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3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2 선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선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2회 - YouTube
선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2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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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2번째 시간에는 주자학을 받아들이며 조선의 지배 계급이자 중심으로 자리 잡은 사대부(士大夫), 선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또 어떤 방법으로 정체성을 확립해나갔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대부의 나라’로도 표현할 정도로 조선 왕조 500년 역사의 중심 역할을 한 선비들과 중국의 강남농법은 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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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에 재봉 있니다 지난 시간에는 어 조선이 왜 주자 성리학을 도입하게
됐을까를 살펴봤습니다 주자학이 어떻게 만들어줬고 그다음에 조선이 그걸 왜
들여오게 됐는가를 살펴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그 주작이
들어옴으로써 그럼 조선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특히 그 주자학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인간형 그러니까 주자학에 맞는 주자학을 담지하고
주자학을 표현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인간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근데 그 인간형을 우리가
보통 대부라 그러고요 우리말로 선비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선비라는
인간형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져서 조선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는가 우리가 선비가 항상 있었던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선비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들어왔는가 살펴보는 그런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어 우리가 이제 그 선비 예 탄생 과정을 이제
살펴보겠습니다 자 선비가 이제 대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말로 이제 그 선비가 됐는데요 대부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우리가 한번 간략하게 역사를 좀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그 노노나 이런
데를 보면은 우리가 공경 대부사 이런 얘기 듣죠 대표적인게 주공 있죠
주나라의 공 공작 그렇죠 그다음에 경은 뭐 요즘은 우리가 뭐 추기경
이런게 있지만은 그다음에 어 대부 그다음에 사 이런게 있습니다 그러면
그게 뭐냐면 전부 다 귀족의 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공작 백작 남작 후작
하듯이 그게 주나라 때에 옛날에 주나라 때까지만 하더라도 춘추전국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있었던 중국의 그런 계급입니다 귀족들의 계급의
이름들입니다 근데 그 계급의 이름에 맨 마지막이 4입니다 4 그리고 바로
전에가 대부 대부라는 거는 원래는 없었던
겁니다 그니까 말씀드린 공경 대부 그다음에 사가 있었지만 맨 끝에 둘을
합쳐서 대부라고 하는 거는 그건 송나라 때부터 훨씬 후대에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근데 그 대부라는 새로운 글쎄 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평민도 아닌 옛날의 귀족에 비하면 귀적이 아니죠 사실은 근데 그 대부라는 계층이 나오게
되는게 이제 송나라의 때이고 그 대부라는 사람들이 송나라 때 나오는
그 주자학이라고 자기 걸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주자가 나와서 주자학이라고 만들면서 만들어지는
사람이 또 대부 라는 그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인간 형이고 그걸 우리가
도입을 해서 조선에서 이제 선비라고로 부르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런 겁니다 당나라 수나라 때 수나라
당나라 때도 중국에서 이제 나라를 통치하려면 황제만 있는게 아니라 어떻게 됩니까 관료들이 있어야 되는
거죠 그 관료를 어떻게 뽑느냐에 문제입니다 관료를 옛날에 어떻게 뽑았 있습니까 귀적 중에서 뽑았죠 그
나라를 세우는데 제일 공을 많이 세웠던 집안 사람들 자재들을 그
대신들을 뽑아 가지고 나라를 보통 그렇게 운영을 했던 거죠 황제가 있고 귀족들이 있고 이제 그렇게 운영을
했던 거죠 그래서 그게 수나라 당나라 때까지도 계속 그랬던 겁니다 이게
달라지는게 송나라 때 또 달라집니다 송나라 때 지난 시간에는 이제 경제 발전 강남 농법을 통해서 경제가
엄청나게 발전하고 막 많은 것이 변하면서 주자성 이약이 나오게 된 얘기까지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똑같은
맥락입니다 나라를 통치하는데 사용하는 엘리트들 필요한 엘리트들이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하는게 송나라 때입니다 그러니까 왜 그러냐 하면은 송나라가 강남농법
통해서 엄청난 잉여를 이제 만들어 냈다고 말씀드렸죠 그러면 어떤 농부가
농사를 지어서 강남 강남 농법을 최첨단 농법을 들여와서 모내기도 하고
수차도 잘 되가 그래 갖고 자기 선대에 비해서 엄청난 양의 쌀을
이제 매년 추수를 한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이 사람 이 먹고 살 거를 남겨 놓고 나머지를 이제 시장에
갖다가 팔 수가 있는 거죠 그럼 시장에 가서 팔면은 돈이 생기는 거고 그 돈은 더 이상 기본적인 먹고 사는
거를 해결하는데 쓰는 돈이 아니라 다른 데다 쓰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 가지 뭐 사치를 할 수도 있고 하지만
즐길 수도 있고 하지만은 특히 또 할 수 있는게 뭡니까 자식들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거죠 그 자식들한테 농사 짓지 말고 농사는 내가
지을테니까 너희들은 공부를 해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럼 공부를 시키려 그러면 어떡합니까 책이 필요한 거죠
그럼 책이 어디서 나옵니까 누군가가 책을 만들어야 되는 거죠 그게 왜 가능합니까 중국이 번영을 하기 때문에
경제가 화랑이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가가 생겼을뿐만 아니라 그 책을 살 수 있는 돈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뭐가 됩니까 수많은 농부들의 아들 자식들이 여가와 녀가 많이
창출이 되니까 이제는 뭡니까 자기는 용사 안 짓고 공부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아 기왕 공부하는 바 바에
난 과거를 치겠다 과거를 쳐서 정부에 높은 관리가 되겠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게 이제 그 그때도 출세의
지름길이고 확실하게 신분이 모든게 보장이 되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제 과거를 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송나라 때에 처음으로 귀족 출신이 아닌데도 자기네 경제력으로 자기네가
책을 사서 고향에서 선생님 모셔놓고 만들어 그 학 조금만 학교 만들어 놓고 공부를 하기 시작해서 배워 갖고
뭐냐면 나도 한번 수도에가 갖고 과거 한번 쳐볼래 이제 이렇게
되는 거죠 나라의 입장에서는 전에는 그러니까 자식들 공부시킬 수 있는
돈과 책 사 줄 수 있고 하는 건 돈이 있고 그러는 건 귀적 몇 사람밖에 안 됐었는데 이제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책를 읽고 경전을 읽어서 과거를 칠 수 있는
실력과 능력 모든 거 겸비해서 왔기 때문에 그중에서 이제 골라서 쓸 수
있게 되는 거죠 자 그래서 송나라가 들어서면서 바로이
경제 발전 때문에 강남 유역이 발 발달하면서 그 잉여가 생기기 때문에
엄청난 독서 계층이 생겨나고 과거 심을 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때마침 송나라를 세운 조광윤 송태
조광은 본인이 군벌 출신입니다 그니까 나라가 무너지고 5대 국이 생겨 갖고
막 천하 대란이 일어나고 맨날 싸우고 왕조들이 무너지고이이 이럴 때에는
수많은 군웅들이 할거하는 그런 시대가 오는데 그 시대를 겪고 나서 조광윤이
나중에 권력을 잡은 다음에 어떡합니까 군벌들을 다 없애버리고 어떻게해서든지 이제는 무력으로 권력을 얻은 사람들을
정부에서 대접을 해 가지고는 관리로 뽑는게 아니라 채용을 한게 아니라 뭐냐면 그런 사람들 제껴 놓는 거죠
군사 탈을 해서 정권을 잡은 사람이 자기 옆에 군사 구테타를 같이 했던 사람들을 계속 데리고 있으면 안 되죠
그 사람들은 멀리 변방으로 보내고 사실 자기를 도와서 통치할 사람들은
문 문치 그렇죠 문반 뽑아야 되는 겁니다 이제이 일반 보통 사람들 민
중에서 문민 중에서 관료들을 뽑아내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과거 제도를
굉장히 강조를 하기 시작합니다 공부를 해서 경전을 공부를 해서 거기서
시험을 봐서 뽑힌 사람들을 중용을 하겠다라고 하는 겁니다 나라에서 동시에 경제발전으로 인해서 많은
잉여와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계층이 나오면서이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고 과거 시험을 칠 수 있는
어 공급원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나라에서는 어떻게서 치로 가겠다는
송태조 의지에 따라서 반들이 필요한 그죠 수요가 생기는 거고 그다음에
발전으로 인해서이 그 시험을 칠 수 있는 인재들이 공급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수요 공급이 맞아떨어지면서 나라의 과거 시험이 엄청나게 발달합니다 그래서 통계를
보면요 12세기 초에는 전국에서 과거 시험자가 3만 명이었는데 12세기
말이 되면요 매년 8만명이 와서칩니다 그리고 송이 멸망하기 직전인 13 말
중반에는 무려 1년에 45만 명이 와서 시험을 쳤답니다 그래서이 그림들을 보면 이때 당시에 그림을
보시면은 지금 사람들 많이 있는 거 뭐냐면요 지금 과거 급제한 사람들
명단이 지금 저 사람들 전부 다 올려다보고 있는 벽에 그 명단이 써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과거
시험에 붙었는지 안 붙었는지 확인을 하라고 지금 몰려들어서 그 명단들 전부 다 보고 있는 이게 송나라 시제
그림입니다 그리고 그 그다음 이렇게이 문서를 이렇게 치고 있는 누가 바치고
있는 건 뭐냐면 송 황제한테 과거를 치른 사람이 자기 다지를 갖다가
이렇게 바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이 또한 그림이 손바닥에 이렇게 얹져 있는게 뭔지 아세요 이게 커닝
페이퍼입니다 그 당시에 다 외울 수가 없으니까 컨닝 페이퍼라 걸 만들어
갖고 갔었다는 겁니다 그 당시 송나라 때 저럴 정도로 지금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지금이 시험 쳐야 되는
문 명 바로 저때에 완전히 나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칩니다 자 그런데 문제가 뭡니까 여러분 아니 40만
명이 과거를 치면은 근데 1년에 몇 명이 붙겠습니다 나라에서 도대체
관료로 채용할 수 있는 사람 숫자가 몇 명이 있습니까 조선이 관료가 제일 많았을 때가 몇 명인지 아세요
500명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뭐니까 육조판서
명 참판 12명 그죠 그러면서 홍문관 대하고 어쩌고저쩌고 하고 그다음에는
군수 현감 그 몇 명이 있어요 조선에 군이 몇 개고 현이 몇
개니까 아무리 많아요 500명이 그요 평균 300명이 물론 조선은 지금 중국보다
훨씬 작은 나라였지만 중국도 아무리 큰 나라라도 그게 뭐 몇천개 몇만
개가 되겠습니까 몇십만 개가 되겠습니까 근데 이게 45만 명까지 와서 친다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과거에 급지 하는 사람은요 실제로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의 한
1% 될까요 엄청나게 적은 숫자밖에 못 하는 거죠 급제를 못
합니다 그럼 뭐가 문제가 됩니까 나무잎 사람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런데
또 재밌는게 우린 조선에서도 있었지만 음서 제도라는게 있습니다 과거에 붙어서 높은 관직에 간 사람들은 자기
집안 사람들 조카나 이런 사람들을 또 채용을 할 수가 있어요 지금은 안 됩니다 근데 조선에서 분명히 음서
제도가 있었고 이것도 송나라 때 다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북성 유명했던
학자 사마광이라는 학자는 자기의 책에다 이렇게 아예 기록을 해 놨습니다 자신의 친척 23명의 관직을
갖고 있었다는 거예요 자기가 추천을 하는 거죠 황제한테 가서 자기가 워낙 실력을 인정 받으니까 황제가 아 당신
자재 중에나 뭐 친인척 조카 중에 누구 좀 쓸만한 사람이 있냐 그러면 아 있습니다 하고 그러니 그는 지금
시험을 붙는 사람 숫자도 굉장히 적은데 음서 제도를 통해서 또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추천을 하면은 실제로
순전히 자기 실력을 갚고 과거를 쳐서 붙을 수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적었다는 말씀 그다음에 나머지 사람들이 뭐가 됩니까 대부분의 과거
응시자들은 과거 급제를 못 한다는 얘기가 되 거죠 그 많은 노력을 드리고 시간과 여가를 들여 갖고 책을
사서 평생을 공부를 해서 과거 극히 일부만 과거 급제를 하는
거 나머지 떨어지는 겁이 사람들이 뭐가 되는 거냐 거죠
붙은 사람이나 똑같은 경전들을 다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거를 다
알고 있는데도 관가 못된이 사람들이 뭡니까 그게 사실은 대부다
그게 그게 선비가 되는 겁니다 관은
못됐지만 의 문화가 문명이 있는 거죠 똑같은 공유하고 있는 경전들을 읽었고
고전들을 읽었던 사람들입니다 같은 시를 읊을 줄 알고 같은 문학
작품들을 즐길 줄 알고 같은 철학 서적을 즐길 줄 아는 그런 계층이 생겨나는 거죠 전에는 없었던
계층입니다 똑같은 경전을 읽고 그거를 공유해서 시험까지 1차까지 최소한 쳐보고 하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십만 명 몇백만 명이 없었던 겁니다 근데이 계층이 완전히 새로 속나 때 만들어지는 겁니다 처음
나오는 계층입니다 황실도 아니고 왕실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데도 그
사람들 못지 않게 많은 책을 보고 공부를 하고 아는게 많고 실력이 있는이 모든 거를 다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죠이 사람들을 이름하여 우리가 선비라고 그 시하는
겁니다 자기네는 근데 어디까지나 과거에는 못
붙었습니다 과거에 붙지 못했습니다 그럼 에 붙은 사람하고는 차이가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럼 차이가
어떻게 나는지 아세요 이때부터 공부를 왜 하느냐 어 과거
시험을 치기 위해서 그 과거 시험을 왜 치냐 아 높은 관리가 되기 위해서
우리 집안을 일으키고 뭐 이제 이렇게 흔히 그랬었던 거죠 그런데 그러면이
사람들 자기네는 아 공부를 왜 합니까 어 과거 쳐서 고의 관리가 되려고
합니다 그 얘기 못 하는 거죠 그럼 왜 공부를 합니까 공부 그 자체가
중요해서 높은 관직에 가기 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 하는게 아니라 뭡니까
공부 그 자체가 중요해서 그 내용이 중요하고 그거를 통해서 인격을
수양하고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도덕성을기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거죠 저런 부영 려고 하는 거 아니다 뭡니까 그 자체가 중요해서 그래서 그
사람들이 자기네가 하는 공부는 뭐라 그러냐면 이게 도학이라고 대비된게 뭡니까 그게
문학입니다 그러니까 그 문학이라는 거는 뭐냐면은 사문 난적 때 그
문이죠 사 그러니까 공자가 사문 나의이 문화 문명이라는 거죠 그니까
그 많은 경들을 외우고 알 그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이 사람들은 그
문학과 달리 뭡니까 아름다운 시와 아름다운 경전들을 그대로 읽는게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그 안에 도덕적인 윤리적인
인격적인 수양을 위한 그런 것들을 찾아내야 되겠다라고 구별을 하기
시작하면서 문학에서 도학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자학을 성리학을
도학이라고 그럽니다 우리말로도 사실 사실 문학이라 그러면은 미적인 거
아름다운 거 그렇지만은 철학 무슨 사회 과학 이런 거보다는 약간은
가벼운 거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말이 그런 말이 자꾸 문학입니다 근데
그게 이런 데서 생겨나는 겁니다 그 어감이 왜냐면
도학이라고이 이유가 될지 모르겠지만은 우리가 북글 씨를 왜 씁니까 왕 휘지
체를 갖다가 똑같이 쓴다 그래서 계속 베기는 거예요 그게 그 글씨체 중에서 가장 완벽한
글씨체 중에 하나라고 해서 뭡니까 그 완벽한 거를 내가 베길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이미 완벽에 도달한 거를 베기는 거죠 예는 또 예 체들이 있는
거고 그럼 추사체는 뭐냐 추사는 전혀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글씨체를 자기가 만들어내는 거예요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 거예요 나의 해석이 있는 거예요 내가 봤을 때는
왕의지를 베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성격 나의 인격을 나타내고 나의
개성을 나타내는 거는 다른 글씨체가 있다라고 하는 거죠 요순 시대부터 내려오는 주나라의 완벽했던 문명을
있는 그대로 전수받아서 그대로 그거를 다음에 넘겨 주는 거 그게 이제
원래의 문학 그러니까 문체를 흉내를 내고 글씨체를 흉내를 내고 이제 이러는 거죠 그런데 주자학이 처음에
성리학이 생길 때는 뭡니까 어 그게 아니다 고전에 담겨 있는 그 의미 그
도덕적인 의미 그다음에 나의 수양을 위한 개성을 위한 그런 의미를
찾아내겠다고 하는 움직임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계층이 나오기 시작하면서이 계층들이
자기네의 존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설명해 내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기들이
그게 지금 도학이라고 그것이 주자서 형성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게 누구 이게 뭐냐면은 북송의 대가라고
부르는 최고의 명필들의 있는데 그 사람들이 소동파 황정견 미불 이렇게
세 사람 있고 또 한 사람이 이제 사대가 중에 한 사람이 양이라는 사람이 있는데요이 사람이 어떤 친구가
그 전대의 유명한 사상가였던 한유의 고문을 자꾸 그대로 끼고 있는 거예요
그랬더니 최양이 그 친구한테 편지를 보면서 꾸중을 합니다 소위 도에서
문을 배운다면 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며 문도 도달할 것이다 자 도를
통해서 도를 닦으면서 거기에다 문을 배우면 아 도에도 도달할 수 있고 문에도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에서 도에 도달하고자 그러니까 문학부터 문부터
먼저 하고 도에 도달하고자 한다면이는 그 과정에서 치게 된다 그러므로 도는
문의 근본이고 문은 도의 수단이다 문으로 사람을 일는 것은 어찌 도로
것을 어찌 도로 먼저 사람을 게온 것과 비교할 수 있는가 경산이 전에
보내온 편지에 문사 문장을 주장하는 것을 어찌 제가 감히 문사를
무시하겠다 하지만은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그니까 도를 닦는게
먼저이고 도를 깨우치는 거 그니까 그 수많 전들과 문학에 담겨 있는 그
속에 숨어 있는 그 뜻 그도 변치않는 그 진리 그거를 발견하는게 중요한
것이지 시를 외울 줄 알고 아름다운 복글 씨를 따라할 줄 알고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여러분 그니까 선비의
모습이 드러나요 혹시 그 선비의 모습이 뭐냐면 화려한 옷을 입고 고관 대작들 같이 그런게 아니죠 굉장히
검소하고 책 그 경전을 통해고 나의 수양을 하는 사람 그게 진정한 선비의
모습이다 대쪽 같은 그런 모습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니까 문에서
도로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이게 지금 약간 좀 냉소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런
겁니다 없었던 계층이 시험은 떨어지는데 그렇다고 자기가 옛날에
평민 같이 농사 짓는 사람은 돌아갈 수는 없고 돌아갈 아지 안아도 될 정도의 경제력도 다 있고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야 우리는 그러면 시험은 쳤고 공부는 많이 했는데 관리는 아니다 그럼 뭐냐 에이
관리되는 거보다 더 중요한게 뭐냐 공부하는거다 그죠 그럼 공부가 수단이야 공부가 그 자체가 목적이지
이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는게 이게 바로 문학에서 도학 우리가 학술적으로 얘기하면 유학에서 신유학 컨셔스 네오
컨셔스이라는 송나라 때 나오는 신 유학으로 우리 말로 하면은 주자학
넘어가는 그러한 그 단계가 바로 이때입니다 자 그래서
여기까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강남 농법의 성공으로 인해서 엄청난 부가 청출 전에는 없었던 계층이 나옵니다
이제는 잉 경제적 잉여가 생기고 여가가 생겨서 충분히 독서인 평생을
살 수 있고 그걸 위해서 책을 사서 볼 수 있게 되고이 사람들이 수십만 명이 과거를 치지만 대부분 떨어집니다
그럼 그 사람들의 계층은 완전히 새로운 계층이 귀족도 아니고 왕족도 아니고
보통 사람 보통 평민들도 아닙니다 그 계층이 자기만 계층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그 첫 단추가 뭐냐면 공부를 왜 하느냐 공부는 관리가 되기
위해서 과거 급제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사실 그렇지 않아요 공부를 왜 하느냐 고시 치기
위해서 공부하는 건가 아니면 공부 자체가 좋았고 중요해서 하는 건가 뭐 이런 논쟁도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시험 치고 나면 싹 내용을 어 잊어버린다 이러면 이거 공부하는 거냐 이 뭐하러 공부하는
거냐 그런 거 아닙니까 이러한 분법 이게 귀족들 고민이 안 되는
겁니다 권력을 잡고 시간과 여유 많으니까 문학과 뭐 예술과 이런 거 다 만끽하면 되는 건데 우리가
선비라고 부르게 되는 계층은 그 정도의 여가가 있는 건 아니죠 공부까지 하지만 그니까이 사람들의
정체성이 새롭게 규정이 되기 시작해서 그 중에 하나가 말씀드린 이제 문학에서 도학을 중시하는 걸로
넘어갑니다 근데 또 하나가 뭐냐면요이 사람들이 과거 급
못하니까 관료가 안 됩니다 자기가 중앙 정부에 가서 큰 뜻을 펼쳐 볼
수 없어요 큰 정책을 통해 갖고 이렇게 뭐 나라를 움직여 보고 뭐
재정정책을 하고 경제정책을 하고 결국은 중앙정부에 못 갑니다 그러니까 어디로 갑니까 자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향천 돌아가서 뭐를 해요 아 중앙정부에서는 못했지만 내가
내 고향에서 내 땅에서 여기서 내가 배운 것을 펼쳐보겠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지지주 자기가 난 땅에서 뿌리내리고 사는
제지 지주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향사 자기 고향에 있는 선비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그 고향에 있는 선비들이 자기네들 끼이
뭐를 만듭니까 공부하는 단 그 학교인 서원이라는 걸 설립을 하고 그러면서
그 마을에 시 풍속 풍속을 갖다가 이제 개혁을 하려고 그고 고쳐 나가려고
이제 이런 모습들을 보인게 나옵니다 주희 주자가 본인이 그랬습니다 주자는
과거는 붙었는데 과거에서 아주 말 단입니다 그래서 평생을 아주 말단
군수 현감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주자이 이렇게 뭔가 그냥 사변적이고
철학적이고 외고집이 뭐 이런 걸로만 지금은 우리가 알 알려주고 있지만
사실은 원래 주자가 주희가 주희가 주자학을 만들어 낼 때는요 이렇게
현실적이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이고 정말로 자기의 고향 자기가
맡은 조그만 마을에서부터 사람들의 삶을 좀 낮게 해보려고 엄청 애를
쓰고 그걸 위한 지식을 쌓고 했다라는 그 사실을 우리가 다 잊어버리고
있어요 대표적인게 주자가 주자가 권문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1179년
12월에이 책이 지금 어 조선에는 거의 소개가 안 됩니다 권농의 일부가
다른 책의 그 번역이 저 저 약간씩 실리고 그렇지만 그리고 권능이 번역도
지금 돼 있지 않습니다 읽어 보면요 주자가 쓴 건물 얼마나이 사람이
농사 강남 농법에 대해서 완벽한 기술자였다 거를 알 수가 있습니다
서문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시골에 거처하면서 농사일을 잘 알고 있는데 이번에 외란 때의
군의 태수가 되어 권농의 직물을 담당하게 되었다 삼가 살피건데 본
군은 전부터 땅이 매마르고 세금이 무거운데 민간은 또 부지런히 힘쓰지
않아 밭 갈고 씨앗 뿌리고 김매는 것이 성글고 조잡하여 다른 곳과 비교하여 보도 매우 같지 않다 토에이
성글고 야타 풀만 무성하고 곡식의 싹은 드물어 비가 조금만 내리지 않아도 곧 흉년을 만나게 되니 모두
관리들이 권하고 료하는 것이 부지런하지 못하여 이에 이르게 한 것에 면한다 아래로 나의 근본을 굳게
할 방도가 없음을 깊이 두려워하니 나의 근심을 늦춰 주기 바란다 이제 마땅히 행할 바가 있으니 아래 항목을
권유하라라고 하는 거죠 세종대왕이나 이런 사람들이 어 공민왕도 그렇고
도대체 야 수차 좀 만들어 봐라 이거 이루고 있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듯이 사실 똑같은 어구를 이미 주자가 권능
문에다 쓰고 있습니다 자 그래서 구체적인 내용을 한번 한한 부분만
들여다보겠습니다 1 무릇 가을에 수확한 후 모음 직이 겨울이 되기
이전에 집집마다 소유한 논을 가라 같은 방식으로 갈아엎어 얼어서 부풀
오르게 하고 정월 이후에 이르러 다시 다시 여러 번 쟁기로 갈고 서해로가
고르게 한 후 씨앗을 뿌린다 자연히 논 흙이 깊이 숙성되고 흙살이 살지고
두터워 파종한 벼가 쉽게 잘 자하며 논에 가득찬 물이 잘 마르지 않는다 또 1 논 가리를 한 후
봄철에 비옥하고 좋은 눈을 골라 걸음 흙을 많이 써서 종자와 섞고 변모가 싹 트게 한다 걸음 흙을 만든 일은
역시 가을이나 겨울에 한가한 때에 되야돼 미리 지면에 풀을 깎아 말려 불태운 제를 인문에 휘조 섞어 그
속에 종자를 넣은 연우의 씨를 뿌린다 1 변모가 이미 자라거나 모림 지이
때가 되면 일찍 모을 심어 늦추다가 절기를 지나치지 않도록 하라 그런것
그 에 가면 점점점점 더 나옵니다 그러니까이 송나라 때의 농사 기법이라는게 찰기가 같은 쌀에 찰기가
40매 종이 있습니다 이거를 구분은 해냅니다이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뭐 철을 갖다가 베라벨 철을 만들어
내듯이 말하자면 그런 거죠 쌀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근데 이런 거를 주자는 완벽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걸음
주는 방법 모내기한 방법 조보리 3 콩 재배법 저수지 유지법 잠업 등
하여튼 강남 농법의 모든 거를 완전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자학이 말로 실사구시의 학문
당시의 최첨단 산업 문명을 가장 완벽하게 알고서 그거를 먼 수도에서
그 높은 데서 하는게 아니라 현지의 현감으로 내려가서 그 동네 사람들한테
일일이 권면을 하면서 이렇게 농사를 지어야지 풍족해질 수 있다 잘 살 수
있다라고 하는 정말 실사구시를 한 사람이 주 자였습니다 그럼 여러분
주자기 왜 고리타분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걸로
치부가 되기 시작하고 나중에 우리가 그래서 주자학의 반대해서 실학이 나왔다 이런 얘기를 자꾸 하는데
여러분 주자학이 실학이에요 실사 구시가 주자의
표였다 구시 해야 된다라고 외친 사람이 주자 본인이었어 근데 그
실학이 주제하에 반대하는 거 같이 나왔는데 여러분 그 왜 그런지 아세요
바로 주자학이 문학이 돼 버리는 거죠 그냥 옛날에 해오던
대로 글씨체도 그대로 베기고 옛날에 있 경서를 그대로 그냥 읽으면서 맨날
기기만 하는 거 그거 그렇게 하지 말라 너 시대에 맞는 너의 현실에
맞는 경전이 담고 있는 뜻이 뭐냐 좀 찾아내고 새시대에 맞는 해석들을
만들어내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 자하고 그 의자들고 가장 큰 차이가
뭡니까 주자 집주는 겁니다 주자는 뭘 했습니까 주자는
사서 해놓고 뭡니까 서다 뭐를 달아요 각주를 달아요 각주를 각주가 뭔지
아세요이 문장은 이렇게 읽어라고 자기가 각주를 하는 거죠 이게 원래
있었던 진리에 이미 도달했던 문인데 그 문은 그럼 그냥
읽으면 진가를 는건데 지금 주자는 뭐라 그래요 아니다 나의 입장에서
지금 현재 입장에서 나는 이렇게 읽어야 된다라고 생각한다라고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달아 버리는 거예요
감히 그런데 조선이 쇄국을 하기 시작하면서 명나라가 망하고 청
나라한테 당하고 그러면서 그때부터 주자가 해석한 거에 대해서 한자라도
틀린 소리를 하면은 사문난적 그러면서 당
없애버린다는 거죠 그게 뭡니까 주자의 정신을 배신하는 거죠 사문 난
적이라는 거는 주자 입장에서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주자가 사문 난 적이었던 분을 마음대로 자기가 해석을
했었던 거죠 근데 그 해석을 못 하게 하면서 그냥 기기만 하는 거죠 끊임없이
주자의 주를 외우고 시험 문제에도 그냥 주자의 주을 그대로 쓰지
않으면은 낙방하게 만들어 버리면은 그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완전히 굳어버리고 버리는 거고 시대에 맞는
해석이 나올 수가 없는 거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모든
지적인 자원들이 고갈이 돼 버리는 상태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실학이 주자에 반대했다는게 사실
왜곡시킨 조선이 왜곡시킨 주자 하에는 반대를 했을지 몰라도 주자의 원래 정신에는 오히려 실학이 굉장히
충실했다 거라고 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계층 사대부들이 나오면서 어 이제 문학보다 도학을 중시한다 공부
자체가 중요하다 이제 어 이런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해석들을 할 수 있
하게 되고 그리고 그 굉장히 현실적인 향촌의 경제 문제에 대해서 깊이
관심을 갖게 되고 개입을 하게 되는 그러한 새로운 어 그 향반 그렇죠
향사 고향에 있는 제지 지주라고 할 수 있는이 새로운 인간형이 나오게
되는데 그 인간형의 마지막 완성되는 부분이 뭐냐면 바로 우리가 선비라고
부르게 되는이 계층들을 위한 새로운 예법의 발명입니다 뭐 유교뿐만 아니라
모든 모든 사상이 그렇지만 정치 사상이 뭐냐면은 사실 어떻게 보면 예법 있니다 예법이 뭐냐면 왕실의
감을 왕이 지켜야 되는 수많은 예법이 있고 귀족들이 지켜야 되는 예법이 있고 양반들이 지켜야 되는 예법이
있고 평민들이 지켜야 되는 예법이 있고 다 우리가 예의범절 그러지 않습니까 예법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주 거슬러 올라가면은 그 예법이라고 공자가 만들어낸 거죠 공자가 주의라는
거를 만들어 낸 거죠 주나라의 예법 나는 하은주 세 나라의 예법을 다
공부했는데 난 그 중에서도 역시 주나라의 예법이 좋다 그래서 주례하고 했고 그 주례가 종법 제도라는 거죠
장자 상속을 해주는 이제 종법 제도인데 자 그런데 재밌는게 뭐냐면요 역사를
보면은 그러면 공자가 다니면서 이제 그 그러죠이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뭐 어떤 사람이 무슨 예 제사를 예 예법을 제례를 지내고
있으면 가서 당신은 그 지위에 맞지 않는데 왜 감히 그런 국물을 주느냐 뭐 이러면서 막 꾸중을 하고 이러죠
그러면 각 계층과 신분과 계급에 맞는 예법이 있고 그 예법을 다 서로가
지켜야 된다 그니까 우리도 뭐 한국식으로 쉽게 얘기하면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한테는 어떤 존댓말을 써야 되고 몸가짐을 어떻게 되고 어느 정도로 몸을 숙여서 인사를 해야 되고
등등등등 그게 다 예법 있니다 그러면 그 예법이
지위마저 식으로 돼 있는게 있는데 그거를 공자라는 사람은 아 나는 역시
나라게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그걸 지키겠다 이제 그랬던 겁니다 원래 만들어졌던 예법은 공자가 만들었던
예법은 주나라의 예이고 춘추 전국 시대 법입니다 즉
공경대부 4라는 그러한 신분 계층이 아직도 있었을 진나라가 통일 천하
통일하기 전의 시대에 있었던 예법 있데 진시황이 나와서 어떡합니까 공경
대부를 다 없애 버려요 그래서 황제가 절대적인 권력을 잡고 나머지는 다
똑같이 만들어 버리는게 그게 천하 통이라고 왕이 아닌 황제가 처음으로
생기는 거죠 중국에 그러니까는 황제만 있고 나머지는 다 평민이 돼 버리는
겁니다 공자가 만들었던 주나라의 예법은 해당 사항이 없어 버려요
없어져 버려요 왜냐면 주나라 때는 황제도 없었고 공경 대부를 위한
예법이 공자 예법은 그 계층은 다 없애버렸고 그 예법이 공자의 예법이 소형이 없게 돼
버립니다 그러니까는 당나라 때 와서 당나라 때
이제 귀족들이 발달하 수나라 당나라 때는 군벌 귀족들이 강한 거죠 그런데
황제하 귀족을 위한 예법이 없잖아요 유교는 자기네가 하지만 유교에 어디를
봐도 그니까 공자가 썼다는 얘기 이런 데를 다 보더라도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때에 당나라 때의 그
예법을 만들어내기 시작해요 황제 예법 황실에서 지켜 된 예법 그다음에
귀족들이 지켜야 되 예법을 높은 관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예법이 나오기 시작하고 그거를 완벽하게
정리를 한 것이 대당 개월 예라고 하는 유명한 당나라의 예법 있니다
그러니까 천하 통일이 돼서 제국이 됨으로써 봉건 제도가 무너짐으로써 공경 대부사 다 없어지고 완전히
황제하 귀족들 몇명하고 일반 평민이 되는 전혀 새로운 사회 제도가
만들어졌는데 그 사회에 맞게끔 새로운 예법을 당나라 때에 만들어내
그러니까는 이제 송나라 때에 들어와서이 사라는 계층이 사대부란 계층이 예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이 도표를 만드는게 이런 겁니다
지금 그 봉건 시대의 예법 진한수
당나라 때 예법 그다음에 송나라때 예법 이렇게 제가 셋을 했는데요 그러면 봉건 시대 예법은 이제 의의
예기 이런 유명한 예들입니다 그 예법이 중국의 예법이 누구한테 당상이
있었냐면 주나라의 왕 같은 왕 공경 대부에 대한 예법이 있는 거죠 사하고
민에 대해서도 없었던 겁니다 그랬다가 진나라가 선하 통일을 하면서 왕하고
공경 대부가 다 없어지고 나니까 그다음에 봉건 시대에 높던 황제가 생기고 그다음에 귀족이 생겨나는 거죠
그러니까 방금 말씀드린 대로 대당 개월에 것이 나오고 특히 정현이 사람이 나와서
의를 당나라에 맞게끔 이제 다시 쓰는 거죠 그래서 황제하 귀족을
위한 의뢰가 만들어져요 그런데 송나라에 들어오니까 이제는 황제에
대한 의뢰는 어차피 있는 건데 근데 대부라는 또 새로운 계층이 나오니까 그럼 이제는 사대부를 위한 예법을
만들어 내겠다는 거죠 그리고 대부 밑에 민이 있으니까 대부하고 민의
예법을 처음으로 좀 만들어 보자라고 하는게 그게
성리학자들이 그 성리학자들이 수많은 예법을 새로운 신분계층 새로운
인간형을 위한 예법을 만들어 내고 그 예법을 갖다가 집대성해서 최고의 예법 책으로
만들어내는게 주자고 그래서 그 사람이 쓴 책이 주자 가래이고 한국 사람들이
뭐 한 70% 아직도 제사를 지내는데 그 제사를 바로이 주자의 주자 가래에
의거해서 제사를 지금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이 사대부를 위한 예법은 그럼 어떻게 만들었는가이
부분을 만들어 냄으로써 사대부 선비의 인간형이
완성이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자 이렇게 우리가 좀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면요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송나라
때의 유명한 어 성리학자들이 하는 그니까 정의 정호 이정이라고 하죠
이정이 정호 형제 장횡거 장제고 하지만 횡거 선생 그래 갖고 장횡거
그다음에 뭐 당연히 주희 주자 이런 학
대학자이며 이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자꾸 무슨 뭐 경전을 모르었고 이게 그게 아니라이 사람들이 공부는 많이
했고 그렇죠 그래서 주례는 다 알고 그런데 학문으로 쓰는 일가를 이룬
사람들인데 그러면이 사람들이 그러는 거죠 귀족들이나 진짜 권문세가들이 황실에서
하고 있는 예법이 있는데 우리를 위한 예법이 없구나 그럼 우리는 어떻게이
예법을 만들어야 되겠는가 하면서 나서기 시작하는게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정 장횡거 이런
분들의 작업들을 우리가 그런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만 더 약간 좀 그 경제학적인
사회과학적인 정책적인 맥락에서 이거를 바라보면 이런 겁니다 사실은 자기네 집안이 어느 정도는 경제력을 갖췄기
때문에 자기네가 4대 부까지 되는 거죠 그러니까 4까지는 되는 거죠 근데 그럼이 부를 어떻게 유지할
겁니까 내 자손들도 내 자손들도 좀 나같이 계속해서 공부를 할 수 있
근데 내가 관직에 못 나가는 거죠 그러면 이게 어떻게 유지가 될 것인가를 대물림을 해서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방식을 만들어 내야 되는 거죠 그 모든 거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것이 지금이 4
예을는 법제도는를 다시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니까 자기만의 새로운 계층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고 그 정체성을
계속해서 뒷받침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인 사회적인 반까지도 마련해 주는 작업들을 하는게 전부 다
지금 송나라의 성리학자들이 그중에 대표가 주장했던
거고 그래서 장횡 거가 유명한 재라는 대학자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옛사람들은 예를 논의하고 검토해서 정해지면 집집마다 모두 같은
방식으로 실천하였다 지금은 정해진 제도가 없어서 모든 가들이 가문들이
제각각 정하였는데 이것이 소위 집집마다 관습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뭐냐면 관 예법이 없는 거죠 그 자기 옆집을 보더라도 예법이시고
하는데 이렇게 엉망징창이 예법이 다 무너졌다는 거죠 대당 개리에 나오는
그런 예법도 안 되는 거고 그러니까 새 예법을 만들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오늘날 대신의 가문에서는 종법을 시행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한 사람에게 여러 아들들이 있을 때
적장자 대정로 삼아 가문의 부에 맞게 후하게 주어 종자를 기른다 종자의
위세가 무거워져서 혹 그것을 바랄 경우 종자를 모시는 것 외의 소유를 친척들에게 균등하게 나눠 줄 수 있다
종자가 선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현명한 를 따로 선택해서 종자로 세운다
그러면서 굉장히 높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하느냐 아 종법 제도라는게 있어
가지고 자식이 많더라도 그 부를 큰 자식한테 다 무라 준다 물론 여유가
있으면은 뭐 좀 남으면 더 나눠 줄 수도 있고 아니면 큰 아들이 별로 신통치 않을 경우에는 둘째 아들한테도
물려줄 수도 있다 뭐 이제 이런 거 하지만 이거는 이제 오랜 종법 제도입니다 이게 뭐냐면 이게 교입니다
공자가 하은주 를 공부했는데 나는 주 나라다 주나라의 예법은 종법 제도 즉
장자 상속을 하는 제도 왕위를 물려 두라도 꼭 장자 물려 줘야 되는 거고
재산을 물려 주더라도 장자 몰아 줘야 된다라는게 그게 주나라의 예법 있니다
그니까 왕위를 동생한테도 물려줄 수 있고 딸한테도 물려줄 수 있죠 그러니까 신라에서 뭐 선덕 경왕 진도
개왕 나왔던 거고 고려의 왕들도 동생들한테 물려진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근데 하나라 은나라 때는
다 그 했었던 건데 지금 주나라는 안 그랬다는 거죠 아주 질서정연하게
모든게 장자 상속으로 갔다는 거고 그거를 이제 종법 제도라는 거죠 종을 세워 갖고 대종 소종 해서 이제
한다라는 거죠 자 그러면은 지금 장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면 장횡 거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면 권문
세 가들의 집에서는 이렇게 종법 제도를 쓰는구나 그럼 우리도 제한적인
부를 관직도 없는데 이런 부를 유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다 흩
시작하면은 별로 얼마 안 되는 부 다 흩어지니 어떡합니까 우리도 종법
제도를 하자 그래서 사실은 중국에서 주나라 이후로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었던 황실하이츠
그래서 정희 정호 형제 유명한 그 그 성리학 자들이죠 형제입니다 정희 정호
그 형제 그래서 이정 두 정이라 그래서 이정이라고 많이들 얘기들
하는데요 정희 그러니까 형이 정의고 동생이 정입니다 형이 이제 정희
선생이 한 얘기입니다 종자의 법이 서지 않으면 조정에는 대대로 국가에 충성하는
신하들이 존재할 수없 없을 것이다 종법은 몇몇 큰 관료의 집안에서 법을
세운 것이다 종법이 세워지면 사람들은 각기 자신이 유래한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거를 본격적으로 들려오자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위해라는 거를
최초로 도입한게 정의 선생입니다 그전부터 있었던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라는 선비라는 새로운 계층이 만들어지면서 만해도 우리도 황실에서만
쓰는이 총법 죄들 우리도 들여와야 되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유지가 안 된다 몰아 줘야 된다 장자 근데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느냐 그럼 우리가 종법 제도를 해서 제사를 지내야는데 그 제사를 그럼 어떻게 지낼 거냐
우리 식의 제사는 뭐냐 그래서 위패는 걸 만들어 낸다는 거죠 그니까 그
전에는 뭐 예를 들어서 뭐 심판이라는 거를 만들어서 제사를 지낸 사람들도
있었고 조상의 그림을 그려 갖고 모셔다 놓고 하는 경우들도 있었답니다 그거를 아
위라는 걸로 다 통일을 해야 된다라고 하는게 정의입니다 정의가 언제 살았냐면
1933년에서 17년까지 주자가 1130년 태에 태어났으니까 바로 전
때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아이디어들을 주자가 지금 물 물려받는 거죠 그래서
주자가 이제이 종법 제도를 본격적으로 제대로 부활을 시킵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옛날에 예가 산실 100가지 중 한 두 가지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표면에서 모하게 도리를 말한다면 어떠하겠는가 그 말한 것이
어떤 도리를 얻겠는가 물음 직이 산실 여러 예들을 이리저리 비교하고
검토하고 구체적인 조목을 하나하나 그 실제를 드러내어야 비로서 그 도리가
분명해질 수 있다 비교해서 확실하다면 그 도리 역시 설명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분명해 줄 것이다 여러분 주자는 그 당시에 있는 모든 거를
전시대 동시대의 모든 거를 섭렵을 해서이 중에서 가장 좋은게 뭔가를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서 그걸 종합을 해내서 아 우리 시대에
최소한 내가 봤을 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사라는 계층 사람들이 사람들한테는 이런 예법을
하면 좋겠다라고 집대성을 해서 주자 가래는 걸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 주자 가래를 통해서 자기의 정체성 을 구을 하고 끊임없이
만들어가고 하는 사람이 선입니다 종합적으로
말씀드리면 문학이 아닌 도학 가자 공부는 과거를 치유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체로 한 것이다 강남농법이라는 것은 정말 우리를 부강하게 해주지만이 강남 농법을 정말
현지에서 우리가 실사구시를 통해서 그냥 을 하는게 아니라 정말
실질적으로 일반 사람들의 삶을 농부들의 삶을 낮게 해 줄 수 있는
강남 농법을 제대로 익혀 갖고 그거를 퍼트려 되는 그게
성리학자들이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면서 그렇게 해서 탄생한 그 계층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네들을 위한 계층을 위한 예법을 새로 만들어 내고
그것의 핵심으로서 종법 제도라는 것을 되살려서 그거를 종법 제도를 도입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때에 처음으로 뭡니까 자 대종이게 있다 대종은 뭐냐
지금 우리가 종묘에 가면은 종묘에 가면은 이시 왕가 왕실은 뭡니까 대종
있니다 그러니까 조상들이 다 있는데 조상한테 끊임없이 제사를 지내
겁 그런데 원래 대집 안에서 어떻게 하는 겁니까 4대 봉사를 하는 거죠
대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거죠 그러니까 그러니까 현실적인 거죠
왕실이나 귀족들 황실 같이 영원히 계속해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모든
선조들을 한꺼번에 선조들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뭐 이런 식으로 제사가 됩니까 말이 안 되는
거죠대 봉사만 하라라고 정해주는 거죠 종은대 봉사다 종법 제도 종친 하는이
전부 다 이게 유교에서 나오는 주 나라에서 나오는 거고 다시 해석해서
송나라 때 자기네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신분 계층을 위해서 해석해내는 것이 장횡거 정의 정호 형제 주희
이런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게 우리가 지금 조선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실천하고 있는 그 종법 제도 그리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 그 예법 다 이때
만들어지 겁니다 그리고 이걸 통해서 형성되는 인간형이 바로 4대부 4
선비 있니다네 지금까지 그 선비라는 인간형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쭉 한번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봤고요 어
다음 시간에는 그러면이 선비라는 유형을 도입한 조선이 새로운 인간형과
새 사상을 이제 뿌리내리게 해 가는 과정에서 제일 신경을 썼던게 뭐냐면
제사를 지내게 하는 겁니다 천년 불교 국가였던 그죠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때까지 불교 국가였습니다 태조 이성계부터 세종대왕 본인까지 세종까지
전부 다 불교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이 사람들이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그 예법을 들려오는데 그러면 그
예법을 이론만 하면 뭐해 실질적으로 이걸 하나하나 비교를 해서 정확하게 실천을 해야 된다라고 해서 그거를
주자 가래를 통해서 제사라는 건 자로 이렇게 지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조선 사람들이 불곡 만 들리던 사람들이 제사라는 거를 지나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초선 사람들은 언제부터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가 하는 주제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 보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C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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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 요약 및 평론

1. 내용 요약

강좌 12회에서 함재봉은 조선 왕조 500년의 지배 계급인 <선비(사대부)>가 태고부터 존재했던 불변의 정체성이 아니라, 송나라(남송) 대 강남 농법으로 인한 경제적 번영, 과거제의 발달, 그리고 주자학의 성립 과정에서 탄생한 역사상 전혀 새로운 사회적 인간형임을 분석한다.

(1) 경제적 잉여와 사대부(士大夫) 계층의 출현

  • 과거제와 독서 계층의 폭발: 송나라 대 강남 농법의 성공으로 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자, 귀족이 아닌 일반 농민 가문에서도 자식을 농사 대신 공부시킬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 문민 통치와 과거 응시자의 폭증: 군벌 출신의 송 태조 조광윤은 문치주의를 내세워 과거제를 대폭 확대했다. 이에 따라 12세기 초 3만 명이던 과거 응시자가 13세기 중반에는 45만 명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독서·지식인 계층'이 형성되었다.

(2) 지식인의 정정체성 재규정: 문학(文學)에서 도학(道學)으로

  • 낙방자들의 정체성 모색: 45만 명 중 과거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는 인원은 1% 미만이었다. 합격하지 못한 수십만 명의 독서인들은 귀족은 아니지만 일반 평민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세워야 했다.

  • 도학(성리학)으로의 전환: 이들은 "공부는 고관대작이나 출세를 위한 수단(문학)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격을 수양하고 도덕적 진리를 깨치는 목적(도학)"이라고 스스로를 재규정했다. 이로써 단순한 시험 준비생이 아닌, 도덕적 가치와 지식을 체화한 '선비(사대부)'라는 인간형이 탄생했다.

(3) 실사구시로서의 주자학과 사대부 예법(주자가례)의 완성

  • 주자의 권농문(權農文)과 실용성: 주희(주자)는 관념적 철학자에 그치지 않고 현감으로서 모내기, 수차 보급, 걸음 주기, 품종 개량 등을 적은 <권농문>을 써서 백성을 교화했던 '실사구시적 기술자'였다. 주자학은 원래 현장 농업 기술과 삶을 개선하기 위한 실용 학문이었다.

  • 사대부를 위한 예법과 종법의 부활: 장횡거, 정호·정이 형제, 주희 등 송나라 성리학자들은 황제나 귀족이 아닌 '사대부와 평민'을 위한 새로운 예법 체계인 <주자가례>를 집대성했다.

  • 장자 상속과 4대 봉사: 자산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 가문의 정체성을 대물림하기 위해 주나라의 '종법 제도(장자 상속)'와 '신주(위패)', '4대 봉사(四代奉祀)' 제도를 사대부 계층에 맞게 재구성했다.

2. 평론: 신분적 계급의 사상사적 해체와 전통의 실용성

강좌 12회는 '선비'를 유교적 도덕관에 가두어 탈역사화하던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송나라의 경제적·사회적 변용 속에서 출현한 '지식인 계급의 자기 정체성 형성사'로 입체적으로 규명한다.

첫째, 선비라는 인간형의 '물질적·구조적 기원'을 정밀하게 입증했다. 선비 정신을 단순한 형이상학적 신념이 아니라, 강남 농법이 가져온 경제적 잉여와 인쇄술 발전, 그리고 과거제 폭증이라는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해석한다. 과거에 낙방한 수십만 명의 지식인이 '도학'이라는 명분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선비 정체성이 탄생했음을 밝혀낸 점은 매우 날카로운 사회사적 통찰이다.

둘째, '주자학=고리타분한 관념론'이라는 프레임을 해체했다. 주희의 <권농문>을 제시하며 주자학의 본질이 원래 현장 농업 기술과 수리 시설, 모내기 등을 지휘하던 최첨단 실용 학문(실사구시)이었음을 입증한다. 후대 조선에서 주자학이 교조화되면서 텍스트 기기(사문난적 처벌)로 변질되었을 뿐, 본래의 주자학은 대단히 현실 개혁적이고 경제적인 시스템이었음을 잘 지적해 낸다.

셋째, <주자가례>와 제사 문화의 인위적 창출 과정을 규명했다. 현대 한국인이 유구한 민족적 전통으로 믿는 제사, 위패, 장자 중심의 종법 질서가 당나라 때까지의 귀족 예법에 맞서 송나라 사대부들이 가문의 부와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 '고안해 낸 예법'이었음을 정밀하게 추적한다. 전통이란 역사적 필요에 의해 구성된 산물임을 재확인시켜 준다.

결론적으로, 함재봉의 12회 강연은 조선 500년을 지배한 '선비' 정체성이 관념 속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경제적·사상적 역동성 속에서 조련된 계급적 산물이었음을 밝혀냄으로써 '한국인 내면의 유교적 유전자'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직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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