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왜 쇄국을 포기하고 개국을 했을까?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7회
법률방송
94,327 views Jul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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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일곱 번째 시간에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 급격한 근대화를 겪은 일본이 쇄국 정책만을 고집하던 조선을 어떻게 열었으며, 당시 중국의 역할과 국제 정세는 어땠는지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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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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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 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어 중국이 근대화에 어떻게 실패했을까 특히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급격한 근대화에 성공하는 일본과 무엇이 달랐기에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했는가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중국과 일본에이어서 드디어
계곡을 하게 되는 조선 그러면서 그 조선이 그러면 곡을 어떻게 해서 하게
되는가 어떻게 세국 정책을 포기하게 되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함재봉 한국인의 탄생 이제부터 [음악]
시작하겠습니다네 그러면 이제 조선은 어 세국 정책을 어떻게해서 포기를 하고 결국은 이제 개국을 했는가를 어
살펴봐야 되는데요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를 그 우리 거를 지키겠다
조선이 그러면서 이제 쇄국을 했고 그거를 굳이 이제 뭐 여러
나라들이 와서 문을 두들기다가 어 일본이 결국 강 강제로 강화도 조약을
맺고 이제 개국을 했다 우리가 이렇게 보통 아주 쉽게 어떻게 보면 해석을 하고 생각을 하는데 중요한 거는
뭐냐면 지금도 그렇듯이 그 당시 국제정세가 어땠는지 다 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고 조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져서 어떻게 해서 조선을 개곡 키 데까지 이었는가를 우리가 살펴봐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그 당시에 예
1876년에 강화도 자학을 맺을 때는요 일본도 지금 개국한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일본이 조선을 계곡리 그랬을까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은 뭐냐면 그때에 적극적으로 계곡을 하라 일본과
강화도 제약을 맺으라 한게 다름 아닌 청나라 있습니다 중국도 적극적으로
계곡을 하고 적극적으로 일본과 수교를 하고 미국과도 수교를 하고 이제 다
그러라 그랬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런게 어우러졌으면 이게 수교가 저 개국이 가능했던 겁니다
그럼 그런 국제적인 맥락을 우리가 알 알면서 아 보면은 아 이래서 일본이
조선을 개시키 치려 그랬구나 아 이래서 중국도 조선이 개국하는 거를
적극 동의를 했었구나 그리고 이제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조선은 이걸
어떻게 이해를 하고 받아들였을까 이런 부분을 우리가 아주 심층적으로 그리고
복합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지 역사를 이해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자 그럼 우슨 얘기의 스토리가이 이렇게 시작을
해야 되겠죠 개국을 한다 특히 일본이 와서 강화도 조약을 통해 갖고 조선을
국시다 우리가 그런데 그러면 그 전에는 뭐였나 일본하고 관계가 사실
일본하고는 그 전에도 그죠 저희 쇄국을 하고 있을 때에도 조선은
일본하고는 분명히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외관을 통해서
몇백년 동안 계속해서 교육을 하고 있었고 중국과는 물론이고요 그렇죠 연 행사가 왔다 갔다 하고 뭐 식사가
오고 가고 그러면서 계속 교류가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수국은 수국이
일본하고 중국의 제한적인 어 교류는 있었던 거죠 그러면 그런데 그러면
일본은 왜 기존의 교류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강화도까지 맺으려고 했는가를
보려고 그러면 우선 원래 번 조일관계 조선하 일본 관계가 뭐였냐 봐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잠깐 우리가 1609년 광해군 1년에 일본하고
조선하 맺은 기유 조라는 거 봐야 됩니다 그게 뭐냐면요 자 임란을
치르고 나서 임진란 때문에 조선이 초토화가 된 다음에 당연히 조선에서는
일본 학원는 이제 모든 거를 끊어 버리겠다 당신 애들하고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랬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임준 외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그죠 그리고 그 후 아들 어린 아들을 결국은 도꾸가와
야스가 죽여버리고 자기가 정권을 잡습니다 근데 재밌는게 도구가
이에야스 는 조선에 군사를 한 명도 안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도요토미가
조선 출병을 해 갖고 임진화 일으켰을 때에 도요토미 도와줬던 여러 번들이
있고 무장들이 있었지만 도쿠가와는 안 도왔습니다 그러니까 그 독구 가가
정권을 잡고 나서 조선한자 하는 얘기가 뭐냐면 아 우리는 당신들 안 쳐들어왔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권을
잡았으니까 이제 도요 돔이 몰락 했으니까 우리랑은 그래도 뭐를 합시다 그래서 거듭거듭 그래도 교류를 합시다
합시다 그럽니다 그래서 그때 이제 조선이 몇 가지 그 그 저 조건을
겁니다 그래서 뭐 먼저 국서를 보내 와라 그러니까 교류를 요구하는 거를 그다음에 또 하나가 뭐냐면 범능
성해라 그게 뭐냐면요 임지나 한때 일본군들이 와서 조선의 왕들의
왕릉들이 굉장히 많이 도구를 했습니다 그 안에 굉장한은 보화가 있다고이 사람들이 생각을 해서 그래서 그 범능
능을 범한이 나쁜 도적들을 잡아서 다시 조선에 보내면은 이제 그런
조건을 겁니다 그래서 그리고 이제 물론 그 잡혀갔던 포로들을 송환할
것을 이제 그 요구을 하죠 그래서 이것들을 다 독구 가가 들 들어줍니다
그래서 아 그럼 알았다 그래 갖고 1번하고 다시 교류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다만 그 교류를 굉장히 제한적으로 했듯이 했는데 전 시간에도 제가
말씀드렸듯이 부산 동네에 있는
초량지점 다쳐 놓고 1년에 지정한 대마도 스시마에 번주의 도장을 갖고
오는 세견선이라는 배가 20척 1년에 들어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일본
하고에 굉장히 제한적인 교류를 하기 시작을 했던 거죠 그렇게 해서 지금 1600
년부터 그 지금 거의 어 1876년 이면은 어떻게 됩니까 270년 동안은
그 기유 약조회 체제하에서 일본하고 이제 교류를 했던 겁니다 자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일본에서 천 그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고 1868년에
일어나면서 완전히 정권이 또 바뀌는 거죠 이번에는 도꾸가와 정권을
쫓아내고 이번에는 이제 메이지 가 친정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제 메이지 유신이 시작이 됐죠 자 그러면서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면서 전에 지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1869년에 판적
봉환이게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다이묘들의 번으로 나눠져 있던 다녀들
보고 다 당신의 땅과 영지와 영민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황제한테 천왕 테 돌려라 직접 통치하시기 그런다 그러면서 그 봉토를 다 뺏어 버리고 그리고 그 다이묘들은
그 대신 그 자기네가 통치하고 있던 번에 지사로 임명을 합니다 우리가 주지사 하듯이 임명을 해 버립니다
그러니까는 그동안에 조선 하고 모든 통 그 그 교류를 도맡았던 대마도
스시마도 바뀌는 거죠 스시마 이름이 바뀌는게 이즈하라 한 스시마 번이
아니라 이즈하라 한이라는 걸로 바뀌고 쓰시마의 주였던 다 었던 소요시
아키라라멘 하는 것도 아니고 자 새로 들어온 메이지 정부가 한다 그럼이
새로 들어온 메이지 정부가 그러면 조선한자 우리 정권도 바뀌었고 체제도
다 바뀌었으니까 이제 그러니까 독구 가오가 들어와서 기유 약조를 맺었이
이번엔 이제 메이지 정부가 들어왔으니까 기유 약조를 대신할 다른
이제 조약을 하자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에 어 그 처음으로 어 그
1869년 12월 2일 날이 소요시 아끼라 마지막 번주가 드디어
편지를 써가고 조선에 보냅니다 뭐라고 보냈냐 이렇게습니다
어 근위 소장 조신 의달 자기를
다이라고 더 그러지 않고 이젠 그러지 않고 천왕이 임명한 근위 소장
조신이라고 이제 이름을 바꾸는 거죠 그래갖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제
외관에 오니까 이때 처음으로 조선은 뭐냐면 어 일본에 큰 변화가 있었구나
이걸 처음하는 겁니다 그니까 메이지유신이 일어난지 1년 만에 조선에서는 처음으로 어 일본의 체제가
완전히 근본적으로 바뀌었네 걸 처음 알게 됩니다 자 그러면 그때에 이제
외관에 이걸 가져오니까 외관에서 그때 동래부 동부의
계 그니까 기록이 있는데 1869년 12월 3일자 동부 록을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관수 관수가 이제 그 외관에서 일본하고 조선에 관 그 오구
가는 거를 그 맡았던 사람을 관수가 그러는데 관수가 말하기를 폐방는
우리나라에는 이제 일본 사람이 그랬다는 거죠 폐방는 이변이 많았으며 작년 11월에는 명치로 개신
아였다는 승자 승진해서 서개 로인의 근위 소장
조신 칭하였습니다 그니까 다이묘가 아니라 사실 좀 승진을 해 갖고 이제 근위 소장이 됐습니다라고 함으로
그렇게 해갖고 이제 편지가 왔다는 거예요 그 그래서 외관에서 뭐라고 답을 했냐면 힐책 하기를 서의 문자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전례에 어긋나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개서 정하라고 관수 및 전관
외게 하였습니다 그니까 뭐냐면 기약 의해 매년 선이 저 들어오는데 그 세
연선이 올 때마다 똑같은 문서와 똑같은 그 신분증과 그거를 갖고
들어와야지 된다 그랬는데 이번에 바뀐 거예요 일본이 너무 바 바뀌었기
때문에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하고 했더니 관장이 외관 도가 뭐라 하냐면
야 이거 다 틀렸지냐 원래 우리 그 기 약조 때 했던 그 그 문체도
아니고 이거 다 틀렸다 다시해와 그러면서 쫓아 보냈다고 지금 동래부
기록을 합니까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큰 변화가 있어서 다시 해 봅시다라고
하는데 조선에서는 무슨 소리하고 앉아 있어 지금 절데 없 소리 하지 말고 원래 기의 약자에서 했던 대로 해 와
이제 이렇게 해서 내쳐 버리는 겁니다 자 그러니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일본에서 이제 한쪽 한쪽에서는 아니 왜 우리랑 이걸 안 하겠냐고 이제 부글부글 끓기 시작을
하는 거죠 근데 그때에 이게 이제 우리의 우리가 알아야 될
가장 중요한 그 당시의 국제 정입니다 뭐냐면 일본이요 조선이 말을 안 들으니까
조선 보고 조약을 하자 근대 조약을 하자 기유약조 대체할 조약을 하자 그러는데 말을 안 들어요 그러면서 거
뭐 편지를 가지고 가면 왜 너희가 천왕이 뭐 이런 소리 자꾸 하면서 황제는 중국에만 있는데 왜 너희가
황제를 하냐 안 된다 뭐 이런 얘기를 하니까 일본 사람들이 뭐라 그러냐면
일본의 어 그 지도자들이 뭐라 그러냐면 자 보니까 조선은 자기네가
중국의 속방이라 그런다 중국도 조선이 자기네 속방이라 그런다 그러면 속방이
저렇게 자기네 조약을 체결 안 한다 그러면 그러면 우리가 중국하고 한번
조약을 체결해 보자 중국하고 조약을 체결해 버리면은 중국 말만 듣겠다는
조선도 따라할 것이 아니겠느냐 해서 1871년 에 그니까 사신들을 보내
갖고 일본이 사신들을 1870년부터 보내기 시작해서 중국하고 협상을
합니다 중국을 하고 협상을 해서 중국하고 일본이 이미
1871년 9월 13일 날 청일 수호 조약이라는 걸 체결을 합니다 이게
뭐냐면 청나라고 일번 중국하고 일본이 체결한 최초의 근대 조약입니다
일본하고 조선이 최초의 근대 조약인 강화도 제약을 1876년에 체결했는데
그거보다 5년 앞서서 일본은 중국하고 근대 조약을 체결을
합니다 그 말씀이 뭐냐면요 근대 조약이라는 거 뭐냐면요 중국이 일본을 자기 네랑 대등한
나라로 받아들였다는 거죠 그래서 그 조약을 보면은
대국과 대일본 국이 18개 조항에 의해서 근대 조약을 체결을
한 완전히 근대 식으로 그래서 뭐 관세는 어떡하고 뭐 교 교역은 어떻게
하고 이런 모든 거를 집어넣습니다 근데 거기 1조에 일조가 뭐냐면
서로의 방토의 대한 불가침을 약속을 합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말이냐면 방토의 대해서 방토는게 이제 영토 지금 말로
하면은 근데 영토에대 서로의 영토에 대해서 불가침 조약을 맺자 그래서
맺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속셈이 뭔지 아세요 이거를 중국측에서 이걸
사인한 이홍장의 입장에서 뭐냐면이 방토는 거는 조선 같은 속방 아지도
다 포함이 된다고 하던 거예 그래서이 조약을 일본하고 맺으면 일본이 조선도
중국 땅이라고 생각해서 침략을 못 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일본은 야이 방토는 속방 포함되지
는다고 봤던 거고 그래서 조선을 자기네가 따로 가서 개국을 시키려고
하고 해도 된다라고 이제 생각을 했던 겁니다 자 그래서 근데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그럼 이홍장은 왜 일본하고 이런 조약을
맺었을까 이홍장은 중국은 이때 명확하게 깨달게
뭐냐면 이미 1848년에 1차전쟁 860년 2차 하편 전쟁
그다음에 무슨 뭐 태평 천국에 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야 이거 도저히 우리 힘으로 이거 지키기 굉장히 힘들다 나라를
지키기 굉장히 힘들다 거기에다가 특히 조선 같은 데는 도저히 지킬 수 없겠구나 우리 힘으로는 왜 일본이
일어나고 있고 특히 러시아가 블라디 보스까지 오면서 러시아가 불같이 일어나고 있고 블라디보스톡의 극동
함대를 만들고 그러는데 그런 만주 같은 거 거는 우리가 조선은 우리의 군사력 갖고 못 지겠구나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되냐 아 조선으로 하여금 여러 다른
열강들고 조약을 맺게 해서 나라를 열게끔 하자 그래서 여러
나라들이 조선하 수교를 해 버리면은 그중에 어떤 한 나라가 러시아가든
일본이든 한 나라와서 조선을 삼켜 버리지 못할거다 왜냐면 그걸
중국에서도 봤거든요 중국이 여러 나라들고 수교를 하고 있으니까 영국하고 수교하고 프랑스 수교하고
러시아하우스 견제하면서 와서 통상 하지 자기네를 잡아먹으려고
하 걸 못 해요 서로 견제가 되니까 그래서이 사람들이 아 이게이이 제 이구나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어하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조선 보구도 야 빨리 열어라 이러는 겁니다 자 그래서 어쨌든 그렇게
해갖고 청일 수고 조약까지 1871년에
맺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총일 수호 주까지도 맺었는데요 이제
조선이 이걸 잘 모르죠 굉장히 뒤늦게 알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그런 거예요
아니 우리는 어쨌든 모르겠다 우리는 절대 너희랑 수결 안 하겠다 그런 거죠 그러니까는 일본에서 결국은 지난
지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정론이 일어나는 거고 그 정론이 일어나서 사회가 달고 다까 머리가 뭐 건너와서
자기가 죽게 되면은 군사를 일으키고 어쩌고 이제 하는 거를 이제 오쿠보도시미치 하고 이런 사람들이
급히 이와쿠라 사절단이 급거 귀국을 해서 이제 막아 버리고 정한론을 끝
끊어 버리는 거죠 그런 그런 이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자
그러니까는 그 정한론을 꺾었던 오쿠보는 사람이 정권을 잡고서 자
그러면 다시 한번 조선을 열어 보자 그 대신 정한론을 해서 뭐 쳐들어가고 이러는 거 하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다시 외교적으로 조선을 열어보자 그러면서 일으키는게 운요 사건 운양호 사건이라는 걸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게 1875년 9월 12일 날 은호가 나가사키 항을
출항을 하고 9월 20일 날 강화도 포대 앞에 도착을 해서 일부러 상륙하는 척을 하면서 그러니까 이제
강화도 포대에서 포격을 하니까 반격을 하면서 이제 그 초토화를 시켜 버리죠
벌써이 호가 이미 근대 그 어 그 전이니까 이제 지금 강화도 포돼
있었던 포 하고는 아예 상대가 이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9월 28일 날 돌아옵니다
그랬다가 그러면서 이게 뭐냐면 아 조선을 조선을 어떻게든지 움직여서
협상장에 나오도록 해야 되겠구나 해서 이제 일으켰던 사건입니다 자 그렇게 하고요 일본이
얼마나 주도 면밀 하냐면은 그다음에 1871년에 이제 중국하고
일본하고 수호 조약을 맺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럼 수호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도쿄에
자기네 외교관을 파견을 했고 일본에서는 중국 북경에 베이징에 자기
외교관을 파견합니다 그 외교관이 누구였냐는 모리 아리라는 젊은
공사였는데 하버드대학교 출신입니다 미국에이 모리 아리 노리를 갖다가
공사로 갔다 이제 베이징에 갔다 놨는데 베이징 이 1875년 11월
10일 날 모리아를 주천 공사에 임명을 하는데 강화도 그니까 운요 사건을
일으키면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기 직전에 모리가 이장을 만나서 슬쩍
한번 떠봅니다 뭐를 떠 보냐 아까 말씀드렸듯이 청일 수호 저역에서 서로의 방토를 침범하면 안 된다
그랬고 그 방토가 중국은 조선을 포함한다고 생각했던 거고 일본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생 했는데 그
문제를 다시 한번 거론을 합니다 여러분 이게 제가 왜 왜 말씀을
드리냐면 조선이 중국이 생각했을 때도 그렇고 조선이 생각했을 때 중국의
일부분이라고 분명히 생각을 했습니다 속방이라는 건 방토 아고 중국도 생각을 했고 조선도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일본은 그게 아니다 조선은 중국의 석방이 아니라 독립국이
따라서 따로 다뤄야 되고 따로 우리가 대하겠다 이렇게 이제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이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조선을 조선에 가서 강제로 대국을
따로 시키려고 했을 때 중국이 가만히 있을 건가 아니면 어 이거 우리 속방이고 우리 방토 너희들 하면 안
돼라고 그러면 거기에 도전을 할 것인가 이거를 떠보는 겁니다 그래서 머리가
이혼장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여러분이 대화가 저는 중국이 조선을 어떻게 생각했고
조선이 중국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가 명확히 나타나는 굉장히 중요한 대화라고 생각을 해서 한번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리가 이렇게 물어봅니다 고려와 인도는 똑같이
아시아에 있지만 중국의 속국에 속하지 않는다 그랬더니
이홍장이 아니 인도는 우리가 속방이 아니지만 고려는 정을 받는데 어째서 속국이 아닌가 그래요 근데 여러분
정사이 뭔지 아세요 종 정이라는 거는 중국에서 왕조가 바뀔 때마다 정정 초
가 언제인지를 음력 정월 초화가 언제인지를 정할 수가 있어요 날짜를 바꿔요 그리고 바꾸면서 자 이제 새
왕조가 들었으니까 속방이 조선은 다른 속방 있지만 속방 이제부터는 달력을
우리가 새로 만든 달력에 따라서 조정을 해서 다 따라라 그게 정석을 받는다 그러는 겁니다 그죠
그래서 그러면 조선은 분명히 청나라가 되고 나서 청에 정상을 받아서 거기에
달력을 맞췄 와서 쭉 살고 있는데 아니 고려는 정상을 받는데 어째서
속국이 아닌가 그랬더니 모리가 뭐라 그러냐면 아니 각국에서 모두 말하길 딴 나라들 다 그러는데 고려는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는데 불과하며 중국은 그 전량을 거두지 않고 다른 정사에 관 관여하지 않으니이 때문에 속국에
속하지는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거죠 물론 책봉 받고
그 사 저 연행사 보내고 그렇지만은 그렇지만은 세금을 걷 중국이 조선에서
세금을 걷지는 않는 거 아니냐 세금도 안 걷고 그러는데 그러면서 놔두고 있는데 그게 왜 자꾸 너희 땅이냐
땅이라고 그러느냐 그랬더니 이홍장이 이렇게 답을 합니다 고려가 수천년
동안 속국이 었음을 누구들 모르겠는가 화약에 언급한 소속 방토 즉 청일수
조약에서 언급한 소속 방토의 토 짜는 중국의 각 직성 가리키는 것으로이는
내진이 내속이 되어 전량을 거둬들이고 정 를 관장한다 방자는 그 대신
방자는 고려와 다른 나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이는 외한 외 번이나 왜 속이
되어 전향과 정사를 예로부터 해당 국가의 경리에 귀속시켰다 역내로 이와 같아서
본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데 어째서 속국에 포함되지 않는가
라면서 속 방이라는 거는 그래 세금은 안 걷지만 우리가 회개를 맡겨서
알아서 걷으라고 하는 것뿐이지 분명히 우리 방토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모리가 이때 떠보고
딱 뭐라고 본거에 저 하면 얘기를 하냐면 아 이거 아무래도 중국이 개입 안 할 것 같다
중국이 개입할 의지가 없는 거 같다라고 보고를 합니다 반면에 이홍장은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이홍장은 어 이거 보니까 일본이 조선을 가서 강제로라도 연락 그러고
분명히 함대를 보내고 그럴 거 같은데 이거 큰일났다 조선이 여기에 잘못
대응을 하다 보면 오히려 큰 침범이나 받을 것 같으니까
조선한의원 보고 일본이 올지도 모르니까 너무 자극시키지 말고
웬만하면 거기 말을 듣고 나라를 열어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1876년 1월 10일
13일 날 구로다 함대가 스시마에 집결을 하고 그리고 그 그러다 사절단
이제 조선을 이제 진짜 열러 가는 겁니다 수십명의 관리 육해군 장교 250명의 육해군 해병대 병사 등 총
600명으로 구성되어서 여섯 척에 전남에 올라서 스시마에 들른 후에
대마도에 들른 후에 부산에 이제 들렀다가 강화도로 오는 겁니다 그래서
강화도에서 강화도로 오니까 드디어 조정에서도 중국에서조차도 일본이 올
텐데 이제는 그래도 좀 너무 자극 시키지 말고 대화에 응하라 이랬으니까
그래서 그때에 신헌 어 그 판중추부사 영의정 어 급의 그 신헌 이제 어
보냅니다 그래서 1월 30일 날 판중추부사 신헌이 접견 대신으로 예조
참판 윤자 3을 부관으로 임명하여 일본 측하게 협상을 하게 해서 2월
10일 날 구로다와 노우의 가오루가 400명의 군사를 대동고 강호다 상륙을 하고 2월 11일 날 협상이
시작된 바로 지금 사진에서 보 보시는이 사진이 그때 이제 일본
군들이 강화도에 올라와서 거기에 그 관사에 가서 자기네 개틀린 간 그
남북 전쟁에서 쓰였던 기관 총들 있죠 그것들을 쫙 나열을 해 놓고 나서 이제 협상의 그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나랄 열라는 협상에 돌입을 해서 2월 10일 날 협상이 시작이 됩니다 자
그런데 그때 구로다와 신원이 만나서 첫 단판을 한 내용이 있데 이렇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귀국과 종전의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실로 두 나라의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신의와 친목을 강구하는 데서 특별히 상의해서 결정할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초록한 13개 조목 조약을 모음지기 상세히 열람하고
귀 대신이 직접 조정해 나가 임금을 뵙고 품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조약의 초안을 13개 조약으로 된 요약문을 가져왔으니까
이거를 신원 대신서도 잘 보시고 그리고 그거를 이제 조정에 가져고가
갖고 다 의논을 해서 허가를 그걸 맡아 오기를 어 바랍니다 그랬더니
신원이 뭐라고 묻는지 아세요 조약이라고 하는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조약이 뭔지를 몰라요 그래서 조선의 영의정이 1번
사람 보고 지금 아니 조약을 맺으라고 왔다 그러니까 조약이 도체 뭐 하는 겁니까 고 물어요 그랬더니 그러다가
뭐라고 답을 하냐면 귀국 지방에 관을 열고 함께
통상자원 막혔던 것은 바로 조례가 분명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조약을 체결해서 영원히 변치 않는 장정으로
삼지 않을 수 없으니 그렇게 된다면 두 나라 사이는 다시 교류가 끊어질 일은 없게 될 것이며 또 이것은 모두
없앨 수 없는 만국의 공법입니다 이렇게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해서 만국 공법 즉 근대
국제법에 따라서 조약을 맺 맺자 이래서 그래서 조약을 맺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기유 약조가 기유약조 체제가 무너지고
1876년 2월 27일 조일 수호조규 일명 강화도 조약을 체결을 합니다 그
당시에이 사진을 이렇게 그 찍어 놓은게 있는데 이것이 조선이 외국과
맺는 최초의 근대 조약입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어 어떻게서든지 조선을 열어야 되겠고 중국의 입장에서도 어떻게든지 조선을
열어야 되겠다라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는데 그 계산이 딱 맞아 떨어져서
열 그 조선이 열리게 되는 그게 바로 강화도 조약입니다 강화도 조약의 서문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대일본
국은 대조선국 본디 우의를 두 두터이 하여온지가 여러해 되었으나 지금 두
나라의 정의가 위협한 것을 보고 관계를 닦 친목을 공고해
한다라고 해서 강화이 맺어집니다 제가 계속 강조하고 싶은 것은
뭐냐면요 강화도조약이 그냥 일본이 무슨 뭐 괜히 조선을 와서 열고 싶어서 갑자기
군대를 보내고 뭐 해군 군함을 보내서 그런게 아니라 일본은 지금 일본 나름대로 조선을 열지 않으면 안
되는게 있면 물론 교역도 해서 교역도 통도 해야 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조선을 가만 와 두면은 조선이 지금 굉장히 위태로운
지경에 있다 조선이 중국의 수중에 완전히 떨어지거나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지거나 다른 열강의 수중에 조선이 떨어지면 자기네도 위태로워진다 일본이
생각을 하는 거고 따라서 어떻게 선지 조선을 열어야 되겠고 조선이 좀 자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겁니다 조선이 너무 지금 약하기 때문에 자기네가
어떻게 할 수는 없고 지금 지금 국력으로 1876년 당시에 메이지유신 같에서 근대화를
같이 시작한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을 어떻게 할 힘이 안 되고 실제로 힘이 너무 안 되기 때문에 지금이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그 일본의 오쿠보도시미치 같은 사람들은 사회고
다까 머리에 정환 론도 꺾었던 거 아닙니까 우리가 전쟁할 시금 힘도 안되고 아무것도 안 된다면서 그래서
어떻게 든지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설립을 하면서 조선이 자강을 해 갖고
좀 힘을 길러 갖고 중국이 됐던 러시아의 침략을 다른 열강이 침범에
들어오는 거를 좀 막을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고 중국의
입장에서는이 속방이라고 있는데이 속방 옛날같이 임진 외란 때같이 자기
일본이 쳐들어오면 자기네가 군대를 그때 보냈는데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거죠 이제는 그 힘이 없다는 거
압니다 그래서 이홍장이 조선의 영의정 이유원 테 아예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번에 일본이 올 올지도 또 모르는데 이번엔 그냥 조용히 열었으면 좋겠다
왜 옛날에 임진 회란 때 우리가 군대도 보내고서 도와줬지만 이번에
우리가 그럴 힘이 안 된다고 얘기를 아야 합니다 그러니까는 중국의 입장에서도 조선이 열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 나라랑 수결을 해 갖고 그 여러 나라끼리 서로 균형을
잡게 해서 아무도 어떤 한 나라가 자기네 속방 있 조선을 먹지 못하게
하려고 이제 이랬던 거죠 이런 복잡한 이렇게 다층적인 국제 관계상의 전략과
이해관계가 엉 그어지고 맞아 떨어지면서 그래서 일본도 중국도 다
조선 보고 계곡을 하라 그러니까 비로써 쇄국을 하던 조선이 개국을
하면서 일본과의 최 저의 근대 조약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되는
[음악]
것입니다 자 이제 강화도 조약을 체결을 하고요 그다음엔 일본은 이런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외교 관계를 설정을 했으니까 만들었으니까 그럼 자기네가 외교관을 그럼 서울에다
보내겠다 그러는 거죠 상주 시키려고 대사들을 뭐 공사 대사 영사 이런 사람들을 조선이 절대 안 된다 우리
서울에 아무도 못 들어온다 일본 사람들 못 들어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산에 영사관을 열고 부산
영사관 이제 대리를 하는 거죠 이제 그렇게 하는데 조선에서는 아예 중국
일본에 상주할 수 있는 외교관을 보낼 능력이 안 되니까 그때 김기수 예조
참판 예조의 차관 김기수는 사람을 어 수신사로 보내 갖고 가서 그냥
인사라도 하자 방이라도 하게끔 합니다이 답방을 하러 이제 기수가
떠나는데 일본이 모든 비용과 모든 것을 다 댑니다 조선이 그걸 그
비용이나이이 여행을 다 그 제대로 할 수 있는 그 능력도 없고 아무것도 안
되니까 일본측에서 그냥 다 자기네가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1876년 4월
27일 김기수가 고종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또 여관들 군인 화가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는 5월 19일 날 부산에 도착해서 부산 내 일본이 대준
고류 마루라 배에 올라서 22일 출항해 5월 29일 날 요꼬 아마에
도착해서 요꼬 아마에서 기차를 타고 갑다 이때 배를 처음 타보고는 근대식
배를 처음 타보고 내가 이런 배를 다 타본다고 김지수가 놀라서 적은게 있고요 기차 타고 최초로 기차라는 걸
타고서 이제 도쿄에 도착해서 거기에서 어 일본 사람들 이제 만나기 시작하고
뭐 일본 외무 어 데라 이마를 만나고 이제 그럽니다 자 자
그런데 그다음에 제가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것이 그때에 어 일본 외무성에서
이제 조선 문제를 다루고 있던 모리야마 시게루는 사람인데이 사람하고 김기수가 대화를 하는 거를
김기수가 자기가 어 그 그 책에다가 쓴 기록한 일동 기후라는 책에다가
기록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기가막힌 대화가 나옵니다 일본이 왜
도대체 조선하 수교를 하려 그랬는지 개국을 시키려고 그랬는지 내용이 정확하게
나오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길지만 같이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산무 그러니까 모리야마 시계를 이제 한자를 그대로 우리 식으로 읽은 거죠 모리야마 시계로는 말하기를
여관에서 매우 적적하실 터인데 나와서 함께 놀며 울적한 마음을 조금 풀지 않으렵니까 하므로 나는 대답하기를
김기수이 사람은 성품이 본뒤 부터 고요한 것을 좋아하여 실로 울적한
것이 고통이 되는지는 알지 못하므로 놀고 구경하는 일에는 흥미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자기가 그렇게
답을 했다는 거니다 그랬더니 산무리 아마가 말하기를 답답하게도 공은 끝내
나의 고심을 알지 못하십니까 누가 공에게 구경만 시키려는 것입니까 지금에 와서 두 나라는 한 집안이
되고 말았는데 우리나라는 사면이 모두 바다임 외적이 이르게 되면 대적해 낼
수가 없어서 오늘날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한결같이 남에게 제어만
받을 수 없는 까닭으로 부국 강병의 술책을 다 써서 군대를 많이 두고 기계를 편리하게 만들기를 앞세워
지금에 와서는 병도 정의하고 양식도 풍족하며 기계도 아주 새롭게 되었으니
거의 믿고 외적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 건데 귀국 산천에 험준한 것은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낫다고 하겠으나 오히려 근해에 외적이 들이닥칠 걱정이 많으니 전혀
방비가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게 초선 부구 치고 하는 겁니다 초선이 더 험준하다 그런데 해안 방위는 전혀
안 돼 있으니까 외적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는 거 아니냐 우리 우리들이 구경하라고 누누히 말하는
것은 군제 군 군을 어떻게 지금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두루
살펴보아서 좋은 것은 개혁하는 것이 한 가지 일이요 기계를 자세히 보아서
편리한 것을 모방한 것이 두 가지 일이요 풍속을 두루 살펴보아서 채용할 것은 채용하는 것이 세 가지 일입니다
귀국에 돌아가시거든 확실하게 의논을 정하여 부국강병을 도모하여 두 나라가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하여 외환을 방하는 것이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함으로 나는
대답하기를 대단히 감사합니다 귀국의 성인은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이번 걸음에 또한 제조 있는 사람 몇 명을
데리고 와서 제도는 입으로 기기는 손으로 모방하고 풍속은 귀와 눈으로 기억하고자 하였으나 다만 두 나라가
오랫동안 의심하여 멀리하던 끝에 다행히 봄의 일 즉 강화 에 있게 되었으니 일찍 와서 살해하지 차지
않을 수 없습니다 6개월 후에는 반드시 귀국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올 것이므로 우리 조종에 이보다 먼저
수신하고자 하여 갑자기 행정을 차렸던 것이니 실로 이러한 일에는 생각이 미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못 때리고 왔다 이겁니다 또 우리나라의 성균은 신의를 앞세우고 사공은 뒤로 하기 때문에 먼저
수신하기 만 서둘렀던 것입니다이 사람은 또한 산중의 빈사로 견문이
놀지 못하고 재식이 전혀 없으니 비록 손으로 기물을 잡고 종일토록
만지더니 알 수 없으며 일행의 수행원들 모두 몸과 짐이 근신하고
옹하 다만 득죄 아지 않는 것만으로 준칙을 삼게 되니 그들도 또한이
사람과 비슷할뿐입니다 비록 날마다 유람하고
구경하더니 되는 점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은 현재 맡은 일만 마치고
우리나라에 돌아간 후에 잘 의논하게 싸우며 또 귀국의 사신이 우리나라에 오면 다시 확실히 의논할 날이 있을
것이니 하필 구차스럽게 눈앞에 충고만 따라서 갑자기 책임만 얼버무려 우리에게도 소득이 없으며 당신들의
후위 져 버리겠습니까 하였다 삼문을 말하기를 공해 마 말씀 또한
옳습니다 설득을 안 나아요 제발 나가서 이런 거 좀 공부하십시오 그랬더니 아유 저는 산속에서 책이나
읽고 있는 가난한 선비로서 이런 거 아무리 봐요 이해도 못 할테니까 그래서 아예 숙소에서 나가지 않고
거의 보지 않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람들이 데리고 다니면서 어 전보 전보라 것도
보여주고 그리고 무슨 공장들 다 보여 주려고 그렇게 애를 씁니다 그래서 실제로 김기수가 자기가 전보라 걸
보고서 너무 놀랍다는 것도 나오고 그리고 이제 길거리를 다니다가 외국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하고 같이 섞여서 살고 이러는 걸 보고 놀래 갖고 뭐 일본 여자들이 서양 남자들하고 결혼도 했다 근데
서양 사람도 어떻게 생겼더라 이런 얘기도 하고 메이지도 가서 만나고 메이지가 어떻다는 얘기도 나오고 이제
그런 기록들을 하긴 했습니다만 1번은
지금 우리가 조선은 지킬 수도 없다 조선은 자강을 해야 되고 진짜
우리도이 섬이기 때문에 특히 이거를 지키려고 얼마나 애를 썼었는데 그래서 그나마 노력을 해서 어느 정도 이제
군대도 갖추고 뭐이 해서 했는데 조선 지금 무방비 상태인데 초선이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거 아니냐 그래서 좀
배우라고 해서 하는거다 그걸 보여 주려고 하는거다 그런데 기수는 끝까지 거절합니다
그다음에 이제 누구를 또 만나냐는 여러 사람 만나는 것 중에서 이제
문부성의 간 겁니다 문부성 가서 어 문학 그러니까 이제 문학을 한다
그러니까 이제 그 그이 선비였던 대부였던 어 김기수
이제 좀 동했던 거죠 그래서 가서 이제 뭐 사서삼경을 논하고 이제 뭐 이런 생각을 중국의 철학을 논 생각을
하고 이제 갔겠죠 그래서가 갖고 어 문부성의 문학 기일 쿠키 리치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자 그래서 그 대화가 이것도 이제 김기수가 그 기록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문부성의 문학에서 어 대승기
일 국기 치는 나를 극진히 대접 대하였다 술자리에서 나에게
묻기를 의 학문은 전적으로 주자만 상합 아니면 다른 학문도 숭상하는
것이 있습니까 하므로 나는 대답하기를 우리나라의 학문은 500년 동안 다만 주자만
수상하였습니다뿐입니다 주자를 어기는 사람은 바로 난적이 제목으로 처하였고
보는 문자까지 불가 도가의 말을 쓰는 사람은 귀양 보내어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국법이 엄중했던 까닭을 상하와 귀천이 다만 주자만
수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군주는 군주의 도리로 신하는 신하의 도이대부 아버지의
도이대부 이대로 형은 형의
도이대부 아내는 아내의 도이대부 이만 따랐으니 다른 갈림길이
엇갈릴 수도 없으며 다른 술수가 현혹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하니 구기
인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제가이 국기
루치를 그 그 관심을 갖고 기억을 하는 이유는 뭐냐면 그 아들이 유명한 철학자입니다
그 아들이 그 쿠키 작인데 아들이 일본 사람으로 독일의
어 유학을 가서 철학자였다 하이데거와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는 하이데거 하고 공부를 하고는 프랑스에 건너가서 하이데거의 철학을
메를로퐁티 사르트 정 사르트 같은 프랑스 최고
학자들 하이데거의 실존 주의라는 거를 전달해 주는게 사실은이 쿠키입니다
그런데 그 쿠키와 하이데거가 대화하는 것이 하이데거의 책에 어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 일본의 미학을 갖다가 하이데어 테 설명을 하고 하이데거가
이제 그거에 대해서 그 감동을 하면서 이제 대화를 나누고 하는 언어의 언어 철학에 대해서 이제 얘기를 하는 그런
대화가 나오는데 그 바로 그 그 그 아버지가 이제 여기에 나오는 그러니까
일본은 이때부터 급속하게 개국을 하면서지만 이때에 전 세계 지금
유학생들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고 지금 바로이 그 김기수와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자기 아들을 어 보내서 유명한
그 세계적인 철학자로 키우는 이제 그런 그런 과정을 지금 일본을 겪고
있는데 어 조선의 예조 판서는 일본까지 건너가서 아무것도 구경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주자 하기는 된다 우리는
도교와 불교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고 그런 거를 다 삼은 난 적이라 그러는데 무슨 서양의 거는 더더욱이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니까 아 극기 위치도 그냥
어떡하겠습니까 그 정도로까지 얘기를 하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까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이 당시에 조선하 일본이 어 바깥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고
나라를 어느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그런 생각이 어 그 생각의 폭과 깊이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를 너무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 그래서
김기수는 그런 여정을 거쳐 갖고 어 일본을 일본에 있다가 사실은 어떻게
쓰지 구경 안 하고 그러고는 이제 돌아옵니다 돌아왔더니 고종은 오히려
고종은 굉장히 수한테 관심이 습니다 김수가 뭐를 보고 왔는지 계속해서
대화를 하는데 그 말을 시키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기수는 고종한 이렇게 답을
합니다 돌아와서 이제 일본에서 돌아와서 하는 얘기입니다 일본이 부국강병을 하고
있다 그러는데 그 부극 강병은 도대체 뭐냐 고정이 물어보니까 김기수가 이렇게
답합니다 그 이름바 부국강병의 술책은 오로지 통상을 일삼는 것이었는데 상도
자기 나라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피차간에 거래가 있어 이쪽에서는 저쪽에 가서 통상을라고
저쪽에서는 이쪽에 와서 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일본이 세 세계 각국에 통상가 것이 그 수효가 매우
많지만은 가서 통상을 하는 나라는 일본 한 나라 뿐이고 와서 통상을 하는 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인데
일본에서 생산되는 것이 반드시 세계 각보다 열배나 되지는 않을 것이니
생산하는 사람은 하나뿐이고 소모하는 사람은 여섯 여럿이 되면 물가가 등기하는 것은 현세가 그렇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에 날마다 전패를 만들어 이것을 당해 내게 되니 돈은 천하게
되고 물건은 귀하게 되므로 이것은 반드시 실패하는 돈입니다 그 통상이
뭔지를 전혀 모릅니다 지금 일본이 예를 들어서 열개 국가랑 통상을
하니까 그 사람들은 와 갖고 일본 물건을 사 가는데 일본이 도대체 어떻게 그 물건을 다 팔면 자기네가
쓸게 아무도 없게 되는 거고 그게 쓸게 아무것도 없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돈을 찍어내 되는 거고 그러니까 돈이 값싸게 되는 거 물가는 올라가고
이러는 겁니까 이게 도대체 교역을 한다 수출을 한다 이게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요 어떻게
보면은 글쎄요 지금 우리가 전세계 모든
국가랑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그 교육을 하는게 수출하고
수입하는 것이 부국강병의 그야말로 도움이 됩니까 안 됩니까 그것 때문에
부국강병이 되는 거죠 근데 이러한이 시장의 원칙 국제 통상의
원칙이 원칙을 지금 조선 사람들은 전혀 조선의 고관들 전혀 이해를 못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가난한 나라의 조선이 외국하고 더군다나 통상을 하게
되면 어떡합니까 우리는 가진 물건이 하 하나도 없는데 외국 사람들이 그걸 와서 통상을 다 사가 버리면은 그럼
우리는 어떡하느냐 이겁니다 지금 일본이 똑같은 일을 겪고 있다 그러면서 아유 이거 부국강병 할 일이
아닙니다 외국과의 교 교역 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고정한 지금 일본에 다녀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하물며 교 교묘하게 않은 기술이 없고 정교하지 않은 기회가 없이 대자연의
이치를 다 이용하여 다시 여지가 없게 되었으니 겉모양을 본다면 위에 진술한
여러 조과 같이 이보다 더 부할 수는 없지만은 가만히 그 형세를 살펴본다면
또한 장구한 술책이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전부 다 오래 갈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지속 불가능합니다 계속해서 돈 구고
차관들이 오고 이런 것이 물건을 물건이
무적하리 나라랑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만 더 가난해지는 거고 자만 다
빼가는 거고 물가만 올라가는 거고 백성들만 더 가난해지는 거라고 그렇게 어 해석을 하면서 할
일이 아니다 개국해 교역하고 할 일이 아니다 통상 할 일이 아니다
부국강병 할 수 있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것이 개국을 어쩔 수 없이 중국과 일본의
강요에 못 이겨서 계곡을 하면서도 전혀 계곡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계곡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조선의 지도층의 그 단면을 너무나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급격한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이 그럼 어떻게
해서 조선을 열게 됐는가 조선은 어 어떤 이유 때문에 결국은 어 세국
정책을 포기하고 어 개국으로 가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중국의
역할이 뭐였던 거고 그 뒷 배경에 깔려 있는 국제 정세가 뭐였는지 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반응 김기수 수신사 어
1본 방문 후의 반응 같은 것에 대해서도 한번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러면 다 아시겠지만 사실은 이렇게 해서 조선이 열리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개화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일본을 배우자 서양을 배우자 근대
국가를 우리도 건설해 보자라는 시도가 일어나지만 결국은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어렵 살이 나라가 열렸고 계곡을 했는데 그리고 옆에
나라에서도 부국강병을 해봐라 근대화를 해봐라고 자꾸 어 그걸 종용을 하고
그러는데도 왜 조선은 결국은 개화파는 조선의 근대화에 실패하게 되었는가
그것을 다음 시간에 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는 함재봉
한국인의 탄생 지금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음악]
C [음악]
===
세진님, 요청하신 강좌 7회 내용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나를 향하지 않은 본문(요약 및 평론)은 <해라> 체를 사용하고, 각 사실적 정보에는 출처 각주를 붙였으며 강조 기호는 < >로 표기했다.
<조선은 왜 쇄국을 포기하고 개국을 했을까?> 요약 및 평론
1. 내용 요약
강좌 7회에서 함재봉은 조선의 개국(1876년 강화도 조약)이 단지 일제의 일방적 강압이나 위협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다층적 국제 정세와 청나라의 전략적 묵인·권유, 그리고 일본 메이지 정부의 자강(自强) 외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해명한다.
(1) 기유약조의 해체와 동아시아 격변
기유약조 체제의 붕괴: 조선은 임진왜란 후 맺은 기유약조(1609년)에 따라 부산 초량 외관을 통해서만 쓰시마 번(대마도)과 제한적 교류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1868년) 및 판적봉안(1869년)으로 쓰시마 번이 소멸하고 천황 중심의 중앙정부가 들어서자, 일본은 조선에 새로운 근대적 국서와 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조선 조정은 전통적 전례(서계의 양식, '황제' 칭호 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며 마찰이 시작되었다.
청일수호조약(1871년)과 청나라의 전략: 일본은 조선이 말을 듣지 않자 청나라와 먼저 근대 조약을 맺었다. 청나라의 이홍장은 서구 열강과 러시아의 남하, 일본의 부상을 혼자 힘으로 막을 수 없음을 자각하고, '이이체이(以夷制夷)' 전략을 세웠다. 즉, 조선을 여러 열강과 수교하게 하여 세력 균형을 이루게 함으로써 특정 국가가 조선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려 했으며,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 일본과의 충돌을 피하고 개국할 것을 적극 권유했다.
(2)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1876년)
운요호 사건의 모색: 정한론(征韓論)을 꺾은 오쿠보 도시미치는 군사적 침략 대신 외교적·강압적 수단으로 조선을 열기 위해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다.
강화도 조약 체결: 1876년 2월, 구로다 기요타카가 군함을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하여 13개 조항의 조약 초안을 제시했다. 이때 접견 대신 신헌이 "조약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정도로 조선 지배층은 근대 국제법(만국공법)과 조약 개념에 무지했다. 결국 조선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체결하며 쇄국을 포기했다.
(3) 수신사 김기수의 일동기유(日東記遊)와 지적 단절
수신사 파견과 모리야마의 권유: 개국 후 1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김기수에게 일본 외무성의 모리야마 시게루는 부국강병을 위한 기계 수용, 군제 개혁, 풍속 관찰을 강력히 권하며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해 외세를 막자"고 제안했다.
조선 엘리트의 인식적 한계: 김기수는 이를 한사코 거절하며 "조선은 500년 동안 오직 주자학만 숭상했고, 다른 사상은 사문난적으로 처벌했다"며 기계나 통상은 부국강병의 지속 가능한 길(장구한 술책)이 아니라고 단정했다. 무역과 통상의 시장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조선 조정에 돌아가 "통상은 나라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보고함으로써, 개국이라는 문명사적 기회 앞에서도 지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2. 평론: 구조적 개국과 인식적 쇄국의 불일치
강좌 7회는 조선의 개국을 단순한 '일제 침략의 첫 단계'라는 피해자적 서사로만 읽지 않고, 청·일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조선 내부의 유교적 보수성이 부딪힌 복합적 역사 현장으로 입증한다.
첫째, 동아시아 삼국의 복잡한 외교적 셈법을 입체적으로 규명했다.
청나라의 이홍장이 왜 조선에 개국을 권유했는지, 일본의 오쿠보 도시미치가 왜 정한론을 배척하면서도 강압적 조약 체결을 서둘렀는지를 세계사적 맥락(러시아 남하, 서구 열강의 압박)에서 매끄럽게 연결했다. 조선의 개국은 동아시아 세력 균형을 모색하던 주변국들의 외교 전략이 개입된 구조적 결과였음을 선명히 보여준다.
둘째, '근대적 개념'의 부재가 가져온 외교적 참패에 대한 통찰이다.
조약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신헌의 질문이나, 통상과 무역을 '물품을 빼앗기고 돈을 찍어내어 물가를 올리는 자멸책'으로 이해한 김기수의 한계는, 준비되지 않은 개국이 가져온 무지(無知)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명적 전환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명분론이 아니라 국제 정세와 경제 원리에 대한 객관적 지식임을 일깨운다.
셋째, 일본의 '자강 권유'와 조선의 '이념적 거부'의 대비이다.
모리야마가 제안한 동아시아 공존과 자강의 논리를 김기수가 "오직 주자학만 숭상했다"는 이념적 자부심으로 일축해 버린 장면은,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사상적 격차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이는 형태적으로는 문을 열었으면서도 정작 머릿속은 단단히 잠겨 있었던 '인식적 쇄국'의 비극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함재봉의 7회 강연은 조선이 외부의 격랑에 밀려 쇄국을 포기하고 개국으로 들어섰으나, 지배층의 세계관과 지적 체계는 여전히 쇄국에 갇혀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 깊은 사상적 불일치가 훗날 개화파의 고뇌와 실패, 그리고 국권 피탈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복선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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