골인민공화국 (소련의 괴뢰국) (수도: 울란바토르)
  만주국 만주국 (일본 제국의 괴뢰국) (수도: 신경)
  일본 일본 제국 (수도: 도쿄)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소련의 괴뢰국) (수도: 북경)
  중화민국 중화민국 (수도: 남경)
  상해자유시
  필리핀 필리핀 (미국의 괴뢰국) (수도: 마닐라)
  태국 태국 (수도: 방콕)
  인도 제국 인도 제국 (수도: 뉴델리)
  네팔 네팔 (수도: 카트만두)
  부탄 부탄 (수도: 팀부)

시간적 배경은 책이 집필된 것과 같은 시기인 1987년(쇼우와 62년)이다. 소설은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암살 기도에서 부상만을 입었고, 그 뒤에도 16년을 더 생존했다는 대체 역사적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정계에 있어 온건파의 구심점이었고, 군국주의 세력을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생존은 다이쇼 시대의 일본 정국과 동북아시아의 정세, 전 세계 역사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체 역사

1910년 (메이지 43년) 한국을 합병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통치를 강화해 1920년대 초반까지 조선을 대륙 진출의 전진 기지로 만든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는 내각과 군부 사이 협조 속에서 국제 여론을 무마해가면서 만주를 세력권 안에 넣는다. 1940년대 초반에는 미국으로부터 '만주국 문제(満州国問題)'에 대한 양해를 얻는 데 성공해 동북아시아에서 지도적 위치를 구축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미국과 영국에 우호적인 중립을 지켜 큰 번영을 누린다.[8]

조선

조선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통치된다. 조선 총독은 현역 또는 예비역 육군, 해군, 공군 대장만이 될 수 있으며, 일본 내에서 수상 다음의 지위를 차지하여 수상으로 가는 정치적 능력의 시험대로 여겨진다.[9] 총독 관저(総督官邸)는 지신다이(慈信臺)라 불린다.

이토 히로부미 초대 총독에 의해 추진된 '조선의 내지화 정책(朝鮮の内地化政策)'은 역대 총독들에 의해 계승되어, 조선은 일본에 완전히 동화된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력히 추진된 '국어 상용 운동(国語常用運動)'으로 조선어는 1940년대 말까지 한반도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조선 역사 왜곡 작업(朝鮮歴史歪曲仕事)'과 '비국어 서적 폐기 정책(非国語書籍廃棄政策)'에 의해 조선의 역사도 말살된다. 1980년대의 조선인들은 대부분 충량한 황국 신민이 되고, 압제와 모멸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10] 역사책에서도 징꼬우 황후의 조선 정벌 이후로 조선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조선인의 기원은 스사노오 노미꼬도라고 교육된다. 조선사에 대한 책들은 모두 교토제국대학으로 옮겨지며, 족보의 제작과 소유 또한 출판사업법과 치안유지법에 저촉된다.

조선의 인구는 약 5천만 명이며, 빈부 격차는 대단히 크다. 조선총독부는 내지의 공해산업을 조선으로 유치하고, '조선 환경 보전 공사(朝鮮環境保全工事)'를 통해 헤이안호꾸도우 산지나 가이바 고원 등의 오지에 매립지를 만들며, '신생활 운동(新生活運動)'으로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도우요우 다꾸쇼꾸(東洋拓殖)가 센스이왕 간척 사업을 주도한다. 조선 최대의 도시 게이조우는 인구 약 3백만 명, 면적은 도쿄의 1/4이며, 1992년 하계 올림픽게이조우에서 열릴 예정이다. 후요에는 징고우, 게이조우에는 야스꾸니 진자(靖國神社)가 지어져 있다.[11] 1956년(쇼우와 31년)의 제국의원법 개정 이후 조선에서 15인의 칙선 귀족원 의원과 각 도부군협의회에서 3인씩 선출되는 45인의 중의원 의원을 선출하고 있다.[12]

상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1917년 (다이쇼 6년) 고종 승하와 '정사년 만세 운동(丁巳年万歳運動)' 이후 설립된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이 '만주국 문제(満州国問題)'에 대해 타협점을 찾은 이후 몰락하여 테러리즘으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1973년 (쇼우와 48년) 상해 중산 국제공항에서 '일본 제국 항공사(日本帝国航空社)' 여객기에 대한 공격으로 수뇌들이 체포되고, 현재는 소속 인원도 중국 태생의 조선인들뿐이다.[13]

현실비명을 찾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안변 (Anbyon)안삥(安邊) (Anpin)
장진 (Changjin)나가즈(長津) (Nagazu)
정주 (Chongju)조우슈우(定州) (Joshu)
추가령 (Chugaryong)슈우카레이(楸哥嶺) (Shukarei)
해주 (Haeju)까이슈(海州) (Kaishu)
함흥 (Hamhung)교우난(興南) (Kyonan)
함경남도 (Hamgyongnam Province)강꾜우난도우(咸鏡南道) (Kankyonan-do)
허천 (Hochon)고가와(虚川) (Kogawa)
개마고원 (Kaema Plateau)가이바 고원(蓋馬高原) (Kaiba Plateau)
길주 (Kilju)기쯔슈우(吉州) (Kitsushu)
고원 (Kowon)다카하라(高原) (Takahara)
금야 (Kumya)에이교우(英興) (Eigyo)
금강산 (Mount Kumgang)꽁고우산(金剛山) (Kongo-san)
백두산 (Mount Paektu)하쿠도우상(白頭山) (Hakudo-san)
남양 (Namyang)낭요우(南陽) (Nanyo)
평안북도 (Pyonganbuk Province)헤이안호꾸도우(平安北道) (Heianhoku-do)
평양 (Pyongyang) (북한의 수도)헤이조우(平壌) (Heijo)
낭림산맥 (Rangrim Mountains)로우링 산맥(狼林山脈) (Rorin Mountains)
삼방협 (Sambang-yong)산보우교우(三防峽) (Sanbokyo)
신의주 (Sinuiju)신기슈우(新義州) (Shingishu)
석왕사 (Sogwangsa)샤꾸오우지(釋王寺) (Shakuohji)
원산 (Wonsan)모토야마(元山) (Motoyama) (히데요의 부인 세쯔코의 친정이 있는 곳)
대한민국 한국
안동 (Andong)안도우(安東) (Ando)
부산 (Busan)가마야마(釜山) (Kamayama)
부여 (Buyeo)후요(扶餘) (Fuyo)
청주 (Cheongju)세이슈우(清州) (Seishu) (히데요의 고향이자 헤이따로우 댁이 있는 곳)
천수만 (Cheonsuman)센스이왕(淺水灣) (Sensuiwan)
충청북도 (Chungcheongbuk Province)쭈우쇼우호쿠도우(忠清北道) (Choshohoku-do)
충청남도 (Chungcheongnam Province)쭈우쇼우난도우(忠清南道) (Chushonan-do)
충주 (Chungju)쭈우슈우(忠州) (Chushu) (헤이따로우와 헤이지로우가 어렸을 때 살던 곳)
충무로 (Chungmuro)혼마찌(本町) (Hon-machi)
도화동 (Dohwa-dong)도우카마찌(桃花町) (Toka-machi)
동두천 (Dongducheon)토우도우가와(東豆川) (Todogawa)
김포국제공항 (Gimpo International Airport)가네우라 공항(金浦空港) (Kaneura Airport)
광흥창 (Gwangheung-chang)오오꾸라마찌(大倉町) (Okura-machi)
경부선 (Gyeongbu Line)게이가마 선(京釜線) (Keigama Line)
경원선 (Gyeongwon Line)게이모또 선(京元線) (Keimoto Line)
한강 (Han River)강가와(漢川) (Kangawa)
한남동 (Hannam-dong)간남마치(漢南町) (Kannan-machi)
흥인지문 (Heunginjimun)도우다이몬(東大門) (Todaimon)
홍성 (Hongseong)고우조우(洪城) (Kojo)
전라도 (Jeolla Province)젤라도우(全羅道) (Zenra-do)
전주 (Jeonju)젠슈우(全州) (Zenshu)
진해 (Jinhae)찡까이(鎮海) (Chinkai)
조치원 (Jochiwon)조우치엥(鳥致院) (Chochiin)
중림동 (Jungnim-dong)만리마찌(萬里町) (Manri-machi)
마포구 (Mapo District)아사우라구(麻浦區) (Asaura-ku)
마산 (Masan)우마야마(馬山) (Umayama)
목포 (Mokpo)보쿠우라(木浦) (Bokuura)
봉황산 (Mount Bonghwang)호우오우상(鳳凰山) (Houou-san)
북악산 (Mount Bugak)게이호쿠상(京北山) (Keihoku-san)
소요산 (Mount Soyo)쇼우요우상(逍遥山) (Shoyo-san)
명동 (Myeong-dong)메이지마찌(明治町) (Meiji-machi)
남산 (Namsan)게이난상(京南山) (Keinan-san)
사당동 (Sadang-dong)도우자꾸마찌(銅雀町) (Dozaku-machi)
삼청동 (Samcheong-dong)미기요마찌(三淸町) (Migiyo-machi)
서울 (Seoul) (한국의 수도)게이조우(京城) (Keijo)
서울역 (Seoul Station)게이조우 역(京城驛) (Keijo Station)
숭례문 (Sungnyemun)난다이몬(南大門) (Nandaimon)
수원 (Suwon)미즈하라(水原) (Mizuhara)
원남동 (Wonnam-dong)엔난마찌(苑南町) (Ennan-machi)
양화대교 (Yanghwa Bridge)다이니강가와바시(第二漢川橋) (Dai-ni-kangawa-bashi)
영등포구 (Yeongdeungpo District)에이도우라구(永登浦區) (Eidoura-ku)
용산구 (Yongsan District)류우야마구(龍山區) (Ryuyama-ku)
3·1 운동 (연월일: 1919년 (다이쇼 8년) 3월 1일)정사년 만세 운동(丁巳年万歳運動) (연월일: 1917년 (다이쇼 6년) 6월)
대한뉴스 (1953년~1994년) (한국의 뉴스 영화)제국 소식 상영(帝国ニュース上映) (일본 제국의 뉴스 영화)
5·16 군사 정변 (연월일: 1961년 (쇼우와 36년) 5월 16일)8·15 사건(8・15事件) (연월일: 1973년 (쇼우와 48년) 8월 15일)
10월 유신 (연월일: 1972년 (쇼우와 47년) 10월 17일~12월 27일)쇼우와 유신(昭和維新) (연월일: 1950년대~1960년대)
12·12 군사 반란 (연월일: 1979년 (쇼우와 54년) 12월 12일)7·31 궐기(7・31決起) (연월일: 1987년 (쇼우와 62년) 7월 31일)
1988년 서울 올림픽 (연월일: 1988년 (쇼우와 63년) 9월 17일~10월 2일)1992년 게이조우 올림픽(1992年京城オリンピック)

일본

일본 제국은 모든 면에서 미국과 소련에 이어 세계 제3위의 강대국 지위를 누린다. 일본의 영토는 만주사변 직후의 판도와 흡사하다. 가라후토치시마 열도를 포함하는 일본 본토와 함께 조선총독부대만총독부를 통치하고 있고, 요동 반도의 관동주, 산동 반도의 교주만을 조차지로 가지며, 국제연맹에 의해 남양 군도를 위임통치하고 있다.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이며, 일본에 의해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일본은 내지의 고급 인력과 자본, 조선의 노동력, 만주국의 자원을 결합하여 아우타르키를 형성하고 있으며, 일본과 만주국을 합하면 경제적으로는 소련을 앞서고 있다.

일본은 국내적으로 온건파 정권 이후 도우조우 히데끼가 1950년대~1960년대에 18년 동안 집권하고 쇼우와 유신 체제를 수립하며, 이후 육군, 해군, 공군 대장이 수상을 역임하는 통제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국가보위법, 치안유지법, 방공법 등을 통해 국민들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다. 황국신민증신민 번호를 전 국민에게 발급한다. 극장에서는 국가 연주와 제국 소식 상영이 이루어진다.[14] 수상 직속의 국가보안처황군특무사령부는 사회 각계에 영향력이 있다.

일본의 총 병력 규모는 약 240만이며, 자국산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육군, 해군, 공군이 군부의 세 축을 이루며, 공군은 해군 항공대 중심으로 발달해 1947년(쇼우와 22년)에 해군에서 분리된다. 1951년 (쇼우와 26년) 4월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軍部大臣現役武官制) 부활으로 육군대신, 해군대신, 공군대신 자리에는 현역 중장 또는 대장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를 이용해 군부가 내각을 붕괴시킬 수 있다.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 1973년(쇼우와 48년)에는 '8·15 사건(8・15事件)', 1987년(쇼우와 62년)에는 '7·31 궐기(7・31決起)'가 발생하며, 부패가 심해 해군이나 공군의 수뇌들이 뇌물을 받기도 한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젊은이들은 육군사관학교해군병학교로 가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퇴역 군인들에게 고위 경찰직이나 기업 요직을 알선해 주고 있다.

1932년 (쇼우와 7년) 만주사변이 발생하고 1933년 (쇼우와 8년) 만주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일본은 중국과 분쟁을 겪고 있다. 62사단 120만 병력을 보유한 관동군은 만주 일대에서 중화인민공화국, 몽골인민공화국, 소련과 대치하고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유격전에 고전하고 있다. 일본은 1938년(쇼우와 13년)에 중화민국과의 전투, 1939년(쇼우와 14년)에 노몬한 전투, 1960년대에 소련과의 '흑하 사건(黑河事件)'과 '기건 사건(気乾事件)', 1985년(쇼우와 60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찰합이성 전투에 처한다. 전시 체제가 유지되고 있어 연간 120시간의 예비군 훈련, 달마다 방공 훈련이 이루어진다. 국민정신총력연맹, 신생활운동본부, 국민의용대, 청년특별연성대, 애국반상회, 그리고 위안부로서의 데이신다이가 운영되고 있다.

만주국은 선통제 이후 제2대 후강희제가 왕조를 계승하고 있으며, 일본, 독일, 교황청, 이탈리아, 미국 등 53개국으로부터 승인받는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중국 해방 통일 전선(中国解放統一戦線)' 등의 지하 조직들이 뻗어나가 경찰서와 일본 영사관에 테러 공격이 발생하고 있으며, 만주국의 대학생들에게서는 신쿄대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좌익 계열의 중국 통일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세계는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 체제이나, 일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제국은 아직도 건재하다. 국제 연맹이 유지되고 있으며, 일본은 1940년(쇼우와 15년)에 미국과 함께 국제 연맹에 재가입하고, 소련도 재가입하게 된다. 상임이사국에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일본이 올라 있다.

미일 관계는 항상 우호적이며, 도우조우 히데끼가 미국 의회에서, 존 F. 케네디가 일본 의회에서 연설하기도 한다. 미국은 일본 - 만주국 - 중화민국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연결하여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항하는 전략을 위해 중화민국과 일본의 화해를 종용하며 미국, 일본, 중화민국의 연합을 추진하고 있다.[15] 이에 따라 중화민국은 만주국을 승인하게 된다. 소련은 식민 제국들에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중화인민공화국과 연합하고, 현재는 빅토르 그리신이 소련 서기장에 올라 있다.

국제 연맹의 확대로 인해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과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스페인 내전 종결은 1940년(쇼우와 15년)으로 늦춰지게 되며,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웬델 윌키가 당선된다.[16] 독일은 1942년(쇼우와 17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나 1947년 (쇼우와 22년) 미국의 드레스덴, 브레멘 원자폭탄 투하와 함께 패전한 후 점령국 미국의 도움으로 전후 복구에 성공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분할 점령한 폴란드와 수도 바르샤바동서로 분단된다.[17] 스페인은 군사 독재가 유지되고 있다.

식민 제국들의 식민 지배가 계속되면서 일부 식민지들은 종주국에 너무 동화되거나 경제적, 문화적으로 종속되어, 식민지 주민들이 자신들의 독립을 원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식민지들로는 영국의 로디지아나이지리아, 프랑스의 코친차이나세네갈, 벨기에의 콩고, 포르투갈의 동아프리카, 소련의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일본의 조선 등이 있다.[18]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북부에서는 베트민과 프랑스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국제 연맹의 중재로 프랑스와 베트민이 제네바에서 휴전 협상을 진행한다.

중국에서는 제2차 국공 합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국민당의 공산당 토벌로 1936년 (쇼우와 11년) 모택동, 주은래, 주덕 등 핵심 간부진이 연안에서 전사해 공산당은 와해되나, 1940년 (쇼우와 15년) 유소기가 다시 공산당을 재건하여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50년 (쇼우와 25년) 11월 신강성을 거점으로 '신강 소비에트(新疆ソビエト)'를 수립하여 화북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하여 1952년(쇼우와 27년)에는 신강성의 태반과 감숙성 북부를 차지하게 되고, 1953년 (쇼우와 28년) 4월 내란을 선언한 국민당 정부는 장개석의 실정으로 인해 몰락한다. 공산당의 '토지 개혁 선언(土地改革宣言)'으로 전세는 반전되어 1956년 (쇼우와 31년) 2월 공산당이 북경천진을 점령하고 3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지만, 황하 남쪽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일본군이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일본의 '도우조우 선언(東条宣言)'이 발표되자, 1956년 (쇼우와 31년) 7월 정주에서 이종인팽덕회가 양국 대표로서 휴전 협정을 맺어 황하를 경계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대치하게 된다.[19] 현재 중국 대륙에는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만주국 세 나라가 들어서 있다. 중화민국과 접한 상해는 국제 연맹의 감독 하에 자유시로 지정되며, 각국의 조계 및 명맥만 유지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위치해 있다.[20]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東京、昭和61年の冬)》

《도우꾜우, 쇼우와 61년의 겨울(東京、昭和61年の冬)》(이하 《도우꾜우...(東京…)》)이라는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했다는 대체 역사 소설이 존재한다. 다까노 다쯔끼찌(高野達吉)가 쓴 소설로, 1909년에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쏜 총탄에 맞고 암살당한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강경파였던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이토 히로부미를 위시한 온건파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는다는 점에서 완전히 달라진 역사가 쓰여진다.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지휘하에 들어간 일본 제국 군부, 특히 육군은 내각에 대항하는 독자적 세력으로 변모하게 된다.

1934년(쇼우와 9년)에 만주국이 수립되고, 1942년(쇼우와 17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1944년(쇼우와 19년)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다. 1947년(쇼우와 22년)에 미국이 가고시마(히로시마 대신)와 나가사키원자폭탄을 투하한다. 그 뒤 1949년(쇼우와 24년)에 일본은 연합국과의 강화 조약을 체결하는데, 일본의 영토는 혼슈, 시고쿠, 규슈로 국한되었다. 오키나와섬오가사와라 제도는 미국이 소유하고, 가라후토, 치시마 열도에 더하여 홋카이도는 러시아가 소유하고, 만주국과 대만은 중화민국이 소유한다. 또한 조선은 분단되지 않고 국제연맹의 감독에 따른 총선거가 실시되면서 독립 정부가 수립된다. 히데요는 이 《도우꾜우...(東京…)》에서 "야당인 일본 공산당이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새로운 군국주의 행보라고 비판한다는 점", "침략을 하지 않는 자위군을 거느리게 된 점" 등을 언급한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와의 설정 논란

2002년작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와 설정이 비슷하여 논란이 되었으나 영화 제작사에서 판권을 사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같이 보기

각주

  1.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 상, ISBN 89-320-0979-1, 문학과지성사, 2010, p. 9.
  2.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 하, ISBN 89-320-0980-5, 문학과지성사, 2010, p. 52.
  3. 현실에서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을 지휘하다가 미 해군의 공격으로 전사했다.
  4. 《비명을 찾아서》 상, p. 70.
  5. 현실에서는 1970년(쇼우와 45년)에 자살하여 원로출판인 와시오 켄야 선생이 청년시절인 1970년대의 큰 사건으로 요요기계와 비요요기계의 학생운동과 함께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을 《편집이란 어떤 일인가》에서 다루기도 했다.
  6. 《비명을 찾아서》 하, p. 226.
  7. 《비명을 찾아서》 하, p. 47.
  8. 《비명을 찾아서》 상, p. 10.
  9. 《비명을 찾아서》 상, p. 43.
  10. 《비명을 찾아서》 상, p. 11.
  11. 《비명을 찾아서》 상, p. 25.
  12. 《비명을 찾아서》 하, p. 41.
  13. 《비명을 찾아서》 상, p. 251.
  14. 《비명을 찾아서》 상, p. 69.
  15. 《비명을 찾아서》 하, p. 139.
  16. 《비명을 찾아서》 상, p. 89.
  17. 《비명을 찾아서》 하, p. 242.
  18. 《비명을 찾아서》 상, p. 248.
  19. 《비명을 찾아서》 상, p. 77.
  20. 《비명을 찾아서》 상, 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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